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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철낭자 우이/이목희 논설위원

    우이(吳儀) 중국 국무원 부총리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우 부총리는 지난 2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귀국해 버렸다. 일본 지도자들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속하겠다는 데 대한 경고였다. 그녀의 행동에 중국 네티즌들은 환호 일변도다. 일본 내에서도 ‘고이즈미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부른 결과’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 부총리의 카운터펀치에 고이즈미 총리가 된통 당한 형국이다. 독신인 우 부총리는 일화가 많다. 중국 여성 가운데 남편의 후광 없이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1990년대 미국 무역대표부(USTR) 칼라 힐스 대표를 향해 “날강도”라는 독설을 퍼부으며 ‘철낭자(鐵娘子)’라는 별명을 얻었다. 베이징 부시장 시절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1년 이상 귀가하지 않는 등 독한 일면이 있다.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친화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다. 우 부총리 파문을 놓고 중국은 느긋한 반면 일본은 초조하다. 명분은 물론 실리에서 일본이 밀리는 까닭이다. 역사왜곡에 찬동하는 세력은 일본 내 보수강경파뿐이다. 게다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면 중국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뺨을 맞은 일본 정부가 오히려 “빨리 수습하자.”며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근본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전제를 깔고, 엄밀히 살피면 중국에도 문제는 있다. 질서있고 안정된 사회가 유지되려면 구성원간 ‘에티켓’이 지켜져야 한다. 국제관계에서는 이를 ‘프로토콜’이라 부른다. 양인의 회담은 중국측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 부총리는 고이즈미 총리보다 서열상 낮은 위치다. 몇시간 전에 정치적 이유로 취소를 통보하는 것은 외교의례에 한참 어긋난다. 일단 만나서 공식항의하는 게 상식에 맞다. 이번에는 중국이 득을 봤지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 에티켓을 무시하는 사태가 다반사로 일어난다면 서글픈 일이다. 국제관계가 정상궤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측이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 프로토콜을 깨면 한국도 속이 시원하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한국을 향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몇차례 중국의 외교무례를 경험했다. 인접국을 무시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독불장군 외교’에 중국까지 ‘안하무인 외교’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일본은 熱…熱 양국 관계 冷…冷

    |도쿄 이춘규특파원·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우이(吳儀)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전날 ‘긴급 공무’를 이유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귀국한 데 따른 책임 소재를 놓고 양국은 감정싸움 양상을 띤 공방을 벌였다. 일본 조야는 일제히 중국의 ‘무례’를 규탄하고 나섰고 중국 외교부는 오히려 일본 지도자들의 신사 참배 발언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며 맞섰다. 이에 따라 한동안 잦아들었던 중국에서의 반일 시위가 8월15일을 전후해 재연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마저 나오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문 회담 취소는 우 부총리가 직접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협상을 했지만 여의치 않다.’라는 이유를 들어 본국에 제의한 것을 중국 지도부가 받아들여 내려졌다고 교도통신이 24일 보도했다. 통신은 복수 소식통의 말을 인용, 중국 지도부가 22일 밤 긴급회의를 열어 동의 회신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에 이어 24일에도 “유감스럽게도 우 부총리의 방문 기간에 일본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거듭 거론해 중ㆍ일 관계를 해쳤고 중국은 이를 몹시 불만스럽게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쿵 대변인은 외교적인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면담 취소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중국 인민의 감정에 상처를 입힌 것은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었다. 이어 ‘사본축말(捨本逐末-본말전도와 같은 뜻)’이라는 사자성어까지 동원, 중요한 것은 면담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일본측의 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며칠 전 침략전쟁에 참전했던 91세 일본인이 과거사를 사죄한 사실을 들며 “어째서 일본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와 관련, 중국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타이완 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면담 취소 전 양측은 참배 문제를 두고 무려 1주일간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라고 지적했다. 중국측은 이 협상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다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일본측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고이즈미 “그런 것은 통하지 않을 것” 일본은 중국의 일방적인 회담 취소가 전례없는 ‘국제적 결례’라고 성토했다. 특히 우 부총리가 베이징이 아닌 다롄(大連)으로 귀국한 데다 예정대로 24일 몽골 방문 길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은 “사과 한마디도 없다.”며 “외교적인 매너 같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 국가간의 교제가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사자인 고이즈미 총리도 회담 취소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답을 7번이나 되풀이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그런 것(회담 취소)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시사했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회견에서 “일국 총리와의 회담을 돌연 취소하는 것은 예를 잃은 것”이라며 “중국은 원래 ‘예의 나라’였는데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산케이신문 등 언론들도 기사와 사설을 통해 강한 불쾌감과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 간부는 “회담 취소는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며 고이즈미 총리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치다 공산당 서기국장는 이번 사태에 대한 논평을 거부하면서도 “야스쿠니 참배는 아시아와 일본의 우호와 관련된 근본 문제”라고 강조했다. oilman@seoul.co.kr
  • 儒林(346)-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46)-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또한 궁리(窮理)란 말은 문자 그대로 ‘만물의 이치를 골똘히 연구한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에 대해서 그 원리를 추구함으로써 완전한 지식, 또는 지혜를 이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자의 ‘격물치지(格物致知)’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퇴계는 이처럼 몇날 며칠을 ‘거경(居敬)’속에 있으면서 ‘골똘히 이를 연구하였던’ 것이다. 12살의 퇴계는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문득 한 소식을 얻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초견성(初見性)을 한 것이었다. 공자가 평생을 두고 말하였던,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즉 인, 의, 예, 지, 신의 도덕적 윤리보다도 인간에게는 본성으로 갖고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본성은 인보다 우선하고 심지어 불의하고 무례한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고 있으며, 무식하거나 믿음이 없는 인간의 마음 속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마음이 마부라면 인, 의, 예, 지, 신과 같은 오상은 말에 불과하며, 이 본성이 주인이라면 오상은 주인을 따라가는 종인 것이다. 이 마부와 주인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며, 이것이 바로 ‘이(理)’인 것이다. 며칠 동안 ‘거경궁리’하였던 퇴계는 다시 송재공을 찾아와 ‘이’에 대해서 말하였다. “몇날 며칠을 이에 대해서 궁리하였습니다.” “그래 무엇을 좀 깨달았느냐.” “너무 어려워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송재공은 퇴계의 밝은 얼굴에서 뭔가 느꼈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다시 물어 말하였다. “그래도 뭔가 얻은 것이 있을 터인데.” 그러자 퇴계는 대답하였다. “아직 정확히는 잘 모르겠사오나 모든 사물에서 마땅히 그래야 할 시(是)를 이(理)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퇴계의 이 대답에 평소에 조금도 칭찬하거나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송재공도 크게 기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언행록은 기록하고 있다. “…송재 선생은 크게 기뻐하면서 ‘너의 학문은 이로써 문리를 얻은 것’이라고 크게 평가하였다.” 12살의 퇴계가 ‘이’를 ‘모든 사물이 마땅히 그래야 할 시(是)로 본 것’은 이미 성리학의 대사상가와 대철학자로서의 기틀이 마련되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공자가 인간에게 ‘어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편 것은 강제조항의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인간의 본성에 의거한 자연스러운 행위인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양심(良心)’이라고 불리는 이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때부터 가진 인간의 본성이 마음의 본체라면 인, 의, 예, 지, 신의 오상은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12살 때 초견성했던 퇴계는 마침내 18살에 이르러 다시 크게 깨닫는다. 이른바 오도(悟道)하였던 것이다. 원래 ‘오도’란 불교의 진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퇴계는 유교의 철학을 확철대오하였던 것이다. 이때 남긴 오도송(悟道頌)이 지금도 남아 전해지고 있다.
  • 김일성 秘史 전하는 조선족 항일투사 리민 여사

    김일성 秘史 전하는 조선족 항일투사 리민 여사

    |하얼빈 오일만특파원|리민(李敏·81) 여사는 10년간 헤이룽장(黑龍江)성 성장을 지낸 천레이(陳雷·90)의 부인으로 조선족이다. 12살에 항일운동에 투신했고 북한 김일성 주석이 속했던 동북항일연군에서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1942년부터 45년까지 3년여 동안 김일성·김정숙 부부, 김정일과 함께 당시 소련령 하바로프스크 인근 브야츠크 마을의 소련군 야영지에서 88특별여단에 편입됐다. 리 여사는 이 곳에서 김일성, 최용건, 안길, 강건, 최현, 김일, 최광 등 훗날 북한 정권의 핵심이 되는 빨치산 대원들을 만났다. 리 여사는 후에 헤이룽장성 정협 부주석 자리까지 올랐다. 리 여사는 하얼빈 자택에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 내내 노전사답게 꼿꼿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60년이 넘는 과거사임에도 정확한 기억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1942~45년까지 김일성부부와 활동 리 여사는 김일성이 소련군의 명령에 따라 북한 지도자로 옹립됐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리 여사는 “당시 88여단 내에서 최용건과 김책 등이 김일성보다 상급자였다. 이들은 해방 후 투쟁 방향과 진로를 모색하는 내부 비밀회의에서 김일성을 지도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소련은 해방 후 중국과 북한의 공산세력 확대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88여단의 소련측 책임자가 ‘조선인 가운데 누구를 지도자로 삼을 것이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최용건 등은 비밀회의에서 ‘김일성의 군사적·정치적 능력이 탁월하고 나이도 우리보다 젊다. 그를 우리의 지도자로 삼아야 한다.’고 추대 이유를 설명했다고 회고했다. ●문학적 재능 많았던 김일성 김일성은 88여단 시절 ‘단결무’라는 가무극을 직접 만들어 조선인 부하들과 함께 공연하고 노래까지 불렀다고 한다. 리 여사는 “정열적이고 활달했던 김일성은 상대방을 편하게 해줬으며 문학적 재능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리 여사는 당시 김일성이 직접 작사했다는 ‘사향가(思鄕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내 고향을 떠나올 때 어머니 내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고 하시던 말씀. 아아 귀에 쟁쟁해….”라는 노래인데 당시 조선인 전사들 사이에선 꽤 유명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결혼 주례 김일성과의 일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결혼 주례 사건이다. 당시 리 여사는 중국인 천레이와의 연애 사건에 휘말렸다. 천레이는 자아비판과 함께 공산당에서 제명된 상태였고 조선인 동지들도 리민의 장래를 위해 지주 출신인 천레이와의 결혼을 만류했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단순한 연애가 아닌 ‘혁명적 동지의 결합’이란 김정숙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일성이 중국인 지도부를 설득, 전격적으로 결혼을 성사시켰다.1943년 섣달 그믐날 리민 부부는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이날 최광·김옥순 부부도 백년가약을 맺었다. 리민 부부는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대를 받는 각별한 관계였다.92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은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통역없이 이들을 단독 접견했다. ●김정일은 전쟁놀이 즐겼던 골목대장 리 여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첫 만남을 42년 가을로 기억하고 있다.“42년 가을 강보에 싸인 젖먹이 김정일을 처음 봤다. 이후 45년 8월15일까지 김정일의 성장 과정을 지켜봤다.”고 밝혔다. 당시 리 여사는 통신대대에 근무, 상관인 최용건을 자주 만났다. 당시 최용건은 김일성과 같은 막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막사에 가면 가끔 어린 김정일을 만날 수 있었는데 피부가 검은 데다 키가 작고 총명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김정일은 아버지의 큰 모자를 쓰고 목총을 갖고 군대놀이를 즐겨했다. 큰 모자 때문에 눈이 가려진 채 뛰어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막사에 손님이 찾아오면 중국말과 한국말로 번갈아 ‘엄마, 아빠’를 불렀다.”고 회고했다. 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이 전해지면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파티가 벌어지고 흥에 겨워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평소 바지를 입기 싫어하던 김정일이 이날만은 스스로 바지를 찾아 입고 또래 유치원생들을 이끌고 전선에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워 주위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94년 7월20일 김일성 주석 장례추도대회가 끝난 직후 리민 부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우리 부부가 조의를 표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앞으로도 예전처럼 자주 방문해 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아 내 뺨에 갖다 대는 무례를 범했다. 옛날 김정숙 동지의 얼굴과 김 위원장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서였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의 천레이 부부 접견 사진은 이례적으로 노동신문에 공개됐다. 리민 부부는 98년 9월 공화국 창건 50돌에 다시 초청을 받아 27일간 북한에 머물렀다. ●만주 항일전사 리민 리 여사의 항일 투쟁은 남한의 역사책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30년대 만주 항일 운동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조선의 좌익계열은 1928년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노선’에 따라 중국공산당 휘하에 들어갔고, 그들과 함께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을 창립했다. 이 부대에는 조선인들이 많았고 45년 종전 당시 1000여명 가운데 300여명이 조선인이었다. 리민은 중국인 리자오린(李兆麟) 장군이 총사령인 3로군 예하 부대에서 활동했다. 동북항일연군은 여러 차례에 걸친 조직개편 끝에 활동지역에 따라 1로군(동만주),2로군(지린성 동부),3로군(북만주)으로 재편된다. 당시 김일성은 1로군 제2방면 6사장(師長·대대장급)으로 일본군에 의해 동북항일연군이 와해되는 시점인 41년 전후로 상급자들이 대부분 사망, 지도적 위치에 올랐다. 최용건은 2로군, 김책은 3로군 소속이었지만 김일성보다 나이는 물론 직책도 높았다. 1924년 헤이룽장 오동하에서 태어난 리 여사는 부모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 인근에서 살다가 압록강을 건너 헤이룽장 삼강평원에 정착했다. 항일 무장투쟁 과정에서 아버지와 오빠가 사망했고 천레이는 오빠와 절친한 전우였다. 리 여사는 최용건이 세운 모범소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 무장투쟁 부대에 들어갔다. 그는 처음에 유격대원들의 취사 보조원, 간호원 등 비전투원으로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리 여사는 소총이나 기관총 사격은 물론 말타기에도 익숙해져 완전한 전투원으로 임무를 충실히 해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37∼38년 무렵 일본군의 토벌공세가 거세지면서 송화강 유역 삼강평원 일대의 부금이나 밀산·완달산 등지에서 큰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3로군은 기병대가 주력인 일본군에 맞서 수목이 울창한 삼강평원의 늪지대로 퇴각하는 유격전술을 폈다. 1938년 여름 완달산 전투에서는 300여명의 부대원 가운데 고작 60여명이 살아남았다. 당시 일본군은 군인과 개척단 수천명을 동원, 동서남 3면을 포위하고 고립 전술을 폈다. 서서히 좁혀 오는 포위망 속에서 6일간 물 한 방울도 먹지 못하고 굶주렸다. 결국 북쪽 절벽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상당수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가면서 포위망을 탈출했다. 리 여사는 “일본군 총에 맞아 죽고 굶어 죽어가던 전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고 회상했다. 일본군은 30년대 말 초토화 작전을 펴면서 유격대가 숨을 만한 산림을 아예 불태워 근거지를 없앴다. 배고픔과 추위는 그런 대로 참았지만 일본군의 교활한 귀순작전에 심리적 동요를 일으킨 전우들의 배반이 가장 가슴 아팠다. 리 여사는 마지막까지 저항했고 그가 속한 3로군은 41년 국경선을 넘어 옛 소련령으로 들어갔다. 천레이 부부는 문화대혁명(66∼76년) 당시 반동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의 실권 장악과 함께 복권됐다. oilman@seoul.co.kr ● 리민 여사는 1924년 중국 헤이룽장성 오동하에서 태어나 12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항일운동에 투신했다.1942∼1945년 김일성 주석과 부인 김정숙 등 북한 핵심 인사들과 88특별여단에서 활동하며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중국인 지주 출신인 천레이와의 결혼식 주례를 김일성 주석이 할 정도였다.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반동으로 몰렸다가 복권됐으며, 남편 천은 후에 헤이룽장성 성장을 10년간 지냈고, 리 여사 역시 헤이룽장성 정협 부주석을 역임했다. ■설훈 전의원 만난 리민 여사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 벌판에서 이름없이 죽어간 항일 전사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통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천레이(陳雷·90) 전 헤이룽장(黑龍江)성 성장의 부인이자 정협 부주석을 지낸 리민(李敏·81)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리해 ‘통일 도자기’를 전달받기 위해 찾아온 설훈 전 의원을 반갑게 맞았다. 항일동북연군에서 10년 가까이 사선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했던 리 여사는 지난 2000년 역사적인 ‘남북 6·15 공동선언’을 전해 듣고 며칠 동안 기쁨에 들떠 있었다고 한다. 리 여사는 “2002년 6·15선언 2주년을 맞아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 도자기’ 2개를 만들어 그 중 하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냈지만 김대중 선생에게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동안 안타까웠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며 기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통일 도자기를 전달받은 설 전 의원은 “리민 여사의 통일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남은 여생 동안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말씀을 대신 전한다.”고 말했다. 리민 여사가 기증한 통일기원 도자기는 김대중 도서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oilman@seoul.co.kr
  • [문화마당] 정직한 관객/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아마 재작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친한 후배가 음악회 초대권을 주었다. 한때 세계 성악계를 주름잡던 소프라노의 내한 독창회 초대권이었다. 명색이 음악평론가지만 표값이 하도 비싸 평소 세계적인 음악가의 연주회는 가 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나에게 그 초대권은 가뭄에 단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표를 받으면서 내심 우려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때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이름을 날리기는 했지만 현재 그녀의 나이로 볼 때 은퇴를 해도 한참 전에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아직까지 노래를 할 만 하니까 계속 무대에 서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연주회장을 찾았었다. 그런데 첫 곡인 로시니의 아리아를 듣는 순간 나의 막연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 동안 내가 음반을 통해 들어오던 그런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예 거의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음반을 통해 전성기 때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직접 그녀의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은 아마 말할 수 없이 실망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여전히 무대에 설 수 있는 그녀의 용기(?)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한 물 간 소프라노를 초청해 비싼 입장료를 받아 챙긴 주최측의 배짱이었다. 나야 초대권을 받아서 갔으니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지만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사람들은 정말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정작 마지막 곡을 부른 다음에 일어났다. 클래식 마니아는 물론이고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 들어도 너무나 말이 안 되는 그런 노래를 들은 후에도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연주 도중에 야유를 하며 퇴장을 해도 성이 안 찰 판인데 박수를 치는 것도 모자라 앙코르까지 청하다니. 아무리 손님에게 예우를 다하는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이라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세계적으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한 피아니스트가 한국에 와서 말도 안 되는 연주를 하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연주곡목 중에 바흐의 곡이 있었는데 그것을 외우지도 못해 악보를 보고 쳤는가 하면 연습 부족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왼손을 아예 빠뜨리고 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주자로서 기본적인 자세가 안 된 사람들이 소위 세계적인 연주자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최상의 대우를 받고 간다. 그 때 알 만한 사람은 그것을 보면서 분노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연주자라도 언제나 최상의 연주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관객들은 그 사람이 현장에서 얼마나 연주를 잘 하는가보다는 그 사람이 세운 화려한 이력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화려한 이력에 주눅이 들어 정직한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외국 연주자들 사이에 한국에 가면 아무리 연주를 못해도 박수를 받는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관객은 자기 느낌에 대해 정직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연주자라도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다. 벌거숭이 임금님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신하들처럼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몇 년 전에 어떤 독창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무대에 선 사람은 국내 굴지의 음악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객석은 동료교수와 제자 그리고 학부형인 듯한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연주의 질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심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래가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부모를 따라온 듯한 한 꼬마가 무례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이. 목소리가 왜 저렇게 이상해?” 그 순간 나는 이 시대 가장 정직한 관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 [깔깔깔]

    ●나와 직장상사의 견해 차 * 내가 어쩌다 사우나를 가면 근무 이탈이고, 상사는 매일 사우나 가는데도 업무중이다. * 내가 술주정을 하면 곧바로 왕따를 당하지만, 상사가 술주정을 하면 ‘얼마나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았길래?’하면서 집까지 데려다 준다. * 내가 꾸물거리면 미련한 탓이고 상사가 꾸물거리면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 때문이다. * 내가 상사를 즐겁게 해주면 곧바로 손바닥이나 비비면서 아부하는 치사한 인간이 되고 상사가 자기 위의 상급자를 즐겁게 해주면 중대한 업무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 내가 어쩌다 실수를 하면 매우 멍청한 탓이고 상사가 실수를 하면 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내가 예의를 안 지키면 무례한 것이고 상사가 예의를 안 지키면 그래야 부하 직원들에게 위엄이 선다고 한다.
  • [불붙는 韓日외교전] 여야 “도발적 발언” 공분

    ‘일본엔 공분(共憤), 대통령 행보엔 이견.’ 일본 장관들의 잇따른 ‘망언’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표정이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의 발언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강력 비난했다. 나아가 일본 정부의 사과와 관련 장관 문책도 촉구했다. ●“각료들 순번”정해놓고 망언 쏟아내 열린우리당 오영식 원내부대표는 30일 “한·일 문제를 촉발시킨 장본인인 일본 외상의 시대착오적 망언에 분노를 느낀다.”면서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유기홍 의원은 “국가원수에 대한 무례하고 도발적인 발언”이라며 “마치 각료들이 순번을 정해 놓고 하는 것처럼 이어지는 작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에서도 박근혜 대표는 “한 나라의 대통령에 대해 일본 외상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일본 정부는 사과하고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이웃 국가를 욕보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가세했고 전여옥 대변인은 “당장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노동당 홍승하 대변인은 “일개 장관이 다른 나라 대통령에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성토했고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대한민국에 대한 무례를 범한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외교 노선과 ‘망언’을 부른 원인에 대해선 여전히 생각이 달랐다. ●“盧대통령 외교전 발언의 부작용” 지적도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노 대통령이 구체적·체계적 계획도 없이 대일 외교전을 불사하겠다는 포퓰리스트적인 발언을 해서 돌아오는 부메랑”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열린우리당 오 공보부대표는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당리당략으로 판단하지 말고 초당적으로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유기홍 의원도 “대통령이 주권 문제를 놓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을 환영하고 도와야 한다.”고 가세했다. 이종수 김준석기자 vielee@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신원증명 발급때 파산·복권 기재 면책·복권되면 공무원 임용 가능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5000만원의 보증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불법으로 돈을 벌어서 갚는 것 말고 살 길은 파산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문제는 제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파산을 하고 나면 공무원이 될 수 없고 호적이나 주민등록상에 기재가 되어 자식에게도 지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망설여집니다.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임걱정(27·가명)- 먼저, 부모와 조상의 파산이 자식에게 지장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주 무례한 인종·신분 차별적인 이야기임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혈통이 다른 사람을 보고,“흑인, 유태인은 장래 출세할 수 없다는데.”라고 말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신분이 자식에게 상속되는 제도를 우리는 100여년 전에 공식적으로 버렸습니다. 물론 조상이 생전에 쌓아 온 재산은 상속되는 것이고, 명예도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없더라도 능력 있는 젊은이의 출세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무능하고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출세를 했다면 그것은 미담이 됩니다. 무례하고 무지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로 인생을 규정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공무원법에 의하면 파산 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사람은 공무원으로 임용되지 못하게 되어 있고, 다른 법에도 결격 사유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복권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을 받으면 당연히 복권이 되며, 이 같은 사람은 신분상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또한 파산 선고를 받은 사실은 호적부나 주민등록부에 기재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사람을 죽인 전과기록도 호적부에 기재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말이 돌아다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본적지에서는 파산자명부를 두고 있고, 신원증명서를 발급할 때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사실이 있는지의 여부를 기재합니다. 더욱이 그 절차에서 면책을 받으면 파산법원은 본적지에 통보도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은 것을 이유로 차별한다면 헌법에 위반되는 사회적 신분제가 되기에 부당합니다. 한가지 더 실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파산으로라도 채무를 청산하지 않고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이 공무원으로 임용된다고 해도 제대로 근무할 수 있을까요. 결국 파산이 문제가 아니고 채무가 문제인 것입니다. (파산·개인회생 전문 변호사)
  • 떠오르는 허니문 여행지 호주

    떠오르는 허니문 여행지 호주

    호주가 허니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흔히 호주라면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와 골드코스트 해변을 생각하지만 멜버른이야말로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여행지다. 끝없이 펼쳐있는 푸른 평원, 변덕 심한 파란 하늘,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달려드는 파도, 태곳적 초록의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멜버른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뽑은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며 호주의 문화와 패션의 중심지다. 또 파도와 해풍이 만들어낸 기암절벽에 감탄사가 흘러나오는 그레이트 오션로드, 푸른 바다와 은빛 모래사장에 우뚝 서있는 12사도 바위,1850년대의 금광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버린 힐, 증기기차로 원시림을 여행하는 단데농. 때 묻지 않은 대자연과 함께하는 허니문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기에 충분하다. 멜버른은 캔버라가 수도가 되기 전 호주의 옛 수도였던 만큼 역사가 깊은 도시다. 패션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곳에선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촬영하기도 했다. 도심이 아름다워 각종 CF와 드라마의 단골무대이기도 하다. ●1800년대 전차 타고, 야라 강 배를 타고 멜버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트램(Tram)’이라는 전차.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도심도로의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트램은 멜버른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고풍스러운 자주색 나무의 전철인 시티서클 트램을 탔다. 차창으로 보이는 이국의 풍경,1800년대에 지어진 뾰족한 지붕의 유럽풍 교회, 건물들이 눈길을 잡는다. 마치 잘 정리된 거리가 소박하다. 갑자기 트램이 속도를 줄인다. 앞에 관광용 마차가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를 내며 여유있게 도심을 돌고 있다. 뒤에서 빵빵거리고 불평도 함직한데 아무도 얼굴 붉히는 사람이 없다. 마차와 자동차가 뒤섞였으나 결코 각박하지 않아 아름답다. 이곳 사람들의 여유도. 트레저리 공원, 캡틴 쿡의 오두막, 사우스 게이트, 빅토리안 아트센터 등 주요 관광지를 도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한다. 무료. 멜버른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야라강변은 호주 젊은이들에겐 최고의 데이트 코스. 그들에 섞여 강변을 걸어보는 맛도 특별하다. 플린더스역 맞은편 식당가가 들어선 야라강변 샤우스뱅크 거리에서 강을 따라 1시간 동안 유람선 여행을 할 수 있다. 보통 20여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배이다. 강변에는 멜버른의 여유가 그대로 느껴진다. 잔디밭에 누워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는 연인들. 커다란 나무 아래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가족들. 강변을 따라 걷는 사람. 카누와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강변과 어우러져 그림 속에 내가 들어온 것 같다. 사우스뱅크거리에는 강변을 따라 수십개의 식당과 카페들이 밀집해 있다. 야라강의 야경을 즐기며 맥주 한 잔을 하면 밤은 더욱 달콤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100살짜리 증기기관차를 타고 ‘도대체 100년 된 기차가 움직인단 말야.’하는 의문을 품고 멜버른에서 동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휴양지 단데농에서 100살짜리 빨간색 증기 기관차 ‘퍼핑 빌리’를 탔다.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칙칙칙 기차가 움직인다. 그런데 아이들이 차창 창살사이에 걸터앉아 손을 내민다. 기차가 천천히 달리고 안전장치가 있어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우거진 원시림과 푸른 계곡 속으로 기차는 미끄러져 들어간다. 향긋한 나무냄새. 크게 숨을 한번 들여마신다. 나무다리와 꽃, 새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매일 4차례 운행되는 증기 기관차는 벨그레이브 역을 출발해 에메랄드 호수 구간까지 약 15㎞를 반복 운행한다. 약 2시간30분. 역장과 기관사의 복장뿐 아니라 기차표까지 100년전 그모습 그대로라 더 멋지다. ●겁없는 캥거루 호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캥거루와 코알라. 특히 캥거루는 겁이 없어 사람에게 먼저 접근한다. 벨그레이브역 인근의 힐즈빌 동물원에서 캥거루와 처음 만났다. 먹이를 내밀자 다가와 손바닥을 핥는 놈들. 경계심이 전혀 없다. 보드라운 캥거루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려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목이 긴 타조가 다가온다. 또 하루 중 20시간 이상을 잔다는 코알라. 눈만 끔뻑거리고 먹는 것 빼고 제발로 움직이는 시간이 하루 겨우 4분정도인 진짜 게으름뱅이 귀염둥이들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태즈매리언 데블, 오리너구리, 왈라비 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매일 오전 11시 투어가이드가 안내한다. 어른 17.5호주달러. ●황금을 찾아서 멜버른은 지난 1850년대부터 금을 찾아 몰려든 광부들이 만든 전형적인 골드러시 타운이다. 대부분의 금광이 문을 닫았지만 멜버른 북서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밸러랫의 소보린 힐에 가면 당시 금광촌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마치 우리 민속촌을 생각하면 된다. 빅토리아주 금의 삼각지대에 속하는 밸러랫은 1851년 황금이 첫 발견된 데 이어 무려 70㎞에 이르는 커다란 금광맥에 이르기까지 당시에 골드러시를 주도했던 곳이다.1970년에 소보린 힐을 만들어 1850년대 금광촌의 생활상과 금 채굴과정 등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빅토리아 양식의 대장간, 사탕가게, 우체국, 금제련소뿐 아니라 뿌연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마차까지. 거리에는 19세기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관광객들과 함께 금광 갱도안으로 들어가 금맥과 채굴과정 등을 설명해주고 금광옆 개울에 앉아 직접 사금을 채취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공짜라는데‘라며 옷을 팔뚝까지 걷어붙이고 개울에서 흙을 그릇에 담아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견학 온 학생들은 눈곱만한 사금들을 찾아서는 조그만 약병에 담아 서로 자랑한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끼며 난파선해안은 아름다움에 취해 난파한 배가 160여척에 달해 붙여진 이름. 이곳은 웅장한 12사도상(Twelve Apostles)이 유명하다. 해안선을 따라 나란히 서 있는 거대한 바위섬들의 모양이 마치 예수의 12제자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2사도의 형성과정은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한다. 폭약이나 기계 등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세찬 파도와 해풍이 대자연의 걸작품을 만들었다. 파도가 해안 절벽에 아치형 굴을 만들고 절벽과 돌출부를 끊어 내어 바다에 홀로 우뚝 선 거대한 조각품을 만들었다. 이 조각품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무렵 2000여만년.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상상을 할 수조차 없는 시간이다. 그들은 지금도 세찬 파도에 자신의 살이 깎여 나가는 고통을 참아내며 무엇인가 우리에게 읊조리고 있는 듯하다.‘대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초라하고 하잘것없는 존재인지, 만물의 영장이라며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내고 자연을 정복했다고 교만하고 무례한 인류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말이다. 12사도상은 완성된 지 수백년이 지나면서 그들을 만들었던 파도와 해풍에 밑동부터 서서히 깎여나가 결국을 무너지는 운명을 맞게됐다. 벌써 2개의 사도상은 무너졌다. 그들도 인간처럼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파도가 만든 두개의 구멍이 다리 같다고 이름 붙여진 런던브리지. 해안절벽과 연결된 부분이 1990년 떨어져 나가 이제는 사도상으로 발전을 했고,1878년 영국을 떠나 3개월 간의 긴나긴 항해 끝에 로크 아드호는 멜버른을 눈앞에 두고 이곳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붙여진 12사도 인근의 로크 아드 고지. 자연의 아름다움은 황홀했다. 지금도 파도와 바람에 의해 쉼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난파선 해안. 높이 60m의 수직절벽이 앞으로 1000년의 세월이 흐르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궁금해졌다. ●지금 호주는 호주 대륙 남단에 있는 빅토리아주 멜버른은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다. 지금은 초가을. 그러나 일교차와 날씨 변화가 심해 가벼운 잠바는 필수.3월 말까지 서머타임을 적용해 멜버른이 우리보다 2시간 빠르다. 환율은 1호주 달러에 830원정도. 멜버른까지는 현재 직항편은 없으며 시드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든지 캐세이 퍼시픽 항공을 이용하면 홍콩을 거쳐 멜버른으로 바로 갈 수 있다. 문의 호주 빅토리아주관광청02-752-4138. ●허니문 상품은 여행상품 가야여행사(02-536-4200)에서는 멜버른과 시드니를 여행하는 허니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매주 금·토·일요일 출발하며 5박 6일의 일정으로 멜버른 시내, 그레이트 오션 로드, 단데농과 시드니까지 둘러보게 된다. 캐세이 퍼시픽 항공을 이용하고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서 연장체류도 가능하다. 가격은 1인당 169만원. 멜버른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해외 허니문 베스트 5 둘만의 사랑이 시작되는 허니문. 갈 곳은 많고 시간은 짧다. 그렇지만 안락한 리조트에서 편하게 쉴 것인가 아니면 멋진 곳에서 추억을 남길 것인가를 꼼꼼하게 따져 보면 둘만의 멋진 장소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해외 허니문 명소 5곳을 소개한다. 베트남 나트랑 베트남의 지중해로 불리는 나트랑은 호찌민(사이공)에서 북동쪽으로 320㎞쯤 떨어져 있는 세계적인 미항이다. 금빛 모래사장과 눈부신 햇살, 에메랄드빛 바다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리조트내에서 낭만적인 바비큐 파티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다. 고대 참 왕국의 유적이 많아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베트남전쟁 때는 한국군이 주둔한 곳으로, 태권도 간판을 비롯해 곳곳에 한국군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다.4박 5일에 비용은 130만∼150만원. 태국 코사무이 방콕에서 남쪽으로 560㎞ 떨어진 코사무이는 태국에서 푸껫과 꼬창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섬 둘레를 따라 고운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을 띠는 해변의 바다가 곳곳에 위치해 있다. 여행객 대부분은 유럽인들이며 한국 여행객들의 발길도 점점 더 늘고 있는 추세다. 때묻지 않은 해변의 모습으로 여행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볼거리, 놀거리, 휴식처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다.4박 5일에 130만∼150만원. 필리핀 펄팜 진주조개 농장이라는 뜻의 펄팜은 자연속에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마닐라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 20분 가량 남쪽으로 가야 한다. 도착공항인 다바오에서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가서 여기서 필리핀 전통목선(엔진추진)인 방카로 갈아타고 다시 30여분 바다를 질주한다. 때묻지 않은 자연과 수줍은 듯 감추는 원주민의 미소띤 모습 속에서 평생 잊지 못할 일생일대의 화려한 휴가를 보내게 된다. 펄팜리조트에 일단 들어서면 해양레포츠(무동력)는 모든 것이 무료다. 펄팜리조트는 태풍영향을 받지 않아 연중 맑고 청명한 날씨를 자랑한다.4박 5일에 비용은 120만∼130만원. 캐나다 밴쿠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나라 1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최대의 도시인 밴쿠버의 가로수와 아름다운 꽃길은 로맨틱한 신혼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캐나다 건국을 기념하는 밴쿠버 100주년 박물관과 해양박물관, 사이언스 월드, 아마존의 진귀한 물고기가 있는 수족관 등을 돌아본 뒤 북미 최대의 항구도시 빅토리아를 돌아보는 코스가 좋다. 특히 북미 최대의 항구이자 영국풍의 아침의 향기가 감도는 꽃의 도시 빅토리아로의 허니문은 새로운 체험이 시작된다.4박 5일에 150만∼170만원. 파리와 로마 유럽의 핵심 도시인 파리와 로마를 돌아보며 신혼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과 샹젤리제 거리, 콩코드 광장, 개선문, 에펠타워 등 17∼18세기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로마에선 교황이 머무는 바티칸과 성베드로 광장, 콜로세움 등 찬란했던 이탈리아 문화를 엿볼 수 있다.5박 6일에 140만∼150만원. ■ 도움말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
  • [사설] 독도는 일본땅 외치는 다카노대사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외교무례다. 더구나 수십명의 주한 외국특파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 것은 전세계를 향해 망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일관계를 고려하며 외교적 수사로 답할 수도 있는 것을 굳이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다케시마(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못박은 것은 명백한 외교도발 행위다.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대신 소환해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다카노대사에 대해선 유사 언행을 되풀이하는지 엄중 주시할 것이다. 한·일 양국은 올해를 특별히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해 각종 교류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이런 우호분위기속에 나온 다카노대사의 망언은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양국관계 증진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더구나 다카노대사의 발언은 일본 시마네현이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제출한 것과 관련, 우리 정부가 강력항의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의도적 발언이라는 인상을 짙게 한다.1905년 독도를 일본영토로 강제편입한 만행을 기념해 이날을 독도의 날로 정하겠다는 시마네현 조례도 말이 안 되지만, 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이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열도의 한류열풍에 일본 정부는 시샘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6자회담을 앞두고 일본의 협조가 아쉬운 우리의 처지를 이용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만행과 관련, 툭하면 망언을 되풀이해 왔지만 우리는 미래를 위해 가능한 한 감정대응을 자제해 왔다. 이런 우리의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다카노대사는 이번 망언을 정중히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 [열린세상] 올해에 이루고 싶은 꿈/김민숙 소설가

    지난주 미국 여행에서 돌아왔다. 마지막 한달반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냈는데 공교롭게 내가 묵은 곳이 한인타운 언저리였다. 처음 온 탓인지 말로 듣던 것보다 한인타운이 너무나 비대해서 놀랐고(거의 도시를 점령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식당이나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멕시칸을 빼고는 온통 한인 천지라서 이상스러웠다. 한국어와 한글로 모든 것이 통하고, 한인방송도 있다. 한국의 그날 뉴스와 드라마도 본다. 한국에 있는 유명 식당의 간판은 여기 다 있다. 심지어는 내가 사는 시골 해장국집 간판까지 있다. 옷가게에 걸린 옷이나, 슈퍼마켓의 식품도 한국 것이다. 물론 그 유명한 부동산값 올리기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 부동산 값이 최고로 올랐고 더 오를 전망이란다. 이 낯선 땅에서 그들이 이룬 것은 어찌보면 사뭇 대견하기도 하고 고무적인데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고립된 것은 아닐까? 백인 사회에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있던 집 어머니가 여기서는 약에 쓰려해도 백인은 구경할 수가 없다고 해서 우리는 함께 웃었지만 그리 산뜻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미국이라는 땅에 살면서 꼭 이렇게 몰려서 가재 제살 파먹듯이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자동차로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한인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신랄한 한인비평을 하고 있었다. 백인들 앞에서는 제대로 얼굴도 못 들면서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에게는 너무나 무례하고 난폭한 언사를 일삼는 한인들이 많다면서 자성을 촉구하고 있었다. 또 빌딩이나 아파트를 소유한 한인들이 임차인들을 자기집 하인 대하듯 무례하게 대하고, 임대료만 챙기고 제대로 관리조차 안 해줘서 고소 당해 조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반성은커녕 괜히 시끄럽게 전화질을 해서 말썽이라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살던 백인들이 이 지역을 떠났고, 결국 다른 데로 가려야 갈 수 없는 히스패닉과 한인만이 남게 되었다는데, 사실 이 또한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 교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히스패닉이나 흑인을 잡종이라 부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심사가 편치 않아서 한번은 참지 못하고 백인들도 우리를 그렇게 부를 거라고 찔렀다. 언젠가 20년 넘게 여행사를 경영했다는 사람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 한국 남자들은 대개 우리보다 못사는 동남아를 선호하고 여자들은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을 택하는 수가 많다고 했다. 남자들은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서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남자 여자로 나눌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동남아에 가서 저지르는 갖가지 추태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게 외국에서만 있는 일도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하는 온갖 무례와 악행과 후안무치한 처우를 일일이 여기서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예의와 체면을 중시한다고 배웠는데,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혹시 돈만 좇아서 아등바등 정신없이 뛰어온 지난 60년이 우리를 이렇게 황폐하고 부끄러운 몰골로 변하게 한 것은 아닐까? 자고 나면 듣는 소리가 경제, 경제다. 대통령도 연두회견에서 온통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다짐을 했고 모두들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는 눈치다. 대통령이 나선다고 그리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못된 것은 모두 대통령 탓이라고 난리였으니 두고 볼 일이다. 새해랍시고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는 으레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인심 좋게 뿌려준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에게 속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올해는 정말 희망이 있어 보이는가, 내 꿈은 무엇인가.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나도 이제 이 한해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겠지만 그래도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지 자꾸 다른 꿈을 꾼다. 올해에는 우리가 좀더 사람답게 살게 되기를. 남을 해하지 않고, 자기보다 힘든 사람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알고 의젓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를. 김민숙 소설가
  • [사설] 중국, 겨우 이정도였나

    이런 나라를 과연 21세기를 사는 문명국이라 할 수 있는가. 중국당국이 우리 국회의원들의 탈북자인권 기자회견장에 사복괴한을 난입시켜, 아수라장을 만드는 장면은 이런 참담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더구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다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나라이다. 남의 나라 국회의원들에게 이런 식의 행동을 생각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적반하장으로 중국당국은 탈북자문제를 따지려면 한국에서 하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느냐고 반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전허가를 요구한 중국 국내법을 어겼다며 오히려 우리 국회의원들을 비난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한 행동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사전조정 절차도 없이, 회견장의 불을 끄고 기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그 야만성이 너무 기막히다는 말이다. 중국의 외교무례는 처음이 아니다. 주한 중국대사관 직원들이 타이완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무례한 언사를 하고, 탈북자인권행사에 가지 말라는 협박성 전화를 해 물의를 빚은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되풀이되는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허둥지둥하는 우리의 무원칙 외교를 탓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 국회의원들도 잘한 것은 아니다. 충격요법을 통해 탈북자문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상대국 법절차는 존중하는 게 도리다. 중국은 탈북자문제의 조용한 처리원칙을 고수해왔지만, 많은 중국내 탈북자들이 지금도 강제북송 등 신분불안에 떨고 있다. 이번 사건이 탈북자인권의 개선에 오히려 자극제가 되게 하는, 중국정부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한다.
  • [열린세상] 영화 ‘알렉산더’를 보고/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장

    우리에게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마케도니아 정복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알렉산더’가 현재 한국에서 상영되고 있다. 새해 연휴 기간에 가족과 함께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세계사 교육을 아직 안 받은 딸이 “우와 그 잔인한, 야만적인 사람이 뭐가 좋다고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라고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보이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알렉산더의 본 모습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입된 지식, 그리고 선입견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는 만큼 무지해지는 아이러니를 갖게 된다. 선입견 없이 보면 너무나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본질을 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아는 것의 아이러니’는 많은 경우 의도적으로 이용된다. 역사 서술의 경우 이러한 사가들의 의도가 많이 발견되는데,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했다는 서술이나,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표현하는 것 등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했다고 알게 되면, 그 이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며,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알게 되면 무례한 한국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아메리카 원주민도 존재하고, 무례한 한국 사람도 존재한다. 이러한 ‘아는 것의 아이러니’가 생겨나면 ‘알면서 모르는’ 사람은 지식을 조작하는 세력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어 조작 세력은 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학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통한 영향력을 ‘소프트 파워(soft power)’ 혹은 ‘연성권력’이라고 부른다. 영화 ‘알렉산더’는 독특한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다.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삐딱한 영화를 많이 만들기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는 서구 문명의 근원인 그리스·로마 문명을 무조건적으로 미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페르시아인과 동방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알렉산더와 그의 부하 그리스인들을 보여 주면서 이들의 문명관을 조롱하고, 알렉산더의 광기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불완전한 정복자를 묘사한다. 또한 아무런 의미 없는 동방으로의 끝없는 정복이 무고한 생명만을 앗아가는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와 동방의 장엄한 건축과 문명을 보여주면서 타 문명에 대한 존경심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올리버 스톤은 ‘야만적인’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기 위해 들어간 미국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비유해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미국제국의 건설계획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대표되는 서양 문명을 다시 한번 동방인인 우리에게 전파하고 교육하고 있다. 이미 우리들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수차례 미화된 그리스·로마 문명이 더욱 아름답게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배경으로 깔리고 있고, 신화적인 고대사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해 알렉산더의 제국을 그야말로 문명국가 건설에 버금가는 위대한 작업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잔인하고 잔혹한 알렉산더도 대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으로 남기고자 한다. 영화 ‘알렉산더’의 소프트 파워는 이러한 서양문명의 뿌리에까지 동방인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또한 그 안에서 모르는 만큼 보이게 해 주는 계몽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어쩌면 고대의 알렉산더가 칼과 창의 힘으로 동방을 정복해 나갔다면, 지금의 알렉산더는 생각을 지배하는 소프트 파워로 동방을 정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소위 동방의 우리는 칭기즈칸의 기마병을 대체할 만한 21세기 동방의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는가? 서양의 저들은 동방의 문명과 얼마나 친숙하며, 동방의 위대한 영웅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저들은 우리의 광개토대왕과 이순신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가? 영화관을 나오면서 괜히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장
  • [儒林 속 한자이야기] (53)

    過恭非禮(과공비례) 儒林 253에는 ‘過恭非禮(지나칠 과/공손할 공/아닐 비/예도 례)’가 나오는데,‘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이니, 정도를 넘어선 恭遜(공손)은 오히려 남에게 폐가 됨을 뜻한다. ‘過’의 본래 뜻은 ‘지나가다’였으나 점차 ‘지나치다’‘허물’의 뜻으로 類推(유추)되었다.用例(용례)로는 過渡期(과도기),過讚(과찬),過失(과실) 등이 있다. 恭은 의미 부분인 ‘心’과 발음 부호에 해당하는 ‘共(함께 공)’을 합하여 ‘공손하다’는 뜻이 되었는데,‘心’이 의미 요소로 쓰인 것으로 보아 공손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우선해야 함을 알 수 있다.用例에는 ‘恭儉(공검)’‘恭敬(공경)’‘恭遜(공손)’‘恭容(공용)’ 등이 있다. 非의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새가 날개를 편 모양’, 새가 날기 위해서는 양 날개를 서로 등져야 하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다’가 원래의 뜻이라는 등의 異說(이설)이 분분하다.‘아니다’‘그르다’‘어기다’ 등과 같은 否定的(부정적)인 뜻의 類推는 후자의 설과 관련이 깊다.‘非難(비난)’‘非賣品(비매품)’‘非凡(비범)’‘今是昨非(금시작비)’ 등에 쓰인다. 禮는 본래 ‘示(보일 시)’가 없는 상태인 豊(례)로 쓰였다.‘豊’는 옥을 담은 그릇이냐, 술잔이냐라는 異說(이설)이 있으나 ‘신 앞에 바치는 제물’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제사에는 여러 예법과 예의를 지켜야 했으니, 후에 ‘示’가 보태졌고,‘예의’‘예절’‘예법’ 등의 뜻이 類推(유추)되었다.‘禮法(예법)’‘禮遇(예우)’‘無禮(무례)’ 등에 쓰인다. 분명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謙讓(겸양)은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醜惡(추악)함으로 변한다. 일찍이 공자는 “공교한 언변(巧言), 꾸민 얼굴빛(令色), 지나친 공손(足恭), 좌구명은 이것들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足恭’은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다리의 움직임을 지나치게 겸손하게 하는 作態(작태)’의 형용이요, 하나는 그냥 추상적으로 ‘지나치게 공손함’을 말한다. 전자의 경우는 ‘족공’으로, 후자의 경우는 ‘주공’이라 발음한다. 겉으로는 겸손하고 공손하게 보이는 사람도 내면은 自慢(자만)과 無視(무시)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종종 가슴속에는 ‘口蜜腹劍(구밀복검: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토해내면서 가슴속에는 비수를 품음)’의 凶計(흉계)를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의를 갖추면 상대방이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인간 대접을 받는다는 信賴感(신뢰감)을 갖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손하거나 깍듯한 예절은 오히려 거북스럽다. 각종 放送(방송) 出演者(출연자)들의 무분별한 敬語(경어) 표현은 거북하다 못해 민망하다.‘우리나라’ ‘저희나라’는 잘 알려진 사례임에도 계속된다. 이제는 過剩(과잉) 존대 표현이 습관화되면서 본인에게 경어를 쓰는 愚(우)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過恭非禮의 次元(차원)이 아니라 無禮(무례)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공자는 巧言,令色,過恭을 부도덕한 행위로 정의하여 비판하였다. 이제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조차 그리운 세상이다.人面獸心(인면수심)의 凶暴(흉포)한 인간들의 跋扈(발호) 소식이 들리지 않을 날은 언제쯤일까.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사설] 툭하면 국회의원에게 전화하는 중국

    한나라당 황우여의원 보좌관에게 지난 9일 전화를 걸어, 무례한 발언을 한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의 행위는 중국의 외교적 오만함이 도를 넘었음을 보여준다. 이 참사관은 황 의원의 탈북난민 강제송환 저지 국제캠페인 참여에 대해,“국회의원이면 높은 자리인데 이런 행위를 하면 되느냐.” “(탈북자문제에)강하게 나오면 우리는 더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마땅히 중국정부의 사과와 적절한 후속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국대사관의 무례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천수이볜(陳水扁)타이완총통 취임식 참석 의원들에게 전화로 불참을 종용했고,8월에는 지안(集安) 고구려유적 답사 의원들에게 비자발급을 제때 해주지 않기도 했다. 대사관의 외교활동이 이런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중국대사관의 행위는 형식상의 무례함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어 심각하다. 지금까지 중국정부가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탈북자들의 경우, 대부분 한국행을 허용해온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탈북자들이 강제북송의 운명에 처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내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본국 입장을 설명했을 뿐이라는 중국대사관의 해명을 그대로 믿고 싶다. 한국어로 말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참사관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나지만 그래도 외국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대사관도 민감한 사안은 전화보다 직접 의원들을 만나고, 통역을 통해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기 바란다. 양국 우호를 위한 중국측의 진지한 노력을 기대한다.
  • 美네오콘 호로위츠-與 386의원들 ‘비밀 설전’

    미국내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이자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되는 마이클 호로위츠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지난 10일 방한 중 열린우리당의 운동권 출신 ‘386’ 의원들을 극비리에 만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부시 행정부내 대북 강경노선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호로위츠 연구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을 직접 찾아 열린우리당 송영길·임종인·우상호 의원을 잇달아 면담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12일 “현행 미국 ‘북한인권법’의 모태가 된 ‘북한자유법안’ 초안 작성에 간여한 호로위츠 연구원은 북한인권법과 같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여당의 젊은 의원들을 직접 만나 견해를 듣고 싶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로위츠 연구원은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는 첨예한 시각차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여당내 대표적인 대북 유화론자인 임종인 의원과는 얼굴을 붉힐 정도로 독설을 주고받으며 설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임 의원이 전한 대화 내용. (호로위츠)북한 주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있는 김정일 체제는 무너져야 한다. 그것은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더 원하는 것이다. -(임종인)체제 선택은 우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북한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다. 가령 내가 부시 행정부를 바꾸라고 하면 되겠느냐. 세상에 국민들로부터 100% 지지받는 정부가 어디 있느냐.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과 비슷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 -북한 사람 걱정 말고 미국에 있는 어려운 사람이나 걱정하라.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내 빈민층이 20% 이상 더 어려워졌다고 하지 않느냐. 왜 미국이 도덕 교사 역할을 하려 하느냐. 임 의원은 “호로위츠 연구원이 전쟁이라는 말은 안했지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호로위츠 연구원이 우리 당 의원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한다고 해서 만났는데, 오히려 나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임 의원은 “호로위츠 연구원은 내가 자기 의견을 시종 반박하자 인사도 안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을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더라.”라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너무 우습게 아는 것 같았다.”고 비난했다. 송영길 의원도 “나는 내 의견을 얘기했고 호로위츠 연구원은 자신의 시각을 말했다.”면서 “한마디로 서로의 시각차만 확인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호로위츠)한국은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중국도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대비하고 있는데 유독 노무현 정부만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정권과 사랑을 하고 있다. -(송영길)우리는 남북한 동족의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화공존을 원하는 것이다. 북한이 급작스럽게 붕괴한다면 우리나라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북한 흡수 통합을 얘기하는 것은 한달 단식하다가 바로 육개장을 먹자는 것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고 했는데 당장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이러한 잘못된 노 대통령의 시각 때문에 미국이 북한 인민을 도와야 할 때 돕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일종의 ‘사인’으로 이해해야 한다. 송 의원은 “처음 만나본 호로위츠 연구원은 아주 주관이 강한 사람이었다.”면서 “좋게 말하면 저돌적이고 정열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독선적인 사람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호로위츠 연구원이 아예 ‘나는 네오콘이다.’라고 말해 놀랐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우상호 의원도 “특별한 결론 없이 서로의 의견만 듣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儒林(235)-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35)-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 공자에 대한 오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초나라의 현인으로 알려진 미생묘란 사람이 이 무렵 공자에 대해서 혹평을 서슴지 않았는데, 그 내용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공구는 무엇 때문에 악착같이 서성거리며 살고 있는가(丘何爲是栖栖者與). 말재주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 미생묘가 말하였던 서서(栖栖)의 뜻은 몹시 분주하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말로, 마음이 급하여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줄을 모르는 ‘황황망조(遑遑罔措)’와 같은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공자를 비웃는 표현의 극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감히 말재주나 피우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고루함을 가슴 아프게 여기고 있을 따름이다.” 어쨌든 공자는 더 이상 초나라에 머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또다시 위나라로 출발하는데, 이미 세 번이나 찾아갔었던 위나라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 무렵 공자의 생활이 얼마나 여의치 않았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공자가 또다시 위나라를 찾아갔을 때에는 노나라의 애공 6년(기원전 489년) 공자의 나이 63세 때였다. 56세에 시작된 주유천하가 이미 8년째에 접어든 종반기 무렵이었는데 공자는 물론 제자들도 모두 지쳐 있었다. 스승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제자들은 극도의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으나 공자가 다시 위나라에 입국했을 무렵부터는 각자 자생하여 자구책을 모색할 때였다. 제자들은 더 이상 스승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활로를 개척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공자가 위나라에 입국했을 때는 그나마 공자를 우대하였던 영공은 이미 죽고 그의 손자인 출공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원래는 태자 괴외가 계승하여 왕위에 오르는 것이 법도였으나 아버지의 음탕한 부인인 남자를 죽이는 것에 실패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가 돌아오려는 것을 무력으로 막은 사람이 바로 출공이었던 것이다. 행여 왕위를 빼앗길까 하여 외국으로 망명해 있다가 돌아오는 아버지 괴외의 귀국을 무력으로 막았던 출공의 무례를 열국의 제후들은 자주 꾸짖고 있었다. 그러므로 위나라로 돌아가는 스승에게 제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지금까지 예를 보면 위나라에서만큼은 공자가 제대로 대접을 받았고 출공 역시 제후들의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공자를 등용하여 이를 모면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출공은) 공자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잘해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야말로 공자가 등용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대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안하였다. 평소에 불의를 좇지 아니하는 스승의 성품을 봐서 출공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기대 반 불안 반의 아슬아슬한 제자들의 심경이 논어에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스승 공자가 위나라에서 출공의 제안을 받아들여 벼슬에 나설까 말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 제자들 중 먼저 염유(有)가 말을 꺼내었다.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위나라의 임금을 위해 일을 하실까요.”
  • [김영희 이혼클리닉] 연수 다녀오자 남편 사랑이 식었어요

    [김영희 이혼클리닉] 연수 다녀오자 남편 사랑이 식었어요

    결혼한지 2년된 여성입니다. 사내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 후에도 함께 일했습니다. 직장일에 지쳐 남편과 자주 얘기를 나누지 못했고, 남편은 화를 마음에 담아뒀다가 한꺼번에 폭발시키곤 했습니다. 떨어져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 올초 어학연수를 핑계로 6개월 동안 해외를 다녀왔습니다. 귀국한지 일주일, 남편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헤어지자고 합니다. 이혼이 두려운데 시간을 갖고 기다려 볼까요, 헤어져야 할까요. -강미희- 미희씨, 두 사람은 지금 권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녀가 밤낮으로 얼굴 맞대고 살다보면 점차 서로에게 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감정변화입니다. 신혼 때처럼 달콤한 마음이 점차 엷어져가는 대신 믿음과 편안함이 서로의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 부부입니다. 모든 부부들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들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믿고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권태기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감기몸살 같은 것입니다. 권태기 극복에는 비법이 없어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하면 가정이 깨어지게 되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권태기는 사전예방이 매우 중요합니다.‘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서로에게 사랑이 있을 때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언행을 조심해서 상대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부는 절대로 허물없는 사이가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살을 섞고 사는 부부사이에는 예의나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마구(?) 대하려 합니다. 가장 신경써야 할 인간관계가 부부사이인데도 말입니다. 가깝고도 먼 사이가 부부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만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밖에서는 예의바르고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는 남편이 집에 들어와서는 아내에게 폭군처럼 무례한 행동을 하고, 외출할 때 온갖 치장을 하며 요조숙녀 같은 아내가 집에서는 옷차림과 언행이 여성답지 않다면 서로가 사랑과 존경을 하지 않을 겁니다. 부부의 유형도 여러가지여서 함께 살긴 살아도 남남처럼 마지못해 사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서로를 챙기며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사는 아름다운 부부들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부부에게 권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고 결혼생활 내내 부부 곁을 맴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희씨, 맞벌이를 하다 보니 일에 지치고 피곤하여 남편과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잦은 다툼이 있었다고 했는데 모든 맞벌이 부부가 다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돈벌이에만 급급하다 보면 일하는 것이 짜증이 나고 힘이 들어 어깨가 무거워지겠지만,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감사함과 우리들에게는 약속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삶은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데, 맞벌이는 ‘내일을 위한 오늘의 투자’로 우리는 희망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은 화가 나더라도 꾹 참고 있다가 한번에 터뜨리는 성격이라는데 과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반면 사소한 일에 벌컥벌컥 화를 내는 남자들도 많지요. 남편과 다툼이 잦아져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떠났다고 했는데, 떠나기 전 남편과 충분한 의논을 했었는지요. 당신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면 아주 위험한 행동을 했습니다. 부부문제가 생기면 미움으로 서로의 마음이 굳어지기 전에 솔직하고 정직한 자기반성을 하면서 대화로 풀어가야 합니다. 밉고 싫다고 등을 돌리며 대화를 단절해 버린다면 부부관계는 끝이 나고 맙니다. 어쩌다 부부가 잠시 떨어져 살게 될 경우가 있을 때 상대가 몹시 그리워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이좋은 부부의 경우일 뿐, 불화가 있는 부부에게는 사이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미희씨, 남편은 당신이 떠난 6개월 내내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 신경전으로 시간을 끌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지 말고 하루빨리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세요. 자신의 잘못되었던 행동을 사죄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결혼 2년 만에 6개월 외출은 너무나 길었습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말말말˙˙˙

    ‘미전향 장기수’는 매우 무례한 표현으로서 대한민국 당국의 입장이다.‘너희들은 공산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표현이 바로 ‘미전향’이라는 말이다.-비전향 장기수문제를 다룬 다큐영화 ‘송환’을 만든 김동원 감독,“미전향장기수 용어는 언어의 폭력이라고 생각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며.
  • 儒林(195)-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儒林(195)-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그러나 이런 공자의 희망은 철저하게 무산되고 만다.이에 대해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한편 계환자는 제나라의 선물인 여악을 받아들인 후 이를 즐기느라 사흘 동안이나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그뿐 아니라 교제를 지내고 나서도 제기에 담았던 제육 역시 여러 대부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예를 중요시 여겨 모든 인간행동의 기준을 예로 삼았던 공자는 ‘예를 알지 못하면 사람으로서 설 근거가 없게 된다(不知禮無以立也).’라는 가르침으로 유가의 사상을 펼쳐나가는데 공자는 더 이상 이러한 무례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공자는 예를 ‘인간행동의 기준’뿐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기능’으로까지 가치관을 확산시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공자가 논어에서 ‘임금은 신하를 부리기를 예로서 하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기를 충으로 한다(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라고 말하고,‘예와 사양으로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면 예를 무엇에 쓰겠는가(不能以禮讓爲國 如禮何).’라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얼마만큼 예를 중요시하였는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침내 공자는 정공과 계환자가 군주로서의 예를 잃어버린 사실을 깨닫게 되자 미련 없이 노나라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그리하여 곡부를 떠나 남쪽인 둔(屯)으로 갔을 때 기(己)란 사람이 공자를 전송하면서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아무런 죄도 지은 것이 아닌데 어째서 노나라를 떠나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듣고 공자는 물끄러미 마을 앞을 흐르는 강물을 쳐다 본 후 말하였다. “내가 노래로 대답하려는데 괜찮겠소이까.” 공자가 노래로 대답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자신을 전송하는 기가 음악관인 태사(太師)의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여인들을 앞세워 나라를 망치려는 계략이라네. 나라의 기둥들이 저 꼴이라면 남은 것은 오로지 파멸일 뿐. 모름지기 군자는 멀리 도망가서 여생을 한가로이 지낼 뿐.” 공자도 군자는 마땅히 여색을 멀리해야 함을 경계하고 있었다. 부처는 여색을 구도의 가장 큰 장애물로 보고 ‘너희들은 차라리 너의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의 몸에는 넣지 말라.’고 극언하고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핥는 것과 같다.한번 입에 대는 것도 못할 일인데 어린아이들처럼 그것을 핥다가 혀를 상한다.모든 욕망 가운데 성욕만큼 더 한 것은 없다.성욕의 크기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다행히 그것이 하나 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되었어도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애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들고 거슬러가는 것과 같아 반드시 횃불에 화를 입게 될 것이다.” 석가모니의 극단적인 이 말과 비교가 안 될 정도지만 공자도 여색에 대해서는 분명히 경계하고 있다. 훗날의 일이지만 공자는 위나라의 영공(靈公)이 그의 음탕한 부인인 남자(南子)와 함께 수레를 타고 거리를 쏘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논어의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공자의 여성관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유독 여인과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가까이하면 공손치 않게 되고,멀리하면 원망하게 된다(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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