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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르치는 내가 오히려 더 배우죠”

    “가르치는 내가 오히려 더 배우죠”

    21세 여성은 중학교 1학년 영어책을 보고 있었다. 몇년 전 고등학교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쳤지만 수능 볼 실력이 안 됐다. 학창 시절 성적은 좋았었다. 고향에선 나름대로 수재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도 한국 학력 수준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여성은 북한 평안북도 A고등중학교(중학교 3년·고등학교 3년 과정) 출신이다. 김영숙(가명)씨. 2007년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여기에는 many가 아니라 much가 들어가야겠네요.” 김씨 옆에는 과외교사가 함께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 였다. 고려대 지리교육학과 박기영(25)씨다. 박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김씨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돈은 받지 않는다. “탈북 학생들은 공부에 어려움을 많이 느껴요. 아무래도 한국과 수준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도 거기에 대한 배려는 아무도 하지 않죠.” 정부는 탈북 학생들의 북한 학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현실적인 학력 차이는 고려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중1이면 한국에서도 중1, 북한에서 고3이었으면 한국에서도 고3이다. 당연히 탈북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다 소외되고 학교를 떠나기도 한다. 김씨도 한국에 도착한 뒤 공부를 더 하려 했다. 그러나 고교 과정을 마쳤으니 학교에 올 수 없다고 했다. 검정고시조차 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1년 이상을 넋놓고 시간만 보냈다. 박씨는 “김씨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못 잡았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두 사람을 연결한 건 ‘성공적인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단체다. 탈북 대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모여 만들었다. 현재 23명의 탈북 학생들에게 과외 봉사자를 연결해 주고 있다. 박씨는 교육 관련 인턴일을 찾다가 우연히 이 일에 지원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았어요. 공고를 보자마자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박씨는 과외 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더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저는 단순히 글자와 수학공식을 가르칠 뿐이지만 김씨는 제게 다른 문화에서 살았던 사람의 고민을 들려주니까요.” 박씨 표정이 밝았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오늘의 눈] 감독 사각지대 새마을금고/이천열 사회2부 차장

    [오늘의 눈] 감독 사각지대 새마을금고/이천열 사회2부 차장

    충남 홍성 광천새마을금고의 고객예탁금 횡령사건은 새마을금고가 감시의 사각지대로 방치됐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수법’이라고 해도 임직원 전부가 한통속이 돼 10년 가까이 적발되지 않고 범행을 저지른 일은 허술한 감시체계 말고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른 금융기관보다 이자가 1~1.5% 포인트 높다는 이유로 금고에 돈을 맡긴 서민들만 날벼락을 맞았다. 새마을금고는 마을 주민들이 조합형태로 만들어 이사장도 손수 뽑는 서민들의 금융기관이다.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시골에 있는 광천금고는 이사장, 전무, 상무, 대리, 여직원 등 8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돈을 빼돌린 별도 전산시스템 이름처럼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아기자기한 조직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악용, ‘음흉한 가정’을 만들었다. 전문 범죄단처럼 치밀했다. 직접 금고를 찾아 현금으로 예금하고 다른 점포는 거의 가지 않는 노인이나 시장 상인의 정기예금을 노렸다. 인사권을 가진 이사장은 “내가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써주며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고참 임직원은 이렇게 돈을 챙겨 나갔고, 신참은 이런 과정을 거쳐 범행에 가담했다. 신참도 이골이 나자 윗사람을 속였다. 20대 처녀 직원 둘은 이런 수법으로 각각 1억원 안팎의 고객 돈을 빼돌려 명품가방을 사거나 결혼비용으로 썼다. 감사는 새마을금고연합회, 감독은 행정안전부가 하지만 ‘있으나 마나’였다. 광천의 다른 금융기관 직원은 “사건이 터지기 2~3개월 전부터 광천새마을금고에서 대규모 인출사태가 벌어졌지만 아무 조치도 없었다.”면서 “감사가 오면 술 먹이고 하는데 제대로 될 리 있겠느냐.”고 혀를 찼다. 검찰도 이 부분을 추가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시체계가 이 정도라면 전국 1518개 새마을금고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천열 사회2부 차장 sky@seoul.co.kr
  • [남북 개성접촉] “수십억 투자했는데…” 당혹

    개성공단 입주기업들과 현대아산은 21일 북한이 “남측에 주었던 모든 제도적인 특혜조치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통보해 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에선 우려했던 ‘공단 전면 폐쇄’ 등의 극단적인 대응이 나오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 관계자는 “북한이 우리 정부에 토지사용료 지불을 6년 앞당길 것을 요구했다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토지공사와 맺은 공장부지 계약도 변경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또다른 기업 관계자는 “북측이 노동자 노임을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저임금이라는 개성공단의 메리트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자동차부품업체 관계자는 “고객과 바이어들이 이미 개성공단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면서 “수십억원을 투자한 개성공단을 포기할 순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의류업체인 인디에프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에스제이테크 관계자는 “개성공단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답답함만 쌓여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공단 폐쇄 결정이 안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북한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엔 손해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성공단에 23일째 자사 직원이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도 협상이 아무런 진전 없이 끝나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아산 조건식 사장도 이날 개성공단을 방문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추이만 지켜봤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개성공단에서 모두 20여건 979억원의 공사를 수주했다. 하지만 올해는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한 상태다. 김성곤 홍희경기자 sunggone@seoul.co.kr
  • [정상문 前비서관 구속] 檢 ‘100만달러 = 뇌물’ 기싸움서 다시 주도권

    ■ 鄭 수감, 수사에 미칠 영향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막판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검찰과 노무현 전 대통령간에 힘의 균형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검찰은 한숨을 돌린 반면, 노 전 대통령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게 됐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에겐 우리 안에 가둬야 할 대상이었고,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보호해야 할 요인(要人)이었다. ● 鄭 “ 전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 검찰이 재수 끝에 ‘국고 등 손실’로 구속한 것도 검찰의 고민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정 전 비서관 구속의 다급함을 잘 보여준다.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노 전 대통령과 600만달러(100만달러+500만달러)의 관련성을 풀어내겠다는 계산이다. 정 전 비서관이 자유롭게 조사받는 상황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의 교감과 말맞추기가 가능해 수사가 난항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과 떼어놓을 필요성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을 잡은 검찰은 앞으로 각본에 따라 정 전 비서관 옥죄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을 통해 풀어야 할 숙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다. 우선 권양숙 여사가 2007년 6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아 사용했다는 100만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100만달러=노 전 대통령 뇌물’이란 점을 입증시키기 위해서는 돈 전달자인 정 전 비서관의 진술이 나와야 한다. 검찰은 박 회장의 500만달러(지난해 2월)를 놓고 박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간의 엇갈린 진술의 진실을 3자회동의 당사자인 정 전 비서관이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500만달러에 대한 지배력이 있음을 확인했을 뿐 노 전 대통령이 실제 주인이란 심증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이 ‘주군’을 대리해 참석했고, 회동 내용을 보고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결국 500만달러의 열쇠는 정 전 비서관이 쥐고 있는 셈이다. 또한 정 전 비서관은 자신이 차명계좌로 가지고 있던 15억 5000만원도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려줄 유일한 인물이다. 이 돈에는 권 여사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으로부터 받았다고 거짓 진술한 3억원과 정 전 비서관이 횡령한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 5000만원이 포함돼 있다. 정 전 비서관이 21일 서울구치소로 향하며 “(비자금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으나 진술 변화도 배제하지 못한다. 노 전 대통령은 암중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힌트를 얻은 뒤 인터넷 공격을 펼쳤던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정 전 비서관이 무엇을 어떻게 진술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유효적절한 패를 갖기란 쉽지 않다. 방어막을 상실한 노 전 대통령과 검찰과의 최종 라운드가 시작됐다. ● “집안 뜰 돌려주세요” 다섯번째 글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섯번째로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신문·방송에 나올 사진이 두려워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고, 아무도 올 수 없어 저희 집은 감옥”이라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달라.”며 언론에 취재 자제를 호소했다. 오이석 김민희기자 hot@seoul.co.kr
  • [2030] 당신의 중간고사 에피소드는

    [2030] 당신의 중간고사 에피소드는

    화사했던 벚꽃의 물결도 사그라들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 왔다. 대학가는 지금 상반기 통과의례인 중간고사 기간이다. 어느 때보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학생들은 저마다 조금이라도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20대들과 시험의 악몽마저 추억이 된 30대들의 ‘중간고사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박성국 오달란 유대근기자 psk@seoul.co.kr ■ 시험과 함께 찾아온 인연 노트 빌려준 그녀와의 사랑 밤샌 커닝페이퍼 무용지물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기업 홍보실 직원 고모(27·여)씨는 중간고사를 계기로 풋풋한 연애 경험이 있다. 02학번인 고씨는 평균 학점 4.0에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기록을 3학기째 보유한 모범생이자, 전설적인 ‘필기의 여왕’이었다. 교수가 중구난방으로 설명을 해도, 수업이 아무리 어렵고 지루해도 그녀의 노트에는 핵심만 콕콕 쓰여 있었다. 시험에 나올 만한 부분은 보충 설명과 함께 색 볼펜으로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그려서 강조했다. 친구들은 그녀의 노트만 보면 교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좌르르 그림이 그려진다며 극찬했다. 친구와 선배들은 시험기간 1주일 전부터 그녀의 노트를 빌리기 위해 줄을 섰다. 고씨는 자신의 노트가 인기 절정인 것에 우쭐하기도 했지만 빌려주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정성들여 만든 노트를 몇 초만에 복사해 가고, 그 복사본이 또 학과 전체를 떠도는 모양이 달갑지 않았다. 그런 그녀 앞에 00학번 복학생 김모씨가 나타났다. 전공수업을 같이 들어 안면이 있던 김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노골적으로 노트를 빌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주에 몸이 아파 수업을 듣지 못했는데 그 부분만 잠시 볼 수 없겠느냐.”고 정중히 물었다. 김씨는 또 노트를 돌려주면서 음료수 한 잔도 함께 건넸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하면서 친해졌고,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 연애를 시작했다. “노트 하나가 이어준 인연이었죠. 공부도 하고 애인도 만들고, 이런 게 일석이조 아닐까요.” 직장인 김모(28·여)씨는 대학 때 시험 기간이 그립다.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김씨는 2001년 서울의 한 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았다. 시험 기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씨는 중간고사 때면 어김없이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밤을 새웠다.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우선 저녁 7시가 되면 ‘밤샘 공부’를 위한 체력을 비축한다는 명목 아래 학교 앞 분식점을 휘젓고 다녔다. 떡볶이, 순대, 라면, 만두 등을?두루 포식한 뒤 학교로 돌아왔다. 그러고서는 학교 잔디밭에 퍼질러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남자친구, 진로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면 3~4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깜짝 놀라 도서관으로 돌아가지만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이기 위해 책상에 엎드린다는 게늘 깨어나면 오전 7시였다. 2~3시간 요점만 후다닥 훑어본 뒤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학점이 그다지 좋지 않아 안타깝긴 하지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보낸 그 시절이 못내 그립네요.” ■ 커닝, 그 피할 수 없는 유혹 회사원 박모(39)씨는 ‘대학시험’하면 ‘커닝 페이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박씨는 1991년 서울의 한 대학교 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그래픽 등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거금 340만원을 들여 매킨토시 컴퓨터도 구입했다. 하지만 정작 매킨토시는 디자인 공부보다는 정교한 커닝 페이퍼 제작에 애용됐다. 아주 작은 크기의 커닝 페이퍼를 만드는 데 매킨토시는 진가를 발휘했다. 손 안에 쏙 들어올 정도의 크기여서 실제 시험에서도 유효했다. 그래도 양심에 걸려 전 과목의 커닝 페이퍼는 작성하지 않았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과목만 골라 큰 뼈대만 추린 페이퍼를 만들었다. “당시 부모님을 졸라 고가의 장비를 샀는데, 하라는 디자인 공부는 하지 않고 효과적인 커닝페이퍼를 만드는 데 주로 활용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런 ‘일탈’마저 즐거웠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고등학교 사회 교사인 이모(31)씨는 지난해 기말고사 시험 감독을 하면서 적발한 커닝 수법을 잊지 못한다. 고2 교실에 음악시험 감독으로 들어간 이 교사는 교탁 앞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교실 이곳저곳을 살폈다. 시험 시작 뒤 15분 정도가 흐르자 교실 스피커에서 듣기 평가를 위한 클래식이 흘러 나왔다. 그윽한 선율에 취해 잠시 긴장이 풀린 이 교사는 눈을 감았다 떴다. 순간 교실 중간에 앉아 손을 휘저으며 음악에 맞춰 지휘를 하는 학생이 보였다.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변모군이었다. 이 교사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곧 교실 안 분위기가 수상함을 느꼈다. 다른 학생들이 변군의 지휘가 끝나면 일사불란하게 답을 적었던 것.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 교사는 시험이 끝난 뒤 변군을 교무실로 데려가 추궁했다. 마음 약한 모범생이었던 변군은 이 교사가 언성을 높이자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이 학생들의 커닝을 도왔다고 실토했다. 기가 막힌 건 커닝 수법이었다. 한번 지휘하면 1번, 두번 지휘하면 2번 하는 식으로 뜻을 모았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 웃음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그 머리로 공부를 하면 다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텐데요.” 커닝의 쓰라린 실패를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한 이도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강모(32)씨는 학창시절 학사경고 두 번을 받은 것을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생각한다. 선후배들과 어울려 술로 밤을 새우고 아침 내내 잠을 자다가 느즈막한 오후에 하숙집에서 나와 내기 당구를 치고 또다시 술집으로 향하는 게 그의 대학 1, 2학년 시절 일상이었다. 수업에 들어간 횟수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 그도 군대를 갓 제대하고 복학한 2000년에는 철이 들었는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다. ‘구멍’난 학점을 메우기 위해 3과목을 재수강하고, 나머지 3과목은 전공으로 채웠다. 결석도 거의 하지 않고, 맨 앞줄 책상에 앉아 교수의 침 세례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수업을 들었다. 중간고사 기간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했지만 강씨는 시험에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공부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어쩌나 불안했다. 자신의 ‘개과천선’을 지켜보는 선후배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강씨는 첫 과목 시험 하루 전 커닝 페이퍼를 만들기 시작했다. A4 용지를 세 번 접어 8개의 칸을 만들고 예상문제와 답을 깨알같이 적었다. 장장 5시간에 걸친 작업이 끝나자 마음 한켠이 든든해졌다. 시험 당일 조교가 칠판에 문제를 적기 시작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예상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문제가 출제됐기 때문. 강씨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대충 말을 지어 갈겨쓰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그 때 느낀 배신감과 허탈감이란 말로 표현 못하죠.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지. 그 후론 커닝은 생각조차 안 했죠.” ■ 이런 사람 꼭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팀프로젝트 불참 얄미워! 지난 3월 대학을 졸업한 최모(26·여)씨는 “팀프로젝트로 시험을 보는 과목은 1학년 1학기 이후로 절대 수강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악몽은 성의 없는 선배들 때문에 학점이 엉망이 된 데서 비롯됐다. ‘한국 민속문화의 이해’란 교양과목을 신청했던 그는 5명이 한 조가 돼 팀 리포트를 중간고사 시험 대신으로 제출해야 했다. 자신을 제외한 4명은 모두 4학년 2학기 다른 학과 선배들이었다. 그런데 취직 면접을 핑계로 1주일에 두 번씩 모이기로 했던 약속을 모두 하나같이 깨버렸다. 설마하며 4월 한 달을 흘려버린 그에게 리포트 제출 시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급한 마음에 연락을 돌려봤지만 선배들에게선 “면접 때문에 리포트에 참여할 수가 없다.”면서 “교수님에게 이미 양해를 구해놨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혼자서 부랴부랴 1인용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씁쓸한 맘은 지울 수가 없었다. “취업이 아무리 급하다지만 학점이 중요한 후배도 있는데 연락 좀 미리 주면 어디 큰일나나요.” 직장인 최모(33)씨는 재수 끝에 대학 경영학부에 입학한 뒤 처음 치렀던 교양과목 중간고사를 잊을 수가 없다. 남들보다 1년을 더 고생하고 들어온 상아탑이기에 더 가슴 벅찼던 그는 입학식을 치르기도 전부터 선배들을 쫓아다니면서 음주가무에 젖어 지냈다. 반별로 수업하는 교양과목 수업이 어느 건물에서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두 달 내내 열심히 놀았다. 첫 시험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험지 구경은 해 보자며 친구들을 따라 들어간 시험장이었지만 백지를 내기엔 창피했다. 그래서 그는 생각나는 대로 엉터리 시를 지어서 제출했다. “꽃 피고 새 우는 아리따운 봄에 청춘 잡는 시험이 웬말인고, 한 잔 술에 인생 배우고 너털웃음에 꽃이 지네.” 시험이 끝난 뒤 담당교수가 최씨를 불렀다. 특별면담을 하자고 한 것이다. 교수님은 “교수직 20년에 너 같은 학생은 처음 봤다.”며 호기롭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다음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후로 최씨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교수의 특별 출석관리를 받으며 수업에 꼬박꼬박 나갈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감시에 중간고사 이후는 ‘올 출’(모두 출석)을 기록했어요. 때로는 귀찮기도 했지만 교수님이 직접 신경써 주셨는데 학생의 도리는 지켜야죠.” 대학생 김모(25)씨는 지난 가을 복학하며 목표를 세웠다. 다름 아닌 전액 장학금을 받는 것. 경기불황 탓에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더 이상 부모님께 기댈 수 없게 된 김씨는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충당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명 ‘벼락치기 고수’였던 김씨는 중간고사에서 시험 전날 밤샘공부로 전과목 A학점을 받으며 장학금의 꿈을 키워갔다. 기말고사가 다가오자 김씨는 다시 ‘벼락치기 전술’을 시작했다. 시험 첫날 본 과목을 만족스럽게 치른 김씨는 여유롭게 다음날 과목을 확인해보니 비교적 자신있는 교양과목 시험만 예정돼 있었다. 김씨는 여유를 부리며 늦은 시간까지 TV를 시청한 뒤 다음날 늦게 일어나 오후 1시로 예정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교실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랴부랴 시험일정이 적힌 수첩을 확인한 김씨는 곧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요일 시험 일정을 화요일 일정으로 착각했던 것. 김씨가 듣는 전공과목 시험은 이미 오전에 끝났던 터였다. “전공과목에서 C학점을 받았으니 장학금은 물건너갔죠.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미네르바 “정치·사회분야 글도 쓰겠다” 노무현 소환 늦추는 검찰의 속뜻 마오도 200점 돌파…겨울올림픽의 여왕은? 이건희 퇴진1년…끄떡없는 비결은? 경찰대 합격생 재수성공기 최고 100만원 ‘뺑파라치’ 뜬다 차 429만km 달린 비결
  • 김혜자 “마더, 평범한 엄마 아니었기에 선택”

    김혜자 “마더, 평범한 엄마 아니었기에 선택”

    ‘국민 엄마’ 김혜자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마더’는 김혜자로부터 출발한 영화다. 스토리가 먼저이고 그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 것이 영화의 일반적인 수순이지만 ‘마더’는 그 순서가 바뀌었다. ‘마더’는 김혜자와 영화를 함께하고 싶다는 봉준호 감독의 열망에서 비롯됐다. 김혜자는 ‘마더’ 선택 이유에 대해 “영화를 많이 안 했던 이유는 영화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역할이 내가 늘 해 오던 엄마였기 때문” 이라며 “그런데 ‘마더’의 혜자는 완전히 달랐다.”라며 차별화된 캐릭터를 강조했다. 봉준호 감독이 김혜자와 작업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던 계기도 그녀 안에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던 히스테릭한 기운과 예민함, TV 드라마에서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강렬하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살인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가진, 절대적 모성의 엄마’라는 ‘마더’의 뼈대가 만들어졌다. 때문에 “선생님, 워낙 잘 하시니까 알아서 해 주세요.”식의 드라마 현장 분위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47년차 배우 김혜자는 촬영 전 봉 감독에게 “나를 많이 괴롭히고 극단까지 밀어 붙여달라.”고 주문했다고. 한편 최근 ‘마더’는 예고편과 스틸컷을 통해 김혜자의 새로운 모습을 공개했다. 김혜자 원빈 주연 ‘마더’는 오는 5월 28일 개봉된다. (사진제공=바른손)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와 읽는 동화] 엄마가 된 수늑대/양호문

    [엄마와 읽는 동화] 엄마가 된 수늑대/양호문

    성질이 사납고 게으른 외톨이 늑대가 느지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아이고! 배고파!” 늑대는 배가 너무 고파 이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집에 있던 마지막 음식을 먹은 지 벌써 나흘이 지났으니까요. 목도 타는 듯이 말랐지만 물이 있을 리가요. 왜냐고요? 이른 봄부터 시작된 가뭄이 한여름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계곡물이 다 말라 버리고 말았지요. 외톨이 늑대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일단 굴 밖으로 나왔어요. 굴속에 앉아 있어 봐야 누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예전에는 말만 하면 엄마가 무엇이든 가져다 주었는데. 지난달에 사냥을 나갔다가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요. 그때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면서 엄마한테 먹을 걸 가져오라고 소리치는 게 노래였지요. 그러나 이제 직접 먹이를 구해야지 어쩌겠어요? 오늘은 무엇이든 꼭 먹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숲 속을 뒤져도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 거 있죠. 그러자 늑대는 머릿속에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엄마가 보고 싶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었어요! 그럼 왜였냐고요? ‘엄마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서 날 이렇게 고생시키는 거야?’, 그렇게 엄마를 원망하기 위해서였어요. 사실 외톨이 늑대는 엄마를 싫어했어요.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고 말도 안 했죠. 함께 외출을 하지도 않았고요. 엄마랑 같이 다니는 게 창피했거든요. 나이가 들어 보여 할머니 같은 데다 앞다리 한쪽이 잘려져 다리가 세 개뿐이었거든요. 옛날에 사나운 멧돼지의 공격으로부터 아기 늑대를 지키기 위해 온힘을 다해 싸우다 그렇게 되었던 거였어요. 하지만 늑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기 머릿속에는 그런 기억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괜히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 오히려 엄마를 더욱 구박했죠. 거짓말쟁이라고, 늙었다고, 장애자라고 마구 소리를 쳐댔어요. 아무튼 그렇게 엄마를 원망하며 서너 걸음 더 갔을 때였어요. “아니, 이게 뭐야?” 무언가 코끝에 걸리는 게 있지 않겠어요. 늑대는 반가운 마음에 그것을 자세히 살펴 보았죠. “에게게!” 그것은 바로 방울새 알이었어요. 그나마 보통 것보다도 작아 겨우 엄지손톱만 했죠. 어디서 떨어진 것인가 하고 위를 올려다 보았어요. 나뭇가지에 빈 둥지가 거꾸로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지 뭐예요. “어미 새도 있을 텐데?” 늑대는 전에 엄마가 해주었던 통닭을 생각하며 마른 숲 속을 열심히 뒤졌어요. 하지만 어미 새는 없었어요. 하기는 어미 새가 있다 해도 잡을 수가 없었지요.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사냥방법을 몰랐거든요. 엄마가 그렇게 사냥 방법을 배워두라고 타일렀는데, 늑대는 콧방귀를 뀌며 성질만 부려댔었죠. “에이! 이거라도 먹어야지!” 그렇게 투덜거리며 늑대는 방울새 알을 앞발에 올려놓고 막 입에 털어 넣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동작을 뚝 멈췄어요. 그러고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아니야!” 중얼거리더니, 알을 잘 감싸 쥐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 다음 자기 굴로 어슬렁어슬렁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행여나 떨어뜨릴세라 걸음걸이도 조심조심 하면서 말이에요. 집으로 돌아온 늑대는 서둘러 마른 풀을 뜯어다가 바닥에 두툼하게 깔았어요.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그 위에 방울새 알을 올려 놓았어요. 그런 뒤 알 위에 살며시 엎드려 방울새 알을 품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예전에 찔레나무 둥지에서 딱새가 알을 품는 걸 본 적이 있었거든요. “요걸 지금 먹어봐야 간에 기별이나 가겠어?” 그러고 보니 늑대는 알을 부화시킨 다음에 잡아먹을 속셈이었지 뭐예요. 그런 나쁜 마음을 갖고서 외톨이 늑대는 방울새 알을 정성스레 품었어요. 배에 땀띠가 나고 허기가 져 어질증이 일어도 이를 악물고 참았죠. 곧 맛있는 방울새를 잡아먹을 생각을 하면서 말이에요. 배가 너무 고프면 썩은 나무뿌리를 씹으며, 심지어 흙을 핥아먹으면서 잠시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날짜가 지나갔어요. 그만 포기하고 후딱 집어삼킬까도 여러 번 생각했었죠. 그러나 그럴 때마다 자기 혀를 깨물며 배고픔을 달랬어요. 어느 날, 늑대는 너무도 피곤하고 배가 고파 깜박 잠이 들었어요.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알에서 “톡! 톡!”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그리고 알이 꿈틀거리는 것도 배에 느껴졌죠. 놀란 외톨이 늑대는 머리를 흔들어 잠을 털어내고 가만히 배를 들어 올렸어요. 그랬더니 알이 조금씩 깨어지며 새부리가 나오는 거지 뭐예요. 연필 끝처럼 조그맣고 뾰족한 부리였어요. 곧 아기 방울새가 머리를 내밀었어요. 그리고 다시 한참동안 안간힘을 쓰는가 싶더니, 드디어 깨어진 알 구멍을 비집고 힘겹게 밖으로 빠져나왔어요.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죠. 알에서 방금 나온 아기 방울새는 눈도 못 뜨고 몸에는 깃털도 하나 없는 게, 그야말로 작은 통닭과 똑같았어요. “고생을 한 보람이 있군!” 늑대는 방울새를 단숨에 삼키려고 입을 크게 벌렸어요. 그런 다음 서서히 아기 방울새에게 뾰족한 이빨이 가득한 입을 가져다 댔죠. 그러다 어찌된 일인지 또 동작을 뚝 멈추는 것이었어요. “아니야!” 한 입에 집어삼키기엔 아무래도 아직 너무 작은 것 같아, 얼마간 방울새를 더 키우기로 했던 거예요. “짹짹! 밥! 짹짹! 밥!” 알에서 나온 아기 방울새는 입을 찢어져라 벌리며 밥을 달라고 졸라댔어요. 매일매일 그게 노래였죠. 그러니 늑대는 방울새에게 먹일 벌레를 잡으러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방울새 먹이를 찾아 하루 종일 메마른 숲 속을 헤집고 다녀야 했죠.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처럼 뜨거운 숲 속을 말이에요. 그런데도 하루에 잡을 수 있는 먹이라고는 겨우 송충이나 쐐기 네다섯 마리가 고작이었어요. 늑대는 전혀 먹지도 않는 그런 벌레를 어렵게 잡아다가, 이빨로 질겅질겅 씹어서 아기 방울새에게 먹여야 했지요. 구역질이 나서 속이 여러 번 뒤집혔지만, 어쩌겠어요. 방울새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기다리려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참고 참으며 부지런히 날라다 먹였지요. 그러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방울새의 똥과 오줌을 받아내고 잠자리를 갈아주곤 했어요. 외톨이 늑대의 정성으로 아기 방울새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어요. 이제 제법 몸에 보들보들한 깃털도 나고 더듬더듬 말도 하게 되었지요. 물론 눈도 뜨고 말이에요. “엄마! 또 주세요! 또!” 아기 방울새는 맛있는 간식을 해달라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투정을 하며 늑대를 성가시게 했어요. 어느 정도 크자, 이제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댔어요. 외톨이 늑대는 커다란 나뭇잎을 들고 따라다니며 방울새에게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을 막아줘야 했지요. 그뿐인 줄 아세요?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대면 등에 업고 달래면서 계곡을 한 바퀴씩 돌아주어야만 했는걸요. 낮잠이라도 잘라치면 나뭇잎으로 부채질을 하며 모기나 파리를 쫓아야 했고요. 때에 맞춰 간식도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또 깃털도 골라주며 늘 신경을 써야 했어요. 방울새가 여름감기에 걸렸을 땐, 사흘 밤이나 꼬박 새워 간호까지 했는걸요 뭐. 그러느라 늑대는 점점 더 힘이 빠지고 야위어만 갔어요. 얼굴에 주름도 많이 잡혀 나이가 훨씬 더 들어보였죠. 그러던 어느 날, 늑대는 방울새에게 먹일 벌레를 잡으러 산등성 너머 멀리까지 나갔다 돌아왔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글쎄, 험상궂게 생긴 비단 구렁이가 집에서 아기 방울새를 물고 밖으로 나오고 있지 않겠어요. “엄마! 살려 주세요!” 방울새는 늑대를 보자마자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어요. 두 눈에서 왕방울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요. “아니? 저것이 내 아기를?” 놀란 외톨이 늑대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비단 구렁이에게 덤벼들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지요. 구렁이는 굵은 소나무 가지만 했거든요. 게다가 힘도 엄청나게 셌고요. 그래도 늑대는 열심히 싸웠어요. 갈비뼈가 부러지고 어깨가 찢겨져 피가 철철 흐르도록 말이에요. 앞발까지 다쳐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늑대는 머리로 구렁이의 가슴을 힘껏 들이받았어요. 그 바람에 구렁이는 입에 물고 있던 방울새를 놓치고, 대신 늑대를 칭칭 감아 버렸죠. “늑대고기를 또 먹게 되었군! 흐흐흐!” 비단 구렁이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놓고 두 눈을 번득이며 군침을 흘렸어요. 그러면서 풀숲에 떨어져 울고 있는 아기 방울새에게 소리쳤어요. “거기 꼼짝 마! 넌 이따가 입가심으로 먹겠다.” 그러잖아도 방울새는 온몸이 떨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 모습을 본 외톨이 늑대가 크게 외쳤어요. “아가야, 어서 도망 가! 어서!” 늑대가 계속 소리치자, 아기 방울새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풀숲으로 들어갔어요. 자꾸 뒤를 돌아다보면서 말이에요. 늑대는 뒤돌아보지 말고 어서 도망가라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멀리! 더 멀리! 이 엄마 걱정은 말고.” 그러면서 늑대는 비단 구렁이가 뒤쫓아 가지 못하도록 꼬리로 나무뿌리를 단단히 잡고 있었어요. 꼬리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놓지 않을 각오였죠. 어떻게든 아기 방울새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비단 구렁이는 천천히 늑대를 삼키기 시작했어요. 구렁이의 삼키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늑대의 꼬리가 고무줄처럼 늘어났어요. 그리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마저 가물가물해졌어요. 물론 숨도 막혔고요. “방울아! 엄마는 죽더라도 너는 살아남아야 돼. 사랑하는 내 아가야!” 외톨이 늑대는 이제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멀리 도망가라 외쳤지요. 몸은 점점 비단 구렁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얼마 후 아기 방울새가 멀리 도망가고 있는 모습을 구렁이의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보고 나서야 늑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때, 머릿속에 다리가 세 개뿐인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외톨이 늑대는 엄마의 주름 가득한 얼굴을 그리며 속으로 말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엄마가 자기를 키우느라 불편한 몸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 생각을 하며 외톨이 늑대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어요. 자기가 아기 방울새를 키우기 위해 쏟았던 정성보다 몇 배나 더한 정을 퍼부어 주었던 엄마가 너무나 고마웠어요. 반찬투정을 하며 밥그릇을 집어던지고, 늙었다고, 장애자라고 엄마를 구박한 일들도 기억 나 몹시 후회가 되었고요. 외톨이 늑대는 비단 구렁이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무어라고 한 마디 크게 소리쳤어요. 생전 처음 해본 그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늑대는 끝내 비단 구렁이의 뱃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요. 외톨이 늑대가 마지막으로 소리친 말이 무엇일까요? 대체 무슨 말이었기에 죽어가면서 그리 크게 외쳤던 것일까요? 그 말은 바로 “엄마, 사랑해요!” 라는 말이었어요.* ●작가의 말 전에 40대 초반의 한 아주머니가 11살짜리 아들을 혼자 키우며 어렵게 생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봉제공장에서 가져온 일감을 집에서 1차 가공하여 납품하는 일이었는데, 한쪽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짚고 다녔다. 그 아주머니의 아들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안하무인이며 이기심이 강하고, 제 엄마를 마치 자기 몸종 부리듯 하며 엄마의 사랑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아이는 엄마의 시중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알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엄마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심지어 놀리기까지 했다. 이 동화는 그 아이를 생각하며 몇 년 전에 써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희생적이고 고귀한 것인지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의 품이 얼마나 따뜻하고 고마운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약력 ▲1960년 충북 보은 출생. 강원대학교 졸업. ▲2000년 중편소설 ‘종이비행기’로 제2회 허균문학상 수상 (강원일보). ▲2008년 장편소설 ‘꼴찌들이 떴다’로 제2회 블루픽션상 수상 (비룡소). ▲현재 춘천 소양강변에서 오로지 소설 창작에만 전념하며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음.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부신 외출/김선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부신 외출/김선태

    눈부신 외출/김선태 봄날엔 늙은 고목도 새옷을 꺼내 입는가 가지가 잘린 채 넘어져 그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수백년 묵은 나무의 몸통에서 연두색 새순들이 돋는 것을 보면 예쁘고 기특해 미치겠다 어린 손자가 늙수그레한 할머니 품에 안겨 좋아라 파릇파릇 재롱을 떠는 것 같다 아니면 그 옛날 칼바람에 억울하게 멸문지화 당한 어느 뼈대 있는 집안의 숨은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가만 보니 검버섯이 핀 옹이에는 이끼류며 족보가 다른 풀씨들도 날아와 초록 무성하게 터를 잡았다 봄에는 고색창연한 나무도 젊은 나무들에 뒤질세라 눈부신 외출을 한다
  • 우리가 몰랐던 이상

    우리가 몰랐던 이상

    ‘인자(人者)의 도리를 못 밟는 이 형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정보다도 하여야 할 일이 있다. 아무쪼록 늙으신 어머님 아버님을 너의 정성으로 위로하여 드려라. 내 자세한 글, 너에게만은 부디 들려주고 싶은 자세한 말은 2, 3일 내로 다시 쓰겠다.’(1937년 2월8일 동생 김운경에게 보낸 마지막 엽서) 2, 3일 내로 다시 쓰겠다던 엽서를 쓰지 못하고 작가 이상(李箱·본명 김해경·1910~1937)은 그해 4월에 세상을 떠났다. 28세, 요절이었다. 그가 일본 도쿄에서 우울한 한 생을 마감할 때,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회자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단편소설·장편소설·수필로 분류 수많은 문청들을 병들게 했던 ‘문제적 작가’ 이상,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전집이 이번에는 철저히 원본을 되살려 출간됐다. 서울대 국어국어국문학과 권영민 교수가 엮은 이번 전집(뿔 펴냄)은 발표 당시 원문과 현대어 본, 작품 해설, 각주 등 이상의 문학을 오롯이 살려내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기존 나온 전집들과 차별을 뒀다. 총 4권으로 구성된 전집은 이상의 작품을 시, 단편소설, 장편소설, 수필 등 네 개 장르로 나눠 담았다. 지면 발표작은 물론 유고와 습작, 일본어 작품까지 그간 발굴한 모든 작품을 엮었다. 일부 작품은 장르 분류도 새롭게 했다. 장르 정체성이 모호했던 작품 ‘최저낙원’, ‘실낙원’, ‘공포의 기록’ 등을 권 교수는 자기체험적 성격에 주목, 모두 수필로 분류했다. 창작노트에 완성되지 못한 글들은 장르를 분류하지 않고 그저 ‘발굴자료’로 묶어 4권에 실었다. 권 교수는 이번에 특히 기존의 오역이나 오독을 바로잡고자 애썼다. 예를 들어 시 ‘且8씨의 出發’은 ‘且’와 ‘8’이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는 해석으로 지금까지 에로티시즘 시로 읽혔으나, 권 교수는 이것이 이상의 절친한 친구 구본웅을 두고 쓴 시라고 했다. ‘8’을 한자로 쓰면 ‘八’인데 ‘且’와 ‘八’을 붙여 쓰면 구본웅의 성씨인 ‘具’가 된다는 설명이다. 또 초기 일본어 시 같은 경우도 일본을 수차례 오가며 니카타대학 후지이시 다카요 교수의 도움을 얻어 틀린 해석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일반인 이해 돕는 주석만 2600개 책은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이상을 이해시키고자 한 노력이 돋보인다. 1권 시 작품의 주석 998개를 포함해 전집에 실린 주석 숫자만도 2600여개다. 그간 연구사를 검토, 작품의 해설은 물론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작품해설’도 볼 만하다. 권 교수는 “이상의 문학은 ‘밀실’처럼 닫혀 있는 것으로 보이면서도 언제나 그 자체의 지향을 보여주는 ‘지도’처럼 존재할 뿐”이라면서 “책이 이상 작품의 정본 확립과 새 해석 및 평가의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전집과 함께 이상 연구서인 ‘이상 텍스트 연구-이상을 다시 묻다’도 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당일치기 여주·이천 봄나들이

    당일치기 여주·이천 봄나들이

    봄나들이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벚꽃을 보려면 진해나 하동 쌍계사, 산수유는 구례, 만발한 매화는 광양에서 보고, 진달래는 또 어디, 어디… 이런 식이다. 물론 그곳이 진짜배기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면 그곳들은 너무도 멀다. 돈과 시간의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저 입맛만 다시며 신문 기사, TV 소개 프로그램으로 만족하기에는 화창한 봄날의 유혹이 크다. 봄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넉넉히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봄나들이의 ‘종합선물세트’인 경기 이천과 여주를 권한다. 그저 딱 하루만 투자해도 막 떠나가려는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바라바리 보따리 쌀 일도 없다.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 훌쩍 떠나자. 온갖 꽃길에 예쁜 사찰, 역사 공부, 맛난 먹을거리, 뜨끈한 온천, 명품아웃렛쇼핑몰 등이 두루두루 갖춰져 있다. 게다가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24일까지 여주와 이천 그리고 광주에선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린다. ●오전 7:30 이른 아침 챙겨 먹고 차 밀리기 전에 나섰다. 첫 행선지는 이천. 설봉산을 중심으로 한 설봉공원에 꽃길, 등산로, 미술관 등이 모여 있다. 3번 국도를 이용해도 좋지만 막히지 않는 시간이니 중부고속도로가 수월하다. 서이천 나들목에서 빠지니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천 설봉공원은 여주, 광주와 함께 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394m의 야트막한 설봉산의 등산로(사실은 산책로에 가깝다)를 타고 설봉서원 지나 김유신 장군이 세운 성곽인 설봉산성을 거쳐 희망봉 정상에 오른 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영월암을 둘러 왔는데도 1시간30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아이들이 칭얼대며 힘들어한다면 설봉서원에서 구암약수터로 내려오는 40~50분 코스의 완만한 산책로도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벚꽃과 개나리, 철쭉이 무리를 지어 호젓하게 맞이해 준다. 설봉공원 주변의 벚꽃만 5000그루. 4월 말까지 절정을 이룬다. ●오전 10:20 산수유 축제는 지난 5일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사면 도립리 산수유마을로 갔지만 역시나 꽃잎은 모두 떨어지고 없었다. 가지 끝에 삐죽거리며 매달려 있는 연노랑 수술들이 여운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여주로 향한다. ●오전 11:30 여주 하면 신륵사다. 도자가 공원 바로 곁에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강을 접하고 있는 사찰이다. 강월헌에서 내려다보면 흐르는 듯 멈춘 듯 남한강이 유유히 신륵사를 끼고 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쌀밥집이 읍내 곳곳에 즐비하다. 물론 ‘쌀밥’이 특별한 시대는 지났다. 라면집에 가도 말아 먹으라고 주는 것이 쌀밥이니 말이다. 그러니 쌀밥 정식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은 ‘여주쌀’로 이름을 날리던 바로 그 여주다. 친환경농법으로 지은 ‘대왕님표 여주쌀’로 돌솥에 갓 지은 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또한 고사리, 미나리, 시금치, 콩나물, 조기, 꽃게장, 불고기, 삼합 등 갖은 반찬 중 어디다 젓가락을 대야할지 고민스럽다. 쌀밥 정식은 1인분에 1만 5000원이다. 제법 비싸지만 여주에 왔으면 꼭 한번은 먹어 줘야 한다. 여주군에서는 ‘여주쌀밥집’(031-884-3578) 등 8곳의 공식 쌀밥집을 지정해 놓았다. ●오후 1:20 다시 신륵사다. 배도 부르니 차분하게 둘러볼 수 있다. 고은은 ‘만인보’에 실은 시 ‘미륵세상’에서 ‘…이런 흉흉한 땅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미륵이 왔다/ 미륵이야말로/ 새 세상을 가져온다…칠성이야말로/ 용왕이야말로/ 다 미륵의 화신이었다’고 노래했다. 여주의 미륵은 나옹 선사다. 신륵사는 무학 대사의 스승인 나옹 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해진 절이다. 남한강변에 위치해 늘 범람의 위험에 노출된 신륵사에서 ‘용마(수마)’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나옹 선사는 여주 땅에서는 미륵과 같은 존재로 통한다. 여주 사람들이 최고의 경관으로 꼽는, 아침 일찍 만나는 남한강 물안개와 일출은 꼭두새벽길을 달려오거나 신륵사에서 템플스테이(3만원)를 해야 만날 수 있는 행운이다. 신륵사의 또 하나의 정취는 그 옛날 도자기를 싣고 한강을 오가는 교역의 중심 수단이었던, 황포돛배를 타고 남한강 바람을 맞아보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모터를 달고 있고, 수심도 낮아져 신륵사 앞쪽을 왔다갔다 하는 데 그치고 만다. 30분 남짓 타는 데 5000원이다. 신륵사 쪽만이 아니라 강 맞은편 강변유원지 쪽에서도 황포돛배를 탈 수 있다. 강변에 접한 신륵사의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가람 배치 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대운하가 만들어질 경우 신륵사의 풍광이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니 앞으로 부지런히 와볼 일이다 싶다. ●오후 4:40 이제 역사수업 시간이다. 신륵사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명성황후 생가가 나온다. 명성황후가 8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이광수 관리소장은 “여주는 조선 왕비를 8명이나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소개했다. 기념관에서 명성황후의 생애를 담은 각종 자료와 유품을 볼 수 있다. 여주쌀을 ‘대왕님표’로 브랜드화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세종의 능이다. 명성황후 생가에서 20분 정도 달리면 세종대왕릉(영릉)이 있다. 들어서는 길에 개나리가 양쪽에 멋지게 도열해 있고, 효종대왕릉(영릉)으로 가는 사잇길에는 진달래꽃이 감격스러울 만큼 흐드러졌다.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 혼천의 등 여러 발명품의 모형들이 전시돼 있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공부가 된다. ●오후 6:00 여기 저기 헤매다 보니 속절없이 배가 다시 고파온다. 천서리막국수촌으로 가면 그 옛날 황포돛배를 타고 가다가 막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우던 뗏목지기들의 신산함을 만날 수 있다. 강계봉진막국수(031-882-8300)와 시원막국수(031-883-3824) 등 100% 순메밀을 자랑하는 막국수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후 7:20 아무리 주말의 하루지만 그냥 서울로 들어가기는 아쉽다. 이천 테르메덴(031-645-2000)이나 광주 퇴촌 스파그린랜드(031-760-5700)에 들러 노천탕에 몸을 담근 채 밤하늘의 별을 세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당일치기 봄나들이는 완성이다. 여주·이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릴레이 톡톡] 윤정수 “저 올해 안에 반드시 결혼합니다”②

    [릴레이 톡톡] 윤정수 “저 올해 안에 반드시 결혼합니다”②

    (윤정수 릴레이톡톡①에 이어)“저 올해 안에 반드시 결혼합니다.”결혼 적령기에 있는(아직 넘기지 않았다는 본인 의견에 따라) 윤정수에게 결혼계획을 묻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날아온 대답이었다.-지금 만나는 분이 계신가 봐요일단 그게 제 바람이에요.(웃음) 삶은 현실이에요. 내일 당장이라도 맞춰지면 결혼하는 거죠. 저도 그래요. 조건이 맞는다면 만난 지 3개월 안에 결혼할 수 있어요. 조건이라는 게 다른 것 보다 어른들과의 조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언제쯤 결혼할 것 같은지여자와 결혼은 타이밍이죠. 여자와 헤어지는 이유는 돈, 성격, 바람 등등 많겠지만 일단 제 생각은 그래요. 아무리 사랑을 해도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는 건 타이밍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그랬어요. 그래서 저와 결혼하실 분도 타이밍에 맞춰서 나타나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딱 타이밍인데 아무도 안계시네요.(웃음)- 최근 개그맨 선배들의 컴백이 이어지고 있어요 최양락 선배님이 컴백하신 거 정말 좋아요. 하지만 상처 받으실까봐 걱정도 되네요. 선배님이 굉장히 세심하시거든요. 최양락 선배님이 미니홈피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 자체가 대중의 의견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말이 나와서 얘긴데 미니홈피는 상호간의 대화형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게 다잖아요. 이미 말은 다 뱉은 상태고 상처받는 사람들은 생겨나고. 참 문제죠.- 연예인으로 살면서 힘든 적이 많았나봐요동료들과 연예인은 늘 4천만개 CCTV 아래 살고 있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아요. 물론 연예인을 욕 먹이는 일부 미성숙한 연예인들이 있죠. 그래서 다른 연예인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어요. 공인으로 사는 게 힘드네요. 연예인이 ‘특권직업’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특수직업’인 건 사실이에요. 솔직히 특수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보호해주고 대우해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솔직히 저는 연예인으로 멋지게 남고 싶어요. 그렇다고 저 혼자서만 방송 욕심을 내겠다는 건 아니죠. 후배들이 자랄 때는 자리를 비워줄 수 있는 게 선배의 역할이고 또 그래야 후배들도 양성이 되죠. 시청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스타와 프로그램을 원하시잖아요. 그건 자연스런 현상이고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릴레이 톡톡) 다음 주자를 선정해주세요직접 해야 할 일을 저한테 미루시는 거 아녜요?(웃음) 저랑 같이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이)윤석이를 추천할게요. 윤석이는 똑똑하니까 말도 조리 있게 잘 할 테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나올 이야기도 많고.(웃음)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코 후비다 딱 걸렸네”…할리우드 스타, 민망한 ‘순간포착’

    “코 후비다 딱 걸렸네”…할리우드 스타, 민망한 ‘순간포착’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게 스타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기에 때론 웃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코를 후비는 장면이다. 시선을 피해 남몰래 행동했지만 수많은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딱 걸려’ 굴욕을 당하곤 한다. 특히 할리우드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많은 파파라치가 집중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무심코 코를 후비는 모습이 포착된 스타는 누가 있을까? 섹시 스타부터 미남 배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해외 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스타의 코 후비는 모습을 살펴봤다. ◆ 제니퍼 로페즈 섹시스타 제니퍼 로페즈는 몇 해전 눈이 오는 거리에서 코를 파는 모습이 포착돼 곤욕을 치렀다. 당시 로페즈는 누가 볼새라 고개를 푹 숙이고 몰래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 모습은 여과없이 포착됐고 굴욕의 순간으로 남았다. ◆ 린제이 로한 린제이 로한도 마찬가지다. 평소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그녀는 도도함이 매력. 하지만 당당하게 코를 후비는 장면은 비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고개를 들고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코에 넣은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 브래드 피트 남자 스타라고 예외는 아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 브래드 피트도 코 후비기 굴욕을 당했다. 한 공식석상에서 코 안으로 손을 지나치게 넣은 모습이 여지없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들려올린 피트의 코는 얼굴을 망가뜨렸다. ◆ 데이비드 베컴 추구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코를 후비는 장면이 포착돼 망신을 당했다. 캄캄한 실내라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베컴은 자연스럽게 코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한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담겼고 그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 수리 크루즈 코를 후비다 굴욕을 당해도 귀엽기만 한 스타도 있다. 바로 할리우드 수퍼 키드 수리 크루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리는 지난해 뉴욕 나들이 도중 손가락으로 코를 후볐다. 어린 아이라 자연스럽게 한 행동이다. 굴욕적이긴 했지만 그 모습마저 귀여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안보리 對北 의장성명] “수척해진 장군님” 노동신문 언급 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 “수척해진 장군님의 모습”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이나 외양 등을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북한 언론매체들이 최근 수척해진 김 위원장의 사진과 왼손과 왼발이 약간 불편한 김 위원장의 동영상을 잇따라 공개한 데 이은 것이다.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지난달 22일 체제 선전을 총괄하는 노동당 선전선동부장에 임명된 최익규 전 문화상의 새로운 선전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14일 북한 온라인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노동신문은 지난 12일 ‘불씨를 귀중히 여기자.’라는 제목의 장문의 정론에서 김 위원장이 지난 7일 평양 삼일포특산물공장을 시찰했을 때 “수척해진 어버이 장군님의 모습을 뵈옵고 너무도 가슴아파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었던 그들이였다. ”고 기술했다. 북한 매체들은 그동안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에 대해선 ‘건강과 안녕을 염원한다.’거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불철주야로 헌신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잠시라도 편히 쉬시기를 간절히 바라며’와 같은 표현을 주로 사용해 왔다. 북한 당국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를 통한 ‘김정일 3기 출범’을 전후해 김 위원장의 움직이는 모습을 공개, 그의 건재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충성을 독려하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최고인민회의 회의장 입장 때 왼쪽 다리를 가볍게 절긴 했으나 10보가량 걸어 등장하고 양팔을 들어 박수를 침으로써 병상에서 일어난 후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이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올 상반기 김 위원장의 현시시찰 횟수가 많았다는 점에서 수척해진 장군님과 같은 표현이 북한 언론매체에서 거론되는 것은 주민들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몸이 수척해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부각시켜 내부 선전용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앞서 북한 매체들은 지난 2월25일 함북 회령 방문 당시에도 지역 주민이 ‘장군님 몸도 불편하신데 오시게 해 미안하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이 ‘괜찮다. 내 병은 내가 더 잘 안다. 인민들과 지내면 다 낫는다.’고 말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김 위원장이 아픈걸 숨기는 것보다 조금씩 드러내면서 동정심을 유발, 이를 내부 선전용으로 활용하는 전략은 지난 3월 임명된 최익규 선전부장의 새로운 선동 수법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프로농구] 하승진만의 40분 아무도 못 막았다

    “하승진 때문에 졌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동부 전창진 감독), “하승진이 너무 잘 해줘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KCC 허재 감독) 14일 전주체육관.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 4차전이 끝난 뒤 공식 인터뷰에서 승장과 패장은 딱 한 명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승진(24·KCC·221㎝)의, 하승진에 의한, 하승진을 위한’ 40분이었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거인은 어느날 농구에 눈을 뜨더니 이제 코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진화가 완성되는 날, 얼마나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 준 한 판이었다. 전반은 40-37, KCC의 불안한 리드. 야금야금 따라붙은 동부는 3쿼터 종료 3분58초를 남기고 웬델 화이트(18점)의 3점포로 51-51,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일진일퇴의 공방.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3쿼터가 끝났을 때도 58-58,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했다. 4쿼터 중반 4000여 팬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전주체육관의 데시벨은 귀가 찢어질 듯 치솟았다. 하승진이 신들린 듯한 공격 리바운드를 걷어내며 골밑슛으로 잇따라 8점을 올려놓은 것. 종료 2분32초를 남기고 KCC가 70-65로 달아났다. 동부도 크리스 다니엘스(19점)의 3점포로 추격했다. 하지만 야수처럼 골밑을 휘젓는 하승진을 막을 순 없었다. 김주성(12점 5리바운드)의 ‘플래그런트 파울(비신사적인 반칙)’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킨 데 이어 훅슛으로 2점을 보탰다. 연속 12점을 몰아친 하승진 덕에 종료 1분25초 전 스코어는 76-68. 사실상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승부처인 4쿼터에만 12점 8리바운드로 쓸어담은 하승진(30점 12리바운드)을 앞세워 KCC가 4강 PO 4차전에서 82-75로 승리, 벼랑 끝에서 탈출했다. 하승진이 올린 30점은 프로 데뷔 이후 최다(종전 23점). 시리즈 전적 2승2패가 된 두 팀은 16일 오후 7시 원주에서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 “고교 졸업 뒤 공식경기에서 처음 30점을 넘겼다.”는 하승진은 “형들이 쏜 슛이 모두 내 손에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그는 “삼성 안준호 감독님이 ‘수사불패(雖死不敗·죽을지언정 지진 않겠다.)’란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각오로 5차전에 임하겠다. 반드시 챔프전에 가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전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학업성취도 재점검] 답안지 65만장 분실… 사후관리 엉망

    [학업성취도 재점검] 답안지 65만장 분실… 사후관리 엉망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 재점검 결과 전체 대상점검의 31.7%인 1만 6402건의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없어진 답안지만도 전체 900만장 가운데 7.2%인 65만 장이었다. 시험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수치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점검 결과, 전체적으로 당초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허술한 시험 관리 책임에 대해서도 “책임자 누구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징계할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오류 유형과 건수를 보면 재적수와 응시자수 착오, 누락·이중 계산 등 집계 오류가 919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주관식 채점 결과 입력 오류가 3236건, 성취기준 분류 오류 1193건, 입력 누락 1075건 등의 순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프로그램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주관식채점 채점자마다 들쭉날쭉 일선 교사들은 실제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B중학교 박모(36) 교사는 “명백한 오류 외에 주관식 채점 같은 경우 애매한 사례가 많았다.”며 “채점자에 따라 점수가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A고등학교 이모(41) 교사도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 시험이라 진지한 자세로 시험을 보는 학생이 드물었다. 신뢰도 있는 시험으로는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답안지 65만장이 없어진 것에 대해 교과부는 “학생의 졸업, 교사 전보, 교실 변경, 학교 리모델링 공사 등에 따른 취급 소홀로 답안지가 유실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과부가 3년 동안 답안지를 보관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일반적으로 답안지는 일정기간 보관하는 것은 상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려 65만장의 답안지가 폐기됐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시험 성적 오류를 숨기기 위해 고의로 답안지를 폐기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아무도 단언할 수는 없지만 버린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잃어버린 경우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답안지 폐기 4개교육청 경고 교과부는 답안지 폐기와 관련해 서울, 대구, 대전, 전북 등 4개 시·도 교육청과 강남교육청 등 32개 지역교육청에 대해 기관경고를 내렸다. 충남, 전남, 경북 등 3개 시·도 교육청과 31개 지역교육청에는 기관주의를 했다. 허술한 성적 검증 현황은 명백해졌지만 책임 소재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교과부는 “고의성이 없는 경우 교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평가관리나 보고체계에 고의·중과실이 있으면 교육청 조사 후 상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실한 검증으로 성적조작의 원인을 제공한 교과부 책임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열린세상] 자유무역인가, 보호무역인가/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열린세상] 자유무역인가, 보호무역인가/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4 월 초 런던의 G20 정상회담을 보노라면 보호무역은 어느덧 만인이 반대하는 가히 범죄에 가까운 무엇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말할 것 없고, G20을 주재한 영국의 총리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까지 모두가 한목소리다. ‘보호무역주의’는 잘못된 것이고, 우리는 여기에 반대한다. 지구촌이 이렇게 같은 생각이면 무슨 문제가 생기겠나, 일순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한 꺼풀만 벗기면 예의 그 본모습이 드러난다. 최근 보기 드문 말의 성찬을 이룬 G20회담만 해도 그렇다. 서로들 경제 위기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 진정성이 어느 정도고 또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른다. 자유무역과 ‘천하에 몹쓸 놈’ 취급을 당하는 보호무역 사이만 해도 그렇다. 이 문제를 다루어 본 진지한 연구자라면 그 누구도 둘 사이에 서열을 매기거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때그때 누가 센가에 따라 그저 모른 척 따라갈 뿐이라는 것도 말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한국이 자유무역 덕에 성장했던가. 한국경제의 놀라운 고속성장이 수출에 기대어 가능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대외경제 정책이 자유무역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철저한 보호주의 아래 단지 자유무역에 기생하고 이를 이용해 먹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대한민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연하는 것도 참 낯 뜨거운 노릇이다. 미 국 컬럼비아대학의 J 바그와티 교수는 자유무역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작년 ‘통상 시스템의 흰개미떼’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여기서 자유무역과 세계화 열혈 지지자인 그는 FTA 곧 ‘자유무역’협정을 국제 자유무역을 갉아먹는 ‘흰개미떼’라고 힐난한다. 심지어 이를 국제통상 시스템의 ‘매독’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아니 자유무역협정이 자유무역의 ‘매독’이라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무역’이라는 말만 참칭하는 것이지, 모든 ‘자유무역’협정은 그 가입국이 아닌 제3국에 대한 차별대우를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것이기에 결국 그것은 가입국은 물론이고 세계경제에 해악을 미친다는 것이다. 바그와티 교수가 들이대는 또 다른 근거 역시 만만치 않다. 지적재산권 보호, 노동 및 환경조항과 같은 ‘무역과 무관한’ 조항들이 ‘무역관련(trade-related)’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WTO는 물론이고 최근의 모든 FTA에 포함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지재권이란 것이 사실 자유무역과는 무관한 로열티 수금에 불과하고 노동·환경 조항이 상대국의 수출단가를 올리기 위한 일종의 변형된 ‘수출 보호주의’라는 그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유럽에, 엄청난 규모의 만성적 지재권 적자국가인 우리가 FTA에 이 조항을 넣고도 ‘제도선진화’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 보호무역주의라 해도 과거처럼 그렇게 ‘무식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르몽드지 자매지인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대표적인 유럽의 진보적인 월간지다. 이 월간지가 마음먹고 지난 3월호를 보호무역주의 특집으로 꾸몄다. 4월의 G20을 겨냥한 것이다. 요지인즉 어차피 보호무역주의는 이제부터 대세다. 그러므로 유럽연합 공동의 수입관세를 부과해 이를 사회적 약자나 생태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다. 그리고 중국·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유래된 유럽 노동자들의 임금 디플레를 방어하기 위해서 일정한 보호가 불가피하고 또 그래야만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중적 구매력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결국 그렇다.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보호무역주의 논란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아마 최선의 방도는 자유무역 엄숙주의라기보다, 그 불가피성을 승인하는 지혜라 하겠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보호무역은 피할 수 없다. 그 이름이 무언가는 중요치 않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이런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무엇일까?” 그 답은 ‘보릿고개’입니다. 보릿고개가 어떤 고개일까요? 이 동화는 보릿고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 오고 꽃 피고 새 울어도 우리네 농군 박 서방은 웃을 줄 모르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저녁 연기 사라지고 찬물 켜고 문 닫아 걸고 초저녁잠만 자네 어히야, 어히야 태산보다 높은 이 보릿고개를 어히 넘어갈꺼나.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는 해마다 봄이 오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가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새봄이 오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올해도 가뭄이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한편으로는 양식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보릿고개. 바로 그 배고픔의 긴 고갯길이 닥쳐온 것입니다. 그해, 은행골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그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또래들로 그중 여러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린 농부가 되었습니다. 저마다 몸에 맞는 지게를 하나씩 맞췄습니다. 또래들은 농부가 되어 지게질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쇠꼴쯤은 한 짐씩 해 나르던 일이라 스스로 멜빵을 알맞게 줄이고 등받이를 두껍게 받쳐 편안하게 손질까지 해 두었습니다. 어린 농부들이 할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겨우내 재워 둔 두엄을 져 나르고 가까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나무하러 갈 때는 혼자 가지 않고 여럿이 함께 갔습니다. 하지만 나무 한 짐을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양식보다도 땔감이 먼저 떨어져 가까운 산에는 할 나무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어른들이 데려가 주지 않잖아.” “먼 산에 가면 좋은 솔가리가 무지하게 많다는데.” 또래들은 작은 나뭇짐을 받쳐 놓고 떠들고 있습니다. 먼 산! 그곳은 해마다 봄이 오면 어른 일꾼들이 나무를 하러 가는 산입니다. 가까운 산에는 아무리 뒤져도 솔가리 나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오리도 넘는 백마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나무꾼들은 새벽밥을 먹고 먼 산 나무를 떠납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꽁보리밥에 고추장 반찬을 싼 도시락을 지게뿔에 댕그라니 매달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길었습니다. 집집마다 솔가리 나무라도 해다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데려가 주지….” 마을 고갯길을 넘으면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저수지 둑을 지나 산길로 접어듭니다. 집집의 식구들은 저수지 둑까지 배웅을 나갔습니다. 나무꾼들이 가는 먼 백마산 봉우리는 그곳에서도 잘 보였습니다. 아침 안개에 싸여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백마산의 상상봉은 또래들의 꿈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것들이 숨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나무하러 갔다 와서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마산이 명산은 명산이지. 물 좋고 나무 흔하고, 오고 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 문제지 나무 한 짐 하는 건 순식간이지.” 나무꾼들은 매일같이 먼 산을 다녀오면서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떠난 나무꾼들은 석양 무렵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또래들은 저수지 둑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 나무꾼들 중 아버지 아니면 삼촌이나 형이 끼여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꾼들은 떠날 때처럼 나란히 행렬을 지어 왔습니다. 닭쌈이나 씨름을 하던 또래들 중 누군가 먼저 본 동무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온다, 저기 온다!” 또래들은 마치 장에 갔다 돌아오는 엄마를 반기듯 뛰어갑니다. 나무꾼들은 숨이 차 씩씩거리며 둑으로 올라섭니다.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나무꾼들의 그을린 얼굴이 놀빛 속에서 더 붉게 보였습니다. “쉼세.” 맨 앞의 나무꾼이 소리치자 뒤따르던 나무꾼들이 한쪽 편을 향해 나뭇짐을 받쳤습니다. 노을진 둑에 나뭇짐이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휙휙.” 나무꾼들은 휘파람을 불 듯 긴 숨을 토해 냈습니다. 또래들은 제각기 아버지, 삼촌, 형들의 나뭇짐을 찾기에 바쁩니다. “아부지!” 누군가 부르면, “오냐. 별일 없었지?” “야!” 하는 인사가 오고 갑니다. 또래들은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나뭇짐을 살핍니다. 멀고 먼 백마산에서 온 나뭇짐에는 선물이 한 아름 있었습니다. “옛다, 백마산에는 참꽃이 한창이다.” 참꽃으로 부르던 진달래 한아름. 커다란 꽃다발이 나뭇짐에 쿡 박혀 왔습니다. 또래들은 참꽃다발을 받는 순간 환성을 터뜨렸습니다. 먼 산에서 따 온 참꽃은 향기도 달랐습니다. 한 잎 한 잎 따서 입에 넣으면 달착지근한 것이 맛이 좋았습니다. 저수지 뒤 숲에서 꿩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먼 산 나무도 마지막입니다. 농부들의 발길은 먼 산이 아닌 밭이나 논으로 가야 됩니다. 바로 마지막 먼 산 나무 길에 오르던 날, 은행골의 또래들은 큰 나무꾼들을 따라 백마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농군이 되려면 백마산엘 다녀와야지.” 또래들은 새벽부터 법석을 떨었습니다. 낫과 갈퀴를 챙기고, 어머니에게 점심밥과 반찬을 꾹꾹 눌러 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날의 나무꾼 행렬은 더 길었습니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따라 나와 어린 나무꾼들의 먼 길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낸 나뭇길을 앞서 걸으며 웃고 떠들고 신이 났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발걸음도 흥겹게 노랫가락을 뽑았습니다. 백마산이 어디메뇨 새벽 어둠 찬바람에 길 떠나는 나무꾼아 어히야, 어히야 이 다리 다 휜다. 어린 나무꾼들에게 백마산은 정말 벅찬 산이었습니다. 시오리 길이라고 하지만 구불구불 오르막에 가파른 길은 삼십 리도 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또래들은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 갔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말로만 듣던 백마산. 어린 나무꾼들은 백마산에 다다르자 ‘아!’ 하는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몇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진 산 속은 대낮에도 동굴처럼 어두컴컴했습니다. 듣던 대로 솔가리가 지천이었습니다. 고운 솔가리를 갈퀴로 긁어모은 다음 단단하게 전을 쳤습니다. 한 차례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 새 알맞은 나뭇짐이 되었습니다. “자, 점심들 먹세.” 너른 양지쪽에 모여 앉아 점심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보리밥에 고추장, 된장 반찬이지만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어른들은 여기저기 양지바위에 누웠습니다. “계절은 왜 이리 좋을꼬. 꽃 피고 새 울고….” 나무꾼들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잠을 청했습니다. 어디선가 꿈결인 듯 깊은 산울림이 울려오고, 새들은 제 세상인 듯 재잘재잘 지저귀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계곡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계곡은 온통 참꽃밭이었습니다. 마치 불을 싸지른 듯이 붉디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또래들은 어질어질 꽃향기에 취하도록 뒹굴며 놀았습니다. 이윽고 한숨씩 자고 난 나무꾼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지름길로 처음부터 가팔랐습니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눈과 입 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나뭇짐 행렬은 점점 더뎌지고, 어린 나무꾼들의 나뭇짐에 찔러진 참꽃다발은 흐트러졌습니다. 쉬는 참이 몇 번이나 거듭되었습니다. 이제 지름길 중 가장 험한 고갯길을 넘으면 내리막길입니다. 좁은 길 한쪽은 깊은 낭떠러지였습니다. “힘들 내!” 중간 중간에서 어른 나무꾼들이 소리쳤습니다. “이 고개만 넘으면 힘든 길은 다 왔다.” 어린 나무꾼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먼 산 나무 길이 이렇게 힘든 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눈은 쓰리고, 입안은 짜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깻죽지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읍내 장날입니다. 오늘 한 솔가리 나무는 모두들 내일 장에 나가 팔아야 합니다. 그러니 자주 쉬면 나뭇짐이 흐트러져 모양이 나빠집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먼 산 나무를 다녀오는 것이 진짜 농사꾼이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른들은 근심 띤 얼굴에 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닥쳐온 보릿고개 때문입니다. 어린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겠다는 꿈은 아버지, 어머니의 그 근심 어린 얼굴을 조금이라도 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들은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모두 쉬었다 가세.” 길잡이가 쉴 곳을 정하고 소리쳤습니다. 여기저기서 지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엇, 조심해!” 누군가 급하게 소리치는 순간,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어린 나무꾼이 벼랑 쪽에 나뭇짐을 받치다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습니다. 어린 나무꾼은 나뭇짐과 함께 훌떡훌떡 재주를 넘듯 굴러 떨어졌습니다. “쟤 태수 아냐. 태수야, 태수야!” 나무꾼들이 목이 터지게 소리치며 아래로 내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태수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무꾼 태수는 그 고갯길 양지쪽에 고이 묻혔습니다. 그 후, 봄이 되면 그곳을 지나는 나무꾼들은 어린 나무꾼의 일을 되새기며 참꽃 꽃다발을 놓아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 태수의 조그만 묘지는 나무꾼들이 편히 쉬어 가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되면, 아버지는 그 시절의 어린 나무꾼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보릿고개가 얼마나 높았는지 마음 속으로 가만히 헤아려 보세요. ●작가의 말 ‘보릿고개’는 지난날,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시골 농가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때(4~5월)를 이르던 말이지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 시대에는 정말 가난하였습니다. 누구나 농가의 생산자가 되어 땀흘려 일하고 아꼈으며, 또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넘치는 풍요 속에서 무엇이든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성경의 말씀처럼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라는 노동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 할아버지들의 옛 삶에서 살아가는 정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약력 ▲1982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동화 ‘엄마 열목어’가 당선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펴낸 책으로 ‘꽃이 꾸는 나비꿈’, ‘눈물꽃’, ‘북치는 소년’, ‘옛날에 울아부지가’, ‘아리랑’, ‘도깨비 아부지’, ‘별이 된 오쟁이’ 외 여러 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 [깔깔깔]

    ●누구의 자식?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 녀석이 몹시 속을 썩이자 엄마가 아들을 불러 세워 혼을 냈다. “너, 왜 이렇게 엄마 속을 썩이니? 대체 누구 자식인데 이 모양이야!” 그러자 아들이 매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 “이럴 수가?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고 있다니….” ●야한 여자 방송국 근처 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하고 방송국으로 온 최불암은 갑자기 여자 탤런트들만 강당으로 모이라고 했다. 여자 탤런트들이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최불암이 나타나 강당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중에서 야한 여자 나와!” 여자 연예인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 후,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던 한 탤런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불암이 소리쳤다. “내 등 뒤에다 ‘야’하고 소리치고 도망간 사람이 너였어?”
  • 손담비 “생애 첫1위, 대성통곡했어요” (인터뷰)

    손담비 “생애 첫1위, 대성통곡했어요” (인터뷰)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가 살짝 잠겨 있었다. “저… 정말 대성통곡했어요.” 손담비가 생애 첫 1위 트로피를 안았다. 손담비는 지난 10일 생방송된 KBS 2TV ‘뮤직뱅크’ K-차트에서 타이틀곡 ‘토요일 밤에’로 단 2주 만에 정상에 우뚝 서는 놀라운 수확을 거뒀다. 지난해 ‘미쳤어’로 의자춤을 히트 시키며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그였기에, 올해 상반기 컴백에 대한 본인의 부담 및 책임감도 적지 않았을 터. 익히 ‘지독한 노력파’로 알려진 손담비는 “하루 16시간 이상을 연습실에서 매진했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공중파 가요방송 차트 1위. 2007년 6월 데뷔해 약 2년여 만에 이룬 쾌거였다. 연습은 값진 눈물로 돌아왔다. 대중들은 처음 그를 봤을 때 ‘여자 비’라는 애칭을 지어줬지만 2009년 현재 손담비를 ‘여자 비’로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수많은 패러디를 주도하며 ‘손담비’란 이름 석 자가 수식어가 된 이 여가수…. ‘우먼 파워’ 손담비가 ‘생애 가장 눈부셨던 그 날’을 털어놨다. [ 손담비와 나눈 일문일답 ] - 1위를 거머쥔 순간, 많은 눈물을 쏟았는데요. 눈물이 아니라 저 정말 대성통곡했어요.(웃음) 후에 방송을 보니까 너무 펑펑 운 거 있죠. 이 날을 위해서 힘들었던 나날들이 마치 슬라이드 사진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정말 조금이라도 예상했었다면 그렇게 울진 않았을텐데…. 깜짝 놀라서 그만 창피하게. 하하. - 지금은 실감이 되나요? 아니요, 아직도 잘 믿겨지지 않아요. 트로피를 보면서도 현실이 아닌 것 같고요. 주변에서 너무 많이 축하해주셔서 ‘내가 행복한 사람이구나’ 새삼 느끼면서 감동 받고 있어요. - 누가 가장 기뻐하시던가요? 가족들과 처음부터 함께 고생하셨던 소속사 스태프 여러분들이요. 데뷔 전후 약 5년간 저를 믿고 지탱해주신 분들이에요. 부모님도 너무 대견해 하시고요. - ‘미쳤어’가 잘돼서 어깨가 무거웠죠? 솔직히 부담감을 안고 앨범 작업을 시작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부담감을 책임감으로 바꾸고, ‘미쳤어’를 발판 삼아 멋지게 이뤄내겠다고 결심했죠. 또한 ‘정규 1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도록 지금껏 어느 앨범 보다 더 공을 들여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앨범이에요. 그래서 이번 결과에 대한 감회가 더욱 벅차고 새롭습니다. - 근 1년간 대형기획사가 아닌 가수가 1위를 차지한 이력이 없었는데요. 네, 그래서 더욱 값지고 소중히 생각합니다. 메이저 기획사가 아닌 다른 가수 분들께서도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1위’라고 하셨어요.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 축하 파티는 했나요? 방송 후 스텝 분들과 조촐하게 가졌고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 후요? 연습실로 향했어요.(웃음) - 23개월 만에 거둔 값진 1위, 앞으로 각오는? 데뷔 후 짧은 기간 내에 정상에 선 가수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내가 1위를 하면 다른 느낌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더욱 연습에 몰입했어요. 발톱이 빠지고 뼈가 어긋나고…그래도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분들이 있어 늘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됐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더 열심히, 변함없이 열정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사진 제공 =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전략적 한·미동맹의 현주소/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전략적 한·미동맹의 현주소/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1952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방한한 뒤 지난주 런던에서 열린 G20 세계금융정상회의까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만난 횟수는 50회 정도이다. 한국·미국에서건, 아니면 이번과 같이 제3국에서 만난 것이건 다 합한 것이다. 정상회동은 대부분 양국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이루어지거나 한국 대통령이 먼저 미국을 방문했다는 특징이 있다. 정상회동은 한국의 위상과 양국관계의 수준을 대변해 준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회의 의장 박정희는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를 만났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걸친 채 케네디가 묻지도 않은 베트남 파병을 제안했다. 5·16 이후 반 년도 지나기 전 이루어진 박 의장의 방미는 자신의 좌익 경력에 대한 의심을 씻고 쿠데타 성공을 보장받고자 서두른 것으로 풀이되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케네디에게 패배한 닉슨이 개인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동원 당시 외무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1968년 대통령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한 닉슨은 1969년 취임 뒤 열린 정상회동 참석차 방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측 환영 인사를 공항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닉슨은 제 별장에 박 대통령 일행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게 했다. 당연히 오찬도 만찬도 없었고 답방도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취임 1주일 만에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취임식 후 정상회동으로는 가장 빨랐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도 취임 첫 해인 1988년 10월에 미국을 찾아 레이건 대통령과 만났다. 같이 보수적인 정상 사이의 회동은 상대적으로 더 발빠르게 진행된 듯하다. 1993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반년 만에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켰다.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1998년 6월에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다시 2001년 3월 방미하여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이때 부시는 김 대통령을 ‘디스 맨’이라 불렀다. 한·미 사이에 대북 정책으로 인한 이견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5월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시를 만나러 방미했다. 역시 북한문제로 갈등관계에 있던 부시는 노 대통령을 ‘이지 맨’이라 칭했다. 이 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만약 53년 전에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구설에 시달렸다.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그해 4월부터 11월 사이 아주 짧은 기간에 임기 말인 부시 대통령을 무려 네 차례나 만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창조적 실용외교’라는 기치 아래 한·미동맹을 과거보다 발전된 전략적인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켰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2009년 1월에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시작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첫 정상회동이, 런던에서 일과 동반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실용이라면 실용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이 대통령과 부시 사이에 형성된 긴밀하고 애틋한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추구하던 전략적인 한·미동맹이 공허해졌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발표한 한국 정부가 무색하게 미국측은 미사일이 아니라 우주발사체 실험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을 서두르고 있는데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지명자는 현상태대로라면 한·미 FTA가 통과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아예 한·미 FTA에서 자동차 교역 문제가 핵심 이슈라며 재협상 요구를 분명히 했다. 목하 오바마는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무역관계를 재정비 중인데 이 대통령이 외국 유력신문에 대놓고 무역장벽을 쌓는 나라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동맹이 어떤 경로를 밟을지 지켜보게 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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