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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軍, 무르시측 反군부 시위대에 총격

    이집트軍, 무르시측 反군부 시위대에 총격

    이집트 군부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로 시작된 정국 혼란이 무력 충돌로 확산되고 있다. AP통신은 5일 이집트군이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본부로 행진하던 수백 명의 무르시 지지자들에게 총을 쐈다고 보도했다. 이 총격전으로 인해 최소한 3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지난 3일 내쫓긴 무르시는 현재 공화국수비대의 한 병영 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무르시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전역에서 ‘거부의 금요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군부에 대한 반(反)쿠데타 시위를 벌였다. CNN은 카이로 외곽에서 무르시 지지자들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군부가 무슬림형제단과 자유정의당의 지도부 300여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새로운 체제 구축에 나서자 무르시 지지세력의 반격이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위로 인해 혼란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아들리 알 만수르 임시 대통령이 “무슬림형제단은 국민의 일부이며 국가를 재건하는 데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회유에 나선 것도 무위로 돌아갔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로 추정되는 세력이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시나이반도 엘 아리시 지역의 군경시설 4곳을 공격해 군인 1명이 숨졌다. 이 공격으로 인해 이집트 군부는 가자지구로 이어지는 국경을 무기한 폐쇄했고 엘 아리시 지역을 중심으로 군병력을 증강 배치했다고 이집트 현지 국영신문인 알-아흐람이 전했다.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르시는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지난 1일 제시한 최후통첩에 “내 시신을 밟고 가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르시는 첫 민선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자기 편에게서도 버림받고 군대와 경찰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군이 제시한 최종 시한이 끝나고 특공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압송에 조용히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군부가 무르시를 몰아낸 데 대해 대부분의 서방 언론들은 “잘못된 쿠데타”라면서 비판적인 기조를 드러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무르시의 많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였다”면서 “군부의 축출은 의문의 여지없이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영국 언론인 사이먼 젠킨스는 가디언에 쓴 칼럼에서 “군에 의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정부 전복은 쿠데타가 분명한데도 서방 정부들이 ‘좋은 의도를 가진 군사개입’과 쿠데타를 구분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美 “이집트, 조기 대선 하라” 軍 “피 흘릴 각오”… 무르시 사면초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로부터 전방위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하야 불가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이집트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이집트 사태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무르시 대통령에게 조기 대선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르시 대통령이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과의 합의 실패 시 무력 개입하겠다는 군부의 최후통첩 시한(현지시간 3일 오후 4시)을 조금 앞둔 3일 오전 무르시 대통령은 생방송 TV에 출연해 “이집트 국민의 자유의지에 따라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만큼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는 “역사에서 퇴진하느니 나무처럼 서 있다가 죽는 게 낫다”면서 군부도 무력 개입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발표 직후 이집트군 수뇌부는 공식 페이스북에 ‘최종 시간’이라는 성명에서 “테러리스트와 바보들에게 맞서 피 흘릴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해 무르시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군 관계자는 이 메시지는 무르시가 임명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으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이집트 관영통신 메나는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이 최후통첩을 거부하는 상황에 대비해 헌법 효력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적 로드맵을 이미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군부는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한 슈라위원회(국회)를 전면 해산하고 이들이 통과시킨 헌법을 정지한 뒤 국방장관과 각 정당, 시민단체, 종교기관 대표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과도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CNN은 미국이 이집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르시 대통령에게 조기 대선과 내각 개편을 제안했다고 익명의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무르시 대통령에게 새 총리와 내각을 지명하고 검찰총장을 경질하도록 조언했다”며 “동시에 군부에도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연간 15억 달러의) 원조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했다”고 밝혔다. CNN은 또 다른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앤 패터슨 카이로 주재 미 대사와 국무부가 최근 이 같은 방침을 무르시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그런 결정을 내릴 주체가 아니다”라며 해당 보도를 부인했다. 한편 4일째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오전 카이로대학 앞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대와 무르시 지지자 간 시위 도중 유혈 충돌이 발생해 최소 18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다쳤다고 관영 메나통신이 보도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4) 남북 군사 대치 (하) 北의 협정 위반과 일촉즉발 위기

    [정전협정 60년] (4) 남북 군사 대치 (하) 北의 협정 위반과 일촉즉발 위기

    북한은 지난 60년 동안 끊임없이 무력 도발을 시도했다. 정전협정이 무색할 정도다. 특히 무력 도발 빈도는 줄어든 반면 수위는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력 도발 방식 역시 다양화, 노골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방부에 따르면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부터 1994년 4월 말까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는 무려 42만 5271건에 이른다. 특히 지금까지 무력을 동원해 우리 영토와 국민들을 직접 위협한 행위는 간첩 남파 등의 침투 도발이 1959건,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지 도발이 994건이다. 60년 동안 해마다 평균 49건, 일주일에 1건씩 발생했다는 얘기다. 유엔군사령부가 1994년 5월부터 위반 사례를 집계하지 않아 더 이상의 자료는 없지만 북한의 도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도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1968년 ‘1·21사태’ 또는 ‘김신조 사건’이다. 북한 무장 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다가 발각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1980년대까지는 이렇듯 무장간첩 등의 테러 도발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1974년 8월 1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저격 기도,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폭탄 테러, 1987년 11월 28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1974년, 1975년, 1978년, 1989년에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도 발견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가 두드러졌다. 북한은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 수석대표에 우리 군 장성이 임명되자 불참을 선언했으며 1994년 4월에는 아예 군정위에서 철수했다. 이듬해인 1995년 9월에는 북한이 중립국감독위원회마저 봉쇄했다. 군정위와 중감위의 설치 근거인 정전협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북한은 이어 1996년 4월 정전협정 의무 이행 포기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도 한·미 군사훈련 등을 구실 삼아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또 북한의 해상 침투가 두드러졌다.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사건’이 발생해 무장 공비 13명이 사살되고 11명은 자폭했다. 1998년 6월과 12월에도 각각 강원 속초와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각됐다. 2000년대부터는 남북 간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등 도발 수위가 이전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에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북방한계선(NLL) 무단 침입을 계기로 제1,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이 중 2차 연평해전 때는 우리 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2009년 11월에는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과 우리 해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대청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2010년 3월 26일에는 북한 잠수정 어뢰에 의해 우리 초계함이 격침당해 해군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는 ‘천안함 폭침 사건’까지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23일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100여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며, 이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대규모 군사 공격으로 기록됐다. 북한은 또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전면에 내세워 국제사회를 압박하는 공세도 펴고 있다.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지난 2월 등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했다. 아울러 북한은 1998년 8월 사정거리 2000㎞급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를 시험 발사한 이후 지속적으로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화됐기 때문에 북한이 레토릭(정치적 수사) 차원의 비난 수위를 높일지는 몰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면서 “다만 우리가 방심할 경우 이를 명분 삼아 틈새를 파고들 가능성이 있고, 그 위험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북 관계가 악화될 경우 NLL을 중심으로 한 무력 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면서 “북·미 관계가 나빠진다면 핵실험 등 대량살상무기를 활용한 위협이 반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프로축구] 황선홍 vs 최용수 ‘자존심 매치’

    [프로축구] 황선홍 vs 최용수 ‘자존심 매치’

    정규리그를 운영하다 보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가 있다. 순위 다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두 팀 선수나 코칭스태프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가 있기 때문이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선두를 달리는 포항이 3일 스틸야드로 FC서울을 불러들여 치르는 16라운드가 한 예다.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지도자 황선홍 포항 감독과 최용수 서울 감독, 지난 시즌 축구협회(FA)컵과 정규리그 우승팀의 자존심 대결이 겹쳐진다. 하지만 이보다 더 서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올해 첫 대결이던 3월 2일 개막전에서 2-2로 비긴 일이다. 포항이 이 경기에서 서울의 정예 라인업을 무력화하자 다른 구단들이 좇아 하는 바람에 개막전을 포함해 7경기 무승(4무3패)의 악몽에 시달렸던 것이다. 지난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 0-5로 참패한 것도 서울로선 자존심 상할 일이다. 우승을 확정한 마당에 백업 요원들을 내보냈다 당한 패배였다. 당시 황 감독은 서울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며 불쾌한 속내를 드러냈는데 이번에 제대로 된 답을 돌려줘야 한다. 포항은 지난달 29일 인천과의 15라운드에서 뜻밖에 1-2 역전패를 당했다. 승점 29로 제자리걸음을 하며 2위 울산에 2점 차 추격을 허용했다. 3일 울산이 상대 전적 5연승을 달린 전남과 대결하는 점도 걸린다. 서울에 지면 2연패로 선수들의 사기가 꺾이고 선두까지 내놓게 된다. 황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 전반기의 안정된 전력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역시 15라운드에서 울산에 0-2로 완패하면서 9위까지 추락한 상태여서 반드시 승점 3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상 병동이라 시름이 깊다. 최전방 골잡이 데얀, 그에게 공을 배급하는 중앙 미드필더 고명진과 하대성이 다리 부상 때문에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최 감독은 “공백을 메울 전술은 언제라도 준비돼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5위 전북은 최근 두 경기에서 8골을 합작한 이동국-케빈(15라운드 MVP) 쌍포의 활약으로 자신감이 충천해 있다. 홈에서 성남을 상대로 시즌 두 번째 연승과 선두권 도약을 겨냥한다. 한편 수원 구단은 2일 공격수 스테보(31)가 이날 대전과의 경기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는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노무현의 ‘NLL’/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노무현의 ‘NLL’/문소영 논설위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오리다/…/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일제강점기에 평안도 정주의 오산학교를 다닌 김소월이 1925년 펴낸 시집 ‘진달래꽃’의 표제작 ‘진달래꽃’이다. 지금이야 김소월의 서정이 다소 촌스럽다며, 누구는 평안도 정주 출신 시인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더 세련된 정한 이라며 읊조릴 것이다. 그러나 김소월은 늘 상당한 사랑을 받았고, 2003년 가수 마야의 ‘진달래꽃’으로도 되살아났다. 그만큼 호소력이 있다는 의미다. ‘진달래꽃’은 강렬한 사랑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시라는 점에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쉽게 말해 “나,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 절대 떠나면 안돼”가 ‘진달래꽃’에 대한 당연한 해석이다. 이 시를 문자 그대로 이해해 “임이 떠난다니 기쁜 마음으로 붉은색 주단 같은 진달래꽃을 쫙 뿌리겠다”고 한다면 남다른 해석일지 모르나, 국어 점수는 ‘빵점’일 것이다. 이른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文解力)은 기역, 니은 등 한글 자모를 안다고 되는 일은 아니고, 행간과 자간을 읽어내는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라는 주장들을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선거대책위 총괄본부장이 대중에 주장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노무현 NLL 포기’ 주장이 다시 표면화됐다. 국가정보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훼손했다는 의혹의 한가운데 있을 때다. 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는 굴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여론몰이도 했다. 하지만 ‘보고 운운’은 문맥을 잘못 해석한 오해로 밝혀졌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6월 24일 외교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한 덕분이다. 문서가 공개되자, ‘노무현의 NLL 포기’에는 ‘사실상’이란 단어가 하나 더 얹혀졌다. 이는 그렇게 해석할 만한 언급은 있을지 모르나, ‘NLL을 포기한다’라는 똑 떨어지는 발언은 없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북한의 해주와 남한의 인천을 포함한 ‘서해평화지대’ 속의 ‘공동어로수역’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때문에 여야가 정치적 입지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읽다 보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반어적인 어법이 떠오른다. NLL에서 남북한이 평화를 쌓고 더 크게는 통일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구상은 그 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뜻을 따른 것도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서해교전 1주년(6월 29일)을 앞두고 NLL에 ‘남북 공동 꽃게잡이 추진’을 검토한 적이 있다.<서울신문 2003년 6월 25일자 3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없애고, 우리 어민들이 중국어민들에게 떠밀리는 것을 막으려는 구상이었다. 이 계획은 국방부 등에서 북한의 NLL 무력화 전술을 우려하면서 더 진전을 보지 못했다가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다시 나온 것이다. 공개되지 말아야 했을 외교문서가 기왕에 공개된 마당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국민이 직접 읽어볼 가치가 있다. 여야의 정파적 주장에 오락가락하지 않을 수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아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정상회담과 관련해 컨설팅을 한 한 관계자는 “노련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밀고당기기에서 밀리지 않았고, NLL과 관련해 실무회의를 하기로 회담을 마무리지었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도 2일 통화에서 “정상회담은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으로 평가해야지, 그 과정인 회의록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기사로, 판사는 판결로 말해야 하듯,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symun@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北초소까지 1.2㎞… “우리도 北도 항상 상대 주시”

    [정전협정 60년] 北초소까지 1.2㎞… “우리도 北도 항상 상대 주시”

    임진강 하구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240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는 정전 협정의 산물이다. 협정은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양측 모두 2㎞씩 뒤로 물러나 너비 4㎞의 완충 지대를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전 체제 60년이 이어지면서 DMZ는 ‘화약고’로 변했다. 북한군은 1960년대부터 DMZ 내부로 슬금슬금 초소를 옮겼다. 뒤질세라 우리 군도 일부 초소를 MDL 쪽으로 북상시켰다. 강원 철원군 ‘철의 삼각지대’에 자리 잡은 천왕봉 OP(관측소)도 그중 하나다. 6사단 청성부대가 주둔하는 이곳은 당초 남방한계선 이남에 있었지만 1975년 제2땅굴이 발견되면서 군사정전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1.4㎞ 북쪽으로 초소를 옮겼다. 천왕봉 OP에서 MDL까지는 불과 600m. 가장 가까운 북한군 GP(감시초소)는 1.2㎞다. 말 그대로 최전방이다. 천왕봉 OP 중대장 김방한(30·학군 44기) 대위는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걸 잠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입을 뗐다. 그는 “MDL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지점까지도 수색, 매복을 들어가는데 그곳에선 육안으로도 적의 활동을 볼 수 있다. 물론 저들도 늘 우릴 지켜보고 있다”면서 “우리만큼 저쪽도 똑같이 준비하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대위는 북한의 무력시위가 고조되던 지난 3월 부임했다. 그는 “민간에서는 북한의 특이 동향이 발생할 때 위협을 느끼겠지만 이곳은 늘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인근 오성산 초소에 출몰했을 때 북한군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면서 긴장이 고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어떤 도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최상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가끔 군기 사고에 대해 민간인들이 ‘군이 썩었다’는 식으로 매도하면 장병들은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이 언제든 다시 위협해 올 수 있는 만큼 후방에서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철원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희옥 생각과 실천] 국민의 영토권, NLL

    [김희옥 생각과 실천] 국민의 영토권, NLL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인 NLL을 넘어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공격했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월드컵 4강에 오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는 축제일에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의 해군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북한 경비정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화염에 휩싸여 퇴각했다. 꽃다운 청춘의 우리 해병들이 무엇 때문에 희생된 전투였던가. 그들의 피로 지킨 서해 북방한계선이 최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NLL에 관한 전직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이 공개되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여권이 이 발언록을 입수했는지의 진위 여부를 놓고 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논의가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현실적·실효적으로 지배하는 NLL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는 오랜 역사 위에서 정립된 지리적 개념이다. 원래 국가는 일정한 지역을 지배하는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통치권을 갖추어서 성립한다. 국가인 이상 자국의 영역 안에서는 배타적 지배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영역에 대한 국가권력이 바로 영토고권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로 헌법상 규정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중 실효적으로 국가통치권이 행사되지 못하고 있는 북한지역도 당연히 우리 영토로 인정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의견 대립이 다소 있다. 헌법 제3조는 비록 현재는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휴전선 남쪽에서만 행사되고 그 북쪽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한국의 헌법과 법률이 휴전선 북쪽 지역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규정한다. 대한민국의 영역은 구한말의 국가영역 위에 위치한 것이며, 휴전선 북쪽 지역은 소위 인민공화국이 불법 점령한 미수복 지역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록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주권국가로 존속하고 있고 평화적 공존과 통일을 위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등에서 특례를 두고 있더라도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의 예외라고 볼 수는 없다. 북방한계선에 대해 논의해도 그렇다. 헌법 제3조의 국가영역 규정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영역에 관한 논의이므로 모든 국민이 ‘영토권자’의 지위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육상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양경계선을 정하지 못하였는데, 이후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한반도 수역에서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예방한다는 취지에서 한국 측 해군과 공군의 초계활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정한 북방한계선이 바로 NLL이다. 동해의 NLL은 육지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을 기준으로 하고, 서해의 NLL은 서해 5개 도서와 북한지역과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 좌표를 연결하여 설정한 것이다. 이에 북한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하면서 NLL을 부정,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1973년 이후 여러 차례 침범을 하면서 NLL을 부정하고 있으나 좌초된 북한 선박을 NLL상에서 인계받거나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에서 NLL을 인정하고 준수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영토권 등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현실적·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한계선인 NLL의 유지·수호는 대한민국 역사의 책무이자 국민의 소임이다. 11년 전의 전투에서 희생된 6명의 용사를 기리는 영화가 올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성금 모금에 참여한 국민이 6만명을 넘어섰고, 인터넷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80%가 20~30대라는 보도도 접할 수 있다. 아무리 정치적 논란이 있어도 지혜로운 국민들은 NLL에서 조국의 미래와 희망을 분명하게 보는 것 같다.
  • [위클리 포커스] 기로에 선 이집트 ‘아랍의 봄’

    [위클리 포커스] 기로에 선 이집트 ‘아랍의 봄’

    ‘재스민 혁명’(튀니지 민주화 혁명) 이후 ‘아랍의 봄’의 성지로 불렸던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이 또다시 긴장에 휩싸였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뒤 반세기 만에 이뤄진 민주 선거에서 지도자를 뽑았던 이집트 시민들은 1년 만에 광장으로 다시 나와 무르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제2의 재스민 혁명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무르시 정권 1년에 대한 평가와 향후 이집트 정국을 전망해 본다.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취임 1주년인 30일(현지시간)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 간의 대규모 맞불 시위가 벌어졌다. CNN·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시민들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와 재선거를 요구하며 대통령 집무실까지 행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권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위대 ‘타마르루드’(아랍어로 반란)는 무르시의 불신임 서명운동에 이집트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달하는 2213만명이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무르시 정권이 자신들을 옹립한 무슬림형제단의 권력 독점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경제난과 치안 부재 등 이집트 내부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무르시는 상처 입은 채 궁지에 몰린 사자”라며 “그가 우리를 공격하든 안 하든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공영방송(NPR)이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나일 델타 지역의 메누프·마할라, 운하 도시 수에즈, 포트사이드는 물론 무르시의 고향인 자가지그에서도 동시에 열렸다. 이날 이집트 전역의 시위에는 최대 10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시간 반정부 시위대를 규탄하는 맞불 시위를 개최한 무슬림형제단 소속 회원과 친정부 성향의 이슬람주의자들은 “무르시는 역사적인 자유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며, 불황과 종교적 갈등 문제는 현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이번 시위의 배후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잔재 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합법적으로 선출된 누군가를 바꾼다면 그들(시위대)은 또 새로 뽑은 대통령을 반대할 것”이라며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앞서 28일에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 무르시 찬반 시위대 간 무력 충돌로 이집트 미 문화원 영어 강사로 일하던 미국인 앤드루 프록터(21)를 포함해 8명이 숨지고 600여명이 부상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한반도 지형변화(하)

    지난 60년간 전쟁 억제 역할을 해온 정전협정은 북한의 무효화 선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적대 행위의 사실상 정지’라는 본래 의미를 잃고 사문화된 지 오래됐다. 정전협정이라는 안전장치가 전면전을 막고 있는 게 아니라 달라진 국제 역학관계 등 외교 환경과 ‘최악의 무장 충돌만은 피하자’는 남북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안전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정전은 휴전보다 좁은 의미로 ‘서로의 합의에 의해 전쟁 당사국들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한다’는 뜻이다. 휴전은 전쟁 중 얼마 동안 전투를 멈춘다는 의미로 정전보다는 더 나아간 준 평화상태로 볼 수 있다. 정전협정 한글판에는 ‘한반도 정전협정’으로, 영문판에는 ‘휴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란 표현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전투를 일시 중단할 뿐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는 1000명 이내의 비무장 인원이 들어가 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한반도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제로는 양측의 무장병력과 지뢰, 방벽 등 군사 시설물로 중무장됐다. 군사 인원 및 장비의 반입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 산하 중립국 시찰 소조의 활동은 북한의 소련 무기 반입 논란 끝에 1956년 5월 활동이 중지됐고, 시찰 소조의 활동을 규정한 정전협정 조항도 폐기됐다. 정전 감시의무를 수행하는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의 기능도 1990년대 들어 공산 측 대표단이 철수하면서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북한은 1993년 체코, 1995년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 철수시켰는데, 폴란드의 경우 철수를 거부하자 겨울철 막사의 전기와 수도까지 단절했다. 1994년 12월에는 군사정전위 중국 대표단을 철수시켰고, 1996년에는 군사정전위를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일방적으로 설치했다.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를 거부한 표면상의 이유는 한국군 장성을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군은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석대표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서명 당사자에 한국대표가 빠진 정전협정의 태생적 한계가 결국 협정문을 형식상의 문서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정전협정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 등 3명만이 서명했다. 중국군만 제어할 수 있다면 북진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정전협상에 반대하며 한국군 대표를 휴전회담에서 철수시켰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전협정의 불안정성이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군은 6·25전쟁 당시 교전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는 집행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권한을 맡기고 있다. 이를 빌미로 북한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협상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등 정치·외교적 공세를 펴왔다. 정전협정을 적용하면 한국은 북한이 도발을 해 와도 직접 책임을 따지지 못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책임 추궁을 의뢰해야 한다. 군사정전위가 나선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군사정전위가 조사 활동을 마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면 유엔군 사령관은 이를 유엔 안보리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는데, 이후의 대응 조치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 북측의 책임을 추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에도 유엔사 특별조사팀이 조사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꼭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아니더라도 정전협정은 60년간 달라진 남북 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도 1996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잠정협정’을 제안한 바 있다.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정전 상태를 평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잠정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었지만, 주체를 북·미로 한정한 게 문제다. 정전협정이 그렇듯, 한국이 배제된 협정은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평화체제로의 전환 과정에 제도상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관리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군사분계선에서 2㎞씩 후퇴 DMZ 설치

    [정전협정 60년] 군사분계선에서 2㎞씩 후퇴 DMZ 설치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유엔군 대표와 북한·중국군 대표가 사인한 정전협정은 6·25 전쟁 중지를 문서로 약속한 것이다. 협정 체결까지 본회담 159회, 분과위원회 회담 179회, 참모장교 회담 188회, 연락장교 회담 238회 등 2년간 총 765회의 회담을 거쳐 역사상 가장 긴 정전 협상으로 꼽힌다. 협정문은 전문 5조 63항, 부록 11조 26항으로 군사분계선 획정과 그로부터 2㎞씩 후퇴해 만든 비무장지대(DMZ) 설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임무, 전쟁포로 교환 등 군사 부문과 정치회담 소집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전협정 체결의 후속 조치로 평화체제 논의가 이뤄졌던 1954년 4월 스위스 제네바 정치회담은 87일 만에 성과 없이 끝났다. 한반도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무력 충돌의 위험이 상존하는 지대가 됐다. 북한은 지난 3월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이후 미국과의 대화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이 정전협정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미 직접 대화만을 통한 정전체제 협상을 고수해 왔다. 1991년 한국군 장성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측 수석대표가 되자 북한과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1994년 4월과 12월 군사정전위에서 철수하는 등 정전협정을 무력화시켰다. 북한의 주장은 국제관례에도 맞지 않다. 정전협정의 서명자와 당사자를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는 대남 전술일 뿐이다. 정전협정은 군사 조약으로, 교전 쌍방의 군 수장이 교전자들을 대표해 체결하는 게 관례다. 협정 서명을 유엔군 대표가 했더라도 협정 당사자는 한국과 서명 당시 참전한 16개국이 모두 포함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美 대법원 “동성결혼 금지 위헌” 판결… 보혁 성향 팽팽

    美 대법원 “동성결혼 금지 위헌” 판결… 보혁 성향 팽팽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 금지, 소수 인종 우대 정책 등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결과 관련해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판결을 잇달아 내려 관심을 끌고 있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결혼을 이성 간 결합으로 규정한 연방 결혼보호법(DOMA)에 대해 찬성 5, 반대 4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이성 결혼 부부와 달리 동성 커플에게는 주지 않았던 세금, 보건, 주택 관련 혜택에 대한 법 개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또 동성 결혼을 금지한 캘리포니아주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서도 반대할 만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결정해 사실상 동성 결혼에 대해 지지입장을 밝혔다. 이날 결혼보호법 위헌 판결은 중도 성향의 대법관 앤서니 케네디가 찬성 의견을 밝힌 것이 주효했다. 앞서 미 대법원은 지난 25일 1960년대 제정된 ‘투표권리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투표권리법은 1965년 인종 차별이 심했던 남부 지역 흑인과 라틴계 등 소수 인종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기존에는 해당 주가 선거법을 개정할 때 연방정부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앨라배마주 세실 카운티 당국이 “지방정부의 권한을 침해한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다수 의견을 대표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해당 법 조항이 50년 전 상황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위헌 결정 이유를 밝혔다. 투표권리법 판결에서는 보수 성향의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쪽 입장의 손을 들어줬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법원 결정을 계기로 일부 주 정부들이 소수 인종을 차별하는 선거제도를 도입할 여지가 커졌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대법원 결정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민권 보장 법안의 한 부분을 무력화한 조치”라고 혹평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모든 미국 국민이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의회에 관련 법안 처리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 판결에는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한 보수 성향 5명이 모두 찬성하고 진보 성향 4명이 반대 의견을 밝히는 등 대법관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됐다. 임기제인 우리와 달리 종신직인 미국 연방대법관은 어느 당 출신의 대통령이 임명했느냐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 캐네디 대법관을 포함한 5명은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등 공화당 출신 대통령 때 임명됐다. 대법원은 지난 24일에는 텍사스대가 입시에서 소수계 학생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뉴올리언스 항소법원의 합헌 판결에 대해 “정책 적용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라”고 재심리를 주문했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 5명을 포함해 진보 성향 대법관 2명도 주문에 동참했다. 대학의 소수자 우대 정책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백인들의 역차별 문제를 제기해 온 보수진영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어서 향후 해당 정책이 위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日 자민, 참의원 선거 승리 예약…아베 평화헌법 개헌 힘받을 듯

    26일로 취임 6개월을 맞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다음 달에 치러질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아베 정권의 낙승이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여세를 몰아 참의원 선거 승리로 숙원인 개헌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 등이 실현될지 주목된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연립정권을 꾸리고 있는 공명당과 함께 후보 전원을 당선시키며 4년 만에 제1당으로 복귀하는 한편 전체 127석의 약 65%인 82석(자민 59·공명 23석)을 차지했다. 아베 총리는 “6개월 동안 정권의 실적에 대해 일정한 평가를 받았다”면서 “많은 분들이 경기회복을 실감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실적을 남기면서 (참의원 선거) 승리를 목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도쿄 도의원 선거 결과가 같은 해 열리는 총선의 풍향계 역할을 해 온 점을 감안하면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도 무난히 승리를 거머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을 견제할 대안 세력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 승리 이후 본격적으로 개헌 추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아베 총리는 자위에 국한된 무력행사만 가능한 자위대를 ‘보통 군대’인 국방군으로 바꾸기 위해 헌법 9조를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제1야당이자 참의원 제1당인 민주당은 기존 39석을 한참 밑도는 15석 확보에 그쳤다. 공산당이 17석을 얻으며 도쿄 의회 제3당으로 약진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지만 자민당의 대항마로 나서기엔 무게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하시모토 도루 공동대표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망언으로 인기가 급락한 일본유신회는 2석을 얻는 데 그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도 자민당엔 유리한 상황이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시리아 반군, 서방 지원 업고 정부군 주요 거점 공격

    시리아 반군, 서방 지원 업고 정부군 주요 거점 공격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국제협의체 ‘시리아의 친구들’이 긴급 무기를 지원하기로 합의한 지 하루 만에 반군이 정부군의 주요 거점을 잇달아 공격했다. 영국에 있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23일(현지시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 경찰서 두 곳과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의 지지 기반인 시아파 알라위테 소수파 주민의 집단 거주지를 폭탄으로 공격, 최소 1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알라위테 주택가에서는 차량 폭탄이 터지면서 3살짜리 남자아이를 비롯해 주민 3명이 숨졌고, 북부 로큰 에딘의 경찰서와 남서부 바브 무살라의 파출소도 잇달아 폭탄 공격을 받아 최소 8명이 사망했다고 SOHR이 전했다. 또 북부 알레포에서도 반군이 정부군에 차량 폭탄 공격을 가해 군인 12명이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은 최근까지 반군의 거점이었으나 정부군의 공격으로 주인이 뒤바뀌었다. 하지만 서방의 무기 지원 결의 하루 만에 반군이 반격에 나서면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날 오후 레바논에서도 강경 수니파 성직자 셰이크 아흐마드 알아시르를 추종하는 무장 세력이 시돈시 아바라 마을 군 검문소에 총격을 가해 군인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다쳤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레바논에서는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에 반대하는 수니파 간에 갈등이 커지면서 무력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한편 카타르를 방문 중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반군 측에 극단주의 세력이 장악한 지역을 ‘재탈환’하라고 촉구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현재는 같은 편에 있지만) 알카에다와 연계한 알누스라 같은 극단주의 세력을 점령지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反식민주의 근거한 내전 규정 잘못…공산주의 vs 反공산주의 이념전쟁”

    [정전협정 60년] “反식민주의 근거한 내전 규정 잘못…공산주의 vs 反공산주의 이념전쟁”

    캐스린 웨더스비(62)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존스홉킨스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을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의 한반도 내부에서 발생한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일어난 내전으로 보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의 시각을 반박했다. →정전 협상 과정은. -1951년 7월 처음 협상이 시작됐으나 미국과 중국, 소련의 소극적 자세로 협상이 지체됐다. 당시 북한 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일성은 미국의 엄청난 공습을 견딜 수 없어 조속한 정전을 원했다. 하지만 미국이 정전에 따른 경계선을 당시의 전선에서 훨씬 북쪽에 그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중국이 반대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 미국의 공습이 더욱 심해지자 1952년 초 북한 지도부는 다시 중국에 정전을 간청했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은 북한에 보낸 메시지에서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 투쟁을 위해서는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소련은 한국전쟁으로 미군을 극동에 묶어둠으로써 동유럽에서 군사적 우위를 구축하려 했다. 1952년 가을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공산당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북한이 잃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더 있느냐”면서 정전을 반대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정전 협상이 진전됐다. →북한의 목소리가 그렇게 약했나. -협상 과정에서 김일성의 역할은 미미했다. 모든 결정은 중국과 소련 지도자에 의해 이뤄졌다. 중국 협상대표가 전보로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고하면 중국은 그것을 다시 스탈린에게 보냈다. 역으로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지시하면 중국은 다시 중국 협상대표에게 하달했다. 북한과는 일부만 상의했을 뿐이다. 앞서 중국은 1950년 가을 참전하자마자 북한군의 지휘권을 접수했다. 김일성은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중국은 중국군의 역할이 압도적이라는 이유로 지휘권을 고집했고 스탈린도 중국 편을 들었다. →미국이 정전에 동의한 이유는. -미군도 많은 인력과 물자를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은 압도적인 무기를 갖고 있었지만 지상에서 중국군을 이길 수 없다는 자괴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여전히 한국전쟁은 남침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남침이라는 것은 기록으로 입증된 명쾌한 진실이다. 김일성은 간절히 전쟁을 원했다. 그는 중국 권력 장악에 성공한 마오쩌둥처럼 한반도 전체로 공산혁명을 확산시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북한은 소련에 아주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스탈린은 가톨릭의 교황, 김일성은 신부와 같은 위상이었기에 김일성은 스탈린의 말을 따라야 했다. 1949년 9월 김일성이 남침 승인을 요청했지만 스탈린은 미군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스탈린은 1950년 1월 말 김일성이 다시 요청했을 때에야 남침을 승인했다. 북한은 원래 옹진반도를 공격해 남한이 반격하면 남한이 먼저 공격했다고 핑계를 대며 전면적으로 남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6월 21일 남한군이 북한군의 공격 낌새를 알아채고 옹진반도에 병력을 증강시키자 초조해진 김일성은 38선 전역에서 남침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커밍스 교수는 1949년에 38선 부근에서 있었던 남북 간 무력 충돌의 대부분이 남한군의 공격이었다고 주장하는데. -남한이 많은 공격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남한 지도부도 통일을 원했다. 하지만 38선 근처에서 벌어졌던 소규모 무력 충돌과 전면전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만약 북한이 침공하지 않았다면 남한이 침공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미국이 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했다면 이승만은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전쟁을 원치 않았고 무기가 없었던 한국군은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었다. →미국이 남한을 미군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한 의도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의 규모를 줄이라는 요구가 미국 내에서 많았기 때문에 제한된 자원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우선 관심 지역은 일본이었고 그다음이 필리핀이었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이 국제전이라기보다는 내전이라고 하는데. -남북한만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싸움이기도 했다. 만약 스탈린이 승인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소련의 통제력은 남한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한국전쟁이 내전이라면 동서독 간에는 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겠나.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을 혁명세력 대 친일세력의 반(反)식민주의 전쟁으로 규정했는데. -공산주의 대 반(反)공산주의의 이념전쟁으로 봐야 한다. →한국전쟁의 교훈은. -근본주의적 이념의 파괴성을 경험한 것이다. 억지력의 중요성도 깨닫게 했다. 옛 소련 문서에는 “만약 1949년에 미국의 한국 방어 의지가 분명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분이 있다. 애치슨 라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기고] 테러 대비태세 만전 기해야/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현안연구위원장

    [기고] 테러 대비태세 만전 기해야/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현안연구위원장

    북한이 지난 19일 “탈북자들을 물리적으로 없애 버리겠다”며 국내 탈북자에 대한 테러를 공언했다. 1997년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씨를 살해하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기 위해 남파된 북측 공작원 2명이 2004년 검거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탈북자 살해를 공언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이들의 위협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북한의 테러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전면전으로 치달을지도 모를 무력 도발보다는 테러리스트를 잠입시키거나 한국 사회 내 동조자들을 사주해 후방 지역에서 테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제 우리도 결코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보스턴 마라톤 대회 당시 발생한 무차별 폭탄테러로 어린이를 포함한 다수 희생자가 발생해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더니 최근에도 터키, 시리아, 이라크 등 세계 도처에서 폭탄테러로 무고한 시민들이 많이 희생되고 있다. 사제폭탄·사이버·핵물질·생화학무기 등 수단도 다양해지고 있다. 테러 대비태세를 돌아봐야 할 때다. 법과 제도부터 정비할 필요가 있다. 국가위기관리 측면에서 볼 때, 테러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려면 지휘통제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관련 부처 간 이견과 인권 침해를 이유로 대테러 관련법이 구비돼 있지 않다. 정보 공유와 협력을 기반으로 작동해야 할 지휘통제체계가 미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니 기본법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의 현실은 큰 문제라 할 것이다. 혹자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잘되어 있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테러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양한 기구와 회의체들이 ‘소집’되는데, 대처는 미흡하다. ‘소집’은 있으나 구체적 조치가 약하니 대응이 미흡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공간 등을 통해 사제폭탄 설계도과 같은 정보들이 유포되기도 한다. 더욱이 온라인상에서 ‘3D 프린터 권총’ 설계도면 접근도 가능하다지 않은가. 그러니 개개인의 안전 보호를 위해 인터넷 공간 등을 통해 테러에 악용될 수 있는 위해정보를 유통시키거나 접속하는 행위도 처벌할 수 있게 관련 법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을 유포한 자는 물론 이를 이용하는 자들도 엄히 처벌하고 있지 않은가? 정보의 공유와 융합체계 구축도 중요한 과제다. 9·11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첩보라는 점(點)을 정보라는 선(線)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통렬한 반성을 했다. 정부 부처 간 칸막이 때문에 정보 융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이버·핵·화학·생물테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 사이에 놓인 칸막이부터 제거해야 한다. 미국도 9·11 테러 이후 법적 뒷받침하에 통합적 지휘체계를 조직해 대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테러는 근절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실정에 맞는 법 정비와 함께 효율적인 체계의 구축 등 대응기반을 튼실하게 구비해야 한다. 전문 인력 육성과 필요예산의 지원도 함께 해야 할 일이다.
  • ‘국정원 사건’ 진보 촛불 vs 보수 맞불 집회

    주말 이틀 동안 서울 곳곳에서 진보와 보수 단체가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집회를 열고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 의혹과 경찰의 부실한 수사를 규탄하고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도 잇따라 열렸다. 경찰은 ‘국정원의 인터넷 댓글 사건’이 제2의 촛불 사태로 확산하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다. 전국 15개 대학 총학생회가 가입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 등 400여명은 23일 중구 청계광장 인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틀째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집회 직후 해산을 거부하고 시청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하다 경찰과 대치 끝에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학생들에게 최루액을 발사하기도 했다. 한대련 측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등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똑같은 독재가 재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 단체들의 맞불 집회도 이틀째 이어졌다. 보수 단체인 어버이연합 회원 100여명도 이날 같은 시간 청계광장 건너 맞은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한대련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들은 “국정원은 진실로 드러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전문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성향의 자유청년연합은 지난 22일 여의도 새누리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북좌파 세력과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국정원의 공작으로 몰아 박근혜 정부를 무력화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20가지’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20가지’가 해외 언론을 통해 공개돼 화제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친구나 파트너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때”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완벽하게 스타일링됐거나 새로운 머리 모양, 머리 색을 얻었을 때”,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을 때”가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이와 달리 여성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을 때 가장 무력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 38%는 누군가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5살이나 10살 연상으로 봤을 때 기분이 나빴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번 설문에서 여성은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평생 1만3000파운드(약 2332만원) 이상의 미용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다음은 여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20가지 순간이다.  1위. 친구나 파트너(배우자 혹은 남자친구)로부터 칭찬  2위. 완벽하게 스타일링됐거나 새로운 머리 모양, 머리 색  3위.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을 때  4위. 실크처럼 매끈한 다리  5위. 밤에 깨지 않고 푹 잤을 때  6위. (자녀, 파트너, 가족, 친구 등과) 포옹  7위.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8위.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9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미소  10위. 새로운 속옷  11위.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12위. 자기 소지품을 어디서 샀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13위. 옷을 완벽하게 입었을 때  14위. 아이에게 “예뻐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15위. 피부트러블 없이 잠에서 깼을 때  16위.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강조된 옷을 입었을 때  17위. 눈썹 케어를 받았을 때  18위. 데이트 신청을 받았을 때  19위. 새로운 매니큐어  20위. 완벽하게 화장한 자신의 얼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국제중 ‘뽑기’ 입시비리 뽑을까

    서울 지역 국제중학교 입학전형 방식이 또 바뀌었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입학하는 2015학년도부터 서류 심사를 없애고 지원자 전원 추첨 방식 채택을 검토하는 게 골자다. ▲2009학년도 서류심사·면접·공개 탁구공 추첨 등 3단계 전형 ▲2010학년도 서류·추첨 등 2단계 전형 ▲2011학년도 영어 관련 체험과 수상실적 기재 금지 ▲2013학년도 서류 전형의 학습계획서를 자기개발계획서로 대체하는 등 변화를 겪은데 이어 2014학년도엔 서류의 자기개발계획서와 교사추천서 중 서술 영역이 폐지된다. 2015학년도에는 서류 전형과 탁구공 추첨을 폐지하고 국제중 입학 희망자를 대상으로 전산 추첨을 검토한다. 전형 변경이 잦은 이유는 중학교 단계에서 고액 사교육이 필요한 입시 전형을 채택한 국제중이 ‘귀족학교’로 비판을 받기도 했고, 입시부정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탓이다. 그럼에도 지원 열기가 여전해 사교육이 줄지 않는 점 역시 국제중 입시 변경의 원인이다.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 진학의 전 단계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국제중을 준비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남아있는 것이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2013학년도 고입에서도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자 중 특목고를 가장 많이 보낸 학교 1~2위는 대원국제중(106명)과 영훈국제중(61)이었다. 2015학년도부터 오직 추첨만으로 입학이 결정된다면, 국제중 입시는 어떤 방향으로 변하게 될까. 우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일차적으로 선별하던 서류 전형이 무력화돼 지원자 간 성적 편차가 종전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귀족학교’로의 분위기는 유지될 전망인데, 등록금 부담 때문이란 설명이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교육평가연구소 평가이사는 17일 “국제중의 분기당 등록금만 130만원 정도로 일반 중학교보다 비싸기 때문에 서민층은 지원 자체가 힘들고, 중산층 이상 학부모가 글로벌 교육과 우수한 면학 여건을 보고 국제중에 많이 지원한다”면서 “전형 방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종전 지원 추세는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중학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었기 때문에 국제중의 내신 불이익도 없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탄력받는 ‘한국사 교육 강화’… 대입 반영·집중이수제는 딜레마

    탄력받는 ‘한국사 교육 강화’… 대입 반영·집중이수제는 딜레마

    ‘독도 지킴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한국사 지킴이’를 자청하며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100만인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에 대해 국회 여야 의원도 한목소리를 냈다.<서울신문 6월 14일자 4, 5면> 여기에 17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올바른 역사 교육을 주문했다. 이처럼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크지만, 문제는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 하는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한국사 교육이 역사인식 논란에 휩쓸리는 것을 지양하고 역사적 사실과 지식에 대한 교육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한국사의 대입 반영이 손쉬운 해법으로 제시되는데, 현실적으로 대입 반영 과목을 무시할 수험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는 “입시 위주 교육이 역사교육을 또 무력화시킬 것”, “역사 과목 위상 강화라는 눈앞의 이익을 좇다가 역사 교육을 국가교육 과정에 종속시키는 악수를 두게 될 것”이라며 한국사 대입 반영에 반론을 제기했다. 대학 스스로 입학 전형에서 한국사 반영 비중을 높일 수는 없을까.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지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서울대만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정하고 있고, 최상위권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학교·학생 모두 한국사를 피하고 있다. 한 학기 동안 한국사 과목을 한꺼번에 배우는 ‘집중이수제’ 수업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북돋울 토론식·참여형 수업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음악과 미술에 이어 한국사를 집중이수제 과목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다른 과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헌법·윤리·지리·생물 등도 건전한 시민의식 형성과 상식을 위해 모두 집중이수제 과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마련한 현행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선택과 집중학습을 유도했기 때문에 일부 과목의 학습 부담이 많이 줄었다”면서 “한국사 교육 강화는 교육과정·대입·수능·교과서·교원양성 등 복합적인 문제와 함께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반구대 투명 댐 설치, 안전한 대안 맞나

    신석기 인류의 해양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둘러싼 10년 갈등의 해법이 일단 제시됐다.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투명하고 강도 높은 재질의 폴리카보네이트 보호막을 만들어 암각화 전면을 둘러싸는 이른바 카이네틱 댐(Kinetic Dam) 설치에 합의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을 막은 사연댐이 건설됨에 따라 1년이면 7개월 이상 물에 잠기는 처지에 놓여 있다. 따라서 투명 댐 설치는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 댐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문화재청과 그럴 경우 각종 용수가 부족해지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울산시의 주장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안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카이네틱 댐은 그동안 제시된 갖가지 보존 방안 가운데 타당성이 높게 평가된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반구대 보존의 핵심은 사실 대안 마련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선의 해법인 사연댐 수위 조절에 합의하려면, 댐 기능 무력화에 따른 용수 공급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재청이 수위 조절을 통한 보존을 소리 높이 외치자 국민들은 새 정부의 높아진 문화재 보존 의지에 적지 않은 지지와 성원을 보냈던 게 사실이다. 나아가 문화재청장은 의지가 관철되지 않으면 바가지라도 들고 가 혼자라도 사연댐 물을 퍼내겠다고 공언했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하지만 투명 댐 설치는 흙막이 방안보다도 암각화의 훼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학계의 우려이다. 그럼에도 급작스럽다고밖에 할 수 없는 문화재청의 입장 변화가 문화 논리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 논리에 순응한 결과가 아니기를 바란다.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고 있는 반구대의 보존은 시급하다. 하지만 안전한 보존 방안을 찾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라도 댐 수위를 낮추면 실제로 식수 공급이 어려워지는지 공동으로 조사하고, 대안이 필요하다면 방안은 무엇이고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솔직하게 국민에게 제시하기 바란다. 그 이후라면 문화재를 사랑하는 국민이든, 울산시민이든 지금보다는 설득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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