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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치레」로 끝난 미야자와 방한/한일 정상회담 무얼 남겼나

    ◎역조개선에 무성의… 왜 왔는지 모를 일/「정신대」 관련 “사과”만 거듭… 배상 무관심/“대북 수교 핵사찰 이후에” 답변한건 성과 노태우대통령이 16,17일 두차례에 걸쳐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와 가진 한일정상회담은 무역불균형및 산업과학기술협력이 양국간 해결해야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을 같이 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이다. 이는 지난해 90억달러에 이르는 대일무역수지적자에 대해 「어쩔수 없는 일」이라는 무성의한 입장을 견지해온 일본이 무역역조의 심각성과 한일선린우호협력관계에 미칠 영향등을 인식,기존의 시각을 교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주말 미야자와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일측과 정상회담 실무회의를 열어 무역수지적자 해소를 위한 5개항을 제시했으나 일측은 국내 사정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해 왔다.또 미야자와총리도 지난 14일 방한에 앞서 『무역역조는 산업 고도화를 향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기술이전문제는 어디까지나 기업과 기업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이므로 기업간 해결해야 된다』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같은 일측의 소극적 자세에 우리 정부는 서울과 도쿄의 외교창구를 풀 가동,일측과 협상및 설득작업에 나섰다.노대통령도 16일 단독정상회담에서 무역의 균형적 확대와 기술협력의 증진을 통해 호혜적 경제협력관계 구축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기술이전등에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기술이전등에 대한 일측의 입장은 완강했다.양국 실무자들이 16일 하오10시부터 2차회담 직전인 17일 상오9시30분까지 12시간에 가까운 마라톤회의를 가진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측이 이번 정상회담의 무역수지적자부분에 대한 기본입장은 적자 해결을 위한 원론적인 합의보다는 개선을 위한 구체적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 방침은 양국 정상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고 양국 무역산업기술협력위원회등을 통해 집중적인 토의를 벌여 오는 6월말까지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작성,보고토록 함으로써 어느정도 충족된 셈이다. 실천계획의 대상으로는 ▲한일산업과학기술재단의 설립과 그시행사업에 대한 정부지원문제 ▲한국상품에 대한 일본시장의 확대 ▲환경분야협력 ▲무역불균형개선및 산업간 교류협력 추진 ▲양국 경제인간 민간 포럼(협의체)구성 ▲투자환경개선,기술이전환경개선 등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제시한 5개항 가운데 3개항의 내용이 부분적만으로 수용된 것인만큼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또 관세인하등 시장접근에 관한 문제는 우루과이라운드(UR)교섭과정에서 일본측이 한국측의 요청사항을 고려키로 했고 한국 건설업계의 일본공공사업 참여는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합의,당초 우리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일제하 한국인 여성종군위안부등 과거사에 대해 일정부가 그 진상을 적극적으로 규명,응분의 조치 즉,보상을 성실히 해줄 것을 요청,미야자와 총리로부터 명백한 반성과 사과및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노대통령이 17일 확대정상회담 75분 가운데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22분여동안에 걸쳐 강력한 톤으로 얘기했으며 미야자와 총리는 8번에걸쳐 사과·사죄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죄부분은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일정상회담의 대차대조표를 볼때 무역수지적자완화및 종군위안부부분을 감안하면 「흑자」를 기록했다고 외교문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앞으로의 문제는 실천계획 수립및 종군위안부 진상규명및 보상에 대한 일측의 성의있는 태도에 있다 하겠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가능성에 대해 노대통령은 우려의 뜻을 분명히 했으며 미야자와총리는 이에대해 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참여가 군사대국화를 겨냥하지 않고 있음을 다짐했다. 한일 정상은 한반도문제와 관련,남북한당사자 해결원칙을 확인하고 북한의 핵사찰문제에 공동대응하며 일·북수교는 핵사찰이전에 하지 않겠다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이는 한반도정세와 해결에 관한한 양국간 이견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일측이 이달말 제6차 북경 일·북수교협상에서 남북정상회담개최를 북측에 촉구하겠다는 것은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어떤 형태로든 협조·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 양국이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를 구축하느냐 여부는 일본측의 인식의 전환이 앞으로 성실한 행동으로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 총선 겨냥한 「강야 담금질」/민주의 국감거부 선언 뒤안

    ◎수서 증인채택등 무성의 이유 들어/“국감 별무성과” 책임 여에 떠넘기기 민주당이 증인채택문제 등을 빌미로 30일의 모든 국정감사에 불참한데 이어 오는 5일까지로 예정된 나머지 국정감사 일정마저도 경우에 따라 전면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런대로 순항해 오던 13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파국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다. 민자당은 그러나 민주당의 이같은 태도를 「정략적인 공세」로 규정,강력하게 맞대응 하겠다는 태세여서 여야의 입장차이는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국정감사를 전면거부한 이유로 ▲정태수전한보그룹회장등 증인채택요구에 대한 여당의 조직적인 거부 ▲정부의 고압적인 수감태도와 무성의한 자료제출등을 꼽고 있다.이같은 상황에서는 국정감사가 유명무실할 수 밖에 없고 국감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이제까지와 같은 수준의 국정감사라면 앞으로 남은 상임위는 예결위활동이나 대정부질문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상·하오에 걸친 여야총무회담의 결과를 보고 나머지 국감을 전면거부할 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어서 남은 국감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민주당이 가장 신경을 쓰는 대상은 여론이다.국정감사종료를 불과 며칠 안남겨둔 시점에서 국정감사거부를 강행하는 것이 과연 국민정서에 부합되느냐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실기」를 했다는 당내의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차라리 초기단계에서 정전한보회장의 증인출석문제등을 놓고 여야간에 공방이 벌어졌을때 몇칠간이라도 국정감사를 거부했더라면 국민적 지지도 얻을 수 있었고 그에따른 반사이익도 컸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이제는 자칫 정치적 이해득실에 얽매여 행정부에 대한 감시·감독이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를 포기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함께 국정감사를 거부했음에도 불구 여당의 태도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임위나 예결위등 나머지 정기국회일정에 참여한다는 것도 명분상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아예 정기국회일정을 완전히 거부하겠다는 배수진을 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민주당의 이번 행동은 수서사건을 6공비리로 부각시켜 차기총선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여기에는 통합야당인 민주당의 출범과 함께 「강야」로서의 면모를 과시해야한다는 부담감도 작용했음은 물론이다.또 신민·민주 양당사이에 내재됐던 정서적 이질감을 불식하고 하루빨리 통합당의 대오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적」이 필요했던 것으로도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초반부터 강경공세를 취하지 못한 것은 수서문제가 이미 지난번 임시국회에서 걸러졌던 「식상한 메뉴」인데다 유엔가입일정에 따라 국감에 대한 상대적 관심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던 것도 사실이다.이점에서 민주당의 국감거부는 야권시각에서 별다른 결실없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진 국감의 책임을 여권에 떠넘기겠다는 수순인 것으로도 여겨지고 있다.또 이번 정기국회에서 최대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법및 정치자금법협상에서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사전포석으로도 분석되고 있다. 현재 외유중인 김대중공동대표와 방문국 수뇌부들과의 면담이 잇따라 불발된 것은 최소한 정부측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불편한 심기가 국감 막바지 적극공세에 적지않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설득력있게 부각되고 있다.
  • 미,대북한 관계개선 당분간 중단/미 정부당국자

    ◎“북서 대일수교 선행·핵사찰 무성의”/북,걸프전 뒤 군비강화 박차/일지 보도 【도쿄 연합】 미국은 북한과 관계개선을 당분간 단념했다고 일본 마이니치(매일)신문이 한반도정책 입안에 관여하고 있는 미 정부당국자의 말을 인용,26일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그 이유로서 ▲북한이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선행시킨다는 방침으로 외교정책을 변경한 데다 ▲미국도 역시 북한과 외교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을 엄격히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당국자에 의하면 미국은 88년 북경에서 참사관급 접촉을 시작한 이후 지난 10일에 16번째의 접촉을 했지만 북한측에는 관계개선에 대한 의욕이 나타나지 않은 채 오히려 후퇴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측은 핵사찰 문제에 대해 성의있는 대응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불쾌한 감정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최근에 미국은 북한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을 보다 엄격히 내세우고 있다. 미국정부는 또 북한이 걸프전쟁 후 군비강화에 보다 힘을 기울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특히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보장조치협정에 서명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로 미루어 미국은 「북한이 틀림없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북한­일,내일부터 3차 수교협상/일,「은혜 납치」 거론키로

    【도쿄 연합】 제3차 일·북한국교정상화회담이 오는 20,21일 이틀간 북경에서 열린다. 평양과 도쿄의 본회담을 거쳐 제3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이번 회담은 지금까지 양측이 주장해온 기본입장을 중심으로 실질협의를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측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핵사찰 수락요구를 보다 구체화,핵무기 개발과 연결되는 핵연료 재처리시설의 존재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북한측의 대응을 촉구할 예정이다. 일본은 과거 두 차례 있었던 본회담을 쌍방의 기본주장을 펴는 마당으로 그 위치를 설정했고 특히 핵문제에 대해서는 당시만 해도 미국의 위성사진 이외에는 재처리시설의 존재를 밝혀주는 확증이 없어 「핵사찰 수락」이라는 일반적인 표현에 그쳤었다. 그러나 미·일차관급회의를 통해 미국이 구체적인 자료제시와 함께 핵재처리시설의 폐기 필요성을 강조한 데다 지난번 평양의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서 핵사찰 수락 촉구와 안전조치보장협정 체결문제가 거론된 점을 중시,일본정부는 이번 국경회담에서 북한의적절한 대응을 요구할 것이라고 외무성의 한 당국자가 말했다. 일본측은 또 유엔가입 문제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은혜」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할 방침이다. 이들 문제와 관련,일본측 수석대표인 나카히라(중평립) 대사는 17일 도쿄(동경)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안보와 평화를 확보하고 유엔의 보편성 원칙을 존중,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토록 북한측을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보상문제와 재일북한인의 처우개선 문제 등을 중점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 심야까지 신경전… “각본이다” 서로비난/「개혁입법」협상결렬 언저리

    ◎야의 “대안 미흡·양보않고 협상만 지연” 민자/여측 무성의 부각… 시국연관 강공채비/신민 임시국회 폐회를 이틀 앞둔 7일 여야는 13대 국회 최대현안인 개혁입법 처리문제를 놓고 심야까지 다양한 채널을 동원,숨가쁜 막바지 절충을 벌였으나 끝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민자·신민 양측은 사실상 「협상결렬」을 선언함으로써 이제 3개 개혁입법 중 국가보안법과 경찰법이 여당 단독으로 강행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저녁 10시10분부터 55분 동안 국회 귀빈식당에서 진행된 여야 2차정책위의장회담 말미 신민당측 율사로 배석했던 박상천 의원이 지른 고성이 문밖까지 퍼지면서 회담의 사실상 결렬이 기정사실화. 이날 회담 직전 열린 고위당정회의에서 『신민당측이 양보않는 한 민자당측이 더 이상 양보키 어렵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돌아온 나웅배 민자당 정책위 의장이 『신민당측이 양보는 않고 회담만 지연시킨다면 더 이상 협상키 어렵다』고 통보하자 평소 다혈질인 박 의원이 감정을 억제치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 이어 양측 회담대표들은 얼굴을 붉힌 채 서로 인사도 없이 헤어졌으며 신민당의 조세형 정책위 의장과 박상천 의원은 회담장에 남아 『민자당측이 2차회담을 시작하자마자 더 이상 양보키 어렵다며 사실상 회담결렬을 통보했다』고 흥분. ○…나 민자 정책위 의장은 2차회담이 끝난 뒤 김종호 총무실에 들러 더 이상의 협상이 무의미하다며 결렬을 통보. 나 의장은 이어 기자들에게 『양당간에 대안 자체의 골격에서부터 차이가 현격하기 때문에 협상을 통한 합의점 찾기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신민당측의 입장변화가 없는 한 협상을 더 할 수가 없다』고 못박아 협상중단을 선언. 나 의장은 『신민당측이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종전 입장에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경찰법도 대한변협 추천 2인을 포함한 경찰위원회에 총경 이상의 인사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이나 이는 경찰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초강경자세. 나 의장은 또 『신민당측이 여야 협상진행중에 국가보안법 수정안을 법사위에 상정한 것을 두고 강력히 항의하더라』고 전하고 『그러나 협상을 지켜보면서 상임위에 법안을 상정,논의하는 것이 상례』라며 일축. 그는 협상시한이 8일 낮 12시인 점을 감안,접촉을 계속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 『원체 양쪽 의견에 거리가 있어 접근가능성이 없다』고 잘라말해 여당단독 강행처리 방침을 시사. 그는 특히 신민당측이 제시한 경찰법과 국가보안법 수정안 문안을 기자들에게 들춰보이며 『3년 동안 입만 열면 외쳐댔던 개혁입법에 대한 준비가 고작 이 정도냐』 『여당을 무시해도 유분수지』라며 흥분. ○…신민당은 이날 밤의 여야정책위의장회담이 결렬되자 전날의 심야당정회의에서의 개혁입법 수정안 발표에 이은 여권의 협상제스처가 「명분축적을 위한 연극」에 불과했다고 성토하며 시국상황과 연관지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 김대중 총재는 8일 상오 기자회견을 통해 협상결렬에 따른 여권의 책임과 무성의를 부각시키며 신민당의 향후 행보에 대해 언급할 예정인데 지금까지보다는 보다 강도높고 구체적인 대여 투쟁방안이 제시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 신민당은 이날 상오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자당이 개혁입법을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하려 할 경우 실력저지를 하겠다는 기본원칙을 세워논 상태. 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시국수습에 대한 정부당국의 미온적인 조치를 규탄하며 이미 몇 차례 언급했던 「제한적 장외투쟁」과 연관지은 진일보한 대여 압박수단을 거론할 것이라는 전망. 이날 회담이 결렬된 뒤 조세형 정책위 의장은 ▲민자당측이 협상진행도중 8일 낮 12시를 협상시한으로 못박은 점 ▲여권의 수정안을 협상대표인 오유방 의원이 법사위에 제출해 이날 강행처리하려 했던 점 등을 들어 여권의 협상태도는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른 정치연극이었다고 비난. 조 의장은 『민자당측이 법사위에서의 강행처리 기도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말로 일관한 것은 기만성의 실체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흥분. 조 의장은 『저쪽에서 8일 상오 10시 국가보안법을 의장직권으로 본회의에 넘겨 처리하겠다고 통보해왔다』면서 『개혁입법 가운데 보안법과 경찰법은 강행처리하고 안기부법은 다음 기회로 넘길 듯한 감을 받았다』고 설명. 박상천 대변인은 성명에서 『민자당이 사기극을 꾸미고 있던 시각에 우리당은 지난 2년간 지켜오던 입장에서 후퇴하며 협상안을 작성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한없는 분노의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허탈한 심경을 토로. 그러나 개혁입법협상의 타결이 어렵다는 점은 양측이 제시한 수정·절충안의 현격한 차이에서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며 신민당으로서는 이점을 간파해 이날 협상의 결렬에 앞서 김 총재의 기자회견을 서둘러 계획했다는 분석. 신민당은 이날 상오에는 여권의 개혁입법처리에 대한 급작스런 태도변화의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이미 준비해 둔 절충안을 공식·비공식 모임을 통해 손질해 제시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헛손질」로 종결. 특히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실무팀이 마련한 절충안에 대해 홍영기 유인학 박상수 의원 등이 『지금같은 상황에서 여당과 타협해 득이 될 것이 있느냐』 『이렇게 양보할 필요가있느냐』고 불만을 강력히 토로해 의회가 2시간 이상 계속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김종호 민자,김영배 신민 양당 총무는 양당 정책위 의장간의 개혁입법 1차협상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자 이날 하오 7시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재절충을 시도했으나 역시 이견을 노출. 이날 하오 법사위에서의 국가보안법 수정안 단독상정으로 불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이날 회담에서 김 신민 총무는 우선 임시국회 회기를 5∼7일 연장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개혁입법협상 시한을 8일 자정까지로 하자고 제의. 김 민자 총무는 이에 『회기연장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못박고 협상시한도 8일 낮 12시까지 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제시. 김 민자 총무는 그러나 『합의처리 가능성에 대한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8일 상오 10시30분 김 신민 총무와 다시 만나 개혁입법 처리문제를 논의키로 했다』고 밝혀 협상시한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김 민자 총무는 또 『의장회담에서 진전이 없으면 총무회담으로 「공」이 넘어오는 것 아니냐』고 말해 경찰법과국가보안법의 단독처리 가능성을 시사. 김 총무는 민자당의 국가보안법 수정안과 관련,『우리 입장에서 파격적이고 과감한 대안을 제시했는데 오늘 야당이 보여준 태도에 매우 실망했다』고 밝히고 『상오 10시에 정책위의장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것을 2시→3시로 연기하더니 급기야 40분이나 늦은 하오 3시40분 회담이 시작됐다』면서 『이 동안 신민당은 의원총회니,소위구성이니 하다가 나중에는 회기연장 얘기도 나오고…』라며 불쾌한 감정을 서슴없이 표현. 한편 김 총무는 이에 앞서 서울시내 모처에서 정부 고위관계자와 만나 개혁입법 처리문제를 숙의한 뒤 이날 하오 6시20분쯤 국회로 돌아와 김동영 정무1장관,김중권 법사위원장,서정화 수석부총무 등 총무단과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김 법사위원장에게 이날 여야간 격돌이 예상됐던 법사위의 산회를 지시.
  • 민자의 표결강행 방침 안팎

    ◎“개혁입법 매듭 풀기”… 여,정공법 선택/대야협상 3년… “더 양보할 것 없다”/「광역」 앞두고 입법주도권 겨냥도 민자당 지도부가 22일 국가보안법·안기부법·경찰법 등 3개 개혁입법을 표결로라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야당측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임시국회 초반부터 난기류가 감돌고 있다. 민자당은 당초 개혁입법 중 경찰법은 강행처리하겠지만 국가보안법·안기부법은 협상이 안 될 경우 그 처리를 7월 임시국회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 때문에 이번 임시국회가 「원만한」 분위기 속에 운영되리란 성급한 예상도 있었으나 이날 민자당 주요 당직자들이 보안법·안기부법까지 표결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앞으로 파란과 격돌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자당내에서 개혁입법을 「강행」으로라도 처리해야 한다고 앞장선 사람은 김윤환 사무총장. 항상 대야 유화자세를 보여왔던 김 총장은 그 동안 보안법·안기부법에 대한 절충이 안 될 경우 7월로 넘겨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해왔었다. 그러나 김 총장은 여권내 보수세력들로부터 『야당에 끌려다닌다』는 비난을 받은 데다 신민당측이 보안법 협상문제 등에서 대외용 유화 제스처만 취할 뿐 말한 것과는 달리 협상에 무성의함을 계속 보이자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지난주말 당직자회의에서 언성을 높여가며 4월 임시국회에서 개혁입법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지난 19일에는 손주환 청와대정무수석과 만나 청와대측과 개혁입법처리에 대한 공감대까지 형성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냈다. 대야 개혁입법협상을 전담하고 있는 나웅배 정책위 의장도 실제 절충을 해보니 야당측과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강행처리로 돌아선 경우다. 나 의장은 『지난 17일과 19일 두 차례 조세형 신민당 정책위 의장과 비공식 접촉을 갖고 협상을 벌인 결과 야당측이 말로는 신축적 자세를 외치면서도 내용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면서 『야당측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표결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특히 민자당내에서 개혁입법의 강행처리를 주장하는 인사들은 코앞에 닥친 광역선거전을 앞두고 당이 입법처리의 주도권을 보여줘야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희태 대변인이 『개악하자는 것이라면 국민적 비난이 있겠지만 개선·개량하는 것이므로 국민도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를 피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변인은 『일방처리 부담보다 그것을 처리치 못함으로써 생기는 부담이 더 크다고 본다』면서 『국민들에게 한 표라도 더 얻는 행동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이번 임시국회에서 개혁입법처리에 실패한다면 3년 이상 끌어온 협상이 7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타결된다는 보장도 없으며 결국 악법 개폐문제가 14대 국회로 이월,노태우 대통령의 치적확립에 저해요인이 된다는 우려까지 민자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7월 임시국회에서 보안법·안기부법이 처리된다 해도 그것은 강행통과의 형식이 될 수밖에 없어 오히려 14대 총선까지 그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는 실정이다. 민자당내에서 이같은 강경론이 우세해지고 있는 배경은 정부측의 완고한 자세에도 기인한다. 민자당에서 개혁입법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인사들은 ▲반국가단체 개념을 폐지하는 대신 그에 준하는 새 개념을 도입하고 ▲불고지죄나 금품수수·잠입·탈출·회합·통신죄도 최소한도로 규제하는 방향으로 대야 절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현재의 민자당 안은 여소야대 국회에 이어 3당통합 후 기존의 야당 주장을 일부 수용해 만든 것』이라면서 『더 이상의 양보는 국가보안법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민자당내의 타협론자들도 『일단 민자당 안을 이번에 처리한 뒤 주변정세 변화에 따라 추후 재개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돌고 있다. 반면 무리한 개혁입법처리에 반대하는 견해도 아직은 만만치 않다. 보안법·안기부법은 대북 문제와 관련된 것이므로 여야 정치권의 합의 아래 처리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강행통과시킬 경우 여론이 나빠질 우려가 없지 않아 광역선거전에서 부담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김 총장이나 나 의장의 강행처리 언급이 야당측으로부터 최대한양보를 얻어내고 여권도 개혁입법처리 의지가 있다는 것을 과시키 위한 다목적용 「엄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민당측이 이날 민자당 당직자들의 개혁입법 일방처리 불사 발언에 강경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대화는 계속하겠다고 나선 것은 좀더 양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민자당측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신민당이 다소 양보하더라도 보안법·안기부법의 여야 합의처리는 기대키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민자당측의 강행처리 여부가 관건이며 김영삼 대표와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 등 당 최고수뇌부의 의중에 따라 회기말쯤 최종확정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김 대표는 『끝까지 협상에 최선을 다하라』는 원론적 지시만을 하고 있으나 여권 전체의 분위기를 감안,강행처리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지난 2월 임시국회 막바지에 경찰법 강행처리에 반대했던 것처럼 「모양」을 중시하고 있어 민자당내에서 개혁입법 표결통과를 둘러싼 계파간 내분이 빚어질 소지도 있다.
  • “걸프전 패자는 일본”… 몸살앓는 열도/도쿄=강수웅(특파원코너)

    ◎“서류상 동맹일뿐” 전후처리서 소외돼 분통/“90억불 내고도 뒷전에” 무력감 팽배/“정치 노쇠로 새기류 못 짚어” 비판도/“한낱 경제대국… 세계의 지도국은 멀었다” 자조 걸프전에서 섬멸당한 것은 후세인의 이라크군이 아니라 일본이며 일본정치였다는 자성론이 일본을 흔들고 있다. 「유사」에의 대비는 정치의 본령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 개인,또는 여당과 야당의 탓만도 아니었다. 일본의 정치시스템 그 자체가 노후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아사히(조일) 신문계열의 주간지 아에라(AERA·3월12일자)는 지적했다. 90억달러(1조2천억엔)라는 막대한 전비를 부담한 일본이 무엇 때문에 이처럼 스스로 몸살을 앓고 있는가. 미 정부당국자는 최근 세계주요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걸프전에서 인적공헌을 하지 못한 일본을 가리켜 페이퍼 얼라이(서류상의 동맹)라고 야유했다. 국방관계를 담당하는 이 당국자는 걸프전을 통해 일본은 중동에 자원협력대의 파견에 실패한 것을 비롯,의료팀 파견,난민수송,유엔평화유지군에의 참여 등에서도 연달아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최근 일본국민을 대상으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인당 1만엔씩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60% 이상의 국민이 일본이 공헌부족이라고 비판했다. 니혼 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최근의 사설에서 『수조철학의 결여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자세는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에 돈만 뿌리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정착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지원이상으로 「참가」가 더욱 중요했던 이번 걸프전의 결과 일본은 동서냉전후의 「신시계질서」에 참여할 기회를 잃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 통상대표부(USTR)의 차석대표를 지낸 스티븐 샌더스지는 지난 28일 강연을 통해 『진주만공격 50주년과 걸프전이 중첩되어 앞으로 2년간의 미·일관계는 더욱 위험해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것은 걸프전을 피해나간 일본에의 비난은 종전과 동시에 한꺼번에 위험수위에 도달할 것이라는 분석이기도 하다. 아에라는 걸프전이 사실상 끝난 지난 28일의 몇몇 정치인의 표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마다 다쿠지로(빈전탁이랑)의원(자민·궁택파)=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TV뉴스를 보니까 정전전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의 외무장관이 전후처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 뿐이라면 별로 신경쓸 것이 없었다. 미국은 독일과도 협의할 것이라는 말을 듣자 참을 수가 없었다. 외무정무차관 때부터 알고 지내던 외무성의 사토 요시야스(좌등가공) 관방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째서 영국의 외무장관이 워싱턴에 있는 거요』 『일부러 찾아 갔겠지요』 『일본외상도 쫓아가면 좋지 않겠소』 『안됩니다. 국회가 있으니까』…. 핑계가 국회였지 이 시점에서 미국은 일본에 용무가 없었다고 이 잡지는 꼬집었다. ▲가노 다카야(수야악야·안배파사무총장 삼총박의원비서)=동료 몇명과 「걸프전쟁을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표면에 나서서 움직이는 것을 삼가야하는 국회의원비서의 입장에서는 거친 행동이었다. 그는 자민당국회의원 전원,약 4백개의 사무소에 앙케트 용지를 돌렸다. 다국적군에의 90억달러 지원,자위수기의 파견을 어떻게생각하는가를 물었다. 『그런 것은 나로서는 말할 수 없소』…. 국회의원들의 말은 한결 같았으며 앙케트를 돌린 가노씨는 눈을 내려뜰수 밖에 없었다. 2월28일자 영국의데일리 메일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미 정부고관은 전쟁의 종결을 위해 후세인대통령이 미전함 미주리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일본으로서는 결코 기분좋은 보도일 수가 없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 패배,항복문서에 조인했던 것이 바로 그 미주리함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일본정부대표 시게미쓰 마모루(중광규)외상은 주중공사시절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탄투척 사건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으로 함상에 올라갔었다. 이 기사에서의 미 정부고관의 발언도 일본을 야유한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외무성의 수뇌도 지난해 8월 걸프사태발생 이후 일본정부의 대응이 불충분했다는 것은 솔직히 인정했다. 이 수뇌는 인적공헌책 강누데 의료팀의 파견마저 할 수 없었떤 것에 깊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외무성이 정보수집체계에 대해서도 『집에서 아침 저녁 TV를 보았다』며 빈약성을 지적했다. 나아가 장래 일본이 세계의 질서형성에 적극적으로 공헌하기 위해서는 헌법해석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번 걸프전을 통한 구체적 반성자료로서는 ▲일본인이 인질로 잡혀 있었을때 입다물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인의 구출,귀국때 자위수기도 쓸 수 없었던 것 등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선발대마저 파견했으면서도 의료팀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 등을 들었다. 어쨌든 이번 걸프전을 통해 일본은 세계의 대국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세계의 지도국이 될 수 없으며 경제부국일 뿐이다라는 허전함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 전철 폭력소동과 시민의식/황진선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21일 밤 서울 구로역과 시청역 등에서 벌어진 전철 사고는 요즘 우리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서민들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집단행동에 들어간 전철 차장들의 집단이기주의,사고가 일어나기까지 강건너 불보듯 구경만 했던 철도청당국의 안일하고도 무성의한 대처,툭하면 폭력을 앞세우는 성숙하지 못한 시민정신 등 모든 것이 요즘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기관사나 차장들은 그동안 승객들의 행태에 비추어 1시간 이상이나 연발착하면 어떤 소동이 빚어질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안전사고의 책임소재를 따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준법운행」을 내세워 한 정류장에서 3∼6분씩 지체하며 승객들의 화를 돋우었다. 그들은 사태가 가라앉은 뒤에도 「잘못됐다」거나 「승객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이 없었다. 철도당국 또한 전철승무원들이 이미 20일 밤부터 부분태업에 들어가 승객들의 항의가 잇따랐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1일 밤부랴부랴 구로역 사고현장에 나온 철도청의 고위관계자는 『언제 태업움직임을 알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아침』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승무원들을 설득해 사태를 미리 가라앉힐 생각은 전혀 없었던 듯 보였다. 이번 사태에는 철도당국 뿐만 아니라 정부전체의 책임도 큰 것처럼 보인다.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경인전철을 오는 97년에 가서야 복선화하겠다고 미루고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때까지 이번과 같은 폭력사태가 수십차례 더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당국자들은 국가사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다시한번 검토해 볼 일이다.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힘없는 서민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최근 전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폭력소동이 잦은 것 또한 우리 사회의 큰 병폐라 할 수 있다. 우리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아직까지 그렇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인지,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지고 거칠어지고 난폭해지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 한­소 수교·경협 동시타결 모색/첫 공식대좌… 양국의 입장과 전망

    ◎외교일정·경제협력 규모 가늠/따로 가는 박철언씨 역할에 관심 2일부터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소양국의 정부대표단 회담은 그동안 우회적으로 모색해오던 양국수교및 협력방안등을 정식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양국 정부간 공식대좌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우리측의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과 마슬류코프 소연방각료회의 제1부의장(경제담당 제1부총리)을 각각 수석대표로 하는 이번 회담은 지난 6월4일 미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의 후속조치에 대한 논의를 위한 모임의 성격을 띤 것으로 양국 수교문제를 포함,경협문제 등에 대한 양국의 의중을 서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향후 양국 관계발전의 속도와 방향등을 가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앞으로 양측의 경제협력의 「수준」과 양국 관계개선의 시기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마슬류코프 수석대표를 제외한 소련측의 대표단 멤버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회담결과를 속단키는 어렵지만 우리측 대표단의 구성을 보면 이번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입장과 소련의 기대수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측 대표단 12명중 경제관리와 외무관계자의 비율이 꼭같다는 데서 읽을 수 있듯 우리측은 경제협력과 수교협상의 동시추진이라는 이원적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소련측 역시 이에 대응하는 자신들의 복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수교및 경협의 완전타결은 보지 못하더라도 원칙적인 합의의 윤곽은 이끌어 나간다는 방침이다. 교섭단은 2일부터 4일까지의 공식일정중 첫날과 마지막날의 전체회의 중간에 두차례의 개별회담을 가지며 개별회담은 수교협상과 경제협상으로 나눠 진행키로 돼 있다. 우리측은 경협협상은 수교협상과 별도로 해나가되 경협의 실행은 수교가 이뤄진 뒤 실제로 이뤄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경협과 수교문제를 연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소련측은 북한과의 관계등을 고려,경협증진 부분에 비중을 둘 것으로 보여 우리측과 어느 정도 시각차를 좁힐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제협력 협상에서는 역시 대소 차관제공규모등이 최대관심사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여러차례의 관계부처회의등을 거쳐 소련측의 예상요구 수준과 과다한 경협에 대한 국내의 비판여론등을 감안,나름대로 차관의 규모를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금차관규모를 최소화하면서 ▲양국기업간 합작투자 ▲공동프로젝트 추진 ▲시베리아등 공동개발사업 ▲소비재물품지원 ▲시장경제원리에 따른 경제개발 노하우의 지원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은 경협회담에서 무역투자보장·2중과세방지·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등 4개의 협정체결문제를 의제로 상정,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또 수교협상과 관련,▲유엔총회등에서의 한소 외무장관회담 ▲수교의정서 조인 ▲노태우·고르바초프대통령의 상호교환방문 등 우리의 바람을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함께 정부대표단과는 별도로 표도로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의 초청으로 오는 4일 방소하는 박철언 전정무장관이 어느정도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도 이번 회담의 측면지원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특히 박 전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과 회담이 이뤄질 경우 친화보수성향으로 대한 관계개선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소련외무성의 부정적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최태환기자〉
  • 주한미군 연내 6천명 철수/1만5천명 감축 일환

    ◎4월1일까지 계획 확정/미지,펜터건 소식통 인용 보도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미국 정부는 올해 한국으로부터 5천∼6천명의 미군을 철수시키는 계획을 입안중이라고 4일 워싱턴 타임스지가 펜터건과 서울의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타임스지는 이같은 철수방안이 주한미군 4만3천2백명 가운데 1만5천명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려는 구상의 일환이라고 전했다. 미국 관리와 한국 소식통에 따르면 이 방안은 수천명의 주한미지상군을 미국으로 철수시키는 동시에 그중 일부는 오키나와로부터 이동된 해병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며 최근 증강된 주한미공군은 현재의 전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타임스지는 보도했다. 이 방안은 미 행정부가 예산 삭감과 의회요구에 부응하여 아시아 주둔 미군의 재구성 계획을 오는 4월1일까지 마련하고 있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방안에 대해 국방부의 한 고위 분석가는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현재 한국이 북한의 어떠한 공격도 격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했다고 타임스지는 보도했다. 한편 미 국무성의 한 대변인은 『현재로선 주한미군을 감축하기 위한 미정부의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그러나 과거에 주한미군의 병력 수준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변화되었음을 상기시켰다.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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