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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당 오만” 신기남의장 광주서 ‘혼쭐’

    여당 대표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시민 대표들은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았다.결국 여당 대표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등 지도부가 23일 호남 민심의 진원지인 광주를 방문했다가 혼쭐이 났다.이날 낮 광주지역 시민단체 대표자 10여명과의 간담회에서는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는데,‘과연 이곳이 열린우리당의 지지기반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노골적이고 신랄했다. 박경린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상임의장의 발언부터 심상치 않았다.“내가 60대 주부인데 서민경제가 너무 어렵다.지금 기업이 투자할 여건이 되나.정부가 얼마나 역할을 하고 있나.열린우리당이 선거가 끝나니 너무 오만해졌다.” 그는 이런 얘기도 했다.“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이 나라가 지금 공산당처럼 되고 있다.’고 하더라.정부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시민들이 정부를 떠나고 있다.정부가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아무리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했더라도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게 중요하다.수도 이전하면 광주가 엄청나게 소외될 것이다.” 노인의 전화 양철호 대표의 발언은 섬뜩하기까지 했다.“17대 국회의 문을 열자마자 한나라당 (박창달)의원 살리는 걸 보고 ‘워메,또 속아부렀네.’라는 생각이 들었다.국회에서 누가 어떤 투표를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릴 수 있다.의원들이 잘못하면 소환할 수 있도록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의원들은 죽기를 각오해야 살 것이다.” 김재석 광주 경실련 사무처장은 “호남 민심은 이미 열린우리당을 떠났다.”고 단정한 뒤 “문제의 핵심은 참여정부 인사과정에서 (호남이) 전부 배제되는 것”이라며 ‘호남소외론’을 거론했다.그러면서 “국가균형발전 전략은 결국 영남발전 전략을 의미할 뿐이다.기자들을 동원해 언론플레이하지 말고 실질적인 민심을 듣고 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장현 광주YMCA 이사장은 “지금 열린우리당과 광주는 별거상태”라고 꼬집었다.최강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처장도 “6월에 광주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30% 정도 나왔는데,지금 조사하면 20%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광주전남 시도통합추진위 대표 오종석씨는 “택시기사들이 로또복권을 3∼4장씩 사고 있다고 한다.당첨되면 골치 아픈 이 나라를 노 대통령 재임 중 떠나 있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가 신 의장과 동석한 강기정 의원과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하기도 했다. 비판이 계속되는 내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고 있던 신 의장은 “예상은 했지만 듣고 보니 역시 새롭다.광주에서는 아무리 얻어맞아도 싸다.”는 말로 좌중을 누그러뜨리려 애썼다.“전국 순회 일정 중 제일 먼저 광주를 찾은 것은 우리가 그만큼 광주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표현이다.”라는 구애(救愛)도 곁들였다. 일부 시민단체 대표는 “신 의장이 미국 가서 충성맹세를 하고 왔다.”고 비난했는데,신 의장은 이렇게 해명했다.“한·미동맹은 혈맹이다.한국전쟁에서 미군이 5만 4000여명이나 죽었다.어마어마한 숫자다.그런 그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섰다.국가 간에도 의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의 유일한 동맹관계는 미국밖에 없지 않나.” 광주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무등산 공유화’ 시민 팔걷었다

    광주 무등산을 보전하기 위해 시작된 ‘무등산 공유화운동(무등산 내셔널트러스트)’이 지역기업과 개인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27일 ‘재단법인 무등산 공유화운동’에 따르면 최근 학교법인 우산학원(대성여중고 재단) 최기영 이사장으로부터 북구 화암동 바람재 인근 땅 6000평을 기증받았다. 최 이사장은 30여년 전부터 무등산 등지에 꾸준히 나무를 심어온 독림가로 팔순 잔치를 기념해 무등산 땅을 내놓았다.그는 “무등산은 자연경관의 아름다움과 광주의 역사를 간직한 명산”이라며 “이번 땅 기증을 계기로 무등산 사랑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재단측은 조건국(내과의사),허달재(화가),진재량(사업가),김복호(사업가)씨 등으로부터 무등산 일대 개인소유 토지를 기부받는 등 이미 8만 1126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재단은 다음달부터 ‘시민 1인 1평 등기’사업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재단측은 앞서 2000년 지역 할인점인 ㈜빅마트로부터 ‘빅플러스카드’ 제작비용 등 명목으로 고객들로부터 받은 1080만원을 전달받는 등 지역내 기업 및 기관으로부터 모두 2억 1100만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은 전체 914만평 가운데 사유지가 620만평(68%)에 달해 온천 개발과 음식점 및 개인별장 신축 등으로 자연훼손행위가 갈수록 늘어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송정숙 이사장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자원이나 문화자산을 가려 훼손을 막고 관리 활동을 펴는 시민환경운동이다.회원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자원봉사가 이 운동의 원동력이다. 국내에서는 10여년전 광주 ‘무등산공유화운동’이 시발이다.현재 해남 당두리 철새 도래지 등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지난해에는 서초구 우면산 개발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이 트러스트를 조직, 벌써 9000여명의 환경파수꾼을 모았다.재단법인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인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을 만났다. ●개발에 숨통조이는 시민의 허파 지난 1983년 정릉에서 서초동으로 거주지를 옮긴 송씨는 지금까지 21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서초동이 말하자면 제2의 고향인 셈이다.벌판이던 우면산 일대는 강남 개발의 붐을 타고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다.그러나 개발의 불도저는 하루가 다르게 자연을 마구잡이로 밀어냈다. “지난 2000년 지정된 개발행위 허가제한지역은 내년 8월 6일까지만 적용이 됩니다.더 이상 우면산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됐죠.지난해에는 토지 소유주들이 아파트나 주유소를 지으려고 허가신청까지 냈습니다.” 법이라는 산소호흡기를 걷어내면 우면산은 곧 생명력을 잃는다.토지를 이용해 최대 이문을 남기려는 개발업자들에게 환경보호는 헛구호일 뿐이다.지난 2002년 난개발을 우려한 주민들이 부랴부랴 한 데 모였다.이들은 매입을 통해 우면산을 보호하자는 데 동의하고 지난해 6월 창립 총회를 가졌고 법인 등록까지 마쳤다.그러나 현실적으로 155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녹지를 매입할 수는 없었다.‘개발 1순위 지역’을 우선적으로 사들이기로 했다.서초동 산 56의3인 예술의전당∼서초동 산51의1인 서울시교육원입구까지 총면적 2만 9600㎡(약 8954평)인 사유지 34필지와 국·공유지 3필지가 우면산트러스트의 매입 1차 대상지이다.이 지역은 현재 농지와 임야지역으로 자연녹지,등산로,약수터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면산파수꾼 9000여명 모여 “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거대 자본에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대신 집단민원 같은 시민운동을 펴야 합니다.천문학적인 매입 비용 탓에 우면산 일대를 모두 사들일 수는 없고 먼저 주요 지점만 집중적으로 사들일 계획입니다.” 1차 매입 대상지 가운데 남부 순환대로변 1000여평을 우선 협상 대상지로 꼽았다.공원에 출입하는 요충지로 먼저 이곳을 확보하면 상징적인 효과까지 의미가 크다.일단 여기에 드는 비용을 공시지가의 두배 선인 30억원으로 책정하고 모금에 나섰다.지난해 6월20일부터 시작된 모금액은 가파르게 쌓여 현재 8억 8000여만원에 이르렀다.여기에 서초구가 기부하는 10억원까지 합하면 목표금액에서 11억여원이 모자란다.기부액을 약정한 사람들만도 9000명에 이르렀다.1계좌당 1만원. “2002년 말 구청을 중심으로 우면산 보호 모임이 생겨 처음부터 참여했습니다.창립멤버 30여명 가운데 임시의장을 맡다가 정식 재단이 세워지자 이사장으로 선출됐죠.” ●내가 사는 곳… 불평만 할 수 없었다 구청에서 환경운동에 나서는 것이 선거법에 저촉됐기 때문에 최근에는 사실상 휴면상태에 있었다.선거도 끝난 만큼 다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우면산 트러스트에는 김기수 전 검찰총장,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고승덕 변호사,가수 김창완,영화배우 고은정씨 등이 참가하고 있다.재단법인의 회원은 법인의 구성으로 토지 공동 소유주가 된다.법적으로 녹지로 지킨다는 전제 하에 토지주인이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교육적으로 상당히 좋아요.트러스트 시민운동은 불편사항이란 욕구불만을 쏟아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돈이지만 자신의 힘으로 투자해서 책임도 지고 수고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송씨는 언론인 출신이다.서울시내 여기자를 다 꼽아봐도 20명이 안 되던 시절인 지난 1961년부터 취재현장을 누볐다. “당시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었습니다.시험을 쳐서 갈 수 있는 직업이 은행원,기자,선생님 등이 고작이었죠.하지만 한 번도 그 일이 지겹다거나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일부 편견이 존재하지만 기자란 직업이 여성에게 잘 맞는다고도 했다.언론사가 보수적인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차별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개인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공정하다고 말했다. ●女기자서 女장관까지 ‘남다른 길’ 보건사회부 장관은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다 제의를 받았다.여성 특유의 감성,맛깔스러운 어휘 선택과 분석력이 돋보였던 그의 칼럼은 이미 언론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뭔가 새로운 일을 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흔쾌히 받아들였다.장관 재직 당시 약사법 때문에 많이 휘둘린 것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장관은 차분하게 앉아서 정책을 구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땅에 발을 붙일 새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서울과 과천을 오가며 승용차 안에서 업무를 보기 일쑤였다. “재직기간이 좀 길었으면 기획도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죠.우리 사회는 항상 격동상태에 있어서 입안,집행,결정하는 사람이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요.” 요즘에는 외부 원고를 소일거리 삼아 가끔 쓰면서 지내고 있단다.하나뿐인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다. “손주가 둘 있는데 그애들 이름으로도 트러스트 계좌를 만들어야겠어요.멀리 떨어져 사는 할머니가 해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인 것 같아요.”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내셔널트러스트란 영국은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여파로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프랑스의 석학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맨체스터를 방문하고 난 뒤 “더러운 하수구에서 전세계를 비옥하게 만드는 땀의 강물이 흘러 나오지만 인간은 문명의 기적을 이룩한 여기서 야만인이 됐다.”고 토로했다.이에 변호사 로버트 헌터는 “사유지라서 산림을 보호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보호할 대상을 소유하겠다.”면서 내셔널트러스트협회를 만들었다. 영국에서 처음 출발한 이 운동은 점차 스코틀랜드,호주,아일랜드,미국,일본 등으로 퍼졌다.1907년 영국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법도 만들어졌다.현재 영국 국민의 5%인 300만명이 회원이며 국토의 1.5%,해안선은 17%를 소유하고 있다. ■ 송정숙 이사장 프로필 ▲1936년 10월28일 대전 출생 ▲1957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2년 수료 ▲1960년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3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업 ▲1962∼1970년 한국일보 기자 ▲1972년 서울신문 문화부장 ▲1980∼1993년 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년 신영연구기금 이사장 ▲1993년 보건사회부 장관 ▲1993∼1998년 서울신문 고문 ▲2003년∼현재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 ˝
  • [그곳에 가고싶다]山 올랐더니 城을 돌았네

    산성산(山城山·603m)은 이름 그대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산이라기보다는 옛 성터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삼국시대부터 축성돼 온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사면을 두르고 있어 ‘산성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외지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곳은 전남 담양벌판 북쪽에서 전북 순창군 팔덕면에 걸쳐 항아리형 분지를 이루고 있다.동쪽으로는 지리산,서쪽으론 추월산이 마주 서 있다.남으로는 무등산이 건너다 보이고 북으론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회문산 등과 맞닿아 있다. 산성산은 여러 봉우리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다.1894년 동학군이 이곳을 지키는 관군과 혈전을 벌이기도 했으며,6·25때는 빨치산들의 주요 거점지였다.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진입로에서 차량으로 잠시 가다보면 주차장이 나온다.차를 세우고 조금 가파른 소로를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순창의 강천사쪽에서 오르는 길을 제외하면 이곳이 외길이다.짙푸른 녹음과 찔레향이 코끝을 찌른다.등산로 주변엔 제철을 맞은 산딸기들이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청량제처럼 시원하다. 2㎞쯤 올라가면 10여m 높이의 석축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외남문(보국문·輔國門)이 우뚝 솟아있다.오른쪽으로는 이천골이 깊게 패어있다.정유재란때 성을 방어하다가 죽은 시체가 2000구에 이르러,이들을 남문 아래 협곡에 옮겨 태웠다.그래서 이 계곡을 이천골이라 하는데 골짜기 ‘골’이 아니라 뼈 ‘골(骨)’자를 쓴다고 한다. 외남문에서 왼쪽으론 담양호가 한눈에 들어온다.드넓은 호수 뒤로는 추월산·병풍산이 병풍처럼 이어져 담양골을 감싸 안는다.외남문에서 50m쯤 더 올라가면 내남문(충용문·忠勇門)이 나타난다.문루에 올라 잠시 땀을 훔치고 내려다보면 발아래 절경이 펼쳐진다. 이곳부터 좌우로 깍아내린 듯한 직벽 능선을 따라 돌을 쌓아 만든 성(城)이 이어진다.어떻게 이토록 가파른 경사면에 초석을 깔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돌을 쌓았을까.성의 웅장함에 대한 경이로움에 앞서 민초들의 수고로움에 절로 숙연해진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있었고,고려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려사 절요 기록).성은 시루봉(504.3m)을 정점으로 남문∼노적봉∼철마봉∼서문과,동문∼운대봉(603m,이 산의 최고봉)∼북문∼서문으로 연결된다.정상 일대 분지를 감싸는 포곡형 산성이다.이 구간의 전체 길이는 7345m로,어른 걸음으로 두시간쯤이면 족하다.이들 봉우리 사이사이엔 망루와 화포를 설치한 흔적들도 보인다. 가장 쉬운 등산코스는 남문∼보국사터∼서문∼철마봉∼남문에 이르는 구간.남문에서 100m 남짓 걸으면 왼쪽으론 보국사터,오른쪽으론 동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뉜다. 성곽 안 분지는 30여만평 규모로 곳곳에 민가터와 관아터,화약·식량 보관소,절터 등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남문에서 계곡을 따라 1㎞쯤 걸어 내려갔다.보국사터란 안내표지판과 함께 허름한 토담집이 보인다.토담집 방문 앞에 ‘휴당산방(休堂山房)’이란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다.그대신 흙담 벽면에 자필로 쓴 시(詩)가 눈에 들어온다.‘금성산이 어디메뇨’란 시엔 이곳 산성의 위치와 역사를 가늠케 하는 내용의 문구들이 깨알만한 글씨로 씌어 있다.저자는 ‘도림(道林)’.어느 기인(奇人)이 자연과 더불어 도를 닦으며 살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민가터인지 다른 용도의 건물터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물길이 제법 세찬 계곡 옆엔 평지와 대나무 숲,뽕나무 등 심산유곡에선 보기 힘든 생활용 나무들이 보였다.바윗돌을 파내 절구통으로 사용했을 법한 물건도 간간이 눈에 띈다. 원시림이 빼곡한 계곡을 따라 담양호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서문이 우뚝 솟아 있다.적이 침투하기 쉬운 서문(계곡)은 옹성으로 축성됐으며,평석으로 쌓은 옹성중에는 유일하게 남은 유적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왼쪽 사면을 가파르게 가로질러 철마봉∼노적봉에 이르면 막혔던 숨이 탁 트인다.성벽 돌담길을 따라 남문까지 되돌아오는 데는 쉬엄쉬엄 가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이 코스는 아이들이나 노약자를 동반해도 무리는 없다.남문∼동문∼북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가파르고 험준한 구간이 많다.동문쪽에서 강천사로 내려가는 코스는 곳곳이 암벽이어서 피하는 게 좋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볼거리·먹을거리 죽향(竹鄕)담양은 대나무를 테마로 한 음식과 생활용품들이 즐비하다.또 광주호(담양군 남면) 일대 가사문화권을 놓치면 안 된다.담양읍에서 광주쪽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타고가다가 망월동(광주5·18묘지 인근) 3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광주호 쪽으로 올라가면 한국가사문학관이 나온다.읍내에서 이곳까지는 승용차로 20분 소요.문학관 주변엔 소쇄원,환벽당,식영정,송강정 등 조선조 가사문학 유적지가 산재한다.읍내에는 한국대나무 박물관(061-380-3223∼4)이 있으며,이곳에서 각종 대나무 용품을 구입할 수 있다. 먹을거리는 대통밥과 대통 토종닭찜,죽순 나물 등으로 유명한 죽림원(061-383-1292,월산면) 귀빈관(061-383-5800,읍내) 등을 찾으면 된다.현미·찹쌀·검은콩·수수·밤·대추·버섯 등 12가지 잡곡 등을 대통에 넣어 쪄 내는 밥으로 1인분 8000원,자연부화한 토종닭 대통찜 3만 5000원. 등산로 바로 입구에 최근 개장한 담양온천과 그에 딸린 관광호텔(061-380-5000)이 있다.주변에 민박집은 거의 없어 읍내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가는길 수도권에서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를 막 지나 88고속도로로 진입,담양읍으로 들어오면 된다.읍내에서는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가 전북 순창까지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따라 금성면 원율리 삼거리까지 간다.이곳에서 담양호쪽으로 난 101번 지방도를 따라 2㎞쯤 가다 보면 담양온천 앞에 금성산성 안내판이 보인다.여기서 오른쪽으로 2.5㎞쯤 오르면 등산로와 이어지는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 ‘내셔널트러스트’ 날개 단다

    2006년 시행 예정인 국민신탁법(가칭) 제정을 앞두고 국내 내셔널트러스트(NT) 운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국민신탁법은 새로운 공공신탁제도로 NT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환경부가 특별법으로 입법을 추진중이다. 이에 대해 그 동안 국민신탁법 제정을 요구해왔던 관련 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수행 주체(조직)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 관계부처 협의 및 국회 심의과정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민·관협력 NT운동 활성화 국민신탁법은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과 기부 등으로 이뤄지는 NT운동의 애로 해소 및 활성화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이다. NT 활동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유도와 매입 자산에 대한 보호가 뒤따라야 하나 현행법에서는 이를 기대할 수 없다.국내 NT활동이 어렵고 부진한 가장 큰 이유이다.기부가 필수적이지만 기탁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 없다보니 생각에만 머물고 권유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보호가 시급해 매입하더라도 소유 및 관리·유지에 드는 세금 부담이 크다.이에 따라 신탁법은 이를 공유·공공개념으로 분류,면세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신탁자산에 대한 기부 및 보전적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이다. 2000년 11월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녹색연합이 백두대간 보호를 위해 매입한 변전소 부지에 대해 강제수용 명령을 내렸다.개발법 우위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신탁법은 국민신탁 자산과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사업이 상충할 때 이를 조정하고 보전우위를 결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중재권한은 국회와 행정부,법원중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아울러 신탁법은 시작 단계에서 정부 및 지방예산을 뒷받침할 수 있게 돼 재정난을 호소하는 관련 단체들에는 단비같은 소식이다. 환경부 자연정책과 박연재 서기관은 “국민신탁법은 초보적·제한적 수준인 국내 NT운동 지원 및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이라며 “자연과 문화유산 보호가 정부에서 시민 주도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조직화는 다양성 막을 수도 국민신탁법 제정과 달리 수행 주체에 대해서는 관련 단체들의 입장이 대조적이다.신탁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국민신탁조직이 필요하다.NT운동의 활성 및 안정화,신탁자산의 투명한 운영·관리의 필요성을 위해서다. 정부가 추진중인 안에 따르면 사단·재단법인 형태인 기존 단체들은 자산을 국민신탁에 출연하고 단체를 해체해야 한다.사실상 단일 NT단체가 설립되는 것이다. 한국법제연구원 전재경 연구위원은 “신설되는 국민신탁은 특별 수행조직으로 민간 또는 정부조직이 아닌 독립법인체”라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각 단체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NT단체 한 관계자는 “국민신탁법이 자율적 참여로 전개될시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고 단일 조직론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참여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국민신탁에 소속되지 않은 단체에 대해 세제 혜택 및 경상운영비 등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대해 비판여론도 만만찮다. 김희송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은 “협의체가 아니고 단일 조직화하겠다는 것은 NT 운동의 취지에 맞지 않고 오히려 또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며 “특정 단체를 위한 특별법으로 제한을 둬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황평우 문화유산위원회 부위원장은 “단일화는 지역 소외 및 다양성을 저하시킬 수 있는 만큼 지역 자생단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며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주관부처도 환경부보다 문화재청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서기관은 “개별 활동단체 지원은 부처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국내 NT운동 아직은 초보단계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활동중인 국내 NT 단체는 14개다.대부분 영세하고 지역단체들을 중심으로 회원 8850여명,적립 기금 6억 5000여만원 규모인 것으로 파악됐다.기금은 개인보다 기업들의 기부가 많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성과도 거뒀다.대전의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현 역사경관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99년 사유지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선교사촌을 지켜냈다.2001년 6월에는 문화재자료 44호로도 지정됐다.직접 매입은 못했지만 3자의 매입을 주선해 보전 토대를 마련하면서 국내 NT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94년 공유화운동을 시작,2000년 재단법인으로 등록한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는 지난해부터 기증 및 매입에 나서 7만여평의 땅을 확보해 무차별한 개발을 막아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국내 NT운동의 장을 마련한 것은 2000년 출범한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지난해 5월 ‘시민 자연유산 1호’로 인천시 강화군 매화마름 군락지 910여평을 사들였다.11월에는 기부로 자금을 마련해 ‘시민 문화유산 1호’인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을 매입했다. 조성집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처장은 “우리 사회도 사람과 직접 관련된 기부 및 참여는 매우 활발하나 말 못하는 자연과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아쉬워했다.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 40년 ‘무등산 지킴이’ 박선홍씨

    무등산은 광주의 상징이다.도심 근처에 해발 1187m 높이로 솟아 웅대함이 돋보인다.그러면서 정상 가까이에 발달한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의 절경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광주 사람들에게 무등산은 이 고장의 역사이자 기념비다.백제 땐 무진악(武珍岳),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렸다.북쪽은 나주평야,남쪽은 남령산지의 경계에 있다.버스 토큰 하나로 산자락에 내려 등산을 즐기고 지인들과 만나 담소하는 휴식처다.그래서 주말 휴일이면 시민들로 북적이는 살아 있는 산이다.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바꾼 광주토박이 이런 무등산도 6·25전란을 거치면서 황폐화의 위기를 거쳤다.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70년대 이전까지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멧돼지와 고라니가 뛰놀고 산새가 지저귀는 울창한 숲으로 바뀐 지는 최근이다.153과 897종의 식물이 분포한다.이 가운데 465종은 약료작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의 무등산이 제 모습을 찾게 된 뒤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베어 있다.그럼에도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주저없어 박선홍(79)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공동의장을 추천한다.그는 ‘무등산 지킴이’‘무등산 박사’‘광주토박이’등으로 통한다.무등산과 함께 해온 광주의 산증인이기도 하다.“모든 시민의 사랑으로 무등산의 자연생태계가 복원됐습니다.지금은 야생동물이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줄 정도이니 ‘상전벽해’가 아니겠습니까.”.박의장은 모든 공을 시민에게 돌린다. 그가 무등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청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충장로 5가에서 태어난 그는 1940년대 초까지 천연 원시림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그러나 일제의 세계2차 대전 도발과 전쟁물자 고갈에 따른 연료난으로 산림 남벌이 시작되면서 옛 모습을 잃어갔다.해방후 광주시청 공무원으로 잠시 재직하다가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같은해 보이스카우트 ‘무등소년대’ 대장으로 무등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는다. ●산악회 창설·책발간 등 무등산 보호 앞장 이어 55년 이 지역 최초의 산악회인 ‘전남산악회’를 조직하고,69년엔 ‘전남 산악연맹’ 창설을 주도했다.“개구쟁이 시절 노닐던 산자락이 무차별 벌채로 망가져가는 것을 그대로 볼 수만 없었다.”는 그는 산악인을 중심으로 무등산 보호에 나서기로 맘 먹는다.매일 산을 누비벼 자생 동·식물을 관찰하고 사찰,문화재 등을 조사했다.관련 자료가 될 것 같으면 무엇이든 주워 모았다.유래나 전설을 담은 자연물에 대해서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물었다.무등산에 대해 무언가 알아야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당시만해도 ‘무등산 보호’를 시민운동으로 이끌어낼 만한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는 이를 토대로 1976년 ‘무등산’이란 507쪽짜리 책을 펴냈다.무등산의 유래와 전설·경관 등을 망라했다.“풀 한 포기 돌 한조각에도 생명이 있음을 느겼다.”는 박씨는 “내 삶을 부려 놓을 때까지 살아 움직이는 무등산에 대한 기록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현재 6번째 개정 증보판을 내 놓았다.소설가 송기숙(전남대 명예교수)씨는 “폐허가 된 절터를 찾아 하나 하나 유래와 전설을 밝히고 유려한 필치로 구수하게 이야기를 펼쳐간다.”며 “이 책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고증이 담긴 향토문화의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무등산이 70년대 산업화 이후엔 벌채가 아닌 개발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등산객이 아무데서나 밥을 짓고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산중에서 고성방가와 술주정까지 벌어졌다.그는 자연보호운동을 시작할 때라고 판단했다.1989년 지역 산악단체와 YMCA,흥사단 등 12개 단체가 참여,‘무등산 보호 결의대회’와 ‘오물수거 캠페인’이 열렸다.그는 이를 계기로 같은해 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를 창설했다.거창한 구호 보다는 ▲쓰레기 버리지 말기 ▲취사 삼가기 ▲세제류 안쓰기 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지금은 800여개 단체가 가맹한 대표적 시민단체로 성장했다.협의회는 최근 모 업체가 무등산 자락에 추진중인 ‘온천개발’을 백지화하도록 유도했다.시민들의 호응도 급속히 확산됐다. 그는 2001년 ‘무등산 공유화 재단’을 설립하고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펼치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뛰어들었다.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무등산의 사유지를 사들여 영구 보존하는 운동이다.시민과 지역 기업들의 협조로 지금까지 무등산 자락 사유지 7만 5000여평을 사들였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등 공감대 확산 노력 그는 또 지방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86년 ‘민학회’를 창설했다.고향의 발자취를 더듬고 자기 정체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19세기말 개화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주의 향토자료와 역사를 집대성한 ‘광주 1백년’이란 3권짜리 책도 펴냈다.“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정신이 건강한 후세들이 태어날 것이라 믿습니다.무등산 보호도 결국은 삶의 터전을 풍요롭게 가꾸자는 실천운동이지요.”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보지 않았고,이 곳에서 숨쉬고 부대끼며 80평생을 살아온 그의 얼굴에는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보이스카우트 ‘무등소년대’대장 ▲ 55년 이 지역 최초 산악회인 ‘전남산악회’ 조직 ▲ 69년 전남산악연맹 창설 ▲ 89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창설 ▲ 94년 조선대 이사장 ▲ 99년 광주전남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창설,초대회장 ▲ 2000년 제1회 대한민국 산악대상 산악환경상 수상 ▲ 2001년 무등산 공유화 재단 설립 ˝
  • 눈부신 서리꽃 세상/’상고대’ 한창 핀 덕유산 산행

    겨울산에 가면 두가지 꽃이 핀다.하나는 가지마다 소담스럽게 쌓인 눈꽃이고,다른 하나는 ‘상고대’로 불리는 서리꽃이 그것이다.눈꽃이야 야외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상고대는 고산지대,그것도 특별한 기후 환경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겨울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덕유산은 상고대가 한창이다.무주리조트 스키 슬로프 꼭대기인 설천봉에서 향적봉,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하얗게 상고대가 피었다.길 옆의 싸리숲과 철쭉 나뭇가지에도,기품있게 자란 주목과 구상나무 이파리에도,미처 푸르름을 감추지 못한 길가의 풀잎까지.그저 형상을 갖추고 있는 모든 나무와 풀엔 어김없이 상고대가 꽃을 피웠다. ●따뜻한 날엔 오전 11시이전 올라야 감상 상고대는 청명한 겨울밤에,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대기중 수증기가 나뭇가지 등에 달라붙어 얼면서 생기는 현상.그래서 나무서리,즉 수상(樹霜) 또는 수빙(樹氷)이라고도 하고,안개가 얼어붙는다는 뜻에서 무빙(霧氷)이라고도 한다. 덕유산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상고대 산행을 즐길수 있는 몇 안되는 산 중의 하나다.최고봉인 향적봉 높이가 1614m에 달하지만 산행 기점인 설천봉(1525m)까지 편안하게 관광 곤돌라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곤돌라 탑승료는 왕복 1만원,편도 6000원. 설천봉부터 향적봉까지는 등산로가 비교적 평탄하다.조금 가파른 곳은 나무계단까지 만들어 놓아 서너살짜리 아이들이 오르기에도 부담이 없다. 향적봉 정상은 밋밋하다.소담스러운 눈꽃과 상고대를 보며 올라와선지 나무와 풀이 없는 정상 모습은 황량한 느낌마저 준다.누군가 쌓아놓은 돌탑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정상에 서니 사방이 탁 트였다.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산 뿐,산 틈새로 손바닥 만한 마을이 몇 개 보일 듯 말듯하다.남덕유산,적상산,마이산,가야산,무등산,계룡산은 물론 지리산 천왕봉까지 시야에 잡힌다.봉우리와 능선이 겹쳐지며 이어지는 준엄한 산세가 경탄을 자아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고사목 볼거리 향적봉에서 남덕유산(1507) 가는 길엔 상고대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마치 사방이 하얀 서리로 덮인냉동창고에 들어온 느낌.상고대는 기온이 영하로 유지되면 하루종일 볼 수 있지만 영상으로 올라가면 녹는다.따라서 날씨가 따뜻한 날엔 늦어도 오전 11시 이전까지 올라가야 감상할 수 있다. 능선길 주변엔 고산성 수목인 주목과 구상나무 등이 군락을 이뤄 운치를 더한다.나무 모양과 이파리 생김새는 분명 다르지만,무게와 기품이 느껴지는 건 둘이 똑같다.덕유산 주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예전에 마패(馬牌)로 쓰였다고 하는데,현재 300∼500년 수령의 주목 1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이파리는 없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주목 고사목(枯死木)도 볼거리.주목은 ‘살아서 천년,죽어서 천년’이라는 찬사가 붙어다닌다.오히려 이파리 없이 몸체와 굵은 가지만 남은 고사목이 더 멋스럽다는 이들도 있다.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속살이 더 굳어져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고사목 감상은 덕유산 산행의 또 다른 재미다. 상록교목인 구상나무는 해발 1000m 이상에 자생하는 희귀식물로,지리산,가야산,한라산 등지에 자생한다.덕유산에는 향적봉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다.특히 설천봉 곤돌라 승강장 옆 레스토랑 뒤편 산자락엔 비죽비죽 뻗은 구상나무 가지에 눈이 소복소복 쌓인 풍광이 볼 만 하다. ●‘무주 中하얼빈 빙등축제' 색다른 재미 가족 산행으로는 설천봉을 출발,향적봉,중봉을 지나 백암봉에서 돌아오는 코스가 무리가 없다.왕복 3시간쯤 잡으면 된다.아이가 없다면 구천동 계곡을 따라 백년사를 거쳐 향적봉에 오르는 길을 따라가보자.왕복 6시간 쯤 걸린다.좀 험난하긴해도 빼어난 계곡의 설경이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답다. 어떤 코스로 가든 아이젠은 꼭 착용하는게 안전하다.또 해발 1500m가 넘는 아고산지대이기 때문에 기온이 평지보다 10도 정도 낮고 바람도 세게 불므로 방한복과 장갑,모자 등을 단단히 갖추어야 한다. 산행후엔 무주리조트에서 개최중인 ‘무주중국하얼빈 빙등축제’ 행사장에도 들러보자.중국 빙설 예술의 역사가 깊은 하얼빈의 작가들이 제작한 다양한 빙설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직경 13m,높이 8m,길이 70m의 만리장성 등을 포함한 작품들이 8개 전시구역에 설치돼 있다.얼음속에다양한 빛깔을 내는 전등을 설치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했다.입장료 1만원. 무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가이드 ●가는 길 대전∼진주 고속도로 개통후 서울에서 무주까지 3시간이면 간다.경부고속도로 대전 회덕 분기점을 지나 조금만 더가면 나오는 무주·판암 방면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한다.무주IC에서 빠져 진안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적상 삼거리에서 좌회전,사산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 치목터널과 구천동터널을 지나면 무주리조트가 나온다.구천동 계곡은 무주리조트를 지나 10분쯤 더가면 나온다. ●숙박 무주리조트(063-322-9000)내에 콘도와 호텔이 있다.주말엔 예약이 거의 불가능하다.덕유산 자연휴양림(063-322-1097)도 묵을 만 하지만 역시 예약이 만만찮다.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무주읍내 여관이나 덕유산 인근 콘도형 민박 등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인터넷 ‘아이러브무주’(www.ilovemuju.co.kr)에 들어가 보면 깨끗한 숙박지를 안내받을 수 있다. ●상고대 피는 명산 태백산(강원 태백·1567m)은 주목 군락지에 핀 상고대와 눈꽃이 황홀한 곳.교통이 편리하고 등반로도 완만해 많은 인파가 몰린다.유일사∼주목단지∼천제단∼망경사∼당골 코스가 좋다.4시간 소요. 백덕산(강원 영월·1350m)도 눈꽃과 함께 상고대가 유명한 산.문재∼사자봉∼백덕산∼먹골재∼호헌교 코스를 따라가면 5시간쯤 걸린다.수림이 우거진 소백산(충북 단양·1440m)은 눈꽃과 상고대 지대가 넓고 정상 조망이 좋다.어의곡리∼비로봉∼삼거리∼천동골로 이어지는 코스(4시간쯤 소요)가 좋다.한국등산중앙회(02-2274-7710)에 문의하면 겨울 산행 정보를 알려준다. 식후경 무주엔 민물고기를 넣고 죽을 끓이는 어죽이 유명하다.담백하고 소화가 잘돼 예부터 선조들이 냇가에서 멱을 감으며 즐겨 해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무주리조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무주읍 내도리의 ‘큰손식당’을 추천한다.외지인들은 잘 모르지만 어죽에 관한 한 현지인들이 최고로 인정하는 식당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무주읍내에서 내도리로 빠지는 길을 따라 내도교,후도교를 건너 뒷섬마을에 이르니 큰손식당 간판이 붙은 외딴집이 보인다.읍내에서 10여분 거리. 어죽을 시켰더니 10여분 뒤 빙어튀김을 한 접시 내놓는다.서비스란다.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음식을 시킨후 20여분이 지나서야 뚝배기에 담긴 어죽이 나온다. 어죽의 재료는 자가미다.남대천 등 무주지역의 맑은 물에서 많이 나는 민물고기다.다음은 주인이 말해주는 어죽 끓이는법. 자가미 내장을 빼고 손질해 푹 삶아서 뼈를 발라낸다.자가미 삶은 국물에 쌀을 넣고 끓이면서 고추장을 푼다.쌀이 익을 때 쯤 수제비를 떠 넣으면서 대파,다진마늘,생강 등을 넣고 기호에 따라 후춧가루를 첨가한다. 구수하고 진한 맛에서 깊이가 느껴진다.4000원.서넛이 먹을 만한 자가미탕은 2만 5000원이다.어죽만 한그릇 시켜도 빙어튀김 한 접시는 덤으로 준다.(063)322-3605.
  • NGO / 내셔널트러스트운동 3년 어디까지 왔나 정회원 1200여명… 존폐 기로

    ‘내셔널트러스트(NT)운동’은 훼손위기에 놓인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확보한 뒤 이를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운동을 말한다.우리말로 하면 ‘자연유산 신탁운동’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1월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공식적으로 닻을 올렸다.하지만 출범 이후 만 3년이 흘렀지만,활동이 저조해 위기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참여율이 너무 낮은데다 기금 조성이 형편없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자연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이 운동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법제화를 추진하는 등 ‘수혈’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불씨가 살아날지 주목된다. ●매화마름·최순우 古宅 매입이 성과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태동시킨 영국이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역사만도 100년이 넘는다.전 국토의 1.5%와 해안지역의 17%를 소유해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뉴질랜드 등 세계 26개국에서 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국내에도 이 운동의 성격을 띤 지역단위의 시민운동들은 90년대부터 있어왔다.무등산 지키기와 대전 오정골 외국인선교사촌 보존운동,경기도 맹산 반딧불이 자연학교 조성,고양시 고봉산 한뼘사기,용인 대지산 지키기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 1월 300여명의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본부가 출범되면서부터다. 당시 그린벨트 보전의 실패를 경험한 시민·환경단체들은 대안운동으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국토 1% 소유·관리가 목표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본부의 사업목표는 2020년까지 전국의 보호대상지 100곳을 발굴해 내셔널트러스트 방식으로 소유·관리하고 국민총생산의 1%가 이 운동을 위한 자산으로 적립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 회원 수를 100만명으로 늘리고,자원봉사자를 5만명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한 실천사업으로 자연자원에 대한 모니터링과 보전대상지 선정관리,후원인·국민모금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아울러 정부 차원의 법제도 정비와 특별법 형태의 ‘국민자연신탁법’ 입법 청원운동 등도 펼치고 있다.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지방 트러스트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연대를 모색 중이다.현재 200여명의 시민전문가들이 분과별로 활동하고 있으며 1200여명의 정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로는 시민들의 기금으로 강화군 매화마름 군락지와 미술사학자 최순우 고택(古宅)을 사들인 것이 꼽힌다.시민 자연유산 1호로 기록된 매화마름은 912평으로 112평은 무상 기증받았고,800평은 4800만원의 시민기금으로 매입했다. 최순우 고택 역시 10여명으로부터 8억여원을 기부받아 매입,시민 문화유산 1호가 됐다. ●정부 ‘국민신탁법' 추진 활성화기대 무엇보다 이 운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회원 확보와 기금 조성이 시급하다.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참여율은 무척 저조한 편이다. 기금조성을 위해 각종 모금운동과 기부·기증운동,헌납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지금까지 3년간 모금액은 고작 11억여원에 불과하다. 국민자연신탁법 입법 청원운동을 전개하고 있는것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여기에는 자연과 문화유산이 국민들의 공동소유라는 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뜻도 담겨 있다. 하지만 기부문화가 불충분한 우리나라에서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보전 대상에는 고가의 토지가 많아,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성금으로 보전지를 취득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또 취득 자산에 대한 법적 보장,즉 신탁으로서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이 운동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정부 차원의 재정적인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연보전 차원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적극 권장돼야 한다.”면서 “국민자연신탁법 제정의 필요성과 관련해 이미 용역을 의뢰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용역결과가 나오는 대로 입법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유진상기자 jsr@
  • 말못한 사랑 못내 그리워 저리 붉은가

    ●불갑사·용천사등 사찰 주변에 많아 가을 산야의 진객은 단연 꽃무릇이 아닐까.무성했던 수풀이 점차 힘을 다하며 제 빛깔을 잃어갈 때 맑은 가을 하늘을 향해 이파리 하나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세운 꽃무릇은 튀고도 남음이 있다. 새파란 하늘빛에 대비되어서인지 유난히 새빨간 꽃무릇은 애틋하면서도 서러운 사랑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하다. 꽃무릇을 만나러 남녘으로 달렸다.전남 영광 불갑사,함평 용천사,전북 고창 선운사로. 왜 꽃무릇은 대개 절 주변에 사는 걸까? 아마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무릇의 특이한 생태 때문일 것이다.금욕을 실천하며 수행하는 스님에게 잘 어울리는 꽃이라고 여겨 사찰에서 심은 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수국이나 산수국,불두화,백당나무 등 사찰에 심은 꽃들이 대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들인 것을 보면 이같은 설명은 분명 일리가 있다.탱화를 그릴 때 꽃무릇 뿌리를 짜낸 즙을 바르면 좀이 슬지 않아 사찰 주변에 많이 심었다는 설도 있다. 불갑산 자락에 자리잡은 불갑사 가는 길.듬성듬성 난 억새며,떼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며,이미 가을색이 완연하다.사찰을 10여리 남겨놓고부터는 길가의 꽃무릇이 손님을 반긴다.코스모스 길에 익숙한 나들이객들에게 빨간 꽃무릇 길은 제법 이색적이다. ●상사병 스님의 애틋한 전설 간직 사찰 아래에 이르자 길 오른쪽 벌판이 온통 꽃무릇이다.안내판에 꽃무릇의 생태와 유래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석산이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일본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들여왔다가 퍼진 가을꽃.가을에 핀 꽃이 모두 지면 그제야 초록 잎이 나서 이듬해 봄에 진다.잎과 꽃이 서로 볼 기회가 없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은 ‘상사화’(相思花)로 부르기도 하지만 진짜 상사화는 아니다. 연보랏빛 꽃이 피는 진짜 상사화는 대규모 자생지를 찾아보기 어렵다.상사화는 꽃무릇과 달리 여름에 잎이 모두 진후 가을에 꽃이 핀다.순서야 어떻든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꽃무릇도 상사화의 자격은 갖춘 셈이다.옛날 한 스님이 속세의 미인을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어 묻힌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불갑사 뒤 자그마한 저수지 왼편 산자락엔 꽃무릇이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다.꽃무릇에 파묻혀 저수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데이트족들의 표정에서 ‘소박한 행복’이 읽힌다. 불갑사 뒤쪽은 불갑산(525m)이다.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꽃무릇과 연꽃을 닮았다는 기암괴석 봉우리 ‘연실봉’이 아름답다.이곳에 서면 동쪽으로 무등산이,서쪽으로 서해 칠산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불갑산과 인접한 모악산(348m) 아래로는 함평 용천사가 자리잡고 있다.불갑사 주차장에서 차로 20분쯤 걸린다.용천사 아래의 꽃무릇은 양적으로는 불갑사의 꽃무릇보다 한 수 위.함평군이 조성한 공원 옆 산자락 40만여평이 온통 꽃무릇이다.멀리서 보면 산자락이 마치 불타는 듯하다.산자락엔 꽃무릇 사이로 산책로가 꾸며져 있다.산책로 중간중간 초가와 구름다리 등을 조성해놓아 아이들과 함께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좋다.특히 산책로에서 붉은 물결 너머로 보이는 용천사의 자태가 그림같다. ●붉은 물결 너머 그림 같은 용천사 용천사는 신라 때 행은존자에 의해 창건된 사찰.사찰앞으로 흐르는 작은 천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해 용천이라고 부르는데,용천사란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사찰 건물은 모두 현대에 지은 것이라서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없다.다만 조선 숙종 때 만들었다는 대웅전 옆 석등이 고찰의 흔적을 말해준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꽃무릇은 한 줌씩,한 아름씩 듬성듬성 꽃을 피운 것이 오히려 운치가 있다.선운사 입구에서부터 절 앞으로 흐르는 도솔천을 따라 도솔암까지 난 3㎞ 숲길엔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앉은 꽃무릇이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그래서 도솔암 가는 길은 마냥 정겹다.꼿꼿한 꽃대,둥글게 굽은 꽃잎,꽃입보다 두 배나 긴 황금빛 꽃술….길가에 솟아난 하나하나의 꽃무릇은 참 독특하고도 귀하게 생겼다. 도솔암 부근엔 수령 600년의 장사송이 있다.마치 암자의 미륵불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우산처럼 가지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게 보인다.나무 옆으로 진흥굴이 있는데,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출가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영광 함평 글·사진 임창용기자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빠져 22번 국도를 타고 영광읍쪽으로 가야 한다.읍내를 지나 23번 국도로 갈아타고 10분쯤 가면 불갑사로 빠지는 군도가 나온다.군도를 따라 5분쯤 가면 오른쪽으로 불갑사 진입로가 보인다.용천사는 불갑사 들어간 길을 되짚어 나와 다시 23번 국도를 타고 함평 방향으로 가야 한다.5분쯤 가다가 나오는 838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조금만 가면 해보면 광암리에 이르러 용천사 진입로가 나온다. 선운사는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에서 빠져 22번 국도를 타면 바로 닿는다. ●숙박 불갑사나 용천사 인근에서 묵으려면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관광농원(061-323-3663)이 추천할 만하다.구계동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 쾌적하면서도 넓다.방갈로와 낚시터도 갖추고 있으며,밤 줍기도 할 수 있다.요금은 방 크기에 따라 2만원부터 5만원까지. 선운사 인근엔 동방호텔(061-563-7070) 등 호텔과 전원산장민박(061-561-3120) 등 민박집이 많다. ●함평 해수찜 함평군 손불면 신흥마을은 해수찜으로 유명한 곳.함평해수찜은 1800년대부터 민간요법으로 널리 이용돼온 치료법이라고 한다.도자기 가마를 이용한 한증법을 발전시킨 것으로,해수(海水)탕에 유황 성분이 많은 돌과 삼못초 같은 약초를 넣고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 데워진 물로 찜질을 한다. 온천과 약찜의 효능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어 피부염,산후통,신경통 등 만성질환에 치료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자랑이다.주포함평해수찜(061-322-9489),함평신흥해수찜(061-322-9487),신흥해수찜(061-322-9900) 등이 있다.입욕료 6000원.문의 함평군 문화관광과(061-320-3224),영광군 문화관광과(061-350-5224),고창군 문화관광과(063-560-2230). 식후경 영광의 첫째 먹거리는 뭐니뭐니해도 법성포에서 말린 굴비.법성포는 습도와 일조량,해풍이 조기를 말리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최상의 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2년 이상 간수가 빠져 쓴맛이 없어진 소금으로 싱싱한 생조기를 정성껏 간을 해 15∼40시간 정도 재워두었다가 깨끗한 염수에 4∼5회 세척한 후 10∼20마리씩 짚으로 엮어 해변가에서 7∼14일 동안 말린다.법성포와 영광읍내엔 굴비를 중심으로한 한정식집이 많다.법성포 포구 바로 앞 ‘1번지식당’의 음식 맛이 유명하다.값은 1인 1만 5000원부터 3만원까지.1만 5000원짜리의 경우 굴비 구이와 조기 찌개를 중심으로 병어,갈치,전어 등 요즘 나는 생선 10여가지와 나물 무침 등을 포함해 30여가지의 반찬이 나온다.3만원짜리엔 굴비찜과 삼합,생선회,홍어회,자린고비,육회,갈비 등이 추가된다.(061)356-2268.영광읍내에선 동락식당(061-351-3363),한아름식당(353-7757)에 손님들이 몰리는 편이다.
  • 色다른‘특구’신청 봇물

    정부의 ‘특구 정책’이 히트 예감을 보이고 있다.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희망특구만 무려 448개다.미역특구,소설 ‘태백산맥’ 특구,귀향 특구,군(軍) 특구 등 아이디어도 별나다.정부는 연말까지 정밀심사를 통해 ‘합격자(특구)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그러나 특구 환상에 사로잡혀 ‘일단 신청하고 보자.’는 ‘부실 응시생’도 많은 데다 중앙정부 차원의 규제완화 결단이 선결과제여서 실제 흥행 성공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특구 광풍-지자체 1곳당 2개씩 신청 8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특구 신청접수를 마감한 결과,전국 234개 지자체 가운데 189곳이 448개의 특구를 신청했다.지자체 한 곳당 평균 1.9개씩 복수지원한 셈이다.우리보다 앞서 이같은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평균 신청건수가 0.13개였던 점에 비춰보면 일단 흥행(?)은 성공적이다. 지자체별로는 경북이 65개로 가장 많았고,전남(55개) 강원(48개) 경기(45개)가 뒤를 이었다.경기도는 당초 특구 지정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었으나 ‘지역 차별’이라는 경기도민들의 반발로 막판에 포함됐다.유형별로는 관광특구가 133개(29.7%)로 단연 으뜸인 가운데 ‘영어마을’ ‘골프장’ 특구도 경쟁률이 치열했다. ●별난 특구들 경남 남해군은 귀향을 희망하는 도시민에게 값싼 전원주택을 제공하는 ‘귀향향우 정착마을 특구’를,경기도 김포시는 사람과 애견이 함께 놀 수 있는 애견특구(경기 김포)를 신청했다.계룡산의 군사시설 출입제한지역을 부분 개방한 군문화 관광특구(충남 계룡출장소)와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재현한 태백산맥 특구(전남 벌교읍)도 눈에 띈다.미역·다시마(부산 기장군),생선회(부산 수영구),무등산수박(광주 북구),만화(경기 부천) 특구도 시선을 끈다. ●특구 ‘대박’,갈 길 멀다 특구는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낙점되는 것은 아니다.재경부는 일단 총 1만여쪽의 ‘특구 기획안’ 가운데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특구를 추려낼 방침이다.광주시 동구의 민주·인권 특구처럼 별도의 규제 손질이 필요없는 데도 특구 요청을 하는 등 신청단계의 ‘거품’도 적지 않다.그러나 핵심 관문은 특구 조성을위해 각 지자체들이 요청한 규제 완화 또는 강화에 대한 관계부처의 승인 여부.외국인학교의 본국 과실송금 허용,의료기관 부대수익 사업확대 등 만만치 않은 요구들이 포진해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마라도는 청정환경 유지를 위해 차량통행 등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 달라고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최종 관문까지 통과하면 연내 특별법(지역특화발전특구법) 제정을 거쳐 내년 5∼6월께 특구가 정식 출범하게 된다.특구로 지정되면 중앙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줄 것이라는 지자체의 ‘헛된 꿈’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안미현기자 hyun@
  • [시네 드라이브] 영화판도 의리보다 돈?

    영화판의 8월은 잔인한 달? 충무로가 잇단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기각으로 어수선하다.신청 이유는 ‘명예 훼손 우려’ ‘공동제작권 무시’‘협박에 의한 공동제작 포기’ 등 다양하다.그러나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메마른 세태 탓이다.‘영화=돈’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부른 것이어서 씁쓸하다. 지난 21일 여성기업인 김모씨가 백상시네마가 제작하고 있는 영화 ‘형’에 대해 서울지방법원에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김씨 주장의 요지는 자신의 7공주파 경험을 다룬 영화 ‘형’이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과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에 대해 백상시네마는 24일 낸 해명자료에서 “‘형’은 광주 무등산 타잔으로 불린 박흥숙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김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영화 속에서 그를 사랑하는 여주인공이 속한 7공주파는 어느 여고에나 있을 법한 서클을 상정한 것”이라 설명했다. 이에 앞서 11일에는 서세원프로덕션이 ‘조폭마누라 2:돌아온 전설’을 상대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이유는 ‘조폭마누라2’의 제작사인 현진씨네마가 1편 공동제작사인 서세원프로덕션측의 양해도 없이 2편을 제작했다는 것.이에 현진측은 “계약서상 속편 제작권은 현진씨네마에 있다.”며 “22일 제출한 반박자료에 대해 서세원프로덕션측이 재답변 기한인 27일까지 아무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기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16일에는 ‘오! 브라더스’(제작 KM컬처)를 상대로 전 공동제작사였던 매쉬필름 대표 김영운씨가 냈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전에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은 종종 있었다.그런데 최근 이런 일이 빈번해지면서 ‘의리 하나로 먹고 살던’ 충무로 풍속도가 ‘피도 눈물도 없는 판’으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탄식이 흘러나온다.물론 사안마다 속 사정은 다를 것이다.홍보효과를 노린 전략일 수도 있고 미묘한 상황에서 부딪친 감정적 대응일 수도 있다. 판단은 어차피 법정의 몫이다.그러나 영화계 내부의 자기 반성도 중요하다.제 살 갉아먹기식 이전투구는 영화 산업이 튼실하게 자리잡는 데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제작 과정부터 시비에 말린 작품 치고 흥행에 성공한 예는 드물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종수 기자
  •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 임재철 프로그래머

    ‘영화에 미친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잔치’.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가 22일부터 열흘 동안 빛고을 광주를 달군다.그 모습은 도심에 자리잡은 무등산 같다.겉으론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 속엔 열기가 가득하다. 광주영화제는 전국 시네필(영화 애호가)의 잔치다.1회부터 토대를 다져온 임재철(42) 프로그래머를 만나 ‘시네필 잔치’의 모든 것을 들어보았다. 영화제 특성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가시돋친 질문을 던져보았다.“특성이 없다고요? 잘 몰라서 하는 소리죠.영화 마니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죠.1년에 영화 한편도 보지 않는 사람들과 자기 돈으로 40∼50편 보는 그룹은 다릅니다.광주 영화제는 후자에 비중을 두는 거죠.” 이런 임씨의 철학은 2년 전 프로그래머 제의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해온 영화제에 그대로 녹아 있다.그는 “다른 도시처럼 재미있는 행사로 만들자는 소리도 있었지만,굳이 돈을 많이 들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예향이면 예향답게 하자고 설득했다.”고 말한다. ‘영화다운 영화’에 대한 임씨의 애정은,이후 대중성에 비중을 두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그런 요구가 그의 원칙과 접점이 없을 경우 “언제라도 그만둘 계획”이라고 말할 정도로 확고하다. 마니아 영화제를 고수하려는 이유는 또 있다.임씨가 진단컨대 부산영화제처럼 갈 경우 ‘황새 따라간 뱁새’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부산영화제의 성공요인중 하나는 구미의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 고조와 맞물려 있습니다.그러나 한국 영화의 규모를 보면 이젠 그런 형태의 영화제로 가는 문은 닫혀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보통 이상의 관심을 가진 사람을 타깃으로 한 컨셉트는 1,2회에 오롯이 반영됐다.‘될성 부른 나무’인 신예 감독들을 조명하는 ‘영 시네마’와 ‘월드 시네마 베스트’,거장들의 회고전에 무게가 실렸다.이에 대해 임씨는 “영화인의 교양을 넓히고 토대를 다지는 작업인데,결국 영화를 살찌게 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두터운 마니아층’에 대한 임씨의 철학은 오래 전에 형성됐다.“영화를 보면 그저 편하다.”는 그는 94년 넘치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6년 동안의 중앙 일간지 기자생활을 접고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뉴욕시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뒤 마니아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전국을 순회하는 시네마테크에서 거장들의 회고전을 기획했다.임씨의 영화 사랑은 끝없이 이어져 “영화제가 좋은 문화행사니까 지원한다는 인식은 예산 배정에만 신경쓰는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까지 잊지 않는다.그의 안내를 바탕으로 영화제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이종수기자 vielee@ 사진 이언탁 기자 utl@ 주요작품 ●광주국제영화제 세번째 얼굴 ‘시네필,부활을 외쳐라’를 모토로,장편 100여편을 상영.개막작은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고 폐막작은 칠레 출신 라울 루이즈 감독의 ‘그날’이다. 1,2회에서 반응이 좋았던 ‘영 시네마 섹션’은 제3세계 감독들을 많이 소개하는 게 특징.또 근래 만들어진 작품중 걸작을 소개하는 ‘월드 시네마 베스트’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신작 ‘팜므 파탈’,장 피에르 미로뱅의 ‘노보’ 등이 기다린다.거장 회고전 코너는 ‘서부영화의 역사’ 존 포드 감독에게 눈길을 돌렸다. 관심이 가는 섹션은 올 처음 기획한 ‘논픽션 시네마’.극영화가 아닌 실험영화나 다큐 등을 소개하는데,임 프로그래머는 실험영화의 대가 마이클 스노의 신작 ‘코퍼스 칼로섬’과 안드레 헬러의 ‘히틀러의 여비서’를 특별히 권한다.또 60∼70년대 일본 액션영화 대표작을 돌아보는 ‘일본 영화 걸작선’코너도 놓치기 아까워 보인다.자세한 작품과 일정은 홈페이지(www.giff.or.kr)참조.
  • “5·18, 희망의 씨앗돼야 한풀이식 행사 의미없어”/ 5·18 동지회 상임의장 김준태 시인

    ‘이제 5·18은 무덤이 아닙니다.둥근 씨앗입니다.배달겨레 씨종자입니다.’ 시인 김준태(55)씨가 올해로 23돌을 맞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바친 헌시의 일부이다.이 시에서처럼 그는 5·18을 항상 ‘희망’으로 노래한다. ‘아아,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중략)…(‘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중에서) 그가 5·18을 주제로 쓴 시는 500여편에 달한다.‘5월 시인’이란 별명이 항상 그를 따른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통일을 꿈꾸는 색주가’ ‘아아 광주여,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등이 그것들이다. 지금도 난립한 5·18단체의 통합을 위해 ‘5·18민주유공자항쟁동지회’ 상임의장직을 떠맡고 있다.5·18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시인인지도 모른다. ●‘건준' 참여로 총살당한 아버지 그의 시 정신과 이력은 우리나라 역사와 이데올로기적 대립에서 잉태된 듯싶다.일제 때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의 탄광노무자로 징용됐다. 아버지는 남태평양 남양군도에 끌려갔다.천신만고 끝에 전장을 탈출한 아버지가 6·25전쟁 와중에 여운형이 이끌던 ‘건국준비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고향의 한 산골짜기에서 총살형을 당했다.당시 시인의 나이는 3살.6·25를 거쳐 군복무 시절 직접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는 80년대는 5월 항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그의 시와 삶의 여정에는 전쟁과 대립에 대한 증오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그는 대학시절인 스무살 때 고(故) 조태일 시인이 주관하던 시전문지 ‘시인’을 통해 김지하 등과 나란히 등단했다. 20대 당시 그의 시를 관통하던 주제는 ‘고향’ ‘대지’(흙)였다.시집 ‘참깨를 털면서’는 70년 개발독재시대 이농현상과 땅,고향에 대한 사랑과 감정 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담아낸 초기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80년 초 광주의 전남고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 중 5·18을 맞는다.그의 운명은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 ‘참여시인’으로 바뀐다.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으로 살벌한 군부독재 시절 그는 ‘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란 107행짜리 장편 시를 발표한다.이 시가 80년 5·18 항쟁기간 중 ‘전남매일’ 1면에 실리면서 ‘필화’를 겪게 된다.이 시는 원문이 외신을 탔고 ‘민중 선동혐의’로 계엄당국의 수배조치가 내려졌다.해당 신문사는 폐간되고 만다.그 역시 사랑하는 제자들을 뒤로한 채 한달여 동안 잠적했다.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는 그는 잠시 집을 방문했다가 주변에 잠복 중이던 보안사 요원에게 붙잡혔다.한달여 동안 각종 고문과 협박 등으로 교육청이 아닌 보안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교단을 떠난다. ‘현실을 외면하는 문학은 살아 있는 문학이 아니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시내 학원 강사로 전전하는 동안에도 역사와 민주와 통일을 노래한 시들을 쏟아냈다.지금까지 시집 12권과 산문,평론,5·18항쟁 창작 오페라,콩트 등 모두 23권을 펴냈다. ‘역사는 소금 뿌린 생선이 아니라 펄펄 살아 뛰는 생선’이란 그의 지론처럼 역사와 통일,민족문제 등에 천착한 시기였다.시대정신을 외면하고는 시를 쓸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3년여 학원강사 생활을 마친그는 전남 영암의 한 중학교를 거쳐 광주과학고로 전입했으나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고 ‘자리만 지키는 교사’ 생활이 이어졌다. 교단을 영원히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는 88년 신생 지방지였던 전남일보 문화부장으로 입사한다.그는 언론인으로서 5·18의 원인과 경과·결과 등을 총괄하는 ‘광주·전남 현대사’를 기획,일부 왜곡된 5월정신을 바로 잡는다.1944∼1961년의 이 지역 항쟁사 등을 담아냈다. ●“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 ‘오늘날의 사초(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한다.’는 그는 광주매일로 자리를 옮겨 ‘정사 5·18팀’을 만든다.프랑스,미국,베트남 등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혁명현장 등을 돌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뒤 5·18 특집 시리즈를 내고 그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IMF위기 때 잘려나가는 동료 기자들을 보고 스스로 언론 현장을 떠난 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지금은 조선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쓰는 것과 가르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그는 5·18을 통해 ‘출세’를노리는 일부 인사들과 다르게 살아왔다.그래서 금기시되곤 했던 5월단체 등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5·18기념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그는 “언제까지 한을 붙들고 살풀이하는 식의 행사가 되풀이돼야 하느냐.”고 반문한다.추모제도 없애고 시민 누구나가 하나되는 공동체 축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 이정표를 만든 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그는 ‘5월정신이 남남(극우-진보) 및 남북화해와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앞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강연과 집필활동에 열중할 것이라고 다짐한다.‘우리 후세에게 좋은 세상,전쟁과 갈등이 없는 나라를 물려주는 게 꿈’이란다. 글·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나의 건강보감]조순 前부총리의 ‘보완적 건강론’

    ●“70대에도 유연한 몸 모두 놀라지요” ‘산신령’이나 ‘포청천’이라면 알아도 그의 별칭이 ‘소천(小泉)'임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조순(76) 박사.민선 서울시장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한국은행 총재,민주당과 한나라당 총재 등 굵직굵직한 요직을 두루 거쳐 직함이 많은 그를 굳이 ‘박사’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서구 경제학을 이식해 정착시킨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즉 학자로서의 면모가 가장 돋보이는 까닭이다. 조 박사를 서울 종로구 구기동 민족문화추진회 사무실에서 만났다.지난해 11월 이곳 회장으로 취임했다.훌쩍 고희(古稀)를 넘기고 어언 희수(喜壽·일흔일곱 살)의 발치에 이른 나이임에도 얼굴이 동안(童顔)처럼 맑다.“이전투구의 정치판을 떠나선지 무척 건강해 뵌다.”고 인사를 건네자 “허허”하고 웃었다. 지난 95년,국민의 신망을 안고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 그가 겪은 부침은 간단치 않았다.그해 서울시 초대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그를 애워싸고 펼쳐진 정치 퍼즐을 학문 외길만 걸어온 ‘조순’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그는 지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귀거래사라도 한 구절 남김직 하건만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그 와중에 적잖이 속도 끓였을 것이고,또 세간의 풍속이 그렇듯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저울질하느라 심사가 복잡할 법도 하건만 그의 웃음에는 티가 없었다. 얘기중에 “정치를 통해 나를 알았다는 것이 득”이라며 “이제는 여의도에 갈 일이 없다.”고 했다.정치에 대한 혐오감 때문일까.“지금 하는 일이 재밌고 또 중요하다.”고 말머리를 돌렸다.민족문화추진회는 우리의 고문·고전을 국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25년 전쯤부터 독학으로 요가 시작 자연스레 건강 얘기를 나눴다.“한 25년쯤 요가를 했어요.어디서 따로 배운 건 없어요.책을 놓고 집에서 시작했으니 생활요가라 해야겠지요.제자가 권해서 시작한 건데 좋아요.”그에게 요가를 권한 사람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이계식 박사다.책을 사들고 와 요가를 권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 몸 유연한 것 보면 놀라요. 평상시 집에서 40분쯤 하는데 그 정도 시간이면 동작 열댓개 정도는 해내지요.많을 땐 스물다섯개까지도 해요.”듣다보니 그의 어투에서 강원도 냄새가 난다.가끔 말끝의 조사가 툭툭 떨어져 나간다.그는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 요가는 이른바 ‘몸을 움직여 정신을 얻는 운동’이다. 해서 요가로 몸이 튼튼해졌다기보다 몸이 좋아졌다거나 정신이 맑아졌다고들 한다.“우선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져요.평소 안 움직이는 관절이나 근육을 이용하기 때문에 몸의 기능 퇴화를 막아주지요.요가원 같은 곳을 애써 찾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해보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외국 여행중에는 호텔에서도 요가를 한다.어디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것도 좋다고 들었다.“모든 운동이 그렇듯 하루,이틀새 좋다고 느끼겠어요? 못해도 석달쯤은 해야 하고 여섯달이면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요가 예찬이다.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에게도 권했다고 소개했다. 조 박사가 요가만 하는 것은 아니다.요가보다 훨씬 전에 등산을 시작했다.전문알피니스트는 아니지만 산이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산을 찾는 일을 도락으로 여긴다.육체적 건강도 건강이지만 산을 타면서 방해받지 않는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손꼽히는 매력이다. 전국의 명산치고 그가 자국을 남기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다.한라산만 벌써 다섯번을 올랐다.중국 아미산과 네팔 카투만두,미국의 셰난도에도 족적을 남겼다. ●‘사유의 시간' 갖는 등산은 또 다른 취미 산을 주제로 한 그의 ‘특질고(特質考)’는 산을 대하는 한 노학자의 철학과 맛닿아 있다.“옛적 서산 대사가 4대 명산의 우열을 이렇게 가렸어요.금강은 수이부장(秀而不壯=아름답되 웅장하지 못함)하고,지리는 장이불수(壯而不秀=장엄하나 빼어나지 못함)하고,구월은 불수부장(不秀不壯=빼어나지도 장엄하지도 않음)하며,묘향은 역수역장(亦秀亦壯=아름답고 또한 웅장함)하다고.이렇게 보니 설악은 확실히 수이부장하고,지리는 장이불수합디다.두륜산과 무등산 등 호남쪽 산도 참 좋아요.한라산은 돌산이라 걷기가 좀 그렇고….” 가장 좋은 산 하나를 들어달라고 청하자 “다 좋다.”면서도 “무게가 있고 시야가 막힘없는 산이 태백산”이라고 했다. 아직도 해발 1000m쯤은 거뜬하다는 그다.그에게 듣는 바람직한 산행 요령 하나.“천천히 걸어야 해요. 나도 걸음이 좀 빠른 편인데,그거 안 좋아요. 결국엔 운동량도 비슷해요.” 그는 등산하다 두 번을 크게 다쳤다.모두 부주의한 결과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 산행과 요가는 ‘보완적 건강론’의 한 실천 방법이다.이를테면 산을 오르지 않은 날은 요가를 하고,요가를 할 수 있으면 산행을 하지 않아도 크게 아쉽지 않은,건강의 이기론(理氣論) 같은 것이다. “단전호흡과 조깅도 해봤지만 내 운동이 아니다 싶어 그만 뒀습니다.우리 삶에서 건강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건강은 알파요,오메가입니다.” 경제 문제를 얘기할 때는 얼굴이 잠깐 굳어지기도 했으나 이내 밝게 웃으며 “몸이든 마음이든 건강이란게 모두 의지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심재억 기자 jeshim@ ■요가의 건강학 자연은 원천적으로 변화·조화·안정을 지향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이런 흐름에 따라 우주의 질서와 화합하는 방향으로 생명활동을 전개해 간다.이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요가에서는 ‘푸라나’라고 부른다.푸라나는 상생,상극으로 작용하면서 다양한 형상을 만들고 생명을 유지하는, 정신적·지적·성적 에너지인 동시에 영적 에너지다. 이런 원리에 착안,인간에게 작용하는 푸라나를 스스로 조절하도록 잠재력을 일구는 운동이 요가다. 사실 인체는 앉고, 서고, 눕는 기본 동작만으로도 충분한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걸 못해 많은 근육이 퇴화, 마침내는 몸이 균형과 중심을 잃는 것이다. 조순 박사는 요가의 장점중 하나로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점을 든다.실제로 요가를 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장소와 담요 한 장이면 된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한 번도 요가원을 찾지 않고 책 한 권으로 25년간 수련해 ‘생활요가’를 실천했다. 그동안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동작 25가지 정도를 익혔다. 상당한 수준이다. 요가는 팔과 다리로 전신의 무게를 지탱하고 균형을 잡는 개인운동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이 때문이다.문제는 혼자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요가원 같은 곳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면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 이렇게 3∼6개월 정도 지나면 자제력과 평정을 얻고 몸도 한결 가벼워진다.물론 요가를 단순한 체조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민첩성과 균형감,인내력, 활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체조의 효능과 비슷하나 심리적 안정을 얻는 수양이라는 점에서 체조와 구별된다.실제로 요가에서는 운동·호흡·정화법 외에 명상법을 중히 여겨 따로 수련하도록 한다. 요가에서 중요한 것은 몸의 수련을 통해 마음을 새로 닦는다는 점이라는 게 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하는 말이다. ■ 도움말 백인요가원 안지용 원장 심재억기자
  • 올 내셔널트러스트 후보지 선정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와 대천 선교사 휴양지,인천 중구 근대문화유산 밀집지역 등이 내셔널트러스트(자연신탁국민운동)후보지로 선정됐다. 사단법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운동(www.nationaltrust.or.kr)은 27일 이들 후보지 3곳에 대한 매입운동을 올해 전략사업으로 확정했다. 내셔널트러스트란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전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확보한 뒤 영구적으로 보전·관리하는 운동이다. 19세기말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으며,현재 영국 토지의 1.5%,해안지역의 17%가 이 같은 방법으로 시민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7년 광주 무등산 난개발 방지를 위한 소규모 활동에서 시작,2000년 사단법인체 창립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지난해 멸종위기 식물인 매화마름의 군락지로 알려진 강화도의 논 800평을 매입,최초의 자연유산으로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지난달에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미술사학자 고(故)최순우 선생의 고택을 사들여 시민문화재 1호로 탄생시켰다. 이번에 새로 보전이 추진되는 신두리 해안사구는 도로건설과 건물신축 등으로 외부 토양이 유입되면서 달맞이꽃,망초,쑥 등 사구 고유종이 아닌 외래종 식물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곳이다.무분별한 개발행위를 제한하고 해안사구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역내 여론이 높다. 내셔널트러스트는 1단계로 ‘신두리 트러스트’를 조직,일부 토지의 기증·매입운동을 펼치고 주민참여형 생태마을을 조성,신탁참여자를 위한 환경학습과 생태관광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동인천역∼자유공원∼월미도로 이어지는 인천 중구 일대는 개항기 외교 중심지.당시 일본과 중국의 건축물이 대규모로 들어섰고 식민지 시기 도시계획이 시행되면서 근대초기 계획도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인천시 등 지자체와 협조해 보전사업추진단을 구성,개항 및 역사박물관 등을 건립한 뒤 국제 건축비엔날레를 유치하는 등 근대문화유산의 보전을 위한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식민지 시기와 미 군정기,한국전쟁을 거치며 외국인 선교사의 별장들이 들어선 대천해수욕장 인근의 소나무 숲도 보전지역으로 선정됐다. 최근 이 지역에서는 난개발로 별장들이 철거되고 있는 데다 대규모 군 휴양시설 예정지로 결정돼 40∼50년생 소나무가 무더기로 벌목되고 있다. 김상완 공동대표는 “우리에게도 예로부터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을 동네 주민이 공동 소유해 영구 보전하던 전통이 있었다.”면서 “시민 참여를 높여 100년 뒤에는 영국처럼 국민의 5%가 회원으로 참여하는 운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새해 시정] 박광태 광주시장

    “광주를 지식과 산업이 어우러진 첨단산업도시로 육성하는 데 모든 행정력을 모으겠습니다.” 박광태(朴光泰) 광주시장은 9일 “산업적으로 후발지역인 광주에 광(光)산업과 디자인·첨단부품·소재 등 지식정보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외자 유치 등을 통해 서남권을 대표하는 중심도시로 가꿔나가겠다.”고 밝혔다.박 시장은 “광산업은 반도체 시장 규모와 맞먹는 미래산업으로 떠오른 만큼 이 분야에 핵심역량을 집중하겠다.”며 “2012년 광산업 엑스포 유치를 위해 새 정부와도 정책 공조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광산업을 광주의 전략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발벗고 뛰었던 경험을 살려 광집적화단지와 이노베이션센터를 설립하고 바이오의약물질,티타늄 특수합금 부품,발광다이오드(LED) 개발 등을 통해 지역산업의 첨단화를 앞당기겠다고 다짐했다. 박 시장은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와 관광·레저산업 육성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그는 “문화·관광,스포츠·레저,민주·인권 등을 축으로 한 3대벨트를 조성하겠다.”며 “기존 비엔날레와 김치축제,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역사적 공간 등을 잘 활용하면 광주가 ‘문화 수도’로 발돋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이를 위해 5월18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분교 유치,야외음악당 건립,2003년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한국지부 총회 유치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 무등산·어등산 생태보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푸른 광주 21’ 등 시민단체와 함께 에코 챌린지(Eco-Challenge)운동을 전개하며,빛고을 ‘나무 100만그루 심기’와 솔라시티(태양열 에너지 도시) 건설을 위한 투자도 확대할 방침이다.평동 외국인 전용단지에 환경 관련 기기 제조공장을 유치하고,대통령 공약 사항인 국립 식물원과 동물원 건립도 추진한다.전남도청 이전에 따른 도심활성화 대책과 도로 교통망 확충사업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동구 중앙초등학교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세우고 인근 ‘예술의 거리’를 활성화해 도심공동화를 막기로 했다.도심교통난 해소를 위해 공사 중인 지하철 1호선과 제2순환도로,평동산단 진입로 2구간의 개통을 앞당길 방침이다. 박 시장은 “지하철 시대에 대비해 현행 시내버스 노선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도심교통을 고속도로 및 국도와 연결하기 위해 제3순환도로 건설사업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인과 장애인,저소득층 주민의 생활 안정에도 강한 의욕을 보였다.그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5만여평의 부지에 노인 건강문화타운을 건립,노인들에게 건강과 재활,일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며 “여성 및 소외계층에 대한 취업 알선과 보육시설 확대에도 소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4만 7000여명에 대한 생계비와 자녀 학비 등의 지원 확대도 약속했다. 그는 “직원들이 변화에 뒤지지 않도록 의식개혁과 경영마인드 교육을 꾸준히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서울 아침 0도, 중부 영하권 ‘한겨울 추위’

    28일 중부 내륙 지역의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가는 등 한겨울 추위가 몰아칠 전망이다.기상청은 “28일 아침 대관령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지고,산간지역은 얼음이 어는 곳이 많겠다.”고 밝혔다. 아침 최저기온은 대관령 영하 7도를 비롯해 철원 영하 5도,충주·춘천 영하 2도,수원·청주 영하 1도,서울·대전 0도 등으로 예상된다.27일 아침에도 대관령,문산,동두천,철원이 영하로 떨어졌고,서울은 영상 1.7도를 기록했다. 한편 이날 오전 한라산과 지리산,무등산,장수,대전,청주,보은,울릉도,독도,백령도 등에서는 지난해보다 한달 정도 빠른 첫눈이 내렸다. 황장석기자 surono@
  • [우리고장 NGO] 광주환경운동연합

    ‘지구 차원에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천하자.’ 광주환경운동연합은 땅,나무,물,강,동물 등 자연을 그대로 지켜내는데 앞장서고 있다.이를 위해서는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실천’이 중요함을 차분히 알려나가고 있다. 쓰레기 줄이기,세제 남용 안하기,농약 안쓰기 등에서부터 푸른 도시 가꾸기,핵추방 운동,무등산 지키기 등 도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분야까지 실천적 과제를 제시한다.환경 파괴의 결과가 가져오는 해악들에 대해 주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자라나는 세대에 이를 가르치는 교육활동도 활발히 펼친다. 1989년 ‘광주 환경공해연구소’로 첫걸음을 내디딘 환경연합은 광주·전남 핵발전소 건설계획 철폐 공동투쟁위 결성,페놀 오염사태 규탄 및 수돗물 살리기 시민대회 등 환경보전 의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도심 철도 폐선부지 푸른길 가꾸기와 태양에너지 도시 만들기 등 각종 환경정책을 제안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광주 도심을 관통하는 경전선 구간(광주역∼효천역)이 2000년 폐선된 이후 이의 활용을 둘러싸고 광주시와 주민,시민단체간 마찰이 빚어졌다. 환경연합은 당시 시의 폐선 구간에 대한 경전철 건설 방침을 철회하도록 꾸준히 요구했다.마침내 시도 이 부지를 시민의 쉼터인 푸른길로 가꾸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환경연합은 현재 도심 철도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조성하기 위해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듣고 관련 체험행사도 준비중이다.또 광주월드컵경기장에 태양에너지 이용시설의 설치를 유도하고 신축중인 시 청사에도 이를 도입하도록 하는 등 광주를 ‘태양에너지 시범도시’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여름방학 동안에 추진하는 체험교육 활동도 호응을 얻고 있다.이들 프로그램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는 계기로 자리잡았다.어린이,통신원,감시단,주부 등을 대상으로 각종 환경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이수자들은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오염행위를 감시한다. 어린이들에게 자연 나들이,자연 그리기,생태기행,체험 환경교육 등을 통해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이밖에 국제 및 국내 연대,영산강 수질보전,반핵 및 핵폐기장 저지,쓰레기 감량 및 재활용,녹색교통운동 등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임낙평(林洛平) 사무처장은 “최근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 등 많은 피해도 마구잡이식 개발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라며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뜻있는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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