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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이달 28일 인류과학의 큰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올라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나면 파란 하늘이 아닌 까만 우주를 날아다녔던 ‘스페이스 셔틀’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81년 4월 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회. 거리는 8억 5000만㎞에 이른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의 탄생이 사기극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9년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 닉슨은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우주개발 계획을 탐탁지 않아 하며 항공우주국(나사)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나사는 한번 쏘면 재사용할 수 없는 로켓 대신 얼마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제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솔깃한 닉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사는 1주일에 1회, 연간 50회씩 비행이 가능하다고 닉슨을 속였다. 우주왕복선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한번 사용한 부품은 대부분 교체해야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한 돈은 1500억 달러(약 162조원)가 넘는다. 1986년에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에 역시 폭발하면서 미국과 과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호 주인공은 퇴역하는 우주왕복선 3대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은 ‘파인먼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 저서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조사위원회에 참여,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을 만난 파인먼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행을 했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인먼: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돼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틀랜티스를 제외하고는 이제 편히 쉴 일들만 남았네. 엔데버 자네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나 같은 물리학자가 왜 우주왕복선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엔데버:제가 1992년에 태어났으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습니다. 1986년 챌린저 형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조사위원회인 로저스위원회(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가 당시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원장의 이름을 따 위원회 이름을 부른다. 부위원장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었다)에 참여하셨죠? 그때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파인먼:사실 나한테도 우주왕복선은 TV로나 보던 존재였지. 그래서 처음에 나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사람(기네스 파인먼)이 “모두가 몰려다니면서 정치를 할 게 뻔한데, 제대로 조사를 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난 멍청하게 우쭐해서 그 말을 받아들였지. 디스커버리:그래도 사고 원인을 찾아내셨잖아요. 파인먼:글쎄. 세상에는 내가 챌린저가 발사되던 날의 기온이 크게 낮았고, 그 때문에 연료통의 틈새를 메우는 고무 O링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연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 문제를 처음 알아낸 것은 국방부의 커티나 장군이었어. 난 단지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지. 애틀랜티스: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얼음물을 달라고 해서 실제로 O링을 넣어 뒀다가 보여 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개회의였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파인먼:아무도 나한테 O링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장의 모형에 O링이 있었고 그걸 실험할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거든. 사실 조사 과정에서 나사와 관련 회사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부분을 감추려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챌린저 폭발의 원인이 단순히 O링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디스커버리:이제 뭐 다 지난 일이고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니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해주시죠. 파인먼:120일이 조금 넘는 조사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거기에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랑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지. 누군가 자기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 것이지. 무엇보다 우주왕복선은 사람이 만들고 탄 물건 중에 가장 위험했거든. 너희들은 실제로는 폭탄이나 다름없지. 우주왕복선의 설계상 사고 확률은 100~450회 비행당 1건으로 돼 있어. 군용기가 2만 2000회 비행당 1회, 민간 여객기가 100만건당 1회로 계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험도지. 그런데 나사는 이걸 민간 여객기와 같은 100만분의1이라고 발표했거든. 엔데버: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죠? 파인먼:“우주왕복선에는 사람이 타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야. 숫자 조작을 한 거지. 실제로 우주공간에서의 임무를 제외하고, 비행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착륙할 때 바퀴를 꺼내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 밖에도 부품들에 생기는 문제를 규정 변경을 통해 허용치로 바꾸거나 엔진 터빈에 생긴 균열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 가능으로 판정하기도 했어. 조사 과정에서 보니까 엔진, 부품, 연료 등 많은 부분에서 현장 기술자들이 발사를 반대했는데 윗선에서 묵살했더라고. 디스커버리:그런데 왜 무리해서 발사를 한 거죠? 파인먼:챌린저가 폭발한 1986년 1월 28일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 영화배우 출신답게 쇼를 좋아했던 레이건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챌린저호의 우주인과 교신을 하려고 했던 게 무리한 발사의 원인이었다고 봐야지. 특히 챌린저에는 일반인이었던 과학교사 매컬리프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극적 효과로는 최고였겠지. 챌린저가 얼마나 무리한 발사를 하는지 알고도 탔을 만큼 매컬리프 부인이 용감했는지는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야. 애틀랜티스:결국 그때 나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셨고, 실제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2003년에 큰형님인 컬럼비아호가 또 불행한 사고를 당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파인먼:그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주왕복선이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외부적으로는 발사 단계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면서 돌아올 때 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다고 하던데. 일각에서는 나사가 1990년대 후반에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면서 관리와 정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더구먼. 자, 사고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30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각자의 안식처(디스커버리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엔데버는 캘리포니아과학센터, 애틀랜티스는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지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각자 일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되돌아볼까? 디스커버리:전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1990년 4월에 우주로 올려놨죠. 사람들이 총천연색 우주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 5대가 기록한 우주비행 135회 중 39회가 제 차지였습니다. 애틀랜티스:저 역시 허블망원경의 수리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3년 2월 컬럼비아 형님이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돌아오다가 사라진 이후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이외에는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허블망원경을 계속 보게 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제가 다시 허블망원경으로 향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늘을 난 우주왕복선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달 말 비행으로 말이죠. 엔데버:하늘에 떠 있는 가장 큰 인공구조물인 ISS는 제가 주도한 작품입니다. ISS 내 우주인 투입이나 우주인들이 체류하는 데 필요한 물품 공급, 배터리 교체, 로봇 팔 설치 등이 모두 저를 통해 이뤄졌죠. 2007년에는 저를 타고 우주로 간 우주인들이 선생님이 돼 지구의 아이들에게 과학교실을 열기도 했죠. 이젠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됐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제 후배들이 태어난다면 이런 얘기들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형제들과 수백명의 우주인들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파인먼:우주를 날아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활주로에 착륙한다. 정말 공상과학 소설 같은 얘기를 현실에서 보여준 자네와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물론 보이저(1977년 발사된 나사의 행성 탐사선. 목성과 토성을 찍었고 현재 태양계 끝에 도달해 있다)처럼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자네들이 여기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위험한 비행을 하며 형님 둘(컬럼비아·챌린저)을 먼저 보내고 자네들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말일세. 우주왕복선이 이뤄낸 수많은 업적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홍보용으로 전락한 과학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말하겠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세.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바라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리처드 파인먼(1918.5.11~1988.2.15)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양자전기역학을 재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20세기의 거시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된다면, 미시 물리학은 파인먼의 영역. 금고털이와 드럼 연주,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형식과 권위를 거부했던 것으로 유명. ●도움말 주신 분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이학명 과학칼럼니스트 ●참고문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먼·김희봉/ 사이언스북스) 남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먼·홍승우/ 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채연석/ 해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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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1200명이나 되는 농노와 드넓은 소작지를 소유한 러시아 귀족의 아들. 황제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근위학교를 수석 졸업하고도 안락한 궁정 생활 대신 시베리아 장교 지원. 시베리아 지형 탐사를 통해 지리학자로 명성을 얻지만 ‘제국지리학회’ 사무관직 거절. 막대한 상속을 포기하고 혁명운동에 투신. 반체제 운동 주동자로 지목 돼 투옥. 2년 후 탈옥. 그리고 반세기 동안 이어지는 투옥과 추방.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귀국. 그러나 볼셰비키의 아나키즘 탄압. 심장질환과 폐렴으로 사망. 10월 혁명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장례식…. 이것이 아나키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의 간략한 프로필이다. 이 정도면 그를 소재로 드라마 한 편을 찍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고뇌에 찬 지식인의 자의식을 보여준 적도 없고 혁명 투사의 화약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크로포트킨의 삶에는 골방 대신 시베리아의 벌판과 눈 덮인 스위스의 산들이 있다. 값싼 봉투를 붙이며 격론을 벌이는 이론가가 있다. 그는 비밀경찰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유럽을 누비고 다녔다. 유산을 포기할 때도, 되풀이되는 추방과 고된 망명 생활에 관해서도 괴로움을 토로하는 법이 없다. ●지식인 운동가의 교만함이 혁명을 왜곡한다 크로포트킨은 솔직 담백했다. 그의 삶의 모든 것은 공공연하게 말해지고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공공연함’, 이것이야말로 크로포트킨이 혁명가로서 보여준 최고의 미덕이었다. 크로포트킨이 보기에 사회주의 지식인 운동가들은 공공연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농민이나 노동자들보다 더 안다는 교만함. 민중들은 무식해서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오만함. 그런 운동가들은 현실을 계산하고 전술을 찾았다.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침묵하고, 해야 할 일을 미뤘다. 심지어 전술을 위해 황제와 귀족 편에 서서 농민과 노동자의 봉기를 탄압하기도 했다. 지식인 운동가들의 계몽적 태도와 이로 인한 지도부와 민중 사이의 괴리. 이 사이에서 혁명은 왜곡되고 비밀주의로 물들었다. 크로포트킨은 이런 괴리를 거부한다. 현실이 어려운가? 그럼 공공연히 말하라. 그럼 답은 온다. 해야 하는가? 그럼 공공연히 하라. 그럼 된다. 이 간단한 원칙이 그의 삶 전부다. ●아나키스트, 생각한 대로 행동하라 1878년 경 유럽 전역에서 왕에 대한 암살이 네 차례나 시도되었다. 유럽 정부들은 이 음모의 주동자들을 스위스가 숨겨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스위스는 아나키즘 운동의 중심인 쥐라연합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쥐라연합의 많은 지도자들이 추방당하고 망명 생활에 오르게 됐다. 결국 기관지 편집 일이 크로포트킨에게 맡겨졌다. 이제 막 러시아 감옥에서 탈출한 망명자 크로포트킨,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듀마르트리, 제네바 출신의 내성적인 사나이 헤르치히. 이 세 사람은 1879년 제네바에서 ‘반란자’를 창간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인쇄소에 압력을 넣었다. “정부에서 일을 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반란자’를 인쇄해줄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매우 실망하고 제네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듀마르트리는 오히려 열정과 희망에 불타 있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3개월 동안 신용담보로 인쇄기를 사면 됩니다. 3개월이면 기계 값을 지불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돈이라곤 겨우 200~300프랑밖에 없지 않소?” 나는 반대했다. “돈이란 우스운 겁니다.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우선 기계를 주문해서 다음 호를 내면 돈이 모일 겁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우리는 기계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호를 우리의 ‘쥐라 인쇄소’에서 찍고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팸플릿을 발행했다. 우리 모두가 직접 인쇄했다. 과연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동전과 소액의 은화였지만 어쨌든 돈이 모였다.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이 없다. 이것이 크로포트킨이 좌절한 이유였다. 하지만 듀마르트리는 어땠는가. 그는 말한다. 활동을 해야 돈이 생긴다. 그러니 활동을 하자. ‘반란자’는 그렇게 21년간 발행되었다. ‘이론가’ 크로포트킨에게 ‘못 배운 노동자’들은 언제나 배움을 통해 삶의 길을 열어주는 동지였다. 어려움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과도한 비장함으로 포장할 뿐아니라 너무도 쉽게 좌절했다. 노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판단했으며, 꾸밈없고 단순하게 문제를 받아들였다. 혁명가를 자청하는 지식인들이 문제를 분석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문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갔다.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 사이에 어떠한 간극도 없음! 크로포트킨은 이 간극을 없애는 것이 혁명의 출발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길을 간다. 막대한 유산 상속, 위로부터의 개혁을 위한 관료로서의 삶, 학계의 권위 있는 지도자로서 얻게 될 명예와 힘.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린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가진 간극 없는 삶을 배우기 위해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의 삶부터 바꿔라! 이것이 그가 살아낸 아나키즘이었다. ●레닌에게 물었다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러시아 2월 혁명. 크로포트킨은 4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온다. 이어진 10월 혁명.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는 이 혁명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이어간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다. 그래도 호랑이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법. 레닌은 1919년 크로포트킨을 만난다. 레닌은 크로포트킨의 ‘프랑스혁명사’를 극찬하며, 이 책을 인쇄해 전국에 배포하고 싶다 말한다. 크로포트킨은 그 책을 정부인쇄소가 아닌 소비조합과 같은 곳에서 출판할 조건을 내건다. 레닌, “희망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우리는 전적으로 편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크로포트킨,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정부 말인가요?” 허를 찔린 레닌은 대답을 얼버무린다. 레닌은 여전히 혁명을 도달해야 할 무엇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혁명의 중간 단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크로포트킨의 생각은 달랐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상호부조·相互扶助)” 이것은 도달해야 할 이념이 아니라 자연 법칙이고,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일구는 현재적 조건이었다. 제도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 의도가 아무리 민주적일지라도 지배 기구는 모두 악”이다. 국가를 위시한 온갖 사회적 제도들은 만인을 노예 상태로 묶어 둔다. 레닌이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결국은 하나의 제도로 새로운 노예 상태를 만들어 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로 인해 가려진 인간 본성, 그 상호부조의 본성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혁명의 지점은 여기에 있었다. 혁명의 지도자든 농민이든 노동자든 바로 그 자신의 삶에서 이 본성을 찾아내고 구현해야 한다. 때문에 크로포트킨에게 노동자를 ‘위한’ 활동은 없다. 혁명은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구원의 주체와 대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크로포트킨은 직접 노동자가 ‘되는’ 활동을 했다. 그는 농민과 노동자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배운 만큼 글로 써 내려갔다. 배움을 실천하는 삶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실천. 이 과정을 통해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 사상의 이론가가 되었다. 크로포트킨이 최후에 쓰고자 했던 책은 ‘윤리학’이었다. 이것은 혁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크로포트킨의 질문은 ‘노동자들을 위한 세상이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 노동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만이 혁명가였다. 폭약 냄새와 무질서, 혹은 대규모 시위로 혁명을 떠올리는 우리들 앞에, 크로포트킨은 이런 혁명가의 초상으로 우뚝 서 있다.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주간기획W&W] 파인먼씨, 우주왕복선을 부탁해

    [주간기획W&W] 파인먼씨, 우주왕복선을 부탁해

     이달 28일 인류과학의 큰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올라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나면 파란 하늘이 아닌 까만 우주를 날아다녔던 ‘스페이스 셔틀’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81년 4월 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회. 거리는 8억 5000만㎞에 이른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의 탄생이 사기극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9년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 닉슨은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우주개발 계획을 탐탁지 않아 하며 항공우주국(나사)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나사는 한번 쏘면 재사용할 수 없는 로켓 대신 얼마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제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솔깃한 닉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사는 1주일에 1회, 연간 50회씩 비행이 가능하다고 닉슨을 속였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한번 사용한 부품은 대부분 교체해야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한 돈은 1500억 달러(약 162조원)가 넘는다. 1986년에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에 역시 폭발하면서 미국과 과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호 주인공은 퇴역하는 우주왕복선 3대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은 ‘파인먼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 저서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조사위원회에 참여,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을 만난 파인먼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행을 했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인먼  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돼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틀랜티스를 제외하고는 이제 편히 쉴 일들만 남았네. 엔데버 자네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나 같은 물리학자가 왜 우주왕복선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엔데버  제가 1992년에 태어났으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습니다. 1986년 챌린저 형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조사위원회인 로저스위원회(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가 당시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원장의 이름을 따 위원회 이름을 부른다. 부위원장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었다)에 참여하셨죠? 그때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파인먼  사실 나한테도 우주왕복선은 TV로나 보던 존재였지. 그래서 처음에 나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사람(기네스 파인먼)이 “모두가 몰려다니면서 정치를 할 게 뻔한데, 제대로 조사를 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난 멍청하게 우쭐해서 그 말을 받아들였지.    ▲디스커버리  그래도 사고 원인을 찾아내셨잖아요.    ▲파인먼  글쎄. 세상에는 내가 챌린저가 발사되던 날의 기온이 크게 낮았고, 그 때문에 연료통의 틈새를 메우는 고무 O링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연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 문제를 처음 알아낸 것은 국방부의 커티나 장군이었어. 난 단지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지.    ▲애틀랜티스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얼음물을 달라고 해서 실제로 O링을 넣어 뒀다가 보여 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개회의였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파인먼  아무도 나한테 O링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장의 모형에 O링이 있었고 그걸 실험할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거든. 사실 조사 과정에서 나사와 관련 회사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부분을 감추려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챌린저 폭발의 원인이 단순히 O링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디스커버리  이제 뭐 다 지난 일이고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니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해주시죠.    ▲파인먼  120일이 조금 넘는 조사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거기에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랑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지. 누군가 자기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 것이지. 무엇보다 우주왕복선은 사람이 만들고 탄 물건 중에 가장 위험했거든. 너희들은 실제로는 폭탄이나 다름없지. 우주왕복선의 설계상 사고 확률은 100~450회 비행당 1건으로 돼 있어. 군용기가 2만 2000회 비행당 1회, 민간 여객기가 100만건당 1회로 계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험도지. 그런데 나사는 이걸 민간 여객기와 같은 100만분의1이라고 발표했거든.    ▲엔데버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죠?    ▲파인먼  “우주왕복선에는 사람이 타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야. 숫자 조작을 한 거지. 실제로 우주공간에서의 임무를 제외하고, 비행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착륙할 때 바퀴를 꺼내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 밖에도 부품들에 생기는 문제를 규정 변경을 통해 허용치로 바꾸거나 엔진 터빈에 생긴 균열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 가능으로 판정하기도 했어. 조사 과정에서 보니까 엔진, 부품, 연료 등 많은 부분에서 현장 기술자들이 발사를 반대했는데 윗선에서 묵살했더라고.    ▲디스커버리  그런데 왜 무리해서 발사를 한 거죠?    ▲파인먼  챌린저가 폭발한 1986년 1월 28일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 영화배우 출신답게 쇼를 좋아했던 레이건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챌린저호의 우주인과 교신을 하려고 했던 게 무리한 발사의 원인이었다고 봐야지. 특히 챌린저에는 일반인이었던 과학교사 매컬리프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극적 효과로는 최고였겠지. 챌린저가 얼마나 무리한 발사를 하는지 알고도 탔을 만큼 매컬리프 부인이 용감했는지는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야.    ▲애틀랜티스  결국 그때 나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셨고, 실제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2003년에 큰형님인 컬럼비아호가 또 불행한 사고를 당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파인먼  그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주왕복선이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외부적으로는 발사 단계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면서 돌아올 때 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다고 하던데. 일각에서는 나사가 1990년대 후반에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면서 관리와 정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더구먼.  자, 사고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30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각자의 안식처(디스커버리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엔데버는 캘리포니아과학센터, 애틀랜티스는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지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각자 일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되돌아볼까?    ▲디스커버리  전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1990년 4월에 우주로 올려놨죠. 사람들이 총천연색 우주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 5대가 기록한 우주비행 135회 중 39회가 제 차지였습니다.    ▲애틀랜티스  저 역시 허블망원경의 수리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3년 2월 컬럼비아 형님이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돌아오다가 사라진 이후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이외에는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허블망원경을 계속 보게 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제가 다시 허블망원경으로 향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늘을 난 우주왕복선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달 말 비행으로 말이죠.    ▲엔데버  하늘에 떠 있는 가장 큰 인공구조물인 ISS는 제가 주도한 작품입니다. ISS 내 우주인 투입이나 우주인들이 체류하는 데 필요한 물품 공급, 배터리 교체, 로봇 팔 설치 등이 모두 저를 통해 이뤄졌죠. 2007년에는 저를 타고 우주로 간 우주인들이 선생님이 돼 지구의 아이들에게 과학교실을 열기도 했죠. 이젠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됐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제 후배들이 태어난다면 이런 얘기들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형제들과 수백명의 우주인들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파인먼  우주를 날아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활주로에 착륙한다. 정말 공상과학 소설 같은 얘기를 현실에서 보여준 자네와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물론 보이저(1977년 발사된 나사의 행성 탐사선. 목성과 토성을 찍었고 현재 태양계 끝에 도달해 있다)처럼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자네들이 여기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위험한 비행을 하며 형님 둘(컬럼비아·챌린저)을 먼저 보내고 자네들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말일세. 우주왕복선이 이뤄낸 수많은 업적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홍보용으로 전락한 과학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말하겠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세.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바라네.     도움말 주신 분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이학명 과학칼럼니스트   참고문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먼·김희봉/ 사이언스북스) 남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먼·홍승우/ 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채연석/ 해나무)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하다] (5)고승덕 한나라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하다] (5)고승덕 한나라당 의원

    나에게 정치는 50여년 인생의 결과물이자 새로운 10년의 출발점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지는 않았다. 그냥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고시 3관왕’에서 변호사, 방송인, 주식전문가를 거쳐 국회의원이 됐다. 열심히 노력하면 항상 10년 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정치도 열심히 할 것이고, 10년 후에 나에게 어떤 정치적 미래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요즘 강연 때마다 ‘A, B, C, D 공부법’을 강조한다. 핵심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의원도 ‘A, B, C, D’급으로 나눌 수 있다. D급은 득실을 따진 뒤 사람을 가려 만나고 조직 관리도 마지못해 한다. C급은 사람·조직 관리의 초점을 현상 유지에 맞춘다. B급은 주민 요구에 성의있게 반응하고,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 A급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주민을 찾고, 없던 조직도 새롭게 만든다. 나는 A급 의원이 되자고 매일 아침 다짐한다. 나의 경력만 본 사람들은 내가 부족함 없이 성장한 ‘엄친아’라고 오해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던 광주의 변두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왔을 때 처음 ‘전라도 하와이’라는 말을 들었다. 변방의 2류 국민이라는 뜻이다. 대학 시절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하와이라고 퇴짜도 맞았다. 아버지는 “나도 제주에서 광주로 유학가 ‘섬 놈’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면서 “너는 절대 지역으로 차별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의사였지만, 우리 집안은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에서 몇십년을 살았다. 사교육은 엄두도 못냈다. 고2 때 낙제 점수를 받아 대학에 못 간다는 말도 들었다. 혼자 공부해 서울대 법대에 갔다. 지금껏 출신 지역이나 집안 형편 때문에 이루지 못한 일은 없었다. ‘법조계 팔방미인’이라는 표현을 들으며 다방면에서 정신없이 활동했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았다. 2007년 나이 50이 되자 ‘나만을 위해 살다 죽으면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시간의 10%를 남을 위해 쓰는 ‘시간의 십일조’를 결심한 뒤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 즈음 정치할 기회도 주어졌다. 나에게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마음부터 읽어야 한다.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얘기를 들어야 한다. 나는 꿈이 있다. 더 많은 국민이 출신이나 배경과 상관 없이 더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능력도 많은데 왜 굳이 정치할 생각을 하게 됐나. -정치권의 변화를 느꼈다. ‘금권 정치’와 ‘보스 정치’가 사라진다고 판단했다. 나 같은 모범생도 정치판에서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1999년 서울 송파을 보궐선거 때(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가 장인인 박태준 자민련 총재 때문에 3일 만에 공천권 반납)도 같은 마음이었나. -경솔했다. 여야 모두로부터 콜을 받았던 탓이다. 오명이랄까, 굴욕이랄까.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아내의 한표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 →금권 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작 본인은 80억원대 자산가다. -경제적인 여유는 정치 활동에 도움이 된다. 정치를 하면서 세비 이상 쓰지만 남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된다. 윈칙과 소신을 지킬 수 있고, ‘후원자의 입김’에서도 자유롭다. 솔직히 후원금 한도를 다 채워도 늘 빠듯하다. 다른 의원들은 어떻게 정치하는지 궁금할 때도 많다. →패거리 정치를 지적하지만 친이계로 분류된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공천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줄서지 않았다. 나에게 정치적 보스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계파 모임에 소속감을 갖고 나간 적도 없다. →정치인으로서 행복한가.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 정치를 하기 전에는 동시에 8가지 일을 했다. 정치를 하면서 모두 다 내려 놓았다. 심신이 건강해졌고, 고질적인 디스크 증세도 사라졌다. 정치인으로서 행복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부탁받는 걸 피하면 안 된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즐긴다. →한나라당과는 잘 맞나. -이념을 들먹이는 것은 진부하다. 당이 지향하는 가치에 공감한다. 내가 첫손에 꼽는 가치는 자유이다. →장관이나 광역단체장은 관심 없나. -현행 시스템에서는 장관이 소신대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경력 쌓기용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서울시장 같은 자리는 해 보고 싶다. →정치는 언제까지. -10년 이상 안 한다. 10년 이상 하면 직업이 된다. 타성에 젖어 정치에 예속될 수 있다.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 마음껏 할 수 있다. 다만 시대 흐름이나 국민 정서에 맞으면 10년 이상도 할 수 있고, 반대라면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나겠다.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 리더십은. -‘당신은 스펙이 너무 좋아 문제’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나를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게 두렵다. 우리나라 국민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위화감을 싫어한다.’이다. 서민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원조 공신(공부의 신)’으로 통한다. 서민보다는 엘리트나 천재 아닌가. -아이큐(IQ) 126짜리 천재를 보았는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천재’와 ‘충성’이다. 평범한 머리를 극복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충성도 19세기에나 어울리는 단어다. 표현이 아닌 행동으로 확인하면 된다. →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정치는 레코드(기록)이다. 정책이든 언행이든 일관성이 중요하다. 예컨대 복지 확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정부 재정이 버텨줄지 몰라도 5~10년 뒤 재정 파탄의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5~10년 뒤 말을 바꾸고 싶지 않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내 정치를 말한다’ 페이스북 facebook.com/mypolitics ●고승덕 의원은 ▲1957년 광주 출생 ▲서울 경기고·서울대 법대(수석 졸업) ▲사법시험(최연소)·외무고시(차석)·행정고시(수석) 합격 ▲미국 예일·하버드·컬럼비아대 로스쿨 석·박사 ▲사단법인 ‘드림파머스’ 대표 ▲부부 애칭:팬더(느긋하게 살자는 의미) ▲취미:아내와 장보기(부부 소통 및 세상 엿보기) ▲좋아하는 운동:개헤엄(건강관리에 효과 만점) 좋아하는 가수·노래:김장훈 사노라면(탁 트인 목소리가 매력. 콘서트 갈 정도) ▲애장품:앉은뱅이 책상(1964년 아버지의 초교 입학선물) ▲가장 자랑스러운 스펙:로스쿨 3관왕(정치인 예비코스) ▲롤모델 정치인:오바마 미국 대통령(핸디캡 극복 및 이익단체 영향 차단), 김성태(발로 뛰는 정치인) ▲좌우명: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 금감원 직원 87% 취업 제한… 공직 풍토 대변화 예고

    금감원 직원 87% 취업 제한… 공직 풍토 대변화 예고

    전관예우 근절방안에 대해 공직 사회는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이다. 이번 근절방안의 주요 목표가 되는 경제 부처는 좌불안석이다. 공무원 사회에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일 한 경제 부처 차관은 “퇴직하고 1년은 무조건 쉬라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경제 부처는 민간 기업의 이해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퇴직 전 1년간 근무한 기관의 업무 중 민간 기업의 이해 관계에 영향을 주는 업무는 퇴직 후 1년간 취급 금지’라는 ‘1+1’ 제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취업심사 대상에 매출액이 큰 법무법인(로펌)도 포함됨에 따라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진 셈이다. ●공공기관 재취업 경쟁 심화 단, 공공기관은 예외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이나 산하 단체 기관장이나 고위직을 두고 퇴직 예정 고위 공무원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둔 한 공기업 사장은 “요즘은 퇴직 공무원에 비해 산하 기관장 자리가 부족해 나도 1급으로 퇴직한 뒤 반년가량을 아무 일도 없이 놀았다.”고 전했다. 가장 타격이 큰 곳은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다. 금융감독원은 산하 기관이 없고 공정위는 2008년 출범한 공정거래조정원이 유일하다. 퇴직 고위 공무원이 주로 로펌에 재취업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경쟁법 관련 로펌의 수요는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항변한다. 공정위 한 과장은 “‘강등해서 (취업심사를 받지 않는) 5급 이하로 내려가는 방법은 없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업무 관련성 적용 기간이 퇴직 전 3년간 소속 부서일 때도 공정위는 민간 기업 취업이 어려웠다. 이번 조치로 적용기간이 퇴직 전 5년간으로 확대됨에 따라 4급 이상으로 퇴직 시 민간 기업의 취업은 사실상 봉쇄된다. 금감원은 이번 조치로 취업 심사 대상자가 2급 이상에서 4급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10명 중 9명꼴로 취업이 제한되는 철퇴를 맞았다. 임원을 제외한 금감원 전체 인력 1605명 중 4급 이상은 1398명으로 87%다. 금감원에 5급 조사역으로 입사한 뒤 보통 5년 동안 3개 정도 부서를 거치면 4급 선임 조사역이 된다. 즉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진 뒤 퇴직하면 모두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금감원 4급 선임조사역은 “일부의 잘못으로 금감원 전체가 제약을 받는 셈”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금감원에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반면 국장급 간부는 “지금 상황에서는 유구무언”이라며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반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공무원이 직무상 다뤘던 민간 기업에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라며 “민간 기업에 대한 인허가권이나 재정 보전 등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5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가지 않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우수한 민간인 영입 어려울 듯” 정부 부처에서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을 공개채용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 취업 제한이었다. 국장급으로 근무하고 나면 취업 심사 대상이 돼 원래 업무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부처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공개 채용을 하면 지원자는 있겠지만 우수한 인력은 더욱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감원도 변호사는 4급 이상, 회계사는 경력에 따라 4급 또는 5급 이상으로 경력 채용한다. 이번 조치가 확정되면 경력직으로 채용되는 변호사나 회계사들은 로펌에 재취업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이번 조치에 수긍하면서도 공무원들은 제도적 뒷받침을 주문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전관예우가 공무원들에게 박봉에도 끝까지 버티게 하는 유인책”이라며 “경력 20년이면 민간과 연봉 차이가 5배까지 나는데 누가 공무원을 하려고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유일한 보루는 대학? 로펌 관계자는 “로펌에서는 공직자들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높이 사는 것뿐”이라며 “공직자 출신들이 퇴직 전에 담당했던 업무에 대해 취급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취업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로펌 관계자는 “공직자 출신 고문이나 전문 위원이 없으면 법률 자문의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로펌 취업제한조치에 대한 과태료가 1000만원 이하로 책정되는 등 실효성이 어느 정도 있을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실효성에 대해서는 교수들도 문제를 제기한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관예우를 금지하려면 지금보다도 더 페널티 조항을 강화해야 실효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강력한 제한 규정 신설과 함께 공직자의 전반적인 도덕성 수준이나 책임도 동시에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위 공직자의 강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박흥식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학 입장에서 이론과 실무 사회 경험이 적절히 조화되고 학생 교육으로 이어진다면 반대할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이용관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재능기부 형태로 학생들을 위해 공직 시절 전문성과 재능을 가진 분들이 교단에서 활동한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전경하기자·부처 종합 lark3@seoul.co.kr
  • [서울광장] 2011년 7월 6일 웃어라! 평창/오병남 논설실장

    [서울광장] 2011년 7월 6일 웃어라! 평창/오병남 논설실장

    삼세판이란 말이 있다. 한두 번 실패한 일이 세 번째는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담긴 말이다. 평창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꿈이 딱 그런 상황이다. 평창은 한달여 뒤인 다음 달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통산 세 번째로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한다. 2010·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잇따라 1차 투표 1위를 차지하고도 거푸 역전패의 쓴잔을 든 평창은 이번만은 반드시 승리를 움켜쥘 것이라고 벼른다. 현재까지의 분위기는 따뜻하다. 경쟁 도시 가운데 프랑스 안시가 일찌감치 한 발 처진 가운데 독일 뮌헨과 각축 중이다. 비드북 제출(1월), IOC 위원 실사(2월), 프레젠테이션(5월)까지 올해 초부터 이어진 공식 유치전에서는 모두 가장 앞섰다. 지난달 IOC 위원을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상승세다. 더 이상 올라갈 필요는 없다. 그 대신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다 됐다고 떠들어 버리면 분위기가 바뀐다.”고 말했다.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유치전에서의 평가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투표에 참가할 IOC 위원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IOC 위원 110명 가운데 후보 도시가 속한 나라의 위원 6명, 자크 로게 위원장, 투표 불참을 선언한 데니스 오스왈드(스위스) 위원 등을 뺀 102명이 1차 투표에 참가할 예정이다. 평소의 친분 및 이해관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뮌헨은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이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어 신경 쓰인다. 그는 유력한 차기 IOC 위원장 후보다. 그의 의중을 살필 위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건희 IOC 위원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문순 강원지사 또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양강 구도에 대비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며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고 있다. 두 차례의 역전패에서 보듯 투표 결과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 투표라는 것 자체가 럭비공이나 개구리가 튀어 오르는 방향을 알아맞히는 것만큼이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올림픽 개최지 투표는 대륙별, 나라별, 개인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더욱 그렇다. “IOC 위원들의 말에 현혹돼선 안 된다.”는 장웅 북한 IOC 위원의 말은 그런 점에서 퍽 시사적이다. 평창과 뮌헨이 서로 확실한 자기 표라고 주장하는 IOC 위원이 이미 200명을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마음을 휘어잡아 표를 바구니에 주워 담을 맞춤형 전략을 집요하고도 확실하게 펼쳐야 한다. 유치위원회가 IOC 위원들의 성향을 비교적 정교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올림픽 정신이 투철한지, 개인적 이해관계 또는 국가 이익에 민감한지, 적극적인 설득을 좋아하는지, 조용한 접근을 선호하는지 등 인물별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두 차례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모인 이런 사람, 저런 세력들이 유치가 확정되는 순간까지 파열음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두 차례의 실패가 중구난방식 생색내기와 지분 챙기기, 편가르기 등과 결코 무관치 않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려서도, 성급히 출구전략을 마련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허심탄회한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더반은 복싱 영웅 홍수환 선수가 1974년 7월 3일 남아공의 아널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으로 누르고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곳이다. 혈혈단신 적지로 날아간 홍수환 선수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고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다. 2011년 7월 6일엔 더반으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먹었어.”라는 낭보가 날아들기를 기대한다. 웃어라! 평창. obnbkt@seoul.co.kr
  • “꽃으로 된 세상엔 군복이 꽃과 가장 닮아”

    “꽃으로 된 세상엔 군복이 꽃과 가장 닮아”

    “소회요? 이제 겨우 국제무대에 데뷔한 거지요. 사실 비엔날레만 딱 하고 그치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베네치아비엔날레를 처음 접한 게 26살 때인데, 비엔날레 참가작이라고 해서 다 수준이 높은 것만도 아닙디다. 그때부터 비엔날레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데뷔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2일(현지시간) 오후 3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해변공원 카스텔로 자르디니 안에 자리 잡은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이용백(45) 작가는 의외로 덤덤했다. 담담한 그의 표정과 달리 한국관 인기는 무척 좋았다.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갤러리 등 유명 미술관 대표들과 이사회 멤버들이 줄줄이 다녀갔다. 여기엔 두 가지 힘이 작용했다. 첫째는 미국의 철학자 존 라이크만 컬럼비아대 교수다. 그는 한국관 전시 서문을 썼다. 여러 나라에서 공들이는 일급 이론가인 라이크만 교수가 한국관을 택했다는 얘기가 퍼지자 현대미술 관계자들이 ‘대체 어떤 전시길래’ 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다른 하나는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총감독인 비체 쿠리거가 제시한 ‘일루미네이션’이라는 큰 주제다. 일루미네이션에는 조명이라는 뜻도 있지만 쿠리거는 이를 애써 ‘Illumi-nation’으로 표기해 민족국가에 대한 재조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The Love is gone, but the Scar will heal)라는 제목 아래 에인절 솔저 시리즈, 피에타 시리즈 등으로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압축해낸 한국관 작가의 생각과 딱 들어맞는 셈이다. →설치 작품 ‘빨래’가 재밌다. -이탈리아에 와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베네치아에는 골목길마다 빨래를 널어놓은 곳이 많은데, 그걸 보고 참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인절 솔저에 쓰였던 군복을 빨래처럼 널어놔 쉬어 간다는 느낌이 나도록 하면 어떨까 싶었다. 다른 국가관들이 모두 자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추구하길래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싶기도 했다. 참자, 조용히 가자라고 생각했다. →반응은 어떤가. -의외로 뜻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아 기분 좋다. 독일 친구는 “다른 전시장에는 탱크를 가져다 놨던데 넌 평화를 널어놓았구나.” 하더라. 서양 사람들은 아무래도 1960년대 (미국에서 일었던 반전운동인) 플라워 무브먼트나 우드스탁 페스티벌 같은 것을 연상하는 것 같다. 서양 기자나 미술계 관계자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한다. →군복 명찰에 다른 작가들 이름이 들어가 있던데.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백남준 같은 유명 예술가도 있고 이번 한국관 커미셔너인 윤재갑도 있다. 친한 친구나 후배들 이름도 넣었다. 하하하. 우리나라 현대미술은 1990년대부터라고 본다. 그 이전에는 남의 것을 가져다 그냥 베낀 것이고. 그래서 전시 제목은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서구 주류 미술에 대한 추종과 사랑은 가고, 그로 인한 상처도 메워져야 하지 않나 싶다. 이런 맥락을 공유한다고 생각되는 작가들 이름을 골라서 넣었다. →피에타나 꽃을 쓴 것도 그런 맥락인가. 가치의 전복 같은. -그런 측면이 있다.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 도상은 정말 그간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그리고 꽃은 너무도 흔하고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현대미술이 가장 피하는 소재다. 거꾸로 이걸 써 보자 싶었다. 대신 모자(母子) 관계를 피하기 위해 거푸집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꽃을 가장 안 어울리는 군복에 집어넣었다. →군복에 꽃을 넣은 발상이 무척 새롭다. -군복의 얼룩 무늬만큼 환경친화적인 것도 없다. 사막 군복은 사막과 닮아 있고, 일반 군복은 숲과 닮아 있다. 꽃으로 된 세상이라면 군복이 꽃과 가장 닮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처음 시작이었다. 꽃과 군복, 평화 속에 숨겨진 전쟁, 화려함 속에 숨겨진 잔인함, 우리의 현대문명 등으로 에인절 솔저의 키워드가 확장된 거다. →흥행이 잘돼 기분 좋겠다. -미술 관련 책에서나 보던 (유명한) 분들을 어제오늘 참 많이 만났다. 대단한 행운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비엔날레 이후 어떤 작업을 계속 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 전시 구상은. -9월쯤 중국 베이징 갤러리핀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미술관급 갤러리인 데다 천장도 7m 정도 높이여서 규모를 키울 생각이다. 비엔날레 전시가 핵심만 추려냈다면 베이징 전시 때는 에인절 솔저를 구체관절인형 100개로 확장해 천장에 매달아 볼 생각이다. 컬처 월(Culture Wall) 작업도 생각 중이다. 베이징올림픽 때 가난한 빈민촌 풍경을 가린다고 벽을 세웠는데 실제 중국 당국이 그 벽에다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걸 보고 한국이 서울올림픽 때 하던 짓과 똑같구나 했는데,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도쿄올림픽 때도 그랬단다. 정치 권력의 그런 콤플렉스, 그게 이 전시 주제와도 통하는 것 같고 해서 한번 재밌게 표현해 볼 생각이다. →한국관 건물을 둘러싸고 말이 많은데 전시를 직접 해 보니 어떤가. -건물을 고쳐야 한다. 공간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국가관 형식이기 때문에 국가 대항전 성격이 있다. 그래서 모든 작가들이 충격적인 뭔가를 내놓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전시 공간은 그런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천장은 너무 낮고 창을 크게 달아 바깥 빛이 다 들어온다. 나 같은 설치 작가도 애먹었는데 평면이나 그림을 하는 작가들은 어땠을까 싶다. 전시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기보다 전시하기 안 좋은 공간이다. 그렇다 보니 전시에 맞게 고치는 데만도 매번 1억원씩 쓴다고 하더라. 한국관이 처음 생긴 게 1995년이다. 그동안은 자리 잡는 데 치중했다면, 이제는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글 사진 베네치아(이탈리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금&여기] 청경(請警)에게 배웁시다/송한수 사회2부 차장

    [지금&여기] 청경(請警)에게 배웁시다/송한수 사회2부 차장

    “아무리 근무 규칙을 지키라고 해도, 곧이곧대로 따라서는 곤란하지요.” 서울시 서소문청사 청원경찰 H씨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코앞에서 집회가 끊이지 않는 청사를 지키는 입장이라 난감한 일을 많이 겪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먼저 왜 그러는지 물어본 뒤 타당한가를 판단해 시장실 아닌 해당 부서로 안내하되 다른 민원인도 많으니 소란을 삼가고 원만하게 논리를 펴야 한다는 점을 알린다.”고 한다. 언뜻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간단찮은 의미가 숨었다. 자칫 수장(首長)에게 번질지 모르는 폐해를 미리 막을 수 있어서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6월 3일 이런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선 소감을 밝히기 위해 기자실 브리핑룸으로 들어서던 오세훈 시장이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항의차 방문한 옛 황학동 노점상 철거민들과 마주칠 뻔했다. 그런 와중에 H씨의 슬기가 빛났다. 민원인들은 3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고, 오 시장은 2층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H씨는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며 얼굴을 돌리도록 만들었다.”면서 “뿔난 그들이 시장을 만났더라면 어떤 불상사를 일으켰을지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기자는 삐딱한(?) 말을 곧잘 내뱉는 H씨가 오 시장을 거들려고 이런 행동을 보였다고 여기지 않는다.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려는 노력이었다. 원래 청경들의 근무 수칙만 따졌다면 시장을 만나야겠다는 그들을 청사 출입구에서부터 가로막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 사연을 들은 다음 담당자에게 연결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거꾸로 규정(법규)을 철저히 지켜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청사를 찾는 수많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적잖다. 잘 가꾼 화단 옆 인도(人道)를 가로막는 고급 승용차 행렬은 손가락질을 받는 대표적 광경이다. 시끄러움을 줄이기 위해 규정을 약간 깬 청경 H씨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한 시의회 별관 앞 승용차들은 완전히 다른 평가를 듣기 마련이다. 시민들에게 폐를 끼치면서 입법(조례)에 대한 권한을 외쳐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onekor@seoul.co.kr
  • [열린세상] 불공정한 시장, 공정사회의 미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불공정한 시장, 공정사회의 미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매일 규모가 커져만 가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국 사회의 신뢰가 좌초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금융기관을 감독해야 할 감독기관이 오히려 이들과 공모하여 수조원에 달하는 서민 예금을 날리고 퇴출되는 일련의 과정은 한 편의 반전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는 이미 우리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믿을 수 없는 영화를 떠받치는 첫 번째 반전은 부산저축은행의 경영진과 직원들이 예견된 퇴출을 앞두고 자신들의 예금을 불법적으로 인출하는 장면이다. 자율적 규제를 부르짖으며 시장 만능주의의 커튼 뒤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던 기업가들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첫 번째 반전을 뛰어넘는 두 번째 반전은 비리를 감독해야 할 국세청, 금융감독원, 감사원마저 이들의 로비에 매수됐으며, 정치권 역시 이미 부실이 드러난 부산저축은행의 퇴출을 방해한 사실이 발각되는 장면이다. 공정한 게임의 틀을 만들고 감독해야 할 주체들이 오히려 은행과 담합하고 있는 이 장면은 우리 시장경제의 슬픈 자화상이 되고 말았다. 사건 이후 한국의 시장경제에 대한 각종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 혹자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법과 제도의 부재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경우라면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원인은 공정성을 상실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금융기관을 감독할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감사원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에서 말도 안 되는 반전들이 버젓이 벌어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한국 사회와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불공정한 관행들과 이를 가능케 하는 공동선에 대한 철학적 빈곤에 있다. 실제로 우리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비리와 불공정한 게임은 비단 부산저축은행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행은 그리 낯선 소식이 아니다. 하청업체의 납품 원가를 후려치는 것은 기본이요,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사업이 될 만한 것 같으면 동네 마트와도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 대기업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국내 소비자들의 희생 속에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으나 이들이 오늘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 국민이 몇이나 될 것인가. 시장 원리와는 어긋나는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해 정책적으로는 무리한 측면이 있더라도 심정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동선에 대한 고려 없이 불공정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염증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계속돼온 공정한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점차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100만부 가까이 팔리면서 큰 화두가 됐다. 이것은 철학 서적이 큰 인기를 누리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정의와 공정성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최근 들어 각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들 중 하나는 자신이 가진 실력과 노력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거치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이 과정에서 단순히 심사위원단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문자 투표를 통해 공정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기업과 사회 지도층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의 결과에는 아무도 승복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불만과 갈등으로 가득 찬 사회가 될 뿐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주는 교훈은 공정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만으로 불공정 관행 및 도덕적 해이를 감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공정사회는 대기업과 사회 지도층은 물론 우리 모두가 스스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주는 교훈은 공정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만으로 불공정 관행 및 도덕적 해이를 감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공정사회는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 판검사 수임제한 기준 파견기관 근무도 포함

    ‘전관예우 금지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행령이 중요하다. 하지만 법무부는 변호사법 개정안 시행 이후 아직까지 시행령을 마련하지 않았다. 법안이 전체적인 뼈대를 잡는다면 시행령은 구체적인 사안을 규정한다. 법무부는 다음주 중으로 장차관 입안 보고를 마치고, 이르면 7월 중 시행령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3일 법무부에 따르면 변호사법 개정안을 담당하는 법무과는 최근 시행령 초안 작성을 마쳤다. 일반적으로 시행령은 초안을 입안한 후 입법 예고, 법제처 심사, 관계부처 의견조회, 국무회의 확정 과정을 거친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차관에게 초안을 보고한 뒤 법무부 안을 마무리 지을 방침”이라면서 “법무부에서는 내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내주 장차관 보고… 새달 중 시행 지난달 17일 공포된 변호사법 개정안은 판검사와 장기복무 군법무관, 그 밖의 변호사 자격이 있는 공무원이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면 퇴직 전 1년간 몸담았던 기관이 처리하는 민·형사, 행정사건 등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시행령은 법안에서 담지 못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다. 법무부 관계자는 “판검사의 경우 소속 기관과 실제 근무 기관이 다른 일이 종종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이 법안에는 없었는데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했다.”면서 “실제로 파견돼 근무한 기관을 기준으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형기준법 제정… ‘예우’ 발생 소지 차단 이와 별도로 법무부는 검찰의 사건처리기준을 세분화하고, 양형기준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또 영장항고제를 도입하고, 형량을 정함에 있어 정상감경의 요건을 구체화하는 등 형사사건 처리 기준을 객관화·세분화해 검사 및 법관의 재량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전관예우 발생 소지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검사장급·고등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직이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면 퇴직 후 1년 내 선임된 검찰수사사건에 대해서는 최종 근무기관과 관계없이 위임전결규정의 개정을 통해 검찰 전결권자를 한 단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3일 전관예우 관련 비리단속 강화를 검찰에 지시했다. 공무원의 청탁·알선 명목의 금품수수 등에 대한 집중 단속을 통하여, 전관예우 관련 구조적 비리를 엄단할 계획이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시론] 국민건강 관리서비스를 기대한다/김석화 서울대 의대 교수

    [시론] 국민건강 관리서비스를 기대한다/김석화 서울대 의대 교수

    고령화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질병구조가 만성질환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또 국민의 건강증진 욕구는 증가해 질병의 사전예방 및 조기진단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건강관리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충족할 서비스 공급자나 서비스 시장은 국내에서 아직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의료의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가 꼽힌다. 이제까지 병들어 아픈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머물던 의료 서비스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통해 질환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그 영역을 적극적으로 넓혀 나가고 있다. 대형 병원의 건강증진센터에서 검진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하고 있었으나 부담스러운 비용 때문에 일회성으로 끝나기 쉽고 많은 국민이 누리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만성질환의 건강관리 서비스는 건강보험에서 일부 인정하고 있으나 적절하지 못한 수가가 책정되어 있고, 비급여 항목으로 허용하고 있는 일부 건강관리 서비스도 까다로운 인정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국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재원으로 보건소에서 시행하고 있는 금연, 절주 등의 각종 건강증진사업도 일반 국민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 대대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이번에 국회에서 법안으로 상정한 건강관리 서비스는 국민건강 증진 및 의료비 절감을 통한 선진국형 보건산업국가 위상 확립과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 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고 의료산업 육성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건강관리 서비스에 관한 법률체계 마련은 국민건강을 위해 당연하다. 무분별한 서비스 제공을 통제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마련하고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 및 이용범위, 제공 주체와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명확히 하는 법률은 국민건강 및 보건산업 증진을 위해 꼭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의 압박은 건강관리 서비스에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보험 가입자의 건강에 대한 책무를 강조하고 있듯이 건강관리에 대한 국민 자신의 책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일본에서는 특정건강검진과 특정보건지도를 법으로 정하여 대사증후군의 위험이 큰 국민을 대상으로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저가 정책으로 기반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강 위험군에 대한 건강관리 서비스는 국가의 정책적 결정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본의 예에서 살필 수 있듯이 법으로 정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더라도 국민의 적극적 참여가 우선되어야 하므로 저가 정책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의료기관과 건강관리 서비스기관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원스톱 서비스를 불가능하도록 해 국민 편의를 도모하는 데 역행한다. 최근 수년 동안 매년 1900개가 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폐업했는데, 건강관리 서비스에 의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면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만성 질환군과 건강 위험군에 대한 건강관리 서비스는 건강보험 재정을 경감할 수 있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수가 정책으로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건강관리 서비스는 건강에 투자할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취약계층에 대한 바우처를 통한 비용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공 의료사업을 보건소 등 공공 의료기관에 한정하지 않고 민간의료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 제도로서, 우선적으로 건강관리 서비스에 도입해야 한다. 현행 건강보험에서 인정하고 있는 만성질환에 대한 교육 상담과 비급여 항목으로 인정하고 있는 제한된 교육 상담은 건강보험과 국가가 이미 국민에게 제공하고자 한 건강관리 서비스이므로, 건강관리 서비스 법안에서 적절한 수가 정책으로 보완하고 활성화해야만의료민영화의 전초라는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 국민을 위한 건강관리 서비스법을 하루빨리 제정해 건강하고 행복한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룩해 보자.
  •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교도소 톱5 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교도소 톱5 는?

    교도소는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갱생 및 재교육을 실시하는 곳으로 사회와 격리된 생활과 규칙은 그 담장 만큼이나 높다. 최근 한 해외사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교도소 5’를 선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도저히 교도소라고 느껴지지 않는 해외의 특이한 교도소를 소개한다. 1. 고급 호텔 수준 오스트리아 ‘레오벤 교도소’ (Justizzentrum Leoben) 멀리서 보면 고급 호텔이나 회사 처럼 보이지만 실제 교도소다. 멋진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로 별 다섯개 짜리 교도소라고도 불린다. 입구에는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쓰여있으며 재소자들의 사회복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자유도 보장된다. 이곳에는 205명의 재소자가 복역하고 있으며 재소자의 인권을 과보호 한다는 논란도 있다. 2. 재소자가 스스로 운영하는 볼리비아 ‘산 페드로 교도소’(San Pedro Prison)   잠겨진 문을 열고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죄수복을 입고있지 않으며 레스토랑, 시장, 호텔 등과 뛰어노는 아이들도 볼 수 있다. 이 교도소는 재소자 들끼리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아 스스로 운영하는 하나의 사회로 간수도 없다. 여기 재소자들은 안에서 돈을 벌 수 있으며 이 돈으로 살 곳을 구입하거나 빌린다. 재소자 가족의 입소도 허락돼 가족끼리 생활하는 경우도 있으며 재소자가 교도소 안에서 범죄를 일으키면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형을 받게 된다. 볼리비아의 재정상태가 열악해 교도소 내부는 이같이 재소자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춤추는 필리핀 ‘세부 교도소’(Cebu Prison) 최근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집단으로 춤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교도소다. 교도소 측은 재소자의 교화 프로그램으로 춤을 가르치고 있으며 댄스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톡톡한 홍보효과도 누리고 있다. 관광객들도 교도소를 구경갈 수 있으며 죄수옷 등을 구입하거나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교도소 측은 “교화 프로그램으로 댄스를 도입한 이후 재소자들의 생활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고 전했다. 4. 세계 최초 육아 교도소 스페인 ‘아랑후에스 교도소’(Aranjuez Prison) 아이가 있는 재소자의 경우 가족 모두 생활할 수 있게 설계된 세계 최초 육아가 가능한 교도소다. 입소 조건은 부부가 모두 재소자로 3세 미만의 아이가 있는 경우 해당된다. 방 벽에는 디즈니 캐릭터가 장식돼 있으며 외출 허가를 얻으면 가족들이 바캉스도 갈 수 있다. 교도소 측은 “아이와 함께 생활한 재소자들의 재범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5.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국왕실령 ‘사크 교도소’(Sark Prison)  영불 해협에 있는 영국왕실령 사크섬에 있는 초미니 교도소다. 인구 600명 정도의 작은 섬에 있는 이 교도소는 멀리서 보면 교도소라기 보다는 창고 수준이다. 최장 1일을 가둘 수 있으며 150년 이상이나 사용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씨줄날줄] 상종(相從)/주병철 논설위원

    상종(相從)은 사전적 의미로 서로 따르며 친하게 지냄을 뜻한다. 듣기에 좋은 말이다. 요즘에는 ‘끼리끼리‘ ‘초록은 동색’이라는 다소 비꼬는 뜻으로 변질됐다. 사람의 인격이 고양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즉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상종의 매력이다. 귤나무도 조건과 환경이 다른 곳에서는 엉뚱하게도 탱자 열매를 맺는 잡목이 될 수 있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도 넓게 보면 상종의 어원과 맞닿아 있다는 학설도 있다. 상종이란 의미가 잘 와 닿는 사자성어 가운데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있다. 주역의 계사(繫辭) 상편에 방이유취 물이군분 길흉생의(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라는 구절이 있다. “삼라만상은 그 성질이 유사한 것끼리 모이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 나누어 산다. 거기서 길흉이 생긴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순우곤과 관련한 고사도 이와 비슷하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순우곤에게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인재를 찾아 등용하도록 지시했다. 며칠 뒤 순우곤이 일곱 명의 인재를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나자 선왕이 이렇게 말했다. “귀한 인재를 한번에 일곱 명씩이나 데려 오다니, 너무 많지 않은가?”라고. 그러자 순우곤은 “같은 종의 새가 무리지어 살듯 인재도 끼리끼리 모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인재를 모으는 것은 강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상종엔 상극이란 뜻도 있다. 갈등의 골이 깊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기원전 970년 무렵부터 기원전 926년까지 유다와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린 솔로몬왕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사마리아가 수도인 북쪽의 이스라엘왕국과 예루살렘이 수도인 남쪽의 유다왕국으로 분열됐다. 이스라엘왕 여로 보임이 유다왕국의 예루살렘 성전 순례를 막으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유다왕국이 고레스의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려는 데 이스라엘왕국이 훼방을 놓으면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멸시당하고 상종도 못하는 존재가 됐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그제 이명박 정부가 반북 대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더 이상 남측과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남한의 대북정책 변화를 노린 압박시위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 하지만 천안함·연평도 포격사건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북측의 만행을 감안하면 ‘상종’ 선언은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만으로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나.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BMW PGA챔피언십] 도널드, 첫 랭킹 1위

    루크 도널드(잉글랜드)가 생애 처음으로 세계골프 랭킹 1위로 뛰어올랐다. 도널드는 30일 잉글랜드 서리의 웬트워스 골프장(파71·7261야드)에서 끝난 유럽프로골프투어 BMW PGA챔피언십 마지막 날 경기에서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지난주 2위였던 도널드는 9.12점을 얻어 웨스트우드를 제치고 1위가 됐다. 웨스트우드는 8.74점에 그쳐 2위로 밀려났다.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였던 도널드는 4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는 데 그쳐 웨스트우드와 함께 합계 6언더파 278타로 동타를 이뤄 연장전에 들어갔다. 18번홀(파5)에서 치러진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도널드는 세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지만 웨스트우드는 워터 해저드에 빠뜨려 사실상 승부가 결정 났다. 웨스트우드는 더블보기를 기록했고, 도널드는 1.5m짜리 버디 퍼트를 홀에 집어넣었다. 도널드는 1986년 세계 랭킹이 도입된 이후 15번째로 1위를 차지했으며 잉글랜드 국적으로는 닉 팔도, 웨스트우드에 이어 세 번째로 1위에 올랐다.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 PGA 자선경매행사에 자신의 그림을 내놓기도 했던 도널드는 아직 메이저대회 우승은 하지 못했다.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은 2005년 마스터스와 2006년 PGA챔피언십에서의 공동 3위가 전부다. 도널드는 “이 순간이 너무도 특별하고 자랑스럽다.”면서 “웨스트우드나 마르틴 카이머(독일)가 다시 1위에 오르려고 추격할 것이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미국·4.86점)는 13위, 최경주(SK텔레콤·4.45점)는 16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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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아침 잠/주병철 논설위원

    학창시절 등교 시간에 늦을까 아침부터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은 늘 어머니였다. 내 팔을 흔들기도 하고, 창문을 열어젖혀 싸늘한 아침 공기에 놀라 벌떡 일어나게도 했다. 너무 깊은 잠에 빠질 때는 큰 소리를 치며 이불을 빼앗아 버렸다. 그 목소리는 애절했지만 강했다. 어머니의 역할을 반쯤 대신해 준 게 알람시계였다. 어머니처럼 끈질지게 몰아치지는 않아서 덜 괴로웠다. 적당히 울리기를 반복하다 만다. 계속 울려대 짜증이 나면 그만 꺼 버린다. 지금은 휴대전화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나의 아침 잠을 감시한다. 하지만 어머니만큼 미덥지는 못하다. 고등학생이 3명인 우리집은 아침이면 난리다. 각자 맞춰 놓은 알람시간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아침 6시무렵부터는 집안 곳곳에서 서로 다른 멜로디가 잇따라 울려 퍼진다. 하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급기야 집사람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때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식한테는 어머니의 다그침과 정성이 묘약인가 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대전 구단 임원·코치진 사퇴… 존폐위기

    대전 구단 임원·코치진 사퇴… 존폐위기

    8명의 선수가 승부 조작 사건에 휘말린 대전시티즌은 올 시즌 팀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이다. 대전 구단 임원진과 코치진 등은 일괄 사퇴키로 했다. 대전은 29일 긴급 대책 회의 결과 “김윤식 구단 대표와 이사 전원, 감독 등 코치진 전원, 팀장급 이상 직원 전원이 30일 구단주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자체 진상 조사도 병행한다. 대전은 “사건에 연루된 다른 선수가 없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승부 조작이라는 수치스러운 일을 발본색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번 사건을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선수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장”이라면서 “한국 축구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어설프게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전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골키퍼 성경모가 연루된 광주FC 선수들의 줄 소환도 불 보듯 뻔한 일.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두 선수가 지난해 몸담았던 경남FC, 공격수 김동현이 소환조사를 받았던 상주상무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나머지 팀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K리그의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팀 감독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전 왕선재 감독은 “선수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허정무 감독은 “이번 일이 그간의 문제점을 깨끗이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선수들만 잘못했다고 야단칠 것이 아니다.”라면서 “어릴 때부터 질서와 반드시 지켜야 할 것 등을 가르쳐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프로축구연맹의 미적지근한 대응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제대로 된 자체 조사는커녕 사태를 관망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A매치 일정 등으로 2주 동안 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아 숨돌릴 틈은 있지만, 보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토네이도 발생 전과 후 마을 사진 충격

    토네이도 발생 전과 후 마을 사진 충격

    최근 미국 미주리주를 강타한 초특급 토네이도로 142명이 숨진 것으로 잠정집계 된 가운데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전과 후의 비교사진이 올라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진은 같은 장소를 놓고 토네이도가 일어나기 전 구글 스트리트뷰 사진과 현재 상황을 사진가인 아론 퍼만이 촬영해 비교한 것. 미주리주 조플린시의 한 거리를 담은 이 사진은 구글 스트리트로 보면 주위에 나무들이 우거지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론이 담은 사진은 집도 나무도 모든 것이 파괴돼 흔적도 없는 상태. 마치 동일본 대지진시 쓰나미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후의 모습과 유사하다. 현재까지 이 비교 사진에 대해서 다른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조작의혹도 있으나 토네이도가 남긴 피해가 얼마나 처참한지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현재까지 이번 토네이도로 인한 사망자는 142명, 실종자는 900여명으로 미국에서 1953년 이후 최대 규모의 피해를 기록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日 도호쿠는 지금] “큰 축제 열어 명소 부활” “행복추구권 보장할 것”

    [日 도호쿠는 지금] “큰 축제 열어 명소 부활” “행복추구권 보장할 것”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는 오쿠야마 메이코 센다이(왼쪽) 시장과 미야다테 히사키 (오른쪽) 이와테현 부지사는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도호쿠(동북부) 지방을 새롭게 건설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며 결의를 다졌다. 오쿠야마 시장은 “센다이 시민들이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해 다시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되살리고 싶다.”며 복구 의지를 밝혔다. 오쿠야마 시장은 대지진 이후 일본 전역에서 ‘자숙 모드’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점을 의식해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센다이를 부흥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차원에서 오는 7월 센다이가 속해 있는 미야기현뿐만 아니라 이와테·아오모리·아키타현의 대표적인 축제를 유치해 ‘도후쿠 지방 축제 경연’을 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센다이시가 광주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뒤 “대지진 이전에 한국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찾아왔는데 최근 방문객이 아무도 없다.”며 “한국 분들이 먼저 센다이시를 찾아 줘 한·일 간 우호의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4450명의 사망자와 2994명의 행방불명자가 생긴 이와테현 미야다테 히시카 부지사도 “이와테현을 부흥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미야다테 부지사는 이번 복구 작업의 핵심은 “피해자 한명이라도 슬픔을 떨쳐 버릴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희생자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계승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태양광 주택을 설치하고 공장시설 등을 재배치하는 ‘부흥실시계획(그라운드 디자인)’을 오는 9월까지 완성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특히 “이와테현 주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 가운데 히라주미 일대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선정돼 많은 위안을 삼고 있다.”고 전했다. 센다이·히라주미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SNS의 딜레마] 맹목적 확대재생산… 군중의 ‘영혼 없는 클릭’

    [SNS의 딜레마] 맹목적 확대재생산… 군중의 ‘영혼 없는 클릭’

    인터넷 업체에서 일하는 이수진(27·여)씨. 그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슈퍼스타다. 연예인 수준에 버금가는 수만명의 팔로어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고 그녀의 사진을 공유하기 바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그녀는 하나가 아니다. 프로야구 LG트윈스 팬들 사이에서 ‘교주’로 통하고, 아이패드(태블릿PC) 마니아들은 그녀의 사용기를 교과서로 여긴다. 이씨는 “갤럭시S2와 블랙베리 등 스마트폰과 아이패드2를 함께 사용하며 가끔 피곤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숨쉰다는 느낌 때문에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직접 만나 소개를 받아야 했던 사람들조차 SNS상에서는 ‘친구의 친구’라는 이유로 한 번에 친구가 될 수 있다.”면서 “이런 인맥과 수많은 정보가 SNS가 나한테 준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정보를 얻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던 예전과 달리 SNS에선 곧바로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SNS가 주류이자 대세라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기에는 생각해 볼 문제가 많습니다.” 김은정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가 만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의 출처나 사실관계조차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람이나 정보의 경우 가짜로 밝혀지거나 사람의 신상 자체가 허위인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0대 초반, 미모의 전문직 여성, 명문대 졸업 등 사회적인 통념상 ‘매력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A씨. SNS에 이런 프로필을 올려놓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녀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 아무도 그녀의 실명을 궁금해하지 않고 ‘당주’니 ‘교주’니 하며 떠받들기 바쁘다. 그러나 실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얼굴과 직업을 제외한 모든 것이 허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친구나 팔로어에 대한 세심한 배려, 문화나 사회현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 등은 모두 가공(架空)의 것이라는 얘기다. A씨의 직장 동료는 “사진을 볼 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A씨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면서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인터넷상에서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A씨가 인기를 얻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SNS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들이 팔로잉하는 인기인은 무조건 자신도 팔로잉해야 하는 군중심리가 A씨의 팔로어와 친구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고, A씨가 올리는 글은 이처럼 많은 팔로어를 타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정확한 정보’이자 ‘쓸모 있는 정보’로 포장된다. 그야말로 ‘영혼 없는 참여’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상에서 아무 문제가 없던 사람들도 인터넷, 특히 SNS상에서는 별 고민 없이 인터넷 집단을 모방하고 행동에 동조하는 양상을 보인다.”면서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라고 봐야 하며, 이런 행동은 남을 매도하거나 나쁜 소문을 퍼뜨릴 때 특히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SNS에 대한 오해가 기업에까지 퍼져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SNS에 대한 4가지 오해’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SNS에 대해 쉽게 고객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 양방향 소통이 활발할 것, 의도한 바를 대중이 잘 이해할 것, 임직원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SNS에서는 수많은 팬보다 한 명의 열혈 반대자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대부분의 직원은 상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등의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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