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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in] 스타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라

    [연예in] 스타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라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한 학생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어떤 기획사가 제일 좋은 회사인가요?” 이 질문은 비단 연예인 지망생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에게도 심대한 관심사이거니와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일 것이다. 무를 베듯 적확한 한마디로 답변하기란 그리 쉬운 질문이 아니지만 늘 생각해 왔고 지향했던 바가 있기에 어렵지 않게 답했다.“수익의 분배가 정확한 회사….” 나눠 가지는 것에 대한 만족감 없이 끊임없이 신뢰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소속사와 아티스트간의 신뢰 역시 만족할 만한 수익 분배가 이뤄져야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상생한다. 양보와 배려,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 안에서 신뢰는 끝없이 팽창한다. 수익 분배는 연예 계약서 상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때론 그 약속을 깨뜨리는 감동이 등장할 때 무한 신뢰로 이어진다. 가령, 계약서에 수익금이 회사로 입금되면 익월 말일에 지급되는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이왕 지급할 것이라면 연예인의 편의를 위해서 즉시 줄 만큼의 배려라면 그 믿음의 크기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배려도 모르는 연예인이라면 반드시 퇴출돼야겠지만. 최근 언론에 등장하는 소속사와 연예인의 법적 분쟁 말고도 크고 작은 갈등이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다. 그 이면의 정점에는 대개 분배에 대한 불신과 분배를 받아들이는 연예인의 태도가 가장 큰 원인이다. 무형의 상품으로 인기와 부를 축적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엔터테인먼트 특성상 안팎이 다를 일 없다. 스타가 되고 난 뒤 처음 같지 않은 안하무인격 연예인의 무례함과 인기스타에 걸맞은 관리와 예우를 못하는 기획사의 안일한 대처능력이 충돌을 빚는 일들을 연예계에서 찾아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 사는 일이 어디든 똑같지 않겠는가. 충실하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벼를 보듬는 농부의 마음처럼 서로가 지켜야 할 예의를 갖추는 일은 극히 기본적인 배려이다. 지난달 현충일에 작고한 연극계의 거장, 극작가 차범석 선생의 평소 가르침이 떠오른다.“사람부터 되어라.”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 [오늘의 눈]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세영 국제부 기자

    1982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 등장한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열정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란 수상연설문을 읽어내려갔다. “서구인들만이 독립과 독창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문학의 독창성은 그렇듯 쉽게 인정하면서 우리가 시도하는 사회변혁은 왜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까.” 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를 절망케 한 것은 라틴아메리카를 미개하고 잔인하며, 비합리적 열정에 사로잡힌 땅으로 낙인찍은 서구의 오만이었다. 4일(현지시간) 치러진 페루의 대통령선거 결선투표 결과를 전하는 서구 언론의 반응에서도 ‘1세계 문명인들’의 무례함은 어김없이 묻어난다. 중도좌파 알란 가르시아를 선출한 페루인을 향해 이들은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했다.”며 냉소했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 경제매체들이 최근까지 보여준 보도행태는 특정 후보의 낙선을 노렸다는 혐의를 두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급진민족주의자 오얀타 우말라가 선두로 부상한 3월부터 그의 집권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며 선거구도를 ‘공포와의 대결’로 몰아갔다. 과연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외국인과 부자에 대한 적대감에 정치적 잔혹극을 일삼는 우중(愚衆)일 뿐인가. 자원 국유화와 부의 분배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주권행위를 음험한 포퓰리스트와의 야합으로 단죄한다면, 대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경계는 어디인가. 24년 전 마르케스는 ‘다른 세계’를 향한 노력을 용인치 않는 서구의 편협함이 라틴아메리카를 고독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들이 20년 전 페루 경제를 거덜낸 가르시아에게 재차 기회를 준들,16년 전 미국에 의해 ‘축출’된 다니엘 오르테가에게 니카라과의 운명을 다시 맡긴들 또 어떤가. 이미 그들은 피노체트와 콘트라,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서구의 개입으로 충분히 고통받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때도 됐다. 이세영 국제부 기자 sylee@seoul.co.kr
  • [열린세상] 교사·학부모 ‘불신 방정식’ 해법은?/남승희 명지전문대학 교수·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무릎 꿇은 교사’ 사건으로 ‘교권 침해’ 논란이 뜨겁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건 폭언과 협박, 무례와 조롱이 교사와 학부모, 학생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와 교원단체의 교권 침해 주장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정부나 교원단체가 열악한 급식환경에서 기인된 부적절한 급식지도와 이런 사태를 야기한 교육당국과 학교 관리자의 행정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과부터 했더라면 그들의 교권 침해 주장에 대한 사회적 반향은 컸을 것이고 사태 해결도 쉽고 희망적이었을 것이다. 교육의 황폐화로 이어지는 교육공동체 구성원들간의 갈등과 반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어렵게 함은 물론이고 사회공동체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원칙과 규범이 교육을 통해 계승ㆍ발전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노조활동과 편향된 이념교육에 대한 불만, 무능 교사나 부적격 교사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없는 현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교원평가마저 거부하는 교사 집단행동은 교권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사사건건 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서는 교원단체의 ‘머리띠’ 투쟁과 ‘막말’ 논쟁은 국민을 지치게 했고 교권의 정당성마저 의심케 했다. 이렇게 형성된 교사와 학부모간 ‘불신 방정식’의 해법은 없는 것인가? 이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 교사와 학부모 관계부터 따져봐야 한다. 교육 주권자이자 교육정책의 수혜자는 학생과 학부모다. 정부는 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그 수단을 제공하는 주체이고 교사는 이 일을 위임받아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분명히 하자,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교육정책은 학생과 학부모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도록 수립되기보다는 정부와 교원단체 그리고 교육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돼 왔다. 교육수요자가 아닌 교육공급자 중심의 정책이 된 것이다. 교육공급자 측은 이런 관행의 정당성이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이 경제적 효율성이나 정치적 편향성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전문성에 대한 해석이다. 교육의 전문성 강조는 교육전문가의 학식과 식견, 지식과 경험이 중요하고 이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교육전문가 집단이 교육정책 결정권을 독점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육전문가와 교육주권자를 혼돈해서는 안 된다. 5ㆍ31 지방선거에서 교육 공약이 핵심 공약이었다. 주민의 삶에 중요하고 절실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의 최종 결정은 지역주민 대표들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장돼야 할 교육자치의 기본정신이다. 이에 맞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현행 학교운영위원의 교육감ㆍ교육위원 간선제를 주민 직선제로 바꾸고, 교육위원회와 시도의회를 일원화하며, 교육감ㆍ교육위원의 자격을 완화ㆍ철폐하는 것이 옳다. 교육 전문성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교육주권자인 주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보다 학원을, 국내보다 해외를, 교사보다 학원 강사를 더 선호하고 신뢰하는 현실인데도 학교와 교육은 변할 줄 모른다. 권리 공방은 있어도 자성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교사와 학부모간 갈등의 ‘불신 방정식’을 풀 해법은 이들 관계가 수평적으로 재정립되고, 상호 소통이 원활해지며, 권리보다 의무가 전제되는 인식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교육이 좋은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이고, 교사는 전문성과 통찰력으로 이들의 선택을 도우며, 정부는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정부나 교원단체의 계몽대상이 아니라 교육 주권자임을 다시 상기하자. 학부모가 더 이상 ‘자식가진 죄인’으로 회자돼서는 안 된다. 남승희 명지전문대학 교수·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 네팔 야당聯, 왕정 전면부인

    네팔 야당聯, 왕정 전면부인

    ‘신들의 땅’인 히말라야가 유혈사태로 얼룩지고 있다. 강력한 전제 통치에 나선 갸넨드라 네팔 국왕이 민주주의 회복과 하야를 요구하던 시위대에 발포, 사망자가 느는 등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AP통신 등은 9일 네팔 야당 연합체가 왕정 통치를 전면 부인하고 이날 끝내기로 했던 ‘총파업’을 무기한 지속할 것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지난 8일 정부군의 발포로 수도 카트만두에서 200㎞ 떨어진 제2의 도시 포카라에서 시위대 1명이 사망한 데 이어 이날 바네파에서 다시 1명이 숨졌다. 현재 사망자는 3명, 부상자는 최소 5명 이상으로 알려졌다. 카트만두에서 공산반군이 시위대를 연행하던 정부군에 총격을 하는 등 ‘교전 상황’이 수도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네팔 정부는 주간 통행금지 조치를 카트만두 이외 도시로 확대하고 지난 5일 발효된 야간 통행금지(오후 11시∼다음날 오전 3시)에 이어 주간 통행금지(오전 7시∼오후 8시)가 9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공산반군이 남서부 지역에서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네팔 정국은 깊은 혼돈 속으로 빠지고 있다. 6일 전국에서 시작된 총파업은 이날로 나흘째를 맞았다. 네팔 정부는 총파업 이후 야당 지도자와 시민 등 751명을 체포했다. 통금 조치를 무시한 다만 나트 던가나 전 하원의장과 락스만 아리알 전 대법관도 구금되는 등 115명을 공공안전법에 따라 기소없이 수감됐다. 네팔 공산당 지도자 카시나트 아히카리는 “시위대는 카트만두의 6개 지역에서 통행금지를 무시하고 있으며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등 서방은 네팔 정부의 강경진압을 우려하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는 갸넨드라 국왕의 독재 통치에서 비롯됐다. 갸넨드라는 2001년 6월 왕실 총기난사 사건으로 국왕 일가족 8명이 모두 사망하자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왕권 찬탈 의혹에 휩싸인데다 무례한 언행으로 국민의 신망을 얻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2월 공산반군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이유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뒤 의회를 해산했다. 강력한 친위정권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지난 2월 총선 투표율이 21%에 그치는 등 민심을 사로잡지 못했다. 정치적 탄압에 맞선 야당과 공산반군이 손을 잡고 갸넨드라 국왕의 하야를 촉구했고 이는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공산반군은 1996년 부패와 빈곤 해결을 명분으로 봉기한 뒤 정부군과 교전을 벌여 현재까지 1만 3000여명이 희생되는 등 히말라야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깔깔깔]

    ●입싼 사나이 신임 대사를 위한 만찬회에서 대사를 처음으로 보게 된 고참 직원 한 사람이 옆자리에 앉은 여자를 보고 한마디했다. “저 멍청이 같은 사람이 대사란 말인가요?” 그러자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무례하시군요. 내가 누군지 아세요? 나는 아내 되는 사람이라고요.” “그럼, 제가 누군지는 아세요?” “몰라요.” 여자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사내는 얼른 일어나서 출구를 향하면서 말했다. “다행히 잘릴 염려는 없겠군.”●어머니의 역할 아버지: 너처럼 다 큰 아이가 어두운 방에서 잠자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란다. 아들: 아빠는 주무실 때 옆에 엄마가 계시니까 제 어려움을 모르시는 거예요.
  • 儒林(561)-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1)

    儒林(561)-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1)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1) 공자가 말하였던 ‘속수(束修)’란 한 묶음의 건육(乾肉)을 말하는 것으로 옛사람들이 처음으로 서로 만날 때 예물로 가져가던 폐백으로서는 가장 간단한 것이었다. 이처럼 가르침을 청할 때는 그 누구라도 물리치지 않았던 공자가 오직 유비가 찾아와 예를 물었을 때는 아프지도 않았는데 칭병을 하고 심부름꾼을 보내어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비가 들으라고 일부러 거문고를 끌어당겨 노래까지 하는 것이다. 이때의 장면을 논어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거문고를 가져가 노래를 부르며 일부러 듣게 하였다.(取瑟而歌 使之聞之)” 공자의 이러한 모습은 ‘병주고 약주는 식’의 약올리는 오만한 태도였던 것이다. 아프다는 사람이 문밖에 서 있는 유비가 일부러 들으라고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것은 성인의 태도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뜻밖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몰상식(?)한 행동은 ‘슬경유비(瑟儆孺悲)’란 고사성어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장면중의 하나인데, 공자의 이러한 모순된 행동은 논어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수께끼로 남아 전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논어의 ‘헌문편’에는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공자의 태도가 묘사되고 있다. “원양(原壤)이 가랑이를 벌리고 공자를 맞이했다. 공자는 말하기를 ‘어려서는 말썽만 피우고, 나이 들어서는 뭐하나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늙어서는 죽지도 않는군.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은 나이도둑질이다.(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하고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원양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아무리 원양이 무례하게 가랑이를 벌리고 공자를 맞이하는 불손한 태도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들고 있던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친다는 공자의 태도는 성인의 모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한 것은 공자뿐이 아니었다. 맹자 역시 성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이 장면 역시 공자의 ‘거문고로 유비를 경계하다.’는 뜻의 ‘슬경유비’와 함께 유가에 있어 대표적인 수수께끼에 속하는 장면인데, 맹자의 ‘공손추 장구하(公孫丑 章句下)’편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맹자는 오랫동안 선왕(宣王)의 객경으로 제나라에 머물며 자신의 왕도정치를 펴려 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제나라를 떠나면서 잠시 획( )이라는 땅에 머물고 있었다. 이 때 맹자의 발걸음을 멈추고 출국을 만류하기 위해서 신하 하나가 찾아온다. 그 신하는 선왕으로 하여금 맹자가 보기보다는 돈을 좋아하고 있으므로 돈을 주면 맹자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의 서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 획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찾아온 그 신하를 철저히 무시하고 일절 응대하지 않고 안석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버리는 것이다.
  • 儒林(56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0)

    儒林(56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0)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0) 퇴계의 답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와 같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여 자꾸 쌓아 올리고 깊이 생각해서 자연히 심지(心知)가 차츰 밝아지고 의리의 실상도 차츰 눈앞에 나타날 때에 다시 그 전에 궁리하여 터득하지 못하였던 것을 가지고 상세히 궁구하여 이미 터득한 도리와 참험(參驗)하고 대조해 나가면 부지불식간에 앞에서 미처 궁리되지 못했던 것까지도 일시에 서로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궁리의 활법(活法)이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율곡이 물었던 사마광의 지선(至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또 사물의 이치는 본질에서는 물론 지선이 아닌 것이 없지만 그러나 선(善)이 있으면 반드시 악(惡)이 있고 시(是)가 있으면 비(非)가 있는 것이 필연이니, 그러므로 무릇 격물궁리(格物窮理)하는 것은 그 시비와 선악을 밝혀 취사선택을 잘하고자 하는데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달리 엘리트의식이 강했던 율곡이 다만 스승으로부터 받은 유가적 화두인 ‘거경궁리’에 맹목적으로 집중할 리는 없었다. 율곡은 퇴계와 달리 사람들과의 인화관계는 썩 좋지 않았고, 벼슬길에 올랐던 젊은 시절에도 원로대신 이준경(李俊慶)에게 당돌하게 도전하였을 만큼 평생 동안 필요이상 많은 정적을 만들었던 트러블 메이커이기도 했었다. 이러한 사실은 율곡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바른 말을 잘 하는 선비기질 탓이기도 하지만 남다른 선량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율곡이 유가의 시조인 공자와 맹자가 평소에는 ‘경(敬)’을 덕목으로 주장하였으면서도 막상 자신들은 경에 위배되는 오만한 태도를 취한 불합리한 행동을 묵과하였을 리는 없을 것이다. 율곡이 ‘정자’와 ‘사마광’을 빌려서 거경궁리의 방법을 퇴계에게 묻는 한편 실제로는 ‘거경’에 위배된 행동을 하였던 공자와 맹자의 모순된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율곡이 퇴계에게 보낸 첫 편지 말문에서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신랄한 질문을 던진 것은 몹시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경을 부르짖은 공자도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었다. 논어의 ‘양화편’에 나오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노나라 사람 유비(孺悲)가 공자에게 예를 배우러 온다. 공자를 만나기를 청원하였으나 공자는 신병을 이유로 거절한다. 그러고 심부름꾼을 보내어 이 사실을 통보한다. 그러고는 곧 바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를 불러 제친다. 유비가 들으라고.” 공자의 이러한 오만한 태도는 ‘가르침에 있어서는 유별이 없다.(有敎無類)’ 또는 ‘속수의 예 이상을 갖춘 사람에게 나는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일이 없다.(自行束修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말한 공자의 신념과 위배되는, 실로 미스테릭한 장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 재키…여자의 비밀(秘密)

    재키…여자의 비밀(秘密)

    「선데이 서울」은 「재클린·케네디」의 개인비서였던 「매어리·배럴리·갈래거」여사의 충격적인 글 『재키-여자의 秘密』(원명(原名) 나의 보스 재키·케네디)을 UPI와의 독점 계약으로 번역 연재합니다. 8년간 「재키」의 개인비서로 일해오면서, 한 평범한 여자로서의 「재키」의 사적(私的)세계를 낱낱이 들여다본 「갈래거」가 숨김없이 털어놓는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지녀온 「재키」의 「이미지」에 많은 수정을 가해 줄 것입니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세련된 매력으로 전세계의 사랑을 받으면서 거의 신비화(神秘化)되기까지 한 「재키」의 「베일」을 이 글은 벗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여자로서의 약점과 성품, 즉 그녀의 방종, 변덕, 인색함, 옷이나 골동품에 대한 허영과 무절제, 부모에 대한 무례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기적 사건이었던 「댈러스」의 비극과 백악관에 온 「오나시스」등에 관한 더욱 소상한 이야기도 읽게 될것입니다. 이 글은 전세계에 전재, 반포권을 독점하고 있는 UPI와 특별계약, 본지가 한국에서 독점연재하게된 것입니다. 거의 신비화된 마력지녀 하지만 베일을 벗겨보면 「재클린·케네디」. 온 세계가 마치 그녀에게 홀린 듯이 사족을 못쓸 만큼 묘한 마력을 지닌 한 세기에 한 번쯤 나타날 만한 여자. 그녀는 이를 테면 자기에 대한 찬탄과 사랑 이외에는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여자이다. 심지어 그녀의 마력이 무너지는 일이 생기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못미더워하고, 오히려 그런 약점조차 그녀의 매력의 다른 면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재키·케네디」는 도대체 어떤 여자인가? 곰곰 생각하는 것이다. 「재키」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이쪽이 잘못이지 그녀에게는 전혀 잘못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그녀는 거의 신비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게 사실이었고 어떤 것이 꿈이었던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져온 것처럼 「재키」가 마력의 화신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존·F·케네디」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기 전인 상원의원시절부터 대통령시절을 지나 암살되기까지 거의 8년 동안을 나는 「재키」의 개인비서 노릇을 했었으므로 「재키」의 「베일」에 싸인 세계를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서를 두고 있다는 일도 알려지기 원치 않는 성격 독자들이 나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의심은 「터부」처럼 되어온 것이 사실이니까. 그녀는 자기가 비서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1964년4월2일 J·F·K의 비서 「이블린·링컨」이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윌리엄·만체스터」를 나에게 소개했을 때 「만체스터」는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당신이야말로 「케네디」행정부의 가장 잘 지켜진 비밀이군요』라고 말했다. 석달용돈 3만5천달러 그절반은 옷값으로 나가 그러나 그「가장 잘 지켜진 비밀」을 나는 지금부터 털어놓으려 한다. 「진실」이라는 말의 뜻은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을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나 나의 이 글이 「재키」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으며 내가 보고 겪은 사실에 관해서 쓰려고 한다. 나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하나의 여자」「재키」에 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휩쓸고 있었던 「마력 바로 그것」인 「재키」와 그녀의 사적 세계 속에서의 「재키」를 차단하고 있었던 그 「베일」을 생각하면 나는 퍽 재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재키」가 연간 생활비로 쓰는 돈이 대통령 연봉 10만「달러」를 훨씬 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퍽 놀랐다. 지출의 큰 부분이 옷값이었는데, 예를 들어 1961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재키」가 개인 용돈으로 쓴 돈이 3만4천8백87「달러」25「센트」인데, 그 돈의 절반이 옷값으로 쓰인 것이었다. 옷값으로 되어 있는 계산서가 날로 늘어갔으므로 재정적으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보석, 그림, 가구 특히 골동품에 드는 비용이 엄청난 것이었다. 「재키」가 원하는 물건이면 무엇이든지 주문해서 들여놓고 나중에 계산서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마시던 술로 손님을 접대 시어머니와는 사이 나빠 계산서의 총액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작정 쓰고 나서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궁리를 했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한 경제계획에 다음과 같은 것도 있었다. 즉 백악관에서 「칵테일·파티」를 열었을 때 「재키」는 주류(酒類)담당 책임자를 불러 『손님이 마시다 남은 술잔에 「립·스틱」이 안묻어 있으면 다른 손님에게 돌려요』라고 지시했다. 내가 백악관에 있을 때 받은 월급이 4천8백30「달러」였는데, 1961년8월 나는 적절한 경로를 통해 월급을 8천「달러」나 9천「달러」로 인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이 돼도 아무 소식이 없었으므로 나는 「재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재키」의 대답은 『「링컨」씨에게 말해요』라는 것이었다. 나의 느낌으로는 「존·F·케네디」가 항상 원하던 것은 두가지-즉 조용하고 평화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편안하고 아늑한 장소와 돈 때문에 골치앓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두가지가 다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팜비치」에 있었던 「케네디」네 집에서 있었던 일. 「재키」와 그녀의 시어머니 「로즈·케네디」와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다. 어떻든 많은 시간을 침실에서 보내는 「재키」와 그녀의 시어머니는 우선 사람부터 달랐으니까. 어느날 아침 두 사람의 대립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로즈」가 나에게 『「재키」는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아직 안일어난 것 같다고 대답하자 『가서 아주 중요한 손님들을 점심에 초대했으니 빨리 일어나라고 해요. 같이 참석하는게 좋겠다고』라는「로즈」의 말. 내가 「재키」의 침실로 가서 말을 전했더니 「재키」는 침대에 누운 채 시어머니의 음성과 말버릇을 그대로 흉내내어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가서 아주 중요한 손님들을 점심에 초대…』 「재키」의 친어머니 「휴·D·오친클로스」에게도 퍽 불손했고, 전화가 걸려와도 피하는 때가 있어서 나는 좀더 잘해 드릴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6천1백60「달러」짜리 골동「핀」을 사기 위해 시아버지가 결혼선물로 준 「다이아몬드」, J·F·K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루비」와 「다이어몬드·핀」,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선물 받은 금과 「에머럴드」등을 팔아서 현금 4천4백「달러」를 마련한 적도 있었다. [ 선데이서울 69년 7/13 제2권 28호 통권 제42호 ]
  • [깔깔깔]

    ●외국인이 한국인다됐다고 느낄 때*식당에서 맨발로 양반다리하고 밥 먹을 때. *도로에서 차를 몰다 끼어들기 할 때 상대방을 쳐다보지도 않고 왼손부터 흔들 때.*가격을 소리높여 외치는 야채 행상 트럭 소리에 잠이 깨서 “어 정말 싸네.”하면서 나가서 사올 때.*친구들의 술 잔을 채워줄 때 술 잔을 잡지 않는 친구들이 무례하다고 느껴질 때.*의자보다는 방바닥에 앉는 게 편하게 느껴질 때.*다른 외국인들이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과외비를 주기 시작했을 때.*고향으로 돌아가서도 사람들에게 고개숙여 인사할 때. *사람들이 영어로 물어봐도 한국어로 대답할 때. *젓가락으로 국수 한가닥을 집어올릴 때.
  • 中·타이완 ‘판다 싸움’

    판다곰을 둘러싼 타이완 정부와 중국 당국의 신경전이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 국가임업국이 지난 6일 타이완에 선물할 판다곰 암·수 한 쌍을 확정하고 오는 6월 타이완에 보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선물하기로 한 판다곰은 쓰촨(四川)성 워룽(臥龍) 판다보호연구센터에서 보호중인 각각 1년 5개월과 1년 4개월된 암컷 황마오 야토우와 수컷 샤오과이과이.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민진당 정부는 “중국이 판다곰을 이용해 평화공세를 벌이며 타이완 국민들을 분열시키려 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타이완 정부와 사전 한마디 상의도 없이 판다곰 선물을 발표한 데다 야당인 국민당 당수의 방문을 계기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롄잔(連戰) 당시 타이완 국민당 당수는 민진당 정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회담하며 ‘국·공합작’을 모색, 민진당 정부의 신경을 긁어댔다. 8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타이완 정부의 대륙판공실의 조셉 우 실장(장관급)은 “무례한 행동”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민진당 정부는 판다곰 선물을 중국정부의 ‘트로이의 목마’로 보고 있다. 판다곰을 통해 중국과 타이완과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타이완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흐려놓으려는 평화공세란 시각이다. 천 총통의 민진당은 그동안 ‘타이완과 중국은 별개’란 입장을 명기한 헌법 개정 등을 추진해 왔다. 반면 중국에서 건너와 장기집권을 유지하다 밀려난 국민당은 대륙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민진당의 헌법개정 저지에 노력하는 등 중국 공산당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이같은 판다곰을 둘러싼 신경전은 자칫 외교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민진당 정부가 판다곰이 타이완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측 반응과는 달리 어린이들과 일부 타이완인들은 판다곰의 입국을 환영하면서 입국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판다곰의 입국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양안관계의 척도로 떠오르고 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열린세상] 버시바우 대사는 총독인가/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 교수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과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드럼치는 대사’로 알려진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북한에 대해 자극적인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을 ‘범죄정권’으로 지칭하는가 하면,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세계대회에 참석해서 북한의 인권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 최근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의 위조 달러 제조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해, 한·미 정부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6자회담 재개를 앞둔 시점에서 버시바우의 이런 발언들은 우리 정부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장 북한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민족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버시바우 대사의 추방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수위를 넘는’ 발언에 유감을 표시했고,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을 비난하는 시민단체들의 성명이 잇따랐다. 급기야 김원웅 의원이 국회에서 소환결의안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우리 정부 고위당국자는 위폐 제조 발언에 대해,“대사가 말하기엔 적절하지 못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버시바우의 발언과 행동은 단순히 북한에 대한 비난에 그치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요구하는가 하면, 미국제 무기의 구매를 위한 노골적인 압력 행사로 이어졌다. 한 연구원 주최 포럼에 참석해서는 대북경제협력의 조정과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나섰다. 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2조원대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도입사업과 관련해, 외압 인상을 주는 행동과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내정간섭에 가깝다. 양국간에 우호협력관계를 다지려는 대사의 모습이기보다는 마치 식민지의 총독을 연상케 한다. 버시바우의 이런 태도는 아시아지역 근무가 처음이고 한국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한국국민들의 정서와 분위기 파악을 못한 면도 있지만, 매우 의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자극적이고 강경한 발언들은 개인적인 발언이라기보다는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 기류로 전환하고 있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과 행동은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들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과의 협상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강경파들은 북한의 외환창구 봉쇄를 비롯해 대북경제제재 조치를 확대하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여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을 자극해 6자회담을 파탄 내고 궁극적으로는 북한붕괴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한가운데 버시바우 대사가 있다. 과연 버시바우 대사가 남북관계의 변화와 호혜평등한 한·미관계의 발전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대에 부합되는 인물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주재국의 남북화해협력 정책에 반하는 발언과 행동을 일삼고, 극우단체들과 어울리는 그의 행동은 대사로서 부적절하고 무례한 것이다. 다른 나라 대사가 이처럼 행동했다면, 과연 우리 정부가 지금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했을지 의문이다. 버시바우 대사의 무례한 태도는 한·미관계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국민들 사이에 반미감정을 촉발시킬까 우려된다. 전 크리스토퍼 힐 대사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한국의 젊은 네티즌들과 대화를 하는 등 반미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크게 공헌한 것과 비교된다. 우리 정부는 한·미관계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버시바우 대사의 최근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에 대해 강력히 경고해야 한다. 드럼을 자기 혼자만 멋대로 쳐대서는 소음에 불과하다. 다른 악기와 조화를 맞춰야 하고 청중들의 취향도 고려해야 한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 교수
  • 儒林(50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2)

    儒林(50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2)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 (22) 노씨부인의 이러한 열녀적 행동은 실록에도 실릴 만큼 모범적인 것이었다.‘인조실록’에는 노씨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사 조익(趙翼)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신이 듣기로는 이이는 나면서부터 남달리 뛰어나 말을 배울 적에 이미 문자를 알았다고 합니다.… 이이는 집이 가난하여 형제가 모두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하였는데, 그의 처가는 재산이 조금 있어 장인 노경린이 서울에 집을 사주어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의 가난함을 차마 못 보아서 곧 그 집을 팔아 무명을 사다 나누어 주었으며, 끝내 한 고랑의 터전도 없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갈 수 없는 가난한 모든 형제를 불러다 같이 살며 죽을 쑤어 함께 먹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폐질을 앓았으나 죽을 때까지 예의와 공경을 다하고 삭망(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 지내는 제사) 때마다 자제들을 불러 모아 예절을 다하였습니다. 집안에서의 몸가짐이 이와 같았으니 인륜을 다하였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실록의 기록을 참조하면 율곡은 그 무렵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할 정도’로 몰락한 가문의 후예였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어쩔 수 없이 과거시험을 보았던 이유를 ‘우리 집안이 대대로 생업이 없으므로 곤궁하여 가계를 지탱하지 못해 노친이 집에 계셔도 능히 맛있는 음식을 드리지 못 한다.’라고 변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다행히 아내 노씨가 비교적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서울에 집을 사주어 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보이나 율곡은 이를 팔아 그 당시에 화폐역할을 했던 무명을 사다 형제들에게 나누어줄 만큼 가족의 우애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 노씨는 이에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실록에 나와 있듯이 예의와 공경을 다해 남편을 섬겼던 현모양처였다. 이러한 남편공경은 노씨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병약한 몸이었으나 노씨는 율곡이 간 뒤에도 8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자초한다. 이른바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자 주위에서는 피란을 가라고 권유하였으나 노씨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단연코 거부하였다고 한다. “하늘처럼 섬기던 어른을 잃은 지 벌써 8년이 지났으니, 내 목숨이 너무 모질다. 그러니 구차하게 살아 목숨을 부지하여 무엇 하겠느냐.” 왜병들이 쳐들어오자 노씨 부인은 신주를 품에 안고 시부모와 율곡의 묘가 있는 파주의 선영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마침 적병들이 노씨를 찾아 무덤까지 올라오자 그녀는 신주를 안은 채 왜병을 향해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네, 이놈들.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칼을 들고 무례히 침입할 수 있느냐. 하늘이 무서운지 모르겠느냐.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이 말을 들은 왜병들은 일제히 칼을 들어 노씨 부인을 베었으며, 그 길로 노씨 부인은 왜병들의 칼에 난자당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남편의 무덤가에서 장렬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 儒林(49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儒林(49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명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처럼 율곡이 자신의 전생을 김시습으로 보고 이 세상을 가낭선(賈浪仙)으로 보았다는 것은 이 무렵 율곡의 마음 속에 미친 바람과 성난 파도와 같은 인생의 질곡(桎梏)이 얼마나 그를 구속하고 있었던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시습(金時習).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듣자 그 길로 삭발을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던 음유시인. 율곡은 자신의 전생을 김시습이라고 노래하면서 현실과 이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한때는 중이 되어 무본(無本)으로 불리었다가 환속하여 시인이 되었던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를 견줌으로써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은유하고 있음인 것이다. 어느 날 시인 가낭선은 늙은 말을 타고 천천히 장안의 거리를 지나면서 시 짓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절친한 친구였던 이응(李凝)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가낭선은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여(題李凝幽居)’라는 시제를 정해 놓고 다음과 같은 오언율시를 짓기 시작한다. “한가로이 거처하니 이웃도 드물고 풀숲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통한다. 새는 연못가에 나무 위에서 잠들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閑居隣竝少 草徑入荒園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그런데 시인 가낭선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가낭선은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僧推月下門)’라고 문장을 썼으나 갑자기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로 고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을 민다(推)’로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문을 두드린다(敲)’로 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가낭선은 늙은 말을 타고 고개를 숙이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민다로 하는 것이 나은가, 두드린다로 하는 것이 나은가, 그것 참 어려운 일이도다.” 그때였다. 갑자기 길거리에서 벽제소리가 들려 왔다. “비켰거라, 어느 안전이라고 무례하게 길을 막느냐. 네 이놈, 물렀거라.”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고관의 행차 앞을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고관대작이 타고 가던 행차를 마주하면 즉시 길을 비키고 타고 있던 말이나 수레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부복하는 것이 법도였으므로 가낭선은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더욱이 길을 가던 사람은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이었던 한유(韓愈). 그는 뛰어난 유학자였을 뿐 아니라 당의 도읍 장안의 경조윤(京兆尹) 벼슬에 올라 있던 최고의 권신이었던 것이다. 당황한 가낭선이 말에서 내리자 한유는 자신을 막은 사람이 다름 아닌 시인 가도임을 전해 듣고 그를 불러 자신의 곁에 오도록 한 후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가도는 시를 짓는 도중 한 문장에서 가로막혀 그것에 신경 쓰고 몰두하느라 벽제소리를 듣지 못하였다고 변명하였다.
  • [토요일 아침에] 추기경께 드리는 ‘생명공학’ 편지/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추기경님께 올립니다. 혹시 1997년 11월19일을 기억하시는지요. 가톨릭 인천교구에서 131년 만에 한국국민들에게 1886년 병인양요에 대하여 참회한 그 일 말입니다. 병인박해 때는 프랑스 주교 2명과 신부 7명을 포함한 수많은 조선인 신자가 종교적 이유로 처형되자 7척의 프랑스 극동함대에 탑승한 리델신부와 최선일 최인서 심순녀 등 조선인 신자들은 물길 안내인과 통역관으로 함대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종교박해를 이유로 제국주의 세력을 끌어들여 강화도민과 우리민족에게 큰 고통과 상처를 안겨준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보다 100년 전쯤에는 황사영이라는 천주교도가 서양의 배 수백척과 군대 5만∼6만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케 하는 방안을 적어놓은 글을 담은 흰비단 원본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최근의 ‘배아출기세포 사태’를 지켜보면서 모두가 황우석 박사님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 때 저는 가톨릭의 입만 열심히 지켜 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련의 발언들 속에서 왜 8년 전의 그 인천교구 참회사건의 과거사가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에 근본주의자와 윤리주의자를 포함한 도덕군자 율법학자가 이렇게도 많이 살고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황 박사님의 연구업적을 종교적 원리주의 입장만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는 뭔가 2% 부족함을 느낍니다. 더욱이 교구장님이 나서고 그것도 모자라 추기경님까지 우려를 하시고, 어느 신부님은 세계배아줄기세포허브연구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오버’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종교이념에 충실하다는 성체줄기세포연구에는 100억원을 교단에서 지원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역사적 안목으로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여유와 노력도 병행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가톨릭은 1970∼80년대 어두운 시절 ‘민주화’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400만명의 정예신도와 함께 그 속에 수많은 엘리트와 여론주도층을 귀의케 하여 매우 영향력있는 큰 교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해지면 오만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때부터 내 목소리만 마냥 커져 갑니다. 신라 고려 때는 왕과 문무백관 그리고 모든 백성이 불교신자였습니다. 국사나 왕사의 말 한마디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가 영원한 불국토임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교단 구성원은 모두가 거만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 과보는 금방 나타납니다. 조선이 개국되면서 승려는 서울출입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최하층의 신분으로 그 빚을 몇백년 동안 열심히 갚아야 했습니다. 오만은 대중의 등돌림으로 이어지는 것이 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중이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유동성의 존재임을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 우리종단의 과거사입니다. 힘이 있을 때도 그 힘을 아껴야 함을 종교역사는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종교적 신념과 대중적 정서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추기경 한 분도 버거울진대 만약 두 분이 나오신다면 국가적인 경사이긴 하겠지만, 우리도 마냥 박수만 치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 ‘3인의 독립군’MBC 피디수첩의 군자금(광고료)까지 누구처럼 걱정하실까봐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일련의 사태로 한국사회에 동서·남북·계층갈등 위에 설상가상으로 종교갈등까지 한겹 더 보태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또 100년 후, 영문도 모른 채 후배신부님들이 또다시 ‘참회록’을 읽어야 하는 결과를 빚게 되는 건 아닌지 미래수도자들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21세기를 함께 살아가는 7080세대 수행자가 대통같은 좁은 소견머리이긴 하지만 작금의 지나친 줄기세포 시시비비에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어 큰어른께 감히 한 말씀 올리게 되었습니다.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 [사설] 황 교수 연구 복귀로 논란 끝내야

    MBC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용 난자출처 의혹을 보도한 이후로 이 문제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걱정스럽다. 네티즌의 들끓는 여론에 못 이겨 이 방송프로그램의 대부분 광고주들은 광고를 중단했다. 황 교수의 인터넷 팬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촛불시위가 이어졌다.MBC가 취재과정에서 위압적이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관용이 부족한 우리 사회를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왜 간여하느냐.”며 핀잔을 주는 등 논란은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진실을 밝히든 국익이 중요하든, 이런 식의 국론분열은 진실과 국익을 모두 잃을 뿐이다. 황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MBC는 진실 추적 여부를 떠나 취재과정에서 협박이나 무례함이 있었다면 스스로 진상을 밝히는 게 도리다. 네티즌도 취재와 보도를 맡았던 PD들의 가족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촛불시위와 광고중단 등으로 압박한다면 이 또한 성숙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상황을 염려하면서 지적한 말에 대해서도 본질과 달리 폄훼·왜곡하는 일은 자제했으면 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24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백의종군을 밝힌 황 교수는 며칠째 연구를 접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고 한다. 그의 부재로 연구의 진척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황 교수의 사과 당시, 우리는 윤리논쟁을 중단하고 연구에만 전념해 줄 것을 당부했었다. 이제 황 교수는 연구실로 돌아와야 한다. 국민도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연구팀의 전열을 정비하고 연구과제를 정리함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희망과 믿음을 주는 것만이 혼란을 끝낼 수 있는 길이다.
  • [기업 氣를 살리자] (5) 업무강도 높아지는 IR팀

    기업내에서 요즘 뜨는 부서가 있다. 소액주주의 발언권 확대와 외국계 지분이 대폭 늘어나면서 IR팀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것. 그러나 IR 담당자들은 밖에서 보는 것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 7~8곳 출장에 10시간 미팅 A기업 IR 담당자는 “주가가 조금만 내려가도 자사주를 매입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며, 때로는 개인투자가에게 욕을 얻어먹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남들은 출장이 많아서 좋다고 하지만 IR 담당자의 출장은 하루에 투자가 7∼8곳을 만나 10시간 가까이 미팅을 갖는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출장 스트레스가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상장사협의회가 최근 30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5년 IR 실태조사’에 따르면 IR담당자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전문성과 경험 부족이 27.5%로 가장 많았다. 인력부족(22.3%)과 다른 업무와 중복(21.6%), 관련 부서의 비협조(13.0%) 등이 뒤따랐다. 주주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기업 IR맨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주가에 민감한 내용이 터져 하루종일 투자가에게 시달리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만하다. 주총꾼들의 갖은 협박과 기관투자가들의 비공식적이고 무례한 배당 요구, 의결권 행사를 통한 경영권 협박 등도 다반사다. ●주가예측등 무례한 요구도 다반사 B기업 IR팀장은 “투자가들이 회사 주가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기업의 장기 전략과 비전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이 만만찮다.”고 설명했다.C기업 IR담당자는 “심지어 우리보고 주가를 예측해달라는 투자가도 있다.”고 말했다. IR 담당자들은 투자가를 위한 ‘얼굴 마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경영권 분쟁의 최전선에 나설 때도 있다. 투기펀드들이 거액의 차익을 노리고 지분을 대거 매입하면 IR팀은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SK㈜와 소버린자산운용, 삼성물산과 헤르메스,SK텔레콤과 타이거펀드 등이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간에도 M&A(인수합병)가 활발해지면서 IR팀의 업무 강도가 한층 세지고 있다. IR담당자들이 또 어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액주주들의 공격. 욕설 뿐 아니라 협박하는 내용이 많다. 삼성전자는 정기주총 때마다 소액주주들에 시달리는 것이 연례 행사로 굳어졌다. 기관 투자가들도 주주로서 의결권 행사에 적극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어 IR 담당자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곧 90회를 맞는 전국체육대회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잔치였다. 줄임말로 ‘체전’이라 부르게 된 언저리에는 ‘체력은 국력’이라던 시절의 개인보다도 국가 명예를 최고로 치던 잔영이 남아 있다. 군화발이 득세할 무렵인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전후로 체육이 도색영화, 성(性)산업과 더불어 3S(Screen·Sports·Sex) 정책으로 국민들을 도취시키기도 했다. 스포츠에 매력이 숨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다 프로스포츠가 인기를 누리는 등 격변기를 맞아 체전은 물론 아마추어 대회는 시들해져만 갔다. 어떤 이들은 전국체전을 두고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체전은 누구에게든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고향의 마을 어귀엔 아무개 아들이나 딸이 체전 대표로 뽑혔다느니, 무슨 메달을 땄다느니, 몇등을 했다느니 하는 빨간 글씨가 적힌 큼직한 현수막이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른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전국체전이라고 해봐야 귓전으로 흘려 들을 정도로 더 싸늘해졌다. 하지만 역시 골목 골목에서는 ‘우리 동네 아무개, 우리 학교 아무개가 몇등을 먹었다.’는 식의 입소문이 환영 플래카드와 함께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신화의 도시’로 불리는 울산에서 제86회 전국체전이 펼쳐졌다.1792명이 뛴 서울시 선수단은 총점수로 순위를 가름하는 대회 방식에 따라 경기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2위로 돌아왔지만 금메달 숫자는 114개로 가장 많이 따왔다. 서울 체육을 보면 한국 스포츠가 보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스타들도 많이 몰린 곳이 바로 서울이다. 인구 1000만이 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스포츠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짝 들여다본다. ■ 장대높이뛰기 1인자 김유석 “내 아버지가 백만장자라 해도 내 삶은 장대 높이뛰기에 걸었다.” 세살 때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태평양을 건너갔던 한 꼬마가 어엿한 청년으로 되돌아와 체육계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그 보물단지는 다름아닌 서울시 체육회 소속, 그것도 한국 스포츠에서 황무지라 할 육상 종목에 있다. 지난 8월초 시청에 입단했다. 더욱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이민을 가거나 원정 출산까지 감행하는 게 한국의 요즈음 세태다. ●“날아가는 멋에 살죠.” 김유석(23). 서울시 육상단 선수로 뛰고 있는 그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자연을 이용해 가장 멀리 날아가는 사람으로 불린다. 현재 장대 높이뛰기 최고기록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흔히 버거운 살림살이에 쫓겨 아들 딸에게 책을 쥐어주기는 고사하고 운동으로 ‘계층 상승’을 겨냥하기 쉬운 우리 현실과는 다르다. 최소한 학업과 경제사정을 따지면 아쉬울 게 도무지 없는 편이라 그를 바라보는 체육계의 눈은 ‘기대 반, 부러움 반’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등학교도 미국의 5대 명문 사립재단인 디어필드 아카데미(Deerfield Academy)를 나왔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역시 명문 중에서도 명문인 UPEN(University of Pensylvania)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장대높이뛰기 종목을 육성하는 UCLA를 선택하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고집까지 보였다. 한국 육상을 말하자면 몇몇 굵직굵직한 스타들을 낳은 마라톤 정도가 전부라 하겠기에 더욱 그렇다. 김씨는 전국체전을 다녀온 뒤 약간은 실망스러운 가운데 다음 기회를 벼르며 다시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 올 4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MPSF(Mountain Pacific Sports Federation) 육상대회에서 5m61㎝로 한국 최고기록을 일궈낸 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대회 신기록에 머물고 말았다. 그가 한국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세번째였다.2003년 5월 미국 PAC-10 선수권대회에서 세운 5m55㎝, 지난해 6월 전미 대학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 5m60㎝를 1㎝,5㎝씩 끌어올렸다. 지난 15일 남자 일반부에 출전,5m36㎝를 뛰어올랐다. 웬만한 이들 같으면 대회신만 해도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이 웨이 UCLA 2학년 때인 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돼 줄곧 육상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실력에 못잖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금까지 20여년을 이국에서 지내오면서도 단 한번도 국적을 바꿔보지 않은 그의 가족들이다. 세 글자가 뚜렷한 이름도 마찬가지다.3년 전 아버지가 한국을 위해 뛰어야 한다며 대한육상경기연맹에 아들 실력을 봐달라고 연락해온 데서도 알아볼 만하다. 이같은 사실을 보란 듯 증명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육상연맹 홍순모(46)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칠레에서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이 때 유석이를 처음 만났지요. 시드니올림픽을 치러낸 나라라는 거드름에 들뜬 오스트레일리아 육상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미개인’ 운운하며 놀려댔지 뭡니까.” 오징어에 고추장, 된장 등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란다. 그런데 김씨가 한발짝도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못쓴다며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 사과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으라고 해 항복(?)을 받아냈다고 홍 이사는 덧붙였다. 고교 때 동급생들 사이에 최고의 실력을 뽐내던 김씨는 한국 국가대표로 나선 2002 대구 유니버시아드와 지난해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선 뜻밖의 부진을 보였다. 대회참가 직전에 훈련하다가 봉이 부러지는 바람에 손목 부상을 입고도 끈질긴 투혼을 보였다는 대목은 그가 장대 높이뛰기라는 운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디어필드 아카데미 2학년에 올라가면서 뉴잉글랜드 사립고등학교대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내리 3년간 챔피언이 되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수 아래였던 친구들이 요즈음 들어 (5m)70∼90㎝대까지 기록하는 데 대해 자존심이 상한 상태라고 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장래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라고 육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머잖아 해내고 만다.” “장대 높이뛰기에서만 경험하는 하늘을 나는 그 기분, 그 환희. 그보다 좋은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저는 장대 높이뛰기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김씨는 고교 동창생이기도 한 형이 의무학점인 스포츠 종목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 배우다 푹 빠지게 됐다. 형은 하버드를 나와 미국에서 사업가로 주목받고 있는 반면, 성적이 더 뛰어나다던 동생은 아예 직업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운동이냐, 전공을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을 때 “네 길을 걸어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들도 그의 가족이다. 선수이면서 학생회 임원, 학년 대표를 지낼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선수라 해서 수업이나 과제, 시험에서 예외일 수 없는 환경에서 한치도 모라람이 없는 재목이었다.191㎝ 84㎏의 건장한 한국청년은 외모도 빼어나 영화에 출연하고 모델 제의도 받은 적 있다. “더 좋은 대학교를 마다하고 운동을 한다고 덤볐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은 삶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운동 선수에게는 UCLA보다 더 좋은 대학은 없다, 좌우명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행복 이상은 없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27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육상 대회에 차례로 나가며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장대높이뛰기 사절’인 셈이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크라이나의 부브카를 지도한 얼 벨 코치와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마이클 톨리 코치가 그를 주목해 단련시키고 있다는 점은 미래를 밝혀주는 사실이다. 독일인 매니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한국 출신의 월드스타 탄생을 예감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핏줄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언젠가 큰 일을 벌일 것이라고 육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모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운 정신과 스포츠맨으로 제1 덕목인 반듯하고 절제할 줄 아는 태도 때문입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땀으로 일군 ‘스포츠 서울’ ‘아우 먼저, 형 먼저’ 하는 쌍둥이 메달리스트에서부터 방망이 든 프로배구 감독의 아들, 야구 감독의 핏줄을 이어받은 다이아몬드 유망주까지…. 수도 서울의 명예를 걸고 땀을 흘린 전국체전 선수단에는 여러가지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도 서울시 여자축구단이었으니 “막판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라는 자부심에 들뜰 만하다. 이들 가운데 레슬링에 출전, 메달을 따낸 쌍둥이 형제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쌍둥이 아니랄까봐 군에도 나란히 입대한 국군체육부대 김종대·종태(25)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로 10분 먼저 태어난 김종대가 형이다. 형제는 중랑중 1학년 때 나란히 레슬링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형은 이듬해 손을 뗐다. 두명 모두 운동을 시킬 수는 없다는 부모님 반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슬링을 잊지 못하던 차에 3학년 때 다시 매트에 올랐다. 이 때 생긴 공백 탓일까. 동생이 그레코로만 1위를 한 반면 형은 자유형 3위로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몸무게가 55㎏으로 같지만 서로 매트에서 다투는 일만은 피할 수밖에 없어 세부종목만 나눴다. ‘상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국군체육부대에 뽑힌 것만으로도 실력을 알아줄 만한데 당당하게 메달까지 따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차세대 황영조로 불리는 육상 꿈나무 전은회(17·배문고)는 남고부 5000m와 10㎞에서 우승해 장거리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전은회는 지난 5월 전국 고교대회 10㎞에서 29분 27초로 황영조(35·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강원도 명륜고 시절인 89년 세운 기록 29분 31초를 4초나 앞당겼다. 이어 지난 6월엔 5000m 레이스에서도 허장규(22·삼성전자)가 갖고 있던 고교 최고기록 14분 17초 93을 12초나 앞당긴 14분 05초 44를 기록해 제2의 황영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교부 야구에서 우승한 신일고엔 왕년의 배구스타 아들이 눈길을 끌었다.2학년 강성호(16)군은 아버지 강만수(50) 전 현대캐피탈 감독의 뒤를 이어 중3 때까지 배구를 하다가 야구로 전향(?)한 사례다. 프로야구 LG트윈스 2군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인식(52) 감독의 아들 김준(20·고려대 2년)군도 서울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이밖에 대학부 검도에서는 허동찬(21·성균관대 3년), 동진(19·성균관대 1년) 형제가 5명씩 겨룬 단체전에서 금메달 못지않은 은메달을 따내 ‘칼 솜씨’를 뽐냈다. 서울 대표팀은 신기록도 쏟아냈다. 한국신기록 42개 가운데 5개, 대회신기록 165개 가운데 28개를 낚았으니 체면을 구기지 않은 셈이다. 특히 4관왕에 오른 6명 가운데 수영의 박태환(16·경기고 1년)은 대회 마지막날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아 서울을 빛냈다. 여자축구 결승전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올해의 선수 후보에 뽑힌 ‘여자 박주영’ 박은선(19)을 앞세워 경남대교를 2대0으로 물리쳐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동작구청 씨름단 주현섭(27), 강남구청 체조단 박경아(19)와 최미선(25), 성북구청 펜싱팀 남현희(24) 등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선수들이 따낸 메달 28개도 색깔을 떠나 어려운 여건에서 건져낸 것들이어서 박수를 받을 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부시는 무례한 카우보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낸 래리 윌커슨 예비역 대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카우보이식’ 무례한 외교를 설명하면서 지난 2001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때 일어난 일을 사례로 든 것으로 확인됐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뉴아메리카재단’ 초청으로 학자와 언론인을 상대로 강연하면서“미국이 마치 뒷골목 악당처럼 모든 것을 이기려 할 필요가 없는 데도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등 품위를 잃어버렸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김 전대통령에게 대했던 태도를 문제삼았다. 그는 “만일 당신이 발걸이 의자에 발을 올려놓고 노벨상을 수상한, 당시 한국 대통령인 사람을 쳐다보면서, 그가 북한과 화해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당신이 매우 무례한 방법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다. 그것은 카우보이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정부의 외교를 장악,“밀실 결정으로 미국을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윌커슨은 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극도로 약하다.”면서 “현재 국무부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스 장관이 “대통령과의 친교를 위해 ‘정직한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버렸다.”고 주장했다. 윌커슨은 또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되는 더글러스 페이스 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에 대해 “그보다 더 멍청한 사람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고 극언을 서슴치 않았다. 31년간 해병대에서 봉직했던 윌커슨은 파월 전 장관과는 군과 민간에서 16년간 함께 일해 왔다.dawn@seoul.co.kr
  • 울산집결 여야지도부 ‘3색행보’

    울산집결 여야지도부 ‘3색행보’

    여야 지도부들이 14일 울산에 총집결했다. 오는 26일 울산 북구 재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를 격려하고, 유세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때마침 울산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개회식에도 나란히 참석했다. 하지만 각당 지도부의 동선은 확연히 달랐다. 문 의장은 ‘요란스러운’유세에 나서지 않았다. 개회식 참석 직전 선거대책 본부를 방문, 박재택 후보와 관계자를 격려하는 데 그쳤다. 반면 박 대표는 이날 지역 상가와 아파트를 윤두환 후보와 함께 돌며 지지를 적극 호소했다.1박2일 유세 일정을 짠 박 대표는 대구로 이동, 하룻밤을 보낸 뒤 15일에는 유승민 후보가 나선 대구동을 지역을 훑는다.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는 개회식에 참석하는 대신 조승수 전 의원의 지역구를 사수하기 위해 사흘째 바닥표를 다지며 정갑득 후보를 측면지원했다. 이를 두고 여야는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전자정당위원장은 “참여연대 조사 결과 박 대표의 상임위 출석률이 24.5%에 그친다.”면서 “박 대표는 치어리더 노릇을 그만둬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제1야당 대표에게 치어리더 운운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오만함과 무례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열린우리당은 재선거를 지원해봤자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아예 판을 뒤집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박수 인심/신연숙 논설실장

    공연장에서 박수 인심이 후하기로는 우리나라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장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소리에 휩싸인다. 그만큼 공연수준이 높고 관객의 공감을 샀다는 증거일 것이다. 높은 성취감에 감격해하는 연주자의 표정은 보기에도 흐뭇하다. 그러나 뜨거운 박수가 항상 미덕인 것은 아니다. 소나타형식 음악의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다. 전체 악곡의 통일성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세계적 대가의 공연일수록 중간에 꼭 박수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값비싼 공연에는 기업홍보용 초청티켓 입장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쉽게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음악애호가라기보다는 ‘이벤트 구경꾼’쪽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하나 아이러니가 있다. 유명 연주자일수록 이런 관객들의 무례에 너그럽다는 것이다. 이번 가을 베를린필 실내악단과 협연한 첼리스트 장한나도 그랬다.‘싱긋’ 미소로 객석을 무마한 후 태연히 연주에 몰입했다. 이런 경험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깊은 예술 도야가 돼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고서야 어찌 진실한 예술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신연숙 논설실장 y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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