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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연숙칼럼] 과학으로 돌아와서

    [신연숙칼럼] 과학으로 돌아와서

    2주전 ‘과학으로 돌아가자’란 칼럼을 쓸 때만 해도 연구윤리 문제에 머물러 있던 ‘황우석 논란’이 논문의 진위문제로 확대되면서 서울대가 자체 검증을 결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서울대가 뒤늦게나마 과학적 자세로 돌아와 조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논문의 조작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후속 논문을 통해 검증’하겠다거나 ‘과학계가 검증할 일’이란 식으로 대응을 했던 것은 설득력이 없었다. 의혹의 대상이 논문의 오류가 아니라 실험 결과의 조작 여부일 경우 해당 연구를 직접 조사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낼 방법은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객관적이고 엄밀한 조사로 조작이 없었으면 없는 대로, 있었으면 있는 대로 사실을 밝혀야 한다. 진정한 과학은 의문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문 제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우석 논문의 진위여부가 어떻게 판정되든, 우리가 과학적 이성으로 돌아왔다면 성찰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연구윤리 문제와 논문의 진위 문제가 모두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야 우리의 공식 어젠다가 되었다는 것은 자성해야 할 부분이다. 연구원 난자 채취문제는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그리고 진실에 접한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이 있고 나서야 황교수의 고백이 이어졌다. 논문의 진위 문제 역시 미국 저널 사이언스지의 입만 바라보다 ‘검증하지 말란 말을 한 적이 없다.’는 한 마디에 돌연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나라의 자체 정화력은 마비되고 외국 과학계가 국내 과학기술 문제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는가. 지난번 칼럼에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정부, 정치권, 일부 언론의 책임을 거론한 바 있었지만 과학기술계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야 하겠다. 기자가 만난 많은 과학기술자들은 황 교수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가 실제 이상 과장되고 과잉집중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줄기세포의 과학적 잠재력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성체줄기세포와 인공수정란 유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10대1 정도의 비율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배아복제줄기세포는 인간복제의 과정이기 때문에 연구를 기피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현재 연구는 기초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실용화까지 갈 길은 멀다는 사실과 함께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등록을 받는 행위는 헛된 기대를 갖게 하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해주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뒤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이는 있었을지언정 내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노벨상 수상운동을 펼치며 전폭적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어떤 과학기술자는 “작년 2월 이래 황우석현상은 이미 과학기술의 손을 떠나 있었다.”고 항변한다.PD수첩이 당한 역풍에서 보듯 거역하기 힘든 신드롬에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계는 수많은 내부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현상에 편승하여 과학기술의 파이를 키워보려는 욕심으로 이를 외면한 혐의는 없는 것일까. 과학기술계는 무엇보다 ‘과학홍보대사’로서 ‘스타과학자’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윤리문제를 포함한 황 교수 문제를 ‘문화차이’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기준은 오직 ‘국제기준’하나만이 통한다는 것에 과학기술계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과학의 신뢰성 훼손이 가져다 줄 역풍이 두렵다. 이제부터라도 과학기술계는 냉정을 되찾아 이번 사건의 엄정한 교훈을 읽어야 할 것이다. yshin@seoul.co.kr
  • ‘검·경 수사권 조정안’ 그대로 확정되면

    ‘검·경 수사권 조정안’ 그대로 확정되면

    열린우리당이 지난 5일 검찰과 경찰 위상을 대등한 관계로 규정하는 수사권 조정안을 확정하자 검찰과 경찰의 희비가 엇갈렸다. 검찰은 ‘검찰 흔들기’ 등을 거론하며 여당을 비판했다. 이 방안을 환영하는 경찰은 짐짓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최소의 타협안이라며 맞섰다. 여당안을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안이 확정될 경우, 예상되는 세 가지 사례에 대한 검찰과 경찰 의견을 정리해 본다. 사례 #1 어느날 경찰은 서울시내 모처에서 마약이 거래된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경찰이 즉시 출동, 거래 현장을 덮치려는 순간 같은 목적으로 도착한 검찰과 마주친다. 개정안대로라면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검찰은 지금과 달리 양쪽이 협력관계가 되면 수사가 겹쳐 혼선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건마다 양측이 수사 주도권을 내세우게 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사건마다 주도기관을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사충돌 문제에 대한 경찰해법은 간단하다. 먼저 수사한 기관이 수사를 주도하면 된다는 것이다. 은밀히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경우에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수사상 협조를 구하면 된다고 본다. 반면 검찰은 수사목적이 다를 수 있는데 순서가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반문한다. 민생치안 범죄가 발생해도 경찰이 검찰에 보고할 의무도 없고 검찰은 경찰 정보에 접근할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해 경찰수사 상황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검찰이 수사 주도권을 갖는 게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검찰이 잘못된 사례로 제시한 일본의 미타 공업분식회계 사건도 경찰과 검찰이 수사상 협력·공조 체제를 구축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한다. 하지만 검찰 입장은 다르다. 수사는 결국 어떤 사람의 범죄사실을 밝혀 법에 따라 벌을 받게 하기 위한 것으로 검사가 수사의 최종책임을 질 수밖에 없으므로 검사의 의사결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또 뇌물, 선거사범 등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는 적법한 증거를 확보하고 찾아내는 데 필요한 경험과 전문성 등에서 검찰이 앞선다고 자부한다. 경찰도 검찰이 수사의 종결권자이며 기소권자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개정안으로도 검찰은 정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은 담당 사법 경찰관을 바꾸거나 징계하도록 경찰에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례 #2 교통사고를 당한 A,B씨는 경찰에서 쌍방과실로 인정돼 서로 합의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A씨는 검찰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검찰의 업무처리가 늦어져 속터지긴 마찬가지. 수사권이 조정된 이후 수사결과에 대한 불만을 구제받기 어려워진다는데… 교통사고는 물증 확보가 어렵고, 주로 목격자 진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 사건 관계인간의 분쟁과 불복이 유난히도 많은 범죄이다. 검찰과 경찰 모두 이 점에 공감하면서도 원인과 대책은 다르다. 경찰은 우선 지휘권을 갖고 있는 검사의 의견 앞에 현장 수사기관인 경찰의 의견이 묵살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검찰에 따르면 검사가 경찰의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경찰의견이 바뀌는 경우는 연간 16만건에 이른다. 검찰은 이 경우에도 경찰 송치 의견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수사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 뒤라도 경찰조사에 불만이 있어 검찰에 민원을 제기하면, 검찰은 필요한 사건의 보완·재수사·기록송치 등을 요구할 수 있다며 경찰수사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검찰의 우려를 일축한다. 만약 담당 경찰관의 사건처리가 직무유기 등 범죄혐의가 있다면 검사는 형사책임까지 추궁할 수도 있다며 검찰이 “우는 소리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현재와 같은 수사구조에서는 민원에 대한 권리구제가 가능하지만 개정안에서는 쉽지 않다고 맞선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의 보완·재수사 지휘 등은 경찰이 사건을 종결하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뒤라야 가능한 만큼 진행 중인 사건에서 생기는 인권침해 등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지휘관계가 아닌데 기록송치 요구를 경찰이 지연·방치하거나 거부해도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도 검찰에겐 고민이다. 사례 #3 음식점을 운영하는 C씨. 그의 업소에서 부정·불량식품을 판매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공무원들의 단속은 계속되지만, 음식점은 영업 중인데… 수사기관의 부당한 수사종결 등 권한남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양쪽 모두 이견이 없다. 검찰은 경찰이 인력이나 국민생활과 보다 가깝다는 점에서 경찰의 권한이 더 무섭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생치안 범죄를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며 권한남용 논란에서 한발 비켜서려 하지만 경찰의 경계심은 여전하다. 경찰은 다른 기관에 수사결과를 송치할 필요도 없고, 간섭도 받지 않으면서 수사종결권·기소권까지 독점하고 있다며 검찰의 권한남용을 견제한다. 경찰권 남용을 막기 위해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실질적으로 담보·행사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모든 수사 사건을 검찰이 송치받아 심사하는 만큼 개정안에서도 검찰의 경찰 통제권은 견고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검찰은 전체 형사사건에서 구속사건은 3% 정도로 나머지 97%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 전 경찰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수사지휘권은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한다. 유영규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도움말 주신 분들 : 대검 국가수사개혁단 김회재 부장검사, 경찰청 수사개혁팀 황운하 총경
  • 美 ‘나노기술 위험성’ 검증 나섰다

    나노기술은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인체와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탄소 나노튜브에 노출되면 호흡장애나 뇌세포 손상을 일으키고 피부에 닿을 경우 DNA에 유해할 수 있다는 일부 연구 결과들이 발표됐지만 나노기술의 경제성과 성장 잠재력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와 업계가 뒤늦게 나서 나노기술의 유해성 연구에 수백만달러를 투입키로 하는 등 이 분야 연구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AP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노기술은 테니스공의 탄성을 높이고 햇빛에 바래지 않도록 하는 데 쓰이는 등 최근 몇년새 매일 수백개의 제품에 적용되고 있다.그러나 보통 머리카락 10만분의1 크기인 나노입자가 폐나 뇌를 비롯한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캐나다 오타와의 한 비영리단체 사무국장 팻 로이 무니는 지적한다. 그는 “피부 크림이나 방오가공 바지, 식품첨가제 같은 제품들이 우리 건강을 담보로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햇볕차단제 등은 안전성 연구가 이뤄질 때까지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한다. ‘떠오르는 나노기술 재단’은 미 연방정부로부터 매년 600만달러를 받고 나노기술이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제주간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3900만달러의 연방자금이 내년도 이 분야 연구에 쓰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록히드 마틴과 모토롤라 등이 퍼듀대학과 연계, 분석에 착수했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나노기술 연구에 매년 10억달러를 퍼붓고 있어 유해성 연구에 내놓은 액수가 터무니없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그나마 연구비도 폐에만 집중되고 있다. 마이클 클라이튼의 베스트셀러 ‘먹이(Prey)’는 나노 알갱이가 실험실 밖으로 대량 유출돼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과학자들은 나노의 잠재적 위협이 공상과학 스릴러보다 더 심각하다고 경고한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지역플러스] 전남 신보재단 중기대출 업무 전담

    내년 1월1일부터 전남도가 출자한 산하 신용보증재단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대출 상담, 접수, 보증 업무를 총괄하게 돤다. 이전에는 중소기업인이 자금이 필요할 경우 도에서 서류심사와 대출을 하고 신보재단에서 보증업무만을 다뤄 민원인들의 불편이 잇따랐다. 또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 지원센터에서 처리했던 자금 대출 등 업무도 신보재단으로 넘어온다. 신보재단은 자금 융자추천, 경영안정자금(은행협조자금) 정산, 자금 전산 및 사후관리 등을 한다.
  • [혁신 공기업탐방] (35) 정의동 증권예탁결제원 사장

    [혁신 공기업탐방] (35) 정의동 증권예탁결제원 사장

    증권예탁결제원은 1400조원의 유가증권을 예탁받아 관리하고 있다.2006년도 일반회계 예산의 10배에 달하는 액수다. 이 때문에 예탁원의 안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할 때 국내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걷잡을 수 없다. 정의동 사장은 12일 “증권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제, 전자증권제도 등을 도입할 예정”이라면서 “전자투표제, 전자증권제도는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할 뿐 아니라 각종 금융사고도 막을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북아 증권예탁결제시스템의 중심축을 담당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정 사장을 만나 복안을 들어봤다. ▶예탁결제원의 구체적인 기능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유가증권 중 주식은 70%, 채권 등은 94%를 집중 예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시가총액으로 1400조원, 결제업무는 연간 1780조원에 달한다. 또 국내 상장·등록기업 중 1800개(45%) 기업의 명의개서 대행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채권등록업무에 있어서는 500조원의 채권을 실물증권이 없는 등록형태로 발행하는 기능도 수행한다.150억달러에 달하는 국제투자분에 대한 보관 결제업무도 처리하고 있다. 증권시장의 핵심 인프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지난 3월 단행한 조직과 인사개편은 어떤 의미인가. -외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경영진단 및 직무분석을 실시했다. 그에 따라 관리중심형 조직을 성과중심의 본부제로 바꿨다. 관리자 비중을 낮춰 팀장이었다가 팀원으로 강등된 직원들도 많이 생겼다. 내년부터는 직무분석 결과를 토대로 연공서열을 철폐하는 ‘일 중심, 성과 중심’의 새로운 인사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가슴아픈 것은 조직개편을 하면서 15%인 80여명을 구조조정한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목적으로 슬림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대상 직원들에게 퇴임식을 해줬다고 들었다. -올 초 구조조정을 하기 전 전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명예퇴직을 하면 어느 정도의 혜택을 줄 수 있는지도 충분히 설명했다. 명퇴 대상자가 전직을 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도 실시했다. 회사를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한 명퇴자들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퇴임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퇴임식 때 명퇴자들이 참석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80%가 참석했다. 명퇴자의 고별사, 직원의 송별사 등이 오가니까 모두들 눈물 바다가 됐다. 그러면서 전·현직 직원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이 생겼다.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도 회사가 무조건 내치지 않고 끝까지 배려해 준다는 느낌이 들게 해 도움이 됐다. ▶예탁결제원의 경영혁신은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예탁원은 지난해 정부산하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 금융수익부분 11개 기관 중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의 혁신수준 진단에서는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직원들과 현장에서 피자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한 달 넘게 릴레이 간담회를 가졌다. 또 상설 경영혁신 전담조직인 경영혁신실을 신설함과 동시에 직원들의 목소리를 상시로 전달해주는 혁신의 메신저인 ‘Change Board’를 자발적으로 구성했다. ▶구체적인 추진실적은 어떤가. -고객만족이 아닌 고객의 가치혁신에 중점을 두고 있다.1400조원에 달하는 고객의 자산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객을 도와 고객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4월 국민주택채권을 실물발행에서 전산적인 등록발행방식으로 개선해 국민들이 주택구입시 실물채권의 매도할인으로 인한 손실이 대폭 감소될 수 있도록 했다. 적게 잡더라도 연간 4200여억원의 절감효과를 거뒀다. 그외에도 이용고객별 차별화서비스를 위해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웹상 조회가 가능하도록 개선한 휴면배당금 및 미수령주식 찾아주기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공공기관으로서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한데. -지난 1992년에 설립된 직원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단체인 풀꽃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매월 전직원이 일정금액을 기부해 불우청소년 등에게 매년 5000여만원의 성금을 지원하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영화보기 등 동반활동과 직원이 멘토역할을 함으로써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올해는 업무용카드를 사용하면서 차곡차곡 쌓아만 놓고 묵혀 두었던 카드포인트를 활용해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소를 통한 급식봉사를, 어린아이들에게는 아동복지시설을 방문하여 PC를 기증하는 등 사랑나눔 봉사도 했다. ▶금융시장이 급변하고 있는데 미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과거의 목표를 재설정하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등 조직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또 국내 유일한 증권예탁결제기구로서 예탁·결제서비스 외에 각종 투자지원서비스 등에 대해 국제표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6월에는 예탁결제원 사상 최초로 태국에 대차 시스템을 유상으로 수출했다. 이밖에도 예탁결제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증권관리업무협회(ISSA), 세계중앙예탁기관회의(CSD) 등 다수의 국제기구에 가입, 활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증권예탁결제산업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2007년 4월 개최되는 제9차 세계중앙예탁기관회의(CSD9)를 서울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활동의 투명성을 강조했는데, 예탁결제원은 투명성 강화를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있나. -간접투자재산 예탁결제 인프라인 펀드넷(FundNet) 시스템을 통해 펀드재산을 펀드별로 예탁·결제처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펀드간 불법 편·출입 등이 불가능하며, 고객은 자기가 가입한 펀드재산에 대한 확인추적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시행하게 될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 등 전자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의사결정과정이 투명해지고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전자증권제도가 도입되면 최근 발생한 양도성예금증서(CD) 사고와 같은 실물유가증권을 매개로 일어나는 사고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대담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외화증권 예탁결제규모 150억弗 “동북아금융허브는 우리가 맡는다.” 증권예탁결제원 정의동 사장의 야심찬 계획 중 하나는 아시아·태평양지역내에서 이뤄지는 주식·채권의 국제거래를 전담하는 것이다. 주식·채권이 발행 국가에서만 거래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실제로 외국인의 국내주식 보유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주식의 42%까지 늘었고,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334억 달러어치의 해외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유럽권역, 미주권역, 아시아권역 등 권역별로 활성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유럽에는 국제예탁결제기구가 설립돼 활성화되고 있다. 머지않아 아태지역에서도 국제예탁결제시스템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정 사장은 이에 따라 우리 예탁결제원 시스템의 우수성을 알리고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초청연수, 전문가 파견, 컨설팅업무를 지원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태국증권시장에 우리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아시아 각국에 우리 시스템이 전파돼 우수성이 입증되면 우리나라가 향후 아시아 예탁결제기구의 중심축을 맡게 된다는 것이 정 사장의 생각이다. 예탁결제원은 외화증권 예탁결제업무, 해외주식예탁증서원주보관업무, 외국인투자증권관리업무를 전담하면서 국제업무 노하우를 축적했다. 국내투자자가 외국증권시장에서 취득한 외화증권에 대한 예탁, 결제, 권리행사를 수행하는 외화증권 예탁결제업무는 현재 150억 달러에 달한다. 해외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한 국내 36개 기업 가운데 35개 기업의 해외DR 원주보관업무를 대행해주고 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7대 금융허브 과제 가운데 하나가 자본시장 인프라 수출일 만큼 국제예탁결제업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개도국 지원 등을 통해 예탁결제원이 아시아 스탠더드로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재경부 출신 정의동 사장은 정의동 사장은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이면서도 관료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시장주의자다. 그는 공기업이 공익성을 기반으로 설립됐지만 증권예탁결제원의 경우는 공익성만큼 수익성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정 사장은 회사의 외형은 키우더라도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실속없이 회사의 덩치만 키우려는 일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는 대비된다. 정 사장은 주식 전문가다. 지난 1993년 재정경제부 뉴욕 재경관으로 재직하면서 미국 나스닥시장을 집중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에는 제2대 코스닥위원장을 지내면서 코스닥시장을 세계 2위의 시장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정 사장은 2003년에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인 골든브릿지 회장으로 변신해 민간기업 CEO로서의 능력도 검증받았다. 재정경제부 시절 공보관을 지내 언론계뿐만 아니라 관계·기업계 등에 발이 넓다. ▲대구(57) ▲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12회 ▲재경부 국고국장 ▲제2대 코스닥위원장 ▲골든브릿지 회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소나무 이어 참나무도 죽어간다

    소나무 이어 참나무도 죽어간다

    우리나라 산림 생태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백두대간으로까지 확산된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향후 소나무의 절멸 상황이 우려되는 가운데, 참나무도 ‘괴질’에 걸려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특히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산림 병충해와는 달리 ‘신종 토착병’일 가능성이 높고, 고사율도 70∼80%에 이르러 치명적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11일 산림당국에 따르면 참나무 몸체에 수백∼수천개의 촘촘한 구멍이 뚫려 수분 이동이 차단되면서 참나무가 말라죽는 ‘참나무시들음병’이 전국 21개 시·군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경기·강원도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데 이어 올해는 충북 제천·영동 지역으로까지 번졌다. 고사목 수도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늘었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가 경기지역 중 일부를 골라 ‘표본 조사’한 결과 고사목이 지난해 630그루에서 올해 1220그루로 증가했다. 하지만 실제 피해규모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다. 성남시 정철수 산림조사원은 “올해 참나무시들음병에 걸려 베어낸 고사목 수가 (성남시에서만) 2900그루이고, 감염목은 1만여그루를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이 1990년대 중반까지 해마다 100여그루씩의 피해만 낸 점을 감안할 때 참나무시들음병 확산속도는 발생초기 국면에서 훨씬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남시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지자체에선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에 매달리느라 참나무 고사목이나 감염목 집계는커녕 발병 사실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소나무 재선충병에다 참나무시들음병까지 겹치는 등 올해 우리나라 산림생태계 상황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면서 “초기 방제에 실패하는 바람에 현 상황까지 치달은 재선충병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참나무시들음병에 대한 방제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참나무 수십만그루 이미 피해입어”

    “참나무 수십만그루 이미 피해입어”

    ‘참나무마저 위기에 몰리나….’ 요즘 산림당국은 전국으로 급속 확산 중인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엔 재선충병이 방제의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백두대간까지 침입한 사실이 밝혀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활엽수의 대표격인 참나무마저 심각한 병충해에 걸렸다. 국내 산림생태계가 설상가상의 형국에 빠진 것이다. 참나무와 소나무는 우리나라 나무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전체 산림 가운데 각각 30%,26%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 ‘참나무시들음병’ 피해실태와 대책 올해로 발병 이태 째인 참나무시들음병은 고강도 파괴력을 지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충북산림환경연구소 이귀용 자원보호부 팀장은 11일 “고사율(한번 감염되면 말라죽는 비율)을 현 단계에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70∼80%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사율 100%의 재선충병보다는 덜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각종 병충해 가운데 버금가는 수준의 위력을 지녔다.7∼8년전 소나무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던 솔잎혹파리의 경우도 고사율이 30% 남짓 정도였다. 이 때문에 소나무·참나무가 동시 위기에 빠진 현 상황을 두고 산림전문가들은 “수십년간에 걸쳐 진행된 산림병해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산림생태계에)지금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특히 참나무의 경우 “그동안 병충해가 전혀 없었던 데다, 국내 수종에서 차지하는 참나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참나무시들음병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국립산림과학원 이승규 박사)으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토착병´일 가능성 높아 참나무시들음병이 어떻게 발병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국내 자생종인 ‘광릉긴나무좀’이 병을 옮기는 매개충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광릉긴나무좀의 생활사 정도만 규명됐을 정도다. 병원균에 대해서는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을 중심으로 심층 연구가 진행 중인데, 대부분 외래 유입종에 의한 여태까지의 산림 병충해와는 달리 ‘토착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발병 원인과 관련해서는 한반도의 기온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환경 속에서 억눌려 지내오던 광릉긴나무좀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온도상승 등 여파로 밀도가 급증하면서 참나무에 피해를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참나무시들음병의 발생·분포 특성이 근거로 제시되는데, 특정 지역에서 시작해 점차 주변으로 넓혀나가는 재선충병과는 달리 전국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등 광범위하고 산발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피해 예상… 대책마련 시급 현재 참나무시들음병으로 고사된 나무가 확인된 곳은 모두 21개 지자체다. 지난해 18곳에서 올해 강원도 고성군과 충북 제천·영동 등 3곳이 추가됐다. 이귀용 팀장은 “충북 지역의 경우 월악산 국립공원에서 20여그루 및 영동∼전북 무주 사이의 구간에서 고사목이 확인됐다.”면서 “실제 감염목은 이보다 훨씬 더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인력부족으로 정확한 실태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성남시 이배재에서 참나무시들음병이 첫 발병한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의 경우 올 한해 동안 다른 지자체보다 심도있는 조사가 이뤄졌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의 자체 조사 결과 15개 시·군의 135개 지점에서 모두 1220그루의 참나무가 고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 김용훈 조사원은 “수락산·검단산·불암산 일대는 이미 광범위한 피해가 현실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서울신문이 성남시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313그루에 이어 올해엔 무려 2900그루의 참나무가 베어졌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의 전체 고사목 집계(1220그루)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다. 게다가 현재 참나무시들음병 발병 여부에 대한 조사 자체를 시작하지 못한 지자체가 대부분이어서 실제 피해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 관계자는 “(연구소의 이번 조사는)‘표본조사’ 결과일 뿐 실제 고사목 수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면서 “고사목 주변에 감염목과 고사 우려목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향후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산림당국 관계자도 “전국적으로 수십만 그루의 피해가 이미 발생한 것으로 보여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참나무시들음병은국내 자생종인 광릉긴나무좀이 병원균을 퍼뜨리는 매개충 역할을 한다. 다 자란 성충이더라도 길이 4㎜ 안팎일 정도로 작은데, 암컷 긴나무좀은 등에 5∼11개의 균낭을 갖고 있다. 참나무는 이 병원균의 집단 공격을 받아 수분 이동이 막히면서 말라죽고, 광릉긴나무좀은 참나무를 갉아먹지 않는 대신 교배와 병원균을 먹는 장소로 활용한다. 참나무 중 주로 신갈나무가 공격 대상이며, 갈참나무도 일부 피해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참나무시들음병도 소나무 재선충병만큼이나 방제가 어렵다는 게 골칫거리다. 지난 1년간 방제연구를 해 온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의 실험 결과, 감염된 나무에 살충제를 주사하더라도 살충률은 70% 안팎에 머물러 실질적인 효과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용훈 조사원은 “나무를 완전히 잘라내 훈증 처리하지 않으면 시들음병 확산방제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차를 알 수 있는 책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차를 알 수 있는 책들

    산이 오랜만에 조용히 쉬고 있다. 마치 구멍이 뚫린 듯 퍼붓던 눈발이 뚝 끊기자 세상은 어마어마한 적막속에 잠겨 있다. 길이 끊어지자 인적도 함께 끊긴 탓이다. 오랜만에 산속의 살림살이도 쉰다. 지난 가을 모아두었던 바짝 마른 장작 몇 개를 아궁이에 넣는다. 그리고 눈을 한 움큼 떠서 돌솥에 넣는다. 이른바 ‘설차’를 마시기 위함이다. 돌솥이 달아오르자 눈을 한 움큼씩 집어 넣는다. 마치 만년설이 허공으로 녹아들 듯 돌솥 속에서 녹아든다. 찻물이 끓고 하이얀 백자찻잔에 붓는다. 이른바 ‘눈백차’다. 부처님과 삼라만상에 그 첫잔을 아련한 그리움으로 바친다. 물이 끓는 소리 그리고 백차 한잔. 삶이란 아주 가끔식 나를 멈추는 행복속에서 사는 것이다. 나를 멈추면 그속에 비로소 완벽한 행복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이 과연 나를 멈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우리 곁에는 차를 공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다서(茶書)들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차에 관해 다양한 책들이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다구에 관한 것, 차에 관한 것, 중국·일본차에 관한 것. 그뿐만 아니다. 차에 관한 잡지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차의 대중화가 불러들인 문화적인 현상이다. 차문화는 현재 급속하게 복원 중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경계에 접근중이다. 웰빙 그리고 명상·요가 등 다양한 영역으로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 관한 출발은 육우의 (다경)(茶經)으로부터다. 전문(全文) 약 7000자(字)로 육우가 편찬한 (다경)(780년쯤)은 당대(唐代)와 당대이전의 차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실천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중국 차문화의 기초를 확립했다.12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온 (다경)은 단순히 차의 종류나 마시는 방법을 말한 표면적인 사항을 정리한 책이라기 보다는 ‘차의 정신’을 중요시하고 있다. 육우가 확립한 다학(茶學), 다예(茶藝), 다도(茶道)의 사상과 그것을 정리한 (다경)은 시대를 초월한 차의 명작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다경)은 3권 10장규모로 1장에는 차의 근원,2장에는 차의 연장,3장에는 차 만들기,4장 찻그릇,5장 차 달이기,6장 차 마시기,7장 차의 옛일,8장 차의 산출,9장 차의 생략,10장 차의 그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3차례 정도의 수정을 거쳐 교연스님과 안진경의 후원으로 간행된 (다경)은 당의 피일휴, 소의 진사도, 명의 노팽, 진문촉, 장예경(발문), 동승서(육우찬), 이유정, 서동기, 청대에는 증원매, 민국시대에는 상락스님등이 후대에 서문을 썼다. 현존하는 (다경)은 4종이 있다. 주(注)가 있는 것으로 이른 것이 남송대 좌규본(左圭本:백천학해본)이고, 주가 없는 것으로는 (백권(百倦)의 설부본)이며 하나의 증본으로 다기권(茶器卷)을 다구도찬(茶具圖讚)에서 추가한 명의 (정화은본(鄭火恩本))(선화당본(宣和堂本))이 있다. 넷째는 원문을 가감한 삭절본(削節本)으로 명대의 (왕기본(王圻本))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경)이 전해졌거나 간행되었겠지만 그 흔적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다경)역시 고대 다서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중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다경)간본은 1273년 좌규가 (백천학해(百川學海))의 (임집(任集))에서 다른 다서와 함께 (다경)을 판각한 (백천학해본)이 있는데 주가 첨부되고 있다. 명대의 간본도 있다. 다경선화당본(宣和堂本)은 명대(1368~1644)에는 세종 가정 연간에서 신종만력 연간에 걸쳐 (다경)에 관한 첨삭이 있었다. 원본에 기타자료를 부가한 (다경외편)중 하나로 다기권을 (다구도찬)에서 추가하여 마치 정문(正文)인 것처럼 만든 것이 바로 (선화당본)이다. 육자다경(陸子茶經)과 건안다록 역시 눈여겨볼 만한 다서중 하나다. 청말 서탑사의 주지인 상락스님이 간행한 가장 완비된 (다경)이다.1792년 (당인설회본)에 (다경)이 함께 수록된다. 건륭연간에 경릉서호의 왕자한이 음운을 교정한 (다경)을 증각했다. 건안다록(建安茶錄)은 송나라 정위(962~1033)가 지은 책인데 총 3권으로 되어 있으며 ‘건안 공다소’의 차밭, 차공자, 기구, 차따기, 제다법을 기록해 놓았다. 중국 지배계층과 일반 서민들의 차생활을 알 수 있는 다서들도 있다. 황제의 다도를 자세히 그린 (다록)과 (다소)가 그것이다. 먼저 다록은 송나라때 복건성 건안동쪽에 있는 봉황산의 산록에 ‘북원’이라 부른 차밭을 관리하던 채양에 의해 저술된 것이다. 당시 황제는 차에 관한 의문을 채양에게 하문했다. 채양은 황제의 하문에 답하기 위해 차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 바쳤다. 그 책자가 바로 (다록)이다. 채양은 당시 차제법과, 차의 품평 그리고 황제의 다도를 상세하게 저술했다 이에 비해 다소(茶疏)는 명나라 사람 허차서가 17세기 저술한 자신의 차 체험기 성격을 띤 책이다.(다소)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어 관련된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다소)의 서문을 쓴 요소현 글에서 그 기록의 편린들을 엿볼 수 있다. “병신년(1596년)에 나는 허차서(연명)와 함께 용정을 여행하며 약 열흘간 송사에서 침식을 함께 했다. 그때 승사에서 제공해주는 신차(新茶)를 즐기면서 고담(古談)을 나누었다. 몇해가 지나 허차서가 나를 찾아 그가 저술한 (다소)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어보고 허차서에게 말했다. 육우의 (다경)이후 그 뒤를 이어받는 것 없이 세월이 흘렀는데 이것이면 육우의 익우(益友)가 되겠다. 군의 문장이 한위의 문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어서 육우가 고개를 숙일 것이다. 허차서가 말을 받아 제멋대로 사는 놈이 자기 멋대로 적어 놓은 것인데 육우의 제자라도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고 말했다.” (다소)의 가치는 자신이 체험한 차에 관해 논(論)한 것이라는 데 있다. 초의스님의 (다신전)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만보전서(萬寶全書)도 있다.(만보전서)는 청나라 모환문이 엮은 백과사전으로 초의스님은 1828년 칠불암에서 (만보전서)의 채다론(採茶論)을 필사해 (다신전)이라 붙였다. 만보전서의 채다론은 명나라때 장원이 지은 (다록)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다서들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의스님의 (동다송)(다신전), 한재 이목의 (다부),(고려도경)등이 그것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고려 인종원년인 1123년 6월13일 송사 노윤적, 부사 부묵향을 따라 고려에 온 서긍이 한달 동안 고려에 머물면서 지은 견문기행문이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갖가지 풍물을 그림과 문장으로 엮어 냈다. 총28문 3백여항으로 분류되어 있는 (고려도경)은 1226년 금나라가 송나라 수도를 함락시켰을때 정본이 불타 없어졌으나 인하 조씨 소산당에서 인각해 간직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고려도경) 목록 31권 ‘다조’(茶俎)라는 절목에 당시 우리나라 차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는 맛이 쓰고 떫어서 구미에 당기지 않으며, 중국의 납차(臘茶)와 용봉사단차(龍鳳賜團茶)는 중국에서 진상받은 것과 상인이 수입해서 판 것들이 있었는데 차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의 차들을 즐겨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차 도구 중 찻잔은 천목(天目)찻잔과 청자찻잔을 쓰고 있는데 청자 찻잔은 비취색과 같다. 또한 은으로 만든 차 화로 등은 중국 것과 비슷하다. 고려 사람들이 차를 어떻게 마시고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잔치를 할 때다. 먼저 정원에 차를 달여놓는다. 그리고 연꽃모양의 큰 주전자에 차를 담아 손님들에게 “차를 고루 고루 잡수시오. 지금 마시지 않으면 차가 식어 냉차(冷茶)가 됩니다.”라고 안내방송까지 했다. 또한 방안에서 잔치를 할 적에는 홍사포(紅沙布)위에 다구를 놓은 다음 붉은 보로 덮어놓는다. 하루에 세 번씩 차를 마시게 하되 사람이 많아 차가 떨어지면 차관에 탕수만 부어서 차를 마시게 했다는 세밀한 기록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제6권에 연영각에서 잔치를 베풀 때는 차와 정자와 청자 찻잔을 갖추었고, 제26권 관회(館會)절목에는 왕궁사연(私宴)에 골동품과 고완·법서·명화·이화와 좋은 차등을 벌여놓게 했다, 제27권 ‘향림정’(香林亭) 절목에는 무더운 여름 향림정에 소풍을 가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달여온 차를 마시고 놀았다는 기록 등이 있다.(고려도경)은 고려시대 우리 차 문화의 일단을 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다산 정약용의 저서로 알려진 (동다기)등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효당 최범술스님의 (한국의 차도), 금당 최규용 선생의 (금당다화), 김운학선생의 (한국의 차문화), 응송 박영희스님의 (동다정통고)등이 있다. 우리 차인들은 모두 다예, 즉 다도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먼저 차에 대한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다.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차에 대한 개괄적인 인식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 체(體)에 맞는 용(用)으로써 차의 진정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지암 암주 ■ 심안노인의 다구도찬 차를 마시는 행위는 마치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 종합예술 같은 것이다. 한잔의 차를 마시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매우 많다. 정갈한 마음과 움직임으로 차를 준비하며 행할 때는 마치 바람이 산을 타고 강을 건너듯 완만하고 원융해야 한다. 그럴때 그 찻자리는 훈훈한 향기를 느끼게 한다. 옛날부터 차를 사랑했던 차인들은 많다. 그중 특이한 차인이 있다. 바로 송나라때 심안노인이다.(다구도찬)을 쓴 심안노인은 당시의 점다법에 근거해 12점의 다구를 의인화해 노래하고 있다. 다구 12점을 그림과 함께 그려넣은 특이한 다서를 만든 것이다. 심안노인은 각 다구의 성격에 따라 의인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관직과 이름, 자·호까지 명기하고 있다. 먼저 차를 보관하는 배로(焙爐)다. 배로의 관직은 위홍려, 이름은 성인이 쓰는 솥인 문정, 호는 사창한사다. 심안노인은 “위홍려를 찬양하여 가로되/축융은 여름을 관장하는데/만물을 모두 태운다/그 화염은 곤강의 옥석을 모두 태워 아무도 없게 한다/만약 위홍려를 사용하지 않으면/산과 골짜기의 차는 모두 도탄에 빠지고 말 것이다/도탄에 빠지지 않는 것은/위홍려의 공로다”라고 적고 있다. 탕속의 찻가루를 휘젓는 찻솔은 축부수. 축부수의 이름은 선조, 자는 희점, 호는 눈같이 흰 파도와 같은 공자라는 설도공자라고 했다. 특히 찻솔을 정절을 지키는 의로운 다기로 여겨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있다. “수양산의 백이 숙제는/주무왕이 상나라를 토벌하며/전쟁이 한창일때도 과감하게 간언하였는데/전쟁과 같이 솥에 물이 펄펄 끓을때/그 뜨거움을 가늠하여 간언한 자가 몇 명이나 될까/나는 자네의 청절을 우러러 보며/오직 너만이 홀로이 몸소 실천할 수 있다/이러한 일은 위급에 처하여도/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한 자라야 하는데/누가 능히 이루어 낼 수 있는가”라고 칭찬하고 있다. 찻잔에 대해서는 위풍당당한 군자에 비유하고 있다. 찻잔은 검은 독수리가 사는 신비한 누각인 칠조비각이라 했고, 이름은 승지, 자는 하늘을 담고 있다는 역지, 호는 옛 누마루 높은 곳에 앉은 노인이라 하여 고대노인이라고 했다. 물을 따르는 찻주전자에 대해서는 따뜻한 골짜기에 늙음을 버린다는 온곡유노라고 표현했다. 주전자의 이름은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는 발신, 자는 한번 운다, 혹은 소리낸다는 일명이다. “호연지기를 기르고 물 끓는 소리를 내/능히 중용의 도를 지킨다/그는 탕왕을 보필한 덕을 지녀/주객 사이에서 잔을 주고 받으며/주인을 섬기는 공로는 중숙어를 능가한다/그러나 밖으로 뜨거움에 대한 근심이 있고/안으로는 열의 우환이 있으니 어찌하랴”라고 중용의 뜻을 전하고 있다. 말차가루를 곱게 치는 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체는 나추밀로 이름은 고약, 자는 전사, 호는 사은장료다. 나추밀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일을 함에 있어 세밀하지 못하면 해로움이 되나니/큰 것은 골라내고 작은 것은 흩뿌려지게 하는데는/정밀함과 조잡함이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지나니/사람은 그 모든 것이 어려운 것/어찌 섬세함에 옳고 그름을 아끼겠는가” 이밖에도 찻종지는 도보문으로 칭했고(이름은 거월, 자는 자후, 호는 면위상객), 물을 뜨는 표주박은 호원외(이름은 유일, 자는 종허, 호는 달을 긷는 신선인 저월선옹), 차를 가는 맷돌은 석전운으로(이름은 착치, 자는 매행, 호는 언제나 차를 갈아 차향 가득한 누옥에 은거한다는 향옥은거), 떡차를 으깨는 다듬잇돌과 방망이는 목대제(이름은 이제, 자는 망기, 호는 격죽거인), 찻잎을 으깨 가루를 내는 약연은 금법조(이름은 연고, 자는 원개, 호는 화금선생)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 공공기관 청렴도 높아졌다

    공공기관 청렴도 높아졌다

    공공기관의 청렴도는 개선되고 있지만, 중앙행정기관의 유관단체에 대한 관리 업무나 지방의 인·허가, 공사계약 등의 분야에서는 여전히 금품과 향응이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청렴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올해 청렴도 측정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대(對)국민·대(對)기관 업무비중이 높은 325곳(중앙부처 21곳, 청 단위 12곳, 자치단체 241곳, 지방교육청 16곳, 공직유관단체 3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종합 청렴도는 10점 만점에 8.68점을 기록, 지난해보다 0.30점 올랐다. 부패발생소지가 높은 1330개 업무를 대상으로 지난 8월25일부터 10월27일까지 조사를 했으며, 지난해 우수기관(9.0점이상)으로 선정됐던 산림청 등 11곳은 제외했다. 올해는 종합청렴도 9.0이상의 우수기관이 62개에 달했다. 반면 지난해에 비해 청렴도가 하락한 기관도 60곳이나 됐다. 공무원의 행동강령 범위을 넘는 금품·향응제공은 0.9%로 지난해 1.5%보다 다소 감소했다. 금품·향응제공이 없는 기관도 65곳(지난해는 34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측정업무 가운데 금품·향응 제공률이 평균인 0.9%의 2배(1.8%)이상인 업무가 300개(전체업무의 22%),3배(2.7%)이상인 업무도 134개(전체업무의 10%)로 나타나는 등 일부 업무에서는 여전히 금품과 향응이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금품 제공률이 높은 업무는 지방교육청 운동부 운영(4.4%), 광역시·도 건설업 관련 사업자 관리(2.6%), 공사계약(시·도 1.3%, 교육청 1.6%), 기초자치단체 주택건축 인허가(1.5%), 중앙행정기관 점검·검사(1.4%), 중앙행정기관 지도·단속(1.4%) 등이다. 중앙행정기관에서는 단속·규제기능을 수행하는 기관(11개)의 청렴도(8.54점)가 총괄·조정기관(5곳)의 청렴도(8.92점) 및 조성·지원기관(17개)의 청렴도(8.84점)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관단체에서는 주로 지원기능을 맡은 금융관련 기관의 청렴도(8.92점)가 정부투자기관 청렴도(8.47점)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청렴위는 올해 측정결과를 바탕으로 부패취약업무에 대해서는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 결과의 상세한 내용은 국가청렴위원회 홈페이지(www.kicac.go.kr)에 올라 있다. 조덕현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테러에 놀란 美 ‘과잉논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이 테러에 대한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고 있다. 공항 보안관은 정신병 증세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항공기 승객을 테러범으로 오인, 사살해 ‘과잉 진압’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가하면 필리핀 마닐라의 미국대사관은 테러 위협 때문에 폐쇄됐다. 7일(현지시간) 낮 12시30분쯤 미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아메리칸항공 소속 보잉 757 여객기 924편에서 “폭탄을 갖고 있다.”고 위협하던 승객이 연방보안관이 쏜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 승객의 짐에서는 폭탄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사망한 승객의 가방을 항공기 밖으로 옮긴 뒤 총으로 쏘았으나 아무런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항 보안관이 탑승객이나 테러 용의자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처음이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항공기 내에 무장한 보안요원의 탑승을 의무화했다. 브라이언 도일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사망한 승객이 리고버토 알피잘이라는 44세의 미국 시민이라고 밝히고 “보안요원들이 기내에서 탑승객 전원에게 꼼짝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이 용의자는 이에 불응, 폭발물이 있음을 시사한 가방을 만지는 듯한 수상한 행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일부 미 언론들은 알피잘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면서 ‘과잉대응’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 당국은 알피잘의 정신병력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 보안관의 대응은 훈련받은 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연방 관리들은 “알피잘이 기내 휴대 가방에 폭탄을 갖고 있다고 위협한 데 이어 실제로 위협적인 행동을 할 조짐을 보여 보안관이 여객기와 공항 건물을 잇는 승강용 통로에서 서너발의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고 CNN은 전했다. 목격자들은 이 용의자가 여객기의 후미 쪽으로부터 통로를 미친 듯이 내달리자 한 여자가 “내 남편”이라면서 뒤쫓으며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다른 승객은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극심한 조울증을 앓고 있는 남편이 약을 먹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항공기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을 출발,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가던 중 마이애미에 중간 기착한 상태였다. 한편 미 국무부는 마닐라의 미국대사관이 테러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믿을 만한 정보에 따라 6일부터 임시로 대사관을 폐쇄했다고 7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 대사관의 비자와 영사 업무도 일시 중단됐다. 대사관측은 필리핀을 방문중인 미국인들에게도 테러 행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dawn@seoul.co.kr
  • 北의식 엉거주춤한 정부

    북한인권국제대회가 개막된 8일 정부의 자세는 ‘엉거주춤’했다. 북·미간 금융제재 문제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북한은 범죄정권’ 발언으로 북측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정부 때리기’ 공세도 이어져 양쪽 뺨을 다 내놓고 있는 신세다. 정부는 최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워크숍, 실무회의 등에서 북한인권대회를 6자회담 진전의 주요 난제로 꼽을 정도로 노심초사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제이 레프코위츠 미 북한 인권특사의 면담 요청도 정부로선 ‘뜨거운 감자’.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정동영 장관에 대한 레프코위츠 특사의 면담요청을 거절하는 대신, 고경빈 사회문화협력국장이 특사를 만났다. 겉으로 밝힌 이유는 국장급인 특사의 격(格)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경우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아세안(ASEAN+3)회의 출장을 떠났고, 유명환 제1차관이 특사를 9일 오전 만난다. 조찬이 아닌 ‘티타임’으로, 장소도 정부청사가 아닌 외부에서 만나기로 해 공식적 모양새를 피하려는 기색이다.8일 레프코위츠 특사는 천영우 외교정책실장과 만나 “북한 인권 문제는 한국정부에도 매우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고 천 실장은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방법에서 유연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정책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공개적인 요구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이 인권문제 제기를 체제전복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공개적인 대북 인권개선 요구는 남북관계에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8일 인권대회 만찬에는 외교부 최성주 군축심의관이 참석했으며 통일부 당국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9일 회의에는 김문환 외교부 인권사회과장이 ‘참관’한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박경서 인권담당대사 등은 참석하지 않는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 (1) 저학년 논술형평가는 이렇게

    이번 주부터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새 논술 칼럼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을 연재한다. 논술·서술형평가에 대비하는 방법부터 초등논술의 실제까지 서울교대부설초등학교 국어과팀 교사 4명의 특강을 15회에 걸쳐 싣는다. 올해부터 실시되고 있는 초등학교의 지필평가에서 논술형 평가문제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논술형 평가문제가 선택형 평가문제에 비해 논리적인 사고력과 종합력, 비판적인 사고력 등을 신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학년의 경우에는 상상력은 풍부하나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종합·비판하는 사고력은 부족한 시기이다. 따라서 저학년에서는 논술의 기본인 이유나 근거를 들어 말하고 쓰는 활동에서 그 이유나 근거가 되는 배경지식을 상상의 세계까지 넓혀 다양한 생각을 수용해 준다. 이에 1학년 학생들에게 제시될 만한 논술형 평가문제를 예시로 하여 출제 의도나 논술의 주안점, 가정에서 대비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학년 2학기 읽기 영역의 둘째마당 학습제재 중 ‘어떻게 하면 좋을까’는 날마다 쥐를 잡아가는 고양이 때문에 쥐들이 회의를 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셋째 쥐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을 쓰시오.’라고 출제하면 서술형 문제가 된다. 이때는 ‘셋째 쥐의 생각은 고양이가 올 때마다 방울 소리를 듣고 빨리 도망갈 수 있도록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이다.’라고 답하면 된다. 이렇게 서술형 문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답을 요구한다. 그러나 문제를 바꾸어 ‘셋째 쥐의 생각에 대한 내 생각을 쓰시오.’라는 논술형 문제로 출제되면 정형화된 답은 없다. 즉 논술형 문제에서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다양한 반응을 적극 수용해 주면서 누가 더 깊게 또는 다각적으로 생각해 보고 창의적인 생각과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답하였느냐가 평가의 척도가 된다. 다시 말해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셋째 쥐의 생각에 대해 좋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또는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등 자신의 생각을 쓰고,‘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나 근거를 들어 분명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때 그 이유나 근거가 타당한 논리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은 좋지만 그 일은 너무 위험한 일이므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 입구에 방울을 단 줄을 매어 두었다가 고양이가 오면 줄을 흔들어 방울소리를 내는 것이 더 좋겠다.’ 라는가,‘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두어도 고양이가 살금살금 움직일 때는 방울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돌아가며 망을 보자는 둘째 쥐의 생각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등으로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말하거나 쓰기는 단시간 안에 쉽게 학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때 언제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까닭을 들어 말하는 언어생활을 습관화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날 ‘어디로 놀러 가면 좋을까?’라는 부모님의 질문에 저학년 학생들은 보통 ‘놀이동산에 가요.’라고 단순문장으로 의견을 말하기 쉽다. 이럴 때 다시 ‘왜?’라고 되물어 ‘어린이날은 우리들이 주인공이니까 우리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를 신나게 탈 수 있는 놀이동산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요.’라고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보다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까닭을 들어 자신의 생각을 말하도록 하는 평소의 언어생활은 논리적인 사고력과 언어구사력을 신장시키는 기초가 되어 논술형 평가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서울교대부설초등학교 교사 허득실
  • [우리구 최고야! - 성북] 자랑거리 너무 많아 ‘으쓱’

    [우리구 최고야! - 성북] 자랑거리 너무 많아 ‘으쓱’

    우리 성북구 자랑거리 4가지. 북한산, 북악산, 개운산, 천장산 등 수려한 경관과 푸근하고 정 많은 성북구에 산다는 것이 이만저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고향 같은 곳이기에 오래 살고 싶은 우리구. 도심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하늘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비롯해 자랑거리도 많다.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 건강에 ‘그만´ 자동차 전용도로로만 이용되던 북악스카이웨이에 너비 1∼1.5m의 산책로를 조성했다. 운동시설도 설치하고 아름다운 꽃나무도 식재해 운동과 휴식을 겸할 수 있다. 가족끼리 걷기에도, 도심 속의 여유를 즐기며 건강을 다지기에도 그만이다. ●골목골목 스스로 청소하는 ‘뉴 성북 클린봉사단´ 돋보여 성북구는 뒷골목과 내집 앞, 내 점포 앞 청소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는 슬로건 아래 ‘뉴 성북 클린 봉사단’을 구성, 운영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주축이 돼서 월 2회 운영해오던 ‘클린 성북의 날’을 주1회로 확대한 것이다. 골목별로 활동력 있고, 이웃 주민에게 존경받는 할아버지, 자원봉사자 5∼10명으로 구성된다. 구는 청소 도구와 쓰레기 봉투를 지원해주고, 참여한 주민의 집 대문 입구에 ‘골목 청소 도우미 표찰’를 붙여준다. 봉사 단원들은 매주 수요일, 정해진 책임 구간을 1∼2시간 청소한다. 힘들지만 깨끗이 청소된 골목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돈암동 고명길과 북악산길 일부 구간을 책임지고 있는 도우미 김광열(45)씨는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해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고 흐뭇해했다. 동부 센트레빌아파트 옆길을 책임지고 있는 도우미 박선희(55)씨는 요즘에는 익숙해져 길을 가다가도 쓰레기가 보이면 자연히 줍게 된다고 말했다. ●원어민과 함께하는 무료 영어캠프 눈길 우리 구에서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교육 도시 성북 만들기’ 일환으로 우리구 소재 대일외고에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영어권 원어민 교수와 함께하는 영어캠프를 여름과 겨울방학 동안 운영한다.2주의 기간동안 하루 2시간씩 수업을 한다. 수강료는 전액 구청이 지원한다. 캠프에 참여했던 개운초교 이지윤(6)양은 “매일 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영어를 많이 배워 신난다.”고 말했다.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된 듯싶다. 캠프에 자녀를 보낸 주부 맹정미(45·돈암동)씨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아이가 계속 참여하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주민 평생 건강검진 프로그램 무료 운영 우리 구에서는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담배 없는 성북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지난해 8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2003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구는 사업추진 당시인 2001년 성인 남성 흡연율 56.4%를 2010년까지 30%로 낮출 계획이다. 구 보건소에 있는 지역사회 평생 건강관리 센터에서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협약하여 성북구에 거주하는 40∼70세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평생건강관리 건강 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2년마다 1회씩 10년 동안 건강을 체크해주는 것. 건강 관리를 받으러 온 동소문동 주민 홍명순(69)씨는 “건강 검진을 받을까 생각했는데 마침 구에서 무료로 해준다니 너무 좋다.”고 했다. 지난 6월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내년 2월17일까지 계속된다. 시민기자 문혜현(돈암동)
  • 日本의 현관 요코하마

    日本의 현관 요코하마

    1859년 일본의 첫 개항장으로 서구문물을 수용한 요코하마. 일본의 근대화는 이곳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좋을 만큼 요코하마는 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의 현관’이다.1872년에는 요코하마∼도쿄간 일본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기도 했다. 요코하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초’로 기념할 것이 많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스등이 켜진 것도, 최초의 외과병원이 세워진 것도, 근대도로인 바샤미치(馬車道)가 생긴 것도, 아이스크림이 탄생한 것도 모두 이 진취적인 기질의 하맛코(요코하마 출신자)에 의해서다. 개항 당시 600명의 인구에 불과하던 자그마한 어촌은 이제 인구 350여만명의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일본 근대문화의 발상지 요코하마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여행지로 변신하고 있다. 글 사진 요코하마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요코하마의 특징은 한 마디로 세계 유수의 항구도시라는 점이다.1859년 에도 바쿠후 말기에 개항한 이래 요코하마는 세계 각국의 선박이 드나드는 ‘미나토(항구) 요코하마’로 명성을 지켜왔다.JR(일본철도) 네기시선 간나이역에서 걸어서 15분, 오삼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 가보면 요코하마가 진정 일본의 대표 항구임을 실감할 수 있다. # 요코하마의 상징 ‘오삼바시’ 요코하마의 상징이자 중심인 오삼바시는 2002년에 새롭게 문을 연 국제여객터미널이다. 대형 외국 여객선이 기항하는 이곳에는 2000㎡의 다목적 홀이 있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 오삼바시 터미널은 거대한 배의 형상을 띠고 있다. 비스듬한 바닥 전체가 널마루로 되어 있어 걷기 편하다. 마치 1등 선객을 위한 프롬나드 데크(산책 갑판)를 걷는 기분이다. 터미널 조금 높은 곳에는 24시간 열려 있는 옥상광장이 있어 연인이나 나들이객들이 즐겨 찾는다. # 최고(最高)건물, 최속(最速)승강기 오삼바시에서는 미래형 도시설계로 유명한 미나토미라이21 지역이 훤히 내다보인다. 요코하마 여행의 핵심인 미나토미라이21은 사쿠라기초 역 바로 북쪽에 위치한 신개발 지역. 이곳에 바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7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296m)가 있다. 랜드마크 타워에는 1분에 750m까지 속도를 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강기가 있다. 바람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승강기를 달걀 모양으로 설계한 점이 독특하다.2층 로비에서 69층 랜드마크 타워 스카이가든(입장료 1000엔,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토요일은 밤 10시까지) 전망대까지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0초. 기네스 북에도 올랐다. # 석양과 함께하는 헬리콥터 크루징 요코하마의 풍경은 랜드마크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새처럼 조감하는 것도 멋스럽다. 미나토미라이 헬리포트에는 요코하마항 상공을 나는 다양한 코스의 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다. 석양 무렵에 운항하는 ‘트와이라이트 코스’(비행시간 약 5분)는 어른 4000엔, 어린이 2000엔.10분에 걸쳐 요코하마의 야경을 보여주는 ‘요코하마 베이 라이트 코스’는 트와이라이트 코스보다 3배 이상 비싸다.5인승 헬리콥터를 타고 요코하마 상공을 나니 요코하마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 책임자인 가오루 하라(엑셀항공주식회사 영업부장)씨는 “일본에서 헬리콥터 크루징을 1년 내내 하는 곳은 요코하마와 도쿄뿐”이라며 “특히 30여년의 역사를 지닌 요코하마 헬리콥터 크루징은 몇 달전에 예약해야 탈 수 있는 요코하마의 명물”이라고 말했다. # 낭만 싣고 떠나는 ‘로열 윙’ 유람선을 타고 요코하마를 감상하는 것도 기억에 남을 만하다. 오삼바시에는 ‘로열 윙’이라는 거대한 배가 있어 크루즈 여행을 주도한다. 일본에서 유일한 엔터테인먼트 식당선(船)이다. 순항 시간은 런치 타임(2100엔)과 디너 타임(2100엔)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사이에 티 타임 크루즈(1600엔)가 따로 준비돼 있다. 이 레스토랑 배에서는 중국의 1급 조리사가 광둥식 요리를 선보인다. 중국 본토 요리와는 사뭇 다른 ‘퓨전형’이어서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낮 시간에는 우아한 고전음악이, 저녁 시간에는 쿨 재즈가 생음악으로 펼쳐져 여행의 흥취를 더해준다.‘로열 윙’에 오르기 위해서는 개인은 두 달전에, 단체(15명 이상)는 10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 시간살림이 성공여행의 열쇠 여행의 묘미가 일상을 잊고 색다른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면, 시간에 쫓겨 종종걸음치는 맛보기 관광은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의 압박 속에 사는 게 현대인의 숙명. 그러니 어떻게든 시간살림을 알뜰히 해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하루동안 요코하마를 둘러보려면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헬리콥터와 유람선도 타고 오삼바시 터미널에서 요코하마의 바람도 다면 이제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 일본의 차이나 타운인 주카가이(中華街)와 그 주변을 살펴보고, 다시 오삼바시로 돌아와 요코하마 야경 감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극채색의 문 지나면 음식천국 ‘일본 속의 중국’ 주카가이는 미나토미라이선 모토마치·주카가이 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인다.1923년 관동대지진 후 바다를 메워 만든 항구공원인 야마시타코엔 남쪽이다. 주카가이는 2차대전 전까지는 ‘난징(南京)거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차이나 타운이 다 그렇듯 주카가이에 들어서면 먼저 현란한 극채색 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카가이에는 우호의 의미가 담긴 젠린몬(善隣門)과 세이요몬(西陽門)을 비롯해 모두 10개의 문이 있다. 차이나 타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거리 한가운데 자리잡은 중국식 사원 간테이뵤(關帝廟)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영웅 관우를 상업의 신으로 모신 곳이다. 화려한 색상의 웅대한 건물이 차이나 타운의 상징 구실을 하고 있다. 이 곳은 참배하려면 돈을 내야하지만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중국인들의 유난한 재신(財神)숭배 행태라니….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 삼국지 영웅 모신 간테이뵤 주카가이에는 각종 식당과 잡화점 등 500여개의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요코하마 개항 당시 중국의 상관(商館)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이 곳에 계속 머물면서 터를 닦아 놓은 노포들이다. 차이나 타운의 매력은 단연 먹을거리. 주카가이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중국인은 하루 세 끼가 아니라 다섯 끼를 먹는다.’고 한다. 딤섬 즉 중국식 만두를 수시로 먹는데서 생긴 말이다. 차이나 타운을 걸으면 이를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주카가이야말로 ‘만두의 거리’다. 구운 돼지고기가 든 차슈만두, 오징어먹물 만두, 상어지느러미 만두 등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인 거리 가운데 하나인 주카가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 타운에 맞먹을 만한 음식천국이다. # 외국인 거류지였던 야마테 주카가이와 이웃한 곳으로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야마테 지역이다. 주카가이와는 또다른 점에서 이국적이다. 요코하마에는 개항과 더불어 외국인 거류지가 생겨났다. 특히 야마테지역은 서양인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이국풍의 건물과 교회들이 적지 않다. 요코하마항이 내다보이는 언덕 경사면에 위치한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에는 요코하마에 살았거나 방문했던 40여개국의 외국인 약 4500명이 잠들어 있다. 야마테 지역에는 1909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목조서양식 건물인 야마테자료관, 유럽풍 돌층계와 정원이 아름다운 미나토미에루오카코엔 등 이국적인 볼거리들이 많다. # 요코하마는 역시 밤 주카가이와 그 주변을 둘러봤으니 이제 다시 오삼바시로 갈 차례. 해거름에 찬바람을 맞으며 오삼바시에 서니 멀리 요코하마의 명물 베이 브리지(860m)가 눈에 들어온다. 요코하마의 아름다움은 밤풍경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요코하마의 밤은 베이 브리지 아래로 흐르는 검푸른 물결과 각양각색의 건물에서 내뿜는 불빛이 어우러져 빛의 축제를 방불케 한다. 요코하마는 역시 밤이다. 푸른 빛을 쏟아내는 불야성의 밤.“거리의 불빛이 너무도 곱구나 요코하마 부루라이토 요코하마∼” 1970년대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한 이시다 아유미의 ‘부루라이토 요코하마’ 가락이 절로 떠올랐다. 요코하마는 도쿄의 위성도시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오고가는 배들로 늘 분주한 운치있는 도시다. 요코하마 여행객들은 흔히 도쿄에 숙소를 정하고 요코하마에 들르는 방식을 택한다. 도쿄에 숙소가 많은 만큼 싼 곳도 많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요코하마까지는 JR 도카이도혼선 등을 이용하면 30여분만에 갈 수 있다. 최근 미나토미라이선과 JR쇼난신주쿠 라인이 증설돼 도쿄 쪽에서 오기가 훨씬 편해졌다. 한국에서 요코하마로 직접 가려면 ANA항공편을 이용하면 된다. 김포공항에서 하네다공항까지 비행기가 하루 두 차례(오후 1시, 밤 8시20분 출발) 뜬다.ANA항공은 ‘요코하마 알리기’ 차원에서 내년 1월10일부터 12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모니터 투어도 실시할 예정이다.45명 정도로 예상가는 39만 9000원선. 문의 ANA항공 영업부(02)752-1160.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5돌 자선공연 갖는 국민가수 하춘화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5돌 자선공연 갖는 국민가수 하춘화

    풍(豊)은 풍이로되 신풍(新豊)이도다. 그렇다면 ‘풍’은 무엇일꼬? 주역에 나오는 풍괘(豊卦)를 줄인 말이다.‘풍’은 번영과 성숙이 가득찬 정점의 상태를 말하며, 한낮의 태양처럼 천하를 밝게 비칠 최고의 운에 비유한다. 여기에 늘 향기로운 춘화(春花)가 더해진다면 어떠할까. 최연소 음반 출반(6세), 최연소 레코드회사 전속가수(9세), 최연소 영화주제가를 부른 가수(10세), 최다 개인발표회(1260일)로 기네스북 등재, 최다 사회 봉사활동 공연(100여회), 최초 평양공연(85년)….‘신풍’은 이렇게 ‘최’라는 수많은 접두사를 만들어냈다. 국민가수 하춘화(河春花·본명·50). 아호가 바로 ‘신풍’이다. 항상 새로운 ‘풍’을 선사하라는 아버지의 큰뜻에서 그렇게 지었다. 이후 한번도 흔들림이 없었다. 반세기 가까운,45년 세월을 늘 처음처럼 살아왔다. 그동안 무려 2500여곡을 발표하면서 한결같이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자신을 좋아하는 팬이 항상 주위에 있었기에 저절로 힘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같은 결실을 모은 ‘하춘화 노래인생 45년’ 행사를 다음달 10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갖는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깨끗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환경미화원들을 위한 공연이다. 개런티를 포함해 수익금 전액이 환경미화원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객석은 환경미화원 부부로 꽉 채워진다. 또 있다. 알고보니 하씨는 아무도 모르게 공부를 열심히 해왔다. 내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어서 현역가운데 첫 박사가수라는 명함이 추가될 전망이다. 노래와 공부, 정열적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이래저래 내년에는 ‘춘화’의 계절이자 또다른 ‘신풍’으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정점에 서는 셈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모 방송국 인근에서 하씨를 만났다. 청바지 차림에 외투 하나를 가볍게 걸친 모습이 무척 젊고 자유스러워보였다.4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다들 그러는데, 사실은 너무 고생해 별로 (몸이)좋지 않아요.”라고 달갑지 않은 듯 받아넘긴다. 공부를 하느라 심신이 피곤해 있다고 고백했다. 하씨는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오는 13일 박사논문 예심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올 한해는 (공연 등)아무것도 못했어요.”라고 토로했다. 이어 “올 1월부터 4개월 동안 자택(서울 서초구 서초동) 인근의 독서실에서 지독히 공부했거든요.”하면서 피식 웃는다. 읽은 논문만 50편은 훨씬 넘는다고 했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처럼 정말 열심히 했단다. 하씨의 평소 좌우명은 ‘성실 건강 정직’이다. 악바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한번 마음을 먹고 일을 정하면 끝을 보고야마는 우직한 성미다. 박사논문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느냐고 하자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위상과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지요. 우리 국민은 다들 대중가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같은 연구접근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라고 하면서 논문의 제목은 ‘대중이 선호하는 대중가요의 사회철학적 연구’라고 했다. 이어 “대중가요가 엄청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또 학문적으로 접근한 사람이 없어서 시작하게 됐지요.”라고 연구의 계기를 밝혔다. 아울러 “한때 가수로 명성을 날리다가 인기가 시들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가수로)활동할 때 학문적 바탕을 쌓고 인재양성에 열정을 쏟아야겠다는 사명감을 늘 생각했지요.”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내년이면 박사가수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맞아요,1호가 될 겁니다. 더욱 열심히 해야지요. 또 결국 나중에 가서는 학교 강단에 서서 후배와 제자를 키워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정말이지 (공부가 힘들어)박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어요.”라는 고충을 토로한다. 지나온 45년 가수인생과 더불어 자선공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71년 ‘물새 한마리’ 이후 ‘영암 아리랑’‘날버린 남자’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사실상 한국가요 70년을 넘나들지 않느냐고 하자 “직업연령으로 치면 정말 많이 먹었지요. 하지만 제 나이에 데뷔하는 사람도 많아요. 직업적으로 보면 후배지요. 하지만 그분들한테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아버지가 늘 그랬어요.‘남을 생각하라, 사회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어릴 적부터 그 말이 귀에 콱 박혔습니다. 나중에는 (자선공연이)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더군요.”라고 말했다. 부친이 살아계시느냐고 하자 “물론이지요.(부모)두분 다 84세로 건강하게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집에 오셔서 같이 점심 드시고 그랬거든요.”라고 대답했다. 한 동네, 걸어서 5분거리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어번 식사를 함께 한다고 귀띔했다. 또 “딸만 넷을 두었어요. 사실 저만 빼놓고 다들 박사학위를 땄거든요. 언니는 사회체육학 박사, 바로 밑에 동생은 컴퓨터 전공, 막내는 경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늘 아들 열이 부럽지 않다고 자랑스러워한다며 웃는다. 일제때 신식 교육을 받은 아버지는 요즘도 패션감각이 뛰어나 사위들을 만나면 한수 지도까지 해줄 정도라고 했다. 가요 평론가의 말을 빌려 하씨가 우리식 전통가요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라고 했더니 “트로트는 미국에서 나왔지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식 가요로 정착하고 있습니다.‘영암아리랑’과 ‘칠갑산’ 같은 경우는 민요에 바탕을 둔 신민요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또한 “문화란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이식의 과정을 거쳐 정착하게 됩니다. 랩음악의 경우 생명력이 6∼10년 정도로 봅니다. 우리 문화에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음악도 많습니다. 하지만 트로트풍의 전통가요는 여전히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 음악이지요. 김치가 우리 음식이듯 말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트로트에 대한 우리식 이름이 필요합니다. 나훈아씨는 ‘아리랑’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지요. 어쨌든 우리 세대에서, 우리들이, 만약 제가 강단에 선다면 학문적으로 접근하면서 문화적 통찰력으로 그 작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고 강한 의욕을 내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강하고 항상 거침이 없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이 준비된 테이프처럼 술술 나왔다. 아이큐(IQ)가 몇이냐고 하자 “아이고 그런 질문 하지 마세요. 좋으면 어떻고, 안 좋으면 어때요.”라고 한다. 인터뷰 도중 하씨는 방송녹화 일정 때문에 서둘러 일어서려고 했다. 잠시 붙잡고 건강관리에 대해 물었다.“사실 운동이 생활화됐습니다. 수영 골프 스키 볼링 다 좋아합니다. 집주변의 학교운동장에서 뛰기도 합니다. 집안에서는 스트레칭도 하고요.”라고 대답했다. 골프실력은 싱글 수준이지만 요새는 1년에 한번밖에 라운딩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10년전 늦게 결혼한 하씨는 아직 슬하에 자녀가 없다. 자택에서는 남편(KBS 행정직 직원)과 둘이 오붓하게 지낸다.“다음달 공연 기대하세요. 신인가수의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거든요. 우리 가요 7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큰 공연이 될 거예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전남 영암 출생 ▲75년 서울 일신여상 졸업 ▲80년 경남대 가정학과 2년 수료 ▲94년 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 최고 정책과정 수료 ▲98년 한국방송통신대학 졸업 ▲2000년 동국대 대학원 졸업 ▲2005년 성균관대 예술철학 박사과정 재학중 ● 경력 ▲61년 서울 동아예술학원 가요과 수료, 레코드 취입 8곡 ▲63년 지구레코드사 전속가수 ▲65년 영화 ‘아빠 돌아와요’ 주연 및 주제가 부름 ▲72년 뮤지컬 ‘우리가 여기 있다’ 주연 ▲73년 드라마 ‘여보 정산달, 초가삼간’ 주연 ▲74년 제1회 개인리사이틀 공연, 이후 매년 공연 ▲85년 분단 최초로 평양공연 ▲92년 가요 20년 기념 공연 ▲2001년 가요 40년 공연 ▲2001년 옥관 문화훈장 ▲2002년 선행스타 대상수상 ▲2005년 현재 2500곡 취입
  • “군장병 私兵化 관행 근절”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일선 부대의 일부 지휘관이나 간부들이 아직도 부하 장병들을 ‘사병화(私兵化)’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이를 근절할 것을 지시했다. 윤 장관은 “일선 부대가 1998년 12월 제정된 ‘군인복무규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면서 사병화 근절 지침을 철저히 이행할 것을 지난 1일 일선 지휘관과 간부들에게 지시했다고 군 관계자가 6일 밝혔다.이같은 지시는 지난 5월 모 장성급 지휘관과 그의 부인이 공관병에게 모욕적인 언어 폭행을 가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최근까지도 국방부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의 비난이 끊이지 않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윤 장관은 사병화 근절 지침을 통해 지휘관이나 간부들은 군 승용차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말고 사병들에게 사적인 임무도 부여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특히 휴가·외박·외출 기간에 군 승용차를 운행하지 말고 민간골프장에 갈 경우 다른 차량을 이용하도록 했다. 또 지휘관 관사에 규정에 따른 공관병 이외의 추가 병력을 둬서는 안 되고 운전병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일부 지휘관이나 간부들이 비공식 모임이나 골프장 출입시 관용차량을 이용하고 운전병을 장시간 대기시키는 관행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질타한 것으로 보인다.앞서 윤 장관은 지난 5일 국방부 신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55만여명의 사병 가운데 62%가 외아들인 만큼 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며 “특히 정보전달 속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과거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儒林(491)-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3)

    儒林(491)-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3)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3) 신사임당이 남편을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은 이원수가 당시 권력자였던 이기(李 )의 집에 드나들며 환심을 사 관직을 구하려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신사임당이 한사코 이를 말렸다는 일화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기는 이원수 아버지의 사촌형제로 가까운 사이의 일가친척이었다. 따라서 아저씨와 조카 관계였으므로 찾아가는 것은 원칙상 잘못이 아니었으나 불의한 사람과 접촉하여 관직을 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었다. 과연 이기는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원형과 손잡고 윤임 세력을 꺾음으로써 보익공신(保翼功臣)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였으나 많은 선비를 죽임으로써 훗날 윤원형과 함께 을사사화의 원흉으로 낙인찍혀 사후에 관작추탈과 묘비제거라는 역사의 응징을 받았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만일 이때 이원수가 이기의 세력 하에 들어가 권신이 되었다면 역사에 더러운 오명을 남길 수도 있었으니, 신사임당이 역사를 보는 판단은 이처럼 날카로웠으며, 또한 남편을 내조하여 계도함이 이처럼 현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이러한 평소의 모습을 지켜본 신사임당은 남편의 우유부단함에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 율곡을 절망에 빠지게 한 것은 악처의 난폭한 행동이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첩이었으므로 아버지였던 그가 좀더 엄격하고 단호하게 가정을 다스렸다면 율곡은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는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던 율곡이 아니었던가.3년 동안의 시묘생활도 모든 절차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자최삼년(齊衰三年)’의 여막살이를 했던 율곡이었다. 상복과 삼띠를 벗거나 풀지 않았고 제찬을 올리는 것과 제기를 씻는 등의 모든 일을 결코 비복들에게 시키지 않고 손수 하였던 율곡이 아니었던가. 어머니에 대한 3년 상을 끝낸 후 율곡은 18세 되던 해 가을, 마침내 성인식의 관례(冠禮)를 행한다.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성인의 복색을 갖춘 후 아버지와 함께 사당에 들어가 조상들에게 고함으로써 비로소 한 사람의 성인이 될 수 있었으나 율곡의 마음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밝은 기쁨보다는 어두운 비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던 것이다. 이때 율곡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는 명조실록 19년 8월 31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이(李珥)를 호조좌랑으로 삼았다. 이이는 사람됨이 총명 민첩하였고, 널리 배우고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으며, 글도 잘 지어 일찍부터 드러났었다. 한 해에 연이어 사마시와 문과의 두 시험에 장원으로 뽑히자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다만 소년시절에 아버지의 첩에게 시달림을 당하여 집에서 나가 산사를 전전하며 붙여 살다가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혹자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 무렵 그가 읊은 시는 ‘전생의 몸은 바로 김시습(金時習)이었고, 이 세상은 바로 가낭선(賈浪仙)이 되었네.’라고 하였다.”
  • 儒林(49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2)

    儒林(49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2)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2) 율곡의 생애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친가보다는 외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기록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고,‘율곡문집’에 실린 ‘세계도(世系圖)’를 보아도 아버지에 대한 내용은 ‘진실되고 정성스러워 꾸밈이 없으며, 너그럽고 검소하여 옛사람다운 기품이 있었다.’고 짤막하게 나와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서화에 능하고 수를 잘 놓았으며, 효행이 뛰어나고 언행이 심중하여 모든 부덕을 두루 갖춘 부인으로 평가되어 역사상 인물 중에 최고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여섯 살 때 어린 율곡을 데리고 강릉을 떠날 때 대관령 고갯마루 위에서 눈물을 쏟으며 지은 신사임당의 시는 효행이 뛰어났던 신사임당의 심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한양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강릉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산을 날아 내리네.” 이처럼 신사임당에 대한 풍부한 기록보다 훨씬 적은 이원수의 기록은 비범한 여인이었던 신사임당에 대한 상대적인 것일 뿐 이원수의 인격이 홀대를 받을 만큼 미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원수는 ‘율곡문집’에 실린 내용대로 ‘옛사람다운 기품’이 있긴 하였지만 우유부단하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이원수가 강릉의 처갓집에서 처가살이를 하였던 때의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신사임당은 남편이 입신출세하기를 기원하여 10년을 기약하고 서로 헤어져 별거하기로 약조하였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남편에게 보다 원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남양 홍씨 밑에서 외아들로 자란 이원수는 아내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집에서 얼마 가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고 한다. 그가 가장 멀리 갔었던 것은 집에서 겨우 40리 떨어진 ‘반쟁이’란 곳으로 대관령도 넘지 못한 지척지간의 가까운 거리. 그것도 세 번이나 작심을 하고 떠난 후였다. 결단력의 부족으로 세 번째 돌아오는 남편을 맞을 때 신사임당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서방님께서 다시 돌아오시겠다면 이대로 입산하여 비구니가 되겠나이다.” 머리카락을 자른 아내의 결연한 의지를 본 순간 그제서야 대관령을 넘어 한양으로 와서 3년 동안 부지런히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으니, 그가 훗날 비록 말단관리였으나 수운판관이라는 벼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신사임당이 보인 단호한 의지의 결과였던 것이다. 신사임당은 이와 같은 일화를 통해 이미 남편의 우유부단함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평소 남북조시대 때의 학자 안지추(顔之推)가 지은 ‘안씨 가훈’을 본받아 가족간의 인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신사임당으로서는 자신이 죽은 후 남편이 재혼을 하면 반드시 화목한 가정의 평화가 깨어질 것임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었다. 신사임당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된다. 비록 이원수는 재취를 얻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살림을 주관하던 첩의 난폭한 행동으로 율곡은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라는 편지를 남길 만큼 극심한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작가 김유정의 지독한 짝사랑

    작가 김유정의 지독한 짝사랑

    30이란 아까운 나이로 병마와 싸우다 요절한 작가 김유정의 애인이 살아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雲泥)동 109의 2. 계(桂)동 입구에서 휘문(徽文)고교 쪽으로 가다 보면 한 가닥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들려 온다. 길가에 연한「시멘트」2층집이 바로 김유정의 옛 애인이 살고 있는 곳. 국창(國唱) 박녹주(朴錄珠·65) 여사의 집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명인 박녹주 여사가 일세(一世)의 문사(文士) 김유정의 처음이자 마지막 애인이라는 건 거의 숨겨진 사실. 이 40년 전 사랑의 이야기를 박여사에게 들어보면 - . 이상(李箱)과 단짝 친구인 천하의 외고집 작가 김유정은 이상과는 둘도 없는 단짝. 우선 그의 사람 됨됨을 보면 - . 『모자를 홱 벗어 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 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의 볼따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이다.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또 고집이 세다』(李箱의『소설체로 쓴 김유정론』에서) 이 외고집장이 김유정은 또 한 소리(唱)를 무척 좋아했다. 『「김형! 우리 소리 합시다」하고 그 척척 붙어 올라올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 아리랑 팔만구암자(八萬九庵子)를 내 뽑는다』(李箱의『김유정론』에서) 이런 김유정이니까 판소리 명인 박녹주를 미치도록 사랑할 만도 했다. 김유정과 박여사가 처음 알게 된 건 김유정이 23세 되던 해. 그러니까 나이 2살 위인 박여사가 25세 때였다. 당시 김유정은 수운동(현 묘동)에 살고 있고 박여사는 봉익동에 살고 있어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연전(延專)다니던 23세 유정이 극장 공연 보고 홀딱 반해 당시 연전학생이던(아직 문단에 나오기 전) 김유정은 당시 조선극장(지금 낙원동에 있었음)서 공연 중인 박여사를 보자 홀딱 반해버렸다. 그날 저녁으로 박여사에게「러브·레터」를 띄웠다. 다음날 박여사가 그 편지를 받아보니「박녹주 누님 전(殿)」해놓고는『당신을 연모(戀慕)합니다』라고 서 있더라는 것. 박여사는「연모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레코드·재키트」에 든 자신의 사진까지 오려 보낸 것으로 미루어 사랑편지임을 알고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누님』소리가 싹 빠지고「박녹주씨 전」으로 또 편지가 날아 들었다. 이번엔 상세한 자신의 이력소개와 집안 사정 그리고 자기와 결혼해 달라는 사연이었다. 박여사는 그 편지를 그대로 받아두었다. 그러자 하루에 꼬박 2통씩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혈서까지 써 보내왔다.『무슨 학생이 편지만 쓰고 공부는 언제하나?』싶더란다. 어느 날 국창 이동백(李東伯)의 양녀인 원채옥(元彩玉, 현재 포항서 살림)이 놀러 왔다. 박여사에게 이 이야기를 듣곤 그 성의가 놀라우니 선이나 한번 보라고 권해왔다. 그러지 않아도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한번 보고 싶던 차에 친구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편지를 김유정에게 띄웠다. 그 이튿날 새벽같이 김유정이 들이닥쳤다. 보니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겼다. 박여사는 원채옥을 다락에 숨기고 유정과 마주 앉았다. 金 = 난 당신을 지극히 연모하오. 朴 = 연모가 무슨 소리요? 金 = 즉 말하자면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외다. 朴 = 학생 신분으로 소리하는 여자 사랑하면 되오? 金 = 학생하고 소리하는 사람 연애하지 말란 법, 법률 몇 조에 있소? 朴 = 그래도 공부 잘 해서 훌륭한 사람 되면 얼마든지 우리 같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게요. 金 = 당신이 날 사랑해주어야 공부 잘 되고 훌륭한 사람 되지. 첫 대면은 이렇게 끝났다. 다락에 숨어있던 원채옥은 유정이 가고 나자 박여사에게『이년아- 너 서방 하나 잘 얻었다』고 놀려대었다. 그러나 당시 박여사는 이미 명인 소리를 듣기 시작한 국창. 이름도 없는 일개 문학도 유정을 사랑하기엔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슴 한 구석에 헌칠히 키 큰 유정의 순정을 간직한 채 어느 갑부와 살림을 차리고 들어 앉았다. 불응하자 집에 찾아 들어 편지선 누님이 이년으로 그렇다고 김유정의 외고집이 꺾일 리 없었다. 살림을 차린 줄 알면서도 편지는 여전히 날아들었다. 박여사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영감 눈에 띄지 않게 찢어버렸다. 한번은 사각모자를 쓴 유정의 사진이 끼여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사진을 차마 찢어 버릴 수 없어 깊이 간수해둔 것이 이제 40년을 지난 오늘까지 박여사의 수중에 남아 있다. 유정의 편지는 점점 악이 받쳐갔다.「누님」이「씨」로, 그러다「녹주야」가 되더니 종내는「이년, 저년」이 되어버렸다.「연모」소리만 늘어놓던 편지가『너 오늘 운수 좋았다. 내 눈에 뜨이기만 했으면 죽었다』로 나왔다. 그러면서 집으로 찾아 들기 시작했다. 이때는 영감도 눈치를 챈 뒤라, 박여사는 영감과 상의, 유정을 피해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러면 유정은 용케도 또 찾아오는 것이었다. 갑부와 살림을 차렸는데 설이면 세배하러 왔다고 설이 되면 금반지 하나, 마른신(가죽신) 하나, 양단저고리 한 감을 갖고『세배하러 왔노라』며 찾아 들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버티고 앉기 일쑤여서 박여사가『이러다 우리 영감 만나면 어쩌느냐』고 안달하면 유정은 배포 좋게『그래야 영감과 헤어지고 나하고 살 수 있게 되지 않느냐』며 버티었다. 한번은 어느 중국집에서 손님이 부른다기에 갔더니 방에는 유정 혼자 버티고 앉았더란다. 『나하구 살자』『그렇겐 못한다』설왕설래 끝에 유정이 하는 말이 - . 『너 돈이 좋으니? 그럼 내 나랏님 진지밥상이라도 훔쳐다 주마』하더라는 것. 이러길 꼬박 3년. 정 모씨(월북)가 쓴『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까지 이 연애사건은 기록이 되어버렸다. 박여사가「관」에서 노래하는 줄 알면 그 앞 골목에 숨어있기 일쑤요, 집을 비우면 집에서 버티고 기다렸다. 마침내 박여사는 모든 세상살이가 귀찮아 졌다. 김유정의 손길도 피할 겸 피로한 몸도 쉴 겸 삼방약수터로 훌쩍 떠나버렸다. 이것이 유정과의 마지막이었다. 꼬박 3년 - 열병 앓듯 하던 유정은 그 해 조선(朝鮮)·중외(中外) 두 신문에 소설이 당선되고 이어 계속 수작들을 발표했다. 사랑의 열병이 한물 가시고 나자 유정은 흡사 박여사에게 미치던 것처럼 문필(文筆)에 미쳐버린 것. 그러나 이때 이미 유정은 폐결핵을 앓기 시작할 때. 결국 그는 30이란 아까운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번 손목이라도 잡고 다정히 대해주었더라면 싶어』- 박여사는 사각모를 쓴 유정의 사진을 어루만진다.『이제 다 지나간 일이지만 - 』하며 박여사는 담배연기를 훅 내뿜곤『나보다 더 오래 살아 내 소리보다 몇 백 배 더 좋은 글을 써주길 바랐더니…』박여사의 눈동자엔 40년 전 사랑이 당장 쏟아질 듯 가득히 괴어 있다. <작가 김유정씨 약력> 1908년 강원도 춘천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상경, 형의 집에 머무르면서 휘문(徽文)고보를 거쳐 연희(延禧)전문학교 문과를 중퇴. 1935년 단편『소나기』가 조선일보에,『노다지』가 중외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그 해『금따는 콩밭』『산골』을 발표, 다음해에『동백꽃』『야앵(夜櫻)』『봄봄』『땡볕』, 37년에『따라지』등의 수작을 발표했다. 문단생활 단 2년 만에 30여 편의 단편을 발표한 그는 향토적 서정이 풍부한 독특한 문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고백한 바와 같이 빈곤, 실연, 병고로 말미암아 우울이「성격화」되어 그의 작품 뒤에는 언제나 인생을 방관하는 애수가 깃들여 있다. 27세 때부터 폐결핵으로 고생하기 시작, 1938년 30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 [ 선데이서울 69년 4/27 제2권 17호 통권 제31호 ]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0) 차와 시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0) 차와 시

    첫눈이 내렸다. 하얀 차꽃을 뿌리듯 대지에 살짝 몸을 올린 눈들이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천둥처럼 섞어치던 바람도 어느새 깊은 잠에 들어가고 온 산은 그냥 적막에 빠져 있다. 너무도 자비로운 평화의 침묵이다. 평화는 내면의 침묵에서부터 시작된다. 침묵은 산란한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눈을 뜨게 된다. 자비로운 평화와 침묵은 일상의 나를 보고 그속에서 냉철한 지혜의 길이 어디에 있음을 알게 한다. 그것이 바로 차의 마음이요 차의 길이다. 얼마 전 한 차인이 일지암에 찾아왔다. 그 차인은 오랫동안 지리산 화개에서 차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차꾼이다. 한잔의 차를 마시다 말고 깊은 한숨을 쉰 그는 나에게 물었다.“스님 현재 우리나라 차소비의 주류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현재 우리나라 차 소비의 70%는 이른바 대기업이 일상음료로 생산하는 ‘티백’녹차이다. 그리고 나머지 25% 정도는 두물차인 세작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가장 상품의 차라고 말하고 그 차를 마셔야 제대로 된 차를 마시는 것 같은 ‘우전’의 시장가치는 5% 내외다. 차에 대한 소비자의 시각이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우전’은 현재 우리나라 차 시장에서 가장 앞선 브랜드요, 상징성 있는 차 상품으로 차인들뿐만 아니라 일반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른바 최상품의 차로 불리는 ‘우전’을 우리 차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삼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그것은 향후 중국차 시장과의 경쟁에서 우리 차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나 여지가 무척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전이란 말은 곡우 전후로 딴 찻잎을 말한다. 여기에서 우전이란 찻잎이 충분히 제다할 수 있을 만큼 자란 시기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같은 뜻이 와전돼 무조건 곡우 전후로 찻잎을 따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차상품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를 제다할 수 있을 만큼 자라는 것은 매년 그 기후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어떨 때는 곡우 전에 충분히 자란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너무 어려 비비기도 어려운 상태도 있다. 그러나 차를 제다하는 차인들은 이같은 것을 무시하고 곡우 전후에 차를 억지로 생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경우 찻잎을 따기도 어렵고 차를 제다하기도 어렵다.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중국차와의 경쟁력이다. 향후 차 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차는 그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물밀듯이 한국 차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중국에서 햇차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청명 전에도 생산이 된다. 또한 사계절 내내 햇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전으로 대표되는 우리 차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차인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절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차 생산자가 차밭에서 처음 딴 것을 첫물차 두물차 세물차로 나누어 생산하는 것이 매우 좋을 듯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차의 본성은 고요하고 사색적이고 이지적이다. 찻잔속에 찻잎이 퍼지며 연두색 색깔을 토해내면 그속에는 우주의 순환을 보는 듯한 정신적 심의(心意)가 싹튼다. 그런 점에서 차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키우는 날개와 같은 것이다. 한 잔의 차속에, 한 잎의 찻잎 속에 삶과 죽음의 문제, 심(心)과 색(色)의 문제 등 보다 근원적인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차인들은 차를 통해 만난 내적 깨달음을 시로 표현한다. 진정한 차인은 차를 통해 자신을 깨우쳐 인격의 완전함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차의 마음이요, 노래인 것이다. 옛 차인들은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그 마음을 그대로 노래했다. 초의 추사 다산 등 우리나라의 차인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의 차인들 역시 차의 마음을 시를 통해 마음껏 노래한 것이다. 그같은 노래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과거의 차를 알 수 있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남기고 있다. 먼저 신라·고려 시대의 차는 곧 잊혀진 우리 차에 대한 복원기록 같은 것이다. 마치 기록할 때처럼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고려시대 문신이었던 김극기의 ‘한송정을 돌아보며’라는 시는 좋은 예이다. “외로운 정자가 바다를 임해 봉래산 같으니/지경이 깨끗하여 먼지 하나 용납 않는다/길에 가득한 흰 모래는 자욱마다 눈인데/솔바람 소리는 구슬 패물을 흔드는 듯하다/여기가 네 신선이 유람하던 곳/지금에도 남은 자취 참으로 기이하여라/주대는 기울어 풀속에 잠겼고/다조는 나뒹굴어 이끼 끼었다/양쪽 언덕 해당화는 헛되이/누굴 위해 지며 누굴 위해 피는가/내가 지금 경치를 찾아 그윽한 흥취대로/종일토록 술잔을 기울이네/앉아서 심기가 고요하며 물(物)을 모두 잊었으니/갈매기들이 사람 곁에 날아 내리네” 김극기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던 길에 신라시대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차를 달여 마셨던 한송정에 들르게 된다. 그리고 묘련사의 석지조를 발견하게 된다. 김극기는 옛 차인들이 유적들을 돌아보며 그 회한을 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차시들은 충담사, 김지장 스님, 이규보 등 대문장가들의 시선집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이 차시들을 읽으며 당시 차인들의 멋과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차시의 정수는 바로 차의 마음을 담은 것들이다. 먼저 대각국사 의천의 차시다. “북쪽 동산에서 새로 만든 차를/동쪽 숲에 사는 스님에게 보냈도다/한가로이 차 달일 날 미리 알고/찬 얼음 깨고 샘줄기를 찾는다” 겨우내 차를 그리워했던 차인의 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차시다. 대각국사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먼 남쪽에서 한 차인이 보낸 햇차를 선물받는다. 그 기쁨을 대각국사는 미처 녹지 않은 땅을 일궈 물을 찾는 심정으로 햇차를 기다린 심정을 한 편의 시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희종때 스님인 진정국사의 차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귀한 차는 몽정산의 차 맛을 이었고/샘물은 혜산천에서 길어 온 것 같구나/졸음을 쓸어내고 정신을 맑게 하니/손님을 대하여 다시 여유가 있네/단이슬이 땀구멍에서 솟아나고/공산의 운제상인이/차 자리를 마련했다고 함에/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를 식혀주네/어찌 영약을 구해서 마셔야만/불그레한 얼굴로 지낼 수 있다 하겠는가” 고려시대 지배계층인 귀족과 스님들은 중국의 명차로 알려진 몽정산의 몽정차를 마셨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육유가 최고의 물로 인증한 혜산천의 물을 상징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당시 육우의 다경을 비롯한 중국의 다서들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많은 다인들에게 읽혀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차인 가족으로 알려진 혜거도인 홍현주가의 차시도 볼만하다. 초의 스님의 ‘동다송´을 오늘에 있게 한 주인공인 혜거도인 홍현주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 자식들 모두가 차를 즐긴 당대 최고의 세력자 집안이었다. 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며 지은 차시가 있다. “비 갠 뒤 갓 돋은 달 밝으니/흐르는 그림자 성긴 발에 어리네/먼 데서 오신 손님은 흥도 많으셔/맑은 빛은 모두 싫어하지 않는구나/허공이 밝으니 하늘은 넓고 넓어/이슬이 내려 옷을 적시네/누각은 허공속에 걸렸는데/산봉우리에 달이 걸렸네/구름으로 들어가면 구름 밖은 고요한데/별들은 나무 사이에 걸렸네/밤을 재촉하여 등을 걸었는데/바람이 읊조리니 호각소리가 짧아지도다/…차는 익어 시정에 젖어드니/거문고 맑은 소리 고운 손에 울린다/참으로 다정하고 즐거운 마음을/가도 가도 버릴 수 없네/머리 들어보니 은하수는 기우는데/이 기쁨 달님에게 물어본다” 먼저 아버지인 족수 거사 홍인모가 운을 뗀 후 그의 어머니인 영수합 서씨, 두 형과 여동생 유한당 홍씨, 그리고 홍현주가 돌아가면서 쓴 연시다. 한가족이 달빛을 풍광삼아 차를 즐기는 향취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름다운 차시인 것이다. 차시 가운데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당대 최고의 천재시인 설잠 김시습이다. 설잠 김시습은 앞서 밝혔듯이 직접 차를 가꾸고 제다했던 차인이었다. 그가 차를 마시며 지은 연시 한토막을 소개해 본다. “밤에 듣는 소리는 패옥 같은데/새벽에 물 길으면 빛이 옥 같네/절아이 산차를 달이려/달이 담긴 찬 샘물 길어오누나/새벽해 떠오를 때 금빛 전각 빛나고/차 김 날리는 곳 서린 용이 날개치네/절이 오래되어 솔은 천길이나 자랐고/산 깊어 달이 한 무더기라” 매월당 김시습은 차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차의 마음을 담은 많은 차시들을 남겼다. 매월당은 이시에서 새벽에 물을 길어 돌솥에 끓이는 소리를 마치 아름다운 패옥 같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달이 담긴 샘물 그리고 천길이나 자란 소나무속에 달과 함께 마시는 차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절절히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다인의 차시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송광사의 다송자 스님이다.“뜰 아래는 차 샘이요, 뜰 위에는 정자 있어/집의 문 넓고 멀어 남쪽바다 눌렀구나/거울속 빛과 소리 천년을 숨어 있고/그림속 강산은 점점이 푸르다/백척난간에 바람이 머무는데/한 잔 뇌소차에 꿈을 깨는구나/책상 앞에 앉아 창랑곡을 떠올리니/물 맑으면 갓끈 씻고 물 흐리면 발 씻으리” 다송자 스님은 근대 차인으로서는 보기드물게 80여편에 이르는 빼어난 차시를 남겨 우리의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비우고 비워 마침내 허공에 다다른 담백한 차생활을 전해주고 있다. 차는 곧 시며 선이다. 그것은 차를 통해 우리는 내적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심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깊은 산사에서, 활발한 도심에서 살며 차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차의 효용성이랄 수 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노래하는 즐거움 또한 이 시대 차인들이 회복해야 할 정신사인 것이다. 일지암 암주 ■ 효당 최범술과 차의 길 “육신을 가볍고 쾌하고 부드럽게 하는 것” 웰빙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웰빙이란 글자 그대로 인간의 삶을 자연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마치 값비싼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것으로 환치하는 ‘우’를 범하며 살고 있다. 웰빙이란 앞서 전제했지만 인간의 삶을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살게 하는 것이다. 그속에는 삶의 순리와 역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존재하며 평범하면서도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는 삶의 리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차 은사인 효당 최범술 스님은 ‘차(茶)의 길’을 이렇게 설파하셨다.‘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에도 법도가 있다.’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차를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우고 물을 재우고 법제된 찻잎을 넣어 차를 우려내는 것 하나하나에 그에 따르는 모든 행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을 ‘차를 통하여 생활하는 것’이라고 했다. 효당 스님은 “우리 인간 사회생활 그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음이 없겠으나 모든 인간사회의 복잡다단한 사회생활을 이와 같은 기호 속에서 가볍고 쾌하고 편안하고 부드럽게 조화된 상태에서 등장시켜 고요한 속에서 차생활을 해온 것이다. 이같은 차생활은 차나 무순이나 잎으로 법제된 차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겠으나 위에서 말한 찻잎이 그러한 모든 요소에 적합하다 하겠다. 그러기에 선인들은 차를 인간생활상의 기호면에 등장시켜 그것이 지니는 맛과 멋을 통하여 인간답게 생활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차란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고 인간문화생활의 생활까지 통틀어서 ‘차생활’이라는 말로 범칭하게 되고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차인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효당 스님은 여기에서 차의 맛을 문제삼는다.“차맛을 자세히 음미하면 쓰고 짜고 떫고 시고 단 여러 가지의 맛들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는 우리 인간들의 일상 생활속에서 있을 수 있는 갖가지 맛을 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고동감(同苦同甘)한다는 표현처럼, 맛의 말로써 나타내니 모든 인간 사회생활 그곳에서 한껏 묘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로 정의하고 있다. 차뿐만 아니라 이 세상 많은 것들이 자세히 음미하면 모든 오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차는 다른 것들보다 더욱더 명징하게 오감을 전해준다. 효당 스님은 함께 고통받고 함께 기쁨을 느낀다는 ‘동고동감’을 통해 차와 인간삶의 절묘한 조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우리의 삶이란 곧 번뇌고 환희인 것이다. 번뇌와 환희의 찰나지간 바뀜이 우리의 그날 그날 삶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차인의 진정한 길은 그같은 동고동감 속에서도 늘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자신을 온 우주와 함께 호흡하라고 권한다. 육신을 가볍고 쾌하고 부드럽게 하는 길이 바로 다도의 길인 것이다. 다도의 길은 또 고인물이 흐르는 물로 말미암아 맑은 여울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차 한잔에 한 생각을 모으고 그 모두 어진 생각으로 온 우주와 합일이 되고 그 합일된 바탕 속에서 자신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얻는 것이다. 다도의 길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매일매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한다.“우리 인간이란 매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제일 가깝고 쉽고 평범한 큰길이 있음을 잊은 채 멀고 어렵고 까다로운 샛길을 찾는다. 발걸음을 멈춰 다시 한번 돌아보자.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느 길인가를. 그리고 차와 선이 있는 길이라면 우리 선인들의 슬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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