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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인질 70명 화학공장 강제수용/「공관폐쇄」 위기넘긴 중동

    ◎이란ㆍ시리아,외국인 탈출 돕게 국경 개방/동독 군수물자,리비아 거쳐 이라크 반입/영 언론들,“크루즈미사일이 후세인 사령부를 겨냥” ○「인질방패」 이용목적 ○…약 70명의 미국인 인질들이 시리아ㆍ이라크 국경지대의 화학공장에 「인질방패」로 이용당하기 위해 이라크당국에 의해 이동된 것을 폴란드 기술자들이 지난주 목격했다고 미 워싱턴 포스트지가 25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바르샤바발 기사로 소규모 우라늄 수출공장과 극비의 군수관련공장들로 구성된 이 장소는 외국인 노동자들에도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라크ㆍ시리아 국경으로부터 약 18마일 떨어진 카임에 위치한 이 공장은 3가지 종류의 수출용 화학비료를 생산하고 있고 중국인과 폴란드인을 비롯,외국노동자들을 수백명 고용한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근대화한 공장이라고 포스트지는 밝혔다. 『폴란드 기술자들에 따르면 첫 그룹은 30명으로 지난 15일 도착했으며 두번째 그룹은 이틀후 도착했다고 이들 폴란드 기술자들은 전했다. ○식료품 확보에 혈안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봉쇄가 상당한 실효를 거두어 식용유 밀가루 과일 등의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에서는 사재기 열풍이 불고 배급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군인들은 감추어놓은 식료품을 찾기 위해 가택수색을 하고 있으며 수백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25일 이라크주재 미 대사관앞에서 이라크에 대한 봉쇄조치에 합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관영 INA통신이 보도. ○…이란은 이라크에 억류돼 있는 외국인들의 출국을 위해 1천2백㎞에 달하는 이라크와의 국경을 개방할 것이라고 테헤란방송이 26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이란 외무장관의 말을 인용,『이란은 인도적 차원에서 쿠웨이트와 이라크에 있는 외국인들이 이란을 통해 출국할 수 있도록 국경을 개방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리아도 이날 이라크로부터 출국하려는 모든 아랍인과 서방인들을 위해 국경을 개방키로 했다고 관영 SAN통신이 보도. ○체포 피해 민가 은신 ○…수십명의 서방인들이 이라크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쿠웨이트인 가정에 은신하고 있다고 쿠웨이트 지하운동의 지도자라고 밝힌 한 남자가 25일 밝혔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그는 이라크가 외국인들을 군사거점등 기타 공격목표물로 이동시키기에 앞서 이들에게 호텔로 집결할 것을 지시한 지난주부터 많은 외국인들이 쿠웨이트 가정에 숨어들었다고 전했다. ○…동독의 잉여 군수물자가 최근 선편으로 리비아를 경유,이라크로 수송됐다고 뉴욕의 외교소식통들이 25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대이라크 무역봉쇄조치를 강화하기 위해 무력사용을 승인한 유엔 안보리 회의를 참관하던 중 이같이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또 『유엔 주재 영국대사인 크라이스핀 티켈경은 23일 폴란드에서 출발한 이라크 선적의 선박 1척이 트리폴리항에서 탱크 트럭 등 동독제 군사장비를 하역한 뒤 이 장비는 다시 화물수송기에 실려 이라크로 운송됐다는 증거물을 동료들에게 제시했다』고 전했다. ○영국 인질 결혼식 ○…이라크에 억류돼 있는 영국인 남녀가 23일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라크 TV는 다음날 이들의 결혼식 장면을 방영했다. 이라크 TV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신랑 로버트군이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와 이라크 악단의 연주에 맞추어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데보라양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당초 청바지만을 입고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라크당국이 웨딩드레스와 케이크를 제공하고 목사를 주례로 초빙하는등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료 곧 인상방침 ○…주요 국제항공사들은 중동전쟁 발발에 대한 위험부담을 보충하기 위해 이 지역을 운항하는 여객기의 항공료를 인상할 계획이며 추가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고 항공산업소식통들이 26일 밝혔다. ○아라파트,암만 도착 ○…이라크로부터 25일 요르단에 도착한 한 미국인은 바그다드에서 그가 만난 다른 미국인들은 무사하며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한 고위관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이 페르시아만 분쟁의 중재역할을 맡기 위해 요르단 수도 암만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날 다른 1백70명과 함께 이라크 여객기를 타고 암만의 퀸 알리아 국제공항에 도착한 미국인 닉 아브라하드씨는 『이라크의 모든 것은 정상적이며 평온하다』고 말했다. 이라크는 국적에 상관없이 일부 외국인의 출국을 허용하고 있는데 다른 3천명의 미국인이 이라크당국에 억류돼 있음에도 불구,아브라하드씨가 출국허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페만 파병” 일서 파문 ○…자민당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 미지웅) 전 정주회장이 지난 16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페르시아만에 자위대의 대잠 초계기나 소해정을 파견하기 위해 자위대법 개정을 가이후(해부)총리에게 촉구한 사실과 관련,당내에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26일 보도했다. ○…영국 신문들은 서방 크루즈미사일이 후세인대통령 사령부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알 자셈 이라크공보장관은 후세인대통령은 사령부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령부나 궁전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재물에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후세인대통령이 벙커에 숨어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교황,이라크맹비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6일 이라크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신도들에게 이라크에 의해 억류돼 있는 서방인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촉구했다. 교황은 일요강론에서 이같이 말하고 중동위기는 국제질서와 세계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태국인 채용 희망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된 미 공군부대 지원시설에 5천명의 태국인 근로자들의 채용을 희망하고 있다고 방콕 포스트지가 26일 보도. 이 신문은 사우디에 있는 미국 관리들이 태국인들의 채용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5일 태국 관리들과 접촉을 가졌다고 전했다. 방콕 포스트는 미 관리들의 말을 인용,『베트남전쟁때 미군기지에서 일한 태국인들의 능력이 높이 평가됐었다』고 보도했다.
  • “공관폐쇄 공방”… 전운짙은 페만

    ◎“미 공격 임박설”… 이라크인,수도 탈출 러시/나토소속 미군 중동지역 이동 배치/페만운항 유조선 보험료 최고 6백%까지 치솟아/이란,“미­이라크전 불개입” 강력시사 ○…외국군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수만명의 이라크인들이 바그다드시를 빠져나가고 있다고 24일 쿠르드족 반군들이 전언. 이들은 또 이라크군이 수백대의 탱크와 대포ㆍ병력을 쿠웨이트시내에 증강배치하고 있다고 밝히고 터키와 터키 남서쪽 나토기지에 면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자코시에 3개 사단병력을 배치했다고 전했다. ○미 외교관 12명 잔류 ○…미국은 24일 현재 이라크의 최후통첩을 무시한채 대사를 포함,12명의 대사관직원이 쿠웨이트주재 대사관을 지키고 있다. 이밖에 일본이 2명,프랑스는 대사가 휴가중인 상태에서 6∼7명이 대사관을 지키고 있다고. 스웨덴은 대사관에 1명,대사관저에 2명이 머무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련은 대사관직원 전원이 철수를 완료한 상태. 소련 대사관측은 그러나 국제법상 소련 대사관은 계속 「열려 있는」상태라고 설명. ○…이라크와 미국간의 전쟁 발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수십척의 유조선과 화물선들은 치솟는 보험료에도 불구,페르시아만의 항로를 바쁘게 오가고 있다고 해운소식통들이 24일 전했다. 미국과 영국의 군함들이 대 이라크 봉쇄조치를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무력을 사용할 태세를 갖추고 페르시아만을 순찰하고 있으나 이들 선박에 물건을 실은 화물주들은 아직까지 가장 수익성이 높은 화물들을 운반하는 나머지 남은 항로를 통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관련,유엔이 내린 대 이라크 금수조치에 따라 페르시아만에 들어오는 유조선의 수는 격감했으며 페만 입구 호르무즈해협 부근의 푸자이라 부근에는 평상시 10∼12척이던데 비해 거의 80척이나 되는 유조선이 놀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선박 보험료가 3주전에 비해 급등,어떤 경우에는 무려 5백∼6백%나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ㆍ이란 및 기타 페만지역 아랍국가의 주요 석유수출항으로 통하는 항로는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식수ㆍ약품지원 호소 ○…요르단정부는 24일 수만명의 외국인 난민들이 식수ㆍ의약품 부족과 끔찍한 위생상태하에서 지내고 있다며 어린이용 분유 50만통을 비롯,기초식품들을 보내달라고 각국 정부에 호소. ○부시,두 아들과 골프 ○…부시 미 대통령은 페만의 긴박한 사태속에서도 23일 새벽 젭과 조지 등 그의 두 아들과 골프를 즐기는등 여유있는 모습을 과시. 골프를 치는 동안 페만사태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체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 골프치는 동안에는 일체 심각한 사안에는 답변을 않기로 한 「새 방침」에 따른 것인 듯. 부시 대통령은 22일에도 국가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보트놀이를 했고 테니스도 치는 등 여유를 보였다. ○…쿠르트 발트하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25일 바그다드를 방문,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억류 외국인들을 석방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알로이스 모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24일 말했다. 모크 장관은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발트하임 대통령은 외국인들이 이라크로부터 출국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특히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출국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은 24일 페르시아만에 집결해 있는 외국군이 나중에 철수만 한다면 이들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강제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이날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주도 군사력 증강에 대한 연설을 통해 『한가지 가능성은 그들이 공격을 중단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개의치 않고 있으며 어느 누구로부터 오는 어떤 형태의 도움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의 이같은 발언은 쿠웨이트를 둘러싼 미국­이라크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백히 시사하는 것이다. ○애 노동자 귀국 보장 ○…시리아는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탈출한 이집트 노동자들이 요르단을 경유,시리아의 항구를 통해 귀국토록 합의했다고 시리아 관리가 24일 말했다. 이 관리는 『시리아와 이집트 정부가 그간 접촉을 해왔으며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탈출한 이집트인들을 요르단을 통해 시리아로 이송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이집트인들은 선박편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리아 관리는 그러나 시리아의 타르투스ㆍ라타키아항을 통해 귀국할 이집트인의 수가 얼마나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막작전 수행 일환 ○…미국정부는 23일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기지들로부터 처음으로 미군을 중동지역으로 이전 배치중이라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서독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 유럽 제7의료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이라크의 사우디아라비아 침공에 대비한 사막방어작전 수행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제7의료사령부로부터 이전 배치되는 군대 규모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는 또 미 공군은 제435 공수부대의 C­130E 허큘레스수송기를 서독의 한 기지에서 페르시아만 지역으로 배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일 이라크 침공을 이끌었던 이라크 정예수비대가 쿠웨이트내 사우디 접경지역으로부터 철수,다른 부대들로 교체되고 있다고 한정보소식통이 23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이라크가 공화국 수비대를 후방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 특수부대는 이라크의 사우디 공격시 언제든 전선에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16만명 가량의 이라크군이 여전히 쿠웨이트내에 주둔하고 있다고 말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이라크군 사단들이 이라크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쿠웨이트 대사관원 소개 ○…소련은 쿠웨이트 주재 소련 대사관의 전 직원들을 대피시켰다고 유리 그레미흐츠키 소련 외무부 대변인이 24일 밝혔다. 그레미흐츠키 대변인은 소련 외교관들이 「현 중동위기로 인해 임무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쿠웨이트를 떠났다고 말했으나 이같은 소련의 조치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생필품 배급제도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특파원은 유엔의 경제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여 이라크에서는 일부 생필품의 배급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식품을 살 수 있는 곳을 아는 것은 중요한정보의 하나라고 23일 바그다드발로 보도. 이날 영국 TV기자로는 처음으로 바그다드에 들어간 BBC의 존 심프슨기자는 공항과 시가지가 전과는 달리 군복의 유니폼들만 보일 뿐 텅빈 것 같다고 첫소식을 전하면서 이라크인들이 미군의 공격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요르단,국경 재개방 ○…지난 22일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유입되는 엄청난 난민들을 미처 수용ㆍ처리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라크 국경을 폐쇄했던 요르단은 국경폐쇄 후에도 멈추지 않는 난민들의 쇄도로 국경폐쇄 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곧 국경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소식통들은 23일에도 2만6천명의 난민들이 이라크 국경을 넘어 입국했다고 전하면서 요르단 정부가 24일(현지시간)중 국경을 공식으로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르단왕 수단방문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페르시아만 사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중동국 순방의 일환으로 수단과 예멘을 잠시 방문하고 24일 상오 귀국했다. 한 정부 대변인은 후세인 국왕이 23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요담을 갖고 곧바로 수단의 수도 하르툼을 방문,아마르 알 바시르 국가평의회의장과 회담을 가졌다고 말했다. ○영 15세 소년 풀려나 ○…페르시아만 사태로 이라크에서 억류됐던 스코틀랜드 소년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라크에서 석방된 후 24일 암만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브리티시 에어웨이 항공사가 발표했다. 알렉스 카메론 바네트군(15)은 페르시아만 지역 단독 여행차 런던발 쿠웨이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지난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쿠웨이트에서 억류,바그다드로 이송됐었다.
  • 남북한 군비통제 협의 제의/노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9월 고위급회담서 논의를/“서울·평양 대표부 설치 기대” 【목천=이경형기자】 노태우대통령은 15일 『남북간의 무력포기선언과 불가침협정의 체결,현재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와 서울과 평양에 상호 상주대표부를 설치하는 문제등에 관해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논의할 때가 왔다』면서 『다음달 열기로 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대화가 진전되기를 바라며 이를 바탕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충남 천원군 목천면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개최된 제4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경축사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남북대결을 지양하여 민족화합의 시대를 열기 위해 군비통제도 진지하게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경축사 요지2면〉 노대통령은 이어 냉전체제의 붕괴,한소 정상회담과 북방정책의 급속한 진전에 따른 한반도 주변 국제환경의 변화를 지적,『이제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을 가로막을 외부적 장애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분단 반세기를 눈앞에 둔 앞으로 4∼5년간은 통일을 향한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은 7·20 민족대교류 제의에 북한당국이 당치도 않은 이유와 조건을 붙여 남북 동포간의 왕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유감된 일이라고 말하고 『남북간의 자유왕래는 통일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정으로 우리는 줄기찬 노력으로 민족의 교류를 실현할 것이며 오는 추석이든 연말연시든 북한이 응하는 어느 때에도 남북의 동포들이 제한없이 원하는 지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모든 태세를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남북의 같은 겨레가 교류하며 서로 돕는 협력의 관계를 이루지 못할 그 어떤 명분,그 어떤 이유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우리는 인내와 성실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교류와 협력을 실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 앞서 독립유공자 12명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경축식이 끝난 후 「북한 개방촉구 1천만 지지서명부」를 살펴보았으며 겨레의 집 뒤뜰에서 베풀어진 경축연에 참석했다.
  • 다국적함대 50척 집결… 사실상 페만 봉쇄

    ◎페만사태 9일째… 위기의 중동/아랍 반미시위 확산… 대항군 결성 요구/이라크,아ㆍ아인 출국 허용… 탈출난민 사막서 열사/알 사바국왕,정상회담도중 돌연퇴장 ○…2차대전 이후 사상 최대의 다국적 함대가 페르시아만 주위에 집결,대아라크 응징의 카운트 다운을 기다리고 있다. 이라크측의 무조건 철군을 촉구하고 나선 미국의 전례없이 강경한 「통첩」과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의 대이라크 제재 동조속에 이들 각국 함대가 페르시아만 남쪽 아라비아해상에 집결중이다. 두바이의 외국언론들은 헬리콥터 등을 동원,인근 호르무즈해역 주변을 수색했으나 미 항모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호르무즈해협 이남 수역에 집결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이라크 제재를 위한 다국적 함대는 모두 50여척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이는데 군사전문가들은 이같은 전례없는 다국적 함대가 막강한 최신전력을 동원할 경우 이라크의 유일한 해상출구인 페르시아만을 비롯,홍해와 지중해 등 주변 수역을 1백% 봉쇄할 수 있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요인색출에 혈안 ○…지난7일 사우디로 탈출한 한 40대 사업가는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의 요인들을 찾아내 끌고가는데 혈안이 돼있다고 전언. 그는 이라크군이 요인 명부를 들고 다니면서 상당수 쿠웨이트 유력인사들을 체포,납치해갔으며 납치당한 이들 쿠웨이트 요인들의 집은 이라크에서 온 사람들이 점거해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쿠웨이트를 탈출할 당시만해도 이같이 쿠웨이트로 몰려오는 이라크가족들을 가득 태운 90여대의 버스를 목격했다고 주장.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한 소식통은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국경이 육로가 아시아와 아프리카ㆍ중남미인들에게는 개방되고 있다고 10일 말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북미나 서구인 가운데도 외교관들의 출국은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고 첨언. 그는 이라크군이 요인 명부를 들고 다니면서 상당수 쿠웨이트 유력인사들을 체포,납치해갔으며 납치당한 이들 쿠웨이트 요인들의 집은 이라크에서 온 사람들이 점거해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쿠웨이트를 탈출한 당시만해도 이같이 쿠웨이트로 몰려오는 이라크가족들을 가득 태운 90여대의 버스를 목격했다고 주장.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한 소식통은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국경이 육로가 아시아와 아프리카ㆍ중남미인들에게는 개방되고 있다고 10일 말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북미나 서구인 가운데도 외교관들의 출국은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고 첨언. 이에 앞서 이라크당국은 외교관을 제외한 모든 여행자들의 출국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한다고 발표했었다. ○성전수행 동참 촉구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주로 인해 9일 아랍권 각국의 수도들에서 반미시위가 발생했으며 일부 아랍국에서는 미국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수행하기 위해 국민들을 무장시켜야 한다는 요구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요구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지 않은 국가들뿐만 아니라 쿠웨이트의 왕정 복권을 지지하는 국가들로부터도 제기됐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군사조직인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군에 소속된 회교 최고 성직자인 머프티(회교 법률고문ㆍ회교법전 설명자)는 이날 만일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지하드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회교도들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암만에 있는 머프티인 셰이크 나데르 아사드 바요드 알 타미니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신의 적들인 미국 및 서방인들과 합류해 이라크인들의 살해에 참여하는자들은 변절자들로 간주돼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며 사우디 왕가에 직접 경고했다. 이와 관련,후세인 국왕이 축출된 쿠웨이트 정부를 계속 인정한다고 밝힌 요르단에서는 이날 강력한 힘을 가진 전문기술자협회가 모든 아랍정부들에 대해 「자신들의 의지를 강제로 관철시키려는 미국의 시도」로 인해 제기된 위험에 대처할 「국민군」의 결성을 요구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문제논의를 위해 긴급 소집된 아랍정상회담에 참석한 자비르 알 아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수장이 회의장을 떠났다고 현지 외교관들이 밝혔다. 이들 외교관들은 셰이크 자비르수장이 회담결렬을 방지하기 위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마지막 노력이 있은 뒤 알려지지 않은 목적지로 떠나 정상회담에서 철수했다고 말했다. 외교관들은 그의 보좌관들이 뒤에 남아 망명 쿠웨이트정부를 대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아랍 외교관은 『세이크 자비르의 보좌관들이 계속 회의에 참석중이므로 쿠웨이트가 회담에서 완전 철수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쿠웨이트 괴뢰정부의 수반인 알라 후세인 알리 대령은 이라크대표와 나란히 앉아 회의에 참석. 한편 이라크 타지크 아지즈 외무장관은 10일 아랍정상회담은 페르시아만으로부터 미군철수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 ○이라크군 이동 배치 ○…영국 외무부는 10일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시로부터 이 나라의 해안선을 따라 이동배치되고 있다고 발표. ○식빵ㆍ채소 품귀현상 ○…탈출하는 동안 사막의 열기와 피곤에 지친 남루한 행색의 난민들은 한결같이 이라크군 점령 치하의 쿠웨이트는 「약탈과 부녀자 폭행ㆍ납치 등의 만행이 판치는 무법천지」라면서 지난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이후 겪었던 며칠간의 쿠웨이트 상황을 악몽과 같다고 표현. 레바논 출신의 상인 셰이커씨는 『쿠웨이트는 현재 치안이 전혀 없는 상황이며귀금속상과 자동차판매상등을 중심으로 상당수 상점들이 약탈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악몽같다. 잠에서 깨어나니 어느덧 이라크 세상이더라』면서 『이제 쿠웨이트는 끝났으며 쿠웨이트에 있으면 바그다드에 있는 것 같다』고 쿠웨이트의 정황을 전달. 난민들의 말에 따르면 쿠웨이트시내의 물가는 이라크군 점령이후 2배로 올랐으며 석유와 채소,심지어는 한집당 5개씩 배급되는 식빵마저도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석유의 경우 자동차 1대당 5리터씩 배급되고 있으나 쿠웨이트인들은 자동차를 몰고다닐 경우 이라크군에게 뺏길 것을 우려해 석유배급을 신청하지 않고 있다. ○…유럽경제공동체(EEC)는 10일 아랍 제국들이 페르시아만 위기를 진정시킬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제의하면서 카이로 아랍정상회담에서 「위기를 종식시킬 수 있는 구체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EEC 12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이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긴급회담에 앞서 브뤼셀에서 가진 회담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사막을 건너 사우디로 넘어온 한 쿠웨이트인은 사막을 통해 탈출하는 동안 여러사람이 차량 연료와 식량의 부족으로 사막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탈출현장의 참상을 전달. 한편 요르단으로 탈출해온 한 20대 레바논 출신 청년은 이라크군이 지난 7일 쿠웨이트의 카디시야지역에서 이라크군이 진주하고 있는 경찰소로 항의행진을 벌이던 쿠웨이트인들에게 총격을 가해 2명의 여인을 사살하고 20명 가량을 부상시켰다고 말했다. ○시위대 무력 해산 ○…쿠웨이트를 빠져나온 한 여행객은 쿠웨이트인들로부터 이라크에 대항하기 위한 쿠웨이트인들의 비밀결사조직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난민들은 또 지난 9일 쿠웨이트 시민들이 지붕위에 올라간 『쿠웨이트여 영원하라,자비르 국왕이여 영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라크의 점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이라크군이 자동 화기를 발사해 시위를 진압했다고 밝혔다. ○해방조직 결성 추진 ○…난민들은 이번주 초까지만 해도 쿠웨이트인들이 산발적으로 이라크군에 저항을 시도했으며 시내에서 총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들이 들렸다고 전했다. 쿠웨이트인들은 단결을 촉구하는 사발통문을 비밀리 돌리고 있으며 쿠웨이트 해방조직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 북경정가에 권력투쟁 먹구름

    ◎조자양 복권설 계기,깊어지는 「보혁의 골」/진운등 개방ㆍ개혁정책 정면반대 보수파/이서환 중심,통제경제 실패 비난 개혁파 요즈음 중국에서는 과거 개방ㆍ개혁을 앞장서 추진했던 조자양 전당총서기의 복권과 관련된 루머가 무성한 가운데 개혁ㆍ보수파사이의 권력투쟁 조짐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천안문광장 민주화 요구시위를 지지했다는 비난을 받고 실각한 조의 복권설이 갑자기 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말쯤부터다. 성도일보는 6월28일 북경소식통을 인용,중국 최고실권자 등소평이 『개방 개혁은 필연적이며 현 시점에서 조의 공적이 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하면서 조의 요직복귀 가능성을 점쳤다. 친중국계 월간지 경보도 7월호에서 지난 5월말 등이 연금상태의 조를 집으로 불러 내년 가을에 복권토록 해줄 것을 약속하면서 『상당기간 특정한 직함없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국토의 균형발전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다른 홍콩지들은 조가 일단 정협부주석직을 맡은 다음 다시요직에 임명될 것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조의 복권설은 얼마전 그의 비서실장이며 6.4 천안문사건직후 폐쇄된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 주임이었던 포동이 감옥에서 풀려남으로써 가능성을 더해 주었다. 이같은 풍문에 대한 진위여부를 묻는 외신기자들에게 중국의 외교부 대변인 김계화는 지난 7월19일 『나는 조의 현황을 모른다. 여러분들이 너무 쉽게 그런 소문을 믿지 않길 바란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조의 현황과 진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역시 개혁파로 지목되고 있는 당정치공작 책임자인 이서환 중앙정치국상무위원이 최근들어 이붕총리등 강경보수파를 빗대어 비난함으로써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이서환은 『인민을 긴장케 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정신이 아니다. 우리는 인민을 이해하고 세심하게 돌봐줘야 한다』며 천안문 민주시위를 무력진압하는데 앞장섰던 강경파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또 이붕총리등에 의한 중앙통제식 긴축정책이 중국의 경제사정을 더욱 악화시킨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관측통들은 조 전당총서기의 복권설과 함께 이같은 이의 발언의 배후에는 최고실권자이며 지난 10년동안 계속됐던 개방개혁의 골격을 짰던 등소평이 도사리고 있음을 강조한다. 다시말해 등은 6.4사건으로 인한 대외적인 충격과 후유증이 크게 가라앉은 요즈음 본격적으로 개방개혁정책의 시동을 걸고 대내적으로도 민심을 마지막으로 수습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의 복권과 함께 강경보수세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는 이야기다. 등이 지난 6월초 양상곤 국가주석,진운 중앙고문위주임,왕진 국가부주석 등 원로들에게 오는 92년초까지 공직에서 은퇴할 것을 명령한 사실도 이들 원로들이 대부분 보수파이기 때문이란 지적이 꽤나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등의 정치적인 책략에 맞서는 보수파들의 자세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오래 전부터 등의 개방정책을 반대했던 보수세력의 대부격인 진운은 6.4사건의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등의 말에 『당시 인민해방군에 대한 최종적인 명령은 국가 및 당군사위 주석이던 등만이 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등을 정면으로 공격하고나섰다. 천안문시위때 조전당총서기의 태도를 해당행위라고 강력히 비난했던 왕진은 지난 7월24일 잠비아의 마세케총리와 만난 자리를 빌어 『중국 원로정치인들은 아직 매우 건강하고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며 등의 은퇴명령을 반박하는 발언을 했다. 관측통들은 최근들어 서방세계의 대중경제ㆍ외교제재 조치들이 대부분 해제됨에 따라 중국의 개방개혁이 가속화될 전망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ㆍ개혁세력의 새로운 갈등과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란 공통된 예측을 하고 있다.
  • 「김일성 이후의 북한」세미나/김학준씨 발표 요지

    ◎“남ㆍ북한 교류물꼬 2∼3년내 트인다”김일성 생존말기 「제한된 교역ㆍ협력」시도 예상/대미관계등 개선… 동독식 온건개혁 추구할 듯 「김일성이후의 북한」을 주제로한 세미나가 한국지역사회연구소(이사장 장성만)주최로 23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 김학준박사(대통령사회담당보좌역)는 주제발표를 통해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사후가 아니라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이미 그 변화의 조짐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수년내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실체를 인정,대화를 통해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박사는 또 2∼3년내에 북한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 교류와 교역,협력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켜 이 시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박사의 발표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시간은 항상 사회과학자들을 망신시켜 왔다』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교수의 말처럼 어떤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이후 전개된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권의 변화는 한마디로 「혁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공산권의 변화를 예측한 사회과학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특히 정보가 극히 통제돼 있는 페쇄체제인 북한에 대해 그 미래를 전망하기란 매우 어렵다. 공산권의 변화이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2∼3년 또는 3∼4년안에 변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북한은 소련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동유럽국가들과 달리 중국이라는 또하나의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동유럽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소련에 인접,개혁과 개방의 도미노현상을 피할 수 없었으나 북한은 그 진원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셋째,유고와 알바니아를 제외한 동유럽의 국가들이 대부분 2차세계대전후 소련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됐고 그 이후에도 소련군에 의해권력이 유지돼 대소의존도가 매우 컸지만 북한은 소련군에 의해 정권을 수립한후 곧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확립,자주노선을 밟아옴으로써 소련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변화에 대한 또다른 견해는 북한도 1∼2년,적어도 2∼3년내에 반드시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현재 공산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세계사적이며 문명사적인 조류로써 「인류사에 일대 획을 긋는 피할 수 없는 전환」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자그대로 「혁명적 변화」라고 일컬어지는 이 물결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할수 있겠느냐하는 물음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로는 첫째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소련의 대북압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고르바초프의 한 군사담당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동유럽에 대한 것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 발언을 전후해 김일성을 비난하거나 북한의 실정을 폭로하는 기사들이 소련언론에 계속 게재되기 시작했다. 특히 6.25의 남침설이 소련학자에 의해 입증되고 있으며 김일성일인 지배체제 확립의 핵심기둥이 되어온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신화를 파괴하는 내용마저 공개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서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발표된 직후 『이는 고르바초프가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김일성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는 외신의 보도처럼 소련의 대북개방압력은 매우 크며 북한이 이를 거부할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최근 북한내부에서도 조직화되고 정치세력화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김일성의 지도노선 또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으며 이는 북한의 변화를 예측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수 있다는 지적이다. 셋째,테크노크랫의 부상도 북한의 변화와 관련지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수 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실용주의노선을 추구하는 테크노크랫의 부상은 변화의 조짐을 예고하는 것으로 그 폭이 넓어질수록 변화의 속도는더욱 빨라질 것이다. 나는 북한의 변화가 멀지 않았다는 후자의 주장에 동조한다. 다만 북한은 「김일성 개인의 국가」이기때문에 김일성사후가 아닌 김일성이 살아있을때 그 자신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올해 78세인 김일성은 지난해만도 2차례 심근경색을 겪었을만큼 건강이 좋지않으며 곧 무력화될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정치적 카리스마를 지니지 못한 김정일의 세습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대남민족해방전략을 고집해온 김일성이 대남관계의 물꼬를 트지않은 상태에서 사망,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했을때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정책의 전환을 시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북한변화의 길도 김일성 스스로가 닦아 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고르바초프와 같은 권력자나 공산당이 주체적으로 개혁하는 소련식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서방세계로부터의 계속된 지원을 바탕으로 반체제세력이 집권을 하는 헝가리식의 변화도 겨우 불만이 노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일반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정권에 도전해 협상과정을 거쳐 집권에 이른 폴란드식도 근로자들의 정치적 조직화가 전혀 돼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네커체제의 붕괴후 들어선 크렌츠가 물러나고 또다른 세력이 집권,보다 온건한 개혁노선을 추구해온 동독식의 변화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된다. 루마니아식의 혁명적인 변화도 배제할수는 없으나 조직화된 반체제정부세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은 김일성 생존말기에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완만하고 단계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한소정상회담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미ㆍ일과의 관계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남북한전면개방과 인적교류」를 선언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를 일단 거부한다고 선언했으나 결국은 수용할 것으로 생각한다.또 앞으로 몇년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의 교류ㆍ교역ㆍ협력이 시작될 것이며 우리는 북한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대비책은 바로 우리 스스로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길이며 이를 바탕으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 한반도 통일방식 독일식은 어려워/강총리,파리서 밝혀

    【파리=김진천특파원】 강영훈국무총리는 17일 남북한 통일문제의 교섭담당자는 양쪽 국가가 돼야 한다고 전제,남북한 정부간의 대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통일논의의 구도가 먼저 짜여져야 하며 그에 따라 국민들이 참여하는 게 순서라고 말해 재외 국민단체와 한국의 일부 재야단체가 추진중인 「8ㆍ15 범민족통일대회」를 허가하지 않을 뜻임을 시사했다. 유럽순방차 파리에 들른 강총리는 이날 주불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이 판문점 북측 공동경비구역을 개방하겠다는 것도 「범민족통일대회」를 위해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총리는 이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은 기본적으로 민족통일전선 전략에 따른 한반도 적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의 변화는 『무력적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나 아직은 그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총리는 또 북한에도 반체제세력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우리는 그들이 북한체제를 흐트러뜨리기를 바라지 않으며 평화공존이라는 대전제아래 서독의 동독흡수방식의 통일방안이 아니라 질서속에서 함께 번영해 나가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식의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남ㆍ북 군축에「4강지렛대」활용하라/「한반도군축」의 바람직한 방향

    ◎우리 내부의 목소리도 일원화 해야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쟁의 비극을 겪은 우리에게 있어 남북한간의 전쟁재발방지 및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현돼야 할 남북한 모두의 과제이다. 특히 지난 40여년동안 지속된 남북한간의 군사적 대결상태와 군비경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커다란 경제적 부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호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심화시키게 되어 한반도 분단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소간의 화해,유럽군축의 성공적 추진,그리고 독일통일 등 유럽에서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동북아에도 파급되어 냉전시대의 마지막 대결장인 한반도에서 남북한관계의 개선과 군축협상의 개시 등 극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게 되었다. 지난주 남북한이 고위급 정치ㆍ군사회담을 열기로 합의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개최된 한반도 군축학술회의에 남북한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상호간에 의견교환과 활발한 토론을 가졌다는 사실은 한반도 군축협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지난 70년대 초반의 남북적십자회담 개최이래 한국은 이산가족의 재회,남북한 경제ㆍ사회ㆍ문화교류 등 비교적 합의점을 찾기 용이한 부분부터 남북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해 왔다. 반면에 북한측은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의 철폐 등 정치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남북대화는 서로간의 상이한 입장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정부의 성공적 북방정책 추진과 노대통령의 UN연설 등 통일외교 노력에 힘입어 한반도 문제는 주변국가들과의 협력속에서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한 해결책의 모색이라는 상황에 다다랐다. 특히 한소 정상회담 개최의 충격,중 소로부터의 개방 압력 및 국내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의 고립과 폐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남북대화를 외면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군축협상에 임하는 남북한의 입장은 물론 같지 않다. 우선 한국은 남북한간의 긴장완화와 상호신뢰구축이라는 차원에서 군축협상에 임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남북한 군사력의 감축 그 자체를 한반도 대결상태를 종식시키는 전제로 이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측은 군축협상을 통하여 남북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사회의 개방을 유도하려고 하는 반면,북한은 절대적인 고립을 탈피하고 대내외적인 압력을 무마시키면서 협상자체를 정치선전장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실제로 북한은 88년 11월7일 남북한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의 완화를 위한 「포괄적 평화방안」의 채택 및 남북고위급 정치ㆍ군사회담을 제의한 바 있으며 그 주요내용은 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철수,남북한 군사력의 단계적 감축,그리고 3자회담을 통한 미ㆍ북한간의 평화협정의 체결 및 남북한간의 불가침선언 등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도 남북한 신뢰구축과 긴장완화 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남북고위당국자회담과 이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하였으며 회담의 주요 의제로서 상호비방의 중지를 비롯한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그리고 다각적 교류ㆍ협력실시와 군사적 신뢰구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5월31일 북한이 제시한 군축방안도 남북무역감축과 외국무력의 철수 등 종전의 제안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은 최초로 신뢰조성을 위한 제조치들,즉 한국이 제안해온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와 고위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설치,그리고 군사연습상호통보 등에 합의할 의사가 있음을 표명함으로써 군축협상의 가능성을 보여 주게 되었다. 이번 스탠퍼드대학 주최 학술회의에서 한국측이 「선신뢰구축 후군축」방안을 제시했을때,북한측이 여전히 신뢰구축보다는 군비축소가 선행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북한측 공식입장을 고집한 것은 이 회의의 성격상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한국측이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으로 남북한간의 지속적 대화의 필요성을 지적하자 북한측도 이에 동의했으며,남북신뢰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이전보다 좀 더 유연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군축협상의 성공여부는 남북한간의 신뢰구축을 원칙으로 서로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합의점을 찾는데 달려있다고 하겠다. 이제 시작단계인한반도 군축협상이 과거의 남북대화에서 보여주었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주도적이며 적극적인 역할이 요청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군축협상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남북한 관계에 있어 북한의 협상전략과 우리의 통일외교를 조화시켜 나가야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기 보다는 먼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이를 위해서는 한국측이 신축적이고 효과적인 협상능력 및 대북한 포용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 군사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군사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어 군축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제적 협력과 보장이 수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한미간의 긴밀한 관계유지 및 북한의 국제적 고립해소를 위한 외교적 협력이외에도 동북아에서의 미소협력체제를 활용한 동북아지역 안보협력회의의 추진,그리고 유엔 등의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할 것이요청된다. 셋째 이러한 우리의 통일외교와 군축협상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협상주체인 한국정부의 입지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협상과정에서 예상되는 국내의 다양한 여론과 이견들이 민주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정부입장으로 귀착되었을 때 남북협상은 협상자체의 성공뿐만이 아니라 통일로 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박홍규 외교안보연 교수〉
  • 한반도 군축 이렇게/3국 대표의 시각

    3일간의 회의를 마치고 7일 폐막된 미 스탠퍼드대 주최 한반도군축 학술회의에 대해 3국의 대표들은 『첫 만남이라는데 의의가 있으며 서로의 입장을 타진하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데서 성과가 컸었다』(한국 정종욱 서울대 국제문제 연구소장),『결과적으로 이번 회의는 유익했다고 생각하며 남측도 또 미국도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회의를 계속해 서로 이해를 넓혀야 신뢰를 가지고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북한 이형철 평화군축 연구소 연구실장),『이번 회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앞으로 진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모두가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존 루이스 미 스탠퍼드대 국제전략군축 연구소장)고 말하고 있다. 회의가 끝난후 가진 3국 대표들의 뉴스 브리핑 내용을 간추려 본다. ◎정종욱 한국대표/“「정치관계 정상화」등 접근방법 달라/북한측 「미군 단계철수」등 종래 입장보다 유연” ­정치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진후 실제 군축을 실시할 경우 어떤 대상을 우선적으로 감축할 것인지 북한측이 구체적 얘기를 한것이 있는가. ▲구체적 얘기는 없었다. 우리는 공세적 무기의 우선 감축을 얘기했지만 북한은 여기에 대한 언급없이 전체로서의 기본적 틀을 강조했다. ­북한이 제시한 군축의 5가지 기본적 틀을 그 개념상으로만 보면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는것 같은데 다만 그속에 주한미군 철수와 핵무기 철거가 들어있고 여기엔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수락할수 없는 것인지. ▲그런 문제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다는 이 5가지 기본틀 안에 정치적관계 정상화를 우선시킨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정치관계의 정상화를 얘기하면 무조건 분단의 고착화를 들고나와 대화가 엇갈리곤 하는데 우리가 반드시 분단의 고착화를 의미하는 정치관계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가 주장한 내용과 북한의 5월31일 평화안을 비교하면 공통점도 상당히 있는데. ▲신뢰구축의 중요성이 조금 부각되고 군사력 감축에서도 남북한간에 합의가 된후 3단계에 걸쳐 3∼4년내에 무력을 감축키로 한점,검증얘기,미군철수가 남북한간 무력감축과 상응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 등이 다소 융통성을 보인 대목이며 이것이 어느정도 의견접근을 보일 수 있었던 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구체적 조치보다 군축에의 철학적 접근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북한의 기본적 방침은 역시 주한미군 철수와 핵무기 철거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회의이후 다시 이같은 회의가 열린다면 그 전망은. ▲이번 회의에서 토론된 내용이 앞으로 북한의 정책결정에 어느정도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회의를 통해 서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남북한간의 정치관계라 할수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을 들수 있는가. ▲북한은 점점 고립되고 있는데,지난 2년간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비쳐볼때 이같은 고립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서로 쓰는 용어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고 이의 조정을 위해서도 서로 만나 배울 필요가 있고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야 한다. 또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북한도 우리 입장을 좀더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입장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납득할 수 있도록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라 할수 있다. ­북한학자들의 태도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은 없는가. ▲공격적이 아니었고 대화를 하려는 자세를 엿볼수 있었다. ◎이형철 북한대표/“남한서 미 핵 철수해야 핵 개발 중단/「통일합의 없는 신뢰구축」 분단 고착화 의도” ­북한은 불가침선언은 남북한간에,평화협정 체결은 미국과 북한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면서 굳이 3자회담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기본입장은 3자회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측이 3자회담을 구실로 대화를 거부하므로 하루빨리 대화를 재개할 생각에서 남북이 먼저 회담을 갖자는 것이며 그러다보면 미국문제가 제기돼 결국은 3자회담이 될 것이다. 두 갈래의 쌍무회담제기는 대화교착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라 할수 있다. ­북한은 군축의 5가지 기본적 틀에 대해 먼저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주장하는데,그러면 이같은 합의가 어떤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가령 고위 당국자 회담인지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인지. ▲기본입장은 남북한과 미국의 3자가 만나서 얘기하면 군사 당국자간의 직통전화 개설ㆍ운영 같은 것은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무력감축이나 전면개방 같은 문제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군축이라하면 좁은 의미에서의 군비감축과 넓은 의미에서 군비통제와 군비감축을 모두 합친 포괄적 군축의 2가지 의미가 있다. 북한이 얘기하는 군축은 어떤 의미인가. ▲실질적인 군비감축,영어로는 disarmament라 할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 느낀 것은 남측은 정치적 신뢰구축을 강조하고 있는데 남북한의 불신은 분열에서 생기는 것이다. 남북한이 통일로 나간다는 원칙에 합의하지 않고서 어떻게 군사적으로 서로 대결하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통일에 합의하지 않고 신뢰 구축조치만을 논의하자는 것은 결국 분단을 고착화 시키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지난 6월15일 한국의 재야 각계 인사들은한반도군축과 평화통일 선언에서 북한에 대해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핵안전 협정에 조인하라고 요구했는데. ▲가령 남조선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철수시키라는 요구가 받아들여 진다면 우리도 그런 요구를 못받아 들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제 조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핵안전 협정도 체결되지 않는가. ▲현재로선 그것이 조건이다. ◎존 루이스 미 대표/“다음회의 개최 합의… 성급한 기대 금물/한국ㆍ유럽 현실달라 유럽식 모델 적용 의문” ­이번 회의에서 남북한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했는데,접근한 내용이 있었는가. ▲학자적인 입장에서 같은 이슈를 놓고 이야기 한것은 사실이지만 의견이 서로 달랐으며 합의 된 것도 없었다. 학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뿐이며 합의에 이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번 회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으며 모두가 앞으로 진전을 이룰 기회를 가질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같은 회의를 다시 개최하기로 합의를 했다는데. ▲다음에 다시 회의를 하기로 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다시 기회를 열기로 한것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 ­한국 대표단은 한반도에서도 유럽식 군축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로서는 유럽식 모델이 뭔지도 자세히 모르겠고 유럽에서는 그쪽 나름대로의 현지사정이 있고 한국은 유럽과는 다르기 때문에 유럽모델이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되려는지는 모르겠다. 예컨대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로간에 전쟁을 치른 경험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분명히 남북한간에 전쟁을 겪었었다. ­북한은 남북한과 미국간의 3자회담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번 회의는 비록 학술회의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3자회담의 성격을 띤 것이라고 할수는 없는가. ▲이번 회의는 각국의 학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며 이들이 대표의 자격을 띤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번 회의를 놓고 3자회담 운운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남북한간에 2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3자회담문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말할것도 없다. ­이번 회의의 과정과 결과를 보고 군비통제에 있어 남북한이 장단기적으로 보아 협력과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는가. ▲어떤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40년이 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군비통제와 안보등의 어려운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해결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 “아편전쟁ㆍ천안문 사건은 구국 운동”(특파원수첩)

    ◎중국정부,“동질성”홍보 안간힘/“두 사건 모두 「서방침투」막는데 크게 기여”/「무력진압」이후 정치위기 벗으려 몸부림 1백50년전의 아편전쟁과 지난해 6ㆍ4천안문사건. 중국당국은 겉보기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듯한 이 두가지 사실에 구국차원의 공통점을 부여,현실적인 정치위기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즉 아편전쟁이나 6ㆍ4사건 모두가 중국을 수탈하고 반식민지화하려는 서방세계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감과 애국심에서 비롯됐다는 식으로 이색적인 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6ㆍ4사건의 경우 개방ㆍ개혁에 편승해서 유입된 자산계급 자유화등 사회주의 중국을 좀먹는 부르주아사상이 정신적 아편으로 작용,대학생을 비롯한 일부 젊은이들을 현혹시켰기 때문에 당국으로선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국가와 전체 민족을 구하기 위해 무력진압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중국당국은 아편전쟁발발 1백50주년(6월)을 맞아 요즘 북경 등 주요도시에서 이와 관련된 자료전시와 함께 영화 연극등을 공연하는 등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강연회 등을 통해 아편전쟁과 6ㆍ4사건의 동질성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월4일 6ㆍ4사건 1주년을 전후해서도 대학생등 청소년들을 이러한 행사에 의무적으로 참석케 해 애국심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사건의 부정적인 영향을 희석시키려 했다. 중국당국은 앞으로 연말까지 아편전쟁의 애국적 성격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계속 벌이고 6ㆍ4사건도 같은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정치사상교육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편전쟁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 팽창적 제국주의에의 야심에 가득찼던 영국이 19세기 들어 중국대륙에 아편을 대량으로 팔아 넘기던 과정에서 발생한 것. 영국은 대륙에서 수입하는 중국차와 비단의 결제대금으로 당시 국제통화역할을 했던 은을 주는게 아까워 그들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하던 아편을 대신 주기 시작했고 중국측은 몇차례 수입금지령을 내렸지만 영국상인들의 밀무역으로 아편수입량이 급증했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아편값을 치르느라 거꾸로 중국의 은이 해외로 대량유출,대륙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당시 중국의 본위화폐이던 은보유량의 격감과 가격급등은 은으로 세금을 납부하던 상인과 농민들의 담세능력을 극도로 저하시켰고 결국 중국대륙은 아편중독의 만연과 함께 정부재정이 파탄에 이르게 된 것. 그당시 청국의 전권대신 임측서가 1839년 6월3일 영국은 물론 미국 포르투갈상인들로부터 압수한 2천t의 아편을 광주에서 불태워 버리자 영국은 이를 기화로 다음해 6월 군대를 파견,2년간에 걸친 아편전쟁이 벌어졌고 청국의 참패로 맺게 된 남경조약에 따라 홍콩이 영국에 할양됐다. 또 중국측은 이 전쟁으로 허약한 실체가 드러나 서구 열강에게 이리저리 뜯기는 식민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현재의 북경정권은 그당시 중국이 싸움에는 졌지만 아편전쟁은 빈사상태에 빠져가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애국심이 반영된 것이며 아편으로 중국을 병들게 한 제국주의에 분연히 대항했던 임측서야말로 사상 보기 드문 구국의 민족영웅이라고 치켜 세우고 있다. 또 과거에는 너무 오래 쇄국정책을 썼기 때문에 국가가 쇠퇴해지고 서구열강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당하는 치욕을 겪었지만 현정권은 10년전에 스스로 개방ㆍ개혁을 단행,국가발전을 이루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강력한 힘을 과시하게 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만 개방의 틈을 타서 서방국가들이 정신적 아편인 자본주의의 독소들을 계속 대륙에 침투시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하려 하기 때문에 아편전쟁 당시의 애국심을 되살려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중국당국의 논리가 그들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발휘할지는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나 관측통들은 중국당국이 지난해 천안문광장의 민주개혁요구시위를 무력진압한데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이 엄청나게 큰데다 진정한 애국심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므로 별다른 실효를 거둘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학생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층은 민주개혁과 인권보장노력이 참된 애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므로 아편전쟁과 6ㆍ4사건을 같은 역사적 유형으로 묶는 견해에 큰 저항을 느낄 것이란 지적을 하고 있다.
  • 통독과 「남북한」/송복 연세대교수(세평)

    통독을 보는 우리들의 심경은 어둡고 착잡하다. 독일은 어찌해서 통일하게 됐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여 유일의 분단국가로 여전히 남아있게 됐는가. 이 지구상에서 통일국가로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명실공히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서 통일된 모습으로 단절없이 가장 오래 지속돼 온 나라는 중국도 인도도 아니고 서구의 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들이 통일된 국가양태를 보이고 있는데 유독 우리만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아직도 죽이네 살리네 하고 싸우고 있는가. ○쉽게 합칠 수 있었던 이유 독일이 통일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불과 1백20년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50개 공국으로 혹은 80개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의 승리로 1871년 처음으로 근대국가로 통일이 됐고 이 통일은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근근 70수년을 유지해오다 종전이후 또 분단됐다. 이처럼 통일보다는 분단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있던 독일이 분단보다는 통일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온우리보다 쉽게 합쳐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3개의 깊이 생각해볼 교훈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았다. 적대적으로 서로 대치하고는 있었다해도 무력으로 동족을 죽이는 살상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남이 억지로 씌워놓은 이념때문에 형제를 죽이지 않았고 이웃을 살육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불공대천지원수가 될 이유가 없었고 감정의 앙금이 끝까지 용해되지 않고 남아서 서로를 비뚤어지게 볼 이유가 없었다. 언제든 만나면 같은 민족으로 미소지을 수 있었고,환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2+4」라는 신조어가 말하듯이 4대 강대국에 의해 나누어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같은 민족임을 서로의 내부에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외부적 요인에다 내부적 요인을 종속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패전으로 나누어져도,그리고 나치즘이라는 역사적 유죄를 같이 짊어지고 있었어도 역사는 역사,현재는 현재로 분리해 보았다. 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이 언제나 열려져 있었다는 것,외부에 내부를 독립시키고 있었다는것,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것이 수백년간의 분열과 짧은 통일기간과 그리고 그후의 계속된 분단의 역사를 다시 통일케하는 첫째의 요인이며 교훈이 된다. 둘째로 그들은 비록 통일의 역사는 짧았다 해도 그리고 그 통일과 맞먹을 만큼 통일후의 분단의 역사가 거의 반세기에 이르도록 길었다해도,그들간에는 서로 합칠 수 있는 근대화된 체제의 공유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치스 이전의 바이마르공화국 체제이고,그리고 현재 그들이 돌아가는 체제역시 이 역사적 공유경험의 체제에서 일보도 달라짐이 없는 자유·개방·경쟁의 민주국의 체제이다. 그들은 비록 세대를 뛰어넘는 시간적 갭을 가지고 있다해도 이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로 남아 있고,그리고 여전히 사회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일체제 경험여부 중요 통일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체제로 양쪽이 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같은 체제를 경험해 보았느냐,보지 않았느냐가 통일의 조건이며 기준이 된다. 만일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제로 그 어느 한편이든지 돌아가게 된다면,그들 사이에는 동질성이 전혀 있을 수 없고 그들사이에 이제부터 전개되는 관계는 오직 서로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질성의 관계만이 남는다. 이 경우,이루어지는 것은 「통일」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통합」이 된다. 그런데 독일은 쉽사리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경험공유체제를 가지고 있었고,따라서 정신적으로,심리적으로 민족공동체를 재창출해 낼 수 있는 기틀을 사실상 확보하고 있었다. 셋째로 공산주의 경제의 비효율성 내지 비생산성이다. 출발할 때부터 동독은 공산권사회에선 가장 산업화된 나라이고 그리고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공업국의 하나가 돼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를 지나 80년대를 거치면서 정반대로 이 나라는 서구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낙후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특히 일상 생활용품에서도 전화 한대를 갖기 위해서도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공산주의 경제정책의 비역동성­정체성이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발전할 수 있는 것­그 어느 의미에서나 유일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그것은 군사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군사산업이 계획을 세우는 데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가지수가 적고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군비이외의 생산품목은 그 어느 것 하나 계획부터가 너무 수가 많고 너무 유기적으로 복합화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소련사회 하나만 보아도 이 한나라에서 해마다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생산품목은 2천4백만종이나 된다. 이 2천4백만종의 생산품목을 유기적으로 생산해 내는 데 세워야 하는 계획은 1백50억개가 넘는 것으로 산정되어 있다. 누가 어느 기관에서 이것을 완벽하게 계획해낼 수 있겠는가. 자유시장 경제에서라면 스스로 조정해서 생산될 것은 생산되고 문을 닫을 것은 문을 닫는다. 그러나 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에선 이것은 아무리 계획하고 생산해 나가도 인위적으로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그래서 소련에선 1천6백만명이상의 노동력이 필요없는 자리,서로 중첩되어 있는 자리에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비생산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전노동력의 15%인 1천8백만명이 경영관리직에 앉아서 방대한 운영기구를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조직,그 국가사회야말로 얼마나 역피라미드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가. 공산주의 경제가 어느 나라나 하나도 예외없이 1970년대의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정체해 버리는 것은 이 인위적 계획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그것을 뚫고 극복하는 방법은 동독처럼 체제전환을 해서 통일의 길로 가든지,지난 2일 28차 공산당대회에서 한 고르바초프의 연설­「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이념은 19세기의 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는 엄청나게 변화했음에도 우리는 고전적 이데올로기에서 답을 구하고 있다」­에서처럼 페레스트로이카로 가든지,둘중 하나이다. ○“언제까지 분단국가로…”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돼 있는가. 40년전의 6·25는 「40년동안 여전히 살아 있는 전쟁」­계속 불구대천지 원수로 가는 전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을공유한 근대화된 체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남북」이 공유한 것은 전통사회 체제이든 아니면 일제식민지 체제 뿐이다. 긴 통일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우리는 어떻게 합치든 「통일」 아닌 「통합」의 이질적 관계만이 전망되고 있다. 그리고 북쪽은 밖이야 어떻게 변하든 아랑곳 없다는 듯 페레스트로이카도 글라스노스트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을 것인가.
  • 알바니아 반체제인사 2백명/서방대사관으로 탈출

    ◎개혁거부 당국선 총격 가하며 저지 【본 AP 연합 특약】 알바니아 반체제인사 2백여명이 수도 티라나소재 서방대사관에 피신했다고 외교관들이 3일 밝혔다. 서독외무성 대변인 한스 슈마허는 티라나소재 서독대사관에 83명의 알바니아인이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티라나주재 한 서방외교관은 약 2백여명이 적어도 11개 서방대사관에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슈마허대변인은 피신흐름이 지난 주 시작됐으며 지난 달 29일 25명이 폴란드대사관에 대피하면서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동구의 개혁을 거부해 온 알바니아 정부는 서방대사관으로 피신하는 알바니아인에게 총격을 가하는등 이들의 피신을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 이 외교관은 『알바니아인의 석방을 위해 알바니아당국과 협상중이나현재는 교착상태』라고 전했다. 피난민들은 대사관의 벽을 넘거나 트럭등으로 벽을 돌파해 대사관 구내로 들어왔다. 슈마허는 피난민들의 동기는 아직 분명치 않으나 『알바니아의 현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또 『아무도 의사에 반해 대사관 밖으로 추방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독의 빌트지는 서독대사관이 알바니아 민병대에 의해 포위됐다고 전했다. 알바니아인들이 서방대사관으로 대거 피신한 것은 지난해 동독인들이 서방대사관으로 피신,국경개방으로 진전된 동독혁명의 시작과 흡사하다. 이와함께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며칠 동안 약 20명의 알바니아 반체제인사들이 티리아에 있는 이탈리아대사관으로 들어와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 「불가침협정」 신뢰 장치가 관건/정부의 협정안 준비 배경과 내용

    ◎미·일·소·중의 연대보장안 강구/남북 고위급 회담서 실질토의 모색 한소 정상회담이후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우리측의 노력이 다각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남북 불가침협정 체결추진 움직임이 그 어느때보다 가시화되고 있다. 남북 불가침협정문제는 군축문제와 함께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대화테이블에서 본격 거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통일원장관은 2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정부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남북 관계개선에 대비,남북 불가침협정안을 마련중이라며 불가침협정안에는 ▲현 경계선의 존중과 상대방의 정치·사회질서 인정(상호불간섭) ▲무력불사용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 ▲불가침의 국제적 보장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불가침협정은 휴전협정에 대체할 대안으로 지난 74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①상호불가침 ②내정불간섭 ③휴전협정의 효력유지 등 3개항을 내놓고 그 체결을 제의한 것이 시발이었다. 그 뒤 정부는 16년동안 이같은 원칙적인 정신에 따라 일관성있게 남북 관계개선 방안을 제의했으며 각종 국제기구에서 그 원칙을 천명해 왔으나 남북한간의 입장차이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지난 82년 1월22일에 제시한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에도 남북 불가침협정이 포함돼 있으며 노태우대통령의 88년 10월18일 유엔총회연설,89년 9월11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도 그 내용이 들어 있다. 불가침협정 체결제의는 당초 북한측에서 먼저 거론한 것이었다. 북한은 63년 10월23일 최고인민회의 3기 1차회의에서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 결의를 했다. 당시 북한의 평화협정의 개념은 남북 상호 불공격을 약정한다는 것이었으며,남북한이 협정의 당사자가 된다는 입장은 73년 4월5일 최고인민회의 5기 2차회의의 「대남 평화협정체결」 결의때까지 계속되다가 74년 당시 박대통령의 남북 상호불가침 협정제의를 계기로 한국을 배제시키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자세로 전환했다. 지금까지의 남북 불가침협정문제는 어느 의미에서는 남북한이 각각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선전차원의 일방적 제의나 선언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측이 마련중인 복안은 「발표」나 「선언」의 형식적인 제의가 아니라 남북 고위급회담의 의제에 올려 실질토의로 연결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져 우리 측의 대화 적극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하겠다. 우리측이 이번에 마련중인 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불가침협정의 신뢰성과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때와는 달리 미·소·중·일 등 한반도 주변 4강대국의 상호불가침 국제적 보장 방안이 추가된 것이다. 국제적 보장 방안으로는 ▲미·소·중·일의 남북한교차 승인 ▲남북유엔동시가입 ▲소련의 아세아집단 안보회의 개최및 우리의 동북아 6개국 평화협의회 창설 실현 등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고 통일원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주변정세 변화를 남북 관계개선의 획기적 전기로 삼으려는 우리측의 이같은 적극적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렇지만 최근의 국제정세변화가 북한측에 개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북한측이 어느 정도 내부정비가 끝나면 현실적 필요성으로 인해 과거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대화에 적극 응할 여지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통일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측이 최근 제의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이 종래와는 달리 다소 신축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새 군축안 4개항에는 남북 신뢰조성 방안이 첫 항목에 올라 있어 군축과 신뢰구축의 우선순위를 놓고 군축선행을 고집해 온 북한이 스스로 도식을 뒤집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남북 불가침협정 체결을 위한 남북쌍방의 노력이 한층 강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건영기자〉
  • 정부,「남북 불가침협정」 추진/국회 질의에 답변

    ◎「고위급 회담」 의제에 포함/상대체제 인정ㆍ무력 불사용/미ㆍ소ㆍ중ㆍ일 보장방안 검토 국회는 26일 강영훈국무총리와 관계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본회의를 속개,외교ㆍ안보ㆍ통일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벌였다. 홍성철통일원장관은 이날 국회답변에서 『국제정세변화에 따른 남북 관계개선에 대배,정부는 남북한이 현 경계선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정치질서를 인정,상호불간섭등의 내용을 골자로 불가침협정안을 마련중에 있다』고 밝혔다. 홍장관은 불가침협정안에는 ▲현 경계선의 종중과 상대방 정치ㆍ사회질서 안정(상호불간섭) ▲무력불사용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 ▲룰가침의 국제적보장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원 고위관계자는 불가침협정제의 시기및 방법등과 관련,『상호불가침에 대한 합의는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간의 대화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전제,『따라서 현재 남북한이 준비 진행시키고 있는 남북고위급회담의 의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남북불가침의 국제적 보장 방안으로는 미ㆍ소ㆍ중ㆍ일 등 주변 4대국이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장관은 『북한의 군축제의는 종래의 대남전략에서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하고 『북한의 제의중 생산적인 것은 적극 수용할 방침이며 고위급회담에서 군축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홍장관은 『남북이 주체가 되어 한반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TVㆍ라디오 개방은 북의 대남 기본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상호개방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영훈국무총리는 남북 군비통제문제와 관련,『남북한 총리등 고위급회담이 열리게 되면 군비축소문제와 연관시켜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군비통제문제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검토ㆍ분석키 위해 현재 국방부 외무부 통일원 안기부 관계자들로 구성돼 잠정 운영되고 있는 안보 정책실무대책반 대신 상설기구로 군비통제종합조정기구의 설치를 검코중』이라고 밝혔다. 강총리는 이어 『미8군 용산기지의 이전에 따른 비용은 미측이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우리측이 부담하기로 했으며 모두 1조원정도로 예상되는 비용은 군용시설교외이전 특별기금으로 충당해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최호중외무장관은 『한소수교가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나 결코 조급하거나 졸속으로 처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한소수교의 조건으로 우리측이 소련에 대해 수십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키로 했다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상훈국방장관은 『합동군제도의 개편은 군 본연의 위상을 정립,국방에 전념하려는 것이며 쿠데타나 이원집정부제등의 일부 의혹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 다시는 전쟁을 말하지 말자/6ㆍ25 40주년에(사설)

    한반도를 둘러싸고 새로운 국제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6ㆍ25동족전쟁 발발 40주년을 맞는다. 40년전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40년후 오늘은 월요일이다. 같은 민족끼리 벌였던 열전의 포성은 멎어있지만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40년전 그들은 남쪽에 대고 포탄을 퍼부으면서도 그들의 대남스피커는 평화와 민족과 해방만을 선전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동서 양대진영간의 해빙과 군축추세에도 불구하고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북한간의 불신과 긴장은 이렇듯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 ○왜 전쟁은 일어났는가 진실은 하나다. 결코 둘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사 최대의 비극인 6ㆍ25를 놓고 전통적인 남침설에 대항하는 북침설에 남침유도설까지 나돌면서 진실이 가려지려할 때가 있었다. 따라서 6ㆍ25동족전쟁에 관한 한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는가,그리고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우리는 그것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역사는 바로 봐야 한다. 6ㆍ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문제는 이제 논쟁거리조차 될 수 없는 역사의 사실로 확정되었다. 6ㆍ25남침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와 사실들은 결과적으로 그 남침을 부추겼고 무력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소련 내부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6ㆍ25」를 전후하여 갖가지 조직적 사업을 통해 주민들에 대한 대한ㆍ대미 선전선동과 적개심 고취가 한창이라고 들린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있어 6ㆍ25는 지금껏 북침 전쟁이다. 그 한국이 지금 자기들의 가장 큰 지원자였던 소련과 관계를 개선하고 정식 수교마저 눈앞에 두고 있다. 소련으로부터는 남침 전쟁도발이래 유일독재체제를 유지해온 김일성의 정체가 폭로되고 있고 남침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가 전쟁을 통해 확보하고 유지했던 유일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아마 김일성은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6ㆍ25전쟁의 비극이 누구에 의해서 비롯됐는가는 전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 원흉은 김일성이며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그 공범자들이다. 부질없는 논쟁은 그만두고 동족전쟁의 책임자는 이제 역사와 민족앞에 사죄해야 한다. ○전쟁의 결과는 무엇인가 생각하면 부모형제가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40년전 6ㆍ25의 상흔은 아직도 우리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3년1개월동안 치러진 그 전쟁은 이 민족 모두를 희생자로 만들었다. 전쟁이래 40여년간 지속돼온 동족간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은 서로의 장벽을 보다 높이 쌓아올렸고 의식의 골마저 깊게 패어져 역사상 경험한 바 없던 동족간의 심각한 이질화 현상마저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전쟁은 참혹했다. 조상이 물려준 한 땅덩어리에서 사생결단으로 총부리를 겨눈끝에 국군과 유엔군의 병력손실만 사망ㆍ실종ㆍ부상 등을 합쳐 1백15만에 달했다. 민간인 피해는 1백만명,전재민 4백만명,전쟁미망인 30만명,전쟁고아 6만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남겼다. 재산피해는 또 어떠했는가.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의 실체들은 전체국민의 30%남짓한 전쟁체험세대들에겐 아직도 여러 모습으로 남아 있다. 휴전선과 판문점,국립묘지의 묘비들이 그것이고 40년만에 이 땅을 다시 찾아 전쟁의참혹성을 증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전쟁의 실체인 것이다. 직접적인 전쟁의 상흔이나 실체 이외에 6ㆍ25가 우리에게 남긴 더 큰 상처는 분단의 굴레를 우리민족 가슴속에 깊이 내면화시켰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전쟁에 대한 위기적 인식을 생활화시켰다는 점이다. 국민의 76%가 북한의 재침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6ㆍ25에 대한 인식도와 관련하여 국민의 45%가 또다른 6ㆍ25의 재발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6ㆍ25전쟁 40년이 지난 뒤에도 그 전쟁의 도발자는 살아있다. 그러나 그 북한의 김일성은 아직껏 단 한번도 전쟁도발의 과오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동족전쟁 그 자체가 그의 한반도 무력적화통일 전략에서 비롯된 민족자해행위였음이 명백한데도 그는 아직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남한은 아직 해방되지 않은 남반부이며 분단상태의 해결수단은 무력이외에 다른것이 아닌 것이다. 즉 정확히 말해 김일성은 아직도 전쟁적 방법으로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국가들의 자유개방물결은 기존의 국제질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미소의 화해는 동서양진영의 긴장과 군사적 대립의 상징이었던 나토및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근본적인 변질을 가져왔다. 강대국의 팽창주의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40년전 6ㆍ25 그날에 그들은 조국의 통일,민족의 해방을 외치면서 소련제 탱크,전투기와 막강한 기계화부대를 앞세워 38선을 돌파했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그들은 엄청난 병력과 화력의 70%이상을 휴전선 일대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그들의 관심이 온통 한반도에 쏠려있는 오늘 북한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평화를,그리고 통일을 얘기해야 한다. 40년전 전쟁의 아픔을 잊는 길은 그것뿐이다.
  • “한반도에 전쟁 위험”/주중 북한공사 긴장조성 책임 한미에 전가

    ◎6·25 북침설 또 주장 【내외】 최근 소련의 모스크바방송이 6·25가 북한에 의한 남침이었음을 거듭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21일 또다시 6·25가 한미측의 「북침전쟁」이었다는 종래 주장을 되풀이했다. 22일 북한의 중앙방송에 의하면 북경주재 북한공사 배영제는 이날 6·25 40주를 맞아 중국 내신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이 남한에 들어온 첫날부터 『공화국 북반부를 침략하기 위한 전쟁도발 준비를 체계적으로 추진,50년 6월25일 드디어 대규모 무력침공을 감행했다』고 왜곡,주장했다. 배영제는 이어 『지금 조선반도에서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한반도긴장조성의 책임을 한미측에 전가하고 김일성이 지난달 24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밝힌 이른바 「조국통일 5개방침」과 지난달 31일 그들이 제의한 4개 군축제안에 호응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북한은 지난 12일에도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 6·25가 미국이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한국군을 내세워 일으킨 「북침전쟁」이었다고 종래 주장을 되풀이한 바 있다.
  • 한­중­소 관계를 보는 북경의 시각

    ◎“한­중국 관계정상화가 한­소 수교의 종속변수”/평양 자극 안하는 방법 선택에 고심/경협 앞세워 신중한 대한 접근 모색/“동북아 평화정착땐 중국에도 이익”판단 북경에서 발행되는 인민일보ㆍ북경일보 등 중국관영 언론매체들은 한국(남조선)과 관련한 기사를 다루는데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물론 평양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에 관한 소식도 예고기사로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회담이 있은 후에야 외신을 인용,비교적 간단히 보도했다. 다만 공산당원에게만 내부자료로 배포되는 「참고소식」을 통해 한소회담이 언제쯤 있을 것이라고 사전 귀띔을 해주었을 뿐이다. 한중 관계개선 움직임에 관한 사실도 아무리 큰 내용이라 할지라도 거의 침묵을 지킨다. 따라서 한국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좀처럼 없다. 만약 외국기자들이 중국당국에 한중관계에 관해 물을 경우엔 『한국과는 정식외교를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이 우리가 밝힐 수 있는 기본 입장』이라고 틀에박힌 답변을 할 뿐이다. 그러나 북경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본 언론계등의 지식층 인사들은 한국과 소련,중국의 관계변화에 매우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소중의 대한관계 공통점은 모두가 평양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크렘린과 북경에는 내면적으로 커다란 시각의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고르바초프는 한국 노태우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평양에 개방의 자극과 변화를 주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크렘린측은 동북아를 포함,아태지역의 데탕트 정착을 위해선 평양쪽의 심기가 불편해지더라도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중국은 지난해 천안문시위를 무력진압한데 대해 북한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는 달리 적극 지지를 해준데다 역사적으로 혈맹관계에 있는 점등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평양정권을 자극하는 일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김일성의 북경행과 올봄 중국 강택민당총서기의 평양방문 등은 동구 및 소련의 민주개혁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북한이 사회주의 노선을더욱 굳게 지키며 상호유대를 강화키로 다짐했던 행사라는 데는 아무런 이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특히 경제적인 필요성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지 않을 수 없다는게 북경지식층과 서방외교소식통들의 일치된 견해인 것 같다. 천안문사건 이후 미국등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조치가 계속되고 있는데다 동구의 개방이 가속화 됨에 따라 서방측의 자본과 기술이 그쪽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중국은 개발경험이 풍부한 한국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11일 여배검(심계서장)을 서울로 보내 북경 아시안게임 개최 이전에 상호무역사무소를 설치키로 공식제의한 사실은 이러한 중국측의 상황인식에 크게 힘 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한국측의 북방외교도 큰 성과를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중국은 나름대로 대외지향의 경제개발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상호협력 할 수 있는 동반자가 요청되는 것이다. 한편 중국 국가주석 양상곤은 11일 일본 사사카와 평화재단 명예회장인 사사카와 료이치(세천량일)와 만난 자리에서 『남조선 노태우대통령의 외교활동으로 북한의 고립화가 심화됐다』며 중국지도층 인사로선 처음으로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 공식적인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중국이 한국과 실리적인 협력관계를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회유하기 위한 제스처를 쓰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당국의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북경주재 한국상사 직원들에 따르면 중국당국자들은 『상호 이익을 위해 실속있게 교류를 확대해 나가면 되는게 아니냐? 온 동네가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무엇인가?』라고 거듭 강조한다는 것이다. 한중 수교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다소 막연한 단서가 붙는다. 어떤 특정의 타임 테이블에 따르기 보다는 어느날 갑자기 이뤄질 가능성이 많다. 또 한중 관계정상화가 한소 수교의 종속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고르바초프와 등소평은 이미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동북아 평화수호를 다짐했고 이런 관점에서 한소간 수교가 이뤄질 때 한중 외교관계 수립과 함께 북한의 개방과 한반도 긴장 상태의 완전해소도 어렵잖게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 한반도에 감도는 「독일증후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세평)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처방은 독일식 접근방법인데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 이는 우리에게 신선한 희망을 갖게한다. 독일식 방법이라 하는 것은 분단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사용을 배제하고 상호간 위협대상이 아니라는 신뢰를 구축한 속에서 접근을 통하여 실직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서로 방문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며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개최하고 유엔에서 옆자리에 앉아 국제문제에 의견을 일치시키는 가운데 국경선을 개방한 후 민족자결에 의하여 통일에 이르는 합리적 방법이 독일식이다. ○독일식 접근 바람직 지금까지 동서독에서와는 달리 남북한 관계개선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후기 스탈린주의적 경직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으로 하여금 고집을 꺾고 타협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적 추세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지난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회담을 통하여 마련되었다. 소련이 회담에서 경제문제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려 했어도 국교수립이 안된 한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나선 것은 이미 양국간 관계에 급변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한소 정상이 불과 1시간 동안 만났지만 양국간의 수교,서울과 모스크바 상호방문,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노력,남북대화를 통한 교류 증진,그리고 경제협력 등 당장 필요한 모든 사항에 합의함으로써 근본적인 교류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남북한간 대립을 조성한 배후의 근원인 소련이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냉전시의 산물을 정리하고 신사고를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이 체제유지에 장애물이라는 관점에서 외면해 왔으며 현상 유지에 도움이 안되는 외풍을 원천봉쇄하려 함으로써 소련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북한으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하는 충격요법을 활용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련은 대세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과거의 브레즈네프 독트린과는다른 방법으로 벌을 받는다는예를 동유럽에서 보여온 바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를 망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분수에 넘치는 저항을 하다가 차우셰스쿠가 쓰러졌다. 동독에서도 「자주성」을 내세우는 오만을 보인 호네커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소,북한에 충격요법 고르바초프는 한걸음 더 나가 분단국을 통일시키는 산파역할까지 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통독을 가로막는 빚장을 잠갔던 소련이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일에 청신호를 보임으로써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에대한 반대급부로 「한지붕 밑의 유럽」 계획을 성사시키는 결심을 얻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질서를 재정립하는 데 마지막 저해요소는 북한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탈바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는 이미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과 동맹국들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조정되었음을 분명히 하였고 다음해 12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각국이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할 수 있음을 허용한 바 있다. 이는 소련이 자국의 행동 반경과 정책방향의 선택폭을 스스로 확대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지나치게 소련에 기대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소련과 동맹국들간의 관계는 50년대 중반기 상황을 방불케 한다. 당시 탈스탈린 정책이 소련에서 시작되어 다른 공산국에 전파되었고 얼마 가지않아 위성국들이 오히려 소련을 앞질러 스탈린 망령에서 벗어났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공산체제 개혁과 해체가 바로 그 진원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변국들이 질적인 면에서 소련을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오직 북한만은 45년전과 흡사하게 소련의 권유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련이 탈스탈린운동 때와는 달리 「신사고」 실현을 중단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북한도 계속해서 소련의 희망을 묵살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소련은 북한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페레스트로이카 파급을 방해할 경우 전격적으로 한소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것과 같이 가까운 시기안에 한국과의 일방적인 국교수립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소련은 동유럽 동맹국가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독의 반발을 외면하고 1955년 10월 서독과 수교한 예가 있다. 이는 동독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1974년 9월보다 19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서독의 경제적 잠재력이 협력대상으로서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소련이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한국의 자본과 기술,그리고 생활필수품 제공을 기대하는 것과도 비유된다. ○집안단속 강화할 듯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집안단속을 위한 경직성을 강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이 최신군비를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고 있으며 무역 60%,외채 80%를 소련이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때 계속해서 소련의 비위를 거스를 입장이 못된다. 소련의 군사원조가 중단되면 잠재적 저항세력인 군부를 자극하게 되고 이는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소련이 원하는 대로 동독이 택했던 것과 같은 협력정책을 답습하는 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문제의 독일화를 위하여 서독이 추진했던 예를 참고삼아 「북방정책」으로 주변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한반도 정책」으로 북한을 회유하는 신축성 있는 정책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 남북한 「군축테이블」 마련될까/북의 「선전공세」와 정부대응 안팎

    ◎신 데탕트 무드에 실질협상 가능성/북측 안 미군 철수시한 명시안해 “진일보”/상호감시 기능 확보등 신뢰구축이 과제 한반도의 평화구조정착을 위해 당사자인 남북한당국간의 군축협상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을 통해 노태우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에게 북한의 개방 및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소측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함과 동시에 『군사적으로 북한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추구하지 않고 무력으로 북한을 공격할 뜻이 전혀 없다』고 천명함으로써 앞으로 예상되는 남북한 군축문제에 적극 대응하려는 우리측의 입장을 나타냈다. 북한측도 한소 정상회담개최 사실이 발표된 지 하룻만인 지난 5월 31일 중앙인민위원회·최고인민회의·정무원연합회의 명의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안」을 제시,그 의도야 어떻든 남북한 상호군축문제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했다. 따라서 남북한당국간의 군축협상은 그 자체의 성격상 조기에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는 힘들지만 미·소·중·일 등 한반도 주변4대강국의 관계변화를 비롯한 한반도외적인 화해와 협력의 신 데탕트바람이 불어닥칠 경우 군축의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부는 이같이 새로운 상황에 적극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국무총리실 산하의 외무부·국방부·통일원 고위당국자들로 구성된 안보실무대책단을 중심으로 북한측이 제의한 「한반도군축안」의 수용여부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보실무대책단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이번 제의는 종전 주장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군사적 신뢰구축문제를 포함한 일부 내용이 우리측의 지금까지 주장과 비슷한 점이 있어 협상할 가치가 있다』고 밝혀 진전된 북측제의를 평가하면서 조만간 남북군축협상에 응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군축에 관한 우리측 의견을 무시하거나 건성으로 들었지만 이번에는 외교부산하 평화군축연구소와 미스탠퍼드대 국제전략문제연구소간의 공동연구등으로 현실수용자세를 보인 것 같다고 이 관계자는 지적한다.나아가 상당한 경제적 위기에 빠져있는 북한이 더이상의 군비확대를 추구할 경우 『경제파탄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감지한 결과로도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이같은 기류에 따라 지금까지 스톡홀름협정에 의한 유럽형군축모델을 밑바탕으로 우리 실정을 가미한 군축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왔다. 정부는 한반도군축 또는 군비통제를 위해 ▲남북불가침선언및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제반조치의 실현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와 휴전선일대에 배치된 공격용무기의 후방 분산배치등이 상호간의 검증을 거쳐 완결됐을 때 병력을 감축하는 것 등의 단계적 군축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특히 실질적인 군축협상을 위해 남북상호간 문서로 합의된 군축안대로 실행하느냐의 여부를 감시한다는 차원에서 상호 감시기능의 확보와 선신뢰구축이 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고 이를 위한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아울러 북한측이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주한미군의 철수와관련,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군축회담을 연계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이번 제안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쌍방고위군사당국자간의 직통전화 설치·운영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우선 남북간의 불가침선언채택등 우리측 군축안과 매우 비슷한 부분이 있고 또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했던 미군철수에 대해서도 시한을 못박지 않는등 종전보다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같은 남북군축협상에 대한 낙관론 못지않게 신중론도 만만찮다. 즉,북한측 제안을 87년 7월 「한반도에서의 단계별 군축실현을 위한 다국적 군축협상제의」와 88년 11월 「포괄적 평화방안」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송한호통일원차관은 이와관련 9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입장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고 따라서 우리 입장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는데 그의 이같은 발언은 정부내 신중론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인 군축의 단계적 실현에 대해서도 송차관은 『북한이 이번 제안에서 남북신뢰조성,무력감축,외국무력철수,군축과 그 이후의 평화보장 등 4개항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를 단계적으로 하자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북측 제의를 평가절하하고 최근 일고 있는 군축협상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했다. 북한이 우선 남북불가침선언을 채택하자고 제안한 것이 3자회담에서 남북당국간 회담으로 후퇴,남북간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에 대해서도 『3자회담 논리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며 불가침선언채택은 북한측이 종전에도 계속 주장했던 내용』이라며 『3자회담입장은 계속 살아있는 것으로 본다』고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또 북한이 3자회담이전이라도 남북이 군축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점도 앞으로 고위급회담에서 미군철수와 군축문제를 새롭게 다루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결국 남북간 군축에 대한 실질적인 협상을 정부내 서로 다른 입장간의 조정을 거쳐 대북제의를 통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남북 당국간 정치·군사문제를 유일하게 다루고 있는 남북고위급회담이 남북쌍방간에 똑같이 엄청난 비중으로 취급될 것으로 예측된다. 아울러 미국과 소련등 초강대국의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능동적인 대응도 한반도 군축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 이제 북한이 선택할 차례다(사설)

    동구권 국가들의 눈부신 변화와 개혁에 머물러 있던 세계의 이목이 이제 아시아와 한반도로 옮겨지고 있다. 미소,한소,한미정상들의 연쇄회담은 필연적으로 아시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무엇보다 한반도의 냉전해소와 분단상태해결에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에서 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북한의 변화여부는 관심이 초점이 되고 있다. 한소 양국이 수교를 포함하여 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의견을 같이한 데 대해 북한이 이해하고 동참할 경우 남북한 관계개선은 물론 평화정착과 통일에 큰 진전이 이룩될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한소,한미 정상회담을 보는 북한의 자세는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그들의 시각은 여전히 교조적인 냉전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소 관계증진과 한ㆍ중국 관계개선등 주변국들과의 화해와 협력은 남북한 스스로에 의해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는 긴장완화와 평화통일 여건을 조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측은 북방외교의 성공을 과장하지도 않았고 북한측의 입장과 자존심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또한 우리는 같은 취지에서 북한이 우리 우방들인 미국과 일본등 서방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환영하고 협력하겠다는 의사까지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소 정상회담등으로 비롯된 주변정세변화를 여전히 외면하려는 자세이다. 심지어는 『두개의 조선정책을 책동하는 국제적인 범죄행위』라고 극단적인 비난을 가했다. 한소 관계정상화와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분단을 고착시키는 것이라는등의 억지주장의 테두리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계속되는 폐쇄와 완강한 고립정책은 그들 자신에게 결코 이롭지 못하다. 뿐더러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세계여론을 불러일으켜 그들 고립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 폐쇄와 고립정책의 끝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바로 엊그제 글라이스틴 전주 미대사는 한소 정상회담뒤 고립이 심화될 경우 북한이 어떤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경고했다. 또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위해 그들과 수교 검토의사를 비쳤던 이웃나라 일본의 방위청장관은북한측의 좌절감이 커질 경우 그들이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나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측은 이같은 지적과 예측을 그들에 대한 경고와 질책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소재로 삼아야 할 줄 안다. 우리는 노태우대통령이 지적했 듯이 북한의 혼란과 고립을 원하지 않는다. 또 그들이 정말로 무력통일노선을 포기한다면 주한미군사력뿐 아니라 우리의 군사력도 조정할 수 있다고 노대통령은 언명했다. 북한은 이를 받아들여 과감한 개방과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동서독과 남북예멘이 보여준 국가통일의지와 노력을 북한은 배워야 한다. 평화통일이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여 평화공존을 하다가 신뢰와 여건이 조성됐을 때 가능하다는 교훈을 그들은 우리에게 일깨워 줬다. 민족문제 해결에 있어 더없이 좋은 기회와 여건이 성숙돼 있다. 남은 것은 북한의 선택뿐 이다. 이제 그들 차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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