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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러리 “록키처럼 결코 포기안해”

    “나는 영화 ‘록키’의 주인공과 많이 닮았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싸울 것이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말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퇴 압력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미다. 힐러리는 1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미국노동연맹산별조직 행사에 참석해 전설적 복서인 록키 발보아가 영화에서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달려올라가 두 손을 치켜드는 장면을 가리키며 이렇게 강조했다. 그녀는 “만일 지금 경선을 중단한다면 록키가 미술관 계단을 반쯤 올라가다 마는 격”이라며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의 경쟁을 넘어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와의 본선에서 꼭 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힐러리가 비유대상으로 고른 록키의 주인공인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매케인 상원의원 지지를 공개 선언해 힐러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편 영화 ‘록키’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무명에서 단숨에 할리우드 스타로 만든 작품이다.스탤론은 록키 마르시아노와 무하마드 알리의 시합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록키시리즈는 1976년 1편이 나온 이래 현재까지 모두 6편이 나왔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총선 D-7] 昌 “금쪽같은 은경씨”

    ‘금쪽같은 은경씨.’ 자유선진당 후보로 서울 중구에 출마한 신은경 후보에 대한 이회창 총재의 애정이 각별하다. 이 총재는 1일 이틀 연속으로 서울 중구를 첫 유세지로 삼아 지원 유세에 나섰다. 빗발치는 지원유세 요청 속에서 일정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총재의 입장에서는 신 후보에 대한 큰 ‘배려’가 묻어 있는 대목이다. 신 후보의 당선 여부는 선진당에 큰 정치적 의미가 있다. 충청권을 제외한 타 지역에서 당선 안정권에 근접한 후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전국정당’이라는 선진당의 목표가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해줄 유일한 카드가 신 후보다. 선진당은 이미 신 후보의 영입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서울 중구가 나경원 후보와 함께 유명 미녀 후보들의 대결로 관심을 끌면서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젊은층이 주로 보는 스포츠지와 인터넷 매체까지도 이들의 대결을 앞다퉈 다뤘기 때문이다. 이는 선진당에 ‘무명’에 가까웠던 당명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또한 신 후보의 젊고 활기찬 이미지는 선진당의 ‘노인당’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데도 한몫했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슬럼프 딛고 KEB인비테이셔널 공동 6위 강지만

    [스포츠 라운지] 슬럼프 딛고 KEB인비테이셔널 공동 6위 강지만

    |상하이 최병규특파원|“인터뷰요? 신문에 내 주시려고요?” 지난 23일 중국 상하이 인근 쿤샨의 실포트골프장 연습그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개막전으로 치러진 한·중투어 KEB인비테이셔널 4라운드를 모두 마친 강지만(32·토마토저축은행)은 “얘기 좀 하자.”는 말에 의외라는 듯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강지만은 기자들 앞에 서 본 지 꽤 오래됐다. 게다가 별반 신통치 않은 성적인 공동 6위로 대회를 마감한 터. 그러나 그가 이번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우승보다 더 값진 것이었다.“사실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아직 다 떨쳐 버린 건 아니고요. 이제 다시 시작해야죠.” 한때 대선배인 ‘탱크’ 최경주(38·나이키골프)를 잡은 ‘5번 아이언의 귀재’ 강지만은 “상하이는 거쳐 가는 투어 장소가 아니라 내 골프인생의 새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최경주 이긴 ‘5번 아이언의 귀재’ 지난 2006년 신한동해오픈 우승 얘기를 꺼내자 그는 아직도 그때의 감격이 가시지 않은 듯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말할 수 없이 기뻤죠. 생애 최고로 기쁜 날이었습니다.” 강지만은 당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뛰는 US오픈 챔피언 마이클 켐벨(뉴질랜드), 그리고 최경주를 상대로 프로 데뷔 7년 만에 첫 승을 올렸다.“‘멘털’에 관한 한 밑바닥으로 평가됐지만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서적을 잠자리에까지 끌어당기며 세계적인 프로 선수들과 견줘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뚝심을 길렀다.”고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삼성베네스트오픈과 코오롱하나오픈에서 공동 4위와 2위에 오르는 등 물만난 고기처럼 기량이 상종가를 쳤지만 2007년 시즌에 접어들자 출전한 14개 대회에서 우승은커녕 단 한 차례의 ‘톱10’ 성적도 내지 못했다.3위였던 상금 순위는 68위로 곤두박질쳤다.“스윙을 바꿔 보려다 망가졌어요. 욕심이 지나쳤던 거죠. 스윙이 안 되니까 주눅들고, 소심해지니까 스윙도 안 따라주고….” 그러나 강지만은 “이제 슬럼프는 바닥을 쳤다.”고 힘을 주었다.“순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대회 4라운드 내내 이곳 강풍을 얼굴에 맞으면서 지금 내 발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 “골프는 인내심” 강지만은 첫 우승까지 무려 7년의 ‘무명’을 감내했다. 그에겐 골프의 은인이 두 명 있다. 현역 최고령인 최상호(53)와 작은 아버지 강해룡 프로. 중2때 골프채를 쥐어준 강 프로가 그를 ‘낳아준´ 사람이라면 최상호는 ‘길러준´ 사람이다. 무명시절 강지만에게 끊임없이 조언과 질책을 쏟아부었던 최상호는 그에게 천금과도 같은 한 마디를 머릿속에 남겨 줬다.“골프는 인내심의 또 다른 이름이다.” “1년7개월 동안 그 말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 재능은 많지 않지만 노력만으로 골프를 쳐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만’이란 놈이 끼어 들더라고요.” 우승 뒤 그에게 붙여진 수식어.‘대기만성’의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 강지만은 미국프로골프 퀄리파잉 스쿨 통과를 목표로 잡고 올 시즌을 시작했다. 이미 노총각 대열에 끼어 들었지만 ‘새로운 자신’을 찾기 전까지는 미루기로 했다.“최상호 선배처럼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하루 1000번씩 아이언을 때릴 겁니다. 첫 우승에 7년 걸렸는데, 다음 우승은 훨씬 빨리 앞당겨야죠.“ 글 사진 cbk91065@seoul.co.kr ■ 강지만은 누구 ▲생년월일 1976년 2월21일 서울생 ▲체격 173㎝ 75㎏ ▲프로입문 1999년 ▲특기 5번 아이언 ▲우승 신한동해오픈(2006년) ▲2007년 주요기록 상금 68위(2393만원)평균타수 75.2타 드라이버 276.96야드 페어웨이 55.02% 그린 61.01% 평균퍼팅 1.86개
  • 포드 세계슈퍼모델 우승 강승현

    포드 세계슈퍼모델 우승 강승현

    “군대에서 잠시 휴가 나온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아요. 하하.” 지난 1월 세계 양대 모델 에이전시 가운데 하나인 포드모델사가 주최한 세계슈퍼모델 대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강승현(21). 미국 뉴욕에서 두 달 만에 돌아온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떠날 때 달랑 두명이서 떠났는데 지난 11일 입국 때는 공항에 몰려온 카메라를 보고 놀랐고, 오디션 없이 패션쇼에 설 수 있을 만큼 ‘대접’도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헐렁한 미니 원피스에 가죽 재킷,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그녀는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스칠 법한 앳된 고등학생 같은 모습의 그녀를 보며 당황한 쪽은 기자였다. 아직까지 자신이 이룬 것이 뭔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개의치 않으려 하는 것일까.“제가 이룬 것이 있나요? 물론 대회에서 우승해서 시작은 엄청 좋다는 것뿐이지 뉴욕에서는 무명의 신인 모델에 불과한 걸요.” 걸걸한 목소리는 털털한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코가 약간 삐뚤어져서 정면에서 사진 찍는 게 두렵고”“시대를 잘 만나서 모델이 될 수 있었다.”고 시원스레 툭 던진다. 맞다.“예쁘지는 않지만 매력은 있는 것 같다.”며 배시시 웃는 강승현은 요즘 서양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동양인 모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뉴욕 패션계를 좌우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 정도로 좋은 성격까지 지녔다.“포드모델 대표도 인정했어요. 현지 언론에서 저의 강점이 뭐냐고 묻자 ‘성격 좋은 거’라고 하시더군요.” 한국 대표로 나가 48개국에서 온 각국 모델들과 지낸 합숙 기간. 말이 안 통해 의기소침했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겠냐 싶었다.1주일을 즐기다 가자고 결심하고 ‘이명박식 실용영어’를 사용해 하나둘씩 친구를 만들어 갔다.“다음에 오는 한국인 또는 동양인 모델이 있을지 모르는데 소심한 인상을 주면 안 되겠다 했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포드측에서 예쁘게 봤나봐요.”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쇼를 시작으로 마크 제이콥스,YNK, 필립 림 등 뉴욕에서 12번의 쇼를 소화,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뉴욕에 이어 파리, 밀라노도 밟고 싶은 욕심이다.“어떤 무대에 서도 떨지 않을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녀는 “언젠가는 존 갈리아노(크리스찬 디오르의 디자이너)의 무대에 서고 싶다.”며 야무진 표정을 지었다.178㎝,50㎏. 어려서부터 키가 커서 모델 되라는 말을 숱하게 듣고 자란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컬렉션을 통해 데뷔했다. 그래서 때마침 열리고 있는 서울컬렉션 소식에 마음이 설다. 체류 기간이 짧아 더 많은 쇼를 하지 못해 아쉬워한 그녀는 지난 19일 서은길 컬렉션 무대에 올라 더욱 당당한 워킹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튿날 강승현은 베네통 화보 촬영이 기다리고 있는 뉴욕을 향해 예정보다 빨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eoul.co.kr
  • [Zoom in 서울] ‘찰칵’ 찍은 것은 우리의 삶

    [Zoom in 서울] ‘찰칵’ 찍은 것은 우리의 삶

    스틸사진으로도 ‘쿨’한 기록영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믿는 40대 영화학도. 도시의 퇴락한 음지만을 촬영해 온 30대 웹디자이너.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는 댄디 스타일의 20대 대학원생…. 지난 20일 다양한 기종의 카메라로 ‘무장’하고 종로 세운상가로 모여든 일군의 남녀들에게선 이색 풍광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주말 출사족(出寫族)의 여유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묵직한 카메라 가방을 비껴매고 피사체를 향해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는 이들의 몸짓에선 숙연한 경외감마저 감지됐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촬영하는 대상이 오감을 압도하는 대자연의 숭고미도, 첨단 공학기술의 총아인 대도시의 마천루도 아니라는 점이다. 렌즈에 포착된 이미지 대부분은 수명을 다한 도심의 낡은 건축물이거나 재개발로 사라질 빈민가 골목길 등 ‘비루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대도시의 단면들이다. 이들이 세운상가를 찾은 것은 올해 도심재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에 들어가는 건물 구석구석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지난 2006년부터 도시경관 기록보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 ‘문화우리’가 자원봉사자들로 팀을 꾸려 진행하는 사업이다. 세운상가 기록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최미영씨는 “세운상가가 갖고 있는 기억을 이대로 흩어 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증거를 상실하는 것과 같다.”면서 “세운상가의 장소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도시경관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출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스무명 남짓. 장사동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았다는 ‘세운상가 키드’ 전윤안(40)씨는 세운상가를 ‘거친 동네’로 기억한다. 친구들과 옥상정원에서 축구를 하다 관리인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른 일이며, 춘화집을 사기 위해 3층 보행데크에서 암거래상과 ‘접선’하던 고교생 시절의 추억이 건물 곳곳에 고스란히 인각돼 있다. 그는 “유년과 청소년기의 추억이 담긴 이곳이 철거된다니 개인사의 한 단락이 지워지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이혜리(33)씨는 철거가 예정된 서울 시내 시민아파트를 주로 찍어온 출사 경력 10년의 베테랑이다. 이씨는 “언제부턴가 새것보다 옛것, 반듯한 것보다 구불구불하고 볼품 없어 보이는 것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면서 “도시공간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재개발 예정지의 일부라도 남기는 것은 어떻겠냐.”고 반문했다. ●도시의 속살을 샅샅이 드러내다 경관기록 보존사업의 특징은 철저하게 아마추어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작품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기에 출중한 촬영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간과 금전적 여유도 중요치 않다. 첨단의 광학기술이 디지털 기억장치를 만나 탄생한 DSLR 카메라가 현상과 인화에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을 혁명적으로 단축시켜준 덕분이다. 다만 도시의 감춰진 속살을 낱낱이 포착해 기록하는 일인 만큼 고고학자의 집요함과 탐정의 호기심은 필수 덕목이다. 풍경에 말을 걸고 렌즈로 교감하는 능력은 그 다음이다. 21세기의 시공간을 출발해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 이들의 시간여행은 이날 오후 6시 동국대 학생회관 앞에서 마무리됐다. 3시간에 가까운 ‘장정’임에도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용어클릭 ●도시경관 기록보존 운동 도시 재개발로 사라지게 될 지역의 모습과 일상을 주민들과 함께 기록하여 지역의 공동유산으로 보존하고 공유하는 운동. 개발사업이 간과하기 쉬운 생활사와 지역공간의 공공적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서울에서는 문화우리가 아현동과 교남동 등 뉴타운 개발로 철거될 달동네 4곳에 대해 이미지 아카이브(기록 보관소) 작업을 마친 상태다. 지난 2005년 인천시가 달동네의 공간특성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재현해 지역 문화유산으로 활용하고 있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도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 “나를 찾아 나선길 모두가 하나더라”

    “나를 찾아 나선길 모두가 하나더라”

    |글 사진 닝보·항저우·쑤저우 김성호 특파원|화두를 들고 참구해 깨달음을 얻는 간화선(看話禪) 수행은 한국불교 수행의 핵심.1700년간 한국불교가 매달려 이어온 큰 명제였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중국 간화선의 원류를 찾는 행사를 지난 10∼13일 마련, 기자가 동행했다. 간화선 수행법을 창시한 중국 대혜종고(1089∼1163)와 고봉원묘(1238∼1295) 선사의 흔적을 더듬어 사자후를 되새기는 순례길.108명의 스님·신도는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와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일대의 사찰들을 3박4일간 바쁘게 돌았다. 고우(경북 봉화 금봉암 주석) 스님과 무비(부산 범어사 승가대학장) 스님이 이끄는 순례내내 한국의 스님·신도는 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깨달음 자리를 조금이나마 더 알기 위해 쉴 틈없이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대혜선사가 노년 보낸 저장성 아육왕사 순례단이 찾은 첫 탐방지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서 버스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아육왕사(阿育王寺).1600여년 전인 중국 동진시대에 창건되어 선종 5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사찰이다. 북송 말 남송 초의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대혜선사가 귀양살이를 한 뒤 67세부터 3년간 주지를 했던 곳. 금(金)과의 싸움을 놓고 주화파와 주전파로 갈린 당쟁에 휘말려 15년간 귀양살이 끝에 이곳에 주지로 부임해 간화선을 널리 폈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 서니 전란에 휩싸인 백성들이 유랑걸식으로 연명하던 때 선(禪)의 진작을 통해 피폐한 시대정신을 일깨우려 했던 선사의 정신이 되살아난다. 당시 스님을 찾아와 도를 배운 사람이 1만 2000여명이나 됐다고 하니 선사의 명성이 어땠는지 짐작케 한다. 대혜 선사가 노년을 마무리한 사찰이지만 선사의 자취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역대 주지들의 얼굴을 석판에 새긴 개산당(開山堂)에서 선사의 초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성냥알 크기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고 나올 무렵 누군가가 대혜스님의 임종게를 읊는다.“사는 것도 다만 이러하고(生也只任麻)/죽는 것도 다만 이러하네(死也只任麻)/게가 있고 없고(有偈與無偈)/그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是甚麻熟大). “세간의 번뇌는 활활 타는 불과 같으니 그 불길이 어느 때나 멈추겠는가. 시끄러운 곳에 있어도 대나무 의자와 방석 위에 앉아 공부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본래의 청정한 참나(眞我)를 찾기 위한 공부법에 시간과 공간이 다를 수 있을까. 아육왕사를 나와, 대혜선사가 한 사대부에게 썼다는 편지글을 떠올리며 버스에 몸을 맡긴 지 20여분, 천동사(天童寺)라 쓴 편액이 눈에 든다. 서기 300년에 창건되어 한창 번성할 때 999칸이나 되었던 승방 중 지금은 730개가 남아 있다. 공양간 옆에 1000명분의 밥을 짓던 거대한 무쇠솥 ‘천승과(千僧鍋)’가 당시의 규모를 전한다. 면벽좌선을 통해 내면을 관조하는 묵조선 수행을 지키는 조동종의 본산. 당대 대혜종고와 함께 선종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굉지정각(1091∼1157) 선사가 주석하며 법을 편 곳이다. 대혜선사가 자신의 간화선과 대척점에 있었던 묵조선을 비판했다는 사실과는 다른 일화를 고우 스님이 들려 준다.“대혜종고는 묵조선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고요함과 물러남만을 강조하는 그릇된 선, 즉 묵조의 죽은 선을 비판한 것입니다. 굉지선사가 열반할 때 대혜선사에게 뒷일을 부탁할 정도로 두 분은 사이좋게 지냈지요.” ●고봉선사 15년간 수행한 항저우 천목산 ‘간화선의 기본 교과서’로 통하는 ‘선요’(禪要)의 저자 고봉원묘 선사 흔적 찾기는 둘째날 중국 5대 불산(佛山) 중 하나인 항저우 천목산에서 시작됐다. 몽골이 남송을 패망시켜 원(元)나라를 세우자 고봉 스님은 저장성에서 가장 높은 이곳을 택해 30년간 수행했다. 일행이 작은 버스에 나눠 타고 해발 1500m 고지의 천목산 정상에 오르니 고봉선사가 머물던 작은 암자 ‘개산노전(開山老殿)’이 우뚝 서 있다. 고봉 스님의 가사와 발우 유물을 보고는 1000년 전에 만들어진 돌계단 ‘천년고도(千年古道)’를 따라 내리니 고봉 선사의 구도여정이 좌악 펼쳐진다. 첩첩산중 까마득한 절벽을 앞에 둔 ‘사관’(Death Pass)은 열반 때까지 15년간 수행을 하던 곳.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바위굴인 사관에서 고봉 선사는 나와 남의 세상을 가르고 경계짓던 무명을 떨친 채 깨달음의 정점에 섰다. 사관 바로 옆 사자암(獅子庵)은 산에 들어와 처음 거처로 삼은 곳. 고봉 스님이 처음 들 무렵 길조차 없어 줄을 타고 오르내릴 만큼 험한 구도처였지만 지금은 번듯하게 세워진 정자가 편안하게 등산객들을 품는다.‘밥 먹는 시간을 빼곤 자리에 앉지 않고 오로지 걸어 다니면서 화두를 참구한 행선(行禪) 수행자, 고봉. 한밤중 도반이 떨어트린 목침소리를 듣고 단박에 활연대오했다는 선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너도나도 정좌 대혜스님을 만나다 항저우 서호에서 버스로 2시간가량 구불구불 길을 타고 산 중턱에 오르니 대혜 선사가 머물며 ‘서장’속 서신을 쓰고 입적한 경산사가 일행을 맞는다. 대혜 선사가 주지를 맡을 당시 2000여명의 스님이 설법을 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주 초라한 규모. 대혜 스님을 볼 만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섭섭해하던 중 대혜 선사가 참선했다는 선불장(選佛場)이란 편액을 단 선방이 눈에 띈다. 일행이 너도 나도 중국 스님들이 자리를 비운 자리를 하나씩 차지한 채 눈을 감고 정좌하는 모습. 대혜 스님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혜 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절이자 고봉 스님이 “3년 내에 깨우치지 못하면 죽겠다.”고 결심해 찾아든 절인 서호(西湖) 주변의 정자사와 영은사를 거쳐 3박4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회향 법회가 열린 장쑤성 쑤저우 인근의 천령사. 대혜 선사와 고봉 선사가 모두 몸을 담아 공부한 인연이 얽힌 사찰의 대웅보전에서 고우 스님이 법문을 이었다.“대혜·고봉 선사의 흔적을 따라 진리의 길을 찾아온 구도의 여정은 멀고 험했지만 우리는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안을 향한 부처의 행복은 밖에서 찾으려는 세속의 행복과는 달리 매일 매일이 행복할 수 있지요.” “잠이 깊이 들어 꿈도 생각도 없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때에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 고봉 스님이 스승으로부터 화두를 받을 때 던졌다는 의심의 사자후. 순례단은 순례를 통해 벽력 같은 이 사자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kimus@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11) 어살과 물고기 잡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11) 어살과 물고기 잡기

    어살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한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어살에는 하고 많은 사연이 있었다. 땅이 땅을 경작하는 농민의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땅이 농민의 소유가 된 적은 유사 이래 드물었듯이, 어살이 물고기를 직접 잡는 어민의 것이었던 적 역시 드물었다. 김홍도의 그림 ‘어살’이다. 바다에 말장을 빽빽이 쳐서 길게 담을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말장을 빽빽이 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어살 혹은 어전(漁箭)이라 한다. 또 말장과 말장 사이에 그물을 치면 ‘말장그물’이라 한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작살, 낚시, 통발, 그물 등 여럿이다. 어살은 그 중 하나인 것이다. 지금 어살 안에는 사내 둘이 다리를 걷고 광주리와 채반 같은 것에 물고기를 담아 건네고 있다. 이 그림에는 배가 세 척이 있는데, 맨 아래쪽의 배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살 바로 바깥에 있는 배 두 척은 하는 일이 분명하다. 그 중 위의 배는 어전 안에서 건네 주는 물고기를 막 받고 있는데, 배에 독이 둘이 실린 것으로 보아, 거기에 아마 담을 모양이다. 아래쪽 배의 맨 왼쪽에 서 있는 사내는 왼손에 큼지막한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있다. 방금 어살에서 받은 것일 터이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역시 독이 둘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오른쪽이다. 배 가운데에 솥과 그릇이 있다. 솥이 얹혀 있는 곳은 흡사 부뚜막 같이 생겼는데, 도대체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요즘도 고기잡이 배는 바다로 나가면 배에서 밥을 해 먹으니, 비록 작은 배지만 역시 밥을 해 먹고 있는 것인가. ●가난한 백성이 먹고 살 길 열어주려 만든 어살 생선은 강과 호수, 그리고 바다에서 생산된다. 물론 대부분은 바다에서 난 것이라, 어업이라 하면 바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한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조선조에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어업이 대세는 아니었다. 문헌을 보면 어업의 주요한 수단은 어살이었다. 어살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한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어살에는 하고 많은 사연이 있었다. 땅이 땅을 경작하는 농민의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땅이 농민의 소유가 된 적은 유사 이래 드물었듯이, 어살이 물고기를 직접 잡는 어민의 것이었던 적 역시 드물었다. 이 사정을 좀 살펴 보자.‘경국대전’의 호전 어염(魚鹽)조에 다음과 같은 법적 규정이 있다. “여러 도의 어살과 염분(鹽盆, 소금 굽는 가마)은 등급을 나누어 장부를 만들어서 호조와 각 도, 각 고을에 보관한다. 장부에 누락시킨 자는 장(杖) 80대에 처하고 그 이득은 관에서 몰수한다.(어전을 사사로이 점유한 자도 같다) 어전은 가난한 백성에게 주되 3년이 되면 교체한다.” 어전, 그리고 소금을 굽는 염분은 각각 그 사이즈에 따라 모두 국가에 등록하고, 그 등록 문서는 호조와 각 도, 각 고을에 비치해 두며, 만약 누락한 자가 있을 경우 곤장을 친다는 것이다. 곧 어살은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었고, 특히 개인적 점유를 금했던 것이다. 여기에 ‘어살은 가난한 백성에게 주되 3년이 되면 교체한다.’는 조항 역시 주목할 만한 것이다. 곧 재산이 없는 빈민에게 무상으로 주고 다시 3년이 지나면 교체한다는 것이었으니, 원래 어살은 가난한 백성이 먹고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던 셈이다. ●괜찮은 어살은 한번에 잡히는 생선이 무명 500필 정도 수입 어전은 꽤나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수입의 정도를 살펴 보자. 세종 22년 3월 23일 좌참찬 하연은 괜찮은 어살은 한 번에 잡히는 생선이 무명 500필 정도의 수입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권력자나 부자의 입장에서는 이 엄청난 수입이 가난뱅이들의 차지가 되는 것은 보기에 너무나 억울하다. 그래서 어살의 개인적 독점을 금한 법령은 무시되고 어살을 일부 소수 특권층이 다투어 차지하게 된다. 성종 1년 2월 23일 호조판서 구치관이 와서 어전의 문제를 아뢴다. “어살은 본래 관청과 백성에게 주어서 진상에 대비하게 하고, 또 먹고 사는 방도로 삼게 했는데, 지금 종친과 권세가에서 제멋대로 만들어서 관청과 백성의 이익을 빼앗고 있습니다. 원래 법을 제정한 뜻에 어긋납니다. 청컨대 금지하소서.” 이 건의는 수용되지만 이후 특권층이 어살을 독차지하는 문제는 영조 때까지 계속된다. 연산군 때부터 수입이 좋은 어살을 왕은 자기가 총애하는 후궁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고, 연산군을 쫓아내고 새로 왕이 된 중종도 “왕자들이 자기 몫으로 토지를 받지 않았기에 대신 어살을 주었을 뿐”(‘중종실록’ 36년 2월 20일)이라면서 왕자들에게 어살을 하사하였고,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국가와 가난한 백성들의 소유여야 할 어살을 가장 많이 차지한 곳은 이처럼 왕자나 공주의 집안, 곧 궁방이었다. 왕들은 자기 자식이 자라서 궁 밖으로 나가 딴 살림을 차리게 되면 토지와 어살을 내려 주었던 것이다. 어떤 왕이든 예외가 없었다.‘효종실록’ 6년 11월 25일 전라감사 정지화의 보고에 의하면, 전라도 부안현 소재 20곳의 어살은, 궁가 점유가 11곳, 성균관 소유가 8곳이었고, 부안현 소유는 1곳이었던 바, 그 1곳마저도 숙경공주 집에 빼앗겼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백성의 몫은 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양심적 관료들이 궁방의 어살 독점을 문제 삼고, 백성들을 위해 어살을 궁방에서 되찾아 다시 국가가 관리하고 백성에게 어업권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현종실록’의 사관은 어살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살펴 보건대, 우리 백성을 피폐하게 만들어 조석도 보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폐단은, 오래 전부터 쌓이고 쌓여 전례가 된 것들로서, 위사람 아랫사람이 모두 그냥 따라 할 뿐, 고칠 수가 없게 된 데서 근거를 두고 있다. 삼사의 관원들이 해를 넘기면서까지 굳게 다투고 입이 닳도록 말을 해서 겨우 허락을 받은 것을, 정부에서는 늘 여기로 저기로 돌리며 긴 세월 방치해 두면서, 위로는 임금의 명을 팽개치고 아래로는 여론을 막는 것을 상책으로 여긴다. 시장(柴場), 염분(鹽盆)·어살을 혁파하는 일은 모두 임금의 윤허를 받았지만, 끝내 실효가 없다. 이른바 소결청(疏決廳)과 공안(貢案)을 고치는 일도 윤허 받은 뒤 역시 모조리 폐기하였다. 대신들이 나랏일을 처리하는 데 불충하고 왕명을 어기는 데 거리낌이 없으니, 정말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현종실록’ 5년 11월 1일). 수많은 개혁책이 강구되었지만, 소수의 양심적 관료의 소리였을 뿐, 조정의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은 오불관언이었던 것이다. ●영조때 균역법으로 궁방의 어살 독점 없애 궁방의 어살 독점은 영조 때에 와서 만든 균역법으로 혁파되었다. 균역법은 양역을 해결하고자 만든 법이다. 양역은 양민에게 물리는 군포를 말한다. 이 군포의 징수가 엄청나게 가혹했다.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내라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 군포를 물리는 황구첨정, 동네나 친족에게 연대 책임을 지워 군포를 징수하는 동징, 족징까지 있었으니 군포야말로 백성을 병들게 하는 악정 중의 악정이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영조는 양역으로 내는 군포를 1필로 줄이고, 모자라는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세원을 찾았던 바, 그 세원의 하나가 곧 어전과 염분(소금을 졸이는 가마) 등 바다에서 생산되는 물자였던 것이다. 영조는 모든 궁가의 어살을 몰수하여 균역청에 소속시키고, 백성들이 어살에서 올리는 수입의 일부를 균역청의 몫으로 삼았다. 수백 년 동안 제기되었던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하는 획기적인 조처였다. 영조 28년 1월 13일 병조판서 홍계희는 이 조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 궁가에서 떼어 받아 독차지한 어살과 소속된 배에 대해 모두 개혁책을 펼쳐 일체 세금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진실로 백성을 위해 폐단을 제거할 수 있다면 내(영조 자신)가 내 어찌 내 몸의 거죽과 털인들 아끼겠는가?´라고 하교하시기까지 하였으니, 이는 정말 천고 이래 없었던 거룩한 일인 것입니다.” 영조의 균역법을 칭송하고 있으니, 그나마 영조는 개혁의지가 있었던 왕이었던 것이다. 균역법 이후 어살을 둘러싸고 작은 소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살이 다시 궁방의 차지가 되지는 않았다. 김홍도는 정조 때 사람이다. 그림 속 어민들의 표정이 밝아 보이는 것은 영조 때 이루어졌던 개혁 때문인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변산공동체학교-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윤구병, 김미선 지음

    ‘변산공동체학교-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윤구병, 김미선 지음

    학교 하면 으레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모여든 아이들이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수업을 듣다가 오후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곳. 하지만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학교 아이들은 다르다. 오전에는 학과 공부를 듣지만, 오후에는 텃밭 가꾸기, 천연 염색하기, 발효 식품 만들기, 그릇 빚기 등 일상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익혀나간다. ‘변산공동체학교-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윤구병, 김미선 지음, 보리 펴냄)은 1996년 농사꾼이 되고 싶어 충북대 교수직(철학과)을 버리고 변산에서 공동체를 꾸린 윤구병씨가 10여년 전부터 실험해온 대안학교 ‘변산공동체학교’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동저자 김미선씨와 함께 쓴 이 책에는 ‘교육의 궁극 목표는 스스로 앞가림하는 힘, 함께 어울려 사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는 윤씨의 교육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변산공동체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무엇보다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중학교·고등학교 등 해당과정을 끝낸 뒤 검정고시를 볼 각오를 해야한다. 또한 수업료나 후원금을 받는 다른 대안학교와 달리 구성원들이 농사일을 직접 도우며 교육을 받는 만큼 학생들이 수업료를 내지도 교사가 후원금을 받지도 않는다. 윤씨는 1부 ‘왜 대안 교육인가’에서 요즘 교육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공부’란 명목 아래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안교육은 한가한 실험이 아니라 인류사회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라며 어른들 손에 빼앗긴 시간, 경쟁하느라 잃어버린 동무들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2부 ‘놀다 죽자!’는 김미선 씨가 만난 변산공동체학교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변산공동체학교를 거쳐간 아이들은 스무명 남짓. 김씨는 현재 학교를 다니거나 졸업을 하고 떠난 이들 학생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 등 변산공동체학교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까지 찾아가 인터뷰했다. 자식 넷을 모두 변산공동체학교에 보낸 박형진씨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부모 노릇은 뭐든 잘하는 ‘만능 선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같이 해보자.’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학교의 부모들은 자신의 삶으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이처럼 변산공동체학교의 교육은 산과 들, 갯벌과 바다, 그리고 부모가 함께 교사가 돼 자연스럽게 가르침을 안겨주는 교육이다. 마지막 부록 ‘마주이야기’는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황윤옥씨가 윤씨와 나눈 방담의 기록. 이들의 진솔한 대화는 현대의 제도권 학교가 놓치고 있는 ‘삶터가 곧 일터이자 배움터’라는 꿈을 변산공동체학교가 어떻게 키워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1만 1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2) 한마음선원 국제문화원 청고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2) 한마음선원 국제문화원 청고 스님

    경기도 안양시 조계종 한마음선원(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01의62)에는 속된 말로 ‘스타 스님´이라 불리는 스님이 두 명 있다. 이 선원을 일군 선원장인 비구니 대행 스님과, 대행 스님의 법문 한 마디에 출가의 원을 세워 한국을 택한 푸른 눈의 불제자 청고(40·미국) 스님. 대행 스님이 신자들의 신행을 이끌고 법을 전하는 스승이라면, 청고 스님은 외국 출신의 출가승들과 외국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제대로 알리는 소임을 실천하는 길잡이 수행자랄 수 있다. 명쾌한 삶의 진리를 찾아 방황하던 갈등과 회의 끝,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무명을 밝혀준 한국 불교에 심취한 청고 스님. 그는 “출가승에게 속가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끝내 미국 이름 밝히기를 마다하는 한국인이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다.´는 대오의 일갈은 아니더라도 청고 스님이 줄곧 천착해온 화두는 “이미 내 안에 불성을 갖추고 있는데 왜 굳이 밖에서 깨달음을 얻는가.”라는 안으로부터의 불성과 참나(眞我) 찾기의 싸움이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부처님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경계를 허문 일심과 동체의 불이(不二). 모든 이들이 이미 다 깨달음을 갖고 태어난 청정 중생인데 왜 흔들리며 살아가는가. 한낱 가짜요 거짓인 아상(我相)을 내려놓는 진면목의 회복, 그것이 바로 불법의 진수가 아닐까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부처님 법계의 심부름꾼일 뿐”이라는 심상치 않은 말로 한마음선원에서 기자를 맞은 청고 스님은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의 소유자였다. 맞는 것은 맞고, 아닌 것은 아닌, 명쾌한 소신을 가진 푸른 눈의 출가승.188㎝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천진하리만큼 맑은 동자승의 얼굴을 한 이 이방인은 ‘공심’(共心), ‘공생’(共生), ‘공체’(共體)의 큰 화두를 거듭 입에 올렸다. “삶은 끊임없는 참구의 진행”이라는 미국 출신의 스님. 그는 어떤 고뇌와 회의에 시달렸기에 한국 비구니의 한 마디 법문에 그토록 속세의 모든 것을 미련없이 놓아버렸을까. ●대학시절, 한국인 스님 초청법회서 대행스님의 법문 듣고 발심 미국 오리건주 로키산맥 서쪽, 주민 500명의 사막 지역 작은 마을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청고는 어릴 적부터 세상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 세상과 소통할 유일한 방법은 책. 스님 스스로 ‘엄청난 독서광’이라고 말하듯 동네의 책이란 책은 거의 다 보았지만 ‘세상엔 무언가 또 다른 것이 있다.´는 지적 허기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일찍부터 종교적 성향이 남달랐던 것 같다. 여전히 ‘또 다른 어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던 12살 때,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서 본 일본 교토의 선방 사진이 불교와는 첫 만남이다. 왠지 모를 묘한 감정에 빠져들던 중 세계의 종교를 소개한 한 책자 속 아쇼카왕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남의 믿음과 종교를 욕하고 폭행하면 나의 믿음과 종교를 욕하고 폭행하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위인전의 인물들처럼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한 길을 주변의 여러 종교인들에게 물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어요. 신앙과 이기심에 치우친 공허한 말뿐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아쇼카왕의 말에 담긴 포용성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지요.” 고교 1학년 때 영문학을 가르치던 교사가 전해준 ‘선(禪) 수행’ 책 두 권이 불교에 깊숙이 빠져든 계기. 보이스카우트의 고된 산악활동을 하면서 힘들수록 마음속 갈등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는데 ‘선 수행’ 책을 탐독하면서 비슷하게 내 안에 숨었던 욕심과 갈등이 빠르게 소멸하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워싱턴주립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해서도 불교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갔다. 학과 공부보다 ‘묘법연화경’(법화경)을 즐겨 읽었다고 하니 불교에 대한 그의 관심과 쏠림이 어떠했는지가 읽힌다. 불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의 영원한 생을 설한 최고의 불경이라는 법화경. 이 법화경을 탐독하던 공학도가 심리학과로 전공을 바꾼 것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갈등과 방황은 계속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600㎞나 떨어진 뉴욕 주의 선방을 다니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어느날 우연히 대학신문을 통해 한국인 스님 초청법회 소식을 접하곤 대학 근처의 절을 찾아 대행 스님을 만난 것이 인생의 길을 확 바꾸어놓았다. 익숙해 있었던 권위적인 일본 선사들의 모습과는 달리 격식을 차리지 않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한국 비구니의 법문에 머리가 확 트였다. 일본인 선사들의 법회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네 안에 불성이 있다. 그러니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본래의 청정한 불성을 깨닫기 위해 도전하라.” 그토록 답을 얻기 위해 헤맸던 의문의 핵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숱한 남의 말과 책, 대학 박사공부를 통해서도 깨칠 수 없었던 ‘그 무엇’은 바로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발심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교 근처 사찰 주지로부터 소개받은 혜거 스님을 은사로 충북 광명선원에서 전격 출가한 게 1993년 7월.2년여에 걸친 행자 생활은 오랜 방황 끝에 불제자의 길을 찾은 그에게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무뚝뚝하기만 한 사형, 도반들. 몸에 설기만 한 절집 생활이 참기 힘들었지만 묵묵히 길을 몸으로 보여주는 도반 행자들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평소 가장 무섭게 자신을 대했던 사형이 남 모르게 불러내 딸기 잼과 빵을 소리 없이 쥐어주는 모습에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 ●불교 유명저서 번역 등 한국불교 알리기 힘써 “비구계를 받으려면 동국대 선학과 공부를 하라.”는 주변 스님들의 말을 따라 동국대 석사과정을 하던 중 비구계를 받고 한마음선원에서 국제문화원과 출판사 일을 하기 시작한 게 1999년. 그때부터 국내외 외국인 신도들과 한국에 들어온 푸른 눈의 출가승을 위한 길라잡이로 살고 있다. “한국불교는 선불교의 오랜 수행전통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지만 외국인들에게 장점과 진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알리는 데 아주 인색합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불교의 유명 저서들을 번역해 책으로 펴내고 웹사이트에 한국 선방의 예절이며 규율을 새록새록 올려놓는 일이었다. 외국인들이 자신에 맞는 불교서적을 사 볼 수 있는 정보도 인터넷을 통해 꼼꼼히 소개한다. 오래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한 때문인지 전화와 메일을 통해 한국불교를 물어오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직접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요즘은 대행 스님 법문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 고승들의 법문을 번역하는 일에 특별히 신경쓰고 있다. 동국대 선학과 졸업석사학위 논문도 다름아닌 ‘한암선사 서간문 연구’. “한국불교의 맥과 수행정신을 알기에 가장 좋은 텍스트”란다. 지난 6일부터 안국역 옆 서울영어불교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외국인 스님들 대상의 불교 기초교리와 수행법 강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큰 일. 도반 청아 스님과 뜻을 맞춰 마련한 10주 코스의 특별 강의이다. 내 안의 불성을 깨치고 찾기 위한 길이라면 수행에 좀 더 치중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는 물음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모든 것이 수행의 재료”라는 말을 돌려준다.“어떤 일을 하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자리에서 언제까지든 내 안의 부처님 자성인 불성과 분별심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안양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청고 스님은 ●1968년 미국 오리건주 로키산맥 서쪽 사막지역 출생. ●1991년 워싱턴주립대 졸업. ●1992년 한마음선원장 대행 스님 법문에 발심. ●1993년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산업심리학 박사과정 수료, 충북 광명선원에서 출가, 행자 생활. ●1997년 동국대 선학과(석사과정) 입학. ●1998년 비구계 수지. ●1999년 안양 한마음선원에서 외국인 대상 포교활동 시작. ●2002년 동국대 선학과 졸업. ●현재 한마음선원 산하 국제문화원 및 출판사에서 번역작업과 외국인 대상 포교 활동중.
  • [주말탐방]군대식 전투축구? 편견을 버려!

    [주말탐방]군대식 전투축구? 편견을 버려!

    ‘1%의 나약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국군체육부대(상무)의 모토에선 숨막히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언뜻 금녀(禁女)의 구역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375명의 상무 전사들이 모두 구릿빛 피부에 파르라니 짧은 머리,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끓어넘치는 남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찌감치 여자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사격, 태권도는 물론 지난해 부산 상무 축구팀이 창단되면서 모두 27명의 여전사들이 이곳에서 비지땀을 쏟고 있는 것. 경남 마산과 전남 순천에서 긴 동계훈련을 마치고 갓 복귀신고를 한 부산 상무 여자축구단의 뜨거운 훈련 현장을 살짝 들여다봤다. 3일 오전 성남시 창곡동 국군체육부대 보조축구장에 선수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냈다. 따뜻한 남쪽에서 ‘빡센’ 전지훈련을 마치고 온 탓인지 선수들의 몸은 다소 무거워보였다. 하지만 웬걸,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하자 20대 초반의 또래들처럼 쉴 새 없이 ‘까르르’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조잘조잘 수다를 떨던 선수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수철 감독과 이미연 코치가 나타나자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집합, 영락없는 군인의 모습이다.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선수들은 이내 1m 간격으로 표지를 세워놓고 2인 1조로 엇갈리며 부지런히 잰걸음으로 뛰어다녔다. 잠시 쉴 틈도 없이 패스를 주고받는 훈련이 계속됐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내 이마에선 땀이 송글송글 배어나왔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났다. 잠시 뒤 휴식시간.‘헉∼헉∼’ 가쁜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앙수비수 신귀영(25) 하사 옆으로 다가갔다. 경포여중 1학년 때부터 축구공을 찬 신 하사는 부산 상무에서 ‘제 2의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강일여고를 졸업하고 실업팀 대교와 서울시청에서 뛰던 신 하사는 1년여 전만 해도 축구화를 벗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축구를 좋아했고 소속팀과 재계약도 했지만, 출전시간이 워낙 적은 데다 새로 온 감독과 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 때마침 부산 상무의 창단 소식이 들렸고, 소속팀 감독도 상무행을 권유했다. 평범한 여자 축구선수가 군인으로, 그것도 부사관으로 변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논산훈련소에서 평생 해 본 적 없는 유격훈련을 할 때나 부사관학교에서 정신교육과 공부를 하면서 보낸 14주는 정말 끔찍했어요. 오로지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간신히 참아냈죠. 다시 하라면 죽어도 못 할 걸요.”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신 하사는 “덕분에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어요. 또 이렇게 힘든 일도 버텨냈는데 앞으로 무슨 일은 못하겠느냐는 자신감도 얻었고요.”라며 이내 생글생글 웃었다. 새 둥지에서 축구화를 질끈 동여맨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주장 신 하사를 비롯, 동료들의 실력도 부쩍 늘었다.“여기 있는 친구들은 아픔을 가슴 한 쪽에 묻어두고 있어요. 대부분 전 팀에서 주인공은 아니었거든요. 저도 전에는 시합 때 공을 잡으면 허둥댔어요. 하지만 이젠 시야도 넓어지고 축구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부산 상무 축구단이 창단된 것은 지난해 3월. 실업팀 4개로 근근이 운영되던 국내 여자축구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군(軍)이 소매를 걷어붙였지만 선수 수급이 쉽지 않았다. 테스트로 선수를 선발하고, 기존 4개 실업팀으로부터 선수 지원을 받았지만 이른바 ‘A급’은 없었다. 대학무대의 거미손으로 통했던 골키퍼 이청정(22)과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미드필더 반영경(23)과 수비수 신귀영을 제외하면 무명에 가까웠다. 알짜배기 선수들을 내놓지 않으려는 실업팀들의 이해관계 탓에 태생적으로 ‘외인구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논산훈련소(5주)와 부사관학교(9주)에서 14주 군사교육을 마치고 하사로 임관한 이들이 지난해 7월 국군체육부대로 전입하면서 비로소 팀의 구색을 갖췄다. 하지만 제대로 엔트리조차 꾸리기 힘들어 서울시청과 첫 연습경기에서 0-7로 졌다. 지난해 9월 첫 출전한 공식대회인 추계여자축구연맹전에서 3전전패.10월 전국체전에서도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6강에서 탈락해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들은 첫 승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수철 감독은 “꾸준히 선수 수급이 이뤄지고 제대로 조련한다면 3년 정도 후에는 아무도 우릴 만만하게 보지 못할 겁니다. 해마다 재계약에 실패할까 전전긍긍하던 선수들이 3년동안 부사관 신분이 보장되면서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장기 복무가 가능하다는 것도 선수들에게는 큰 메리트죠.”라고 말했다. 부산 상무 축구단을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악으로, 깡으로 몸을 날리는 ‘군대(?)식 전투축구’ 수준으로 생각하면 큰 코 닥칠 일. 비록 실전은 아니지만 남자 선수들 못지 않은 강력한 태클을 서슴지 않았고,2㎞의 남한산성 크로스컨트리로 단련된 강철 심장을 뽐내면서도 섬세한 패스워크와 조직적인 전술로 무장한 ‘아트사커’를 꿈꾼다. 정식 경기가 아닌 훈련에서도 ‘불사조군단’ 상무의 트레이드 마크인 끈끈한 조직력과 정신력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들은 오는 5월 말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점검해 볼 계획이다. 국군체육부대 박상한 공보관은 “부산 상무 선수들 한 명, 한 명은 부사관 교육을 통해 분대장의 리더십과 희생정신, 책임감을 몸과 머리로 익혔다. 평생 기계적으로 운동만 한 선수들보다 조직력과 정신력에 관한한 나으면 낫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군대식 체력훈련으로 단련된 근육과 축구선수가 필요로 하는 근육이 다소 달라 초기에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고 박 공보관은 귀띔했다. 영외 거주지인 성남시 복정동 숙소에서 오전 6시10분에 출발, 부대에서 아침점호를 받고 오전·오후 훈련을 모두 마친 이들은 오후 7시쯤 파김치가 돼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 한 쪽에는 남자축구팀인 광주 상무의 버스와 부산 상무의 버스가 사이좋게 서 있었다. 이동국(미들즈브러)이나 정경호(전북 현대)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뛰었던 광주 상무의 버스에는 ‘오빠∼ 사랑해’ 같은 소녀팬들의 낙서가 가득했다. 물론 부산 상무의 버스는 깨끗했다. 여자축구의 인기가 남자에 비할 바가 아닌 데다 아직까지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인 까닭. 그렇다고 해서 버스에 올라타는 부산 상무 여전사들의 어깨마저 움츠러든 것은 아니다.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작은 행복과 언젠가는 그녀들의 버스도 열혈팬의 낙서로 도배될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은 아닐까.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상무 여자선수들 이것이 궁금해 ▶상무 여자 선수들은 몇 년 동안 복무하나요? -모든 여자선수들은 부사관 신분입니다. 부사관이 되기 위해 논산훈련소(5주)와 부사관학교(9주)에서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하사로 임관한 뒤 3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하죠. 장기복무를 원할 땐 의무복무가 끝나기 전에 육군본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병 신분인 남자 선수들이 여자 선수들에게 거수 경례를 하나요?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사회인 만큼 원칙적으로 사병 남자 선수들이 상급자인 여자 선수들에게 거수경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산 상무 선수들은 임관한 지 1년도 안 됐고, 간부보다는 선수의 개념이 강해 실제로는 서로 존칭을 붙인다고 하네요. 물론 남자 선수들도 중사 이상 여 선수들에게는 확실하게 거수경례를 붙인답니다. ▶여자 선수들은 어디에서 생활하나요? -사격과 태권도 선수들은 부대 내 독신간부 숙소인 ‘화랑의 집’에서 잡니다. 하지만 부산 상무 선수들은 성남시 복정동에 4층짜리 빌라 한 동을 빌려 생활합니다. 이곳에는 식당과 체력단련실, 치료실까지 마련돼 있죠. 또 최근 ‘화랑의 집’ 1층에 부산 상무 선수들이 쉴 수 있도록 간이 침상이 갖춰진 휴게실이 만들어졌답니다. ▶주말에는 어떻게 하나요? -시즌 중에는 대회와 훈련이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에도 주말에도 쉴 수 없습니다. 다만 비시즌에는 2주에 한 번씩 주말에 외박을 나간답니다. ▶의무복무 기간에도 결혼을 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14주의 훈련기간이 끝나고 부사관으로 임관하면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기혼자는 원한다면 영외에서 출퇴근을 할 수도 있답니다.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세계 무대 호령하는 여전사들 각 군에 흩어져 있던 선수들이 국군체육부대(상무)의 이름으로 한 둥지를 튼 것은 지난 1984년 1월4일. 출범과 함께 사격의 최동실·양윤희·김혜영 준위 등 3명의 여전사가 상무에 합류했다. 국제무대에서 상무 여전사들의 활약은 주로 사격에서 도드라졌다. 아테네올림픽 더블트랩에서 깜짝 은메달과 트랩에서 동메달을 따낸 이보나(당시 중사·현 우리은행)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보나 이전에도 상무 여전사들은 국제무대에서 매운 맛을 유감없이 뽐내왔다.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곽유현 중사가 스키트 단체전 금메달을, 이미경 준위는 50m 소총복사에서 ‘골드’를 적중시켰다. 이 준위는 이 대회 50m 소총복사 개인전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준위는 92년 하사로 입대해 최장기 복무 중인 상무의 영원한 맏언니다.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곽유현 중사가 스키트 단체전 동메달을, 이정아 준위가 트랩 단체전 동메달을 각각 목에 걸었다. 태권도의 임효정 하사도 지난 2006년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서 금빛 발차기를 뽐냈다. 중사 진급을 앞둔 임 하사는 “태릉에도 있어봤지만 여기가 더 타이트하다. 남자선수들과 훈련을 많이 하다보니 기량이 더 빨리 는다.”면서 “올해는 반드시 대표 1진이 돼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곳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 임 하사는 “처음엔 남자선수들이 옷 갈아 입는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랐지만 이젠 익숙해졌다.”고 넉살을 떨었다.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06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어렸을 적부터 이소룡이 출연하는 영화를 보며 무술인의 꿈을 키워온 무술인 정병윤. 무술밖에 모르던 그의 마음을 흔든 여자는 어린 시절부터 우슈로 단련된 중국 여인 사사이다. 아빠, 엄마의 끼를 이어받은 무술신동 아들 소룡이와 갓 태어난 성룡이까지 눈빛만 봐도 척척 아는 정관장네 사람들을 만나본다.   ●극한 직업(EBS 오후 10시40분)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인 704공구, 지하 30m의 막장. 그곳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70억원짜리 기계를 운전하는 김현성 기사, 실드 전문가 이호명씨, 지반 침하를 매일 점검하는 손세욱씨 등 첨단공법으로 지하철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지하 막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0분) 나라의 독립을 소리높여 외쳤던 3·1절은 멕시코에서는 가정의 날이다. 두 나라 모두에게 의미있는 3월1일, 멕시코에서 양국의 우호를 다지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행사참가자들은 두 나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주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축제의 장이라고 말한다.   ●코끼리(MBC 오후 8시20분) 고등학생 아빠 복만이 놓고 간 숙제를 갖다주기 위해 진상고등학교에 들린 주상엽. 그런 상엽에게 첫눈에 반한 여학생이 나타났다. 바로 진상고 가스통이라고 불리는 불량학생 유진. 첫눈에 상엽에게 마음을 뺏긴 유진은 그 길로 막무가내로 상엽을 따라다닌다. 채아는 자꾸만 그런 상엽과 유진이 신경쓰인다.   ●온에어(SBS 오후 9시55분) 영은과 승아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말다툼을 벌인다. 영은은 승아가 학벌은 자기가 더 좋다며 자존심을 건드리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한편 무명배우들을 키운 뒤 거대 기획사에 뺏기고 사무실 월세를 못낼 정도로 어렵게 생활해 가던 기준은 데리고 있는 배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신세한탄을 한다.   ●낭독의 발견(KBS2 밤 12시55분)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것을 나눠주고 더 큰 행복을 가져온다고 말하는 션(노승환)·정혜영 부부.‘밥퍼 목사’ 최일도·김연수 부부의 시 `뜻대로 하셔요´와 `행복한 패배´ 등으로 낭독의 무대를 연다. 또 딸 ‘하음이에게 보내는 엄마 아빠의 편지’를 낭독하며, 두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 [씨줄날줄] 에코 테러/함혜리 논설위원

    2003년 8월1일 미국 샌디에이고의 고급 주택단지 건설 현장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5층 건물이 파괴되는 등 5000만달러의 피해를 냈다. 현장에는 이렇게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당신들이 짓는다면 우리는 태울 것이다-ELF´. 지난 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근교 우딘빌에 있는 고급 모델하우스에서 불이 나 약 700만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ELF’라고 쓰인 팻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ELF는 급진 환경보호단체 지구해방전선(Earth Liberation Front)의 약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화재가 ‘에코 테러리즘’(환경테러)의 한 형태라고 밝혔다. 에코 테러리즘은 개발로 지구환경이 파괴되는 것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환경단체나 동물보호 단체들이 방화·파괴·협박 등 과격한 행위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1990년대 초반 영국 등 유럽 지역에서 바이오테크 회사의 임원이나 생명 과학자들이 협박 당한 것이 시초다. 미국에서는 1996년 오리건주 국립공원에서 공원관리단의 트럭이 불탄 사건으로 시작된다.ELF외에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동물해방전선(ALF), 동물사냥금지회(SHAC)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환경보호라는 이름 아래 크고 작은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주택 건설현장, 벌목회사, 생명공학 회사, 맥도널드 매장, 레저겸용자동차(SUV) 등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이 공격 대상이다.FBI에 따르면 90년대 후반부터 2004년까지 1200건 이상의 에코 테러가 발생했으며 2억달러 이상의 재산피해를 냈다.FBI의 보고서는 ‘에코 테러는 9·11 테러 이후 관심권에서 멀어졌지만 미국 내의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지목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잡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무명의 회원들이 세포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는 10여개의 환경테러 관련 사이트들이 존재하는데 테러 동기에 대한 이념적인 설명, 타깃, 테러 방법들을 알려준다. 미국은 에코테러 관련법을 강화해 최근 2년 사이 용의자들을 체포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음이 이번 시애틀 화재로 드러났다. 이래저래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2008 K-리그 전력점검] (3) 수원·대구

    ■안정환·김남일 공백 고민… 이관우·조원희 역할 기대 수원 삼성의 엠블럼이 바뀌었다. 모기업 이름이 빠졌고 창단 연도를 1995년으로 1년 앞당겨 표시한 것. 모기업의 비자금 특검으로 돈보따리를 풀지 못해 김남일(빗셀 고베), 이싸빅(전남)과 안정환(부산)이 떠난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다. 북한 대표팀으로 충칭 남북대결에 나선 안영학을 부산에서 데려온 게 유일한 영입 사례. 팀은 일본 구마모토 전지훈련 평가전에서 6승2무로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나드손, 하태균 등 공격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데다 ‘캐넌 슈터’ 김대의마저 발바닥 수술을 받아 다음달에나 출전할 수 있어 공격 지휘관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는 게 가장 큰 약점. ‘중원 사령관’ 이관우 역시 지난달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는 게 급선무. 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해 합격점을 받아든 조원희가 얼마나 빨리 팀원들과의 호흡을 맞춰 제 몫을 해주느냐가 초반 성적의 관건이 될 듯. 차범근 감독은 3-4-3과 3-4-1-2 포메이션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술을 활용할 예정이었지만 스리톱으로 나설 경우 김대의의 대체요원으로 안효연밖에 없어 시즌 초반 두터운 중앙 미드필더진을 바탕으로 3-4-1-2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바 트리오 맹활약 예고… ‘늦깎이’ 하대성도 기대주 대구FC에서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하대성. 최근 1억 9000만원에 대구 유니폼을 계속 입게 된 국가대표 윙포워드 이근호와 초등학교부터 부평고까지 함께 다닌 그는 프로 5년차이면서도 무명에 가깝지만 이번 시즌 플레이메이커로 중용이 예상된다. 터키 안탈리아 전훈에서 변병주 감독은 “국가대표 즉시 전력감”이라고 치켜세웠다. 2004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고도 김정우와 최성국, 이천수 등의 그늘에 가려 2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던 그는 이듬해 무릎과 왼발 부상으로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지난해 대구로 이적해 플레이메이커로 변신,25경기 2골,2도움을 기록했고 전훈 기간 브라질의 인터나시날에 첫 골을 뽑아냈다. 카자흐스탄 1부리그 오르다바시전에서도 20m 중거리포로 선제 결승골을 터뜨렸다. 새 삼바 공격수 알렉산드로와 나란히 두 골을 터뜨려 전훈 기간 5승1무2패에 기여했다. 이근호를 중심으로 ‘삼바 트리오’ 알렉산드로, 에닝요, 조우 실바가 빠르고 거침없는 공격을 예고한다. 또 지난해 46골로 최다실점의 불명예를 안았던 수비진은 새내기 양승원과 조형익 등의 가세로 한층 견고해져 전훈 8경기를 5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변 감독은 지난달 28일 대구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자신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재즈가수서 영화배우로’ 노라 존스 e-mail 인터뷰

    ‘재즈가수서 영화배우로’ 노라 존스 e-mail 인터뷰

    왕가위(50) 감독의 아홉번째 영화 속 주인공은 장국영도 양조위도 장만옥도 아니다. 2003년 미국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최우수 팝 보컬´등 5개 부문을 석권하며 무명에서 세계적인 재즈가수로 떠오른 노라 존스(29)다. 그가 왕가위의 첫 영어작품인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사랑의 생채기를 치유해가는 여자 엘리자베스가 됐다.28일 이메일 인터뷰로 만난 노라 존스는 “처음엔 점심을 먹자는 제의”였다고 감독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당연히 제 음악을 (영화에)넣고 싶다고 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글라스 너머로 저를 한참 응시하더니 첫마디를 여시더군요.‘연기 하고 싶어요?´그래서 감독님의 이전 작품들을 봤는데 제 음악과 느낌이 비슷했어요. 무엇보다 저에 대한 감독님의 자신감을 믿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배우와 감독의 서로에 대한 확신은 촬영에 들어가자 더 굳어졌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매일매일이 감동´이었단다.“솔직히 만나뵙기 전에는 감독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제 가장 자연스러운 부분까지 아름답게 끌어내주셨죠. 그가 직접 쓴 대사를 말하며 저절로 엘리자베스가 되어 갔죠.” 음악하는 사람인 만큼 영화음악을 직접 감독에 추천할 만큼 욕심도 냈다.“이 영화는 음악을 천천히 음미하며 보셔야 돼요. 영화 속 음악들은 모든 장면과 기적처럼 어울려요. 카메라와 악기가 춤을 추는 것처럼요. 제가 추천한 오티스 레딩의 음악이 선택돼 뿌듯하기도 했고요. 결국 이 영화는 감독님과 나, 음악 이 셋이 다 한통속이 된 영화예요.” 고난위의 포즈로 상대역인 주드 로와 입맞추는 마지막 장면은 3일을 고생한 결과다. 안면도 없던 미남 배우와 마주 선 노라 존스는 “그가 쳐다보면 불편하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주드 로는 ‘초짜´를 위한 배려심이 깊은 배우예요. 처음에는 그런 자신감 때문에 위축됐었는데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편하게 해버렸어요.”(웃음) 한번 도전한 이상 재미 삼아 출연한 가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연기 수업을 알아보던 존스에게 감독은 제동을 걸었다.‘연기는 공부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 그래서인지 영화 속 노라 존스는 낯설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얼굴이다. 덕분에 작년 5월 칸의 레드카펫도 밟았다.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개막작으로 채택된 것.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피아노 앞에 서는 것은 여전히 별개의 일이다.“작곡하고 노래하는 건 나의 영혼이자 내 피와 같은 인생이에요. 음악은 내가 나를 표현하고 존재하는 방식 같은 거여서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100% 나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연기는 전혀 내가 아니에요.” 그래도 이게 노라 존스의 마지막 영화는 아닐 듯하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역할이면 충분히 고려해 보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화의 마지막, 엘리자베스는 독백한다.“여기까지 오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길을 건너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건너편에서 누가 기다려 주느냐에 달렸을뿐.”영화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옮긴 것처럼, 노라 존스에게 기꺼이 길을 건너게 하는 대상은 누굴까.“있다면 그 사람은 미래의 제 남자일 거예요.(그가)미래에서 나를 기다려줬으면 해요. 아마 나에 대해 이것저것 안쓰러워 하고 보살펴주고 싶어하는 남자겠죠.”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자기창조 조직/이홍 지음

    삼성전자와 LG전자, 핀란드의 노키아의 공통점은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가전제품을 조립하던 무명 기업이었지만,20∼30년만에 반도체와 TFT 모듈 같은 부품사업, 휴대전화 제조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다. LG전자도 마찬가지.‘골드스타’라는 주문자상표 부착방식(OEM)으로 가까스로 생존하던 기업이 백색가전 부문 세계 3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노키아는 펄프와 고무, 전선을 만들던 중소기업에서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휴대전화의 30% 이상을 공급하는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떠올랐다. 이들 글로벌 기업이 불과 20∼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성장비결은 무엇일까.‘자기창조 조직’(이홍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은 어떤 일이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변신하는 ‘자기 창조’ 능력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광운대 교수이자 한국지식경영학회장인 저자는 조직의 성장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창조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조언을 들려준다. 조직에서 자기 창조가 어떻게 이뤄지고 유지되는지, 자기 창조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려면 어떤 체계를 갖춰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공공기관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일류기업 못지않은 자기 창조의 변화를 이뤄낸 관세청에 주목한다. 관세청은 국경 관리의 최일선 기관이다. 수출입의 통관이 이뤄지고 밀수나 짝퉁상품, 마약의 유입을 막는 국경 방어가 행해진다. 이곳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인 자기 창조로 변신을 거듭했다. 한 곳에서 모든 수출입품을 감시하던 ‘고정감시’에서 필요하면 어디나 찾아다니며 감시하는 ‘기동감시’로 바꾸는 등 끊임없는 변신 노력으로 효율성을 높였다. 덕분에 민간 기업으로 치면 37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저자는 미시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거시적으로는 안정된 상태가 ‘자기 창조 조직’을 위한 최선이라고 지적한다. 미세한 환경의 변화에도 미시적인 수준에서 변화하는 능력이 발휘되면 이를 토대로 조직 전체가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 거시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얘기다.1만 2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라이벌의 재회’

    ‘라이벌의 재회’

    “태릉사격장을 다시 찾아 감격스럽습니다. 게다가 최고의 경쟁상대였던 여갑순까지 만났네요.” ‘미녀 총잡이’로 이름을 떨쳤으나 번번이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했던 베셀라 레체바(사진 오른쪽·44)가 불가리아 체육청소년 장관 자격으로 한국을 다시 찾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 공기소총에서 자신을 은메달로 밀어냈던 여갑순(왼쪽·34·대구은행)과 재회했다. 레체바는 26일 서울 태릉국제종합사격장을 방문,1988년 서울올림픽때 섰던 사대(射臺)에도 서보고 여갑순을 만나 함께 숨막히는 승부를 펼쳤던 16년 전을 돌아보았다. 레체바는 선수 시절 유독 한국과 한국선수 징크스에 울었다. 서울올림픽에선 무명의 독일 선수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쳤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여갑순에 막혔고,1993년 서울 월드컵사격대회에서도 한국 선수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쳤다. 레체바는 “여갑순은 당시 내게 최고의 경쟁상대였다.”고 치켜세운 뒤 준비해온 선물을 교환했다. 여갑순은 “서울올림픽때 평소 우상이었던 레체바를 처음 만나 사인을 받았고 이후 다른 대회에서도 가끔 만나 인사를 했지만 쌀쌀맞게 대했는데 95년 독일월드컵 때 나를 꺾고 우승하더니 표정이 비로소 환해졌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여갑순은 4월27일부터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고 있다. 레체바는 28일 불가리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월드이슈] 러시아는 장중한 차르식

    2000년,2004년 두 번에 걸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취임식은 차르(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장중했다. 정부 요인과 상하원 의원, 모스크바 주재 외교단 등 1500여명의 내빈만 참석해 30여분 안팎으로 간단하게 치러졌지만 분위기는 호화로웠다. 취임식장은 크렘린의 대회궁전이다. 차르가 외국 사절을 접견했던 곳이고, 소련 시절에는 연방최고회의가 열리던 곳이다. 푸틴은 금빛 장식이 휘황찬란한 대회궁전의 붉은 카펫을 걸어 들어와 붉은색 표지의 헌법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했다. 취임사가 끝난 뒤 30발의 축포와 크렘린 성벽의 종이 울려퍼지는 것으로 취임식은 끝났다. 이어 푸틴은 사원광장으로 나와 크렘린 근위연대의 사열을 받은 후 크렘린 성벽에 있는 무명용사의 탑에 헌화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웃을 수 없었던 55년… 오늘만은 행복”

    “웃을 수 없었던 55년… 오늘만은 행복”

    “생전에 한을 풀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북한인민군에서 국군포로로, 다시 해병대를 거쳐 북파공작원으로 굴곡의 인생을 걸어온 임덕준(81)씨는 국가유공자 지정 소식을 전해듣고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한국전쟁 때 지뢰 파편이 오른쪽 얼굴을 관통, 광대뼈가 부서진 탓에 제대로 웃을 수도 없었던 55년의 세월이었지만 이날만은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북한서 활동중 지뢰 파편에 부상 그는 전쟁 당시 ‘무명용사’로 ‘켈로(KLO)부대’ 대원이었다. 켈로부대는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첩보활동을 위해 설치한 ‘주한연락처’란 의미로 대북 첩보부대다. 켈로부대원들은 정식 군번을 부여받은 정규군이 아니어서 무명용사로 남아 있다.1995년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유공자로 인정받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관련 기록이 거의 없어 부대원 상당수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황해도 송화 출신인 임씨는 1950년 해병대 모병 7기로 입대했으나 북한 인민군 포로 출신이라는 이유으로 북파공작원에 징집됐다. 그후 북한으로 침투해 황해도의 북한군 주둔지 1개 사단과 인민군 기마대 3대대, 내무소(파출소)를 폭파시키는 임무를 해냈다. 하지만 53년 북한 주둔지에서 정보를 수집해 나오다 지뢰 파편을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인근 해역에 정박중인 유엔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하고 제대했지만 심각한 침투공작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 떠올라 매일 약 46개 먹어야 임씨는 “매일 46개의 신경정신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인민군에게 쫓기는 악몽이 자꾸 떠올라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7년이 지난 1961년, 마침내 군번을 받은 그는 이후 ‘30년간 부대활동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강제 서약을 지켜왔다. 그러다 1999년 국가보훈처에 두 차례에 걸쳐 국가유공자 신청을 냈다. 하지만 보훈처에서 당시 군번과 병상일지 등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임씨로부터 민원을 받은 후 6개월 동안 임씨를 치료한 간호사와 후송 소대원을 잇달아 만나 증언을 확보하고, 보훈처에 ‘유공자 재심의’를 요청했다. 이에 보훈처는 최근 임씨가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게 됐다고 20일 밝혔다. “부상 후유증에다 아내가 파킨슨병에 걸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지만 국가에 목숨을 바쳐 헌신한 공로를 뒤늦게나마 인정받게 돼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김종서 “새로운 도전에 에너지 느껴요”

    김종서 “새로운 도전에 에너지 느껴요”

    “새로운 도전에 에너지를 느껴요.” 만능엔터테이너로 변신한 대한민국 대표 로커 김종서의 의욕이 뜨겁다. 각종 오락프로그램의 패널로 활동했던 그는 지난 9일 첫방송된 SBS 주말극장 ‘행복합니다’(극본 김정수·연출 장용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다.18일 SBS 일산 제작센터에서 만난 그는 첫 도전에 설레고 들뜬 신인연기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20여년 전 처음 음악을 접하고 밴드를 결성해 지방공연을 다닐 때의 기분이에요. 스튜디오 녹화를 앞두곤 밥도 못먹을 정도로 긴장이 되지만, 음악할 때와는 또 다른 색깔의 에너지를 느껴요. 연기의 직접적인 표현방식을 통해 제 음악의 소재나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그가 이번 드라마에서 맡은 역은 미사리의 무명가수 이준기.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육포를 훔쳐다가 ‘로비’를 벌일 정도로 엉뚱하면서도 순수한 인물이다. “제 무명 때 생각이 많이 나죠. 저도 예전에 음악 경험을 쌓기 위해 통기타 클럽에서 노래한 경험이 있거든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절실함이 있던 시기였죠. 지금 연기자로 첫발을 뗀 제 상황과도 비슷해서 더 몰입도 잘되는 것 같아요.” 가수가 음악에 대한 진정성보다는 연예인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쯤으로 여겨지는 요즘.‘겨울비’‘지금은 알 수 없어’‘아름다운 구속’ 등으로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그가 뒤늦게 연기자의 길을 걷는 데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많다. “원래 호기심이 강하고, 격식과 형식을 따지는 걸 크게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니까 동기가 좀 다른 것 같아요. 물론 달라진 제 모습에 실망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연기를 한다고 해서 제 음악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골수 팬들은 제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여전히 음악적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시고, 그게 힘이 됩니다.” 신비주의로 멀고 차갑게 느껴졌던 자신의 이미지를 호감형으로 바꾸고 싶었다는 그다. 지난 1년간 잃은 것도 있지만,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팬층을 확보한 건 큼지막한 수확이었다. “처음에 시트콤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던 가수 동료들도 정극 연기를 보고 많이 격려해줘요. 앞으로 저의 연기력이 인정받는다면, 연기자로도 꾸준히 뛰고 싶어요. 드라마 종영 뒤 6월쯤 새 앨범으로 찾아갈 예정입니다. 그때 더 많은 분들 앞에서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음악은 어차피 말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 명’/황규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 명’/황규관

    어둠을 비추는 힘은 불빛에게 있지 않다 가을햇빛에 드러나는 세계의 형형색색이나 쪽빛 하늘에 뜬 흰 뭉게구름이 가장 낮고 고독한 영혼의 눈빛에게 나타나듯 무명이 백광(白光)을 품고 있다 바람도 함성도 모두 무명의 가늠할 수 없는 힘이 만든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대하게 일렁이는 종잡을 수 없는 무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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