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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에티오피아 도로 풍경

    (16) 에티오피아 도로 풍경

    에티오피아는 수도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와 9개주로 구성된 연방 민주공화국(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이다. 각 주마다 한정된 주 예산으로 살림을 하기 때문에 현지에 가보면 도시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현재 정치적인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출신지라는 이유로 유명해진 메켈레 같은 도시는 에티오피아 정부를 포함해 외국 정부들까지 공을 많이 들여서인지 수도 아디스 아바바 보다 도시 풍경이 세련되어 보인다. 에티오피아는 다른 여타의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강대국의 식민지 경험이 없다. 이탈리아가 이 나라를 한번 먹어보겠다고 5년을 싸웠는데 결국 지금 남은 건 에티오피아 저 시골을 가도 누구나 파스타 한 가지는 만들 줄 안다는 것과 좀 사는 집들의 철제 대분이 이탈리아제라는 것 정도. 영국이 왔다간 나라들은 영국풍의 도시경관이, 프랑스가 왔다간 나라들은 프랑스풍의 도시경관이 남아 있는데 에티오피아의 모든 도시들은 자연적 발전 속도를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제 맘대로인 곳이 대부분이다. 아디스 아바바의 경우 아직은 번듯한 건물도 그렇게 많지 않고, 도로 상황도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게다가 평균 해발고도가 2,300m가 넘는 고지대이기 때문에 쭉 뻗은 도로를 보기가 힘들다. 도로나 건물은 특별한 재미가 없는 에티오피아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것은 다 재미있다. 오가는 사람들의 피부 색깔이 검다고 다 같은 검은 색 일색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이 한마디로 죽인다. 도로는 노새와 말들이 같이 사용을 해서 이것들이 버티고 움직이지를 않아 도로 정체가 발생하는 일이 종종 있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할 뿐 화를 내거나 죄 없는 운전기사에게 항의를 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친 현지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이방인인 나에게 미소를 날리는데 할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도로에서 재미있는 게 전세계에서 흘러 들어 온 자동차들이다. 아직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컨셉트차만 없을 뿐 모터쇼를 방불케한다. 이제는 한국에서 구경도 할 수 없는 포니를 이곳에서 구경할 수 있다. 장난감 같은 풍뎅이 모양 차량의 구모델도 눈에 많이 띈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은 한국의 ‘아토스’다. 토요타처럼 비포장 도로를 마구 달릴 수는 없지만 세금이 토요타 차량의 절반이고, 연비 때문에 선호한다고 한다. 한국에도 자동차 번호판에 나름대로 기호체계가 있는 것처럼 에티오피아서 만나는 차량의 번호판에도 그런 게 있다. 1번은 개인, 2번은 영업용 등 번호판만 보고도 이 차량이 어떤 차량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 밖에 대사관 차량, UN 차량, AU(African Union) 차량, NGO 차량 등은 또 다른 방식으로 구분한다. 도로는 종로 3가, 압구정 1번지처럼 번호가 붙어 있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고 눈에 띄는 큰 건물이나 그곳에서 있었던 큰 행사 이름들이 그대로 도로이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마스칼이라는 행사를 하는 광장은 마스칼 광장, 근처에 제일 큰 빌딩이 AA 빌딩이라면 AA, 이런 식이다. 이 도로 이름을 잘 알아놔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제대로 타고 또 내릴 수 있다.       <윤오순>
  •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시험 3분전.“첨성대를 만든 사람이 누구죠?”파키스탄인 돌루 시이드(37)씨의 질문에 기자는 “신라 시대 석공이 아닐까요.”라며 궁색한 대답을 했다.“이것봐.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른다니까….”타박하면서도 시이드씨의 손은 예상 문제지를 뒤적였다. ●“3번밖에 기회 없는데…”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정부과천청사 안내동 지하에는 귀화시험이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귀화신청을 냈다. 한번에 100명을 웃도는 귀화신청자들이 필기시험을 치른 뒤 합격하면 면접시험을 본다. 지난 10일의 시험장에도 80여명이 모여 시험을 봤다. 귀화신청자 대부분은 중국동포 2∼3세대. 부모를 따라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시험을 본 것이다. 오전 10시30분. 시험장에 들어가는 자녀들을 배웅하기 위해 부모들은 문앞까지 몰렸다. 자녀들이 시험장 안에서 주관식·객관식 문제(20문항)의 답을 찾는 20분이 부모들에게는 20년처럼 느껴진다. 다들 처음 본 사이지만, 금방 서로를 격려한다. “애국가를 밤새워 외웠는데 잘 쓸 수 있겠죠.”“우리 애는 한국말이 서툴러요. 그래도 세종대왕이랑 이순신은 외웠는데….”“3번밖에 기회가 없으니 이번에 떨어지면 큰일이에요.” 시험장 안에 있는 신청자들은 모두 긴장한다. 우리말로 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옆 응시자가 손을 번쩍 들고 감독관에게 질문하는 동안에도 신청자들은 시험지에만 집중했다. 책상 오른쪽 위에는 외국인등록증이 놓여 있다. 시험에 합격하면 외국인등록증은 없어지고 주민등록증 수여와 함께 부모의 호적에 오른다. ●“군대 가야 한다면 가겠습니다.” 신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30분 동안의 즉석 채점이 끝나고 필기시험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날 합격률은 52%로 60% 정도 되는 평소 합격률보다 낮았다. 탈락자들은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가며 복받치는 감정을 토해냈다. 부모들이 항의하지만,“애국가는 다 맞았다는데요.”라는 말이 전부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의 면접시험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치른다. 한국에서 ‘가족’을 이룰 수 있는지 종합 검토를 하는 절차다. 중국에서 1년 전쯤 입국해 국내 인터넷 바이크 동호회에도 가입한 안용철(23)씨는 면접관 앞으로 가자 시킨 사람도 없는데 쓰고 있던 모자를 얼른 벗었다. 면접관이 “애국가 문제를 많이 틀렸다.”고 지적하자 얼굴이 붉어진다. 20대 남성 귀화 신청자에게 빠지지 않는 질문이 군입대에 관한 것이다. 면접관은 “국내 법령이 바뀌어 귀화자들도 모두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렇다면 가겠다.”“의무도 중요하다.”고 대답한다.“지금 대답을 기록해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라도 하면 부모들도 “국민이 되면 의무를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나선다. 중국군으로 5년 동안 복무했던 최광욱(24)씨는 “중국군 경력도 있고 중국이 지금보다 발전할 가능성도 높은데, 중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네.”라고 했다. 사실 귀화 신청자보다 더 긴장하는 사람들은 부모들이다. 한국에서 미용 학원에 다니고 있는 김려화(23·여)씨는 10년 전에 한국인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다. 그동안 태어난 동생도 처음 봤다. 면접관이 “90년대 초반에 들어와 지금까지 이렇게 성실하게 사시니 보기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아이를 데려오는데 10년이나 걸렸네요.”라며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김철명(26)씨도 김려화씨와 같은 이유로 어머니와 10년을 떨어져 지냈다. 면접관이 “어린 마음에 원망스럽지는 않았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김씨는 “원망할 처지가 못됩니다.”라며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모두 통과한 신청자들은 보름에서 한달이 지나면 최종 통보를 받는다. 면접에서 불합격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면접을 볼 수 있다. 이날 돌루씨 등 시험을 본 파키스탄인 6명은 아쉽게도 모두 필기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한국에서 5년 이상 산 외국인들이다. 돌루씨가 마지막까지 궁금해 한 예상문제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만들어졌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고 귀띔하며 아쉬워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그女子를 섹스에 미치게한 교통사고

    그女子를 섹스에 미치게한 교통사고

    교통사고 때문에 나는 성욕이 이상하게 높아졌어요- 하고 젊은 여성이 호소하는 이상한 사건. 세계에서도 예가 없는 이 사건은 미국「샌프런시스코」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케이블·카에서 부상 한뒤 1백여 남자와 관계가져 「샌프런시스코」법정에서는 원고 대신 변호사「마빈·루이스」씨가 「샌프런시스코」시 교통국을 상대로 낸 50만「달러」의 손해배상사건의 제소이유(提訴理由)를 읽어내렸다. 『29세의 「그로리아·사이크스」양은 6년전「하이드」거리에서 일어난 시영 「케이블·카」의 폭주사고로 부상을 입은뒤 1백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져야만 했읍니다.「케이블·카」에서 내던져져 전주(電柱)에 부딪쳤을 때 신경계통에 받은 충격이 그녀에게 쉴새 없는 성욕을 갖게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물론 「샌프런시스코」시 당국은 반론했다. 무려 33명의 증인이 증언대에 섰다. 배심원들은 신중히 생각한 끝에『「샌프런시스코」시는 원고에게 5만「달러」를 지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결을 9대3으로 내렸다. 『이겼어? 확실히 소송에도 이겼다고 할수있읍니다. 그렇지만 불쌍한「그로리아」는… 신경과의 치료비만도 1년에 30만「달러」가 듭니다』라고「루이스」변호사는 기자단에게 말했다. 금액에는 불만이었지만「그로리아」는 항소하지 않았다. 또 한번 재판을 해서「샌프런시스코」의 웃음거리가 된다는것에 더이상 참을수없었다. 『남자 1백명은 어머니의 대용품이었읍니다』 약간 뚱뚱하다는 것 외에는 매력적인「그로리아」의 증언은 이틀반이나 계속되었다. 『판사님 도대체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솔직이 말해서 나 자신도 모릅니다. 의사들은 정신신체적결함(精神身體的缺陷)이라고 합니다.「케이블·카」사고만이 결함의 원인이 되는지 여부는 나는 모릅니다.다만 그후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에는 확실히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은 처음에는 몇사람의 심리학자들의 증언으로 시작되었다. 정신분석학의「A·와트슨」(미시건대학)교수는, 『그녀는 비참한 가정환경속에서 자랐읍니다. 부모의 사랑을 경험못한「그로리아」는 「무엇이든 기술을 배워 돈을 번다면 일생동안 아무도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다」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있읍니다. 돌연한 교통사고는 이 마음의 유지를 갑자기 없애버렸읍니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여 지금까지 의식밑에 있던 안식(安息)을 찾는 충동 즉「의존에의 원망(願望)」이 갑자기 표면에 나온 것입니다. 성욕이 지나치게 높아진 것뿐 아니라「그로리아」는 등의 아픔을 호소하고 신장장애를 공상하기도 했는데 모두 교통사고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라고 말했다. 욕망이 아닌 불안 때문에 심할땐 닷새에 50명 상대 정신병의사인「M·제릭」박사도 사고원인설(事故原因設)을 지지했다. 『「케이블·카」는「그로리아」에 있어「아버지」의「이미지」를, 또 사고후에는 그녀가 관계한 약 1백명의 남자들은「어머니」의 「이미지」의 대용(代用)이었읍니다.「그로리아」의 아버지는 자동차 직공이었는데 술을 마시고는 곧 잘 그녀를 때렸읍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그로리아」는 사고의 순간까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고 사고로 이것이 폭발했읍니다. 어렸을때 아버지에게 내던져져 벽에 부딪쳤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울면서 어머니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대신 1백명의 남자를 안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성적인 욕망이 아니고「그로리아」는 단지 품에 안기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로리아」는 작년 가을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는데『수술실을 나온 순간 나는 누구든지 처음에 만난 남자에게 안기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읍니다』라고 「제리크」박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과거 6년동안에 가장 심했던 때는「그로리아」는 5일동안 50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져야만했다. 참고자료로 제출된「그로리아」의 일기(1백49페이지)에는 그녀가 경험한 약 1백명의 남자들과 의 정사가 자세히 쓰여져있다. 「캘리포니아」의「A·E·베네트」박사도『사고후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남자와 관계하는 죄의식이 정신장애(精神障碍)를 더욱 심각히 했다』고 말했다. 남자없인 못살지만 사랑 느껴본일 없어 남자 친구들중 6명이 증언대에 섰다. 「에렉트로릭스」기사를 포함한 3명이「그로리아」가 첫번의「데이트」에서「허락했다」고 증언했다. 「루이스」변호사가 소환한 마지막 증인은 원고인「그로리아·사이크스」자신이었다. 『「미시건」대학의 학생일 때 처음으로 남자를 안 것은 22세. 상대는 의학부의 교수였읍니다.「샴페인」의 힘을 빌어…나도 굳이 거절하지 않았읍니다. 또 한사람 외국인의 의과학생과 10회정도 교섭을 가졌읍니다. 그러나 그가 나를「자기것으로 했다」는 것을 교내에 퍼뜨려 싫어졌읍니다』 이틀째의「그로리아」의 증언은 그녀의 일기에 대해 이루어졌다. 『아무리 해도 남자가 필요했었읍니다. 나 자신도 이상하지만 남자 없이는 있을 수 없었읍니다. 다만 한가지 규칙은 지킨 것으로 압니다. 돈때문에 남자와 교섭을 안가진다. 결혼한 사람은 안된다는 두개 사실만은-』 『2년전의 3월의 일기에는 당신은「나는 섹스 광」이라고 쓰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루이스」변호사가 묻자,「그로리아」는 수긍했다. 『그렇습니다「나는 사랑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남자는 모두 코웃음치고 상대해 주지 않습니다.「섹스」광이라고 하면 처음으로 흥미를 보입니다. 남자들은 정사만 끝나면 나를 내려다보며 코웃음 치고는 가버립니다. 관계한 남자중 99%를 나는 조금도 사랑을 느끼지 않았읍니다』 변호사가 임신중절하는 날의 일기를 읽자, 그녀는 울면서 주저앉아버렸다. 『원고는 별실에 가도 좋다』라는 재판장의 말로 그녀는 법정에서 나왔다. 15분후 그녀는 증언대에 돌아왔다. 『당신은 살겠다는 의욕이 있읍니까?』 『전연 없읍니다』 『죽고 싶습니까?』 『얘스, 자살을 해서 성공할 자신이 있읍니다』라고 답변. 피고측의 증인은 한명뿐이었다. 정신분석의사 「K·휜레」박사가 2개월전에 그녀를 진단한 결과를 기초로 증언했다. 5만弗 보상판결 받은후 어디로 갔는지 자취감춰 『사고로 인해 어느 정도「밸런스」를 잃었겠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사고로 인해 생긴 것은 성욕이 높아졌다기보다는 불감증인 것 같습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녀는 똑같은 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 않았을까. 사고가 성욕의 자극제로 되었다는 것은 내가 취급한 증상에서 예가 없읍니다』 마지막 변론이 시작되었다. 우선 「루이스」변호사는『「그로리아」는「땅에 떨어진 참새」입니다. 그녀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도「사나트륨」에 들어갈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으면 좋겠읍니다. 그녀의 이상욕망의 대상이 된 남자들은 모두 그녀가 쾌락을 위해 그들을 찾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읍니다』 피고측 변호사의 변론도 끝나자, 배심원들은 무려 8시간동안이나 협의를 한 결과 9대3으로 「5만달러의 보상」의 평결(評決)을 내렸다. 재판이 끝나고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루이스」변호사의 사무실에 전화로『항소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것 뿐 행방을 모른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24일호 제3권 21호 통권 제 86호]
  • “소방공무원만… 너무합니다”

    소방공무원들이 승진 등 인사가 차일피일 늦춰지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을 비롯한 중앙행정기관에서 근무하는 국가직의 경우 현재 인사가 6개월 이상 ‘올스톱’된 상태다. 소방준감(3급 상당) 자리인 서울소방학교장과 경기소방학교장 등은 수개월째 공석이다. 소방정(4급 상당) 자리인 소방방재청 과학화기반팀 감정업무 및 대응기획팀 조직업무도 지난해 4월부터 빈자리로 남아있다. 지난해 국가직 소방공무원 정원도 소방령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 늘었으나, 실제 충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위직 인사가 지연되면서 하위직까지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소방방재청 소속 국가직 공무원 320여명 가운데 소방공무원은 30% 정도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 고위관계자는 “인사는 빨리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조만간 교육 파견·복귀와 맞물려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 일각에선 청탁 등 인사를 둘러싼 과열 양상 때문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또 그동안 굳어졌던 연공서열식 인사관행을 깨기 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각급 소방관서에서 근무하는 지방직도 불만은 마찬가지. 가장 큰 원인은 올해부터 확대된 근속승진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1월1일부터 근속승진이 소방위까지 확대되고, 소방교와 소방장으로 근속승진하는 기간도 1년씩 단축됐다. 이는 지난해부터 확대된 경찰공무원의 근속승진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올 한 해에만 2000여명의 소방공무원이 근속승진하는 혜택을 누릴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는 근속승진 확대가 차근차근 적용되고 있는 반면, 소방공무원의 경우 일정 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한 지방직 소방공무원은 “지방직 소방공무원은 근속승진 여부를 해당 지자체가 결정하는데 예산 부담 등의 이유로 소극적인 것 같다.”며 “승진 시기나 방침 등이 확정되지 않아 사기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말까지 근속승진 확대에 따른 시행지침을 각 지자체에 내려보낼 계획”이라고 해명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피랍근로자 건강 양호, 16일쯤 귀국 예정

    외교통상부는 “나이지리아에서 피랍됐던 대우건설 근로자 9명은 모두 상태가 양호하며, 납치 단체의 석방 요구조건은 아직 파악되지 못했다”고 13일 밝혔다. 외교부 김호영 2차관은 이날 기자브리핑에서 “13일 새벽(한국시간) 나이지리아 바엘사 주 정부와 납치 단체간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피랍 근로자들은 주정부 인사의 인솔 아래 대우건설 본부가 있는 와리시로 이동한 뒤, 다시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로 이동한다”며 “그 곳에서 공식적으로 신병을 인도받을 예정”이라 말했다. 대우건설 조응수 상무도 이날 브리핑에서 “신병이 인도되는 대로 건강점진을 실시한 후 가능한 빠른 비행기 편으로 귀국할 것”이라며 “아마 한국시간으로 16일 오전께 도착할 것으로 본다”고 13일 오전 밝혔다. 특히 조 상무는 무장단체에 대해 “지난해 대우건설 근로자를 납치했던 니제르 델타 해방운동(MEND)에서 작년 말 분리된 신흥 무장단체”라며 “여러 조직이 복합돼 한 이름으로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 상무는 협상 요구사항 관련 “현재로서는 아무 조건없이 풀려나왔다”며 “추후 몸값을 요구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석방 요구조건은 알려진 바 없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 육영재단 이사 전원 교체

    교육청의 승인 없이 수익사업을 해온 육영재단 이사 전원이 교체됐다. 서울 성동교육청은 11일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과 법인 정관을 위반하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은 육영재단 이사 6명에 대해 이사취임 승인취소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박근영 이사장은 지난해 12월8일 성동교육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패소해 이미 이사 자격을 잃었다. 성동교육청은 “육영재단이 교육청의 시정 요구를 계속 거부해 그 책임을 물어 이사 전원을 교체했다.”면서 “불이익을 없애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의견진술 기회를 줬지만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육영재단은 앞으로 검사 청구에 따라 법원이 결정한 임시이사가 선임되며, 교육청의 시정 요구사항이 이뤄질 때까지 임시이사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탐사보도-법따로 현실따로] (3) 초·중학생 유학은 불법

    [탐사보도-법따로 현실따로] (3) 초·중학생 유학은 불법

    “유학이 불법이라뇨?” 서울 장안동에 사는 주부 박모(36)씨는 11일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뉴질랜드로 유학시키기 위해 학교를 찾은 김씨는 ‘조기 유학은 불법이라서 추천장을 써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주위에선 아무 문제없이 다들 갔는데 불법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상계동의 주부 이경자(39)씨는 최근 중학교 1학년 아들을 필리핀으로 보내려다 일정을 미뤘다. 이씨는 “지난해 초에는 아무 문제없이 다녀왔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깐깐하게 나왔다.”며 “규제를 해도 나갈 사람은 다 나가는데, 괜히 걸리는 사람만 재수없이 손해보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주부 김은정(40)씨는 방학을 앞둔 지난 연말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두 달 일정으로 영국에 보냈다. 김씨는 “학교에서 무단 결석 처리를 한다며 특목고에 응시할 때 내신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친구 아들 학교에서는 3주 결석을 눈감아 주기로 했다던데 단속을 하려면 확실히 하지, 아이를 범법자로 만드는 법이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0년 2500여명에 불과했던 초·중 유학생 수는 2005년엔 1만 4818명으로 6배 가깝게 늘었다. 대부분은 불법 유학이고, 유급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 양천구 Y중학교 3학년 P군은 1학년때 호주에 유학을 다녀와서 유급을 했다. 같은 학교 K군은 미국 유학을 갔다가 유급을 해야 한다는 학교측 설명을 듣고 결석일수 3개월을 채우기 전에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분당에 사는 학부모 유모(41)씨는 중학생 딸을 매년 미국으로 보낸다. 벌써 3년째다. 유씨는 “현지 영어교육은 필요한데 장기결석은 아무래도 내신에 불리할 것 같아 해마다 2개월씩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 박모(37)씨는 “초등학생 딸을 미국에 보내려고 해외에 가족여행을 간다고 둘러대 결석처리를 막았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의 혼란도 학부모 못지 않다. 서울 대치동 D중학교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전학년에서 50명이 해외 유학을 떠났다. 전년도에도 40명 정도가 자리를 비웠는데 최근 그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동 A초등학교에서도 지난해 20명이 학교를 떠났다. 학교측은 “유학을 떠난 학생은 재작년 10명에서 작년에 두 배로 늘었는데, 이것도 학교에서 파악한 숫자만 이 정도다. 말도 안 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교사들도 골치를 앓고 있다. 원칙적으로 유급돼야 하는 학생을 진급시켜달라는 부모들의 성화탓이다.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인 이모씨는 “반 아이가 3월 말에 어학연수를 가서 10월에 돌아왔다. 수업일수가 모자라 유급을 해야 할 상황인데, 졸업을 시켜달라고 난리”라며 “원칙대로 처리했지만 학부모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학교측에서 유학생들을 말릴 방법도 마땅찮다. 조기유학생이 특히 많은 강남의 C중학교 교감은 “중학생 유학은 불법이라고 말려도 비자를 핑계로 성적증명서와 재학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떼간다.”며 “사실 말만 불법이지 제재 수단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 규제 풀고 질 낮은 유학원 단속해야 초·중등학생의 조기 유학을 불법으로 규정한 법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는 지난 1999년에 시작됐다.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교육부에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의 자비유학자격 기준을 완화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법적 실효성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결국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전면 폐지는 없던 일이 됐다. 대신에 고졸자에서 중졸자로 유학 기준을 낮추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유학제한을 폐지하면 유학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폐해를 정부에서 조장하는 꼴이 된다는 시민단체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폐지 논의는 끊이지 않는다. 규제가 완화되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 탓이다. 교육부도 여전히 ‘조기유학 제한 규정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여론은 아직까지 규제 쪽에 손을 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폐지를 검토하기 위해 2005년에 설문조사를 해봤는데 과반이 규제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지속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지만 아직 국민정서상 추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조기유학을 금지한 법규를 고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김홍원 학교혁신연구실장은 “유학 규제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 데다 법적 효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조기유학을 금지하는 현행 법규는 대표적인 반쪽짜리 법이다. 불법자를 무더기로 양산하고 있지만, 법은 집행되지 않는다. 때문에 조기유학을 불법으로 정한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조기유학 관련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난립하고 있는 유학원들은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반 학원은 ‘학원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부의 감독을 받지만, 유학원은 제외된다. 세무서에 등록만 하면 누구나 차릴 수 있다 보니 피해를 입어도 소비자보호원 외에는 피해를 호소할 곳도 없다. 김홍원 실장은 “지켜지지 않는 규제는 풀고, 대신 검증되지 않은 질 낮은 유학알선업체를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 유학원에 직접 가보니 “남들 다 하는 불법은 불법이 아니죠.” 12일 유학원이 밀집한 서울 종로·강남 일대를 찾았다. 조기유학을 알선해 주는 유학원들은 불법성 여부엔 관심이 없었다. 일부 유학원은 “조기 유학이 왜 불법이냐.”며 어리둥절해 했고, 일부 유학원은 “교육청이나 학교에서도 묵인해 주는데 우리가 신경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관심은 불법 여부가 아닌 ‘얼마짜리’ 유학이냐에 쏠려 있었다. C유학원을 찾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1년간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싶다.”고 상담했다. 상담 책임자는 대뜸 “프로그램에 따라 1500만원에서 3500만원짜리가 있는데, 얼마짜리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가격이 높을수록 현지 신변보장이 확실하다는 얘기였다.“싸게 보내면 아이의 신변이 불안할 수도 있냐.”고 되묻자 책임자는 “꼭 그런 것은 아니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대신 “3500만원짜리 유학은 미국 국무성이 관할하는 재단을 통해 이뤄진다.”면서 “재단이 홈스테이에서부터 방과후 교육까지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조기유학이 불법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이번 겨울 방학에만 40여명의 유학을 주선하는데 아무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이어 찾은 국내 최대 규모의 I유학원. 김모 차장은 “중학생 이하의 유학은 모두 불법”이라고 시인하면서도 “그동안 아무도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보수적인 학교에선 무단결석이나 유급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서울·경기 지역의 학교들은 워낙 조기유학생이 많아 알아서 다 해결해 준다.”고 안심시켰다. 이번엔 중국 전문 M유학원을 찾았다. 유학원 상담원은 “요즘엔 중국이 대세”라며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딱 좋은 시기”라고 추천했다.“2년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려 한다.”고 하자 상담원은 “정상적으로 허가받고 정규 학교를 다니면 학력이 인정되고, 학교와 얘기만 잘 하면 초·중학생은 문제없이 재입학할 수 있다.”고 했다. 유학원이 이처럼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도 유학원을 감독할 관리 당국조차 없다. 대전 유성구에 사는 김모(45)씨는 지난 여름 한 유학원이 소개한 미국교환학생프로그램에 1000여만원의 돈을 내고 아들을 보냈다가 낭패를 봤다. 김씨는 “미 국무부 프로그램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중·상류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보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김씨는 “학업까지 중단하고 간 아이가 입은 피해를 어디서 보상받아야 되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육부 관계자는 “유학원을 맡은 부처가 없다.”며 “유학원을 단속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교육부에는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 “학교장 재량” 고무줄 해석 난무 조기유학이 불법이라는 법규정이 현실과는 괴리가 많다는 지적에 교육당국은 ‘법은 법, 현실은 현실’이라는 반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질병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결석처리가 원칙”이라고 말했다. 법 따로, 현실 따로인데 교육부의 방침과 지침이 학교에서 먹힐까. 교육부는 무조건 결석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려놓고 있지만 교육청과 일선 학교마다 실행은 제각각이다. 원칙은 온데간데없이 학교장 재량만 난무하면서 고무줄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교육청 관계자는 “해외유학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고 설명했다. 학교 내의 교과목별이수인정평가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얼마든지 재취학과 진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시내 강남지역 교육청 관계자는 대놓고 “(해외에서 받은 교육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학부모들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고, 교사들도 원칙만 되풀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학생에게는 유학이 허용된 고등학생에 준하는 원칙이 적용되기도 한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중학생 유학이 불법은 맞지만, 학생의 학습권을 존중해서 고등학생과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면서 “제 학년에 재취학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했다. 중학생에게 고등학생 원칙을 적용한다는 얘기에 교육부 관계자는 “말도 안 된다.”면서도 “재량권이 학교장에 있기 때문에 유학생의 학적처리를 단속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조기유학을 불법으로 정해 놓은 바람에 조기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은 졸지에 ‘범법 유학생’이 되고, 학교마다 들쭉날쭉 해석을 하고 교육부는 뒷짐을 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초·중생 유학 왜 불법인가 한해에 1만여명 이상 떠나는 초·중학생들이 불법자로 몰리는 근거는 교육기본법에 있다. 교육기본법의 국외유학규정에서는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져야 유학으로 규정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전체 수업일의 3분의2이상을 출석해야 진급할 수 있도록 정해놓고 있다. 무단 결석 3개월을 넘으면 일단 학적정리가 된다. 이렇게 되면 정원에서 제외되고 수업일수가 모자라 유급을 하게 된다. 교육부는 이런 규정을 근거로 조기유학을 떠난 학생들을 결석처리하도록 지침을 내려보내고 있다. 불법 유학을 하면 이들이 해외에서 받은 교육도 국내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예·체능계 중학생으로 특기가 뛰어나 학교장 추천을 받거나, 외국 정부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국제교육진흥원장의 허가를 받는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받는다. 이민이나 해외파견 등으로 부모와 함께 외국에 합법 체류할 경우에는 교육기간이 인정되지만, 이 경우는 유학이 아닌 해외이주, 파견동행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조기유학을 떠난 초·중학생의 대부분은 불법이 된다. 예를 들어 초·중학생이 6개월 동안 해외유학을 다녀왔다면 그 기간동안은 결석처리된다. 하지만 이행과정에서 적용되는 원칙은 고무줄이다. 서울시 교육청 초등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4월에 유학을 갔다가 그 해 10월에 돌아오는 경우, 학년이 남아 있으니 1학년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일수가 모자르기 때문에 그 학년을 다시 이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0월에 갔다가 다음해 4월에 오는 경우는 달라진다. 학년도 없고, 학력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 때는 학교에 구제 요청을 해야 한다. 기획탐사부 이창구 강혜승 유지혜 박지윤기자 tamsa@seoul.co.kr ●4회에서는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 앞에 무력하기만 한 학교폭력예방법의 문제점을 다룹니다.
  • 가수 비 태국공연 연기 현지 정국 불안 6월로

    가수 비(본명 정지훈·25)의 월드투어 태국 공연이 현지 정국 불안으로 연기될 전망이다. 비는 당초 2월 3,4일 태국 방콕 임팩트 아레나에서 ‘레인스 커밍(Rain’s Coming)-06/07 레인 월드 투어 인 방콕’ 공연을 계획했으나, 현지 정세 불안으로 발목이 잡혔다. 비의 월드투어 주관사인 스타엠은 10일 “새해 방콕에서 조직적인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해 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태국 현지 공연 주최사와 연기를 논의 중이다.”라며 “6월로 연기를 고려하고 있으나, 몇 월이 될 지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스타엠은 “이미 티켓이 대부분 팔려나간 상태지만, 관객과 비, 스태프의 안전을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공연 티켓 구매자가 향후 연기된 공연을 관람토록 하거나, 환불을 해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비는 10일 자신의 모습이 담긴 대한항공의 월드투어 홍보 항공기를 타고 12∼14일 열릴 공연을 위해 홍콩으로 출국했다. 연합뉴스
  • “6개월만에 또…살아만 돌아왔으면”

    10일 나이지리아에서 피랍된 대우건설 직원 가족들은 피랍 소식에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면서도 뉴스를 체크하며 노심초사 석방 소식을 기다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회사 이문식(45) 차장의 아내 홍순선(39)씨는 “어제 저녁에도 남편과 밤 늦게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사이에 납치가 됐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 또 다른 피랍자인 김남식 차장의 형 김남열(51)씨는 “말을 하기 힘들 만큼 떨린다. 어머니도 함께 회사 상황실로 가겠다는 것을 겨우 말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지난해에도 현지에서 한국인 노동자 2명이 납치됐다가 풀려난 적이 있었다. 동생이 작년 11월에 보름 정도 휴가를 얻어 서울에 왔을 때 돌아가지 않도록 말리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 당국이 빨리 조치를 취해 동생이 무사히 풀려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면 일광면의 김종기(47) 반장의 아버지(74)는 “작년에도 피랍사고가 발생해 그렇게 당부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남 양산시 모 빌라에 거주하는 윤영일(53) 대리의 부인(49)은 충격을 받은 탓인지 문을 굳게 잠그고 “무사귀환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경기 동두천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최종진(39) 과장의 아내는 “회사로부터 피랍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대구 칠성동의 홍종택(41)차장의 가족들은 상경한 듯 집에 아무도 없었다. 한편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편입된 대우건설은 지난해에 이어 반년 만에 또다시 피랍사건이 발생하자 아연실색하는 분위기다. 해외사업본부 정태영 상무는 이날 밤 브리핑을 통해 “비선조직 등 모든 채널을 동원해 알아본 결과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서울 주현진 임일영기자 jhkim@seoul.co.kr
  • 그 X이 ‘정말 나쁜 XX’로 몰매를 맞는 이유는

    “정말 나쁜 X! 샐닢 몇 푼을 노리고 고귀한 일가족 3명의 목숨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시신을 불로 태워버리는 망나니짓까지 저지르다니.” 중국 대륙에 돈 몇푼 때문에 일가족 3명을 무참히 살해한 뒤 불에 태워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20대 범인이 붙잡혀 경악케 하고 있다. 사건의 장본인은 중국 중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란톈(藍田)현 자오다이(焦岱)진 판자포(樊家坡)촌에 사는 펑차오(馮超·25).그는 친구들과 함께 심심풀이 노름 마작판을 벌였다가 60위안(약 7200원)을 잃자,동네 주민의 집에 들어가 돈을 강탈한 뒤 일가족 3명을 그자리에서 살해한 뒤 불로 태워버린 혐의로 공안(경찰)당국에 체포됐다고 삼진도시보(三秦都市報)가 최근 보도했다. 그의 잔악무도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1월 1일 새벽 1시쯤.구랍 31일밤 범인 펑은 무료한 나머지 친구들과 돈내기 마작놀이를 즐겼다.아무리 고린전 몇 푼짜리 소액을 건 마작판이었지만 60위안(7200원)을 잃었다.하지만 무일푼의 그에게는 부담이 되는 돈이었다. 기분이 나빠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유(尤·여)모씨 집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위씨가 아들과 딸 등 3명이 자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한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 남편 장(張)모씨는 시안 시내 날품을 팔러간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펑은 위씨의 야트막한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었다.곧 주방으로 들어가 과도를 찾아들고 위씨의 침실로 향했다.자고 있던 그녀가 일어나며 “누구요?”라고 소리치자,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강도다.가지고 있는 돈 전부 내놔라.”라고 욱대겼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겁먹고 꼼짝 못할 줄 알았던 위씨가 “너 펑차오(馮超)지?”라며 형광등을 켜려고 했다.깜짝 놀란 펑은 그녀가 불을 켜지 못하도록 과도로 위협해 두손과 두다리를 묶어버렸다.이어 장롱에 있던 200위안과 위씨가 가지고 있던 10위안 등 모두 210위안(2만 5200원)을 털었다. 짐승 이하의 행위는 이때부터 본색을 드러냈다.위씨는 “내가 모른척 할테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무참히 살해했다.위씨가 자신인줄 눈치채고 있는 만큼 입을 막아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펑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이때 옆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난 두 아이마저 잔인하게 도륙했다.조금 지나 자신이 저지른 죄가 너무 무서워진 그는 ‘완전 범죄’가 되기 위해서는 시신을 없애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들 시신 3구를 한데 모아 놓고 그 아래 콩을 털어낸 마른 콩줄기를 한데 쌓아놓고 불을 지른 뒤 정신없이 줄행랑쳤다. 완전 범죄가 그리 쉬운 일인가.위씨 집에서 갑자기 불이나 동네를 환하게 비추자 자고 있던 동네 주민들이 나와 가까스로 불을 껐다.1월1일 낮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온 시안시 공안당국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초동수사를 한 뒤,동네 주민 2700여명을 일일이 불러 조사를 한 결과 펑차오의 혐의가 가장 짙었다.펑은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가 확실치 않은 데다 절도 전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공안당국은 3일 오후 3시쯤 범죄 용의자 펑을 마작판을 벌인 친구 등 무릎맞춤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증거를 들이대자,“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워버렸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눈을 통해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살펴본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 매주 목요일 연중기획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준비 없이 전쟁을 선택하다 1636년(인조 14년) 봄.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청의 수도인 선양(瀋陽)에서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척화파(斥和派) 신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며 “정묘년(丁卯年,1627년)에 그들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어 ‘황제 운운’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의 목을 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주화파(主和派) 신료들은 “청이 명을 능멸할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현실을 인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사신을 박대해서도 안된다.”고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는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곧 이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정이 청과 맺은 맹약을 파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청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내용으로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극비교서(敎書)를 가져가던 금군(禁軍)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교서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자신의 목을 치라는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있던 용골대 일행에게, 다른 곳도 아닌 조선 영토 안에서 국왕의 밀찰(密札)을 빼앗긴 것이다. 척화냐, 주화냐를 놓고 정쟁만 무성했던 와중에 정작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1636년 12월6일.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질풍같이 내달렸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병력을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大路) 바깥에 위치한 산성들 속으로 집결시켰던 조선군은 청군의 침입 사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군이 조선군과의 접전을 피해, 곧장 서울로 진격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책임진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청군이 침입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묵살하고 조정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다가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해 버렸다. 청군이 이미 개성을 지나 양철평(良鐵坪-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월14일. 서울 도성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이들과 노약자들, 부녀자들의 울부짖음속에 피란행렬이 줄을 이었고, 조정 신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조는 왕실 가족들과 종묘에 모셔져 있던 역대 국왕의 신주(神主)들을 강화도로 먼저 옮기도록 했다. 이어 자신도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대문까지 갔다가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돼지´에게 무릎을 꿇다 1637년(인조 15년) 1월 중순. 준비 없이 들어왔던 남한산성의 상황은 참혹했다. 청군이 산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삼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군량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청군은 연일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면서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조선 조정이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을 지킬 의욕을 잃은 장졸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신료들은 척화와 주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인조는 눈물을 보이며 대책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1월26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청군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하여 수전(水戰)을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강화도 조선군 지휘부의 방심이 불러왔던 결과였다. 청군은 이에 앞선 1월22일, 조선에서 노획한 선박에 홍이포까지 싣고 강화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벌였다. 조선군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강화도는 함락되었고, 피란했던 왕실 가족과 중신들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강화도의 함락 소식은 남한산성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와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이윽고 그는 높다란 수항단(受降壇) 위에 앉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예를 바쳤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 예식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홍타이지를 포함한 여진족들을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로 경멸했다. 일부 인사는 심지어 청 태종을 ‘황태극(皇太極)’ 대신 홍태시(紅泰豕)라고 불렀다.‘붉고 큰 돼지’란 뜻이다. 그런데 인조가 ‘인간’도 아닌 ‘돼지’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끌고 철수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또 다른 다짐을 받아냈다. “내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단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뒤에 도망쳐 오는 포로는 조선 조정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무시무시한 약조였다. 날이 갈수록 영토는 넓어지는데 인구가 부족했던 청은 조선인 포로들을 보배로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노동력이자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청은 10만이 훨씬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조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아냈던 것이다. 훗날 실제로 청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왔던 포로들은 이 ‘약조’ 때문에 청으로 다시 박송(縛送)되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청군에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에 신음해야 했다. 호란 후에도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의 통곡소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추원의 비극을 책임질 것인가? 1664년(현종 5년). 항복 후 27년이 지나 한 남자가 청에서 도망쳐왔다. 마흔한살의 안추원(安秋元)이 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개성 부근에서 살았던 열세살의 소년 안추원은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했다. 하지만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될 때 그는 청군의 포로가 되었고, 선양으로 끌려갔다. 그는 선양에서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린 신세가 되었다. 호란이 끝난 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몸값을 치르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안추원은 그렇지 못했다.1644년 명이 멸망하자 청은 베이징에 입성한다.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청 조정은 선양의 거주민들에게 베이징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물한살이 된 안추원은 그의 주인에게 이끌려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지난 1662년(현종 3). 서른아홉의 장년이 된 그는 조선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베이징으로 송환된 그는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墨刑)에 처해졌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비원(悲願)은 처절했다. 다시 2년이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정확히 27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금지하고 있던 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27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 보내겠는가. 청이 알까봐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내륙으로 옮겨졌다.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는 당장 생계조차 막막했다. 조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또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으로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했다. 1666년(현종 7). 그는 결국 고국을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처형되었을 것이다.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 영의정까지 올라 안추원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오판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병자호란을 통해 수많은 ‘안추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극’을 불러왔던 최고책임자인 인조는 왕위를 유지했고, 책임을 져야할 신료들의 상당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전쟁 발생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과의 싸움마저 회피하여 국왕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은 인조 말년 최고위직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병자호란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돌아본다. 꼭 10년전 ‘IMF 외환위기’가 불러온 칼바람 속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민초들.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의 과실 또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령들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공을 초월하여 유전되는 것일까. 비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년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교수> ●필자 한명기 교수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001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논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광해군’(2000) 외 다수 ●청태종 송덕비(위 사진) 병자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강요해서 세운 청 태종 송덕비. 병자호란의 전말을 적었다. 사진은 일제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삼전도에 있었다. 현재도 삼전동에 있으며 사적 101호로 지정돼 있다.
  • [산이좋아 산으로] 충북 단양 소백산

    [산이좋아 산으로] 충북 단양 소백산

    어느 명산이건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소백산에서는 그 말이 조금 예외일 수도 있다. 소백산은 1년 중 청명한 날이 80여일에 달해, 확률적으로 보면 다른 산보다 화창한 일출을 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소백산 연화봉 중턱에 국립천문대가 있는 것이지만, 굳이 일출이 아니더라도 이 겨울이 가기 전 한번쯤 꼭 올라보고 싶은 곳이 바로 눈 많고 바람 드세기로 소문난 소백산이다. 충북 단양에서 시작해서 천동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쉽게 정상 비로봉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소백산의 제 맛을 찾으려면 능선종주를 해야 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능선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겹겹이 둘러싸인 산줄기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소백산 산행의 큰 묘미다. 거대한 덩치의 소백산국립공원은 비로봉(1439.5m), 국망봉(1421m), 연화봉(1394m)이 주봉으로, 큰 산줄기는 모두 이 세 봉우리에서 갈라진다. 비로봉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한 후 능선을 따라 바람과 함께 걷다 보면 가슴 가득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이 새롭게 채워질 것이다. 천동계곡은 다리안 버스종점에서 시작한다. 종점∼야영장∼다리안폭포∼북부관리사무소∼계곡오름∼야영장∼비로봉 코스로, 등산로가 잘 나 있어 길을 잃거나 크게 힘들 일도 없다. 관리사무소와 다리안폭포를 지나는 동안 긴 콘크리트 도로가 이어진다. 초입은 지루하지만 곧 계곡으로 들어서면 자갈길이 시작되고, 이 길을 가다 보면 간혹 움막집을 세웠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움막집은 바닥의 편편한 바위들로 흔적이 남아 있다. 움막집 터 뒤로 곧게 뻗은 나무들이 길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계곡길이라고는 하지만 산중턱에 야영장이 있고 길이 넓어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다. 천동야영장을 지나자마자 샘터가 하나 나온다. 겨울철이라 얼어붙어 있을지 모르니 출발 전 따듯한 물을 넉넉히 채워가는 것이 좋다. 샘터를 지나 1시간쯤 가면 울창한 숲이 사라지고 나무데크로 된 계단길이 시작된다. 이 길에서는 등산로 보호를 위해 아이젠을 벗는 것이 좋다. 오르막 끝에 이르면 고사목 한 그루를 만난다. 연화봉과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로, 돌아보면 산 아래 경치와 비로봉 능선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한 그루 고사목과 어우러진 조망은 한참 오르막길을 올라온 마음을 보듬어 준다. 소백산 능선은 내내 완만하다. 비로봉 산마루에도 키 큰 나무는 없다. 정상 아래에 있는 주목군락지에 자란 나무들도 능선 아래 빗면에서 자라고 있어 완만한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소백산천문대에서는 죽령으로 하산하거나 희방사를 거쳐 경북 풍기로 내려설 수 있다. 종주를 하면 총 산행시간은 넉넉히 6∼7시간이 걸린다. # 여행정보 소백산 주변에는 부석사, 희방사, 구인사 등 둘러볼 만한 절집이 많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같은 답사기 베스트셀러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아서 너무도 유명해진 부석사에는 무량수전 뒤편에 있는 전설의 뜬돌(부석)과 선묘각, 그리고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 나무 선비화가 있는 조사당 등 볼거리가 있다. 먹거리는 부석사 앞의 산채비빔밥, 순흥에는 메밀묵밥이 유명하다. 단양 읍내에는 곤드레나물 정식(1인 8000∼1만원)을 잘 하는 집으로 돌집식당(043-422-2842)이 유명하다. 글 이영준 김범수(월간 마운틴 기자)
  • [깔깔깔]

    ●슬픈 생일들 총집합 1. 만우절날 생일인 사람:진짜 생일인데 아무도 안 믿는다. 2. 생일이 방학인 사람:거의 다 잠수타고 있는 방학 때 정말 슬프다. 3. 시험기간에 생일인 사람:모두 다 공부에 열내고 있어 관심 안 가져 줄 때 정말 슬프다. 4. 생일이 어버이날인 경우:부모님께 선물받고 재롱떨기가 난감하다. 5. 생일이 2월29일인 사람:4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여보, 저예요! 어떤 부인이 은행 출납계에 가서 수표를 바꿔 달라고 했다. 은행직원이 부인에게 말했다. “수표 뒷면에 성함과 전화번호를 적어 주세요.” 부인은, “수표 발행자가 바로 제 남편이란 말예요.” “네……,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수표 뒷면에 이서를 하셔야만 나중에 남편께서 이 수표를 누가 현금으로 바꿔 갔는지 아시게 됩니다.” 그제서야 알아들었다는 듯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표 뒷면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보, 저예요!”
  • 종로구 노인 소방안전교육 현장 가보니…

    종로구 노인 소방안전교육 현장 가보니…

    ‘만일 경로당에서 불이 난다면….’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단 1%의 가능성에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곳이 바로 경로당이다. 그동안 경로당에서 큰 불이 난 적이 없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지만 대부분 경로당은 시설이 취약해 화재 염려가 상존하고 있다. 쇠약한 노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사고가 생기면 초기 응급구호가 절실하다. 서울 종로구가 경로당 노인들을 상대로 소방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소화기 사용법부터 익혀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고개 중턱에 있는 부암경로당. 지난해 말 소방안전교육을 진행한 종로소방서 이창기 소방장이 경로당에 들어서자 노인 5∼6명이 반갑게 맞았다. 교육에 참여했던 정복덕(80) 할아버지는 “소화기 사용법 등은 경로당 노인들도 꼭 알아둬야 하는데 그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고마워했다. 부암경로당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해 모든 설비를 꽤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1층 좌·우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방으로 분리된다.2층 노래방과 찜질방은 경사가 완만한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도록 했다. 방마다 잘 보이는 곳에 3.3㎏짜리 소형 분말소화기 4대를 비치했다.1층 주방의 가스레인지에는 2중으로 잠금장치를 했고 천장에는 실내등처럼 생긴 확산 소화기도 달렸다. 이 소방장은 “부암경로당과 달리 보통 경로당에는 안전설비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진지한 소방체험교실 종로구는 경로당의 노인 대표자 56명을 소방서로 초청해 ‘소방안전체험교실’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노인들은 우선 분말소화기 다루는 법을 익혔다. 화재는 초기 진화가 중요한 만큼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안전핀을 뽑는 데 주춤거리는 노인들이 많았지만 몇차례 거듭하면서 익숙해진 모습이다. 노인들은 일렬로 서 스크린에 비치는 화재 현장 동영상을 향해 소화기를 대고 물을 뿌렸다. 2층에서 몸에 벨트를 묶고 밧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훈련도 했다. 실제 상황에선 소방관이 출동한 뒤 할 수 있는 동작이라 체험 정도면 충분하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가슴을 누르는 등의 심폐소생술을 익힐 때에는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고 이 소방장은 전했다. 나이가 들면 단순히 방바닥에 미끄러져도 호흡곤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탓이다. 노인들은 각자 경로당으로 돌아가 동료 노인들에게 체험이야기를 전해 달라는 당부를 받았다. 종로구 김대은 노인복지팀장은 “소방안전교육은 노인들이 꼭 그대로 하라고 익히는 훈련이라기보다 위급할 때 119라도 찾을 수 있도록 일깨우는 체험의 한 가지”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이미자(李美子)와 소녀가수(歌手) 5각(角) 편지

    이미자(李美子)와 소녀가수(歌手) 5각(角) 편지

    이미자의 그늘에서 울고 있는 소녀가수들. 여자가수의 정상을 달려 온 이미자천국에는 그녀때문에 빛을 못보고 울고 있는 소녀가수들이 있다. 제2의 이미자로 꼽힌 남정희(南貞姬), 『동백아줌마』의 정은숙(鄭銀淑), 『사랑했어요』의 여이주(呂梨珠) 그리고 문주란(文珠蘭)까지도- . 본의든 아니든 이미자 때문에 출세에 지장을 받았다는 이들의 또하나의 「엘레지」는. 미움을 받게된 까닭 먼저 정은숙(21)의 경우. 그녀는 『이미자때문에 몇번인가 가수를 걷어치울 결심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유는 이미자가 정은숙을 굉장히 미워하고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것. 미워하는 이유는 69년 이미자 가출 사건때부터 발단했다. 전까지는 정은숙은 「미자언니」를 굉장히 따랐고 이미자도 동생처럼 사랑해줬다. 『정은숙이 이미자의 남편 이모씨와 어쩌구』하는 소문이 두사람 사이를 적대관계로 만든 것이다. 『이씨에게 출연료를 받으러 갔다가 3,4명의 연예계사람과 어울려 자리를 같이 했을 뿐인데- 』「스캔들」의 올가미를 씌워 1년이 넘도록 미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너무 큰 영향력 가져 이미자가 미워한다는 사실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야 하는 신인가수에겐 큰 위협이 되는 것같다. 이미자는 작곡가들에게 압력을 넣어 정은숙에겐 곡을 주지 말라고 할 수 있고 제작사에게는 「디스크」를 내지말도록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 작곡가들이 이미자에게 자기 곡을 불리려고 경쟁을 벌이고 제작사도 이미자 때문에 돈을 번다고 (그래서 부사장이란 별명도 있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은숙은 지난해 『석류의 계절』 이후 1년이 가깝도록 취입을 못했다. 방송 출연도 어렵게 얼마전에 『하얀 그림자』를 「타이틀」로 한 독집을 냈는데 『이미자가 어찌 야단을 치는지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는 소문. 그뿐만 아니라 이미자는 「쇼·스테이지」나 방송 「스테이지」에도 『정은숙과는 함께 서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했다는 얘기. 병아리 가수라면 몰라도 이른바 간판 가수인 이미자가 안 나온다면 낭패일 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 정은숙은 방송, 「디스크」등 활동무대를 모조리 빼앗겨 왔다고 울상. 작곡가를 움직이고 그다음 제2의 이미자로 불렸던 남정희(19)의 경우. 그녀는 67년에 「히트·송」『새벽길』을 내놓은 뒤, 이렇다 할 「히트」 하나 없이 3년을 넘겼다. 호소하는 듯한 가냘픈 목소리와 창법이 흡사 이미자의 그것이래서 퍽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레코드」사와 작곡가에게 묶여 있는 그는 「히트」가 가능한 곡이 배당되지 않았다. 『쓸만한 곡』은 모조리 이미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기다리다 지친(?) 남정희는 요즈음 일본공연으로 가냘픈 「레지스탕스」-. 전속 옮겨간 경우도 비슷한 경우에 걸려든 게 여이주(20)와 문주란이다. 68년에 『사랑했어요』로 「데뷔」한 여이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1곡의 「히트」도 못내 놓고 아직도 기다리는 가수다. 문주란은 항창 인기 절정일 때 이미자가 『가장 미워한 가수』였고 그래서 전속사도 「지구(地球)」에서 「신세기(新世紀)」로 옮겼다는 소문이었다. 문주란의 인기가 전만 못하고 은퇴소문을 날리면서부터는 약간 두사람사이가 호전됐다는 소식. 여왕(女王) 7년의 존재로 64년 『동백아가씨』 이후 7년동안 줄곧 정상의 위치를 지켜 온 이미자이기에 그의 영향력은 작곡가, PD, 제작사들에게 거의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대중가요계에 복고조「붐」을 일으키면서 누려온 그의 생활은 울고 짜는 식 노래와는 달리 화사하고 방자(?)했다. 그 그늘에서 또 몇명의 「제2의 이미자」가 빛도 못보고 스러질지 그건 아무도 생각해 주지 않는 문제다.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5) 장애아 생활재활교사 강진희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5) 장애아 생활재활교사 강진희씨

    ‘버림받은 아이’라는 말은 각박한 세상이 붙여준 단어일 뿐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에게는 이 아이들이 오히려 더 소중한 존재다. 성경에 나오는 일곱 천사 중 하나인 ‘라파엘’의 이름을 딴 서울 종로구 체부동 ‘라파엘의 집’에 모여 사는 아이들은 무지개와 같은 희망을 꿈꾼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몸이 불편해도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바로 곁에서 그림자처럼 이들을 돌보는 생활재활교사 강진희(25·여)씨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5일 새벽 6시. 어슴푸레한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는 ‘라파엘의 집’은 동이 트기 전부터 분주하다.2층 양옥집은 밖에서 보기엔 고요하지만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기지개를 켠다. 강씨 등 교사들은 새벽녘부터 아이들을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용변을 챙기느라 부지런히 식당과 침실을 오갔다. 강씨의 앳된 얼굴에는 생기있는 미소가 넘쳐흘렀다. ●30여명의 천사들과 새벽을 연다. 라파엘의 집에는 모두 30여명의 보호 아동들이 지낸다.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인 곤란을 겪고 있는 가정으로부터 위탁된 아이가 15명, 낮 동안에만 머무르고 부모가 퇴근할 때 데려가는 아이들이 15명 정도다.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6명의 생활 교사와 일일출퇴근제인 4명의 주간 교사가 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있다. “언젠가부터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이들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이것이 내 천직이구나.’하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그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1학년 때인 2001년 3월. 동아리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우연한 선택은 대학 문턱을 나설 즈음엔 그의 장래 진로로 바뀌었다.“처음엔 아이들을 위해 제가 봉사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제가 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학생 때는 우민이라는 아이를 아들이라 부르며 예뻐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제 아들 같아요.” 그는 얼마 전에는 말이 어눌한 하은이(9)가 ‘엄마∼’라고 불러 남몰래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안쓰러운 마음과 벅찬 감동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란다. ●“아이들의 ‘엄마∼’란 말에 눈물” “밥 먹는 것, 배변 보는 것 하나하나가 쉽지 않아요. 남들은 20분이면 뚝딱 끝내버릴 식사지만, 이곳 아이들은 씹는 것 자체가 어렵고, 역류증으로 먹은 음식을 자주 토해버려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리죠. 배변 기능도 떨어져서 늘 기저귀를 차고 있고 용무도 항상 관장을 통해 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9살 정연이의 엉덩이에 관장약을 넣었다. 정연이는 싫다는 듯 몸을 바둥거렸지만, 배를 누르는 선생님의 노련한 손길에 초록색변이 쏟아져 나오자 금세 얌전해졌다. 그의 손은 어느새 변으로 흥건해졌지만, 이에 아랑곳없다는 듯 선생님의 얼굴은 정연이가 무사히 배변을 마쳤다는 기쁨에 환하기만 하다. 그는 이 길에 대해 한번도 믿음이 흔들려 본 적이 없지만 가끔씩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친구들이 ‘언제까지 할 거냐.’ ‘힘들지 않냐.’라고 캐물을 때 서운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대부분은 그를 축복하고 격려해준다. 부모님도 잘 어울린다며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기억에 남는 후원자가 있느냐는 물음에 선생님은 대뜸 ‘윤 아저씨’를 떠올린다.“봉사를 오시면 항상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은 물론 기저귀 갈기, 빨래, 목욕 등 온갖 궂은 일은 다하세요. 그래서 신상에 대해 여쭤보면 자기는 ‘외계에서 왔다.’고 하고 절대 이름을 밝히지 않으세요.” 이외에도 고마운 사람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고마운 분들은 10년 넘게 2000∼3000원씩 꼬박꼬박 돈을 부쳐주는 고정 후원자들이다. 그의 새해 목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것. 사이버대학에도 등록해 본격적으로 사회복지 과정을 공부해볼 계획이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열린세상] 늑대 이야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일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네 돼지 한 마리가 한밤중에 사라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어른들은 늑대 짓이 틀림없다고 했다. 늑대는 본래 영리한 짐승이어서, 소리도 없이 돼지를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돼지가 울 안에서 뛰쳐나오게 겁을 준 다음 제발로 걸려 데려갔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고, 늑대는 두 마리가 넘게 왔을 것이라는 자상한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딱히 늑대를 본 기억은 없다. 돼지를 데려갔다는 동네서 좀 떨어진 해받이고개 초입에서 어느 날 만났던 큼직한 개가 혹시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지레 겁을 먹은 적은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늑대 소리는 이내 쑥 들어가 버렸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늑대와 흡사하다는 이리를 주제로 삼은 황순원의 단편 ‘이리도’를 국어책으로 배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리떼 이야기를 빌려 늑대도 그러려니 하는 어림잡은 상상의 날개를 달았다. 정해(丁亥) 돼지의 해 들머리에 무슨 늑대냐고, 되받아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두 지지(地支) 띠 이름에도 끼어들지 못한 늑대를 새삼스레 들춘 까닭은 따로 있다. 지난 세밑 경상북도가 이미 멸종한 늑대를 지리산 반달곰처럼 복원할 계획이라는 대구발 뉴스가 내심 반가워서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야생과 종(種)이 같은 늑대 2∼3쌍을 몽골이나 러시아에서 들여와 안동 야생동물생태공원에서 키워 5년 뒤에 방사(放飼)한다는 것이다. 이참에 친구네 돼지가 사라졌을 때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더 해야겠다. 무아지경에서 사람을 만난 늑대는 사람 키를 훌훌 타 넘다가 해코지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기다란 담뱃대 장죽(長竹)을 저고리 등자락에 세워 꽂아 뾰죽한 물부리가 드러나면, 늑대는 그만 달아났다고 했다. 이에 곁들여 ‘혼자 길을 가다 만난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로 이야기 끝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이말은 옳다. 서구인들은 일찍부터 늑대를 심술궂고도 탐욕스러운 짐승으로 몰아세운 설화(說話)를 빌미로 죽음 이상의 고통을 주고, 또 늑대를 독살하는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8세기까지도 북아메리카에서는 황무지 개간에다 신의 은총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늑대 멸종을 부추겼다. 그래서 1883∼1918년 사이 몬태나 주에서만 3만마리 이상의 늑대를 죽인 기록이 남아 있다. 지난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는 가운데 동물 가까이로 다가간 영국의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에 이어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르스트 헤켈에 의해 생태학(生態學)이 태동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환경보호주의자로 나선 ‘동물기’의 작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늑대를 비롯한 동물의 삶과 죽음을 연민(憐愍)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여러 사람들이 어여쁜 마음으로 키우는 애완견의 조상이 1만 4000여년 전 극동 아시아에서 사육한 늑대라는 사실을 알면, 야생의 동물이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늑대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2만여년 전 유적인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늑대를 실제 스케치한 그림이 보이거니와, 이보다 2000여년이 앞선 로스앤젤레스 판초라 유적에서는 수백마리 몫의 늑대뼈가 나왔다. 늑대는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를 잇는 북반구에 널리 퍼졌던 식육목(食肉目) 개과(科)의 무리 사냥꾼이다. 그러나 멸종에 가까울 만큼 숫자가 줄어들었다. 오늘날 생태보존 문제는 인류가 자연계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세계의 생태학자들은 문제의 실마리가 아시아 쪽에서 먼저 풀어지기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유교적 자연관(自然觀)과 불교적 자비관(慈悲觀)이 아직은 다 메마르지 않은 지역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행여 생태를 복원하는 날이 오면, 늑대가 어슬렁거렸던 고향땅 해받이고개를 거닐어 볼란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교육 & NIE] 겨울방학 알바 도전장

    청소년 ‘알바’(아르바이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맘때면 한밤 중 창 밖에서 “찹쌀떡 사려.” 소리가 들리고 골목에선 군고구마를 파는 학생들도 눈에 띈다. 아무런 자격증도, 별다른 이력서도 없이 하는 ‘막일’이라도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미성숙한 아이들의 신성한 노동인 만큼 더욱 그렇다.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권 사각지대 하지만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은 노동인권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정해진 급여를 못 받아도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중간에 해고되면 그동안 일했던 만큼의 돈도 못 받고 내쫓기는 예도 많다. 노동부가 최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에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를 의뢰한 결과 2220명(재학생 2100명+비진학청소년 120명) 가운데 재학생 809명, 비진학청소년 91명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09명 가운데 초과근로를 요구받은 재학생은 41.3%로 이 가운데 29.1%포인트는 실제로 초과근로를 했다. 비진학청소년 91명 중에는 57.2%가 요구받아 44.0%포인트가 시키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초과근로 수당은 재학생 49.0%, 비진학청소년 52.5%가 받지 못했다. 시간급을 받은 재학생 524명 중 46.4%, 비진학청소년 59명 중 47.5%만이 시간당 최저임금 3100원(2006년 기준)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는 2000∼3100원 미만을 받았다.2000원도 못 받은 청소년도 각각 9.7%,3.4% 있었다. 이처럼 낮은 급여를 받거나 제때 못 받는 등 문제가 생겨도 사업주에 요구하지 않았다는 청소년이 재학생 184명 중 63.8%, 비진학청소년 23명 중 43.5%로 대다수였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청소년은 10명 중 1명 꼴로 매우 드물다. 재학생 9.9%, 비진학청소년 18.7%에 그쳤다. 부모동의서를 쓴 재학생은 24.9%, 비진학청소년 41.8%였다. ●청소년은 근로기준법 특별보호 대상 13∼18세 청소년들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뿐 아니라 연소자라는 이유로 더 엄격한 보호를 받는다. 노동부가 겨울방학을 앞두고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 꼭 따져봐야 할 아홉 가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시간당 3100원이던 최저임금이 올해부터 3480원으로 오르는 등 달라진 점을 특히 눈여겨 보자. #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원칙적으로 만 15세 이상이어야 한다. 만 15세 이상이지만 중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만 14세까지의 청소년들은 노동부에서 취직인허증을 받아야 한다. # 시작할 때 필요한 서류 부모나 후견인 동의서, 나이를 증명할 수 있는 호적증명서 또는 주민등록등·초본을 고용주에게 내고 근로계약을 해야 한다. # 할 수 없는 일 도덕적으로나 보건 측면에서 해롭거나 위험한 일은 못한다. 유흥주점·비디오방·노래방·전화방·숙박업·안마실이 있는 목욕탕·만화대여·카페·무도장·도살업 등에 취직할 수 없다. # 하루에 몇 시간 일하나 하루 7시간을 넘겨선 안 되지만 본인이 원할 때는 하루 1시간,1주일에 6시간 이내로 초과근로를 할 수 있다. 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은 1주일에 40시간,100인 미만은 4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 밤에도 일할 수 있나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일할 수 없다. 야간 근로를 꼭 하고 싶다면 노동부에서 인가를 받아야 한다. # 휴일은 1주일에 15시간 넘게 일하고 1주일 동안 개근했으면 하루 유급으로 쉴 수 있다. 하루 근로시간이 4시간이 넘으면 30분 이상,8시간이 넘으면 1시간 이상 휴식시간도 가진다. 본인이 원하면 노동부 인가를 받아 휴일 근로도 가능하다. # 임금은 근로계약을 할 때 정하되 시간당 3480원인 법정 최저임금은 꼭 받도록 한다.5인 이상 사업장에서 휴일·야간·초과 근무 때는 50%가 가산된다. 근로계약서에 수습기간을 명시했다면 최대 3개월간 시급 3132원(최저임금의 90%)이 보장된다. 위반한 고용주가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 일하다가 다쳤다면 산재보험에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주라도 산재 처리를 거부해선 안 된다. # 임금체불 및 부당한 피해에는 노동부에서 권리구제를 받자. 상담은 국번 없이 ‘1350’번, 신고는 각 지방노동관서나 노동부 홈페이지 전자민원창구를 이용하면 된다. 노동부 근로기준국 조우균 사무관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있는 청소년이 많지 않다.”면서 “아무리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근로계약서를 꼭 써놔야 나중에 문제가 될 때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 알바 9계명은 ‘알자알자 캠페인’ 사이트(town.cywolrd.com//rjarja)에 자세히 나와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04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8시35분) 정해년 새해를 시작하는 옌볜 조선족 동포사회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중국 정부에서 취업제도와 사회보장사업 육성, 농촌 주택개조 사업 추진 등을 밝혀 경기 진작에 청신호가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족 자치 정부도 이에 발맞춰 지역사회의 특색을 살려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웰빙, 무병장수, 백세인 열풍.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생활습관이라고 한다.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온 가족이 무병장수, 백세인이 되는 방법을 알아본다.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남편,2007년 내 남편의 금연 성공법도 알아본다.   ●연인(SBS 오후 9시55분) 창배는 강재를 찾아와 손을 잡자고 하지만 수모만 당하고 돌아간다. 창배가 돌아간 후 양금을 찾아나선 강재는 다시 한번 미주를 건드릴 땐 참지 않겠다고 한다. 잠시 동안 미주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강재는 힘들게 생부에 대해 고백한다. 한편 쓰러졌다는 소식에 자신을 찾아온 강재에게 유진은 서러운 이별을 고한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잠시 정신이 돌아온 송씨는 세영에게 양평의 땅 문서를 찾아내라고 하는데, 세영은 송씨의 말에 정말 그런 땅이 있으면 찾아주겠다고 한다. 이미 그 땅에 별장을 지어 서경과 이중생활을 즐기고 있던 건우는 양평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서경의 걱정 어린 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해피투게더(KBS2 오후 11시5분) 졸업한 지 어언 41년. 친구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온 몸을 다 바친 김형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개인기를 선사했던 그녀와 그녀 때문에 즐거웠던 친구들을 만나본다. 정현이에게 받는 생일 선물은 항상 특별했다고 하는데…. 너무도 엉뚱하고 상상을 초월했던 이정현의 학창시절을 들어본다.   ●클래식 오디세이(KBS1 밤 12시30분)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을 가장 중요한 인물로 생각한다는 백건우.2005년 베토벤 중기 소나타 녹음을 시작으로, 지난해 초기 소나타 녹음을 마치자마자 후기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을 하고 있는 자신이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 논리상 12개월 복무도 가능

    논리상 12개월 복무도 가능

    지난주 청와대가 이달 말까지 병 복무기간 단축을 골자로 한 병역제도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밝힘에 따라 복무단축의 규모와 시행시기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군 안팎에서는 언론을 통해 보도된 6개월 복무단축설에 대해 “병력규모와 복무기간을 함께 줄이면 전력공백이 불가피하다.”는 반론을 제기하지만 설득력은 약해 보인다. 병무청이 국방부의 병력감축안을 반영해 작성한 수급관리 계획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대규모 잉여인력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매년 5만명 넘게 남아 돌아 2012년부터는 현역자원이 군소요(현역+대체복무)를 매년 5만명 이상 초과하게 돼 자칫 사회문제화될 소지가 농후하다. 그렇다고 대체복무로 흡수하기도 여의치 않다.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대체복무 인원을 늘리는 것은 정부로서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측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방개혁 2020’(이하 ‘2020’) 수립 당시 병력규모 축소와 함께 복무기간 단축을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2020’의 시나리오대로라면 2020년까지 육군의 병 인력은 지금의 43만 8000명에서 22만 3000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게 된다.‘2020’은 병력 규모 축소와 함께 75대 25인 병과 간부의 비율을 60대 40으로 조정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병 복무기간 역시 지금의 절반인 12개월로 줄일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숙련도 고려해도 18개월이면 적당 복무기간 단축이 군 전투력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일선 지휘관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개인능력과 조직관리의 효율성 차원에서 보병·포병은 22개월, 기갑·통신은 25개월의 복무기간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병 복무를 6개월 단축시 문제되는 직위 수가 7만∼8만에 이를 것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유급지원병 등 모병적 요소를 강화할 경우 필요 복무기간이 훨씬 짧아질 수 있다는 게 국방연구원(KIDA)의 분석이다. 숙련이 필요한 기갑·통신·정비 등을 유급지원병이나 부사관이 맡게 될 경우 숙련병 구성비나 병력순환율 등 조직측면의 요소는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KIDA가 2005년 국방부에 보고한 ‘정예군 건설을 위한 국방인력 정책 발전방안’도 유급지원병과 부사관 충원을 통한 숙련도 유지를 전제로 육군 18개월, 해·공군 20개월을 적정 복무기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군 내부 반발 극복이 관건 정부가 이달 말 어떤 병무개선안을 내놓더라도 정치적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략적 의도가 있든 없든 복무단축 자체가 갖는 ‘정치적 폭발력’이 적지 않은 탓이다. 군 내부 반발도 변수다.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 국방개혁안을 통해 육군 1·3군을 통합하고 병력 4만∼5만을 감축키로 했지만 백지화된 전례도 있다. 참여정부에서 국방부 고위직을 지낸 민간 전문가는 “병력감축으로 일자리를 위협받게 될 상층 간부집단을 어떻게 무마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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