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력 도발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공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바른미래당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주택공급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11
  •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 이후 처음 이뤄진 북측 인사들의 국립현충원 참배를 놓고 환영과 우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남북 화해의 일대 전기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6·25에 대한 참회 없는 참배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소지가 많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학자의 진단을 통해 전환기를 맞은 남북관계의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동족상잔 전쟁 마침표 남북공존 전향적 몸짓”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정부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그 자체로 획기적인 일이다. 우리의 요구가 아니라 북측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점은 더더욱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진전되었지만 양측 모두 금기의 영역이 존재했다.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문제는 직접 건드릴 수 없었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양 측의 건국 및 호국 인사들이 안치되어 있는 묘소 참배 문제였다. 특히 전쟁까지 직접 치른 남북으로서는 상대방의 국립묘지가 곧 바로 적군의 묘지였고 상대방의 호국영령은 곧 전범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는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남북 현대사의 멍에와 상처를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전향적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남북은 이제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그 자체도 인정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번 현충원 참배는 최근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보여준 적극적인 자세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전술적 일회성보다는 구조적 진정성을 기대하고 싶다. 장기 소강국면 끝에 지난 5월 차관급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었고 이후 진행과정은 오히려 북한이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6·17 평양 면담,15차 장관급 회담,10차 경추위, 개성과 백두산 개방 허용 등이 모두 그랬다. 이같은 적극 행보는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 결단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어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6·15 5년을 맞는 지금,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남북관계의 진전은 오히려 북에 절실하고 불가피한 선택임을 짐작케 한다. 또한 현충원 참배는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과 이념적 화해라는 의미 말고도 보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이라는 과제와 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안치된 현충탑을 북측 대표단이 참배한 것은 동족 상잔의 전쟁상태를 종료하고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자는 보다 적극적 해석까지 가능한 대목이다. 전쟁이 아직 법적으로 종료되지 않은 정전체제하에서 실제 교전 당사자인 상대방의 국군묘지에 참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유감표시와 함께 이제 전쟁을 실제적으로 끝내고 평화상태를 회복하자는 간접적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북핵 6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고 있다. 이번 현충원 참배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시작을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측의 현충원 참배를 불순한 의도로 보는 사람도 있다. 평양을 방문한 남측 대표단에 금수산 궁전 참배를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선의는 일단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족화해에 기여하는 일마저도 색안경을 끼고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정말 소심의 극치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대범해야 한다. ■ “반역사적인 무력남침 참회없는 참배 무의미”북한이 6·25에 대해 공식적으로 진실과 통한의 뉘우침을 담은 사과절차 없이 북측 8·15 축전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이같은 행위는 자칫 남과 북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고 김일성 주석이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행한 무력도발의 반(反)역사성을 묻히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경계를 요한다. 아직도 6·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신성시하고 있는 북한 정치체제의 본질적인 변화가 전무한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는 방편으로 민족 감정을 활용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인식과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막말로 해서 항상 전략과 전술로 남북문제를 재단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선 손해 볼 일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정보의 흐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당국은 이번의 참배를 그들의 구미에 맞게 정치적으로 요리해 체제유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남한의 친북 세력을 지원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대북문제로 분열돼 있는, 우리 사회내에서 사상적으로 이질적인 집단간의 갈등은 더욱더 깊어 갈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도 대북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노정된 미국과의 벌어진 틈새가 더 벌어질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출발점’이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감상적이고 순진한 발언은 앞으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날이 되면 얼마나 위험한 대북관의 노출이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측의 이러한 참배 제의를 받아 들인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서 아무 곳에도 기댈 곳이 없는 북한체제에는 북한식 통일전선전술의 전개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남아 있는 한·미동맹의 틀을 허물어 가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대북 지원시 엄격한 상호주의의 적용을 주장하는 우리 사회내의 목소리는 반(反)민족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유독 북한의 체제 선동이 지향하는 상호주의는 우리 대표단의 방북 시 김일성 시신 조문 요구 및 기타 지역 참배요구로 연결될 것이다. 현충원 참배가 지금 휴회 중인 6자회담에서 북측이 북핵과 연관시켜서 거론 중인 ‘대북 적대시정책의 포기’와 ‘평화협정체결’을 더 논리적으로 가다듬고 선전·선동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답방을 사전에 정지 작업하는 차원에서 보는 견해도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한·미간의 공조 틈이 더 벌어지는데 촉매제 역할이 될 수 있는 북 대표단의 국립묘지 참배 허용을 관련 정부부처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부정적인 여파를 차단하는 후속 대책이 하루 속히 세워지길 바란다.
  • [열린세상] 국내성의 두 얼굴/이덕일 역사평론가

    2000년겨울. 만주는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차창 틈으로 밀고 들어오는 찬바람에 시달리며 창춘에서 퉁화까지 왔다가 다시 눈 덮인 길을 서너 시간 달려서 도착한 곳이 지안(輯安),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자리였다. 고구려 유적들은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었으나 유적들에 대한 접근은 까다로웠다. 지안 박물관에서 나온 직원 한 명이 일일이 열쇠를 따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호태왕비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아야 할 뿐 접근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받았으니 입장은 시켜주되 가까이서 보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사진도 멀찍이서 찍어야만 했다. 고구려 유적에 대한 중국측의 자세는 생각 같아서는 파괴해버렸으면 싶은 점령지의 유적이었다. 고구려 유적을 역사문제가 아니라 영토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고구려 역사를 영토문제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동북공정의 핵심이었다. 중국측은 고구려 유적이 민족정기를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되살아날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호태왕비에 상주하는 안내원은 관람객들에게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 그로부터 5년 후인 금년 7월. 다시 가본 국내성은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호태왕비를 비롯한 고구려 유적 근처의 민가는 모두 밀어버리고 산뜻하게 정비했다.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통해 고구려 유적들은 새로 태어났다. 문제는 고구려 유적들이 중국의 역사로 새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100여년 전의 일본이 그랬듯이 지금 중국은 욱일승천하는 국력으로 ‘현재 중국의 영토 내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동북공정의 논리에 따라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켜 놓고 있었다. 권’이라고 반복해 설명했다. 이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과 역사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100여년 전의 우리 선조들이 일본 식민사관의 도발에 무력했던 것처럼 100여년 후의 우리 또한 중화 패권주의 사관의 도발에 무력했다. 영토문제가 배후에 깔린 이 도발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먼저 이 도발의 본질부터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 도발의 본질은 우리 역사의 대륙성에 대한 도전이다. 일제 식민사관과 지금의 중화 패권주의 사관이 1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역사에서 대륙성을 말살하려는 동일한 이론구조를 갖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자고로 우리 역사를 왜곡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들은 우리 역사에서 대륙성과 해양성을 제거하려는 공통의 이론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100여년 전에는 일제 식민사관으로, 지금은 중화 패권주의 사관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100여년 전의 일제 식민사관이나 현재의 중화 패권주의 사관에 맞서는 논리는 그러므로 동일하다. 우리 역사에서 사장된 대륙성과 해양성을 되찾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단일민족이라는 가공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고구려처럼 다민족 국가의 개념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에 같은 민족의 테두리 내에 있었던 만주족이 보이고 몽골족이 보일 것이다. 몽골은 현재 중국에 강점당한 네이멍구를 빼고도 한반도의 15.6배나 되는 땅덩이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 통일은 북한만이 대상이 되는 반도통일이 아니라 만주족, 몽골족과 연합하는 대륙통일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근대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방향성을 상실한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50∼100년 후의 동북아의 변화를 예상하고 또 변화를 이끄는 것, 이것이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대응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데스크시각] 빛을 감추고 힘은 길러야/구본영 정치부장

    어린이날인 5일, 푸르러가는 5월의 하늘을 보며 지난 4월 중순 제주도의 짙푸른 봄 바다를 새삼 떠올린다. 성산포의 유채꽃과 눈이 시리게 맑은 물은 보름도 더 지난 지금도 눈시울에 찍혀있다.‘상생정치와 언론’이라는 주제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기억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풍광보다 더 선연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화두가 있다.“한국적 정치풍토에서 상생(相生)이란 가당치 않다.”는 원로 언론인들의 빗발치는 이의제기였다. 세미나 분위기야 시종 화기애애했다. 주제발표를 한 정세균, 강재섭 두 여야 원내대표는 워낙 우리 정치판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어차피 다툴 수밖에 없는 여야 관계라면 페어플레이 속에서 상쟁(相爭)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다수 참석자들의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갖가지 정쟁과 입씨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편 이후의 날선 공방이 대표적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에 비판적인 이들은 “중·일 대결이나 미·중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중재역을 맡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한·미·일의 남방3각과 북·중·러의 북방3각이라는 냉전구도에서 탈피하려는 취지도 한·미 동맹의 포기나, 반미로 비쳐질 경우 또 다른 화를 부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남북통일 문제 등에서 한국 편에 설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같은 비판이 꼬리를 물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측이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공식 해명하고 나섰다. 중·미간이 아닌, 중·일 분쟁시 중재역을 하겠다는 취지였다.“동북아 균형자론은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중견국가의 위상에 맞는 ‘평화의 균형자역’을 맡겠다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민주주의 역량, 의제설정 능력, 문화 역량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연성국력)를 통해 추구하겠다는 부연설명이었다. NSC의 복잡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기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결국엔 한국이 지향해야 할 큰 비전일 수 있다고 본다. 언젠가는 강대국들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판 자체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 비전이 공허한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만한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얼마전 원로인 강원룡 목사도 동북아 균형자론은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고언했다. 역사 속에서도 국제 관계에서 외교적 슬로건에 앞서 내실을 다지고 국력을 키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이 오늘의 미국에 비견될 초강대국격이던 시절 명·청 교체기를 맞자 조선에선 청에 대한 화친론과 주전론이 맞섰지만 어느 길도 자의로 선택할 수 없었다. 끝내 주전론을 고집했다면 사직과 백성의 공멸을 뜻하는 옥쇄외에 달리 길이 없었을 터였다. 마지못해 택한 화친론도 인조가 청태종을 향해 얼어붙은 맨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절을 하고 머리를 땅에 세번 부딪기를 세번 반복)’하는, 삼전도의 치욕으로 이어진다. 중국 여성의 전통 의상 중 치파오(旗袍)가 있다. 허리 아래로 옆이 터져 허벅지살이 허옇게 드러나는, 아름답지만 퍽 도발적인 옷이다.1972년 죽의 장막을 헤치고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았을 때다. 누군가 부인 패티 여사에게 치파오를 본 소감을 묻자 이렇게 응수했다.“중국 인구가 이렇게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패티 여사, 아니 미국은 당시 이미 인구 10억이 넘는 ‘공룡’ 중국의 잠재력을 예감했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대외전략, 즉 ‘도광양회’(光養晦)정책을 선택,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현 시점에선 주변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동북아의 균형자’가 아닌 ‘평화의 중재자’정도의 겸손한 수사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에 앞서 집권 3년차인 청와대가 해야 할 더 시급한 과제는 여야간, 세대간, 계층간 이해다툼을 조정하는 ‘내치의 균형자’를 자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 통해 우리의 단합된 힘부터 길러야 평화의 중재자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 [사설] ‘제2 침탈’ 규정과 對日외교 방향

    정부가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임하는 4대 기조와 5대 대응방향을 담은 ‘신 대일(對日)독트린’을 어제 발표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대일 관계가 오락가락했던 점은 유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를 공식 거론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 성급했음이 최근 독도 및 과거사 파문에서 드러났다. 이제부터라도 정책의 줏대를 세워야 한다. 새로운 대일 독트린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일관성을 갖고 실천에 옮겨지느냐에 따라 결정날 것이다. 정부가 신독트린을 통해 일본의 독도 도발을 식민지 침탈과 궤를 같이하고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으로 파악한 점은 주목된다. 일본 지도층이 전후세대로 재편되면서 침략전쟁을 반성하는 분위기가 약해지고 있다. 그것을 넘어 군국주의·국수주의적 우경화가 갈수록 강해지는 현상이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동북아 평화기조를 흔들고 한반도 안정에 큰 위협요소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변화를 구조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대응은 종합적·중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독도 개방·개발과 유인도화는 시간을 갖고 치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급히 취한 조치는 국제법상 효력이 약하다. 독도 자연훼손 방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와 함께 큰 틀에서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견제해야 한다.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일본 항공자위대 정찰기가 독도 근처까지 날아온 것은 무력시위까지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독도 우발사태 매뉴얼을 다시 다듬어야 한다. 기존 정치·외교 및 사회·문화 교류는 계속하겠다는 방향은 옳으나 일본과 국제사회에 단호하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적당한 시기에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입장을 밝혀야 한다. 독트린 발표자가 왔다갔다 했고, 결국 통일부 장관이 나선 부분은 모양이 좋지 않았다. 과거사 배상 문제와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는 않겠지만, 민간의 요구는 지원하겠다는 태도는 이중적으로 비친다. 군위안부, 원폭피해자, 사할린동포 등 한·일협정 이후 쟁점사안에 대해서는 국가차원에서 배상논의가 필요하다. 독트린이 졸속·국내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고 다음 정권에서도 유지되려면 세부 보완작업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 [사설] 한·일 우정의 시대 끝나는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은 정신적 침략행위다. 독도를 1905년 일개 현의 고시로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더니 100년만에 또다시 망동을 부리고 있다. 부산시가 대마도를 한국 영토라고 고시한 뒤 ‘대마도의 날’을 제정하면 일본 국민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우리는 시마네현의 도발이 극우파 책동을 넘어, 일본 중앙정부 및 정치권과의 합작품이라고 본다. 이는 인접국과 관계를 뒤흔드는 외교 사건이다.“지방정부가 하는 일이니 간여하기 어렵다.”는 변명은 말이 안 된다. 시마네현이 독립국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지난달 23일 조례안 상정 뒤 일사천리 통과 과정은 한국과의 우호·선린을 완전히 무시하는 모양새였다. 현 시점에서 최선은 시마네현 의회가 스스로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폐기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때 발생하는 모든 불행한 사태는 일본측이 책임져야 한다.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한·일 우정의 해’로 선포된 올해가 ‘수교 후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당장의 실익이 없는 독도 논란 가열과 그로 인해 일본이 입게 될 정치·외교적 타격을 잘 따져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란다. 한국 정부는 뜨거운 가슴과 냉정한 머리로 대처해야 한다. 먼저 일본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부각시키려는 이면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ICJ회부는 당사국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무력충돌까지 우려되는 극한상황에 이르면 유엔 안보리가 개입해 ICJ중재를 권고한다. 일본을 추궁하되 유엔이 나설 정도의 긴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핵·국가경제를 고려할 때도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이 아파하는 구체적 대응책이 나와야 하고, 중·장기 국제선전전에 대비해야 한다. 독도여행 제한철폐 등 영유권 강화 조치는 옳다. 주변 영해와 접속수역 단속을 강화해 독도조례안을 제정하니까 어로에 더 불편하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일본이 항의하면 자업자득이라고 일축하면 된다. 곧 발표될 ‘대일(對日) 독트린’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넘보고, 과거사를 왜곡하면 할수록 손해를 볼 것이란 메시지를 분명히 담아야 한다.
  • [긴급진단] 혼미의 레바논 정국

    레바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동 불안의 최일선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영토 분쟁이 있지만 이·팔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게 바로 레바논의 복잡한 사정이다.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로서 팔레스타인에 동조해야 한다는 감정이 레바논 내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의 무력 도발을 규제하기 위해 레바논 내 친팔레스타인계 세력을 억제하는 게 급선무라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피크 하리리 총리 암살 이후 계속된 레바논 야당측의 시위로 오마르 카라미 총리 내각이 총사퇴했지만 차기 내각 구성 문제를 논의할 야당측이 시리아군의 완전 철군이 보장되기 전에는 정부구성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도 레바논 내 친팔레스타인계 헤즈볼라 그룹에 대한 시리아의 영향력을 의식한 때문이다. 결국 레바논을 사이에 두고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에 간접적인 힘의 대결이 중동 평화구도를 결정짓는 중대 변수로 작용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같은 힘의 균형이 지난달 14일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을 계기로 무너졌다. 시리아의 지원을 받아온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져온 레바논 야당은 이 기회에 시리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이스라엘과의 독자적 관계를 모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레바논 내에 거점을 두고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투쟁을 주도해온 대표적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의 무력화를 희망하는 미국 등은 당연히 레바논에서 시리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독자 세력으로 성장한 헤즈볼라 등 반(反)이스라엘 무장저항단체가 시리아의 철군이 이뤄지더라도 무력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시리아군의 철군에서 느끼는 위기감으로 인해 대이스라엘 무력투쟁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중동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가까스로 정국 안정을 유지해온 레바논이 국내정국 안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쳐온 시리아의 철군으로 정국 불안에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데 있다. 레바논에서는 안정을 희구하는 세력과 아랍민족주의에 기초한 강경투쟁파가 공존하고 있다. 권력 안정을 지탱해온 시리아의 철군은 이 두 세력간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레바논을 내전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클릭 이슈] 日 라이브도어-후지산케이 ‘언론전쟁’

    [클릭 이슈] 日 라이브도어-후지산케이 ‘언론전쟁’

    올해 32세인 신흥 인터넷기업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 사장과 거대언론사 ‘후지산케이그룹’이 벌이는 언론전쟁이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호리에 사장이 일본 6대 일간지 중의 하나인 산케이신문과 최대 민영방송인 후지TV를 일거에 삼키겠다는 야심찬 ‘도발’을 감행, 일본 재계, 정계, 언론계와 여론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일본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어렵게 하려는 것도 이 사건 때문이다. |도쿄 이춘규특파원|후지산케이그룹은 왜소한 니혼방송이 규모가 5배나 큰 후지TV 등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뒤틀린 기업지배 구조를 갖고 있다. 니혼방송 주식을 통제하면 그룹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약점을 호리에 사장은 파고들었다. 도쿄대 문학부를 중퇴한 호리에 사장은 지난달 8일 미국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에서 800억엔(약 8000억원)의 자금을 조달, 하루만에 니혼방송 주식 35%를 사들이고 “후지산케이그룹을 경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안개속 난전 거듭 이후 전광석화처럼 지분을 40%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놀란 후지산케이측은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니혼방송을 앞세워 주식 수를 현재(3280만주)의 2.5배인 최고 8000만주까지 늘리기로 하고 신규 주식인수권을 후지산케이가 갖겠다고 23일 발표했다.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켜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주를 대량 발행하면 일본 상법상 위법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후지산케이측은 “기업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라이브도어는 위법이라면서 즉각 법원에 후지측의 신주인수권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도쿄지방법원이 1일 1차 심리에 들어갔다. 앞으로 장기적인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우선 법원이 후지산케이측의 손을 들어주면 후지TV가 니혼방송 주식의 70% 정도를 확보, 경영권을 방어하게 된다. 반면 라이브도어는 20%선으로 떨어진다. 이 경우 라이브도어가 주주로서 손해를 봤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진흙탕 싸움이 될 게 뻔하다. 반면 법원이 라이브도어의 손을 들어주면 후지산케이측으로서는 주식 공개매집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무엇보다 양측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여 ‘끝없는 소모전’이 예상된다. ●쿠데타로 창업주 몰아낸 히에다 후지산케이그룹은 1954년 니혼방송의 개국이 뿌리다. 재계의 후원으로 당시 니혼게이자이렌 시카나이 전무가 니혼방송 경영에 참여한다. 시카나이는 집안내 암투에서 승리, 실권 장악과 함께 사장 자리에 오른다. 이후 시카나이는 경영수완을 발휘,57년에는 후지TV를 설립한다. 비슷한 시기에 경영위기에 빠진 산케이신문사를 재계 요청 수락형식으로 인수했다. 라디오,TV, 신문의 3대 매체를 장악한 시카나이는 후지산케이그룹의 초대 의장에 취임했다.85년에는 장남이 2대 의장에 올라 세습을 시도하지만 3년 뒤 장남이 42세의 나이에 급사한다. 이에 당시 일본 흥업은행에 다니던 사위를 데려다 89년에 그룹 의장에 취임시킨다. 하지만 92년 7월 산케이신문사 일부 중역들이 창업주측을 “언론인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기업을 사물화한다.”며 몰아낸다. 이 때 뒤에서 조종한 인물이 당시 후지TV 사장이었던 히에다 히사시 현 후지TV 회장이라는 게 통설이다.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지다 전격적인 쿠데타로 창업주 일가를 몰아냈지만 니혼방송 주식은 창업주 일가의 수중에 있었다. 여전히 니혼방송의 최대주주였다. 당시 니혼방송은 후지TV의 주식 51%를 보유, 창업주측이 반격하면 히에다가 밀려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히에다 회장은 “창업주의 지배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니혼방송과 후지TV의 상장을 택했다고 한다. 상장을 통해 시카나이 집안의 주식 소유비율을 끌어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96년 니혼방송,97년 후지TV의 상장이 각각 이뤄진다. 이후 히에다 회장측의 의도대로 니혼방송과 후지TV 주식의 창업주 일가 소유비율도 낮아진다. 급기야 지난해 시카나이 가문이 다이와증권 등에 주식을 모두 팔아버린 것이 밝혀져 시카나이 집안의 복권 우려는 해소됐다. 이에 여유를 찾은 후지산케이그룹측은 “니혼방송 주식을 사들여 자회사로 만들고 완전독립을 성취하겠다.”며 니혼방송 주식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개매수 과정에서 시장가격보다 헐값에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이 패착이었다. 대량 주식 보유 주주를 상대로 ‘가격 후려치기’를 하려 했지만 아무도 후지산케이측에 팔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 중심부인 록폰기힐스의 모리타워 38층에 사무실을 둔 라이브도어가 같은 건물 31층에 사무실이 있는 리먼 브러더스의 자금을 동원,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라이브도어가 외자를 끌어들이면서 니혼방송 사태는 복잡해졌다. 방송에는 외국자본이 간접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도 ‘저질의 머니게임’,‘도전과 파괴정신’이라는 비난과 찬성으로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관련회사 주가도 춤을 추듯 출렁이고 있다. taei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日, 中의 자국침략 시나리오 명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이달말 개정하는 ‘방위계획 대강’에 중국의 해양자원 권익의 충돌에 따른 군사적 도발 등 3가지 자국 침략 시나리오를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도쿄신문이 8일 보도했다. 방위청 산하 ‘방위력 검토회의’는 지난 9월 완성한 최종보고서에서 이같은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보고서는 일본의 중장기 방위정책을 결정하는 방위계획 대강을 개정할 때 반영될 예정이다. 신문은 중국측의 거센 반발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보고서는 아시아 지역 군사정세를 분석하는 부분에서 “중국이 타이완과 미국의 대항을 염두에 두고 군사력을 강화, 향후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서 최대의 군사력을 갖는다.”고 예측했다. 이런 전제 아래 보고서는 중국이 ▲타이완과의 분쟁시 일본이 주일미군을 지원할 수 없도록 국지적으로 일본을 공격하고 ▲동중국해 등 해양자원 분쟁에서 일본의 확고한 대응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불법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보았다. 또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국내 비판여론이 공산당을 향해 지도력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면 여론의 향방을 돌리기 위해 이 열도에 무력행사를 할 것이라고도 상정했다. taei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5)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37번지에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5)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37번지에서

    필리핀 북쪽의 암초인 오키노토리시마는 ‘더블베드’ 크기다.태평양 복판 쪽으로 혀를 내민 미나미토리시마도 산호초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들 암초에 대한 일본의 투자는 융단폭격에 가깝다.무인도에 불과한 조어대,일명 센카쿠 열도로 험난한 중·일 분쟁을 야기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독도 역시 일본의 장기적 해양 영토전략에서 시비가 붙고 있을 뿐 우연한 ‘독도망언’이란 없다. ●일본에 비해 수동적인 우리네 해양관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연안국에 광대한 해양관할권을 인정하는 국제해양질서가 성립된 작금의 추세는 일본의 해양력 강화에 매우 유리하다.해양을 포함한 일본의 영토는 실로 엄청나며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그러한 점에서 독도는 바둑으로 치면 일본과 맞상대하는 동해판수의 화점(花點)이다. 감성적으로야 독도를 ‘작은 점’,‘손톱만한 섬’이라 지칭해도 무방하겠지만 오키노토리시마 따위와 비견하면 엄청 큰 섬이다.유치환 시인은 울릉도조차도 ‘심해선 밖의 한점 섬’으로 묘사하였지만,대해양 시대의 역사관으로 볼 때는 매우 가깝고도 큰 섬이다.그만큼 우리 사회의 바다관이 수동적이란 증거이리라. 대한민국 국민 김성도씨가 주민등록을 전입했으며,수많은 이들이 호적을 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37번지’를 찾은 것은 지난 9월19일.국회바다포럼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바른정치연구모임 소속의 국회의원,해양연구원,해양수산개발원,수산과학원 등의 해양전문가들이 울릉도에 속속 모여들었다.‘울릉군 독도리’로 떠나기 전날,‘해양강국 발전 모색과 영토주권 수호’ 세미나를 갖던 차에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예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자기 나라 섬을 방문하는 것도 막는 지경이니 할 말 잃은 표정들이었다. 예의 ‘내 마누라론’이 재론되곤 한다.어차피 내 마누라인데 제3자에게 내 마누라임을 애써 강조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논리다.독도를 주유하는 부정기 노선의 관광객들도 3시간여를 달려와서 먼발치에서 되돌아가야 한다.까다로운 입도신청서를 작성하고 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데다가 날씨마저 궂기 때문에 상륙이 쉽지 않다.돌이켜보면 2000년 독도선착장 준공식에 공사를 책임졌던 해수부장관도 외교문제를 빌미로 참석하지 못하였다.그러하니 내 나라 내 땅에 발을 디디면서도 감격스러울 수밖에! ●대견하고 고맙기만 한 섬 해경 함정으로 울릉도 저동항을 떠난 지 2시간여.독도는 그야말로 ‘불현듯’ 눈앞에 나타났다.섬 그림자의 실루엣이 드러나길 30여분.가파른 바위산으로 솟구친 섬이라 그야말로 도발적으로 다가온다.많은 섬을 다녀 보지만 독도처럼 대견하고 고마울 데가 또 어디 있으랴.조물주의 능력이 오묘한지라 동해에 처음으로 독도를 만들어 놓고 섬이 너무 작아서 마음이 안되었던지 훗날 울릉도를 만들어 주었다.누군가 농을 던진다.“이왕이면 독도 같은 섬 수십개만 쭉 뿌려 주셨더라면! ” 독도수비대에 앞서 토종 삽살개가 마중한다.사람이 그리운지 살갑기가 그지없다.가파른 층계를 올라가면 예의 태극기 휘날리는 경비대 막사와 헬기장,등대 등이 나타난다.초병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망망해대를 지켜볼 뿐이다. “고향이 어딥니까?” “전라도에서 왔습니다.”참 멀리서도 왔다.2개월을 지키다가 울릉도 본부로 나가 임무교대한다.행동반경이 지극히 좁은 섬이라 감옥에 갇힌 폭이다.추석 귀향행렬에 끼지 못하는 이들은 비단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독도경비대 역시 전쟁터에 서 있는 셈이다. “참으로 좋은 날에 오셨습니다.” 이런 날이 별로 많지 않단다.가을바람은 독도에도 어김없이 불어 해국(海菊)이 보랏빛 자태를 드리운다.화산섬에 수백만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어디선가 식물들이 안착하여 무려 60여종이 자라고 있다. ●본섬 외에도 78개 암초로 이루어져 동도 정상에서 굽어보니 서도의 가파른 절벽 사이로 장군바위·감바위 등이 초록빛 바다 위에 떠 있다.울릉도에서 오는 뱃길은 거의 검푸른 빛깔이었는데 동도와 서도 사이의 야트막한 바다는 그야말로 초록빛이라 뛰어들고픈 충동이 불끈 솟는다.독도를 단독섬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동·서도 본섬과 무려 78개의 암초가 대가족을 이룬다. 독도하면,민족문제와 결부되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오지만,실상 독도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머나먼 동해 가운데에 이처럼 불쑥 튀어나왔다는 점도 참으로 절묘하지만 여러 암초를 거느린 가장답게 늠름하고 의연하기가 이를 데 없다.동도와 서도가 거의 비슷한 크기로 중심을 딱 잡고 버틴 가운데 자잘한 암초들이 주변 풍경을 장엄하게 해준다. 괭이갈매기,흑비둘기,멧비둘기 등 60여종에 달하는 새들도 살고 있어 ‘외로운 섬’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감태와 모자반,대황군락이 수중림을 형성하는 가운데 난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리돔 같은 물고기도 쉽게 눈에 띈다.그 자체로 동해의 꽃이며 종다원성의 보고이자 천연보호구역답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90여㎞ 떨어진 울릉도가 선명하게 다가온다.독도를 자신들의 관할에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오키섬은 무려 160㎞나 떨어져 육안 관찰이 불가하다.가시거리에서 조업하는 울릉도민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오키 어민보다 역사적·현실적 지배력을 지니고 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460만년 전에 형성… 제주도의 맏형격 많은 사람들의 오해 가운데 하나가 독도를 ‘동해의 막내’라고 부른다는 점.약 460만년 전에 형성된 독도는 250만년 된 울릉도,120만년 된 제주도의 맏형이다.족보상으로도 어엿한 형일뿐더러 독도를 떠받치고 있는 해저지형은 독도와 울릉도가 비슷한 크기임을 알려준다.육안으로 보이는 독도는 지극히 일부분이다.그러한즉 1965년 한·일협상 과정에서 귀찮은 존재이니 차라리 비행기 폭격으로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자고 한 정치인의 발언은 그 얼마나 황당하며 무지에 가까운 망언인가. 돌이켜보면 독도는 지금껏 위정자들보다는 민중의 손으로 지켜왔다.성호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은 영웅에 비길 만하다.’고 극찬하였듯이,동래 출신의 일개 어민이 일본까지 건너가 섬을 사수하였다.한국전쟁의 빈틈을 찌르면서 침범하던 일인들을 온몸으로 막아낸 홍순칠 대장 이하 의용수비대 역시 국가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몸을 던진 민중이었다.지금도 사이버공간에 들어가면 갖가지 독도사이트들이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이쯤되면 국가가 한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 되묻지 않을 수 없다.‘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으로 시작되는 ‘독도는 우리땅’조차 금지곡에 오를 정도였으니! ●‘독도 지키기’ 나라는 무얼 했는가 의용수비대원으로 생존한 몇분 중의 하나인 정원덕(76)옹은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요.늘상 배 타고 나가서 미역 뜯고 전복 따던 곳이지요.”울릉도민들에게는 ‘일상의 바다밭’일 뿐이란 말이다.울릉도 사람들,더 나아가 강원도 묵호,경상도 울진 사람들도 출어하던 황금어장이다.따라서 일제가 통감부 지배를 시작하던 1905년에 시네마현(島根縣) 고시40호로 독도를 임의 편입조치하고 토지대장에 기입한 것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망언은 역사적·현실적 지배를 무시한 국제법상의 명백한 도발에 불과하다. 독도에서 물개바위를 바라보노라니 돌연 귀엽기만한 강치 생각에 마음이 찡하다.물개과의 수만마리 하얀 강치들이 일본업자들에게 학살당하여 씨를 말렸다.그 학살의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1948년에는 미군 폭격기에 의해 독도에서 고기 잡던 울릉도민들이 학살당하고,1952년에는 한국산악회 독도조사단이 피습을 당한다.우연일까,아니면 재일본미군사령부와 일본의 은밀한 묵계에 의한 것일까.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년대계의 해양력 설계, 독도에 달려있어 1880년 북경조약으로 두만강 녹둔도가 러시아로,간도협약으로 간도가 중국에 넘어갔다.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사가 초미의 관심인데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독도망언을 내뱉는다.지극히 조직적인 ‘정치적 망언’이라 치고 빠지기 수준을 뛰어넘는데,우리에게 독도는 아직도 ‘머나먼 당신’이다.피동적인 ‘내 마누라론’만으로 우리들의 당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저동항으로 돌아오는 뱃전에서 누구나 합치된 의견이었으니,이제 ‘마누라타령’은 용도폐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해군 전략이론가이자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해군역사가인 마한이 ‘해양력이야말로 역사의 진로와 국가 번영을 이루는 중요한 고리이다.’라고 하였을때,독도는 우리의 해양력을 시험하는 잣대임이 분명하다.러일전쟁터가 독도 근해였음은 제국의 각축이 언젠가 다시금 독도에서 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일본 자위대의 무력적 위협이 현실화되는 동해판수의 화점에서 우리는 바둑돌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그야말로 천년대계의 해양력을 설계할 일이다.
  • 大法 “親北 관용 한계 있어야”

    大法 “親北 관용 한계 있어야”

    대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판결문을 통해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이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체제수호를 위해서는 허용과 관용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국보법 폐지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용우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국보법 위반(찬양·고무) 등 혐의로 기소된 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 2명에 대한 상고심을 기각,징역 2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이같이 지적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헌법재판소의 국보법 전원일치 합헌 결정에 이어 대법원도 국보법 폐지론을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정기국회에서 전개될 국보법 개폐논의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북한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없다거나 혹은 형법상의 내란죄나 간첩죄 등의 규정만으로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국보법의 규범력을 소멸시키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북한은 적화통일을 위해 무력남침을 감행,민족적 재앙을 일으켰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도발과 위협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북한이 온갖 방법으로 우리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시도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이라면 스스로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조치(국보법 폐지)에는 여간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나라의 체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것이므로 국가의 안보에는 한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국보법상 이적표현물 취득·소지죄 등과 관련,“아무리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자유까지 허용함으로써 스스로를 붕괴시켜 그토록 추구하던 자유와 인권을 모두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되므로 체제를 위협하는 활동은 헌법에 의한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재판부는 특히 “더욱이 오늘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의 형성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직시할 때 체제수호를 위해 허용과 관용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도 지난달 26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가 국보법 7조 찬양·고무죄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 조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 [‘한총련 이적단체’ 판결] “국보법 폐지 반대” 입장 분명히

    [‘한총련 이적단체’ 판결] “국보법 폐지 반대” 입장 분명히

    대법원이 국가보안법 개정·폐지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최근 헌법재판소가 국보법 제7조(찬양·고무 등)에 대해 전원일치 합헌 결정을 내려 국보법 개폐에 반대입장을 밝힌 데 이은 판결이어서 정치권의 개폐 논의에 사법부도 본격 가세한 형국이 됐다. 특히 한 국가의 가치규범을 제시하는 대법원이 친북세력이 늘고 있는 점,그런 상황에서의 체제수호를 국보법 유지의 근거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국보법 개폐론자의 상황인식과도 큰 차이를 보여 정기국회에서의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방적 무장해제 신중 기해야”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북한이 반국가단체이고,제10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이적단체라는 종전의 확립된 견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대법원은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판단 근거로 북한이 우리의 체제를 전복시킬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외부적인 환경이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50여년 전에 무력남침을 감행했고,지금도 크고 작은 수많은 도발과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 한 우리 스스로가 일방적인 무장해제(국보법 폐지)를 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법상 내란죄나 간첩죄만으로도 국가안보를 지킬 수 없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적표현물 허용 한계 규정 대법원은 또 이적표현물에 대한 허용에는 한계가 있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통일전선의 형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지적이다.국가보안법 관련 입건자 수만 보더라도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00년 286명이던 국보법 입건자는 2001년 241명,2002년 231명,2003년 165명으로 줄었다.올 상반기는 65명에 불과하다.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북한 동조 세력이 늘고 있다는 표현은 구체적인 수치에 근거한다기보다는 종합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서해교신 기밀 유출 파문] 北 전략적 침범?

    지난 14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것과 관련,북한이 애초부터 고도의 전략적 차원에서 문제를 야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이같은 분석의 저변에는 북한이 남북 장성급회담의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NLL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합동조사단 조사에서 NLL을 넘은 문제의 선박은 북한 경비정으로 최종 확인됐다. 당시 북한 경비정은 NLL을 넘은 중국 어선을 끼고 내려오면서 우리측의 무선 호출을 무시했으며,‘현재 남하하는 선박은 우리 선박이 아니라 중국어선’이라는 허위 통신까지 내보냈다. 이어 북측은 다음날인 15일 저녁 우리측에 항의성 전화통지문까지 보내 “남측이 제3국 선박을 우리 어선이라고 하며,우리 수역에 남측 함정을 침입시켜 경고사격하는 도발을 감행했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특히 북측은 전통문에서 북한 경비정이 무전을 보낸 시간을 4시51∼56분이 아닌 4시41∼45분으로 거짓 통보했다.북측이 경고사격 훨씬 이전에 자신들이 무전을 통보했음을 주장하기 위해 무전 시간을 조작한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 경비정은 이날 오후 4시12분 북한 등산곶항을 출발한 뒤 소속부대와 비화(秘話)통신을 하며 NLL쪽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NLL쪽에서 어선 단속을 할 경우,암호문이 아닌 평문(平文)으로 위치 정보를 받아 온 점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다.이처럼 은밀하게 접근한 것은 실체를 위장하기 위한 조치로 군 당국은 해석하고 있다.결국 북한은 남북 장성급회담 합의에도 불구하고,NLL 무력화와 남한 사회 교란용으로 의도적으로 NLL을 침범하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서해교신 기밀 유출 파문] 北 전략적 침범?

    지난 14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것과 관련,북한이 애초부터 고도의 전략적 차원에서 문제를 야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이같은 분석의 저변에는 북한이 남북 장성급회담의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NLL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합동조사단 조사에서 NLL을 넘은 문제의 선박은 북한 경비정으로 최종 확인됐다. 당시 북한 경비정은 NLL을 넘은 중국 어선을 끼고 내려오면서 우리측의 무선 호출을 무시했으며,‘현재 남하하는 선박은 우리 선박이 아니라 중국어선’이라는 허위 통신까지 내보냈다. 이어 북측은 다음날인 15일 저녁 우리측에 항의성 전화통지문까지 보내 “남측이 제3국 선박을 우리 어선이라고 하며,우리 수역에 남측 함정을 침입시켜 경고사격하는 도발을 감행했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특히 북측은 전통문에서 북한 경비정이 무전을 보낸 시간을 4시51∼56분이 아닌 4시41∼45분으로 거짓 통보했다.북측이 경고사격 훨씬 이전에 자신들이 무전을 통보했음을 주장하기 위해 무전 시간을 조작한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 경비정은 이날 오후 4시12분 북한 등산곶항을 출발한 뒤 소속부대와 비화(秘話)통신을 하며 NLL쪽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NLL쪽에서 어선 단속을 할 경우,암호문이 아닌 평문(平文)으로 위치 정보를 받아 온 점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다.이처럼 은밀하게 접근한 것은 실체를 위장하기 위한 조치로 군 당국은 해석하고 있다.결국 북한은 남북 장성급회담 합의에도 불구하고,NLL 무력화와 남한 사회 교란용으로 의도적으로 NLL을 침범하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兩岸안정 노력… ‘하나의 中’ 거부”

    천수이볜(陳水扁·53) 타이완 총통은 20일 제11대 총통 취임사에서 최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안정화에 정진하겠다고 선언했다.천 총통은 그러나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중국도 타이완인들의 존재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신헌법 제정 여부에 신경이 곤두선 중국을 의식해 국가 주권과 영토,통일 등을 제외하고 약속대로 2008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은연중 타이완 독립의 계속적인 추진을 시사했다. 중국 외교부는 천 총통 취임 수시간 뒤 AFP통신에 팩스로 보낸 논평에서 “천 총통의 양안정책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최대 위협”이라고 강도높게 비판,천 총통 집권 2기에서도 양안 교착관계가 지속될 전망이다. ●천 총통,독립 직접 언급 안해 천 총통은 이날 취임사에서 타이완의 독립 문제 등 중국과 미국을 자극할 만한 사안은 직접 언급을 피했다.동시에 중국이 원하는 것처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같은 혈통과 문화 배경을 갖고 있는 중국과 타이완은 모두 자기의 주인이 될 기회가 있어야 한다.”며 독립 추진 의사를 강력히 비쳐 당분간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천 총통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타이완이 중국 본토의 위협에 대응해 국방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강조,방위·공격용 무기의 도입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천 총통은 또 관심을 모아온 ‘4불1무(四不一無·타이완에선 四不一沒有로 표현)’ 약속은 “2000년도의 약속을 2004년에도 지켜나가겠다.”고 언급,이를 계속 추진할 것을 시사했다.‘4불1무’는 대륙이 무력으로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전제하에 ▲임기내 독립 불선포 ▲국호 불변경 ▲양국론 입헌 불추진 ▲통일 국민투표 불실시와 ▲국가통일위원회 존속 및 국가통일강령 준수를 가리킨다. 천 총통의 이날 연설은 새로운 내용이 없고 대신 미국과 중국,국내 독립파들의 상반된 요구를 모두 교묘히 비켜간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천 총통 양안정책 지역 평화 최대 위협” 중국 외교부는 AFP통신에 보낸 천 총통의 취임 관련 논평에서 “(천 총통의) 일련의 도발적인 타이완 독립지지 행동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최대 위협”이라고 비난했다.이어 “타이완 독립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확고한 입장”이라고 재천명했다.앞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13억 중국 인구는 천 총통이 중국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홍콩 언론들은 중국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군사행동 준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홍콩 상보(商報)는 중국이 일부 지역 장병들의 휴가를 취소시키는 등 3급 비상사태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장쩌민(江澤民)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19일 공군 당대회에 참석,경계 강화를 주문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美 이라크 추가파병 검토

    이라크 주둔 미군은 수니파와 과격 시아파에 대한 무력진압으로 이라크 사태가 최악의 국면을 맞으면서 추가 파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미 국방부가 미 본토로 귀환 예정이던 병력의 귀환 방침을 연기할 계획인 가운데 영국은 700명의 병력을 이라크 남부로 증파하기로 결정했다.미군이 수니파와 시아파를 상대로 2개의 전선을 형성하면서 아랍권에서는 이라크 내전 가능성을 경고하는 소리가 높다.미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병력 증파 가능성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같은 사태에도 불구,5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을 방문한 자리에서 6월30일로 예정된 이라크 주권이양 계획은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미군,수니·시아파 동시 공격 이라크 주둔 미군이 이날 지난해 경쟁상대 성직자를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급진 시아파 지도자 모크타다 알 사드르(31)에 대한 체포작전에 나선 가운데 나시리야·아마라·쿠트·카르발라 등 곳곳에서 사드르 추종세력과 연합군이 충돌했다. 미군은 6일 무장헬기와 탱크를 동원,사드르 추종세력이 장악한 바그다드 교외 사드르시내 경찰서 3곳을 탈환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미군과 과격 시아파의 유혈충돌로 4일부터 6일까지 미군 11명과 이라크인 최소 39명이 숨지고 126명이 부상했다. 또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는 이탈리아군과 시아파간 충둘로 이라크인 15명이 숨지고 이탈리아군 12명이 다쳤다고 이탈리아 안사통신이 보도했다.이밖에 영국군이 관할하는 남부 아마라와 쿠트(우크라이나군 관할),카르발라(폴란드·불가리아군 관할)에서도 연합군과 시아파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한편 그동안 본거지인 쿠파시의 이슬람 사원에 머물렀던 사드르는 이날 시아파 최고의 성소인 나자프로 옮겼다.현재 사드르는 무장한 수백명의 추종자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이들은 목숨을 바쳐 사드르를 미군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결사항전을 다짐,미군이 무력으로 체포를 강행할 경우 시아파의 폭력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한편 1200명의 이라크 주둔 미 해병과 2개 이라크 치안대대 병력도 5일 밤부터 미국 민간인 경호회사 직원 4명의 사체 훼손사건이 발생한 ‘수니 삼각지대’에 속하는 팔루자시에 대한 포격을 감행하는 등 대규모 공격 작전에 들어갔다. ●미군 병력,본토 귀환 연기중 미국은 이라크 사태가 악화될 것에 대비,병력을 증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존 애비자이드 미 중부군사령관이 지난 주말 유혈폭력사태 직후 상황이 악화될 경우 신속대응 형태로 어떤 병력을 즉시 투입할 수 있는지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중부군 관계자가 말했다.미 국방부는 또 수주내 미 본토로 돌아올 예정이던 2만 4000여 병력의 귀환시기를 연기할 계획이라고 USA투데이가 5일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은 병사 700명을 이번 주 이라크 남부로 증파할 것이라고 BBC방송이 6일 보도했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라크에서 병력을 철수할 계획이었던 미군이 증파를 검토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현지 상황이 나쁘다는 방증이다.현재 이라크에는 13만 4000명의 미군이 주둔중이다.미군은 대다수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아직까지 사드르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는 데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실제로 6일 옥스퍼드 리서치 인터내셔널이 미국 ABC뉴스와 영국 BBC방송 등의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시아파 가운데 연합군에 대한 공격에 찬성한 사람은 10명 중 1명에 지나지 않았다. ●아랍권,이라크 내전 경고 아랍권과 영국 언론들은 5일 일제히 이라크내 내전 가능성을 경고했다.이집트 최대 일간지 알아르람은 사드르의 도발은 “매우 위험한 국면”의 시작을 의미한다며 “폭력과 저항이 점령군에서 다양한 종파와 부족간 내부 투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영국의 가디언과 인디펜던트는 현재의 이라크는 “무정부 상태”라며 유혈충돌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

    그리스 일곱 현인 가운데 한 명인 아테네의 입법가 솔론은 매춘을 영리 목적에 이용,최초로 공창제를 도입하고 그 수익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한 인물이다.솔론의 여성관은 분명했다.여성은 아내 아니면 창녀였다.여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기여한 것으로 말하면 장 자크 루소 또한 빠지지 않는다.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루소는 “남성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 여성이 아이를 낳다 죽는 것은 영광”이라며 현모양처론을 펼쳤다.‘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이들도 각도를 달리 해 보면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 ●`나쁜´ 창녀를 탄생시킨 건 위선적인 성도덕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김지혜 옮김,책세상 펴냄)은 이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성도덕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영국의 소호에서 매춘부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의 시각은 여러 면에서 전복적이다. 여성을 아내와 창녀로 나누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기원전 2000년경 고대 수메르에서 아내와 창녀를 분리하는 법이 처음 생겼다.저자는 여성을 ‘착한’ 아내 대 ‘나쁜’ 창녀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게 된 데는 기독교의 위선적인 성도덕이 큰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요하는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그 반대편에 ‘비정상적인’ 여인의 표상으로 매춘부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에게 불도장이 찍히게 했다는 것이다.구약의 선지자들은 매춘부를 고집 세고 도발적인 여성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책은 매춘의 역사가 남성 중심의 기록임을 밝힌다.매춘의 기원을 고대문명의 ‘사원 매춘’에서 찾는 것은 저자 또한 기존의 역사가들과 다르지 않다.고대 가나안에선 종교적 매춘과 세속적 매춘이 모두 번성했다.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원 가운데 하나로 이름 높았던 코린트의 아프로디테 사원은 1000명이 넘는 ‘신성한’ 창녀들을 거느렸다.히에로둘레라 불린 이들은 여신의 시녀로 간주된 매춘부 계급이었다. 저자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그동안 여성 사제가 정치·경제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외면당해 왔다는 점이다.예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왕이 매춘부를 겸한 여성 사제와 신성한 혼인을 치른 것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의례였음에도 단순히 ‘다산 의식’으로 치부돼 왔다는 것이다. ●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매춘 혹은 매춘부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중세의 교회는 매춘을 금지하면서도 ‘필요악’으로 규정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의 이런 태도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정당화했다.“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서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수많은 왕과 주교들은 성도덕이란 잣대를 매춘에 들이대는 한편 자신의 쾌락을 위해선 매춘부들을 궁 안으로 데려왔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매춘부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과학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범죄인류학을 창시한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는 매춘부들의 신체적 특징을 조사한 뒤 그들은 모두 좁은 이마와 비정상적인 코뼈,그리고 거대한 턱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나아가 과학자들은 창녀가 고통에 둔감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창녀의 몸에 전기충격 실험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들이 확인한 것은 매춘부들 역시 다른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직업 전선에 나선 평범한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매춘,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해야 저자에 따르면 매춘부들은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그들은 성적 억압이 일상화된 가정을 떠나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되찾기 위해,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에 몸을 팔았다.그와 같은 맥락에서 매춘은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자발적인 매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매춘에 도덕적 굴레를 씌워 게토로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한 지배구조를 영속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포럼] 6者회담 표류와 美대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의 표류가 우려된다.6자회담 표류가 장기화하는 동안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그것은 한국에 최악의 시나리오다.북한의 핵무기는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이다.미국은 사실 북한이 핵무기 1∼2개를 갖고 있더라도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최근 만난 한 외교통상부 고위 관리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있다.리처드 바우처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1일 “6자회담이 내년으로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내년이면 미국은 대선 정국으로 들어간다. 백악관은 1월말 연두교서를 발표한 후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운동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한다.부시 미국 대통령이 선거운동에 매달리면 북한이 위험한 핵카드를 들고 나오지 않는 한 6자회담은 주변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부시 대통령은 우선 이라크 문제 해결에 전념할 것이다. 북한도 미국 대선을 주시하고 있다.평양 지도자들은 대북 강경책에 집착하는 공화당 정권보다는 민주당 정권을 선호하고 있다.북한은 이 때문에대선이 끝날 때까지 6자회담에 미온적일 가능성이 있다.북한과 미국의 이러한 사정으로 6자회담이 장기간 겉돌 수도 있다.회담이 표류하는 동안 외교부 관리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을까.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은 심각한 위협이다.일부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통일후까지를 생각하면 좋은 일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한국의 대북 억지력이 무력화되고 북한에 종속적이 될 수 있다.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핵보복이라는 심각한 재앙이 두려워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한반도의 안보불안으로 국가 신인도도 떨어져 경기 침체가 우려되기도 한다.동북아의 핵무기 도미노 현상을 초래하고 일본과 미국 우익세력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에는 어떨까.북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골치아픈 일이다.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고 어려운 협상을 하든가 무력 공격으로 제거하든가 선택해야 한다.두 가지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미국의 강경파는 북한의 핵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싶어한다.미국의 패권정책과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미사일방어(MD) 계획 등을 위해 ‘북한 위협론’이 필요하다.강경파들은 그래서 북한을 ‘악’이라고 계속 선전하고 있다. 미국 강경파의 논리가 대북정책을 지배하면 북핵 해결의 전망은 어둡다.부시 정부 내에서는 아직도 강·온파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온건파의 협상론으로 6자회담이 시작됐으나 강경파의 견제로 실질적인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이러한 갈등이 북한과 미국간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높은 불신의 벽을 넘어 북한의 핵포기 문제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방안으로 핵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핵폐기는 몇년이 걸릴 수도 있는 장기 과제다.미국은 이 때문에 핵폐기를 위한 단계적 접근 등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안을 내놓아야 한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북한과 미국의 의지다.북핵문제가 미국 대선에서 중요 이슈가 되기 전에 성공적으로 평화적 해결 수순에 들어설 수 있다면 대선에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핵문제는 사실 미국 대선에서의 유·불리를 떠나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문제다.미국은 북핵을 일방주의적 패권유지와 연결시키려는 야욕을 버리고 평화적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 창 순 논설위원 cslee@
  • 오피니언 중계석/남북 공동어업을 통한 긴장해소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11일 연구원 강당에서 남북한 군비통제 세미나를 개최했다.KIDA 김태우 박사와 미국 샌디아국립연구소 협력적 감시센터(CMC) 존 올센 박사가 ‘남북한 공동어업을 통한 서해 긴장 해소 방안’을 주제로 공동 발표한 논문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남북한은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서해에서 교전을 한 바 있다.남북간 위기 관리체제가 없는 상황에서 이같은 무력충돌은 언제든 한반도를 긴장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 남한은 현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도발적 태도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해상충돌 방지협정이 체결돼야 하지만,남북한간 군사대화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따라서,현 상태에서 서해에서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후일을 기약하는 방안으로 군사적 문제와는 별개로 남북한 공동어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어업협력이 현실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첫째 공동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어야 하며,둘째 향후 구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질 때에 예비하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셋째는 우발적 긴장고조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넷째 협력 활동이 투명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상호간 신뢰구축에 유리한 것이어야 한다. 남북한 공동어업 방안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우선,꽃게 어장이 NLL 양편에 존재하는데 남한 정부가 NLL 남방 5.6㎞에 어로금지선을 설정하고 있어 남한 어민들에게는 심대한 제약이 되고 있다.북한 어민들도 군사적 민감성으로 인하여 꽃게 포획에 제약을 느끼고 있으며,꽃게를 잡기위해 NLL을 넘는 경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어장 개발은 남북한 모두에 이익을 주게 된다.중국 어선의 남북한 영해 침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남북한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사안이 된다. 서해 공동어업 사업은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북한간 군사 대화가 없는 현 상태에서도 제안할 수 있는 사안인 것이다. 공동어업의 실현을 위한 절차로는 몇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남북 정부가 공동어업위원회를 설립해 공동수역,어로기간,어로방법 등을 합의해야 한다.예컨대 연평도 좌측에 남쪽의 어로금지선에서부터 NLL까지 또는 NLL 북쪽 수역까지를 공동어로수역으로 합의할 수 있으며,백령도와 황해도 해안사이에도 공동 어로수역을 정할 수 있다. 둘째,공동어업 합작회사를 만들어 양측 동수의 어선을 합작회사 소속으로 등록한 뒤 합의된 방식대로 어로작업을 하게 한다. 셋째,포획한 꽃게나 어족은 일단 남한에 판매하고,다시 남한 판매망을 통해 세계 시장에 판매한다.현재 북한이 포획하는 꽃게는 대부분 중국에 수출되고 있으나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어 남한에 판매할 경우 더 많은 수익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최종 이익금은 남북이 동등하게 분배한다. 이러한 공동어업은 향후 해상충돌방지조약 등 구체적인 제도화가 이뤄질 때까지 서해 긴장 방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간 협력사업은 남북한 직항로 개설에 기여할 것이며,결국 남북한 교역 신장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현재 남한 500여개 기업들이 북한의 공장을 이용하여 제조업에 참여하고 있으며,남북한을 오가는 화물의 90%는 인천∼남포 항로를 이용하는데 각종 제약으로 인해 직항로를 사용하지 못해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또 공동어업 사업은 서해 해양환경보호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특히 북한이 해양환경 문제에도 더 큰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서해 해양환경 보호에도 기여할 것이다. 정리 조승진기자 redtrain@
  • 사진집 ‘작은 평화’낸 가수 한대수 씨/나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히피’

    ▲1948년 부산 출생 ▲66년 미국 뉴햄프셔대 수의학과 입학,중도 포기 ▲68년 뉴욕 사진학교 졸업후 귀국,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활동 시작 ▲70년 국전 사진부문 입선 ▲74년 군제대 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2집 ‘고무신’ 발표,‘체제전복 음악’이라는 이유로 모두 금지곡 처분 받음 ▲77년 미국으로 이주,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중 한대수는 히피다.일부일처제를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쇠우리’로 규정하는 자유주의자.그에게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심은 ‘원조히피’요,자신은 “80년 존 레넌이 뉴욕에서 총맞아 죽은 뒤 지구상에 살아남은 유일한 히피”다. 한대수는 미니멀리스트다.혼자서 먹고 누울 작은 방 한 칸이면 대저택이 안 부럽다.삼촌이 빌려준 서울 연희동의 8평짜리 오피스텔에는 1인용 매트리스와 기타 2대,낡은 괘종시계,CNN뉴스가 나오는 액정 모니터가 전부다. 한대수는 반자본주의자다.그에게 자본주의란 ‘탐욕’과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반인간적 시스템일 뿐이다.무엇보다“50세 이상을 쓰레기로 만드는 반(反)노인적 체제란 점에서” 그는 21세기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를 증오한다. ●혼자 누울 방 하나면 기쁜 미니멀리스트 연희동의 오피스텔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배꼽을 드러낸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상반신 포스터였다. “여러 여자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솔직히 브리트니처럼 ‘동’하는 여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어요.무엇보다 저 배꼽이 인상적이었지요.물론 우리나라 이효리도 배꼽의 ‘도발성’에선 브리트니 못지 않지요.”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여자 그림.지하도에서 20만원 주고 샀다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였다.‘마지막 히피’다운 인테리어 컨셉트였다.그의 히피적 기질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스무살 나이에 세상이 못마땅하고 사는 것이 화가 나 ‘물 좀 달라.’며 고함을 내질렀다.군인들은 ‘물 좀 주소’란 그의 노래가 정보기관의 ‘물고문’을 비꼬았다며 마이크를 뺏었다. 하지만 가수가 아닌 사진가 한대수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는 뉴욕사진학교를 졸업하고 당당히 대한민국 국전 사진부문에 입선한 ‘제도권’작가다.고통이 애인이고 고독이 정부(情婦)이던 시절,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맨해튼 거리를 헤맸다.이런 그가 35년 작가 인생을 결산하는 사진전을 지난달 서울 서교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었다.그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충격에 무감각한 ‘언쇼커블’세대 “원래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입니다.그런데 주변에서 영화가 좋다고 성화길래 영화관에 갔어요.박 감독하고는 ‘공동경비구역’에 내 노래를 삽입한 인연으로 술도 가끔 마시는 사이지요.그런데 도저히 눈을 뜨고 못 보겠더라고요.그날 밤 무서워서 잠도 못잤어요.그런 걸 ‘엽기’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리들리 스콧 감독의 ‘한니발’을 볼 때하고 비슷했습니다.” 의외였다.1960년대 ‘반문화’의 메카 뉴욕에서 20대를 보낸 사람이라기엔 너무 여리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는 요즘 세대를 “웬만한 충격에는 좀체 반응하지 않는 ‘언쇼커블(unshockable)’세대”라고 규정했다.음악이든,영화든 자꾸 강한 충격을 주려고만 하니까 대중들의 무감각이 심해진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사회가 너무 선해서 ‘에브리보디 해피’하면 엽기도 하나의 오락거리가 될 수 있어요.하지만 어디 그렇습니까.매일 폭탄이 터지고 하루에도 수백명이 굶어죽어 갑니다.이런 때일수록 예술은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인간과 자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못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난달 그가 펴낸 사진집의 제목도 ‘작은 평화’다.1967년부터 뉴욕과 로마,런던,모스크바,울란바토르 등 전 세계 12개의 도시를 돌며 찍은 80여개의 장면들을 크고 작은 프레임에 담았다.모델들은 뒷골목의 악사부터 지하도 노숙자,몽골 유목민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정착하지 못한’ 유랑민들이다.사진에는 제목도,설명도 없다. “어디에서 누구를 찍은 사진인지는 중요치 않아요.전세계의 인간들이 처한 보편적 상황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그것은 고통과 소외입니다.뉴욕이나 서울이나 울란바토르나 약자들은 주리고 소외되고 억압받고 있어요.” 그는 무엇보다 50살이 넘는 사람들을 ‘퇴물’로 전락시키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난했다.교육받지 못하고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지금쯤 서울역 어딘가에 사과박스를 깔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지난 97년 펴낸 자서전에서 “우리에게도 히피문화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좀더 개방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적었다.그는 히피를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도덕에,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맹목에,일부일처제라는 반(反)생물학적 관습에. “뉴욕은 이혼율이 50%가 넘고 우리나라도 세쌍중 한쌍이 이혼합니다.만약 이혼율이 80%에 육박한다면 결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고,자연스럽게 헤어지고….이게 인간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한대수는 휴머니스트다 그는 히피정신의 핵심을 ‘동의하지 않음을 동의하라.’는 말로 요약한다.그가 볼 때 살육과 전쟁은 ‘다름’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독선과 아집’에서 시작된다.이라크 전쟁도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지금 심각한 ‘오만병’에 걸려 있습니다.테러를 빌미로 오리엔트의 중심지 바그다드를 무력으로 정복했지만 보복의 악순환은 3대를 갑니다.미국은 당장 침략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한대수는 어떻든 휴머니스트다.그가 음악과 사진을 업으로 삼은 것도,미니멀리스트적 삶에 집착하는 ‘마지막 히피’로 체제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고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애정 때문이다.도대체 인간은 왜 고통당하는가.그것은 ‘행복의 나라’를 만든 열여섯살 시절부터 9장의 자작앨범을 발표한 지금까지 그가 줄곧 매달려온 ‘화두’다.그는 오늘도 기타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일생을 매달려온 ‘인간이라는 화두’에 정직하게 대면하고자 노력한다. 글 이세영기자 sylee@ 사진 강성남기자 sn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