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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나라를 망치는 ‘4가지 病’

    후한(後漢) 말의 석학 순열(荀悅)은 그의 저서 신감(申鑑)에서 당시 자기 나라에는 4가지의 병이 깊어졌다고 개탄했다.그 4가지의 병이란 僞·私·放·奢라는 사환(四患)이다.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병이 현재 우리나라의 온 천지에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의 우리가 걸려있는 사환의 증상을 살펴보자. 첫째,우리의 정치는 거짓이 가득한 위(僞)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선거를 보면 그것은 거짓의 결정체로 응어리진 종기 자국과도 같다.정치가는 어제 한 발표를 하루사이에 번복하면서도 이제는 거짓으로라도 그 이유조차 말하지 않는다.함부로 내건 공약 때문에 엄청난 국력을 낭비하게 해놓고는 ‘뭐 그런 거지’하면서 오히려 국민을 힐난하고 있다. 둘째,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는 잊어버리고 내 몫만 챙기려는 사(私)라는 병도 골이 깊다.도자기를 구우려면 가마를 구워야 하는데,가마는 깨면서 내 도자기만 챙기려 하고 있다.조직의 존폐를 염두에 두지 않는 노동운동,자기 주머니만 챙기는 경영자,기관의 안일만 고집하는 공무원이 늘어나고 있다.주민의협동심과 연대감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빚어내고 있는 도시도 하나 없다. 셋째,방(放)이라는 병균도 이미 깊게 퍼져있다.민주주의라는 이름에 편승하여 법제도와 원칙을 무시하고 ‘떼법’을 앞세우는 무법방종이 난무하고 있다.무례한 행동을 용기로 착각하고,정직을 가장하여 남의 아픈 곳만 들추어내는 사람도 늘고 있다.의무는 외면하고 권리만 주장하는 조직구성원,극한 대립을 앞세우는 시민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넷째,사(奢)병 또한 온 나라를 삼킬 것만 같다.분수에 넘치는 소비로 400만이 넘는 국민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외상값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인구가 이처럼 많기는 처음이다.그러나 더욱 문제는 상실된 자신의 정체성을 패션이나 상품의 소비로 표현하려고 하는 삶의 모습이다.이처럼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의 근원은 정신적 빈곤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정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를 둘러싼 세계 정세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가.공자는 자신에게 나라(衛)를 맡겨 다스리게 한다면 우선 먼저 “이름부터 바로잡겠다.”고 했다.당시 아버지는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여 서로가 남 탓만 하고 있는 위나라를 구제하는 길이 왜 이름부터 바로잡는 것이었을까.이름을 바로잡겠다는 말은 개념과 역할을 분명히 하여 각자의 근본 소임을 다하도록 하겠다는 말이었다. 공자는 문제의 근원은 ‘잘못된 개념’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했다.말과 실제가 서로 맞지 않으면 하려는 일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공자의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사회나 정치의 세계가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모두가 ‘잘 산다’는 개념과 역할의 혼동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근본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좋은 정치와 국민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정치를 구경거리로만 보고 있다가 남의 일처럼 비난만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내 간판만 잘 보이면 된다며 살고 있는 ‘나뿐인 사람’의 도시에서 ‘나쁜 사람’이 되어 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도리(理)는 접어두고 권리(利)의 발톱만 세운 결과 붕괴하는 경제의 실상도 보아야 한다.방종은 오히려 여유 속에서 자행된다는 점에서 작은 여유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의 작음을 보아야 한다.자신의 문화가 없는 사람일수록 돈으로 물질을 사서 허전함을 메우려는 행동이 사치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을 아는 한 더 이상 비탄에 빠질 필요는 없다.새로운 시대의 탄생에는 아픔이 따른다.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역사의 고개를 넘는 길을 잘못 선택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아픔을 감내한다고 해도 절망의 계곡으로 빠진다.본체가 넘어져 있는데 그 부속품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의 근본을 다스려야 한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 한국지방자치학 회장
  • [정동주 역사문학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3)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대황제 폐하께,나 새뮤얼 무어는 미국의 시민으로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만약에 황제폐하께서 폐하의 신하들과 함께 이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면 저를 불러주시길 황송한 마음으로 바라옵니다.” 한글로 적힌 이 편지는 겉봉에다 ‘코리아의 황제,서울시(The Emperor of Korea,City)’라 적고 그 안에 넣어져 우체통에 있었다. 이 편지는 고종황제께 전달되지 않고 내무부 관리의 손에 들어갔다.그 관리는 편지를 보낸 이가 그즈음 한창 한국의 백정(白丁)들에게 설교하는 일로하여 미국선교단과 서울 주재 외교관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새뮤얼 무어라는 사람임을 알았다.그 관리가 보기에 무어 목사는 불손하기 그지없었다.감히 일개 외국선교사가 사사로이 고종황제에게 편지질을 한 것은 크게 비난받을 무례한 짓이라는 공식 불평과 함께 그 편지를 미국 공사 알렌(H,N,Allen)에게 다시 보냈다. ●“무어는 정신이 건전치 못한 사람 같다” 편지 겉봉의 수신인은 ‘코리아의 황제’,수신인의 주소를 ‘서울(City)’이라고 적은 것은 우습기도 하고 기발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편지를 검토한 알렌 공사는 미 국무부에 보낸 공문서에서 “이런 겉잡을 수 없고 무례한 선교사는 공사관 영창에 가둬야 옳다.”고 했다.그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는 “무어라는 괴짜 선교사 한 사람을 감금시키겠다고 협박할수밖에 없다.”고 했으며,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 엘린우드(Ellinwood)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무어 목사는 가장 어렵고 귀찮은 사람이며 내가 언젠가 그를 ‘미친인간’으로 보지 않으리라 장담 못하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 ‘정신이 건전치 못한 사람’같다.”고 썼다. 또한 “무어 목사가 고종황제를 만나겠다는 것은 그의 백정들(his butchers)을 인정받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며,‘정신 상태가 건전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가 없어서 공사관에 관계된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해버렸다.”고 하면서 “선교사들의 보호뿐만 아니라 무어 목사같은 괴짜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선교사 거류지를 차라리 부산,인천,원산과 같은 개항지로제한하는 것이 좋겠다.”고 까지 썼다. 알렌 공사는 1900년 가을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선교사들의 연례회의에서,앞으로 무어 목사가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알렌 공사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고 재한 미국인 거류민으로서 어울리는 행동을 하겠다는 서약을 받도록 했다.그리고 이같은 사실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는 회의록을 미국공사관에 전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무어 목사는 이 통고를 받은 뒤 몹시 괴로워하다가 “내가 미국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여 나의 상관에게 매우 버릇없이 말했음을 깨닫지 못했었다.”는 사과편지를 알렌 공사에게 보내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지을 수 있었다. 알렌 공사의 말대로라면 “무식한 토박이 글쟁이가 썼기 때문에 무례한 글”이었으나 무어 목사는,“그 편지는 지도를 받아 가장 존대하는 말로 썼으며,편지 겉봉의 표기가 잘못되어서 불손하다는 항의를 받게 되었다면 그것은 본의가 아니고 이 나라의 관례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불손한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다만 황제폐하와 그가 다스리시는 나라의 현재와 영원한 복락을 염원해서 쓴 것이었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의 천민 계급의 대명사이자 가장 탄압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기독교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참뜻을 깨닫게 하기 위한 선교활동으로 인하여 알렌 공사와 무어 목사 사이에는 비난과 해명의 편지가 여러 차례 오고 갔다. ●1900년 서울 외교관들 화제의 주인공 무어 목사는 참기 어려운 마음의 괴로움을 선교본부 엘린우드 총무에게 편지로 토로했다.“나와 같은 사람을 파괴시키기 위해 알렌은 그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느껴집니다.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증오한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알렌에게 품었던 미워하는 감정은 몇 주간이었고,그 폭풍은 벌써 지나가버렸습니다.아마 누군가가 특별히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1900년 한해 내내 서울의 외교관들 사이에서 단연코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무어 목사는 그때 40세였다. 새뮤얼 무어(Samuel F.Moore,한국 이름 모삼열·牟三悅)는 1860년에 태어나서 1906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그가 한국에 온 것은 1892년 9월19일 제물포를 통해서였다.시카고 부근 그랜드 리지(Grand Ridge)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1889년 몬타나대학(College of Montana,현재 이름은 RoCky Mountain College)을 마치고,매코믹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여 1892년 봄에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던 그는 대학시절 학교 근처 감옥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열렬하게 외쳤고,신학교 시절에는 경찰서 유치장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의 행복에 대해 설교하기도 했다.그해 9월 로즈 엘리(Rose Elly)와 결혼하여 미국 북장로 선교사가 되어 두 달 뒤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15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아들 셋,딸 하나를 모두 한국땅에서 낳아 길렀다.딸은 무어 목사가 세상을 떠날 때 아내의 복중에 있어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는 죽은 뒤에도 한국땅에 묻혀서 우리와 함께 살지만,그가 떠난지 10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한국인은 그토록 그가 차별받은 사람들을 붙들고 절규했던 인간평등과 사랑을 많이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다. ●3년만에 한국말로 완벽하게 설교 그는 한국에 온 뒤 빨리 한국말을 익히기 위하여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그 당시 선교사들은 정동이나 연동에 모여 살았다.신변의 안전과 가정생활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어 목사는 한국인 마을에서 서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빼어난 언어감각으로 한국이 온지 반년이 채 못지나서 한국말로 주기도문을 유창하게 외웠고,간단한 기도는 거뜬히 할 수 있었다. 3년 뒤 그는 수원의 한 교회에서 한국말로 설교를 했는데 너무나 완벽하게 한국 서민이 사용하는 말로 교인들을 감동시킨 나머지 한 교인이 미국에서도 목사들이 한국말을 쓰는지 묻는 바람에 크게 웃은 일이 있었다. 한국사람이 양복만 입은 것 같다는 한국인들의 그에 대한 칭찬은 그의 한국말 솜씨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의 생활 대부분이 한국인들과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 그의 말은 서민들의 생활언어여서 서민이라면 누구하고도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그즈음 미국의 선교사위원회에서는 선교활동을 돕기위하여 선교사들에게 ‘한국어 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었다.그런데 그토록 한국말을 잘하는 무어 목사는 그 시험에서 늘 낙제점수를 받았다.이유는 사뭇 엉뚱했다.그 시험에서는 서울 양반계층들이 사용하는 유식하고 고급스러운 말들만 물었기 때문에 무어 목사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선교위원회에서는 무어 목사에게 양반의 고급 교양어를 배우도록 권고했다.무어 목사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민중을 가르치려면 민중과 호흡해야 자신이 최선을 다해 섬기고 싶은 것은 평범하고 진실된 한국 서민들이며,그들을 위하는 길은 양반들의 고급스러운 말을 이용한 성경운동 보다는 그들의 가난하고 낮은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그들의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눈과 가슴으로 인간이 평등해야 하는 까닭을 설명했다.자유를누리기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들의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 보다 현명한 것은 없다고 했다. 감리교의 초기 선교사였던 아펜젤러(H.G.Appenzeller) 목사는 어느날 무어 목사가 어느 교회앞 길거리에서 많은 한국인들에게 한국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전도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동적이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민중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민중의 습속을 생활하면서 민중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이런 그의 진지하고 애정어린 태도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갖게 했고,향기롭게 새겨진 그의 인상은 오래도록 가슴에 살아남아 있다. 그의 집은 늘 한국 서민들로 북적거렸고,항상 그는 길거리에서 서민들을 만나 세상사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좋은 이웃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그의 집을 인의예지가(仁義禮智家)라 칭송했다. 오늘,같은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을 차별하는 저 천하에 몹쓸 지연,학연,혈연이 만든 질병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무어 목사를 그리워한다.
  • [씨줄날줄] 남편의 폭탄주

    ‘josua’씨. 한국은행 직원의 부인이라고 밝힌 님께서 지난 21일 한은 게시판에 폭탄주를 강요하는 남편의 상사를 추방해 달라고 총재에게 띄운 글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님께서 글을 띄운 시간이 오전 8시14분.아마 술이 덜 깬 채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분노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즐거운 성탄절 게시판에는 아직도 많은 대글이 올라오고 있더군요.인터넷 게시판이 늘 그러하듯 무례한 글도 많지만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때가 때이니 만큼 적절한 이슈를 제기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폭탄주는 왜 마실까요.‘폭탄주 그거 왜 마시는데?’의 저자인 대한매일 이상일 경제부장에 따르면 스무가지나 되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님께서 총재에게 혼내달라고 말한 직장 상사의 입장에서는 두가지 이유를 우선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하나는 앉자마자 폭탄주를 돌리면 금방 취하고,안주도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술값이 덜 듭니다.둘째로는 술잔을 돌리는 우리네 술문화에서는 아무래도상사에게 잔이 집중됩니다.하지만 폭탄주는 술잔이 돌아가기 때문에 상사로서는 술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폭탄주는 일종의 평준화적 발상에서 출발합니다.대부분 예외없이 잔이 돕니다.그러나 결과는 불평등합니다.약한 고리(술이 약한 사람)가 가장 큰 타격을 받습니다.대신 강자는 여유가 있습니다. 폭탄주는 감점주의 문화입니다.마시면 당연하고 못 마시면 눈총을 받거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전날 술자리를 ‘복기’하는 대화가 오갈 때도 목소리가 작아집니다.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이라는 신조어가 뭇 샐러리맨들의 가슴을 차갑게 할퀴고 다니는 요즘 윗사람이 권하는 폭탄주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마냥 폭탄주에 찌들어 살 수도 없는 일이지요.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폭탄주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요.다년간의 현장 경험으로 미뤄볼 때 폭탄주의 불길을 잡는 첫 소화기는 ‘지부지처’(자기가 붓고 자기가 먹는다) 문화라고 생각됩니다.주당들의 대오각성이 앞서야 하겠지만,이땅의 모든 주부들이 ‘잔 돌리고 온 입에는 키스를 사양한다.’고 선언이라도 하면 어떨까요.같이 고민해 봅시다. 강석진 논설위원
  • 최인호가 말하는 ‘소설 儒林’/ “퇴계·조광조를 招魂하리”

    ‘유림(儒林)’에 대한 구상은 12,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나는 그 무렵 경허를 주인공으로 하는 ‘길 없는 길’이란 장편소설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었다.인도에서 출발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해동(海東)인 우리나라에서 찬란한 꽃을 피운 사실을 소설로 쓰면서 우리 민족의 혈관 속에는 불교뿐 아니라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그것이 바로 2500여 년 전 중국에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교(儒敎)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피 속을 흐르는 또 하나의 원형질인 유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우리의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10년 전 이미 두 차례나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와 공자의 사당이 있는 태산에 올라 사전답사를 하면서 구상을 하고 있었다.공자의 무덤을 둘러보면서 소설의 제목을 미리 정해두었는데,그것이 바로 ‘유림(儒林)’이었다. ●10년전 공자유적 답사… 구상 마쳐 보통 소설을 쓰다 보면 제목을 정하기가 가장 어렵고,소설을 다 쓴 후에도 제목을 못 정해 전전긍긍하는 것이 보통인데,‘상도(商道)’ ‘유림(儒林)’과 같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을 미리 점지해 두는 것처럼 제목이 미리 떠올라 오랫동안 마음 속에 화두처럼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써야지 하고 구상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막상 소설로 형상화되는 것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맞닿아야 한다.마치 봄이 되어야만 꽃이 피고,가을이 되어야만 열매 맺듯 소설에도 제 나름대로의 때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상도’ 역시 십여 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소재가 마침 연재 중에 IMF 사태가 터지고 역시 12,13년 전부터 구상해 두고 있던 유림이 2004년 오늘날에야 시작되는 것을 보면 해산의 진통을 거쳐야만 아이가 태어나듯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인 원효(元曉)를 탄생시킨 것처럼 유교 역시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인 퇴계(退溪)를 낳았다.석가모니의 불교가 원효에 의해서 사상적으로 완성되었다면 공자의 유교 역시 퇴계에 의해서 사상적으로 완성되었던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원효와 이퇴계라는 불세출의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유례없는 정신적 문화국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 현실은 어떠한가. ‘동방예의지국’이란 이름의 찬란한 정신적 유산은 무례와 부도덕으로 얼룩지고 개국 이래 이처럼 정치가 혼란스러운 적은 없었다.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청렴하고,청빈하고,나라에 충성하고,꼿꼿한 자존심으로 무장하였던 ‘선비’사상을 낳은 국가의 이념은 부정부패한 관리들과 국민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어두운 공복(公僕)들에 의해서 혼동과 무질서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국민에 바보 지도자라니 아아,이처럼 위대한 국민에 어째서 이처럼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바보,바보,바보의 지도자들이 줄줄이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한 사람의 개인에게는 인격이 있듯이 한 국가에도 국격이 있는 것이다.이러한 인격이 그 사람의 인간성(人間性)을 이룬다면 이러한 국격을 가진 국민들이 그 나라의 국민성(國民性)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격은 어떠하고 우리의 국민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계적 성리학자 이퇴계의 초상은 천 원짜리 화폐 속에서만 존재하고,이율곡의 초상 역시 오천 원짜리 지폐 속에서만 존재하는데,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자장면을 먹고 지불하는 화폐 속에 그려져 있는 그 인물이 누구며,어떤 사람인가를 알고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에 젖어 이퇴계의 사상보다는 이퇴계의 얼굴이 그려진 그 화폐만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광조(趙光祖).성종13년(1482년)에 태어나 중종14년(1519년),37세의 젊은 나이로 사약을 받고 죽은 정치개혁자.썩어 빠진 정치를 바로잡으려다 실패하였던 이상주의자,조광조 역시 유교의 사상으로 나라를 구하려 하지 않았던가. ●조광조 못다이룬 정치개혁의 꿈 담을것 그의 나이 33세 때 중종은 직접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에 나아가 다음과 같은 알성문과 시험문제를 냈다. “공자께서 ‘만약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이라도 가하지만 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성인이 어찌 헛된 말을 하셨으리오.그러니 그대들은이를 낱낱이 헤아려 말할 수 있겠는가….” 이에 조광조는 그 유명한 답안을 쓰기 시작한다.“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임금과 백성 역시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그러므로 이상적인 임금들은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우리의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는가.아아,나는 작가로서 이 혼란한 시대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처럼 나약한 손을 들어 글을 써 헌정함이니.공자여,과연 그대가 이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에 다시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수년 안에 우리나라의 어지러움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조광조여,과연 그대가 오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수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국민을 위한,국민의 정치를 펼칠 수 있겠는가. 내가 굳이 박수무당이 되어 공자의 혼을 불러들이고,이퇴계와 조광조를 초혼(招魂)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니.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나폴레옹에게 패망한 독일 국민들에게 ‘독일 국민들에게 고함’이란 글을 썼다.비탄에 빠져 있는 독일 국민들에게 ‘불행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나도 감히 내 사랑하는 조선민족들에게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글을 바치려 함이니.오마니,아부지,누이야,우리 이제 오마니 등에 업고,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검둥개 앞세우고 달 마중가자.그 효(孝)와 그 충(忠),그 예(禮),그 경(敬)으로 가득 찼던 숲으로 가자,유림의 숲으로 가자.
  • 고구려史 왜곡 기도… 어로금지구역 관할권 주장/ 中 심상찮은 對韓행보

    한·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 중국이 고구려사(史)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기 위해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프로젝트까지 만들어 역사 왜곡을 시도중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정부와 학계가 긴급 대책에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가 지난달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한·중 어업공동위원회에서 서해 ‘특정금지구역’에서의 중국 관할권을 주장하는 ‘외교적 무례’를 범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중국 당국의 서해 ‘특정금지구역’내 관할권 주장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한·중 어업공동위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밖의 양국 어획량 조정과 함께 서해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활동에 대한 우리측의 항의로 시작됐다. 양국은 2001년 한·중어업협정 체결 때 북방한계선 아래 수역을 ‘특정금지구역’으로 설정,중국 어선의 조업을 금지하고 이를 침범할 경우 국내법을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중국 어선은 매년 수백척씩 몰려와 꽃게의 씨를 말릴 정도로 남획을 일삼았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 조치요구에 대해 중국측은 “특정금지구역 내 단속권을 중국에 줄 것”을 요구하며 우리 수역에 중국 경찰선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우리 정부가 일축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중국측의 이같은 요구는 외교 관례상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동북공정’프로젝트는 중국 정부가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추진하고 있는 역사왜곡 움직임이다.고구려를 중국 변방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중국 정부가 국책기관인 사회과학원을 중심으로 집단 논문을 발표하고,북한이 유네스코에 신청한 평양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 문화유산 지정까지 반대,이를 보류시켰다. 우리 정부는 중국 동북지방에 고구려사 전문가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범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시도에 맞서기로 했다.또 교육인적자원부와 정신문화연구원에 고구려사를 포함한 고대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한·중역사공동연구회를 설립하고 남북한,중국,일본,몽골 학자가 참여하는 동북아역사공동연구위원회도 만들기로 했다. 중국은 또 지난해 5월이후 주중 한국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의 한국행에 대해 협조하고 있지만 언론에 부각된 인사들,즉 국군포로 전용일씨나 탈북지원 사진작가 석재현씨 등의 문제 해결에는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우리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이들이 연내 석방될 기미는 아직 없다. 최근 중국측이 우리 정부에 보이고 있는 자세와 관련,중국측의 불만 누적에 따른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주중 베이징 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 탈북자 처리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영사관 잠정 폐쇄 조치,탈북자 문제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받는 인권 침해 지적 등이 그것이다.지난 달 노무현 대통령이 국적 회복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중인 중국동포를 위문 방문한 이후,중국측은 비공식 자리에서 크게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오늘의 눈] 사생활 보호와 알권리

    ‘○○○호 취재 및 방문객께서는 본인의 뜻에 따라 방문을 허락하지 않으니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라크에서 괴한들의 총탄에 숨진 대전 삼천동 김만수(45)씨 가족들은 1일 수위를 통해 아파트 라인 출입문에 이같은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굳게 잠궜다.대신 기자들의 취재요구에 김씨의 딸이 대표(?)로 잠깐 나와 짤막하게 취재에 응했다.안내문은 가족이 서울로 떠난 뒤 떼어졌다. 기자들은 ‘알 권리’를 들어 거친 취재관행을 보여왔다.마감시간에 쫓기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파렴치한 범행의 피의자에게는 형사보다 때로는 고압적으로 이른바 ‘팩트(범죄사실)’를 챙겨왔고,유가족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뒷얘기를 들으려 했다. 곽경해(60·대전 방동)씨의 유가족도 마찬가지였다.곽씨의 가족들은 이날 아침부터 집 앞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가족들은 오후 2시에 취재에 응하겠다고 약속한 뒤 풀기자(대표로 취재해 다른 기자들에게 대신 알려주는 기자)에 한해 취재에응했다. 시간이 돼도 취재에 응하지 않으려 하는 유가족과 기자가 문을 부여잡고 실랑이를 벌이며 나눈 대화는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란 융화되기 어려운 서로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다. 기자 약속시간이 됐는데 왜 안 열어주나. 아들 아직 사망사실 등 정확한 정황을 모르는데 무슨 할 말이 있나. 기자 우리는 정확히 알려야 할 의무가 있고,그래야 유가족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아들 우리는 그런 것 다 싫다.어머니가 이제야 진정이 됐는데 취재하면 다시 충격을 받는다. ‘알 권리’를 이유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던 취재관행이 ‘사생활 보호’라는 벽에 막히면서 기자들의 취재태도도 점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천열 전국부기자 sky@
  • 충청권 단체장 집단 상경… 특위무산 비난/ 최대표 “어쩌나”

    “충청도 어찌하오리까?” 국회 신행정수도특위 구성이 무산된 후 충청권의 비난여론이 한나라당에 쏠리자 지도부가 고민에 빠졌다. 25일 아침 8시40분 한나라당 대표실에는 살벌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대전·충청지역 단체장과 시도의회 의장들이 새벽 차로 전원 상경해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를 에워쌌다.지역 언론사 보도진들도 대표실을 가득 메우고 지도부의 반응을 예의주시했다. 이원종 충북지사는 “이 시각에 올 만큼 절박하다.”면서 무례(?)를 사과한 뒤 “이번 회기에 (수도이전법을)꼭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같은 시각 삭발식이 진행되는 등 지역의 ‘험악한’ 여론도 가감없이 전달됐다.심대평 충남지사는 “국회 반대로 비쳐서 모양이 나쁘다.”면서 “최 대표는 개인적으로 찬성한다 했는데 당론으로도 찬성해 달라.”고 압박했다. 이복구 충남도의회 의장은 “통과만 된다면 모든 과정은 사라지고 공(功)은 한나라당으로 가지 않겠느냐.”며 은근한 회유작전도 병행했다. 최 대표는 “당론으로 처리하는 것은 사실 부담이 있다.”면서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수도권 주민들이 결사 반대하는 등 거기도 격앙된 분위기”라고 고심을 털어놨다.최 대표는 그러나 “전체적으로 통과시키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전날 건교위원들을 만나 극렬반대 의원 2명을 비롯,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염홍철 대전시장이 “의견이 모아졌다고 봐도 되겠느냐.”며 거듭 확답을 요구했다.최 대표는 “말씀드린 대로”라며 “총무를 믿어보자.”고 공을 넘겼고 홍 총무는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에서 또 재미보게 하지는 않겠다.”며 겨우 무마를 했다.이날 대표실에는 지방분권포럼 관계자들도 찾아와 같은 민원을 제기했다.최 대표는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을 겨냥,“처음부터 정략적으로 하더니 지금도 정략적”이라며 ‘샌드위치’가 된 심경을 털어놨다. 박정경기자 olive@
  • 청화스님의 수행과 삶/부처님 법대로 주지 마다하고 40년 정진

    12일 평소처럼 태연하게 미소 띤 얼굴로 열반에 든 조계종 원로회의 위원 청화(淸華)스님.언제 어디서나 죽고 삶에 연연하지 않았던 스님은 자신에게 혹독할 만큼 엄격했으나 모든 사람을 부처로 여기고 배려하는 큰 인물이었다.이제 육신은 소멸한 채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으로 가득한 화택(火宅)에서 벗어났지만 영롱한 사리로 남아 무언의 설법을 전하고 있다.생전 몸은 세속에서 떨어진 채 변함없이 구도의 길에 매달렸지만 마음은 그 누구에 대한 편견 없이 자비와 관용을 향해 열어놓았던 큰 스님.열반 후에도,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전남 곡성 성륜사에는 스님의 극락왕생과 영혼불멸을 기원하는 추모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청화 스님 어디로 가셨습니까.’ 지난 16일 스님의 영결식장인 전남 곡성 성륜사에 모인 스님,신도들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번의 주지 소임도 맡지 않은 채 40년간 토굴과 암자를 구름과 물처럼 전전하며 수행에만 매진한 스님이 어떻게 그많은 상좌(제자)를 둘 수 있었을까.스님을 은사로 출가한상좌는 자그마치 136명.그것은 ‘부처님의 법대로 따른다.’며 청정무구한 수행으로 일관한 스님을 추앙하는 납자와 수행승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성륜사 주지 도일 스님은 “스님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겉치레와 형식에 매이지 않은 스님의 수행관과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총무원 간부며 중앙종회 의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았으나 번번이 내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원로회의 위원에 추대될 때도 극구 사양했으나 종단의 간곡한 요청에 “위원을 맡되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겠다.”고 선언,단 한 차례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좌불와의 수행자’‘일종식 납자’‘염불선의 실천자’….많은 스님들은 “내가 보아온 수많은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수행한 스님”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1960년대 한 암자에서 정진할 당시 한겨울 바위틈에서 나오는 찬 샘물을 머리에 부으면서 공부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토굴에서 참선할 때 아무데서나 한가지 반찬에 밥을 먹으면서 시자들에게‘시간 낭비는 생명낭비’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격식을 싫어해 녹차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맏상좌인 용타(전주 기신사 회주)스님은 “청화 스님이 주위 사람들에게 ‘출가했으면 부처님 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행법이 다르다고 해서 수행의 기본정신이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스님은 종파성을 지양한 통불교(通佛敎)와 함께,선·염불을 하나로 모은 염불선을 주창했다. 임종 직전 상좌들과 법담을 나누던 스님은 “금생에서의 세연이 다했으니 이제 가련다.화합하고 수행을 열심히해 중생구제하는 게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kimus@ ■청화스님 유언 스님은 자신을 지키는 데는 철저했으면서 그 누구에게도 말을 낮춤 없이 존대한 것으로 유명하다.상좌인 성전 스님(전 옥천암 주지)은 “스님을 한 번이라도 친견한 이라면 모두 귀의할 마음을 가질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잃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성륜사 전국신도회 회장 정해숙(68)씨는 “스님이말과 행동을 달리했던 때를 본 적이 없으며,시봉 스님들에게도 자신을 따르기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그래서인지 의사 교수 예술인 기업가 정치인 등 스님과 인연을 맺어 자주 찾은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홍라희 부부,대상그룹 회장 임창욱·박현주 부부,전 대통령 전두환·이순자 부부,박선자 경상대 교수,이중표 전남대 교수,배광식 서울대 치대교수,윤산 화백,아산 조방원 화백….스님이 임종 때까지 주석하던 성륜사도 아산 조방원 화백이 10만평을 내놓아 건립됐다.미국 카멜 삼보사에 선방을 세울 때도 외국인 불자가 땅을 기증했다고 한다.스님을 찾아오는 이는 반드시 산문까지 직접 나와 배웅했으며,최근까지도 손수 법복을 빨아 다려입었다. 광주 추강사에 주석하던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스님들이 먹을 쌀이 2∼3일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찾아든 딱한 객승에게 쌀독에 남은 쌀을 모두 걸망에 담아주었다.두륜산 진불암에 머물 때는 갑자기 절을 찾아온 낯선 스님을 위해 40리 떨어진 해남까지 내려가 제물을 준비해와 제사의식 가운데 절차가 제일 복잡하다고 하는 구병의식을 베풀기도 했다.스님의 하심은 많은 이들을 감복하게 해 출가토록 했다. 대흥사 상원암 주지도 출가전 무례한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으나 “자네는 아주 점잖은 사람”이라고 다독여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상좌다. 스님은 임종 며칠 전 시자들에게 “올 때도 빈손으로 왔는데 굳이 마지막 가는 길을 호화롭게 할 필요가 있느냐.”며 “죽은 뒤 거적에 말아 일반 화장터에서 화장해 아낀 돈을 불우이웃 돕기에 써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청화스님 어록 ●비록 몽매에 사무친 그리운 귀향의 길이라 할지라도 고달픈 나그네에게는 가파른 산 너머 아득한 마을일 것이며 번뇌의 해탈과 영생의 행복을 지향하는 위(끝)없는 정도(正道)일지라도 삼독심(탐욕 분노 어리석음)에 얽매인 중생들에게는 천리만리 머나먼 꿈나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참다운 자아를 성취한 거룩한 성자들에게는,닿기만 하면 황금빛으로 변한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와도 같이 영원히 행복한 금빛 찬란한 극락정토 아닌데가 없습니다.(1986년 월간 ‘금륜’창간호) ●우리는 죽지 않고 나지 않는 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내가 분명히 죽고,나하고 친한 분들도 다 죽는데 왜 죽지 않는 것인가? 헛 것이며 그림자인 우리 몸만 그때 그때 사라지는 것입니다.생명 자체는 절대로 죽음이 없습니다.지금 당장에 어느 분이 인연이 다해서 금생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합시다.그런다 하더라도 그분의 목숨은,생명 자체는 조금도 흠축이 없습니다.다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업을 지었는가의 업장,따라서 지금 그의 몸이 죽어 있는 상태가 안락스러울 것인가,또는 고통스러울 것인가 하는 차이뿐입니다.(1991년 3월 불교방송 초청법어) ●우리가 성불할 때까지는 사뭇 놓치지 않고서 공부를 해야 되겠지만 우리 중생은 모양세계에 놓여 있습니다.모양세계란 것은 그때그때 구분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하루에 세때 먹어야 되고 갈곳은 가야되듯이,모양에 따른 한계가 있어서 쉴 때도 필요하고 푸는 제도나 맺는 제도도 있고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속물이란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 속물입니다.(2001년 동안거 해제법어) ●아파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고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 따로 있단 말입니까? 좋아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고 미워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고 똑똑한 척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습니다.모양이 없으면서 분명이 존재하고 한도 끝도 없는 것을 구합니다.모양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얼마만큼 크다고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마음은 어디 국한되게 크고 작은 것으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한도 끝도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2000년 11월 성륜사 정기법회 법어)
  • 국제 플러스 / 파라과이 대통령부인 美서 수모

    |아순시온 AFP 연합|니카노르 두아르테 파라과이 대통령 부인 글로리아 파나요 여사가 지난달 남북미대륙 대통령 부인 정상회담 참석차 마이애미에 중간 기착했을 때 미국 세관원들로부터 몸 위를 더듬는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고 파라과이 대통령 측근 소식통들이 2일 말했다. 소식통들은 이날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세관원들이 글로리아 파나요 여사에게 무례한 언사를 썼을 뿐 아니라 여사의 핸드백과 기타 개인 소지품을 샅샅이 뒤졌다고 밝혔다.
  • 美·러 밀월 금가나

    러시아 경제를 강타,위기를 초래한 유코스 사태가 미국과의 외교관계에까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 9·11테러를 계기로 결속력을 강화해온 미국과 러시아는 이번 유코스 사태를 둘러싸고 2년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붉히며 공방전을 벌였다. ●러,“무례하다” 미 공격 이번 미·러간 공방은 미국이 러시아 정부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시작됐다.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유코스 사장 구속에 이은 사장 소유의 유코스 주식 동결 조치와 관련,러시아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법적 조치라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미 국무부가 우려를 표명하자 러시아가 발끈한 것. 러시아 외무부 알렉산드르 야코벤코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유코스 사태에 대한 미국의 비난은 러시아를 존중하지 않은 처사라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야코벤코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국영 ‘로시아’TV와의 인터뷰에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의 악명높은 정책을 여실히 드러내는 논평”이라고 미국을 공격했다.그는 이어 “미 국무부 성명은 러시아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않은 무례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미,유코스 사태 심각성 제기 미 국무부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은 앞서 일련의 유코스 사태에 대한 미국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검찰의 조치들이 러시아가 약속한 자유시장체제와 사법권의 독립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이번 주식 동결 조치는 러시아 시장의 과거로의 회귀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러시아에서 소유권을 보호받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논평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또 “러시아 당국이 유코스 사태가 정치적인 이유로 불거졌다는 항간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러시아 법이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집행된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위주의로의 회귀 움직임” 사실 러시아에 대한 미국 정·제계의 염려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욱 깊다.9·11테러 이후 양국의 관계가 안정되고 러시아경제도 눈에 띄게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의 평가였다. 더욱이 이번 유코스 사태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는 러시아가 과거 권위주위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코엘류호 긴급점검/(하)협회 행정부터 ‘문책’하라

    지난 1996년 박종환(현 대구감독)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 본선 조별 리그에서 이란에 2-6으로 참패했을 당시 축구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당시 참패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 것은 선수들의 항명이었다.박 감독의 지나친 권위주의적 지도력에 불만을 품은 일부 고참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일었다.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대부분 프로팀 소속이던 선수들은 대표팀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지원과 대우가 지나치게 초라하다는 데 더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협회는 이를 묵살한 채 박 감독의 지도력만을 문제삼기에 급급했다.결국 98프랑스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월드컵대표팀 사령탑 물망에 오르던 박 감독을 경질하는 선에서 모든 문제를 덮었다. 2004아시안컵 최종예선 2차라운드에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베트남과 오만 등 약체에 잇따라 패하는 충격에 휩싸인 이번에도 협회는 감독 경질설을 흘리며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더 큰 책임은 협회에 있다는 게 축구계의 중론이다.“이번 예선 과정에서 협회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한 한 축구인은 “상대 팀에 대한 분석도,대표팀의 미래에 대비한 대책도 없이 무조건적인 낙관론만 팽배해 있었다.”고 질타했다. 그는 “명색이 대표팀 수석코치가 대회가 열리는 현장을 외면한 채 청소년팀을 지도하고 있었고,단 한사람의 기술위원도 현지에 가서 분석 자료 수집을 하지 않은 게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코엘류 감독을 선택한 기술위원회의 안목이나,코치진의 ‘무례’를 가능케 한 협회 행정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월드컵 당시 협회 기술위원장을 지낸 이용수 KBS 해설위원은 “대표선수 선발 과정에서도 실력보다는 연고를 우선시한 예전의 악습이 되풀이된 흔적이 있다.”면서 “월드컵 4강을 이루게 한 초심으로 돌아가 협회 행정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한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 이전에 외국인 감독과 한국인 코치진 사이에 빚어지곤 했던 부조화가 이번 대표팀에도 있는 것 같다.”며 “모두 협회 지도부가 이를 묵인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곽영완 기자 kwyoung@
  • [오늘의 눈] “한국 IT산업 원더풀”

    지난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TU(국제전기통신연합) 텔레콤월드 2003’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삼성전자 부스에 IT(정보기술) 업계의 세계적 명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찾아왔다.손 회장은 삼성전자 최신 휴대전화의 동영상 촬영 시간 등 갖가지 기능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윽고 손 회장이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이기태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양사간 협력방안 등을 진지하게 논의해보고 싶다는 취지도 곁들였다.그러나 삼성측은 손 회장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이 사장의 현지 일정이 이미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손 회장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무례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천경준 부사장과 함께 부스 한 켠에 마련된 상담실로 들어갔다. ‘ITU 텔레콤월드’는 4년마다 한번씩 열려 세계 IT업계에서는 ‘통신판 월드컵’으로 불린다.이런 국제적 행사에서 한국 IT기업들의 위상이 한껏 올라갔다.삼성전자,LG전자,KT·KTF 등 대기업은 물론 한국관에 공동 출품한 중소기업들까지 국내 기업들의 부스에는 행사기간내내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삼성전자에는 손 회장을 비롯,시스코시스템즈의 존 체임버스 회장,NTT도코모의 게이지 다치가와 회장 등 IT 업계의 명사들이 줄을 이었다.LG전자와 KT 부스에도 태국 정보통신장관 등 각국의 통신정책 총괄 책임자들이 방문,앞선 기술력에 놀라워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3세대 이동통신을 주제로 한 삼성전자의 기자회견에는 각국 IT매체 기자들이 몰려 좌석이 부족할 정도였다.현장에서 만난 한 외신기자는 “코리아 IT인더스트리 이즈 원더풀”이라고 말했다.자만해서는 안되겠지만 이미 국내 IT기업들의 위상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높아진 셈이다.‘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당위성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박홍환 산업부 기자 stinger@
  • 슬그머니 꼬리내린 ‘공익성 강화’/SBS, 가을개편 오락성 프로 대거 신설

    SBS가 ‘오락성 강화로 시청률 높이기’를 새달부터 시행하는 가을 개편의 화두로 내세웠다.물의를 빚고 사퇴한 진행자와 제작 관계자를 대거 영입하는가 하면,지난 봄 ‘공익성’을 내세우며 출범시킨 프로그램은 대부분 폐지하기로 했다. SBS는 ‘이문세의 사이언스 파크’‘진기록 팡팡팡’‘콜럼버스 대발견’ 등 공익적 프로그램들을 반년 만에 “경쟁력이 명백히 다했다.”며 대거 폐지한다.‘네트워크 현장!고향이 보인다’, 어린이 프로그램 ‘헬로우 퀴즈짱’과 ‘세계명작동화’도 폐지 위기에 몰렸다.대신 가수 이현우가 8명의 여성과 ‘서바이벌 데이트’를 벌이는 ‘선택 리얼 데이트’(가제) 등 10대를 겨냥한 프로그램들을 신설한다. SBS는 ‘음주방송’ 등으로 물러났던 이종환(66)씨 등을 라디오 DJ로 대거 기용했다.그는 지난 7월 말 MBC 라디오 ‘이종환의 음악살롱’ 생방송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방송을 진행하면서,청취자에게 무례한 언사를 퍼부어 물러났다.새로 기용된 오미희(45)씨도 지난 2월 전 남편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되어 라디오에서 중도하차한 인사다. 박동주 라디오본부장은 “SBS라디오가 MBC보다 청취율이 너무 낮아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인기 진행자들을 영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SBS 시청자 게시판에는 2일까지 ‘시청률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수백건의 항의성 글이 올랐다. SBS 노조도 성명을 내고 “SBS의 이미지를 스스로 갉아먹지 말라.”면서 “이종환씨 등의 기용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나아가 SBS는 새로운 주말 오락 프로그램 ‘소원성취 토요일’(가제)의 한꼭지를 은모(45) 프로듀서가 관계하는 프로덕션에 맡길 예정이다.은씨는 연예계 비리사건으로 MBC에서 해직된 전력이 있다. MBC 관계자는 “우리쪽에서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진행하던 강호동을 ‘소원성취…’로 옮겨가는 데 힘을 보탠 공로상일 것”이라면서 “상도의고 뭐고 없는 전례없는 상업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칼날은 온유함을 못베지”/국내 유일의 검도9단 조승룡 씨

    눈빛은 칼날보다 날카로웠고,쩌렁쩌렁 울리는 기합소리는 체육관을 휘감은 초가을 저녁의 적막을 깼다. “보잘 것 없는 촌로를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50대 제자와 목검 대련을 마친 노검객이 악수를 청했다.믿기지 않는 손아귀 힘에 또 한번 기가 질렸다. 국내 유일의 검도 9단 조승룡(76)씨.검도계의 큰 스승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맹호 같던 눈빛은 검을 놓자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변했고,깊은 명상에 빠질 때면 수도승처럼 바뀌었다.참나무 장작 같은 팔뚝과 카랑카랑한 음성은 청년과 진배없다. ●최고 검객들이 추대한‘진정한 1인자’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11세 때 죽도를 처음 잡은 그는 60년이 넘도록 검도 외길을 걷고 있다.1950년 초단에 오른 이후 전국대회에서만 50여차례 ‘검도왕’에 등극했다. 그가 길러낸 검도 사범만 500여명에 이르고,지금도 서울시검도회 수석사범으로 활동한다.매주 두 차례 제자 김시만(52·5단) 사범이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의 만청관을 찾아 손자뻘 되는 후학들에게 검술을 가르친다. 대한검도회의 최고의결기구로 36명의 8단 고수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지난해 9월 그를 만장일치로 9단에 추대했다.2000년 초 김영달 9단의 사망으로 공석이었던 검도계의 ‘상석’이 2년이 지나서야 주인을 맞은 것. 9단 추대는 그의 검도에 대한 열정과 검도 발전에 이바지한 공 때문만은 아니었다.후배들은 쉬지 않고 연마해온 그의 실력을 가감없이 평가해 한국 최고의 검객이라는 명예를 수여했다. “젊은 후배들이 대련에서 봐주지 않느냐.”는 과문한 질문에 그는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검이 아니라 기”라고 짧게 답했다.스승과 매주 한 번씩 목검 대련을 벌인다는 김 사범은 “선생님의 손목치기는 아직 따라갈 사람이 없다.”면서 “연륜이 쌓일수록 빛나는 게 검술”이라고 말했다. ●검도의 정신은 겸손과 예의 그가 평생 검도를 하면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그는 “검도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아무리 낮은 하수와 겨룰 때도 겸손하지 않으면 머리와 손목,허리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생 승단에 마음 써본 적이 없다는 그는 “9단이라는 칭호는 늙은이에게 붙은 꼬리표일 뿐”이라면서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후배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을까 항상 두렵다.”고 말했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겸손과 예의는 죽도를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죽도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항상 자신을 비우고,시간의 흐름에 맺고 끊는 마디를 갖출 줄 알며,구부러지지 않는 죽도처럼 살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죽도를 넘어 다니거나 삐딱하게 짚고 서 있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불호령을 맞은 후배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당하고 여유로운 노검객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어떤 노인이 우여곡절이 없을까마는 그의 삶도 굴곡이 많았다.그의 왼쪽 팔에는 동족상잔의 흔적이 깊게 파여 있다.지난 49년 경찰에 투신한 그는 51년 겨울 어느날 지리산에서 빨치산과 교전중에 총상을 입었다.80년에는 신군부의 공무원 숙청 작업에 휘말려 경찰복을 벗기도 했다.공무원이라기보다는 검도인으로서의 명예를 위해 청렴하게 살고자 한 그에게 강제 퇴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멍에였다. 그는 아직도 서울 도봉구 창동의 허름한 집에서 부인과 단출하게 살고 있다.지난 1월에는 나이 50이 된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는 아픔도 겪었다.단 하루도 죽도를 놓은 적이 없는 그였지만 이때 검도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식음을 전폐했던 그는 “너무 오래 살아서 못볼 꼴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결국 검도였다.신새벽 죽도를 휘두르며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설움을 베어 냈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노인들에게 검도를 권한다.나이가 들수록 정신수련이 필요하며,정신수련과 체력단련에 검도보다 좋은 운동은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검도는 호구를 착용하기 때문에 부상의 염려가 없고,몸이 직접 부딪치는 격투기가 아니어서 힘이 다소 떨어져도 무리없이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특히 상대방의 죽도에 맞다 보면 자신도 공격을 하게 되며,이러한 원리 때문에 매사에 적극적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검도만큼이나 낚시도 즐긴다.서로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찌가 움직일 때까지 한눈 팔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상대방의 죽도를 노려보는 인내와 비슷하다.정확하게 물고기를 낚아채는 묘미는 검도에서 득점을 올릴 때와 같다.검도와 낚시가 아내와 함께 평생의 반려자가 된 셈이다. “설치지 말고,이기려 하지 말자.돈 욕심 버리고 고마워하자.옛날 일은 잊고 오늘과 내일을 위해 살자.손자 손녀에게,이웃에게 좋은 할아버지로 살자.아프지 말고 아무쪼록 오래 살자.”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다는 그는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대접받는 것은 사양한다.”며 실랑이 끝에 소주 값을 손수 계산했다. 글 이창구기자 window2@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 [대한포럼] 임진왜란과 이라크 조사단

    바람 잘 날이 없다.이번엔 이라크에 전투병 파병 여부를 놓고 세상이 요동을 치고 있다.국가적 쟁점마다 그랬듯 또 끝이 없는,그렇다고 결론도 없는 ‘토론 시대’의 대장정을 시작했다.명분이 없다고 고함을 치면 국가적 실익을 챙겨야 한다고 맞고함을 친다.젊은이들이 남의 전쟁에서 왜 피를 흘려야 하느냐고 삿대질을 하면 전쟁의 빚을 갚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맞받아 친다.서로 목청을 높이는 대목이 다르니 토론이 될 리 없다. 정부는 24일 파병 여부의 판단 자료가 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이라크 현지로 조사단을 파견키로 했다.벌써부터 조사단 보고서가 파병 여부를 판가름하는 방향타가 될 것이라고 야단이다.파병 여부를 결단내야 할 ‘정치력’이 뒤뚱거리니 세간의 억측이 힘을 얻는다.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결정하고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거꾸로 국민 눈치에 연연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질화된 정치권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당장은 바로잡히지 않을 것이고 보면 조사단 보고서는 국가 보고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413년 전이다.임진왜란의 위기가 고조되자 당시 조정에서도 일본에 조사단을 보냈다.국왕으로서 리더십을 장악하지 못하고 파당 싸움에 휘둘리던 선조는 조사단이라는 미봉책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다.당시는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권력 싸움에 눈이 멀어 있었다.세상이 요지경이니 조사단 보고가 한목소리일 리 없었다.조정은 손 쉬운 대로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세자 책봉을 둘러싼 당파 싸움에서 이긴 동인이 평화를 조작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조사단은 일본이 종래의 외교 관례에 따르지 않고 무례하게 대했다고 결론을 내렸다.또 임진왜란의 명분이 된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숨기지 않았다고도 했다.그러나 새롭게 집권한 동인은 일본이 침략할 동정이 없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고 만다.더욱 웃지 못할 일은 조사단의 부책임자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결론 내릴 경우 백성들의 동요로 나라의 혼란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조사단은 벌써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파병을 찬성하는 성향의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이다.조사단의 보고서 내용이 새로운 논란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더구나 조사할 대상마저 현지 정세와 이라크 국민 정서 그리고 안전 문제 등으로 막연하다.조사의 원칙이나 방법마저 객관화되어 있지 않다.현지에서 만나기로 한 대상들이라면 구태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보인다.구색 갖추기 현지 조사라는 비판의 틈을 주기 십상이다. 임진왜란의 역사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이라크 파병을 놓고 각을 세우고 있는 보·혁 갈등의 심각성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조사 보고서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 되는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할 것이다.먼저 조사 대상을 세분화해야 한다.국민 여론을 반영해 조사 항목도 추가해야 한다.그리고 항목마다 몇 단계로 분류해 조사 결과를 계량화하는 작업도 있어야 한다.이라크로 떠나기에 앞서 조사 항목을 몇 단계로 다시 나누어 등급을 매겨 총 평점을 객관화하는 원칙을 마련해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의 국론 분열은 결국 정치 지도층의 책임 있는 처신으로만 봉합될 수 있을 것이다.국민 논란이 지칠 때까지 방치하는 무대응을 대책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지난 4월 야당이 여당을 제쳐두고 서희부대와 제마부대의 이라크 파병을 주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했던가.정치적 리더십 빈곤으로 민족 수난을 키웠던 역사를 413년이 지난 지금에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이라크 조사단은 출국에 앞서 국사 교과서 한 줄을 읽고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정 인 학 논설위원 chung@
  • 친정서 육아 고집하다 이혼한 맞벌이/ 법원 “아내가 위자료 줘라”

    맞벌이 부부가 자녀양육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맞소송으로 다투다 결국 이혼했다.특히 법원은 직장생활을 고집하며 자녀들을 친정에 맡긴 아내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여성단체들은 “법원이 자녀양육을 여성의 책임만으로 판단한 것은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맞벌이 부부인 A(36)씨와 B(32)씨는 99년과 2000년 두 아들을 연년생으로 낳아 키우면서 양육문제로 다투기 시작했다.간호사인 아내는 자녀들을 맡긴 친정에 밤늦게까지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친정에서 잠을 자다 바로 병원으로 출근하는 날도 잦아졌다.공무원인 남편과 시부모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든지 시댁에 들어와 살 것”을 요구했다.그러나 아내는 이를 거절했다. 화가 난 남편은 “2년간 아들을 외가에서 키우려면 2년 동안 친가에서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장모에게 각서를 요구했다.장인·장모도 사위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손자들을 돌려보냈다.남편은 한발짝 더 나아가 “직장을 다니고 싶으면 차라리집을 나가라.”고 말했고,아내는 바로 친정으로 가버렸다. 시부모,장인·장모의 설득 끝에 부부는 아들을 한명씩 친가와 외가에서 나눠 키우는 데 합의했다.그러나 시어머니는 허리통증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다며 부부에게 데려왔다.아내는 “도우미를 구하는 것도 비싸고,직장다니며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것도 무리”라는 메모를 남기고 친정으로 가 별거를 시작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 홍중표)는 3일 “남편이 양육문제의 다툼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장모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점이 인정되지만,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은 친정에서 두 아들을 키울 것을 고집하면서 친정으로 가버린 아내에게 있다.”면서 “두 아들을 시댁과 친정에서 한명씩 키우고,아내는 남편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국여성단체협회 남인순 사무총장은 “부부 공동의 책임인 자녀양육을 법원이 아내의 몫으로 판단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했다.특히 “요즘은 자녀양육을 부모는 물론 사회·국가의 책임으로 보는데 이번 판결은 시대를 역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열린세상] 민주주의와 타자성

    북한이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불참할 것을 시사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참가했다.지나간 일이지만,북한은 대회 불참을 시사하면서 지난 광복절 때 서울시청 앞에서 열렸던 이른바 ‘반핵 반김정일 군중대회’가 인공기를 불태우면서 북한체제의 타도를 선동하고 자기들의 지도자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가한 것을 이유로 삼았다고 한다.이 문제를 두고 제법 진보적인 논조를 유지한다는 신문들도 북한이 남한의 민주주의적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공연한 트집을 잡는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고 논평을 하였다. 그러나 대규모 국제대회를 열겠다면서,또한 그 행사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가장 중요한 손님이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행사 며칠 전에 대규모 군중들이 모여 바로 그 나라의 국기를 불태우고 그 나라 국가지도자의 화형식을 버젓이 치르는 이 무신경과 무례함,그리고 일상화된 증오에 대해 북한이 반발하는 것이 내 눈에는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그들이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식의 모욕에 대해 항의를 표시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북한의 입장과는 별도로 남한 사회 내에 엄연히 존재하는,북한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가진 사람들을 나는 그들의 역사적 체험에 비추어 이해한다.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지난봄부터 반복적으로 대규모 반북 군중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민주주의적 다양성과 의사표시의 자유에 근거해서 두둔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역시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그러나 나는 이 땅에서 민주주의라는 구호가 위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북집회를 여는 사람들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하듯이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생각하면 남한 사회에서 너무도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한 위선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그것은 이 땅의 지배계급 자기들만의 의사표시의 자유였지 참된 의미에서 서로 대립하는 정치적 입장들의 상호존중의 논리였던 적이 없었다.한국적 민주주의란‘자기’만의 자유를 위한 수사였을 뿐,여전히 ‘타자’의 자유에 대한 존중의 논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사정은 지난번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미군부대 진입 시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그 사건의 내용이란 고작 십여 명의 학생들이 미군부대 안으로 들어가 장갑차 위에 올라가서 반미구호를 외친 것이 전부였다.학생들은 화염병도 쇠파이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들은 미국이 한국에 들여온 스트라이커 부대의 위험한 실상을 알리고 이 부대의 해체를 요구하기 위해 지극히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했던 것이다.그런데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시위학생들을 구속한 것도 모자라,그들을 호송하는 법원차량을 가로막고 농성을 벌인 학생들까지 구속하고,대통령이 미국정부에 대해 사과에 가까운 유감을 표시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북한이 언제라도 다시 전쟁을 일으켜 남한을 적화시키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한다.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 내에서 그들과는 달리,미국이야말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정말로 심각하게 위협하는 암적 존재라고 생각하고,미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사람들의 염려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두고 수만명이 모여 인공기를 불태우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화형식을 하는 것이 용인되듯이,미국의 새로 창설된 신속기동여단이 외국으로는 제일 먼저 한국에서 훈련을 한 사실에 항의하여 미군부대에서 비폭력적으로 시위를 벌인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 역시 용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타자성의 존중이 없는 곳에는 민주주의도 없다. 김 상 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 [녹색공간] 한강 하구 생태계의 위기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히말라야 파미르를 넘어 인도와 이웃 나라들을 몇 년에 걸쳐 순례하고 쓴 기행문이다.사경의 연속인 이역만리를 걸어서 순례했다는 것은 어떤 힘으로부터 보호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그가 남긴 기행문에는 인간의 고뇌가 곳곳에 역력히 남아있다.‘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다른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더운 이곳에는 기러기가 없으니/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내 소식 전해줄까.’ 길 없는 길을 떠난 순례자의 절망같은 향수와 고독이 가슴을 저민다.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기러기는 1300년이 지난 지금도 어김 없이 우리 나라를 찾아온다.늦가을이면 한강 하구에도 1만여 마리나 날아든다.행주대교 남단의 제방 도로와 북단의 자유로를 지나다 보면 논밭과 초지에 무리지어 앉은 기러기 떼들을 볼 수 있다. 기러기와 함께 날아드는 개리는 시베리아와 캄차카반도에서 날아온다.기러기와 흡사하지만,개체 수는 훨씬 적다.재두루미는 해마다 아무르강 유역에서 찾아온다.일산과 김포 아파트촌이 가까운 논에서 겨울을 난다.백로를 닮은 저어새는 세계적으로 700마리에 불과하며,한강 하구가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모두가 천연기념물이다.이밖에도 30여종의 겨울 철새들이 날아 앉고,여름이면 백로와 왜가리와 해오라기 수백쌍이 날아들어 둥지를 튼다.흰털발목수리를 비롯한 맹금류들도 철따라 사냥을 즐기고 간다. 그뿐만 아니라,둔치의 수로와 웅덩이는 다양한 수생 식물의 보고이자 민물고기와 연체 동물들의 산란장이다.둔치의 풀밭에는 벌건 대낮에도 고라니들이 마치 방목장처럼 한가로이 뛰놀고 있다. 10여년 동안 생태기행을 다니면서 이토록 다양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열린 공간’을 만난 적이 없다.자동차를 타고 하구 강변 길을 오가며 차창 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파리 생태 관광이다.서울 도심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이토록 튼실하게 생태계가 보전된 것은 반세기 동안 분단의 철책선이 인적을 차단해왔기 때문이다.게다가 한강은 4대강 가운데 유일하게 하구둑이 없는 강이다. 민족 분단이라는 비극을 견디면서까지 지켜온 한강 하구의 생태계가 일산대교 건설로 토막날 위기에 처했다.다리는 인간의 교통로이지만,생태적으로는 큰 장애물이다.당국은 일산대교 길이가 1.8㎞에 불과해 환경 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1997년 김포대교 건설 때도 그런 핑계로 여름 철새들의 낙원이었던 강변 전호산의 생태계를 박살낸 바 있다.다리의 길이는 수치로 잴 수 있을지 모르나,자연 생태의 가치는 길이로도 무게로도 잴 수 없다. 일산대교는 김포대교보다 훨씬 아래쪽 무인지경에 건설되기 때문에 그 영향은 김포대교에 견줄 바가 아니다.김포대교와 일산대교 사이 10㎞는 하구 길이의 3분의1에 해당한다.갯벌과 사구와 둔치가 그로 해서 생태적으로 토막나버린다.더욱이 정부의 발표대로 제2자유로와 고속화도로가 건설되고,인근 농경지들이 택지로 개발되면 한강 하구 생태계는 초토화가 될 것이 뻔하다.한술 더 떠서 인근 지방자치단체는 이참에 민통선 철책을 걷어내고 이곳에다 공원을 조성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말이 좋아 생태 공원이지,그날로부터 하구 생태계는 망가질 것이 자명하다.한강 하구는 민통선 지역이라 생태조사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자연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하고 무례할 수 있는가.정부는 삽질을 멈추고 하저(河底)터널 등 다른 생태적 대안을 고려해보기 바란다. 김 재 일 두레 생태기행 대표
  • 청와대 “더 변해야 한다는 게 우리사회 생각”/한총련 합법화 유보 시사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 대한 참여정부의 시각이 싸늘해지고 있다.지난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주한미군 장갑차 점거사건을 ‘이적(利敵)행위’로 규정,유사행위에 대한 강력대처 방침을 밝히고 있다. 특히 내부적으로 검토해오던 한총련 합법화 조치가 상당기간 유보될 수 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관련기사 3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0일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는 합법화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한총련이 합법화되려면 더 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생각”이라면서 “강령 뿐 아니라 행동방식에서도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죄가 있는 부분은 법대로 처리하되,단순 한총련 가입자에 대한 수배해제 기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온 분리 대응 방침을 밝혔다.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과격시위를 보고받고,“성조기를 태우는 등 동맹국 군대에 그러한 행동과 시위를 한 것은 무례하고,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노 대통령은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와 행동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엄정하게 처리하라.”는 뜻을 반기문 외교보좌관을 통해 마크 민턴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에게 전했다. 고건 국무총리도 9일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미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발생한 한총련 학생들의 반미 기습시위는 국익과 국민정서에 반하는 중대한 이적행위이고 군사시설에 대한 불법 침입 범죄”라고 규정했다. 고 총리는 “시위 가담자는 예외없이 법에 의해 엄중처벌하고,이들을 조종하거나 방조한 배후세력도 색출,엄단할 것”이라며 “미군시설에 대한 경비를 철저히 강화하고 부대시설 침입을 시도하는 시위는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한총련이 8·15 행사와 관련해 ‘서울 집중투쟁’을 갖는 등 투쟁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고 8월15일을 전후한 일정기간 미군 시설 주변을 특별경비구역으로 설정,경찰 경비를 강화키로 했다.고건 총리는 11일 리언 러포트 사령관,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마크 민턴 부대사 등 미국 관계자들을초청,만찬간담회를 갖고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 대책을 설명할 계획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한총련 사태는 노 대통령에게 직접적 책임이 있다.”며 노 대통령의 사과와 강금실 법무장관 문책을 요구했다. 곽태헌 홍지민기자 tiger@
  • “허~참”/청와대 곤혹속 일단 대응자제 유인태수석 정대표 만나 진화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은 24일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청와대 문책인사’ 발언과 관련,파문을 축소하려고 애썼다. 유 수석은 오후 정 대표를 1시간 동안 만난 뒤 기자들에게 “(진상은)별개 아니었다.”면서 “정 대표는 특정인을 겨냥해 문책인사를 하라고 말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말했다.”고 밝혔다.이어 “크게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언론이 갈등을 키운 것”이라며 “정 대표는 그동안 검찰이 한 행동에 대해 납득을 못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그는 “정 대표는 자금수수도 시인했고,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도 없는데 명색이 여당 대표를 출두하라고 하고,피의 사실을 흘리는 검찰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유 수석은 “정 대표는 무례하거나 무리한 검찰의 행동에 대해 청와대가 제동을 걸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서운함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수사를 보면,검찰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이미 보여준 것이 아니냐.”면서 “(나도)안타깝다.”고 말했다.현 정부 들어 청와대가검찰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유 수석은 ‘정 대표가 문재인 민정수석 등 특정인을 겨냥해 문책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앞으로 인사를 할 때 잘하라는 뜻으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곽태헌기자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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