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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크메르루주 제재 시사/UNTAC대표

    ◎“안보리 결의안 채택 가능”/「해방전선」선 정부군가담 표명 【도쿄 AP AFP 연합】 아카시 야스시(명석강) 유엔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대표는 17일 무기 이양을 거부하고 있는 크메르 루주에 대한 국제적압력을 촉구하고 이들이 무력도발을 계속할 경우 유엔의 제재조치가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카시 대표는 특히 지난 13년간의 내전 기간중 크메르 루주를 후원해 온 중국과 태국이 이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크메르루주가 굴복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중이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채택이 가능한 한가지 방법이라고 말했으나 더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프놈펜 AFP 연합】 캄보디아의 최대 무장세력인 크메르 루주와 제휴하고 있는 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KPNLF)은 17일 평화 실현 노력이 실패할 경우 동맹 정파를 바꾸어 정부군에 가담해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손산 전 캄보디아 총리에게 충성하는 KPNLF는 크메르 루주가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크메르 루주측에 대항해 무기를 들 것이라고 이앙 물리 KPNLF 부사령관이 밝혔다.
  • “무장침투사건 사과하라”/최 국방,대북경고

    ◎“더 이상의 무력도발땐 좌시않겠다” 【중부전선=안병준기자】 최세창국방부장관은 16일 『지난 5월22일 군사분계선에서 발생한 무장침투사건은 북한의 목표가 남북관계개선을 통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보다는 무력적화통일에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중대한 도발사건』이라고 전제,『북한은 이번 도발행위를 솔직히 사과하고 관련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최장관은 이날 하오 육군제1968부대에서 있은 대침투작전 유공자표창식에서 격려사를 통해 이같이 언급하고 『특히 북한이 지난해12월 채택한 「한반도의 비핵화등에 관한 공동선언」을 통해 상호보유하지 않기로한 핵재처리시설을 건설하고 있는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치못한다』면서 『이의 건설을 중단,폐기함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존중하겠다는 자세변화를 행동으로 증명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장관의 이같은 대북경고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후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북한을 자극시키는 발언을 자제해왔던 점을 고려할 때 화해무드의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주목된다. 최장관은 이날 경고에 앞서 지난15일 청와대 보고과정을 통해 경고발언을 사전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장관은 또 『북한이 끝내 우리민족의 평화적 통일염원을 외면하면서 무모한 무력도발을 또다시 획책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뒤 『이로인한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엄중경고한다』고 밝혔다. 이날 표창식에서는 육군제2672부대와 제1968부대가 대통령표창을,제1968부대 전초13중대장 김승겸대위·전초16중대 박철호병장등 40명이 무공훈장및 대통령·국무총리표창을,전초16중대 하경호이등상사등 9명이 일계급특진을 했다.
  • 정전위 외면한 북의 속셈/김원홍 사회2부차장(오늘의 눈)

    29일 상오11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장에는 유엔군측 수석대표 황원탁소장이 대표단과 함께 공산군측 대표단이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15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회담장주변에는 1년3개월만에 열릴 군정위 본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1백여명의 유엔군측 보도진들이 모여 있었으나 공산군측 대표단이 나타나지 않자 실망스러운 표정들이었다. 53년 7월 27일 휴전이후 4백59차례가 열렸던 군정위의 기능이 정지되고 대화와 교류 협력에서 다시 냉전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군정위 본회담은 휴전협정위반사항을 토의하기 위해 유엔군측이나 공산군측이 판문점 일직장교단을 통해 회담개최를 제의하면 제의를 받은쪽이 회담날짜를 수정제의함에 따라 개최되어 왔다.그러나 휴전이후 처음으로 공산군측은 이번 유엔군측의 회담제의를 철저히 묵살,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유엔군관계자들은 공산군측이 지난해 3월25일 임명한 군정위의 유엔군측 수석대표 황원탁소장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본회담의 안건이 북한의 무장침투조 남파사건이기 때문에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으나 정작 회의가 열리지 않자 착잡한 표정이었다. 겉으로는 평화공세를 펴면서 속으로는 무력적화통일야욕을 버리지 않는 공산군측과 앞으로 어떻게 정전협정을 유지하며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듯 대표단들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다. 판문점 자유의 집 기자회견장에는 지난 22일 중부전선의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가 국군수색대에 의해 사살된 북한의 무장침투조가 소지했던 M16소총과 권총·수류탄 등이 전시되어 휴전협정위반의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었다. 황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도적인 처사로 북한침투자 3명의 시체를 가족들에게 넘겨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는 순백의 아카시아 꽃이 주렁주렁 늘어져 싱그러운 향기를 내뿜고 있었으나 북한군의 무장침투는 평화와 신록을 모독하는 도발행위로 밖에는 납득할 수 없었다.
  • 겉다르고 속다른 북한/장수근 북한부장(오늘의 눈)

    지난 22일 강원도 철원북방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남쪽 1㎞지점에서 발생한 북한무장침투조의 도발은 한마디로 「겉다르고 속다른 북한」의 정체를 다시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5·22도발은 한마디로 서울과 평양에서,그리고 판문점에서 마주 앉아 남북 대화를 나누면서도 뒷구멍으로 군사모험주의를 키우고 있는 집단이 바로 북한임을 한마디로 웅변한 것이다. 특히 이번 무장침투조의 무력도발은 남북한간 불신과 대결의 청산을 명문화한 「남북합의서」의 기본정신을 철저히 유린한 것이어서 우리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남북한이 지난 2월19일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발효시킨 「남북합의서」는 전문에서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그럼에도 불구,북한이 이 합의서에 서명한 연형묵총리의 자필 서명이 채 마르기도 전에 대남군사도발을 자행한 것은 그들이 여전히 대남무력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실증한 것으로 봐야할것이다. 얼마전 이종구 전국방장관은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에서 가진 특강에서 『최근 남북대화의 진전에도 불구,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은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전장관은 최근 북한고위당국자들의 비밀회의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밝혀졌다고 말하면서 재일 조총련간부가 『「남북대화는 전술적 변화」라고 밝힌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이전장관 은 또 『북한은 현재 서울에만 약 2만명의 고정간첩망을 두고 남한의 체제전복을 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이전장관의 발언은 그가 전직 국방장관이란 점에서 매우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명천지에,그것도 서울장안에서 2만명의 고첩들이 우글거리며 온갖 정보를 도둑질하고 사회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전 통일원은 남북대화와 상당수준의 경제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북한을 냉전시대의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통일의 상대역」으로 볼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물론 북한이 언젠가는 껴안아야할 우리의 「절반」임은 분명하다.애정을 가져야할 것 또한 당연하다.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가 지녀야할 것은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이중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균형감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몇 대학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인공기게양이나 감상주의적 통일논의는 『균형감각을 결여한 미망』이라고 한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국방장관은 이와관련,『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인공기가 휘날리는 위기상황을 정확히 인식,국민들은 환상적 통일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이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러나 통일은 남북한간의 상호신뢰와 화해증진이 축적돼야 이뤄지는 것이지 환상이나 기대만으론 다가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간의 신뢰는 북한이 무력혁명을 포기하지 않는한 결코 쌓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을 똑바로 인식할 때가 아닌가 싶다.
  • “「현대판 왜란」 재발 경계를”/문화등 간접침략 경각심 높여야

    조선시대 우리 민족이 겪은 최대의 외침전쟁인 왜란은 지금으로부터 4백년전에 벌어져 6년8개월에 걸쳐 우리 겨레에 크나큰 희생을 강요하였다.그 아픔의 희생은 인명의 손상이나 물질적인 것에 끝난 것이 아니라 정신직,문화적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까지 파고든 아픔이었다. 우리 겨레가 잊을 수 없는 이 부질없는 침략전쟁인 왜란을 오늘날 어떻게 우리 마음에 삭여 오늘에 사는 교훈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또한 지연관계로 밀접하게 상종할 수 밖에 없는 한일 두 민족의 장래 역사에 생산적으로 살려갈 것인가? 4백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감정적인 분노와 새삼스러운 적개심을 일깨우는 식의 회고는 역사적 성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외세에 의한 침략전쟁은 어떤 때에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어째서 그것을 자초하게 되어 심한 고난을 겪어야 했는가,전쟁에 휘말려 들었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가 등 오늘에 사는 역사적 교훈을 얻어내야만 한다.왜란 그 자체는 없었어야 할 불행한 일이었으나,있었던 그 자체에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사적 자세를 가다듬을 줄 아는 역사적 자세를 확립하여야 하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볼때 침략전쟁은 국내의 자국 모순을 밖으로,전쟁이라는 수단으로 호도하려 할 때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왜란도 무력으로 강제통일을 이룩한 히데요시 정권이 당면하게 된 대내모순을 밖의 한반도로 유도하려는 고도의 계산에서 도발된 전쟁이었다.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이웃나라가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 모순에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또한 그것은 해결방법의 진로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한편 침략세력의 틈을 탈 수 있는 약점을 밖에 드러내게 되었을때 외세는 서슴없이 침략전을 도발하게 됨을 보았다.이점에서 국력의 굳건함을 이루어 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부질없는 지배층의 분열과 비리에 의한 계층 모순이 결국 침략을 자초하게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임진왜란 당사자인 일본에 대하여는,임진·정유왜란을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인식하고 겸허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역행적 역사의식과 「조선정벌」로 자만하는 착오된 역사태도를 청산하지 않는 현대 일본인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일본을 믿을 수 없으며 현대판적인 왜란(그것은 반드시 전쟁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모습의 간접침략으로 감행될 수도 있다)의 재발에 한층 경각심을 높일 수밖에 없음을 깨우쳐 주어야만 할 것이다.
  • 「합의서」 발효후 무력도발 충격/북한 무장침투조 남파의 저변

    ◎대남 적화노선 불변 입증한셈 북한군 무장침투조 3명이 녹음기를 틈타 비무장지대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모두 사살된 사건은 남북화해와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 발효이후 최초의 무력도발사건이어서 충격이 크다. 북한이 지난90년부터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대화를 하면서 불가침합의를 해놓고도 무장침투조를 전선에 투입한것은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합참의 관계자들은 한국은 6공말기로 대선을 앞둔 정치·사회·경제의 전환기이며 대학가에 인공기가 내걸리는 무질서와 혼돈이 계속되고 있어 북한이 전선침투의 호기로 착각한 결과로 풀이하고 있다. 합참과 유엔사령부당국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이번 침투 사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한편 재발방지를 위해 철저한 경계태세를 펼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80년대에는 다대포와 월성등의 해안선을 통해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적은 있으나 한낮에 무장침투조를 휴전선을 통해 남파한 것은 매우 드문일로 북한의 도발책동이 과격해지는 것으로 풀이할수도 있다. 합참과 유엔군사령부당국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이번 침투사건에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한편 재발방지를 위해 철저한 경계태세를 펼것이라고 밝혔다. 군관계자들은 북한은 남북화해와 불가침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발효이후에도 휴전선 확성기방송과 대남방송을 통해 비방과 모략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히고 환상적인 평화무드와 통일기대를 갖지말고 북한의 적화야욕을 직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총격전이 발생한 지역은 제2땅굴에서 동쪽으로 1.2㎞ 떨어진 곳으로 70년대부터 북한 무장간첩과 귀순자의 침투로로 이용되어왔다. 합참의 한고위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명백한 휴전협정위반으로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항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무장침투조를 섬멸한 국군의 수색대원들은 포상과 함께 일계급특진 상신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러시아/우크라/흑해함대 통제권 대립/“자국귀속” 양측 공식선포

    ◎사령부근처 병력대치… 긴장 고조/“옐친­크라프추크 곧 회동”/타스통신 【모스크바·세바스토폴항 AF 연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함대에 대한 통제권을 6일과 7일 각각 공식 선포함으로써 흑해함대를 둘러싼 양국간의 마찰이 새로운 위기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는 7일 흑해함대 소속 항공기 이륙을 전명 금지시켰으며 함대사령부 접수를 위해 세바스토폴항에 급파된 우크라이나 병력이 함대 소속 러시아계 병사들과 대치하는 등 현지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흑해함대의 일부를 이양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협상을 제의함으로써 독립국가연합(CIS) 존립 자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흑해함대관할권 문제는 협상에 의해 풀릴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7일 러시아 인민대표대회 이틀째 회의에서 예브게니 샤포슈니코프 CIS 통합군 사령관이 발표한 포고령을 통해 러시아가 흑해함대 재정·인사 부문을 관장하며 작전권은 CIS 통합군사령부에 예속된다고 밝히고 통합군사령부가 궁극적으로 흑해함대를 완전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고령은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함대의 일부를 이양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 국방·대외관계(외무)부가 우크라이나와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옐친은 포고령을 통해 또한 러시아가 외국 및 CIS 기타 가맹국으로부터 철수하는 구소련군을 흡수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독자군도 앞서 밝힌 1백50만에서 70만으로 줄여 창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흑해함대 관할권을 둘러싸고 무력충돌 직전까지 치달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대립은 8일 양측이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을 모색하고 나섬으로써 타협의 돌파구가 열릴 전망이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이날 모스크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바딤 돌가노프 공보관의 말을 인용,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대통령이 흑해함대 관할권 다툼을 완전 해결하기 위해 곧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날 아나톨리 즐렌코 우크라이나외무장관에게 이번 사태를 협의하기 위해 오는 11일 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은 전했다. ◎함대분할협상서 우위선점 포석/옐친,의회서 입지강화 겨냥/우크라자체군 허약… 충돌가능성 희박(해설) 흑해함대 통제권을 둘러싼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공방은 기본적으로 쌍방모두 정치적인 계산에서 임하고 있지만 그 주제가 군사문제라는 점에서 항상 긴장을 동반한다. 6,7일 흑해함대 통제권을 두고 내놓은 두 정부의 포고령도 그 내용은 지금까지의 기존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다.오히려 러시아는 인민대표회의가 개막중이고 우크라이나는 흑해함대가 위치한 크림반도 주민들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겠다고 국민투표를 준비중인 시점임을 감안할 때 이번 공방에는 정치적 의도들이 보다 더 강하게 담긴 것으로 볼수있다.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공방에서 시작된 대립이 함대 장병들간의 분열과 함께 자칫 소규모 무력충돌이라도 야기할 경우 사태가 엉뚱하게 확대될수 있다는 점이다.이곳 군사전문가들도 흑해함대문제는 기본적으로 『구소련의 재산처리문제차원에서 해결해야될 정치적 문제』라고 규정하면서도 이런 소규모 도발가능성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지금까지 흑해함대 관할권에 대해 두 정부간에는 재래·전술전력은 우크라이나에,전략핵은 CIS합동군에 편입시킨다는 기본원칙에 합의가 이미 돼있다.그래서 현재 우크라이나 협상창구도 형식적으로는 러시아정부가 아니라 샤포슈니코프 CIS합동군사령관이 맡고있다.다만 어느 정도를 전략핵으로 보느냐는 지분문제에서 서로 이견이 있는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정부가 제시한 전략핵 지분은 전함대전력의 27%이다.나머지 73%를 우크라이나가 갖겠다는 것이고 러시아는 이 수치에 크게 불만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고있다. 옐친대통령은 흑해함대협상에서 밀릴 경우 현재 경제정책과 러시아연방분열 가능성을 들어 공세중인 의회내 반대세력들로부터의 반발에 보다 신경을 쓰는 것 같다.8일부터 흑해함대 전함정에 러시아깃발을 게양토록 한 것등이 이런 정치적 제스처로 볼수 있다.흑해함대 통제권은 아직 러시아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함대소속항공기 이륙을 전면금지한데 이어 사령부접수를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는 보도가 있으나 당장 무력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현지 관측통들의 분석이다.우선 우크라이나에 그럴만한 자체군사력이 아직 없다. 흑해 함대를 보는 우크라이나정부의 기본입장은 자국영토내에 러시아군대의 주둔을 불허하겠다는 것이다.그것이 자국에 대한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설사 전력핵 통제권을 합동군에 넘겨준다해도 이미 94년말까지 우크라이나 비핵지대화를 선언해놓았기 때문에 잠정조치에 불과할 뿐이다.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정부의 입장은 확고하게 서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함대깃발을 러시아로 바꾸는 것이 시급한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CIS국들과의 관계설정,합동군 구성문제 등에 보다 분명한 입장을 만들어 우크라이나측과 실질협상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 미국의 북도발 가능성 경고에…(사설)

    북한의 대남무력도발가능성을 경고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미국방·안보관계책임자들로부터다.체니국방,게이츠CIA국장,파월합참의장,리스카시주한미군사령관 등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대규모 군사력의 북한은 아시아안보의 중대한 위협이며 한국전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북한의 지도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보지 않는다』『현재 북한은 병력과 무기면에서 상당한 우위에 있으나 경제난과 외부지원중단 등으로 그 우위가 크게 잠식될 90년대말 이전에 공격을 개시하려 할 위험이 있다』『앞으로 3∼4년이 심각한 고비이며 북한은 무력에 의한 통일방안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북한은 병력 및 장비의 65%이상을 비무장지대로부터 1백㎞이내에 전진재배치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내년의 한반도 군사분쟁 가능성이 높다』등등이다. 물론 보다 많은 군사예산확보를 위한 과장일 수 있다.북한의 핵개발견제용일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소름끼치게 하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미국방관계자들이 그들의 목적만을 위해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을리는 없을 것이다.그들 나름의 근거는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게된다. 지난날의 냉전시대 같았으면 그중 단 한건의 경고로도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탈냉전의 시대라서 그런지 연이은 심각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신경을 쓰지 않고 예사로 듣고 있다.「설마 그럴리가」하는 분위기다. 북한을 뒤에서 버티던 공산종주국 소련은 소멸되었다.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우리와 선린·우호조약을 맺으려 하고 있다.중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세계는 화해와 공존을 지향하고 있다.남북간에도 화해·협력과 비핵화선언이 채택되는 등의 분위기다.특히 경제파탄의 북한은 전쟁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그렇게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그러기를 바란다.그렇더라도 우리의 안보의식이 이처럼 해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부정적인 측면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북한 주석 김일성은 과거를 잊자고 했지만 미래를 위해 문제삼지 않을수는 있어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평화를 내세우며 기습남침을 감행하고 남북대화를 하면서 남침용 땅굴을 판 역사가 있다.민생도탄에도 불구하고 전쟁준비에는 빈틈이 없다.한국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서울을 전격 기습점령하면 식량·연료·무기·병력의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미국쪽에서 들려오는 경고의 소리들을 이렇게 건성으로만 들어도 되는 것인가.북한은 핵무장의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인상도 짙다.경제도 어렵고 주변정세도 그렇다.권력세습의 최대난관을 앞두고 있다.그동안 예측불허성으로 유명한 북한이다. 우리 기준,우리 상식으로만 북한을 보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이다.탈냉전·화해와 공존 그리고 공산독재체제에 대한 자유민주체제의 승리라는 이름의 마약에 우리는 너무 도취하고 몽롱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국방당국자들로부터까지도 반응이 없다.역사상 해이와 방심이 모든 실패와 비극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북한군 작년 1만명 증원/탱크·장갑차도 1백여대씩 늘려

    ◎대간첩대책본부 밝혀 대간첩대책본부(본부장 이필섭 합참의장)는 21일 상오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정부 관련부서와 군 및 치안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92년도 대간첩대책 중앙회의를 갖고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한 대책과 민·관·군의 총력방위태세 확립방안에 관해 논의했다. 합참의 고위당국자는 이 자리에서 『북한은 지난해에만도 병력을 1만명 이상 늘렸을 뿐 아니라 탱크와 장갑차도 각각 1백여대씩 증강했으며,게릴라 침투용 공기부양정 40여척을 추가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히고 『따라서 남북합의서 채택과핵 공동선언문 교환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 책략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만큼 대북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육군 제6128부대를 비롯,충남지방경찰청,안산시 방위협의회,호남정유 여천공장등 대간첩 대책분야의 공로가 많은 4개 기관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몰도바공서 무력 분규/“독립 반대” 러시아인들,경찰서 습격

    【치시나우(소몰도바공) AFP 연합】 소련 몰도바공화국내 러시아어 사용지역에서 러시아계 국가수비대들이 몰도바 경찰을 습격했다고 아나톨 플루가루 공화국치안장관이 7일 밝혔다. 플루가루 장관은 지난 1일 독자적인 국민투표를 통해 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한 드네스트르 지역의 러시아 국가수비대들이 벤데리시 근교에서 몰도바 경찰차량을 향해 총을 쏘아 시민 1명이 중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슬로베지아시에서도 무장한 15명의 러시아인들이 경찰서를 점거했다고 전하면서 경찰은 그러나 어떠한 도발에도 대응치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응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충돌은 몰도바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일어난 것으로 드네스트르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이 선거를 반대하고 있다.
  • 미 전술핵 철수따른 전력보강 합의

    ◎내년 패트리어트 16기 대한 실전배치/북한 핵 공동저지책 마련이 “최대성과”/한·미 안보협 결산 21일 폐막된 제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의 가장 큰 성과는 임박한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를 위해 한미양국이 공동대응책을 마련키로 합의하고 한반도전술핵철수로 인한 대북억제력의 공백을 메우기위해 주한미군에 92년 초까지 패트리어트미사일 2개대대 16기를 도입하는등 한미연합방위력을 크게 증강시킨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종구국방부장관과 리처드 체니미국방장관을 비롯한 한미국방정책당국자들과 정호근합참의장과 콜린 파월 미합참의장등 양국군 최고지휘관들은 이번회의에서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는데 인식을 함께하는 한편 노태우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이후 안보상의 구체적인 보강조치에 합의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위협에 큰 쐐기를 박게됐다. 한미양국 군사당국자들은 북한이 핵개발을 완료,핵무장을 하게된다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시아평화유지에 결정적인 위협이 된다고 평가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정치·외교적인 압력 ▲국제적 다자간협의체를 통한 압력 ▲핵보유국을 포함한 개별국가별 압력등 세가지 대응대책마련을 계속키로 했다. 한미양국 군사당국자들은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사정거리1천㎞의 스커드미사일개발,생물학·화학무기의 휴전선 부근 전진배치등의 위협요소에 대비,유사시 하와이·일본·필리핀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공군의 24시간안 신속 출동에 합의했다. 미공군의 신속 전개 약속은 전술핵철거와 주한미군의 감군등으로 야기된 한미연합방위력의 취약점을 크게 보완하게 될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 한국에대해 사정거리 1백80㎞이상의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다자간군비통제조치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완화,사정거리 3백㎞이상의 미사일을 한국이 자체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기로 한것으로 알려졌다. MTCR는 87년 선진7개국이 미사일관련기술의 확산을 막기위한 통제체제로 5백㎏이상의 탄두와 3백㎞이상 사정거리를 갖는 미사일은 개발하지 못하도록한 규제조치다. 북한은 사정거리 1천㎞의 스커드미사일개발에 성공,미사일연대를 여단으로 증편 36기를 전방에 배치하고 있어 이에대비하기 위해 주한미군에 패트리어트미사일배치와 사정거리 3백㎞가 넘는 중장거리 미사일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반도 핵부재선언이후 취약해진 한미연합방위력의 보완을 위해 92년도 팀스피리트훈련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되어있는 패트리어트 미사일대대와 토마호크미사일·스텔스기등이 한국에 들어와 훈련을 마친뒤 철수하지 않고 주한미군에 계속 배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과학 무기는 걸프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한 이후 대부분 본토에 귀환하지 않고 중동·하와이·일본등에 배치되어있어 한국으로의 이동배치는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회담에서는 한반도유사시 한국에 전개될 미증원군의 병참,군수,수송지원을 약속하는 전시지원협정(WHNS)의 체결과 92년도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을 1억8천만달러에 합의한 것도 성과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안보·방산·군수등 5개 실무위원회에서도 1백55㎜ 자주포공동생산과 상호조달협정·과학기술상호협정·탄약현대화협정등의 연장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방위와 자주국방기틀구축을 더한층 튼튼히했다. ◎한·미안보협 공동성명 1.대한민국과 미 합중국간의 제23차 안보협의회의(SCM)가 1991년11월20∼22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2.양국 대표단은 북한이 핵안전협정의 서명을 계속 거부한 채 핵무기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화학무기·스커드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과 공세전력의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3.특히 양측은 북한이 핵 비확산조약(NPT)의 당사국 및 유엔의 회원국으로서의 의무조항인 핵안전협정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는데 우려를 표명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하여 IAEA,유엔 등 국제기구의 협력을 통해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한편,동시에 한미간 공동 저지노력을 경주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4.체니장관은 최근에 발표된 양국의 새로운 정책추진을 포함하여 한미 양국간 상호 긴밀한 협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한국에 대한 계속적인 핵우산 보장을 포함하여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은 반석처럼 확고부동하며,한미 연합억제력도 충분히 유지될 것임을 재천명 하였다. 5.체니장관은 대한민국이 무력침공을 받을 경우,미국은 1954년의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임을 재천명하였다. 6.양측은 현 정전협정체제는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대체될 때까지 계속 유지되어야 하며,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차원에서 한반도내의 실질적인 군비통제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7.양국 대표단은 한미 공동방위를 위한 방위비분담에 관해 협의하고 한국정부가 주한미군을 위하여 92년도에 1억8천만달러를 제공하며,95년도까지 주한미군 현지발생비용(Won­basedCosts)의 1/3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증액 부담하기로 합의하였다. 8.양국 대표단은 군수·방산및 기술협력체제를 상호보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한미 양국의 공동이익 증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구체적인 협력방안에 대하여 협의하였다.이장관과 체니장관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에 대한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전시 지원협정」에 서명하고,협정서명에 따른 후속조치추진방안에 관해 논의하였다. 9.양국 대표단은 금번 회의가 급변하는 국제 안보정세하에서 전통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아·태지역내 한미 공동이익 증진차원에서 21세기를 지향한 장기적 안보협력 방향을 설정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양국 국방 공동회견/“대북 군사조치보다 외교압력에 주력”/이 국방/“노 대통령 비핵화선언은 올바른 결정”/체니 이날 SCM본회의가 끝난뒤 가진 한미양국국방장관공동기자회견에서 이종구장관과 체니미국방장관은 북한이 핵개발추진을 포기하지 않는 한 93년부터 예정된 주한미군 2단계감축계획을 전면연기할 수밖에 없다며 모든 외교적 노력을 통해 북의 핵개발을 저지하는데 공동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은 공동회견요지. ­주한미군의 2단계 감축연기합의가 북한의 핵개발저지압력수단으로 유효할 것으로 보는가.또 미국내에는 북한의 핵개발저지방지책과 관련,행정부·학계·언론계등에서 강온양론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체니장관=주한미군2단계 감축연기라는 압력이 북한에 어느정도 유효한지 지금으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다만 노태우대통령의 비핵화선언과 주변국가의 비핵화의지등 외교적 노력이 북한의 핵개발저지로 이어지길 바란다.미국내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억지노력과 관련,여러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최종 정책결정은 부시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할 수 있다. ­북한이 핵개발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핵개발까지 어느정도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는가. ▲이종구장관=북한이 핵재처리능력을 갖추는데는 1년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또 그이후 1∼2년 후면 핵무기개발을 할 것으로 본다.이번 회의에서 한미양국은 북한의 핵개발 저지방안을 상당한 정도까지 논의했으나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 유엔이나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그동안 만족스럽지 못한 자세를 보인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의 전환을 유도하기로 합의했다.북한이 계속 핵개발계획을 추진해 나갈 경우상당히 강도높은 응징방안을 강구키로 한미 양국은 합의했다. ­북한이 끝내 핵개발을 강행할 경우 한국도 핵을 보유하는 방향으로 정책조정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않은데. ▲체니장관=노대통령의 비핵화선언은 매우 용기있고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앞으로 상황변화에 따른 정책결정문제를 지금 내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북한의 핵개발저지를 위한 외교적노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경우 북한내의 핵시설파괴를 포함한 군사적 선제조치를 취할 방안등도 검토됐는가. ▲이장관=북한의 핵개발과 관련.군사적 조치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유엔·IAEA 우방국과의 외교·경제적압력수단동원 등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가능한 수단이라는 판단 때문이다.따라서 이같은 방식을 퇴색시킬 무력응징등은 현 단계에서는 검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밝힌다.
  • 미 싱글로브 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주한 미2사단 철수” 카터 공약 큰 파문/“또 다른 아시아 전쟁 개입 피한다” 명분/한국측선 “철군구상은 배신행위” 반발/베시 유엔군 사령관,백악관 면담서 “최종결정전 논의” 언질 받아내 76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유엔사령부는 서서히 8·18만행으로 증원됐던 부대들을 원대복귀 시켰다.수개월 동안 군사정전위원회에서의 북한측 태도는 두드러지게 유화적으로 나왔으며 DMZ상에서의 도발도 거의 없었다.이는 우리의 강력한 무력시위가 이들 공산군 지휘부를 자제토록 했기 때문이었다. ○새 사령관으로 부임 리처드 스틸웰대장은 그해 가을 전역했으며 존 베시대장이 새사령관으로 부임했다.그는 2차대전 때 소총수로 입대하여 전장에서 현지임관,승진해온 군인중의 군인 이었다.조용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한국에서 유엔군사령관직을 수행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인물 이었다. 그러나 베시의 지도력은 곧 시험을 겪게 됐다.미국의 대통령선거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면서 민주당후보인 카터의 대외정책 공약중에는 한국으로부터 미지상군을 철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그의 유세 가운데 나타난 철군이유는 아시아에서 또다른 전쟁에의 개입을 피하기 위한다는 것이었으며 더러는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아마도 그는 2사단병력을 한국에 그대로 두는것이 미국에 유지시키는 것보다 경비가 덜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것 같다. 한국인들은 이같은 카터의 철군구상은 일종의 배신이며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불평했다.한국 군고위장성들과 정부고위층들은 미국인 대화채널에게 기회있을때마다 그 부당성을 강조했다.한국인들은 이미 5만명의 지상군을 베트남에 파병했으며 엄청난 살상에도 불구하고 연합군과 행동을 같이 했었다. 그러나 이에대해 미국은 1971년 한국정부와 한마디의 상의없이 보병7사단을 철수하는 것으로 보답한바 있었다.그런데 이제 또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나머지 병력의 철군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었다.보병2사단은 고도의 통신장비와 강력한 화력을 가진 부대로 한반도에서 북한군의 침입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카터가 당선된 후에 나는 한국군 참모총장인 이세호대장과 후에 합참의장이된유병현중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그들은 한결같이 카터 대통령당선자의 주한미군 철수주장 이유를 물었으며 또 그가 북한군 전력증강에 대한 정보보고를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다.그들은 49년 미군의 갑작스런 철수로 야기됐던 50년의 북한 침공을 상기시켰다.류장군은 『만일 당신들 군대가 떠나면 김일성이 틀림없이 다시 쳐들어 올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들에게 미합참이 대통령 취임후에 바로 이 문제를 대통령에게 환기시킬 것임을 확약했다.그러나 그들은 카터의 군사보좌관들이 주로 자유주의 그룹과 좌파경향의 평화주의그룹으로 구성돼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나는 그들을 달래려고 애를 썼지만 솔직히 나 스스로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해 12월 우리는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한 새로운 정보평가를 입수했다.전에는 북한군이 전면공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수일내지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작성된 중앙정보국(CIA),국방정보국(DIA)합동평가에 따르면 12시간이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북 침공 가능성 경고 더욱 비관적인 상황이 새해들어 전개됐다.77년 1월21일 카터대통령은 취임후 첫공식집무로 1만여명에 달하는 베트남전쟁 징집기피자들에 대한 사면령을 내렸다.이는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이 아시아에 있는 우방들을 더이상 방어할 의사가 없다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로까지 비추어진것이 틀림없었다. 2주후 베시사령관은 합참의장인 조지 브라운대장으로부터 비공식 메시지를 받았다.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에 주한 미군철수 시안인 대통령지시각서(PRM)13호를 내렸으며 세가지 방안중 어느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물어왔다는 것이었다. PRM­13은 1월27일자로 작성된것으로 틀림없이 카터대통령이 북한군 증강및 전쟁준비에 관한 새정보평가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없이 성급하게 성안된 것이었다. 제시된 내용은 첫째 즉각적인 철수,둘째 2개월에 1개 대대씩 2년내 완전철수,셋째 한국군에의 현대식 장비이양및 조작술훈련등을 포함한 4∼5년내 철수등이었다.그런데 백악관은 이 문제에 대해 서울의 유엔군 사령부와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특별히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합참은 이들 방안 모두가 한반도에 치명적 결과를 낳을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수 없다고 결정했으나 해롤드 브라운 국방장관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는 마지못해 세번째 방안을 천거했다는 것이다. 베시는 기회 있을때마다 합참의 참모들에게 북한군이 지난 가을이후 방어태세에서 공격태세로 전환된 사실등을 강조했다. 베시는 그해 3월초 회의참석차 워싱턴에 갔다가 카터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베시는 북한의 명백한 침략의도등 최근의 정보평가를 바탕으로 보고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보고하는 동안 줄곧 무표정하게 있었다.베시는 과장법을 쓰지않는 사람이며 군사작전면에서는 어느 지휘관보다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낙관적 분위기 점증 카터는 마침내 『장군,당신은 내가 미처 알지못하던 사실들을 잘 지적해주었소.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다시한번 당신과 의논하겠소』라고 말했다. 며칠후 3월9일 카터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가졌다.그가 먼저 한국에 관해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한 기자가 그에게최근 제출된 78년예산안에 주한미군 유지경비 수억달러가 포함돼 있음을 들어 그의 철군공약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철군을 하되 4∼5년간의 적절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정부와 신중하게 협의해 결정하게 될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문제는 4월말 버나드 로저스 육군참모총장이 서울에 왔을때 다시 거론됐다.리처드 스나이더대사의 관저에서 베풀어진 오찬에 참석했을때 그는 카터대통령이 철군계획을 그대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사령부는 철군결정을 정식으로 접수한바 없었으며 베시사령관에게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협의를 거치겠다고 한 대통령의 언질을 바탕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더욱이 이같은 낙관적 분위기는 5월초 미국무부와 국방부 합동으로 철군관련 고위협의단을 한국에 파견하겠다는 전문이 날아왔을때 최고조에 달했다.전문내용은 브라운 합참의장과 필립 하비브 국무차관이 인솔하는 협의단이 5월말에 파견된다는 것과 철군에 대한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한국내의 모든 그룹들과 협의를 통하지 않고는 결정될수 없음을 한국인들에게 강조하라는 지시까지 포함돼 있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1

    ◎한국부문/북한병력,남침 6일전 38선 집결/“개전 임박” CIA보고 극동 사서 무시/6·25 터지자 백악관·의회·군 “책임 논쟁”/휴일 미 보병학교서 야구중계 보다 “전쟁발발” 뉴스 들어 한국에서의 「미군」은 누구인가­.주한미8군참모장을 역임한 존 싱글로브장군(69)이 펴낸 회고록 「위험한 임무」(HazardousDuty)는 한국전쟁발발 및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77년 두번째 한국근무중 당시 지미 카터 미대통령의 주한미군철수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다 소환되어 강제퇴역 당하는등 소신을 굽힐줄 모르는 강직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싱글로브장군은 이 회고록에서 6·25는 미 CIA보고에 대한 미국정부의 판단착오 때문에 발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서울신문은 이 회고록을 긴급입수하여 「미군」으로서 체험하고 느낀 주한미군의 한반도에서의 역할과 책임,그리고 공과에 관한 부분을 발췌하여 몇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1950년 6월 25일 비내리는 일요일 새벽,날이 채밝기도 전에 10만여명의 북한인민군이 38선 전역을 가로질러 침공을 개시했다.남한에서는 이들을 편성도 채 갖추지 못한 3개사단 정도가 맞서고 있었다. 당시 한반도는 1945년 2차대전 후 일본인들의 항복을 접수하기 위하여 남쪽은 미군이,북쪽은 소련군이 나누어 통치를 하고 있었다. 소련은 탱크와 중화기를 지원하는등 북한 인민군의 무력증강에 많은 투자를 했다.1948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공식적으로 북한땅을 철수한 후에도 수천명의 군사고문단이 잔류,지속적인 군비증강을 꾀했으며 침공을 감행할 무렵에는 13만5천의 병력과 소련사관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만주에서 중국공산당의 전투를 참관한 유능한 장교단들로 구성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군은 10만명이 채 못되었으며 미 고문단에 의해 훈련을 받고 미군장비를 갖추고 있었다.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24군단 병력이 공식적으로 철수한 것은 1949년 5월이었으며 군사고문단과 병참요원등 5백여명만이 잔류하고 있었다.한국군에는 탱크는 없고 몇대의 대포만 있을 뿐이었으며 제대로자격을 갖춘 장교도 드물었다.더욱이 소규모 작전의 지휘권까지도 워싱턴에 있었으며 도쿄의 맥아더 극동사령부와는 중계를 통한 무선통신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군은 바로 첫날 새벽부터 현대전 사상 유래가 없는 패주의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한의 방어에 미군을 사용한다는 극동사령부의 임시계획은 있었지만 그것은 이같이 38선 전역에 걸쳐서,또 다량의 우수한 최신 소련제 탱크의 공격을 예상한 것이 아니고 고작 북으로부터의 소규모 국경충돌이나 게릴라침투 등을 고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의도는 다른데 있었다. 내가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을 안 것은 조지아주 베닝기지에서 였다.그 전날 보병학교에서 대대장교육을 수료한 뒤여서 그날은 숙소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야구중계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중간에 한국전쟁 소식이 스포트로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만주에서 여러해동안 정보업무를 맡아왔던 나로서는 우선 몹시 화가났으며 놀라움에서 불평이 튀어나왔다.그 다음에는 강한 의구심이 일었다.『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 침공을 예측하지 못했는가?』 봄철 내내 38선 전역에서 북한군에 의한 철저한 준비와 위장이 있었을 것이고 그곳의 높아져가는 긴장감을 분명히 CIA와 윌로그비소장 산하의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에서 감지했을 것이다. 나는 CIA의 북한 정보망을 내가 직접 작성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침공의도에 관한 정보를 완벽하게 놓치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CIA는 1946년부터 48년 사이에 만주로부터 압록강을 건너 잘 훈련된 10여명의 젊은 한국인 정보원들을 북한에 투입했다.극동사령부의 맥아더원수와 윌로그비장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침략 조기경고의 특수한 임무를 부여해 북한땅에 헌신적인 반공주의자들을 투입시켰던 것이다. 그후 1949년에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CIA는 마침내 서울에 지역본부를 설립했다.나는 그때 CIA의 중국담당 책임자였는데 서울본부는 아주 우수하고 믿을만한 장교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해 중반부터 서울본부에는 북한으로 침투시킨 정보원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상당부분 북한의 전쟁준비 움직임에 대한 경고를 해왔을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후에 CIA에서 한국에 대한 군사정보 임무를 맡아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당시의 민간및 군사정보 책임자들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50년 6월 엄청난 「정보실패」의 미스터리를 풀수 있었다. 그해 봄부터 김일성의 공산당정권은 한국에서의 선거를 비난하고 군사적 도발의 위협을 가하면서 남한에 대한 악랄한 선동공세를 벌여왔다.그러는 가운데 소련지원을 받는 김의 군대는 침공준비를 위해 은밀하게 단계적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당시 북한에 있던 우리 정보원들은 이미 북한의 교통시설은 물론 정부기관이나 군내부에서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아 임무수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같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6월까지 몇몇 정보원들이 북한의 전쟁준비에 대한 특별보고를 해오거나 38선을 실제로 넘어와서 서울에 있는 CIA간부들에게 직접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CIA 서울지역국 보고」라고 명명된 1950년 6월19일자로 된 한 중요한 정보보고를 보면 중장비 등을 수송하기 위한 38선 북측 도로의 확충,1945년이래 소련에 의해 파괴되었던 남측으로의 연결도로에 대한 일제 보수등 광범위한 병력의 움직임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더욱 불길한 징조는 북한의 민간 교통수단들이 북한의 주요 군사기지에서 38선으로 연결되는 철로변에 집결돼 있다는 것이었다.결론적으로 이 보고서는 북한의 침공이 임박했으며 김일성은 자신이 원할때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병력과 장비를 배치시켜 놓고 있다는 것이다. CIA국장 로스코 힐렌쾨터 해군대장은 북한의 침공이 있기 전 닷새의 시간동안 이 평가서는 백악관과 딘 애치슨 국무장관,루이스 존슨 국방장관,오마 브래들리 합참의장등 트루먼대통령의 군사및 외교정책 핵심참모들에게 전달됐으리라고 확신했다.이 평가서의 요약본은 또한 전통을 통해 도쿄 극동사령부의 맥아더장군과 윌로그비장군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군부및 민간의 핵심 정책입안자들은 남침 이전에 이미 북한의 침공의도에 관한 충분한 증거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물론 이들 증거자료는 잘 훈련된 정보원들의 보고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연적인 의문점이 제기될수 있다.왜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 정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가? 왜 어떤 작은 군사적 행위도 강력한 응징을 받을수 있다는 공식적인 주의를 북한에 주지 않았는가? 왜 적어도 미공군의 정찰기들이 북쪽의 뒤엉킨 산들로부터 단지 세개 뿐인 남쪽으로의 통로를 감시하지 않았는가? 당시 태평양지역에서 일했던 CIA 지역책임자들이 후에 나에게 이 문제들의 해답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윌로그비소장의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는 그해 봄 서울에서 오는 모든 정보들을 분석평가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F6」정보,즉 「미숙한 정보원이 보낸 신빙성이 불투명한 정보」로 분류돼 거들떠보기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작전은 맥아더사령관의 관할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정보책임장교는 그 보고들을 심각한 고려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해버렸던 것이다.그러한 등급으로는 워싱턴에서 절대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질 수 없었다. 워싱턴에서 이들 정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힐렌쾨터 CIA국장 한사람 뿐이었다.그러나 그의 임무는 정책입안자들에게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무방비상태에서 전쟁은 발발했고 개전 다음날인 26일부터 워싱턴은 한국전쟁발발의 책임문제를 놓고 의회와 백악관,CIA와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간에 「정보수집실패」냐 「정보판단실수」냐의 뜨거운 논쟁에 휘말렸다.
  • 미·EC,유고군부 동태 예의 주시”/혼미 거듭하는 유고사태

    ◎겐셔 독 외무,“연방군 미쳐 날뛰고 있다”/미 국무부선 자국민에 조기 출국 권유 ○…유고슬라비아 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 방위군이 전투를 중단한 것으로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로베니아의 밀란 쿠칸 대통령은 『공화국 영토 방위군은 연방군이 「4일중 야만적인 공격」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으며 옐코 카친 공보장관도 공화국측이 입수한 연방군 내부문서를 근거로 새로운 공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유고에서 2번째로 큰 크로아티아공화국측도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는 연방군의 합의되지 않은 영내 침범을 「무력도발」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시메 조단 국방장관은 『우리는 적절한 대응태세를 갖출 것이며 모든 크로아타아군은 전투준비 상태에 있다』면서 『우리는 싸우기를 바라지 않으나 우리 국가의 자유가 이에 달려있다면 자유는 대단히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고연방군이 4일 슬로베니아공화국에 대해 또 다시 무력사용 경고를 발함에 따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마크 아이스켄스 벨기에외무장관은 유고연방군과 슬로베니아방위군간에 또 다시 폭력이 발생한다면 EC는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지역 국가지도자들은 3일 유고슬라비아 내전사태에 대해 지금까지 취해온 조심스런 태도에서 벗어나 유고연방군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독일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유고연방군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비난하고 즉각 완전철수할 것을 촉구했으며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이에 가세해 만일 유고군이 휴전약속을 준수하지 않으면 크로아티아공화국 및 슬로베니아공화국과 『연대해서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도 유고군은 유고의 분열을 촉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그는 의회 연설에서 『유고의 구체제는 상당히 부패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이상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따라서 유고는 단일국가를 유지하기가 이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무부는 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 방위군간의 무력충돌로 2백명이 사망하는등 유고사태가 혼미에 빠져들자 4일 슬로베니아및 크로아티아공화국에 체류하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가능한한 빨리 빠져나올 것과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출국을 권유했다. ○…바바라 맥더걸 캐나다 대외업무부장관은 3일 캐나다가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유고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두 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맥더걸장관은 지난주 발표된 이 두 공화국의 독립선언을 캐나다가 승인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캐나다 정부는 폭력사태가 중단된다면 민주적으로 이뤄진 어떤 해결책이라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은 3일 유고슬라비아 사태와 관련한 가장 강력한 어조의 논평을 발표,이번 사태를 심각히 우려한다고 말하고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두 공화국이 합의한 독립선언의 3개월 유예가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비탈리 추르킨 소연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뉴스 브리핑에서 『우리는 유고의 현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고 『충돌이 인명손실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깊은 유감을 자아내게 한다』고 덧붙였다. ○…알로이스 모크 오스트리아외무장관은 4일 유고연방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열망을 꺾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경우 오스트리아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크장관은 또 오스트리아외에도 「상당수의」국가들이 두 공화국에 대한 승인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유고 연방간부회,군통수권 상실/슬로베니아 대표

    ◎“군제안 수용돼야 명령 따를 것”/연방군,“도발 계속땐 비극 초래” 경고/“국경초소 이양” 최후통첩/연방간부회 【베오그라드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유고의 국가최고기관인 연방간부회는 이제 군에 대한 통제력을 더이상 갖고 있지 않다고 유고 연방간부회 슬로베니아대표인 야네즈 드르노프스크가 4일 밝혔다. 이와함께 안테 마르코비치 총리도 연방군이 독자적인 행동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드르노프스크대표는 이날 슬로베니아라디오와의 회견에서 『군은 연방간부회가 군의 제안들을 수용할 경우에만 간부회에서 내려진 결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관영 탄유그통신은 보도했다. 드르노프스크는 연방간부회가 비상대권을 요구한 군의 제안을 거부한 지난 3월에도 군이 연방간부회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고 주장한바 있다. 마르코비치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유고정부는 연방군에 대해 슬로베니아공화국에 무력을 사용하라고 명령한바 없다고 말했다.마르코비치는 또 지난달 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포한 이래 연방군이 독자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유고연방정부와 슬로베니아공화국간에 휴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중요한」 국경문제에 대해 아직 이견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연방군은 슬로베니아방위군의 적대행위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전면적인 대공세를 재개할수 밖에 없다고 위협함으로써 지난 3일 연방군에 발포중지령이 내려지고 연방군 일부가 원대복귀함으로써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던 유고내전 위기는 다시 혼미속으로 빠져들었다. 연방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연방군의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연방군에 대한 도발은 슬로베니아인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은 이어 슬로베니아에 『연방군 인내의 한계를 자극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한편 『슬로베니아 지도부내의 무책임한 호전적 그룹의 자살과 같은 정책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베오그라드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유고내전 위기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소집된 유고 연방간부회는 4일 모든 슬로베니아방위군은 4일 하오10시(한국시간 5일 상오7시)까지 기지내로 복귀하고 모든 연방군 포로들을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연방간부회는 또 오는 7일 하오7시(한국시간)까지 슬로베니아방위군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모든 국경초소를 연방군에 넘겨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연방간부회는 이같은 명령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 “북한체제 4∼5년 못버텨/통일의 결정적 시기 빨리 올지도”

    ◎노 대통령,참전용사들에 강조 노태우 대통령은 24일 개방과 개혁의 압력 앞에서 한계상황을 맞고 있는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하나는 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단적 폐쇄노선을 고수하려 하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급격한 변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그들은 앞으로 4∼5년을 버틸 수 없으며 통일의 결정적 시기도 의외로 빨리 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재향군인회가 신라호텔에서 주최한 「6·25자유수호전쟁 제41주년 참전용사위로연」에 참석,격려사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우리는 북한의 유엔가입,핵사찰 수락표명 등 태도변화와 일본과의 수교 교섭 등 일련의 움직임이 그들이 개방으로 나오는 시발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무력으로 어떠한 목적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우리는 확고한 안보태세로 어떠한 도발도 억제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북한이 선뜻 개방으로 나오기 힘든 것은 그것이 경직된 그들의 체제에 위기를 불러오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는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와 우리와도 교류·협력하게 되기를 바라며 그들이 개방으로 나와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은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서울 보훈병원을 방문,6·25참전 상이자 등 장기입원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문 격려했다.
  • 「6·25비화」 소 외교연 학자 본지 특별기고

    ◎“북침으로 꾸며라”… 스탈린,6개항 지침 시달/미 개입에 당황… “정면대결 피하라”/중국 파병따라 공군력 지원약속/「중국공산화」 미서 방관하자 남침 결심/종국엔 북한정권 지키기에 급급… 소,휴전 뒤 재도발 우려해 김일성 감시 서울신문은 6·25 41주년을 맞아 소련 외무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B 발레노프 박사(역사학·필명)가 특별기고한 「6·25는 스탈린의 작품」을 게재한다. 발레노프 박사는 외교아카데미의 최고급 간부 중의 한사람으로 중국문제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소련내 최고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밀문서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외무부 보관자료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장 극비문서 등을 토대로 한국전 발발 배경과 책임소재 등을 규명했다. 발레노프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현역 외무부 관리신분임을 감안,필명으로 게재할 것을 요청해 왔다. 정확히 41년 전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소련은 그동안 이념적,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강대국들이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한국전쟁의 진짜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N 아닌이 밝혀낸 새로운 자료를 비롯,최근 필자가 어렵게 입수한 극비문서들은 비록 단편적이나마 어떻게 해서 그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45년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뒤 스탈린은 한국에서 얄타협정과 포츠담협정의 조항들을 위반할 의사가 없었다. 1948년 주은래를 만났을 때도 스탈린은 『중국과 북조선 동지들은 절대 해방전쟁을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혁명세력의 무력이 결코 우위에 있지 않으며 미국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게 스탈린이 내세운 이유였다. 스탈린은 이렇게 모택동의 손발을 묶고 북조선 정부에 대해서도 38도선에서 무력도발을 삼가도록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동유럽에서 제국주의세력과 싸우기에도 벅차다. 소련의 제1관심 지역은 유럽이다』는 게 당시 스탈린의 생각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이 승리를 차지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찾아온 모택동과 만난 자리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동안 아시아에서 공산혁명세력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소. 저개발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내 생각이 틀렸소』 중국공산당의 승리,동유럽의 공산위성정권 수립과 함께 소련 경제가 꾸준히 성장추세를 보이자 스탈린은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소련대사관과 정보기관들은 한반도에서 혁명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붕괴 직전에 와 있고 경제는 침체됐으며 사회불안은 통제불능에 빠져 남한인민들은 한결같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정보보고들이었다. 남한 인민들은 북조선에서 전개되는 변화들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비민주적인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을 증오하는 반면 소련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소련 정보장교들도 한결같이 남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이념적인 상황은 모스크바에서 지시만 내리면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보고들을 울렸다. ○애치슨 성명에 안심 스탈린은 크게 고무돼 조만간 세계,특히 아시아국가들이 소련의 혁명모델을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소련의 당연한 의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가지 우려되는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에서 공산혁명을 수행할 때 미국이 적극 개입치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모택동을 만나서도 그는 이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1950년 6월12일 한국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은 스탈린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당시 소련 외무부에서 지도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이 성명을 『미국이 한국의 군사분쟁에 무력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대한 의사와 군사능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토록 지시했다. 소련의 외교·군사·정보보고들은 남한내 미 군사력이 전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그나마 계속 감축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국에 파견된 첩보원들로부터도 유사한 정보들이 올라왔고 그 가운데는 미 백악관에서 빼낸 정보들도 있었다. 이 정보들은 영국내 첩보원들에 의해 다시 「더블체크」됐다. 당시 영국 외무부와 정보기관의 고위직책에는 소련첩보 조직이 침투해 있었다. 영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에 대한 반대입장을 완화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정보도 런던으로부터 보고됐다. 트루먼 행정부내에는 극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태에도 미국이 무력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정보보고들은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행동,특히 대응 행동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제로」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밖에 소군 지도부는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지켜줄 수 있을 만한 병력을 한국주변에 배치해 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받았다. 스탈린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감지한 북한 주둔 소군장성들은 김일성과 함께 한국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군사령관들과 김일성은 어느 주석에서 남한 괴뢰정부를 쳐부수자는 데 의기를 투합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여러 경로를 통해 스탈린의 귀에 들어갔다. 한국을 중국처럼 무력으로 통일시키자는 계획은 1949년말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때 이미 구체적으로 검토됐고 스탈린은 이듬해 봄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최종결정을 발표하기 전 스탈린은 모택동의 의견을 물었다. 이웃 형제국의 「사회주의 해방운동을 종결짓는 일」에 모택동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주요지침들을 시달했다. 1,전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보돼야한다. 2,소련이 전쟁에 개입됐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소군사 고문단은 전선으로부터 철수시킨다. 3,북조선 당국은 적과 세계 여론의 주의를 돌려놓기 위해 전쟁 개시 전 평화공세를 강화한다. 동시에 남한당국과의 그들의 앞잡이인 미국이 전면전쟁을 벌일 목적으로 북조선에 무력도발을 일으켰다는 각종 선전을 강화한다. 4,대남 전면공격을 시작하기 전 국지침투를 감행하고 적의 대응공격을 유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부분공격을 감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부세계에 전쟁이 남측에 의해 도발된 것으로 믿게 하는 효과도 얻는다. 5,전면공격은 불시 기습적이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 6,군대가 38도선을 넘는 즉시 남조선 전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 남조선내 「혁명진보세력」들은 북조선에서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전전 평화공세 강화 전쟁 개시일인 6월25일 스탈린은 측근 참모들과 함께 자신의 별장(다차)에 앉아 전선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속 낭보가 날아들자 스탈린은 희색이 만면해 이렇게 말했다.『세계혁명에 관한 레닌 동지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업의 큰 공훈자들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각 한국의 마을과 도시들에서는 수많은 남녀,어린이들이 포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었다. 한 늙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초기 작전은 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은 한달내에 한반도 전체가 해방될 것이라고 보고해 왔다. 스탈린은 측근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신 지도자의 위대한 천재성에 새삼 경외심을 가졌다. 스탈린은 한국전에서의 조기승리를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엄청난 사태반전이 일어났다. 그렘린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미의 반격은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평양의 소련대사관에서 보내오는 전문들은 급전직하 비관적인 내용들로 바뀌었고 외교관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외부의 도움없이 김일성 군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들이 내려졌다. 스탈린의 측근 참모들은 김일성을 구하기 위해 소련군을 투입시키자는 주장을 계속 내놓았다. 흐루시초프 몰로토프,베리야도 소련군 투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군이 미군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끝까지 소련투입에 반대했다. 한국전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사실상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 바로 이때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미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대를 투입시키기 전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소군과 중공군을 한국전에 보내자고 스탈린을 설득시키려 했다. 스탈린은 남부 휴양지에 있는 자신의 시골별장에서 주은래를 만났다.그는 주은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잘들으시오,동지. 미군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만약 우리가 끼어들면 미국은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모두 파괴시키려 들 것이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결정을 내려야 하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것이지 아니면 소를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주은래도 스탈린의 말에 수긍하고 북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모택동이 보낸 전문 한통이 소련 주재 중국대사관에 입전됐다. 중공군을 한국전에 투입키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은 스탈린에게 전달됐고 스탈린도 결국 이에 동의했다. 스탈린과 주은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중공군이 지상병력을 파견하고 소련군은 북한의 공중방위를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과 모는 두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북한 공산정권을 지키는 것이고,또 하나는 미국과의 전면대결로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두 가지 목적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민들이 치른 인명과 물질적인 피해는 너무 끔찍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자 새 소련지도부는 현상고착을 정책목표로 결정했다(스탈린은 그해 봄 사망했다). 이듬해 흐루시초프는 『한국문제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동료들에게 역설했다. 「두 개의 독일 두 개의 한국」 정책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이제 소련이 북한에 해줄 일은 북한동지들을 도와 북한을 근대화시켜 그 나라를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진열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제국주의 앞잡이 남조선과 무력전쟁이 아니라 경제전쟁에서 이기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흐루시초프는 실제로 북한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원조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원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점차 강성해져 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들어 소­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통치를 비난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 일을 계기로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형제국」의 대열에서 이탈,외부세계에 빗장을 걸고 소위 「주체사상」을 펴나갔다. ○모,주은래 보내 설득 소련이 북한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감은 점차 옅어졌고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는 김일성의 평화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브레즈네프와 그의 이념담당 보좌관인 수슬로프는 수시로 외무부에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을 체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련지도자들은 북한대표단과 만날 때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련은 이와 함께 북한에 대규모 첨단공격무기르 공급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련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전통적인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이렇듯 신중한 정책을 고수하려 한 것은 바로 미국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부터 한국은 물론 기타 모든 문제에서 소련의 입장은 급격하게 변했다. 소련은 이제,첫째 모든 문제에 있어 군사적인 해결방식에 반대하고 있고,둘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식 모델을 이제 더이상 지지하지 않게 됐다.
  • 「신세계질서와 방위산업 육성」 토론회

    ◎“군비통제엔 한계… 남북 군사경쟁 불가피”/통일 후에도 주변국에의 대응력 긴요/첨단기술·장비의 독자개발 서둘러야/전문인력 양성·국방기술의 민간이전등 필요 한국방위산업진흥회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부·학계·연구기관·방위산업체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세계질서와 한국의 방위산업」이란 대주제로 2천년대의 한반도 주변상황의 변화에 부합하는 방위산업 정착과 경영전략을 개발하기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는 제1부 「신세계질서와 한반도」,제2부 「방위산업의 현재와 미래」,제3부 「전환기의 방위산업육성정책과 경영전략」 순으로 나눠 진행됐다. 다음은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신세계질서와 남북한 관계(정용석 교수·단국대)=『자유·평화·법이 지배하며 도덕적이고 정당하며 정의로운 국제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신세계질서」에 입각한 「신속대응군」의 전략개념은 북한의 호전성에 경고적 메시지 역할은 되었으나 북한의 대남군사도발을 억제하는 데는 충분치 않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가속화시키고 방위비 분담비중을 높인다는 안보적 부담이 예상된다. 한국은 「신세계질서」가 추구하는 평화수호 결의와 방법에 의존하고 방심할 수 없으며 나름대로의 경계와 적절한 방위체제가 요구된다. □남북한의 군비통제 교섭 전망과 방위산업(오관치 박사·국방연구원)=남북한 군비통제 교섭전망은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무력적화 전략으로부터 한국의 체제전복 전략으로 대남전략을 전환하게 됨에 따라 군비통제가 제한된 범위내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있으나 남북한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정착되지 않는 한 양적인 군비통제하에서도 남북한간에는 정치 및 군사적 경쟁이 지속될 것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군사장비의 질적 개선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돼 우리의 방위산업은 이와 같은 남북한 군비통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첨단기술 개발과 이의 활용을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한국방위산업의 현황(안치한 사장·금성정밀)=방위산업의 발전방향으로 정부의 방위산업에 관한 장기비전의 제시와 국방연구개발 투자확대 및 업체주도 연구개발 사업의 확대,무기체계의 해외 직구매정책의 지양,방산기술 인력에 대한 지속적 유지 및 새로운 기술인력의 양성이 시급하다. □한미 안보협력과 방위산업다변화(황동준 박사·국방연구원 무기체계연수센터 소장)=군의 장기 전력증강 소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1990년대 방위산업의 제2도약을 위해서는 방위산업에 대한 국제협력의 강화가 절실하다. 한미간의 방산국제협력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미국은 한미 양국의 방산협력사업 추진시 미국의 대외안보지원 법규를 적용하려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하고 한국은 한미방산협력 사업추진시 장애가 되는 각종 요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협의하여야 하며 미국과의 방산협력에 정책의 중점을 두되 유럽국가와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연구개발하는 기술도입원으로서 방산협력을 추구하도록 하고 개발도상국가와의 방산협력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과의 교류,자료교환 등을 통하여 호혜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과감한 기술이전을 전제로 한 적극적인 시장개척 노력이 있어야 한다. □2000년대를 향한 방위산업 구상(민성기 박사·국방부 획득정책 과장)=지금 우리는 막연한 남북한 통일의 환상에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 남북대결의 실질적 종식을 나타내는 통일을 달성할 때까지의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의 주변 강대국가 속에서 한국이 새로운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방위산업의 육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방향은 고도 첨단병기 개발과 확보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방연구개발투자의 증가와 방위산업 육성차원의 정책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접목할 방위산업 기술을 개발정책으로의 전환과 함께 2000년대를 향한 국방첨단기술과 더불어 방위산업의 내용과 질의 변화,국방과학기술의 민수과학기술 이전 등이 있다. □전환기의 방위산업 육성정책과 경영전략(백영훈·한국산업개발원장)=한국방위산업 활성화의 저해요인은 국내외 경제환경 여건의 변화보다 국가적 의지 퇴화,연구개발투자 미흡 등이 가장 큰 요인이다. 현시점에서는 국가의지와 성장잠재력에 의한 전력의 재평가,연구개발의 활성화,방산기반의 재정비 육성 등의 새로운 정책방향을 설정,추진하여 독자적 고도정밀병기 및 핵심품목의 개발생산을 유도하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첨단과학기술에 도전을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산업구조 고도화 정착의 일환으로 2000년대를 가늠하는 국가경제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의 확고한 정책이념을 재정립하여야 하고 방산업체는 국가생존과 방위력 배양이라는 국가적 목표추구에 헌신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자생적인 경영풍토를 정립해야 한다.
  • 통일방안 「중간단계」 설정 용의 없는가/24일 본회의(의정중계)

    ◎고르비 퇴진 때 한국에 미칠 영향은/북측,「핵사찰」 문제 공식입장 안밝혀/대북교류 확대 대비,청산계정 검토 ◇박실 의원(평민)=소련이 제안한 우호조약은 아태안보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한·미·일 3각 체제를 교란하고 소련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패권주의적 요소는 없는가. 대외수지 적자가 커지고 있는 마당에 이미 집행하고 있는 30억달러 외에 20억달러 추가경협 밀약설의 진상을 공개하라. 북한측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수용하고 핵안전협정에 가입할 것을 촉구하며,우리 정부도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황병태 의원(민자)=우리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 가운데 동서독에 없었던 우리 만의 장애는 무엇인가. 이제 북한을 군사도발의 진원으로 보고 한미 군사방위체제상의 가상적으로,경제외교면에서는 궁핍국가로 전락시켜야 하는 냉전구조적 시각틀에서 벗어나 북한을 우리와 공존하는 동반자로 다루는 평화공존적 시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북한의 대일·대미 수교를측면지원할 용의는 없는가. 유엔 연내 단독가입이 남북관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중간단계국가를 거치는 현실적 방안으로 우리의 통일방안을 보완할 용의는 없는가. ◇지연태 의원(민자)=대소 30억달러 차관 제공이 과대액수이며 저자세외교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소련으로부터 어떠한 정치외교적 대가와 시장진출 기회가 부여될 것인지 밝혀달라. 이번 한소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소 어업협력증진 계획을 밝히고 소련의 경제수역 내에서 직접 어로작업의 허용여부와 어획쿼터문제의 타결 전망은. 미국은 우리 정부의 급속한 대소 접근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정부의 견해는. 미국과 북한간의 수교접촉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진전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조홍규 의원(신민)=대미·일 외교 및 대소외교 등 지역별 외교,군사·무역·환경·통신 등 사안별외교에 있어 종합적인 목표 및 전략이 있는가. 소련에 대해 유엔가입·교차승인·북한의 핵사찰 수락 등을 요구함으로써 결국 우리의 북방정책이 추구하는 목표가 북한 고립화가 아닌가. 대소 경협자금 30억달러는 세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특히 제주회담의 성과로 이미 상쇄돼 그 가치가 소진된 것은 아닌지. 정부는 미일 등과 컨소시엄 형태로 대소 진출을 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어느 나라,어느 기업과 협의하고 있는가. 만약 고르바초프가 조기퇴진할 경우 소련의 정권교체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이광로 의원(민자)=이번 걸프전을 통해 조기경보능력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현재 우리는 막대한 예산관계로 전략적 조기경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자주적인 조기경보능력확보 방안은. 국방의 과학화를 위한 연구개발과 투자계획을 밝히고 북한의 무기과학화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가. 차세대전투기 사업은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으며 현재 공군의 주력기종은 앞으로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장병들의 급식비 현실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강구하고 있는가. ◇노재봉 국무총리=현재 우리나라의 외채는 3백17억달러이며 대출금은 2백68억달러로 순외채는 49억달러이다.순외채가 외채의 20% 이상을 차지하면 곤란하지만 우리는 10% 미만이기 때문에 부담의 문제는 없다. 한소 경협자금 30억달러는 양국이 상호 보완성을 갖고 있고 3억 인구에 이르는 소련시장·과학기술을 감안한 총체적 투자이다. 북한은 한소정상회담과 관련,대남선전방송을 통해 우리의 유엔 가입과 핵사찰 주장을 간접비난했으나 공식입장은 삼가고 있다. 김일성은 고르바초프 방한 당일 남북대화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는 주변국들의 대화재개 현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소정상회담에 따라 남북간 대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나 상당기간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통일저해요인은 북한이 동독과는 달리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폐쇄노선을 견지하는데 있다. 미국이 한미 방위체제 재검토를 희망할 경우 우리는 우리의 안보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겠다. 북한은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고 전쟁시 미국을 도운 이유로 45년간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이 북한에 배상할 경우 우리와 국교를 맺어온 사실 자체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반대하고 있다. ◇최호중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남북 경제교류와 관련,3월31일 현재 정부에 남북 직교역을 신청한 업체는 없으며 간접교역 승인을 신청한 업체는 71개에 이르고 그 액수는 7천6백88만달러에 달한다. 앞으로 남북한간 물자교류확대 등 교류협력에 대비하기 위해 북한의 심각한 외환사정을 고려,청산계정의 설정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 또 북한의 사회간접시설 투자문제도 같은 민족의 발전이라는 측면과 통일비용이라는 점에서 좋은 결실을 맺도록 북한측과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결국 이같은 북한내 자본투자는 북한사회의 개방을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효과를 수반할 것으로 생각한다. 금강산 공동개발문제는 정부가 그 동안 수 차례 밝힌 남북협력의 시범사업인 만큼 이의 실현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이종구 국방장관=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강력응징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대남도발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미 연합사의 군사전략은 전쟁예방과 억제에 주 목적이 있으며 전쟁유발이나 선제공격은 근본전략과 상치된다. 한미 전투기사업은 별도 중개상을 통하지 않고 미 정부 및 해당사와 직접 교섭했으므로 커미션 수수 등은 있을 수 없다. 북한의 대남 무력적화노선에 변화가 없는 한 현재의 징병제를 지원병제로 전환하기 힘들다. 주한미군의 감축 및 역할조정은 대북 억지력이 유지되는 선에서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은 피해나가지 않고 원만히 타결되도록 해 주한미군 전력을 적절히 활용토록 하겠다. 북한이 보유한 프로그미사일은 수원까지,스커드미사일은 남한 전지역을 사정거리로 하고 있으며 특히 스커드미사일은 화학탄이나 핵투발까지 가능하다. 이에 대비 미사일 소재 등을 추적하고 있으며 투발시 즉각 대응토록 하겠다. 남북군사력은 양적인 면에서 우리가 북의 66%에 불과하며 주한미군을 포함해도 72%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질적인 면까지 감안한다면 주한미군을 포함해 전쟁억제가 가능하다. ◇유종하 외무차관=KAL기사건과 관련,한소 제주정상회담에서 우리측은 조속한진상규명을 요청했으며 피해자 가족의 현장방문을 요청한데 대해서도 소련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징용됐던 인원은 70만명에서 1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지난해와 올해초 일본정부로부터 전달받은 징용자 명단은 9만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앞으로도 추가명단을 일본 전역에서 파악,통보해줄 것을 일본정부에 요청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조사단 구성문제도 신중히 검토중이다.
  • 고르비,「파업금지 비상권」 요구/연방회의에

    ◎“시위등 모든 정치집회도 제한”/소군,리투아공 건물 또 무력점령/그루지야공,“탈소독립” 공식선언/최고회의,만장일치 의결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9일 「위기대처 비상계획」의 일환으로 작업시간중의 파업과 대중시위를 금지시킬 수 있는 특별권력을 요구했다. 위기대처 비상계획의 초안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위기기간 동안 모든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집회를 불법적인 것으로 선언하고 파업을 금지시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소련 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수만 명의 광원들이 파업중에 있고 여타 산업에서도 파업발생의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소련 각 공화국 지도자들의 연방회의는 이 제안을 토론하기 위한 회담을 개최중이다. 연방회의에서 논의된 이 안은 내주 최고회의에 회부될 예정이라고 소련 의회지도자들이 9일 전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번 탄광 근로자들과의 회담에서 1년간의 긴급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군이 9일 리투아니아공화국 수도 빌나의한 건물을 점령했으며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은 이 같은 건물장악이 새로운 군사적 탄압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최고회의의 한 대변인은 전화회견을 통해 『방탄조끼를 입은 소련군 병사들이 빌나의 한 건물을 점령했다』고 말하고 란츠베르기스 최고회의 의장이 발표한 한 성명을 인용,『우리는 이것이 리투아니아에 대한 도발적 행위가 다시 확대되기 시작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소련군이 운전교습소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을 점령한 이유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최근 수 개월 동안 유혈 민족충돌로 혼란을 겪어온 소련 남부 그루지야공화국이 9일 탈소 독립을 공식 선언했다고 수도 트빌리시의 언론인들이 밝혔다. 이와 관련,그루지야공화국의 한 관리는 이날 그루지야공화국 최고회의가 특별회의를 열어 지난달 31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공화국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에 따라 일방적 탈소독립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즈비아드 감사 후르디아 그루지야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최고회의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대의원들은 이를 박수갈채 속에 만장일치로 승인한 뒤 의사당을 떠나 환호하는 거리의 군중들과 합류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그루지야공화국은 이미 탈소독립을 선언한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에 이어 소연방 탈퇴를 선언한 4년째 공화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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