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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트니스센터 CEO 된 이훈

    피트니스센터 CEO 된 이훈

    얼핏 보면 ‘퇴직금 없는’ 연예인들의 부업 같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더욱이 연예계 주당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가 부업을 한다면 술집이 오히려 더 어울릴 것도 같고…. “돈 벌 욕심이라면 술집이 더 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술 마시면서 스트레스 푼다지만 그건 틀린 말이에요. 과음하면 속 버리죠, 안주 먹으면서 몸 버리죠, 다음날 피곤하죠. 인기를 먹고 자란 연기자로서 보다 긍정적인 방법을 찾았지요.” 하긴 그는 연예계의 대표적인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정 감독과 함께 권투를 하며 프로선수 자격까지 취득했다. 운동이 특기라는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운동 스트레스가 강박증이 되는 시대, 일반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가장 쉽게 알려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피트니스에서는 몸에 맞는 운동을 알려 주기 위해 기본적으로 1대 1 트레이닝(레디 액션 3세션)을 제공하고, 한가지 운동을 계속하려면 쉽게 싫증을 내는 아마추어들을 위해 그룹X에어로빅·태보·요가·살사·벨리 등 주당 50여 시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얼핏 보면 여느 피트니스클럽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피트니스업계에서 성공해 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란다. 무려 5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은행빚까지 내며 피트니스클럽을 오픈하게 한 꿈은 K1, 프라이드 같은 종합격투기 MMA(Mixed Martial Arts) 붐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불러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피트니스클럽 내에 복싱, 스턴트액션과 함께 MMA 도장이 있죠. 그저 단순히 치고 박고 피가 흥건해지는 뒷골목 싸움 같은 폭력이 난무하는 경기가 아니라 신개념 스포츠입니다. 맞고 쓰러지고 누가 이겨 주거나 져 주는 쇼가 아닌, 의(義)를 지키는 무도인의 정신을 잇는 스포츠죠.” 더블에이치에서는 MMA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와 정 감독을 비롯해 분야 별로 전문선수와 강사들이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앞으로 6개 도시에 더블에이치 체인을 더 열어 가능성 있는 선수를 육성해 K1, 프라이드에 진출시킬 계획이다. 더블에이치에서 피트니스로 종합격투기를 수련하고, 종합격투기가 대중화되면서 미국·일본·유럽과 같이 붐업을 이루는 데까지 예상기간은 2년이다. MMA 소개를 하면서 유독 그의 눈이 반짝인다.‘연기를 접을 작정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본업은 연기”라고 한 마디로 일축하는 그는 “연기는 인생이다.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면서 연기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배우에게는 차기작을 준비하기까지 공백을 갑갑해하며 지내기보다는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더블에이치와 MMA 육성에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의지다. 올초 SBS드라마 ‘세잎클로버’에 출연한 이래 피트니스 준비에 푹 빠져 있었다는 그는 연예인 봉사모임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회원으로도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그래서 피트니스의 수익역시 5%는 사회환원 차원에서 기부를 결심했다. 8월초 문을 연 이훈의 피트니스 500여명의 회원 중에는 정준호, 안재욱, 배용준, 정우성 등 친분이 있거나 드라마 촬영에 앞서 무술을 익히기 위해 등록한 스타들도 많다. 대다수의 회원은 더블에이치의 럭셔리한 분위기와 MMA, 스턴트액션 등 쉽게 접하지 못했던 프로그램에 이끌려 왔다. 하지만 격투기·권투 등 다소 과격해 보이는 프로그램에도 여성 회원들이 많다. “앞으로 우리 남성들, 정신 차려야 할 겁니다. 지금 4층에서 스턴트액션 프로그램을 듣는 여성들이 100㎏이 넘는 거구를 어깨 너머로 내려치는 연습에 몰입하고 있거든요.” 아, 그의 매력은 또하나 더 있다. 남성적이지만 그는 결코 ‘마초’가 아니라는 것. 남성호르몬이 지나쳐 마초로 여겨지는 여느 ‘남자다운 남자’와는 달리 그는 장난스러운 면을 갖고 있다. 운동강박증에 시달리면서도 지겹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때로는 직접 시범도 하는 그에게서 이훈의 매력이 빛난다.“더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한 우물을 파야한다던 지난 시대와 달리 이 시대는 동시에 여러개의 꿈도 이뤄지는 세상이니까요.”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엔듀로타고 산길질주

    엔듀로타고 산길질주

    엔듀로라는 오토바이는 일반적인 오토바이에 쇼바와 타이어 등을 바꿔 넣은 것으로 4륜오토바이인 ATV와는 속도감이나 스릴을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다. 인터넷 2&4오프로드(www.2and4.co.kr)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일대의 산으로 라이딩에 나섰다. ●폼은 끝내줘요 경기도 장흥의 휴게소에서 만난 그들은 멋졌다. 오토바이는 물론, 유니폼과 부츠, 고글에 헬멧까지 그야말로 폼났다.“전부 선수들인가요?”라고 묻자 총무인 한주현(34·매직모터숍 운영)씨는 “그런 건 아닌데요. 워낙 험로를 주행하다 보니 이 정도 장비는 필수예요.”라며 “어차피 차로는 갈 수 없으니 저쪽에 있는 오토바이 뒤에 타시죠.”라고 자리를 내줬다. 엔듀로 10대가 ‘부릉 부∼왕’하며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낸다. 모두가 무슨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처럼 멋진 모습으로 라이딩을 하는데 나만 카메라 가방 하나 둘러매고 매미처럼 김종구(30·회사원)씨 뒤에 매달렸다. 일렬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선두의 수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차로를 바꾸고 간격을 유지하고 달린다. 지나가는 차들이 신기한 듯 차 창문을 내리고 쳐다본다. 어째 쑥스럽다. 남의 뒤에 매달려가는 내 꼴이…. ●꽉 잡아요 오토바이 뒤에 타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여인이 남자의 허리를 꽉 잡고 달리는 모습을 영화에서 자주 보았다. 내가 종구씨 허리를 꼭 잡기가 왠지 찜찜하다. 그래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잡았다.‘부아아아 앙∼’굉음을 내며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30분을 달렸다.“꽉 잡으세요. 올라갑니다.” 오토바이들이 좌회전을 하더니 산길을 타기 시작한다. 울퉁불퉁 오토바이가 이리저리 요동친다. 뒤에 앉은 내가 중심을 잃어 오토바이가 넘어진다. 오토바이는 ‘웽∼’ 헛바퀴가 돌고 나는 옆으로 넘어졌다. 오토바이를 세운 종구씨는 “원래는 오프로드에서는 사람들을 태우지 않습니다. 운전자와 뒤에 앉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바로 넘어지거든요. 허리를 꽉 잡고 다리까지 제 허리를 감싼다는 생각으로 몸을 밀착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약간은 찜찜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는데 그의 허리를 꽉 잡고 몸을 바짝 붙일 수밖에. 일행은 이미 다들 지나가고 아무도 없다. ●천천히 가세요 입구를 지나자 폭이 1m도 안 되는 산길을 달린다. 어깨 너머로 속도계를 보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시속 60㎞가 넘는다. 흙먼지가 사정없이 날리고 바닥의 돌이 사방으로 튄다.‘왕∼앙’‘끼∼익’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으며 좁은 산길을 미친 듯이 달린다. 나무가 얼굴을 때린다. 흙먼지에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종구씨는 속도에 원한 맺힌 사람처럼 달려댄다. ‘붕’하고 굴곡이 있는 곳을 달리자 몸이 살짝 공중에 떠 정말 떨어질 뻔했다. 사나이 체면이고 뭐고 나는 “좀 천천히…!”라고 외마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묵묵부답. 이젠 나도 요령이 생겼다. 턱을 종구씨의 어깨에 올리고 전방을 주시하며 그와 같이 운전을 한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여 봤다. 이제 그와 나는 한몸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산길을 내달린다.‘슝∼끽’‘왕∼앙’ 정말 이러다 오토바이가 부서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웬만한 레포츠는 맛을 봤지만 이 엔듀로의 속도감과 스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보다 짜릿하다. 자동차로 시속 200㎞이상 달리는 것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달리는 것이 무섭다고 느껴지기는 처음이다.“어차피 늦은 거 천천히 갑시다.”라고 큰소리로 외치자 종구씨는 “괜찮아요. 꽉 잡고 계세요.”라며 뿌연 흙먼지를 뚫고 내달린다. ●엔듀로는 자신과의 싸움 한 시간쯤 달렸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리려 하는데 너무 힘을 줘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린다.“아니 도대체 왜 그렇게들 미친 것처럼 달립니까.”라고 묻자 종구씨로부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저도 물론 달리면서 두려울 때가 있지요. 그것이야말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오토바이에 오르면 다른 생각은 정말 100분의1초도 할 수 없습니다.‘나는 할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 바로 우리 엔듀로 모험의 요체입니다.” 엔듀로(Enduro)는 ‘참다’ ‘인내하다’라는 뜻. 오토바이에서 가장 중요한 게 험로를 달릴 수 있는 내구성이라면, 라이더에게는 오토바이를 제어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강창석(38·금호타이어대리점)씨는 “여럿이 같이 라이딩을 하지만 서로 도움의 손길을 쉽게 내밀지 않는 것은 한 번 도와주면 계속 도움을 청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엔듀로의 정신이라는 얘기다.2&4오프로드 단장 서승영(37)씨는 “힘들고 위험하지만 뿌옇게 올라오는 흙먼지와 친구하며 엔듀로를 타고 산을 오르면 심장이 쿵쿵 뛰고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 오른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그렇다. 정말 엔듀로는 매력있다. 사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빠져 볼 만한 그런 레포츠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올 가을부터는 나도 ‘엔듀로 맨’이다. ■ ‘초보부터 선수까지’ 이렇게 배워라 오토바이를 타본 사람도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2∼3번 교육받으면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 있다. 산을 오르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선 선배들의 조언과 철저한 연습이 필수. 보통 1년 정도 타면 어떤 길이든 능숙하게 주행할 수 있다. 주로 동우회 정모 때 배우는 것이 좋다.2&4오프로드 동우회(www.2and4.co.kr)는 초보자들을 위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회원들 간의 교류가 많다. 대한모터사이클연맹(KMF)에서 공식적으로 주관하는 오프로드스쿨은 없다. 다만 대한모터사이클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팀에서 자체적인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인들이 선수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방법으로는 우선 대한모터사이클연맹(KMF)에 소속된 팀에 가입한 후 연맹에 선수등록에 필요한 준비서류를 구비하여 제출하면 정식으로 선수활동을 할 수 있다. 라이선스 취득 시 준비서류는 증명사진 2장, 주민등록등본 1통, 면허증 사본 1통, 선수등록신청서 1부이다. 비용은 국제등급 3만원, 국내A등급 2만원, 국내B등급 1만원 등이다. 엔듀로 경기대회는 보통 1년에 3∼4회 정도 개최되며 경기 참여 인원은 60∼100명 정도이며 현재 전국적으로 18개팀 정도가 활동 중이다. 문의 (02)591-0088. ■안전장비 꼭 준비하세요 비포장도로는 부상위험이 생각보다 적다. 넘어져도 흙이나 나무들이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다만 바위에 부딪히거나 바이크에 깔릴 때를 대비해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뿐 아니라 가슴 팔 다리 등도 전용 보호대를 착용한다. 손에 나는 땀 흡수나 나무로 인한 부상을 막기 위한 장갑도 필수품. 헬멧은 10만∼20만원선, 부츠는 30만원대. 레이싱 슈트는 무척 비싸다. 상의만 100만원이 넘는 제품도 많다. 상·하의 합쳐 60만원대면 무난하다. 또 중요한 것은 사고에 대비한 프로텍터. 정강이나 허리보호대는 3만원 선. 선수용으로 상체를 모두 보호해주는 제품은 70만원대. ●오토바이는 국산 125㏄ 엔듀로가 90년대 말에 생산이 중단되면서 일제 야마하 등의 제품을 사용한다. 보통 일제는 700만∼800만원 대이므로 입문하는 사람들은 국산 중고 오토바이를 사는 것이 좋다. 보통 100만원 전후면 입문용으로 ‘딱’이다. 오토바이 구입 전 엔듀로 동호회에 가입해 선배들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좋다.
  • 투기조사 전담기구 신설

    정부는 국세청에 부동산투기 조사를 전담할 상설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또 1가구 2주택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리되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주택가격(기준시가)이 3억원 이하, 수도권에서는 1억원 이하일 경우 중과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다음달부터 주택담보대출을 가구별로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은 “오는 31일 발표될 부동산 종합대책에 정부 차원의 부동산 투기조사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24일 밝혔다. 국세청 본청에 ‘부동산거래(조사)관리국’을 만들고,2개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아울러 서울지방국세청·중부지방국세청 등 주요 지방청에 부동산 동향과 통계분석·투기조사를 전담할 과도 신설된다. 투입 인원은 최대 900명선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신설기구는 2주택 이상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주기적인 세무조사와 주택담보대출의 사후관리 등을 전담하게 된다.▲각 지방의 외지인 토지거래 현황 ▲보유기간별 부동산 현황 ▲연령·세대별 주택 보유수 ▲부동산 등기자료 수집 ▲각종 부동산 관련 자금의 출처 및 사용내역, 상환능력 조사 업무도 하게 된다.곽태헌 백문일기자 tiger@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EBS 스페셜(EBS 오후 10시) 세계는 지금 최첨단 광통신 전쟁시대를 맞고 있다. 사람들은 좀 더 빠르고 많은 양의 정보통신을 원하고 있다. 한국 정보화산업의 역사부터 시작해 광통신에 대한 개념 분석과 광케이블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또 이런 내용을 HD 고화질 영상으로 현장감 있고 생생하게 담아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1시25분) 미국 워싱턴에서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은 중국에 의한 탈북자들의 강제송환을 막기 위해 미국과 한국정부가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한인사회의 탈북자에 대한 관심과 동포애가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는데….   ●굳세어라 금순아(MBC 오후 8시20분) 재희와 금순은 데이트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금순은 휘성이 보고 싶다며 꼭 보여달라고 하는 재희가 고맙다. 오미자는 재희와 금순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혀 한다. 한편, 정심에게서 이혼하라는 말을 들은 성란은 눈물을 꾹 참고 시완과 상의해 보겠다고 말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키 172㎝에 몸무게 180㎏, 엄청난 체구의 주인공 이복순씨. 아이를 낳고 난 후 놀랍게도 체중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그녀의 눈물과 웃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365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내복 입는 사나이 김일수씨. 아무도 못말리는 내복맨의 유별난 내복 예찬론도 재미있다.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기준은 인영이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사실대로 말한다. 충격을 받은 희주는 다음 날 출장을 떠난다며 여행길에 오른다. 한편, 인영과 재민, 힘찬은 인영의 집에 놀러가고, 힘찬의 재롱에 가족들은 다들 즐거워한다. 희주는 인영과 기준이 함께 했던 별장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새로운 결심을 하고….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방학숙제를 마법으로 다 해결한 뒤 심심해진 사라는 투명마법으로 돌이네 집에 몰래 들어가지만, 서투른 마법 탓에 도중에 투명마법이 풀려 몸이 서서히 나타나고 그 모습을 주비가 보게 된다. 한편, 지배자의 부름에 후다닥 거실로 달려 나온 호구와 주비는 돌이의 모습으로 온 지배자를 보고 크게 놀란다.
  • [열린세상] 사이버 ‘양심5敵’ 몰아내자/강지원 변호사

    사이버상에 양심5적(敵)이 판을 치고 있다. 욕설·비방 퍼붓기, 야동·야사 유포하기, 허위사실·유언비어 퍼뜨리기, 이름·아이디 훔쳐쓰기, 남의 저작물 마구 쓰기 같은 것들이다. 딱히 양심을 팔아 먹는 일들이 이런 일들만은 아니겠으나, 요즘 사이버상에서 가장 극심한 몰양심을 5가지만 골라 재미있게 붙여본 별칭이다. 사이버세상은 어느 틈엔가 오프라인과 똑같이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마치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광장과 같은 ‘광장형’ 공간이 되어 버렸다. 하긴 원래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면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사람들끼리도 마치 한 광장에 모여 있는 것과 같은 광장형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처럼 영적으로나 가능한 현상들이 목전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우리나라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처음 발족할 때 창설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PC통신상에 음란물이 많이 떠돌아 다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정도였다. 그로부터 10년, 그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보니 10년만에 강산이 변한 것이 아니라 아예 또 하나의 세상이 창조된 것 같은 느낌이다. 숨소리, 목소리까지 소통되는 거대한 광장형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사람사는 세상이란 다 그런 것일까. 지금 이 온라인세상에서는 온갖 탈선과 범죄, 비행과 일탈, 타락과 악행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가고 있다. 오프라인의 그것들과 비교해보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광장성 때문에 더 큰 폐해가 나타나기도 한다. 소위 ‘개똥녀’를 비롯해 일단 표적이 정해지면 오프라인에서는 모여질 수 없는 수많은 인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공격을 퍼붓는다. 가히 사이버 ‘폭격’이다. 음란물의 수준도 옛날 포르노 수준이 아니다. 허위 사실로 중상모략하고 매장시키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남의 이름, 아이디, 주민등록번호를 몰래 쓰거나 음악 영화 등을 공짜로 마구 다운받아 쓰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오프라인에는 나름대로 법과 윤리·도덕 같은 사회적 규범이 있다. 그리고 곳곳에 경찰, 학교, 교회, 사찰 같은 존재들이 있다. 그런데도 어디 한시도 조용한 날이 있던가. 그런데 온라인에는 그런 것마저도 없다. 인간의 저변에 깔린 악성들이 아무런 제동없이 그대로 솟구쳐 올라오는 것 같은 양상이다. 마치 연못을 휘저어놓을 때와 같다. 연못이 평온할 때는 윗물은 다소 맑고 쓰레기는 바닥에 깔린다. 그런데 그 연못을 작대기로 휘저으면 온갖 쓰레기가 수면위로 올라와 전체가 볼썽사나워진다. 사람이란 그렇게 쓰레기 같은 악성을 타고 날까.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신병환자만 열심히 관찰한 이였으므로 어느 정도 편견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도 많다. 그러나저러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느 누군들 크고 작은 유혹에 혹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 아무도 없는데 나 혼자 슬쩍 해 볼 수 없을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아무 짓이나 내키는 대로 해 본들 누가 알아나 차릴까…. 순간순간 뜬구름처럼 스쳐가는 유혹과 충동과의 싸움은 결국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다. 혹 이상한 짓 한번 해볼까 하다가도 이내 ‘양심에 찔려’ 차마 실행에 나아가지 못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신독(愼獨)을 좌우명으로 살아온 지 오래지만 이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적지 아니하다. 양심은 법이나 윤리·도덕보다 더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개념이다. 오프라인에서 그런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똑같이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여야 한다. 사이버양심운동을 제창하는 소이이다. 강지원 변호사
  • 김석기 울산교육감 취임 하루만에 구속

    김석기(59) 울산시 교육감이 취임후 하루만인 23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울산지법 유길종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교육감 선거과정에서 금품을 뿌리고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김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유 부장판사는 “범죄의 특성상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높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김씨는 울산구치소에 수감됐고, 교육감 직무도 정지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6월 부인과 함께 울산 북구 모 음식점에서 학교운영위원 4명이 포함된 모 단체 회원 10여명에게 35만원 상당의 음식물을 제공하고,5월 충주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도 학교운영위원 등 교육 관계자 5명에게 12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전달하는 등 모두 5차례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1997년 8월 초대 울산시 교육감에 선출된 김씨는 당시에도 교육위원 선거과정에서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박완서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넘은 38선

    올해 안에 개성관광이 실현되리라고 한다. 조만간 시범관광도 있을 모양이다. 그런저런 보도 때문에 곧 고향 가게 됐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인사를 종종 듣는다. 귀향과 관광은 다르다. 내 고향마을은 볼 것 하나 없는 한촌이다. 지금 관광코스로 돼 있는 명승고적들을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가서 처음 보았다. 그때는 당일치기라도 기차 타고 가는 걸 수학여행, 걸어가는 건 원족이라 불렀다. 개성역에 내려서 역전에 정렬해있는데 아이들을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일본말로 부르면 ‘보구엔쇼’가 되는데 일본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할머니가 손녀를 찾으려면 그렇게 불러야 된다고 사전교육을 받은 모양이다. 할머니의 발음은 너무도 이상해서 아무도 그걸 알아듣지 못했다. 나만 안 나서면 할머니는 나를 못 찾을 게 뻔했다. 풀을 먹인 무명치마 저고리에 베보자기에 싼 임을 인 할머니가 창피해서 나는 끝까지 모른 척할 작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들 사이에 숨어있었다. 마침내 할머니가 그 갑갑한 일본말을 그만 두고 ‘완서야’ 하고 악을 쓰는 거였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할머니 앞에 나섰다. 할머니는 반 아이들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머나먼 20리 길을 이고 온 베보자기를 풀고 이건 선생님 드릴 것, 이건 동무들하고 나눠 먹을 것, 이건 서울 집에 가져갈 것, 몫을 짓기 시작했다. 기름이 잘잘 흐르는 쑥 송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떡이 촌스러운 할머니나 마찬가지로 창피하기만 해서 아무하고도 안 나눠먹고 집까지 끌고 왔다. 그리하여 6학년 수학여행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개성시내에 살아본 것은 그 다다음해 중학교 이학년 때, 일제의 소개(疏開)령에 의해서였다. 학교도 전학을 했지만 시골집에서 개성시내까지는 이십리 길이라 시내에 집을 얻고 다녀야만 했다. 일본이 패망한 건 방학 때여서 시골집에 있을 때였다. 조국이 광복된 소식도 사나흘 늦게 알려질 정도의 벽촌이었다. 시내에 나와 보니 무조건 기뻐 날뛰던 시골사람들과는 달리 화제는 온통 38선이 어디로 그어지나였다. 미·소가 북위 38도선으로 한반도를 나누기로 한 것은 벌써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듯, 초미의 관심사는 38선이 개성 어디를 지나나였다. 지리시간에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에 대해서 배워서 그게 뭐라는 걸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게 실지로 땅을 경계지을 수 있는 구체적인 선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초유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강대국들도 땅 위에 실질적인 금을 긋기는 쉽지 않았던 거 같다. 개성이라는 작은 도시를 놓고 그 선이 한때 왔다갔다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개성 북쪽 송악산이 38선이라고 하면서 미군이 주둔했다. 살기등등하고 질서정연한 일본군의 행진만 보다가 웃고 손 흔들고 장난치듯이 무질서하게 걸어 들어오는 그들이 전쟁에 이겼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았다. 미군이 주둔한 지 며칠 안 있다 38선이 잘못 그어져 개성이 소련군 점령지역에 들어갔다고 했다. 미군이 물러가고 소련군이 들어왔다. 별안간 민심이 흉흉해졌다. 가게 문을 닫고, 부녀자들이 바깥출입을 삼갔다. 경의선 기차도 봉동까지만 오고 개성까진 안 왔다. 서울과의 단절감은 원래 다니던 서울 학교가 그리운 나를 초조하게 했고, 엄마도 딸을 소련군이 있는 데서 피신시키고 싶어했다. 마침내 모녀는 일부러 더 남루한 복장으로 개성을 탈출했다. 개성에서 봉동으로 통하는 길에 야다리라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 한가운데가 38선인 듯 다리 이쪽은 소련군이 저쪽은 미군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기차가 없어서 도보로 떼 지어 가는 사람들을 미군도 소련군도 바라만 볼 뿐 검문도 제지도 없었다. 나는 다리 한가운데에 줄이 그어졌나, 새끼줄이라도 매놨나 찾아봤지만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봉동역에서 기차로 서울로 왔고, 그후 며칠 있다가 야다리 위에 그어졌던 38선이 잘못됐는지 다시 송악산 너머로 물러가고 그후 6·25까지 개성은 서울과 왕래가 자유로운 38이남 땅이었다. 내가 넘은 38선은 그러니까 진짜가 아니었던 것이다. 소설가
  • 여 “박사모 전사대는 黨조직” 야 “연정론 한나라 파괴공작”

    여야는 22일 두 가지 문건을 근거로 가시돋친 설전을 벌였다.한나라당은 전날 자신들이 공개한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 보고서를 놓고 ‘2라운드 공세’를 펼쳤고, 열리우리당은 ‘박사모 사이버전사대 108조 문건’을 문제삼아 역공에 나섰다. 여야가 이날 쏟아낸 구두성명이나 논평에는 분노를 넘어 경멸에 찬 말들이 난무했다.●‘연정 문건’ 공방 격화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은 이날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연정 제안이 ‘친노(親盧) 직계’의 치밀한 사전 각본에 의해 진행됐음이 드러났다.”면서 “연정론은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한나라당을 파괴시키기 위한 주도면밀한 시나리오에서 비롯된 정치적 음모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주장했다.이어 “다시는 이런 정치공작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력을 총동원할 것”이라며 여권의 사과와 문건 작성 경위 해명을 요구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도 “과거 정권도 힘이 빠질 때 비선조직을 운영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면서 “노 정권이 정상적인 공조직이 아니라 비선조직에 의해 국정을 운영했음이 드러났다.”며 국정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민병두 전자정당위원장은 “한나라당이 연정에 대해 무대응 전략으로 나오다가 갑자기 출처가 불분명하고, 비본질적인 문건을 제시하면서 연정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박사모 사이버전사대’ 날 선 설전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 회원들이 여의도연구소의 문건에 따라 ‘사이버 전사대’라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역공에 나섰다. 전병헌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사이버전사대는 지난 2월 작성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2007년 승리를 위한 당 혁신방안’ 문건에서 나온 것”이라며 ”사이버전사대는 한나라당 공조직”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박사모 사이버전사대 108조는 여연이 제안한 1000명의 핵심전위를 만들려는 과정으로 보인다.”며 “박정희 유신시대의 정치공작과 여론조작 왜곡의 망령이 인터넷 상에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자발적인 팬클럽을 유신시대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아무도 웃지 않는 코미디”라고 꼬집은 뒤 “여당이 그런 식으로 대응을 한다면 열린우리당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온갖 낭인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반박했다.전광삼 박지연기자 hisam@seoul.co.kr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6) 양심적 병역거부의 해법(타이완)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6) 양심적 병역거부의 해법(타이완)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가 충돌하고 있다.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스스로 감옥행을 선택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는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국민인권의식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7.5%만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5년 전부터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타이완을 찾아 도입 과정과 복무 실태를 살펴봤다. ■ 대체복무자의 힘겨운 하루 |타이베이·타이중 나길회 특파원|군대생활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이다. 아무리 양심적이고 종교적이라고 해도 병역거부를 군복무 기피 수단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타이완의 대체복무제를 살펴보면 이런 생각은 바뀌게 된다. ●장애인 돌보면서 관절염으로 고생도 “체력 소모만 놓고 본다면 군대 간 친구들이 더 힘들겁니다. 하지만 대체복무도 이에 못지 않게 어렵고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타이베이(臺北)시 양밍(陽明)산 자락에 자리잡은 ‘시립 장애인 보호소’의 한 교실. 미술치료 수업 중이지만 대체복무자 리런지에(21)는 누구보다 분주하다. 지도교사와 함께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줘야 할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도 데려다 줘야 한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리의 몫이다. 불교신자로 병역을 거부한 그는 “하루가 정신없이 간다.”며 웃어보였다.15∼60세 장애인 400여명이 생활하는 이곳에는 200여명의 직원 외에 리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5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물품관리와 같은 행정업무와 더불어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뒷바라지하는 게 군복무보다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다른 대체복무자들을 보면 알게 된다. 대체복무자인 밍청강(明成剛·21)은 이곳에서 근무한 뒤 관절염을 앓게 됐다. 장애인들을 계속 업어서 옮겨 주다 보니 다리에 탈이 났다. 밍은 “대체복무자들은 한마디로 장애인들의 손발이 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소변을 받아내기도 하고 감정조절이 안되는 일부 장애인한테 맞는 일도 있다. 천이밍(陳一銘·24)은 “총을 들지 않아도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돼 있지만 신앙의 힘이 아니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군대 간 친구들도 이해해줘” 타이완의 대체복무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2000년 5월 시작됐다. 지금까지 이 제도로 교도소행을 면한 이들은 119명.33만군에 비하면 적은 숫자라 군 전력에는 손실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 있다. 대체복무자들의 일은 다양하다. 독거노인을 돌보는 일과 홍수와 같은 재난 구조 활동에도 투입된다. 타이완 중남부의 타이중 도청 사회국 왕슈옌(王秀燕) 국장은 “1999년 대지진 복구 작업에서 대체복무자들이 큰 활약을 했다.”면서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성실하기로 소문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한 친구들도 대체복무자들을 인정하고 이해한다고 한다. 타이중 도청에서 근무하는 대체복무자 류카이이(劉凱逸·22)는 “대체복무제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친구들이 몇명 있었지만 국가를 위한 봉사로 수긍하게 됐다.”고 전했다. ●철저한 심사로 병역기피 논란 차단 타이완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 제도를 도입하는 데 ‘가짜 지원’이 문제점으로 부각됐다. 그래서 철저한 대책을 준비했다. 내정부(우리나라의 행자부), 국방부, 학계, 종교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중앙대체복무심사위원회에서 신청자의 신앙, 동기, 심리 등을 엄격히 심사하고 있다. 심사 후 종교 사유를 가장해 대체 복무를 신청한 것이 발각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대체복무 기간은 일반 복무보다 기간을 더 길게 했다. 중타이리(鍾台利) 역정서(우리나라의 병무청) 서장은 “지금까지 위장 신청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면서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없어 초기에 1.5배 더 근무시켰던 것을 2003년부터는 일반 대체복무자는 2개월, 종교 사유 대체복무자는 4개월 더 근무토록 바꿨다.”고 말했다. kkirina@seoul.co.kr ■ 대체복무制 시행서 정착까지 |타이베이 나길회특파원|만 5년이 지난 타이완의 대체복무제도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지엔시지에 평화추진기금회 집행장은 “군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가는 것은 가혹하다.”면서 “지난 5년간 이들을 구제하면서 타이완이 잃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타이완의 대체복무제를 입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당시 입법위원(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었던 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1996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주장했던 그는 법안을 발의하고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을 이끌어냈다. 각계각층, 특히 입영을 앞둔 학생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한 끝에 거둔 성과다. 그는 “몇백명이 빠져도 국가안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이들은 ‘병역기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준다면 한국에서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를 도입하는 데 지엔시지에가 있었다면 이를 정착시키는 데는 중타이리(鍾台利) 역정서 서장이 있었다. 대체복무자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군대에서는 양이지만 사회에서는 맹수”라고 표현했다. 군대에 가기를 거부하는 그들도 대체복무에서는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왜 어렵게 생각하는 모르겠다.”면서 “현대전은 화력전이 아님을 주지시켜 군력 감축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복무기간을 길게 해서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고 확실한 심사단체를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년 동안 대체복무제와 관련해 전혀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2000년 당시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슈아이화민 현 입법위원(국방위원회 소속)은 “위장지원과 같은 문제는 없었지만 근무지역의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모 재단에서 일하게 된 일부 대체복무자들이 재단의 일반 직원들이 받는 배당금을 받은 일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 비전문가인 대체복무자들을 전문성이 필요한 최일선 현장에 배치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국방부 출신인 만큼 군력 감축에는 신중한 그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다.“징병제 하에서 ‘공평’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들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 하루 빨리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kkirina@seoul.co.kr ■ 미국·프랑스등 38개국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1948년 유엔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18조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사상·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후 유엔은 지속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법과 관행 검토를 요청했다. 지난해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을 포함한 유엔인권위 53개 이사국은 캐나다, 영국 등 34개국이 공동으로 제안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 공동 제안 국가에는 내전을 겪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이 포함돼 있다. 대치 상황이 반드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유엔에 1997∼2000년 보고된 각국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국가는 프랑스, 미국, 러시아, 독일 헝가리 등 38개국에 이른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관행적으로 이들이 총을 들지 않도록 배려하는 국가도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의 경우 군지휘관이 여호와의 증인을 군 취사 담당 등과 같은 비전투적 복무에 배정하고 있다. 또 유고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자는 비무장 복무를 허락한다. 콜롬비아도 전투나 적대행위에 참가하지 않고 병역을 마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본프레레 “자진사퇴 않을 것”

    본프레레 “자진사퇴 않을 것”

    “지금으로선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21일 K-리그 올스타전이 펼쳐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최근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조 본프레레(59)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당초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통역만을 대동한 채 일반 관중석에서 끝까지 경기를 관전했다. 지난 17일 사우디전 참패 이후 숙소에서 두문불출, 전날 전야제에 초청을 받고도 불참한 것에 견줘 대조적인 모습. 경기 직전 내빈 소개 때 관중들의 야유를 듣기도 한 본프레레 감독은 인터뷰에서 “(해외파와 국내파의) 단 이틀간의 연습으로 좋은 경기를 펼칠 감독은 아무도 없다.”고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그러나 1년 2개월 동안 나를 향해 쏘아올린 팬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지적당한 부분들은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해 향후 자신의 언행과 대표팀 운영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언론과의 관계를 비롯, 자신의 본심과는 다르게 내비치고 얽혀졌던 부분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는 뜻. 그러나 퇴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답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그동안 나는 베스트멤버를 솎아내기 위한 선수 선발에 치중해 왔고, 이 선수들은 분명히 독일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면서 “따라서 현재로서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사우디전 이후 숙소를 떠나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면서 “기술위원회를 비롯,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퇴진에 관련한)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전달받거나 상의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재신임될 경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기술위원들과의 접촉을 더 원활히 하고, 선수들과 더 많은 훈련을 하기 위한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6)초의·추사 그리고 정약용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6)초의·추사 그리고 정약용

    이맘때면 생각나는 차가 있다. 바로 ‘눈물차’다.‘눈물차’에 대한 사연은 이렇다.1996년의 일이다. 별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자우홍련사 작은 연못에 둥둥 떠내려오고 달빛은 풀벌레들의 합창에 일그러지던 날이었다. 초의스님이 ‘동다송´에서 말했듯이 깊은 밤 대자연의 품속에 빨려드는 풍광을 벗삼아 한잔의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스님 계십니까” 밤중에 절을 찾는 나그네는 드물다. 아주 친한 도반이나 절 식구만이 늦은 밤 사찰을 찾을 수 있는 법인데 연락도 없이 찾아든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해남의 신문사, 농민회 등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역활동가들이었다. 낯익은 얼굴들이었고 10여명 가까이 되는 대식구였다. ●새로운 茶문화 생산공동체 구성 자우홍련사 툇마루는 때아닌 손님들로 꽉찼다. 한잔의 차를 돌리고 대뜸 찾아온 연유부터 물었다.“스님 저희들이 차 공부를 좀 하고 싶습니다. 저희들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뜻은 간단했다. 향후 환경과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농촌지역에 어울리는 새로운 차문화 생산공동체를 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당돌한 제안이었다. 생산과 소비가 연결된 차문화공동체 구성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제안에 망설여졌다. 생각해보겠다며 그들을 돌려보냈지만 못내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그후로 대여섯차례 방문하며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결국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작명을 했다. 남쪽에서 늦게 차를 시작한다는 뜻을 가진 ‘남천다회’라고 명명했다. 어떤 농사든 어떤 계획이든 서둘러서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시작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한달에 두 번씩 공부를 하기로 했다.‘동다송´‘다신전´, 그리고 행다와 차에 대한 것들도 공부를 했다. 젊은 그들에게는 열정이 있었다.1997년부터 놀고 있던 땅 8000평에 차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우리가 택한 농법은 철저하게 친환경농법이었다. 화학비료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자연의 기운으로만 차밭을 조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10년까지는 수확을 바라지 않을 작정으로 자연에서 나오는 부엽토만 퇴비로 사용했다. 조금 느리지만 인간과 호흡하는 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주경야독이란 말을 그들을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낮에는 차밭을 가꾸고 밤에는 차 공부를 늦게까지 하느라 모두들 열심이었다. 차밭은 4000평,5000평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과 중국의 차 생산지와 다창들 그리고 국내외 유명 다원들을 둘러본 그들의 안목은 점차 넓어지고 깊어졌다.7년째 되던 해인 2002년 4만여평의 차밭에서 생엽 200㎏을 채취했다. 그리고 제다한 가공량은 40㎏.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작은 양이었다. 차브랜드는 ‘손덖음 첫물차’로 했다. 기계적인 영농이 아닌 손으로 덖는 첫물차만을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첫차를 제다해 일지암에서 초의스님에게 제사를 지낸 후 모두 모여 차를 마시며 기뻐했다. 그날의 가장 아름다운 사연은 3000평의 차밭을 가꾼 남천다회 부부 이야기다. 차농사를 시작한 지 5년만에 젊은 부부는 고작 4통의 차를 손수 만들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차들을 이불속에 넣고 눈물을 훔치며 밤을 꼬박 샜다고 한다. 참으로 눈물나는 눈물차 이야기인 것이다. 이같은 사연이 담긴 첫물차 이름을 남천다회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눈물차’로 명명한 것이다. 그날도 바로 오늘같은 밤이었다. 그때의 기쁨은 차인으로서 또 하나 기억할 만한 역사로 남아 있다. 이렇듯 ‘인연’은 모든 것을 바꾼다.18세기 최고의 개혁적인 지식인들이었던 초의스님,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의 인연은 당대 조선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 이시대까지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산에 유서와 시학 배워 초의스님은 24세 때인 1809년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을 아암 혜장스님을 통해 먼저 만났다. 아암 혜장과 정약용은 혜장이 4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년 동안 교류했다. 정약용이 아암 혜장에 보낸, 차를 청하는 편지인 ‘걸명소(乞茗疏)’는 지금까지도 차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걸명소´에는 “을축년(1805년)겨울 아암선사에게 보냄. 나그네는 요즘 차만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약으로도 마십니다. 글 중의 묘함은 육우의 ‘다경´삼편이요, 병든 몸은 누에인 양 노동의 칠완다를 들이킨다오” ‘소’의 형식을 빌린 다산의 ‘걸명소´는 노동의 시와 육우의 다경 등에서 보여지듯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다도에도 깊은 경지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암 혜장이 세상을 떠난후 초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며 유서(儒書)와 시학(詩學)을 배웠다. 초의스님은 다산을 스승으로 극진하게 모셨다. 초의스님은 1813년 다산의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때 마침 내린 비로 인해 장삼자락이 젖어 다산초당을 방문하지 못했다. 다산에게 가지 못한 초의는 안타까운 마음에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슬프도다. 이 적은 몸 하나 나에게 선인의 경거술이라도 지었더라면 빗속으로 산넘어 날아갔을 텐데.” 초의스님이 정약용을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가 있다.‘탁옹(정약용의 별호)선생에게 드림’이란 시다.“부자는 재물로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진이는 말로써 떠나보내네. 지금 선생께 하직하려 하지만, 저는 마땅히 드릴게 없습니다. 먼저 공경하게 누추한 마음 펼쳐 은자의 책상앞에서 말씀드리리라. 하늘이 맹자 어머니같은 이웃을 내려주셨네. 덕성과 학업이 나라의 으뜸이요. 문장과 자질이 함께 빛나시네. 편안히 머물 때도 항시 의로움을 생각하고 실천에 나서면 어짊을 보였네. 이미 넉넉하면서도 모자란 듯 하였고 항시 비우고 남을 포용하였네. 내 이런 도를 구하기 위해 멀리 와서 정성을 드립니다. 이제 또 헤어지는 자리에 종아리를 걷고 가르침을 청합니다. 수레가 떠나갈 때 주신 말씀은 가슴에 깊이 새기고 또 띠에다 써두렵니다.”라며 감사하고 있다. 훗날 초의가 조선의 신진사대부들과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었던 유학적 터전은 정약용에게 받은 것이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많은 교류를 했다.1812년 가을 초의선사와 정약용은 월출산 백운동에서 월출산 외경을 그렸다. 초의스님은 백운도(白雲圖)를 그렸고, 다산은 청산도(靑山圖)를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의 말미에 시를 지어 붙였다.1823년 대둔사지 편찬에도 함께 참여했다. 초의스님은 수룡스님과 함께 편집을 담당했고, 호의와 기어스님이 교정을 보았고, 완호와 아암스님이 감정했으며 정약용이 필사를 했다. 정약용이 해배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교류는 지속되었다. 초의스님은 한양을 방문할 때면 늘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에 머물렀다. 수종사 인근 마현마을에는 그의 평생 스승 정약용과 정학연이 살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관계 떠나 수행자로 다산과 그의 아들은 수종사의 샘물로 늘 차를 달여마셨다. 한양에 온 초의스님은 수종사에 머물며 다산과 교류했던 것이다. 이렇듯 다산은 평생 초의스님의 스승 노릇을 하며 그의 안목을 더욱 깊고 넓게 해주었다. 다산 정약용은 차인으로 차를 직접 제다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제다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떠날 때 제자들에게 차를 만들어 마시며 신의를 지켜나가도록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스승과 제자로서 유학을 배운 것만이 아니었다. 사상적으로 유·불·선에 대한 폭넓은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차에 대한 제배 및 제다 그리고 행다 등 다양한 논의도 함께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자신을 스승으로 모신 초의스님에 대해 다산은 스승과 제자관계를 떠나 한 사람의 존귀한 수행자로 평생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초의스님이 평생의 도반(道伴)인 추사 김정희를 만난 것은 30세인 1815년이다. 초의스님은 그때 처음으로 한양에 올라가 2년 동안 머물렀다. 정약용의 주선으로 한양으로 올라간 것으로 추측되는 초의스님은 서울 두릉(杜陵)에 사는 다산의 아들 유산 정학연, 운포 정학유, 자하 신위, 해거 홍현주 등과 교류했다. 이때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생 산천 김명희, 금미 김상희와도 사귀었다.1786년 같은해에 태어난 초의와 추사는 한눈에 서로 뜻이 통했다. 당대의 석학인 옹방강, 완원 등과 교분을 맺고 청의 금석학 시문 전각등을 깊이 연구해온 젊고 개혁적인 신진사대부였던 추사는 청의 상류사회에서 중국의 고급 차문화를 배워 차에 대해서도 해박했던 것이다. 추사가 가끔씩 초의스님에게 자신이 구한 중국의 고급차를 보낼때 초의스님이 중국차에 대해서 어떤 것은 참으로 진미가 있고 어떤 것은 가짜 느낌이 난다고 했던 것은 그같은 교류를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추사는 차에 대해 ‘광적’이었을 정도로 애착이 강했던 것 같다. 승설(勝雪), 고다노인(苦茶老人), 다문(茶門), 일로향실(一爐香室) 등 차에 관한 수많은 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초의스님에게 차를 선물받고 써준 저 유명한 명선(茗禪)을 비롯, 죽로지실(竹爐之室), 다로경권실(茶爐經卷室), 다산초당(茶山艸堂) 등 차에 관한 수많은 글도 남기고 있다. 일지암을 맨처음 방문한 사람은 추사도 그의 동생들도 아닌 아버지 김노경이었다. 완도 고금도에서 4년동안 유배생활을 하다 풀려난 김노경은 그의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초의스님을 알고 싶어 일지암을 찾은 것이다. 일지암에서 하룻밤을 머문 김노경은 시·서·화등 다방면에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초의스님에게 첫눈에 반했다. 초의스님은 김노경에게 일지암의 유천에 대해 시로 답한다. “내가 사는 산에는 끝도 없이 흐르는 물이 있어, 시방에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채우고도 남는다. 각자 표주박을 하나씩 들고와 물을 떠가라. 갈때는 달빛 하나씩을 건져가라.” 초의스님의 시에 김노경은 유천의 물맛이 소락의 물맛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한다.“1840년 9월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며 초의스님을 찾아 일지암을 방문한다. 오롯한 가을의 풍광에 휩싸인 일지암에서 초의스님을 만나 추사는 애틋한 하룻밤을 함께 지낸다. 동지부사의 고위직에서 하룻밤 사이에 유배를 떠나는 추사에 대해 초의스님의 위로는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후 초의스님은 자신의 제자이자 추사의 제자였던 허유를 통해 제주도로 차와 서신을 보냈다. 제주도에서 초의스님의 차와 서신을 받아본 추사는 그 고마움에 ‘일로향실’이란 글을 써서 허유편에 보냈다.‘일로향실’은 지금도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다. 추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초의스님은 1843년 봄 제주도로 건너간다.1년여 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초의와 추사는 차에 대한 즐거움과 학문적 교류의 폭을 넓혀간다. 추사는 이때 초의스님을 통해 선불교에 대한 혜안을 넓힌다. 초의가 다녀간 다음 해에 추사는 세속의 각박한 인심을 따르지 않고 어려움속에서도 그를 따르던 제자 이상적에게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세상에 선보인다. 소나무와 잦나무 지조는 눈이 내린 후에야 그 절개를 알수 있다는 화제(畵題)를 지닌 ‘세한도’는 세속을 완벽하게 품어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질곡에 대해 울분을 터트려야할 추사로부터 이같은 작품이 유배지에서 나왔다는 것은 초의스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세한도 등 명작들 초의 영향 커 초의스님은 제주도에서 차의 재배를 시도한다.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추사를 위해 차의 재배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같은 인연이어서일까. 지금 제주도에는 국내 굴지의 회사가 운영하는 광대한 차밭이 존재한다. 초의스님은 1851년 추사가 보내온 서간문을 모은 ‘영해타운´(瀛海朶雲)을 책으로 묶어낸다.‘영해타운´은 1840년부터 1848년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추사가 보낸 서신을 차곡 차곡 모았다가 책자로 편서한 것이다. 초의스님이 추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절절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추사는 북청유배에서 풀려나 과천에 머물며 초의스님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소동파의 생일날 과천 사람이’란 편지는 그러한 추사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큰눈이 내리고 차를 마침 받게 되어 눈을 끓여 차맛을 품평해 보는데 스님과 함께하지 못함이 더욱 한스러울 뿐입니다. 요즘 송나라때 만든 소룡단(小龍團)이라는 차 한 개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보물입니다. 이렇게 볼 만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한번 도모해 보십시오. 너무 추워 길게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초의스님은 추사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차를 보내달라는 추사의 청도 제때 지키지 않았다. 추사는 제때 차를 부쳐주지 않는 초의스님에게 익살섞인 ‘최후의 통첩‘도 보낸다.“지금 지체없이 보내지 않으면 덕산의 방과 임제의 할로 경책하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초의스님이 차를 보내오면 “과천의 샘물로 차를 달여 시음하니 과연 천하의 제일가는 차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추사가 초의스님과 그의 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던 추사가 1856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초의스님은 깊이 슬퍼했다. 슬픔에 못이긴 초의스님은 추사가 세상을 떠난 3년후 ‘완당김공제문’(阮堂金公祭文)을 쓴다.“오호라 그대와 나의 42년 동안의 아름답던 우정이여. 그 우정일랑 다음에 저 세상에서도 오래 오래 이어나가십시다. 나는 그대의 글을 받을 때마다 마치 그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고 그대와 만났을 때는 진정 허물이 없었습니다. 그대와 나는 손수 뇌협과 설유를 달여 마시곤 했는데 그러다 슬픈 소문이 귀에 닿으면 적삼 옷이 함께 젖기도 했습니다. 슬프다. 그대를 먼저 떠나보내는 나의 애끓는 심사여. 황국이 다시들고 흰눈이 내리는데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늦게 그대의 영전에 당도했을꼬. 원망일세 원망이로세. 하늘과 땅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해도 오직 그대는 나의 심사를 알것입니다.”라고 애절하고 통절한 마음을 적고 있다. 추사를 보낸 초의스님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떠나버린 그를 잊지 못했다. 초의, 추사, 다산은 이렇게 거대한 변화의 담론이 진행됐던 18세기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들이 엮어낸 인연의 바다는 새로운 세기에 목말랐던 많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눈물차를 만들어낸 남천다회도 마찬가지다. 200여년이란 시공을 뛰어넘어 일지암과 초의스님의 선차(禪茶)의 인연이 오늘 이시대에 생산과 소비, 그리고 문화가 결합된 진정한 차의 세계를 열려는 움직임을 싹틔우고 있는 것이다.‘눈물차’를 만들며 차문화생산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남천다회는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 차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지암 암주)
  • [시론] 부동산 대책,그 뒤가 중요하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시론] 부동산 대책,그 뒤가 중요하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부동산 시장 안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만큼은 놀랄 만하다. 어지간하면 시장의 힘에 두 손을 들만도 한데, 그 수많은 부동산 대책이 시장 앞에 맥을 못 추면서도, 그럴 때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기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지, 또한 그 끝에서의 승리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정부가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8월말 내놓기로 되어 있는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 종합대책, 그 내용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예측하고 있다. 다시 말해 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유 재산권이라는 절대 불가침의 큰 틀을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시장 안정 대책이라기보다는 투기억제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투기를 잡자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부동산 거래의 실명제가 확립되어야 하며, 실거래 가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허점을 이용한 투기 양상이 근절될 수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시장 투명성은 보장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정부가 발표할 부동산 대책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투기가 근절되고 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미시적인 대책과 더불어,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다른 경제 정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시중 부동 자금이 어떤 식으로든 흡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과도한 유동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작년 하반기에 발표된 정부의 종합투자계획 중 투기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재고해 보아야 한다. 이 계획의 주된 내용들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행정중심 복합 도시 이전, 기업도시 육성 등 건설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정책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수도권에 국한되었던 부동산 투기 현상을 지방으로 확산시켰다는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8월말 발표될 예정인 정부의 대책에 이러한 큰 부분까지 고려된 정책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중 자금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저금리 기조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그나마 미약한 경기 분위기를 망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건설 경기의 무리한 부양을 멈춘다는 것은 최근 내수의 유일한 성장축인 건설 투자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동산 투기 억제와 단기적 경기 회복 그 어느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만약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경제 정책을 포함한 모든 정책들 중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면, 이번 8월에 발표되는 투기 억제책 그 이후의 다른 경제 정책들의 뒷받침이 더 중요한 것이다.
  • [스포츠 라운지] ‘인라인 요정’ 궉채이

    [스포츠 라운지] ‘인라인 요정’ 궉채이

    새벽 5시40분. 알람소리에 소스라치듯 눈을 떴지만 어제 12시간 훈련 탓에 꽁꽁 뭉친 근육은 18살 소녀를 한없이 침대로 끌어내린다. 까마득한 하루 일정을 생각하면 비치는 햇살이 마냥 밉지만 소녀는 조그만 입술을 앙다물더니 번쩍 몸을 일으켜 운동장으로 달려나간다. 종일 달리기와 웨이트트레이닝, 스케이팅을 반복하다 집에 오면 오후 6시 반. 요즘 10대들에겐 너무도 이른 시간인 저녁 10시쯤 피곤에 잔뜩 전 몸을 누인다. 합숙 훈련지인 경북 영주에서 만난 그에게 이래도 운동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지금 쓰러지면 이제까지 해온 운동은 어떡해요. 금메달 따면 전부 씻겨내려가니까 괜찮아요.”라고 수줍게 답한다.168㎝,50㎏ 깡마른 체구의 소녀는 바로 2005세계롤러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8월24일, 중국 쑤저우)에서 성인무대 데뷔전을 갖는 ‘인라인요정’ 궉채이(18·안양 동안고 3년)다. ●전이경을 좋아한 소녀, 인라인 요정되다 1994년 2월 경기 오산시 한 가정집.TV 앞에 앉은 8살 채이는 반짝이는 두눈을 감을 줄 몰랐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000m에서 자신보다 10살 많은 우상 전이경(당시 18세)이 멋지게 빙판을 가르며 금메달을 따내 대회 2관왕에 오른 것. 채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조그만 손으로 다독이며 머릿속에 쇼트트랙 여왕의 꿈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하지만 채이가 다니는 오산초등학교에는 쇼트트랙 팀이 없었다. 실망감에 풀이 죽었지만 채이는 어느날 운동장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지치는 또래들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운동회만 열리면 계주 마지막 주자로 나섰던 채이이기에 쇼트트랙 스케이트와 비슷한 인라인 스케이트도 자신이 있었던 것. 걸림돌은 공부를 원하는 부모의 반대였다. 채이는 친구 집에 간다고 속이곤 스케이트장으로 향하며 몰래 꿈을 키워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3등상을 탄 어느날 채이는 부모 앞에 메달을 놓고 물었다.“제가 공부로 전국 3등을 할 수 있을까요.”그래도 설득에 넉달이 걸렸다. 군계일학이었다.2001년 중학교 2학년 때 세계선수권대회 주니어부에서 당당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냈다. 이듬해에는 금2, 은1개를 따내며 때마침 분 인라인 열풍과 함께 ‘요정’이란 칭호도 얻었다. 다음 대회에서 은1, 동1개로 주춤했지만 지난해 금2, 은2, 동1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채이는 “2003년에 주춤했을 땐 허리도 아팠고 스케이트장 컨디션에 적응도 제대로 못하는 등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모두가 유명세에 빠져 운동을 등한시했다고 비난하더라.”면서 “그때 나는 요정이 아니라 실력으로 대접받는 인라인 선수일 뿐이라고 굳게 마음먹었다.”고 돌아봤다. ●세계선수권에서 성인무대 데뷔 채이는 오는 24일부터 중국 쑤저우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생애 첫 성인무대에 선다. 테크닉과 몸싸움에서 주니어부와는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웨이트트레이닝과 자리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경기운영능력 익히기에 시간을 더 쏟았다. 하지만 경기경험이 풍부하고 타고난 체력까지 뒷받침되기 때문에 이번에도 금빛 물결을 쳐줄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채이는 “지금은 운동에 모든 것을 걸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세계대회 금메달뿐”이라면서 “20대 중반이 되면 그때는 모든 것을 걸지 않아도 되는, 일반적인 그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며 눈썹을 짙게 드리운다. 잠깐 진지해진 눈빛이 금세 생긋 활기차게 돌아오는가 싶더니 “아까 제 성이 화교성이냐고 물으셨죠. 글쎄 얼마 전엔 다쳐서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 언니가 대뜸 코치님한테 ‘우리말이 통하는 분인가요.’라고 물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요.”라며 어느새 또래 소녀로 돌아가 생글생글 웃는다. 글 사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궉채이 Q&A ▶생년월일은. 1987년 5월15일 경기 오산에서 태어났어요. ▶키랑 몸무게는. 168㎝에 50㎏인데 훈련량에 따라 2㎏이 왔다갔다 해요. ▶학교는. 오산초교를 다니다 인라인 때문에 범계초교로 옮겼어요. 이후 귀인중을 거쳐 안양 동안고를 다니고 있죠. ▶가족은. 아버지 장원(50)씨와 어머니 윤옥환(47)씨 사이에 언니 두명과 남동생 한명이 있어요. ▶궉씨는 중국 성씨? 통계청 발표에서 보니 전국에 240여명이 살고 있는 분명 우리나라 성이에요. 선산과 순천, 청주에 세 본(本)이 있고 저는 청주 궉씨 19대손이랍니다. ▶취미는. 음악 듣길 좋아해요. ▶주요 경력은. 2001년 세계 주니어롤러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고 2002년엔 2관왕,2004년에도 2관왕 했죠.
  • [주간 물가 동향]

    [주간 물가 동향]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배추·무 등 채소류 값이 급등하고 있다. 반면 포도 등 제철 과일의 출하로 과일 값은 줄줄이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18일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 따르면 고랭지 배추는 물량은 많으나 무더위로 짓무름 현상이 나타나면서 좋은 품질의 배추가 많지 않아 지난주보다 700원(58%)이나 오른 19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무도 더위로 산지 작업이 어려워 출하량이 감소해 시세는 전주보다 500원(36%) 오른 19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특히 상추(100g)는 더위로 잎이 얇아지면서 무름 현상이 나타나 전주보다 300원(75%)이 오른 700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작년동기 (280원) 보다 무려 2.5배 비싼 것이다. 포도(5Kg)는 상주지역뿐만 아니라 김천지역의 노지포도 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반입량이 크게 늘어 전주보다 8300원(42%)이나 내린 1만 1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토마토(1Kg)는 철원과 화천지역의 출하량 증가와 사과·배 등의 출하가 늘어 소비가 분산되면서 전주보다 700원 (24%) 내린 2200원, 사과(1Kg,5개)는 충주·제천 등 중부지역으로 출하지역이 확대되면서 햇사과 반입량이 크게 늘어 전주보다 300원 내린 2800원에 거래된다. 육류는 돼지고기만이 출하물량 증가로 삼겹살(100g)과 목심(100g)이 각각 80원,100원씩 내려 1650원,1430원에 거래되고 닭고기·한우 등은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블루버드의 냠냠 다이어리] 힘 부칠 땐 오징어 부추겨봐

    [블루버드의 냠냠 다이어리] 힘 부칠 땐 오징어 부추겨봐

    더운 날씨에 안녕하신지요?  더운 날엔 뭐니뭐니 해도 불을 멀리할 수 있는 무침 요리가 ‘왔다’죠? ㅎㅎㅎ 부추한단을 사다 만두도 빚고 전도 부쳐 먹었는데 식구가 적어서인지 아직도 반이나 남았지 뭐예요. 오징어채를 한 봉지 사다 남은 부추와 함께 무쳤더니 정말 환상의 궁합이 아닐 수 없네요. 재료준비:오징어채 두 주먹 정도, 부추 같은 양 준비, 고추장 3스푼, 다진 마늘 1스푼, 요리당 1큰술, 식초 2큰술, 통깨 1큰술, 후추조금, 참기름 1작은술 1. 오징어채를 물에 넣고 자박자박 씻어 줍니다. 2. 오징어채를 부추와 함께 담고 위에 적힌 분량의 양념을 넣고 잘 버무려 주세요.(양념이 잘 배도록 자박자박 주무르듯 버무립니다.) 3. 마지막으로 통깨 넣고 살짝 버무려 준 다음 그릇에 예쁘게 내면 끝!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너무도 간단한 요리! ㅎㅎㅎ  ;; 날도 더워 짜증도 살짝 나는 요즘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더 정신 없으시죠?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요리하기 정말 겁나는 요즘이지요. 제가 그 맘을 십분 이해하는 바! 이렇게 손쉬운 요리만 준비하는 게 아닙니까∼ 호호호 만들기 쉽다고 영양을 무시한 건 절대 아니란 말씀! 부추는 피를 맑게 하고 소화를 도우며 몸이 찬 사람에게 좋아 감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성인병예방에 피부미용까지! 이런이런∼, 영양부추란 말이 달리 붙은 게 아니군요. 오늘 식탁은 부추향기를 가득 담아 보시는게 어떨지요? 호호호∼ ^.^ ■ 블루버드의 조잘조잘 더운 하루하루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어찌나 덥고 후텁지근한지 올여름 내내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세요.’란 인사를 제일 많이 받았답니다. 저 역시 그런 안부 인사를 많이 여쭈었지요. 며칠 전 제 딸 가은이의 돌잔치가 있었답니다. 저 멀리 봉화에서 시할아버님 께서 돌잔치에 다녀가시면서 저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이렇게 더운데서 어찌 사노∼. 난 숨 막혀서 하루도 더는 못 살것다.” 호호호호. 워낙 산골에 사시는지라 밤이 되면 한여름에도 이불을 덮지 않곤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시던데 어찌나 부럽던지…. 솔직히 에어컨 바람이 아무리 시원해도 어디 자연풍에 비할 수 있나요? 어릴적 저희 아버지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옥상에 텐트를 쳐주시곤 했었는데, 뜨끈하게 달궈진 옥상바닥의 열기와 밤이되면 쌀쌀하게 부는 바람이 조화를 이뤄 환상의 보금자리가 되곤 했었답니다. 그땐 에어컨이란 게 어디 있기나 했나요? 그래도 지금보단 더 시원한 추억이 많았었는데…. 이 넘의 에어컨이란 게 내 시원한 여름을 앗아간 게 아닌지 문득 얄미워집니다. 호호호호∼.^ㅡ^ 오늘은 그래도 어릴적 시원한 기억으로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여러분도 시원한 기억 한 가지 떠올리면서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0^ 김항아 cyworld.nate.com/parangsegaeun
  • [세상에 이런일이] 강도가 세게 졸렸군

    |상파울루 연합|브라질에서 새벽녘에 가정집에 침입한 강도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방 한구석에서 잠자다 체포됐다. 최근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중부 미나스 제라이스 주 벨로 오리존테 시에서 지난 13일 새벽 가정집에 침입했던 강도(18)가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빈 방에 들어가 아침시간까지 잠을 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이 가정집은 이전에도 4차례나 강도가 드는 바람에 집 주인(31)은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으며, 지난주 가재도구를 대부분 친척집에 옮겨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알리 없는 범인은 새벽부터 몇시간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으나 훔칠 물건을 찾지 못했으며, 마침 졸음이 쏟아지자 집 안에 아무도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잠깐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자리에 누운 범인은 그만 아침까지 단잠에 빠졌으며, 뒷정리를 하려고 찾아온 집 주인에게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다.
  • 이용섭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에 듣는다

    이용섭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에 듣는다

    참여정부는 ‘혁신 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틈만 나면 정부 혁신을 강조한다. 청와대에 혁신관리수석을 신설하고, 정부 부처에는 혁신리더 발굴과 혁신기획관 자리를 새로 만들면서 “정부 혁신의 목표는 세계 10위권의 경쟁력을 갖춘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5월24일 정부혁신세계포럼)이라고 혁신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때로는 장·차관급 고위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정부혁신이 더디게 진행돼 답답한 느낌을 갖고 있다.”고 다그치기도 한다. 정부혁신이 공무원 사회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혁신에 냉소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이용섭 혁신관리수석은 17일 “참여정부는 혁신의 가속페달을 5년 내내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수석으로부터 참여정부의 혁신의 방향과 정책, 문제점 해소방안 등을 들어본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도 정부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정부 혁신을 하자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발전의 핵심전략이고 대한민국의 희망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크게 두가지 점에서 정부혁신이 절실하다. 먼저 지금은 경제주체들이 국가를 선택하는 글로벌 시대다. 개인과 기업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국가를 찾아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국가 쇼핑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부를 혁신해 기업하기 좋고,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어 우리 국민이나 기업들이 국내에 머무르고 외국기업과 자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는 경쟁력의 개념이 바뀌었다. 과거에 우리끼리 경쟁하던 때에는 연고나 인간관계도 중요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정보가 중요하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찾아야 한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던 ‘규모의 시대’에서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속도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정부도 여기에 맞춰 의사결정이 빠르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발전하는 국가는 큰 나라, 자원이 많은 나라가 아니고 혁신하는 국가일 것이다. 혁신격차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지난 4월에 혁신관리수석으로 취임하면서 연줄에 의한 청탁문화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성과는 있는지.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연고주의 문화다. 지연·학연·혈연 등의 연고나 인간관계에 의해 성공할 수 있고 자기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아무도 어렵고 힘든 혁신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연고를 바탕으로 한 청탁문화가 사라지도록 혁신친화적인 실적주의 성과문화를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성과보상시스템도 자리잡아가고 있다. 내년부터 고위공무원단제가 시행되고 5급 이하 공무원의 평가가 실적과 능력 위주로 개편되면 연고주의에 의한 청탁문화는 사라질 것으로 믿는다. ▶최근에 노 대통령은 정부 혁신에 이어 지역주의 척결을 위한 정치 혁신을 강조했는데. -정부만 달라져서는 일류 혁신국가가 될 수 없다. 사회 전반, 특히 국민 생활을 규율하고 국가 정책을 입법하는 정치권이 함께 혁신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가 혁신되지 않고 흔들리면 정부나 기업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 이후 과거 고질적인 병폐였던 정경유착은 단절되었다. 이제 정치권의 시급한 혁신 과제는 지역주의와의 단절이라고 본다. 능력있고 혁신적인 분들이 지역주의 때문에 선거에서 낙선되고 지역정서의 덕을 입어 당선된 의원들이 국가 전체의 이익이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입법활동을 하지 않고, 표를 의식해 지역연고에 따라 행동하는 후진적 정치관행이 지속되면 일류 혁신국가는 이룰 수가 없다. 이러한 망국적인 지역주의 폐해를 그대로 두고 정부만 혁신해서는 국가혁신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문화도 함께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참여정부에서 강조해온 혁신의 성과가 있다면. -짧은 기간에 많은 성과가 있었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혁신경험을 벤치마킹하고 있으며 수출되는 사례도 많다. 행정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크게 높아지고, 정부가 투명해지고 깨끗해지고 있다. 유전개발 의혹이나 행담도 의혹등의 사건도 따지고 보면 사회시스템이 투명해지면서 노출된 측면도 크다. 시골 저수지가 탁하면 많은 오물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저수지가 깨끗해지면 조그만 쓰레기까지도 다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본다. 이런 혁신에 힘입어 외부의 평가도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올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지난해 35위에서 29위로 6단계 상승한 것으로 평가했고, 유엔이 지난해 발표한 전자정부 지수는 세계 5위로 전년보다 8단계나 상승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부패지수도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혁신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업에 비유한다면 그동안은 실제 고기 잡는 것보다 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좋은 그물을 짜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고기 잡은 양을 갖고 평가하면 성과가 크지 않게 비칠 수도 있다.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혁신 동참이 이뤄지고 있고 성과관리시스템이 정착돼 가는 등 좋은 그물을 만드는 작업이 대부분 마무리됐다. 특히 올해부터 국민들과 직접 접촉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까지 혁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성과들이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공무원들은 혁신 피로증을 얘기하고 있고 혁신에 대한 공무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혁신 진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고속도로의 터널과 같이 반드시 지나가야 할 과정이다. 초기에는 혁신을 거부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혁신에 적극 참여하면서 업무량증가에 따른 혁신피로감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혁신관리를 초기의 ‘지시·개입형 양적 관리방식’에서 벗어나 ‘자율·지원형 질적 관리방식’으로 바꾸고 있다.‘혁신 따로, 일 따로’가 되지 않도록 혁신이 일반업무에 체화되고 일반업무가 혁신시스템 속에서 이뤄지도록 혁신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보강하고 있다. 앞으로 혁신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혁신장관협의회를 개최해서 즉시 해결해 나갈 것이다. 혁신의 길이 어렵고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의 일류 경쟁력 확보는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는 공직사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공직자들이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초대 혁신관리수석으로서 중점을 둬서 할 계획은 무엇인가. -이제 혁신 없이는 더 나은 미래나 경쟁력을 얘기할 수 없다. 혁신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지역간 갈등문제 없이 국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정부혁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공직자들이 우대받는 혁신친화적 환경의 조성과 혁신문화정착에 주력하고 아울러 혁신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들을 적극 발굴해 없애나갈 것이다. 혁신관리수석으로서 두가지 소망이 있다. 하나는 정부혁신을 국가혁신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께서 노력하신 만큼 ‘혁신대통령’으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이용섭 수석은이용섭(54)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에게 따라붙는 단어는 ‘학다리’다. 전남 함평의 학다리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입지전적이면서 학교 이름이 특이해 어느 틈엔가 붙여진 별명이다. 명문고교와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즐비한 재정경제부에서 시골 고등학교·지방대학 출신이란 핸디캡을 실력과 성실만으로 이겨 낸 것이다. 그는 대학 4학년 때인 1973년 행정고시 14회로 공직에 들어와 대부분을 재정경제부(옛 재무부)에서 보낸 ‘세제통’이다. 세금 분야에서 4대 핵심보직으로 꼽히는 국세청장, 관세청장, 재경부 세제실장, 국세심판원장을 모두 맡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그가 처음이고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관료들은 얘기한다. 그래서 실무와 이론에 정통한 최고의 세금전문가로 꼽힌다. 2003년 3월 개혁성향을 인정받아 참여정부 최초의 국세청장으로 발탁되어 인사청문회를 거쳤다. 외부인사로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국세청장에 임명돼 개혁대상이던 국세청을 단기간에 혁신선도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취임 초기에는 “국세청이 권력기관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골프부킹이나 골프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고, 그는 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실제로 골프를 치지 않았다. 국세청장 시절에 접대비실명제 시행, 현금영수증제 도입, 특별세무조사 폐지, 세금포인트제 시행 등 굵직굵직한 혁신 조치들을 시행해 2년 연속 혁신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런 성과들이 혁신관리수석 발탁 배경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전남 지사나 광주시장으로 출마하라는 주변 요구에 대해 이 수석은 “지금의 내 바람은 훌륭한 혁신관리수석이 되는 것이다. 정부혁신만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한번은 영조 임금이 대신들에게 “도대체 남사고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살아생전 그는 미관말직에 종사한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후 200여년 뒤 조정에서 그 학식과 인품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인물이었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선조 초기 천문 교수로 발탁됐다. 보통 천문을 비롯한 잡학(雜學)의 교수는 중인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남사고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유학자이면서도 당대 최고의 천문지리가로 평가를 받았다.‘정감록’의 핵심개념인 이른바 십승지설(十勝地·최고의 피란지에 관한 주장)도 그 한 뿌리가 남사고에 닿아 있다. 남사고는 예언서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지었다는 ‘남사고비결’이란 책이 18세기 이후 크게 유행했다. 구한말엔 ‘격암유록’이란 예언서도 추가로 발굴됐다. 남사고처럼 이름난 예언가는 역사에 드물다. 그런 비상한 재주에도 불구하고 실상 그는 늘 곤궁했고 박복했다. 몸에 병이 많아 늘 죽음과 직면할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고, 한겨울엔 몸에 걸칠 외출복이 없어 친구 집에 문상조차 못 갔다. 너무도 불우했던 남사고는 굽이굽이 용틀임하며 달려가는 산줄기를 그리워했고, 밤하늘 별자리를 바라보며 외로운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남사고와 불영사 남사고는 경북 울진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 자주 불영사(不影寺)를 찾아갔다. 이 절은 산자수명하여 부처를 비춘다는 불영계곡 안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소년 남사고는 절간에서 한 노승을 만났는데 그는 소년이 남다른 인물이 될 줄로 짐작해 3권의 비결을 내주었다. 천편(天編)은 별자리의 운행과 그 운세 등 천문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항목별로 적어 놓았다. 지편(地編)은 산천의 지세와 명당 등 풍수를 자세히 논한 것이었다. 마지막 인편(人編)은 한번만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 그 명운(命運)을 알아맞히는 방법을 기록한 비밀스러운 책이었다. 노승은 이 책들을 건네주며 신신당부했다. 아무쪼록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뒤 어느 날 노승은 남사고의 공부를 점검하러 집으로 찾아갔다. 당연히 제1권인 천편부터 차례로 공부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남사고는 인편에 실린 각종 비술에 빠진 나머지 천편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노승은 남사고가 비결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쓸까 염려한 나머지 남사고의 집에 불을 질러 책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러고는 불영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사고의 지리 공부 졸지에 비결을 빼앗긴 남사고는 새 각오로 삼천리강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제야 지리 공부의 요체를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명당을 얻더라도 결국 덕을 많이 쌓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사고가 아버지 무덤을 아홉 차례나 이장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는 지리를 완전히 터득한 고수였던 지라 가장 좋은 자리를 택해 아버지의 묘를 썼다. 그런데 써놓고 보면 더 좋은 자리가 문득 눈에 띄곤 해 옮겨 쓰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비룡승천(飛龍昇天·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형의 명당을 얻어 다시 이장을 하였다. 그때 지나가던 한 술사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구천십장(九遷十葬·아홉 번 묘를 옮겨 열번 장사를 지냄) 남사고야, 비룡승천을 좋아 마라. 고사괘수(枯蛇掛樹·말라 죽은 뱀을 나뭇가지에 걸친 모양)가 아닌가?” 남사고는 깜짝 놀라 산세를 다시 살폈다. 죽은 용이 분명했다. 그 술사를 만나 한 수 배우려 했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다음이었다. 생각 끝에 남사고는 지각유주(地各有主)라, 명당도 저마다 임자가 따로 있어 인력으로 바꿀 도리가 없다는 깨침을 얻었다. 그는 별로 하자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묘 자리를 구해 아버지의 유해를 평안히 모셨다. 요컨대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눈이 멀어 명당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고, 설사 요행히 명당을 차지하더라도 발복(發福·복이 나타남)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남사고의 실패를 약간 달리 해석한다. 조상이 지은 죄가 워낙 많아 남사고가 일껏 명당을 잡더라도 쓸모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른바 구천통곡(九遷痛哭·아홉 번 옮기고 통곡함)을 통해 남사고는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란 고승의 가르침을 확인했다 한다. 앞의 이야기는 한낱 설화에 불과하지만 지관 남사고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남사고의 명예언 지리 공부를 마친 남사고는 서울에 놀러 갔다. 그는 권판서를 비롯해 당대의 석학들과 두루 사귀었다. 그는 이미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했기 때문에 서울 친구들에게 몇 가지 예언을 들려주었다. 첫째, 곧 조정에 당파가 생겨날 테니 조심하란 것이었다. 둘째, 왜적이 난리를 일으키는데 만일 용(辰) 해에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구할 수 있으나 뱀(巳) 해에 전란이 시작되면 나라는 영영 망하고 만다. 셋째, 지금 사직동을 둘러보니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거기서 임금이 나올 것이다. 넷째, 태릉이 들어설 곳을 가리키며 장차 태산에 봉해진다고 하였다. 첫째 예언은 선조 8년(1575)부터 동인과 서인의 분당이 일어나 사실로 입증됐다. 둘째 예언 역시 용 해인 임진년(선조 25)에 왜적이 쳐들어와 꼭 맞아떨어졌다. 셋째도 사직동에 살던 선조가 뜻밖에 대통을 이어 1567년 등극함으로써 적중했고, 넷째는 명종의 모후(母后)인 문정왕후가 죽은 뒤 태릉에 묻혀 기정사실이 됐다. 이처럼 남사고의 예언 능력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번은 그가 하늘 별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더니 자미성(紫微星·어진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이 빛을 잃어버리는 참이었다. 아마 자기가 죽을 날이 다 된 모양이라며 남사고는 서울을 떠나 귀향길을 서둘렀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남명 조식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자미성은 회복세에 있었다. 그제야 남사고는 자미성의 변화가 남명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수련을 쌓았고 그 결과 자신이 죽을 날을 알아 맞힐 정도가 됐다. 천문 교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하늘에는 태사성(太史星·천문 담당 벼슬을 상징하는 별)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 현상을 목격한 남사고의 상관은 자기가 세상 떠날 날이 되었다고 지레 짐작해, 동료들을 모아놓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러자 남사고는 크게 웃으며 “죽을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남사고는 태연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사고와 퇴계 이황의 만남 남사고는 도술에도 능했다 하는데 흥미로운 설화가 전한다. 그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퇴계 집안은 검약하기 그지없어 밥상에는 보리밥과 고추장밖에 다른 반찬이 없었다. 남사고는 도술을 부려 잉어회를 만들었다. 그러자 퇴계는 손사래를 치며 남의 잉어를 빼앗아 먹을 수 없다며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설화 속의 퇴계는 실상 남사고보다 예언과 도술에 능통하다. 귀신에게 홀린 제자를 구해 주기도 하고,9대 자손에게 닥칠 위기를 미리 예견한다. 퇴계는 일찍이 여우의 구슬을 삼킨 적이 있어 축지법도 쓸 줄 알았다고 한다. 설화의 세계에서 보는 퇴계는 만능인간, 초월적 존재다. 이는 물론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민중은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가 자기들의 편에 서서 따뜻한 보호자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퇴계를 만능의 인간으로 형상화했다. 남사고가 밥상에 올린 잉어회를 퇴계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민중은 물론 남사고와 같은 예언가를 기꺼이 믿고 의지한다. 하지만 학덕이 높은 퇴계에게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남사고가 익힌 지리와 천문이 한낱 기술이라면, 퇴계의 학문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삶의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민중의 인식을 본다. ●십승지는 남사고의 작품인가 그렇다 해도 많은 사람들은 남사고의 특별한 지식과 능력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정감록’의 중심개념인 십승지설이 ‘남사고산수십승보길지지(南師古山水十勝保吉之地)’에서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민중은 남사고 같은 예언가라면 당연히 훌륭한 피란지를 점지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남사고’는 ‘정감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여러 산들 중에서 소백산(小白山)이 으뜸이요, 지리산(智異山)이 다음이다.”라고 했듯, 길지는 주로 소백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큰 마디에 몰려 있다. 이를 지역별로 나눠 보면 경상도가 4개, 전라도 3개, 충청도 2개, 강원도 1개다. ‘남사고’의 이런 길지는 ‘정감록’외 다른 예언서에 나오는 한국 최고의 길지들과 대동소이하다.‘정감록’에 언급된 길지를 출현 빈도순으로 정리해보면, 경북 풍기, 충남 공주, 경남 가야산이 각 10회로 으뜸이다. 다음은 경북 안동으로 9회이며, 경북 예천과 전북 운봉은 각 7회, 태백산·소백산 및 충북 보은은 6회, 경북 개령·봉화, 강원 영월, 충청 단양, 전북 무주 및 부안이 각 5회로 각기 정상급 길지로 손꼽힐 만하다. 그밖에 충북 진천도 4회나 된다. 십승지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길지는 해안선이나 큰길에서 떨어진 곳에 있다. 길지를 선정하게 된 이유가 전쟁, 전염병 및 흉년의 세 가지 피해(三災)를 벗어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해안지방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데다 조선후기엔 이양선의 출몰이 잦았고,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 때 외적은 큰길을 따라 진군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로변과 해안은 길지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흉년이 들지 않는 장소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참 어려웠다. 그런데 최고의 길지 가운데는 전북 부안처럼 해안 고을도 있었다. 부안이 십승지로 부각된 것은 물론 다른 이유에서였다. 신라 말 민중적 미륵불교를 창시한 진표 스님이 미륵보살로부터 간자(簡子)를 받은 곳이 바로 부안이었다. 그때 이후 부안은 세상을 구할 진인이 출현할 땅으로 민중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됐다. 공주는 충청감영(忠淸監營)의 소재지로 조선시대엔 가장 큰 대로변에 위치했다. 그럼에도 계룡산이란 풍수상의 일대명산을 거느리고 있어, 길지 중의 길지로 손꼽혔다.‘정감록’은 계룡산 사상 즉 진인이 계룡산에 도읍해 새 세상을 연다는 예언이 핵심이다. 따라서 공주를 빼놓은 길지란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길지들, 특히 그 대표가 되는 십승지는 과연 남사고가 창안했을까?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남사고가 전국을 유람하며 길지를 점지한 것은 사실이었다. 남사고는 전국의 지세를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했다.‘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만주 땅을 할퀴는 형상이다.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경북 포항의 영일만 동쪽에 있는 호미곶은 우리나라의 동쪽 끝 땅이다. 우리 땅을 용맹스러운 호랑이로 보고 그 꼬리라는 뜻에서 호미(虎尾)라 부른 남사고였다. 그는 전국의 여러 명당 가운데서도 유독 소백산을 중시했다.“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活人山)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남사고’를 보면, 소백산 주변에 십승지의 상당수가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이런 점에서 십승지설은 남사고의 뜻을 상당부분 반영한 것으로 믿어도 좋겠다. 그런데 사실 조선시대의 지관(地官)들은 누구나 전국의 길지를 논했다. 그들에겐 공통된 의견도 있었다. 태백산 이남에 길지가 많다는 것인데, 특히 소백산, 작성상(황장산), 주흘산, 희양산, 청화산, 속리산, 황악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남쪽 구간에 명당이 많다 했다. 십승지를 비롯한 전국의 길지는 남사고 한 사람이 모두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남사고는 선배 지관들이 앞서 제기한 논의를 일단 종합했던 것이다. 이것이 다시 후배들에게 이어지면서 길지에 관한 논의는 더욱 풍부해졌다.‘남사고’는 한 사람의 단독 저술로 간주되기 곤란하다. 그것은 18∼19세기 조선의 지관들이 선배들의 다양한 의견을 참작해 만든 공동저작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후배들은 전설적인 지관이며 명예언가인 남사고의 이름을 빌렸던 것이다. ‘남사고비결’도 여러 번 다시 쓰였다 영조 9년(1733)에 적발된 ‘정감록’ 사건엔 ‘남사고비결’이 등장한다. 무신년에는 피가 흘러 내(川)를 이룬다는 등 흉흉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실록·영조 9년8월18일 병인). 마침 영조 4년(1728) 무신년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남부지방을 휩쓸었던 터여서 조정은 이 ‘비결’의 등장에 경악했다. 이 ‘비결’과 제목이 똑같은 예언서는 현재도 남아 있다. 당연히 ‘정감록’에 포함돼 있다. 그러면 현존하는 ‘비결’은 영조 때 발각된 것과 같은 내용의 예언서일까? “무신·기유(戊申己酉)년: 제갈량(諸葛亮·제갈공명)이 이미 죽었으니 어느 성 한쪽 금성(錦城)이 피폐하도다. 경시(更始·개혁의 시작)는 자리를 긁고 범증(范增)은 등창이 나는구나.”라고 하였다. 책사(策士)로 유명한 제갈공명과 범증이 이미 죽거나 병들었다 했다. 나라에는 제대로 일을 도모할 만한 신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판국이라 개혁은 제자리를 맴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쟁 또는 반란을 예언했다는 영조 때의 ‘비결’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비록 예언서의 명칭은 ‘남사고비결’이라 했지만 알고 보니 그 내용은 전혀 달랐다. 세상은 날로 바뀌기 마련이다. 따라서 후배 술사들은 새로운 내용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 예언서가 이미 알려진 예언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때로 새 술도 헌 부대에 넣으면 값비싼 명품으로 둔갑된다. 이것이 시장의 논리다. ●남사고의 ‘격암유록’과 신종교 남사고는 예언계 최고의 브랜드였고, 그래서 끊임없이 이용됐다.19세기 말엔 ‘격암유록’이란 낯선 예언서가 등장했다.‘정감록’을 상당부분 모방하고, 그 무렵에 태동하고 있던 신종교의 선교에 도움이 될 내용을 덧붙인 것이었다.‘격암유록’은 뒷날 증산교의 종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일부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는 남사고가 지었다는 ‘궁을가’를 기꺼이 인용한다. 이 역시 위작(僞作)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궁궁을을”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궁궁”도 십자가,“을을” 역시 십자가라는 것이다. 역사상 남사고는 궁핍한 예언가였다. 하지만 후세의 사람들 중엔 그 이름을 팔아 기름진 음식과 호사를 누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민중이 남사고에게 걸었던 희망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길섶에서] 업자의 뻥/ 우득정 논설위원

    개인사업으로 선회한 10년 동안 터지고 깨진 끝에 사업이야말로 자신의 적성에 가장 맞는 직업이라고 선언한 친구 녀석. 세파에 닳고 닳은 탓인지 남들은 입밖에 내기조차 어려워하는 민원도 처리해주지 않으면 큰 잘못이라도 되는 양 너무도 당당하게 부탁한다. 또 주변에서 어떤 부탁을 해도 거절하는 법이 없다.“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는 것이 녀석의 답변이다. 그러다 보니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난해 늦가을 녀석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나타났다. 마침내 큰 것 ‘한건’하게 됐단다. 이번 일만 잘되면 너희들 노후는 모두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다. 연말이면 결판이 난다더니 해가 넘어가자 설날, 그리고 눈 녹는 봄날로 미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5월 어느날 들뜬 목소리로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고 소식을 알렸다. 두달 후 진전상황을 묻자 자그마한 문제 때문에 늦어진다며 기다리란다. 며칠 전 통화 끝에 “야, 금방이라는 게 1년이 다 돼 간다.”라고 핀잔을 주자 “우리 마누라는 24년째 기다리고 있는데 1년 가지고 그러냐.”며 너무도 당당하게 대꾸한다. 역시 사업이 적성인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고투자 저연봉’ 3인방

    직업을 갖기 위해 들인 투자와 시간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분야를 CNN머니가 16일 소개했다. 이들 직업은 학위를 얻는 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열정이 있어야만 일할 수 있는 근로조건이나, 대학동기들보다 연봉 수준은 십년씩 뒤처진다. 우선 건축가는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는데 7년, 박사 학위를 받는데 3년반 이상 걸린다. 건축사 시험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인턴으로 또 3년을 일해야만 한다. 석사학위를 받은 건축가는 5만∼8만달러의 학자금 빚을 지게 된다.2005년 미국 건축조합 조사에 따르면 인턴 첫 해에는 고작 3만 4000달러를 받는다. 요리사가 되려면 대부분의 주방은 에어컨 시설이 없기 때문에 여름에는 37도가 넘는 열기를 견뎌야만 한다.2∼4년 과정의 요리학교 졸업장을 따려면 수만달러가 든다. 하지만 졸업 직후 받는 연봉은 3만 2000달러에 불과하다.3∼4년 경력이 쌓이면 5만 50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요리사들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12시간이며 주당 80∼100시간 근무도 허다하다. 노력과 연봉이 가장 불균형한 직업은 대학 연구원이다. 박사학위를 받는데 6∼8년이 들고, 조교수라도 되려면 박사후 과정에 몇 년을 더 투자해야 한다. 박사후 과정 동안 강의하고, 실험실을 운영하며, 논문을 출판하지만 연봉은 4만 3000달러를 넘지 못한다. 지난 10년간 박사후 과정 기간은 두배로 늘어났다. 미시간 주립대 취업정보센터의 필 가드너는 “박사가 종신직을 얻으려면 매우 힘들어 그 기간동안엔 결혼이나 애를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연간 10만달러를 벌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직업으로는 곡예 운전사, 경매인, 결혼중매인, 수석 운동장 관리인, 패션 유행 예측자 등이 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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