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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떠난 비 수비크만 오염심각(움직이는 세계)

    ◎“상용항 전환 차질”…미·북 마찰조짐/주둔중 오수 75% 정화않고 방류/중금속 무단폐기 “죽은 바다” 전락 필리핀주둔 미해군이 수비크만을 심하게 오염시킨 채 철수함으로써 양국관계에 새로운 분쟁의 불씨를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수비크만 오염이 이곳을 상업항으로 전환하려는 필리핀정부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홍콩의 선데이 모닝 포스트는 최근 미해군 보고서와 미국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인용,미해군은 수비크만에 「심각한 오염」과 「위험한 폐기물」을 남기고 떠났다고 말했다. 버클리대학의 동아시아연구센터에 근무하는 환경문제전문가인 조지 이마누엘박사도 수비크만의 오염을 「환경재앙」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4일 나머지 미군병력이 모두 떠남으로써 필리핀정부에 완전 반환된 수비크기지는 그간 미군주둔 연기여부를 둘러싸고 필리핀국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었다.미국은 동아시아의 주요전략거점인 이곳에 계속 머무를 의사를 강력히 내보였었다. 걸프전기간동안 미군의 군수품 공급기지의 하나로미7함대의 최대병참기지였던 수비크기지는 필리핀경제에 커다란 보탬을 주었던게 사실이다.지난 88년 양국정부에 의해 타결된 기지사용에 관한 협정에 따라 미국은 이 기지사용료로 연간 4억8천만달러를 지불해왔다.뿐만 아니라 이곳에 주둔하던 1만여명의 미군이 쏟아붓는 달러도 엄청났다.이같은 경제적인 이점 때문에 필리핀정부는 임차기간연장을 위해 계약경신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이 법안이 지난해 9월 필리핀 상원에서 부결됨으로써 미군이 철수하기에 이르렀다.이로써 필리핀에서는 외국군대가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역사를 갖고있는 필리핀국민들 사이엔 진정한 독립은 미군철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88년 기지사용에 관한 협상이 타결됐을 때 대다수 필리핀국민들은 정부가 주권을 돈에 팔아넘겼다고 아우성이었다.레이테섬에 있는 맥아더동상이 폭파되는 수난을 겪은 것도 이때의 일이다.이같은 여론에 밀려 미군이 철수했지만 오염문제라는 새로운 불씨가 나타난 것이다. 「군사기지 폐쇄,필리핀에서의미국의 채무」란 제목으로 최근에 발표된 미회계감사원 보고서는 수비크만 오염실태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보고서는 ▲기지에서 생기는 오물과 오수중 75%가 처리되지 않은채 수비크만으로 방류되고 있고 ▲선박수리시설에서 나오는 납 등의 중금속이 그대로 바다에 버려지거나 근처의 땅에 묻히고 있으며 ▲오염물질 처리과정에도 미국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미태평양함대의 한 장교는 『수비크만의 모든 폐기물은 미국방부의 폐기물처리 전문가들에 의해 제거되거나 미환경보호청 기준에 따른 처리를 위해 미국으로 옮겨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선데이 모닝 포스트는 수비크만의 오염문제가 이곳을 상업항으로 개발하려는 필리핀정부의 계획에 어려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정부는 지난해 수비크만을 상업항으로 전환하기 위해 투자유치단을 대만과 싱가포르등에 파견한 바 있다.한국의 기업들도 이곳의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기지 반환식이 이루어진 날 대만투자관광단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상업항 개발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 철수뒤에도 필리핀내 공항 및 항구 통과권을 갖기를 원하는 미국의 희망도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이에 대해 선데이 모닝 포스트는 수비크만 오염문제가 필요시 미군의 수비크만에 대한 군사적 접근뿐 아니라 양국간의 외교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 김희라/이윤택/이상우/기국서/중견연출가들 의욕찬 무대

    ◎창작극·번안극 등 독특한 언어로 작품화/김광수씨,자신작품 「집」 무대에 올릴 계획 한동안 잠잠했던 중견연출가들이 겨울을 맞아 기지개를 펴고 있다.국내 연극계의 차세대 주역들로 주목을 받고있는 30∼40대 초반의 연출가들이 잇따라 새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중견연출가들의 겨울공연행진 첫 테이프는 지난11일 성공리에 일본초청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연출가 김아라씨가 창단한 극단 무천의 「숨은 물」이 끊는다.오는 12월4일부터 한달동안 성좌소극장에서 공연될 「숨은 물」은 극작가 정복근씨의 최근작으로 극단 무천의 창단공연이기도 하다.삼국시대·고려말·대한제국말기를 배경으로 피의자와 심문자·변절자라는 삼각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역사의 반복성을 그리고 있다. 아리랑을 변주한 피아노반주와 북장단의 조화,수벽치기에서 따온 배우들의 몸놀림,극도로 절제된 연기와 단순화시킨 무대장치는 무대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뒤이어 연우무대에서 활동했던 연출가 이상우씨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분필 동그라미」를 직접 번안·연출한 「쿠니,나라」가 12월17일부터 23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쿠니,나라」는 이씨가 89년 「늙은 도둑이야기」이후 3년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특히 최근들어 접하기 힘들었던 정치풍자극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이 연극은 1979년 10월26일부터 시작돼 1981년 1월초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한국이 아직도 일제의 식민통치에 놓여있는 가상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제목의 「쿠니」는 일본어로 「나라」라는 뜻인데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문화전반에 깊숙이 배어있는 일본의 잔재를 새삼 일깨우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또 무엇보다도 재미와 의미 내지는 감동을 함께 주는 「좋은 대극장 연극」을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어 기대를 모았다. 중견연출가들의 무대는 내년 국립극장 무대로 이어진다.지난해 국립극장 창작극공모에서 가작으로 선정된 극작가겸 연출가 김광림씨의 「홍동지는 살아있다」가 연출가 이윤택씨에 의해 내년 3월말 국립극장 대극장무대에 올려지는 것.꼭두극을 도입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문명·진보개념에 대해 진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노래극 「아빠 얼굴이 예쁘네요」 「달라진 저승」(이상 87년)과 「그 사람 이순례」(90년)를 연출해 주목을 끌었던 김광림씨가 내년초 「그사람 이순례」의 대본을 일부 수정해 연우무대에 다시 올릴 계획이다.또 자신의 새작품인 「집」도 내년중으로 공연할 계획을 세우는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에앞서 「미아리 텍사스」 「햄릿」 「방관」시리즈를 통해 이단적인 독설과 현실풍자작업을 해온 연출가 기국서씨도 창무예술원 개관기념공연으로 12월17∼19일까지 창작극 「작란」을 무대에 올린다.「꿈」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기국서씨가 시도하고 있는 「시적연극」,시언어의 극적탐색을 시도하는 새로운 형식의 창작극으로 관심을 끈다.한편 연출가 이병훈씨는 단테의 「신곡」과 우리의 바리데기신화를 접목시킨 새작품의 자료수집차 현재 그리스를 방문중이며 내년쯤 새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올초 이들 중견연출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려 했던 기획공연이 한 연극기획자에 의해추진돼다 무산되는 바람에 아쉬움을 남겼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의 새작품이 올겨울 연달아 마련돼 아쉬움이 반가움과 기대로 바뀌고 있다.
  • 대선맞춰 대남비방 공세강화(오늘의 북한)

    ◎언론통해 중립내각 공명의지 연일 성토/재야·학생 등에 공개서한… 혼란 부추겨/특정후보 낙선투쟁 등은 남북 화해기본합의서 성면위배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관련한 북한의 「선거투쟁」선동이 강화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최근들어 북한은 관변 언론매체들을 총동원,우리 정부의 공명선거 의지를 「기만」으로 모략하면서 반정부및 민자당후보 낙선을 겨냥한 선동투쟁을 강화함으로써 대선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가려는 저의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이 이른바 대선투쟁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4일 평양방송을 통해 그들이 한국내 지하당으로 날조하고 있는 한국민족민주전선(민민전)중앙위 명의의 『남조선 인민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9월30일자)을 인용·발표하면서 부터다. 『친미파쇼정권을 허물고 민주연합정권을 세울 것』을 강조한 민민전공개서한은 이를 위해 반민자당세력이 민주대연합,범민주 단일후보를 내세우고 이미 결성된 「전국연합」을 구심점으로 똘똘 뭉쳐 연대공동행동으로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민민전의 서한에서도 드러났듯이 북한은 우리의 이번 대선을 대권을 향한 여야의 각축으로 보지 않고 있다.이번 대선은 「파쇼와 민주세력간의 치열한 대결전이며 역사의 전진이냐 굴절이냐 하는 격변기의 정국향배를 좌우하는 하나의 분수령」이라는게 그들의 해석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선거나 총선시 통상 40여일 전에 대남전위기구인 조평통이나 민민전명의로 호소문·투쟁구호등을 발표,반정부투쟁을 적극 선동(87년 12월 13대 대선시에도 31개항의 투쟁구호 발표)해 왔었다.그러나 12월 대선을 앞둔 최근의 북한 움직임은 과거와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북한은 이번 대선에서 특정정당­민자당의 재집권 저지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북한이 민자당을 「미국의 조종을 받는 반민족,반통일의 군부 파쇼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데서도 북한의 그같은 의도는 명백하게 읽혀지고 있다.북한은 민자당이 이번 대선에서 재야세력을 탄압하고 있으며 부정협잡을 통해 독재정권을 연장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한마디로 『김영삼에게표를 주면 친미독재가 연장』되기 때문에 민자당이 승리하면 안된다는게 북한의 주장이다.그러기 위해 『너도 나도 기권말고 민자당후보 낙선투쟁에 동참』할 것을 북한은 선동하고 있다. 앞서의 민민전이 지난 8일 반민자당투쟁을 선동하면서 발표한 31개항의 대선투쟁구호 속에 총22개항이 민자당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일이다. 북한은 이와 더불어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탈당과 현승종총리가 이끄는 중립내각의 공명선거의지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고 있다.북한의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4일자 논설을 통해 노대통령의 민자당탈당과 중립선거관리내각구성을 싸잡아 『관권과 부정협잡으로 민자당의 재집권을 실현하려는 정치 기만극』이라고 주장했다.그러면서 『인민대중의 단합된 투쟁으로 군사파쇼세력의 재집권을 막고 민주연합정권을 수립하는 여기에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의 길이 있다』고 강변했다. 이 신문은 이어 한국정부가 최근 반공모략극을 조장,야권과 통일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조선의민주세력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위해 각계 각층의 의사를 대표하는 거국적인 중립선거관리내각의 구성과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연내 실시,폭압기구의 해체와 파쇼악법의 철폐투쟁을 완강하게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서도 중립선거관리내각과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내실시투쟁은 민자당 재집권의 발판을 허물어 버리기 위한 「보검」이라고 말했다.또 민자당의 관권부정선거에 대한 진상규명투쟁 역시 민자당의 재현을 막고 공명선거를 쟁취하기 위한 중요 요건임을 강조했다.즉 이 두가지 이슈를 반민자당투쟁의 수단으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선투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북한은 현금의 정권교체기를 우리 체제의 가장 취약한 시기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우리 사회가 온통 선거열풍에 휘말여 있는 틈을 타 일부 재야및 운동권 학생들을 충동,사회갈등을 조장하고 그들의 불만에 불을 댕겨 우리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겠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대선정국이 혼란으로 빠져들 경우 그들이 기대하는 친북한성향의 민주연합정권이 들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게 관계 당국의 분석이다.북한이 이번 대선을 격변기 정국의 향배를 좌우할 「분수령」으로 보는 것은 결코 그들이 우리의 장래를 걱정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친공정부가 들어설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가 이번 대선으로 판가름날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분수령 운운할 따름인 것이다. 남북한은 지난 9월 제8차 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 실천의 틀인 3개 부속합의서를 채택·발효시킨 바 있다.그 가운데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는 「상대방의 법질서와 당국의 시책에 대한 불간섭」과 「상대방에 대한 파괴·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선전 선동행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따라서 최근 북한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선투쟁은 이같은 기본합의서 정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일방적 파기에 의한 지난 5일의 화해공동위 1차회의 무산과 최근의 대선투쟁은 남북간의 약속이행이 얼마나 지켜지기 어려운가를 극명하게보여준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 선택의 기로에 선 평양(정경문화포럼)

    ◎남북기본합의서 성실한 이행 급선무/지식층불만·경제난 해소 절박한 시점 한동안 따뜻한 봄기운이 감돌던 한반도에 먹구름이 몰려 들고 있다.언제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휘몰아칠지 알수 없는 난기류에 빠져 있다. 91년12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됐고 지난9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기본합의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부속합의서까지 발효됐으나 그이후 남북관계가 갑자기 냉각,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로 예정됐던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비롯한 정치·군사·교류등 각분야의 공동위원회가 북측의 거부로 잇따라 무산됐는가 하면 쌍방군사당국의 직통전화개설도 실현되지 못했다.오는 12월21일 서울에서 열기로 예정된 제9차 남북고위급회담의 개최여부도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다. 북한의 러시아주재대사 손성필은 지난 14일 우리정부가 팀스피리트훈련재개방침을 철회하지 않는한 제9차회담을 거부할 것임을 시사했다. 남북관계가 어째서 이처럼 냉각되고 말았는가.한편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발을 서슴지 않는 북한의 이중적인 대남책략때문이다.김일성주석이 북녘땅에 공산정권을 수립한 이후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대남정책의 기본논리는 「하나의 조선」이다.이 논리는 남쪽에 친북단체를 조직,혁명역량을 축적한 다음 결정적인 시기에 이땅 전체를 적화통일해보겠다는 가당찮은 체제이념이며 북한으로서는 불변의 국가이념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적발된 「남조선노동당간첩사건」이다.남북기본합의서는 서로의 체제를 인정,상호 비방·중상을 않기로 되어 있으나 평양당국은 기본합의서 발효이후 대남 비방·중상을 오히려 강화해 왔으며 급기야는 대규모의 간첩망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이 사건으로 구속된 간첩들은 그들의 죄과를 순순히 자백했다. 그런데도 평양당국은 이 사건을 우리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떼를 쓰면서 남북관계가 냉각된 책임을 오히려 이쪽에 전가하고 있다.그야말로 「도둑이 매를 든」꼴이다. 올해 중단했던 팀스피리트훈련을 내년에 재개하기로 한 우리정부의 방침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며 그들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기위한 경고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북한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첫째는 권력승계의 문제이다. 북한 정무원 김영남외교부장의 최근 발언대로 그곳에서의 부자권력승계는 거의 끝난 상태이다.『정치·경제·외교·군사·문화등 모든 사업을 김정일이 한몸에 지니고 영도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카리스마에 있다.분단이후 47년간 북녘땅을 통치해온 김일성주석은 현대의 어떤 독재자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안정된 기반을 유지해 왔다.그러나 김정일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80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그를 후계자로 정한뒤 줄기차게 김정일우상화운동을 펼쳐 왔으나 그것이 성공했다는 징후는 찾아 볼수가 없다.아버지의 카리스마가 아들에게는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지금 평양의 집권층에는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테크너크랫 계층과 「개방은 체제자체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군부및 혁명1세대간 강·온파의 갈등이 내연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 김정일의 고민은 집권층내부의 갈등보다 이른바 「인텔리계층」(약 1백50만명으로 추정)의 동향에 있다.그래서 요즈음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인텔리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지난 9월20일 평양방송이 인텔리계층의 충성과 효성을 강조한데 이어 10월6일 중앙방송은 인텔리계층의 체제반대투쟁의 위험성을 우회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미국 컬럼비아대 제럴드 커티스 교수는 평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생기를 잃은 체념의 도시」라고 묘사했는데 이것은 북한인텔리계층의 동향에 그대로 대입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이들의 체념이 분노로 폭발한다면 북한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북한이 직면해있는 또하나의 어려움은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평양당국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일수교와 대미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으나 핵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그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핑계로 남북상호사찰을 기피하고 있으나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끼리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상호사찰실시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그런데도 이를 끝내 거부한다면 민족에 대한 배신이며 국제사회에서의 신의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소행이 아닐 수 없다. 평양의 집권층으로서는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겠지만 그래서는 체제를 지탱하기 어렵고 경제를 살릴 수도 없다. 평양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우리는 평양이 슬기로운 선택의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고뇌에 찬 선택이겠지만 언젠가는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기뻐하는 날이 올 것임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 교역은 증가… 투자는 제자리/경제교류는 어디쯤…

    ◎88년 북 명태 반입 시발로 4억불 거래/정치악용 겹쳐 합작사업은 논의단계 지난 88년 7월 정부의 남북물자교역 허용조치로 물꼬를 튼 남북경협은 최근들어 위축된 상태이긴 하지만 지난 10월까지의 규모가 4억9백44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교역 자체는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그러나 합작투자나 자원의 공동개발,제3국 공동진출은 북한경제의 폐쇄성등이 걸림돌이 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특히 최근들어 「남한조선노동당」사건등 악재의 돌출로 전반적인 남북분위기가 다시 냉각됨으로써 합작사업은 사실상 중단상태에 놓여 있다. 남북한의 교역은 정부의 남북한 물자교역 허용직후인 88년 12월 삼성물산이 북한의 명태를 처음으로 반입함으로써 시작됐다.그후 91년에는 남한의 천지무역상사와 북한의 금강산국제무역개발이 남한의 쌀과 북한의 시멘트·무연탄과의 첫 직교역을 성사시켜 「직교역 시대」를 열기도 했다.남북간 교역품목을 보면 지난 88년엔 냉동명태,도자기등 4개에 불과했으나 91년 들어서는 1백40개로 품목이 크게 늘어났다. 이런가운데 지난 7월 북한의 김달현 정무원부총리가 서울을 방문함으로써 남북의 물자교류는 물론 합작사업까지도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잇달아 터진 「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과 팀스피리트훈련 시비에 말려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따라 현재 경제인들의 방북과 대북사업자 지정이 전면 중단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급냉한 남북관계가 다시 정상화될 경우 남북간 물자교류는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한의 북한내 합작투자 시도는 89년 1월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정회장은 북한의 대성은행과 김강산공동개발의정서를 교환하고 시베리아 공동진출을 합의했으나 문익환목사의 방북사건 여파에 밀려 중단되고 말았다.올들어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평양을 방문,2백만평 규모의 남포공단 합작사업과 자원공동개발,북한과의 제3국 공동진출,텔레비전·냉장고합작공장설립과 남북직항로 개설문제등을 다시 논의했으나 역시 앞서의 사건으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는 상태다.현재 분위기대로라면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방북 역시 연내 성사가 불투명한 상태여서 실질적인 남북경협은 당분간 부진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대중립내각 민주당시각 변화/현 총리에 왜 항의단 파견했나

    ◎간첩단장비전시 등에 “공명퇴색” 판단/DJ­옐친요담 여의치 않은데도 원인 민주당이 최근 「중립의지의 훼손」을 문제삼아 현승종총리내각에 대해 항의단을 파견하는등 중립내각에 대해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13일 최고위원회를 열어 안기부의 간첩장비전시,민자당 김영삼총재의 옐친단독요담등이 내각중립성을 크게 헤치는 행위라고 결론짓고 김원기최고위원·이철총무·나병선의원등을 현총리에게 보내 이의 시정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와는 별도로 민주당은 국민당과 함께 『이같은 일련의 행위는 정부의 의도에 따라 준비된 것』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이날 국회외무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소집을 공동 요구,진상을 따지기로 했다. 그동안 현총리에 대해 공명의지를 높이 평가해오던 민주당이 이처럼 사사건건 중립내각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불리한 환경을 미리 차단시켜보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유세등 공식선거운동외에도 대선의 승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외적요인들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전략상의 「차질」을 최소화시켜보자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같은 입장변화는 이근희사건을 전후해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만 정부가 대선날짜를 12월18일로 잡은때부터 입장변화는 급템포를 보이기 시작했다.즉 민주당은 정부가 선거일을 금요일인 18일로 잡을 경우 3일연휴가 가능해 젊은 유권자의 투표율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고 이를 「정치적인 음모」라고 까지 공박하면서 급격한 입장변화를 나타냈다. 지금까지 선대위 상임위원회·최고위원회의때마다 김대표는 『사전선거운동의 핵심을 김권선거』라며 『다른 당에 비해 경미한 사안인데도 우리 당을 포함시켜 건수를 채우고 있다』고 공공연히 비판해왔다. 그런가운데 결정적으로 김대표의 심기가 상한 것은 이날 김영삼 민자당총재의 옐친단독요담계획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옐친대통령의 측근을 접촉하면서 민자당에 앞서 옐친과의 단독요담을 추진해왔으나 무산됐으며 이는 정부측의 「방해」때문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은 『선거공고일에외국의 원수를 초청해 특정정당의 후보와 조찬면담을 갖게하는 것은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시정되지 않을 경우 옐친대통령의 국회연설에 출석하지 않는등 강경대응키로 했다. 이날 현총리를 방문하고 돌아온 김원기최고위원은 『외국원수의 공식스케줄을 짜는데 정부가 모를 리가 없다』고 현총리를 추궁했으며 현총리는 이에 대해 『정부의 공명의지는 지금도 변함없고 이의 시정을 청와대에 건의해보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와함께 최근 무역회관에이어 서울역등지에서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간첩장비전시문제와 관련,『재판도 끝나지 않은 사건의 간첩장비를 전시하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현총리의 중립의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라면서 이에대한 중단도 함께 요구했다. 민주당은 특히 『이 문제가 김대표의 과거 「레드콤플렉스」이미지를 대중들에 연상케 함으로써 대선전략에 일대 타격을 가하려는 고도의 책략』이라고 규정하고 국방위원회를 소집,규탄과 함께 진의파악에 나설 채비이다. 민주당의 이같은일련의 강공선회는 미국의 클린턴후보가 당선되자 즉시 당의 정책기조를 「대화합의 정치」에서 「대화합과 변화의 정치」로 발빠르게 대응한 것처럼 대선을 앞두고 유화전략인 「뉴DJ플랜」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 독정부주도 「반극우」 집회/극우파 난동으로 무산/경찰과 난투극

    【베를린 AFP 연합 특약】 8일 30만여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베를린에서 열린 정부주도의 반극우파집회가 극우파들의 난동으로 무산됐다. 이날 행사는 헬무트 콜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폰 바이츠제커대통령이 연단에서 연설을 하려는 순간 극우파시민들이 연단에 돌과 계란을 던져 행사의 진행을 방해하면서 경찰과의 난투극으로 이어져 무산되고 말았다.
  • EC,대미 통상보복 자제”/협상재개 자체합의… 미도 긍정반응

    【런던·제네바 AP AFP 연합】 유럽공동체(EC)는 6일 미국의 보복관세 부과조치에 따른 대응 보복을 자제하고 즉각 대미협상을 재개키로 합의함으로써 미국과 EC간의 무역전쟁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이와 함께 가트(관세무역일반협정)도 양측간의 이번 사태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자체가 무산되는 파국을 막기 위해 오는 10일 UR협상의 최고 협상기구인 무역교섭위원회(TNC)를 긴급 소집,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기울이기로 하는등 무역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다각적인 국제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은 이날 금년도 EC 순번제 의장국인 영국의 존 메이저총리와 런던에서 긴급회담을 가진뒤 『EC가 미국의 보복관세 부과조치에 따른 대응을 자체키로 합의했다』고 전하면서 『우리는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EC 12개 회원국 통상장관들도 이날 영국 북부의 브로킷 홀시에서 열린 첫날 회의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보복관세 부과조치를 맞받아치는 방식의 대응은 당분간 거론하지 않기로 합의하고상호간의 무역전쟁을 막기위해 미국측도 자제해줄 것을 촉구했다. 【워싱턴 로이터 연합】 칼라 힐스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6일 미측의 대유럽공동체(EC) 보복관세 부과조치와 관련,양측이 다시 협상테이블로 돌아와 무역전쟁을 피할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스 대표는 이날 MBC­TV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이제 협상석에 다시 앉아 양식을 가지고 협의를 해야 하며 우리측은 그런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드워드 매디건 미농무장관은 미­EC 양측이 이른바 오일시드(유지곡물) 분쟁으로 촉발되고 있는 무역분규를 공정하게 해결하려면 아직 요원하다고 비관론을 피력했다.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자신에게 「무제한 협상전권」을 위임했으며 EC측과 협상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 남북대화 때이른 “한파”/북,팀훈련 트집 「공동위」 거부

    ◎북한,「간첩단」계기 「조정기」 노려/12월 고위급회담 개최도 불투명 지난해 12월 「남북합의서」 채택이후 합의서및 부속합의서 발효,분과위발족 등으로 순항해온 남북대화가 11개월여만에 북측의 남북공동위개최거부로 냉각국면으로 돌아서게 됐다. 이에따라 11월중 잇따라 첫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던 화해및 군사·경제교류협력·사회문화교류협력등 4개공동위의 본격가동이 어렵게 됐다.아울러 오는 12월 21∼24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제9차 남북고위급회담의 개최도 불투명해졌다. 북측은 3일 하오 남북화해·군사·경제·사회문화 공동위 북측위원장들의 연합성명을 통해 「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등을 이유로 공동위개최를 거부하고 나섰다. 그러나 북측의 이같은 강경선회가 어느 정도 예견돼왔던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의 공동위개최 무산이 곧 남북관계의 대결상태로의 「완전 회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는 다소 성급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남북이 지난 9월 제8차 평양회담까지를 고비로 「화해와 협력의 실천을 위한 정지작업」을계속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그러다 지난 10월6일 발표된 「남한조선노동당」 간첩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행보를 재검토하는 조정기를 거칠 수 밖에 없게 됐으며 그 결과가 이번의 공동위 회의거부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남측은 남측대로 간첩단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체제안보유지와 대화」를 병행추진하는데서 빚어지는 모순과 갈등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더 절감하게 됐고 이 와중에서 증폭된 대북경계의 「냉기류」가 대화추진분위기를 압도한 것으로 읽혀지고 있다. 특히 남측이 뚜렷한 물증을 내세우며 시인·사과 및 재방방지를 요구하고 있는 간첩단사건은 북측으로서는 적절한 대응책이 떠오르지않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같이 치명적 약점이 노출되고 있는 상태에서 북측이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띠기는 어려울 것이란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남측이 뚜렷한 물증을 내세우며 시인·사과및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는 간첩단사건은 북측으로서는 적절한 대응책이 떠오르지않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같이 치명적 약점이 노출되고 있는 상태에서 북측이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띠기는 어려울 것이란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경우 공동위 회의거부로 시작된 남북관계의 조정기는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 될 것으로 보여진다. 남측은 3일 공로명고위급회담대변인이 거듭 확인했듯 남북상호사찰의 9차회담전 실시가 선행되지 않는 한 내년2월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할 것이고 북한측은 북측대로 남측에 대한 선전적 비난공세를 강화하며 김정일로의 권력승계를 마무리짓기위한 내부통제를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동시에 새로 들어설 클린턴미정부의 대한반도정책및 대북핵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남북상호사찰을 수용하지 않는 선에서 핵문제를 매듭짓는 방안을 모색하려 들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핵문제의 선 해결및 간첩단사건의 시인·사과등을 요구하며 북측이 필요로 하는 남북경협의 물꼬를 막고 있는 현 남측당국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정권교체이후를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때 앞으로 남북관계는 일시적 부침은 있을지 모르나 생산성있는 대화의 관계로 복원되기까지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화해와 협력과 관련한 남북간의 실천조치들은 새 정부가 들어선뒤인 내년 4∼5월쯤에 가서나 가시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UR농업협상 최종담판/미·EC,타결 지연 우려…협의시한 하루 연장

    【시카고 AP 연합】 미국대통령선거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을 타결짓지 못하면 협상이 오랫동안 연기될 것으로 우려,시간에 쫓기고 있는 미국과 유럽공동체(EC)는 1,2일 이틀간으로 예정됐던 협상을 3일까지 하루 더 연장,협상을 계속키로 했다. 에드워드 매디건 농무장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레이 맥셔리 EC농업위원장이 이끄는 EC대표단은 1일과 2일 이틀간 협상을 갖고 협상타결에 장애가 되고 있는 오일 시드(식용유 추출 작물)보조금 삭감문제를 중점논의했으나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EC측 대변인은 『회담을 연장한 것은 양측이 협상타결을 계속 노력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승리할 경우 협상이 연기되거나 타결희망이 아예 무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선거결과 민주당이 장악하게 될 미의회가 오일 시드 보조금 문제에 대해 크게 양보,협상타결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선창당·후후보결정/새한국당 입장정리/이종찬씨도 후보 고사

    가칭 새한국당은 2일밤 당내주요인사의 교차접촉을 통해 이종찬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으나 이의원이 완강히 고사,후보확정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새한국당의 채문식창당준비위원장은 이날밤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이자헌 김용환 장경우 유수호 한영수의원 등과 잇단 접촉을 갖고 외부인사 영입이 무산된 상황에서 당내인사인 이종찬의원을 대선후보로 한다는데 대체적인 의견접근을 보았다. 채준비위원장은 이어 이종찬의원과 만나 후보수락여부를 타진했지만 이의원은 당운영및 자금상의 문제점을 들어 후보수락이 어렵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국당은 이에따라 당외인사영입을 계속 추진하는 한편 이종찬의원에 대한 출마권유도 병행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새한국당은 이날 상오 창당준비위원장단및 고문 연석회의를 열고 대선후보 결정여부와 관계없이 창당작업은 계속해 나간다는 「선창당 후대선후보결정」방침을 정했다. 새한국당은 3일 위원장단회의를 다시 열어 후보추대문제를 재론할 예정이다.
  • “후보는 나중 창당이 급하다”/새한국당,비상돌파구 찾기 부심

    ◎“당 깨지면 공멸한다” 공감대 확산/JC 추대·대선 불참증 택일할듯 「김우중파문」으로 난파위기에 몰렸던 가칭 새한국당이 새 활로를 찾기위해 부심하고 있다. 신당인사들은 당내 갈등의 핵인 후보추대문제를 당분간 뒤로 돌리고 선창당을 추진하자는 데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대선후보에 매달려 대립하다 당이 창당도 하기전에 깨지면 참여인사들의 정치적 공멸로 이어짐은 물론 반양금연합전선구축도 물건너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창당 후후보추대」는 갈등의 불씨를 완전히 끈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둔 것에 불과하다.창당작업이 일정수준 매듭지어지고 이달 중순으로 예상되는 대선공고기일이 다가오면 다시 후보추대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해 또 한차례의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당 인사들은 주말막후접촉을 통해 『당이 깨져서는 안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후보추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은채 창당작업을 계속하는 것은 「이종찬후보」가능성을 굳혀주는 것이라며 「선창당」에 반대해오던 박철언·장경우의원이이같은 공감대에서 주말을 계기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박·장의원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는 논리아래 김용환·이자헌의원등 이종찬의원과 감정의 앙금을 풀지않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설득에까지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자헌·유수호의원등은 비교적 유연한 자세로 돌아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김용환의원등 일부에서는 자금동원능력,당내 주도권문제등을 고려한듯 아직 「이종찬후보」에 부정적 입장이어서 이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종찬·박철언의원등은 아직 「국민후보」추대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신당내의 전반적 분위기는 「이종찬후보추대」혹은 「대선불참」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이종찬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연합인사들은 이의원의 출마를 적극 밀고 있다. 자금과 조직이 빈약한 이의원의 유일한 강점은 대중적 지지기반인데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대선에 나가지 않으면 정치적 존재가치가 희미해져 대선후의 정계개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의원도 이에대해 반대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의원은 지난달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회견에서 『대선에 1백% 불출마하느냐』는 질문에 『세상에 1백%란 없다.다만 가능성이 극히 적다』라고 대답해 출마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었다. 이종찬의원진영은 「이종찬후보·박철언·이자헌대표」등 역할분담을 통해 반대파들을 무마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반면 「이종찬후보」에 부정적인 인사들은 차라리 대선참여를 포기하고 국민운동형식으로 개혁정치를 주창,명분도 살리고 신당의 명맥도 이어가자고 주장한다. 신당인사들이「선창당」에 의견접근을 보이고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종찬후보 추대」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좀더 심층부를 살펴보면 반양금연합구축 노력의 계속이라는 원려가 깔려 있다. 일단 신당이 생겨나야만 국민당과의 연합등 후속진로가 모색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신당인사들은 새한국당이 당체제를 갖추고 난뒤 국민당과의 당대당통합을 시도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정주영국민당대표가 후보를 사퇴하고 「참신한」인사가 반양금후보로 옹립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는게 신당측의 입장이다.그것이 안되더라도 정주영후보­박태준혹은 이종찬대표등의 연합전선이 내각제개헌을 매개로 구축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생각에서 신당인사들중 박철언의원은 정주영대표,이종찬의원은 김동길최고위원등 국민당측 인사와 빈번한 접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 신당 집짓기전 분가위기/후보옹립 난항… 새한국당 내분 심화

    ◎추대파 5인·이종찬의원세력 “네탓” 싸움/불신감 해소 못할땐 두 갈래행로 불가피 새한국당(가칭)이 김우중 대우회장의 전격적 대선불출마선언으로 와해위기에 봉착했다. 「국민후보」추대가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문제는 상호불신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다.김회장 영입추진과정에서 민자당탈당 5인을 중심으로한 추대파와 이종찬의원의 새정치세력간 갈등의 골은 이미 너무 깊어진 상태이다. 이자헌·김용환·박철언·장경우의원등은 강영훈전총리·박태준의원의 후보추대가 난망한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김회장이라보고 김회장추대에 심혈을 기울였다.이들은 김회장이 출마를 포기한 것은 이종찬의원이 자신의 출마를 위해 김회장영입을 방해한 탓이라 생각하고 있다. 김회장추대파들은 이달초 김회장과 이종찬·이자헌·김용환의원이 모였을때 이종찬의원이 『국민후보추대가 어려우면 김회장이 나서라』고 권유했다고 전한다.그럼에도 이의원은 김회장의 출마문제가 표면에 떠오르자 공식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지난 25일과 28일 잇따라 있었던 김회장과 이종찬의원간 단독회동에서도 이의원은 김회장의 출마만류를 강력히 종용,감정대립까지 벌였다는 것이 추대파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종찬의원측은 김회장의 사퇴는 「외압」과 「음모」에 따른 것이며 사전에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반박한다. 김회장이 지난 21일에 이어 대선불출마를 발표한 29일 밤 김영삼 민자당총재를 극비리에 만난 사실이 김회장의 출마의지를 의심하게한다고 이의원측은 지적한다. 이의원측은 또 김회장이 출마포기선언직전 상당한 「외압」을 받은 징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당인사들은 김회장영입이 실패했다해서 당장 갈라서는 것은 모양상 좋지않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이때문에 외부적으로는 「국민후보」추대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때 이제 신당의 행로는 두갈래로 나누어질 가능성이 크다. 첫째는 새정치연합세력을 주축으로 이종찬의원이 독자출마하는 것이다.이 경우 추대파들이 이의원출마에 협력해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종찬의원이 출마의지를 다진다면 이자헌·김용환·박철언의원등은 결별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들외의 원내 인사들 가운데도 이종찬의원을 따르겠다고 명백히 밝히는 사람은 아직 없다. 윤길중·이동진·이영일 전의원등 원외인사들만이 이의원진영에 계속 머무를 뜻을 밝히는 정도이다. 이종찬의원진영은 박철언·유수호의원만은 신당에 잔류하도록 집중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신당이 대선후보를 내지않는 경우이다. 장경우의원등 다소 중도적 인사들이 제시하는 이방안은 신당세력이 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은 포기하자는 것이다. 중앙당창당을 늦추면서 「개혁정치 국민운동」에 전념해 대선후의 정계개편때 다시 한번 기회를 보자는 논지이다. 실제 이자헌·김용환·박철언·장경우·유수호의원등은 자신들의 지구당창당대회를 무기연기,창당일정을 지연시키려하고 있다.이에 대해 이종찬의원진영은 이의원의 대선출마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다. 신당 인사들은어떤 방향을 택하든 선택의 시간이 길지않음을 알고 있다. 새한국당은 11월2일 운영위원및 상임고문연석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최종 논의할 예정이다.
  • “불어권 퀘벡주 독립운동 가속”/가 헌법개정안 부결 파장

    ◎영어계 주민들과 기득권싸움 심화 예고/멀로니 융화노력 무산,연방붕괴 없을 듯 26일의 캐나다 국민투표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퀘벡주에 자치권을 확대해 캐나다연방의 일원으로 남게 하려던 헌법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캐나다의 정정이 혼미의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국민투표 뒤 TV방송으로 보도된 개표결과 총유권자 1천8백여만명 가운데 6백50여만명의 가장 많은 유권자를 가진 퀘벡주는 개표가 거의 완료된 상황에서 반대 55%로 헌법개정안을 부결시킨 것으로 나타났다.또 노바 스코티아·마니토바·사스카체완등 3개 주에서도 부결쪽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헌법개정안의 국민투표는 특히 각주의 비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1개주만 반대해도 부결된다. 퀘벡주와 캐나다연방정부가 첨예하게 갈등의 소지를 안게된 것은 지난 82년 캐나다가 최초로 독립적인 헌법을 제정·공포할 때 프랑스자치령이었던 퀘벡주가 헌법에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의 보호를 허용하고 있지않다는 이유로 헌법승인을 거부하면서부터 뿌리깊은 골을 쌓아왔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는 지난 87년 퀘벡주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미치 레이크협약」을 만들었으나 캐나다 서부지역의 영국계주민들의 반발로 이또한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멀로니총리가 다시 그전에 퀘벡주가 요구한 사항과 브리티시 컬럼비아등 서부 영어사용주의 입장을 절충한 헌법개정안을 마련,이번에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서로가 문제해결의 필요성은 절실하게 느끼면서도 부결이라는 사태까지 몰고 간 것은 서로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상대방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지 않으려는 민족적인 이해관계가 깔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가 있기전 멀로니총리는 이번 개정안이 가결되면 더이상 헌법개정안은 없을 것이며 부결되더라도 자신은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하튼 이번 국민투표부결사태를 계기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주의 분리·독립운동은그동안 수동적인 입장에서 탈피,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물론 이번 국민투표에서 헌법개정안이 부결됐다고 해서 캐나다의 연방체제가 무너지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그러나 멀로니 총리의 정치적 위기와 함께 냉전종식후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분쟁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2백여년에 걸친 영불계 주민들의 갈등이 어떤식으로 분출될지가 주목된다 할 것이다.
  • 북한,노 대통령 위해기도/정부 관리 밝혀

    ◎지난달 방중때 여공작원 5명 식당 취업/한­미서 통보… 중국,사전봉쇄 위기모면 노태우대통령의 중국방문때 북한당국이 특수훈련을 받은 폭파·테러요원들을 북경에 미리 잠입시켜 노대통령에 대한 위해를 기도했으나 무산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3일 『노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 1주일쯤 전인 지난달 20일께 북한의 특수공작요원임이 확실한 여자5명이 북경에 잠입,북한 식당과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중국공안당국에 이를 통보했으며 미정보당국에도 알려 중국측에 전달되도록 조치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의 공안당국이 북한측의 위해공작기도를 우리정부와 미국정보당국으로부터 사전에 통보받고 사실 확인을 거친뒤 이들의 행동을 미리 봉쇄,위해기도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에 따르면 노태우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저격,폭파등 고도의 종합훈련을 받은 4명의 북한여성과 또 한명의 북한 여성특수요원이 북한측이 북경에서 운영하는 「유경식당」과주중 한국대사관이 소재한 차이나월드호텔 3층의 「금강원」이라는 가라오케주점에 종업원으로 체류중이었다는 사실을 방중 1주일전 쯤에 확인,중국공안당국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 김형직 우상화(신고/김일성자서전연구:7)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105인 사건의 일원” 선각자로 미화/신민회와 조선국민회 고의적 “혼합”/“안창호 등 독립지사 지도했다” 강변 북한에서 진행되는 역사날조는 다른 인물이 아니라 김일성 자신이 「솔선수범」한다.우리는 이 점에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가져야 한다. 김일성은 자기의 부친 김형직을 「민족주의운동을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전환시키는 투쟁」을 한 인물로 둔갑시켰는데 이것 뿐 아니라 「3·1운동 이전의 모든 민족주의운동을 지도한 최고의 지도자」로 만드는데도 온갖 힘을 다하였다. 그는 1983년 6월30일부터 3일간 페루·아메리카인민혁명동맹대표단과 만나서 담화를 한 일이 있었다.그런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의 한사람이었습니다. 1917년 가을에 유명한 「105인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민족해방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1백5명이나 한꺼번에 일제경찰에 체포된 사건이었습니다.일제경찰에 체포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조선국민회의 성원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반일민족해방운동에서 파벌싸움을 하여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없으며 오직 인민대중을 묶어 세워가지고 그들의 힘에 의지하여 싸워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지금 김형직이 「인민대중을 묶어 세우라」 「무산민중을 조직해라」라고 주장했다고 하고 있다.그러나 필자가 전에 언급한 1919년 10월의 대한국민회 규칙초안을 보면 그 회원의 항목에는 「단지 여자는 중등교육 또는 5연이상 종교의 교습이 있음을 요함」이라는 조목이 있다. 식민지시대 여성에게 중등교육 수료자격을 요구할 정도의 고급한 인텔리집단이 국민회였다.그러한 국민회에 있는 김형직을 김일성은 「무산민중」을 조선국민회에 묶어세우는 「선각자」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김형직이 「105인사건」의 한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105인사건이란 1917년이 아니라 1911∼12년에 일어났고 조선국민회가 아니라 신민회의 회원들이 일제에 체포된 사건이다. 1910년 평북 선천에서 안명근이 사내(데라우치)총독을 암살하는 의거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일제경찰은 이것을 계기로 애국자들을 체포할 계획을 세웠다.일제는 신민회가 총독 암살을 준비하고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당시의 혁혁한 지사들인 유동설·윤치호·양기탁·이승훈·이동휘등 6백여명을 검거하였다. 총독부의 명석(아카시)경무총감이 그들을 고문하여 그중 1백5인을 기소,투옥하였다.이 사건으로 신민회는 큰 타격을 입고 해체되었다. 신민회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인 1906년 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가 결성한 비밀결사였다.김일성은 이 신민회를 고의적으로 조선국민회와 혼합시키고는 「조선국민회의 조직자」 김형직을 이 105인사건으로 「체포투옥」하게 하고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 조작으로 안창호등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전부 김형직이 지도하였다는 신화를 만들었다.이것은 식민지시대의 신민회·국민회를 통틀어 민족주의자로서는 김형직이 제일이라는 우상화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김형직은 민족주의자이기는 하였지만 별로 두드러진 업적은 없는 인물이다.그 예로 북한이 김형직의 최대업적으로 선전하는 관전현홍통구(홍통구)회의를 들어보자. 이 회의에 대한 북한의 주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회의가 주로 조선국민회(대한국민회)의 회원이 참가하여 이룩됐다는 점이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조선에서 도만한 애국지사와 열혈청년들 5백60여명은 1919년 음력 3월15일 만주 유하현 삼원포 서구 대화사에서 회집하여 대한독립단을 형성하였다. 이 독립단에 입단한 지방조직의 하나로 평양숭실학교에 근거를 둔 국민회 인사들이 있었다.그 중심인물은 오능조,고진한,황보덕삼,허영진 등이었는데 이 중 황보덕삼과 허영진은 1919년 12월에 평양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장로파의 조사(목사,장로 다음가는 성직)였던 오능조(당시 31세)는 체포를 면하게 되어 만주로 달려가 관전현 홍통구의 대한독립청년단 안병찬 아래에서 서기를 하고 있다가 1920년 5월에 안병찬과 같이 체포되었다. 이 대한독립청년단에는 회고록에 나오는 오동진도 생계부장으로 있었다. 따라서 만약 홍통구회의가 있었고 그것이 국민회 성원이 주로 참가한 것이었더라면 적어도 평양의 오능조가 홍통구에 가 거기에서 대한독립단이나 대한독립청년단의 인사를 알게 된 이후라야 가능하다. 오능조는 1919년 12월이후에 홍통구로 갔다.북한에서는 「홍통구회의」가 1919년 8월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1920년 전반기라야 그러한 「회의」의 개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관전현 홍통구회의」라는 회의는 문헌기록에는 보이지 않아 객관적으로는 누가 참가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전혀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만주의 관전현지방은 주로 평안도의 독립지사들이 모이고 있었으므로 독립단이나 청년단에 망라된 인물의 연줄을 타서 평양의 국민회원들이 거기에 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1919년 음력 3월에 조직된 대한독립단의 성원은 의병령수,유림수뇌,보약사대표,향약계대표,농무계대표,포수단대표들이었다.또 대한독립청년단의 총재 안병찬도,서기 오능조도 좌익계 인물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지방에 가령 김형직이 갔다 하더라도 오능조 등이 주최하는 비좌익계모임에 1920년 전반기에 참가해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민족주의운동을 공산주의운동으로 방향전환」시키는 말을 김형직이 할 여건도 없었다. 관전현 홍통구회의 개최라는 김형직의 「업적」은 물론 회의개최 당일 그가 냈다는 방향전환방침도 역사적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허황한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①「주체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 대하여」김일성저작선집9 1987년 당간 149면 ②현대사총평25 544면 ③대한계년사 732면 ④대한독립사 김승학편 1965년 한국독립사편찬위원회편 325면 ⑤현대사총평28 15면 ⑥한국독립사 334면 ⑦같은책 325면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김일성자서전연구:6)

    ◎“김형직이 반일·공산운동 접목” 주장/“감옥에서 선진사상 배웠다” 날조/대한국민회를 적색단체로 기술 김일성을 본격적으로 우상화하기 시작한 1968년의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서 저자 백봉은 조선국민회를 김형직이 창시한 것처럼 왜곡하였다. 그러나 백봉은 적어도 김형직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과 그가 3·1운동이 있은 1919년 이전에 조선국민회로부터 멀어졌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3·1운동 이전 멀어져 그러나 김일성의 유일독재가 한층더 악화되어 그의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근본이 다른 것으로 되어 나가자 김형직에 관한 왜곡도 극단을 달리게 되었다. 김일성은 그의 부친이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을 전환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인 인물이었다고 선전하기 시작하였다.김형직이 아들로부터 제공받은 방향전환의 활동무대는 중국료령성관전현홍통구회의이다. 그런데 김형직이 언제 공산주의자가 되었는가에 대하여 조선전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형직은 옥중에서 러시아사회주의10월혁명의 소식을 듣고 이것으로 혁명적 신조를 굳히고 선진사상을 연구하게 되었다.그 결과 공산주의를 이해하고 민주해방운동의 방향을 구상하게 되었다」 필자는 전번 졸고에서 김형직은 평양감옥에 투옥된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그때 필자가 제공한 이유이외에도 김형직은 1919년의 3·1운동때 평북 중강진에서 운동의 선두에 섰던 것이 일본기록에 나오고 있다.전과자같으면 할수 없는 일일 것이다.이런 점과 그후 그가 갑자기 졸부로 된 점을 감안해 보면 옥고를 치렀다는 김일성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에 일단 따르고 김형직이 평양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가정해 보면 그는 옥중에서 러시아 사회주의 10월혁명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된다.공산주의자란 없었던 그 때까지 그는 주변에 공산주의자를 「동지」로 두고 있었지 않았다.그에게는 당시 공산주의서적도 있을 리 없었다.「옥중」으로서는 공산주의자가 될 「계기」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세기와 더불어」는 김형직에게 공산주의자가 될 「계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듣지도 못한 「새로운 사실」을 양산하고 있다.그 날조항목을 여기에 열거해 놓는다. 1)「아버지는 1916년에 방학을 이용하며 간도에 다녀왔다.무슨 줄을 타고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간도를 거쳐 상해에 가서 손문의 국민혁명파와도 연계를 맺었다」 이런 말은 북한주민도 처음 듣는 말이다.아마도 이것은 김형직을 「부르주아민족운동」도 국제적규모로 경험한 인물로 조작하기 위한 허구일 것이다. 2)㉠「그해(1919년­인용자)여름에 우리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할머니는…혼자소시로 뇌이는 것이었다.『아라사에 갔는지 만주에 갔는지…이번에는 퍽이나 오래두 객지생활을 하는구나』」 ㉡「아버지가 무산동회의(1918년 11월)를 소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평안북도의 조선국민회 조직대표들과 각 지역의 연락원들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는 파괴된 국민회조직들을 시급히 복구하며 광범한 무산대중을 조직에 튼튼히 묶어세울데 대한 활동방침을 밝히셨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만주소식과 함께 로씨야에 대한 이야기,레닌에 대한 이야기,10월혁명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특별히 많이 하였다」 ㉠㉡㉢의 글은 이런 차례로 김일성이 말한 것을 발췌하여 실었다. 그런데 1919년의 일인 ㉠은 의당 ㉢에 직결해야 하는게 1918년의 청수동회의 문제를 그 중간에 삽입하고 있다.이것이 ㉡이다.이 세가지 문장은 문맥의 앞뒤가 바뀌어진 매우 부자연한 글로 되어있다. 김일성은 마치 소설과도 같이 부친을 1917년 가을에 평양감옥에서 「출옥」시켜 놓고 그해 11월에 「청수동회의」를 소집하게 하였다.옥중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공산주의자」가 된 부친이 「무산민중」을 「조선국민회」에 묶어세울 방침을 제시하도록 조작한 것이다. ○거의 앞뒤 안맞는 내용 그러나 「옥중에서 혁명적 신조를 굳힌 아버지」를 막바로 그해 11월의 청수동회의에서 「무산민중」을 조직하는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북한의 어용학자가 보더라도 너무 무리한 작업으로 보인 것 같다.이 때문에김일성은 이번 회고록에서 1917년11월의 청수동회의이후 부친에게 다시 만주와 러시아를 방황하도록 한 것이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만주소식과 함께 로씨야에 대한 이야기,레닌에 대한 이야기,10월혁명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많이 하였다.로씨야에서는 로동자·농민을 비롯한 무산대중이 주인으로 된 새 세상이 왔다고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가 하면 신생로씨야가 백파도당들과 14개국 무력간섭자들의 공격으로하여 시련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 못내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그 이야기들이 모두 생동한 세부와 사실들로 엮어졌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그동안 연해주에 갔다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회고록은 이런 복종을 깔아 놓은 다음 아래와 같은 문장을 가져 온다. 「아버지는 1919년 7월,청수동회의에서 무산혁명의 역사적필연성을 논증한데 기초하여 8월,중국 관전현 홍통구에서 조선국민회 각 구역장들과 연락원들,독립운동단체 책임자들의 회의를 소집하고 우리나라 반일민족주의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으로방향전환할데 대한 방침을 정식으로 선포하시였다」 전에도 말한바와 같이 역사에 실재하는 조선국민회는 3·1운동 이후 상해임정의 지시를 받는 대한국민회로 발전한다. 그런데 이 국민회에 대한 사료가 김일성의 손에 들어오자 이 「조선국민회」는 3·1운동 이후 엉뚱하게도 공산주의단체로 변해버린다.김일성은 이 날조의 주역으로 자기의 부친 김형직을 갖다 앉히고 있는 것이다. 〔주해1〕조선전사16,29면 이후 〔주해2〕같은책 동면 〔주해3〕졸저 김일성평전 35면 〔주해4〕「세기와 더불어!」23면 〔주해5〕같은책 44면 〔주해6〕같은책 45면 〔주해7〕같은책 동면 〔주해8〕같은책 45면 〔주해9〕같은책 48면
  • 서울택시 시위 무산/5대도시 파업 철회·유보

    15일 0시부터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던 서울·부산 등 6대도시 택시노조 가운데 부산지역만 파업에 돌입했을뿐 서울등 5대 도시에서는 파업을 철회 또는 유보했다. 한편 14일 하오2시 서울 연맹사무실에서 파업여부및 향후대책논의를 위해 가지려던 6대도지부장 비상대책회의는 불참자가 많아 열리지 못했다. 이에앞서 서울시 지부측이 이날 상오7시와 낮12시 두차례에 걸쳐 도심에서 벌이려던 차량시위도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 「산업의학 전문의」 시행 난항/의협반대로 사실상 유보

    ◎직업병 진료체계에 “구멍” 직업병 예방과 진단을 위한 산업의학전문의 제도신설이 대한의학협회등 의학계의 반대에 부딪쳐 늦어지고 있다. 산업의학전문의제도는 지난해 6월 노동부가 「직업병예방종합대책」의 하나로 직업병 예방전문인력육성을 위해 보사부에 「전문의 수련 및 자격인정등에 관한 규정」개정을 요청했었다. 현행 「전문의 수련 및 자격인정등에 관한 규정」은 23개 전문의 분야를 인정하고 있으나 직업병의 진단·치료에 적합한 전문의가 없어 응급의학,산업의학,핵의학등 직업병관련 전문의 신설을 위한 시행규칙 개정이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해말 현재 직업병을 다루는 전문의는 2백73명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법정기준인원 1천4백90명의 20%에도 못미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전문의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의협측은 노동부의 시행규칙 개정요청 직후 『현행 전문의 제도의 획일성과 경직성에 비취볼때 이들 3개과목이 추가될 경우 진료체계등에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며 시행규칙개정을 반대했다. 이처럼 재도신설이 의협측의 반대로 무산되자 노동부는 지난 8월 또다시 보사부에 직업병 관련 전문과목 신설을 위한 시행규칙 개정을 요청했으나 의협측은 한달후인 지난 9월7일 이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역시 「곤란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지난 8월 노동부가 보사부에 요청한 내용은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입법예고해 달라는 것으로 『의협의 반대가 있더라도 보사부측에서 적극 추진해줄 것』을 담고 있다. 이에대해 의협측은 『분과별 재협의가 필요하다』며 입법예고를 늦출 것을 보사부에 회신해왔고 보사부는 의협분과별 의견수렴등 의료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봐가며 입법예고할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의 자격시험등 의료인 양성을 맡고있는 의협측이 이 제도신설의 결정권을 갖고 있어 산업전문의 신설은 사실상 유보됐다는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각국의 직업병 관련 전문의 제도는 미국은 지난 55년,프랑스는 79년부터 실시하고 있고 일본은 규슈의 산업의과대학에서 직업병 관련 전문인력을 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 최 부총리 방북/일정연기 통보

    정부는 13일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최근 발생한 일련의 정세에 따라 14일로 예정된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방북일정을 연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통보했다. 정부는 이 전통문에서 『최부총리의 방북과 관련,9일 갖기로 했던 쌍방 연락관접촉이 북측의 일방적인 조치로 무산된데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하고 『최부총리의 방문일자를 추후 다시 협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별도의 전통문을 통해 오는 15일 교환키로 한 남북화해공동위구성인원명단 통보일자를 신임총리 임명 등 남측 사정으로 오는 26일로 연기하자고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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