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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차는 어떻게 인간 곁으로 왔나

    중국 천목산에는 원숭이들을 ‘희롱’해 채다(採茶)해낸 원우차(猿愚茶)라는 차가 있다.500∼600년 된 차 나무는 그 키가 매우 크다. 원숭이들은 그 차나무에 올라가 맛있는 찻잎을 따먹고 살았다. 도저히 차를 딸 재주가 없던 사람들은 원숭이들에게 돌멩이 세례를 퍼붓고 약을 올렸다. 사람들의 돌멩이 세례에 화가 난 원숭이들은 차나무 가지 중 오래된 것을 꺾어 사람들에게 던졌다. 사람들은 또 일부러 원숭이들을 다른 나무로 옮겨가게 했다. 그래야 새로운 차나무 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이 꺾어 던진 차나무 가지의 찻잎을 모아 귀한 차를 만들어 팔았다. 그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명차로 손꼽히는 원우차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그 답은 중국의 윈난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윈난성 사모지구 진위안현 애뢰산에는 2700년 된 차나무가 ‘생존’해 있다.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인 것이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역사와 역사를 넘어 2700년을 살아온 차나무가 있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듯한 ‘품세’(品勢)를 가진 그 차나무는 오랫동안 한 마을을 지키며 ‘공존’과 ‘화해’의 다리를 놓고 살아온 촌로의 후덕함을 그대로 닮아 있다. 넓고 넓은 긴 팔을 벌리고 세상의 온갖 번뇌를 다 담아낼 듯한 품세를 지닌 그 차나무를 중국에서는 ‘과로’(瓜蘆)라고 부른다. 오래고도 오랜 차나무란 뜻이다. 차나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 중 인간에게 그 효용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이다. 나무, 잎, 꽃, 향기 등 식물로서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식용으로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기 때문이다. 육우는 ‘다경’에서 “차나무는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상서로운 나무다. 나무의 높이는 한 자나 두 자나 수십 자에 이르기도 한다. 파산과 협천에는 두 사람이 함께 껴안아야 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차나무는 가지를 베어야만 잎을 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차의 근원은 어디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슴없이 중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말은 사실 적당하지 않다. 그것이 차나무에 대한 근원인가, 아니면 하나의 음료문화의 근원인가를 먼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학적 특성으로서 차의 근원을 따진다면 중국이 될 수 없다. 지정학적으로 차나무는 북위 42도에서 29도인 남아프리카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고 식물학적으로는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로 약 6500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라별로 살펴본다면 중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스리랑카, 코카서스, 남아메리카 일부 등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존재로 그 근원을 따지기 매우 어려운 대목인 것이다. 차는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존재해 왔다. 단순히 차나무와 관련된 식물학적인 특성으로 그 근원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차를 인류의 삶과 결합시킨 문화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그 발원지이며 근원지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하는 차의 기원은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다.‘신농씨설’(神農氏說),‘편작설’(篇鵲說),‘달마설’(達磨說),‘기바설’(嗜婆說) 등이 그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이 나름대로 ‘신화’(神話)적인 전설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차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다. 차의 기원은 그 약리성에 먼저 바탕을 둔다. 지금처럼 병든 인간의 육신을 다스릴 수 있는 약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인들은 자연에서 그 치료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차의 발견과 보급 역시 마찬가지로 그 약리성에 바탕을 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차를 발견해 인류에게 전한 사람은 중국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전설의 삼황오제중 한 사람인 ‘신농씨’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신농씨는 백성을 교화해 농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인간에게 불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해서 ‘화덕왕’(火德王) 또는 염제(炎帝)라고도 한다. 그는 ‘농업의 신’답게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풀들을 씹어서 맛을 본 후 그 약성을 가리고 약을 만들어 백성들을 치료했다. 신농은 뱃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배를 갖고 매일 산하대지를 누비며 하루에 100가지가 넘는 풀을 맛보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산을 누비며 갖가지 풀을 맛보던 신농은 그만 독초에 중독되고 말았다. 지금껏 풀잎을 맛보며 크고 작은 독초에 중독될 때마다 해독약을 만들어 먹었던 신농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그가 만든 갖가지 해약도 소용이 없었다.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신농은 향긋한 냄새가 나는 나뭇잎을 따서 먹었다. 뱃속으로 들어간 그 녹색잎은 신기하게도 들어가자마자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돌며 뱃속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녹색잎이 위장을 돌며 독초의 독성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린 것이다. 신농의 배는 곧 씻은 듯이 나았다. 그뒤 신농은 녹색잎을 품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백초를 맛보며 독을 만날 때는 꼭 그 녹색잎을 마시고 해독했다. 신농은 신비로운 약효를 지닌 그 녹색잎에 대해 ‘검사하다’란 뜻을 가진 ‘사’(査)라고 불렀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후난성 주저우시 옌링현 당전향 녹원파에 신농이 누워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차릉’(茶陵)이 있다. 청나라때 크게 중수했다는 차릉은 베이징의 자금성과 그 격을 같이할 만큼 정성들여 지어졌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신농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를 꺼린다. 신농이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시조 신농은 4500여년전 지금 중국 후베이성 쑤이현 역산에서 태어난 실제 역사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중국의 위대한 문자학자 뤄빈지(駱賓基)는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서 동이족 수장이라는 ‘신농’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해 중국 문자학회를 들끓게 한 적이 있다. 만약 뤄빈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차 문화의 종주국은 중국이 아닌 우리 ‘동이’(한국) 문화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가 하나의 어원으로 자리잡은 것은 8세기경 당나라 때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 ‘차’는 ‘도’( )로 불리어졌다. 중국에서 ‘다’는 산스크리스트 글자로 소리나는 대로 표현하면 ‘투’(tu)로 발음된다. 그 발음을 한문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도’였다. 전한시대까지 ‘차’는 ‘도’자로 쓰여졌다. 글자는 ‘도’로 썼지만 발음은 ‘차’로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후한때부터 ‘도’자의 한 획을 떼어버리고 그대로 ‘차’(茶)로 썼다고 한다.‘도’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쓴맛 나는 풀’이 된다.‘쓴맛 나는 풀잎’이라는 것은 차가 지금처럼 음용으로서보다는 약용으로서 그 가치가 더 높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도’가 아닌 ‘차’(茶)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뜻도 무궁무진하다. 차는 한자의 초(艸=草)와 나무(木)사이에 사람(人)이 있는 모양으로 상형화되어 있다. 또 다르게 풀이해 본다면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상서로운 ‘풀’(草)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좀더 한발짝 나아가 본다면 ‘차’라는 글자가 가진 상징성과 효용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육우는 ‘다경’에 이같은 차의 명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차는 가(價), 설( ), 명(茗), 천( )이라고도 하는데, 주공은 ‘가’라고 하는 것은 쓴차(苦茶)라 했고, 양집극은 서남쪽 사람들은 차를 ‘설’이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곽홍농은 일찍 딴 것을 ‘차’라고 하고 늦게 딴 것을 ‘명’이라 하며, 혹은 전부를 ‘천’이라 할 뿐이라고 했다.” 신농이 독을 치유할 수 있는 상시적인 약으로 복용했다고 하는 ‘차’는 그후 중국인들에게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며 귀하게 취급되었다. 중국인들은 ‘귀하디 귀한 차잎’과 함께 파·생강 등 귀한 약재들을 혼용해 죽을 끓여 먹었다. 이같은 음다풍속은 차의 약리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차가 하나의 음용으로 상용화되기 전에 독특한 음용법을 개발해 ‘귀한 단방약’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차의 식물학적 학명은 차나무과(Theaceae) 차나무속(Thea) 차나무(Sinensis)로 6500만년 전에 출현한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이다. 나뭇잎은 약간 두꺼우며 윤기가 있고 긴 타원형으로 질기며 그 끝은 뾰족하며 잎 둘레 주위에 톱니가 있다. 땅속으로 바로 깊이 들어가는 직근성이다. 신기하게도 차나무는 인간이 가장 최적의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곳에만 분포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사계절이 존재해야 하고, 온도 날씨 강우량 등이 적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을 가진 지역대가 바로 인간의 가장 쾌적한 환경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오랜 결혼풍습중에 봉채(封采)라는 것이 있다. 봉차(封茶)라고도 불렸던 이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결혼하기 전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차를 보냈다. 봉차를 결혼 전에 보내는 것은 차나무가 가진 성질대로 평생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나무는 성질이 씨앗으로 심어야만 잘 자라고 직근성으로 세근(細根)이 없기 때문에 옮기면 잘 자라지 않아 한번 결혼하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정절을 의미한다. 또한 씨앗을 따로 심어도 한 나무로 합해져 나오므로 신랑과 신부가 천생연분임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결혼예물의 봉채로 차 씨앗을 보내는 것만큼 완벽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어졌던 봉차의 풍습은 일본에도 전해져 지금도 혼숫감에 차 씨앗 2개를 신부집에 보내기도 한다. 차나무는 또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겨울에 순백의 하얀 꽃잎을 피운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꽃과 열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는 점이다. 마치 구름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운화’(雲花)라고도 부르는 차의 꽃잎은 5장으로 차의 다섯가지 맛인 고(苦), 감(甘), 산(酸), 삽(澁), 함(鹹)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말을 풀이해 보면 너무 인색하지 말고(鹹), 너무 티(酸)내지도 말며, 복잡(澁)하게도, 너무 쉽고 편(甘)하게도, 어렵게(苦)도 살지 말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차가 가진 깊은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대목이다. 신농에 의해 ‘발견’됐다는 차가 인간과 접목된 것은 바로 그 약리성 때문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는 중국의 명차 중 하나인 몽정차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수행을 하다 그만 중병에 걸린 늙은 스님이 있었다. 여러 가지 약을 써봤으나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인이 스님에게 말했다.“춘분 전후로 봄 천둥이 처음 칠 때 몽산에서 증정차를 제다하여 그곳의 물로 달여 마시면 숙환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노인의 말을 들은 스님은 몽산에서 제일로 치는 상청봉에 석실을 짓고 봄 천둥이 치길 기다렸다. 마침내 봄 천둥이 치자 그 스님은 노인이 가르쳐준 방법에 따라 몽정차를 채집했다. 그 차를 달여서 복용하자 과연 병이 낫고 눈썹도 검은색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었다. 신체도 건강해져서 그 모습이 30여세로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차를 병을 낫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려는 약용 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중국의 다성인 육우는 ‘다경’을 지을 때 차의 약리적인 가치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육우는 “만약 열이 나서 갈증이 생기거나 고민이 있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깔깔하거나, 사지가 번거롭거나, 뼈마디가 쑤시면 네댓 모금만 마셔도 제호 감로와 더불어 손색이 없다. 또한 차를 음료로 삼은 것은 신농씨로부터 시작되어 주공에 이르러서 널리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초기 양쯔강 하류지역 차산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음용됐던 차는 수나라시대 대운하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개화’를 하게 된다. 초의 스님은 이같은 차의 역사에 대해 ‘동다송’에 “천인과 신선 인간세상 귀신까지 다같이 사랑하고 아끼었으니, 그대(차) 타고 난 성품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함을 알겠구나. 차의 신 신농도 일찍이 너(차)를 맛보고 식경에 실었나니…제호와 감로라 불리며 예부터 그 이름 전해왔다네.”라고 찬탄하고 있다. 차에 대해 이런 말이 예부터 전해온다.“새는 날고 짐승은 달리고, 사람은 입을 벌려 말한다. 이 셋은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마신다는 것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목이 마르면 장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
  • ‘전통문화 더 가까이’ 지도사 교육

    ‘전통문화 더 가까이’ 지도사 교육

    ‘찜통 더위를 전통문화의 향기로 씻어낸다.’ 국립 민속박물관(관장 김홍남)과 한국 민속박물관회(회장 임동권)는 전통문화를 활성화하고 전통문화 현장학습을 지도할 수 있는 ‘전통문화지도사 양성교육’을 오는 8월4일부터 12월15일까지 20주에 걸쳐 실시한다.(표 참조) 말이 ‘교육’이지 대부분의 커리큘럼이 실습과 현장교육 위주로 짜여져 누구나 공부 부담 없이 전통문화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매년 갖는 행사지만 갈수록 신청자가 늘고 있으며, 특히 부부 참가자들이 많아 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반영하기도 한다. 교육프로그램은 지도사로서 문화재와 민속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 강의와 현장답사로 짜여졌다. 강의에는 관광 법규 및 정책, 우리나라의 관광자원으로서 5대 관광권 및 주요 문화재 탐방코스, 각 도별 주요답사지는 물론 풍수지리와 무속, 갯벌, 숲 생태 등 답사방법을 익히는 실무 및 역사와 문화, 관광을 망라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교육 전 과정을 마치면 지도사 자격증이 주어지며, 국립민속박물관과 궁궐 등은 물론 각 문화 현장에서 지킴이나 현장답사 안내자 등으로 활동하게 된다. 민속박물관 측은 “이 교육이 주5일근무제 확산에 따라 의미있는 여가 활용은 물론 우리 전통문화에 관한 소양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교육은 선착순 200명을 대상으로 매주 목요일 오후에 실시되며,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민속박물관을 직접 찾거나 전화((02)3704-3145∼6) 또는 인터넷 홈페이지(www.skfm.or.kr)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교재비를 포함한 수강료는 1인당 10만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장을 연 사례들을 소개한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암,3위인 심장질환의 최신치료법, 그리고 기적의 치료제로 불리는 줄기세포까지 난치병 극복에 도전하고 있는 7명의 의과학자를 통해 최신 의학정보를 짚어 본다.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전직 탤런트 겸 매니저로 끼 넘치는 무속인이 된 계룡산 김도령, 똑부러지는 점괘만큼 당당하고 튀는 무당 옥황선녀, 휘파람으로 점을 보는 신비로운 요술공주, 귀여운 말투지만 날카로운 눈빛의 댕기동자, 깜찍 발랄한 신세대 무속인 지리산 칠선녀 중에서 단 한 명의 가짜를 찾아낸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모기. 특히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모기와 싸워야 했던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다. 그런 모기에 물리면 빨갛게 부어오르고 가렵다. 왜 모기에 물린 후 이렇게 붓고 가려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모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지능지수는 정상인데 기대되는 학습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학습부진 상태에 있는 아이들의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공부를 싫어해 공부하는 순간을 피하기만 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살피고, 아이들이 말을 안 듣거나 부모의 말에 무조건 반항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본다. ●굳세어라 금순아(MBC 오후 8시20분) 재희는 우연히 태완이 장 박사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금순과 영옥과의 관계를 알게 된다. 얼마전 영옥을 만나겠다며 장 박사의 집 주소를 묻던 금순에게 함부로 대한 일이 생각난 재희는 병원을 뛰쳐 나간다. 한편, 금순은 모든 진실을 할머니에게 묻고 싶어 숙모네를 찾아간다. ●위험한 사랑(KBS2 오전 9시) 찬의 생일날, 세진은 식당에서 찬이와 함께 강제를 기다린다.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자 세진은 전화를 걸지만 강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를 안 받는 강제 때문에 세진은 짜증이 나고, 혼자 놀이방에서 놀던 찬이가 그만 떨어져 다치고 만다. 세진은 찬이를 안고 병원에 가 그곳에서 정현을 본다.
  • 아파트 투기사례 보니

    아파트 투기사례 보니

    14일부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는 457명의 아파트 투기혐의자 가운데는 대치동·개포동 등 서울 강남지역에만 아파트 36채와 상가 4채를 집중 매집한 50대 무속인이 포함돼 있다. 고리사채업을 하면서 영세사업자들에게 고리로 사채를 빌려주고 담보로 잡은 수도권 지역 아파트 56채를 가등기해 인수후 처분하는 수법으로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사채업자도 있다. #사례1:아파트 근저당권만 134억원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모(56)씨는 세무당국의 자금출처 조사를 피하기 위해 사들일 아파트나 상가에 대해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수법을 동원, 투기를 일삼았다. 운명상담소를 운영하는 무속인인 김씨는 지난 99년부터 올 4월까지 본인 명의로 아파트 29채,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자녀 3명 명의로 7채를 사들였다. 상가도 본인 명의로 3채, 장남 명의로 1채를 매입했다. 김씨가 아파트 등의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근저당권 설정을 통해 10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액은 134억원이나 된다. 은행 담보대출을 부동산 투기에 최대한 활용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강남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36채 가운데 7채를 처분했다. 국세청은 “최소한 13억원의 양도차익이 생겼으나 양도소득세를 신고·납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파트 취득과 관련된 담보대출금 134억원에 대한 이자만 연간 8억원으로 추정되는데도 신고소득은 연간 1200만원에 불과, 수입금액을 누락한 혐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현재 아파트 28채와 상가 4채를 보유하고 있다. #사례2:영세사업자 아파트 노린 고리사채업자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모(50)씨는 의류제조업 및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남편 이모(55)씨의 탈루자금으로 고리사채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2003년 9월부터 올 3월까지 영세사업자들에게 고리로 사채를 빌려주고 담보 성격으로 이들 사업자의 수도권지역 아파트 56채(시가 80억원)에 대해 매매예약가등기를 설정했다. 이 가운데 자금사정 악화로 사채를 갚지 못한 영세사업자들의 아파트 5채(시가 25억원)를 헐값으로 사들인 다음 최근 아파트 값이 치솟자 3채를 단기양도, 거액의 차익을 냈으나 양도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김씨가 현재 실질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등기상 가등기 상태로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는 50여채로 시가는 60억원 가량 된다.”면서 “최근 강남권에서도 고가의 아파트를 취득하는 등 전형적인 투기세력”이라고 밝혔다. 오승호기자 osh@seoul.co.kr
  • 우리춤 ‘스타 빅4’ 만나 보세요

    국내 대표적 무용 전문기획사 MCT(대표 장승헌)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24·25일 이틀 동안 호암아트홀에서 ‘우리춤 스타 빅4 초대전’을 마련한다. 이번 무대에 설 주인공은 김매자(62)창무예술원 이사장, 김말애(56)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조흥동(64)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정재만(57)숙명여대 무용학과 교수 등 4인. 그야말로 한국무용계의 ‘거물’들이 한데 어울리는 묵직한 무대이다. 아무래도 무용팬들은 한국 창작무용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의 무대를 가장 먼저 주목할 듯하다. 공연작은 산조춤 ‘숨’과, 민속춤의 자유로움과 무속춤의 주술성을 바탕으로 한국춤에 내재된 신명을 형상화한 ‘춤본 Ⅱ’. 창무회, 포스트극장 등을 이끌어온 그는 프랑스 리옹댄스비엔날레 등 세계적 댄스페스티벌에 참가하며 한국전통에 근거한 현대춤을 춘다는 호평을 받아왔다. 김말애 부이사장의 무대는 부채춤으로 인상깊을 것같다. 1954년 명동 시공관에서 김백봉 무용발표회에 초연된 ‘부채춤’을 재안무해 보여주고 창작무용 ‘굴레’도 선보인다. 김문숙 선생을 거쳐 경희대 무용학부에서 김백봉 선생에게서 한국춤을 배운 그는 타래무용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기도 하다. 역동적인 무대는 국내 대표적 남성 무용가 조흥동 예술감독이 책임진다. 쇠를 들고 절묘하게 가락과 소리를 내 여러 신을 불러들여 잡귀를 물러나게 한다는 ‘진쇠춤’, 옛 선비의 춤이자 남성춤의 전형인 ‘한량무’를 보여줄 예정이다. 정재만 교수는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태평무’, 즉흥성과 자유로움을 구사하는 ‘허튼 살풀이’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24일 오후 8시,25일 오후 5시.2만∼5만원.(02)2263-4680.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신명난 우리가락에 빠~져봅시다

    신명난 우리가락에 빠~져봅시다

    “얼∼쑤, 사람들도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한 판 걸쭈욱하게 놀아보세.” ●청소년들 인사동서 ‘잡색굿’ 축제 이끌어 지난 4일 오후 서울 도심의 빌딩숲 사이로 농악과 함께 구성진 입담이 울려퍼졌다. 장소는 인사동 입구의 남인사마당. 어느새 1000여명의 시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청소년들. 각설이와 광대, 엿장수 등 다양한 복장을 한 이들은 서울시 청소년 우리소리 축제인 ‘청소년 잡색굿 2005’를 이끌었다. ‘어릿광대’들이 좌중과 웃고 떠드는 사이에 4시간의 공연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이번 행사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하기 위한 ‘작은 학교’인 작은소리학교가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우리 소리 축제다. 소멸되거나 소외되고 있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직접 계승·복원하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쟁쟁한 국악인들 출연 솜씨 뽐내 한성디지털대학교 연극영화과 이태훈 교수, 서해안풍어제 이수자 이해경씨, 영광굿 이수자 민주옥씨 등 쟁쟁한 기성 국악인들이 자라나는 새싹들과 함께했다. 잡색은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농악을 치는 이는 앞치배, 잡색들은 뒷치배라 부른다. 잡색에는 무등을 타고 나와 춤을 추는 무동과 할미, 양반, 조리중, 대포수 등이 중심이 된다. 탈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잡색은 구경꾼들에게 장난을 걸거나 농담을 하면서 논다. 이날 참가한 팀은 10개. 비경쟁으로 이뤄진 이날 행사에는 ▲각설이타령, 엿장수, 약장수, 뱀장수 등 재담류 ▲비나리, 무속굿소리, 염불소리, 상여소리 등 통과의례 소리류 ▲병신춤, 문둥춤, 살판, 버나, 줄타기 등 개인기 재주류 ▲잡색이 풍부한 풍물굿패 ▲풍물굿에서의 잡색놀이 등이 펼쳐졌다. ●약장수·각설이·엿장수 차림 4시간 공연 이번 행사의 ‘주연’은 재담꾼. 약장수, 뱀장수, 엿장수, 각설이 등 다양한 배역을 맡은 청소년들은 한 달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시민들 앞에서 맘껏 뽐냈다. 남사당놀이 중 접시 돌리기인 버나, 땅재주인 살판 등 다양한 묘기도 선보였다. 작은소리학교 왕서리 사무국장은 “재담을 배우는 청소년들이 드물어 전통문화를 공부하면서 끼 있는 아이들을 추천받아 이번 행사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남영광굿 서울전수단 학생들이 탈을 쓴 채 재현한 ‘도둑제비굿’, 한성디지털대학 학생들이 뺑덕어멈이 나오는 마당극을 현대적으로 각색된 ‘퓨전뺑파극’, 무당이 하는 굿인 ‘무굿소리’ 등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작은소리학교에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작은소리학교는 은평구 진관외동 사무실에서 매달 풍물 등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부터는 ‘청소년 광대학교 2005’도 열고 있다.60여명의 청소년들은 8월 말까지 10회에 걸쳐 국악 명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기량을 전수받게 된다. ●9월엔 서울광장서 ‘마을굿’ 펼쳐 오는 9월에는 이들의 우리 가락이 서울광장에도 울려퍼진다. 제7회 서울시 청소년 전통예술한마당인 ‘청소년 마을굿 2005’가 서울시 주최로 열린다. 왕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이 입시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지만 잡색 등 우리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풀어냄으로써 현대사회를 기름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도봉구 방학동

    [우리동네 이야기] 도봉구 방학동

    방학동(放鶴洞)에는 진짜 학이 살았을까. 도봉구 방학동의 이름에 관한 전설은 크게 두 가지로 추려진다. 조선조 왕이 도봉서원의 터를 정하려 도봉산 중턱에 앉아 있다가 학이 평화스럽게 많이 앉아 노는 모습을 보고 ‘방학굴’이라고 불렀다는 전설과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방학이라 정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학과 관련된 전설은 한자로 방학리(放鶴理)란 지명이 붙여진 후 생긴 이야기로 추정되고 있다. 방학동이란 명칭이 정식으로 명명된 것은 1963년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부터다. 이후 도봉구 관할이 되면서 방학 1∼4동으로 나뉘었고, 현재 면적 4.08㎢에 9만 3000여명이 터를 잡고 있다. 북쪽과 서쪽지역은 대부분 북한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북한산 자락에는 왕실과 귀족들의 묘소나 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 중 연산군묘와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대표적인데, 특히 연산군 묘역이 있는 산기슭 앞에는 수령이 1000년 정도 된 높이 24m, 둘레 9.6m의 은행나무(서울지정보호수 1)가 있다. 이 나무는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마다 불이 난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오래 전부터 연초가 되면 이 은행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산업화가 진행되고 동네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이 풍습도 맥이 끊겼다. 그러다 10여년 전, 동네 청년들이 중심이 돼 다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방학동에서 태어나 50여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어렸을 때 어른들이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를 지내다가 1970년대부터 없어졌다.”면서 “어르신들께 풍습을 돌려주자는 의미에서 30∼40대 청·장년들이 제사를 부활시켰고, 지금은 정월대보름마다 경로 잔치를 겸해 무속인까지 불러 더 크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방학동은 서울에서 노인 복지가 가장 잘 돼 있는 동네로 꼽힌다. 방학 2동에는 만 60세 이상 주민 전용 컴퓨터교육실, 바둑실 등이 갖춰져 있는 노인복지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치매노인 전문 요양원인 도봉실버센터가 방학 3동에 문을 열었다. 도봉구청 문화체육과 최병우씨는 “방학동 주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방학동의 명소로 방학천 인근 ‘발바닥 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200m의 지압보도가 있다. 방학천 주변 무허가 주택을 헐고 지난 2002년 만들어졌으며, 서울 시내 59곳의 지압보도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길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유림 속 한자이야기] (70) 巫山之夢(무산지몽)

    儒林 (323)에는 巫山之夢(무당 무/뫼 산/어조사 지/꿈 몽)이 나오는데,‘남녀간의 密會(밀회)나 情交(정교)’혹은 ‘덧없는 한때의 꿈’을 이르는 말이다. ‘巫’는 工(공)자 모양을 가로 세로로 놓은 형태의 도구인데, 가로로 놓였던 부분이 小篆(소전)에서 人(인)자처럼 변하여 오늘날의 字形(자형)으로 변했다.用例(용례)로는 ‘巫覡(무격:무당과 박수),巫女(무녀:무당),巫俗(무속:무당의 풍속)’ 등이 있다. ‘山’자는 산 모양을 본뜬 것이다. 참고로 ‘岳’은 산 뒤에 두어 봉우리의 산이 더 보이는 글자이니 山보다는 더 높고 큰 산의 상형이다.山자의 用例에는 山戰水戰(산전수전:세상의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다 겪었음),山海珍味(산해진미: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 등이 있다. ‘之’자는 ‘止’(지)와 ‘一’(일)을 합친 글자이다.止는 본래 발을 뜻하였으나 점차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발을 나타내는 止 아래에 출발선 또는 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夢’자의 원형은 현재의 字形(자형)에서 ‘夕’(저녁 석)이 생략된 형태로,‘꿈’을 뜻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본래 ‘어둡다, 컴컴하다.’는 뜻의 ‘夢’자가 ‘꿈’의 뜻으로 자리잡더니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다.夢寐(몽매:잠을 자면서 꿈을 꿈),蒙昧(몽매: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夢死(몽사:헛되이 살다 죽음),夢想(몽상: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등에 쓰인다. 巫山之夢은 文選(문선)에 수록된 高唐賦(고당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전국시대 楚(초)의 襄王(양왕)이 宋玉(송옥)과 함께 雲夢(운몽)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高唐館(고당관)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왕은 때마침 기이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송옥에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송옥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주었다. 선대의 어떤 왕이 고당관에서 宴會(연회)를 열고 즐기다가 잠시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신을 巫山(무산)에 사는 여인이라고 소개하며 왕의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魅惑(매혹)되어 雲雨(운우)의 情(정)을 나누었다. 헤어질 무렵이 되자 그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에 머물면서 朝夕(조석)으로 그대만을 그리워하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아침 왕이 巫山 쪽을 바라보니 꿈속에서 만난 여인의 말대로 산봉우리에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朝雲廟(조운묘)라는 사당을 세웠다. 유사한 말로는 중국 당나라의 淳于(순우분)이 술에 취하여 홰나무의 남쪽으로 뻗은 가지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槐安國(괴안국)으로부터 영접을 받아 20년 동안 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는 데서 유래한 ‘南柯一夢(남가일몽)’,盧生(노생)이라는 사람이 邯鄲(한단)이란 곳에서 呂翁(여옹)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80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잠깐 동안이었다는 데서 유래한 ‘邯鄲之夢(한단지몽)’이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역사물 스크린 점령할까

    새달 4일 동서양 역사물이 나란히 간판을 건다.100여년 전 조선시대가 배경인 국산 액션사극 ‘혈의 누’와,12세기 십자군 원정길로 카메라를 옮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서사액션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미스터리 스릴러의 현대적 감각을 버무린 국산 퓨전사극, 장중한 사실액션이 화면을 압도하는 스콧 감독의 신작 사이에서 관객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혈의 누 사극과 스릴러.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어감의 조합이다. 영화 ‘혈의 누’(감독 김대승, 제작 좋은영화)의 파격은 이뿐만이 아니다. 근대와 현대, 이성과 광기, 과학과 무속, 양반과 상민 등 격변의 시대를 배경삼아 다층적인 충돌구조가 일으키는 스파크가 기존 어느 영화보다 강렬하다. 여기에 작정하고 덤벼든 잔혹한 연쇄 살인장면 묘사는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다. 조선 후기인 1808년,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동화도. 조정에 바칠 제지를 실은 수송선이 원인 모를 화재로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자 뭍에서 수사관 원규(차승원) 일행이 파견된다. 그런데 이들이 섬에 도착한 첫 날부터 참혹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범상치 않은 살인 행각을 목도한 마을 주민들은 7년 전 ‘천주쟁이’로 몰려 온가족이 참형을 당한 강객주(천호진)의 원혼이 저주를 내린 것이라며 술렁거린다. 냉철한 이성과 과학수사를 표방하는 원규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인물은 제지소 주인의 아들 인권(박용우).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대립구도일뿐 극이 진행되면서 섬에 얽힌 비밀이 하나씩 베일을 벗을수록 원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을 직감하고, 무력감에 시달린다. 그건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남의 목숨까지 거침없이 해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처절한 확인이다. 영화가 내포하는 상징이나 감독이 의도한 다층적인 의미구조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에게 ‘혈의 누’는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되거나 감성적으로 충분히 설득당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중반 이후 극적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 스릴러 장르로서의 이 영화가 지닌 치명적인 결함. 촘촘하게 덫을 놓아 관객의 두뇌게임을 부추기던 영화는 갑자기 클라이맥스에서 원규의 입을 빌려 범인을 드러내는 게으른 방법을 택했다. 중요한 건 누가 범인이냐가 아니라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낸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라는 감독의 설명은 이 지점에서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비주얼한 화면과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는 청각적인 효과는 기존에 보아온 여느 사극과 비교해 월등히 낫다. 흥행 코미디배우로 각인된 차승원은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기대 이상의 밀도있는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햄릿형 인간’ 원규를 100% 표현하기에는 아직 힘이 달려 보인다. 캐릭터를 충분히 체현하지 못하기는 두호역의 지성도 마찬가지. 다만 인권역의 박용우는 모처럼 제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18세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킹덤 오브 헤븐 ‘글래디에이터’로 아카데미 5개 부문상을 휩쓸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역사에 스케일의 외피를 입히는 주특기를 또 한번 화면에 구현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시간적 배경은 십자군 원정대가 활약했던 12세기 초. 스펙터클 서사액션을 다시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은 성지 예루살렘을 놓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세력다툼하는 중세전쟁의 소용돌이 깊숙한 곳으로 앵글을 돌렸다. 결론부터 귀띔하자면,‘글래디에이터’‘트로이’류의 장중한 서사액션을 챙겨보는 관객에겐 기본적 흥미요건을 무리없이 갖춘 영화로 다가갈 듯하다. 예루살렘을 차지한 기독교도들이 급속히 세력을 키운 이슬람 군대에 압박당하자 영주 출신의 십자군 노장 기사 고프리(리암 니슨)가 젊은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을 찾아온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발리안 앞에 갑자기 나타난 고프리는 자신이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고, 함께 성지를 수호하러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야기 아귀를 맞추려 느닷없이 돌출된 가족사의 비밀에 실소가 터진다. 하지만 이후 착실히 서사액션의 강도를 높여가는 영화의 공력에 그쯤은 눈감아 줄만하다. 고프리 영주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은 발리안이 예루살렘 사수에 나서고, 일관되게 그 영웅담을 쫓아가는 것이 줄거리 얼개. 서사액션물에서 빠질 수 없는 멜로 요소도 물론 끼어있다. 예루살렘의 국왕 볼드윈 4세에게 충성을 맹세한 발리안은, 교회 기사단의 우두머리 루지앵과 정략결혼한 국왕의 여동생 시빌라(에바 그린) 공주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의 특기는 속도감이다. 시대물(상영시간 2시간17분)은 장황한 서사 때문에 빠른 진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부순다. 사실적인 대규모 전투를 잇달아 펼쳐 놓으면서도 영화의 몸놀림은 대단히 재빠르다.‘글래디에이터’‘반지의 제왕’‘트로이’ 등 서사액션 블록버스터들의 스펙터클을 압축해 놓은 듯한 전투장면들은 그 자체가 톡톡한 감상포인트다. 할리우드의 많은 감독들이 엄두를 못 내고 밀쳐온 시나리오를 선뜻 스크린에 옮긴 감독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전투의 엄청난 규모 말고 ‘리들리 스콧의 것’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서구 기독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편향된 시각으로 십자군 전쟁을 묘사한 것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 예컨대 당시 이슬람의 대영웅이었던 살라딘(살라흐 앗딘)의 존재는, 주인공 발리안을 영웅으로 띄워올리는 부속장치로 볼품없이 주저앉아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 레골라스로 나와 여성팬들을 사로잡은 빅스타 올랜도 블룸의 또 다른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영화의 소득이다. 강인함과 비애를 함께 지닌 그의 캐릭터는 ‘트로이’의 브래드 피트와 견줄 만하다. 나병으로 죽어가는 가면 속의 볼드윈 국왕은 에드워드 노턴이 연기했다.15세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아시아 삼바축제… 日 마쓰리에 산다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아시아 삼바축제… 日 마쓰리에 산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한 해는 마쓰리로 시작해 마쓰리와 함께 저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계절 내내 지역별 마쓰리가 계속된다. 일본인들은 마쓰리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고 문화전수도 한다. 큰 규모만도 6만개에서 30만개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사람이 하는 마쓰리에서 수 백만명이 참여하는 마쓰리도 있다. 마쓰리 행사를 위한 물품을 취급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전문직업인도 많다. 마쓰리는 생활이요, 사업이다. 일본의 마쓰리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가 시작될 때 오쇼가쓰(正月)마쓰리 등이 많이 열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는 전국적으로 오본(盆)마쓰리 등이 많이 개최된다. 이런 마쓰리 때 가장 신성한 존재는 마을이나 씨족의 신(神)이다. 신들에게 풍요, 행복을 비는 행위가 마쓰리의 기본적인 형태다. ●마쓰리로 시작돼 마쓰리로 끝나 마쓰리는 일반적으로 물과 꽃으로 신을 영접, 차린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은 신사를 축소한 가마 형태의 ‘미코시’(神輿)나 손수레 위에 실은 ‘다시’(山車)로 옮겨져 모셔진다. 본격적으로는 이를 메거나 떠밀고 동네를 돌면서 “왓쇼이, 왓쇼이”를 외친다. 이런 것을 반복한 뒤 음식을 나눠먹는다.‘왓쇼이’가 한국어 ‘왔소’에서 왔다는 것은 통설이다. 미코시나 다시의 운반은 남성의 권리였다.2차대전 후 여성도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남성우위 전통이 여전하다. 홋카이도 출신 60대 자영업자 스즈키씨. 그녀는 고향마을에서 어릴 적 “여자는 미코시를 멜 수 없어.”라고 해 뒷전에 밀려 있었다. 도쿄에서 지금까지 살며 먼발치서 구경한 적은 있지만 아직도 참가경험은 없다. 하지만 일본은 1970∼80년대 지방분권이 강해지면서 지역 문화축제가 크게 팽창하면서 여성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으로 새로운 볼거리인 마쓰리를 찾아 원정다니는 흐름이 형성됐다. ●이틀간 7000명이 춤을 춰 마쓰리는 사회통합과 전통문화나 가치전수의 장이다. 지역 마쓰리는 한 해 마쓰리가 끝난 직후부터 다음 해의 마쓰리 준비를 위해 구성원들이 물품과 예산을 마련했다. 각종 이벤트성의 마쓰리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도쿄시내의 상점가인 파루센터에서 매년 8월 열리는 마쓰리도 인근 ‘아사가야중학교’ 학생들이 마쓰리에 쓰일 장식품을 합동으로 만들며 ‘지역사회활동 참여’를 배우게 된다. 자동차·전기·전자업체 등 지역 기업·상점들과 자위대까지도 협찬 형식 등으로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는 도쿄 ‘고엔지 아와오도리’는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춤 대열에 참가한다. 지난해 8월말 이틀간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7000여명이 춤을 췄는데, 이들은 수십개 팀별로 수개월전부터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익혀 열연했다. 교토의 기온 마쓰리를 구경했다는 한 외교관은 “일본 마쓰리는 단순히 축제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사회 교육의 장이다. 지역사회의 전통문화를 훌륭히 전수한다. 한국도 참고했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 마쓰리의 소멸 위기 하지만 지금 많은 마쓰리가 존립위기를 맞고 있다. 아예 사라지는 지역 마쓰리도 적지 않다. 그 자리를 하나·춤·상가 마쓰리 등 이벤트성 마쓰리가 대체하면서 “신이 떠나버린 이벤트 마쓰리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는 마쓰리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특히 지역사회 작은 신사가 중심이 돼 주민들이 참여하는 전통적 마쓰리들이 다수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수백명씩이 참석, 미코시를 끌고 마을을 몇차례나 돌 때면 수천명이 길거리에서 호응했었지만 요즘엔 참가자가 수십명으로 줄어,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 지방도시는 물론 도쿄도 마찬가지다. 실제 많은 도시인들은 마쓰리를 보지만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50대 이사카씨는 간사이 고향에서 어릴 적 마쓰리에 참가했던 적은 있지만 성인이 된 뒤 이런 기억은 없다. 도쿄에서 태어난 30대 회사원 아오노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도쿄 오모테산노 마쓰리에서 미코시를 한 번 멘 적이 있다. 그러나 “갑자기 사람이 없다고 간청을 해 참가했는데 메고가다 골목길에서 다칠 뻔했다.”며 앞으로 다시는 참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마쓰리가 수백만명이 관람하는 등 대성황을 보이는 이면에 전통적인 마을단위의 마쓰리들이 ‘개인주의 확산’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 마쓰리란 무엇인가 일본어 마쓰리는 우리말로는 축제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는 무속신앙의 제사의례를 나타내는 말로 제단 위에 제물을 올린 모습을 본뜬 한자 제(祭)를 빌려서 표시했다. 제사를 올리거나 ‘혼령을 모시다.’는 뜻도 있다. 즉 떠받들거나 바치다는 의미가 강하다. 일왕이 영토나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 행위를 ‘마쓰리고토’(政)라고 부른 것도 마쓰리에서 파생됐다. 일왕이 부족연합의 수장인 동시에 최고위 제사장이었던 제정일치 사회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말이다. 마쓰리는 이처럼 신에게 희생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리는 집단제의에서 비롯한 축제다. 이런 신성한 축제이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행해진다. 참가자들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는 동시에 세속의 때도 씻어낸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전통적 개념의 마쓰리의 형식과 내용이 변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주도로 마쓰리가 지역특산물 판매장으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마쓰리 원형은 가야·백제문화”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과 일본의 지역축제 연구 전문가이면서 영화감독인 마에다 겐지 ‘하늘하우스’ 대표이사는 “마쓰리의 원형은 한반도, 중국남부 등 도래인들의 문화”라면서 “그 가운데 5세기 전후 가야와 백제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마쓰리의 기원은. -일본은 섬나라이다. 따라서 문화는 한반도, 중국남부, 인도네시아는 물론 호주, 그리고 퉁구스 등지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을 섬기는 행사를 했다. 그게 마쓰리의 원형이다. 조상신을 섬기는 것이다. 특히 4∼6세기의 가야문화가 중심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도 마찬가지다. 마쓰리 행위의 원형은 무엇인가. -도래인들의 생활수단이 마쓰리 행위에 반영돼 전수중이다. 무당이나 광대, 남사당패 등의 문화가 대표적이다. 한자나 불교, 식생활도 반영됐다. 무엇보다 생활 범위를 확대한 도래인들의 ‘프런티어정신’이 마쓰리에서는 중요하다. 일본인들의 선조는 한반도와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게 마쓰리에서도 확인된다. 마쓰리의 의식형태 등을 보면 어느나라에서 온 것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한국축제 식민지시대에 다 없어져 그런데도 한국에 지역축제는 적다. -한국에도 많았었지만 일본이 1920∼45년 식민지통치기간 한국에서의 ‘마쓰리’를 없앴다. 대신 일본계 신사를 지었다. 이 때 별신굿 등 한국의 전통 ‘마쓰리’들이 사라졌다. 마쓰리의 종류는 어느정도인가. -마쓰리는 혼자서도 한다. 보통 30만개라고 하지만 100만개 이상의 마쓰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마쓰리는 신사가 중심인데, 신사는 큰 것만 6만 9000여개다. 일년에 20회 이상 마쓰리를 하는 신사도 있다. 절이나 이벤트성 마쓰리는 여기서 파생됐다. 최근의 마쓰리 경향은. -풍류 마쓰리, 이른바 이벤트성 마쓰리가 늘고 있다. 대신 애니미즘적 마쓰리나 생활재현 마쓰리, 조상신 마쓰리 등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마쓰리에 여성 차별이 존재하나. -여성이 배제된 마쓰리가 많고 그 시대가 길었다. 오르는 것이 여성에게 금지된 산이 있을 정도였다. 한국은 무당이 굿의 주역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 게 많았다. 물론 모심기 마쓰리 등에서는 여성이 주역이었다. 반면 신사를 중심으로 한 마쓰리는 여성의 주체적 참여를 금지하는 곳이 많다. 마쓰리의 장래를 어떻게 보나. -조상신을 모시는 마쓰리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가될 수도 있다. 전통적인 마쓰리문화는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과도기다. 자연재해극복과 마쓰리의 연관은. -지진과 관련은 적다. 하지만 자연재해의 공포를 극복하고, 힘을 모으기 위한 마쓰리는 많다. 일본사람 마음속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가 스며들어 있다. 한국인들은 밝고 재해에 대한 공포심은 적다. 외국의 침략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것이 일본과의 큰 차이다. ●강릉 단오제 일본 왕실 마쓰리 모태 한국문화가 마쓰리에 남아 있나. -너무나 많다. 유명한 아사쿠사 산샤마쓰리의 경우 가장 큰 미코시에는 조선의 신이 탄다. 강릉 단오제는 일본 왕실 마쓰리의 모태다. 줄다리기, 광대, 굿 등의 영향도 크다. 시가현 비와호 주변에선 가야금과 유사한 2000년전의 악기가 발견됐는데 그게 지금도 많은 마쓰리에서 쓰인다. 이와 같이 마쓰리를 연구하면 한반도와 연관 사실이 부각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는 것이다. 집단적 스트레스 해소책도 되나. -마쓰리는 개인이나 집단의 스트레스해소에 매우 좋다. 그래서 1년간 지역사회에서 마쓰리를 위해 돈을 모아 마쓰리에 쓰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역사회 화합의 요소도 많다. 마쓰리와 ‘천황제’의 관련성은. -민속학과 마쓰리를 파고들면 일본인의 생활전체를 알 수 있다. 일본인의 정신성과 생활형식 등을 연결하는 구조다. 그런 일본인의 정신과 생활구조의 최상층부에 ‘천황’이 존재한다. 마쓰리의 학문적 연구는 적은데. -마쓰리 연구에 대한 지원이 적다. 조선(한반도)을 연구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마쓰리를 지원하는 단체도 없다.(상업적, 이벤트성 마쓰리는 많은 기업들이 지원)마쓰리를 통해 일본 문화의 기원을 알고, 동북아시아나 해양민족의 영향과 교류 등을 알아 거울로 삼으면 좋을텐데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taein@seoul.co.kr
  • [마니아] ‘퇴마’를 즐기는 사람들

    [마니아] ‘퇴마’를 즐기는 사람들

    “빈 사무실에서 두런거리는 사람 소리가 나고, 전원 코드가 빠져 있는 컴퓨터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회사 사장은 ‘직원들이 지어낸 얘기라고 내치다가 직접 겪고 나서야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장은 어느 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혼자 지켜보기로 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가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소리도 갑자기 멈췄고….’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현장에 가서 살펴보니 제법 많은 귀신들이 있었다. 한결같이 자살한 귀신들이었다. 사장에게 그대로 이야기했더니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한때 화제를 불러모은 영화 ‘자귀모’를 편집한 사무실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이다. 자살한 귀신들은 영화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그 사무실로 모여든 것이었다. ‘자귀모’ 편집작업이 한창이던 1999년 7월 밤에는 귀신이 목격되기도 했다. 감독 옆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서 영화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당시에는 서로 누군가의 지인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결국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망자의 넋이 떠돈다? 혼령들의 세계를 믿는 모임이 있다. 이른바 ‘귀신 마니아’들이다. 이들은 죽은 이의 혼령이, 상대방의 염(念)을 건드려 각종 이변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지난해 10월 말에 생긴 ‘퇴마사 김영기 팬클럽’에는 회원 760여명이 가입해 있다. 인간의 정령(精靈)을 파헤치려는 모임을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지난 10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퇴마(退魔)를 연구하는 이동욱(27·경북 경산시 사동·자영업)씨를 만났다. 동아리 일로 올라왔다는 이씨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니다가 말로만 듣던 빙의(憑依·다른 정신세계의 영향을 받아 평소와 완전히 딴판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를 뜻밖에 접한 뒤 2000년부터 혼령의 세계를 파고들게 됐다.”고 귀띔했다. 그는 “지금도 특정 종교에 매달리지 않고 교회만 아니라 불교 사찰 등 다른 종파의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애쓴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아는 사람이 어느 날 느닷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 놀랐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제 정신으로 돌아와 “제발 살려달라.”며 매달리더라고 했다. 의학적으로는 ‘다중 인격체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 때부터 퇴마에 관심을 갖고 서적을 읽거나 종교인 등을 찾아다니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설명한다. 회원들은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때 떠들썩하게 했던 여중생 사건에 대해서도 이같이 말하고 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신효순·심미선양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이들이 미군과의 전쟁에 나섰다. 1주기를 앞두고 미군 장갑차 사고가 잇따른 게 그 증거다. 지난 2003년 6월4일 오전 3시30분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농로에서 식현리 쪽으로 가던 미 2사단 소속 브래들리 장갑차가 2m 아래 논바닥으로 굴러 운전자 맬스 카스틸로(18·여) 일병이 숨졌다. 여중생 참사 지점에서 10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일 뿐 아니라 사고 차량도 당시 장갑차와 같은 기종이다. 이에 앞서 같은 해 4월엔 포천군 영중면 영평리 미 2사단 종합훈련장에서 궤도차량과 전술차량이 정면으로 부딪쳐 미군 2명이 숨지고, 일곱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앙갚음’을 예고하며 이씨는 “죽음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고 떠도는 넋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에 따른 제사, 다시 말해 천도의식를 올려야 한다.”고 거들었다. 자신은 지금까지 귀신이 산다는 흉가를 20여곳 찾아갔다고 한다. 실례로 충북 제천시 봉양읍 무도2리에 있는 ‘늘봄갈비’터를 들었다. 지상 3층에 연면적 90여평인 이 집은 지어진 지 10여년 됐으나 4년 전 주인이 부채문제로 잠적한 뒤 유리창이 깨진 채 흉물로 방치돼 있다. 귀신이 산다는 소문도 나돌아 허물지도 못하고 손을 못쓰는 운명인 것이다. 지난해엔 이 집에서 잠을 잔 트럭운전사가 여자 귀신을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쳤다는 말까지 퍼지면서 스님과 신부 등이 방문하기도 했으며 방송사들이 촬영에 나서기도 했다. 이씨는 “이곳이 풍수지리학으로 살펴봤을 때 산신(山神)들의 거주지인데 다른 사람들이 침입해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고 일러줬다. 경북 경산시 대학촌 인근에 있는 코발트 광산에서는 6·25전쟁 때 350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혼령이 많단다. 그러나 ‘도깨비터’로도 불리는 흉가의 기운을 누르기만 하면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그는 열을 올렸다.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청진리와 영덕군 장사리 사이에 있는 2층 양옥에는 한 부부가 수년째 살고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과연 여중생의 넋이 어떻게 장갑차와 같은 엄청난 무게의 장비를 움직였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퇴마(退魔) 동호인들은 “귀신들이 탱크나 차량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면서 “탱크나 차량을 움직이는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졸음이 쏟아지게 하거나, 딴 생각을 불어넣어 착오를 일으킬 경우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지게 된다.”고 귀띔한다. ●어떻게 주문을 욀까? 강신구(26) 서울지역장은 “처음에는 무섭게만 여겨지다가 분명 비상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돼 2003년 6월 회원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매월 첫째주 토요일 지역별 정기모임에서 귀신이 출몰한다는 곳을 찾아다니는 ‘흉가체험’ 등 별난 행사를 벌인다. 이럴 때면 회원이라고 하더라도 빙의를 경험하는 경우가 이따금 나타난다고 입을 모은다. 퇴마사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고대 종교 등을 넘나들며 수행한 결과를 통해 귀신을 내쫓는다고 한다. 예컨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로 시작하는 ‘광명진언’과 중국 당나라 삼장법사가 지었다는 ‘천지팔양신주경’(天地八陽神呪經)이란 게 있다. 신통력을 지니려면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씨는 “귀신이라는 것도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기 때문에 무서운 것도 아니다.”면서 “따라서 공포란 것에 압도될 경우 그 노예가 돼 뜻밖의 현상을 겪는다.”는 교훈을 들려줬다. 인간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미신뿐 아니라 각종 점괘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태도는 거꾸로 말해 다른 정신세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폐단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러시아 ‘타로카드’ 등에 부작용도 많다는 점을 빼놓지 않고 지적했다. 퇴마 동호회에 한 줄기 희망이라도 걸고 싶은 마음인지는 몰라도 회원 가운데에는 알만한 정치인 등 유명인사도 더러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퇴마사’란 자신을 뛰어넘는 정신세계의 개척자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동호회를 매개로 각종 직업군이 몰려들어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마음을 모으는 ‘상호부조’에 자부심이 있다고 그는 활짝 웃었다. 또 다른 회원 한정규(28)씨는 “퇴마란 자신의 정신세계를 넓혀 귀신의 힘을 억누른다는 점에서, 다른 신의 힘을 빌려 악귀를 물리치는 무속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 이사때도 ‘혼령’ 살펴라 이사철이 다가왔다. 퇴마 전문가들은 이사를 할 때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수 체크리스트’를 제시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은 변화를 요구하며, 이사할 집이 자신과 잘 맞는지와 풍수지리적으로 기운은 좋은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영적인 부분까지 살피는 것은 쉽지 않다. 퇴마사들의 입을 빌려 간단하게 정리하면 줄거리는 이런 것이다. (1)이사할 집에 5분 이상 앉아 있어 보라.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잡령이 있다는 증거다. (2)화초나 동물이 잘 자라고 있는가를 살펴보라. 잡령이 집안에 머물면 화초나 동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3)부적이 많이 붙어 있는 집은 피하라. 필요 이상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을 경우 무엇인가 문제라는 증거다. (4)집주인이 자주 바뀌는지를 알아보라. 살기 좋은 집이라면 그리 자주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5)집에 환자가 없나 따져보라. 병약자가 있으면 잡령의 출입이 잦은 것이며, 따라서 집안 분위기가 우울하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그리스·로마신화 덮어라”

    그리스·로마신화의 세계는 실로 다양하고 광대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다보니 최근 몇 년간 책도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반면 외래신화에 대한 이같은 몰입 이면에 숨은 우리 신화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졌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몇 편의 문헌신화가 전부인양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구전신화라는 방대한 신화의 세계가 존재한다. 다만 이를 제대로 수집해 체계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최근 이같은 관점에서 조각난 우리 구전신화를 온전한 신화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구전신화의 세계’(지식산업사)를 낸 국립민속박물관의 학예연구관 권태효(41) 박사를 만났다. “우리 구전신화는 엄청나고 방대합니다. 거인에 의한 우주창조 및 지형창조, 홍수에 의한 종말 뒤 새로운 인류의 시작, 인간에게 집 짓는 법을 알려주는 문화영웅, 죽음의 세계로 영혼을 인도하는 신의 이야기, 신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등이 구전신화에 담겨 있지요. 다만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구전되다 보니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면서 지나쳤을 따름입니다.” ●“조각난 우리 구전신화 체계화” 권 연구관은 대표적인 것으로 무당들이 전승해온 무속신화를 꼽는다. 무속신화 속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을 비롯해 인간에게 복과 풍요, 수명을 내려주는 신 등 그 직능별로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는 것. 그러나 기록되지 않고 말로만 전해지다 보니 조각난 신화가 많고, 본래의 모습이나 성격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도 적지 않다. 때문에 구전신화의 온전한 모습을 찾아주기 위해선 찢겨져 나간 책을 이리저리 꿰맞춰서 읽듯 신화 조각들을 펼쳐놓고 하나씩 자리를 잡아주며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구전신화의 세계’는 이처럼 조각난 구전신화 자료들의 본래 성격을 찾아 그 자리매김을 해주고, 우리 신화를 짜임새 있게 정리하기 위한 전단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제주도와 함경도에서 전승되는 무속신화를 대상으로 신화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이되는지 그 양상을 다루었다. ●“무속 중심으로 생명·변이 다뤄” 권 연구관은 우리 신화가 홀대받아온 이유에 대해 “역사적으로 유학자들이 신화를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해 연구를 기피한 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 구전신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속신화인데, 무속을 천시했던 의식이 그 속의 신화마저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구전신화는 예전보다도 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며 “굿판이나 이야기판을 비롯한 전승의 현장을 찾아 자료들을 최대한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이런 보존이라는 측면과는 다른 각도로 우리 신화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신화집 정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우리 신화 전반을 체계적인 구성으로 아우르는, 세계 어느 나라의 신화집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우리 신화집을 완성하는 것. 바로 우리 신화 연구의 귀결점이자, 권 연구관의 목표이기도 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카리브해 특유의 꿈틀대는 색채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에 대항하지 않는 한 적잖은 예술적 자유를 허용했다. 그런 분위기 탓에 라틴 리듬이 발달했고 미술 분야에서도 또한 상당한 성과를 냈다. 피카소가 극찬한 초현실주의 화가 위프레도 램, 모더니즘 화가인 아멜리아 펠라에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바로 쿠바 출신이다.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이끄는 또 한 축은 베네수엘라다.‘리틀 베니스’라 불린 베네수엘라는 일찍이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현대미술이 발달했다. 유럽의 신표현주의나 후기모더니즘 같은 경향을 받아들여 라틴아메리카식으로 해석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키네틱 아트의 대가인 헤수스 라파엘 소토와 그의 동료인 카를로스 크루스-디에스,‘컬러-리듬’‘델타 솔라’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알레한드로 오테로 등이 꼽힌다. 라틴아메리카 전문화랑을 표방한 서울 사간동 갤러리 베아르떼가 쿠바와 베네수엘라 작가들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 미술전을 꾸며 관심을 모은다. 라틴아메리카 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신의 문화적 전통의 근원을 인디오의 문화와 역사에서 찾는 ‘인디헤니스모(indigenismo)’다. 수세기 동안 유럽인들에 의한 식민지 정책으로 잃어버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우수했던 문화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것이다. 쿠바는 부두교 등 아프리카 무속과 쿠바 원주민문화에 토대를 둔 현대미술 작품들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아프로쿠바노’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흑인문화의 영향이 크다. 이번 전시에는 카리브 특유의 원시적 색감을 보여주는 라틴 작가 10명의 작품들이 나와 있다. 역동적인 구성과 강한 색상이 조화를 이룬 쿠바작가 에르네스토 비야누에바, 아마존 인디오 원주민들의 삶을 형상화한 베네수엘라의 이스마엘 문다라이, 오노프레 프리아스 등의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끈다. 유럽 미술에 동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혼혈문화를 가꾸어가는 라틴아메리카 미술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4월17일까지.(02)739-4333.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호남의 길지 호남엔 여느 도 못지않게 길지가 많다며, 성질 급한 독자들은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 줄 내가 왜 모르겠는가? 다만 ‘정감록’의 길지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모태로 삼는 까닭에 그 두 산부터 설명을 시작해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대시킨 것뿐이다. ‘남격암’에 가장 먼저 언급된 호남의 길지는 무주(茂朱) 덕유산(德裕山)이다. 덕유산 아래서도 무풍(舞豊) 북쪽에 있는 동굴 옆 음지가 으뜸이라 했다. 그곳은 어떠한 환난도 피할 수 있는 명당이라 한다.‘피장처’에선 약간 다른 곳을 지적해, 덕유산 남쪽의 원학동이야말로 숨어 살기 적당하다 했다. ●덕유산 부자마을 한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덕유산의 성격을 흙산이라 보았다. 지리산과 성질이 같은 것으로 본 것인데 남격암과 마찬가지로 산의 북쪽에 있는 무풍에 주목한다. 이중환은 바로 그 옆의 설천(雪川)도 길지로 간주한다. 그는 남사고가 무풍을 복지(福地)로 파악했던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덕유산의 미덕을 이렇게 말한다.“무풍의 바깥쪽은 온 산이 비옥해 부자 마을이 많다. 이는 속리산 이북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사고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도 덕유산의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과연 그렇다네. 실로 덕이 넉넉한 산이 덕유산이요, 풍요로움을 기꺼워하다 못해 저절로 춤이 나오는 곳이 무풍이라네. 우리나라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덕유산. 그 주산은 향적봉(香積峰·1614m)이요, 산세의 흐름이 유장해 무풍의 삼봉산(1254m)에서 흘러내린 용맥이 수령봉(933m), 대봉(1300m), 덕유평전 (1480m), 중봉(1594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1508m)까지 무려 100리를 굽이쳐 흐르며 영호남을 갈랐다네. 충청, 경상, 전라 3도를 굽어보는 향적봉에 한번 올라보게. 가까이는 북으로 적상산을 발치에 두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을 바라보네. 서쪽을 둘러보게나. 운장산, 대둔산이 버티고 서있어. 남쪽은 어떠한가. 남덕유를 코앞에 걸어두었네. 지리산 반야봉도 가물거리네. 동쪽을 어찌 빠뜨릴쏜가. 저 멀리 가야산과 금오산이 보이지 않나? 향적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옥 같은 샘물줄기가 한참을 흐르다가 구천동 33비경을 만들어 놓았도다. 요즘은 북사면에 무주 리조트가 있다지. 서남쪽의 칠연계곡도 큰 장관일세. 봄의 덕유산은 칠십 리 깊은 계곡에 붉은 철쭉꽃이 불타오르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온 산을 적시네.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꼬까옷을 입히지. 겨울이면 설화를 피운 고목이 고요한 은세계를 더욱 빛낸다네. 참 아름다운 곳이야! 길지란 대부분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은근히 풍요로운 곳에 있기 마련이네.” 덕유산에 대한 남사고의 예찬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나는 이쯤에서 줄이기로 했다. ‘남격암’은 호남의 명산 내장산(內臧山)도 길지로 손꼽는다. 이른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라는 내장산은 가을 단풍 하나로만 전국에 유명하다. 이 산의 단풍은 30여종의 나무들이 토해낸 붉고 노란 빛깔이 어우러진 전원 교향악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에만 혹할 뿐이나 실은 난세를 피할 길지로서 이만한 곳이 무척 드물다. 임진왜란 때는 전주 사고(史庫)에 소장돼 있던 왕조실록이 내장산에 옮겨져 잠시 화를 피했다. 그 때 만일 내장산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한 왕조실록은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내장산은 과연 길지로다.‘피장처’는 내장산에서 별로 멀지 않은 담양 추월산도 숨을 만한 곳이라 추천한다. 추월산은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사이에 걸쳐 있는데, 구한말 호남의병운동의 한 거점이었다. ●길지 변산에 웬 도둑 떼가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호남 굴지의 길지는 부안의 변산(邊山)이야.” 남사고는 그렇게 주장한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만일 제주도가 다른 나라 땅이 되고 말면 일은 그릇된다고 했어. 이는 왜 그런가? 제주에서 배를 타고 북상하면 전남 강진, 영광, 또는 전북 부안에 곧장 뱃길이 닿을 테니 위험할 수밖에. 어쨌거나 내 생각은 그래. 기왕 변산을 찾았다면 그 동쪽 계곡까지 들어가라. 하지만 그 산을 빠져나가지는 말라! 언제는 속리산 이북으로 가지 말랬다가 이젠 또 변산 동쪽을 벗어나지 말라고 하니, 자네들이 좀 헷갈리겠군. 내 말의 뜻은 그만큼 속리산 이남이 길하고 변산이 좋다는 말이야.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참 이상한 노릇이지만 좀 조사해본 결과 문학속의 변산은 도둑의 소굴이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이 변산의 도둑 떼를 인솔해 무인도로 떠나간 걸로 돼 있다. 어떤 연구자는 이를 두고 영조 때 일어난 ‘무신난(戊申亂·1728년)’ 무렵 변산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도 불리는 무신난의 주체는 남인(南人)·소론(少論)·소북(少北)의 연합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집권층인 노론(老論)을 몰아내려고 난을 일으켰고 거기에 전국 각지의 도둑들·서얼·상민·천민들이 상당수가 가담했다. 호남 여러 고을의 빈농들과 변산의 도적들도 무리 가운데 끼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빈농은 자칫하면 유리걸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히 도적 무리에 포섭되었다. 허생전에 나오는 변산의 도둑 떼는 허생의 영도 아래 각자 배우자와 소 한 마리씩을 이끌고 무인도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곳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 외국과 무역에 종사 하는 등 유족한 삶을 누린다. 변산 도둑들의 입장에서 볼 때 허생은 다름 아닌 ‘진인’이었다. 혹자는 허생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이상향으로 도둑들을 이끌고 숨었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 순응하며 합법적인 개혁을 꿈꾸던 연암 박지원에게서 허생 이상의 주인공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닐까? 그야 어쨌거나 허생전에 변산이 도둑의 소굴로 설정된 것은 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변산은 골짜기가 깊고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은신에 적합했다. 그렇기 때문에 변산이 길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도둑 떼들이 이러한 자연 조건을 적극 이용한 결과, 조선 후기엔 그들의 요새로 둔갑하기도 했다. 남사고는 말하기를,“변산이 중요한 까닭은 그 산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야. 좀더 깊은 연유가 있었지.”라며 매우 의미심장하게 운을 뗀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를 마련해 경청하기로 한다 ●조계산의 ‘십팔공’ ‘남격암’은 전라도의 또 다른 길지로 조계산(曺溪山·887m)을 예로 든다. 전남 승주군에 있는 이 산엔 고찰(古刹) 송광사(松廣寺)가 있어, 산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절에서 동북쪽으로 10여리를 올라가면 천자암(天子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이 암자의 오른편에 곱향나무 두 그루(천연기념물 제88호)가 우뚝하다. 높이가 12.5m, 가슴높이쯤에서 둘레가 3∼4m나 되는 거목인데, 나무에 얽힌 유래가 특이하다. 지금부터 800여년 전 이 절에 머물던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중국에 건너가 황후의 불치병을 고쳐준 다음 그 인연으로 왕자 하나를 제자삼아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천자암에 오른 그들은 나란히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것이 살아나 차츰 거목으로 자랐단다. 보조국사 일행의 도력도 만만치 않지만, 조계산의 지력도 여간 왕성하지 않은 모양이다. 워낙 명산에 자리잡은 까닭에 송광사의 “松”자는 길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 글자를 해체하면 “십팔공(十八公)”이 돼,18명의 국사가 나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조국사를 비롯해 모두 16명의 국사가 나왔다 한다. 앞으로 2명이 더 나오게 돼 있는데 그때가 되면 모든 중생에게 불법이 바로 전해져 용화세계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유추되듯, 조계산은 최고수준의 길지라 미륵세상의 도래를 약속하는 곳이 된다.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곧게 뻗어 내린 용맥이 서해바다를 눈앞에 두고 멈춰선 곳에 한 길지가 있다.‘남격암’이 말한 월출산(月出山)이 그곳이다.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불쑥 솟아오른 월출산은 단순히 많은 큰 산의 하나가 아니다. 산 이름 그대로 달맞이하는 산이라서, 이 산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달 신앙의 대명사로 우뚝 솟았다. ●왜적도 못 들어온 팔령산 월출산에서 좀더 남으로 내려가면 한반도 남단의 길지 팔령산(八靈山)이 웅자를 드러낸다.‘남격암’은 이렇게 말했다.“우리나라의 지세를 논할 때 섬이 바라보이는 남쪽은 절대적으로 피할 일이다. 다만 한 예외가 있어 팔령산이 바로 좋은 산이다.” 남사고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소백산 줄기가 고흥반도 동쪽까지 내려오다 끝맺음을 한 것이 바로 이 팔령산이야. 정상의 봉우리가 모두 8개인 산이지. 팔영산(八影山)이라고도 부른다네. 예전엔 팔전산(八顚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으로도 불렸어.‘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 산이 마치 섬처럼 바다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했어. 일찍이 내가 복이 있는 땅이라고 기술했다고도 썼어. 기특한 내 후배 이중환은 늘 중요한 지점에서 내 말을 곧잘 인용한단 말이야! 아는 대로 임진왜란 때는 왜선이 고흥반도를 타고 침입하려고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어. 이게 다 팔령산의 지기(地氣)에 힘입은 거야. 고흥의 옛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팔령산의 넷째 봉우리인 사자봉이 대단해.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치닫는 형상이라고 할까. 사자봉의 혈(穴)은 국왕의 옥쇄인데 마지막 봉우리에서 그만 미완성으로 끝나 여간 아쉽지 않아. 일제시기 그 놈들이 조선의 맥을 끊어버리려고 팔봉에다 큰 쇠막대를 깊이 박았어. 그 놈들은 한국 사람들을 미신적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뒤가 켕겼는지 갖은 못된 짓을 다했어. 이제 와선 멀쩡한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섬이라고 주장하지를 않나. 가소롭기 짝이 없어! 한데 말이야, 당시 그 놈들이 혈을 정확히 짚지 못하는 바람에 그 뒤 고흥선 진짜 장군이 나왔다고들 하지.” 팔령산이 명산이란 소문은 진작 전국에 널리 퍼졌다. 각지의 무당이 몰려와 무속신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고, 난리가 닥치면 산 속 깊이 은신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삼십년 전엔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가 이 산에 본거지를 두고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기도의 길지 “나는 주로 속리산 이남인 하3도(충청, 경상, 전라)에서 길지를 찾았지. 속리산 이북인 중부지방엔 별다른 길지가 없다고 보는 편이야. 영산인 태백산에 가까운 강원도 남부지역에 한두 군데 있을까 말까. 그 외엔 사실 주목되는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야. 정감록에서도 말했을 걸. 오대산 이북은 몹시 흉하다고 말이야.” 그러나 ‘피장처’와 ‘두사총비결’엔 중부지방의 피난지가 다수 언급돼 있다. 우선 ‘피장처’에 따르면 양주 산내촌에서 북쪽으로 80리를 들어가면 길지가 있다 했다. 또한 양근 소설촌의 북쪽 40리쯤에서 좀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가장 은밀한 곳에 숨은 길지가 있다고도 했다. 요새 설곡리(雪谷里)라 불리는 곳 말인데 고려 말 임제종(臨濟宗)을 개창한 명승 보우(普愚)가 설곡리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여주의 사전촌에선 장수와 정승이 나온다고 했고, 광주 율평 동쪽에 있는 동굴은 난리 때 여덟 성씨가 함께 숨어 살 곳이며 장차 56대 동안 장수와 정승이 출생할 곳이라고 했으니 굉장한 명당이다. 또한 ‘피장처’엔 이천 북면의 광복동, 가평의 대아, 도성 등도 피난할 만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인천의 영종도 역시 복지라 했다. 오늘날은 국제비행장이 들어선 영종도는 고려 말부터 단 한번도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중국 지관 두사총이 손꼽은 길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중국에서 왔다는 지관(地官) 두사총이 쓴 비결로 알려진 ‘두사총비결’에도 경기도의 길지가 두어 군데 언급된다. 그 중 하나는 화약산이다. 가평에서 36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산이 바로 그 산인데 부근엔 집다리골 휴양림도 있어 쉬어 갈 만하다. 그밖에 포천의 도성산도 길지로 말해진다. 도성산은 길가에 가까워 산세가 얕다는 평을 듣지만 전쟁의 기운이 미치지 않고 간사한 기운도 침범하지 못한다고 믿어진다. 고려가 망했을 때 어느 선비는 도성산 밑으로 들어가 시냇가에 대(竹)를 심고 충절을 맹세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 선비가 지조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도성산의 지기 덕분이라 한다. ‘두사총’은 강화의 마니산(467m)도 길지라 일컫는다. 인천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에 있는 이 산은 강화섬에서 가장 높다. 마니산은 한반도 남쪽의 한라산, 북쪽의 백두산까지 거리가 똑같아 주목된다. 마니산은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리란 머리를 뜻한다. 이 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이름이 그렇게 됐다. 마니산이 길지로서 특별한 위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호) 때문이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높이 5m의 자연석을 포개어 만든 이 단의 기단부는 원형이며 그 상단은 네모꼴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란 고대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 단이 축조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멀리 고려 때부터 국가가 제관을 파견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황해도의 길지 북부지방엔 길지가 없다는 게 ‘정감록’의 근본 주장이다. 이와 달리 ‘피장처.’는 황해도 곡산의 명미촌을 길지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해 명미촌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해 희령과 잇닿은 경계 지점에 숨으면 어떤 난리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남격암’은 “수양산(首陽山·899m)은 백미(白眉)의 난을 당하면 물 마른 개울의 물고기처럼 되느니라.”라고 했다. 수양산이 좋긴 해도 눈썹 흰 사람이 난리를 일으키면 도리어 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수양산은 황해남도 벽성군(碧城郡)과 해주시(海州市)에 걸쳐 있다. 이 산은 남격암이 거론한 서북지방의 유일한 길지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Zoom in 서울] ‘남산흉물’ 철책 6월말 사라진다

    [Zoom in 서울] ‘남산흉물’ 철책 6월말 사라진다

    남산공원을 둘러싼 철제 울타리가 철거된다.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데다 야생동물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자는 취지에서다. 서울시는 7일 남산공원 전역에 설치돼 있는 마름모 그물망 형태의 철제 울타리 25.9㎞ 가운데 14㎞를 오는 6월 말까지 철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산공원을 둘러싼 철제울타리는 지난 1968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해 남측순환로(14.6㎞)와 북측순환로(6.7㎞)를 비롯, 소월길 등 외곽도로와 산책로 전 구간에 걸쳐 있다. 울타리의 높이는 1∼1.4m로 당초 숲 속에서의 음주나 무속행위, 풍기문란행위 등을 제한하고 산불 발생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철책이 30년 이상 지나다 보니 낡아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시의 이번 조치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어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지난 2월5일 서울시장과 시민의 정례 대화모임인 ‘안녕하세요. 이명박입니다.’에서 이시명(용산구 후암동)씨 등은 이 시장에게 철제 울타리 철거를 요구했다. 시는 도로 양쪽의 울타리 가운데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해 산 아래쪽 울타리(11.9㎞)와 북측순환도로에 설치된 장애인 보호용 안전대는 그대로 남겨둔다. 그러나 존치 예정인 울타리 가운데 8.9㎞는 목재 등 자연친화적인 소재로 교체하고 높이도 낮추기로 했다. 사실상 철제 울타리가 대부분 사라지는 셈이다. 최용호 푸른도시국장은 “과거와 달리 시민들의 자연보호 의식 수준이 크게 향상돼 펜스를 철거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면서 “낡은 펜스를 철거해 남산공원 주변경관을 개선하고 야생동물들의 이동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8) 서산 창리 영신제·위도 원당 띠뱃굿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8) 서산 창리 영신제·위도 원당 띠뱃굿

    조상에게 드리는 차례보다 소중히 여기는 제사가 있다. 사람들은 조상 차례가 당연히 중요하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유교적 의례가 철저히 요구될 때도 이곳 민중들은 무속적인 굿을 앞 줄에 놓았다.‘동네 제사’라 할 수 있는 마을굿이 그것이다. 지금도 전국의 바닷가에서는 새해 정초만 되면 동제, 동신제, 당산제 따위의 이름으로 마을지킴이를 모시는 제를 올린다.‘못생긴 놈들은 얼굴만 보아도 반갑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랜만에 똑같이 ‘못생기고’ 낯익은 이웃들이 모여 들었다. 객지로 떠돌다 재산을 몽땅 털어먹고 돌아왔어도, 외항선 선원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어도, 당산은 거기 제자리에 우뚝서서 지친 이들을 넉넉하게 품어 주었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설맞이 마을굿을 찾아나섰다. 충남 서산의 부석면 창리 영신제, 태안군 황도의 붕기 풍어굿, 서천군 서면 마량의 도둔리 당제, 부안군 위도의 원당제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마을굿이 설날을 기해 일제히 열린다. 몸이 하나라서 모두 돌아볼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행히 각각의 제마다 시간차가 있어 요령있게 일정을 짠다면 두어 군데 정도는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모진 환경이 만든 작품 ‘창리 영신제’ 충남 바닷가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창리 영신제는 어쩌면 모진 환경이 만들어낸 ‘작품’일는지 모른다. 천수만 A·B간척지가 조성될 당시 현대건설 간척본부가 부석면의 끝자락인 창리포구에 자리잡았다. 정확하게 공사 중간지점이라서 몸살을 앓았다. 1982년, 처음으로 포구를 찾아 들어갔을 때 한적했던 포구는 중동 공사현장에서 되돌린 엄청난 중장비 덕분에 흡사 기갑부대의 야전사령부 같았다. 얼굴 맞대고 살던 이들끼리 지내던 영신제에 공사장 잡부를 비롯한 외부인의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마을굿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형이 변했지만, 외딴섬에 자리잡아 최소한 300년 이상 자란 소나무들이 장대숲을 이룬 곳이었다. 당산 꼭대기에는 임경업 장군 내외를 모신 영신당이 자리해 포구를 지켜왔다. 대개의 당산이 그러하듯 이곳의 나뭇가지 하나만 건드려도 탈이 난다. 예전에 비하면 영험이 형편없이 추락한 오늘날에도 함부로 나무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 섣달 그믐이면 생기복덕을 엄정히 가려서 부정없는 이로 당주를 삼는다. 당주는 부정을 피해 상갓집 문상도 가지 않으며, 추운 겨울에도 얼음물로 목욕재계를 한다. 마을지킴이를 받드는 일인지라 한 치도 마음 놓을 수 없다. 금기는 당주만의 몫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 전체가 성스러운 시간으로 접어든다. 동구와 공동우물에는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둘러 뿌려 잡귀를 쫓는다. 폭풍 전야의 침묵이라고나 할 고요가 마을을 감싼다. 우스갯소리조차 주고받지 않는다. ●굿당, 에너지 발산하는 해방구 역할 정월 초이튿날, 이윽고 날이 밝으면서 마을 공터에서는 꽹과리 소리 요란하게 새해가 왔음을 알리는 파열음이 터진다. 당줏집 마당에서는 기세를 돋우면서 당줏굿을 친다. 배마다 1개씩 오색기를 앞장 세워 당에 오르는데, 참으로 볼 만한 풍경이다. 당오름 자체가 하나의 경관을 만들어 낸다. 당에 오르면 부정풀이부터 시작해 지토굿, 각시굿, 손님굿, 오방굿 등 각각의 굿거리로 연출되는 영신제가 봉행된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영신제 내내 울려퍼지는 배치기다. 배치기는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며 ‘배에서 치던 소리’.‘연평바다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들여라, 에~에헤여~에헤에헤.’ 구성진 목소리가 울려퍼지면 ‘칭칭칭칭’ 징소리로 화답하며 밤새도록 그렇게들 논다.‘흑인들은 동일한 곡조를 밤새도록 반복하면서도 지겹지 않게 놀 곤한다.’고 격찬할 때, 잠시 우리의 배치기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제3세계의 음악이 대개 그러하듯, 그 단순하게 반복되는 곡조만 가지고도 며칠밤을 지새울 수 있는 음악이다. ●“환경이 변하니 우리라도 뭉쳐야죠” 배치기의 신명은 놀이의 해방력을 웅변하며, 엄청난 에너지로 발산된다. 굿당이 해방적 놀이공간으로 변하며 굿놀이 자체가 한판의 열린 신명으로 폭발하는 것. 창리의 영신제가 그러하며 여타 마을굿이 대부분 그러하다. 무엇보다 푸근한 것은 커다란 가마솥에 족히 두어말은 됨직한 떡국을 끓여서 공동체가 나눔의 잔치를 벌인다는 점. 천수만이 막히고 어장이 시들해지면서 더러는 양식업으로 전환하고, 더러는 횟집 운영으로 버티는 까닭에 예전 같은 떠들썩함은 사라졌다. 그래도 면면히 굿의 맥락을 이어감은 주변 환경이 예전 같지 않음에 대한 역반응일 수도 있다.“자꾸 환경이 변해 가니까 우리라도 똘똘 뭉쳐서 지켜야 허지 않겠어유.” 당주를 대물림해 온 김석준씨의 말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당주를 대물림 받았으니, 그이처럼 대물림으로 당주를 맡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난해까지 당을 지켜왔던 배남복(1924년생)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그 옛날 당제의 전통을 아는 이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천만 다행인 것은 전통이란 게 묘한 것이어서 외압을 받으면 소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전통으로 지속, 발전해 나가는 양면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핵폐기장에 몸살 앓은 ‘위도 띠뱃굿’ 영신제가 간척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면, 위도 띠뱃굿도 핵폐기장으로 몸살을 앓았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핵폐기장 수용 여부로 부안 주민들 간에 골깊은 갈등이 빚어졌고 핵폐기장은 끝내 물 건너 갔지만 위도에는 아직도 그 때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았다. 파장금에서 만난 어떤 주민은 “페리호 사건보다 더 큰 상처”라며 머리를 내저었다. 일부 주민들이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육지 주민들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위도 내에서도 패가 갈렸다. 정부야 손을 떼면 그만이지만 계속 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로서는 엄청난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격포항에 들어가도 예전처럼 반가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한 주민의 말에서 핵폐기장이 남긴 상처를 어림할 수 있었다. 이렇듯 같은 부안군민이되, 전혀 이질적인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마을제사는 지내야 했으므로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저마다 제기의 먼지를 털어냈다. 섣달 그믐밤에는 모두 모여 장단을 맞추며 손발을 가다듬기도 했다. 어김없이 배치기 소리가 바다로 퍼져나갔다.‘황금 같은 내조기야 어낭청 가래질이야/어디 갔다 인제왔냐 어낭청 가래질이야/만경창파 너른 바대 어낭청 가래질이야/질을 잊어 인제 왔냐 어낭청 가래질이야.’ ●당산 높아 오르는 것만으로도 장관 지도책을 보면 전라도 칠산바다 너른바다 위에 점으로 나타나는 섬들. 위도, 치도, 식도, 상왕도 등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중 가장 큰 섬이 위도로, 칠산어장의 전진기지였다. 파장금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가면 곧장 대리에 이른다. 칠산은 조기잡이 어장으로 유명했던 곳. 지난 시절, 한반도 최대의 어장답게 칠산바다 위도에는 지금도 대리의 높은 당제봉에 원당이 있어 칠산바다를 지켜준다. 원당마누라와 장군서낭, 애기씨 등 12서낭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제관을 뽑아 정월 초사흗날 오색 뱃기를 들고, 풍물을 치면서 무당과 제관, 짐꾼들이 모두 정갈한 마음으로 당에 올라 제를 모신다. 높은 당산에 오르는 그 일만 해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산을 오르다 보면 대리포구는 물론이고 칠산바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마을공동체가 신년맞이를 이처럼 집단적으로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성주굿, 산신굿, 서낭굿, 깃굿 등 원당굿을 마치면 배마다 돌아가며 축원 덕담과 풍어를 기원해 준다. 굿이 파하면 하산하여 용왕밥을 던지고서 ‘주산돌기’라 하여 마을의 요소요소 지킴이들에게 고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때에 맞춰 앞바다에서는 띠배를 만들어 용왕제를 올린다.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만든 띠배에는 과일, 떡, 밥, 고기 등 제물을 넣고 허수아비를 여러개 태운다. 물론 돛대도 세우고 닻도 만들어 배 형체를 갖춘다. ●떠나가는 배… 모든 액 싣고 멀리 가기를 띠배는 망망대해로 떠나간다. 저마다 한해 소원을 비는 가운데 온갖 액운을 가득 싣고서 바다로 먼 길을 떠난다. 이때쯤이면 바다가 어둠에 잠겨들고 제축을 끝낸 마을은 다시 일상의 평온함에 묻힌다. 이같은 행위를 띠뱃놀이라 하였으니, 본디는 띠뱃굿이 정확한 명칭이리라. 위도뿐만이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하여 평안도 바닷가에도 이런 유형의 굿놀이가 있었다. 액을 실어보내고, 사해 용왕을 달래서 만선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려는 신심이 깃들어 있다. 위도 어업의 몰락과 더불어 소박한 민중의 의례조차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마음속으로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부르며, 그 띠배에 핵폐기장 문제를 비롯한 모든 재액도 함께 실려 가기를 기원했다. 창리나 위도 어민이 실제 뱃전에서 불러댈 힘찬 배치기를 언제나 들을 것인가. 영영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또한 이렇게 마을굿에서나 들어야 하는 것인가. 망연한 바다는 말이 없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중선배가 바다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은 천수만과 칠산바다에 그 옛날 고기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 “백범은 7~8개 종교 넘나든 汎종교인”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은 죄를 지으면 자신의 이름을 써 붙인 북을 성균관 안에서 치고 다니며 널리 알리던 ‘명고축출(鳴鼓逐出)’이라는 벌을 받았다. 유생들에게 벌로 주던 이 명고축출이 일제시대 승려에게 내려져 큰 충격을 준 일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강대련 명고축출 사건이다.1922년 3월26일, 종로에서는 한 스님이 ‘불교계 대악마 강대련 명고축출’이라는 깃발을 들고 거리를 왕복하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됐다. 장본인은 일제시대 불교계 실력자였던 수원 용주사 주지 강대련. 불교유신회 회원들이 불교개혁에 반대하고 친일매불 행위를 한 강대련에게 명고축출의 벌을 내린 것이다. 당시 한국 불교의 친일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을 지낸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펴낸 ‘사건으로 본 한국의 종교사-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인물과사상사)는 이같은 한국 종교계의 부끄러운 이면사를 일제 강점기에 초점을 맞춰 들춰낸다. 수치스러운 역사는 기독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제시대 천주교를 포함한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 대신 일본의 신사에 참배하고 이를 권유하면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앞장섰다. 저자는 안중근 의거를 둘러싼 천주교의 두 얼굴을 비판한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909년 ‘10·26의거’ 뒤 한국 가톨릭 교단은 안 의사를 살인범이라는 이유로 신자 자격을 박탈했다. 한국 천주교는 84년 만인 1993년에서야 안 의사를 천주교 신자로 복권시켰다. 책은 7∼8개의 종교를 넘나들며 파란만장한 인생만큼이나 다양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인 백범 김구의 종교편력도 상세히 다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백범의 애국심의 바탕에는 종교와 신앙심이 깔려 있다고 강조한다. 백범은 무속, 유교, 풍수, 관상학, 동학, 불교, 기독교 등 거의 모든 종교를 ‘섭렵’하고 사후에는 가톨릭의 성세(聖洗)를 받아 베드로라는 세례명도 얻었다.“백범의 정신사는 곧 당 시대 우리 종교사의 변천과정”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9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여경에 딱 걸린 ‘관악산 다람쥐’

    서울 남부경찰서는 2일 관악산을 찾은 등산객과 무속인을 사제총과 흉기로 위협, 금품을 빼앗은 차모(54)씨를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차씨는 지난해 12월14일 오후 5시40분쯤 관악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가는 무속인 손모(38·여)씨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현금 70만원을 빼앗는 등 2003년 6월부터 50여차례에 걸쳐 100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상습적으로 금품을 터는 이른바 ‘관악산 다람쥐’ 강도사건이 잇따르자 지난해 말 경찰관 5∼6명을 잠복시켰다. 결국 차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4시30분쯤 등산복으로 위장한 강력반 이희정(25) 순경에게 다시 범행을 저지르려다 붙잡혔다. 차씨는 사제총 2발을 쏘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이 순경이 가스총을 발사하며 침착하게 대처하는 동안 잠복근무하던 형사들이 달려와 검거할 수 있었다. 이 순경은 “40일 남짓 기약없이 관악산을 돌아다녔는데 차씨를 본 순간 감이 왔다.”면서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힘을 보태 기쁘다.”고 말했다. 경찰조사 결과 개인사업을 하던 차씨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이른 아침과 해질 녘에 혼자 다니는 등산객 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연말연시 대목 맞은 점집

    연말연시 대목 맞은 점집

    “내년 사주에 어두운 기운과 밝은 기운이 같이 있어요. 집안 어른이 안 좋은 일을 당할 순 있지만 어딘가 자리잡을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지난 27일 저녁무렵 종로3가 지하상가.20대 남녀 한 쌍이 ‘사주 3000원’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지하철 점집’이다.40대 여자 역술인과 간이 탁자 사이로 마주앉은 이들. 세밑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표정이다. “올해 계속 취업이 안 됐죠. 내년부터 관운이 풀리는 것으로 나오네요. 공무원 등 각종 시험운이 좋아요.”역술인의 설명에 이들의 얼굴은 점차 풀어졌다. 역술인의 말 한 마디가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새해선물’이었다. ●점집 ‘도심 속으로’ 점집은 연말연시가 되면 토정비결 등 운수를 알아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12월부터 설까지 번 돈으로 한해를 먹고 산다.”는 말이 이쪽 업계의 정설이다. 지난달부터 점집이 종로와 명동 등 도심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벌써 예닐곱 군데나 된다. 천막으로 급조한 게 아니라 어엿한 매장의 형태를 갖췄다. 거느린 역술인만 10명 가까이 될 정도로 제법 규모도 있다.2호선 을지로입구역,1호선 종로3가역 지하상가 등 ‘알짜배기’터에 자리잡고 있다. 가격도 3000원에서 1만원 사이로 저렴한 편. 하루 평균 100여명이 들락거린다. 역술인들을 도심으로까지 이끈 건 불경기다.‘각개 전투’가 잘 안 되니까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내에 자리를 잡은 것이고, 동시에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뜻이다.‘귀는 얇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고통 받고 있는 젊은 층이 주 공략대상이다. 을지로입구역 부근에서 점을 봐 주는 역술인 김남일(42)씨는 “손님 가운데 한창 취업난을 겪고 있는 20·30대가 절반 이상”이라면서 “호기심으로 보는 이들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상담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역술집은 이대와 홍대 등 대학가와 압구정동의 사주 카페가 유명하다.90년대 초부터 들어섰던 사주 카페는 이제는 젊은이들의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가 됐다. 사주 카페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이대 부근에는 20여곳이 성업중이다.1만원에 사주와 취업, 결혼운 등을 귀띔해준다. 이밖에도 유명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1000여개의 점 사이트가 온라인에서 활동중이다. ●미아리는 “가게세 내기도 벅차” 미아리 점집 거리는 국내 최대의 점성촌(占星村). 모두 80여곳의 점집들이 간판을 내고 있다.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 대신 역술인들이 대부분이다.5만원 정도에 사주를 볼 수 있지만 무속인들에게 부적을 받으려면 최소한 십만원 이상 써야 한다. 이곳도 최근 불경기의 ‘직격탄’을 맞고 흔들리고 있다.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말이면 미래를 알아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대던 거리가 요즘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지난해까지 찾던 일본 단체 관광객들도 발길이 끊겨 아예 돈줄이 마를 지경이다. 20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는 강모(54·여)씨는 “예년의 절반도 안 되는 하루 서너 손님만 찾는다.”면서 “업종을 바꾸려 해도 사주 상에 장사 운이 있는 사람들도 망하는 판국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를 점으로 풀어가려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지난 27일 미아리 점집 거리를 찾은 최모(50·여)씨는 “남편이 명퇴를 해 수입은 뻔하지만 딸의 진로를 알아보기 위해 점집에 들렀다.”면서 “점이 가려운 곳은 긁어주고 궁금한 점을 어렴풋하게나마 알려주기 때문에 1년에 한두번은 들른다.”고 말했다. 강북은 인사동과 삼청동, 강남은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각각 20여곳의 점집이 몰려 있다. ●심리적 불안 해소의 ‘비상구’ 그렇다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불경기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점집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마지막 비상구”라고 지적한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 허태균(심리학 사회심리 전공) 교수는 “사람들은 경제난이나 취업난 등 어려운 일이 한꺼번에 닥치면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판단할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다.”면서 “이 상태에서는 불가피하면서도 외부에 있는 이유인 ‘팔자’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보다 점으로 어려운 상황을 납득하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좋다.”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한국역술인협 박형용 사무총장 “‘점쟁이’가 되려면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하죠. 인터넷에서 상담해 주는 역술인들은 모두 자격증 소유자입니다.” 사단법인 한국역술인협회 박형용 사무총장은 “역술인은 무속인과 다르다.”면서 “역술인들은 공부를 통해 이치를 터득한 ‘학자’”라고 강조했다. 한국역술인협회는 지난 1968년 ‘한국역리인협회’로 문화부에 등록됐으며,1992년 사단법인으로 전환된 단체다. 약 5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민간자격검정시험을 통한 역술인 양성도 이 단체의 주요사업 중 하나다. “물론 자격증 없이 점(占)을 친다고 해서 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술의 기본인 명리학, 관상학, 풍수지리학 등이 학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 자격증을 딴 사람이 더 믿을 만하지 않을까요.” 박 사무총장은 “뭐니뭐니해도 결국 잘 맞히는 사람이 역술인으로 성공하게 돼 있다.”면서 “경험상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잘 맞히더라.”고 비법을 흘려주었다. 협회에서 연 2회 실시하는 역술인 자격시험에는 5개 과목에 걸쳐 20문항씩 총 100문항이 출제된다.▲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얼굴을 보는 관상학▲이름을 풀어내는 성명학▲괘를 뽑아 운명을 감정하는 육효학(주역)▲지리적 환경을 고려하는 풍수지리학 등이 해당 과목이다. 각 과목별로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한다. 박 사무총장은 “매해 약 100∼150명이 시험을 치른다.”면서 “협회에서는 이 시험을 국가공인 시험으로 지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좀더 체계적으로 역술인을 양성하기 위해 협회직영으로 학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수강생은 1년에 두차례 모집하며(5개월 과정) 현재 75기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은 시험과목과 똑같이 다섯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수강생들은 5개월 정규과정이 끝나면 5개 과목 중 하나의 전공분야를 정해 1∼2년 정도 더 집중 공부를 한다. 그 후 역술인으로 개업을 하게 된다.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은 역술의 기본이기 때문에 수강생 누구나 심도있게 공부하며, 그외 과목 중 수강생들은 돈벌이가 잘 되는 관상학과 성명학에 많이 몰린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은 어렵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편이란다. 박 사무총장은 “앞으로 자격검정시험을 철저히 실시해 무속인 및 비자격 역술인과의 차이를 벌여나갈 생각”이라면서 “점을 치러 갈 때 자격증소지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역술인과 무속인은… 포괄적인 의미의 역술인(易術人)에는 역술을 하는 사람과 무속인(巫俗人)이 포함된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다르다. 역술인과 무속인의 차이는 종교학과 신학의 차이와 비슷하다. 역술인은 학문을 하는 사람에 가까운 반면, 무속인은 신을 숭배하는 신앙인에 해당한다. 점을 보는 방식 또한 다르다. 역술인은 명리학 등 주자학 이전의 유교와 관상학, 풍수지리학 등의 전통 학문을 익혀야 한다. 역술의 기본인 사주팔자는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 등의 사주(四柱)와 생년월일과 생시를 60갑자로 풀어낸 팔자(八字)로 인생을 풀이한다. 무속인은 옥황상제, 일월성신 등 하늘 땅 바다의 신령들과 관성제군, 최영장군 등 중국과 한국의 역대 장군 등을 몸주로 받아들인다. 몸주와의 교감에 따라 사자(死者)를 불러들이거나 미래에 대해 내다볼 수 있다. 무속인도 두 종류로 나뉜다. 강신무(降神巫)는 내림굿을 통해 신을 몸에 받아들인 경우. 보통 한강 이북지역에 분포돼 있다. 이와 달리 세습무(世襲巫)는 말 그대로 혈통을 따라 사제권이 대대로 계승되는 무당이다. 주로 영·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지만 요즘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 넓은 의미의 역술인은 국내에 30만명 정도.20만명이 무속인이고 나머지는 협의의 역술인이다.10만명 가운데 5만명은 한국역술인협회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비공식적으로 역술을 익힌 사람들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악귀 내쫓는 처용은 해양문화의 소산 지금은 사라졌지만 연말이면 악귀를 쫓는 나례 풍습이 있었다. 붉은 탈을 썼으니 처용이 그 원조이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악귀를 내쫓았다. 이러한 유풍의 근원에 처용이 늘 버티고 서있다. 그 처용이 해양문화의 소산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처용을 만나려면 울산으로 가야 한다. 경주가 신라의 본향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또 하나의 본향인 울산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공해에 찌든 땅으로만 알고 있는 울산이야말로 경주 감포와 더불어 신라가 동해로, 세계로 나아가던 출구였다. 울산에는 동해를 굽어보던 유서깊은 절터가 남아 있다. 오늘날 울산항으로 엄청난 국제적 물동량이 오고감을 생각해볼 때, 신라 천년의 출구 역할이 지금껏 이어진다고나 할까. 호젓한 문수산(옛 영취산)을 오르다보면 망해사지(望海寺址)를 만난다. 글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 솔잎 냄새 풍기는 숲속에 부도 2기가 의연하게 서 있는데, 이 절이 세워진 내력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망해사지와 처용설화가 그것이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졸지에 길을 잃어버렸다. 왕이 괴상하게 여겨 측근에게 물으니 일관이 답하되,‘동해 용의 장난이니 좋은 일을 하여 풀어버려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왕이 명령하여 그 용을 위해 세죽나루 근처에 절을 세우라 하였더니 홀연히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동해 용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수레 앞에 나타나 춤과 노래를 연주하였다. 그의 아들 하나가 임금을 따라와 국정을 보좌하였는데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그를 미인에게 장가들게 하였는데 역병 귀신이 밤마다 그 집에 가서 몰래 처용의 아내를 품고 잤다. 어느날 처용이 동경 밝은 달밤에 이슥히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었다.‘둘은 내해었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는 것 어쩌리!’ ●처용의 아버지 ‘용’에 대한 해석 분분 용은 누구일까. 학자들마다 해석이 구구하다. 조금이라도 이 분야에 조예가 있는 학자들은 저마다 구구한 해석을 내놓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용이 해상 세력과 관련있음이 분명하다. 울주에서 조금만 북상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꿈꾸었던 동해구(東海口)가 나오고, 동해 용왕이 드나들던 감은사지가 지척이다. 혹자는 용을 외국인, 보다 정확하게는 아라비아 상인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개운포가 국제무역항이었음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나 증거는 없다. 혹자는 울산 바닷가에 기반을 잡고 있던 해상 호족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울산군 처용암 조에도 ‘고을 남쪽 37리 개운포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때 동해 용왕의 아들이 거기서 나왔으며, 모양이 기괴하고 가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처용옹이라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까지 전설처럼 처용암과 설화가 전승되었다. 고려시대에 학연대합설처용무 춤이 추어졌으니 역병을 쫓는 전통은 천년을 뛰어 넘어 이어진 셈이다. 설화 속의 역병도 단순한 전염병이 아닐 것이다. 당대의 ‘사회적인’ 역병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헌강왕조라면 신라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었던 때 아닌가. 처용은 역병을 물리치는 춤을 추고 있다. 처용의 춤은 흡사 무속의 악귀물림과도 같은 것이리라. 훗날 처용춤은 궁중정재로 편입되고, 민중 사이에서 제융의 역할을 도맡게 된다. 문헌기록상 무당으로 간주되는 신라 남해차차웅, 악귀를 쫓는 처용, 제액을 물리치는 제융 등은 한 가지를 뜻하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처용은 분명히 이두식으로 표현된 한자임에 틀림없다. ●공해 찌든 처용암에도 상록수는 우거져 망해사 바로 옆에는 늠름한 청송사 3층탑이 있다. 너무도 당당하고 의연하여 감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이 장중한 석탑이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문수사가 있으니 울산이나 부산 사람들이 영험하다 하여 쉬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삼국유사 전편을 통하여 영험한 문수보살은 노파로 변신해 기행을 일삼는다. 처용과 문수보살, 신라인이 창조한 인물군이 영취산을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청송사지와 문수사 가는 길은 지금이야 경관이 가려져서 바다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 신라인들은 국제항 개운포 풍경을 굽어보면서 이 산을 올랐으리라. 망해사지를 보았다면, 반드시 처용암을 찾아야 할 터인데, 아서라,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차마 찾아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황성동 세죽리 앞바다의 처용바위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고증하고 있건만 석유화학단지의 공해로 바다는 찌들고, 보상금을 받아 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제를 지내는 당집의 나무도 시들어 처용바위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다. 시비(詩碑)도 세워 두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매립이 되어 처용바위 자체가 사라질 판인 것을.“매립이 되더라도 처용암만큼은 반드시 보존하는 방향으로 지킬 것”이라는 김광오 울산시 공보관의 말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을 얻는다. 처용암이 있는 세죽나루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횟집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90년대 초반까지 동해의 온갖 횟감이 팔리던 횟집도 이제 서서히 문을 닫는 판국이다. 더 이상 지독한 냄새를 견디지 못해서다. 그러나 생명의 힘은 그토록 무서운 것일까. 처용암 위에 빽빽하게 들어선 팽나무 사철나무가 사철 상록의 잎그림자를 바다에 드리운다. 처용암 지척에는 상록수림으로 유명한 춘도도 있어 동백나무숲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다 경관이 무너졌음에도 나무들은 제 역할을 다하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처용암에서 울산의 문화축제인 처용문화제도 열린다. 처용제의를 비롯하여 처용콘서트, 처용합창제, 처용얼굴 그리기 등등 처용을 기리는 행사가 열려서 글 모르는 아이들도 울산에서만큼은 처용을 알고 있다. 공장으로 둘러싸인 개운포에 포로처럼 갇혀 있는 처용암을 보노라면 근대산업화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결단낸 그늘진 면을 보는 것 같아 무척 마음 아프다. ●박제상 그리다 돌이 된 치술령의 슬픈 전설 처용암에서 천년 전설의 현장이 무너졌음을 보상받고 싶거들랑 반드시 은을암(隱乙庵)으로 방향을 잡기 바란다. 왜국에 볼모로 잡힌 내물왕(柰勿王)의 미해왕자를 구출하고 대신 죽음을 당한 박제상을 그리다가 망부석이 된 전설이 전해지는 치술령 자락의 그 은을암이다. 공단의 매캐한 공해바람에 컥컥이다가 은을암으로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비로운 숲속에 들어서 있음을 알게 된다. 경주 남산으로 이어지는 치술령 능선에서 박제상의 아내는 세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배가 떠난 율포(栗浦)를 바라보면서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돌이 되었다. 넋은 새가 되어 은을암의 동굴로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그 동굴에 제각을 짓고 용왕당이라 이름하여 모시고 있다. 국제항 율포와 용왕당이란 이름에서 바다와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울산은 신라의 대외 창구로, 중국의 명주, 양주 등으로 곧장 도항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들 중국지역은 동남아에서 무역 주도권을 장악한 대식국(아라비아)상인들이 동진하여 붐비던 곳이었으니, 이들 아라비아인을 통하여 일찍이 신라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졌다. 이들이 울산지방을 통하여 입국했을 가능성이 높아 처용이 이슬람상인이라는 가정법이 등장한 것이다.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운위되어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등 ‘따라야 할 모범’으로 규정됐다. 당대 지방장관 정도의 높은 직위에 있었을 박제상이 왜국에까지 가서 볼모를 빼내와야 했던 기록은 끊임없이 왜구의 약탈을 받아야 했던 신라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없네” 일본의 규슈는 한반도에서 가까웠기에 그들은 뻔질나게 한반도 해안을 들이쳤다. 선진 문물에 목말라했던 왜인들은 신라에서 문화 약탈의 원정을 꿈꾸었던 것이다. 해류상으로 규슈의 북단인 하카다(博多)나 시모노세키(下關) 등지에서 배를 들이밀면 고스란히 울산쪽에 닿았다. 울산은 신라의 왕도인 경주를 침략하는 해상 루트였으며, 임진왜란때 왜군이 울산 학성에 왜성을 쌓고 버틴 것도 이런 역사문화적 배경을 지닌다. 오죽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자청했을까. 지배집단에서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시대의 사표로 선전되었으며, 치술신사에 배향되기도 했다. 신중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한때 울주에 벼슬살이 하러 내려왔던 김종직이 한역했다는 치술령가가 나온다. 당시 울주에서 들은 노래를 다소간 윤색했을 것이다.‘치술령 머리에서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 없네. 낭군이 가실 때에 다만 손만 흔들더니, 살았는가 죽었는가 소식이 끊어졌네. 길이 이별함이여, 죽은들 산들 어찌 서로 만날 때 있으랴.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다가 문득 무창의 돌로 화하니, 열녀의 기운이 천추에 푸른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렇지만 반드시 지배층의 의도대로만 박제상의 행적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부인은 치술신모가 되어 모권적인 무속신으로 재창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민중들에게 ‘치술령의 영험한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은을암에서 굽어보니 경주 남산까지 이어진 치술령 산자락 아래로 운무가 비끼고 어디선가 새가 날아들고 있다. 무심한 저 새의 혼에도 치술신모의 넋이 깃들어 있지 않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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