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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10) 공주 계룡~정안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10) 공주 계룡~정안

    충남 논산시 상월에서 공주시로 넘어온 옛길은 계룡면 경천에 다다른다. 이곳에 섰던 5일장은 한때 공주에서 가장 컸다. 저녁 때 도착한 이 시장터는 한가한 분위기에 파리만 날렸다. 이곳에서 20년째 경천철물점을 운영하는 이영수(70)씨는 “옛날에 시장이 섰을 때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다.”면서 “10여년 전 시내버스가 들어온 뒤로 5일장이 죽었다.”고 말했다.1000평은 됨 직한 장터는 차들만 몇대 주차돼 있고 텅 비어 있다. ●마을에 승병 영규대사의 묘 그 전에는 신원사, 갑사는 물론 신도안에서 왔다고 한다. 이들 지역은 계룡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복판인 이 시장으로 모두 몰려들었다. 장이 서면 철물점에 농기구를 사려는 손님이 들끓었다. 국밥집마다 손님이 넘쳐났고 술집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둥그런 시장 주변을 따라 죽 늘어서 있던 가게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이씨는 “그때를 기억해서인지 5일장이 섰던 2일과 7일에 떠돌이 옷장수 2명이 찾아온다.”고 씁쓰레하게 웃는다. 일제 때 경천에 면사무소가 있었으나 1930년 월암리로 이전했다. 이씨는 “정석모(전 내무부 장관) 아버지가 면장할 때 옮겼어.”라며 아쉬워했다. 옛길은 국도 23호와 갈라져 소로로 내달린다. 계룡초등학교 담을 끼고 바로 좌회전해 농로를 따라가면 유평1리가 나온다. 이 마을에 임진왜란 때 최초로 승병을 일으킨 영규대사(?∼1592년) 묘가 있다. 이 마을 출신이다. 영규는 서산대사의 제자다. 조헌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뒤 옆 마을인 월암리로 피신했다 숨졌다. 묘는 충남도기념물 15호이다.1810년 순조 때 세워진 비석도 있다. 주민 박상희(70·여)씨는 “동네 주민들이 1년에 한번 제사를 지내준다.”고 전했다. ●‘정감록´ 흔적이 배인 땅 길은 계룡면 사무소 앞에서 국도 23호와 합쳐진다.3㎞쯤 달리면 널티고개가 나타난다. 경사가 완만하다. 이 고개에 물이 넘치면 ‘정씨 왕조’가 세워진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정감록에 나오는 왕조를 일컫는다. 널처럼 속이 비었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주민들은 ‘무넘이’라고 불렀다. 고개가 관통하는 동명리 이장 유병상(67)씨는 “정씨 왕조 얘기는 잘 모르지만 우리와 인근 마을에 농수를 대기 위해 기산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오는 관이 고개를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처럼 닦인 국도를 타고 10㎞쯤 내달리면 금강 앞이다.1㎞ 전방에서 빠져 시내쪽으로 가다 보면 소학동이 나온다.‘효자향덕비(孝子向德碑)’가 이 마을에 있다. 향덕은 통일 신라 경덕왕시절인 755년 부모가 가난과 유행병으로 시달리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봉양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기록에 있는 최초의 효행사적으로 알려졌다. 왕이 향덕의 효행을 알고 벼 300석과 집 등을 하사했다. 이후 ‘효가리(孝家里)’라고도 불려졌다. 비석 앞에는 48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 11m, 둘레 3.3m로 매년 주민들이 마을의 평안을 빈다. ●“귀향온 사람 나루터 건너자 목 베어” 금강변을 따라 난 도로로 1㎞쯤 넘어 가면 공주대교 앞 장기대나루가 나타난다. 공주대교 밑에 만든 게이트볼장에 있던 팔순 가까운 할아버지는 “30년 전만 해도 노를 저어 강을 건너주는 나룻배 한 척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양에서 귀양 오는 사람들이 나루터를 건너면 목을 많이 쳤다.”며 “옛날에는 강 옆 산에 시신을 묻은 고린장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지금은 강에 펌프장이 설치돼 있다. 나루터에는 수백년 된 팽나무가 있었다. 나룻배를 묶어두고 손님들이 쉬어가던 나무다. 교량이 건설되면서 공주대로 옮겨 심었으나 얼마 안가 죽었다. 이곳에서 시내를 지나서 7㎞쯤 떨어진 곳에 우금치가 있다. 이 고개는 전봉준 장군이 1894년 관군 및 일본군과 싸운 동학혁명전투 중 최대 격전지다. 공주대 윤용혁(역사교육과) 교수는 “주력 동학군은 이인쪽을 통해 공주로 올라왔지만 일부는 공주 구간 옛길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동학혁명은 우금치 전투의 대패로 결국 실패했다. 금강을 건넌 옛길은 공주대와 신관초교를 거치지만 지금은 길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정안천 주변을 따라가던 길이 국도 23호와 만나는 곳은 조선조 숙박시설이 있었던 모란 마을이다. 얼마 안가 국도변에 붙어 있는 ‘석송정’이 나온다. 마을 이름도 정안면 석송리다. 이 정자는 인조가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내려올 때 잠시 쉬어 갔던 곳이다. 이를 기념해 지방 유림들이 세웠다. 인조가 이곳을 지날 때 지방 유림들이 백성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세금 감면을 해줬다고 한다. 훼손된 것을 1985년 공주시가 복원했다. 정자 주변에 인조가 ‘석송동천(石松洞天)’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비운의 혁명가 김옥균 생가터에 비석만 잠시 국도와 헤어진 옛길은 ‘비운의 혁명가’ 김옥균(1851∼94년)과 만난다. 그가 6세까지 산 정안면 광정리 생가터다.1884년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고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된 것처럼 생가터는 썰렁하다. 유허비와 안내판만 잔디에 서 있을 뿐이다. 10여가구가 있었다던 마을은 사라졌고 ‘감나무골’로 불리듯 붉게 익어가는 감나무 몇 그루만 서있다. 그의 묘는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있다. 김옥균 생가터에서 나오면 옛길은 곧바로 국도와 합쳐진다.3∼4분을 달리면 길은 또다시 국도와 갈라져 차령고개로 오른다. 차령산맥의 모태가 되는 지점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훈요10조에서 ‘차령고개 이남, 금강 밖은 등배(반역)의 산세이므로 그 지역 인물을 등용하지 마라.’고 한 곳이다. 지금은 국도가 따로 나 차들이 드물다. 울창한 숲만이 옛 위용을 알려준다. 차령고개 밑 정안면 인풍리 주민 조주형(67)씨는 “옛날엔 숲이 더 우거졌었다.”면서 “50년 전만 해도 천안 행정리 5일장에 가려면 고개에 도둑떼가 많아 혼자 소를 끌고 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주변에 ‘도둑골’이라는 마을까지 있었다고 한다. 차령고개는 당초 ‘금북정맥’으로 불렸으나 일제가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차령고개는 공주와 천안의 경계 지점으로 정상에 오르자 천안시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보인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태조 이성계 금강변 신도안에 도읍 구상 충남을 가로지르는 금강은 한양을 끼고 도는 한강에 이어 항상 한 나라의 수도로 떠오른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도 금강변 공주·연기지역에 행정도시 건설이 추진되지만 수도로 거론된 역사는 백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는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위례성에서 건국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한강유역인 현재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고구려에 의해 개로왕이 죽고 밀리면서 백제 문주왕이 475년 다음 수도로 정한 곳이 금강변 웅진, 충남 공주다. 지금은 금강의 ‘금’자가 비단 금(錦)을 사용하지만 웅진의 곰웅(熊)자를 딴 웅수(熊水)에서 ‘곰강’으로 불리다 금강으로 변했다고 한다. 백제 중흥의 기틀을 다져놓은 무령왕에 이어 즉위한 제26대 성왕이 538년 이전한 수도는 ‘사비’이다. 충남 부여로 역시 금강변에 위치한다. 부여를 통과하는 금강은 별도로 ‘백마강’으로 불린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호국룡이 된 무왕을 낚았다는 전설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백말로 용을 낚았다고 전해지는 바위인 조룡대(釣龍臺)는 고란사 앞에 있다. 백제는 660년 사비시대를 끝으로 멸망하고 만다. 금강변이 다시 수도로 떠오른 건 조선 건국 때. 초기에 태조 이성계는 계룡산 자락인 신도안을 수도로 정했었다. 금강에서 가까운 곳이다. 한양에 밀려 공사가 1년 만에 중단됐지만 아직도 주춧돌 등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이곳에서 ‘정씨 진인이 나타나 새 왕조를 세운다.’는 예언서가 등장했다.‘정감록’이다. 선조 때에 발생한 정여립(1546∼89년)난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이 있다. 정감록의 파괴력이 지속되면서 무속인이 신도안으로 몰렸다.1975년에만 해도 상제교, 태을교 등 104개 신흥종교 시설이 있었으나 계룡대를 조성하는 ‘620사업’으로 거의 사라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금강변 공주·연기를 행정 수도로 검토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후 이곳을 행정수도로 정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일부 국민들의 반대로 ‘행정도시’로 격이 낮아졌지만 이 사업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전북 장수군에서 충남 서천 금강하구둑까지 394㎞를 흐르는 금강.2014년까지 대통령 직속기관 4개, 재정경제부, 교육인적자원부,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등 총 49개 중앙행정기관이 들어서는 행정도시 ‘세종시’가 백제의 옛 영광을 재현할지 기대되고 있다. 공주대 윤용혁 교수는 “한반도 중심인 한강을 둘러싼 싸움에서 밀리면 다음으로는 천상 금강이 가장 적지다.”며 “대외적으로 교통이 좋은 강을 끼고 있고 넓은 평야지대 등 수도로서는 조건이 무척 좋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황희연의 춤’ 새달 9일 건국대 새천년관

    ‘미모에 잘 어울리는 단아한 춤사위의 전통춤꾼’ 리을무용단 단장인 안무가 겸 춤꾼, 황희연은 춤판에서 이런 얘기를 흔히 듣는다. 물론 그의 춤사위를 높이 평가하는 말이다. 다음달 9일 오후 7시30분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황희연에 대한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리을무용단 제22회 정기공연 ‘황희연의 춤’. 한국춤 ‘산조’에서 정평 난 그의 대표적 전통 레퍼토리들을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춤을 춤으로만 승부한다.’는 모토를 내건 리을무용단이 무대에 내놓을 레퍼토리는 ‘모양새와 감정에 치우쳤다.’는 기존 한국 전통춤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것들. 한국 춤의 호흡과 원리에 충실한 채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무용단의 색깔을 압축한 춤사위들로 설명된다. ‘배명균류 산조’와 ‘한영숙류 태평무’‘교방 살풀이’가 황희연의 독무대. 그의 ‘배명균류 산조’가 “치우치지 않는 감정과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으로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면 ‘한영숙류 태평무’는 우아하면서도 절도있는 상체 움직임과 섬세한 손놀림이 도드라진다. 무속적인 색채가 가미된 영남지방의 호방한 기방춤 ‘교방 살풀이’도 눈길을 끄는 레퍼토리이다. 여기에 이 무용단 단원들이 함께 이어가는 무리춤 군무가 무대의 흥을 돋운다. 이희자, 홍은주, 이계영, 곽시내, 김정민, 최희원, 이세라, 이유진, 박혜연, 박현아, 강혜원, 정문미, 문하연의 무대. 세 개의 북을 삼면에 두고 함께 추는 ‘삼고무’며 꽹과리(진쇠)로 절묘한 가락과 소리를 연출하는 ‘진쇠춤’, 남성 대신 다섯 명의 여자 무용수들이 솔직하고 소박한 멋을 우려내는 ‘진도북춤’이 차례로 풀어진다.(02)588-7520.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북한산에는 단풍 없다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북한산에는 단풍 없다

    “단풍나무에 단풍물이 곱게도 들었네!” 북한산 국립공원을 찾은 탐방객들이 붉게 물든 단풍을 보고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북한산이나 설악산 같은 중부 지방의 산에는 단풍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단풍나무는 내장산, 지리산처럼 남부지방의 산에서 주로 자라기 때문이다. 중부지방에는 단풍나무와 비슷한 당단풍나무가 주로 자라고 있다. 따라서 북한산이나 설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단풍나무들은 모두 당단풍나무인 것이다. 단풍이 들 때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청시닥나무, 붉은빛 단풍이 예쁜 복자기, 곡우 때 수액을 받아먹는 고로쇠나무, 가을마다 내장산에 단풍 불을 놓는 단풍나무, 벌나무라고도 하며 수난을 당하는 산겨릅나무, 울릉도에만 사는 섬단풍나무와 우산고로쇠, 고산의 숲 속에 자라는 부게꽃나무. 이들의 공통점은 단풍나무과(科) 단풍나무속(屬)에 속하는 형제나무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자생 단풍나무속 식물은 신나무 고로쇠나무 만주고로쇠나무 산겨릅나무 시닥나무 청시닥나무 부게꽃나무 단풍나무 아기단풍 당단풍나무 우산고로쇠 섬단풍나무 복자기 복장나무 등 14종이나 된다. 여기에다 일본에서 들어온 홍단풍, 중국에서 들어온 중국단풍, 미국에서 들어온 설탕단풍 은단풍 네군도단풍 등을 심고 있으니 우리가 볼 수 있는 단풍나무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들은 대부분 단풍이 아름답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이지만, 이름이 서로 다른 것처럼 여러 가지 특징에서 차이가 나므로 서로 구분할 수 있다. 잎 모양이 손을 펼친 모양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신나무, 복자기, 복장나무 등은 손 모양으로 갈라지지 않고, 단풍나무 당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등은 손 모양으로 갈라진다. 당단풍나무와 단풍나무는 잎의 갈래가 손가락처럼 가늘게 갈라지므로 이보다 얕게 갈라지는 고로쇠나무와 구별할 수 있다. 당단풍나무와 단풍나무는 나무의 크기도 비슷하고, 잎도 손가락처럼 가늘게 갈라지며, 단풍도 곱게 들므로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두 나무는 사는 곳만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특징도 다르다. 먼저 잎의 크기를 보면 당단풍나무는 지름 9∼11㎝쯤으로 지름 5∼6㎝인 단풍나무보다 더욱 크다. 손가락처럼 보이는 잎의 갈래도 당단풍나무는 9∼11갈래, 단풍나무는 5∼7갈래로서 다르다. 당단풍나무의 잎에는 털이 있지만, 단풍나무에는 털이 거의 없는 점도 서로 다르다. 잎의 특징들 때문에 단풍나무의 잎이 더욱 작고 깔끔하게 보인다. 이처럼 여러 가지 특징이 서로 다른 나무이므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단풍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은 한자 이름에서 유래했다. 당단풍나무는 ‘당나라 당(唐)’자를 쓰므로 중국 원산이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우리나라 자생식물이다. 잎의 특징으로 볼 때는 당단풍나무라는 이름보다 왕단풍나무나 넓은잎단풍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이 더욱 제격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장산 지리산 한라산 같은 남부지방의 산에는 단풍나무와 당단풍나무가 섞여 자라기도 한다. 이 때문에 중부 지방의 단풍나무 닮은 나무는 당단풍나무라고 하면 맞지만, 남부 지방의 비슷한 나무는 단풍나무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이번 가을에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서로 다른 종(種)인 단풍나무와 당단풍나무를 구분함으로써 자연을 보는 눈을 조금 업그레이드해 보자.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위풍당당 ‘국가브랜드 공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은 무엇일까. 지난해부터 국립극장은 해외에 당당하게 선보일 수 있는 한국의 공연작품을 만들어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이름을 붙여 선보이고 있다. 국립극단의 ‘태’, 국립창극단의 ‘청’,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에 이어 마지막으로 국립관현악단의 ‘네줄기 강물이 흐르네’가 13일 오후 6시,14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씨가 예술감독을 맡은 이번 공연은 한국을 대표하는 4명의 작곡가 박영희, 박범훈, 김영동, 나효신의 음악이 차례로 선보인다. 음악의 소재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표현하는 종교인 기독교, 도교, 무교, 불교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박영희의 ‘온누리에 가득하여,…비워지니…,’는 도교를 주제로 한 곡. 한국 전통악기 오케스트라로 물이 흘러가듯 음악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무위사상을 드러낸다. 박범훈의 ‘신맞이’는 한국의 무속신앙이 주제다. 동해안 별신굿, 경기 이남지방의 도당굿, 황해도 최영장군 당굿에 쓰이는 장단과 음악을 곡의 테마로 활용했다. 장구 연주자가 지휘자 역할을 겸하게 되는 이 공연에는 장구의 명인 김덕수가 협연한다. 불교를 소재로 한 음악에 관한한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김영동은 ‘화엄’을 선보인다. 화려하지 않은 예불소리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염불소리로 시작해 불교사물,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이 갖고 있는 의미를 하나하나 음악으로 표현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중인 나효신의 ‘태양 아래’는 기독교를 주제로 한 작품. 그는 베리 모저의 목판화가 인쇄된 성경책을 읽던 도중 목판화 ‘태양 아래’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썼다고 한다. 지휘자는 박, 특경, 특종, 좌고 등 각종 타악기를 이용해 음악의 색을 입힌다. 지휘는 1998년 일본 최고의 지휘자상인 와타나베 아키오상을 수상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등 수많은 걸작 애니메이션의 지휘를 도맡았던 김홍재가 맡는다. 국립관현악단의 국가브랜드 연주회 ‘네줄기 강물이 흐르네’는 이번 초연이 끝나는 대로 내년에 해외연주회도 계획하고 있다.2만∼7만원.(02)2280-4114.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4)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4)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경남 창녕의 관룡사는 억새평원과 진달래군락지로 유명한 화왕산과 이어진 관룡산 중턱에 있습니다. 관룡사에서 산길을 700m쯤 오르다 보면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데, 바로 용선대(龍船臺)지요. 보물 제295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이 바위 위에서 극락으로 가는 뱃길을 살피고 있습니다. 풍만하고 안정감 있는 몸통에 단정한 인상의 양감 있는 얼굴을 가진 용선대 여래좌상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가 298㎝에 이르러 매우 당당한 모습이지요. 용선대 여래좌상의 의미는 관룡사 계곡에 자리잡은 한 점의 국가지정문화재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 불상의 존재로 하여 관룡사 계곡에 ‘극락세계로 가는 거대한 배’라는 상징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입니다. 반야용선은 중생을 태워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야용선에는 지혜를 터득하면 반야, 곧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지요. 하지만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피안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생전에 덕을 쌓고 부처에 의지하면 반야용선에 올라 서방정토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경남 양산 통도사의 극락보전에 그려진 ‘반야용선접인도(般若龍船接引圖)’는 반야용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용처럼 생긴 배의 앞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안내하는 인로왕보살이 합장을 하고 있고, 뒤에는 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해주는 지장보살이 고리가 여섯 달린 지팡이인 육환장을 들고 서 있습니다. 배의 가운데는 비구와 아낙, 선비, 노인 등 신분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결같은 표정으로 극락왕생한다는 기대에 젖어 있지요. 이들을 감싸고 있는 지붕은 마치 인도의 초기 스투파(탑)를 닮았습니다. 스투파란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무덤이니, 곧 그림 속의 지붕은 중생을 보호하는 부처를 상징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고통 없는 세상으로 태워다주는 반야용선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의 무속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야용선 혹은 용선은 거의 전국적으로 망자를 극락으로 떠나보내는 ‘교통수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요. 강릉 단오굿에서 펼쳐지는 뱃노래굿도 바로 용선굿입니다. 용선굿거리에서는 죽은 사람이 편안히 저 세상을 갈 수 있도록 굿당의 천장에 매달아두었던 용선을 내려 무녀들이 노젓는 흉내를 내면서 뱃노래를 부르지요. 통영에서 전승되는 남해안 별신굿에서도 대나무로 화려하게 틀을 만들고 색지를 붙인 용선이 완성되면 망자의 넋을 서방정토로 인도하는 용선춤이 벌어집니다. 용선대 여래좌상은 이렇듯 중생을 가득 태우고 극락세계로 항해하는 배의 선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선대 여래좌상은 상징성이 감안되지 않은 채 순수하게 불상 조각 자체의 미술사적 가치만으로 보물로 지정된 듯합니다. 여래좌상 앞에 놓인 안내판조차 ‘땅의 기운을 누르려는 신라 하대의 도참사상이 작용한 듯 하다.’고 불상 조성의 이유를 풍수지리와 연결시키고 있을 정도니까요. 앞으로는 문화재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에 상징성도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용선대 여래좌상이 아무리 훌륭하게 보존된다고해도 훗날 주변 경관이 훼손된다면 반야용선의 상징성 또한 퇴색하고 말겠지요. 자연 경관과 더불어 상징성을 갖는 문화재라면 주변 지역을 사적(史蹟)으로 지정하여 함께 보호하는 방법도 진일보한 문화재 정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csuh@seoul.co.kr
  • [Local] 성산포 내수면 투자 유치 나서

    제주특별자치도는 성산포 내수면 친환경개발 모델을 제시하고 본격 투자유치 활동에 들어갔다. 성산포항과 갑문으로 구분된 성산포 내수면 개발은 자연친화지구, 예술문화지구, 휴양오락지구 등 3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될 방침이다. 내수면 철새도래지 부근에 계획된 자연친화지구에는 조화원과 습지원, 버드클리닉 등이 조성돼 조류 관찰 등 생태교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오조리쪽 내수면은 수상 정원 및 조각공원, 방언 테마파크, 무속박물관, 공방, 숙박시설 등을 갖춘 예술문화지구로 조성된다. 오조리 반대쪽인 성산리쪽 내수면은 수상호텔, 수상레스토랑, 상가, 전통뗏목 체험장 등을 갖춘 휴양오락지구로 개발된다.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0) 계룡산 중악단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0) 계룡산 중악단

    계룡산이 민간신앙과 신흥종교의 성지라지만 대전 쪽에서 동학사를 거치거나, 충남 공주에서 갑사로 오르는 일반적인 방문코스에서 이 산이 지닌 신령스러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주에서 갑사로 들어가지 않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계룡산 중턱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굿당이나 암자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기독교와 천주교의 기도원도 보이는데, 계룡산이 발산하는 영적인 기운이 무속이나 불교, 신흥종교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달리다 계룡산 기슭으로 난 왼쪽길로 접어들면 곧 신원사가 멀리 보입니다. 신원사는 눈 푸른 납자들이 수행하는 국제선원이 있는 절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신원사를 기억해야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이곳에 중악단(中嶽壇)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룡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845m의 천황봉을 등지고 있는 중악단은 조선시대 국가적인 차원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며 끊어졌던 계룡산 산신제는 1998년부터 민간차원에서 되살려 해마다 모셔지고 있지요. 조선은 묘향산을 상악(上嶽), 계룡산을 중악(中嶽), 지리산을 하악(下嶽)으로 삼아 각각 상악단과 중악단, 하악단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묘향산과 지리산의 제사터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중악단이 언제 세워진 것인지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1959년 발간된 ‘공주군지’는 1879년(고종 16년) 계룡산사(鷄龍山祠)라는 이름을 중악단으로 바꾸며 건물도 중수한 것으로 전하지요. 일본인 인류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1931년 ‘조선의 풍수’에서 대한제국 수립 이후 고종이 1898년(광무 2년) 중악단을 위엄있게 짓고,神院寺(신원사)였던 절 이름도 제국의 기원을 연다는 뜻에서 新元寺(신원사)로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신원사의 역사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내에서는 백제시대 와당(기와)이 발견되었다고 하지요.神院(신원)이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뜻하는데, 절이 세워지기 전부터 제사터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백제시대 계룡산 제사터의 위상은 확실하지 않지만, 통일신라는 전국의 5대 명산을 5악(五嶽)으로 지정하고 국가적 제사터로 삼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합니다. 토함산이 동악, 지리산이 남악, 계룡산이 서악, 태백산이 북악, 팔공산이 중악이었지요.5악신앙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태조는 계룡산신에게 호국백(護國伯)이라는 작호(爵號)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조선 태조가 계룡산의 산세를 높이 평가하여 새로운 왕조의 도읍으로 삼고자 한동안 공사를 벌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17세기 들어서면서는 계룡산 신도안이 이씨 왕조의 400년 수도 한양에 이어 새로운 왕조가 800년 동안 도읍할 땅이라는 ‘정감록’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조선 말에 이르러 사회적 불안이 증폭되면서 계룡산이라는 존재는 왕실에 적지않은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종이 중악단의 격을 올리고 건물도 새로 지은 것도 새 왕조의 도읍으로 공공연히 일컬어지는 계룡산의 땅기운을 억누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지요.‘정감록’의 예언이나 왕실의 중악단 중건이 모두 계룡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고도의 정치행위였던 셈입니다. dcsuh@seoul.co.kr
  • 동료 추모 산행중 4명 참변

    29일 휴일을 맞아 북한산과 수락산에 오르던 등산객들이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발생한 낙뢰로 참변을 당했다. 이날 낮 산 정상에서 하산을 하기 위해 쉬고 있던 등산객들은 낙뢰에 감전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낙뢰는 오전 11시50분쯤 경기 의정부시 수락산 등산로와 5분 뒤인 오전 11시55분쯤 경기 고양시 북한산 용혈봉 정상에 잇따라 발생했다. 북한산에선 30∼40명의 등산객들이 하산을 준비하기 위해 정상에 모여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낙뢰로 숨진 안영채(57)씨 등 사망자 4명은 ‘산비둘기´라는 등산 동호회 소속으로 매년 7월29일 히말라야 등반 도중 숨진 동료 회원 2명을 기리기 위한 추모 산행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산비둘기는 회원 80여명으로 이날 저녁 2001년 K2 등반 중 사망한 박형도씨와 2002년 푸모리 등반 중 숨진 김지연씨 등 2명의 추모제를 지낼 예정이었다. ●피해 왜 커졌나 소방당국은 낙뢰가 바위 틈 빗물을 타고 흐르면서 쇠 종류의 소지품을 갖고 있던 등산객들이 주로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등산객들은 등산로에 설치된 철제 로프를 붙잡고 가다가 낙뢰에 감전돼 떨어지면서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김봉태(46)씨는 “하산하려고 용혈봉 1∼2m 아래 지점에 있었는데 ‘지∼잉’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넘어진 뒤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한 부상자는 “쇠밧줄을 잡고 용혈봉을 올라가다 ‘찌릿’하는 순간 추락해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119 구조대원은 “사고 현장에 출동해 보니 일부 등산객이 발과 다리에 물집이 잡힌 채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사망 원인은 ‘심실빈맥’으로 추정된다. 몇만 볼트(V)의 전기를 맞아 심장이 10여분간 멈춰 있어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낙뢰의 온도는 2만∼3만도나 된다. 전기량은 1회에 전압 10억볼트, 전류는 5만 암페어(A) 규모로 100W의 전구 7000개를 8시간 동안 켤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용혈봉 주변 암벽지대 낙뢰 고위험 낙뢰 사고가 발생한 용혈봉 주변 암벽지대는 종종 가벼운 낙뢰가 발생하는 위험 지역으로 밝혀졌다. 원종민 코오롱등산학교 차장(전 대한산악연맹 등산정교수)은 “용혈봉 인근 보현봉과 백운대 등에서 밤기도를 드리던 무속인 등이 종종 낙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용혈봉은 돌출된 곳인데다 등산객들이 지닌 장비에 쇠붙이가 많아 낙뢰 사고의 위험도 크다.”고 진단했다. 오상도 강국진 이경주 서재희기자 sdoh@seoul.co.kr
  • [서울광장] 네거티브 덫에 걸린 대선/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네거티브 덫에 걸린 대선/구본영 논설위원

    관객보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먼저 달아오른 것인가. 연말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여야 대선주자들이 뒤엉켜 거침없는 ‘말 펀치’로 상대를 코너로 몰아세우려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떡 줄 유권자들은 조용한데 김칫국만 마시기엔 불안해서일까. 승리를 확신하는 캠프는 아직 없는 듯 점집들마다 정치인들로 문전성시란다. 오죽하면 미 뉴욕타임스가 대선을 앞둔 한국 무속신앙의 부활이라고까지 크게 보도했겠는가. 대선판은 이미 자력 우승보다는 상대의 실족에 편승하려는 구도로 짜여진 인상이다.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간 경선은 후보 검증문제로 고소·고발전으로 번졌다. 박 후보 측이 이 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자료를 들춰내 “진짜 소유주가 누구냐.”고 닦달하면 이 후보 측에선 박 후보 관련 파일을 슬쩍 흔들어 보이는 식이다. 대운하니 열차 페리니 하는 정책 토론도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박 캠프 인사가 이 후보 가족 주민등록초본까지 입수했다고 하니 본선서 손잡을 한가족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범여권 주자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포지티브보다 네거티브 캠페인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나라당에서 보따리를 싸 범여권으로 간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2차 민심대장정을 들여다보자. 얼굴에 탄가루를 묻히는 식의 이벤트와 야당 주자들에 대한 비난만 부각되고 있지 않은가. 지난 주말 대구에서 “열차 페리는 남북이 영구히 통일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하는 낡은 방식”이라고 박근혜 후보의 공약을 비판했다. 포항에선 “내륙에 운하 파면 포항에 신항만 만들려 하겠느냐.”며 이명박 후보를 겨냥했다. 그러나 정작 범여권과 야권의 다른 후보들에 비해 무엇이 낫다는 건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친노 세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를 아울러 범여권 대표주자를 노리는 이해찬 전 총리의 행보는 또 어떤가. 한나라당 이·박 두 후보를 흠집많은 플라이급이라고 규정하면서 “한방이면 그냥 간다.”고 큰소리다. 그러나 자신이 헤비급 주자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인지 또 다른 친노주자로부터 ”검증된 건 골프실력뿐”(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커뮤니케이션 효과이론 중에 ‘프레임(frame) 이론’이란 게 있다. 카메라가 비춰 주는 TV 화면과 신문이 제시하는 헤드라인의 틀 안에서만 문제가 인식되고 논의가 이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정치주체의 입장에서 이 이론을 맹신하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연일 크게 보도되지만, 자신의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는 역설이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최근 수년간 대선서 민주당이 공화당에 연전연패한 과정을 그 실증적 사례로 들었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였다. 민주당(당나귀)의 연이은 패인은 공화당(코끼리)이 마련한 프레임 위에서 그들이 쓰는 언어(이슈)로만 싸웠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렇다 할 비전도 없이 상대만 헐뜯는 후보들에게 유권자인들 감동하겠는가. 각 후보진영이 상대를 거꾸러뜨리려는 네거티브 공세를 접고 국민을 감동시키는 비전과 정책을 내놓아야 할 이유다.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뭔가 보여주겠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제 후보들이 온국민이 목말라하는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뭔가를 보여줄 때일 듯싶다. 한국정치가 코미디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사라지는 우리말 식물이름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사라지는 우리말 식물이름

    어떤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을 부르거나 구분할 때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에도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서 서로를 구분한다. 식물의 이름은 사람의 경우처럼 같은 종(種)에 속하는 개체마다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종이 달라질 때만 다른 이름을 붙이므로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름과 식물이름에는 다른 면이 또 있다. 사람이름에는 동명이인이 있지만 식물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식물은 없다. 이름이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므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런 인식번호가 없는 식물은 이름이 같을 경우에 서로를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식물의 이름인 학명은 매우 까다로운 규칙에 의해서 붙여진다. 학자들이 합의를 통해 만든 이 규칙에서 학명의 표기는 라틴어를 쓰도록 하고 있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언어인 라틴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 변화에 의한 혼란을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라틴어 학명은 우리가 쓰는 언어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말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데는 학명처럼 까다로운 규칙이 정해진 바도 없다. 일반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우리말 이름이지만 학술적으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런 규칙을 정하는 데 관심을 가진 학자가 없었다. 이러다 보니 우리말로 식물의 이름을 부를 때에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난다. 학명의 경우에는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해 두 식물이 같은 것으로 판명되어 하나로 합쳐지더라도 둘 중 하나의 라틴어 학명을 바른 이름으로 쓰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말 이름은 두 식물이 하나로 합쳐진 경우에 혼란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칼잎용담과 큰용담이 같은 종으로 밝혀졌을 때, 학명으로는 먼저 발표된 학명 하나를 선택하여 사용하면 되므로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말 이름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스럽다. 학명처럼 먼저 발표된 학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선취권의 원칙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친숙하게 불러온 이름을 선취권 때문에 버려야 할 때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등 여러 종류의 참나무속(屬) 식물이 있지만 정작 참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는 게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괭이눈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가지괭이눈, 산괭이눈, 애기괭이눈, 선괭이눈 등 여러 종류의 괭이눈속 식물이 있지만 괭이눈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다. 괭이눈이라고 부르던 식물이 있었지만, 그때의 학명을 가진 식물이 한반도에 분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괭이눈이라는 우리말 이름은 아예 없어지게 된 것이다. 고깔제비꽃 괭이눈 구슬붕이 귀룽나무 금낭화 깽깽이풀 꽃다지 꽃마리 나비나물 멀구슬나무 물봉선 바위솔 방울꽃 범꼬리 별꽃 병아리꽃나무 병아리풀 산새콩 솔나리 송이풀 수정난풀 애기괭이밥 얼레지 용머리 은방울꽃 제비고깔 족도리풀 종덩굴 쥐손이풀 타래난초 토끼고사리 패랭이꽃 풍선난초 하늘지기 함박꽃나무 함박이 향기풀 히어리…. 이들 가운데는 식물 자신의 습성이나 모습에서 유래한 이름이 있고, 동물과 연관된 이름도 있으며, 사물의 이름과 관련된 것도 있다. 이름이 붙은 유래나 이름이 뜻하는 의미를 새겨보면 우리말 이름은 더 정감이 간다. 이처럼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우리말 식물이름들이 오랫동안 보전되려면 우리말 이름을 붙이는 절차와 방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식물연구소
  • ‘마포나루 굿’ 15일 재현행사

    마포구는 14일 서울의 대표적인 지역 문화 행사인 ‘제17회 마포나루 굿 재현 행사’를 15일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에서 연다고 밝혔다. 마포나루 굿은 조선시대부터 서울 수상교통의 관문역할을 하던 마포에서 포구를 드나드는 선박들의 무사항해와 주민의 평안을 빌기 위해 벌인 무속행사다. 단오가 지나면 한강의 용신이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단오 전에 열었다고 전해진다.6·25 이후 명맥이 끊어졌다가 한국민속예술원구원 무속위원회 마포지부가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발굴해 1991년 첫 재현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호기희(66)씨를 당주(굿을 담당하는 무당)로, 마포지역 무속인 6명이 참가한다. 당주 악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33호인 최형근씨가 맡는다. 오전 10시에는 굿청의 주당(뒷간을 지키는 귀신)을 물리치는 주당물림, 주위의 부정을 쫓고 신령을 모시는 의식을 한다. 본행사는 물가에서 물의 신령인 용신을 위해 하는 배굿, 신단에 지역수호신 등의 상을 두고 굿거리를 하는 육지굿(도당굿)으로 나눠 펼쳐진다. 이선재 마포문화원장은 “무속행사로서 독특한 특징이 있는 마포나루 굿은 수백년 동안 이어진 서울의 값진 문화유산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1983년 10월 아웅산테러사건이 발생하기 1년여 전, 그러니까 1982년 봄 어느날이다. 한 전직 장관(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부인이 지인 소개로 용하다는 무당을 서울에서 만났다. 부인의 남편은 다름아닌 외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있었다. 무당은 부인에게 “염려말라. 가만히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면서 말미에 “요즘 들어 국상(國喪)이 자주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원혼을 풀어야 한다.”는 말을 뱉었다. 며칠 후 무당의 말대로 전직 장관 부인 등을 포함, 몇몇 지인들이 서울시내 모처에 모여 고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원혼을 달래는 굿을 조용히 치렀다.(이때 지난해 작고한 사진작가 김수남씨가 무당옷을 빌려 입고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참석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무당은 전직 장관 부인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장관 지명에서 자신의 남편은 탈락되고 대신 이범석씨가 신임 외무장관이 됐다는 것이었다. 목소리에는 약간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무당은 “변명 같지만 전화위복이 될 테니 두고 보라.”고 위로했다. 해가 바뀌어 1983년 9월. 무당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생일날(음력 8월18일)에 주위 친한 사람들을 일부 초청, 점을 봤다. 그런데 이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무당은 “버마(미얀마) 가면 안 되는데, 버마 가면 정말 안 되는데!”라고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뱉어냈다. 한달 뒤인 10월7일 밤, 무당은 대통령이 죽는 꿈을 꾸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건 개꿈이야, 개꿈!”하면서 남쪽을 향해 침을 퉤퉤 내뱉었다. 공교롭게도 이튿날 아침 아웅산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위기일발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범석 외무장관을 포함,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수행원 17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운명을 ‘재천’이라고 할 때 몇 가지 흥미로운 상황이 떠올려진다. 첫째, 당초 전직 장관 부인의 뜻대로 남편이 외무장관에 발탁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무당의 말대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둘째, 무당이 ‘버마’를 운운한 점, 또 ‘대통령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 미얀마가 있는 남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어쨌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운 좋게도 살아 돌아왔다. 운명의 조화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사건을 앞두고 신(神)의 전주곡 같은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삶과 죽음이 피범벅이 된 끔찍한 사건일수록 그 뒷얘기는 더욱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살아온 60년 이 시대의 큰무당,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金錦花·77)는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뿌린다. 작두 타며 신을 만나는 그야말로 이승과 저승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뭔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17세 때에 처음 신과 만났으니 올해가 꼭 60년째가 된다. 한때는 혹세무민이라는 이유로 핍박과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한국인’이 됐다. 그가 세계 여러 나라에 갈 때마다 단연 ‘인기캡’으로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국내에서 서해안풍어제(무형문화재82-2호) 굿판을 벌일 때도 많은 외국팬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그는 2년 전 강화도 북쪽 해안가에 3000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무속체험장인 ‘금화당’ 간판(글씨는 ‘도올’이 썼다.)을 내걸었다. 서해안풍어제 굿판을 벌이기에도 좋고 고향인 황해도 연백땅을 바라보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이문동의 서해안풍어제연구소와 금화당을 오가며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신과 가까이에서 ‘경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주 이문동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소박한 한복차림에 활짝 웃으면서 반긴다. 평범하고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금화당’ 얘기를 먼저 꺼냈더니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워싱턴·LA 공연을 비롯, 유럽 각지의 해외공연을 수십차례 다니면서 무속 체험장 같은 공간을 꼭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여러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줘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국으로도 소문이 퍼져 최근에는 세계 연극평론가 70여명, 외국 신문사 기자, 천주교 수녀들이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무속박물관이 내 꿈 아울러 여력이 되면 무속박물관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200여년된 탱화 등 우리 무속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귀중한 사료들을 다수 소장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31년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의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자동생을 본다는 뜻에서 처음에는 ‘넘새’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이 다섯에 남동생이 태어나자 이름을 ‘금화’라 했다. 그의 신기는 어릴 적부터 신통방통했다. 열살 무렵에는 아이들과 놀면서 시퍼런 낫을 맨발로 타고 올라가 춤을 췄다. 또 어느 집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고, 임신한 사람을 보면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맞혔다. 열일곱살되던 정월 대보름날 밤이었다. 시름시름 무병을 앓던 그가 달맞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울을 건너려 하자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에 쏟아져내렸다.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이때부터 ‘신의 딸’이 됐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신 어머니가 돼 금화의 허주굿(온갖 잡신을 몰아주는 굿)을 해주었다. 금화는 이어 내림굿을 하면서 작두를 탔다. 열아홉살되던, 즉 6·25직전 어느날었다. 금화는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뚝뚝 떨어지고 달구지가 피묻은 옷가지를 싣고 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물론 신의 계시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무당을 반동분자로 취급했던 터였다. 나라에 큰 난리가 날 것을 안 금화는 숨어다녔으나 자주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전쟁 초기에는 북한군인들이 찾아와 피란간 사람들의 명단을 대라며 윽박지르더군요. 반동으로 몰리자 마을 원두막에 앉아 혼자 인공기를 만들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28수복 직후에는 남한 군인들이 와서 빨갱이 노릇한 사람의 명단을 대라고 하더군요.‘너는 무당이니 다 알지 않느냐.’고 하면서 목에 총을 들이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지요.” ●올해 일어날 일은 비밀 결국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리 중에 인천으로 피란오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질 때에는 굿을 할 수가 없어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석, 우수상·공로상·개인상·단체상 등을 싹쓸이하면서 당당한 민속예술인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장의 초청공연이 계기가 됐다. 이때 작두 타는 모습 등을 비롯, 한국의 토속 샤머니즘을 선보여 많은 관중을 불러모았고 이후 매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해외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올해 큰 사건은 없느냐고 하자 “그건 천기누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너무 빠르다. 순리대로 가야 하며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 금화당에서 무녀인생 60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큰 굿판을 벌일 예정이니 그때 구경 오라고 당부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황해도 연백 출생. ▲46년 외할머니에게 허침굿(허주굿), 내림굿, 솟을굿을 받음. 방수덕·권만신에게 대덕굿, 철물이굿, 배연신굿, 대동굿 등 전수. ▲82년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 문화사절단으로 방미. ▲84년 미국 하와이주 인간학연구위원회 및 하와이대재단 초청공연,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배연신굿·대동굿 기능보유자 지정. ▲95년 김금화대동굿(연강홀)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모데미풀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모데미풀

    일정한 영역 안에서만 자라는 식물을 고유(固有)식물 또는 특산(特産)식물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만 살면 한국특산이 되는 것인데, 그게 종(種) 수준이면 한국특산종, 속(屬) 수준이면 한국특산속이라 한다. 종들이 모여서 속을 이루므로 한국특산속은 한국특산종에 비해 학술적으로 의미가 더욱 크다. 이러한 한국특산속은, 학자에 따라서 견해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개느삼속, 금강인가목속, 금강초롱꽃속, 모데미풀속, 미선나무속, 제주고사리삼속 등 6가지로 일컬어진다. 금강산 일대에서만 자라는 금강인가목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한에서 볼 수 있다. 한국특산종은 400여 종류로 알려져 있고, 한국특산과(科)는 없다. 모데미풀은 한국특산속인 모데미풀속을 이루는 유일한 종이다. 일본인 학자에 의해 지리산 부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남원시 운봉면의 모데미마을에서 발견되어 모데미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모데미마을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 운봉마을 근처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모데미의 어원은 어떤 마을의 이름이 아니라 ‘무넘이’나 ‘무덤’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라산부터 금강산까지 분포하여 한반도 중부와 남부의 꽤 넓은 범위에서 자라고 있지만 아무데서나 자라지는 않는다. 높은 산의 습윤한 곳에서만 자라는데 덕유산, 오대산, 광덕산, 태백산, 점봉산 등지에서 발견된다. 뿌리가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여러해살이풀로서 4월 초순부터 눈 속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해 5월 초순에 절정기를 맞는다. 꽃잎처럼 보이는 크고 하얀 꽃받침이 꽃의 바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안쪽에는 노란 꿀샘으로 변한 꽃잎과 수술, 그리고 암술이 자리잡고 있다. 꽃이 매우 예쁘므로 원예적인 가치가 높은 데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토종식물이므로 그 가치는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다. 소백산에서는 해발 1300m 이상의 계곡 주변과 능선의 활엽수림 밑에서 큰 무리를 지어 자란다. 소백산에 가장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새로운 종으로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히 소백산의 꽃이라 할 만하고, 소백산국립공원을 대표할 만한 꽃으로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에도 충분하므로 소백산의 깃대종 가운데 하나로 삼을 만하다. 소백산에 그렇게 지천으로 피어 있는 모데미풀을 귀중한 한국특산속 식물로서 알아보는 이가 많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맘때쯤 수학여행으로 소백산을 찾는 학생들이 많은데, 교사나 산행안내자가 이 특산속 식물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장면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모데미풀은 소백산 등 몇몇 산에서는 흐드러지게 많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한반도 일부 지역에만 국지적으로 분포하는 희귀식물이다. 지구상에서 보전가치가 높음은 물론이다. 특산종 모데미풀은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멸종하는 것이므로 우리에게 보전책임이 있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Seoul In] 등산로 산불방지 계도활동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봄철 산불 예방을 위해 주요 등산로 입구에서 산불방지 캠페인을 진행한다. 망우묘지공원, 사가정공원, 봉수대공원 입구 등 주요 등산로 입구에서 5월15일까지 주말마다 비상근무하며 산림내 취사, 화기 취급, 어린이 불장난, 무속 기도행위 등에 대한 계도 활동을 한다. 위반사항이 적발되면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의거 10만∼3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공원녹지과 490-3395∼9.
  • [Local]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5월 개관

    전국 첫 방짜유기박물관이 대구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 입구에 들어선다. 29일 대구시에 따르면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1000여평 규모의 방짜유기박물관을 건립,5월23일 개관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전시관과 수장고, 체험관, 영상관, 야외전시장, 문화사랑방, 기증실 등 시설이 들어선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대22의 비율로 섞어 만든 놋쇠를 두들겨 제작한 전통 그릇과 악기다. 전시관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방짜유기 기능보유자인 이봉주(80)선생이 평생 제작하거나 수집한 방짜 유기 275종 1480점이 전시된다 특히 박물관 입구에는 이씨가 20여 년 전 제작한 무게 98㎏, 지름 160㎝의 세계 최대 징이 전시돼 관람객들의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 징은 중국 징보다 지름이 10㎝ 더 커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한편 대구시는 오는 2015년까지 방짜유기박물관 주변에 무속, 고서적, 생활사, 역사, 농기구 등 5개 전문박물관을 포함한 박물관 타운을 조성할 예정이다.
  • “소잡는 황도붕기풍어제 열려요”

    충남 최대 풍어제인 태안 황도붕기풍어제가 오는 19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첫날은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피고사와 집집마다 돌며 풍어와 마을안녕 등을 기원하는 세경굿이 열린다. 돼지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뱀신과 상극이라는 이유로 쓰지 않는다. 이 기간에는 주민들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굿이 끝나면 어민들은 한해 동안 배를 지켜줄 선신의 내림을 받기위해 제주를 선두로 제물과 5색 뱃기를 들고 당집으로 가 밤새 굿판을 벌인다. 둘째날에는 바다에 떠도는 넋을 달래는 강변용신굿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르던 붕기풍어타령으로 막을 내린다. 옛날 먼바다로 참조기잡이를 많이 나갔던 130가구 주민 400명의 황도(안면도 옆)에서는 매년 정월 초이틀 성대하게 풍어제를 열고 있다. 1991년 충남도 무형문화재 12호로 지정된 황도붕기풍어제의 제주는 여성이 맡게되며 한달 전부터 매일 목욕재계를 하면서 부부간 잠자리도 피한다. 마을 이장인 박현철(45)씨는 “굿판은 유명 무속인인 김금화씨가 30년간 맡아오고 있다.”며 “풍어제가 전국에 알려져 해마다 관광객 1000명 정도가 찾고 있다.”고 말했다.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스페인 아트페어서 신명나는 풍어굿

    스페인 아트페어서 신명나는 풍어굿

    |마드리드 윤창수특파원|“끔찍한 살생이 많았던 이 곳이 좋은 터가 되고, 아르코도 잘 되게 하소서.” 10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시 남쪽 마타데로에서 주요무형문화재 82호 무속인 김금화(76)씨가 굿판을 벌였다.15∼19일 열리는 스페인 국제아트페어 아르코(ARCO) 개막에 앞서 김씨는 신명나는 춤사위로 ‘한국’을 알렸다. 올해 아르코 행사는 마드리드 곳곳에서 30개국 260여개 화랑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다. 4만 8300㎡에 달하는 마타데로는 1980년대까지 도살장으로 사용됐던 곳. 마드리드 시의 도시계획으로 2011년까지 흉물스러운 천덕꾸러기에서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다.14∼18일 김기철·양아치 등 한국작가와 스페인 미술대 학생이 함께 워크숍을 갖는 인터메디아애 민박 프로젝트도 여기서 열린다. 김씨는 이날 3일간에 걸쳐 이뤄지는 서해안 풍어제를 2시간으로 압축해 보여줬다. 고대유적처럼 벽만 남아 있는 도살장 터에 꽹과리와 피리 소리가 울려퍼지자 300여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서도 이들은 흥겨운 장단에 발장단을 맞추며 김씨의 몸짓을 따라하며 굿의식을 즐겼다. 김씨는 “살생이 많았던 곳은 환생이 많았다는 좋은 뜻도 있다. 이 터에 새 생명이 솟아나길 빈다.”며 물동이 가장자리를 빙빙 돌면서 춤을 췄다. 이날 굿을 지켜보다 “죽은 돼지를 반으로 가르는 의식은 차마 볼 수 없다.”며 자리를 뜬 한 관람객은 “화려한 색깔이 인상적”이라며 “새로운 장소를 위한 좋은 의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주빈국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백남준 특별전(5월20일까지). 마드리드 최대 번화가인 그란비아 한복판에 자리잡은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올해 아르코 행사에는 유럽을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마드리드 시내 곳곳에는 삼성, 현대, 기아 등 한국기업들이 만든 환영 플래카드가 주요 건물 곳곳에 내걸렸다. 한편 삼성미술관 리움은 아르코조직위원회 측으로부터 올해의 컬렉터상 수상기관으로 선정돼 홍라영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이 상을 받는다. geo@seoul.co.kr
  • 15일 아르코 개막… 한국이 주빈국

    ●아르코 스페인어로 ‘현대미술전’이란 뜻. 고야, 후안 미로 등 대가의 전통을 자랑하는 스페인이 미술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1982년부터 매년 2월에 열고 있다. 아르코는 스위스의 바젤, 독일의 쾰른, 미국의 시카고, 프랑스의 파리 아트페어와 함께 세계 5대 아트페어로 꼽힌다. 피카소와 가우디의 나라 스페인에 미술의 한류(韓流)가 분다. 유럽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마드리드의 후안 카를로스1세 전시회장에서 오는 15∼19일 열리는 아르코 아트페어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한다. 아르코는 매년 주빈국을 선정하여 전시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스페인 전역에서 전시, 공연, 영화, 문학 등의 문화행사를 펼치게 한다. 동양에서는 한국이 처음으로 선정됐으며, 내년에는 브라질이 주빈국이다. 매년 약 20만명의 관람객이 찾으며 세계 259개의 화랑이 참여해 각국의 미술품을 전시, 판매한다. 미술품 거래 규모는 수백억원대 수준이다. 한국아르코조직위원회는 문화관광부의 지원하에 35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을 알리는 문화행사를 준비했다. 우선 아트페어에는 14개 한국화랑이 한국작가 90여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참여화랑은 갤러리 현대, 갤러리 인, 국제 갤러리, 원앤제이, 아라리오, 가나아트, 시몬, 학고재, 박영덕 화랑, 박여숙 화랑, 선화랑, 카이스, 노화랑, 아트파크 등이다. 참여작가들은 30대가 37명으로 가장 많으며 40대가 25명,20대와 50대가 각각 10명이다. 오는 13일에는 ‘환상적이고 하이퍼 리얼한 백남준의 한국 비전’이란 이름으로 백남준 특별전이 개막돼 5월20일까지 열린다. 백남준의 작품 가운데 한국적 정서나 동양사상을 표현하는 ‘백팔번뇌’ ‘고인돌’ ‘TV를 위한 선’ 등 86점이 전시된다. 또한 마이클 주·김종구 등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한 한국작가 11명의 작품을 모은 ‘뿌리를 찾아서:한국이야기 펼치다’와 함께 박준범·플라잉씨티 등 대안공간 작가들이 만드는 ‘도시성을 둘러싼 문제들’이 마드리드 곳곳에서 전시된다. 전시회 외에도 무속인 김금화의 전통굿, 안은미 댄스컴퍼니의 현대무용,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콘서트와 김기덕·홍상수 감독의 한국영화 특별전도 열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백남준 1주기 추모행사 다양

    세계적인 미술거장 백남준이 타계한 지 29일로 1년이 됐다.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 추모굿을 벌이기 위해 2012년까지는 살아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였다. 백남준은 그의 예술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를 1958년 처음 만났다. 이듬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그의 첫 퍼포먼스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경의’를 펼치면서 피아노를 전복시켰다. 그의 1주기 추모를 위해 여러 행사가 열린다.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이 설치돼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오전 11시 추모식이 거행된다. 1977년 백남준과 결혼한 평생의 예술동반자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1시간10분짜리로 직접 편집한 ‘마이 라이프 위드 남준 백’이 상영된다. 이 영상에는 그의 대표적 해프닝과 34년만에 찾은 86년의 한국 여행,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병원에서 부인 및 간호사와 함께 성적 자극을 통한 마사지 치료과정 등이 담겨 있다. 오는 3월23일∼5월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백남준 1주기 추모전’을 통해 그의 비디오 아트 발전과정을 돌아볼 수 있다. 29일 오후 2시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는 인간문화재 무속인 김금화씨가 백남준 추모굿을 벌인다.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 추모굿을 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샤롯 무어맨 추모굿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열었다. 또 갤러리 쌈지에서는 3월18일까지 ‘백남준과 플럭서스 친구들’이란 전시회를 통해 백남준이 초기멤버로 활동했던 1960년대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를 조명한다.(02)736-0088. 그의 대표작 가운데 3대 위성중계 작품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랩 어라운드 더 월드’ 등 주요 비디오 작품이 상영된다. 어린이 50여명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주제로 그린 그림과, 한복예술인 이지영 작가의 설치작품 ‘백남준 꽃상여 타고 다시 떠나다’도 전시된다. 서초구 잠원동 필립강갤러리에서는 2월28일까지 사진작가 이은주(60)씨가 찍은 백남준 사진을 전시하는 ‘아, 백남준’전이 열린다. 이씨는 예술가의 삶을 렌즈에 담아 온 작가로, 뉴욕 소호작업실에서의 백남준 모습도 처음 선보인다.(02)517-9092.윤창수기자 geo@seoul.co.kr▶관련기사 25면
  • ‘이매방 춤사위’ 5년만에 만난다

    ‘한국춤의 명인’ 우봉 이매방 선생의 팔순을 기념해 우봉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헌정하는 뜻깊은 무대가 마련된다.25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무선(舞仙)·님께 드리는 헌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한국춤 공연.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의 춤 인생과 열정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이다.특히 우봉 선생의 제자들의 모임인 ‘우봉 이매방 춤보존회’(회장 임이조)가 위암 선고를 받아 투병생활중 최근 건강을 회복한 스승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공을 들여 일군 공연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전남 목포 태생인 우봉은 7살 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해 72년간 전통춤에만 매달려 외길 인생을 살아온 명인. 고교 재학시절 이대조 선생에게 승무, 이창조 선생에게 검무를 각각 사사했고 초등학교 시절 5년간 중국에 살면서 중국의 전설적인 무용가 매난방에게서 칼춤과 등불춤을 익히기도 했다.당시 기생, 혹은 광대라는 사회적 천대와 멸시에도 굽히지 않고 꼿꼿하게 춤으로 일가를 이뤄 비단 춤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춤꾼이다. 그래서인지 고고하고 단아한 그의 정중동의 춤사위는 인간의 희열과 인욕(忍辱)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무대에서는 우봉 이매방 춤보존회 회장 임이조, 우봉 이매방 춤전수관장 최창덕, 전수교육조교 김명자·김정녀·김묘선·이수자 오미자·박소림·김덕숙·오은명·황순임·김효분을 비롯해 20여명이 2시간 동안 10개의 레퍼토리를 펼치게 된다.무형문화재 승무, 살풀이춤은 물론 장검무, 기원무, 무당춤, 입춤, 승천무, 대감놀이, 사풍정감(士風情感), 보렴승무, 삼북오북 등 우봉이 창작한 춤이 망라됐다. 승무는 장관을 이루는 북가락과 빼어난 발디딤새며 장삼놀음으로 해서 우리 민속춤의 정수로 꼽히는 레퍼토리. 그런가 하면 살풀이춤은 신비함과 비장미를 함께 갖춘 춤사위로 단아한 멋과 정한을 풀어내 ‘이매방 춤의 대명사’로 불린다.이밖에 우봉이 경기무속 장단에 맞춰 새롭게 안무한 기원무, 호남 기방예술의 정통을 이어 애잔하면서도 요염한 입춤, 진도지방 상여 소리와 씻김굿에 무녀 춤사위의 볼거리들을 담은 승천무, 선비의 내면세계를 춤사위로 표출시킨 남성적 기품의 사풍정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춤들이다. 중국 경극배우 매란방에게서 배운 검무의 칼사위와 우리 전통 검무를 혼합해 1950년대 안무한 장검무도 들어있다.이 가운데 우봉이 직접 무대에 올라 승무(18분)와 입춤(15분) 등 두 작품을 출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당초 10개의 작품을 모두 제자들이 출 예정이었으나 우봉이 직접 독무를 추겠다는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지난 2002년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선 뒤 암 선고를 받아 투병하다 5년만에 국내 무대에서 춤사위를 보여주는 셈이다.이매방 전통춤보존회측은 “우봉 선생이 건강을 우려한 제자들의 만류에도 자택 2층 연습실에서 틈틈이 연습을 하면서 무대의상도 꼼꼼히 챙기는 등 큰 열정을 쏟고 있어 제자들이 더욱 공연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고 귀띔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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