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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지역 명물] 중구 ‘손기정 월계관수’

    [우리지역 명물] 중구 ‘손기정 월계관수’

    역사가 짧은 외래 나무 가운데 이만 한 대접을 받는 나무도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중구 만리동2가 손기정 공원안 ‘손기정 월계관수(서울시기념물 제5호)’. 키 15m, 둘레 55㎝인 손기정 월계관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당시 독일 총통인 히틀러로부터 받아온 것을 심은 것이다. 당시에는 일장기를 가린 조그만 화분속 나무에 불과했지만 70여년의 풍상을 견뎌내며 지금은 거목으로 성장했다. 나무 자체가 희귀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배경이 가치를 더한다. 손기정 월계관수는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에 민족 정기를 끌어올렸던 역사적인 사건을 상징하기 때문이다.2005년 8월에는 ‘이달의 서울시문화재’에 꼽히기도 했다. 원래 그리스에서는 지중해 부근에서 자란 월계수의 잎이 달린 가지로 월계관을 만들었지만,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미국 참나무의 잎이 달린 가지를 대신 사용했다. 손기정 월계관수가 사실은 월계수가 아닌 미국산 참나무인 까닭이다. 참나무는 키가 20∼40m에 달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온대 지역에서 자란다. 공원수로는 최고라는 평이다. 월계관수는 본래 손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등학교에 심어졌다. 학교가 1988년 목동으로 이전하면서 학교 부지는 공원으로 조성됐다. 월계관수 옆에는 손 선수의 흉상도 있다. 한편 손기정 공원은 2009년까지 테마형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역사유적지로 보존하면서 녹지공간을 늘려 주민들의 쉼터로 꾸며진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문학 위기는 현장감 외면 탓”

    “문학 위기는 현장감 외면 탓”

    한국문학평화포럼이 새달 법인화된다. 애초 법인화 목표 시한은 지난해 상반기였다. 1년이 늦어졌다. 포럼의 모태인 민족문학작가회의와의 관계설정을 놓고 고심한 것도 이유가 됐다.2004년 10월, 포럼은‘임진강 문학축전’으로 첫발을 뗐다.‘상생·평화·공존’을 화두로 세웠다. 한국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현장으로 가자고 제안했고, 서울 중심의 문화적 섹트주의를 극복하자고 외쳤다. 문학의 사회적 책무도 강조했다.3년여 동안 30여 차례의 문학축전을 꾸렸다. 한국의 상처난 땅을 샅샅이 밟았다.11일과 12일엔 전북 고창 전봉준 생가터에서 태평양전쟁 희생자들을 위무했다. 두 달 뒤면 창립 3주년이다.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중앙대 교수)회장을 만나 그간의 성과를 되짚어봤다. 그는 1대 고은 회장에 이어 2대 회장을 맡고 있다. ●법인화 왜 1년 늦어졌나 포럼의 법인화가 늦어진 데는 새로운 단체 결성에 대한 작가회의측의 우려 섞인 시선도 작용했다. 작가회의 명칭에서 ‘민족’을 떼는 데 반대한 포럼측 문인들의 목소리조차 일각에선 ‘독립을 위한 수순’으로 해석했다. 임 회장은 “적극적으로 지지할 줄 알았던 작가회의 문인들로부터 포럼 초기 뜻밖의 오해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지금은 그런 오해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회의 회원들의 현실인식이 안이해지는 것이 아쉬워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작가회의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면서 “작가회의를 쪼갤 목적이었다면 포럼은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법인화 추진은 참여도와 신뢰도 강화를 통해 포럼 문제의식의 확대심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럼의 근본적인 관심사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 제고다. 문학과 사회를 갈라놓은 유미주의적 경계선을 넘으며,1970∼80년대 민족문학운동은 사회개혁의 주체로 우뚝 섰다. 굳이 찾지 않아도 시대는 늘 문인들 옆에서 고민을 강제했다. 지금은 다르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면 시대는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민주화’나 ‘경제성장’이란 화려한 겉옷 속에 ‘비민주적 잔재’와 ‘경제적 양극화’를 꽁꽁 숨겼다. ●문화예술운동 단체로 자리잡아 포럼은 시대와 대면하는 ‘제2의 민족문학운동’이라 할 만하다. 포럼이 찍어온 문학축전의 발자국은 참여 문인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잘 보여준다. 미 공군의 폭격으로 찢긴 매향리를 어루만졌고, 우토로 강제철거를 반대했다. 논에 모를 심으며 한·미 FTA 타결 후 농업을 근심했고,‘나눔의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맞잡았다.“문인들이 가본 적 없는 소외지역을 최우선으로 하되, 오늘날 한국사회의 예리한 쟁점을 드러내는 지역을 위주로 찾아갔다.”고 임 회장은 설명했다. 포럼은 이제 한국 사회의 가장 활발한 문화예술운동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서사의 빈곤은 현장과의 유리서 기인 임 회장은 “B학점은 되는 것 같다.”며 포럼의 성적을 매겼다.“현장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고 전했다. 그러나 “포럼이 아무리 용을 써도 문단의 흐름을 바꿀 순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문단의 ‘안타까운 흐름’은 포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포럼이 결성된 2004년은 과거 민족문학진영의 대가들마저 현실문제에서 발을 빼는 분기점이었다고 임 회장은 회고했다.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면서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만심으로 문인들이 너무 성급하게 긴장감을 잃었어요. 과연 그런가요? 한국과 무관한 전쟁에 군대가 파병됐고, 민중의 삶은 더 극악해졌습니다.” 임 회장은 올 2월 ‘기초예술연대’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한국 작가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잃었다.”는 날선 비판으로 문단을 달군 바 있다. 장편소설 하나 써낼 능력 없는 서사의 빈곤은 현장과 유리된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10월엔 카자흐스탄서 포럼 “문학의 가장 큰 위기는 대중들이 문학을 외면한다는 겁니다. 현장성이 없기 때문이에요. 드라마보다 현실감이 없습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닌데 독자들이 읽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가 “각 대학의 문예창작학과가 한국 문학을 망쳤다.”는 논쟁적 언사를 던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시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작가들의 단견은 인문학 교육 없는 문창과가 원인”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포럼이 외연 확대를 꾀하는 것도 현장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다. 향후 문인들만의 행사를 지양하고 문학축전 현지 자치단체와 관련 연구자, 타 장르 예술인 등이 함께 참여토록 할 방침이다. 올 10월, 포럼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을 찾는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사막별 여행자/무사 앗사리드 지음

    어린 왕자가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 속으로 사라진 날 이후, 그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다만 그가 고향인 소혹성 B-612로 돌아갔다고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바오밥 나무 아래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랬던 어린 왕자가 1999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 나타난다. 아프리카 유목민 투아레그족 소년이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한 것은 어린 왕자가 돌아온 것만큼이나 큰 ‘사건’임에 틀림없었다.‘사막별 여행자’(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선영 옮김, 문학의 숲 펴냄)는 이렇게 현대에 살아 돌아온 ‘어린 왕자’의 모험과 꿈을 담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자란 지은이는 생텍쥐페리를 만나기 위해 갔던 프랑스에서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 속에 촘촘히 담았다. 무사 앗사리드가 생텍쥐페리를 만날 결심을 한 것은 열세 살 때 우연히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파리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세네갈의 다카르에 이르는 자동차 경주인 ‘파리-다카르 랠리’를 취재하던 프랑스 여기자가 ‘어린 왕자’를 떨어뜨린 것을 그가 주워서 건네주었고, 그녀는 그 책을 선물로 준다. 책을 펴자마자 그림들에 매혹된 앗사리드는 꼭 프랑스어를 배워서 그림 속 꼬마의 이야기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소설처럼 글에 대한 갈증을 갖게 된 앗사리드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여전히 생텍쥐페리에게 매료돼 있었다. 그리고 스물 네 살, 마침내 여비를 마련해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텍쥐페리가 미소를 지을 것이라고 믿는다. 생텍쥐페리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정찰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됐다. 비록 고대했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앗사리드는 생텍쥐페리가 마주했던 문명의 세계를 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진정한 삶에 대한 깨달음을 하나씩 깨우쳐나간다. “나는 골수 유목민이어서 새로운 이야기, 낯선 얼굴, 낯선 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막은 앎에 한계를 긋지만, 다른 곳을 향해 갈증을 느끼는 정신에는 깨우침을 준다.” 이렇게 술회하는 그의 글 속에는 간간이 열 살 무렵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지혜가 엿보이고,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는 사막의 진리가 살아숨쉰다. 파리라는 미지의 별에서 앗사리드는 움직이는 족족 장애물에 부딪히고 때론 사무치는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지만 ‘하루하루 새로운 눈을 갖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희망의 발걸음을 계속해 나간다. 장미가 만발한 정원에서 어린 왕자는 ‘오직 하나뿐일 거라 생각했던 장미가 너무 많아서’ 흐느껴 운다. 영화관에 간 앗사리드는 처음 보는 화려한 영상의 흐름 앞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도 진짜 같아서’ 몇 년은 늙어버린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여우에게서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 어린 왕자처럼, 기나긴 여정에서 소중한 친구들과 많은 영감을 얻었다는 앗사리드는 ‘내가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이렇게 그가 전해주는 유목민의 메시지는 분주하게 행복을 좇으면서도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눈길에 촉촉한 생명력을 심어줄 듯하다. 값 1만 8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09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이영화씨는 서준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마다 작은 기도를 한다. 오늘 하루 서준이가 넘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넘어져도 씩씩하게 일어나게 해달라고. 발견 당시 이미 진행되고 있던 서준이의 병은 완치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열심히 치료하고 훈련한다면, 병의 진행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관광도시 ‘크라비’에 한국어 바람이 불고 있다.100여명의 한국어 수강생들은 늦은 시간에도 공부에 열중한다. 수강생 대부분은 한국인 여행 안내를 맡을 가이드와 여행업계 종사자들. 하지만 태국인들의 여건에 맞는 한국어 교재와 체계적 교육 시스템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60분-부모(EBS 오전 10시) 형제자매간 갈등이 일어날 때 부모는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부모가 항상 갈등을 중재해줄 수만은 없다.‘싸우면서 자라는 형제자매’에서는 형제자매의 갈등을 푸는 법을 살펴본다. 어린이문학평론가 김서정씨가 추천하는 책을 통해 형제자매들의 다양한 갈등과 화해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서른다섯 나이에 20년간의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낮에는 중학생으로, 밤에는 술집 사장으로 공부하랴 일 하랴 눈코뜰 새 없는 화제의 인물 정재화(38)씨를 만나본다. 돌’과 사랑에 빠진 개들이 있다.24시간 내내 돌을 물고 사는 의지의 견공들. 그 못 말리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개와 늑대의 시간(MBC 오후 9시55분) 아화는 케이(수현)를 보고 반가워하지만 기억을 잃은 케이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혼란스러운 지우는 생각에 잠기고, 민기는 기분전환을 하자며 지우를 불러낸다. 영길은 마오에게 지우의 안전을 부탁하고, 변씨는 마오의 건물에 도착한다. 전시회장에서 지우는 수현과 닮은 남자를 뒤따른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감기가 옮았다며 투덜대는 은하에게 지민은 자기가 감기를 도로 가져가겠다며 입맞춤을 한다. 그래 놓고 여자하고 처음 뽀뽀한 거라며 은하에게 책임지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한편 명태가 노래방을 잠깐 비운 사이 노래방에 단속이 나오고 명태는 억울하게 경찰서로 불려간다.
  • [오늘의 눈] ‘취재 제한 총리 훈령’ /윤설영 공공정책부 기자

    지난 6일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이 보도되자 국정홍보처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홍보처는 가판 신문은 보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전화를 하지 않는 게 보통인데 이례적이었다. 홍보처 직원은 “이 기사로 국정홍보처장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를 확실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비공개로 논의되고 있던 총리 훈령이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총리 훈령은 언론계에서 요구해서 제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부가 진작부터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후속조치로 준비해온 작품이다. 지난 5월 브리핑실 통폐합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취재를 어렵게 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한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홍보처가 총리 훈령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취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제재조치를 마련해 직무평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훈령은 징계 등의 제재조치를 담을 수 없었다. 홍보처는 “훈령을 어기면 공무원법상 징계가 가능하다.”고 해명했지만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믿는 기자들은 아무도 없다. 대신 기자들에 대한 제재조치는 구체적이다. 엠바고 같은 보도 일정까지 쥐락펴락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재지원 가이드라인이라기보다는 기자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무게를 두고 있는 느낌이다. 엠바고나 비보도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홍보처는 “엠바고 없애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며 딴소리다. 그러나 논란의 초점은 엠바고 결정의 주체가 정부가 아닌 언론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도 엠바고는 일방적으로 기자들에게 통보하는 게 아니라 언론과의 협의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더군다나 앞으로 홍보처가 기자들의 브리핑센터 출입기록을 DB로 관리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취재지원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 ‘취재제한에 대한 기준’에 가깝다. 홍보처가 진지한 재검토를 통해 이번 훈령안을 개선 또는 보완할 것을 기대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사르코지 美휴가 ‘일 커지네’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에서 보내는 취임 후 첫 ‘호화 여름 휴가’ 파문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의 공격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휴양지인 미국 뉴햄프셔주 위니퍼소키 호숫가 울프버러에서 사진기자 두 명에게 프랑스어로 폭언을 퍼부어 구설에 올랐다.AFP에 따르면 이날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있던 사르코지는 미국 AP, 프랑스 시파통신사 사진기자 두 명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AP의 짐 콜 기자는 “허가를 받고 들어왔다고 설명하려 했지만 사르코지 대통령 일행 가운데 영어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말하자 카메라를 돌려주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프랑스 사회당측은 연일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서울신문 8월7일자 18면 참조〉 유럽담당 장관을 지낸 사회당 피에르 모스코비시 의원은 “대통령의 정직성과 청렴성, 독립성을 의심하는 문제가 아니다.”며 “국가 원수는 어떤 상황에서 휴가를 보내더라도 프랑스를 대표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엘리제궁의 감춰진 돈’의 저자인 사회당의 르네 도지에르 의원은 별장 임대료와 교통비를 포함한 휴가 비용(사르코지 가족이 모두 지불할 경우)이 대통령의 공식 연봉 액수보다 많은데 누가 휴가비를 부담하느냐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대통령의 공식 연봉은 대략 한 달에 6000유로인데 어떤 프랑스인이 연봉을 몽땅 휴가비로 쓸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미국 휴가 문제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사르코지는 5일 현지에서 기자들에게 친구들의 초대로 휴가를 보내러 미국에 왔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바캉스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르코지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도는 여전히 ‘짱’인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TNS-소프레스에 의뢰해 주말판 피가로 매거진 최신호에 공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64%의 신뢰도로 주요 정·관계 인사들 중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한편 이번 여론조사는 사르코지가 미국으로 바캉스 여행을 떠나기 7일전에 집계된 것이다. vielee@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문관인 정사(正使)는 공식적인 국서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역관은 배후에서 절충하는 일을 맡았다. 절충하는 과정에는 유창한 외국어가 기본이었지만, 때로는 금품도 오가고, 여러 해 동안 오가며 맺어둔 인맥도 중요했다. 사신들은 일생에 한 두번 가기 때문에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었지만, 역관들은 대여섯 번, 이상적이나 오경석 같은 역관들은 열 번이 넘게 파견되었으므로 각계에 인맥이 형성되었고, 제자들에게 그 인맥을 소개했다. 인맥을 통해 조선과 중국 사이의 외교 현안을 해결한 역관으로는 홍순언(洪純彦)이 가장 유명하다. ●공금 털어 구한 여인이 明 예부시랑의 후처로 홍순언은 젊었을 때에 뜻이 컸고 의기가 있었다. 한번은 북경으로 가는 길에 통주에 이르러, 밤에 청루에서 놀았다. 자태가 특별히 아름다운 한 여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주인할미에게 부탁하여 한번 놀아보자고 청하였다. 순언이 그 여자의 옷이 흰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자,“첩의 부모는 본래 절강 사람인데, 서울에서 벼슬하다 불행히 염병에 걸려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나그네 길이라 관(棺)이 여관집에 있지만 첩 한몸뿐이라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낼 돈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팔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마치고는 목메어 울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순언이 불쌍히 여겨 장사지낼 비용을 물으니,“삼백금이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곧 돈자루를 다 털어 주었지만, 끝내 그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여자가 순언의 이름을 물었는데도 이름을 말해주지 않자,“대인께서 성명을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첩도 또한 주시는 것을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홍씨라는) 성만 말해 주고 나왔다. 동행 가운데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비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자는 나중에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후처가 되었다. 석성은 순언의 의로움을 높이 여겨, 우리나라 사신을 볼 적마다 반드시 홍역관이 왔는지 물었다. 순언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공금의 빚을 갚지 못한 것 때문에 잡혀서, 여러 해 동안 옥에 갇혀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종계변무(宗系辨誣) 때문에 전후 열댓 명의 사신이 중국에 다녀왔지만, 아무도 허락받지 못했다. 임금이 노하여 교지를 내렸다. “이것은 역관의 죄이다. 이번에 가서도 또 허락받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수석 역관 한 사람을 반드시 목 베겠다.” 역관 가운데 감히 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자, 역관들이 서로 의논했다.“홍순언은 살아서 옥문 밖으로 나올 희망이 없다. 그가 빚진 돈을 우리들이 갚아 주고 풀려나오게 하여 그를 중국으로 보내는 게 좋겠다. 그는 비록 죽는다 해도 한스러울 게 없겠지.” 모두들 가서 그 뜻을 알리자, 순언도 기꺼이 허락했다. 선조 갑신년(1584)에 순언이 황정욱을 따라서 북경에 이르러 바라보니, 조양문 밖에 비단 장막이 구름처럼 펼쳐 있었다. 한 기병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홍판사가 누구시냐고 물었다.“예부의 석시랑이 공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마중 나왔습니다.” 조금 뒤에 보니 계집종 열댓 명이 부인을 에워싸고 장막 안에서 나왔다. 순언이 몹시 놀라 물러서려고 하자, 석성이 말했다.“당신이 통주에서 은혜 베푼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 아내의 말을 들으니 당신은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선비입니다.” 부인이 무릎을 꿇고 절하기에 순언이 굳이 사양하자, 석성이 “이것은 보은(報恩)의 절이니, 당신이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조선 사신이 이번에 온 것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 하고 석성이 물었다. 순언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당신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했다. 객관에 머문 지 한 달 남짓한 동안에 과연 조선 정부가 청한 대로 허락되었다. 석성이 주선한 것이다. 순언이 돌아올 때에 부인이 자개상자 열 개에 각각 비단 열 필을 담아 주며,“이것을 첩의 손으로 짜 가지고 공께서 오시길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순언이 사양하며 받지 않고 돌아왔지만, 깃대를 든 자가 압록강까지 와서 그 비단을 놓고 갔다. 비단 끝에는 모두 ‘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순언이 돌아오자 나라에서는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기록하고 당릉군(唐陵君)에 봉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동리를 보은단동(報恩緞洞)이라 하였다. 그의 손자 효손(孝孫)은 숙천부사가 되었다. ●조선 왕실의 계보를 바로잡다 정명기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홍순언의 이야기는 39가지 책에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그 가운데 서사구조가 분명한 ‘국당배어’‘연려실기술’의 기록을 위에 소개했다. 홍순언의 이야기 가운데 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종계변무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공민왕이 피살되자 이인임이 나이 어린 우왕을 세웠는데, 명나라 사신 채빈이 본국에 돌아가 공민왕 피살사건을 보고하면 재상인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염려하여 중도에 살해하였다. 정도전·권근·이첨 등의 친명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누렸지만, 이성계가 최영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유배보냈다. 이성계의 정적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망명해 ‘이성계가 친원파 권신 이인임의 후사(後嗣)’라고 모함했다. 명나라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태조실록’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했다. 이성계가 정적 이인임의 후사라고 기록된 것은 조선 왕실의 가장 큰 모욕이었으므로, 태조뿐만 아니라 대대로 사신을 보내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정해 주지 않았으므로 가장 큰 외교 현안으로 남아 있었다.1584년에 황정욱이 ‘대명회전’ 수정판의 조선관계 기록 등본을 가져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종계변무’라는 용어는 ‘왕실의 계보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홍순언은 조선 왕실이 종계변무를 본격적으로 해결할 준비를 하면서 역사에 정면으로 등장했다. 선조실록 5년(1572) 9월11일 기사에 “주상이 중국 사신을 접견할 때에 종계(宗系)의 악명(惡名)을 바로잡는 일에 관해 먼저 대략 말하고, 이어 단자(單子)로써 자세히 기록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통사 홍순언 등을 시켜 한어(漢語)로 번역해 단자를 만들어 예조에 주어 아뢰도록 했다.”고 했다. 국서는 한문으로 된 문어체라서 친근감이 없었지만, 단자는 구어체였으므로 간절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종계변무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12년 뒤인 선조 17년 11월1일 실록에서야 “종계 및 악명 변무주청사 황정욱과 서장관 한응인 등이 칙서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고 했다. 선조는 그 사실을 종묘에 고한 뒤 죄수들을 사면했으며,“정욱과 응인 및 상통사 홍순언 등에게 가자(加資)하고, 노비와 전택(田宅), 잡물을 차등 있게 하사했다.” 종계변무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광국공신(光國功臣)에 봉했는데, 홍순언에게 2등 당릉부원군을 봉했다.19명 가운데 실무자급인 역관은 홍순언 한 사람만 포함되었다. ●39가지 야담과 소설로 전하는 홍순언 이야기 당릉군에 봉군된 홍순언은 왕궁을 지키는 종2품 우림위장(羽林衛將)까지 승진했는데, 사간원에서 두어 차례 탄핵하였다.“출신이 한미한 서얼이라서 남에게 천대받는다.”는게 이유였는데, 선조는 그가 공신으로 가선대부까지 받았으니 결격사유가 없다고 옹호했다. 역관 홍순언의 능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다시 발휘되었다.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러 사신이 가며 그도 따라갔고, 선조와 고관들은 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오기만 기다렸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그를 믿고 조선 정세를 파악했으며,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 석성이 과연 홍순언이 구해준 여자와 혼인한 덕분에 조선에 원군을 보냈는지, 역사 자료만 가지고 확인할 수는 없다. 야담이나 야사에서는 여인이 몸을 팔게 된 이유도 달리 나오고, 석성의 벼슬도 달라지며, 그가 해결해 준 현안도 달라진다. ‘청구야담’에는 홍순언이 병술·정해년(1586∼1587) 사이에 북경에 갔다가 청루 문 위에 “은 천 냥이 없으면 들어오지 못한다.”고 쓴 것을 보고는 중국 탕아들도 값이 비싸서 들어갈 생각을 못하는데, 그는 “부르는 값이 그만큼 비싸다면 반드시 뛰어난 미인인 것”이라 생각하고 수천냥을 털어 그 여자를 샀다고 한다. 이미 종계변무가 해결된 뒤이니,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 원군 요청의 임무를 띠고 홍순언이 파견되었으며, 병부상서 석성이 해결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종계변무는 외교적 사안이니 예부에서 담당하고, 원군 파견은 군사적 사안이나 병부에서 담당한다. 석성의 벼슬은 그에 따라 달라진다. 홍순언은 공금을 횡령해 청루의 여자를 산 협객인데, 결과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 살이 덧붙어 야담과 소설이 39종이나 되고, 박치복이라는 시인은 5언 264구의 장편서사시 ‘보은금(報恩錦)’을 지었다. ●곤담골에 천인 백정교회가 들어서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지금 롯데호텔이 서 있고, 그 앞에 ‘고운담골’ 표지석이 있다.‘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인 비단을 기념해 동네 이름이 보은단골인데, 고운담골, 곤담골로 바뀌었다. 고운담골을 한자로 쓰면 미장동(美牆洞)이다. 임진왜란이 300년 지난 1892년에 무어 선교사가 조선에 왔다가 조선어를 익히기도 전에 곤담골에 이사하여 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조선인을 야만시하던 권위적 선교사와 달라 인목(仁牧)으로 불렸는데, 백정까지도 교회에 나오게 하여 곤담골 ‘백정교회’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얼 출신 역관이라 천대받던 홍순언의 동네에 백정교회가 세워진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가수 현미 ‘데뷔 50년’ 첫 콘서트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미국의 명배우 폴 뉴먼은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고, 이제 더 잘 할 수 없을 것같아 연기생활을 접는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 고희를 맞은 ‘데뷔 동갑내기’ 가수 현미 의 생각은 다르다. “은퇴는 없어. 내 목소리가 퇴색하는 날, 그 때라야 무대에서 내려올 거야. 목소리를 아끼기 위해 남들은 운동삼아 한다는 골프조차 치지 않아. 골프를 하면 목소리가 갈라지거든. 그래서 동료가수 패티 김과 굳게 약속했지. 우리는 노래할 수 있는 날까지 절대 골프채를 손에 잡지 말자고.” 70세 나이를 무색케 하는 현미의 크고 맑은 목소리는 TV뉴스에도 소개될 만큼 예전부터 유명했었다. “1962년 1집앨범 수록곡 ‘밤안개’를 녹음할 때였어.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녹음실 음량을 조절하는 콘솔 박스 게이지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벽만 두드리고 있을 정도였어. 이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지.” 현미가 처음 연예계에 발을 디딘 것은 1957년 미 8군 무대를 통해서였다. 당시엔 칼춤 등을 추는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한 여가수가 공연을 펑크냈고, 훗날 결혼하게 되는 작곡가 고 이봉조 선생의 권유로 ‘아!목동아’란 팝송 번안곡을 부르게 된 것.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얼마전엔 바비 킴, 부기킹즈 등 쟁쟁한 젊은 뮤지션들이 소속된 오스카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제 2의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오는 11월23일 그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꿈의 공연’을 펼친다.50년만에 처음으로 베스트 앨범도 낸다. “전 남편(고 이봉조)이 임종을 앞두고 날 위해 10곡가량 노래를 만들어 두었다고 하더군. 그 동안 악보만 보관하고 있었는데, 큰아들(이영곤·46)이 이번 앨범에 내 목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외톨이 파랑새’란 노래를 수록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어. 그러마 했지. 이 노래 외에도 신곡을 한 곡 정도 더 실을까 생각 중이야.” 그동안 그녀가 발표한 앨범은 LP판 50장과 1996년 이후 내놓은 CD 2장 등 52장. 무려 53집이 될 이 앨범은 연말쯤 나올 예정이다.11월23일엔 예의 ‘크고 맑은 목소리’로 단독 공연도 벌인다. 이 또한 데뷔 후 처음이다. “그 동안 연말이면 꾸준히 디너 콘서트를 열었어. 하지만 나를 위한 자리는 아니었지. 노래만을 위한 자리는 더더욱 아니었고. 이번엔 나와 나의 노래가 중심이 되는 멋진 쇼를 만들 거야. 단 한 번의 무대를 통해 멋있게 나이먹어 가는 가수도 있다는 걸 보여줄 거야.” 51년차 가수 현미의 활동계획이 궁금했다. “계획? NO!내일 일은 아무도 몰라. 그저 부닥치며 사는 거야. 바람은 있어. 앞으로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 난 아직도 사랑에 목말라.” 고 이봉조 선생과의 결별 이후, 아들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간업소를 7군데나 전전하는 등 씩씩하게 살아온 현미다. 항상 맑고 호방하지만, 사랑받고 싶다는 대목에서 어딘가 여성스러움도 묻어나는 ‘그녀’의 모습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BBC “한국인, 탈레반뿐 아니라 피랍자에도 분노”

    BBC “한국인, 탈레반뿐 아니라 피랍자에도 분노”

    “한국이 고뇌에 빠져있다.” 영국 BBC가 아프간 피랍사태를 둘러싼 한국 내 여론에 대해 “한국이 피랍자 문제로 고뇌에 빠져있다.(Korea agonises over hostages)”고 서울 특파원발로 6일 보도했다. BBC는 “한국인들이 피랍자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장마철의 어두운 하늘만큼이나 무겁다.”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하며 “TV와 신문 등 모든 언론의 주요 뉴스는 피랍자들과 관련된 내용 뿐”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인들은 납치 무장단체인 탈레반 뿐 아니라 피랍자들에게도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많은 한국인들은 피랍자들이 아프카니스탄과 같이 위험한 곳에서 종교활동을 한 점에 대해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면서 “이러한 분노는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향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의 사과문 발표 내용을 전한 BBC는 피랍자 구출에 적극적이지 않은 여론이 협상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는 한국 정부에도 매우 곤란한 문제”라고 분석했다. 기사는 끝으로 “또 다른 인질 살해를 우려, 군사력을 이용한 인질구출 작전을 원치 않는다.”는 한국의 입장을 전한 후 “확실한 사실은 이 문제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해결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 BBC인터넷 보도사진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글 홍승범(본지 편집장) | 사진 한영희 2005년 4월호 장영희 교수로부터 2007년 7월 가수 이은미까지, 그간 ‘초대’에는 총 스물여섯 분이 참여하여 진솔한 대화를 나눠주셨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있는 분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는 일은 매회 산고를 안겨주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모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릴레이 인터뷰 ‘초대’가 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이후 더 풍성하고 실팍한 내용을 담아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이번 호에는 그간 ‘초대’에 등장했던 대담자의 면면과 어록을 살펴봅니다. 장영희(영문학자, 서강대 교수)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장영희-김점선(화가) 관능의 힘이 그대를 이끈다 김점선-신희섭(뇌 과학자) 단순함의 아름다움 신희섭-정말로(재즈 보컬)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 머물다 가네, 꽃그늘 아래 정말로-이외수(소설가) 고독한 산보자의 꿈 이외수-류승완(영화감독) 유쾌하고 정직한 분노의 방식 류승완-최일도(목사) 지상의 양식 최일도-인요한(의사) 1백 년 린튼 가의 ‘조선 살림, 한국 사랑’ 인요한-최불암(탤런트) 홀로 안으로 익어가면 /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최불암-한준호(한국전력 CEO) 한 가지 마음으로 한길을 걸어가다 한준호-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 청년의 꿈을 청산에 심다 문국현-김후란(시인) 재능이 아니다, 열정이다 /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김후란이병훈(유니베라 대표) 꿈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 이병훈-한젬마(화가) 그림 밖으로 걸어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한젬마-유인촌(서울문화재단 대표) 내 꿈은 그대를 꿈꾸게 하는 것 유인촌-장미희(배우) 여름, 보리울의 길목에서 장미희-홍세화(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홍세화-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로부터 정혜신-한비야(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내 어여쁜 사람아, 일어나 함께 가자 한비야-박경철(시골의사) 쓸모없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 박경철-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행복한 자유주의자와의 대화 공병호-심재명(엠케이픽처스 사장)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심재명-장윤주(모델) 날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나요? 장윤주-배한성(성우) “친구, 인생은 더빙이 안 된다구” 배한성-정관용(KBS 심야토론 진행자) 대한민국의 정중앙에 서다 정관용-이은미(가수) 화려하고 쓸쓸하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장영희 행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 행복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갖고 있습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참으로 변덕꾸러기라서 손에 넣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행복은 영원이 아니라 순간적인 것이고, 그래서 진정한 가치와 행복은 위대한 성취의 이면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김점선 상대적으로 둔하고 끈질긴 예술가들만 남게 돼. 너무 예민하면 죽어. 무시도 이겨내야 하고, 운명 같아. 조물주가 작가 하나를 만들 때 일부러 굳센 의지를, 뚝심을 심어 놓지. 스무 살에 빛나지 않고 육십, 칠십에 빛나게 아주 조금씩 키워갈 수 있는 씨앗만을 집어넣지,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조숙하고 완성된 재능을 넣지는 않아. 그렇게 되면 타락하기 쉬워. 시들어 버린다니까. 신희섭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쉽게―다른 사람이 보기에―잘 해내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그는 그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뇌에 배어 있다’가 맞는 표현이다. 뇌에 배어 있는 기능이 몸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일상의 전문가이다. 자는 일, 먹는 일, 걷는 일 하나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오랜 연습 끝에 이룩한 기능인가? 정말로 진실과 맞닥뜨리려면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해요. 입맛에 맞는 달콤한 음악을 하기는 쉽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잖아요. 재즈가 좋은 건, 음악과 나 사이의 공간에 거짓이 존재할 틈이 없다는 거예요. 거칠지만 그만큼 진솔하니까. 이외수 험, 험. 하던 얘기 마저 합시다. (담배 하나 물고) 옛날에 내가 심산유곡에 들어가 문장공부를 했거든. 겨울에 냉방에서 자고, 밥할 때만 불 떼고. 눈이 첩첩이 쌓여있으니 나무 구하기가 힘들어 아예 달밤 같은 때는 문 열어놓고 닫으나 여나 춥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밖을 내다보는데, 아! 그 달빛 속의 나무가 너무 거룩해 보이는 거요. 이렇게 추운데, 저자는 홀딱 벗고서 홀로 서서 겨울을 나는구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초연하게 겨울을 날까. 딱 보면 내 신세 같은데… 그러다가 문득 그와 내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얻은 겁니다. 그때부터 문장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묘사하고 설명하는 문체가 아니라 그 사물의 마음으로 말을 하게 된 거지. 류승완 자칭 걸작 시나리오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만나고 보면 그들은 시나리오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제가 직접 만든 단편 영화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제에 출품해서 모조리 떨어져 봤습니다. 영화학과 시험에도 빠짐없이 낙방을 경험했고요. 데뷔하기 전까지 열한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 번도 공모에 당선되지 못했고 영화사에도 팔지 못했습니다. 재능은 극복할 수 있지만 열정은 극복할 수 없어요. 시쳇말로 중요한 것은 펀치가 아니라 맷집이 세야 한다는 겁니다. 최일도 어느 날, ‘밥퍼’ 현장에서 진지를 드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신문을 보시다가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어이, 최 목사! 또 책을 냈구먼. 아, 네. 졸작을 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건 아는구먼. 예? 무슨 말씀…. 이 사람아, 예수는 책 한 권 낸 적 없는데, 그 제자라는 사람이 뭔 책을 그리 많이 내? 아, 예. 그래서 늘 부끄럽습니다. 내고 싶어 낸 게 아니라…. 지난번에 저쪽에서 냈으니 이번엔 이쪽에서 내달라고 하도 졸라서…. 아, 시끄러워! 어쨌든 당신이 냈잖아. 이것 봐. 우리는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목사 말고 예수님처럼 사는 목사를 기다리는 게야…. 인요한 가난과 역경에 맞닥뜨려도 웃으면서 헤쳐나가는 것이 조선 사람의 본래 얼굴입니다. 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주민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몹쓸 병에 걸렸지만 어쩌겠어요. 열심히 끝까지 싸워봐야죠.” 너무나 의연한 자세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맞서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어떻습니까? 걸핏하면 한강에 풍덩, 목숨을 버리는 풍조가 생겨났어요. 병원에 와 보세요.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목숨은 선물인데, 그런 나약한 태도는 원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에요. 비겁한 도피예요. 최불암 요즘 들어 내가 주례를 많이 보는데, 아버지가 울면 딸이 울고, 딸이 울면 반드시 아버지가 울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손으로 눈물을 닦지 않아요. 마치 흘린 적 없다는 것처럼 눈만 껌벅거릴 뿐.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는 아무도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없고 다만 딸이 그것을 느끼게 되는 거지요. 내 사무실에 여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아주 어렵게 자란 친구예요. 시집갈 때 내가 주례를 봤는데 그이 아버지도 역시 눈물을 떨구고 있더라구. 신부는 화장 지워가면서 같이 울고…. (아들? 그때는 어머니가 울지) 한준호 북한 현지 KEDO발전소 건설 당시 작업에 참여한 현지 인력 4백 명 가량을 강당에 모아 놓고 교육을 시켰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중 한 사람이 와서 강당 불이 밝아 글을 볼 수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전등의 삼분의 이를 끄고 나머지만 켰더니 그제야 눈이 편하다고 했답니다. 우리 눈에는 너무나 익숙한 불빛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이 부실 만큼 밝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문명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할 겁니다. 문국현 언젠가 피터 드러커 선생을 만나 뵈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비가 막 쏟아지는 날인데, 아흔다섯의 연세에 다리가 불편하셔서 워커에 의지하시면서도 식사를 굳이 나가서 하자시는 겁니다. 아! 선생님, 도대체 이 도전하는 정신의 정체는, 그 정열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여쭈었더니 답이 명쾌했습니다. “인생은 긴 달리기이고, 사람은 모름지기 젊게 살아야 해! Life is long running, people must keep young!”. 김후란 미래는 현재다, 이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요.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미래로 달려가는 것이잖아요. 이병훈 일터는 우리가 하루 3분의 2 이상의 시간과 정력을 쏟는 곳입니다. 당연히 자아성취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자아라는 건 개인과 기업의 꿈이 하나 될 때 성장하니까 가능하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10조짜리 회사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함께 일하는 ‘참 좋은 회사’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한젬마 잘 어울려서 내 몫만큼 살고 가는 것. 그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면서 모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제가 정말 싫어하는 거예요. 젊은 나이에는 잘 모르고 달려드는 패기도 좋고 날카로움도 좋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 그러는 것은 부담스러워요. 너무 공격적이거나 강한 것도 싫고요. 조용하고 침착하고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유인촌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 예술에 대해 별로 인식이 없어. 말로는 뭔 소리 못 해. 하지만 옷 벗고 속에 있는 얘기 다 끄집어내다 보면 예술을 하찮게 생각해. 문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이다 떠들지만 말 뿐이야. 결국 예술가들이 그이들의 머리를 깨우쳐줘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대부분 역량이 부족해. 예술가? 딴따라? 그 역할 너머냐, 안쪽이냐로 구분하면 돼! 장미희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배우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못 그래요. 전날 밤 준비하고, 고민하고, 그러고도 막상 나가야 할 때가 닥쳐오면 “정말 싫어!” 혼자 떼를 써요. 요즘도 공적인 자리에 가면 “말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편안히 놔주었으면 좋겠어” 중얼거리면서 귀퉁이에 숨어요. 아직도 저는 왜 배짱이 요만할까, 혼자 고민하지요. 홍세화 한국으로 돌아가면 땅을 많이 밟아보리라, 파리에 있을 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자동차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위로 가라, 밑으로 가라 아니면 건물 속으로 들어가라…. 사람의 길이 없구나, 길이 없어서 사람들이 길을 찾지 않는구나, 나는 독백을 했습니다. 정혜신 ‘인간은 자기가 아닌 만큼만 인간일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한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인간은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만큼만 인간이라는 거고, 본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자의식 속에서만 진정한 이성적 존재가 나타난다는 거죠. 한비야 생각하는 사람thinker도 있고, 행동하는 사람actor도 있어요. 저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어떻게든 손발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니 후자이겠죠. 생각해보세요. 목욕탕 가서 생각보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어요. 견딜 수 없죠? 튀어나가야 하죠? 그게 절박감이에요. 난 그게 뭐가 됐든지 일단 ‘필’이 오면 100도까지 끓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성에 안 차! 박경철 죽어서 아버지를 만나서는 “그래, 잘했다” 칭찬을 받아야 하고, 아픔을 함께해준 친구에게는 언제든 힘이 되어주어야 해요.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아내에게도 실망을 줄 수 없으니 결국 이들이 저를 하루 24시간 감시하고 격려하는 거죠. 당연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할 수밖에요. 공병호 안분지족, 나는 노! 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높은 목표에 에너지를 쏟고 그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행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도 항상 행복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행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행복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심재명 재테크요? 문외한이에요. 성격이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랄까, 지레짐작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남편에게 늘 주의를 받아요. 화나는 일이요? 영화 잘 만들 고민을 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까만 궁리하는 사람을 마주 보는 일. 화를 자주 내냐고요? 못내요. 좌우명이요? 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 성공이요? 그런 걸 꼭 생각해야 하나요? 나이에 따라 현명하게 자신을 변화시켜가면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게 성공 아닐까요? 장윤주 리허설 백 번 하고 관객 앞에 딱 한 번 서면 그만인 게 쇼예요. 하루 만에 끝날 거 할 짓 없어서 이렇게 준비하나,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되풀이하지 않는 비장한 올인이 멋있잖아요. 예전에는 쇼가 끝나고 나면 아쉬운 기분에 맥주도 한 잔씩 했는데, 이제는 박수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와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너무 좋아요. 쿨하게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총총 발걸음을 돌리는 그런 내 몸짓들이 진짜 멋있다, 완전 카리스마다, 스스로 감탄하기도 해요. 배한성 방송 잘하는 법 궁금하시죠. 책 나와 있어요. 조금 두꺼운 게 흠이긴 한데, 읽다가 지치면 훌쩍 뛰어넘어 맨 뒤를 봐도 좋아요. 거기 아마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을 거예요. 여태껏 얘기한 건 이론이다, 방송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뭘 타고나느냐, 재능? 아니, 끈기. 정관용 토론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것은 교육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지선다 주입식 학습의 폐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거죠. 정운찬 총장 재직 시 서울대학교에 기초교육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서 뭘 가르칠까요. 말하기와 글쓰기랍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들어온 우수한 학생들이 정작 학문을 위한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은미 남 모르는 아픔과 고민 갖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제 주변에는 세상이 다 그런 거다, 너 혼자 고민하는 것 아니다, 코웃음 치는 사람이 없었어요. 늘 한 발짝 뒤에서 지켜주기만 하는 그런 진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정작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 한은, 10일부터 외화대출 용도제한

    한국은행은 오는 10일부터 외국환은행이 국내 거주자에게 제공하는 외화대출을 해외사용 목적의 실수요와 제조업체의 시설자금용 등으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이를 위해 ‘외국환거래 업무 취급세칙’을 개정, 원화로 환전해 사용하는 경우와 원리금 상환 등의 운전자금용 외화대출은 금지하기로 했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창구지도를 강화 실수요 위주의 외화대출을 유도했으나 운전자금용 외화대출이 계속되면서 외화차입에 따른 원화절상 압력이 커졌다.”고 용도제한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국내 시설자금용 외화대출은 투자촉진과 수입대체 효과 등을 감안, 제조업에 한해서는 허용하기로 했다. 이 경우 외환대출시 증빙서류를 확인하도록 했으며 나중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사후관리 의무도 부과하기로 했다. 아울러 은행 공동검사 때 외화대출의 용도제한 준수 여부를 중점적으로 보기로 했다. 이런 용도제한은 외국환은행 이외에도 종금사, 보험사, 신기술금융사, 리스사, 할부금융사 등 외국환업무취급기관에도 적용된다. 외국환은행의 외화대출은 2006년 163억달러가 증가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21억달러가 늘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토요영화] 박쥐성의 무도회

    ●박쥐성의 무도회(EBS 세계의 명화 오후11시)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박쥐성의 무도회’(1967)의 원제목은 이렇다.‘The Fearless Vampire Killers’. 그에 덧붙여 작은 제목으로 ‘Or Pardon Me,But Your Teeth Are In My Neck’이 이어진다.‘용감한 흡혈귀 사냥꾼-혹은 실례합니다만, 당신의 치아가 내 목을 물고 있어요.’ 쯤으로 옮길 수 있겠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 ‘박쥐성의 무도회’는 흡혈귀가 나오는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그린 코믹 공포영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직접 흡혈귀 퇴치 교수의 제자로 출연하고, 그의 아내 샤론 테이트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페디 마인은 크로록 백작 역을 맡았는데, 전통적인 드라큘라의 카리스마에 전혀 뒤지지 않는 마력을 발산한다. 루마니아를 여행하던 아브론시우스 교수(잭 맥거번)와 그의 제자 알프레드(로만 폴란스키)는 마늘과 십자가가 잔뜩 쌓인 어느 이상한 마을에 도착한다. 여관에 머물던 알프레드는 이날 밤 여관집 딸 사라(샤론 테이트)가 흡혈귀에게 잡혀가는 것을 목격한다. 울부짖던 그녀의 아버지는 마늘을 들고 성으로 가지만 다음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교수와 알프레드는 사라를 구하고 흡혈귀들을 없애버리기 위해 성으로 향한다. 성에서 크로록 백작(페디 마인)을 만난 두 사람은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백작과 함께 그의 가족의 관이 있는 지하실로 향한다. 알프레드는 박사의 지시대로 이들에게 말뚝을 꽂으려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나온다. 이때 사라를 발견하는데, 그녀는 오늘 밤 무도회가 있다며 목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성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무도회가 열리는데, 이때 묘지에 있는 모든 시체들이 깨어나 이 무도회에 참석한다. 1933년 유대계 폴란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어머니가 나치수용소에서 죽음을 맞는 등 평탄치 않은 성장과정을 겪었다. 그는 첫 장편영화 ‘물속의 칼’(1962)에서부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2003)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부조리, 동시대의 폭력과 악의 문제를 형상화해 왔다.108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책꽂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정수복 지음, 생각과 나무 펴냄) 지은이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 노출되는 문화적 문법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한국사회의 심층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민주화와 정권교체 수준을 넘어 문화적 문법을 비판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나가야 한다고 설명한다.1만 8000원.●이기는 자의 조건(쥘 마자랭 지음, 정재곤 옮김, 궁리 펴냄)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을 창출하고 막후실력자로 군림한 마자랭(1602∼1661) 추기경이 권력을 얻고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이기는 자를 위한 네 가지 핵심사항은 흉내 내라, 아무도 믿지 말라, 모두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라,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는 것이다.9500원.●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권문수 지음, 글항아리 펴냄) 지은이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이코(정신의학) 세라피스트.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에게 달려가기 전에 사이코 세라피스트를 찾는 것이 하나의 당연한 절차처럼 인식되어 있다고 한다.‘사이코 세라피스트의 심리여행’이라는 부제처럼 그동안 실제로 마주친 환자들의 치료과정을 담았다.1만 2000원.●품인록-중국 역사를 뒤흔든 5인의 독불장군(이중톈 지음, 박주은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항우, 조조, 무측천, 해서, 옹정제 등 중국 역사 속에 걸출한 인물 5명의 품성과 자질, 명망, 수완을 분석했다. 항우는 단순함, 조조는 간교함, 무측천은 악랄함, 해서는 고집스러움, 옹정제는 시기심과 각박함 때문에 각각 패배했다고 설명한다.1만 8000원.●초상화 연구(조선미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문화재위원인 지은이는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술사학자.30년 동안에 걸친 초상화 연구 성과 가운데 의미있는 12편을 모은 뒤 새로운 자료를 보완했다.▲한국 초상화의 유형 ▲조선 시대 초상화의 성격 ▲초상 화가와 걸작품 ▲중국 초상화와 초상화론 등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2만 5000원.●초록에 물들다-주말농사에서 만난 풀꽃세상(이수경 지음, 북하우스 펴냄) 지은이는 다섯 해째 주말농사가 주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출판인이다. 아직도 가을에 파종하는 종자를 봄에 뿌리기도 하고, 고추 모종을 너무 일찍 심어 서리를 맞히기도 하는 철부지 농군. 매주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하면서도 주말농사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담았다.9800원.●스누피 처세철학-애드리브의 힘(히로부치 마스히코 지음, 이양 옮김, 종이책 펴냄) 스누피 만화로 배우는 처세철학, 독특한 사고력을 갖고 있는 애완견 스누피와 그의 주인 찰리 브라운, 심술쟁이 소녀 루시와 샐리, 천재 음악가 슈로더 등 스누피 만화의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개성있고 위트 넘치는 애드리브의 기술을 찾아낸다.9800원.●유머러스 영국역사(존 파먼 글·그림, 권경희 옮김, 가람기획 펴냄) 잉글랜드로 황급히 달아나느라 스코틀랜드에 아들을 두고 온 메리 여왕, 처형된 뒤 초상화가 그려진 찰스 2세의 서자 몬머스, 날아오는 돌멩이를 막아줄 병사의 호위를 받아야 했던 조지 4세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요 인물이나 사건 중심으로 기술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1만원.
  • 현정은 회장 방북… 개성관광 탄력 받을듯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르면 이달 말쯤 북한 평양을 다시 방문한다.2005년 7월 이후 2년만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맏딸인 정지이 현대유&아이 전무도 동행한다. 그룹 대북사업의 숙원인 개성 시내관광과 금강산 비로봉 관광 허용을 강하게 요청할 계획이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2일 고(故) 정몽헌(MH) 회장의 4주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현 회장(MH의 부인)이 이달 하순이나 다음달 초쯤 평양을 방문해 북측 동업자인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관계자들을 두루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 사장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면담 추진 사실을 부인하지도 않아 ‘재회 성사’ 가능성을 열어놓았다.2005년 방문 때는 현 회장 모녀가 함께 김 위원장을 만났었다. 설사 면담이 불발되더라도 현 회장은 북측 ‘고위 동업자’들과의 연쇄 회동을 통해 개성·비로봉·총석정 관광 등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윤 사장은 “총석정의 경우, 북한이 해상관광을 제안한 상태이지만 풍랑이 세고 시간이 많이 걸려 육상 관광을 요청해 놓았다.”면서 가장 먼저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금강산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비로봉은 북측이 동의하더라도 도로포장 등의 문제가 있어 내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 회장은 평양 방문 길에 노약자들을 위한 금강산 케이블카 설치, 중국 관광 명소인 장자제(張家界)에 평양 옥류관 공동 운영방안 등도 건의할 작정이다. 개인적인 염원인 ‘정주영·정몽헌 부자 박물관’ 건립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은 MH의 4주기인 4일 그룹 사장단 및 265명의 그룹 신입사원들과 함께 경기 창우리 묘소를 찾아 참배한다. 이튿날에는 곧바로 금강산으로 차를 달려 신입사원 수련대회에 참석한다. 한편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이 최근 독자적 대북사업을 재개한 것과 관련, 윤 사장은 “현대 재직 중에 추진하던 사업을 그대로 들고 나가 하고 있다.”면서 “상도덕에도 어긋나지만 법적으로도 영업기밀 누출 소지가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사업을 계승한다는 김 전 부회장측 주장에 대해서도 “개인 비리로 회사를 그만둔 분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몹시 불쾌해했다. 현대는 금강산 개발에 2025년까지 총 30억달러(약 2조 7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오후 9시 광주 무등극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말이 없다. 체구가 작은 그는 숫제 의자에 파묻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충격적인 장면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전 총리는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아본다. 남편 박성준 교수도 문득 부인의 존재를 깨닫는다. 서로 잠시 눈을 맞춘다. 둘 다 영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둘은 지난달 27일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함께 5·18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다.‘5월 어머니회’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의 모임이다. 이날은 이 영화의 광주 개봉일이었다. “꼭 5·18 현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가졌나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한 전 총리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광주 금남로에 왔다고 했다. 영화가 끝난 뒤 그는 목놓아 우는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손을 맞잡았다.“이런 좋은 날이 와서 영화까지 만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도 아직은 억울하고 원통해서….”반백이 다된 여성들이 말을 잇질 못한다. 한 전 총리도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 선언 후 벌써 세 번째 호남을 찾았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에게 호남은 특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다. 호남 지지가 없으면 대권도 없다. 이번 방문에서 그는 광주와의 특별한 인연을 새삼 강조했다. “저는 광주교도소에서 5·18을 맞았습니다. 감옥 안에선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질 않았어요.”한 전 총리는 광주 지역 원로 윤공희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옛 일을 회상했다.27년 전, 두려웠다고 했다. 당시 그는 총소리가 들리고 헬리콥터가 드나들어 전쟁이 난 줄 알았다.“전쟁이 나면 정치범부터 죽이잖아요. 그 현장에서 저는 하루 24시간 감시받으며 목숨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그 열흘을 버텼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한 측근은 “5·18 광주를 생각하면 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후보가 될 수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삶의 궤적은 역사 앞에서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고 덧붙였다. “손 전 지사는 80년 5·18 당시 어디에 있었나요. 그리고 93년 정치 입문은 어떤 당 간판을 달고 했나요.”범여권 주자들이 두고두고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대목이다.“최근까지의 행적·발언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우리 범여권이 반성해야 합니다.” 한 전 총리는 ‘여성 리더십’과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도 역설했다.“지금까지의 남성중심적 문화와 국정운영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여성적 가치, 부드러운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하기도 했다.“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씨나 남편의 후광을 입은 여성 리더십이 아닌 자기 손으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호언했다. 자신만만 했다. “세계가 여성지도자를 원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과 독일 메르켈 총리, 그리고 이제는 인도에서도 여성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도 여성대통령, 나올 때 되지 않았을까요.”외유내강형인 한 전 총리의 권력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이 쉽사리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지율은 낮고 역전의 기미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전 총리측 반응은 간단했다.“흔들림 없이 우리 갈 길을 갈 뿐입니다. 처음 출마 선언 때 누구나 우리가 곧 포기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명숙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 있습니까.”아직 시간은 남아있고 변수는 많다는 이야기다. 그는 “안정된 모습을 강조하다보면 경선판이 흔들릴 때 유력한 제 3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로 뚜벅뚜벅 가는 게 필승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과연 그 의도가 적중할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광주에서의 밤.‘한명숙 팬클럽 회원’들이 금남로 근처 한 호프집에 모였다. 한 전 총리와의 팬 미팅이다. “바깥양반이 저를 위해 13년 반을 고생했습니다. 이제 바깥양반을 위해 안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한 전 총리의 남편 박성준 교수가 인사말을 한다. 남편이 아내를 ‘바깥양반´이라 부른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웃음을 머금었다. 한 전 총리는 혼인신고도 못한 채 끌려간 남편을 13년 반 동안 옥바라지했다. 결혼 6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박 교수 표정이 진지하다. 허튼 소리가 아니다.“부정한 힘으로 쓴 역사는 정의로 지켜온 역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저희 바깥양반은 꼭 승리할 겁니다.”박수가 쏟아진다. 광주 일정 마지막 날. 통합신당 광주시당 창당대회에서 한 전 총리는 외로워 보였다. 행사 초반 대선주자 소개 때 다른 이들에게 쏟아지던 연호·함성은 그에게 없었다. 인지도가 아직 낮다.‘가나다’ 연설순서에 따라 한 전 총리의 연설은 항상 마지막이다. 그가 연설할 때쯤 청중의 3분의1은 이미 행사장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대중연설은 의외로 설득력 있었다. 분위기가 고조된다. 연설 말미 “본선 경쟁력에 한사람 한사람 대입해 보십시오. 한명숙 괜찮지 않겠습니까?”란 마무리에 생각지 못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광주 시민은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연단을 내려오는 한 전 총리가 살짝 웃는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한총리의 약점은 ‘단점 없는 게 장점, 장점 없는 게 단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특별히 흠 잡을 데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다는 얘기다. ‘여성 후보 무임승차론’은 여기서 나온다. 콘텐츠가 부족하고 특별한 정책과 비전을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단지 여성후보라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무총리 재임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부분도 한계다. 캠프쪽에서는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를 장점으로 꼽고 있지만 지지율을 높이는 것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비호감’은 아니지만 확실한 호감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안티는 별로 없지만 팬도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한 전 총리는 “나는 돈도 조직도 계파도 없는 ‘3무(無)’ 후보다. 오직 국민의 바다에 뛰어들어 당당히 승부하겠다.”고 말한다. 선거전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호남이나 충청, 수도권 그 어느 지역에서도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등 지역적 기반이 취약한 것도 한 전 총리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친노와 비노 후보 이미지가 겹치는 것도 한 전 총리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친노 대선 주자들에 밀려 친노 지지층에서도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비노 지지층에서 한 전 총리를 친노로 분류할 경우 그쪽에서도 표를 얻기가 쉽지 않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누가 돕나 한명숙 전 총리의 캠프는 현직 국회의원과 여성계 인사, 총리 시절 참모그룹 등 40여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 출신 인사들과 신인령 전 이대 총장 등 모교 이화여대 출신 인맥, 후원회장인 한승헌 변호사를 비롯,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주요 지원그룹이다. 현역 의원으로 김형주(대변인)의원을 비롯, 백원우(조직)·이미경(여성 총괄)·이경숙(서울지역)·장향숙(장애인 담당)·신명(직능)의원이 결합했다. 실무진에는 청와대와 총리실 출신 참모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황창화 전 총리실 정무수석(총괄기획)과 김형욱 전 민정수석(조직), 김승호 전 정무비서관과 양상현 전 청와대 행정관(정책)이 힘을 보태고 있다. 신상엽 총리실 전 정무비서관이 공보를, 조한기 전 의전비서관은 의전과 일정을 맡았다. 지원그룹 면면에는 한 전 총리가 재야활동 시절부터 관계를 맺었던 지인들이 많다. 후원회장인 한 변호사를 비롯해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박영숙 전 의원 등이 한 전 총리를 돕고 있다. 이 밖에도 홍보 및 연설기획, 메시지를 담당하는 선거 전문가와 방송작가 등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 팬클럽 ‘행복한(韓) 사람들’ 회원 3000여명도 한 전 총리의 든든한 후원자다. 신상엽 공보팀장은 “캠프는 한 전 총리가 내세우는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분위기”라면서 “후보가 수시로 참모들과 대화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열린 캠프”라고 자랑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베리타스·에듀PSAT硏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언어논리 8

    8. 진술의 모순 관계와 정합성 1. 모순 대당:한 쪽이 참이면 다른 쪽은 반드시 거짓이고, 한 쪽이 거짓이면 다른 쪽은 반드시 참인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는 두 진술의 관계. 2. 반대 대당:두 개의 진술이 동시에 둘 다 참일 수는 없지만, 둘 다 거짓일 수는 있는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는 두 진술의 관계. 3. 소반대 대당:둘 다 참일 수는 있으나, 둘 다 거짓일 수는 없는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는 두 진술의 관계. ☞ 언어논리 진술의 모순관계와 정합성 실전문제와 이론 바로가기 1. 정합성:두 개의 진술이 모두 참이 될 가능성이 있다.(사례:철수는 학생이다.-순희는 학생이다.) 2. 비정합성:두 개의 진술 중에서 반드시 하나는 참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이다.(사례:철수는 학생이다.-철수는 학생이 아니다.) (예제 1) 다음 중 두개의 진술이 동시에 둘 다 참일 수는 없지만, 둘 다 거짓일 수 있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ㄱ. 모든 국회의원은 여성이다. 약간의 국회의원은 여성이 아니다. ㄴ. 어떤 국회의원도 여성이 아니다. 약간의 국회의원은 여성이다. ㄷ. 모든 국회의원은 여성이다. 어떤 국회의원도 여성이 아니다. ㄹ. 약간의 국회의원은 여성이다. 약간의 국회의원은 여성이 아니다./ci0000 (1) ㄱ (2) ㄱ,ㄴ (3) ㄴ,ㄹ (4) ㄷ (5) ㄷ,ㄹ ㄱ,ㄴ:모순 대당 ㄱ:반대 대당 (국회의원 중 여성이 한 명인 경우를 예로 든다.) ㄹ:소반대 대당 (국회의원 중 여성이 한 명인 경우를 예로 든다.) 정답:(4) ●2006년 입법고시 (예제 2) 모순관계에 놓인 두 주장은 동시에 참으로 주장될 수도 없고 또한 동시에 거짓으로 주장될 수도 없다.(가)와 (나)의 주장이 서로 모순관계가 아닌 것은? (1)(가)새로 부임한 구청장의 키는 적어도 180㎝는 된다.(나)새로 부임한 구청장의 키는 아무리 커봤자 180㎝는 못 된다. (2)(가)이것의 모양은 동그랗다.(나)이것의 모양은 동그랗지 않다. (3)(가)이것은 질긴 실이다.(나)이것은 질기지 않지만 실이거나, 질기기는 하지만 실은 아니거나, 질기지도 않고 실도 아닌 것이다. (4)(가)소풍가는 유치원생들은 모두 노란 모자를 썼다.(나)소풍가는 유치원생들은 아무도 노란 모자를 쓰고 있지 않다. (5)(가)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서 조는 사람은 최소한 30명은 된다.(나)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서 조는 사람이 많아야 30명도 안 된다./ci0000 ※‘모순 관계’는 서로 다른 진리치를 갖게 되므로 ‘명제의 부정’과 서로 통한다. (1)180㎝ 이상과 180㎝ 미만 (2)‘A는 B이다.’의 부정은 ‘A는 B가 아니다.’이다. 결코 ‘A가 아닌 것은 B이다.‘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3)‘A and B’의 부정은 A와 B 중에서 어느 하나만 부정되거나, 둘 다 모두 부정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즉,‘∼A or ∼B’이다. (4)노란 모자를 쓴 유치원생이 한 명이라고 가정하면, 진술 (가)와 (나)의 진술은 동시에 거짓이 된다. (5)‘이상’의 부정은 ‘미만’이다. 정답:(4) 방재훈 베리타스 법학학원 강사
  • “위안부 운동 이제부터 진짜 시작”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일이었는데 결국 미 하원 결의안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지난 20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주춧돌을 놓은 1세대 운동가 김혜원(73)씨. 그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창립멤버다. 운동을 시작하던 1988년, 그는 이미 54세 중년 여성이었다.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맞춰 그가 책을 냈다. 제목이 ‘딸들의 아리랑’(허원미디어 펴냄)이다. 이 땅의 여성들이 숨죽여 불러온 아리랑이자, 이야기로 쓴 ‘위안부’ 운동사다. 김씨는 지난 20년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으며 그 자신이 흘린 눈물 자국과 지난했던 순간순간을 되밟아 갈무리했다. 평생 피맺힌 응어리를 안고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 이야기도 찬찬히 풀어냈다. 김씨는 “미 하원의 움직임을 지켜 보면서 미 의회를 움직이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끈질기게 진실 알리기에 매달려 왔는지 역사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책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이번 ‘위안부’ 결의안 통과는 작은 산을 넘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의안 통과를 기점으로 일본을 더욱 압박해야 합니다.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제1당이 됐으니까 전보다는 나아질 거라 기대해 봅니다.” 김씨가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시작한 건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활동을 하면서부터다.1970년대부터 국가 차원의 기생관광사업 반대운동을 펼쳐 오던 연합회는 88년 ‘국제관광문화와 여성’이란 국제세미나를 개최했고, 그 일환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해 2월 그를 비롯한 윤정옥(정대협 초대 대표)·김신실씨 등 초기 정대협 ‘3인방’은 연합회의 정신대 조사위원 자격으로 일본열도를 훑으며 정신대 피해자들을 찾아다녔다. 자비를 털어 여비를 마련했고, 답사 장소나 만나볼 사람에 대한 정보 하나 없이 사명감 하나로 떠났다. 그때 처음 만난 이가 배봉기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대인기피증에 걸려 있었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때 외엔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도 만나 주지 않았어요. 위안부로서 받았던 고통과 멸시가 할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 한번 제대로 나눠 보지 못한 할머니는 김씨가 다녀간 지 3년 만인 91년,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현재 정대협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그는 “몸으로 뛰어 다니며 할머니들을 도왔던 운동 1세대의 역할은 자원봉사자나 국가가 어느 정도 채워 주고 있다.”면서 “이젠 노동법과 국제법 지식으로 무장한 후배들이 한 걸음 진전된 결과를 이끌어 낼 단계”라고 말했다. 다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공동건립위원장 일만은 여전히 내려 놓지 않고 있다.김씨는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고 동일한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박물관은 꼭 세워져야 한다.”면서 “건물 짓는 데만 53억원이 필요하지만 지난 3년 동안 겨우 4억원밖에 모으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국민 모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며 그는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0) 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 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30) 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 Ⅳ

    이괄의 난을 계기로 인조정권의 취약점과 한계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인조정권이 구상하고 있던 계획들을 흐트러뜨렸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후금을 정벌하여 명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호기롭게 내세웠던 표방은 물거품이 되었다. 흔들리고 있는 내정을 추스르기에도 겨를이 없는 처지에 정벌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우선 땅에 떨어진 인조의 권위를 회복하고, 질서를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실추된 권위, 동요하는 민심 인조는 서울로 돌아온 직후 무신 김응창(金應昌)과 임박(任)을 처형했다. 당상관이었던 두 사람은 이괄이 입성했을 때 각각 좌우변 순장(巡將)이 되어 이괄을 경호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무신만이 아니었다. 문신들 가운데도 이괄의 난을 맞아 심각하게 동요했던 자들이 있었다. 부호군(副護軍) 이안눌(李安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괄의 난 당시 공조참의 김덕함(金德)과 함께 가도( 島)에 파견되어 있었다. 김덕함이 모문룡에게 원군을 청해다가 이괄을 토벌하자고 했을 때 이안눌은 동의하지 않았다. 얼마 후 ‘인조가 저자도(楮子島)로 피난 가고 이괄이 인목대비를 모시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자 이안눌은 거침없이 인조에 대해 불경한 말을 내뱉었다.‘자전(慈殿-인목대비를 지칭)을 모셨다면 또한 우리 임금의 아들일 것이다.’,‘저자도에서 어떻게 모면할 수 있겠는가?’ 등등 인조는 이미 끝났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안눌은 그 밖에도 ‘반정 이후 개혁이 지지부진했고 공신들의 운이 좋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동요했던 것은 백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현 전투에서 관군이 승리할 기미를 보이자 도성 문을 닫아걸어 반란군에게 타격을 주기도 했지만,‘이괄이 입성했을 때 도성 백성 대부분이 이괄에게 붙었기 때문에 법으로 논하면 죽여야 한다.’는 논의가 나올 정도였다. 우의정 신흠(申欽)은 백성들의 ‘불충(不忠)’을 불문에 부치자고 했다. 그는 “나라의 형세가 당당할 때는 조정에 문제가 있어도 백성들이 감히 원망하지 못하지만, 쇠약한 때에는 한 가지 잘못만 있어도 원망이 일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당시를,‘늙고 병들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급박한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백성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자고 했다. 정경세(鄭經世)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반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반정 직후부터 조정이 신의를 잃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원망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민심은 쉽사리 안정되지 않았다. 난이 진압된 지 한달 여가 지난 1624년 3월 중순,“장차 큰 변란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풍문이 퍼지는 와중에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밤에 여염을 돌아다니며 피란하라고 소리치며 선동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조정이 민심 수습을 위해 ‘과거를 불문에 부치겠다.’고 했지만 이괄 치하에서 부역(附逆)했던 사람들의 불안과 의구심은 좀체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정권 안보´에 올인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우선 인조에 대한 경호를 강화했다.1624년 3월, 비변사(備邊司)는 ‘숙위(宿衛)하는 병력이 적고 약하다.’며 외방의 출신들 가운데 재주 있고 용맹한 자들을 뽑아 경호 병력의 숫자를 늘리자고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반정공신 네 사람이 거느리고 있는 군관(軍官)의 숫자를 4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자고 했다. 그것은 당시의 민심과는 거리가 먼 조처였다.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군관의 수를 늘리면 정권의 안보가 확보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민심은 달랐다. 군관들이 자행하는 폐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료를 국고에서 지급 받음에도 불구하고 군관은 사실상 반정공신들의 사병(私兵)이었다. 언필칭 ‘인조 호위’를 강변했지만 실제로는 공신들의 집안 일을 건사하는 집사였기 때문이다. 유사시에도 공신 집안을 호위하고 재물을 운반하는 등 사사로이 부려졌다. 실제로 반란 당시 인조가 피난길에 올랐을 때 대가를 호위했던 군관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또 군관을 거느리고 있던 신경진은, 나아가서 적을 막으라는 인조의 명령도 무시했다. 이제 그런 군관의 숫자를 더 늘리자고 하는 판이었다. 이괄의 반란으로 혼쭐이 난 인조는 이후 반정공신들에게 더 의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명령을 어긴 신경진을 불문에 부치고, 군관의 수를 늘리는 데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 같은 분위기에서 반정공신들의 권세는 더 높아졌고, 이런 저런 비리가 터져 나왔다. 자연히 ‘광해군대의 폐정(弊政)을 개혁하겠다.’는 구호는 힘을 잃어 갔다. 정권이 바뀌면 무언가 과거와는 확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조정권도 광해군대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재생청(裁省廳)이란 기구를 설치하고 나름대로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괄의 난을 계기로 ‘개혁’은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었다.‘정권 안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에서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인조정권의 실세였던 김류와 이귀가 박승종 부자의 저택을 불하(拂下) 받은 것에서 드러나듯이 반정공신들의 탐욕스러운 처신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다만 주인이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이 없다.’는 냉소가 번져갔다.1625년(인조3) 6월, 도성에는 상시가(傷時歌)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었다. 아, 너희 훈신들이여(嗟爾勳臣) 잘난 척하지 말라(毋庸自誇) 그들의 집에 살고(爰處其室) 그들의 토지를 차지하고(乃占其田) 그들의 말을 타며(且乘其馬) 또 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又行其事) 너희들과 그들이(爾與其人) 돌아보건대 무엇이 다른가(顧何異哉) ●반란의 대외적 여파 이괄의 반란은 나라 밖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인조정권은 이괄의 반란군이 도성을 압박해오자 가도의 모문룡(毛文龍)에게 자문(咨文)을 보내 원병을 요청했다. 모문룡은 조선의 보고를 접한 뒤, 유격(游擊) 왕보(王輔)에게 선사포(宣沙浦)에서 군사를 점검하도록 지시했다. 왕보는 자신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진격한다.’고 큰소리쳤다. 조정은 다급한 마음에 원병을 요청했지만 당시 모문룡의 접반사(接伴使)였던 윤의립(尹毅立)은 신중했다. 그는 모문룡의 군대가 육지로 나온 이후의 상황을 우려했다. 왕보의 말대로 1만이나 되는 대군이 나올 경우, 그들에게 군량을 지급하는 문제는 물론이고 그들이 자행하는 민폐가 심각해질 것을 우려했다. 윤의립은 왕보를 만나 ‘이 적은 얼마 안 가서 주벌될 것이니 천병(天兵)을 역적 토벌에 끌어들여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며 원병 요청을 취소했다. 결과적으로 윤의립의 판단은 정확했다. 반란이 곧 진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모문룡의 병력이 나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에 대한 접대와 그들이 자행하는 민폐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을 것은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섬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후금을 군사적으로 자극하여 또 다른 사단이 발생했을 것이다. 앞으로 서술하겠지만, 반란 종식 이후 모문룡과 그의 군대가 보여주었던 행태를 보면 윤의립의 ‘결단‘이 얼마나 빛나는 ‘혜안’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반란의 여파는 후금에도 미쳤다. 한명련의 아들 한윤(韓潤)이 조선을 탈출하여 후금으로 투항했던 것이다. 한윤은, 당시 후금에 억류되어 있던 강홍립(姜弘立)을 만나 “강씨 일족이 다 죽었다.”고 무고했다. 강홍립은 격앙되었다.‘새로 들어선 인조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정보도 후금 측으로 건네졌다. 한윤의 투항은 정묘호란이 일어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괄의 반란을 계기로 조선은 명과 후금의 대결 구도 속으로 점점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이종현의 나이스샷] 마케팅으로 본 골퍼와 팬

    얼마 전 끝난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에비앙마스터스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했다.4라운드 마지막 18홀에서 벙커샷을 핀에 30㎝ 가까이 붙여 버디를 한 장정에게 카메라가 집중됐다. 특이한 것은 장정의 얼굴보다 골프백과 모자가 클로즈업됐다. 함께 지켜 보던 지인들도 “아, 장정이 ○○클럽 쓰는구나.”하고 외쳤다. 장정이 나탈리 걸비스와 연장전에 돌입하자 한 지인이 “그럼 ○○와 ××의 싸움이네.”라고 말해 경기를 보는 즐거움을 하나 더 만들어 냈다. 골프마케팅의 숨은 속성을 단적으로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런 직간접 홍보 때문에 각 기업들은 광고를 하고 활발한 마케팅을 펼친다. 또한 선수는 든든한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통해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와 마케팅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미프로풋볼(NFL) 슈퍼볼의 경우 30초 광고 하나가 230만 달러(22억원)를 호가한다. 그래도 자리가 없어 광고를 못낼 지경이다.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기업은 이익을 얻고 프로선수는 안정을 발판으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광고와 마케팅이 기업 모두에게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의도하지 않은 홍보와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선수와 기업의 궁합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미프로골프(PGA) 투어 AT&T대회에서 최경주는 완벽한 우승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정작 용품스폰서보다도 더 관심을 끈 것이 최경주가 사용한 그립이었다. 그가 사용한 두툼한 사각막대형 그립이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후 국내 골퍼들은 최경주가 사용한 퍼터와 그립을 구입할 수 없느냐며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런가 하면 2005년 마스터스에서 보여준 타이거 우즈의 신기에 가까운 퍼팅은 아직도 골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고 또 CF로도 활용된다. 강한 브레이크가 있는 컵을 향해 퍼팅 스트로크를 한 우즈의 볼이 컵에서 잠시 멈췄다. 정지하나 싶었던 볼이 너무도 선명하게 용품 로고를 1,2초간 보여준 뒤 들어갔다. 수천만 달러를 주고도 할 수 없는 기막힌 광고이자 홍보였다. 스포츠 마케팅은 이렇게 각본없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기업은 많은 선수들과 계약을 통해서 마케팅을 배가시키고자 한다. 어떤 볼을 2000년 10월부터 사용해 불과 6년 9개월 만에 1000번째 우승 선수가 나왔다는 것도 광고의 호재다. 어떤 퍼터는 올 상반기 동안 우승자 39%가 사용해 우승 확률 1위, 전 세계 사용률 1위에 오른 것 역시 클럽업체엔 좋은 소스다. 묘하게도 일반 골퍼들은 유명선수가 사용하는 클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찾는다. 이것이 골프 마케팅의 숨은 이면이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박 후보측 “전혀 사실이 아니며 그럴 이유도 없었다”

    박근혜 후보측은 이씨 주장을 반박했다. 박 후보측 김재원 대변인은 이날 오후 박 후보가 최씨 입회 없이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는 등 박 후보와 최씨와의 연관성 여부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며 그럴 이유도 없었다.”면서 “최 목사는 육영재단 업무에 관여한 사실이 없으며 기념 사업회 일에는 모임에 참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최씨 축출 과정에 전경 4개 중대가 동원됐다는 것에 대해서도 “당시 육영재단에 전경이 단 한 사람도 나타난 기억조차 없다는 것을 알려 드린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측은 또 본지 취재 내용이 이씨를 통해 이뤄진 것을 알고 이날 밤 육영재단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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