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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각각 민생공약(미 대선 열전현장:2)

    ◎“50년래 최악” 경제회생책 공방/부시,정부지출 억제·감세정책 제시/클린턴,“군사비 삭감·고소득층 증세”/페로는 “기업경험 살려 적자 줄이겠다” 미연방정부는 최근 미국의 극빈자수가 3천5백만명이라고 발표했다. 전체인구의 14.2%에 이르는 이 수치는 지난 1년동안 2백1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4인가족 기준 연간수입이 1만3천9백24달러,한화로 환산하면 한달수입 90만원 이하인 집을 극빈가정으로 계산한 이 통계는 1964년 이래 가장 나쁜 상황을 나타낸다.8월말 현재 실업률도 7.6%에 이르고 있다. 타임지의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미국민의 60%가 이번 선거전의 최대쟁점은 「경제」로 보고 있다.「대외정책」2%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각종 통계보다 더 심각하다.파산이 속출함으로써 빌려준 돈이 걷히지 않아 문을 닫는 은행이 최근들어 연간 2백∼3백개에 이르고 있다. 미국경제에 이상이 있다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도 지금 미국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그러나 그 증상과 원인에 대한 해석은 제각기 다르다. 극빈자 통계가 나오던 날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새로운 극빈자 통계와 관련,『부시행정부가 초래한 오늘의 경제는 50년래 최악』이라고 주장하면서 『공화당 정권이 지난 전당대회에서 내놓은 정책은 현재보다 더 나쁜 결과를 예고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이런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전제하고 『불경기는 가계수입과 극빈자 통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돼있다』고 코멘트했다. 집권 공화당의 일관된 논리는 현재의 인플레율이 30년래 최저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산업투자를 위한 은행대부 금리도 최상의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세계 전면적인 불황의 영향이지 정부의 시책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부시정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불황속에서도 최근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으며 91년 하반기부터 실질 경제성장률이 완만하긴 하나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적절한 정책의 효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시각때문에 지난 8월 휴스턴 전당대회에서도 공화당은 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새로운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정부지출의 억제와 감세정책이 그나마 눈에 띄는 것들이었다. 소비촉진을 위해 모든 납세자에게 일정률의 소득세를,투자촉진을 위해서는 자본이득세를 감면해주고 예산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부분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10%씩의 예산삭감정책을 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민주당은 공화당이 투자촉진이란 이름아래 자본이득세와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정책을 계속해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심화시켰으며 이의 결과로 중산층이 계속 축소되고 빈곤층을 확산시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왜곡시켜 놓았다고 주장한다. 클린턴 후보는 또 공화당이 집권 12년동안 무모한 군사비증액과 정책실패로 미국을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클린턴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중산층에 10%의 감세조치를 하는 대신 연소득 2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증세정책을 펴겠다고 말한다. 또 군사비를 줄이는 대신 교육훈련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쪽의 시각에 다같이 비판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부시에 대해서는 이미 해오던 정책때문에 경제가 오늘에 이르렀는데 같은 정책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은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지 경제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그러나 공화당의 우파들은 부시가 88년 선거공약을 깨고 90년 민주당의회의 압력을 받아 증세정책을 받아들여 공화당 정책에 실효가 없었으므로 정책을 보다 우파적으로 강화해야 된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클린턴의 공약 또한 그럴듯한 비결은 있으나 무슨 돈으로 그많은 간접자본 투자를 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따른다. 로스 페로 후보는 그의 정책구상을 반영시키기 위해 재도전에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의 정책이 과연 어떤 것인지 내놓은 일이 없다.▲세제개혁을 통한 공정성 확보 ▲일본통산성과 유사한 정부·기업간 전략협력기구 설치가 그나마 그가 제시한 구체적 정책대안이다. 정책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기업경영 경험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채무국이 된 미국의 국가재정을 정상궤도로 돌려놓겠다고 한다.최근 그는 재정적자를 어떻게 줄이겠느냐는 질문에 『휘발유세를 올려 보완하겠다』고 답변했다가 자동차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지탄을 받은 일이 있다. 초반의 「페로돌풍」은 기성정치제도에 대한 그의 도전이 변화를 바라던 미국의 전반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지 새로운 정책이 아니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색깔차이가 점차 엷어져 가고 있는게 역사적 추세이고 부시와 클린턴이 모두 당내 중도파를 대표하고 있어 세상을 보는 눈에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작은 정부라는 이름 아래 강자를 대변하는 공화당과 사회정의라는 간판으로 큰 정부론을 펴는 민주당간의 이념적 뿌리는 아직도 남아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 화해의 뒤안길엔 아직 간첩이(사설)

    전민중당공동대표겸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민사협)고문 김락중씨와 일당 3명이 「진보적 지식인」으로 가장,암약해온 북한의 고정간첩임이 드러나 구속됐다.국가안전기획부가 7일 발표한 중간수사결과에 따르면 김씨 일당은 북한에서 파견된 공작원으로부터 미화 2백10만달러를 전해받아 민중당창당기금,재야단체의 설립및 운영비,14대총선에 입후보했던 민중당후보들의 선거자금 등으로 제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북한은 김씨를 주축으로 한 간첩망이 결성한 민중당과 재야단체의 암약을 북돋우기 위해 대남공작기구인 「사회문화부」안에 별도로 「13과」라는 것을 설치,특별관리해온 것으로 파악됐다.또 김씨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91년 10월 김일성공로훈장을 받은데 이어 그해 12월에는 「민족통일상」도 받았다고 한다.일부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서울에 수많은 고정간첩들이 암약하고 있다고 경고해왔는데 이번 사건은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안기부는 이번 사건을 북한이 「통일혁명당」과 같은 비합법적 지하당건설을꾀해온 과거의 수법에서 탈피,재야진보세력을 결집시켜 남쪽에 합법적인 전위정당을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북한의 선전·선동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우리도 이 분석에 공감한다. 우리사회의 학원과 근로현장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미군철수,양심수 석방등의 구호가 난무하고 인공기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이같은 일련의 사태가 김씨와 같은 지식인 간첩들로 인해 전파,확산됐음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남북간의 일부 화해움직임만 볼것이 아니라 그 반대 측면도 신중히 배려,보다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함을 실감하고 있다.국가보안법은 언젠가는 철폐되어야겠지만 북한이 「남조선해방」이라는 대남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란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임을 이번 사건은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또 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 북한당국에 엄중경고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된 이후 남북사이에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다각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그런데도 북한당국이 체제논리에 얽매여 대남도발을감행하고 있는 것은 반민주적인 작태이며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이 아닐 수 없다.한편으로 대화하는 척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대남도발을 계속한다면 남북의 화해와 평화는 요원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정부는 오는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8차 고위급회담에서 각종 대남도발을 엄중 경고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전민련·전대협등 일부 「주사파」들도 이번 사건으로 활동이 위축된 것을 자탄만 할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모한 작태가 이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느껴야 할 것이다.또 우리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소 느슨해진 대북경각심을 가다듬어 민족화해와 통일작업을 계속 추진하되 어떤 환상에 들뜸이 없이 차분하게 단계적으로 화해와 협력을 다져나가야겠다는 점을 각성해야 할것이다.
  • 서린호텔 곧 갑을사옥으로 변신

    ◎빚 수백억 안고 부도… 헐값에 경매/73년 건립… 호텔내 사우나로 유명/매입사,작년매출 1천7백억의 화섬업체 서울 도심의 금싸라기땅에 있는 서린호텔(대표 이종성)이 중견 화섬업체인 대구의 (주)갑을(대표 박창호)의 사옥으로 바뀐다. 서린호텔은 지난 1월24일 은행권에 1백80억원과 단자·신용금고등 제2금융권및 사채시장에서 끌어다 쓴 수백억원의 빚을 안고 부도를 냈었다. 서린호텔은 대표 이씨가 80년대 중반이후 건설및 전자부품업등 사업확장에 나섰으나 사업여건의 악화와 무모한 경영으로 자금난에 봉착,쓰러졌었다. 호텔측은 지난해 10월 제값을 받기 위해 자체매각을 추진했으나 주차장이 협소하고 부동산경기가 침체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채권은행단에 넘겨져 18일 법원의 3차 경매에서 감정가보다 40억원이 싼 1백82억원에 갑을에 낙찰됐다. 서린호텔은 해방전 만주에서 무역업으로 돈을 번 이만규씨(78년 작고)가 서린여관으로 출발,지난 73년 아들 이씨에게 물려준뒤 서울 종로구 서린동 143의 현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대지 3백6평에 지하2층·지상18층 규모의 서린호텔은 호텔내 일식집의 튀김코너와 정·재계인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18층 사우나로 유명했다. 이 호텔을 인수한 갑을은 국내 굴지의 화섬업체로 갑을그룹의 무역창구이자 주력업체이다. 대구에 본사를 둔 갑을은 자본금 4백80억원에 지난해 1천7백1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갑을은 서린호텔을 개축,새 사옥으로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갑을은 현재 갑을합섬그룹의 소유인 서울 용산구 갈월동 갑을빌딩에 세들어 있으며 지난 6월에는 종로구 적선동 매산빌딩을 인수하려다 경매무효로 실패했었다. 서린호텔은 도심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있으나 교통부로부터 관광호텔업무취소조치를 받아 도시계획을 변경할 경우 건축물의 용도를 바꿀수 있다.
  • 무모한 통일소동 「범민주대회」(사설)

    이른바 「범민주대회」때문에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고 국민들은 이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범민련이란 재야단체와 전대협이란 학생단체가 범민주대회를 어떤 방법으로든 치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경찰은 이를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서울과 광주에서는 한동안 사라졌던 화염병시위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해마다 이맘때면 겪는 일이지만 왜 이래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 금할수 없다. 우리가 여러차례 지적한바 있지만 범민주대회는 북한이 남쪽의 일부 재야인사와 학생들을 부추겨 「남조선해방」을 위한 혁명역량을 축적하고 민간주도의 통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대남전략의 일환이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요즈음 거의 매일 재야세력과 학생들에게 반정부투쟁을 선동하고 있다.지난 11일 노동신문은 범민족대회를 봉쇄하는 것은 「온 겨레의 통일염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이라고 강변하면서 『남조선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통일에 역행하고 있는 남조선 집권자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등 악의에 찬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범민주대회가 그들의 통일전선전략에서 나온 하나의 책동임을 자인한 것이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기본합의서가 발효된 이후에도 시대착오적인 도발을 계속한다는 것은 남북관계에 새로운 난관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볼수 밖에 없다.이산가족 노부모 고향방문같은 인도적인 사업은 무산시켜 놓고 범민족대회라는 무모한 통일소동을 남쪽에서 펼치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북한당국은 말할것도 없고 북한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범민련과 전대협도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통일을 저해하는 반민족적 집단으로 지탄하지 않을수 없다. 김일성주체사상을 신봉하고 폭력시위를 주도해온 이들 집단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그런데도 범민주대회를 외치고 있는 것은 대회의 성사에 뜻이 있다기 보다 행사추진을 통한 전열정비와 연말로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선거에서의 반정부·반여당투쟁의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망상이 아닐수 없다. 이들은 걸핏하면 국민을 앞세우고 통일을 부르짖는다.대다수 국민이 외면하고 있는데도 국민을 앞세우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북한의 장단에 따라 통일을 부르짖는것은 민족을 기만하는 일이다. 우리가 범민련과 전대협에 주고싶은 충고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라」는 것뿐이다.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일정책은 모두가 잘못이고 북한의 통일전략은 모두가 옳다는 식의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는한 우리 사회는 이 집단들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범민주대회를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어처구니 없는 통일소동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면 그 죄과는 그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무엇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며 무엇이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한 바른 길인가를 냉엄하게 성찰해 주기 바란다.
  • 상주 유정관광농원 대표 김장환씨(이사람)

    ◎온몸으로 실천하는 농촌사랑/관광농원 수입 고향발전·이웃돕기에 환원/7억들여 버려진땅에 동·식물원 꾸며/소년가장들에 5년간 2억여원 지원 가난이 싫어 미련없이 떠났던 고향.그리고 객지에서 겪어야했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벌었던 돈. 그 돈을 들고 고향을 찾아 살기좋은 고장으로 만든 김장환씨(48·경북 상주군 내서면 노류리 유정부락). 경북 상주시에서 충북 보은으로 잘 포장된 아스팔트를 따라 차를 타고 15분쯤 가다보면 1만5천평규모의 유정관광농원이 나온다.이곳이 김씨가 버려진 고향땅을 다시찾아 일궈낸 땀의 열매를 맺은 곳이다. 김씨의 일과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분재·수석에 물을 주는 것으로 시작,농원에서 키우는 원숭이·공작에게 먹이를 주고 이어 사과나무에 비료를 주고 표고버섯을 돌보느라 하루해가 짧기만하다. 지난 63년 그는 잘살아 보기 위해 맨손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돈을 버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닥치는대로 했다. 처음 6∼7년간은 막노동은 물론이고 가게 점원으로까지 일했다.주위에서 「노랭이」소리를 들으면서 푼푼이 돈을 모아 조그만 트럭을 1대 구입,화물운수업에 나섰다.말이 운수업이지 자신이 운전사와 인부의 역할을 다하는 고된 일이었다. 가난이 한이었던 그는 끼니를 굶다시피해가며 돈을 모았다.큰 돈이 모이는대로 차를 샀고 지금은 택시 25대,버스 50대를 가진 탄탄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됐다. 그는 한시도 고향을 잊지 못해 택시회사의 이름도 유정부락의 「유정」을 따 유정운수로 이름지었다.그가 경영하는 관광회사도 그래서 유정관광이다. 『이제 자리도 잡혔으니 고향으로 가자』지난 79년부터 매년 여름이면 고향을 찾아 면내 노인 2백여명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이 어린시절 나를 길러준 고향에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직접 고향에 내려가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는 고향발전을 위해 농원을 시작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음식점 숙박시설등을 갖춘 관광농원을 만들어 놓으면 도시인들이 이곳을 찾게될 것이고 그러면 마을의 농산물등의 수요가 늘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생각에서 였다고 했다. 『주위에서는 무모한 사업이라며 말리기도 했죠.그렇지만 저는 돈을 벌기위한 것이 아닌 고향을 위한 것이기에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공사도 고향사람들을 불러서 하다보니 공기가 6개월이나 늦어졌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그는 이제 서울의 회사일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아예 고향에 내려와 살다시피 한다. 농장 2천7백여평에는 사과나무 5백그루를,1천1백여평에는 표고버섯단지를 만들었다.이밖에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틈틈이 모았던 국내외 희귀화석 1백30여점과 2천여점의 분재,3천여점의 수석을 농원 곳곳에 전시했다.상주지역의 옛생활용품을 수집,민속전시관도 세웠다. 그리고 원숭이 사슴 곰등을 들여와 3천여평에 동물원을 만들고 농원뒷산에 흑염소 2백마리,청둥오리 5천마리,호로조 2천마리,토종닭 3백마리등을 방목해 사육하면서 농어민 후계자들에게싼값으로 분양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7억원을 투자한 농원이지만 연간 소득은 8천여만원밖에 올리지 못합니다만 오히려 저에게는 그것이 보람으로 다가오고있습니다』 김씨는 이 수익금 가운데서도 반드시 절반을 매년 유정부락 이웃마을을 비롯,상주군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쓰고있다.한해에 경로잔치,불우소년소녀가장돕기등에 쓴 돈이 3천5백여만원을 넘어 지난 5년간 2억여원을 고향을 위해 사용했다. 노류1리 이장 김영택씨(58)는 『김씨는 고향마을을 위해 너무나 좋은 일을 많이 해오고 있다』면서『특히 유정관광농원을 조성해 고향의 발전과 농가소득을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 “14대국회 공전 두달” 각계서 비판의 소리

    ◎「국회볼모」 정치공세 누굴 위한거냐/원구성 않으면 국회무용론 대두/「단체장」에만 매달리는 건 당략적 「좁쌀정치」/민생현안 쌓였는데 정치권이 걸림돌 돼서야/시대착오적 투쟁에 국민은 심란 14대 국회가 임기개시 2개월이 넘도록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정상화국면으로 가기보다는 여야의 극한 대립이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다.이에따라 지방자치단체장선거라는 여야간의 쟁점은 물론 산적한 민생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야당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여론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주인(헌정회회장)◁ 국회의 원구성은 의원들에게 부과된 의무이다.의원에 당선되면 국회에 나가 원구성을 하는것이 국민에 대한 약속이며 제일큰 의무이다.그런다음 원내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쟁점에 대한 승부를 벌여야한다.정당끼리 원구성을 하느니 마느니하는 대화는 무의미하다.기본임무인 원구성을 우선 한다음 토론과 민주주의방식에 따라 결론을 내려야한다.타협하지 않는 정치는 딱한 정치이다.야당도 그동안 단체장이 없었던 선거가 전부부정선거였던가를 생각해봐야 한다.여당도 실행법존중의 의무가 있는만큼 단체장의 내년선거등 일부양보를 통해 극한대립은 막아야 할것이다. ▷김인수(민자당의원)◁ 정치란 무엇인가.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를 보자.총칼없는 「경제전쟁」시대이다.더욱이 국내경제는 중소기업체 무더기부도,증시주가 하락등 심각하다.또한 물가고 등 민생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잘 풀어나가도록 활력을 불어넣어야 될 정치권이 거꾸로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야당이 매달리고 있는 지자제는 국가과제중의 하나일 뿐이다.지자제에만 매달리는 것은 당리당략적인 좁쌀정치이다.당략적문제는 국회를 열고 국회안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마땅하다.결국 모든 정치의 잘잘못은 국민이 심판할 것이 아닌가. ▷김호일(무소속의원)◁ 먼저 14대국회가 임기개시일(5월30일)이 2개월10여일이 지나고도 원구성도 못한채 공전상황에 처하고 있음에 대해 국민들에게 죄스러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이러한 모든 원인은 법에 명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기인되고 있다.결자해지의 자세로 대통령과 여당대표가 용단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위기를 방불케하는 국난을 맞고있으므로 여야지도자및 의원들은 산적한 국사를 논의하기위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국회를 정상화시켜야된다는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여주기 바란다.단체장선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기위해 무조건 국회를 정상화시켜 국회안에서 모든것을 논하는 대승적자세로 임해야한다. ▷김해석(국민당의원)◁ 우리는 임시국회가 파행으로 끝나면 정기국회까지 침몰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때문에 이번 임시국회에선 어떤 희생과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국회정상화에 동참한다는 입장이었다.그러나 민자당이 오히려 그 길을 차단하고 있는 느낌이다.여당이 스스로 정국불안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산적한 민생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국회가 반드시 정상화돼야 한다.국회정상화가 안돼 국민불안이 가중되고 있다.사실 작금의 주가폭락사태도 정국불안사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이제라도서로가 한발짝씩 양보해 국회정상화의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박상기(변호사)◁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며 입법활동이 국회의 가장큰 의무이자 권리이다.단체장선거문제가 국회정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데 관련법에 대한 개정문제를 토론하고 의결하는 곳이 바로 국회이다. 13대와 14대국회 7개월동안 국회를 공전시키고 이제와서 자신들의 의무·권리문제를 정치쟁점화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정치공방은 정치공방으로 그쳐야 한다.어떻게 국민의 민생을 다루는 국회를 볼모로 정치공방만 벌일수 있는가.국회의원의 기본의무인 국회활동을 외면하고서는 어떠한 이유로든 설득력을 가질수없다.국민의 선택도 의무를 다한 다음 요구해야 할것이다. ▷이달순(수원대교수)◁ 정국이 극한대립으로 가는 것은 구시대의 사고방식 때문이다.일제하나 독재치하에서는 극한투쟁의 방법밖에 없었지만 민주화시대에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야당은 먼저 국회에 들어가 원구성에 협조하고 단체장선거실시시기등을 논의해야한다고 본다.국회에서의 대화와 토론,의정활동을 통해 자신의 주장과 입장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아직까지 극한투쟁만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최인선(기아농구팀감독)◁ 바르셀로나에서 연일 날아드는 금메달 낭보와는 대조적으로 여야의 정략에 휘말려 문조차 못열고 있는 국회를 보면 답답하기가 이를데 없다. 여야가 각각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스포츠인으로서 보면 여야 모두 「페어플레이」를 하는것 같지가 않다.더티플레이가 관중들의 외면을 면치 못하듯이 장외에서의 무모한 힘겨루기도 국민들의 지탄밖에 받을 것이 없을 것이다.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여야가 하루빨리 「페어플레이」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양계숙(여성연맹회장)◁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암담할 뿐이다.때마침 올림픽에서 땀흘려 메달을 거두는 우리 선수들과 비교하면 정치는 더욱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몇달째 공전하고 있는 국회를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는가.장외를 떠도는 국회의원상이 자신들을 뽑아준유권자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투영될 것인가를 한번쯤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들마저도 경제침체등 갖가지 나라일들을 걱정하고 있는 판에 의원들이 국정을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다.국회안에서 정치적 의견차이를 풀어가는 성숙한 의원상을 기대해본다. ▷최동실(오산고사격코치)◁ 운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열심인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지루한 입씨름만 하고 있으니 한심한 느낌마저 든다. 정치인들은 이제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 선수들이 금메달을 위해 땀을 흘렸듯이 국민들을 위해 땀흘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첫날 여갑순선수가 전해주었던 것과 같은 시원한 소식이 이제는 여의도에서 들려오기를 바란다.
  • “제 2걸프전 먹구름”… 긴장의 중동

    ◎부시는 과연 결행할건가/영·불과 합세 “본때 보이겠다” 완강/안보보좌관 소집… 군사행동 계획 완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유엔의 대량살상무기사찰팀의 활동을 봉쇄하고 있는데 대해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무엇보다 후세인의 이같은 행동은 미국을 필두로 한 유엔의 권능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특히 미국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일 이라크가 유엔특별사찰팀의 농무부 진입을 막을때부터 사찰팀은 걸프전의 휴전협정에 따라 이라크내의 핵및 생화학무기,이를 운반할 미사일의 제거임무를 부여받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외교경로를 통해 강조해왔다.그러나 2주일이 지나도록 이를 수용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찰팀의 신변에 위협을 가하는 등 노골적인 휴전협정파기행위를 자행했던 것이다. 미국은 후세인의 이러한 휴전협정농락행위가 계산된 행동이며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내문제해결에 몰두하도록 여론의압력을 받고있는 부시대통령이 쉽사리 군사행동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에 근거하여 미국의 반응정도를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미국이 후세인의 유엔사찰팀 활동봉쇄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 이를 계기로 이라크가 유엔과 체결한 휴전협정을 사문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그러나 이라크의 휴전협정파기행위를 용납할수 없으며 이점에 관한한 영국·프랑스등 동맹국과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제2차 걸프전을 치르더라도 본때를 보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이 24일 주말휴가일정을 취소하고 25일 아침 고위안보보좌관들과 이라크사태를 총점검한 것이나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한 미국을 강력한 1등국으로 유지시킬것』이라고 다짐한 것은 바로 미국의 이같은 강경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조치는 이번 주말에 후세인에게 「휴전협정준수」냐,「무력제재감수」냐를 택일토록 최후통첩한뒤 태도변화가 없을 경우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의 바그다드공습을 감행한다는 복안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페르시아만과 지중해상의 항공모함,터키밋 사우디공군기지 등 4개 방향에서 F­117 스텔스폭격기,F­15E 장거리전폭기·F­14·F­16전투기,A­6 폭격기 그리고 정찰기·공중급유기·전파방해기 등을 출격시킨다는 작전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단호한 입장은 후세인이 사찰팀의 활동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빠르면 내주중에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후세인의 대응책과 선택/사찰타협안 제시 등 시간벌기 작전 구사/“휴전협정 조건 대부분 수용” 강변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등 유엔안보리 국가들이 이라크에 대한 무력제재를 위한 발빠른 수순을 밟고있는 가운데 결전을 앞둔 사담 후세인대통령의 대응여부가 주목되고 있다.후세인은 무얼 믿고 유엔 무기사찰팀의 농무부청사 사찰을 거부하는가.단순히 부시 미대통령에 대한 후세인의 「자존심」때문인가,아니면 군사행동에 곤혹스러워하는 미국의 입장을 읽은 탓인지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이번 사태를 보는 이라크의 시각은 지난 91년2월 걸프전이 끝난이래 종전에 따른 의무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유엔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지켰다는 점에서 서방측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달리하고 있다.이라크는 이번 농무부청사 사찰단을 제외하고 40개의 유엔 무기사찰단이 그동안 이라크 현지에서 아무문제없이 활동하면서 5백개소를 수색했다고 주장하고 대체로 사찰단에 협조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특히 이라크는 다량의 화학및 탄도무기와 소량의 핵및 세균무기용 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이런 무기의 생산계획과 공장도 밝힌바 있다.또한 보유가 금지된 무기·시설의 파괴및 주요 핵연구시설 파괴를 허용했고 헬리콥터와 U-2기에 의한 사찰단의 감시비행을 격렬한 항의끝에 동의했다. 인권문제와 관련,이라크는 1년여동안 유엔경비병 5백명과 유엔직원 5백명이 쿠르드족이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지방과 남부의 시아파 회교도지역에서 인도적 활동과 식량분배에 종사하도록 허용했다. 이처럼 이라크는 미국등의 내정간섭에 가까운 요구조건을 수용했는데도 불구,패자를 끝까지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라크측의 이 전략은 사정이 그렇게 여의치 않다. 무엇보다 수도 바그다드 상공에 대공포의 섬광이 난무하는 다국적군의 초토화전략이 또다시 재현되는게 두렵기 때문이다.아랍세계의 맹주를 꿈꾸며 지난번에 시도한 무조건「버티기 전략」은 국내정세 변화로 무모한 인명희생만 따랐을 뿐이다.따라서 미국도 군사행동을 주저할수 밖에 없으리라는 판단하에 후세인의 체면도 살리고 우선 시간을 벌자는게 이라크측의 계산인 것같다. 이와관련,안바리 유엔 주재 이라크대사는 24일 본국정부가 농업부청사 사찰과 관련한 타협안에 대해 사찰단의 규모축소를 포함한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할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앞서 빈 소재 유엔사무소에 주재하는 라힘 알 키탈 이라크대사가 오스트리아나 스위스같은 중립국전문가로 사찰단이 구성될 경우 이들의 농업부청사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한 발언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이같은 일련의 발언들은 이라크의 사찰거부로 야기된 미국을 위시한 서방측의 군사공격 가능성을 피하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여 향후 이라크측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 전술핵 미철수/한국·유럽 등 배치 2천4백기 본국회수 함축

    ◎“지구촌 핵추방” 첫 가시적 성과/한국 「핵부재 선언」 재확인 된셈/「제3세계 핵보유」 저지가 과제 미국이 2일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의 철수가 완료됐다고 발표함으로써 인류는 「핵없는 세계」를 향해 다시한번 의미있는 일보를 내디뎠다. 이로써 지난해 9월말 부시 미대통령이 약속한대로 공군,즉 전폭기에 장착되는 전술핵무기를 제외한 2천4백기의 해외배치 지상 및 해상발사핵무기들이 모두 미국본토로 회수돼 곧 폐기되게 됐다. 이번 철수가 완료된 해외배치 미국전술핵무기는 ▲1천개의 포탄두 ▲7백개의 랜스미사일 탄두 ▲2백개의 B­57잠수함공격용 폭뢰 ▲선박에서 제거된 5백기의 전술핵무기 등이 포함돼 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부시대통령의 발표에 앞서 성명을 통해 미국이 지상에 배치한 핵포탄,단거리 미사일,해군수중핵폭탄등 수천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다고 발표함으로써 부시대통령의 발표를 뒷받침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18일 『우리나라 어디에도 하나의 핵무기도 없다』고 밝힌 노태우대통령의핵불재선언도 이번 부시대통령의 발표를 통해 재확인된 셈이됐다. 지난 87년 12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INF(중거리핵전력)폐기협상이 타결된 이래 미소양국은 핵없는 세계(제로 옵션)를 향해 꾸준한 진전을 이루어왔다.이번 부시대통령의 발표는 지금까지 나온 일련의 군축약속이 현실화된 최초의 성과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9월 소련의 쿠데타실패 직후 부시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소련측에 제시하며 소련에도 유사한 조치를 촉구했던 사항이다.1년이 채안되는 짧은 기간내 이같이 미국의 해외배치 핵무기 철수작업이 완료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서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핵억지를 근간으로 한 두 핵강국 미국·러시아의 전략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술핵 폐기와 함께 10년 가까이 끌었던 전략핵무기제한협상(START)도 지난해 7월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각자 보유중인 핵탄두를 3분의 1씩(미소 각 6천4백기 수준으로)감축한다는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었다.지난 6월 워싱턴 미·러시아 정상회담에서는 오는 2003년까지 미국 3천5백기,러시아 3천기 수준으로 전략핵무기를 추가 감축키로 합의함으로써 핵감축에 관한한 이제 미·러시아는 거의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전략핵 부문에서 대규모 폐기작업이 시작될 경우 경제난에 허덕이는 러시아측에 핵폐기 작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경비를 미국이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딕 체니 미국방장관이 2일 미상원군사위 청문회에서 증언한바와 같이 이라크·북한등 제3국의 「무모한」핵무기개발을 어떻게 저지시킬 것이냐는 문제이다.동서 핵대결로 인한 인류전멸의 위협은 줄어들었지만 지역패권욕을 내세운 모험주의 세력들의 핵보유 위협이 보다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6·25남침… 새 증언·새 진상

    ◎구소 국방부 군사연구소 코로트코프박사등 증언/대남 「선제타격작전」 소군고문단장이 수립/“북 「강건위」부실”… 스미르노프가 작성/북한군,49년초부터 “공격훈련 위주로”소군사 고문단,한때 직지사에 주둔/스탈린,극동군 50만 국경배치 추진… 주은래와 회담뒤 철수 김일성이 무모한 한반도공산화전략실현을 목적으로 저지른 「반민족·반평화적 침략전쟁」인 6·25동란에 대한 증언과 사료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이 나라 4천만 겨레에게 참담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6·25.그 6·25가 북한에 의한 남침이었음을 밝혀주는 구소련군 고위장성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중심으로 당시 「전쟁주체」였던 김일성의 흉계와 북한선제공격의 진상을 밝힌다. 오는 25일로 6·25동란 발발 42주년을 맞는다.「민족상잔의 비극」 6·25가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목적으로 김일성이 주도한 반민족,반평화적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은 부동의 정설.특히 이같은 시각은 구소련 붕괴후 지금까지 극비문서로 분류되어 대외공개가 금지됐던 관련자료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더욱 분명한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최근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군사보좌관으로 구소련 국방부의 군사연구소장을 역임한 드미트리 볼코고노프대장과 또 같은 군사연구소의 책임연구원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77)는 6·25가 김일성의 적극적인 남침주장과 이에 동조한 스탈린의 지원으로 일어났다면서 그 근거로 국방부의 비밀문서들을 제시했다. 볼코고노프에 따르면 김일성은 50년 2월4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를 통해 스탈린에게 보낸 암호전문에서 『남한해방을 위한 3개사단 증강용 탄약과 무기등 군수물자공급을 요청』했다고 한다.이에 대해 스탈린은 스티코프를 통해 2월9일 『아무런 위험성이 없고 성공이 전면적으로 보장되는 조건에서 귀하의 남침제의에 동의할 수 있다』면서 북한이 요청한 군수물자 공급지시가 이미 내려졌음을 통보했다는 것. ○스탈린,전쟁 승인 볼코고노프는 스탈린의 이같은 회답은 전쟁개시를 사실상 승인한 것이며 이에따라 김일성은 남침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트코프의 증언 역시 볼코고노프와맥을 같이하고 있다.『한국전쟁이 어느 편에 의해 발발됐는가는 분명하다.모스크바와 평양이 「해방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다만 시기에 관해서는 김일성이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 요컨대 이같은 사실과 주장은 6·25동란이 일부의 견해처럼 남한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및 중공의 지원하에 저지른 남침전쟁이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그러면 과거 소련은 얼마나 깊이 한국전에 개입했을까?이와 관련,경희대학교의 나종일교수는 지난 20일 「현 상황에서 한국전쟁의 재조명」이란 주제하에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한국전에서의 소련의 역할 규명에 나서 관심을 끌었다. ○소련,광범위 개입 이 세미나에서 「소련과 한국전쟁」이란 주제논문을 발표한 나종일교수는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측에서 새롭게 공개된 자료들을 인용,한국전에서의 소련의 개입정도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했다고 주장했다. 나교수는 1950년11월부터 1953년 휴전때까지 소련은 연인원 6만∼7만명의 공군을 참전시켰으며 조종사 외에 레이다,통신,방공,방역 등의 병과에서도 파병을 했다고 밝혔다. 개전 초기 1개 항공사단으로 작전에 나섰던 소련의 항공부대는 중공군의 요구로 확충되기 시작,50년 11월부터는 3개 항공사단,1개 고사포사단,1개 독립연대로 편성된 제64독립항공군단으로 증강됐다고 한다.또한 같은 세미나에 참석했던 러시아의 이고르 셀레바노프장군(78)은 자신이 51년 스탈린의 특명으로 북한에 급파돼 유엔군의 세균살포 여부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고 밝혀 상당수의 의무관련 요원들도 한국전에 참가했었음을 분명히 했다. ○세균전 “사실무근” 그러나 지난 50년4월부터 52년말까지 소련군준장으로 북한 인민군의무감실 수석고문으로 근무했던 셀레바노프장군은 전문요원들의 조사결과 유엔군이 세균을 살포했다고 한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증언,한국전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교수(미시카고대)의 세균탄사용 주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편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도 같은 날 경희대 주최 세미나에참석,「한국전쟁에 관한 새로운 시각」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50년9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스탈린의 지시로 소극동군 50만명이 한국전 투입에 대비,북한­소련국경에 배치됐으나 며칠뒤 스탈린이 다시 내린 명령에 따라 철수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코로트코프박사는 『당시 국경으로부터의 소극동군 철수는 휴가중이던 스탈린과 중공의 모택동이 급파한 주은래의 논의결과에 따른 것』이라면서 『스타린은 당시 미국과 전쟁을 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극동군을 한국전에 투입,미국과 전쟁하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코로트코프박사는 『한국전쟁은 스탈린의 주도하에 김일성이 대리전을 치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일성이 대리전” 특히 나교수는 6·25와 관련,「선제타격작전계획」이라는 남침계획이 북한에 와있던 소련군사고문단에 의해 작성됐음이 이 계획의 번역작업에 참여했던 주영복씨(인민군 2군단 공병부부장)등 전인민군 간부들의 증언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들에 의하면 당초「선제타격작전계획」은 김일성과 스탈린간에 남침공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총참모장 강건이 작성했다고 한다.그러나 이를 검토한 소련군고문관들이 그 내용의 부실함을 지적,초대 군사고문단장인 스미르노프소장이 직접 작성했으며 이를 소련출신 인민군 간부들이 번역했다는 것이다. 「선제타격작전계획」이란 38선 전 전선을 따라 탱크를 배치,일거에 집중화력을 퍼붓는다는데서 붙은 이름. 소련군사고문들이 「선제타격작전계획」을 언제 작성했는가 하는 시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 않으나 소련공식문서에 따를 경우 대략 1950년 2∼3월초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1950년5월5일 북한주재 최고군사고문 바실리예프 중장은 그해 6월∼7월 사이에 고문관들이 수행할 세부활동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돼있다.이 계획에는 ▲38선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실시할 군사훈련에 관해 인민군총참모장에게 내릴 훈련지침과 ▲적 해안에 대한 상륙작전준비계획과 적해안 점령계획 등이 들어 있는데 이는 근대적 군부대가 대규모의침략공격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활동지침을 총망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리 키르신도 소련과 북한이 남침계획을 수립한 시점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1950년6월초보다 조금 앞선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호구축에 주력 그는 그 근거로 다음 몇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북한군이 1949년초부터 공격위주의 훈련을 한 점이다.키르신은 1949년1월2일∼16일 사이에 있었던 총참모부 훈련은 주로 참호구축에 관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둘째는 소련군의 대북한 무기원조가 1949년 들어 크게 증가한 것이며 셋째는 공병들의 훈련이 공격 위주로 실시된 사실이다. 소련 국방성 중앙문서부의 자료에 따르면 1948년 인민군 창설 당시 북한에 파견된 소련군사고문은 모두 4백70명이었다고 한다.이 숫자는 1948년 2백17명,1949년에는 1백88명,1950년엔 1백48명으로 다시 축소됐다. ○“남 전쟁능력 미흡” 그러나 나교수는 1950년4월 이후에도 소련군사고문들이 계속 북한으로 파견됐다고 주장했다. 증언들에 따르면 소련군사고문들은 전선에서 전황을보고받았을 뿐 아니라 전선 사령부를 쫓아서 남하,경북 김천소재 직지사에 일시 주둔하기도 했으며 전쟁확대에 따라 후방의 고위사령부로 집결하는 식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들 소련군사고문들은 50년9월28일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자 일절 예하 전선에 출동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이같은 조치는 소련군이 포로가 될 경우 야기될 미·소간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의 키르신이 찾아낸 문서들 가운데는 국군과 미군고문관에 대한 소련정보기관의 평가도 들어있는데 이것은 스탈린이 한국에서 전쟁을 시작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의 하나가 남한의 전쟁수행능력이 매우 미약하다는 정보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1948년 소련정보에 의하면 국군은 훈련부족과 탱크·포병·조종사 등 전문 요원의 부족,전투경험의 부재,저하된 사기로 근대 군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교수는 현직 소련외무성 관리 아닌(혹은 발레노프·둘다 가명)의 말을 인용,스탈린이 오히려 한국전에 더 열광적이었다고 주장했다.아닌에 의하면 스탈린은 중국에서의 내란의 진전과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 국가군 건설, 소련경제의 호전에 따라 한반도로 관심을 돌렸다는 것. ○“스탈린이 더 열성” 이같은 아닌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일반론, 즉 한국전을 시작하는데 있어 김일성이 열성적이었으며 스탈린은 마지못해 미군개입이나 빠른 성공여부에 관헤 여러차례 다짐을 받고 승인했다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1950년초 김일성이 스탈린을 만나고 귀국한 직후 보병 3개사단,1개 항공사단,1개 탱크여단이 즉각 증강될 수 있었던 것은 스탈린이 그 이전에 한반도를 적화통일시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음을 방증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후 42년이 지난 지금까지 6·25와 관련한 소련정부의 공식문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동시에 1백만명에 달하는 병력이 직·간접으로 한국전과 관련을 맺었음에도 불구,소련정부는 지금까지 참전사실 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다만 소련군 기관지 「적성」이 지난 89년 소련공군의 한국전 참전사실을 보도한 바 있지만 공식발표는 아니었다.따라서 김일성의 전쟁계획 승인이유와 한국전 참전동기 역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의의 전쟁」 강변 북한은 아직도 6·25를 「정의의 전쟁」,「민족해방전쟁」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남침전쟁 도발 42년이 지난 오늘에도 북한은 6·25를 대미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호도,이를 통해 김일성독재정권의 영구유지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6·25동란을 일으켰고 그 연장선상에서 무력에 의한 혁명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그 북한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다시 이 강토를 핵공포로 몰아넣고 있음을 볼 때 「남북합의서」의 발효에도 불구,우리의 대북 경계심을 풀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 “무장침투사건 사과하라”/최 국방,대북경고

    ◎“더 이상의 무력도발땐 좌시않겠다” 【중부전선=안병준기자】 최세창국방부장관은 16일 『지난 5월22일 군사분계선에서 발생한 무장침투사건은 북한의 목표가 남북관계개선을 통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보다는 무력적화통일에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중대한 도발사건』이라고 전제,『북한은 이번 도발행위를 솔직히 사과하고 관련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최장관은 이날 하오 육군제1968부대에서 있은 대침투작전 유공자표창식에서 격려사를 통해 이같이 언급하고 『특히 북한이 지난해12월 채택한 「한반도의 비핵화등에 관한 공동선언」을 통해 상호보유하지 않기로한 핵재처리시설을 건설하고 있는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치못한다』면서 『이의 건설을 중단,폐기함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존중하겠다는 자세변화를 행동으로 증명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장관의 이같은 대북경고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후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북한을 자극시키는 발언을 자제해왔던 점을 고려할 때 화해무드의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주목된다. 최장관은 이날 경고에 앞서 지난15일 청와대 보고과정을 통해 경고발언을 사전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장관은 또 『북한이 끝내 우리민족의 평화적 통일염원을 외면하면서 무모한 무력도발을 또다시 획책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뒤 『이로인한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엄중경고한다』고 밝혔다. 이날 표창식에서는 육군제2672부대와 제1968부대가 대통령표창을,제1968부대 전초13중대장 김승겸대위·전초16중대 박철호병장등 40명이 무공훈장및 대통령·국무총리표창을,전초16중대 하경호이등상사등 9명이 일계급특진을 했다.
  • 외언내언

    『북한에도 개혁과 개방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폐쇄경제·족벌주의·권력세습·고립주의 등에 반대하나 아직은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과학자·지식인·관료등 이른바 테크너크랫들은 기술만도 북한이 한국에 20년은 뒤졌다는 등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북한에 정통한 루마니아 반체제지도자였던 브루칸박사의 2년전 주장이다.◆얼마전 북한을 다녀온 대우의 김우중회장도 이런 말을 했었다.『북의 보수·개혁파간에 갈등이 빚어지고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위급회담때 남측언론의 과장보도로 보수파에 대한 입장이 곤란할 때가 많다는 말을 북측 고위층으로부터 들었다.대북관계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북대표들을 자주 대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직접적인 시청각감시를 당하는 평양이나 판문점회담땐 경직되는 북한대표들도 서울에 오고 사석에 가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단다.이들이 말하자면 북한의 개혁파요 온건파가 아니겠느냐는 분석.그들의 입지를 돕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는것.◆지난 22일 비무장지대의 북한군 군사분계선 침범사건에 대한 의혹이 무성하다.왜,지금,무엇때문에,무슨목적으로 그런 무모한 도발을 할필요가 있었겠는가.우발적 혹은 간첩침투 또는 화해분위기 교란?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남한의 자작 혹은 조작극이라 주장하던 북이 25일 「군사분과위」에선 화해방해목적의 「제3세력」소행일거라 주장해 응구와 호기심만 더욱 자극.◆북에도 온건개혁파와 이를 못마땅해하는 강경보수파의 대립이 있는 것인가.온건개혁파의 입지약화를노린 군일부초강경파의 자의적이며 의도적인 사건인가.북에 당정통일정책위배행동을할 무장세력은 있을리 없다는 주장도 이상하다.개혁개방의 온건파가 강경보수파의 저항을 살만큼 성장했다면 다행이지만 보수파저항이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 남북총리 오가며 화해악수 하건만/휴전선에 침투조 격멸 초연이…

    ◎북한의 무장3인조 사살 백골부대에 가다/포착→감시→소탕 긴박의 12시간/철저한 위장장비엔 분노 일고 【철원=김원홍기자】 울창한 아카시아 숲속에서 흘러오는 터질것 같은 긴장감은 우리가 이미 사라져 버린 냉전시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실감케한다.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중부전선 백골부대의 광활한 민들레 들판.북한 무장침투조와 아군수색대간에 벌어졌던 난사전을 모르는듯 휘감아 흐르는 한탄강이 한가롭다.하지만 철책을 경비하는 우리국군사병의 긴장된 얼굴에서 22일 낮에 벌어졌던 혈전의 흔적이 느껴진다. 『바로 저 민들레들판 중앙 소나무 숲사이로 헌군복을 입은 무장침투조 3명이 잠복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백골부대 최상호하사는 무장침투조의 발견경위를 설명하며 침투지점을 가리켰다. 최하사는 『침투조들이 고도의 전술훈련을 받아 그들을 섬멸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걸렸고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당시의 긴박한 교전상황을 설명했다. 남방한계선 남쪽 백골부대 연병장에는 교전끝에 사살된 북한 무장침투조 3명의 시체 사진이 진열돼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들은 국군으로 위장하기 위한듯 낡은 군복차림에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모두 북한 위정자들의 시대착오적인 적화통일 전략의 희생자들이라는 생각이 보는 사람을 우울케 했다. 연대장 이용석대령은 『북한이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휴전선에 무장 간첩을 남파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관계자들은 이번에 북한이 무장침투조를 투입한것은 국군의 경계태세 시험과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한것같다고 분석했다. 70년대초 남북대화가 처음 시작되어 온겨레가 한반도평화의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휴전선 곳곳에 땅굴을 팠던 그들의 이중성이 새삼 뇌리를 스쳤다. 무장침투조가 휴대한 소총과 권총·수류탄·탄약 등은 모두 68개 품목 5백여점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약20여년전에 유행했던 일제 세이코시계와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 등도 눈에 띄였고 탄약함에 든 말린 쌀과 조잡한 초콜릿과 밀크 캐러멜·속옷·양말 등도 있었다. 북한 군사당국자들의 무모한 도발 책동의 현장에서 기자는 분노와 배신감 이전에 놀라움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4조에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고 합의해 놓고 무장침투를 시키는 의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측 군사대표단들이 군축이나 군비통제이전에 신뢰구축과 투명성 보장을 요구한것도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도전성 때문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골부대장 구태도소장은 『남북의 총리가 서울과 평양을 서로 교환방문하면서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어도 휴전선일대의 확성기방송과 대남비방방송은 변함이 없다』면서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경계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북의 대남전략 변함없다(사설)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그들 대남전략의 실체가 드러날때마다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기다리다가 실망하고 실망하면서도 기다리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변화가 확실하게 기약된 것도 아니다.이것이 오늘날 남북한관계의 현실이다. 남한의 지하방송으로 위장된 소위 「구국의 소리」는 북한땅 평양 칠보산에 있는데 북한당국은 바로 엊그제 이 「구국의 소리」방송행진곡에 발맞추며 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자수간첩에 의해 확인된 「구국의 소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새삼 놀랄일도 아니다.그러나 최근들어서 비교적 뜸한 듯하던 무장간첩의 남파는 북한의 대남전략과 검은 공작이 수십년 여일 하게 단한치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북한 정권의 최고 목표는 물론 이른바 「우리식의 사회주의」건설인 것으로 알고 있다.오늘도 북한정권은 그들 「사회주의의 승리」를 신앙처럼 믿도록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그 과정에서 짓밟히는 인권들은 또 어떠한 것일까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그 당국자 자신들도 부인하지 못하는 주민들 굶주림과 헐벗음 또한 어느 정도인가.주민들의 그 엄청난 고통과 질곡위에서 사회주의 승리를 위해 「구국의 소리」를 위장하고 무장간첩을 침투시키는 마당에 더이상 무슨 대화와 교류를 의논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친다면 민족적 분노와 함께 새삼 참담한 심정을 아니 가질 수가 없다. 최근엔 서해안 휴전선부근 지역에서 땅굴을 파는 듯한 지하음이 들린다고도 전해진다.차마 북한이 오늘과 같은 냉전와해의 국제분위기와 남북한 대화의 과정에서 제5·제6의 땅굴을 파는 「미친짓」은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근 북한의 전후방 군사 동향이 심상찮은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의 현역병이 1백2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그들 지상군이 기습공격 포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내외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은 또다른 무엇인가를 시사하고 있다.월여전에 로버트 게이츠 미중앙 정보국장은 북한이 무기가 낡기전에 남침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군 최고사령관 자리를 거머쥔 김정일은 그들 군부사기진작용으로 수백명을 장성으로 올렸고 하루도 끊이지 않는 군사 퍼레이드의 구호는 「미제국주의 말살」과 「남조선 해방」일색이다.아버지 김일성이 살아있을때 한반도 통일을 이루겠다고 호언하는 김정일의 무모한 모험주의 책동이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위장된 대남 흑색방송의 정체와 무장간첩의 침투등 사건들은 북한당국이 겨냥하는 한반도 문제의 전쟁적해결 전략과 대남적화공작의 산물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우리는 북한당국에 이점을 거듭 지적하고 강력히 경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 대학가의 새생활문화운동(사설)

    5월의 대학가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면학분위기조성과 건전한 대학문화 정립을 위한 「새생활문화운동」이 그것이다.각대학 총학생회가 주축이 돼 벌이고 있는 이 운동은 자가용안타기,담배꽁초안버리기,교수에게 인사하기 등 예절운동에서부터 캠퍼스주변에 침투해 있는 왜식문화추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 운동의 구체적 사례들을 보면 연세대는 「도서관환경 개선운동」,숙명녀대는 「자가용안타기운동」,숭실대는 「다른과 교수님께 인사하기운동」,광운대는 「국산품애용하기운동」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고 효과도 크다고 한다. 캠퍼스에 인공기를 내걸고 화염병으로 파출소를 습격하는 폭력시위가 잇따르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이처럼 건전한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최근에 일어난 폭력시위는 극소수 운동권학생들이 와해되고 있는 그들의 조직을 되살려보기위한 무모한 몸부림에 불과할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투쟁일변도의 폭력시위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가의 새생활문화운동은 학생들의 이러한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올들어 대학가의 시위가 크게 줄어들었을뿐 아니라 시위방법이 평화적인 양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경찰청의 통계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경찰청이 지난 4월1일부터 5월10일까지 대학가의 시위상황을 지난해 같은 기간의 그것과 비교·분석한데 따르면 올해엔 1천1백50건의 시위가 발생,지난해의 1천8백80건에 비해 38%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시위가담학생도 35%가 감소했으며 시위에서 사용된 화염병은 70%나 격감한 것으로 밝혀졌다. 극소수 운동권학생들의 폭력시위는 앞으로도 일어나겠지만 시민은 물론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를 계속 외면할 경우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통계는 보여주고 있다. 대학가의 새생활문화운동에는 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오는 23일과 30일에 펼쳐질 「신촌문화축제」가 그 대표적인 본보기이다.서울신촌일대에 산재해 있는 연세대,이화녀대,서강대,홍익대 등의 총학생회와 인근주민들이 함께 펼칠 이 축제는 화염병과 최루탄을 거리에서 몰아내고 학생들과 주민들이 한마음이 되자는 것으로 대학가의 신선한 바람이 사회로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움직임이다. 건전한 대학문화정립은 사회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또 학생들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스스로 자각한 몸짓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자가용안타기운동,담배꽁초 안버리기운동,교수에게 인사하기운동 등을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생각할 학생들도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야 말로 면학분위기조성과 건전한 대학문화정립을 위한 기본적인 자세임을인식해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지금 수많은 부조리와 병폐를 안고 있다.그러나 학생들이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간다면 대학 본래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새생활문화운동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 운동이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
  • 대학생들의 불법선거운동(사설)

    새학기가 시작된 봄의 대학가에 선거열풍이 불어닥치고 있다.총선을 앞둔 요즈음 각정당과 무소속후보들이 선거운동에 대학생들을 대거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생의 선거운동참여를 반드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공명선거를 위한 시민운동에 동참할 수 있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거법테두리안에서 도울 수도 있다.이러한 예는 선진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대학생으로서 정치현실을 경험한다는 교육적인 측면도 있고 선거운동의 방법을 한차원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그러나 선거일이 공고되기도 전에 우리의 대학가에서 불고있는 선거열풍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는데 문제가 있고 이때문에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있다. 우선 지적하고자 하는것은 현행 선거법상 불법인 아르바이트선거운동이다.보도에 따르면 대학생 한사람이 하루에 3만∼5만원정도의 일당을 받고 사전선거운동에 동원되고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을 고용한 후보의 당락에는 무관심인채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또 일부 대학생들은 떼를 지어 각정당이나 무소속후보사무실을 찾아다니며 「흥정」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갖가지 탈법과 불법선거운동이 횡행하고 이때문에 혼탁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이러한 마당에 대학생들까지 과열·타락선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이보다 더욱 우려하는것은 전대협이 주관하고 있다는 「민자당후보낙선운동」이다.각대학의 총학생회를 장악하고 있는 전대협은 「전국연합」등 재야세력과 손을 잡고 조직적인 민자당후보낙선운동을 펼친다는 방침아래 「총선승리를 위한 힘찬진군」이란 이름의 지침서를 이미 각대학학생회에 시달했다고 한다. 이지침서는 ▲민자당후보가 연설하면 일제히 뒤로 돌아 앉을것 ▲민자당후보 선거유인물을 집단적으로 찢어 버릴것 ▲민자당후보가 연설할 때는 호각을 불어 유세장분위기를 흐려놓을것등 민자당후보 낙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선거운동에 나서는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환영할만한 일이다.그러나 대학생들이 특정정당의 후보를 낙선시키기위한 불법운동을 그것도 조직적으로 펼친다는것은 반민주적작태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대협은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가 맞물려 있는 올해를 침체된 학생운동권을 되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있다고 한다.지금 학생운동권이 침체되어 있는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인 역사의 도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선거운동을 통해 투쟁일변도의 학생운동을 되살려보겠다는것은 허망한 꿈이며 무모한 짓임을 깨달아야 한다.교육부가 촉구한 바 있지만 각대학당국은 학생들이 불법선거운동에 가담,학업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하며 전대협도 선거투쟁에만 매달릴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생운동의 정립을 위한 건전한 몸짓을 보여 주기 바란다.
  • “「스탈린모델」은 사회주의 배신”/고르비/미·일지에 칼럼 기고

    ◎걸프전 계기로 동서협력의 길 터/대결지양 새문명 곧 개화 지난해말 권좌에서 물러나 칩거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은 24일부터 일본 아사히(조일)신문과 미국 뉴욕타임스지등에 칼럼을 기고하는등 칼럼니스트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이날 아사히신문에 게재된 「걸프전쟁과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사회주의사상은 건재하며 사멸한 것은 스탈린형 모델』이라고 강조했다.아사히신문에 실린 고르바초프의 첫 칼럼을 요약 소개한다. 걸프전쟁은 미소간에 구축된 새로운 차원의 협력관계에 처음으로 심각한 시련을 안겨주었다.그러나 걸프전쟁은 위기적 상황에서도 상호협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부시 미대통령은 다국적군이 공격을 개시하기 2시간전 나에게 전화를 했다.그때는 이미 사태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는 불가능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이라크 지도부에 연락을 취해 즉각 철수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걸프전쟁에서 취한 국제사회의 방침은 모범적인 전례를 보여주었다.장래에도 새로운 분쟁이 발생할지 모른다.그러나 모든 국가와 지역의 이해의 균형을 바탕으로 세계가 걸프위기때와 같은 협조를 유지한다면 분쟁의 원인 그 자체를 제거,군사력 행사를 조금씩이라도 배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해 8월 쿠데타실패 이후 나는 서방측에서 제기한 하나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요구받고 있다.즉 공산주의는 사멸했는가,아니면 아직 살아있어 앞으로 부활할 수 있는가. 지금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다.영원히 죽은 것은 스탈린형 모델이다.이 모델은 처음부터 무모한 모험이었다.민주주의,인권,인간의 기본 욕구등을 짓밟는 통치는 사회주의 사상의 배신이며 이것이 사회를 붕괴시켰다.스탈린형 모델은 죽었다.신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나는 이와 똑같은 정도의 강한 확신을 갖고 스탈린형 모델의 죽음이 사회주의 자체의 죽음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다.사회주의 사상은 건재하며 새로운 모델을 찾아내려는 노력및 실험과 함께 이상을 되살리려는 새로운 형태의 모색이 행해지고 있다.이 새로운 모델의 기초에는 당연히 인도적 원칙과 함께 민주주의 원칙이 최고의 가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늘날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모색이 우리나라 뿐아니라 자본주의 제국을 포함,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상호간 크게 다른 관점에서 출발한 여러 세력이 사회주의 사상과 모순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동·서는 새로운 문명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우리는 낡은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특히 우리가 종교전쟁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립시켜서는 안된다. 우리가 구축하려는 사회와 문명은 모든 복잡성과 다면성,모순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이것이 우리가 믿는 정치적 사상적 자유와 다원성의 진정한 의미이다.
  • 걸프전 1주년,그 교훈(사설)

    17일은 90년의 새해벽두를 전쟁의 섬광과 굉음으로 진동시킨 걸프전개전1주년이 되는 날이다.이라크의 화생방 반격과 이스라엘의 참전으로 세계의 유전이 온통 불바다가 되는 것은 아닌가,미국의 발목을 장기소모전의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또한차례의 월남전이 되는 것은 아닌가,1년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우려했던 걸프전 개전1주년인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년.그리고 2월28일 종전일로부터 치면 불과 10개월인데 벌써 세계는 그때를 잊은 듯 하다.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이 시정되고 이라크와 쿠웨이트가 무참히 파괴당한 것을 제외하면 별로 변한 것도 없는 것 같은 중동이다.중동유전은 세계에 안정된 석유공급을 하고 있고 쿠웨이트는 주권을 회복했으며 이라크의 후세인도 그대로 권력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군의 압도적 승리와 이라크의 일방적 패배로 끝난 이 전쟁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전쟁이었단 말인가. 걸프전의 최대 명분은 국가주권과 중동유전의 보호에 있는 것이었다.이라크의 쿠웨이트점령은 상대적 대국의 힘에 의한 상대적 소국의 주권유린이자 병합이었다.어떤 경우든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명분이었고 그때문에 세계와 유엔의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안정된 세계석유공급원의 보호라는 목적과 함께 그 명분은 단호하게 관철되었으며 비슷한 환상에 사로잡힐 수 있는 모험주의자들에 대한 훌륭한 경종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 명분은 바로 그 중동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문제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유엔과 관계국들의 요구는 여전히 거부되고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은 동일한 명분의 차별적 적용이라는 반발과 비판에 직면하는 궁지에 몰려있다.중동평화회담을 적극중개하고 있는 미국노력의 결과는 걸프전 평가의 새로운 척도가 될 것이 틀림없다. 무모한 모험으로 전쟁을 촉발시키고 유전파괴와 환경전까지 불사한 후세인의 권력유지를 방치하고 있는 사실도 걸프전의 명분을 퇴색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지적된다.미국은 이란에 대항할수 있는 정도의 이라크가 필요하고 그러기위해선 후세인을 제거해서는 안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결국 걸프전도 강대국의 국익을 위한 전략노름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도 가능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걸프전 마무리를 보면서 한국전의 마무리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러나 이제와 생각하면 닮은데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끝장을 내지않은 무승부의 휴전.걸프전에선 후세인이 필요했고 한국전에선 중국과 소련때문이었는지 모른다.현지의 소망이나 이익과는 상관없이 국익과 세계전략의 차원에서 냉혹하게 내려지는 미국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교훈을 새삼 실감하는 것이다.그런 미국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그러한 국제정치 현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걸프전개전 1주년을 맞으며 새삼 되새기는 것도 뜻있는 일일 것이다.
  • 「왕회장」의 정치외도 “무모한 욕심”

    ◎신당설 파문… 재계의 걱정스런 시각/“무역적자·UR타개에 앞장설 땐데…”/방향타 잃고 표류하는 거함 보는것 같다/「정경일체」 발상… 국민들이 호응하겠나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이 최근 정치참여 혹은 신당결성설을 계속 퍼뜨리며 각계 인사와 접촉을 활발히 벌이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재계는 당혹감과 함께 한사람의 뛰어난 경제인을 걱정하며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당대 세계적인 규모의 기업을 이룬 정회장의 경제적 업적을 존경하고 있는 재계인사들로서는 정회장의 최근 행보를 흡사 방향타를 상실한 거함을 보는 것처럼 불안해하고 있다. 1백억달러를 넘는 무역적자,대외경쟁력 상실,산업구조의 재편 등 경험있고 능력있는 경제인들이 해결해야할 엄청난 경제과제가 쌓여있는 현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옆길」로 빠지려는 정회장의 의도를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회장과 함께 국가경제발전에 땀을 쏟아온 재계 원로들은 그렇잖아도 한사람의 원로라도 아쉬운 우리 사회에서정회장같은 대기업가가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포기하고 정치의 문턱을 넘보는 것은 「제2의 인생」이 아니라 「치기어린 저돌」또는 「노망」으로까지 보며 극구 만류하고 있다. 물론 현 정치권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과 혐오의 반작용으로 정회장의 정계진출 움직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층도 없지 않으나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뜻있는 재계인사들의 대부분은 정회장의 「노욕」이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재계 전체 또는 나라 장래에 엄청난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전직 고위관리출신의 한경제단체장은 『정치란 우선 자질 못지않게 국민에게 제시할 이념이 중요한데 무조건 대권냄새만 풍긴다고 정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돈이면 다된다는 발상이야말로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고 개탄했다.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정회장의 최근 행동은 재계의 원로로서 몰지각하고 경솔한 행동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면서 『두뇌회전이 빠르기로 소문난 정회장의 총명이 욕심에 가려진 것 같다』고 비난했다.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도 『참신한 인물을 돕고 싶다면 소리 소문도 없이 도와야지 돕기도 전에 광고부터 요란스럽게 떠벌리는 저의를 모르겠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경제는 기업인에게 밭겨야 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정치 역시 전문적인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가하면 정회장의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S그룹의 한 임원은 정회장이 현대그룹 계열의 광고기획회사를 통해 여론조사한 결과 차기대권후보의 첫번째 자질로 현재의 경제적 난국을 타파할 수 있는 경제적 식견을 갖춘 참신한 인물을 선호하고 있는데 크게 고무받은 것같다면서 『그러나 역사상 재력과 권력을 동시에 공식적으로 소유한 예가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회장의 정치 「발병」시점을 지난 89년2월 방북때 시작된 것으로 보고 『그때부터 자신을 북방밀사로 착각하기 시작한데다 주변에서 제동을 걸만한 「장치」나 사람이 없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회사의 한 임원은 『그렇잖아도 시끄러운 정치판이 정회장이 가세함으로써 더욱 시끄러워지게 생겼다』고 못마땅해 하면서 『노망이 들었거나 정치자금을 내기 싫어 잔재주를 피우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분석했다. 10대 재벌의 한 총수는 『정회장이 경영에서 손뗀 뒤 자연인의 자격으로 정치를 하겠다면 몰라도 현재의 직함과 재산을 토대로 정치를 하겠다는 발상은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더구나 개인 욕심으로 인해 재계 전체 또는 나라경제전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재벌총수도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정회장은 이미 개인의 신분을 넘어선 공인이기 때문에 그의 정계진출은 곧 현대그룹 또는 재계의 정계개입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면서 『정경유착에도 부정적인 국민이 이처럼 재벌이 노골적으로 정경일체를 실현하겠다는 식으로 나서겠다는데 호응할리가 있겠느냐』며 정회장을 적극 만류할 뜻을 비쳤다. 반면 금속회사를 경영하는 한 기업인은 『현실정치가 국민에게 너무 큰 실망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정계진출을 결심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유추하면서 『사업가는 항상 합리적이기 때문에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순수한 뜻으로 정치를 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정회장의 정계진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한 기업인도 이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칫 정경유착을 심화시키는 소지로 비칠 수 있는데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재계인사들은 정회장의 본심이 어떻든 국민의 눈에는 정치를 돈으로 사려는 행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면서 황금만능풍조를 재계가 앞장서 부추기는 형국을 빚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또 정회장이 정계에 돈으로 직접 참여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앞으로 정치권이 기업성장을 더욱 경계의 눈으로 주시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정상적인 기업성장마저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기업의 일차적인 의무는 「산업보국」이며 건전한 자본주의의 육성을 위해 정치자금이나 체제유지비 성격의 준조세를 내면서 정당한 기업활동의 틀과 바탕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로비를 하는 것은 인정되고 있다.그러나 재벌그룹의 총수가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경우는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특히 정회장처럼 뛰어난 경제적 성공과 경험을 갖고 있는 경제인은 지금의 경제난 타개에 모든 노력을 다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그룹인 현대를 외형만 아니라 내실에서도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정회장을 「욕심많은 시정 잡상배」가 아닌 영원한 기업인으로 존경받게 만드는 길이라는게 재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 “완벽한 국방이 통일 지름길”/노 대통령,군기지 유시서 훈시

    【기지=김명서기자】 노태우대통령은 21일 『국방에 대한 완벽한 대비는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힘이 된다』면서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을 위한 출발을 시작한 이런 때일수록 군은 완벽한 작전태세를 갖추는데 진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중부지역 공군○○기지와 해군○○기지를 순시,작전태세를 둘러보고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훈시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군은 통일의 시대에 대비한 미래지향적인 전투력 배양에도 가일층 분발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과 적화통일 전략이 확실히 변화될 때까지는 국방태세에 추호의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 『지난번 걸프전처럼 독재자에 의한 무모한 전쟁의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으며 북한이 95년을 통일의 해로 삼고 군사력증강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을 군에서는 명심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새해에는 선거도 여러번 있을 뿐 아니라 개방과 민주화과정에서 겪어야하는 전환기적 진통이 다소간 지속됨으로써 사회경제적 어려움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런 때일수록 군이 맡은 바 소임을 굳건히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민주화를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자세』라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은 공군·해군부대 방문에 이어 육군건설단을 순시,부대현황을 보고받고 장병들을 격려한 데 이어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서패리 자유로공사현장에 들러 공사에 투입된 공병들을 격려했다.
  • 냉전의 뒤끝… 엇갈린 화와 전(대변환 지구촌 ’91:2)

    올해는 지구촌 여러 곳에서 전쟁이 발발,평화를 깨뜨린 어수선한 한해였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해묵은 내전이 종식되면서 평온을 되찾은 지역도 있었다. 새해 벽두인 1월17일 미국의 전격적인 대공습과 함께 시작된 걸프전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최첨단 무기들을 동원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속전속결로 이라크를 제압했다.그 결과 미국없이는 세계평화를 운위할 수 없는 「팍스 아메리카나」시대가 도래했고 나아가 중동평화회담의 실현이라는 돌파구가 마련됐다.걸프전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중동의 패권을 겨냥해 지난해 8월2일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한 데서 발단됐었다.그러나 무모한 후세인은 국제정의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33개국에서 동원된 68만명의 다국적군에 무릅을 꿇고 말았다. 걸프전이 무사히 해결되자 유고에 내전이 일어나 「유럽의 화약고」발칸지역이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공화국이 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한 국가를 이뤄왔던 민족간에 총칼을 들이대는 무자비한 상잔의 내전에 빠진 것이다.이 내전으로 유고는 사실상 해체된는 비극의 운명을 맞게됐다. 반면 전화의 검은 구름이 짙게 깔려있던 인도차이나에서 드디어 캄보디아 내전이 종식을 고했다.지난 10월23일 캄보디아 4대정파는 파리평화협정을 조인,「킬링필드」의 잔혹한 역사를 뒤로 하면서 13년간 끌어온 내전에 종지부를 찍었다.최고국가회의에 분쟁정파가 전원 참가한 캄보디아는 유엔의 감시와 협조아래 오는 93년의 국민총선거 실시를 향해 한발짝씩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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