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명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최남선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100M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18
  • 승리, ‘그것이 알고 싶다’에 “연예부 기자가 출세 위해 사실 확인 없이 보도”

    승리, ‘그것이 알고 싶다’에 “연예부 기자가 출세 위해 사실 확인 없이 보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클럽 ‘버닝썬’을 둘러싼 의혹을 다룬 가운데, 핵심 인물인 빅뱅 멤버 승리(29·본명 이승현)가 제작진에 보낸 해명 문자 메시지가 눈길을 끌고 있다. 23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버닝썬 게이트 그 본질을 묻다’ 편에서 클럽 ‘버닝썬’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파헤쳤다. 제작진은 이러한 의혹의 진위 여부 또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버닝썬의 유리홀딩스나 승리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관계자들과 만날 수 없거나 번번히 취재를 거부당했다. 그러다가 승리가 제작진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누구세요?”라고 답장을 보냈고,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임을 확인하자 “이번 일은 범죄로 점화된 범죄라 생각한다”면서 입장을 밝혔다. 승리는 “개인 휴대전화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해 그걸 공익 제보라고 포장했다. 이 내용으로 여론이 동조했고, 무명 변호사가 본인이 권익위(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다더니 제보자가 직접 나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예부 기자는 SBS 메인 뉴스에 출연해 출세를 위해 사실 확인도 없이 내용을 보도했다”면서 억울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저희들은 회사에 소속돼 있기에 자유롭게 반론하거나 언론 대응도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이를 어느 정도 악용했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버닝썬, 시청률 11.2% “#대만 린사모 #삼합회”[종합]

    ‘그것이 알고싶다’ 버닝썬, 시청률 11.2% “#대만 린사모 #삼합회”[종합]

    ‘그것이 알고싶다’ 시청률이 11.2%를 기록하며 10%대를 넘어섰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버닝썬 게이트 그 본질을 묻다’ 편은 전국 기준 11.2%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16일 방송분 시청률 6.8%에 비해 4.4%P 상승한 수치이자 동 시간대 방송된 프로그램 시청률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약 7개월 만에 10%대 시청률을 돌파했다는 점도 눈길을 모은다. 앞서 10%대를 돌파한 편은 지난해 8월 방송된 ‘그들은 왜 피지로 갔나?-낙토와 타작마당의 비밀’ 편으로 10.2%를 기록했다.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은 2006년 방송된 ‘벼락부자, 그 후-부자라서 행복하십니까?’ 편이 기록한 19.2%다. ‘그것이 알고 싶다’ 버닝썬 편에서 제작진은 3개월 간 추적한 클럽 버닝썬의 수많은 의혹과 버닝썬 게이트의 본질을 공개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버닝썬 의혹에 그룹 빅뱅 출신 승리뿐 아니라 대만 린사모, 삼합회 등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전해 충격을 안겼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린사모는 버닝썬의 2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해외투자자다. 제보자들은 “린사모는 제일 거물이다. 대만에서는 사모님 이름조차 못 꺼낸다. 남편이 대만에서 거의 총리급이다”고 말했다. 버닝썬 전 직원들은 린사모는 보통 매니저로 불리는 화교 남성의 이름으로 테이블을 예약하고, 2억원짜리 더블 만수르 세트를 시킨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전 직원은 “린사모는 스케일이 엄청 컸다. 삼합회 대장도 데리고 오고 그랬다”고 증언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버닝썬 관계자들은 린사모가 투자한 돈의 출처가 삼합회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검은 돈을 세탁하는 장소로 버닝썬을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승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 측에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입장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범죄로 점화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휴대폰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 이용하였고, 그걸 공익제보라고 포장하여 여론을 동조시키고 무명 변호사가 본인이 권익위에 제보하였다라고 인터뷰하고”라며 억울해했다. 이어 “권익위는 제보자를 보호하는 곳인데 제보자가 나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그리고 연예부 기자가 SBS 메인 뉴스에 출연하여 자료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지도 않고 본인의 출세를 위해 사실 확인없이 보도하고. 저희들은 회사에 소속되어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반론하거나 언론에 대응하거나 아닌 건 아니다 맞는 건 맞다라고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어느 정도 악용되지는 않았나 싶습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띵구’ 이승구 작가가 말하는 ‘조각 한류(韓流)’“제 작품의 캐릭터 ‘띵구’를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조각뿐만 아니라 인형과 피규어, 티셔츠까지 제작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조각가이지만 중국을 넘어 세계인 누구나 하나씩 갖고 싶어하는 작품을 남기려 합니다.” 中주요 건물 앞에 설치된 하얀 강아지 ‘띵구’연예인에서 문화예술로 ‘한류’ 한 차원 높여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조각가 이승구(47) 작가의 포부다. 그의 작품은 베이징의 랜드마크인 파크뷰그린 쇼핑물, 진하오호 리조트 골프장, 상하이 그린랜드, 항저우 인디고 쇼핑몰 앞 등에서 설치돼 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홍콩, 우한, 다퉁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건물 앞에서 떡 하니 버티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가 그의 작품 주인공이다. TV나 영화의 스타들이 중국에서 일으키는 연예인 한류를 이 작가가 ‘조각 한류(韓流)’ 돌풍을 일으키며 문화예술로 한류를 한 차원 더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와 예술에서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그가 어떻게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몇 차례의 약속 재조정 끝에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지난 12일 만났다. 코밑과 턱에 수염을 기른 모습에 첫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면. “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난 100% 한국 사람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지만, 부모님과 형, 누나 모두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2002년 중앙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킬시립미술학교를 거쳐 2008년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직후인 2008년부터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니 한국에선 저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각을 전공한 대학 동문들만 저를 알지만….” “獨 유학시절 만난 아내와 결혼 중국행…11년째中문화예술 자부심 대단…외국작가 활동 애로 많아”- 중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개념 미술’을 공부하다 다른 유학생들처럼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국 여성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아내의 나라 중국에 왔습니다. 처음엔 전혀 중국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잠시 살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던 2008년 8월 중국으로 왔는데, 벌써 11년이 됐습니다.” -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어떻나. “많이 놀랐습니다.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남다릅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 근성’이 아니라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제가 홍보하지 않고 전시회를 해도 하루 1000~2000명씩은 거뜬히 옵니다. 고미술전시회라도 열리면 허름한 옷차림의 동네 어른들도 가서 봅니다. 유료 입장이라도 고가의 티켓을 끊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술가의 거리인 베이징 798 예술구에 있는 갤러리들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드나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바닥을 공사해야 할 판’이라고 농담 조로 이야기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중화사상이랄까 자긍심 이런 게 느껴집니다. 이런 분위기가 젊은 층으로 퍼져 나가면서 예술품 구매도 활발하지요.” 건물 앞을 보란 듯이 지키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DDinggu)’. 입을 크게 벌리고 붉은 혀를 쑥 내밀고 있다. 이 작가는 이 애완견은 “불테리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사냥개 특유의 야생성도 엿보이지만 하얀 이빨은 뾰족하지 않고 둥글다. 검은 눈은 귀여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순진무구한 느낌이 물씬 풍기며 띵구라는 이름처럼 익살맞은 장난꾸러기 같다. 좌충우돌하는 강아지 띵구를 왜 중국인들을 좋아할까. 새로 짓는 건축물에 사악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지켜달라는 벽사의 의미로 강아지를 설치하는 걸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동물로 친숙한 느낌이 주는 작품성 때문일까. 신축 건물 앞에 버텨선 띵구, 볼테리어 형상화띵구는 어릴 적 별명…본성 잃어가는 인간 내면사냥개 특유의 야생성에 익살 맞은 장난꾸러기신축 건물의 사악한 기운 물리치는 벽사 의미도”- 전혀 연고가 없는 중국에서의 활동, 힘들지 않나. “중국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작가들도 살아남기 힘들어하는 곳입니다. 외국 작가들이 얼마 못 버티고 철수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사람이 제 작품을 사서 가져간다고 포장했습니다만 ‘작가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포장을 다시 풀더라고요. 중국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한국 작가가 할 일은 작품에 몰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작품 평론은커녕 보도자료 하나 부탁할 곳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자국 작가를 열심히 밀어주는 것이 마냥 부러웠죠.” - 전시회, 얼마나 자주 하나. “지난해에만 베이징, 상하이, 샤먼, 다통 등에서 6번 전시회를 가졌다. 요즘엔 상업시설도 있지만, 공공시설에서 전시회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선 한번 하면 2개월가량씩 전시합니다. 그러면 지난해 사실상 1년 내내 전시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너무 자랑 같나요(웃음). 갤러리에서 전시하면 일부러 찾아가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공공시설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예컨대 서울광장처럼 이런 곳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 공공장소 임대가 쉽지 않을 텐데. “제게 전시해달라고 부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당연히 저도 일정한 금액을 받습니다. 공공시설 전시회도 수년 전에 제가 처음으로 중국에 도입한 방식입니다.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도한 것입니다. 요즘엔 중국 작가들도 저를 따라서 공공시설에서 전시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전시작은 솔드아웃(Sold out·매진) 됩니다.” - 작품 소재가 강아지로 특이하다. “제 작품의 모티브는 사냥개인 불테리어입니다. 여기에다 제 어렸을 적 별명인 ‘띵구’를 붙여줬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제 이름을 빗대어 ‘띵구’라고 불렀거든요. 띵구는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고 그 바탕에 색깔을 입힌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띵구가 또 다른 저 자신입니다. 원래 불테리어는 한번 물면 놓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세고 입이 큽니다. 그러나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본성을 잃고 애완용이 되었습니다만 그 근성이 남아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이죠. 억압이나 스트레스 속에서 자유나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갈망 이런 것을 담았습니다. 이걸 캐릭터에 담았습니다. 띵구가 저보다 유명해지게 할 겁니다.” “2009년 첫 전시회부터 전시작 매진 행렬지난해 6번 전시회…전시기간은 1년 내내”그의 작품 가격은 얼마나 나갈까. 그는 중국에서도 17%의 세금을 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높이 4m짜리의 대작은 4억 5000만 원에 넘겨줬다고 한다. 최고가라고 한다. 그러나 50cm 전후 크기의 작품 가격은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그래도 전시회 때마다 그의 작품은 다 팔려나간다. 최근 수년 동안 경기 활성화에 힘입은 중국에 불어닥친 건물 신축 바람도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전통이 아닌 현대식 신축 건물의 지킴이로 그의 작품이 불티난 것이다. 요즘엔 그의 작품을 모방한 가짜도 돌아다닌다고 한다. 중국 대륙을 누비는 띵구, 2007년 만들었고, 2008년에 처음 발표했다. - 작품 성격,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제 아이가 2014년인가 그때 로컬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여느 중국 학생들처럼 목에 빨간 스카프인 홍링진(紅領巾)를 매고 왔습니다. 어릴 적 한국에서 반공교육을 세게 받았던 저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도 미디어나 교육 등의 영향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이걸 전시회에서 한번 차용한 적이 있습니다. 제 전시회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홍링진을 매게 했더니 중국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추억했고, 외국인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 재미있어하였습니다. 저는 뻘줌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20년간 3개국을 떠돌았으니 제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겁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을 띵구에 담은 겁니다.” - 하루 작품 활동은 얼마나 하나. “직접 만드는 것만이 작품 활동은 아닙니다. 제가 하는 독서나 여행 등도 작품의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주기에 작품활동의 연장이라 생각합니다. 소재는 스테인리스 강철입니다. 이걸 구부리고, 떼어내고 도색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철공소 풍경과 비슷할 겁니다. 작품을 만들려며 진흙으로 틀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높이 4m짜리 큰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한 6개월 걸립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몸무게도 5kg 정도 빠집니다. 힘들지만 완성되고 나면 카타르시스도 느낍니다. 이럴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요즘엔 작업을 도와주는 스태프, 체계적인 시스템도 갖췄지만, 초창기엔 혼자서 거의 다 했지요.” “4m짜리 대작은 6개월…체중 5kg 빠져작품 최소 수천만원에 대중화 한계 회의사랑받는 작가 되려고 작품 대중화 고민인형·피규어·애니메이션 제작이 돌파구”- 언제부터 중국인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았나. “중국에 온 다음해인 2009년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때 제 작품이 운이 좋게도 모두 팔려나갔습니다. 중국 현지인들이 아니라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 작품을 거의 다 사갔습니다. 제 작품이 사람들 눈에 많이 익어야겠다는 생각에 초창기에도 1년에 두 번 정도는 꾸준히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중국인들의 관심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4년 베이징에 있는 호텔 및 백화점인 파크뷰그린의 전속작가가 되었고요. 때마침 소셜네트워크(SNS) 바람을 탔어요. 제 작품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위챗(중국의 모바일 메신저)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제가 덕을 봤습니다.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다 팔려나갔습니다.” - 첫 전시 작품이 다 팔렸다면 중국에서 고생하지 않았겠다. “2008년 중국에 왔을 때, 말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문화도 달랐습니다. 조용하고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독일 문화에 익숙했다가 갑자기 거대도시 베이징의 시끄럽고 복잡한 문화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작업실을 구하는데 여러 번 실패했다가 버스를 잘 못타는 바람에 베이징 798 예술구 뒷골목을 갔지요. 그곳이 마음에 들어 작업실을 구했습니다만 집에서 작업실까지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중국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작업에만 몰두했지요. 매일 하루 4시간의 출퇴근 때 버스 안에서 작품 드로잉과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 드로잉은 지금도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 버스를 종점에서 탔는데 맨 뒤 오른쪽 끝자리가 제자리였지요.” - 작가를 그만둘뻔했다던데. “2016년쯤 ‘내가 뭘 하고 있나’라는 회의감이 깊이 밀려들어서 작가를 때려치우려 했습니다. (두 손을 30~40㎝가량 벌리더니) 요만한 크기의 작품이 몇천 만원이면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있나요. 저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대중화 한계에 고민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이 제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싼 작품만 만들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2만~3만원 이면 살 수 있는 피규어나 인형 등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각의 범위를 폭넓게 생각하자는 목표가 생긴 겁니다. 물론 너무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예술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니.” - 인가 작가여서 사드 영향은 없었겠다. “왜 없었겠어요. 롯데와 같은 대기업도 나가떨어지는데….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인 왕징의 한인 상가도 거의 절반 가까이 철수했지요. 제가 하려던 전시회나 띵구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작업이 취소되었습니다. 중국 회사와 계약해 띵구 피규어와 인형, 티셔츠를 만들려던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법인등록도 하고, ‘이승구 스튜디오’라는 회사도 만들었습니다.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화할 계획입니다.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큰 중국에서 승부를 볼 생각입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50세의 순종, 80세 아편쟁이 노인 같았다” 독일 기자가 본 마지막 황제

    “50세의 순종, 80세 아편쟁이 노인 같았다” 독일 기자가 본 마지막 황제

    “햇빛 보지 않은 얼굴…정원 가꾸며 소일 日, 명성황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대한제국의 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순종(1874~1926년)이 일제강점기에 독일 신문 알게마이네 차이퉁 기자와 가진 인터뷰가 14일 공개됐다. ‘오늘의 서울, 황제를 만나다’(1924년 5월 3일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은거하고 있던 순종은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폐인 같은 모습으로 아편을 피우는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중국학과 고혜련 초빙교수가 이날 공개한 기사에 따르면 무명의 기자는 아르날도 치폴라라는 이탈리아 기자와 함께 순종과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일본돈 50엔의 비용을 지불한 뒤 창덕궁일 것으로 예상되는 궁에서 순종을 만난 기자는 순종의 첫인상에 대해 “80세 정도의 깡마르고 햇빛을 보지 않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황제는 그저 아편을 피우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가족만 남은 그는 한국정치의 비극적 인물이다”라고 묘사했다. 당시 순종의 나이는 50세에 불과했다. 순종과의 인터뷰는 수월하지 않았다. 어떤 질문을 건네도 황제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순종에게 “황제로 있던 시절(1907~1910년) 이탈리아 대표사절을 기억하는지”를 물었으나 황제는 미소만을 띠었다. (1923년 발생한) 일본의 관동대지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으나 역시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고 묘사돼 있다. 기자는 일제 만행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 기사에는 “미친 (일본) 군대는 고종의 궁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때린 후 석유를 붓고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쳐 살아남았다. 불행한 왕조에 남은 건 고난의 길 뿐이었다”고 서술돼 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김승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김승희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 / 김승희 나는 새로운 것이 보고 싶었다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역사 말고. 정말 새로운 것, 설거지감 냄새가 묻지 않은 그런 새로운 것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구마구 올라갔다 투명 유리 엘리베이터 창 아래로 하늘이 마구마구 내려갔다 믿을 수 없는 높이까지 내가 올라갔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넝마 한 벌-하늘과 설거지감-산하, 환멸만큼 정숙한 칼이 또 있을까. 있음을 무자비하게 잘라 버리니까. 아아, 난 새로운 것을 보려면 그 믿을 수 없는 높이의 옥상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 하얀 늑대를 타고 달리는 여인을 본 적 있다. 갑부인 출판사의 대표가 여인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소설을 우리 출판사에서 내고 싶습니다. 필요한 액수를 적으세요. 대표가 백지 수표를 앞에 놓았다. 모두 침묵했다. 잠시 후 여인이 말했다. “내가 무명일 때 50만원 100만원의 계약금을 받은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그 출판사들에 원고를 준 뒤 대표님의 출판사와 계약하겠습니다.” 여인은 늑대를 타고 돌아갔다. 멋있었다. 출판사의 주간이 사전에 내게 일러 준 계약금은 2억이었다. 25년의 세월이 지났다. 영혼의 늑대를 타고 다니던 푸르른 시절의 그 소설가가 그립다. 곽재구 시인
  • 래퍼 쿠시 마약 혐의 모두 인정 “우울증·공황장애로 유혹에 넘어가 후회”

    래퍼 쿠시 마약 혐의 모두 인정 “우울증·공황장애로 유혹에 넘어가 후회”

    코카인을 구입해 자택에서 수차례 흡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래퍼 겸 음악 프로듀서 ‘쿠시’ 김병훈(35)씨가 법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검찰은 쿠시에게 법정형의 하한인 징역 5년을 구형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4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김씨는 20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2차례에 걸쳐 코카인 총 2.5그램을 지인으로부터 사들여 7차례 흡입하고, 3번째 매수 시도는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경찰 조사 및 검찰 수사 과정에서부터 혐의를 모두 인정해왔다. 김씨는 이날 재판에서도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 선처를 구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중증의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인해 길거리에서 수차례 응급실로 이송됐으며 자살시도도 수차례 있었다”면서 “지속적 정신과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16세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 오랜 무명 생활을 견뎌내면서 우울증세가 날로 심해졌다”면서 “지인이 우울증과 불면증에 좋다는 말로 수차례 회유했는데 그걸 벗어나지 못하고 범행에 이르러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수사 초기부터 범행을 모두 자백했고, 수사를 받을 때는 마약 판매책과 유통책을 잡기 위한 과정에 적극 협조했다”면서 선처를 구했다. 마지막에 진술할 기회를 얻은 김씨는 “이 일이 있고 나서 정말 소중한 게 뭔지 알았고, 제가 어떻게 행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는지도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평생 만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피고인에게 동종 전력이 없고 범행을 자백하고 있다”면서도 “본 사건 법정형의 하한이 징역 5년인 점을 감안해 징역 5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김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18일 열릴 예정이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김포 3·1만세운동-1] 월곶면서 점화해 15차례 만세시위… 오라니장터 참가 1만1000명 최대

    [김포 3·1만세운동-1] 월곶면서 점화해 15차례 만세시위… 오라니장터 참가 1만1000명 최대

    경기 김포에서 3·1만세운동은 월곶면과 검단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또 낮은 구릉지대와 평야가 많아 횃불과 봉화를 이용해 시위를 전개한 점이 눈길을 끈다. 김포에서 독립만세운동 발발일자에 대한 문서상 기록은 크게 두가지로, 일제의 문서와 월곶면 임용우의 아들 임명덕 필사본 자료가 있다. 올해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포문화재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김포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 시위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26일 김포문화재단에 따르면 1919년 3월22일 월곶면과 검단면에서 점화된 만세시위는 3월23일 양촌면 오라니장터와 양동면의 가양리, 24~25일에는 고촌면 신곡리, 26일 김포군 군내면 감정리와 읍내 북변리, 27일 양촌면과 2개장소(하성면), 29일 월곶면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됐다. 판결문과 일제측의 보고문서 내용을 보면 김포지역 3·1독립만세시위가 3월 22일부터 29일까지 8일간 집중 전개됐다. 지역별로 보면 월곶면에서 4회 펼쳐진 데 이어 양촌면 3회, 고촌면 2회, 군내면 2회, 하성면 1회, 검단면 1회, 양동면 1회, 기타 지역 1회로 총 15차례 일어났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규모는 독립운동가들의 재판 판결문과 일제의 소요사건 경과 개람표, 일제의 소요상황 보고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검단면에서는 300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월곶면 군하리장터에서 4회, 1250명에 이어 양촌면 오라니장터 3회 1만 1000명, 하성면 1500명, 고촌면 100명, 양동면 150명, 군내면 153명, 기타지역에서 참가 인원은 총 1만 4453명으로 나타나 있다. 이 가운데 대규모 군중이 모여 벌인 시위운동은 23일 4000명, 27일 7000명 등 총 1만 1000명이 참여한 양촌면과 1500여명이 참여한 하성면을 들 수 있다. ‘경기도지’(1955년발행), ‘경기도 지역의 운동일지’에는 집회횟수 12회, 집회인원 1만 5000명, 부상자 150명, 체포자 200명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결과는 당시 경기도 집회수 순위 9위, 참가인원은 2위로 기록되고 있다. 1914년 3월1일 결정된 김포군 현황은 9개면으로 군내면(김포 1·2·3동)과 검단면·고촌면·양촌면·월곶면·대곶면·하성면·양동면·양서면 등이다. 김포지역 3·1만세운동은 당시 9개면 가운데 7개면에서 15차례 걸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만세시위가 일어난 7개면 중 2개면이 김포군의 중심지였다. 또 만세시위 발생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15차례 중 낮 시간대 발생한 만세시위가 9차례고 밤에 일어난 만세시위가 6차례다. 대다수의 만세시위에서 태극기가 사용됐다. 고촌면의 경우 김정의 집에서 태극 2류를 제작해 선두시위에서 교대로 태극기를 들고 선창했다. 양촌면 오라리장터 오후 2시 시위에서는 종이로 한국국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오후 4시 시위에서 정인섭은 무명천에 먹으로 쓴 ‘독립만세’ 한국 국기를 대나무 장대에 메어 사용했다. 또 22일 월곶면에서는 이살눔이 종이로 만든 구 한국국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박용희는 국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시위를 이끌었다. 김포지역 만세운동의 또 다른 양상은 시위가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고 사전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자는 취지의 격문을 만들어 동네 곳곳에 배포해 군중이 참여하도록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양촌면 오라리장터 오후 2시 시위에서는 ‘독립만세를 부르기 위해 모이라’라는 취지의 경고문 10수 통을 작성해 각 지역에 격문과 함께 배포했다. 29일 월곶면 시위에서는 “명 29일 오전 11시에 전 통진 읍내에 집합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라”는 취지의 문서 7통을 각 동네에 배포했다. 이렇듯 김포 3·1독립만세운동은 사전에 시위계획을 세워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시위에 참여할 군중을 모으는 방법으로 격문을 사용해 조직적이고 치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레이디 가가,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해

    레이디 가가,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해

    가수 겸 배우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24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시어터에서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레이디 가가는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주제가 ‘셸로우’(Shallow)로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으며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 브래들리 쿠퍼(Bradley Charles Cooper)와 ‘셸로우’를 열창했다. 한편 ‘스타 이즈 본’은 노래에 놀라운 재능을 가진 무명가수 앨리(레이디 가가)가 자신이 공연을 하던 바에서 우연히 락스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을 만나 사랑을 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음악영화다. 사진·영상= Show and Movie Hub youtube, 아카데미 홈페이지 영상부 seoultv@seoul.co.kr
  •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삶으로 꾸며진 고등학교 눈길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삶으로 꾸며진 고등학교 눈길

    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오자 독립운동가의 삶으로 꾸며진 한 고등학교가 새삼 눈길을 끈다. 23일 진천 혁신도시에 위치한 서전고에 따르면 이 학교는 곳곳에서 진천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헤이그 밀사였던 이상설(1870~1917) 선생의 애국혼을 느낄수 있다. 학교이름은 이 선생이 1906년 만주에 세운 민족학교 ‘서전서숙’에서 따왔다. 마을 이름인 ‘석장’이 교명으로 검토됐으나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학교와 차별화된 미래형인재 교육기관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제기돼 ‘서전’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서전’은 상서로운 배움터란 뜻이다. 교장이던 이 선생은 이 학교에서 직접 수학을 가르쳐 한국수학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학교 입구에는 이 선생 청동좌상을 세웠다. 좌상은 무명옷을 입고 아이들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체육관 벽면은 고종황제의 헤이그 특사파견 밀서로 꾸몄다. 학교 후문에는 서전서숙 실제 사진이 확대돼 자리잡았다. 1층 현관에는 이 선생 생애와 활동상이 담긴 이상설존이 마련됐다. 교내 행사도 남다르다. 2017년 개교 이후 이 선생 추모제 시화전, 연해주와 북만주 독립운동 해외역사 유적지 탐방, 위안부할머니 배지 공모전 등을 진행했다. 이 선생의 인류애 정신을 실천하기위해 지진피해를 입은 네팔 초등학교 돕기 바자회도 열었다. 다음달 1일에는 학생들이 3.1운동 기념식을 가진 뒤 3㎞ 거리행진에 나선다. 이어 학교 앞 돌실공원에서 애국가 제창,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만세삼창을 하기로 했다. 이석호 학생회장은 “서전서숙을 계승한 학교다보니 자연스레 독립운동에 관심이 가고, 관련 행사를 준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2학년 교육과정에 ‘독립운동가 생애와 사상’ 과목이 개설된다. 1학기동안 1주일에 2시간을 배정했다. 이 선생 생애와 사상은 별도로 자료를 만들어 깊이 있게 다뤄질 예정이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독립군가 경연대회, 역사탐방, 연해주·만주 조선족학교와 자매결연, 이상설 미니학술제, 명사초청 강연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한상훈 교장은 “이 선생은 국제적 감각을 갖추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지식인”이라며 “올바른 인성과 융합적 사고를 갖춘 인재양성이라는 교육방향에 비춰볼때 귀감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충북도교육청 소속 일반계고인 서전고 전교생은 480명이다. 음성·진천 혁신도시 공공기관 자녀들이 50%를 차지한다. 진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단독] 하와이 한국전쟁 추모 공원에 ‘일본해’ 표기 지도 버젓이

    [단독] 하와이 한국전쟁 추모 공원에 ‘일본해’ 표기 지도 버젓이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자리한 국립태평양 기념묘지(National Memorial Cemetery of the pacific). 높이 150m의 원뿔 모양 화산 분화구에 조성된 국립묘지라는 점에서 펀치볼 국립 묘지공원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에는 5만 4000여 구의 전사한 미국 장병이 안치돼 있다. 한국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 희생당한 병사들이 안치된 국립 공원 내부에는 병사들을 추모하는 교회가 설치, 매년 수 만여명의 추모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곳에서는 매년 6월 25일 한 차례씩 한국전쟁에 참전, 목숨을 잃은 미국 장병 8924명과 신원 파악이 불가한 무명 용사 495명의 영령에 대한 추모 행사가 진행된다. 이날 행사에는 하와이 거주 한인 교민들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여행사 인솔 하에 하와이를 찾은 단체 여행객들까지 참여하는 등 뜻 깊은 행사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바로 공원 중심의 ‘레이디 콜롬비아 여신상'(Lady Columbia) 뒤로 조성된 다수의 전쟁 발발 과정 및 전투 경과 과정, 전쟁 피해 상황 등에 대한 설명을 게재한 지도에 ‘일본해'(Sea of japan)라는 명칭이 게재돼 논란이다. 한국전쟁과 전쟁에 참여한 이들을 기리는 국립공원을 찾은 이들이 ‘동해'(the East Sea)라는 명칭 대신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가 한국전쟁과 참전 용사에 대한 추모 장소에 버젓하게 게재돼 있는 셈이다 더욱이 지난 1949년 완공된 이래 매년 수만 명의 추모객들이 찾는 이 곳에서 약 2m 규모로 제작, 기념관 벽면에 부착된 ‘일본해’로 표기된 전쟁 추모 지도가 수 많은 추모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에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 2013년 2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림비를 제작, 헌사한 바 있다. 당시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에서 제작, 헌사한 기림비에 새겨진 지도에는 ‘동해’라는 명칭으로 게재돼 있다. 우리 정부가 제작한 해당 기림비 외에 펀치볼 국립공원 내에 설치된 모든 십 수개의 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특히 이 곳을 찾는 추모객 중에는 국방대학교 교육생 70여명과 한국에서 찾아온 각종 단체, 협회 등 전쟁 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사회 다방면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펀치볼 국립 묘지가 조성된 호놀룰루 시 일대에는 우리 교민 5~6만 명이 밀집, 거주해오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는 와이키키 해변, ‘다이아몬드 헤드’와 ‘펀치볼 분화구’ 등 관광 명소가 자리해 있다는 점에서 펀치볼 국립 묘지를 경유해 여행하는 세계 각 국의 관광객들의 수가 상당하다. 실제로 호놀룰루 시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의 수는 연평균 22~2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전쟁에서 희생당한 참전 용사와 그 신원 조차 확인할 수 없는 탓에 전사 후에도 여전히 유족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기리는 장소에 ‘일본해’로 게재된 전쟁 추모 지도를 마주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우세하다.이와 관련, 최근 아베 일본 총리가 ‘일본해’ 표기에 대해 국제 사회의 유일한 호칭이라며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 ‘일본해’ 표기 논란은 쉽게 사그라 들지않을 전망이다. 지난 12일 국회 중의원 예산심의회에 참여한 아베 총리는 “일본해는 국제 사회에서 확립된 유일한 호칭으로, 이를 변경할 필요성이나 근거가 없다”면서 “이를 국제 기관과 국제 사회에 계속해서 단호하게 주장해 올바른 이해와 우리나라(일본)에 대한 지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일본해’ 표기 논란에 불을 지핀 바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동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일본과의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동해-일본해 동시 표기를 주장해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일본해 표기 개정 문제를 담당해오고 있는 국제수로기구(IHO) 측은 세계 각국 지도 제작의 지침이 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 추진 시 한국 정부가 ‘일본해’ 표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에 대해 일본에 ‘관계국(한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와이=임지연 통신원 cci2006@naver.com
  • ‘유관순 서훈 격상’ 딜레마에 빠진 정부 정책

    ‘유관순 서훈 격상’ 딜레마에 빠진 정부 정책

    “유 열사는 대표 여성독립 운동가… 저평가 우려”“이름 없는 유관순 수없이 많은데… 형평성 훼손”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유관순(1902~1920) 열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이번 3·1절을 맞아 유 열사의 서훈을 상향 조정하면 국민께 좋은 선물이 될 것‘’라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서울신문 2019년 1월 28일자 1면)가 나오면서부터다. 유 열사의 고향인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일제의 억압 통치에 저항했던 그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매우 신중하다. 유관순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계를 대표할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훈을 높여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이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토론회까지 열렸지만 만족할 만한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유 열사가 갖는 상징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와 ‘국가 상훈제도의 엄밀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빅데이터 인지도 4위… 안중근 수준 돼야” 그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3·1운동의 상징적 존재임에도 서훈은 건국훈장 5단계 가운데 3등급에 그쳐 꾸준히 저평가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13일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유관순 열사 서훈등급 격상을 위한 국회 대토론회’에서 시민들은 유 열사에 대한 서훈 격상 요구를 쏟아냈다. 토론장을 가득 메운 청중은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유관순 노래(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를 제창했다. 유 열사의 서훈 격상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홍 의원의 개회사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신을 ‘유 열사의 이화학당 36년 후배’라고 소개한 박인숙 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장은 “유 열사의 희생정신은 인권 존엄의 영웅 정신”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유 열사의 서훈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갖는 상징성에 비해 등급이 너무 낮아 건국훈장 1·2등급만 받는 대통령 헌화도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유 열사의 인기는 매우 높다.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최근 5년간 뉴스·블로그·트위터 등 빅데이터 139억건을 분석한 결과 유관순은 모두 38만 6844번 언급돼 안중근(1879~1910·106만 5844번)과 김구(1876~1949·64만 8084번), 윤동주(1917~1945·56만 1228번)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유 열사가 서훈된 1962년은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1961) 뒤 정권 정당화 기틀을 마련하고자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시작한 때다. 당시 문교부 산하 공적조서위원회는 저명한 독립운동가 204명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와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한 안중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1908~1932) 등이 1등급 훈장을 받았다. ●“독립운동 평가 여성에겐 유독 박해” 유관순은 1902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감리교 선교사 엘리스 샤프(1871~1972)의 소개로 1915년 서울 이화학당에 입학했다. 1919년 발발한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다. 그는 모진 고문에 방광이 터지는 중상을 입고 고통받다가 1920년 9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공적 조서를 보면 그가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는 등 애국정신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 서훈 공적 심사는 수형 기간과 독립운동 성격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유 열사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활동 기간이 짧았고 당시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 인지도에 비해 다소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도 이 점을 지적했다. 유 열사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공훈이 대체로 낮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이 독립운동 지도자로 부각되기 어려웠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독립운동 리더급 인물 중심으로 서훈 대상자를 발굴한 탓에 여성 운동가들의 공적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껏 1등급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은 중국인 쑹메이링(1897~2003)이 유일하다. 대만 총통 장제스(1887~1975)의 부인으로 한국광복군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서훈됐다. 아직까지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 중 1등급 서훈을 받은 이는 없다. 남자현(1872~1933)이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아 가장 높다. 그는 3·1운동 당시 중국 둥베이(만주) 지역으로 건너가 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했다. 일본군 장교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영화 ‘암살’(2015)에서 전지현이 맡았던 ‘안옥윤’이 그를 모델로 한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 독립유공 서훈을 받은 여성은 모두 357명이다. 이 가운데 쑹메이링과 남자현을 뺀 나머지는 3등급 이하다. 심 소장은 “유 열사의 훈격 상향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동시에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공로도 재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상훈법에 따르면 일단 정해진 서훈은 조정될 수 없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공적이 추가로 발굴돼 새로 추천을 받지 않는 한 유 열사의 서훈 격상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두 가지 해법을 내놨다. 하나는 상훈법을 개정해 후대에 역사적 평가가 달라졌다면 서훈을 다시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홍 의원을 비롯해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또 하나는 기존 상훈법을 바꾸지 않고 유 열사의 서훈만 올리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지난달 박완주 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학계 “당시 ‘제 2의 유관순’ 수없이 많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그의 서훈을 높이는 것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저 국민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정확한 근거 없이 훈장 등급을 높이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가 유 열사의 서훈을 높여야 한다는 쪽으로 치우치자 역사학자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토론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 전 총장은 “정치인들은 (유 열사의 서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학자는 아니다. 학계에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방금 한 말에 대해 사과하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반대로 일부 시민은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왔더니 토론회 주최 측이 사실상 답을 정해놨더라. 이것이 무슨 토론회냐”며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이 문제를 냉철한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17일 “1919년 3월 1일 당시 일제에 항거하다가 사라져 간 ‘유관순’ 같은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면서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지도자로서 25년 넘게 항일활동에 전념한 윤희순(1860~1935)도 5등급인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데 그쳤다. 상징성 차원에서 유 열사의 서훈만 상향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3·1운동 정신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유관순이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릴 만큼 독립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된 데에는 이화여대의 대대적 홍보가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대한민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3·1운동 직후가 아니다. 해방 뒤 친일파 척결 논의가 시작된 1948년 9월부터다. 이때 제헌의회가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교장 김활란(1899~1970)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는 제자들에게 위안부 지원을 독려할 정도로 일제의 충실한 ‘나팔수’였다. 반민특위가 그를 처벌하려고 하자 이대 측은 ‘친일학교’ 오명을 쓰게 될까 봐 걱정이 컸다. 학교 이미지를 쇄신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수소문 끝에 학교 동문 유관순의 사례를 발굴했다. 이대가 그를 통해 학교의 친일’ 이미지를 세탁하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만약 유 열사가 이화학당을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도 무명의 독립운동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서훈 논의에는 이런 정치적·역사적 배경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도 “유 열사를 선열로서 기리겠다는 것은 얼마든지 반길 일이지만 훈격을 바꾸겠다는 것은 형평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라면서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쏟아부은 석주 이상룡(1858~1932)도 3등급이다. 유관순을 높이면 이런 분들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것이다. 모든 체계가 뒤집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유관순 서훈 승격 논란을 계기로 모든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전면적 재검토에 나서야 주장도 나온다. 서훈 승격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부풀려진 공적에 대한 강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원론적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반대 입장은 아니지만 신중해야” 이날 토론회에 정부 측 참석자로 나온 황후연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장은 정부가 독립유공자 포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명했을 뿐 유 열사의 서훈 상향 조정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변석영 행정안전부 상훈담당 사무관은 “정부가 마치 유 열사 상훈 승격을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공무원 역시 유관순을 배우고 자랐다. 신중하자는 것이지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도청 못 지키고 살아남아 평생 죄책감… 5월을 모독하지 말라”“그라믄 내가 쩌기 위에(북한) 있어야 할 거 아니여.” 극우 인사 지만원(77)씨로부터 ‘광수’ 36번,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지목된 양동남(58)씨는 “내가 광수 중에 서열이 제일 높다. 서열 2위가 뭐 한다고 여기서(한국) 살고 있겠느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광수’는 ‘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지칭하는 지씨의 표현이다. 웃음으로 승화했지만, 그는 39년 전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역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그를 만났다. 양씨는 “처음에는 황당해서 사진을 보고 나라고 말도 안 했다”며 “유치한 장난을 계속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유공자에 대한 능멸이 계속되자 양씨는 2016년 말 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양씨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지씨의 변호사가 “왜 광대뼈가 튀어나왔느냐는 질문을 했다”며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게 물어볼 이야기냐”고 황당해했다. 양씨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성토했다고 한다. “당신들도 잡혀가서 한 5개월 두들겨 맞으면서 조사받아 봐라. 한 끼니에 군용 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뜨면 식사가 끝났다. 하루에 밥을 열 숟가락도 못 먹었다. 그렇게 하면 당신들도 광대뼈가 나올 것이다.”광주 시민군 제1 기동타격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체포된 양씨는 조사를 받을 때 북한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은 “김대중이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너에게 광주경찰서 서장 자리 준다고 했지”라는 질문만 했다. 양씨는 “자기들(김영삼 정권)이 5·18 특별법까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북한군 주장을 하고 있다”며 “지만원이의 뇌 구조를 한번 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앞서 지씨가 광수로 지목한 이들의 안면 분석을 했던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과 교수는 “딱 봐도 아닌데 아니라고만 할 수 없어서 객관적 비교를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의뢰로 광수 36번, 양씨, 최룡해의 사진을 분석한 최 교수는 “광수 36번과 양씨의 눈썹, 눈, 코밑, 입의 간격이 일치했다”며 “반면 광수 36번의 콧대는 죽어 있는데 최룡해의 콧대는 서 있고, 코도 더 길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광수 36번의 턱이 가려져 있고 두건을 쓰고 있어서 정확하게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면 최룡해라는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씨와 함께 이날 국회를 찾은 5·18 관련 단체들도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 김후식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회장은 “1988년 청문회 당시 군과 정부(자유한국당 전신인 민정당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도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군이 개입됐다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양희승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도 “북한군이라고 지목한 무명 열사 묘지를 파헤쳐 DNA 검사를 했는데 5세에서 7세로 나타났다”며 “지씨 말대로라면 북한 특수군이 5~7세에 내려왔다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군 묘지라고 파보면 5~7세 아이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도청을 장악했다. 새벽 5시쯤 마지막 순간에 시민군 박남선 상황실장은 “니기들이 마지막인 것 같다. 니기들이라도 살아서 최후진술을 해라”고 말한 뒤 총을 빼앗아 복도에 던졌다고 한다. 양씨는 계엄군의 대검에 찔려 체포돼 내란실행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같은 해 12월 29일 군사고등법원에서 형집행정지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는 “광주와 관련된 일에 절대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석방됐다”며 허공을 쳐다봤다. 양씨에게 80년 광주는 평생의 아픔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자고 다짐했는데,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는 석방 이후 감시를 받으면서도 5·18을 다룬 황석영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사진, 영상을 들고 전국을 돌며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양씨 같은 피해자들의 노력 덕택에 광주의 진실은 역사에 기록됐다. 그러나 양씨는 지금도 5월이 되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취직을 해도 봄이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직장을 그만뒀다”며 “1990년 이후까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그냥 5월을 모독하지만 말라는 것이다. 양씨는 “내 주변에서만 2명이 생활고와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제대로 일도 못 하고, 빚을 내어 구입한 안정제로 버티는 이들을 모욕하지 마라”고 했다.●“깡패가 막아도 진실 알려… 두렵지 않다” 어두웠던 양씨의 표정은 딸 이야기에 이르자 비로소 밝아졌다. 이날 아침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신나게 싸우고 오라”고 응원을 해 줬다는 것이다. 국회 쪽으로 걸어가니 태극기 부대가 보였다.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깡패들이 항쟁 사진전을 막으려고 위협했을 때도 진실을 알렸다”며 웃어 보였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한국춘란 무명품 대회 23~24일 경남 합천에서 개최

    한국춘란 무명품 대회 23~24일 경남 합천에서 개최

    경남 합천군은 13일 ‘제1회 한국춘란 무명품(미등록품) 전국대회’를 오는 23~24일 이틀간 합천체육관 일원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한국춘란 무명품 전국대회는 한국춘란 미등록품(명명등록 전 한국춘란)을 발굴하고 명품화 하기위해 전국 지자체 최초로 개최하는 행사로 합천군이 주최하고, 합천난우회와 (재)국제난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난을 좋아하는 전국 애란인들이 명품춘란 탄생의 기대와 꿈을 갖고 애지중지 키워온 한국춘란 미등록 작품을 선보인다. 합천군 지역은 한국춘란이 생육하기에 좋은 환경이어서 명품 난이 많이 나오는 한국춘란의 대표적인 자생지로 꼽힌다. 군은 전국 난인의 날 행사를 4차례 개최하고 한국춘란 전시회를 30차례 여는 등 난 관련 행사를 꾸준히 개최하고, 지난해부터 ‘선물용 난 시장개척’을 위해 한국춘란 종묘장 사업을 추진하는 등 한국춘란 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제1회 한국춘란 무명품(미등록품) 전국대회 출품작 접수는 오는 22일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시장안 사무국에서 받는다. 작품 출품은 전국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대회장인 문준희 합천군수는 대회 초대사를 통해 “전국 난 산업 메카인 ‘난향가득 화려한 합천’에서 열리는 한국춘란 전국 전시회가 한국춘란 별들의 대잔치가 되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계산서 용지에 쓴 일기…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의 또 다른 모습

    계산서 용지에 쓴 일기…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의 또 다른 모습

    “어떤 조선인 경찰이 와서 나의 몸을 수색하였다. 이에 내가 질책을 하면서 물러가라고 하였다. (중략) 이로부터는 단지 한 번 죽을 마음만 있어서 혹 며칠 동안을 밥을 먹지 않기도 하였으며, 혹 대나무 젓가락을 가지고 귀 사이를 스스로 찌르기도 하였다.” “조사를 할 시간이 되면 7권으로 장정된 책자를 펼쳐 놓고서 물었다. (중략) 내가 본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이후의 사정에 대해서 하나하나 기재되어 있었으며, 항주 및 북경 등에서 한 일에 대해 내가 잊고 있었던 것도 그들은 오히려 기록해 놓고 있었는데 이런 일들은 모두 나로서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었다.”독립운동가 이규채(1890~1947)가 죽기 몇 해 전 자신의 삶의 궤적과 독립운동 여정을 기록한 일명 ‘이규채 연보’에 담긴 내용이다. 1920년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이후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했던 이규채는 만주지역 항일 무장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 상점의 계산서 용지 32장 분량에 적힌 ‘이규채 연보’는 이규채가 자신의 상세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한 덕분에 다른 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현장감이 뚜렷하다. 독립운동 당시 목숨을 수시로 위협받던 일부터 일제의 혹독한 감시를 피해 다니면서 느낀 고단함,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예를 들면 1932년 쌍성보 전투에 참여했던 이규채는 왼쪽 손에 총을 맞아 부상을 당했다는 것을 전투가 끝난 한참 후에 곁에 있던 사람이 알려줘서야 알게 됐다고 적었다. 중국 청나라 말기 민간 비밀결사단체인 대도회(大刀會)를 만나 수색을 당할 당시 ‘일본의 정탐꾼’으로 오인당해 몸이 묶이고, 그 끈을 말 안장에 매달고 말을 달리게 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 밖에 공산주의자들과의 갈등으로 생매장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일, 지난날 함께 활동했던 이민달(李敏達)이라는 자의 밀고 때문에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일, 체포된 이후 일본 영사관에서 조사받을 당시 일본 경찰이 7권 분량 책자를 펼쳐 놓고 신문한 일 등 당시 이규채가 겪었던 역경과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그간 독립운동사 자료는 ‘전투에서 누구를 처단하고 거사를 행했다’는 식의 활동 내용이 중심이지만 ‘이규채 연보’는 이규채 자신이 마적을 만나서 물건을 털리거나 목숨을 빼앗길 뻔한 이야기 등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면서 “사람들이 모르는 독립운동의 상세한 여정과 독립운동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규채 연보’에는 이규채가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규채의 손자 이성우씨는 “이 자료에 1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분들이 많다”면서 “민족문제연구소나 독립기념관 등의 기관에서 무명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기념하는 탑을 만드는 등의 실천적인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범수, 죽지 않은 예능감으로 ‘라디오스타’ 장악 “감정연기 쓰앵님”

    이범수, 죽지 않은 예능감으로 ‘라디오스타’ 장악 “감정연기 쓰앵님”

    배우 이범수가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첫 출연, 죽지 않은 입담으로 현장을 초토화하며 매니지먼트 대표, 영화 제작자에 이어 예능까지 섭렵하는 능력자 면모를 뽐내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난 6일 오후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는 ‘비범한 사람들’ 특집으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 출연한 이범수, 정지훈, 이시언, 신수항이 출연,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설 연휴 마지막 날 저녁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날 이범수는 오랜만의 예능이 무색할 만큼 편안한 입담과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로 라디오스타 녹화장을 웃음바다로 이끌었다. 본업인 배우는 물론 매니지먼트 대표, 영화 제작자, 대학교 학과장까지 ‘열일’하며 평균 2-3시간을 잔다고 밝힌 이범수는 쪽잠으로 버티는 일상 중에서도 소속사 신인 배우들을 챙기는 자상한 면모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날 방송에는 이범수가 제작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출연 배우이자 그가 운영하는 매니지먼트의 소속 배우인 신수항이 함께 출연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이범수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대거 공개해 더욱더 훈훈함을 자아냈다. 신수항이 1~10단계에 이르는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이범수만의 특별한 연기 수업에 대한 일화를 밝히자, 이범수는 직접 ‘감정 연기 쓰앵님’으로 변신, 순식간에 스튜디오를 장악하는 감정 연기를 선보여 MC들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또한 상대역 대사까지 전부 외우는 대배우라는 MC들의 소개에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정지훈(비)가 연기한 ‘엄복동’의 첫 대사를 또렷이 기억한다고 말한 이범수는 정작 그 대사가 뭐였냐는 질문에 “식사하셨어요”라는 짧은 답변으로 반전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베테랑 배우로서의 편안함은 물론, 의외의 소탈함과 귀여운 매력을 뽐낸 이범수는 예전 한 음악 방송에 출연, 음이탈 사고를 냈던 역대급 흑역사를 쿨하게 공개하는 것은 물론, 수입이 불규칙했던 무명 시절 흔쾌히 돈을 빌려줬던 단골 슈퍼마켓 사장님을 공개 수배(?)하는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넘치는 호기심으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는 ‘질문봇’의 역할까지 소화하며 4MC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한편 이범수가 출연 및 제작에 참여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오는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박나래 “현재에 충실하면 빛나는 미래 만날 수 있을 것”

    박나래 “현재에 충실하면 빛나는 미래 만날 수 있을 것”

    개그우먼 박나래가 나이키와 모든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을 응원하는 캠페인을 함께해 핫한 아이콘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나이키의 ‘2019 우먼스 저스트 두 잇’(2019 Women’s Just Do It) 캠페인 모델로 발탁된 박나래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본인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 넘는 대한민국 대표 여성 엔터테이너로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박나래는 가수 엠버, 청하, 프로 골퍼 박성현까지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함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의 대표 주자로 존재감을 뽐냈다. 공개된 영상 속에서도 그녀는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때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캠페인의 메시지를 전해 여성들의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캠페인에 참여한 박나래는 “하루하루가 막막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 무명이 계속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더니 어느 순간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고, 정말 감사하게도 지금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러분 또한 가장 위대한 존재인 자신을 믿고 현재에 충실하시다 보면 언젠가는 꼭 빛나는 미래를 만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힘찬 에너지를 전했다. 한편,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에 시원한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국민 개그우먼으로 자리매김한 박나래는 나이키 ‘2019 우먼스 저스트 두 잇’ 캠페인의 모델로 활동한다. 사진제공=나이키, 나이키 캠페인 영상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따금 풍경 소리만… 그리고 고요

    이따금 풍경 소리만… 그리고 고요

    경남 산청군 대성산 절벽에 절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산허리를 도는 길을 자동차로 20분쯤 오르면 모습을 드러내는 절, 정취암입니다. 누군가는 정취암을 ‘절벽 위에 핀 연꽃’이라 칭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거친 절벽의 끝에 어찌 이리 다소곳한 암자를 세웠을까요. 절은 속세의 시끄러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소란스러움은 이곳에서 사치입니다. 셋보다 둘이, 둘보다 혼자가 어울리는 절이지요. 한겨울인지라 자연은 색을 잃었고, 깊은 산중인지라 절은 소리를 잃었습니다. 이따금 풍경 소리가 꿈결인 양 아스라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색과 소리를 내려놓은 절에서 마음이 고요로 차오릅니다.정취암의 역사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 6년(686) 동해에서 부처가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다른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대성산에는 정취사(지금의 정취암)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을 위시하는 개혁세력의 거점이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고암 대종사나 성철 대종사가 머물며 정진했다. 정취암이 이름난 것은 절이 품은 풍경 때문이다. 자그마한 절이지만 산중 높은 곳에 자리해 산청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은 산속, 자연을 벗하며 혼자만의 적요를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절이 어디 있을까. 옛날에 정취암에 가려면 산길을 오르며 고생깨나 했겠지만, 2010년 도로가 닦이며 지금은 입구까지 자동차로 편히 갈 수 있다.●기암절벽에 매달려 산청을 굽어보는 절, 정취암 절 옆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겨울바람에 댕그랑 울려 퍼지는 풍경이 이곳의 유일한 소리다. 정취암 입구에 서자 전각과 그 뒤의 바위 봉우리가 회화적인 구도를 이룬다. 절은 전각이 올망졸망 모여 아담하다.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웅장함 대신 시골집 앞마당 같은 포근함이 맴돈다. 입구를 지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정취암의 주전인 원통보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신다. 오늘날 원통보전에 자리한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3호)은 조선 효종 3년(1652) 때 화마로 소실되었던 것을 2년 뒤 새로 만든 것이다. 50cm 정도 크기의 인상이 부드러운 관음보살이다. 네모진 얼굴에 가느다란 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하다. 원통보전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응진전, 오른쪽에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에서 볼 것은 석조 산신상 뒤에 봉안된 산청정취암산신탱화(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다. 일반 탱화에는 산신이 호랑이 옆에 앉아 있는데 비해 이 그림은 호랑이에 올라탄 산신을 협시동자가 보좌하고 있다.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산신과 불교의 융합을 보여주는 예다.관음보살좌상과 산신탱화를 봤다면 절이 품은 더 큰 보물을 만나러 갈 차례다. 응진전 옆에 난 등산로를 10여 분 올라 절 뒤의 너럭바위로 향한다. 등산로 곳곳에 먼저 다녀간 이들이 쌓은 돌탑이 이정표가 되어준다. 편평한 너럭바위에 서자 위로는 하늘이요, 아래로는 산청의 산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수화는 정취암이 간직한 더 큰 보물이다. 첩첩이 밀려오는 산 능선, 색을 벗은 산청의 들녘, 산허리를 휘감은 도로가 펼쳐진다. 장관이다. 바위 아래에는 정취암 전각의 지붕이 정답게 이웃한다. 하계를 내려다보는 신선이 된 양 풍경 놀음을 즐기느라 겨울바람의 매서움도 잊는다. 일행과 함께 왔더라도 너럭바위에서만큼은 잠시 혼자일 것을 권한다. 이토록 고요한 순간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절 처마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이따금 적막을 깰 뿐 고요 뒤의 또 다른 고요가 한없이 이어진다. 너럭바위에서 보이는 풍경의 또 다른 매력은 ‘시선의 교차’에 있다. 도로에서 정취암이 보이고 바위에서 지나온 도로가 보인다. 목적지를 올려다보거나 온 길을 돌아보게 되는 여행지는 많지만 시선이 양방향으로 오가는 곳은 드물다. 앞으로 가야 할 자리와 지나온 길을 확인할 수 있는 곳, 그렇게 여행의 궤적이 선명해지는 곳.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실존적 감각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면 정취암은 분명 근사한 여행지다. ●따뜻한 꽃 목화가 뿌리내린 땅, 목면시배유지 ‘붓 대롱 속에 숨긴 목화 종자가 조선으로 들어온다. 목화 씨앗 10여 개가 산청에 뿌려진다. 그로부터 3년 뒤 목화가 전국적으로 재배된다. 한겨울에도 삼베옷을 입고 추위에 떨던 조선 백성들은 포근한 솜옷을 입게 된다.’ 문익점의 목화 이야기가 목면시배유지에서는 사뭇 새롭다. 고려 말, 문익점과 장인 정천익이 목화 재배에 성공한 곳이기 때문이다. 목면시배유지는 전시관, 면화시배사적비, 삼우당 유허비, 부민각, 효자비각으로 이뤄진다. 목면시배유지 전시관은 올해부터 무료로 개방해 발 디디기가 더 쉬워졌다. 규모가 아담해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전시관은 우리나라 의복 발전사, 목화 재배·성장 과정, 목화솜이 무명베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소개한다. 무명베 만드는 과정이 특히 실감 난다. 목화에서 씨앗을 거르고, 솜을 부풀리고, 물레질로 실을 뽑아내고, 베 짜기를 위해 실 가닥을 모으는 등 일련의 과정을 모형으로 보여준다. 목면시배유지를 둘러싸고 330㎡(100평) 남짓한 목화밭이 있다. 목화는 4월에 씨를 뿌려 9, 10월에 꽃이 핀다. 목화가 거두어졌을 계절이지만 관광객을 위해 일부는 따지 않고 남겨두었단다. 눈송이가 내려앉은 듯한 풍경에 마음도 덩달아 포근하다.●옛 담이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다. 남사예담촌은 어른 키만 한 돌담과 18~20세기 초에 지은 한옥 40여 채가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다. 그 풍경이 볼만해 한 민간단체에서 마을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마을에는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경북에는 안동, 경남에는 산청 남사’라고 할 정도다. 이씨 고가, 최씨 고가, 사양정사 등 고색창연한 집들이 모여 있는데, 마을의 진정한 멋은 고가를 에두르는 옛 담장에 있다. 담장은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남사천의 강돌을 주민들이 손수 날라 쌓은 것이다. 큰 막돌을 2~3층으로 덤벙덤벙 쌓고 위에 더 작은 돌과 진흙을 올렸다. 그렇게 쌓은 돌담 길이가 3.2㎞다. 마을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길 닿는 대로 돌담길을 타박타박 걸어보는 것. 돌담에 어룽지는 겨울 햇살, 집 안에서 넘어오는 맵싸한 연기, 옛집만큼 나이 들었을 고목이 호젓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씨 고가 입구에는 남사예담촌의 상징인 X자 회화나무 한 쌍이 있다. 줄기가 구부러져 서로 어깨를 다독이는 듯한 모양새다. 다정한 자세 때문인지 나무에는 ‘부부 나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부부가 나무 아래를 지나면 백년해로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300살 먹은 노거수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근사하다.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마을안내소를 마주했을 때를 기준으로 마을 왼쪽을 둘러보는 편이 낫다. 이씨 고가 앞 회화나무를 본 뒤 남성천 물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며 돌담길을 산책할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통영대전고속도로, 정곡척지로를 지난다. 한남IC에서 부산 방면 우회전 후 경부고속도로를 2시간가량 달린다. 통영대전고속도로 비룡분기점을 지나 산청 방면 좌회전한 뒤 덕계로에서 ‘진주, 사천’ 방면우회전한다. 정곡척지로에서 ‘외송, 정취암’ 방면 우회전 후 둔철산로를 따라가면 정취암이다. →맛집 : 산청한방테마파크 주차장 옆에 자리한 약초와 버섯골 식당(973-4479)은 ‘약초와 버섯 샤부샤부’가 대표메뉴다. 보통의 샤부샤부와 달리 약재 우린 물을 육수, 약초를 채소로 쓴다. 동의약선관(972-7730)은 약선한정식을 코스로 낸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송이를 넣은 신선로, 전복구이, 갈비찜 등 한 상 차림이 푸짐하다. →잘 곳 : 남사예담촌에 있는 월강고택(973-2454)은 남부 지방의 전통적인 사대부 한옥이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117호에 지정된 한옥 내부는 화장실, TV, 에어컨, 인터넷 등 현대적 시설을 갖췄다. 너와나펜션(973-3322)은 야외 테라스, 바비큐장, 수영장이 딸린 펜션이다. 바로 옆에 단성묵곡생태숲이 있어 산청의 수려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 ‘라디오스타’ 황치열 “오른쪽 무릎 습관성 탈골 될 정도로 춤 연습”

    ‘라디오스타’ 황치열 “오른쪽 무릎 습관성 탈골 될 정도로 춤 연습”

    ‘라디오스타’ 황치열이 비행기에서 공황장애가 올 뻔 했던 순간을 고백하면서 이를 날려버린 특별한 극복법을 공개해 관심을 집중시킬 예정이다. 23일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에는 연예계 대표 열정남들인 동방신기 유노윤호, 개그맨 김원효, V.O.S 박지헌, 가수 황치열이 출연하는 ‘열정과 치열사이’ 특집으로 꾸며진다. 중국 대륙을 사로잡으며 ‘대륙의 황태자’로 불리는 황치열. 그는 열정과 치열함으로 오랜 무명 생활을 끝내고 비상해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황치열은 무명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도 4시간을 잔다고 고백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런 그는 바쁜 스케줄로 인해 비행기로 바쁘게 이동하던 중 공황장애가 올 뻔했던 사실을 털어놔 관심을 집중시켰다. 황치열은 비행기에서 갑자기 숨이 확 막히고 식은땀이 흘렀던 상황을 설명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이를 극복한 특별한 방법을 공개해 모두를 감탄하게 했다. 또한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중국의 음식, 공기, 물에 대한 자신의 몸의 반응을 공개하면서 ‘중국 맞춤형’ 스타를 인증(?)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황치열의 댄스 열정이 불타올라 모두를 놀라게 만들 예정이다. 과거 비보이였던 시절 춤에 죽고 춤에 살던 그는 춤을 추다 오른쪽 무릎이 습관성 탈골이 될 정도였다고 전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황치열은 처음 무릎 탈골로 응급실에 갔던 상황을 재연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알아서 맞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뼈가 빠졌을 때 끼워 넣는 특별한 방법을 공개해 모두를 웃게 했다는 후문. 특히 황치열은 연예계 대표 댄싱머신인 유노윤호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열정의 ‘댄싱머신’으로 변신해 눈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황치열은 유노윤호에게 열정은 밀리지 않지만 춤이 촌스러울 뿐이라며 자신이 갈고 닦은 댄스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고 전해져 궁금증을 높인다. 한편, MBC ‘라디오스타’는 23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128세에 사망한 세계 최고령자? 신뢰성 논란에 공식 인정은 난항

    128세에 사망한 세계 최고령자? 신뢰성 논란에 공식 인정은 난항

    러시아가 최근 세계 최고령자라고 주장해온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의 할머니가 12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모스크바타임스가 현지 행정당국을 인용해 21일(현지시간) 전했다. 러시아 캅카스 지역 카라르디노발카리야 자치공화국은 박산스키 구역에 거주해온 최고령 여성 나누 샤오바 할머니가 이날 128세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판 기네스북인 ‘러시아 기록 책’은 2017년 7월 샤오바를 러시아 최고령자로 등록하고 관련 증명서를 수여했다. 지난해 4월 샤오바의 아들 후세인 샤오프는 리아노보스티통신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8명의 자녀와 19명의 손자, 33명의 증손자, 7명의 고손자를 포함해 모두 67명의 후손을 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미국 조지아주 샌디 스프링스에 있는 노인학연구그룹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자를 116세인 일본인 여성 다나카 가네로 인정하고 있다. 무명의 샤오바가 2017년 들어 갑자기 최고령자로 인정받게 된 데 대해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점과 러시아 기록 책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간다는 이유다. 지난해에는 남미 볼리비아에 거주하고 있는 줄리아 플로레스 콜케 할머니가 당시 118세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자라는 볼리바아 정부의 추정이 있었으나 콜케 할머니가 1900년에 태어났다는 볼리비아 정부의 출생 기록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아직까지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공식 출생증명서로 인류 역사상 최고령자라고 공인받았던 인물은 1997년 122세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여성 장 칼망이다. 이후 무수한 사람들이 120세를 넘겨 사망했다며 역사상 최고령자라고 주장했지만 공식 기록이 미비해 인정받지 못했다. 앞서 1986년에는 일본 남성 시게치요 이즈미가 120세 나이로 사망해 최고령 사망자로 기록될 뻔 했다. 그러나 나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실제 연령이 105세 정도로 추정되면서 기록은 무산됐다. 특히 얀 페이흐 박사가 이끄는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연구팀은 2016년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 수명이 115세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최고령자 나이를 살펴봤더니 1968년 111세였던 것이 1990년대 115세로 늘어났고, 이후 예외적인 1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115세보다 더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페이흐 박사는 당시 뉴욕타임스에 “장 칼망은 명확한 예외로, 한해에 125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1만분의 1 수준”이라며 “평균 기대 연령이 오랫동안 상승한 끝에 지금에서야 인간이 주어진 수명의 천장에 도달할 만큼 오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 이이경~안소희 “차세대 청춘★ 꿀조합”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 이이경~안소희 “차세대 청춘★ 꿀조합”

    환장의 웃음파티로 안방을 다시 뒤집을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가 더 강력한 꿀조합과 함께 돌아온다. JTBC 새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연출 이창민 극본 김기호·송지은·송미소·서동범, 제작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드라마하우스)가 시즌1의 공식 ‘웃음자판기’ 이이경을 비롯해 김선호, 신현수, 문가영, 안소희, 김예원까지 대세 청춘 배우들의 캐스팅을 확정 짓고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한다. 지난 2월 방송된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청춘의 풋풋한 에너지와 병맛美 넘치는 유쾌한 웃음, 공감을 자아내는 현실까지 풍성하게 담아내며 신개념 청춘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참신한 에피소드로 중무장한 탄탄한 대본 위에 몸 사리지 않는 하드캐리로 웃음을 증폭한 배우들의 열연, 예리하게 웃음을 조율한 감각적인 연출이 완벽한 3박자를 이뤄 매회 레전드 웃음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폭발적 반응을 불러모았다. 김정현, 이이경, 손승원, 정인선, 고원희, 이주우 등 보석 같은 대세 배우들의 재발견을 이뤄내며 진정한 청춘 드라마로 자리매김한 ‘와이키키’는 종영 이후 끊임없이 시즌2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쏟아졌다. 그런 가운데 ‘와이키키’ 제작진이 다시 의기투합해 시즌2 제작에 돌입하며 시청자들의 기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무엇보다 시즌1에서 하드캐리 활약으로 큰 사랑을 받은 이이경을 필두로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김선호, 신현수, 문가영, 안소희, 김예원의 조합은 벌써부터 기대 심리를 자극한다.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는 대환장의 수맥이 흐르는 게스트 하우스 ‘와이키키’에 또다시 모여들고 만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꿈을 위한 도전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시즌1에서 대학 동창들을 꼬여냈던 이준기(이이경 분)의 마수가 이번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뻗친다. 여전히 망할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스트 하우스 ‘와이키키’를 일으키려는 대책 없는 청춘들의 골 때리고 빡센 좌충우돌이 또 어떤 포복절도 시너지를 불러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준기의 꼬임에 넘어간 첫 번째 희생자 차우식은 김선호가 맡았다. 우식은 ‘무명돌’ 출신의 가수 지망생이자 세상 둘도 없는 까칠남. 준기의 계략에 넘어가 전 재산을 투자해 ‘와이키키’에 들어오게 된다. ‘김과장’, ‘최강 배달꾼’, ‘투깝스’, ‘백일의 낭군님’까지 진지와 코믹을 오가는 변화무쌍한 연기로 흥행 돌풍을 이끈 김선호가 반전을 거듭하는 연기 변신으로 대세 행보에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매회 레전드를 생성했던 웃음폭격기 이이경은 이준기로 ‘와이키키 2’ 웃음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는다. 빛을 보는 듯했으나 다시 생계형 배우로 돌아간 준기가 ‘와이키키’를 일으켜 세우려 우식과 기봉을 끌어들이면서 바람 잘 날 없는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몸을 사리지 않는 무한 변신으로 ‘한국의 짐 캐리’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인생 캐릭터를 남겼던 이이경이 다시 선사할 대체불가의 웃음이 ‘와이키키 2’에 대한 기대를 한층 끌어 올린다. 준기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또 한 명의 희생자 국기봉은 신현수가 맡았다. 한때 촉망받던 야구천재였지만 지금은 2군을 전전하는 기봉은 ‘와이키키’ 투자로 인생의 바닥에 도달하는 인물. ‘청춘시대’, ‘황금빛 내 인생’, ‘열두 밤’을 거치며 청춘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가고 있는 신현수는 ‘와이키키 시즌1’에서 화생방 수준의 발 냄새를 가진 피팅 모델로 특별 출연해 강력한 웃음 폭탄을 투하한 바 있다. 발군의 코믹 연기를 선보인 신현수가 본격적으로 ‘배꼽 스틸러’의 준비를 마치고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똘기 충만한 ‘와이키키’ 청춘들이 그 시절 사랑했던 첫사랑 ‘후암고 여신’ 한수연은 문가영이 맡는다. 결혼식 당일 갑작스러운 봉변을 당한 수연은 하필 준기의 레베카에 뛰어들면서 운명적으로 ‘와이키키’에 기거하게 된다. ‘명불허전’, ‘마녀보감’, ‘질투의 화신’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걸크러쉬부터 털털한 매력까지 다채롭게 그려낸 문가영의 새로운 변신이 어떤 웃음으로 승화될지 기대가 증폭된다. 여기에 영화 ‘부산행’, 드라마 ‘하트 투 하트’, ‘안투라지’ 등으로 배우로서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온 안소희의 파격 변신에도 관심이 쏠린다. 안소희는 3년 만의 드라마 컴백작인 ‘와이키키 시즌2’에서 준기의 연극영화과 동기이자 생계를 위해 세상 모든 알바를 뛰는 알바왕 김정은으로 분한다. 내숭 1도 없는 털털한 성격에 더럽고 아니꼬운 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오지라퍼형 걸크러쉬의 면모로 개성 만점 활약을 펼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차우식의 친누나 차유리 역에는 김예원이 합류한다. 제2의 백종원을 꿈꾸는 유리는 우식은 물론 준기와 기봉까지 수족처럼 부려대는 ‘와이키키’의 최상위 포식자. 한계 없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 중인 김예원은 최근 스릴러 ‘도어락’으로 호평을 받고 있기도. 코믹부터 스릴러까지 이견이 없는 연기력의 김예원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웃음의 폭발력을 증폭할 예정이다. 한편 병맛美 장착한 유쾌한 웃음과 현실을 반영한 공감 저격 스토리로 청춘의 현주소를 짚어낼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는 이창민 감독과 김기호 작가 등 ‘웃음 제조 드림팀’이 다시 의기투합한다.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1’에 이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드라마하우스가 공동 제작하며 ‘눈이 부시게’ 후속으로 2019년 상반기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