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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성(性)과 자본/김민숙 소설가

    며칠전 밤 열한시가 훌쩍 넘은 시간 갑자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한 마을에 살며 친하게 지내는 젊은 주부다. 잔뜩 성장을 하고 긴장한 얼굴로 들이닥친 그녀는 남편이 지금 집으로 오고 있는데, 만나면 싸우게 될 거라서 피신왔단다. 남편이 요즘 거의 이틀 걸러 외박인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남편과 같이 술 마시러 다니는 친척 조카에게 남편이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다는 핑계로 꼬드겨서 남편이 잘 다니는 읍내 술집을 갔다왔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지금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고 그곳으로 간다고 했더니 남편이 놀라서 알리바이를 세우느라 읍내에 사는 다른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마주쳐서 큰소리내서 다 자란 딸아이들이 충격 받는 게 싫었다면서 그녀는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읍내 술집을 잠깐 다녀온 폭 치고는 그새 그녀는 벌써 많은 정보를 얻어왔다. 읍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 전화로 여자들을 불러주는데 그 여자들이 술시중은 물론 나중에 외박까지 나간다는 것이다. 그 여자들은 읍내에 있는 아파트에 단체로 방을 얻어 기거하며 술집 접대는 시간당 삼만원이고 외박을 나가면 삼십만원이라는 액수까지 알아왔다. 심지어는 남편이 잘 가는 모텔에다 동네 다른 남자들의 단골여자들까지 파악하고 돌아왔다. 그 남자들 대다수가 가정을 내팽개치지 않는 한 한두번의 성매매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둔 어머니인 탓인지 그녀도 쉽게 이혼 같은 것은 입에 올리지 않았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서인지 결혼생활 16년이면 싫증날 때도 되었지요, 하고 침착하게 말하다가 그렇지만 싫증난 건 나도 마찬가지예요라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음성적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더니 이런 작은 시골 읍내에까지 벌써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인 내 반응이었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성매매가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의 수입에 비해 술값이나 성매매에 지불하는 액수가 너무 엄청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들판이 모두 헐벗은 상태지만 봄이 되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시금치며 상추를 팔아봤자 한 상자당 6000원에서 만원 안팎이었는데, 그것도 마을 전체가 모아서 내놓아도 한 트럭이 다 안 차는 판인데 무슨 수로 읍내 술집에서 양주를 마시고 성을 산다는 것일까. 물론 여기 산다고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다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돈을 지불할 능력이 된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액수를 잘못 알지 않았느냐는 나의 의문에 성에 빠지면 남자들은 돈 아까운 거 모른다며 한참 모자라는 나를 답답한 듯 구박하고 밤이 이슥해서야 남편이 지금쯤 잠들었을 거라며 돌아갔다. 아깝고 안 아깝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지불할 능력이 되느냐는 나의 의문에 대해 그녀는 끝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이들의 경제 능력이 훨씬 더 상위에 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웃남자의 성매매보다 그가 지불했을 액수에 더 놀란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자본의 논리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모든 것을 액수로만 판단하게 된 걸까. 아니면 밤낮없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무차별 공격하는 성매매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어서 성매매에 대해 혼란이 생긴 것일까. 연예인의 그 흔한 누드사진집은 성매매인가, 연예활동인가. 그걸 보는 사람들은 성매매 구매자인가 아닌가. 때로는 성이 가장 중요한 자본의 기능을 하는 게 아닌가. 역사이래 언제나 성매매가 있어왔다지만 지금처럼 초등학생까지 나선 것은 결국 우리가 지난 오십년 동안 무분별하게 매달려온 천민 자본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된다, 이런 돈에 대한 신앙이 아이 어른없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품격까지 내던져버리게 만든 게 아닐까. 특별법보다 더 시급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인간됨이라 믿는 그 출발선으로 되돌아가는 사회 모두의 자각이 아닐까. 김민숙 소설가
  • [클릭 이슈] 수사기록 공개 공방

    [클릭 이슈] 수사기록 공개 공방

    공무원 A씨는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건설업자 B씨가 그에게 8000만원을 건넸다고 자백했기 때문이다.A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사흘간 검찰에 불려가 꼬박 12시간씩 신문받았다. 검찰은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본인은 물론 가족 등 참고인 20여명에 대한 계좌추적을 실시하는 한편 통화기록도 조회했다. 이런 수사기록만 수백장에 이르렀다. 검찰의 기소로 법정에 선 A씨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검찰이 수사기록을 법정에 제출하지 않아 변호인이 아무런 사전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상사건은 검찰이 수사기록을 법원과 변호인에게 제출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검찰은 실제로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철거업자로부터 아파트 재개발과 관련해 1억 4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합장 김모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1차 공판에서 관행을 깨고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이 시작되면 검찰은 수사기록을 법원에 넘긴 뒤 확정 판결 후 돌려받는다. 불기소·무혐의 사건기록은 검찰이 관리하고 있다. 이런 관행을 깨고 현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만 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다른 지검으로 확산될 분위기다. 검찰이 수사기록을 내지 않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수사기록을 읽고 피고인이 증인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일이 일어나는 등 공소유지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또 수사기록에 등장하는 다른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이유다. 수사기록의 의존도를 낮추고 법정 진술과 증거로 유·무죄를 판단하자는 공판중심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법원의 잦은 영장 기각과 관대한 판결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다. 검찰은 어떤 자료를 법정에 낼지, 제출한다면 언제 어떻게 공개할지 등 수사기록에 관한 모든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판에서 효과적으로 유죄를 입증하려면 피고인에게도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만을 선별해 법원에 제출하고 그밖의 수사기록은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 판사도, 피고인도 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검찰청은 이에 대해 일률적인 지침을 내려보내지는 않고 각 지검과 지청이 자체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것은 공식적인 대검 입장은 아니고 일선 검사의 재량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검 예규는 피고인이 수사기록 중 본인의 진술만 열람·등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수사기록 전체가 아니라 검찰이 법원에 제출할 기록만 피고인에게 미리 공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제3자가 아닌 피고인의 수사기록 열람을 막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개인 기록인 수사기록은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집, 활용할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피고인의 방어권 확보를 위해서도 수사기록 열람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피고인이 첫 재판에 섰을 때 검사는 이미 수개월간 사건을 파헤친 전문가지만, 피고인은 무방비 상태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변호인은 수사기록을 읽으며 사건을 분석, 허점을 찾아내 피고인을 방어해야 하는데 수사기록도 보지 못하면 방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소동기 변호사는 “증거수집 능력이 탁월한 국가기관이 유리한 증거만 법정에 제출하는데 개인이 맞서 이길 수 있겠느냐.”면서 “법원 제출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수사기록을 피고인과 공유해야 대등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독일도 피고인에게 원칙적으로 수사기록을 공개하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수사기록은 무죄를 밝힐 자료가 될 수도 있다.”면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국가기관이 진실을 은폐한다는 의혹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도 1997년 검찰이 수사기록의 열람을 이유 없이 거부한 것에 대해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도 김씨 사건에서 검찰은 수사기록을 피고인에게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수사기록은 국가기관인 검찰이 국민의 세금을 받아 수집·작성한 공문서란 주장도 있다. 피고인 등 이해 당사자뿐 아니라 언론매체나 사회단체도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공개를 청구하면,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해석이다. 대법원은 “공개될 경우 국가 안보나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구체적 설명 없이 단순한 가능성이나 주관적 추측으로 검찰이 수사기록의 공개를 거부해선 안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실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KAL858기 사건기록이 지난해 공개됐다. 방송사의 청구로 지난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 수사기록도 빛을 봤다. 지난 1월 서울고법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검찰의 공개 거부 결정은 대부분 행정소송을 통해 뒤집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전국 55개 유치원·초중고교 세균교실

    학교 실내가 ‘새집증후군’ 원인 물질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부유세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교육청이 고려대 보건과학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 말까지 9개월간 전국 55개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여름·가을·겨울 3차례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조사 대상 55개교 가운데 56.4%인 31개교에서 실내공기 내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수치가 환경부 실내공기질관리법 기준치를 초과했고, 27.3%인 15개교에서는 포름알데히드(HCHO)가 기준치 이상이 측정됐다. 휘발성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는 각각 피로감·정신착란·두통·현기증·중추신경 억제와 기침·설사·구토·피부질환·정서불안·비염·기억력 상실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유독물질이다. 또 29개교에서는 전염성 질환, 알레르기 질환 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부유세균의 양인 총부유세균(TBC) 수치가 기준치를 크게 넘어섰다. 이 결과는 3차례 조사 결과의 평균값에 따른 것으로, 실제 오염도는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기 S교의 경우 포름알데히드 수치가 기준치 8배, 부산의 H교는 총부유세균이 6배를 넘었다. 충북 P교는 총휘발성유기화합물 양이 기준치 5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세먼지 양 역시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백두대간 종주 이성부 시인, 시집 ‘작은 산이…‘ 출간

    시인은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거기에 시가 있기에. 산은 시를 품었고, 시인의 시도 산을 터지도록 품어안았다.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는 소식을 뜨문뜨문 날려보내던 이성부(63) 시인이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덟번째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창비 펴냄)에는 시인이 꼬박 8년을 짬짬이 ‘토막 산행’하며 여투어온 84편의 시가 묶였다. 백두대간 산행길에 올라 흥분에 젖어 시집 ‘지리산’(2001년)을 낸 지 4년 만이다. “산에 들어가는 일은 한때나마 속진(俗塵)의 일과 단절시키고 단순화하고 고립되게 만든다.”며 산행에 극찬사를 쏟아붓는 시인. 몇 년 사이 사물을 시로 품어내는 품새는 너럭바위의 그것만큼이나 후덕해졌다. 또렷또렷한 의식으로 역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 정신은 곳곳에서 형형하다. 하지만 시인의 눈과 귀는 표나게 순해져, 이번 시집에는 자연의 섭리와 생의 이치로 고즈넉히 고개돌린 시편들이 줄줄이다. 숨가쁘게 산길을 오르는 일이나 사람살이가 결국엔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사위 캄캄한 어느 새벽이었던가. 시인은 무령고개(전북 장수군) 절개지에 털퍼덕 주저앉아 “지나쳐버리는 발걸음과/거기 오래 머물다 가는 발걸음도/어차피 모두 떠나가는 것은 매한가지/내리 쌓이는 눈에 묻혀/먼저 간 사람들 발자국 찾을 길 없고/우리도 그렇게 묻혀지거나 지워질 뿐”(‘내 고향으로도 뻗어가는 산줄기’)이라고 길게 탄식해 본다. 시로 한평생을 메워가는 시인 아니랄까봐 발 밑에 엎드린 숱한 길들을 시인의 도(道)로 종종 은유하기도 한다.“사십년 전에 읽은 시가 지금 너무 새로워/몸이 떨린다 산에 들어가는 것처럼/새로운 길은 다음 사람들이 그 길로/더 많이 다녀야 비로소 길이다/닳고 닳아도 사그라지는 법이 없다”(‘비로소 길’) 하더니 산이 건네는 말에 무방비로 오감을 내맡긴다. 그럴 수밖에.“오랜만에 짚어보는 지팡이 모가지 잡은/내 왼손을 거쳐/땅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겠다”(‘나무 지팡이’)며 신묘한 산 기운에 부르르 몸을 떨고마는 것을…. 시에는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란 부제 뒤로 일일이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그 순서대로 진득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결에 독자도 백두대간 남한쪽 종착지 진부령의 너덜겅 어디쯤에 땀내 풍기며 앉아 있게 된다. 역사의 생채기를 쓸어주고 부조리에 절망하는 시인의 글쓰기는 아무래도 생래적이라고 해야겠다.‘옛적에 죽은 의병이 오늘 나에게 말한다’‘거창 땅을 내려다보다’‘무정한 총알이 내 복숭아뼈를 맞혔네’ 등 무고하게 스러진 옛 생명들을 되뇌이는 시들은 그가 밟아올랐던 산의 형상만큼이나 첩첩이다. 80편이 넘는 시글로도 할 말을 다 못했을까. 시집 끄트머리에 보탠 시인의 말이 13쪽이나 된다.‘태백산맥’이 ‘백두대간’으로 이름을 바꿔야만 하는 이유,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사연 등을 두루두루 짚었다. 이성부는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으로 등단했다.‘백제행’‘전야’‘야간산행’‘지리산’ 등의 시집이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中企절반 환리스크 무방비

    환율하락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환(換)리스크관리 능력이 떨어져 위험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 및 자본자유화로 자본유출입 규모가 늘어나고, 환율변동폭이 커지는 추세이지만, 기업들의 인식과 대응 강도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변동환율제하에서 정부 등 외환당국이 일정 수준에서 환율을 유지해 주기를 바라는 고정환율제의 기대심리가 큰 것도 대응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3년 하반기 금융감독원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환리스크 관리실태를 보면 대기업은 78.2%, 중소기업은 54.2%가량이 환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금감원의 최근의 조사결과는 없지만, 외환 관계자들은 종전보다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환리스크 관리기법이 극히 단순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은 선물환과 ‘리드 앤드 래그’(Leads&Lags·수출입업자가 결제 시기나 상품의 수출입시기를 금리차나 환시세의 예상에 따라 의도적으로 앞당기거나 늦추는 것), 중소기업은 수출환보험 등에 의존하고 있다. 환리스크 전담인원도 3명 이상 확보하고 있는 기업이 17%에 불과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들의 환위험에 대한 인식은 2002년부터 시작된 달러화약세 이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안정적인 수출을 위해 외환당국이 일정 수준을 유지해 주기를 원하는 등 수동적인 자세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기고] 망언·망발과 역사전쟁/박석흥 대전대 문화사학과 겸임교수·명예논설위원

    3·1절을 앞두고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다. 외교관의 단순한 망언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발표한 음모와 비슷한 충격적인 발언이다.‘한국 침략’을 ‘진출’로 바꾸고 종군 위안부, 대학살, 경제 수탈 등 일본의 침략 사실을 축소·삭제했던 2001년 일본 ‘신편 교과서 파동’에서 한걸음 더 나가, 침략을 미화하는 일본 극우 세력의 ‘자유주의 사관’과 국가주의가 만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안팎곱사등이가 됐다. 중국은 한국 고대사의 시원인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국 근·현대사를 날조해 한국사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있다. 중국·일본이 도발한 역사 전쟁은 단순한 과거사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중·일 관계사를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망언이 나올 때마다 항의나 하는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2005년은 을사국치 100년, 광복 60돌이 되는 해다. 중국·일본과의 역사 전쟁에 앞서서 치욕과 영광이 겹쳐진 이 100년의 역사 정리는 민족의 새 진로 설정을 위해서도 서둘렀어야 할 과제다. 건국 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과거사 정리와 한국사 체계화가 시도되긴 했으나 전통문화와 현대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건 중심으로 접근, 혼란만 가중되고 중국·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한국 역사에 관한 의도적인 왜곡과 망언은 이제 극우 일본 정치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한일본대사가 언론회관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만한 틈새를 한국 정부·학자·지식인이 보여 주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을 수탈만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도 보자는 경제학자의 망언을 비롯하여 정신대에 관한 경제사학자의 망언, 고구려사는 중국동북아사라는 동양사학자의 망언, 일본의 작위까지 받은 구한말 고관대작과 일제 밀정의 후손까지 독립유공자 후손이라고 나서는 망언 등 망언이 만발하고 있다. 최근 경제사학계에는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한국 지배 침략기에 깔아 놓은 경제성장의 연장이라는 일본학자의 중진자본주의론이 무시못할 학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 사학계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도 전에 일본 극우파 학자들의 식민지배 미화론에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일제 침략이후의 한·일 관계사에 관한 무지와 적절치 못한 발언까지 남발돼 참으로 딱한 형국이다. 1998년 한·일 공동 파트너십 선언에 앞서 가진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은 “일본의 침략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제 침략의 실체와 친일 세력의 죄악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나온 한국 대통령의 통큰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에서는 한국 침략사를 왜곡한 ‘신편교과서’가 정식 교재로 채택되었고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의 이런 후안무치한 작태를 방조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정치인의 발언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시혜론에 동조하는 친일 인사들의 증가다. 광복 후 한국 역대 정권의 문화 정책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일본·중국의 한국사 왜곡을 바로잡아줄 학술원·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 중앙연구원·독립기념관 등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27년전 국학 연구 총본산으로 출범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총리나 장관 등 여권 중진들의 퇴임 후 보직처로 전락했고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도 한·일 역사 전쟁 논의에서 비켜서 있다. 국학 관련 중요 기관을 설립 목적보다 정치 목적으로 운영해온 파행 행정이 중국의 역사 전쟁 도발에 또 하나의 연구소를 서둘러 만드는 모순을 드러냈다.2005년 일본 교과서 검인정 작업을 둘러싸고 더욱 첨예화될 일본의 한국침략사 왜곡을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다. 박석흥 대전대 문화사학과 겸임교수·명예논설위원
  • 수출기업 절반 “환율하락 피해”

    최근 원·달러 환율 급락세로 수출기업의 절반 이상이 환차손과 출혈 수출, 수출계약 포기 등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같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기업 10곳 중 6곳은 환위험 관리를 하지 않아 환차손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도권지역 수출기업 300개사를 조사해 24일 내놓은 ‘환율변동에 대한 기업의 대응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급락한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간 피해를 경험한 기업이 53.7%였다. 피해 유형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막대한 환차손(41.0%)▲출혈수출(20.2%)▲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수주경쟁 탈락(17.6%)▲기존 수출계약을 취소하거나 신규 수출 오더 포기(11.9%) 등을 꼽았다. 손익분기점 환율은 대기업 1088원, 중소기업 1113원 등으로 평균 1104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손익분기점 환율이 ‘1000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0%,‘1000∼1050원 미만’도 15.0%에 그쳐 전체 조사대상 기업의 84%가 이미 손익분기점이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하락이 ‘부정적’이라는 응답 비율은 조선(100%), 일반기계(81.5%), 반도체(79.2%), 무선통신기기(76.2%), 섬유(73.3%), 자동차(72.8%)업종 등에서 전체 평균치(69.3%)를 웃돌아 상대적으로 환율급락에 따른 피해가 컸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공공기관 홈피 주민번호 샌다

    공공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개인의 주민등록번호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등 개인정보 보호가 크게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문날인반대연대와 정보인권활동가모임은 주요 공공기관 100곳의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34곳에서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고 15일 밝혔다. 문제가 드러난 기관은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교육인적자원부, 노동부, 문화관광부, 법무부, 검찰청, 국방부, 병무청, 보건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비상기획위원회, 재정경제부, 국세청, 국군기무사령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통령경호실 등이다. 심지어 개인정보보호 관리 책임을 맡은 행정자치부 전자정부지원센터도 포함됐다. 노출사례 중 홈페이지 이용자가 진정·고소·고발 접수, 민원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입력한 개인정보가 그대로 방치된 사례가 가장 많아 24건이나 됐고, 공개되지 말아야 할 관리자 화면이 나타나면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례가 10건이었다. 실제 웹페이지에는 보이지 않지만 웹로봇에 의해 주민등록번호가 검색되는 사례가 6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공지사항 등을 통해 특정인의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례가 7건이었다. 또 실명 확인 등을 목적으로 수집한 주민등록번호가 웹사이트 설계나 프로그램 오류로 노출된 사례가 4건으로 조사됐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여성전용 노숙자쉼터 용산에

    정부는 여성 노숙자들이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2005년 1월24일자 1·3면)와 관련, 치안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여성 노숙자 전용쉼터를 마련해 보호하기로 했다. 정부는 최근 국무총리실 주재로 ‘노숙인 대책회의’와 ‘사랑나눔 실천운동 민·관 협의회’를 잇달아 열어 이달 말 문을 여는 서울 용산구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에 여성전용 시설을 마련하고 용산구 서계동에도 별도의 여성전용 상담보호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거리의 여성 노숙인들이 쉴 수 있도록 ‘쪽방’을 지원하는 한편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 순찰활동을 대폭 강화, 여성 노숙인을 상대로 한 각종 성범죄를 적극 차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거리를 전전하는 여성 노숙인이 서울 20명 등 전국에 34명 있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으나,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는 서울에만 161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는 겨울철 노숙자 보호대책과 관련, 복권기금 20억원을 투입해 이달 중 서울역 인근의 상담보호센터(개방형 ‘쉼터’)를 확장하고 5월에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상담보호센터를 용산역 인근에 신설할 방침이다. 또 주요 역사에 사회복지 공무원을 배치, 노숙자의 보호센터 입소를 적극 권유하고 대한결핵협회와 공동으로 노숙자 결핵환자에 대한 검진활동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별도의 ‘쪽방’도 지원하기로 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초등생 범죄 저연령·흉포화

    초등생 범죄 저연령·흉포화

    지난 2002년 A(11)군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헌금함을 훔치러 교회로 갔다.B(13)군이 망을 보고 있는 동안 교회로 들어간 A군은 새벽 기도를 하고 있던 김모(70·여)씨의 지갑을 훔치려다 흉기로 때려 숨지게 했다. 강도살해 혐의로 기소된 B군은 법원에 의해 치료보호처분을 받았지만 정작 주범인 A군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늘어나는 초등학생 범죄 서울가정법원 가사소년개혁위원회는 지난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12∼19세인 소년범의 나이를 10∼18세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형사법상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형사 처벌이 불가능하다. 다만 12∼13세는 우범소년 또는 촉법소년이라고 따로 정해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만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서울가정법원에서 처리한 소년범 5356명 중 12∼13세 소년범은 1483명으로 27.6%에 이른다. 법원에서 형사 처벌이나 보호 처분을 받은 4명 중 한 명 이상은 초등학생이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초등학교 5·6학년의 범죄가 늘고 있고 집단 따돌림·폭행·성추행 등 내용도 점차 흉악해지고 있다.”면서 “이는 신체적 발달이 빨라지고 인터넷 등의 영향도 크다.”고 분석했다. 소년범 연령 하향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김선종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법이 전혀 관여할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에게도 형사처벌이 아닌 선도를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소년원으로 보내는 비율을 늘리기보다는 부모의 책임하에 보호관찰 명령을 내려 부모가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개혁위원회는 아울러 가정법원내에 소년법원을 만들고 형사부와 보호부를 설치, 형사와 보호절차를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소년범의 연령을 낮춤과 동시에 일반 형사사건의 국선변호사와 같은 국선보조인제도를 신설해 소년범들이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경찰관도 가정폭력범죄에 긴급임시조치권 앞으로는 가정폭력으로 출동한 경찰관이 피해자의 요구와 재발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해자에게 48시간 동안 퇴거 등 격리와 접근금지를 할 수 있다. 경찰관은 임시조치 후에 판사에게 임시조치 결정을 받아야 한다. 현재 정도가 심해 형사처벌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권한이 없어 경찰관이 가정폭력사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경찰이 돌아간 뒤에 가해자들이 “왜 나를 신고했느냐.”며 폭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법원의 임시조치를 받는데도 2∼3일 정도 걸려 이 기간의 가정폭력에는 무방비였다. 경찰의 긴급임시조치권으로 일단 긴급조치를 취하고 후에 승인을 받는 것으로 변경하려는 것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여의도 IN] 김무성총장 “이슈 대응력 부족” 자아비판

    “한나라당은 당내 역량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과의 연대에도 노력이 부족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이 31일 당 상임운영위 회의에 참석해 따끔한 ‘자아비판’을 해 눈길을 끌었다. 열린우리당의 ‘발빠른 현안 대응 행보’를 벤치마킹하자고 주장해온 김 총장은 “여권은 겉으로는 민생 챙기기를, 안으로는 한나라당 조이기 전략을 세워 구체적으로 실천했지만 우리는 공감대와 추진력이 부족해 실행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서 “특히 도시락 문제와 논산훈련소 인분사건, 국군포로 납북 사건에 대해 당의 즉각적 대응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연정론, 김진표 교육부총리 임명, 한·일외교 문서공개 등 정부가 제기하는 이슈에 무방비로 있었을 뿐, 이 이슈가 왜 이 시점에 제기됐는지 충분한 검토도 없이 모든 문제를 정치적·정략적으로 대응했다.”고 자책했다. 이내 회의장이 숙연해졌지만, 김 총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린우리당은 대학교수,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좋은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면서 ”고 말을 맺었다. 그는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씩 여야의 활동내역을 철저하게 비교 분석해 ‘반성’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기고] ‘쓰나미’지역 아동보호 시급하다/차혜선 월드비전 국제협력실장

    지난달 26일 발생한 동남아 지진 해일 대참사가 한달여를 맞은 가운데 최근에는 언론보도마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이번 참사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희생된 어린이들의 모습은 이미 여러차례 보도됐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백만 명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거나 고아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이 어린이들은 가족과 떨어진 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는 유괴범의 검은 손길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이번 대참사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국가적으로, 또한 민간단체 차원에서 적극적인 구호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 활동에도 불구하고 구호사업 초기 단계에 어린이 보호를 위한 특별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어린이들에게 가해지는 위험과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유약한 어린이들은 긴급구호상황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이제라도 아시아 쓰나미 긴급구호현장의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각국 정부와 각종 단체, 언론 등이 취해야 하는 보호 조치를 생각해 본다. 첫째, 이재민 수용소 내에 ‘어린이들에게 친화적인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찾아와서 다른 아이들과 만나 놀기도 하고 공동체 활동도 하며 공부도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말한다. 이곳에서 피해 어린이들은 점차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면서 재난으로 입은 참담한 경험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받게 된다. 둘째, 가족과 떨어진 어린이들을 등록시키고 가족찾기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족과 떨어진 어린이들은 학대와 착취, 질병과 영양실조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가족과 떨어진 어린이들을 등록하고 가족 혹은 친척과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가족을 찾지 못한 어린이들에게는 보호자에 의해 보호받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만 아동학대 및 착취를 막을 수 있다.‘어린이들에게 친화적인 공간’은 어린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적합한 장소이며, 또한 부모나 친척들에 의해 미아찾기 장소로도 사용될 수 있다. 셋째, 구호단체들의 아동보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아시아 쓰나미 현장에 파견된 모든 구호단체들은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명시한 아동보호정책을 수립하고 준수해야 한다. 구호기관들이 아동보호정책을 준수하는 것은 구호활동의 조건이 되어야만 한다. 넷째,‘눈에 안 보이는’ 어린이들을 찾아내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호활동의 대상에서 제외된 어린이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어린이일수록 가장 열악한 경우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 이상의 조치를 통해 피해 어린이들이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일상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월드비전은 지진해일 재난민 캠프에 3개의 아동센터(child friendly space)를 운영 중이며, 앞으로 10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 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은 노래, 그림그리기, 게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한 심리치료를 받으며, 웃음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지진해일 대참사는 긴급 구호상황에서 어린이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과제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차혜선 월드비전 국제협력실장
  • 여성노숙자 쉼터 늘린다

    성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여성노숙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된다. 앞으로 신축되는 노숙자 보호센터에는 여성전용 공간이 설치되고 또 전국에 있는 11곳의 여성노숙자 전용 쉼터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정부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회·문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올해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계획과 빈곤층 사회안정망 확충 방안을 마련했다.(서울신문 1월24일자 1·3면 참조) 방안에 따르면 현재 11곳에 불과한 여성전용 쉼터를 수요에 따라 늘리기로 했다. 또 신축되는 노숙자 보호센터에는 반드시 여성전용공간을 확보토록 했다. 이에 따라 오는 2∼3월 중 오픈 예정으로 서울역 근처에 개축 중인 노숙자 보호센터를 여성과 남성 공간으로 분리하고, 여성전용 상담센터와 세탁공간·잠자리 등을 제공키로 했다.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상담보호센터도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여성 전용공간을 따로 마련하게 된다. 회의에서는 또 오는 2008년까지 사회적 일자리 8만여개를 추가로 늘리고 자활후견기관 등 사회적 기업의 육성과 지원이 원활하도록 행정 인증시스템 구축이나 관련법 제정도 검토키로 했다. 또한 노인요양보험제도 도입과 보육지원 확대 등을 통해 사회서비스 분야 수요를 확대하고 제도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대형건설사 ‘M&A무방비’

    대형건설사 ‘M&A무방비’

    기업 인수·합병(M&A)을 앞둔 대형 건설업체들에 ‘기업 사냥꾼’ 경계 비상이 걸렸다. 외환위기 이후 쓰러졌던 업체들의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채권단이 본격적으로 매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상 건설사들은 적대적 M&A를 피하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건전한 자본가를 찾는 한편 우리사주조합 등에 의한 인수·합병을 꾀하고 있다. 남광토건이나 한신공영처럼 무일푼 기업 사냥꾼의 먹잇감이 되는 전철을 더이상 밟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하지만 현행 법테두리 안에서 적대적 M&A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매각작업이 가시화되면 검은 자본이 대거 달려들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남광토건이나 한신공영 사태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매각 앞둔 건설사, 적대적 M&A에 무방비 노출 매각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 굵직굵직한 업체는 현대·대우·쌍용·청구 등이다. 외환위기 이후 나름대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회사가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수주·매출이 증가하고 당기 순이익을 내는 등 재무 상태도 개선됐다. 하지만 채권단에 넘어간 이상 채권회수를 위해 공개 매각 절차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내년 3월이면 채권단과 맺은 경영협약이 끝난다. 올해 연말부터는 채권단이 경영협약을 연기하거나 매각을 결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 최대 건설사로 경영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대적 M&A를 노린 검은 자본에는 더없는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대우건설은 채권단이 이미 M&A를 통한 매각 방안을 내놓았다. 업계에서는 악성 ‘브로커’들이 모두 대우빌딩 주변에 몰려있다고 할 정도다. 대우 노조는 적대적 M&A를 통한 헐값 인수를 막기 위해 사원들이 적극 나서서 우리사주조합 형태의 인수까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덩치가 워낙 커 우리사주조합이나 국내 소규모 자본이 인수에 참여하기가 어렵고 검은 자본의 교묘한 전략전술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쌍용건설도 사원들이 인수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으나 대규모 검은 자본 앞에서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남광토건 전철 우려돼 남광토건이 기업 사냥꾼에 걸려든 대표적인 사례. 전 직원의 뼈를 깎는 노력을 바탕으로 2003년 우량 회사로 다시 태어나자마자 채권단은 매각 절차를 밟았다. 건전한 자본이 투자됐다면 곧 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기업 사냥꾼에 불과한 골든에셋플래닝 컨소시엄에 넘어갔다. 과정이 교묘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채권단이나 사원 모두 속았다가 지난해 10월 당시 대표이사 이희헌씨의 회사돈 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결국 어렵게 살려낸 회사는 다시 신용 등급이 추락하고 수주가 감소하는 등의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검은 자본의 실체는 대부분 건설업 경영과는 무관한 일시적 자금이다. 빼먹을 가치가 있는 회사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집어삼킨 뒤 웃돈을 붙여 되판다는 생각으로 덤벼든다. 우리사주조합이나 건전한 자본의 참여를 막기 위해 흔히 높은 가격을 제시, 우선매각협상자의 지위를 얻은 뒤 실사를 통해 값을 후려쳐 헐값에 매입하는 수법이 동원된다. 김영진 M&A연구소의 김영진 소장은 “M&A시장에 나올 건설사들이 남광토건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노조나 사주조합 등이 아무리 나서도 검은 자본의 교묘한 전략·전술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개발광풍에 파헤쳐지는 ‘생태계 寶庫’

    개발광풍에 파헤쳐지는 ‘생태계 寶庫’

    중남미에 ‘아마존 정글’이 있다면 제주에는 ‘곶자왈’이 있다. 아마존 열대밀림이 지구의 허파라면 곶자왈은 제주섬의 허파다.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돌무더기 위에 다양한 식물군들이 자라나 숲을 이루고, 나무나 돌에 붙어사는 희귀한 착생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곶자왈은 지하수를 생성하는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다. 법정 보호종인 천량금과 개가시나무를 비롯해 방울꽃, 큰톱지네고사리, 쇠고사리, 제주고사리삼, 큰우단일엽, 나도은조롱, 검정비늘고사리, 숫돌담고사리, 개톱날고사리 등 무수한 희귀식물군이 이곳에서 자란다. 우리나라 양치식물의 80%가 곶자왈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곶자왈 생태계’가 무분별한 도로개설과 골프장 및 리조트 건설로 인해 제모습을 잃고 있다. 위기속의 제주도 곶자왈 실태와 곶자왈 지킴이들의 활동상 등 곶자왈 생태계를 점검해 본다. ●한라산만의 독특한 숲생태계 유지 제주의 곶자왈은 대부분 해발 200∼600m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한라산 중턱을 동서로 연결하는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크게 한경·안덕곶자왈, 애월곶자왈, 조천·함덕곶자왈, 구좌·성산곶자왈 등 4개의 주요 곶자왈로 구분된다. 다시 북제주군 선흘곶자왈, 교래·함덕곶자왈, 조천·대흘곶자왈, 애월곶자왈, 종달·한동곶자왈, 수산곶자왈, 상도·하도곶자왈, 세화곶자왈, 남제주군 월림·신평곶자왈, 상창·화순곶자왈 등 10개 본류로 나뉘고 이것들은 다시 무릉·고산·저지·와산·산양곶자왈 등 수십개 지류로 갈라진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면서 한반도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라산만의 독특한 숲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부의 구좌·성산곶자왈은 후박나무 등 녹나무과 식물의 점유도가 월등히 높고 북부의 선흘곶자왈은 한반도 최대의 상록활엽수림지, 조천·함덕곶자왈은 붓순나무와 식나무군락지, 남부의 한경·안덕곶자왈은 국내 최대의 개가시나무 자생지로 꼽힌다. 곶자왈의 자랑은 뭐니뭐니 해도 ‘넘치는 생명력’이다.‘곶자왈사람들’송시태 대표는 “제주에만 있는 곶자왈은 크기 1m 이상 되는 블록형 암괴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고 이 암괴들이 식물성장에 필요한 보온·보습의 역할을 해 양치식물의 왕국을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제주 생태계의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천연난대림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반 사이로 10도 안팎의 지열 올라와 암반과 암반사이로 사시사철 뿜어 나오는 영상 10도 안팎의 지열, 이것이 한겨울에도 푸른 숲을 유지해 주는 에너지인 셈이다.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의 원천도 바로 ‘곶자왈’이다. 암석과 암석사이의 틈을 통해 빗물이 80% 이상 무한정 유입됨으로써 지하수 공급원이 되고 있다. 제주대 현해남(환경생명공학과)교수는 “곶자왈 지역의 투수성은 일반 지형에 비해 1000∼1만배 이상 빨라 시간당 50㎜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곶자왈은 이밖에 노루, 오소리, 다람쥐, 족제비, 등줄쥐, 비단털쥐, 뱀 등 야생동물이나 집게벌레, 딱정벌레, 하늘소 사슴벌레 등 곤충들의 주요 이동 통로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라산과 취락지 해안을 연결하는 생태벨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곶자왈 밀림’ 대부분은 수백년 동안 벌채돼 엄밀하게는 2차림에 속하지만 ‘빨리 자라는’속성으로 인해 원시림에 비견할 만한 생태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도 거의 유일한 상록활엽수림지대를 비롯해 낙엽활엽수림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온화한 지역인 서귀포시 섶섬이나 천지연 등 난대림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천량금, 검정비늘고사리 등 남방계식물군부터 최북단 두만강이나 압록강변에 분포하는 골고사리, 진퍼리 등 북방계식물군까지 두루 자생하는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자연자원이다. ●용암석·희귀식물 불법 채취도 빈번 이러한 ‘곶자왈’이 도로, 골프장, 리조트단지 등 갖가지 관광개발 광풍속에 훼손돼 위기를 맞고 있다. 본류 ‘곶자왈’가운데 세화곶자왈은 온천지구를 만든다며 이미 대부분 파헤쳐져 흔적만 남은 상태이며 월림·신평곶자왈도 리조트공사와 골재채취 등으로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애월곶자왈도 도로개설 등 각종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대의 상록활엽수림인 동백동산을 낀 선흘곶자왈 역시 묘산봉관광지구개발계획에 따라 파괴될 날이 머지 않았다. 군소 곶자왈들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곶자왈지대에는 또 수석인들 사이에 ‘바가지석(용암구)’‘신비석(용암수형)’‘부챗살(용암튜브 또는 용암수형)’‘뽀빠이(용암구 내부구조)’ 등으로 불리는 특이한 용암형상석들이 많아 전문 도채꾼들에 의해 잘리고 파헤쳐지는 수난마저 따르고 있다. 수석이나 화분·어항 등으로 사용하기에 그만이어서 어떤 것은 개당 수천만원까지 호가해 도채꾼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북제주군 고산곶자왈지대에서 천리향·백양금·춘란 등 자생식물 수백그루를 불법채취한 조경업자가 해경에 검거됐다. 이에 앞서 11월에는 남제주군 무릉곶자왈지대 4만여평에서 4.5t트럭 200대분의 자연석을 무단 채취한 조경업자가 구속됐고 10월에는 곶자왈지대에서 불법채취한 것으로 보이는 자연석 250여점을 목포행 카페리편으로 반출하려던 도채업자가 붙잡혔다. 이 모두 곶자왈을 앓게 하는 일들이다. ●조례제정 등 보호장치 마련을 제주도는 뒤늦게나마 곶자왈지대에 다량 산재하는 용암석 등 화산암류를 포함한 화산분출물, 퇴적암, 퇴적층, 자연석 등을 보존자원으로 지정 보호하기 위해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시행조례를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대부분의 곶자왈이 개발에 지장이 없는 생태계보전지구 2∼3등급임에 따라 생태적으로 우수한 곳을 골라 오는 2007년 GIS등급 재조정시 1등급으로 올려 무절제한 개발을 막기로 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이 정도의 보호계획은 턱도 없이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곶자왈지대에서 희귀식물이 발견된다 해도 보호종으로 지정되려면 최소 2∼3년이 걸려 그동안은 무방비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보호종 지정은 국가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어서 실제 보호종으로 지정되는 식물이라고 해야 한정될 수밖에 없어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소중한 식물자원이 국내외로 반출되거나 훼손될 일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강은정 제주YWCA 사회개발위원장은 “제주도 등 자치단체가 곶자왈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조례제정 등을 통해 희귀식물 보호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며, 지하수 유입이 쉬운 만큼 취약한 지하수 오염을 막기 위해서도 2등급인 지하수 등급을 조속히 1등급으로 상향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교수·교사등 50여명 ‘곶자왈 지킴이’ 앞장 제주도내 환경단체 회원과 교수·교사, 언론인 등 50여명은 ‘곶자왈사람들’이라는 환경NGO를 만들어 ‘곶자왈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8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창립행사를 갖고 앞으로 일체의 곶자왈 파괴 행위를 거부하고 보존에 앞장설 것을 결의했다.‘곶자왈 선언문’에서 이들은 “곶자왈을 통해 인간의 공존과 상생, 순환의 원리를 터득하고 미래 제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성장 만능주의를 경계하며 평화와 평등, 공존의 정신이 살아 있는 사회를 지향하고 환경 파괴적인 소비생활을 거부하는 친환경적 삶을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동안 음지에서 알게 모르게 곶자왈 보전을 위해 노력하던 이들이 무분별한 관광지 개발로 인해 생명의 터전인 곶자왈 파괴가 가속화돼 미온적인 보전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 사수를 공식 천명한 것이다. 이들이 창립을 서두른 것은 지난해 9월 승마장 사업자가 남제주군을 상대로 제기한 ‘승마장 사업승인 불허가처분 취소소송’에서 법원이 내린 판결이 계기가 됐다. 제주지법은 “남제주군이 곶자왈임을 이유로 사업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곶자왈에 대한 연구 조사 및 자료화 사업, 세미나 및 출판사업, 교육 및 홍보사업, 보존을 위한 각종 사업, 환경보전을 위한 각종 단체와의 연대사업 등을 펴나갈 계획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곶자왈이란 무엇인가 ‘곶자왈’이란 한라산의 화산활동으로 반액체 상태의 용암물질인 마그마가 기생화산인 오름을 생성하면서 흘러내린 곳을 따라 나무, 덩굴, 가시덤불 따위가 무성하게 자란 곳을 말한다. 골프장이나 승마장, 리조트호텔 등으로 적합한 해발 100∼600m지역에 분포돼 있다. 일부 학자들은 한라산의 화산활동 당시 스코리아류 등에 의해 운반된 자갈과 화구로부터 방출된 화산탄 및 화산자갈이 뒤섞여 쌓인 ‘암괴상 용암류(岩塊狀 熔岩流)’위에 양치식물 등이 자라면서 숲을 이룬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을 제외하고는 자연림 형태로 보존가치가 매우 뛰어나지만 그동안 벌채, 약초캐기, 표고버섯 재배장 등으로만 이용됐을 뿐 ‘버려진 땅’으로 천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환경론자들에 의해 생태계의 보고로 부각되면서 언론계와 학계, 해외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 생태적 가치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일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그 영화 어때?]새영화 ‘스노 워커’

    인간은 참 간사하다. 제 잘난 맛에 우쭐대다가 ‘쓰나미’같은 재앙을 겪어야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척이라도 한다. 대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요즘 같은 때, 문명에 기댄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영화가 바로 ‘스노우 워커(Snow Walker)’다. 베테랑 비행사인 찰리(배리 페퍼)는 병든 에스키모 소녀 카날라(아나벨라 피카턱)를 태우고 도시로 가는 중에 비행기 고장으로 북극해 오지에 추락한다. 생면부지의 두사람,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 앞엔 오직 허허벌판 설원뿐이다. 한번도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는 찰리는 두려움과 초조함에 미칠 지경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카날라는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비상식량인 콜라와 햄으로 연명하는 찰리는 생선을 낚아 날것으로 먹는 카날라가 역겹고, 카날라는 문명의 이기가 없는 곳에서는 마치 갓난 아기처럼 무방비 상태인 찰리가 안타깝다. 점점 혹독해지는 추위와 날로 심해지는 병마에 맞서면서 두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다. 찰리는 날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외투를 만들어입는 에스키모인들의 전통 생활방식에 적응하고, 카날라는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툰드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정신적인 교감은 설원위에 반짝이는 한낮의 태양처럼 맑고 투명하다.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콘크리트 문명에 갇혀 지내는 도시인으로서의 비애가 문득 가슴을 파고들게 만드는 영화다.2월25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두 公社의 ‘지하철 화재’ 명암

    한 순간의 선택이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의 명암을 엇갈리게 하고 있다. 1∼4호선을 운영·관리하는 지하철공사는 가연성 재질로 화재시 유독가스 배출의 주범인 전동차내 의자를 모두 불연성 재질로 교체했다. 그러나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는 1564량 가운데 436량만을 스테인리스 의자로 교체해 ‘화마’를 키웠다. 결국 지하철공사는 여론의 비난 화살을 피했지만 교체 진척도가 낮은 도시철도공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건설교통부의 지침에 따라 실시된 가연성 재질 교체작업은 전동차의 의자를 스테인리스로 바꾸고 바닥과 내장판에 단열재를 입히는 작업이다. 이 같은 교체작업은 서울시 지하철공사를 비롯해 도시철도공사, 부산지하철, 대구지하철, 인천지하철 등에서도 추진된다. 서울시민의 발을 관리하는 두 공사의 명암은 교체방식에서 이미 판가름 났다. 지하철공사는 화재발생시 일단 유독가스 배출이 심한 의자 교체를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는 부산, 대구, 인천 등 다른 대도시 지하철공사처럼 의자와 다른 내장재를 함께 교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따라서 지하철공사는 빨랐고, 도시철도공사는 느렸다. 지하철공사는 의자를 바꾼 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바닥과 내장판을 차례로 바꾸는 2원전략을 구사했다. 지난해 1612량의 전동차 의자를 모두 바꿨으며 내장재는 지난해 290량, 올해 600량을 포함해 내년까지 교체작업을 마친다. 물론 지하철공사에도 문제점은 있다. 건설교통부의 지침에 따라 차량수명이 5년이내인 332량은 교체대상에서 완전히 빠진 상태여서 화재 예방에 무방비 상태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436량의 내장재를 불연재로 바꿨으며 올해까지 494량,2006년까지 나머지 차량을 모두 바꿀 계획이다. 교체작업을 모두 마칠 때까지는 지하철공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일의 선후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기고] 에너지 절약에 미래 달렸다/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전세계가 소리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에너지 문제가 국가안보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에너지자원 빈국으로 수입 의존도가 97%를 넘는 우리나라에서 에너지자원의 확보 여부는 국가의 운명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남미 각국과 활발히 추진 중인 자원외교와 발맞춰,IMF이후 중단됐던 해외 유연탄 개발에 참여해 우리 기술과 자본으로 개발한 유연탄을 국내에 들여와 발전연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에너지자원의 확보노력 못지않게 에너지를 합리적이며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얼마전 정부는 원유와 석탄의 국제가격 상승으로 올해 에너지 수입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 1월부터 11월까지의 에너지 수입액은 444억달러로 작년보다 30%나 증가했으며 이것은 같은 기간 우리나라 총 수입액(2035억달러)의 22%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에너지소비량’ 세계 7위,‘석유소비량’ 세계 6위,‘석유수입량’ 세계 3위,‘온실가스배출량’ 세계 9위. 이것이 바로 자원빈국인 한국의 에너지부문 자화상이다. 또한 산업구조도 에너지위기에 대단히 취약하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다른 국가보다 더 치명타를 입게 된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4분의1 이상(26.3%)이 에너지다소비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소비 증가 속도다. 에너지소비량이 1990년 9260만TOE에서 1억 9360만TOE로 2배 넘게 늘었다. 미국도 겨우 19%만 늘었을 뿐이며, 독일은 오히려 감축에 성공했다.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한 중국도 31% 증가에 그쳤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물가안정과 산업경쟁력 향상을 목적으로 전기요금 등 에너지에 대해 저가격 정책을 이어온 까닭에 에너지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적 인식 및 대응능력이 부족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에너지다소비 구조로는 당면한 고유가는 물론이고 기후변화협약과 같이 날로 거세어지는 국제적 환경규제에 버텨낼 수가 없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의하면 2005년 2월 발효 예정인 교토의정서에 대해 우리나라 에너지다소비 기업의 60%가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에너지절약이 곧 국가경쟁력이며 제2의 생산이기 때문에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하고 하루빨리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체질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최근 정부는 산업, 수송, 가정 및 공공부문에서 추진할 88개의 부문별 에너지절약 추진시책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에 의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나라 총에너지의 8.2%인 1760만TOE를 절감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전도 전력공급 설비의 확충과 함께 전력사용을 효율적으로 감소시키는 ‘수요관리’를 고유가시대의 에너지정책 대안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나눔 경영’의 일환으로 국민기초 생활자를 대상으로 일반조명기기를 고효율조명기기로 무상으로 교체해 주고 있다. 고효율기기 무상지원사업은 시행 첫해인 올해 5000가구에 이어 내년부터는 연간 5만가구로 늘려 2007년까지 총 15만 5000가구에 244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제 에너지 절약과 효율적인 전기사용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에너지 저소비형 구조로의 전환, 신재생에너지 보급확대, 해외자원 현지개발 같은 에너지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을 지속적·체계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가계·기업·정부가 모두 힘을 합쳐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 [동남아 대지진] 인도양 ‘쓰나미’ 경보시스템 전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주변에서 26일 발생한 이번 ‘아체 지진’의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것은 경보체제 미비 등 무방비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동·서남 아시아의 연해지역에 지진 후 유례없이 강력한 해일이 밀려들었지만 아무 경보도 발동되지 않았다. 스리랑카, 인도 연해지역 등에 지진 해일이 밀려든 것은 해저 지진 발생 후 2∼3시간 뒤. 지진 발생에 따른 지진 해일인 ‘쓰나미’(Tsunami)의 발생에 대한 경보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수천명 가량의 피해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쓰나미’는 제트 여객기와 비슷한 평균시속 700~800㎞의 속도로 인도양 연안을 헤집고 다녔다는 것이다. 인도양 지역에선 1883년 발생한 지진 해일을 끝으로 지난 100여년 동안 피해가 없었다. 지진 발생에 따른 해일경보체계가 없는 것은 물론 지진 해일에 대한 지식도 전무한 상황이었다. 미 남가주대학 코스타스 니놀라키스 교수는 “갑작스러운 썰물 발생은 해일 발생을 의미한다.”면서 “‘쓰나미’의 성격을 알면 해일이 덮치기까지 10분 남짓한 여유 시간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1960년 칠레 대지진으로 ‘쓰나미’의 혹독한 피해를 입었던 태평양지역 국가들은 비교적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몰려오는 ‘쓰나미’에 대한 경보체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알류샨 열도, 남미 앞바다 해저에 ‘쓰나미’ 감지장치가 설치돼 있다. 또 하와이의 ‘태평양 쓰나미 경보센터’가 각국에 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쓰나미’ 피해가 연말 휴가시즌의 황금휴일에 발생한 것도 피해를 키웠던 이유 중 하나다. 당시 관광객들은 휴가철을 맞아 평소보다 해변지역에 많이 몰려 있었고, 해당국의 재해 관련 당국들도 느슨한 자세에서 지진과 해일 재앙을 맞았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던 인도 안드라 프라데시에선 26일 보름달을 맞아 물 속에서 종교의식을 벌이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이 그 강도만큼 전파 속도가 빠르고 파장과 지속시간이 길어져 피해가 더 컸다.”고 분석했다. 조용식 한양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진의 영향으로 발생한 해일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수심이 얕아지면 파고가 더 높아져 해안가에서는 거대한 물기둥이 마을을 덮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해일이 해안으로 다가서면서 속도는 수십㎞로 줄었지만, 고층건물 높이의 괴물로 변신하면서 육지를 강타했다는 것이다. 이석우 홍희경기자 sw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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