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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격전지 칠곡 다부동지구/「구국용사 충혼비」 오늘 폐막

    ◎육균 50사단 낙동강방어선 일대 수색/무명용사 유골 31구 발굴,45년만에 안장 6·25 당시 최대격전지였던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 광장에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는 「구국용사충혼비」가 24일 제막된다. 이 충혼비는 육군 50사단이 6·25 때 나라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무명용사들의 유해를 45년만에 발굴,안장하고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칠곡군의 협조를 받아 세웠다. 높이 4·4m의 충혼비에는 「여기 자유의 제단에 조국 위해 목숨 바친 영령을 모시노라.가신 임의 짧은 인생은 겨레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리」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무명용사들의 유해는 육군 50사단이 지난해 9월26일부터 지난 4월7일까지 6개월동안 연 3천8백여명의 장병을 동원,낙동강방어선 격전지를 대상으로 6·25 당시 실종된 선배전우의 유골 및 유품찾기작업을 펴 찾아냈다. 발굴작업이 진행된 지역은 다부동지구를 비롯,경북 왜관·신녕·안강·기계·군위·영천지구 등 낙동강방어선 격전지 7개 지역이다. 장병들은 참전용사들의 증언과 자문,전사에 나오는 병력배치 등을 토대로 당시 격전지의 진지와 교통호를 수색해 유골 31구와 수류탄·탄피·박격포날개·철모 등 37종 3백89점의 각종 유품을 발굴했다. 50사단은 올 연말까지 낙동강방어선에서 유골 및 유품찾기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 무명용사 유해 2구 45년만에 발굴(조약돌)

    ◎북한산 주변서… 대전국립묘지 안장 ○…6·25전쟁 당시 북한군을 맞아 싸우다 숨진 무명용사 유해 2구가 45년만에 발굴됐다. 육군은 22일 50년 6월27일 북한산 기슭에서 남침한 북한군전차와 싸우다 숨진 육군 16연대 11중대 소대장과 전령 조모상병의 유해 2구를 발굴,경기도 벽제 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뒤 대전국립묘지로 유해를 봉송했다. 육군은 이들 무명용사 유해를 일단 대전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한 뒤 조만간 무명용사 묘역에 정식 안장키로 했다. 이 유해들은 숨진 이후 인근 우이동 백운산장 주인 이영구씨(64)에 의해 발견돼 그자리에서 매장됐었으며 지난 59년 등산객 강의식씨(70·예비역 소령) 등이 매장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워 놓았었다.
  • 대중매체 통한 득표활동(6·27 선거풍토 점검:6·끝)

    ◎TV토론·「컴퓨터 선거운동」 본격화/안방 유권자 파고들어 대규모 유세효과/PC통신 등 이용,손쉽게 상호대화 가능 요즈음 여의도 민자당사 3층의 선거상황실에 올라오는 현지 보고서들을 보면 정당연설회의 청중수는 서울이 5백∼1천명,지방은 2백∼5백명 정도에 불과하다.1천명을 어쩌다 넘어서면 사무처 요원들은 『대성황』이라고 반색이다.3천명이니 1만명 인파니 하는 지난날의 유세장과는 비교가 안되는 「조촐한 규모」다. 민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참석하는 일부 집회의 「특이현상」을 뺀다면 대부분 3백∼7백명의 규모에 머무르고 있다. 민자당의 김운환 조직위원장은 이에 대해 『새 선거법 아래서는 지난날처럼 일당지급이나 차량동원을 통한 청중동원이 불가능한데다가 TV 전화 컴퓨터 등을 통한 유권자 접촉기회가 비할데 없이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후보들은 따라서 유세장에 유권자들의 발길을 끌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무소속의 박찬종 서울시장후보가 모델지망생등 미녀 10여명을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유세장에 동행하고 다니는 것을 비롯,민자당의 이인제(경기)·최기선(인천)후보,무소속의 윤석조 충북지사후보도 「미녀도우미」들을 연단주변등에 배치,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좀 낡은 수법이기는 하지만 연예인을 활용한 「손님끌기」도 자주 등장한다.민자당은 서울과 경기·인천·강원·충북등의 광역단체장 후보연설에 최영한·정주일의원등 연예인출신 당소속의원은 물론 탤런트 박규채 나한일 김혜리,개그맨 남보원 최병서 김학래,개그우먼 김미화씨등을 대동하고 있다.민주당도 조순 서울시장후보에게 탤런트 정한용씨등을 동행시키고 있다.무소속 박찬종 후보측에는 미스코리아 포토제닉상 출신의 김옥경씨와 가수 김종찬,개그우먼 이영자씨등이 유세장을 따르고 있다.K모·L모씨는 경쟁후보 유세장에 「겹치기 출연」을 하기도 한다.그러나 새 선거법은 연설회장에서의 공연을 금지시킨 까닭에 이들이 진가를 발휘할 수단이 별로 없어 「약효」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후보들은 집회형식의 정당·후보자연설회를 대폭 줄이는 대신 선거법이 새로 허용한 일명 「거리연설」 형식으로 시장·공터·상가·주택가등을 10∼20분씩 방문하는 「게릴라식 유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자민련의 강우혁 인천시장후보는 시장·공원등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다 행인이 많이 몰리면 뒤를 따르던 무개차에 올라 「기습 연설」을 하고 있다. 광주시 북구청장에 출마한 무소속의 오병남후보는 매일 새벽 선거구내 목욕탕을 한번씩 바꿔 도는 「목욕탕 유세」를 선보이고 있다. 연설회 자체를 「시민과의 대화」로 바꾸어 친밀감을 높이는 방법도 애용되고 있다.민자당의 이인제 경기지사후보는 지난 18일 용인군 수지면 풍림아파트단지에서 1백여명의 주민을 상대로 민원을 청취하는 것으로 연설을 대신했다.부산 북구청장에 무소속으로 나온 우주호후보는 아파트단지의 부녀자등을 상대로 순회간담회를 여는 게 선거운동의 전부다. 그러나 일부 후보들은 「거리연설」이 밤 11시까지 허용돼 있는 점을 최대한 활용,이른 아침이나 밤늦은 시간까지 주택가 등에서 확성기를 틀어대 항의를 받기도 한다.또시장안 좁은 통로에 자리를 잡아 「상권」을 침해,상인들의 눈총을 사는 사례도 간혹 있다. 「발로 뛰는」 선거운동 못지 않게 새로 각광받는 유권자 접촉수단은 전화·컴퓨터·자필서신 등 우편·통신수단이다.굳이 유권자와 대면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도 후보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컴퓨터통신은 후보자측의 주입식 홍보에서 탈피 유권자의 의견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대화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정원식·조순·박찬종·황산성후보등 서울시장후보와 문정수(민자당)·노무현(민주당) 부산시장후보,조해녕(민자당)·이의익(자민련) 대구시장후보,최기선·강우혁 인천시장후보등 70여명이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서비스에 온라인 전자포럼을 개설,전체 유권자의 57%를 차지하는 20·30대 젊은층에 파고들고 있다. 편지를 이용한 선거운동도 법정 홍보물이 대폭 축소·제한됨에 따라 후보들이 선호하는 선전수단이다.그러나 일부 후보들은 자필이 아닌 인쇄 및 복사된 편지를 발송하거나 직접 돌리다가 선관위에 적발되기도 했다.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가장 즐겨쓰는 「선거운동 상품」.민자당은 「지방당원 서울전화걸기」를 통해 정원식 서울시장후보의 지지활동을 펴고 있고 조순·박찬종 후보측도 3백∼4백여명의 자원봉사자를 활용하고 있다.기초단체장 후보나 지방의원 후보들도 대부분 30∼50명 가량의 전화자원봉사자를 동원,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그러나 상대후보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새벽이나 심야에 벨을 울리는 「전화공해」가 적지 않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접촉범위가 제한돼 있는 연설이나 통신수단과 달리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돼 있는 TV나 라디오등 전파매체는 이번 선거를 통해 막강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지난달 27일 KBS가 정원식·조순·박찬종 후보를 공동초청,회견형식의 토론회를 가진데 이어 지난 11일 MBC,17일 KBS,18일 SBS가 세후보의 생생한 논쟁을 안방에 소개할 때마다 각 후보측은 지지율의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SBS가 이미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 후보 초청토론회를 가진 것을 비롯,지역방송국들도 앞다투어 시·도지사후보들의 공개토론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토론초청이 대부분 지명도가 높은 유력후보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어 신인이나 무명후보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지난 11일에는 후보토론회에 초청받지 못한데 불만을 품은 대구시장 무소속후보측 운동원들이 방송국에 몰려가 방송을 방해하다가 처벌되는 사례도 있었다. 민주당의 제정구 당무기획실장은 『대중매체를 통한 후보감상은 화술이나 언변,단편적 인기관리에 능한 명망가만 양산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소규모 대중연설이나 시민·사회단체를 통한 검증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유능한 신예들의 충원을 촉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장경섭교수(사회학)는 『대규모 유세장이 퇴조하고 대중매체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은 선진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그러나 정보량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다매체·다채널시대에 맞게 토론주체나 메뉴가 보다 다양화·특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부여 정림사지 출토 흙인형(한국인의 얼굴)

    ◎둥근얼굴… 살짝 다문입에 조용한 미소/인물상 머리모양으로 성 구별/남자농관·쌍상투 여자는 곱슬하거나 단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정림사 절터가 있다.정림사라는 이름이 후세에 알려진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1942년 일본인학자(등택일부)의 학술조사 이후다.당시까지만해도 무명의 절터였는데 학술조사에서 발견한 기왓장의 글씨 「대평팔년술진정림사대장당초」를 통해 본래의 가람 이름을 알게 되었다.「대평팔년」은 중국 요의 연호로,고려시대인 AD 1208년에 해당한다. 그러나 연호가 있는 기왓장은 고려시대의 가람 재건을 의미할 뿐 정림사는 백제의 절이었다.이는 현존하는 백제시대 5층석탑에서 입증할 수 있지만 지난 1979년 충남대박물관의 전면발굴에서는 더욱 뚜렷한 백제의 절로 확인되었다.특히 출토유물 가운데 소조불상은 백제의 색깔이 진하다.그리고 소조불상과 함께 무더기로 나온 흙인형들은 백제인들이 자기네 공간에서 재창조한 사비시대 인물상이다. 이들 흙인형은 오랜 세월을 땅속에서 잘 견디어냈다.그래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 앞에 온화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내밀었다.모두가 옛 모습대로 웃는 얼굴이다.머리에 관을 썼거나 쌍 상투를 틀어올린 점잖은 남자상도 웃는다.생머리를 한 여인상과 곱슬머리의 여인상까지 따라 웃는데,까까머리 동자승인들 어찌 웃음을 참겠는가.정림사 절터에서 나온 백제 흙인형들은 다 웃고 있다. 이들 흙인형의 성과 역할은 손질한 머리 모양새를 빌려 구분했다.그러나 웃음들은 한결 같다.전부가 입을 다문채 빙그레 웃음을 지어 한껏 조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이른바 농관이라는 관을 쓴 남자 인물상은 얼굴이 둥글다.반달모양 눈썹에 눈이 가늘고 입술은 도타운데 작다.눈과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턱 밑으로 3줄의 목주름(삼도)이 잡혀있다.머리의 농관을 옆에서 보면 얇은 널빤지(판장)처럼 조각되었다. 이렇듯 농관을 쓴 2점의 남자인물상 이외에 쌍상투를 튼 다른 남자인물상 1점이 더 나왔다.여자인물상의 하나는 머리카락이 내려와 귀를 가렸다.요즘의 퍼머머리 모양을 한 또 다른 여자인물상에서는 서역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그리고 아주앳된 얼굴의 인물상은 삭발을 했기 때문에 동자승이 분명하다. 얼굴이 온전한 흙인형은 9점이고 나머지 5점은 얼굴이 망가진채 발굴되었다.4∼7㎝ 크기의 이들 인물상은 절터 회랑자리 서남쪽에서 진흙으로 빚은 불상파편들과 함께 나왔다.한 구덩이에 쓸어묻은 흔적이 역력했다.여기서도 백제의 비극이 보였다.그러니까 AD660년 정림사가 사비성과 운명을 같이 한뒤 쓸어묻은 유물일 것이다.19 89년 발굴조사때 건물자리에서 확인한 넓은 면적의 불탄 흙바닥(소토층)은 정림사 최후를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웃고있는 얼굴들,아련한 백제문화의 잔영이다.중국의 남북조시대 북위와의 교류과정에서 눈여겨 보아두었던 문물을 백제땅에서 다시 꽃피운 걸작의 예술이기도 하다.
  • 현암사 발간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예인 백사람」(화제의 책)

    ◎예맥 이어온 「장이들」 조명/명창서 무명인간문화재까지 소개 황병기,박동진,안숙선,공옥진….다들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이들의 음악이나 공연을 제대로 접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처럼 이름값에 비해 푸대접 받아온 전통 예술인들을 조명하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이규원 지음,정범태 사진)이 현암사에서 나왔다.일반인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우리 문화에 초점을 맞춘 의의가 클 뿐더러 문외한들도 흥미롭게 읽게끔 사람얘기 중심으로 풀어썼다. 6백50여쪽 분량의 이 책엔 1백30명에 이르는 우리 전통예술의 우뚝한 봉우리들이 망라돼 있다.가야금산조,사물놀이,씻김굿 등으로 제법 알려진 예능인 뿐만 아니라 칠머리당굿,선소리 산타령,결성농요 같이 이름도 생소한 예맥을 지켜온 장이들의 사연이 실려 있는 것.「뱃놈」으로 사는 고생이 하도 심해 신세한탄하느라 「배치기 노래」를 배웠거나,유복자로 태어난 한에 독경의 세계에 빠져버린 이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예인의 예술세계와 그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춤,무속,공연·놀이·의례의 다섯분야로 나눠 전통예술의 지형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장점. 부록으로 예인들의 이름과 공연·춤·노래명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한 찾아보기를 덧붙였다.임방울·정정렬·이동백 등 전설적인 명창들의 희귀한 사진을 비롯,세계일보 사진부 부장기자가 직접 찍은 예인들의 공연사진 등 1백60쪽의 화보도 실렸다.
  • 와타나베 망언은 민족모독이다(사설)

    오늘은 현충일이다.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께 머리 깊이 숙여 절하는 날이다.우리가 오늘 절하고 뵈올 분들 중에는 6·25전쟁에서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유무명의 국군 용사도 있고 일제식민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갖 신고를 겪은 독립지사 열사들도 계시다.특히 나라 잃은 설움속에 만리타향을 헤매며 적신을 탄알삼아 침략국의 심장에 타격을 가하려고 생명을 초개같이 버렸던 분들이 묻혀 계시다.광복한지 50년에 이르고도 분단의 운명 때문에 미처 못모신 분들의 유해를 송구해하며 우리는 오늘을 맞고 있다. ○현충일 아침에 듣는 일 망언 바로 그 현충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의 해괴한 망언과 접한다.침략의 야심으로 왕비시해의 만행까지 서슴지않고,옥새찍기를 거부한 국왕을 겁주기 위해 온갖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물리력을 다 동원하여 강압으로 성사시킨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란 것을 『원만히 체결된 조약』일 뿐이라고 망령되게 우기는 사람이 하필 일본의 외교행정을 대표하던 전임 외무장관이다. 그것은 우발적이고 일과적인 말이 아니다.악의적이고 계획된 민족모독의 망언이다.망언 레이스의 선수가 「와타나베」로 이어졌을 뿐 51년에 「요시다 시게루」를 시작으로 53년에 「구보다」가,64년에는 「오노」가,88년에는 「오쿠노」가 이어 뛰고 오늘 「와타나베」가 또하나의 계주선수로 등장한 망언의 집요함에 우리는 넌더리가 난다. ○일과 아닌 계획적 망언계주 그 집요함이 증명하는 것은 이 나라가 지닌 근원적인 부도덕성이다.와타나베의 교언이 가증스런 것은 『공식문서 어디에도』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다는 단어가 씌어있지 않다고 한 대목이다.개인이 볼모상태에서 인정한 문서도 억압이 풀리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바로 잡는다.국가간의 조약들에서 강압이 이뤄진 것은 역사가 바로 잡는다.그것이 국가간의 양식이고 도의다.일본은 그것을 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한 망언선수를 내세운다. 망언이 있을 때마다 확인되는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고쳐질 징조가 안보인다는 것이다.총리로부터 주요장관에 이어지는 거물들의 이어달리기가 전외무로까지 이른 망언계주는 우리에게 분노보다 참담한 실망을 안겨준다.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양심을 비치는 거울이다.그것이 일본의 운명이기도 하다. ○도덕적 미성숙의 나라 일본 비록 경제적으로는 거인의 체격을 지녔지만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 역할이 일본에 맡겨질 수 없는 것은 일본이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적이다.우리는 일본이 그런 나라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두나라의 운명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도덕적으로 거듭나 우리곁에 있기를 바란다.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선의를 저버린다. 나라사이의 역사도 순환의 원리를 겪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문명사의 중심이 동북아에 있을 때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그들이 문명의 주도권을 바꿔쥔 서양을 받아들였을 때 한민족은 그들의 흙묻은 발아래 짓밟혔지만 앞으로 다가 오는 태평양 문화권의 시대에는 한국민족이 뼈대 곧은 중심국으로 설 것이다.그 기운은 일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망언·취소의 놀음도 끝내야 국교정상화 30년을 맞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하자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제의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영리한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그런데 여전히 이런 망언을 뱉어놓는 것은 세계사람들에게 그들의 순화되지 못하는 악의의 본성을 들키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수치로운 일이다.일본의 생각 깊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 소멸될줄 모르는 불순한 인자의 소탕에 힘쓰기를 당부한다.그리고 이제 망언과 취소의 놀음도 여기서 끝내주기 바란다.
  • 서울/「정당선택」심리확산… 초반판세 역전조짐(6·27표밭기류:8)

    ◎개혁 지지­시정안정 희구계층 공략­민자 정원식/투표율 높은 30∼40대 지지에 기대­민주 조순/거리유세 강화… 부동표흡수 주력­무소속 박찬종 7백45만 유권자의 민심을 가릴 서울시장 선거권이 점차 혼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초반 분위기 장악 지금까지 출마를 선언한 주자는 민자당의 정원식 전국무총리,민주당의 조순 전경제부총리,무소속의 박찬종 의원말고도 황산성 전환경처·김용갑 전총무처장관,김옥선 전의원,정기용 전국서민연합회회장 등과 김성부·안동옥·정현우씨등 「무명인사」에 이르기까지 10명이나 된다.그러나 정원식·조순·박찬종 후보를 뺀 나머지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지배적 시각이다. 독특한 정치행태로 대중에게 낯익은 박찬종 후보가 유명세를 인기로 연결시키면서 초반전을 리드한 것이 지금까지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당내경선을 통해 대중앞에 등장한 정원식·조순 후보가 각각 거대정당의 조직력에 힘입어 활동반경을 넓혀 가면서 역전기류를 일으킬 수 있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특히 지난 21일부터 26일사이의 관훈클럽 특별회견과 27일 KBS특별회견 등을 통해 정·조 후보가 각각 민자·민주당이라는 간판을 치켜들면서 잠들어 있던 정당선택 심리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말에서 지난달초 사이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30∼35%의 지지를 얻었으나 출마여부가 유동적이던 정·조 후보는 각각 10%안팎의 미미한 지지도에 그쳤다. ○정·조 후보 상승세 그러나 후보확정 뒤인 지난달 중순부터 하순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 정·조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20% 수준을 넘어 서서히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특히 관훈클럽회견 전후를 대비하면 정·조 후보가 각각 2∼5% 상승한 반면 박 후보는 현상유지,또는 2∼3%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원식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세기 민자당서울지부장은 『유권자의 선택시기가 다가오면서 초기의 막연했던 인기도 대신 정당과 정책,인물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같은 현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조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인 이해찬 의원도 『조·정 후보의 얼굴이 알려질 기회가 늘어나면서 박후보에 몰려 있던 20·30대와 40·50대 표가 점차 이탈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의원은 박후보 지지층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20·30대는 여론주도층인 화이트칼라층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야당성향으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자당의 이 지부장은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는 20대와 무소속 후보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박 후보표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결국 정후보로 옮겨 올 것』으로 전망했다. 박 후보의 40·50대 지지층은 주로 지난 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씨의 후보단일화 실패에 실망하고 문민정부 출범 뒤 탈정치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야당성향표,그리고 민자당에 대한 일체감을 잃은 일부 보수층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민자·민주당의 공통된 분석이다. 민자당은 특히 40·50대 가운데 영남출신과 여성층의 상당수는 민자당 정 후보로 옮겨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민주당 조후보의 표는 전체 유권자의 25∼30%를 유지하고 있는 탄탄한민주당 지지표 속에 이미 흡수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전체적으로 조후보의 지지상승속도가 정후보보다 약간 높은 점 ▲20대보다 투표율이 높은 30∼40대에서 조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점 ▲자민련과의 제휴가능성에 기대하고 있다. ○표지키기에 승부 한편 박 후보측은 자신의 인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양김씨의 세력대결이라는 재래의 정치적 양상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박 후보는 『영남권 일부의 반민자 기류,호남권 일부의 김대중씨에 대한 반란조짐 등에 비추어 서울선거에서 출신지역이나 정당은 선택기준으로서의 의미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따라서 거리유세·맨손유세 등을 적극 전개,30%에 이르는 부동표를 흡수하면서 정·조 후보측의 조직적인 「박 후보표 탈환공세」를 방어하면 당선권에 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구멍뚫린 국경(두만강 7백리:13)

    ◎예나제나 북한쪽 변방선 밀수성행/쌀팔아 소금사서 야밤 국경 넘나들고/강변주민 10명중 8명은 밀수로 생활/보초서는 민병도 거들고 북한 요원도 한몫 두만강 7백리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는 도적골이라고 있다.밀수꾼들이 도둑처럼 그 골짝으로 무리져서 다녔다고 해서 난 이름이다.이름 그대로 선구,배가 들어오는 어귀라서 역래로 밀수가 성행하던 고장이다. 일제시기 선구에는 해관과 일본경찰서가 있었고 곡물수레를 배에 실어 강을 건너 종성으로 넘나들었다.밀수꾼들은 야밤 삼경 도적골에서 도둑 고양이처럼 쌀짐을 지고 살금살금 강을 건너갔다.종성장거리에서 쌀을 팔아 소금을 사서 다시 야밤 도강을 시도했다.선구촌의 같은 패거리들이 소리없는 신호를 강건너로 보내는데 감시가 심할 때는 집 문앞 빨랫줄에 빨래를 널었다.빨래가 없으면 안전하다는 신호로 여기고 강을 건넜다. ○선구촌에 「도적골」 존재 해관을 용케 통과했어도 죽음의 신은 내내 그림자처럼 묻어다녔다.용정시 삼합진 경내에는 재피골이라고 있다.「잡히는 골」이 입에 오르면서 줄어든 이름이다.광복 전에 재피골에는 공안분주소가 있어서 오랑캐령을 넘는 밀수꾼들이 많이 잡혔다.그래서 사람들은 중간 골짜기로 다녔다.그런데 그 골짜기에 중국사람 쑹(송)가가 홀아비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단다.산중의 외딴 그 집으로 밀수꾼들이 홀로 들어가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쑹가는 사람을 죽여서 뒷산 감자굴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는데 광복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용정시 백금향 평정 사람이 조선에 가서 무명 다섯필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집으로 가는 길에 백금의 김옥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이튿날 평정으로 떠나갔는데 종무소식이었다.후에 숲속에서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그런데 목을 맨 가죽띠가 김옥래의 것이었다.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결국 무사히 풀려났다.그런데 몇십년 후 문화대혁명때 그 일로 다시 잡혀 맞아죽었다고 한다. 운수 좋게도 재피골의 쑹가같은 강도를 만나지 않고 갈리골(오고 가는 길에 그 곳에 당도하면 목이 갈한다,다시 말하면 목이 탄다고 해서 생긴 이름)에 이르러 갈한 목을 축이고 집에 당도했다 해도 수시로 덮쳐드는 집사대의 눈길이 무섭다.집사대가 마을에 들어서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당시 소금은 금물이고 강역의 사람들은 열에 여덟은 밀수로 살아가는 판이라 두근닷근 뛰는 「일곱근」마음은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했다.일단 발견만 되면 영창에 들어가거나 벌금을 톡톡히 내야만 했다. 내 외할아버지 허영혜는 강원도 내촌면 물레방앗골에서 양부모 시묘 6년을 해온 소문 난 효자였다.20년대 「나라가 망했는데 효자가 어찌 있으랴」고 효자문을 거절하고 오늘의 화룡시 용화향 개사냥골로 이주를 해왔었다.한번은 내 모친(허숙·78세·현재 필자와 동거)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였디.집사대가 오자 아버지가 소금을 옥수수밭에 감추었다 이기야.그런데 세상을 모르는 내가 소곰재(잠자리)를 잡느라고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 앉아라.먼데 가면 죽는다」라고 하면서 옥수수밭을 뱅뱅 돌지 않았겠니.그 소리를 듣고 집사대가 옥수수밭을 수색해서 아버지를 붙잡았디.집사대 대장이 일본 사람인데 아버지의 상투를 끄잡고 물매를 안겼디 않았갔니.벌금을 내고 무사히 풀리긴 했어도 아버지는 일본놈이 더러운 손으로 상투를 어지럽혔다고 그날 저녁 머리를 잘랐디.목숨보다도 더 귀중히 다루어온 아버지의 상투는 철없는 내 불찰로 없어졌다이』 ○소장사로 떼돈 벌어 광복후 공산당은 청년들로 공안부대를 조직하고 변경을 단속했다.하지만 청년들 역시 밀수꾼 집안의 자손이고 또 그들도 밀수를 밥 먹듯 해왔으니 보초는 허수아비나 다를바 없었다.천중백옹은 대약진 시기 부동촌 촌장으로 사람들을 조직하여 대량 밀수를 하면서 민병들을 거느리고 변경을 순라했다. 무정한 법은 유정한 인정에 진다.이것을 중국 사람들은 앞문을 막으면 뒷문이 열린다고 한다.박길남옹의 부친 박학철의 밀수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광복나서 얼마간 중국에서 조선 돈이 통용되었디요.북흥촌 김영준이라는 사람이 회령에서 온 소련군한테 조선 돈을 받고 소를 팔았거든요.그 돈을 가지고 회령에 가서 소를 사자니 이미 폐지된 화폐였다 이겁네다. 그때 소장사가 좋았다구요.중국에서 소 한마리를 팔아 갖고 가면 소 두마리가 되었디요.우리가 살던 대소가 모두 17호였는데 세집을 내놓고는 모두가 소장사를 해서 한해에 몇백마리가 건너왔습네다.골안에서 잡아서 삼합장에서 팔기도 하고 용정에 갖다 팔기도 했디요.검사잠 잠장은 보고도 못본체 했구만요.그때나 지금이나 고약한 놈은 어디에나 있었습네다.한 마을에서 누군가 고자질을 해서 위에서 공작조가 내려오지 않았갔시요.집집마다 장정들이 잡혀 들어갔디요.이학균이가 공작조 조장이고 간사로 박씨가 있었는데 우리하고 동성동본이라 어찌어찌 하라고 알려주어 아버지는 30만원(지금 돈 30원)을 벌금내고 놓여 나왔디요.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2년,혹은 4년씩 거의 모두가 징역살이를 했구만요. ○53년이후 최고 극성 변강 보초를 강역 민병들이 담당했으므로 녹아나는 것은 면목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이었다.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고지식하고 소박했으므로 돈보다 정으로 통했던 것이다.낯선 사람이라 해도 강하게 나오면 방임했다.밀수꾼은 모험을 하는 것이요 보초꾼은 직책일 뿐이라 각박하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1953년부터 3년동안 밀수는 고조를 이루었다.쌀을 갖고 가서는 암모니아비료며 광목이며 백곰표 크림이며 연필,종이 등을 대량 들여왔다.보초를 서는 민병들도 밀수대열에 끼어들었다.집집마다 밀수를 했으므로 처벌을 준다고 해도 기껏 경고를 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당시 두만강역에서 밀수에 죽은 사람은 단 하나,그것도 공포를 쏜 총알에 재수없게 맞았다.총을 쏜 민병은 당황한 김에 시체를 끌어다가 파묻었다.
  • 박수근의 주인공들(송정숙 칼럼)

    박수근의 주인공들에게는 친화력이 있다.가로로 반듯하게 그려진 아낙네들의 임질하기에 알맞은 머리선,팔뚝이 완강하고 발디딤이 당당한 참기름장수,빨래터에서 빨래하고 맷돌을 돌리며 일하는 아낙들의 그 강건한 몸짓의 선들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성애를 함축하고 있다. 저만한 아기를 등에 매달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저녁나절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서있는 무명치마에 검정고무신 신은 조그마한 소녀.박수근의 또하나의 주인공인 이「아기업은 소녀」는 우리에게 가슴을 휘돌아가는 아릿한 바람소리를 듣게 한다.과꽃 함께 심던 누님처럼 그리워지는 곤군한 소녀들.그들 모두가 이제는 초로에 들어섰을 것이다.소용돌이치는 변혁기를 거쳐 지금쯤 재테크로 돈을 벌어 미국유학에서 PHD나 MBA를 딴 아들 딸도 두었을 것이고 부유한 노년을 맞기도 했을 것이다. 작고한지 30주기를 기념하여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전에서는 우리의 『그 때 그 시절』과 만나게 된다.그 그림속에 동면하듯이 담겨있는 「우리」는 소박하고 무심하고 무공해하다.측은하고 서럽기도 하지만 그립고 정겹기도 하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아 서럽게 살다간 화가 박수근은 그 설움의 파편들을 차곡차곡 담가 두었다.그것이 발효되어 향기높은 물질을 만들었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맡을 수 있게 한 것이다.가족을 건사하기에 실팍하고 성실하게 긴장한 아낙네의 팔뚝,고난의 그림자를 뚜벅뚜벅 밟으며 묵묵하게 일하는 가장들의 모습,응석도 모르고 분홍빛 꿈 같은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일에도 길들여지지 않았지만 배고파 칭얼거리는 어린 동생을 업어기른 착한 효녀들,그들은 모두 우리의 고난기를 견뎌온 진실한 주인공들이다.우리가 겪어온 고난이 수치와 회한만이지 않게 하는 예술을,그 고난의 삶에서 그는 어떻게 이리 선연히 표현할 수 있었을까. 산 동안의 부당한 설움을 보상이라도 받듯 죽은 이후에 화려하게 부상한 그의 그림속 주인공들은 오직 한가지 옷만 입고 있다.한결 같은 무명옷이다.화학섬유와는 견줄 수 없는 따뜻하고 소박한 무공해옷이다. 미망인이 된 그의 아내가전해주던 일화 한토막이 있다.화가는 서울 종로통에 있는 고급 주단집 쇼윈도에서 아름다운 비단 한복감을 보아두었다.벼르고 별러 아내의 생일에 맞춰 그옷감을 사러 갔더니 누군가 벌써 사가버린 뒤였다.울면서 돌아와 아내에게 그것을「고백」한 남편을 혼자된 아내는 두고두고 못 잊어했다.아침 끼니를 아꼈다가 남편에게 점심을 먹이는 아내를 붙들고 주루룩 눈물을 흘리곤 하던 그는 『얼마 못살고 가려고 그랬는지 유난히 잘 울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50밖에 못살고 떠났다. 본격적인 그림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그가 우리의 짧은 근대 미술사를 탄탄하게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한 것은 그가 지닌 재능의 천부성을 뜻하기도 한다.그러나 그런 재능이 흔히 갖기쉬운 비극적인 괴팍성이나 비정상함을 그는 보이지않는다.마른 붓으로 거칠게 그린 위에 부분적으로 덧칠을 하는 그의 마티에르 방식은 작품에 깊게 깊게 여러 층의 세계를 새겼다.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들여다 볼 때마다 속에서 새로운 그림이 돋아난다.고목속에서 파란 잎사귀도 나오고 농악패들에게서 상모며 꽹과리도 나온다.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들판에서 파란 풀도 돋고 행상의 함지에서 새빨간 사과가,누이등에 업힌 아기에게서 호두만한 주먹이 발갛게 드러나기도 한다. 생전에 그 흔한 개인전도 한번 열어보지 못했던 그는 아틀리에는 말고라도 이젤도 제대로 갖지 못했었다고 전해진다.그래도 그의 「속이 깊은 그림」들은 완벽하고 성숙한 기법으로 압도한다. 우리의 그 많은 곤궁속에서 진주 같은 아름다움의 서정들을 찾아 술을 담가놓은 그의 그림들이,물자가 흔해서 황폐해진 오늘의 우리를 이렇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그 시절의 우리에게는 소박한 삶이 있고 진실한 가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가난하지만 품위가 있었던 시절에 대한 자부심있는 그리움이다.박수근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우리들」이다. 눈밝은 외국 사람들은 벌써부터 그를 발견했고 그래서 국제 경매에서도 내정가를 웃도는 값에 팔리기도 한다.멀잖아서 파리의 인상파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교섭이 올 것으로 예측도 되고 있다.그를 지녔다는일이 우리에게는 너무 고맙다.
  • 여성 12명 입각 “사상최다”/불 새내각 어떻게 짜여졌나

    ◎평균연령 48세로 젊어져… 계파안배 흔적/고용창출·사회복지·유럽통합 추진에 비중 프랑스 시라크의 새 내각은 무엇보다 젊고 혁신적이다.그리고 프랑스의 미래를 고용창출,사회복지,유럽통합등에 내걸었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새 각료들은 대부분 정치적 무명인사들로 평균연령이 48세다.이는 지난 내각에 비하면 4년이 젊어진 셈이다.이 가운데 최연소는 정부대변인에 임명된 기자출신 프랑소와 바롤린으로 29세.이와 함께 42명 각료명단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현상은 여성이 29%인 12명이나 된다는 점이다.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여성이 등용된 것이다. 또 이번에 새로 마련된 장관직에서 시라크가 중시하는 정책을 알 수 있다.「세대간의 연대」「어려운 이웃들」「통합과 빈곤에 대항」등 이름도 긴 이 세 장관직을 신설한 것은 가족문제,실업자,집없는 사람,빈민,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등 프랑스에 내재된 사회문제들을 책임지고 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시라크는 이번 내각을 짜면서 정치적 균형을 크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절반에 가까운 20명은 그의 공화국연합(RPR)에서,나머지 대부분은 중도우파 정당들에서 기용했다.그러나 전총리 발라뒤르 지지자가운데는 5명만 임명됐으며 주로 한직이다. 각료가운데 에르베 드 샤레트 외무장관(56)은 유럽통합론자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유럽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알랭 마들랭 경제·재무장관(49)은 시라크대통령 지지로 일관한 시장경제 신봉자며 프랑스민주동맹(UDF)부의장을 지냈다.그가 내세운 선결과제는 「재정적자와의 투쟁」과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효율적인 대책수립」이다.가장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는 가이 드러트 청소년 체육장관(44).드러트는 지난 76년 올림픽에서 1백10m 허들부문 금메달 수상자다. 시라크의 둘째딸 클로드(32)도 엘리제궁의 공보특보로 취임할 것으로 전해져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클로드는 시라크당선의 일등공신.시라크가 여론조사에서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총리에게 크게 뒤지고 있던 당시 공개적으로 발라뒤르에게 비판을 퍼부었으며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여론의 향방을 파악해 시라크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프랑스언론은 『클로드는 아버지가 어려웠던 순간에 그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단안을 내릴 수 있도록 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 몸바사항/“흑인노예 수출항”… 슬픈역사 간직(아프리카 기행:9)

    ◎「킨타쿤테」 떠난 부두에 범선수십척 “장관”/인도양 교역중심지… 11세기 아랍상인에 의해 건설/올드타운 거리 곳곳에 이슬람 정취 물씬 케냐 동쪽 끝에 위치한 몸바사는 탐욕스런 무역상인들에 의해서 아프리카 흑인들의 노예수출 중심 항구로 비정의 역사를 갖고 있다.오늘날에도 동아프리카의 중요한 무역항이다.처음에는 인도양 위에 떠있는 조용한 산호섬이었으나 지금은 섬이었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몸바사로 가는 가장 훌륭한 여행길은 나이로비에서 기차를 타고 대평원을 가로질러 몸바사항에 닿는 노정이다.덴마크 공주 카렌이 그의 연인이 되었던 영국인 수렵가 해턴과의 운명적인 첫 해우를 한것도 바로 몸바사를 떠나 나이로비로 향하던 기차여행중에서였다.이 기차를 타면 아프리카 대평원에 뜨고 지는 태양과 아프리카서민들의 생활과 정한을 눈여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그러나 여행일정에 쫓겼고 열차의 발차시각이 한 밤이라서 비행기를 이용하게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케냐 서쪽에 있는 우간다와 르완다는 유럽의 스위스처럼 바다가 없는 나라다.그렇기 때문에 몸바사에서 내륙으로 놓여진 철도가 없었다면 이들 나라는 현대문명사회와 고립되었을 것이다.몸바사에서 이어지는 철도와 도로망은 그들에게 있어 라인강과 같은 젖줄인 셈이다.오만의 몸바사에서 따온 지명인데 케냐의 몸바사는 11세기때 아랍상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인도양 횡단교역에 절대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때 “노예시장” 흥청 149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바스코 다가마는 상거래의 중요한 항구로서 몸바사를 점찍었고 그로인해 이곳에는 노예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니그로들을 사냥하듯 잡아 바깥 세계에 노예로 수출한 악명 높은 항구가 바로 몸바사다.1840년 잔지바르(몸바사 아래쪽의 섬)의 성주가 통치권을 행사할 때까지 아랍과 페르시아,포르투갈,투르크(터키의 한 부족)가 패권을 다툰 각축장이기도 하였다. 1895년 영국이 차지하여 1907년 수도가 케냐로 옮겨지기까지 몸바사는 동아프리카 보호령의 수도로서의 역할에 매우 분주하였다.몸바사에는 두개의 항구가 있는데 섬의 동쪽에 있는 구항은 아라비아,페르시아만,인도 등지에서 교역물을 싣고 오는 범선이나 작은 선박들이 이용한다.아침마다 이 항구로 들어 온 많은 해산물들로 시청사 주변을 생선시장으로 바꿔 버린다.우기가 되면 수십대의 다우범선(돛이 세개달린 범선)들이 이 구항으로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한편 영국이 개발한 킬린디니항은 수심이 깊은 항구로 육지로 둘러싸인 정박지에 16척의 화물선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현대적 항만시설을 갖추었다. 몸바사의 중심거리는 음웸베 타야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이곳이 도시의 중심지로 기능하는 이유는 교통 때문이다.교통문제를 책임지는 감독관이 이 거리 망고나무 아래에서 사파리를 떠나기에 앞서 짐꾼들과 운전사들을 집합시키고 점호를 하는 풍경은 이채롭다.토요일마다 여기서 벌어지는 노상 밴드쇼가 유명하고 여러가지 향신료를 섞은 음식물과 야채를 팔고 있는 저자거리도 볼만하다. ○노상 밴드쇼는 명물 그러나 몸바사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들은 누구나 한번쯤당혹감을 느끼게 마련이다.그것은 여행자가 나이로비에서 비행기를 잘못 타서 회교국가인 아랍에 잘못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거리로 나가면 검은 아바이야차림에 얼굴을 차드르로 가린 회교도 여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된다.특히 동쪽에 있는 구항에 인접한 올드타운은 좁은 골목길에 조각장식을 곁들인 발코니가 달린 아랍식 주택들과 이슬람사원들이 들어서 있다.좁은 골목은 침입자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고,고층주택들의 지붕은 지난날 포르투갈 침입자들의 공격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몸바사를 통치하던 역대 총독들은 전통적으로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포대기용 천을,그리고 결혼하는 신부에게는 가운을 주면서 축복하였다.죽은 자에게는 넉 장의 무명천을 선사해 왔다니 인생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에 통치자들이 꽤나 신경을 쓴 모양이다.통치술 치고는 고차원적이 아니었나 한다.이곳에 살고 있는 회교도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11세기에 몸바사에 상륙하였던 아랍상인들의 후예들이다.그런가하면 수도 나이로비에는 이 나라가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을때 철도부설노동자로 들어왔던 인도인의 후예들이 케냐상권의 대부분을 쥐고 있다. ○인도인 후예 상권 장악 때때로 이런 해묵은 갈등들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큰 충돌 없이 지내고 있는듯 하였다.케냐의 원주민들은 수백년동안 이런 종교와 문화적 차이를 큰 적대감 없이 수용하기도 하고 조화시키면서 살고 있었다.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심성의 공간적 넓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항 근처에 있는 부두노동자들의 합숙소 벽면에 나란히 걸려있던 그들의 옷가지와 빨래들을 바라보면서 노예시장은 이제 없어졌지만 아직도 밑바닥 생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정한은 남루한 옷차림들에 그대로 묻어있다는 생각을 하였다.아랍사원중의 하나인 아우디보라 모스크가 있는 절벽 뒤의 황무지에는 방치해 둔 계단입구가 있다.교역물자를 나르던 범선의 노예들이 비밀리에 드나들었던 곳인데 이 계단이 끝나는 막다른 동굴에는 그들 노예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해 주었던 맑은 샘물이 있다. 우리는인도양의 초록빛 바다가 창문 아래까지 밀려와 닿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휴가를 맞은 유럽인들이 몰려와 여름의 태양과 바다를 만끽하고 있는 호텔 앞의 바닷가에는 몇마리의 낙타를 몰고 다니며 손님을 부르고 있는 흑인과 낙타들의 발길이 무척이나 한가로웠다.
  • 4·19부상자후원 10년 한의사 김한섭씨

    ◎“「그날의 동지」당연히 돌봐야죠”/제대후 한의학과 복학… 시위참여중 총상/무료진료·생활비 지원 등 불우동지 도와 『올 4월은 총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날의 부상으로 지금까지 어렵게 살고 있는 이름 없는 동지들에게도 남다른 감회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60년 4월혁명 때 부상을 당한 동지들을 10년째 돌보고있는 김한섭(58·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백운당 한의원장)씨.그는 4·19묘역이 국립묘지로 성역화된 올해를 「무명동지 복권의 해」로 그렸다. 「4월혁명 부상자동지회」의 부회장직도 맡고 있는 김씨는 부상동지들의 무료 치료는 물론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지 7명에게 석달에 한번 30만원씩의 생활비를 보조해온 숨은 독지가이기도 하다.그러면서도 동지들에게 좀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뜨거운 함성으로 전국이 메아리친 35년전 그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로 뛰어나왔던 김 원장.군복무를 마치고 경희대 한의학과 1학년에 막 복학한 때였다.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하다 머리와 등에 총상을 입고 10여일동안 사경을 헤맸다. 혁명이 끝난 뒤 「전국 4·19학생동지회」에 참여,남다른 열정을 갖고 활동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5·16 군사정권에 묻혀버렸다.절망감 속에 한의사의 꿈도 버리고 은행에 취직했다. 20여년의 방황 끝에 80년 다시 한의사로 나섰다.5·16의 충격이 20년동안 외도를 하게 했지만 정신적인 성장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의 무료진료는 4·19 관련자들 뿐만이 아니다.지금까지 무료진료 혜택을 받은 사람은 모두 5천여명에게 이를 것으로 주위에서는 말한다.4·19 관련자는 물론 영세민 상이군경 낙도등 무의촌의 주민등 그의 손길을 바라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뭐 다른 뜻은 없습니다.불우한 동지들을 위해 그나마 조금 낫게 사는 사람이 베푼다는 마음 뿐이지요』 앞으로 4·19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전담하는 법인체를 설립하고 싶다는 그는 대부분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동지들을 생각할 때 마다 마음이 더욱 급하다고 했다. 『지난 63년 부상자동지회가 설립될 때만 해도 3백4명이던 회원이 지금은 2백30명으로 줄었습니다.부상후유증과 생활고로 일찌감치 생을 마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그러나 장례비조차 제대로 없어 유족들이 쩔쩔매는 것을 보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더운 절박해집니다』 그러면서 지난날의 스크랩을 들춰보는 그의 눈에는 금세라도 이슬이 맺힐 것 같아 보였다.
  • 세계 영화팬의 영원한 연인 “안방 노크”

    ◎오드리 햅번·잉그리드 버그만·그레이스 켈리·마릴린 먼로·셜리 템플/EBS­TV 내일부터 「특선 다큐…」 방송/화려했던 전성기­그들에 얽힌 뒷얘기도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추억의 명 여배우들이 안방을 찾는다. 교육방송(EBS­TV)은 16일부터 매주 일요일 「특선 다큐멘터리­5인의 명여배우편」을 통해 오드리 헵번,잉그리드 버그만,그레이스 캘리,마릴린 먼로,셜리 템플 등 은막스타 5명의 화려했던 전성기 모습을 다시 보여준다. 영화 1백주년을 맞아 명감독 시리즈에 이어 마련된 이 시리즈는 명여배우들의 친구 및 동료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팬들이 궁금해 하던 뒷얘기까지 접할 수 있게 해준다. 16일 첫 편은 53년 영화 「로마의 휴일」로 세기의 스타가 된 오드리 헵번 편.헵번은 가냘프면서도 우아한 귀족스런 자태로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헵번스타일」이라는 헤어스타일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했던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비롯해 「아름다운 사브리나」「전쟁과 평화」등으로 미국 흥행가를 석권하며 20여년간 톱스타의 인기를 누렸다. 아름다운 품격에 연기력까지 갖추었던 「잉그리드 버그만」편은 23일에 방영된다.헤밍웨이의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카사블랑카」「가스등」으로 영화팬들의 영원한 연인이 되었다.그녀의 자유분방했던 인생도 소개한다. 30일에는 현대판 신데렐라라는 「그레이스 캘리」편.무명배우에서 일약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뒤 어느 날 갑자기 모나코 왕비가 된 그녀는 스스로가 영화같은 일생을 살았다.「하이 눈」「다이알 M을 돌려라」「갈채」등에서 차갑고 이지적인 모습을 보이며 5년이라는 짧은 할리우드 생활을 했던 그녀는 죽음조차도 숱한 뒷얘기를 낳게 했다. 네번째로는 36세로 요절한 「마릴린 먼로」가 소개된다.「섹스 심벌」이라는 별칭과 함께 숱한 스캔들을 뿌렸지만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7년만의 외출」「돌아오지 않는 강」등을 통해 스캔들보다는 연기와 춤,노래등에서 가장 재능을 보였던 배우로서의 모습을 담아본다. 30년대 「아메리카의 작은천사」 셜리 템플은 5월14일 마지막편을 장식한다.노래와 춤으로 스크린을 달구고 아프리카의 영국대사로도 활약했던 삶을 돌아본다.
  • 말리고 싶지 않은 싸움/한영성 원자력연 상임고문(굄돌)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리고 싶지 않은 싸움이 있다.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이찬진과 전자공학도 이승욱.양두뇌간의 찌르고(모)막는(순)공방이 그것이다. 국내 개인용 컴퓨터 보유자 중 약 90%가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글 컴퓨터 프로그램,대학 4학년때 이를 개발한 이찬진은 그것 만으로도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기에 족했다. 그는 이어 국내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일구어 냈으며 1백30년이 걸려도 풀수 없다는 특수암호 프로그램을 내 놓아 주위를 또한번 놀라게 했다. 이처럼 탄탄한 아성을 한 무명의 전자공학도 이승욱이 나타나 뚫을수 있음을 밝혔고 실제로 해내어 세간의 화제가 되고있다. 뒤이어 제2라운드 겪인 한글 숫자 암호도 풀렸다. 이찬진은 이에 뒤질세라 자존심을 걸고 절대로 풀수 없다는 「한글 3.0」을 내놓았다.이승욱도 다른 3개의 해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며 그것마저 해독 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다. 순수한 국내교육 출신이라 더욱 돋보이는 이들의 승부는 생산적이어야 하며 공방의 목표도 우리서로가 아닌 해외 두뇌들을 겨냥하길 바람은 지나친 욕심일까. 이들의 진퇴를 지켜보면서 정보화 시대 우리나라의 위상을 보는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 진다. 차세대 주역들이 지혜를 펼쳐 마음껏 뻗어 나가길 바란다.그래서 이땅이 좁다고 생각되면 눈을 밖으로 돌려 세계무대를 한판승부의 장으로 삼을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국민들은 꽃다발과 환호를 준비한채 그들의 자랑스런 승전보를 기다리기로 하자.
  • 언플러그드 음악에도 상업화물결/복고풍타고 통기타 생음악 미서 인기

    ◎그룹 「니르바나」 CD음반 3백만장 팔려/“자연스런 음률이 히트한다” 너도나도 앨범 준비 최근 몇년 사이 「언플러그드」란 말은 대중음악계에서 대단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이말을 만들어낸 미국 음악텔레비전방송 MTV의 프로그램 「언플러그드」쇼는 이제 확실한 스타의 산실로 자리잡아 올해 그래미상을 탄 셰릴 크로,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의 공연이 예약돼 있을 정도다. 「사물이나 사람이 겉치레를 벗고 본래로 되돌아간다」는 뜻의 신조어가 돼버린 「언플러그드(Unplugged)」는 악기의 플러그를 꽂지 않은,즉 모든 전기악기를 배제하고 어쿠스틱 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89년 MTV의 프로 「언플러그드」는 80년대를 사로잡았던 「고압」의 음악과 녹음에 맞추어 입만 벙긋거리는 댄스송에서 탈피,솔직한 음악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적은 예산으로 꾸며졌다. 방송담당자의 소박한 의도와는 달리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자연스런 음악에 향수를 갖고 있던 중년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오르기 시작하자 「언플러그드」쇼는 시네드 오코너,REM,에릭 클랩턴 등 일급 가수들을 출연시키며 전계층의 인기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92년에는 무명의 그룹 펄 잼이 「언플러그드」에 나온뒤 일약 인기그룹으로 부상했으며 왕년의 가수 로드 스튜어트는 「언플러그드」로 재기에 성공하기도 했다.90년대 들면서 유행한 사회전반의 「복고풍」이 대중음악에서도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언플러그드」음악의 성공에 뒤따른 부작용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반상업주의로 시작한 「언플러그드」음악이 오히려 상업성을 보장하게 된 현상이 그것이다.포크 록의 선구자 보브 딜런은 93년 「어쿠스틱 CD」를 발매했다가 실패하자 「언플러그드」라는 새이름으로 CD를 냈다.또 리드 싱어 코베인이 자살한 뒤 활동이 없던 그룹 니르바나는 「MTV 언플러그드 뉴욕」을 발매하자마자 3백만장이 팔리는 기현상을 낳았다.소란스런 록의 대표주자인 롤링 스톤스조차 언플러그드 앨범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니 언플러그드가 얼마나 상업화했는지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MTV「언플러그드」의 인종적 편견도 지적받고 있다.그동안 공연한 가수 가운데 머라이어 캐리등 몇몇을 제외하면 모두 백인이라는 점이다.가끔 흑인이 나오더라도 그들은 「연예인」으로만 대접받는 데 비해 백인들은 「에술가」로 칭송되고 있다는 것.방송비평가들은 공연자의 인종에 대한 이중적 관점을 하루빨리 없애야 진정한 언플러그드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 항일투사들의 유택(두만강 7백리:7)

    ◎나철·김교헌·서일 선생 묘 새 단장/강양안 마을마다 혁명열사비 우뚝 솟아/한·중수교후 관심 높아져… 모국이장 한창 연길시 사수에서 북쪽 골짜기로 20리가량 올라가노라면 금불동이라는 마을이 있다.이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소나무숲이 나오는데 그안에 유달리 깨끗이 가꾼 묘소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묘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누구도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서 왔으며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길이 없다.다만 숨을 거둘 당시 19살이라는 것과 조선족 항일독립군 젊은 전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연세가 높은 이상헌(79)노인은 그 무명의 젊은 전사가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정황을 소상히 기억했다. 『꼭 쉰 일곱해전 일입네다.뒷산에서 드문이 총소리가 들려오더니만 일본놈들과 자위단들이 어린애 같이 앳된 새파란 청년을 끌고 마을로 들어왔디요.그 놈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다 보는 앞에서 청년을 신문합데다.이름을 물으니까 「항일독립군」이라고만 기래요.그 날 왜놈 장교의 군도에 목이 잘려 죽고 말았디요.하도 기막히고 딱해서 유체를 마을 사람들이 묻어주었댔습네다』 ○무명열사 묘지는 쓸쓸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 양지 바른 언덕위에는 혁명열사비가 세워졌지만 산 언덕 공동묘지에 임자 없이 쓸쓸히 있는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풍우의 시달림에 자취를 잃었거나 훼손되어 가고 있다.용정시 삼합진 안미대골로 얼마간 들어 가다가 화선 누비골에 있는 묘지앞에는 돌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고 한다.비석에는 김병덕 지묘라고 씌어있었다.부근 마을 사람들은 독립군 대장의 묘라고 했다.똑같은 항일투사의 묘지이다.하지만 계급투쟁 세월에 그 누군들 감히 돌볼 수가 있었으랴.몇해전 김병덕의 묘지는 파엎어졌고 대리석 비석도 도난을 당했다.오소리가 묘지에 굴을 뚫고 보금자리를 꾸민 것을 발견한 부근의 사람이 묘를 헤치고 오소리를 잡아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열 항일열사들의 시신은 일찍 북한으로 이장되었다.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한때 친선을 다졌던 터이라 이장이 쉬워 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사이에 시신이라도 두만강을 건넜다.이에 비해 한국에 가까운 연고를 둔 항일열사들은 상대적으로 대접이 소홀했다.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항일유적이나 열사들의 묘소가 큰 수모를 겪었다.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 항일열사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넋이라도 살아서 가장 슬퍼하다가 다시 기뻐했을 열사가 있다면 나철,김교헌,서일 선생일 것이다.한국 대종교의 3종사로,또 항일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묘소는 화룡시 삼도구 청호촌에 있다.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항일역사유적지로 지정한데다 한국의 대종교가 묘역을 정화했기 때문에 제법 볼품이 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청산리전투를 총지휘 이 묘역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패거리와 추종자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수난을 겪었다.비석을 모두 내동댕이 쳐서 청호촌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댓돌로 쓸 정도였다.문화혁명이 가시고 뜻있는 사람들이 묘비석을 찾아내 세웠지만 김교헌선생의 묘비는 끝내 못찾았다.그래서 몇해전에 묘비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대종교는 독립군조직 서로군정서를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했고 서안선생은 그 총재로 1920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다. 지금은 일본인들까지 유골을 찾으려 두만강변의 연변땅을 방문하고 있다.물론 침략자로 두만강을 건넜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얼마전에 한 일본 여인이 용정시 백금향으로 와서 자기의 오빠 묘를 찾았다.묘지 자리를 상세히 그린 지도까지 들고 온 일본 여인을 마을 노인들이 안내했다.묘가 있었다는 장소는 본래 일본 삼림경찰의 묘역이었다.1940년 홍기하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일본경찰은 둘 뿐이었다는데 목숨을 살려 평정대 마을까지 이르렀다가 그중 하나가 병으로 죽어 그곳에 묘를 썼던 것이다.그런데 봉분이 사라져서 어방으로 묘자리가 짐작은 가도 딱 짚을 수는 없었다. 독립군 김덕형의사는 웅진,나진 등 두만강 연안의 조선을 다니며 군자금을 모았던 사람이다.1921년 경술년 토벌 때 어느날 저녁 군자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흥에 있는 집으로 들어 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포위에 걸려희생되었다.그가 죽은 후 식구들은 군자금을 독립군에 전달할 수 없었다.많은 액수의 군자금은 그 집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김덕형의 아들 두 형제는 시름없이 공부를 하였다.광복이 나고 1947년 토지개혁을 하게 되자 생활이 유족했던 그 일가는 청산을 당해 러시아제 금장표 재봉틀마저 빼앗겼다.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재봉틀은 얼마전에 고장이 나서 고철로 팔아버렸다.그집 큰 아들은 북한에 들어가 죽고 작은 아들 김성록은 지금 한국에 산다.6·26전쟁 때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한에 온 김성록은 중국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북흥의 조선족 친구가 만난 일도 있다.그는 한국군 대좌(대령)군함(계급장)을 달고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보훈처에서는 연변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안화춘 선생의 도움으로 중국내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이장하고 있다.안화춘 선생은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고 이 땅을 메주 밟듯 하고 다닌다.이번 두만강 답사길에서 연변 도처에서 희생된 선열들의 자취를 잡을 수 있었다.조창렬노인이 들려준 경신년 대토벌 당시 상황도 그 한토막이다. ○선열들 발자취 곳곳에 부암동에서 독립군 한창준과 이씨가 체포되어 불에 타 죽었댔습니다.시체를 감장하려니 누가 누구인지 가릴 수가 없었디요.일제 놈들은 의병대장 최덕균과 남상윤(남풍수로 불림)선생도 모진 고문을 했다고 기래요.눈에다가 고춧물을 부어 넣고 신문을 했으니끼리 죽을 수 밖에….』 선열들의 비장한 최후는 눈물 없이는 들을수 없었고 일제와 주구들의 만행은 의분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부르는 독립운동의 무대 연변은 이렇듯 많은 항일투쟁의 사연을 안고 있다.나는 옛 용정 대성중학교(현재 용정시 제2중학교)앞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시 한구절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무수한 선열들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아닐 수 없다.
  • 영국의 의정활동/국회의원 선거비용 8백만원선(세계화 외국에선)

    ◎실사 엄격… 한푼만 틀려도 당선무효/활동비 아끼려 부인을 비시로 활용 얼마전 영국의 한 신문기자가 제약회사 로비스트를 가장해 의원들에게 접근한 일이 있다.『우리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내용의 질의를 해주면 거액을 주겠다』고 제의했다.대부분 의원들은 거부했지만 일부 의원들이 동의를 한 직후 신문에 기사화됐다.하원차원에서는 지금 윤리위 조사가 진행중이다.영국여론이 의원들에게 요구하는 청렴성과 윤리성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영국 선거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꼽히고 있지만 1백년전에는 상황이 달랐다.선술집인 펍(Pub)은 선거철만 되면 후보의 향응제공으로 항시 만원이었고 후보 한명당 지금돈으로 6억원쯤씩이 뿌려지기도 했다는 것이다.유권자 사이에서 「선거를 자주하자」는 유행어가 돌았을 정도다. 그러나 1883년 부정타락선거방지법이 만들어져 부정선거가 범죄시되기 시작했다.이제는 돈을 쓴다는 일은 상상도 못할 뿐 아니라 돈을 쓰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가 지난92년 총선에서쓴 선거비용은 8천4백72파운드70펜스(한화 1천16만여원).선거가 끝난뒤 내무부에서 발간하는 책자 「선거비용」에 나온 수치이다.이 가운데 메이저총리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고작 1백69파운드24펜스(20만3천원)밖에 되지 않는다.나머지는 후원회의 헌금과 일반당비에서 충당됐다. 선거비용이 실제사용액과 1펜스라도 차이가 나면 당선 무효가 된다.따라서 당선자가 신고하는 이 수치는 의사당의 시계인 빅밴(BigBen)만큼이나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의원 평균 선거비용은 7천파운드(8백40만원)정도.이렇게 적은 선거비용은 더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공영제가 확립돼 있고 후보개인이 돈을 써봐야 효과가 없는 정당선거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가능하다. 차기 총리로 지목되던 보수당의 「거물중의 거물」 크리스토퍼 패턴(현 홍콩 총독)이 무명의 자유민주당 소속 도날드에게 패한 것이 정당선거의 대표적인 케이스.유권자의 70%는 정당만으로 투표를 한다는 분석이다. 패트릭 코맥의원은 깨끗한 정치의 이유에 대해 엄격한 선거법에다 선거기간이 한달 안팎으로 짧은 점을 들고 있다.또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면 언제든지 선거를 치러야하는 만큼 사전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흑색선전도 찾아볼 수 없는 신사도의 선거전이 펼쳐진다.때문에 선거에 나가 망신을 하는 경우도,집안이 망하는 일도 없다. 하원의원의 한달월급은 3백16만원정도(3만1천여파운드).보좌관및 비서관급여 명목으로 2백71만원정도를 더 받는다. 돈을 아끼기 위해 영국에는 부인을 비서관으로 고용하는 의원이 많다.한영의원친선협회장을 지낸 존 파의원도 부인이 비서이다.부부가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아름답게 보는 영국의 사회분위기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 김 대통령/불 대혁명사상 문민한국서 만개(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OECD 총장엔 “국제적 기여 확대” 약속/오찬에 불 기업인 2백명… 대한투자 관심 김영삼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 이틀째인 3일(이하 현지시간)현지 한국특파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을 수여받고 파리시청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한·불 경영인들과 오찬을 나누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사무총장 일행을 접견했고 현지교민들과의 리셉션에 참석한 뒤 공식수행원들을 위해 만찬을 베풀었다. ○문민정부의 밑거름 ▷소르본 대학◁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취득. 김 대통령은 소르본대학에 도착,푸수 총장과 투봉 문화장관 등의 영접을 받은뒤 학위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약 1시간동안 진행된 학위수여식에 참석. 파리대학학구 교육총감인 장드로 마살루여사는 학위수여 이유로 김대통령의 지적 자주성,국가에 대한 봉사,공명정대한 정신,대화와 교류에 대한 믿음등의 덕목을 열거. 푸수 총장은 학위수여연설에서『김 대통령은 한국에서 권위주의적 사고에 대한 저항을 대표해 왔으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이끌고 정치현실에서 이를 실천해 왔다』고 소개. 푸수총장은 이어 『서울대를 졸업하고 두해 뒤에 한국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9선 국회의원,4번의 야당총재를 기록한 김대통령은 바로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였다』고 설명하고 『김대통령은 철학도들의 이상국가실현을 몸소 구현하고 있으며 우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최초의 국가원수』라고 강조. 김 대통령은 학위수락연설을 통해 『지난 68년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울려퍼진 자유의 목소리가 우리에게도 큰 힘을 주었으며 나 자신도 오랜 투쟁끝에 마침내 정통성있는 민주정부를 세웠다』면서 프랑스의 자유정신이 문민정부출범에 하나의 밑거름이 됐음을 강조.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프랑스 상원 뒷 정원인 룩생부르그공원에서 조깅을 마치고 개선문 무명용사묘로 가 헌화한뒤 재향군인회 회장단 및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사를 교환. ○환경·교통 협력 제시 ▷파리시청◁ ○…김 대통령은 소르본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파리시청에 도착,공식 환영행사에 참석. 자크 시락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제 서울과 부산간 TGV건설을 계기로 프랑스의 또다른 면모도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에 있으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한민족이 열망하는 통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 김 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파리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요람이 되었고 파리에서 싹튼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문민정부출범과 더불어 만개하고 있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특히 『한·프랑스 두나라사이의 우의와 협력증진에 발맞추어 양국 수도간에도 우호협력관계가 발전하고 있음을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문화말고도 파리와 서울사이에는 상호협력할 분야가 많다』면서 그 예로 환경 및 교통문제를 제시. ○지원정책 질문 쇄도 ▷오찬◁ ○…김 대통령은 이날 낮 파리시내 파비용 가브리엘에서 열린 프랑스경영인연합회 주최 오찬에 참석,『한국정부는 프랑스기업의 한국진출을 비롯,한국기업과의 협력,그리고 제3국 공동진출을 원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강조. 김 대통령은 또 『프랑스기업이 에너지 통신 우주항공 환경등의 분야에서 세계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 분야에서 한국기업과 보다 적극적인 산업·기술협력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부연. 이날 오찬모임에는 장쿠르 갈리냐니 한·프랑스경영자협회장을 비롯한 2백여명의 프랑스측 기업인이 참석했으며 우리측에서는 최종현전경련회장과 김석원한·불경협위원장등 프랑스투자기업인 35명이 참석. 김 대통령이 오찬에 참석하는 동안 부인 손명순여사는 미테랑 대통령부인 다니엘여사와 오찬을 나눈 뒤 루블박물관을 관람. ○한국가입 지원 약속 ▷OECD총장 면담◁ ○…오찬을 끝낸 김대통령은 영빈관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날 하오5시 장 클로드 페이유 OECD사무총장의 방문을 받고 30분 남짓 면담. 김 대통령은 먼저 『한국이 이제 교역량으로 세계 12위에 이르고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 기여를 하기 위해 OECD에 가입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 회원국과의 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 이에 페이유 총장은 이미 실무차원의 교섭을 통해 우리나라의 가입이 기정사실화된 듯 『한국의 OECD가입을 환영한다』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 ▷특파원 조찬◁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파리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조찬을 겸해 간담회를 갖고 한불문제와 통일관등에 대해 설명. 김 대통령은 『미테랑 대통령은 생각보다 상당히 건강하더라』고 전날 미테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소감을 밝히고 『미테랑 대통령은 실무자선에서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고문서 반환문제에 대통령선거 이후에도 연속성을 갖고 틀림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소개. 『그들이 생존전략상 가상적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 김 대통령은 이어 유학생들의 독립된 기숙사를 파리에 세워 유럽문화의 거점으로 만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좋은 생각』이라고 긍정적인 반응.
  • 한­불,고속철 제3국 공동진출/김 대통령­미테랑 회담

    ◎TGV기술 조기이전 합의 【파리=김영만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 이틀째인 3일하오 파리시내 파비용 가브리엘에서 열린 프랑스 경영인연합회초청 오찬 모임에 참석,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외개방정책을 설명하고 프랑스기업의 적극적인 한국투자를 촉구했다. 김 대통령은 오찬연설을 통해 프랑스가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통신·우주항공·환경 등의 분야에서 한국기업과 보다 활발한 산업기술협력이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한국정부는 프랑스기업의 한국진출,한국기업과의 협력,제3국 공동진출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어 영빈관에서 장 클로드 페이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한국의 OECD가입과정에서 사무국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소르본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대통령은 학위수락연설에서 『동아시아는 세계경제의 3대 중심축의 하나로 떠오르고있고 한국은 바로 그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유럽통합은 물론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에 중심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밝히고 『프랑스와 한국사이의 협력증진은 유럽연합과 아태경제협력체(APEC)를 잇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파리 개선문에 있는 무명용사묘에 헌화하고 파리시청 환영행사에도 참석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과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2일하오(한국시간 3일 상오)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의 고속전철 건설과정에서 처음부터 테제베(TGV)의 기술이전을 시작,완공시점에는 기술이전을 완료하기로 합의했다. 두나라 정상은 또 한국의 고속전철이 완공된 뒤에는 한국과 프랑스가 제3국의 고속전철 건설에 공동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밝혔다.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이 지연되고 있는데 우려를 표명했으며 미테랑대통령은 『약속은 꼭 지킬 것』이라면서 두나라 실무전문가들의 이견을 조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한국측에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한국과 프랑스 정부는 가압경수로의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코드개발등 원자력 안전분야에 대한 공동연구센터의 설치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남북통일 시간문제”/김 대통령 특파원 간담 【파리=박정현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은 3일 파리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세계사적 흐름으로 볼 때 남북통일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북한이 변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며칠전에 북한에서 기가막힐 일이 일어났다』고 밝히고 『이런 사실도 북한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형항공기 개발사업과 관련,『양국이 각각 40%씩의 비율로 참여하고 20%는 제3국을 참여시키기로 했다』고 말하고 『아시아의항공수요는 중국만 해도 당장 1백50∼2백대를 필요로 할만큼 크기 때문에 많은 유럽선진국들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오진우사망」북군부 대변화 신호탄”/「김정일버팀목」붕괴이후 분석

    ◎「차기 총참모장 성향」 북향방 좌우할것/러 유학 신세대장교 개혁주도 가능성/최평길 연세대교수 함북 북청의 물장수아들,국민학교 중퇴의 북한혁명 1세대 군최고지도자인 78세의 오진우가 김일성의 뒤를 이어 사라져 갔다. 김일성이 모택동군 휘하 동북항일연군 게릴라부대를 이끌 때부터 참가한 오진우는 1937년 일본 관동군의 토벌에 밀려 50명 안팎의 김일성 게릴라 부대가 러시아땅 하바로프스크에 밀려갈 때도 충실한 김의 전사로 행동을 같이한다. 장차 한반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 전위무력부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하여 당시 소련극동군사령부는 아무르강 언덕에 88독립저격여단을 만들어 중국게릴라 지도자 주보중을 정점으로 한인 김일성을 1대대장으로 한 정보정탐 훈련팀을 키우고 있었다. 1대대장 김일성 대위밑에는 3개 중대와 1개 경비소대가 있고,1중대에는 3개소대가 있었는데 1중대장은 후일 인민군 3군단장과 부총리를 역임한 최용진,1중대 1소대장은 6·25당시 탱크사단장을 지내고 전사한 유경수,부소대장이 바로 오진우였다. 북한인민무력부는 행정부의 국방부같이 정상적 정부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북한최고 정부지도 기관인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직속 별동대로 존재하고 있다. 1백52개 여단과 사단으로 구성된 지상군 65%가 휴전선에 전진배치되어 있다.해·공군사령관,전차·기계화군단사령부,평양방위사령부,해·공군사령부를 직접 관장하는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휘하는 인민무력부장은 김일성이 죽은 권력공백기간에 가장 위협적이며 권력승계자인 김정일로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는 개혁파·우파,또는 반김정일파 등 어느 정파도 인민군을 끼지 않고는 북한정권을 장악할 수가 없다.북한군은 어떤 의미에서 김일성 이후 시대의 「사회안정자」또는 북한정권 정파에 대한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정치의 키를 쥐고 주변 국가에 위협적으로 등장하는 북한이 내놓을수 있는 유일한 세계화의 상품인 군사력의 실질 관리자가 사라진 이 시점에 차기 인민무력부장,인민군총참모장,그에 따른 군수뇌부 이동과 권력승계,정치향방,핵무기 개발 여부등은남북관계 변화에 매우 큰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아마도 같은 혁명1세대인 현 총참모장 최광이 인민무력부장이 되고,총참모장으로는 같은 혁명1세대인 이을설·김봉율 아니면 2세대에 해당하는 김광진이 기용될 수도 있다.이 경우는 현재 인민군 지휘체계의 골간을 크게 바꾸지 않고 김정일의 정권장악을 위해 김일성이 미리 마련해놓은 군지휘부가 유지되는 것이며 현체제가 안정돼 있다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하나의 가능성은 설사 최광·김광진 등이 인민무력부장이 되더라도 인민군 총참모장이 혁명 2∼3세대에서 나오는 경우,그리고 그들 성향이 개혁지향일 경우 북한 정국의 향방이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진우의 사망은 김일성 시대의 사병화된 김일성군의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전문직업군,변화의 촉진제가 될 효율화된 군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줄잡아 1만5천명 정도의 북한장교는 러시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고,3백명의 젊은 대위·소령급장교(나이는 28∼30살)들이김일성에의 맹목적 충성심과 탁월한 부대지휘능력을 인정받아 엄선되어 모스크바 고급군관학교에 5년장기 유학훈련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 보내진 장기유학장교단은 1년은 러시아어를 배운후 4년간 소속병과훈련을 받았다.그런데 이 시기가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또 옐친이 직선제 러시아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동구의 김일성인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체코의 무명 지하극작가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때였다.공산체제 붕괴와 자유시장체제로의 전환을 현장에서 경험하고,한국무역진흥공사의 전시장과 한국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을 직접 체험한 이들은 훈련이 끝날 무렵인 1991년경에는 크나큰 심경의 동요를 겪었다. 그들은 주석직은 직선제로,조선노동당이 유일합법당이라면 국민투표로 인민들의 신임에 맡기자는 논의를 한 끝에 훈련종료 직전에 모두 평양으로 송환되었다. 이들은 지금 북한군을 실병지휘하는 대대장·연대장으로 있으며 만만찮은 개혁세력으로 잠재해 있다.이들 유학장교단은 혁명1세대가 계속 자리를 차지하든,2∼3세대가 계승하든군의 중요 간부로 활약하게 마련이이여서 김정일 권력승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앞으로 이들은 식량난 가중으로 주민봉기가 일어날 경우 정보사찰안전조직의 장악,개혁파 지도계층과의 연계 등으로 개혁의 핵심역할을 할 것이며 그들의 운신폭은 계속 넓어질 것이다. 오진우의 죽음은 이같은 북한 인민군의 군사·정치적 변화의 중요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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