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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잊으려 할수록 붉게 피어난다

    그날, 잊으려 할수록 붉게 피어난다

    흰 눈 위로 피 한 방울이 뚝 떨어집니다. 피는 얼음 결정을 따라 빠르게 번져 갑니다. 그 모습이 모가지 꺾어 떨어진 동백꽃을 닮았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흰 눈 위에 떨어진 피에서 혹독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길어 올렸습니다. 동백꽃은 그렇게 ‘제주 4·3 사건’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지요. 한 설문조사에서 4·3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3분의1, 관심 없다는 이는 절반을 넘었다고 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더욱 기억에서 멀어진 것이 4·3 사건입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과거가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사과할 건 사과하고 청산할 건 청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의 사악하고 검은 아가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이번 여정은 4·3 사건을 따라가는 것으로 꾸렸습니다.모처럼 제주까지 갔는데 상처의 흔적만 보듬고 오라는 말이냐고 힐난할 수 있겠습니다. 한데 앞서 결론을 밝히자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습니다. 단언컨대 처음 제주를 방문한 이라도 그렇습니다. 4·3의 무대는 아름다운 제주의 또 다른 면일 뿐입니다. 우리가 무심했을 뿐 명소라 알려진 곳에, 혹은 그 주변에 없는 듯 있었습니다. 제주의 4월을 두고 흔히 ‘침묵의 봄’이라고 합니다. 북촌리 ‘아이고 사건’에서 보듯 눈물마저 죄가 된 시절엔 누구나 말을 아껴야 했으니까요. 피 끓는 포한과 바닥 모를 체념의 끝은 침묵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니 입은 있으되 말하지 못했고, 기억은 선연하되 한사코 떨어내려고만 했겠지요. 제주엔 진작 제비가 왔습니다. 반팔 옷차림으로 훌훌 싸돌아다닐 만큼 기온도 포근해졌습니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시립니다. 물론 스스로 삭이겠지요. 그래도 주변의 위로가 더해지면 생각보다 빠르게 녹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본 한 장의 지도였다. 제주 전체를 행정 구역에 따라 나눈 뒤 색을 입혔다. 공통적인 건 붉은빛 일색이라는 것. 구역에 따라 빨강과 분홍 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체가 붉었다. 이는 ‘제주 4·3 사건’ 당시의 피해 정도를 표시한 지도다. 붉은빛일수록 더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4·3의 광풍에서 온전했던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는 게 지도에 담긴 의미다.●섬뜩한 진실과 마주한 ‘4·3 평화기념관’ 4·3 여정의 첫걸음은 제주 4·3 평화기념관이다. 4·3 사건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제주 사람들은 ‘4·3 사건’이란 이름 자체에 불만이다. 지나치게 ‘사실’(史實)에만 충실해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의미와 가치가 담긴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념관의 관람 동선 첫 코너에 ‘백비’(白碑)를 뉘어 놓은 건 그 때문이지 싶다. 백비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비석이다. 제주 사람들의 뜻은 간명하다. 언젠가 4·3 사건이 가치와 의미에 부합하는 이름을 얻게 될 때 이 비석에 새겨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기념관 안엔 4·3 사건과 관련된 각종 기록과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육지부’에서 ‘관광차’ 온 이들이라면 담기 버거울 정도의 섬뜩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기념관 밖은 평화공원이다. ‘비설’(飛雪)이란 이름의 모녀상과 제단, 1만 4000여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각명비 등이 조성돼 있다. 공원 가장 위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은 꼭 찾길 권한다. 4·3 희생자 중 행방불명인 3800여명의 이름을 새겨 표석으로 세웠다. ‘육지부’의 형무소로 끌려가 못 돌아온 이도 있고, 바다에 수장됐거나 여태 제주 땅 어딘가에 묻혀 있는 이도 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살아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지는 못했지만, 이름이나마 한라산 아래 산담(무덤을 둘러친 돌담)에 안겼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이념으로 시작해 희생으로 끝난 섬의 눈물 이쯤에서 4·3 사건에 대해 개략적이나마 살피자. 도화선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시내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집회였다. 경찰이 탄 말의 발굽에 어린아이가 차였다. 한데 기마경찰은 무심히 지나갔고, 이를 본 군중이 돌을 던지며 경찰을 쫓았다.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미 군정에서 사태파악에 나섰다. 미 군정의 조사 보고서는 “경찰 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며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라고 적었다. 제주가 ‘레드 아일랜드’(빨갱이의 섬)라 규정되는 순간이다. 이어 좌익 색출을 명분으로 서북청년회와 공권력의 탄압이 자행됐다. 이에 맞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에 나섰다. 이후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제주는 아비규환의 공간이 됐다. 물론 4·3 사건의 성격을 두고 여태 논란은 있다. 중요한 건 당시 제주도민의 9분의1에 달하는 희생자다. 최대 3만명에 이르는 희생자 가운데 목숨을 걸 만큼 정치적 신념을 가졌던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희생자 가운데 33%는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였다. 충돌의 배경은 이념이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었던 셈이다. 제주 4·3 사건을 이념보다 인권과 인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3 여정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단어는 ‘예비검속’이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다. 사상이 의심스러운 이들의 목록을 작성한 뒤 전쟁 등 유사시에 잡아들이거나 상황에 따라 즉결처형했다.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인근의 섯알오름이 대표적이다. 1950년 250여명의 예비검속자들이 총살당한 곳이다. 군이 출입을 통제한 탓에 1956년에야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32구의 시신은 인근의 백조일손 묘역에 안장됐다. 묘역의 이름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백여명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한날한시에 올려 한 자손이 된다는 뜻이다.●아이의 작은 묘탑에 놓인 애달픈 장난감 북촌리 너븐숭이를 찾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어린아이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봉분은 작다. 면적도 작고, 봉분을 둘러싼 산담도 작다. 봉분은 모두 20여기 정도 되는데, 그중 최소 8기는 4·3 때 목숨을 잃은 아이의 묘라고 한다. 묘지 앞엔 검은 돌로 만든 작은 탑이 세워져 있다. 돌과 돌 사이엔 동백꽃 등을 꽂아 뒀다. 미니어처 자동차도 눈에 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타요 버스’다. 4·3 당시 비운의 별이 된 아이가 타요 버스를 알 리 없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일 것이다. 늦은 밤이면 봉분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와 꽂아 둔 사탕을 먹고 장난감도 갖고 놀 것 같다.●비행기 소리로 덮인 최대 학살터 ‘정뜨르’ 북촌은 이른바 ‘아이고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954년 1월, 너븐숭이 주민 가운데 일부가 4·3 사건을 추모하며 설움에 북받쳐 울다가 경찰에 치도곤을 당했다. 이게 ‘아이고 사건’이다. 당시엔 이처럼 울음마저 죄가 됐다. 정뜨르는 어딜까. 4·3 당시 최대 학살터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4·3 지도에도 틀림없이 나와 있다. 한데 도두항 주변을 오가는 주민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고개를 외로 꼬기 일쑤다. 정뜨르는 지금의 제주공항이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너무 커서 보이지 않았던 거다. 손바닥 선인장 군락(천연기념물 429호)으로 이름난 월령리엔 고 진아영 할머니 집이 있다. 진 할머니는 ‘무명천 할머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4·3 당시 총탄에 턱을 다쳐 평생 무명천으로 턱 주변을 두르고 살았다. 작은 단칸방 한 켠에 진 할머니의 영정이 남아 있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가는길:4·3 사건 70주기를 앞두고 제주 곳곳에서 동백 배지달기 등 다양한 추념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이번만은 올레길에서 벗어나 4·3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 6~7㎞에 이르는 코스를 2시간 정도 걸으며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추천한 코스는 모두 4개다. 제주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미리 신청하면 ‘4·3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다. 4·3 콘텐츠 관련 내용은 제주관광공사 홈페이지(www.visitjeju.net)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4·3 길을 걷다’란 지도도 꼭 챙기는 게 좋다. 길잡이로 큰 도움이 된다.→맛집 : 도두 해녀의 집(743-1500)은 전복미역국 등을 잘한다. 주방의 손길보다 신선한 재료가 맛을 낸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음식에 별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담백하고 깊은 맛이 난다. 정뜨르(제주공항) 인근에 있다. 커피 한 잔 마시겠다면 쉴만한 물가(796-3808)가 괜찮다.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집 앞에 있다. 커피 맛은 옅은 편이어도 업소 앞 풍경은 매우 짙다. 명진전복(782-9944)은 전복돌솥밥 등으로 소문난 집이다. 식사 때가 아니더라도 15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명소 반열에 올랐지만 맛은 여전히 예전처럼 좋은 편이다. 다랑쉬 오름과 가깝다.
  • ‘우리가 남이가’ 박나래 “권진영, 무명시절 유일하게 손 내밀어준 선배”

    ‘우리가 남이가’ 박나래 “권진영, 무명시절 유일하게 손 내밀어준 선배”

    ‘우리가 남이가’ 박나래가 선배 코미디언 권진영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26일 방송된 tvN ‘우리가 남이가’에는 코미디언 박나래가 출연했다. 이날 박나래는 무명시절, 힘들었던 자신을 챙겨준 선배 권진영에게 직접 도시락을 선물하기 위해 집밥 요리를 준비했다. 박나래는 “내가 무명이 길었다. (도시락을 드릴 분은)도움을 많이 주셨던 분”이라며 “잘 되고 나서 보답을 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 나래바에 초대 한 번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가 직접 담가주신 묵은지와 벌교에서 공수한 꼬막, 한우, 장어 등 재료들을 준비, 전라도 밥상을 뚝딱 차렸다. 정성을 담아 만든 음식은 코미디언 권진영에게 전해졌다.박나래는 “(권진영은) 고마운 분이다. 당시 일이 있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 선배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어린 나이에 코미디언이 돼 들어왔을 때, 너무 힘들고 외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가 나와 코너를 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선배님이 함께 코너를 짜보자고 먼저 손 내밀어 주고 힘이 돼주셨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권진영은 영상편지를 통해“우리 만나면 폭식 한 번 하자”라며 “두번째 이야기 한다. 이번에 안 만나면 삼진아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요즘 네가 제일 웃기다”며 후배 박나래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한편 ‘우리가 남이가’는 특정 인물에게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배달하고, 이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사진=tv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테니스 황제, 175위에 무너지다니!

    테니스 황제, 175위에 무너지다니!

    마이애미오픈 2회전에서 탈락 “佛오픈 등 클레이코트 출전 안해” “때로는 이런 경기를 할 때도 있다. 가끔씩 경기 내내 길을 못 찾기도 한다. 오늘 내가 그랬다.”세계랭킹 1위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가 175위 선수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맛본 뒤 이렇게 털어놨다. 페더러는 24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마이애미오픈 단식 2회전에서 타나시 코키나키스(22·호주)에게 1-2(6-3 3-6 6-7<4-7>)로 역전패를 당했다. 지난주 BNP파리바오픈 결승에서 후안 마틴 델 포트로(30·아르헨티나)에게 패했던 페더러는 잇달아 두 경기를 놓치며 좋지 않은 흐름을 보였다. 페더러가 두 경기 연속으로 무릎을 꿇은 것은 2014년 4~5월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33·스위스)와 제레미 샤르디(31·프랑스)에게 당한 이후 처음이다. 다음주 세계랭킹에서도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점수가 빠지면서 라파엘 나달(32·스페인)에게 1위 자리를 돌려주게 됐다. 페더러는 첫 세트를 6-3으로 가져오며 낙승하는 듯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흐름이 바뀌었다. 자신의 서브게임을 빼앗기며 어려운 게임을 펼치더니 결국 3-6으로 세트를 내줬다. 3세트에서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갔으나 4-5 상황에서 내리 두 점을 잃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 2년간 부상에 신음하며 은퇴를 고려한데다 이번 대회에는 와일드카드를 통해 출전한 무명에게 무너진 것이다. 경기를 마친 페더러는 “올 시즌엔 이제 클레이 코트를 밟지 않겠다”고 밝혔다. 5월 열리는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 오픈도 건너 뛴다.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대회에 집중하기 위해 휴식을 취했던 작년과 같은 전략이다. 또 “지난 일주일 동안 좋은 플레이를 못한 데 따른 문제점을 알아내겠다. 코키나키스와는 두바이에서 오래 훈련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력을 발휘한 게 기쁘다”고 말했다. 코키나키스는 “생각보다 더 차분하게 경기했던 것 같다. 속으론 정말 기쁘고 흥분됐다”고 밝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윤수경 기자의 사람, 사랑] 자서전들 쓰십시다

    [윤수경 기자의 사람, 사랑] 자서전들 쓰십시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최근 두 달여간 예비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문자, 메일이 쏟아졌다. 출판기념회가 끝난 뒤에도 누가 참석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등을 알리기에 바빴다. 선거 90일 이전까지만 출판기념회를 허용하는 선거법이 없었다면 선거철 내내 출판기념회 관련 문자에 시달렸을 것이다. 출판기념회가 선거비 모금장으로 전락한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런 출판기념회를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 선보인 책 대다수가 자서전 혹은 자서전적 성향을 띤 글인데, 정작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예비후보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백만원, 수천만원의 집필료를 주고 대필자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거 기간에 맞춰 짧은 기간 내 찍어 내듯 나온 책에서 성찰이나 사색을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건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이청준은 ‘자서전들 쓰십시다’란 소설에서 이런 세태를 꼬집은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서전을 대필하는 사람이다. 인기 코미디언은 그의 시대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우상으로 살고 싶은 욕망에서, 자기 신념에 갇힌 농부는 주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대필을 부탁한다. 주인공은 번쩍거리는 말로 타인의 삶을 도배질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부탁을 거절한다. 자서전(autobiography)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 ‘나’(auto)와 ‘삶’(bios)과 ‘쓰다’(graphein)가 합쳐진 단어다. 즉 자서전이란 내가 나의 삶을 쓰는 행위다. 과거를 되짚어 쓰다 보니 자신이 써도 거짓이 보태질 위험이 클 수밖에 없는 글이다. 하물며 남이 대신 써 준 자서전은 어떻겠는가. 지난 1월 기존의 출판기념회와 전혀 다른 출판기념회에 초대받았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은 평범한 노인 8명이었다. 흔히 자서전을 대통령, 정치인, 유명 연예인 등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계급이 높아야만 글을 쓸 수 있던 시절에도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 루소가 ‘고백록’을 썼듯 자서전은 애초부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르였다. 성찰과 사색이 들어 있다면 갑남을녀의 이야기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여든 살의 한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을 피해 만주로 도피한 아버지를 따라 일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조선족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기록했으며, 일흔이 넘은 할머니는 7명의 딸을 낳아 키우며 겪었던 일을 담담히 적었다. 자서전을 다 썼지만,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암으로 작고한 한 할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아들이 무대 위에 섰다. 그는 “아버지의 자서전이 가족들에게는 마지막 선물이 됐다”며 울먹였다. 참석한 사람은 저자의 가족, 지인, 구청 관계자가 전부였다. 화려한 화환과 돈봉투를 내기 위해 길게 선 줄은 없었지만, 감동이 있었다. 자서전은 치열하게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화해하는 글쓰기가 돼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쓰거나 누군가의 손을 빌려 작성한 글은 주인 없는 말 짓기에 불과하다. 유명 정치인이 쓴 자서전보다 무명의 노인이 쓴 자서전이 더 뭉클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소설집으로 출판계를 뒤흔든 무명작가가 있다.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이상 요다)를 쓴 김동식(33)씨다. 지저세계, 외계인 침공, 말하는 목각 인형, 손가락이 열두 개인 신인류 등 만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짚어낸 짧은 글들을 모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회색인간’은 약 두 달 반 만에 6쇄, 2만 2000부가 팔려나갔다. 유명 작가의 소설이 1만부를 찍기도 어려운 요즘 이례적인 흥행 성적이다.●‘누구나’ 소설가 될 수 있어김씨가 글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2006년 서울에 올라왔다. 외삼촌의 권유로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금형에 뜨거운 쇳물을 부어 단추, 지퍼, 액세서리 등을 찍어내는 일을 2016년 말까지 10년간 했다. 김씨는 2016년 5월 특별한 목적 없이 자주 들르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첫 번째 글 ‘이미지 메이킹’을 올렸다.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진창”인 소설이었지만 ‘다른 글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평소 책을 거의 보지 않았던 김씨를 가르친 건 온라인 독자들의 댓글과 포털사이트였다. 김씨는 사람들이 오유 게시판에 올린 창작글을 통해 기승전결과 반전의 서사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하며 작법을 익혔다. 김씨는 “공장에서 내가 만든 수만 개의 물건은 누가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올린 글을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창작의 중독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첫 작품을 올린 이후 김씨는 지금까지 360여편에 달하는 단편을 완성했다. “최소 3일에 1편씩은 쓴다”는 개인적인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이 소설집을 기획한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어느 시대든 소설이라는 것은 그 시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김 작가의 등장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규정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최근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작가들이 (등단과 관련한) 물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도전 자체가 무한대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작품의 질과 순정성 등 기본적인 것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스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난 2월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25)씨는 최근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각각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습작을 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번에 다른 수상작과 함께 책으로 엮어 나온 ‘관내분실’(허블)은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에서 분실된 엄마의 기록을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다. 과학적 공간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이 작품은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김씨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에 익숙했다. 글쓰기는 그의 생활방식이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고. 주로 에세이를 많이 쓰던 그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과학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에 눈뜨게 됐다. 김씨는 “과학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간 삶의 바깥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더 다양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과학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작법서를 보면서 시험공부 하듯이 소설을 배웠다. 그는 “경험상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면서 “단순히 어떤 기술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늘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의 공무원이 소설이라는 모험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이수(52·본명 김종규)씨. 평탄한 생활에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설을 택한 그는 2009년 문화센터에 등록해 소설 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과 주말을 글쓰기에 할애했고 노력 끝에 2013년 단편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무명의 작가가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 공모전에 꾸준히 작품을 투고했다. 세계문학상 본선에 오르면서 편집자의 눈에 띄었던 장편 ‘가토의 검’과 ‘갈때기 포트’(이상 나무옆의자)는 각각 2015년과 올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글을 쓰면 아무래도 나 자신의 과거를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에 예전에 겪었던 아픔이 떠오르지만 글은 끝끝내 내 삶에 위로를 건넸다”면서 “은퇴 후에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와 추리를 접목한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목표다.●“침체된 문단 활력소로”비등단 작가·겸업 작가의 탄생은 침체된 문단에도 활력소가 될 만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주류 문학 체계를 벗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자생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현듯’ 작가가 됐다. 서른 살을 앞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던 그는 문득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날부터 재즈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 문예지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밝혔듯 이처럼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다. 거칠게 말하면 ‘아무나’ 작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아무나 작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기성 문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을 하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하루키처럼 ‘불현듯’ 도전한 소설 쓰기가 어느덧 자신의 삶이 됐다는,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현듯’ 작가가 됐다. 서른 살을 앞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던 그는 문득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날부터 재즈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 문예지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밝혔듯 이처럼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다. 거칠게 말하면 ‘아무나’ 작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아무나 작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기성 문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을 하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하루키처럼 ‘불현듯’ 도전한 소설 쓰기가 어느덧 자신의 삶이 됐다는,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을 소개한다.지난해 12월 발표한 소설집으로 출판계를 뒤흔든 무명작가가 있다.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이상 요다)를 쓴 김동식(33)씨다. 지저세계, 외계인 침공, 말하는 목각 인형, 손가락이 열두 개인 신인류 등 만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짚어낸 짧은 글들을 모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회색인간’은 약 두 달 반 만에 6쇄, 2만 2000부가 팔려나갔다. 유명 작가의 소설이 1만부를 찍기도 어려운 요즘 이례적인 흥행 성적이다.●‘누구나’ 소설가 될 수 있어 김씨가 글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2006년 서울에 올라왔다. 외삼촌의 권유로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금형에 뜨거운 쇳물을 부어 단추, 지퍼, 액세서리 등을 찍어내는 일을 2016년 말까지 10년간 했다. 김씨는 2016년 5월 특별한 목적 없이 자주 들르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첫 번째 글 ‘이미지 메이킹’을 올렸다.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진창”인 소설이었지만 ‘다른 글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평소 책을 거의 보지 않았던 김씨를 가르친 건 온라인 독자들의 댓글과 포털사이트였다. 김씨는 사람들이 오유 게시판에 올린 창작글을 통해 기승전결과 반전의 서사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하며 작법을 익혔다. 김씨는 “공장에서 내가 만든 수만 개의 물건은 누가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올린 글을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창작의 중독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첫 작품을 올린 이후 김씨는 지금까지 360여편에 달하는 단편을 완성했다. “최소 3일에 1편씩은 쓴다”는 개인적인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 이 소설집을 기획한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어느 시대든 소설이라는 것은 그 시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김 작가의 등장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규정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최근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작가들이 (등단과 관련한) 물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도전 자체가 무한대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작품의 질과 순정성 등 기본적인 것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스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난 2월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25)씨는 최근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각각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습작을 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번에 다른 수상작과 함께 책으로 엮어 나온 ‘관내분실’(허블)은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에서 분실된 엄마의 기록을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다. 과학적 공간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이 작품은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씨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에 익숙했다. 글쓰기는 그의 생활방식이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고. 주로 에세이를 많이 쓰던 그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과학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에 눈뜨게 됐다. 김씨는 “과학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간 삶의 바깥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더 다양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과학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작법서를 보면서 시험공부 하듯이 소설을 배웠다. 그는 “경험상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면서 “단순히 어떤 기술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늘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의 공무원이 소설이라는 모험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이수(52·본명 김종규)씨. 평탄한 생활에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설을 택한 그는 2009년 문화센터에 등록해 소설 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과 주말을 글쓰기에 할애했고 노력 끝에 2013년 단편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다.그럼에도 무명의 작가가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 공모전에 꾸준히 작품을 투고했다. 세계문학상 본선에 오르면서 편집자의 눈에 띄었던 장편 ‘가토의 검’과 ‘깔때기 포트’(이상 나무옆의자)는 각각 2015년과 올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글을 쓰면 아무래도 나 자신의 과거를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에 예전에 겪었던 아픔이 떠오르지만 글은 끝끝내 내 삶에 위로를 건넸다”면서 “은퇴 후에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와 추리를 접목한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목표다. ●“침체된 문단 활력소로” 비등단 작가·겸업 작가의 탄생은 침체된 문단에도 활력소가 될 만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주류 문학 체계를 벗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자생적으로 글을 써 온 아마추어들이 생산한 작품은 문학성과 규범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기존 작품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우며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혀 왔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진선규♥박보경 부부 “월급 30만원일 때 결혼..기적이었다”

    진선규♥박보경 부부 “월급 30만원일 때 결혼..기적이었다”

    배우 부부 진선규와 박보경의 화보가 공개됐다.8일 디지털 매거진 지오아미 코리아(GIOAMI KOREA)는 12년간의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힌 진선규와 박보경의 커플 화보를 공개했다. 그간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에 익숙했던 두 사람이지만, 이날 만큼은 프로 모델 못잖은 포즈와 표정으로 포토그래퍼와 스태프를 놀라게 했다.진선규는 화보 촬영 중 “아내는 집에서도 예쁘다”라고 연신 추어올렸지만, 이날 누구보다 화려하게 변신한 아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박보경 역시 육아로 인한 공백기가 무색하게 여유 있는 미소와 포즈로 보는 이들을 모두 매료시켰다. 화보 촬영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진선규는 “사실 아내 입장에서는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었는데, 저보다 더 여유롭게 해서 놀랐다”면서 “같이 촬영하니까 집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들어 더더욱 편하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박보경은 “화보 현장이 익숙하지 않아 긴장이 많이 됐는데, 우리 남편이 곁에 있으니까 역시 든든하다”고 미소지었다.이들은 결혼 비하인드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진선규는 “대학교 때부터 인연이 닿은 선후배 사이였다. 그때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같은 극단에서 활동을 하게 되다 보니, 매일 만나게 됐다. 이후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다”고 공개했다. 박보경은 결혼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우리의 월급이 각각 30만 원에 불과했다. 둘의 연봉을 합쳐도 720만 원밖에 되지 않았을 때다. 결혼식을 올린 것 자체가 작은 기적이었다”며 웃었다. 그런데도 결혼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그냥 진선규라는 분이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경제적인 부분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도 오빠가 집에서 다 양보하고 배려해줘 싸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모로 결혼을 참 잘한 것 같다”고 말해 애정을 과시했다.진선규, 박보경 부부의 꿀 떨어지는 케미가 담긴 화보는 지오아미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와 SNS 채널을 통해 공개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CEO들은 ‘배면뛰기’에 왜 감탄했을까

    CEO들은 ‘배면뛰기’에 왜 감탄했을까

    다르게 뛰기/마이클 바엘리 지음/공보경 옮김/처음북스/400쪽/1만 6000원최근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깜짝 선전한 한국 컬링 여자대표팀 ‘팀 킴’의 활약은 한동안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다. 일본과 맞붙은 준결승에서 마지막 순간 역전승을 이끌어낸 장면은 특히 주목받았다. 숨 막힐 듯한 부담감 앞에서도 선수들이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 간의 완벽한 호흡과 위기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강인한 의지 덕분이다. 인생이라고 다르랴. 스포츠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것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선수들의 운동 수행 능력을 개선하는 데 활용되는 스포츠심리학을 인생에 접목하면 우리의 성과도 향상되지 않을까. 스포츠에서 기록을 결정하는 다양한 심리 요인을 연구해 온 저자는 경기력과 연관 있는 사고 과정과 행동 패턴은 인간이 수행하는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스포츠심리학의 교훈을 따르면 개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조직의 성공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당시 무명의 높이뛰기 선수인 리차드 더글라스 포스베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혁신적인 장면을 보여 줬다. 그는 보통 앞 구르며 다리를 벌려 뛰는 ‘스트래들 롤’ 대신 몸을 뒤로 젖혀 넘는 ‘배면뛰기’를 선보였다. 당시 육상 경기 전문가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지만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이 방식은 오늘날 높이뛰기의 표준 기술이 됐다. 저자는 인습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고 그에 따라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혁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특히 주변에서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심어 주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데 도움이 된다. 1992년 이스라엘 농구팀 하포엘 텔아비브의 감독을 맡았던 랄프 클라인은 보잘것없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이스라엘 챔피언십의 우승을 노릴 수 있을 만큼 훌륭한 팀으로 만들었다. 수비가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하던 선수들이 리그의 최고의 수비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클라인은 선수들에게 “당신들은 리그에서 최고의 수비수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고 싶은 리더라면 인위적으로라도 직원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유능하다고 믿는 직원들은 스스로 과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등 적극적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생산적일 때도 있다. 저자가 286개의 축구 페널티킥 영상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28.7%의 공이 골대의 중앙으로 향했지만 골키퍼 중 6.3%만 중앙을 선택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한 방향으로 뛸 때보다 중앙에 가만히 있을 때 슛을 막을 기회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골키퍼는 대부분 몸을 날렸다. 구단주, 감독, 팬, 언론 등 자신의 수행 능력을 관찰하고 있는 자들이 봤을 때 ‘덜 전문적’이거나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내걸지 않는 사람’으로 비칠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커리어를 쌓는답시고 뭔가를 하기 위해 무작정 매달리지 말고 스스로 한 행동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집중하라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회사에서 모욕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그 기분이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리고 무행동으로 대응하는 게 낫다. 리더 역시 직원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때 주위를 맴돌지 말고 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스포츠심리학의 원칙을 일일이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단순명료하지만 핵심을 파고드는 조언들, 이를테면 “일상에서 큰 생산성을 이끌 수 있는 작은 혁신을 매일 시험하라”, “상황에 관계없이 실패와 실수를 배움과 진보의 기회로 삼아라”, “수행을 개선하는 데 상상력을 사용하기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등은 실생활에서도 새길 만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대장장이 등 이름 없는 의병 831명을 기억합니다

    대장장이 등 이름 없는 의병 831명을 기억합니다

    부대장급 위주 기존 기록 보완 평민 주축 무명 활약상 찾아내 ‘가장 치열했던 한말…’ 발간대장장이, 제지업자, 상인…. 일제에 맞서 대한독립을 외치다 이름 없이 순국한 전북 지역 민초(民草) 의병 831명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가 추진된다. 전북도는 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광복회 전북지부,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무명 의병의 활약상을 찾아내 ‘가장 치열했던 한말 전북의병사’를 펴냈다고 28일 밝혔다. 이 의병사는 부대장급 위주로 작성된 기존 의병사에 비해 평민 의병을 대거 발굴해 포함시킨 게 특징이다. 지난해 8월부터 공훈록, 전북의병사 등 20여 종의 기록물에서 평민이 주축인 일반 의병에 대한 연구조사를 벌여 무명 의병들의 활약상을 찾아냈다. 전주 출신 상인 김법윤(1889~1908)은 1907년 충남 공주에서 동지들을 모아 무장투쟁을 하다 1908년 체포돼 19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장장이 출신 박영춘은 전북에서 의병활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익산과 군산에서 무장투쟁을 하다 체포된 여학봉(익산·생몰년 미상)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중 순국했다. 제지업자 최봉갑(순창·생몰년 미상) 역시 임실에서 의병자금을 모으다 체포돼 옥사했다. 이강안 광복회 전북지부장은 “그동안 부대장급은 기록물 발굴작업이 활발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지만 일반 의병에 대한 연구조사는 부족했다”면서 “이번 사업은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에 의병 참가자들의 신원 회복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무명 의병을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면서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무명 의병도 수백명에 이르는 만큼 후속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토요 진단] 조재현ㆍ오달수도 휘말렸다… 떨고 있는 방송ㆍ연예계

    장자연사건 등 추악한 성추문 비일비재 신인 배우ㆍ가수 스타 꿈 좌절 우려 참아 대중들 피해자와 연대… 폭로 확산될 듯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촉발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문화·예술계 전반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고은(85) 시인, 이윤택(66) 연극연출가, 조민기(53) 배우 등이 저지른 적나라한 성추행에 대한 잇단 폭로가 불을 댕긴 모양새다. 이 미투 운동이 성폭력의 ‘복마전’으로 불리는 방송·연예계로 옮아 붙을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 깊숙이 곪아 있던 ‘성 적폐’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솎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23일 방송 프로듀서(PD), 연예기획사 등에 따르면 최근 예술이라는 가면 뒤에서 은밀하게 이뤄진 성추행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방송·연예계 관계자들이 좌불안석이다. 무명 시절 연극 무대를 발판 삼아 실력을 쌓은 뒤 방송과 영화계로 진출해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쉽게 넘기지 못하는 분위기가 짙게 형성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되지 않을지 떨고 있는 관계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성폭력 폭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데 이어 유명 배우의 실명이 추가로 거론되면서 방송·연예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인 상황이다. 배우 최율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너 언제 터지나 기다렸지. 생각보다 빨리 올 게 왔군. 이제 겨우 시작. 더 많은 쓰레기들이 남았다”라는 글과 함께 톱배우 조재현의 프로필을 캡처한 사진을 올렸다. 논란이 커지자 최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와 함께 배우 오달수의 실명도 꾸준히 입에 오르고 있다. “여자 개그맨들이 상습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고발하는 글도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랐다. 한 방송 관계자는 “성폭력이라는 이름의 뇌관은 방송·연예계 모든 곳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성폭력 폭로에 방송·연예계가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성 상납으로 대표되는 추악한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배우·가수 등 연예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PD나 감독,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이 여배우나 여가수를 상대로 ‘술자리 갑질’이나 추행을 종종 일삼아 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9년 신인배우 장자연이 소속사 대표의 강요로 유력 인사 성접대에 내몰린 끝에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유력 인사들은 죄다 법망을 피해 갔다. 방송·연예계 내 성추문이 철저히 묵인·은폐·축소돼 온 것은 이들이 철저한 갑을 관계 속에서 ‘을의 성공’을 거래해 왔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캐스팅’에 민주적인 절차나 규칙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서로의 욕망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신인 배우나 가수들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해도 문제제기를 했다가 스타라는 꿈이 좌절될까 봐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희주 영화감독도 “고용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폭로를 하는 일이 훨씬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미투 운동은 어떻게든 묻고 넘어가려 했던 장자연 사건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지칭하며 폭로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물타기가 먹혀 왔지만 이제는 쉽게 무마될 수 없다”면서 “대중들이 피해자들의 폭로를 용기 있는 선택으로 바라보고 그들과 연대하고 있기 때문에 연예계 미투 운동은 계속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해투3’ 허성태, 살벌 외모 뒤 숨겨진 반전 매력 “해치지 않아요”

    ‘해투3’ 허성태, 살벌 외모 뒤 숨겨진 반전 매력 “해치지 않아요”

    ‘해투3’에 출연한 배우 허성태가 반전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충무로에 이어 안방극장을 접수했다.KBS 2TV ′해피투게더3′(이하 ‘해투3’)의 22일 방송은 박철민-장현성-강세정-허성태가 출연한 ‘해투동-연기만렙 특집’과 박완규-하이라이트-EXID-길구봉구가 출연한 ‘전설의 조동아리:내 노래를 불러줘-미녀와 야수 특집 1탄’으로 꾸며졌다. 이 가운데 ‘해투동-연기만렙 특집’에서는 배우 허성태가 강력계형 외모 속 반전 매력과 예능감을 뽐내며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이날 허성태는 최근 ‘충무로의 신 흥행요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에 대한 감회를 드러냈다. 허성태는 MC들이 그가 2017년 스크린 티켓파워 순위에서 송강호와 현빈을 제치고 6위에 랭크 됐다며 놀라워하자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네 작품이 개봉을 해서 그렇다. 단역으로 여러 편 출연했을 뿐”이라고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잠시 허성태는 전현무가 “누적 관객수가 1600만이 넘었냐?”고 묻자 “2000만이 넘는다. 2300만 정도”라며 팩트 체크를 빼놓지 않아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허성태는 자신의 높은 관객 동원력에 남다른 이유가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인맥왕’인 가족들이 영업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고 전한 것. 특히 허성태는 “누나가 보험업계에서 일을 한다”면서 ‘인맥계의 허브’가 자신의 지원군임을 밝혀 폭소를 유발했다. 그런가 하면 허성태는 강력 범죄형 외모에 따른 부작용들을 털어놔 흥미를 자극했다. 허성태는 “대중 목욕탕에 들어가서 탕 속에 들어가 있는데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사람들이 다른 탕에만 들어가 있더라”며 본의 아니게 욕탕을 전세 냈던 사연을 고백했다. 더욱이 허성태는 “왜 제 탕에만 아무도 없죠?”라며 하소연을 했는데 전현무가 “안 웃었죠?”라고 묻자 “그럼 탕에서 웃나요?”라고 받아 쳐 웃음을 유발했다. 이에 조세호는 “사실 웃으면 더 다가가기 힘들다”고 덧붙여 시청자들의 배꼽을 강탈했다. 이날 허성태는 엘리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과거 이력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데뷔 전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으며 대기업에 근무, 러시아에서 TV 파는 업무를 맡아 했다고 밝힌 것. 더욱이 허성태는 러시아어로 자기소개를 하는가 하면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해치지 않아요”라며 유창한 회화 실력을 뽐내 감탄을 자아냈다. 나아가 그는 학창시절 전교 1등을 여러 번 했던 엄친아의 면모를 드러냈는데 “노래방에서 공부를 한적도 있다. 약간 괴물이라고 (하더라)”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할말은 다 하는 뻔뻔함(?)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또한 허성태는 35세의 나이에 대기업을 퇴사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특이한 이력에 대해 꺼내놨다. 장난 삼아 배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밝힌 것. 허성태는 “가족들이 다 뜯어 말렸다. 어머니는 울면서 때리기까지 했다”고 회상하며 “화내시는 엄마 앞에서 연기까지 했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연해 폭소를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허성태는 무명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설움을 겪었던 스토리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퇴직했던 회사의) 홍보 행사장의 행사부스를 밤새 지키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제 현실을 인정하게 됐었다”며 운을 뗀 뒤 “당시 담당자가 신입사원 혹은 대리급 정도로 보이는 분이었고 저는 과장 진급을 앞두고 그만 뒀던 상황이었다. 그분이 나에게 버릇없게 군 것은 아니지만 친절하지도 않은 말투로 지시를 하더라. 그 순간 ‘만약 계속 내가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못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밤새도록 부스 안에서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혀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이어 허성태는 “그 일을 모티브로 삼았다.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패배감을 원동력으로 바꾸는 긍정의 힘을 보여줘 먹먹한 감동까지 안겼다. 한편 이날 허성태는 중학생 시절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아이돌을 꿈꾸기도 했다고 밝히면서 워너원의 ‘나야 나’ 커버댄스를 선보이는 등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매력을 뽐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해피투게더3’는 매주 목요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0대에 최전성기’ 고다이라의 또다른 직업은 병원 직원

    ‘30대에 최전성기’ 고다이라의 또다른 직업은 병원 직원

    일본 최초이자 최고령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 나오(32·일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1000m 은메달, 5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500m에서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전성기를 맞았다.0.39초 차로 은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리는 이상화(29·스포츠토토)를 안고 함께 트랙을 도는 등 훈훈한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이 모습은 전 세계의 팬들에게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감동을 주었다. 이상화는 고다이라가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대회에 출전했을 당시 공항으로 가는 택시비를 내주는 등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다이라는 19일 일본 매체들과 기자회견에서 이상화와의 우정을 소개했다. 그는 “상화는 내가 월드컵 데뷔 때부터 굉장히 잘 대해줬다. 어리지만 스케이트에 대한 생각이 훌륭하다. 정말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잘 되지 않아 경기장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그 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상화가 내게 와서 함께 울어줬다”면서 “그래서 어제 나도 상화의 마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의 우정은 꽤 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다이라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금메달을 위해 2년 동안 빙속 최강국 네덜란드로 떠나 마리아너 티머르 코치 밑에서 매일 사이클 150㎞를 타고, 공기 저항을 덜 받도록 변화를 준 스케이팅 자세를 익혔다. 영양학과 해부학도 공부했다. 고다이라는 병원 직원이기도 하다. 2009년 스폰서기업을 구하지 못한 무명 고다이라에게 재활 훈련으로 인연을 맺은 아이자와병원 이사장이 직접 고다이라를 스포츠 장애예방센터 직원으로 채용해 도움을 줬다. 병원 측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직원 해외 유학’의 방식으로 고다이라에게 수행 직원을 붙여줬고 비지니스 클래스 좌석을 지원해줬다. 2017년 4월에는 영양사도 고용해주고 ‘장기 출장’의 방식으로 해외 훈련과 대회에 나가게 해줬다. 고다이라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단체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딴 뒤 병동을 돌며 환자들에게 응원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5ㆍ18 행불자 가족 DNA 확보… 부엉산ㆍ주남마을 유골과 대조

    광주시가 9년여 만에 5·18 행방불명자 가족들의 유전자(DNA) 추가 확보에 나선다. 시는 다음 달쯤 공고를 낼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시는 전남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 의뢰해 2000~2009년 4차례 5·18 행불자 124명 가족 299명의 혈액을 확보했지만 1990년부터 7차에 거쳐 접수된 행불자 242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118명의 가족 혈액 샘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1989년 1월 광주 동구 녹동마을 인근 일명 ‘부엉산’ 기슭에서 발견됐던 ‘부엉산 유골’과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무명열사 5기, 주남마을에서 발견된 유골 3기의 유전자와 대조 작업을 벌인다. 시는 이들 유골에 대해 지난해 11월부터 확보한 유전자와 대조 작업했으나 일치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박열’ 최희서, 흑백의 고혹미 넘치는 화보 공개

    ‘박열’ 최희서, 흑백의 고혹미 넘치는 화보 공개

    배우 최희서의 고혹적인 화보가 남성 매거진 ‘GQ코리아’를 통해 공개됐다.흑백 촬영 모드로 촬영한 이번 화보에서 최희서는 블랙 카리스마를 앞세워 시크한 매력을 담았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보디라인과 아련한 표정은 그가 지닌 매력이 십분 드러나게 했다. 한편, 무명 배우였던 최희서는 지난해 영화 ‘박열’로 제54회 대종상 신인여자배우상과 여우주연상, 제38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9회 올해의 영화상 신인여우상 등을 휩쓸었다. 차기작으로 ‘아워바디’ 출연을 확정한 최희서는 먼저 오는 4월 방송 예정인 OCN ‘미스트리스’를 통해 안방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브라보 마이 라이프’ 종영, 존재감 드러낸 현우 ‘귀여운 심쿵남’

    ‘브라보 마이 라이프’ 종영, 존재감 드러낸 현우 ‘귀여운 심쿵남’

    ‘브라보 마이 라이프’ 현우가 뛰어난 연기력과 존재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현우는 지난해 10월 첫 방송을 한 SBS 특별기획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트라우마를 지닌 배우 범우 역을 맡아 명품 연기로 극을 풍성하게 이끌었다. ‘범우’는 공황 장애로 인한 카메라 울렁증으로 7년째 무명이었지만 도나(정유미 분)의 도움으로 드라마 데뷔를 한 인물이다. 현우는 극 중 범우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얻었다. 공황 장애를 이겨내려 고군분투하는 모습부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극적인 모습까지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인 것. 현우는 꿈을 향해 뚝심 있게 나아가는 범우의 절박한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또한 현우는 화수분 같은 매력으로 안방극장을 심쿵에 빠뜨리며 로맨스를 이끄는 남주인공으로 눈길을 끌었다. 현우는 짝사랑하는 도나에게 한 발짝씩 다가가는 간지럽고 설레는 로맨스로 달달함을 선사하기도 하고, 남자다움, 귀여움, 사랑스러움 등 천의 매력으로 매회 여심을 저격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우는 캐릭터의 굴곡진 감정 연기부터 로맨스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 연기를 펼쳤다. 특히 깊이 있는 눈빛과 표정으로 디테일한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하며 스토리의 진정성과 설득력을 더해 극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명품 연기’를 선보였다. 매 작품마다 자신만의 색으로 캐릭터를 200% 소화해내며 대체불가 존재감을 보여주는 현우이기에 그의 다음 작품이, 앞으로의 연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지난 3일 종영했다. 사진=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그저 그런 사람들의 영화 같은 삶

    그저 그런 사람들의 영화 같은 삶

    인생극장/노명우 지음/사계절출판사/448쪽/1만 7800원영웅과 범인(凡人)의 차이 중 하나로 ‘기록의 유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을 구한 사람에 대한 칭송은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널리 전해지는 법이다. 영웅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기 이름을 또렷이 새기는 반면 필부의 지난한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24년 충청남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한 남자와 1936년 서울 종로구에서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난 한 여자의 삶도 어쩌면 ‘그저 그런’ 인생 중 하나로 묻힐 뻔했다. 역사라는 큰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삶은 아들이자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교수를 통해 되살아났다. ‘인생극장’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한 뒤 아들에 의해 비로소 자서전이 쓰인 셈이다.저자가 부모의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인생의 심층을 들여다본 이유는 뭘까. 책 첫머리에 놓인 “말 없는 피조물은 의미되면서 구원을 희망할 수 있다”는 발터 베냐민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흔적 없이 사라진 무명씨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그들이 공유한 한 시대의 궤적을 살피는 일이다. 책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겪고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룬 세대가 겪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개인의 삶으로 엮어 낸다. 다만 세상을 떠난 부모의 개인적인 기록이 많지 않은 터라 저자는 1920~70년대 풍속을 반영한 대중영화를 통해 그 시절을 추적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당시 유행을 따라 만주로 떠났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만주는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1942년에 나온 노래 ‘만주 신랑’의 ‘꿈 하나 잘못 꾸어 헝큰 청춘아 눈물도 웃음 되는 만주러라’라는 가사를 통해 만주를 향할 당시 아버지가 가슴에 얼마나 큰 꿈을 품었을지 짐작해 본다. 의지로 떠난 만주와는 달리 강제징용으로 나고야 일본군 병사로 징집된 아버지의 심정은 징용병이 황군이 되는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린 영화 ‘병정님’(1944)을 통해 느껴본다. 영화는 안심하고 자녀를 군대에 보내라고 부모를 설득하지만 누구도 제국의 질서에 얽매이는 것을 반가워했을 리 없다. 한편 당시 국민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전쟁통에 고아가 된 어머니는 전쟁이 끝날 무렵 아버지와 결혼해 파주 미군 기지 근처에서 미장원을 열고 ‘양공주’의 머리를 말았다. 어머니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나 ‘또순이’(1963)의 주인공처럼 그 시절 권장되었던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그대로 따른 전형적인 한국 여성이었다. 큰소리치면서도 모든 것을 책임지지 못하는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았고 그저 내조에 충실했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내는 것. “애비가 못 배웠으면 자식들이라도 가르쳐야지”라는 영화 ‘수학여행’(1969)의 대사처럼 공부가 출세의 수단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저자의 부모가 정착한 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950~70년대 세상물정이다. 달러를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이곳에서 아버지는 사진관과 미군의 유흥공간인 ‘레인보우 클럽’을 열어 달러를 쓸어 담는다. 미군 부대가 철수한 뒤 양공주라는 ‘달러의 파이프라인’이 사라지자 ‘레인보우 클럽’은 한국 군인과 면회객을 대상으로 하는 ‘무지개 다방’과 ‘무지개 홀’로 모습을 바꾼다. 개인들의 선택에 따라 변모하는 파주라는 공간은 당시 체면보다 생존이 중요했던 전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저자는 부모의 자서전을 끝맺으면서 부모가 살았던 시대를 회고하는 일이 과거에 머무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히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라는 것. “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432~433쪽)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큰 대(大) 자에 이길 첩(捷) 자, 대첩이란 곧 크게 이긴 싸움을 이른다. 흔히 임진왜란의 3대첩이라면 1592년 8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과 같은 해 10월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그리고 이듬해 2월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을 들곤 한다. 꺼져 가던 목숨을 가까스로 이어 가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4일 발발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가 지휘하는 왜군 1만 8700명을 태운 배는 전날 밤 이미 부산진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왜군은 이튿날 안개가 걷히자 상륙해 부산진성을 포위했고 첨사 정발이 이끄는 500명 남짓 조선군은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다. 이후 왜군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양도성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한다.북변 방비에서 용맹을 떨치던 신립 장군이 갑작스럽게 삼도순변사에 임명된 이후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이 그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은 4월 28일이다. 탄금대 패전 소식이 알려지자 조정은 우왕좌왕했고, 결국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이치 승리로 권율 전라도 순찰사 올라 행주대첩 한편으로 왜군은 곡창 호남으로 진출하려 안간힘을 썼는데 당연히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왜군이 장악한 부산진-한양 라인에서 호남으로 가는 방법은 수군(水軍)이 해로를 장악하거나, 보군(步軍)이 진주를 공략해 서진(西進)하거나, 지금은 충청도 땅이 된 전라도 금산에서 이치(梨峙)를 넘어 전주로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수군은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에 대패해 기세가 꺾였고, 보군은 곽재우, 김면, 정인홍 등이 이끄는 경상도 의병에 가로막혀 쉽사리 서쪽을 넘보지 못했다. 결국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1만 병력으로 하여금 이치를 공략하게 했다. 배치재라고도 하는 이치는 오늘날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의 경계에 해당한다. 해발 340m의 고갯마루에 서면 완주 쪽으로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대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주목사 권율은 7월 8일 1500명 남짓한 군사를 지휘해 험준한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복병전으로 왜군을 격퇴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관군(官軍)이 거둔 첫 번째 대승이었다. 권율은 이치의 승리로 전라도 순찰사에 올랐고, 같은 직함으로 이듬해 행주대첩의 명장이 된다. 권율의 휘하에는 화순 동복현감 황진도 있었다. 세종시대 명재상 황희의 5대손이라고 한다. 황진 역시 이치 승리로 익산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에 올랐다. 이듬해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 그는 경기도 죽산 전투 이후 패퇴하는 적을 경상도 상주까지 추격해 연전연승하기도 했다. 그는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막아내다 머리에 조총을 맞고 전사했다. ‘선조실록’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왜장(倭將)이 또 대군(大軍)을 출동시켜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해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장 위대기·공시억 등과 재를 점거해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해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해 적병을 대파하였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草木)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수들을 독려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 왜적은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 이치 전투를 첫째로 쳤다’●부친 순국 소식에 장ㆍ차남 참전 나섰다 모두 전사 당시 왜군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도 의병에게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이치 전투 당시 권율 장군의 휘하에도 적지 않은 의병이 가세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7월 3일 관군과 합동으로 금산성을 공격하다 순국한다. 옥천의 조헌은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8월 18일 금산성을 공격했지만 모두 순절하고 만다.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이들의 무덤이다. 전라도 익산 유생 이보와 소행진은 금산에서 들려온 조헌 의병의 순절 소식에 400명 남짓한 의병을 규합한다. 이들은 금산으로 향하다 8월 27일 이치에서 왜군과 맞닥뜨렸다. 400명의 무명 의병은 급조한 활, 낫과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순국했다. 소행진의 큰아들 소계는 아버지 장사를 마치자 금산으로 달려갔고, 작은아들 소동도 형의 순국 소식에 금산으로 달려가 전사했다. 소동의 부인 민씨는 강화 친정에서 남편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권율 대첩비 1940년 왜경이 파괴… 1964년 재건 이치에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는 금산, 호남고속도로는 논산이나 전주를 경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치 전투라는 하나의 역사를 기리건만 유적은 ‘금산 이치대첩지’와 ‘완주 이치전적지’로 나뉘어 있다. 이치대첩지는 충남 기념물 154호로, 이치전적지는 전북 기념물 26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금산이 1963년 충남에 편입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굳어졌다. 완주 전적지는 이치 정상에 있다. 길가에 ‘이치전적지’라 새긴 비석이 있고, 그 안쪽으로 ‘무민공(武愍公) 황진장군 이현(梨峴)대첩비’가 보인다. 이치전적지 비석은 1993년, 이현대첩비는 2006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대첩비 뒤편에 숨어 있는 ‘이치대첩유허비’(遺墟碑)에서는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조금은 느껴진다. 전적지 옆에는 휴게소가 있다. 탐방객은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게 마련인데, 전적지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휴게소와 주차장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으로 행정구역이 갈린다. 이곳에서 금산쪽으로 1.5㎞쯤 달리면 대첩지가 나타난다. ‘이치대첩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는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권율 장군을 기리는 충장사와 대첩비각이 보인다. ‘도원수권공이치대첩비’(都元帥權公梨峙大捷碑)는 당초 금곡사(金谷祠)와 함께 1902년 건립됐다. 하지만 1940년 일본 경찰이 비석과 사당을 모두 파괴했고, 지금의 비석은 1964년 다시 세운 것이다.●무명 의병 희생 외면하다 2016년 ‘반성 비석 ’ 세워 이치전적지와 이치대첩지는 행정구역뿐 아니라 기리는 주체도 갈려 있다. 전적지는 황진의 기념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대첩지는 완벽하게 권율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념물이 승리한 관군의 역사만 기억할 뿐 무명 의병의 희생은 외면하고 있다는 반성도 뒤따랐다. 2016년 전적지에 400명의 무명 의병을 기리는 작은 비석이 세워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름하여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다. 이런 글귀도 보인다. ‘관군의 주력부대가 승리를 거둔 7월 전투는 세상에 자세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병이 주도한 8월 전투는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채 묻혀지고 있다. 그것이 아쉬워 이 비를 세워 바로 알리고자 한다.’ 글ㆍ사진 dcsuh@seoul.co.kr
  • 정소영, ‘황금빛 내인생’ 선우희 맞아? 화보서 뽐낸 ‘팜므파탈’ 매력

    정소영, ‘황금빛 내인생’ 선우희 맞아? 화보서 뽐낸 ‘팜므파탈’ 매력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 출연 중인 배우 정소영이 bnt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맘누리, 프랑코 푸지, 프론트(Front), 악세사리홀릭 등으로 구성된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이번 화보에서 그는 화이트 레이스 드레스로 퓨어 무드를 소화하는가 하면 플라워 드레스로 사랑스러움을 어필, 코트에 와이드 데님 팬츠를 매치하며 걸크러시 반전 매력을 드러냈다. 촬영을 마친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시청률 40% 이상을 기록한 것에 대해 “‘야인시대’ 이후 처음”이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인생작’을 만났다는 그는 40대 첫사랑 아이콘으로 떠오른 선우희 역할 소감으론 “나를 위한 맞춤 역할 같다”며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그는 이번 역할을 위해 ‘히피펌’으로 변신한 뒤 송하윤과 닮을꼴 모습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에 그는 “내가 봐도 많이 닮은 것 같다. 기분이 좋았다”며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로맨스 연기를 함께한 동갑내기 최귀화와의 호흡에 대해선 “공감대 형성이 잘 됐다. 아무래도 40대가 되니 너무 편하게 대하 순 없어서 아직 존댓말을 쓴다”고 전했다. 함께 출연 중인 서은수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는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비타민 같은 친구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7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천호진에 대해선 “촬영장에서 그 어떤 배우보다도 노력을 하신다”며 존경심을 표했다.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그에게 4년 만에 복귀한 이유를 물으니 “더 늦게 컴백을 하고 싶었지만 이번 드라마를 꼭 하고 싶어서 복귀를 결심하게 됐다”며 남다른 열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초등학생들도 알아볼 정도로 팬들의 연령층이 다양해졌다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앞으로 함께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묻는 질문엔 김수현을 꼽으며 “누나 역할이라도 좋다.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원조 ‘첫사랑의 아이콘’답게 20대 못지않은 동안 외모를 자랑하지만 그는 2015년 배우 오협과 결혼해 어느덧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워킹맘이다. 3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 첫 출산을 경험한 그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전했으며 둘째 계획에 대해선 “현재로선 없다”고 밝혔다. 이어 워킹맘 생활에 어려움이 없는지 묻자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남편이 육아를 많이 도와준다”고 전해 훈훈함을 안겼다. 한편 남편 이외에 연예인과 교재를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결혼 전 연예인에게 대시를 많이 받았고 부담스럽게 느껴져 다 거절을 했었다”라고 발언해 놀라움을 안겨줬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신랑을 만나보니 좋은 점들이 수도 없이 많다며 남편 바보의 면모를 보이기도. 결혼 3년차 아내의 음식 솜씨에 대해선 “좋은 편이다. 엄마 닮아 손맛이 좋다”며 내조의 여왕 면모를 과시했다. 여전히 20대 같은 피부 비결로는 “피부는 타고났다. 그래서 오히려 게으른 편이고 관리를 잘 안 한다”며 털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1999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던 그는 무명 없이 데뷔하자마자 주연을 맡았던 행운의 여배우다. 그러나 그는 당시 지나친 관심이 부담감으로 다가왔었다고 털어놨다. 멋모르고 뛰어들어 연예계 생활이 버거웠던 그는 빨리 나이가 들고 싶었고 어느덧 40대가 된 그는 “지금이 딱 좋다”며 여유가 깃든 표정을 보였다. 앞으로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는 정소영. 그가 넓혀나갈 연기 스펙트럼이 기대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10만 팔로어 기뻐요” 정현…테니스 스타 인스타 랭킹은?

    “10만 팔로어 기뻐요” 정현…테니스 스타 인스타 랭킹은?

    “제 진짜 목표는 인스타 100K(10만명) 팔로어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 목표를 이뤄서 너무너무 행복해요!”대한민국 남자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4강 신화를 쓴 정현(22·한국체대)이 2018호주오픈을 마무리하며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세계 무대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무명에 가까웠던 정현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호주오픈 이전 정현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3만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28일 기준 그의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사람은 12만 7000명으로 급증했다. 최근 2주 사이 4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테니스 선수들의 SNS 팔로어 수는 유명세에 비례한다. 인스타그램만 집계해보니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 등 세계 정상급 스타의 팔로어 수는 말 그대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다.테니스 스타 가운데 팔로어가 가장 많은 사람은 세레나 윌리엄스(미국)다. 750만명으로 2위권의 1.7배다. 윌리엄스는 출산 이후 전성기에는 못 미치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페더러와 나달의 팔로어는 430만명으로 같다. 이번 호주오픈 16강전에서 정현에 패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의 팔로어는 370만명으로 2위 그룹을 바짝 뒤쫓고 있다. 조코비치는 정현과의 경기 이후 인스타그램에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사진과 함께 “멋진 경기를 보여준 정현에게 축하를 전한다. 그는 이길 자격이 있다”는 게시물을 올렸다.약물 파동 이후 코트에 복귀한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300만명)와 부상 치료 중인 앤디 머레이(영국·140만명), 이번 호주오픈 여자단식에서 우승한 캐롤린 보즈니아키(덴마크·120만명) 등도 팔로어 수가 100만명을 넘는다. 호주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페더러와 우승컵을 놓고 다투는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의 팔로어는 5만 4800명으로 정현의 절반 정도다. 정현과 함께 이번 대회에서 이름을 알린 ‘8강 그룹’ 카일 에드먼드(영국)과 테니스 샌드그렌(미국)의 팔로어는 각각 3만 3000명, 438명에 그쳤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주말 영화]

    ■지니어스(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의 심신을 조련하고 사유와 문장을 다듬는 편집자의 역할은 어느 정도인 것일까. 영화 ‘지니어스’는 그 궁금증에 답이 돼 줄 영화다. 1929년 뉴욕의 출판사 스크라이브너스를 이끄는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는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등 대가의 원고를 다룬 유능한 편집자다. 그는 토머스 울프(주드 로)라는 무명 작가의 가능성과 재능을 알아보고 원고를 사이에 두고 치열하고도 정성 어린 교감을 이뤄 나간다. 서로의 신뢰를 넘어 애증으로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와 그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애썼던 조력자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커버넌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저지 보이즈’ 등의 각본을 쓴 존 로건이 15년간 준비해 각색했다. 2016년 작. ■실버라이닝 플레이북(OBS 일요일 밤 10시 10분)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아내는 물론 직장, 집 등 모든 것을 상실한 남자 팻(브래들리 쿠퍼)과 남편의 죽음 이후 회사 내 모든 직원들과 관계를 맺고 다니는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런스)의 좌충우돌이 시종 실소를 자아낸다. 갑자기 팻의 삶에 끼어든 티파니는 팻에게 아내에게 편지를 전해 줄 테니 댄스대회에 출전하자는 제안을 건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주인공 역을 매혹적으로 열연한 로런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3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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