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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정엔 직접 뽑힌 학부모대표만 학폭위, 현실은 “남의 아이 미래 달려…” 손사래

    객관성 담보 위한 대표 선출이라지만 “부담돼…” 학부모 지원자 사실상 0명 학교도 난색… 학부모회 임원 등 동원 부산의 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이던 A군은 2017년 4월 같은 반 학생 B군의 장난감을 허락 없이 가져갔다가 떨어뜨려 망가뜨렸다. B군이 화를 내며 욕을 하자 A군도 맞받아치며 싸움이 됐고, 두 학생은 서로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다음달 학교폭력위원회를 통해 A군은 서면사과 처분을, B군은 교내봉사 4시간 조치를 받았다. 그런데 부산지법은 지난해 5월 A군이 학교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학폭위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학폭위에 참석한 학부모위원 5명이 학부모 전체회의에서 직접 선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학교폭력예방법 13조에서는 학폭위를 위원장 1명을 포함해 5~10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과반수를 학부모 전체회의에서 직접 선출된 학부모대표로 위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전체회의에서 선출하기 곤란한 경우 학급별 대표로 구성된 학부모대표회의에서 선출된 학부모 대표가 위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부모위원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취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를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해 법원에서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학폭위 결정이 뒤집힌 20건의 판결 중 13건이 학부모대표 선출 과정이 문제가 됐다. A군 사건을 다룬 학폭위 참석 학부모들은 전체회의도 학급별대표자회의도 아닌 ‘학년별 대표자’ 회의에서 선출됐다. 학생 3명이 잇달아 행정소송을 낸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도 학부모대표 희망원을 아무도 제출하지 않아 결국 학부모회 임원 8명 중 7명과 교사 1명이 참석한 학부모대표자 회의에서 학폭위에 참여할 6명을 뽑았다. 1000여명이 모이는 학부모총회에서 학폭위에 참여할 학부모대표를 뽑는 게 쉽지 않다 보니 학부모회 임원들이나 ‘반장 학부모’ 등이 학폭위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한 고등학생 학부모는 “남의 아이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고 가해·피해학생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학폭위에 자진해 참석하겠다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황후의 품격’ 신은경vs김명수 울분의 멱살잡이 ‘분노 폭발’

    ‘황후의 품격’ 신은경vs김명수 울분의 멱살잡이 ‘분노 폭발’

    ‘황후의 품격’ 신은경과 김명수가 명불허전 ‘연기 본좌’들의 강력한 아우라를 터트린, ‘분기탱천 멱살잡이’를 선보인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 33, 34회분은 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16.1%, 전국 15.2%를 기록, 최고 시청률은 18.6%까지 치솟는 등 명실상부한 수목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왕좌임을 공고히 했다. 신은경과 김명수는 ‘황후의 품격’에서 각각 아들인 황제 이혁(신성록)을 꼭두각시처럼 쥐락펴락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태후 강씨 역과 황실의 전 경호대장이자 소현황후(신고은)의 아버지 변백호 역을 맡아 탄탄한 연기공력을 발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방송분에서는 황후 오써니(장나라)가 황제 이혁(신성록)과 태후 강씨(신은경)에게 강력한 ‘사이다 역습’을 날리는 가운데 변백호(김명수)가 등장,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오써니를 내치고자 ‘마지막 스펜서 부인’ 독자간담회를 만들어 오헬로(스테파니 리)를 부른 태후는 출판사 편집장을 불러 오헬로의 거짓을 폭로하려다 오히려 오써니에게 역공을 맞았던 터. 오써니는 함께 온 황제 이혁에게 책의 일부분을 읽어나가게 했고, 이혁은 소현황후가 죽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적힌 책 내용에 놀라 충격에 휩싸였다. 이때 변백호가 들어서며 “그렇게 내 딸이 죽은 겁니까? 소현황후는 대체 누가 죽인 겁니까”라고 포효하는 모습이 담겨 앞으로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예고했다. 이와 관련 신은경과 김명수가 서슬 퍼런 표정으로 마주 선 채 극도의 감정을 분출시키는, ‘멱살잡이’ 장면이 포착돼 눈길을 끌고 있다. 극중 변백호가 독기 서린 눈빛을 한 태후의 멱살을 움켜잡고는 울분을 폭발시키는 장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태후를 향해 전 경호대장이 지금까지 눌러온 감정을 단숨에 터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신은경과 김명수의 ‘태후전 멱살잡이’ 장면은 경기도 일산 일대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이 장면은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끼지 않는 극악무도한 태후와 딸을 잃은 슬픔을 꾹 참아온 소현황후 아버지 변백호가 극강의 대립을 펼치는 장면. 대사를 주고받는 간단한 리허설 직후 바로 촬영에 돌입한 두 사람은 시작 전부터 극도의 집중력으로 몰입,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멱살을 움켜잡고 기싸움을 벌이는, 완벽한 장면을 탄생시켰다. 더욱이 두 사람은 설명이 필요 없는 관록과 연륜의 연기력으로 현장을 압도했다. 김명수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감정을 멱살잡이로 한꺼번에 터트려내는 변백호의 절절한 심정을, 신은경은 변백호의 돌발행동에 당황하면서도 표독스러움과 얼음장 눈빛을 잃지 않는 잔혹함을 오롯이 연기로 표현,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제작진 측은 “지금까지 딸의 죽음에 대해 드러내놓고 공론화시키지 않았던 변백호가 더 이상 분노를 참지 않는, 일촉즉발 상황의 장면”이라며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황실 안티 세력을 이끌었던 변백호가 태후의 멱살을 잡으면서 어떤 결과를 이끌게 될지, 극악무도한 태후는 또 어떤 계략을 세우게 될 지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한편, SBS ‘황후의 품격’은 23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정은 2년안에 성과 못 내면 어려워져”

    “김정은 2년안에 성과 못 내면 어려워져”

    한반도 전문가인 자오후지(趙虎吉) 전 중국 중앙당교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건설을 하겠다는 생사결단을 했다”며 “하지만 2년 안에 구상했던 바대로 풀리지 않으면 김 위원장도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지난해 4월 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어렵게 권력 구조를 재편해 개혁개방으로 가고 있는데 효과를 못 보면 김 위원장도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김 위원장은 어쩔 수 없이 북한 외부의 북·미 관계, 남북 관계에서 사건이 터지고 긴장 관계를 만들어 국내 위기를 밖으로 전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자오 교수와의 일문일답. @4차 북·중 정상회담 평가는. -중국이 북한의 후방이라는 표현을 강조했는데 안전 보장이나 경제 개선을 지원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것이 없었다. 후방이라는 것은 북한이 어려울 때 돕겠다는 뜻으로 그동안 쓰지 않았던 표현이다. 지금 북한은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개선이 너무 중요한데 중국이 어떻게 지원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건 알 수 없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 미국과 함께 교착 상황을 타개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은 이전의 혈맹 관계를 복원했나. -혈맹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다. 냉전시대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 국가가 대립할 때 열세에 몰려 있던 사회주의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는 그런 구조가 깨졌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역사적 기회이자 딜레마다. 북한의 본토 핵위협을 제거한 미국은 지금 급할 것이 없다고 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구실이 없어진다. 주한미군이나 전략자산 등은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된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믿을 수 있는 곳은 한국, 일본 밖에 없고 필리핀도 못 믿는다. 북한은 중국이 경제개선을 도울 것이라 크게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때문에 당장은 역할을 하기 어렵다. 대북 제재가 안 풀린 상태에서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북한을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가. -상식적인 문제다. 어느 나라든 외교는 너무 종합적이다. 중·미 무역전에서는 중국이 북핵문제를 이용할 것이 없다. 포괄적으로도 중·미 관계에서 북핵문제를 중국이 카드로 사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건을 복합적으로 봐야지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화된다는 식으로 직선적으로 보면 안 된다. 너무도 복잡한 인과관계가 있는데 중국이 북한을 미국과의 무역협상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것은 공업화 시대의 기계 유물론적 인과론에 불과하다.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한국이 역할을 잘해왔다. 중간 중간 꼬인 문제를 잘 풀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협력을 위해 북한의 철도, 도로를 답사하고 있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과 경제협력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뭐가 어떻든 간에 남·북이 평화적으로 잘 가는 것을 누가 무슨 이유로 막겠는가. 문제는 미국과 조율을 잘해야 하는데 조율이 어렵다.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변수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어려워진다. 남북이 주도해야 하고 남북 관계가 잘 풀려야 북·미 관계도 같이 잘된다. 내가 나를 존중할 때 남이 나를 존중하는 법이다. 중국이나 미국이 어떻게 보나 하고 눈치를 보면 한 나라의 외교는 없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한·중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중·한 관계는 경제, 문화 등 구조적으로 좋은 관계를 가질 조건이 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높으면 안 된다. 보수와 진보가 갈라져 있는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미지수다. 중국은 정부가 바뀌어도 당이 안 바뀌어서 그대로 가는 구조적 원인 때문에 한 정부와 아주 가까워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대북 정책, 외교전략, 미국과의 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너무 높은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정책적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도 중국은 한국 정부처럼 북핵문제가 풀리면 자연히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드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것이란 게 중국의 기본 판단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자오후지(趙虎吉·66)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헤이룽장성 출신으로 베이징대 정치행정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공산당 이념의 산실인 중앙당교는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를 교육하는 기관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08년 국가부주석에 오른 뒤 교장을 맡았다. 마오쩌둥(毛澤東), 후진타오(胡錦濤) 등 중국의 지도자들도 당교 교장을 지냈다. 저서로 ‘중국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등이 있다.
  • [고든 정의 TECH+] 출시는 시작에 불과…200년 기업을 꿈꾸는 IBM의 양자 컴퓨터 전략

    [고든 정의 TECH+] 출시는 시작에 불과…200년 기업을 꿈꾸는 IBM의 양자 컴퓨터 전략

    CES 2019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각 기업이 자신들의 기술력을 뽐내며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IBM 역시 예외가 아닌데, 사실 본래 가전 중심인 CES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 국제 가전 쇼)에서 IBM은 그렇게 주목받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독특하게 생긴 원통형 컴퓨터를 공개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범용 양자 컴퓨터인 IBM Q 시스템 원 (IBM Q System One)이 그 주인공입니다. (사진) 0과1로 상태를 표시하고 모든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존의 컴퓨터와 달리 양자 컴퓨터는 큐빗 (qubit)이라는 양자적 상태를 이용합니다. 양자 상태에서는 여러 상태가 중첩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큐빗 수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IBM Q 시스템 원은 20큐빗 연산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50큐빗 정도로 끌어올리면 기존의 컴퓨터가 양자 컴퓨터를 따라올 수 없는 양자 우위 (quantum supremacy)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단계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 공개한 20큐빗 양자 컴퓨터는 그렇게 실용적인 물건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IBM이 이를 출시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양자 컴퓨터는 이론상의 컴퓨터로 여겨졌으나 최근 관련 기술 발전으로 점차 상용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IBM Q 시스템 원에 앞서 2011년 세계 최초의 양자 컴퓨터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D-Wave One은 일반적인 컴퓨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아니라 제한적인 연산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입니다. 구글을 비롯한 IT 기업과 연구소에서 이 컴퓨터를 도입해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양자 어닐링(quantum annealing, QA) 연산이 가능한 프로토타입의 양자 컴퓨터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범용 연산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어 진정한 의미의 양자 컴퓨터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D-Wave의 양자 컴퓨터가 나온 지 꽤 되는데도 현재 도입한 기업이나 연구소가 별로 없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IBM의 접근은 D-Wave와 다릅니다. IBM은 기존의 슈퍼컴퓨터를 대신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착실히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컴퓨터 분야에서 터득한 노하우로 IBM은 소프트웨어 없이는 어떤 컴퓨터도 고철 상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큐빗을 연산 단위로 쓰는 양자 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양자 컴퓨터 개발에서 중요한 문제는 바로 양자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이런 이유로 IBM은 2016년부터 IBM Q Experience라는 클라우드 기반 양자 컴퓨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할 뿐 아니라 개발자들이 양자 프로그래밍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과 예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미 8만 명의 사용자가 IBM Q Experience를 이용해서 양자 프로그래밍을 경험했으며 관련 학술 논문도 70편 이상 나와 있습니다. 개발 도구인 QISkit은 많은 개발자에게 익숙한 파이선 기반으로 배포됩니다. 양자 컴퓨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당장에 돈이 되지 않아도 우선 IBM이 주도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기반을 깔아 놓으면 좋든 싫든 후발 주자들은 IBM의 양자 컴퓨터 생태계에 참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IBM Q 시스템 원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장 현재의 슈퍼컴퓨터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대신 파트너를 끌어들여 양자 컴퓨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IBM은 양자 컴퓨터 네트워크인 IBM Q 네트워크를 출범해 기업과 연구소, 대학 등 파트너를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우선 세계 최대의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엑손모빌이 IBM Q 네트워크에 합류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노력에도 IBM이 양자 컴퓨터 시대를 주도할 기업이 될지는 아무도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관련 생태계 및 기술 개발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과연 IBM이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에 대한 투자를 통해 100년 기업을 넘어서는 200년 기업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쇠사슬 목에 묶인 채 끌려다니는 여성 포착 충격

    쇠사슬 목에 묶인 채 끌려다니는 여성 포착 충격

    백주대낮 공공장소에서 반려견 취급을 당하는 여성이 콜롬비아의 길에서 포착돼 현지 사회가 공분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헤럴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엽기적인 상황이 벌어진 곳은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한 마을이다. 보도된 사진을 보면 남자가 길을 걷고 있고, 그 옆으로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따라 걷고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남자의 손과 여자의 목을 보면 기가 막힌다. 여자의 목엔 쇠사슬이 감겨 있고, 남자는 그 사슬을 손으로 잡고 있다. 마치 목줄을 건 반려견을 끌고 가듯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셈이다. 여자는 부끄러운 듯 가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지만 남자에겐 눈치를 보는 기색이 전혀 없다. 쇠사슬을 움켜잡고 당당하게 길을 걷고 있다.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건 핸드폰으로 영상과 사진을 찍은 한 지역 주민이다. 그는 "차림새를 보면 외국인관광객들이 분명했다"며 "남녀 모두 미국인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낙 외국인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외국인을 보는 게 전혀 이상할 건 없지만 개처럼 여자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생전 처음 본다"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은 "목격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미국인 관광객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이지만 두 사람이 왜 이런 엽기적 행각을 벌였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콜롬비아 사회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람을 개처럼 끌고 다니는 게 가능한 일이냐며 "콜롬비아를 우습게 본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수수방관한 목격자와 주민들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런 상황을 목격했으면 즉각 여성을 풀어주도록 했어야 한다. 목격자들도 모두 공범이다" "황당한 일을 보면서도 아무도 여자를 구하러 나서지 않은 게 더 나쁘다" 등 따가운 질책을 쏟아내고 있다. 사진=헤럴드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김영하 작가가 권했던, 1927년생 엄마의 삶

    김영하 작가가 권했던, 1927년생 엄마의 삶

    세상에 사라져서는 안 되는 책들이 뭐가 있을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책이라고 무조건 숭고한 것은 아니고 실상 나무에게 미안한 책도 많다. 저명한 글쟁이의 ‘세상에서 사라져선 안 될 책’이라는 공언에 눈길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하 작가가 말한 ‘진짜 이야기’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 tvN ‘알쓸신잡3’에서 사람들에게 권했던 그 책이다. 김은성 작가의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는 2008년 첫 출간됐으나 2014년 4권이 완결된 이후 절판된 바 있다. 방송 이후 화제에 오른 책을 애니북스에서 편집과 디자인을 새로 해 다시 펴냈다. 마흔에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딸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엄마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1927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원치 않은 혼인을 하고 6·25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엄마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다. 하지만 평범한 엄마의 일생은 ‘전형적’이지 않다. 영화나 다른 극적인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클리셰’가 배제된, 날것 그대로의 삶이다. 엄마는 일제강점기에도 일가친척 중에 독립운동을 한 이가 한 명도 없었고, 일본인이 세운 학교를 즐겁게 다녔으며,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돼 남편이 군대에 끌려나가지 않게 되자 해방이 너무도 싫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이 한국 근현대사의 온갖 풍파를 정통으로 다 맞는 것에 반해, 작가의 엄마 이복동녀씨의 삶은 어지간한 장삼이사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살아 있는 역사, 체감되는 역사다. 엄마가 입때껏 잊지 않고 있는 북청 사투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북녘에서는 엄마, 아버지 각각을 기준으로 손위 형제는 큰어머니, 큰아버지이고, 손아래는 아지미, 아재비다. 호칭에서 엄마 쪽과 아버지 쪽의 차별이 적은 셈이다. 엄마가 전하는 명태 식해, 순대 등의 북한 음식 레시피도 글의 찰기를 더한다. 딸에게 두런두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엄마와 그걸 또 살뜰하게 기록하는 딸의 온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별거 아닌 내 인생도 옮기면 기록이 되겠거니 싶어 기운도 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靑감찰반 설 前 활동 재개… “중대 비리 일벌백계”

    靑감찰반 설 前 활동 재개… “중대 비리 일벌백계”

    특감반 대신 ‘공직감찰반’ 명칭 변경 뇌물수수·인사비리 등 중대 범죄 집중 매뉴얼 제정… 포렌식 조사 기준 확립 비위 사태로 활동이 중단됐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 특별감찰반이 이름을 공직감찰반으로 바꿔 설 연휴 전에 활동을 재개한다. 공직감찰반 업무 범위·절차 등 내부 규정이 강화되고,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된 임의제출 방식의 디지털 포렌식 수사 원칙을 명문화하는 등 이름뿐 아니라 직무도 일신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17일 보도자료에서 “민정수석실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엄정한 공직사회 기강을 확립해 나갈 것”이라며 “감찰반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비서실 훈령인 ‘공직감찰반 운영규정’과 업무 매뉴얼인 ‘디지털 자료의 수집·분석·관리 업무처리 지침’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감사원 출신 박완기 신임 감찰반장을 새로 임명하고, 감사원·국세청·검찰청·경찰청 소속 공무원들을 해당 기관에서 추천받아 선발 절차가 마무리 단계”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한정된 감찰자원을 최적 활용하고 공직사회의 과도한 위축을 방지하겠다”면서도 “적발된 중대 비리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일벌백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름을 공직감찰반으로 바꾼 것은 특별감찰반이라는 이름이 권위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월권 논란이 인 감찰반 업무 범위는 뇌물수수, 국가기밀 누설, 채용·인사 비리, 예산 횡령, 특혜성 공사 발주, 성추문 등 중대 범죄·비리로 한정됐다. 정보 수집 땐 사전보고를 하고 일간 단위로 진행 상황 보고를 하는 등 근태관리도 강화된다. 또 업무상 비밀 엄수, 부당한 이익 금지, 정보거래 금지 등을 담은 행동기준이 새로 마련됐다. 신설된 포렌식 조사 세부 기준에는 사전 동의, 과잉금지, 인권보호 등 3대 원칙이 담겼다. 조 수석은 “디지털 포렌식은 당사자가 동의한 경우에 한해 임의적 방법으로 실시할 것”이라며 “혐의내용과 관련없는 자료를 이용한 별건 감찰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직원들의 고압적 행태에 대한 신고 핫라인(02-770-7551)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이성미 미혼모 과거 “여자 연예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이성미 미혼모 과거 “여자 연예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

    개그우먼 이성미가 미혼모 과거를 언급해 화제다. 이성미는 16일 방송된 TV조선 ‘두 번째 서른’에서 과거 자신의 서른 살을 회상하며 “크게 사고를 쳤다. 나의 첫번째 서른은 너무 아팠고, 두번째 서른은 그 서른을 지나 웃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첫 번째 서른은 정말 쓰러졌다. 30년이 지나 다시 두 번째 서른을 맞이해서 이렇게 방송을 하는 건 나한테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성미가 언급한 ‘사고’는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아들을 낳은 것. 이성미는 당시 인기 가수 김학래의 아이를 혼전 임신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이별한 채 홀로 아들을 낳아 키웠다. 이성미는 지난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미혼모가 되면서 방송가 퇴출 위기까지 겪었음을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이성미는 “여자 연예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사람들이 무서웠고 그래서 숨어서 지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도 못하면서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어떨 때는 마치 본 것처럼 말한다”며 “힘들 때는 아무도 안 만났다. 골방에 들어가 일이 해결될 때까지 숨어지냈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아이를 키우느라고 뒤돌아볼 수 없었다. 제가 받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예민해졌다. 누가 건드리면 금방 폭발할 상태였다”고 미혼모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이성미는 “어느 순간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며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리 모양이 퍼즐이라면 맡은 부분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퍼즐을 할 때 인생의 끝에서 퍼즐이 완성된다. 퍼즐은 모양이 다르지만 내가 가진 모양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모양이 소중하다. 그만큼 내가 행복하면 내 아이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성미는 1989년 첫째 아들을 홀로 낳아키웠다. 이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 1993년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현재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MBN ‘속풀이쇼 동치미’ tvN ‘둥지탈출 시즌3’ TV조선 ‘두번째 서른’ 등에 출연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중국전 완승 이끈 ‘조연’ 손흥민 “혹사? 이제 적응한 것 같다”

    중국전 완승 이끈 ‘조연’ 손흥민 “혹사? 이제 적응한 것 같다”

    “최근 많은 경기를 뛰다 보니 적응한 것 같다.” 뜻밖에 중국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전해 2-0 완승을 이끈 손흥민(토트넘)이 경기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혹사 논란에 관한 질문에 답한 말이다. 그는 17일(한국시간) 새벽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끝난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최종전에 선발로 나서 전반 14분 황의조(감바 오사카)의 페널티킥 판정을 얻어내고 후반 6분 코너킥 크로스로 김민재(전북)의 헤더 쐐기 골을 이끌어 2-0 완승에 큰 힘이 됐다. 손흥민은 이틀 전 대표팀에 합류해 전날 딱 한 차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춘 뒤 두 골 모두에 간여해 자신을 선발로 내보낸 벤투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의 한 팬이 표현한 대로 “그의 선발 출전 기용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혹사 논란이 등장할 만큼 그는 버거운 일정을 소화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공한증(恐韓症)이란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취재진의 지적에는 “오늘 경기만 이기려고 이곳에 온 건 아니다”며 “우리는 더 앞을 바라보는 팀이고, (중국전에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밝혔다.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나타난 손흥민은 조연을 자처했다. 본인에게 수비수들이 몰려들자 반칙을 유도하거나 동료 선수들의 플레이를 도왔다. 전반 12분 김문환(부산)의 오른쪽 측면 패스를 잡은 뒤 페널티 지역에서 돌파를 시도해 상대 수비수 반칙을 끌어냈다. 페널티킥을 황의조에게 양보한 뒤 뒤로 물러서 첫 득점 모습을 지켜봤다. 두 번째 골도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손흥민은 후반 6분 오른쪽 코너킥 키커로 나서 정확한 크로스로 김민재의 헤딩골을 도왔다. 체력이 바닥난 후반전에도 손흥민은 부지런히 최전방을 누볐다. 후반 31분엔 오른쪽 코너킥 키커로 나서 아무도 막지 않는 황희찬을 발견해 재빠르게 패스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의 헌신과 희생에 힘입어 3전 전승(승점 9) 무실점으로 조별리그를 마친 대표팀은 C조 1위로 16강에 나서 오는 22일 A·B·F조 3위 가운데 한 팀과 8강 진출을 놓고 겨룬다. 현재 A조와 B조에선 각각 바레인(1승1무1패)과 팔레스타인(2무1패)이 3위를 확정했고, F조는 최종전을 남겨둔 상태다. 여섯 조 3위 가운데 상위 네 팀이 16강에 합류하기 때문에 벤투호의 16강 상대는 조별리그가 모두 마무리돼야 확정된다. 벤투 감독은 취임 후 10경기 무패(6승4무) 행진도 이어갔다. A대표팀 감독의 데뷔 10경기 무패는 1988년 취임한 이회택 감독이 14경기 무패를 이어간 이후 처음이다. 역대 대표팀 감독의 데뷔 최장 A매치 무패 기록은 1978년 부임한 함흥철 감독의 21경기 무패다. 대표팀은 또 최근 다섯 경기 연속 무실점에다 중국전 두 경기 무승(1무1패)도 끊어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브로드웨이의 전설’ 캐럴 채닝 별세

    ‘브로드웨이의 전설’ 캐럴 채닝 별세

    ‘브로드웨이의 전설’로 불리는 뮤지컬 배우 캐럴 채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CNN 등이 전했다. 98세. 채닝의 홍보담당자 할란 볼은 “채닝은 자연사했으며, 지난해 두 차례 뇌졸중을 겪었다”면서 “뮤지컬계의 전설이자 아이콘인 그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채닝은 1949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다이아몬드를 사랑하는 쇼걸 로렐라이 리 역으로 열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제목의 영화는 훗날 메릴린 먼로를 스타로 만든 작품이며, 채닝도 영화에 출연하고자 했다는 후문도 있었다. 그는 1964년 뮤지컬 ‘헬로 돌리’로 토니상을 수상하며 뮤지컬계 대표 배우로 거듭났다. 1967년에는 뮤지컬 영화 ‘모던 밀리’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까지 저변을 넓혔다. 1981년에는 아메리칸 시어터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2002년 평생공로상까지 모두 네 번의 토니상을 수상한 채닝은 이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망 전까지 5000회 이상 무대에 올랐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올해 첫 캐러밴 미국행… 장벽예산 힘 싣고 ‘셧다운 출구’ 찾나

    올해 첫 캐러밴 미국행… 장벽예산 힘 싣고 ‘셧다운 출구’ 찾나

    온두라스서 600명 출발… 1000명 넘을 듯 트럼프 “장벽만이 美 수호” 정당성 강조 국방부, 멕시코 국경 파견 미군 임무연장 민주 “백악관 오찬, 분열조장” 집단 거부역대 최장 기록을 깬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16일(현지시간)로 26일째를 맞은 가운데 새해 첫 ‘캐러밴’(중남미 이민자 행렬) 출발의 후폭풍이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에 대한 정당성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며 민주당을 압박했고, 국방부는 멕시코 국경에 파견된 미군의 임무 연장을 시사했다. 이에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백악관 오찬을 거부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셧다운을 풀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로이터통신은 15일 600여명의 캐러밴이 전날 올해 처음으로 온두라스 북서부 산페드로술라에서 미국을 향해 출발했다고 전했다. 이들 일부는 30대의 버스를 타고 출발했고 나머지는 도보로 이동했다. 로이터는 이들이 가는 도중 새로운 이민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여 조만간 1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캐러밴 참가자 로사 로페스는 “온두라스는 살 곳이 못 된다”면서 “취업 기회가 많으면서도 범죄가 적은 미국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첫 캐러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 즉각 정치 공세를 강화했다. 그는 트위터에 “대규모의 새 캐러밴이 온두라스에서 우리의 남쪽 국경으로 향하고 있다”면서 “오직 벽이나 강철 장벽이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국경장벽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을 향해 “정치게임을 그만하고 셧다운을 끝내라”고 일침을 가했다. 최장 기간 셧다운은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는 민주당 때문에 이뤄졌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미 국방부도 멕시코 국경에 파견된 미군의 임무 연장을 시사하면서 국경장벽 건설 분위기를 띄웠다. 국방부는 이날 “국토안보부의 요청에 따라 오는 9월 30일까지 이민자들의 이동 감시와 탐지에 대한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부터 멕시코 국경 지역에 파견된 미군 5900여명은 1년여 가까이 임무를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여야 초청 백악관 오찬 제안을 집단 거부하는 등 대치 국면을 이어 갔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의 중도 성향 초·재선 의원들을 포함해 백악관 초청을 받은 하원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이 민주당에 불리할 것으로 보고 당내 단합을 위해 집단 불참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오찬 회동 초청은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갈라놓기 위한 노림수”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할 일은 셧다운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불참을 결정한 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백악관에서 함께 오찬을 할 기회를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에게 제공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민주당 인사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공화당 인사들과 업무 오찬을 하며 국경의 위기상황을 풀고 정부의 문을 다시 열 방안을 논의하기를 기대한다”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EU ‘잔류’ 우회 압박 속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 대비”

    마크롱 “노딜, 모두에게 재앙” 우려 표명 메르켈 “하원서 노딜 대비 법안 마련할 것” 영국 하원이 15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사상 최대인 230표 차로 부결시키자 영국은 물론 EU도 충격에 빠졌다. EU는 영국이 브렉시트 자체를 철회하고 EU에 잔류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영국의 EU 탈퇴)의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합의안이 불가능하고, 아무도 ‘노딜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하나의 답을 내놓을 용기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우회적으로 영국이 EU에 잔류할 것을 촉구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영국이 무질서하게 EU를 탈퇴할 위험성은 더욱 커졌다”면서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충분히 준비하는 작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 모두 영국 정부에 다음 계획을 내놓으라고 압박했으나 메이 총리와 만나 어떤 논의를 나눌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EU 회원국인 프랑스와 독일 등도 이번 표결 결과와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우려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에 남은 선택지 중 노딜 브렉시트는 ‘모두에게 두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이 EU와 더 나은 합의안을 만들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두 개 정도 개선안 마련은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투표 결과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협상할 시간이 있다. 독일과 EU는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어떤 제안을 해올지 기다리고 있다”면서 “17일 연방하원을 열어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하는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리더십 잃은 통합 임정… 3대 구심점 ‘이·창·만’ 모두 떠나… ‘채소장수’ 윤봉길의 폭탄, 꺼져가던 임정 불씨 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리더십 잃은 통합 임정… 3대 구심점 ‘이·창·만’ 모두 떠나… ‘채소장수’ 윤봉길의 폭탄, 꺼져가던 임정 불씨 살렸다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초기부터 이념과 지역에 따른 파벌싸움으로 갈등이 컸다. 독립운동 방법론을 두고 외교독립론과 무장투쟁론, 실력양성론이 대립했고 출신 지역에 따라 기호파(경기·충청)와 서북파(평안·함경)로 나뉘었다. 임정이 정말로 한성정부를 계승했는지를 두고 ‘승인·개조’ 논쟁도 불거졌다. 결국 임정의 ‘3대 축’인 이동휘(1873~1935)와 안창호(1878~1938), 이승만(1875~1965)이 차례로 조직을 떠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무능한 임시정부 갈아엎자” 노령정부(러시아)와 상하이정부(중국), 한성정부(한국)가 힘을 모아 통합 임정을 만든 지 1년이 지난 1920년 9월. 이승만의 진정성을 의심해 임정 내각 참여를 거부한 신채호(1880~1936)와 박용만(1881~1928) 등이 중국 베이징에서 ‘군사통일회’를 세웠다. 이들은 분란만 일삼는 임시정부를 불신임하고 전 세계 한인들이 ‘국민대표회의’를 열어 독립운동의 새 길을 찾자고 주장했다. 이듬해 2월 박은식(1859~1925)과 원세훈(1887~1959) 등도 ‘우리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을 발표했다. 임정의 무능함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신채호가 주장한 대표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해 5월 만주 지역에서 김동삼(1878~1937)과 이탁(1889~1930), 여준(1862~1932)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개혁안’을 선언하고 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통합 임정이 설립 2년도 되지 않아 해체 위기를 맞게 됐다. 심지어 임정이 있던 상하이에서도 여운형(1886~1947), 안창호 등이 회의 참여를 선언했다. 임정 각료들은 “국민대표회의 소집 운동은 정부 파괴 행위”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미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버틸 힘이 없었다. 결국 1923년 1월 3일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회됐다.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미주 등에서 100여개 독립운동단체 대표가 모여 임시정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로 치러졌다. 경비는 러시아 레닌 정부가 지원했다.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3월 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조 제의안이 올라오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창조파’와 ‘개조파’가 끊임없이 공방에 나섰다. 창조파는 임정을 부수고 한성정부를 계승할 새 기구를 만들어 무력 투쟁에 나서자고 선언했다. 신채호와 문창범(1870~1938) 등 베이징과 러시아에 기반을 둔 이들이었다. 개조파는 임정이 1919년 3·1운동 결과로 생겨났다는 점을 들어 해체가 아닌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안창호와 여운형, 김동삼 등 상하이와 만주 지역 출신이 많았다. ●‘창조파’ 새 정부 설립 결의… 분열 주범으로 이들은 합의안을 만들지 못하고 두 달 넘게 논쟁만 벌였다. 5월 15일 김동삼과 배천택(생몰연대 미상) 등 만주 지역 개조파들이 더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회의장을 떠났다. 다른 개조파들도 대거 불참을 선언했다. 그러자 6월 창조파가 자기들끼리 회의를 열어 국호를 ‘한’(韓)으로 하는 정부 설립을 결의했다. 임정은 이들의 행동을 반역으로 보고 국민대표회의를 해산시켰다. 그러자 창조파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코민테른(공산주의 국제연합) 지부로 달려가 “새 정부를 정식 국가로 인정해 달라”고 청원했다. 소비에트가 같은 사회주의자인 자신들의 편에 설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창조파 단독으로 세운 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보고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세력은 1920년 레닌 자금 배달사고에 이어 또 한 번 독립운동 분열의 주범이 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국민대표회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 미래를 가늠할 대사건이었다. 하지만 6개월 가까이 무의미한 논쟁만 벌이다가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독립운동가들 임정 각료 거부… 권위 추락 임정은 국민대표회의 결과에 따라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개조파의 탈퇴와 창조파의 무리수로 어부지리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미 임정의 ‘3대 주주’였던 이승만과 안창호, 이동휘가 사라진 뒤였다. 1921년 1월 이동휘가 임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떠났고, 같은 해 5월 안창호도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하고자 임정을 탈퇴했다. 이승만은 1921년 5월 워싱턴회의(1921~1922) 참석차 미국으로 갔다가 자신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상하이로 돌아오지 않았다. 1922년 9월 하와이에 정착한 뒤 임정 업무에서 손을 뗐다. 결국 3년 가까이 지난 1925년 3월에야 박은식(1859~1925)이 임시 대통령이 돼 이승만을 탄핵했다. 이때 임시의정원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헌법을 위반했다는 의견도 있다. 김희곤(65)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은 “당시 임정은 재정난과 신뢰도 추락 등으로 의사 정족수를 채우기 불가능했다. 합법적으로는 이승만을 쫓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의 탄핵을 쿠데타라고 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내각책임제 초대 국무령 이상룡 임명 임정은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바꾸고 최고 지도자인 국무령의 임기(3년)도 정했다. 이승만에게 임기 없는 대통령직을 맡겼다가 혼란을 겪은 데 따른 학습 효과였다. 같은 해 9월 서간도 무장단체 ‘서로군정서’의 책임자 이상룡(1858~1932)을 초대 국무령에 임명했다. 그는 김동삼과 김좌진(1889~1930) 등을 각료로 선임했지만 대부분 상하이로 오지 않았다. 임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서였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상하이 요인들이 싸움만 일삼자 이상룡은 몇 달 만에 자리를 내던졌고 1926년 2월 면직됐다.같은 달 임정은 대한매일신보 주필 출신 양기탁(1871~1938)을 국무령으로 지명했지만 스스로 취임을 거부했다. 5월 안창호를 국무령으로 선출했지만 반대 세력인 기호파(경기·충청 지역 파벌)가 강하게 반발해 물러났다. 7월 홍면희(1877~1946)가 국무령이 됐지만 임정 분규가 끊이지 않자 12월 내각 총사퇴를 선언했다. 당시 임정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통합 임정이 세워지던 1919년만 해도 상하이에는 독립운동가가 1000명 가까이 됐다. 하지만 6~7년 뒤인 1920년대 중반에는 고작 수십 명밖에 남지 않았다. 상당수는 상하이의 외교독립론에 실망해 다른 지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조만간 독립이 될 것으로 보고 새 나라에서 요직을 차지하려던 ‘쭉정이’들은 일본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떠났다. 일부는 국내에 잠입한 비밀요원들에게서 “대다수 민중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요즘 말로 하면 ‘번아웃 증후군’(심리적 탈진현상)에 빠진 것 같다. 상하이정부 창립 멤버였던 소설가 이광수(1892~1950)도 한국인들이 일제에 순응해 가는 현실에 실망해 독립운동을 접고 신여성 허영숙(1897~1975)과 재혼하겠다며 1921년 4월 한국으로 돌아갔다.1926년 12월. 지리멸렬하던 임정에서 잠시 국무령을 맡았던 이동녕(1869~1940)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후배 운동가에게 자리를 넘겼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하겠다는 이가 없어 억지로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임정 최고 지도자에 오른 이가 바로 김구(1876~1949)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원래 임정은 사제폭탄 사용을 금지하고 외교적 노력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김구는 이 원칙을 고수해선 얼마 안 가 임정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잘 알았다.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만 했다. 1931년 10월 임정 주석이던 그는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고자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김원봉(1898~1958)을 단장으로 한 무장투장단체 의열단(1919~1935)을 모델로 했다. 당시 의열단은 황포탄 의거(1922) 등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역사학계에서는 김구나 김원봉의 공작 시도를 이슬람국가(IS) 등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테러’와 구별하기 위해 ‘의열 투쟁’으로 부른다.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5개월간 6건의 암살, 폭파를 기획했다. 대부분 실패하거나 미수에 그쳤다. 그럼에도 1932년 1월 이봉창(1900~1932)이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1901~1989)에게 수류탄을 던져 한국인들의 저항의식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은 고무적이었다.●이봉창 ‘일왕 수류탄’ 임정 존재감 일깨워 이봉창 의거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상하이 훙커우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허름한 차림의 동포 한 명이 김구를 찾아왔다. 자신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으니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채소바구니를 짊어지고 날마다 훙커우 일대를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하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죠.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 선생님께서….” 충남 예산에 아내와 세 자녀(1녀 2남)를 남겨두고 혼자 상하이로 건너왔다는 스물네 살 청년 윤봉길(1908~1932)이었다. 4월 29일 그가 훙커우 공원에서 던진 폭탄이 끝없이 추락하던 임정의 판도를 극적으로 바꿔 놓는 ‘게임 체인저’가 될 줄은 그땐 누구도 몰랐다. 윤봉길이 없었다면 임정 존속과 한국 독립 또한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손혜원 목포 투기 의혹?…페이스북에 다 공개한 사실

    손혜원 목포 투기 의혹?…페이스북에 다 공개한 사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남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건물을 투기를 위해 무더기로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손 의원과 문화재청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손 의원이 과거 페이스북에 목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며 조카딸에게 오래된 집을 사서 고친 뒤 목포로 이주할 것을 권했다고 소개하는 등 투기 목적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이뤄진 매입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SBS는 15일 손 의원이 자신이 관련된 재단과 친척, 지인 명의로 지난 2017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있는 건물 9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문화재청이 지난해 8월 면 단위로 등록한 첫 문화재다. 기존에는 개별 건축물만 문화재로 등록했다. 손 의원 조카 명의의 3채, 손 의원 남편이 이사장으로 있는 문화재재단 명의의 3채, 손 의원 보좌관의 배우자 명의 건물 1채, 보좌관 딸과 손 의원의 다른 조카 공동 명의 2채 등 총 9채가 이 공간에 있다.SBS는 이 건물 가운데 8채가 문화재 등록 전 거래됐다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건물 매입 가격은 3.3㎡당 100만∼400만원이었지만, 이 지역이 문화재로 등록된 이후 건물값이 4배 정도 뛰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SBS 보도 이후 설명자료를 내고 “문화재 등록은 전문가 현지조사와 문화재위원회의 엄격한 심의에 의해 시행될 뿐, 개인 의견이나 영향력에 좌우되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건축물 소유자나 거래 여부에 관계없이 문화재 가치를 판단해 추진한다”고 밝혔다. 손 의원은 “목포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지역을 돌면서 처음 가본 곳으로 버려진 집이 50%를 넘었다”며 “조선내화 공장이 있던 구도심인 서산온금지구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조합이 결성되고 있었는데, 제가 의견을 내서 혹은 (다른 사람과) 같이 좀 도와서 문화재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손 의원은 목포 투기 의혹은 2017년부터 떠돈 근거 없는 음해라는 입장이다. 당시 손 의원은 페이스북에 조카딸에게 목포 이주를 권유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이른바 ‘손혜원 목포괴담설’을 해명했다. 또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을 향해서도 “근대건물이 빼곡한 보물이 가득한 목포 구도심은 버려둔 채 근대 건물을 모두 밀어내고 21층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이라며 “목포 특유의 문화유산을 지켜내지 못하시면 전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 의원은 “마포 국회의원이 주말마다 내려가서 땅 투기꾼 소리 들으며 지키려 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시긴”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2017년 12월 문화재로 등록된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등 목포 지역 문화재 등록 전반에 손 의원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2016년 총선을 통해 국회에 처음 입성한 손 의원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었다가 작년 7월 17일, 이 위원회에서 독립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옮겨 여당 간사로 활동 중이다. 손 의원은 투기 의혹과 관련해 “사람들이 아무도 안 가니까 증여해서 친척을 내려보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서울 박물관을 정리하고 목포에 내려가려고 했다”며 “땅을 사고팔고 하면서 돈 버는 데에 관심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보도는 모략이고 거짓말”이라며 “SBS를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하겠다. 악성 프레임의 모함이다”라고 주장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시인 단테(1265~1321)는 ‘신곡’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물들을 만난다. 모든 인물들은 (시인에게는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원칙적으로 몸이 없기에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신체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실은 영혼이며 그림자다. ‘연옥편’ 2곡(74~77)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나 반가운 나머지 단테를 껴안으려 하고, 단테 역시 그를 끌어안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의 팔은 허공을 휘저으며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아, 겉모습 말고는 공허한 영혼들이여/그를 세 번이나 껴안으려 했지만/그때마다 손은 내 가슴으로 되돌아왔다” 연옥편 3곡(16~30)에도 그림자 얘기가 나온다. 스승이자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태양을 등지고 나란히 걷고 있다. 당연히 두 사람의 그림자는 그들 앞에 드리우게 된다. 단테는 자기 그림자는 보이는데 베르길리우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우리 뒤에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내 몸이 그 빛줄기를 막았기 때문에/내 앞의 바닥에서 부서졌다/나는 오직 내 앞에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고/혹시 혼자 남은 것이 아닌지 두려워/재빨리 옆을 돌아보았다” 단테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베르길리우스는 설명한다. 자신의 물리적 신체는 다른 곳(지상)에 묻혀 있으며, 투명한 영혼은 태양빛을 통과시키므로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고. “나의 위안이신 그분이 나를 보며 말했다/왜 아직도 믿지 못하느냐?/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널 인도하지 않느냐?/지금 내 앞에 아무런 그림자가 없더라도/놀랄 필요는 없다”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는 단테보다 1300년 앞서 살았던 로마의 시인이다. 그의 영혼이 단테를 이끌어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그림자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의 징표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림자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살아 있는 인간의 특질인 것이다. 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둘 다 살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자. 물론 사람답게 살아야 할 의무도 뒤따른다. 인간은 제분기(製糞機)가 아니기에.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관가 인사이드] 다면평가·소양고사·평가공개… 연공서열 깜깜이 인사 판 바꿀까

    [관가 인사이드] 다면평가·소양고사·평가공개… 연공서열 깜깜이 인사 판 바꿀까

    그동안 연공서열과 주무부서를 먼저 챙기는 관가의 인사 행태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2006년 공무원 인사시스템을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히고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했다. 실제로 행정고시 출신이 아닌 7·9급 출신 고위공무원이 탄생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연공서열과 주무부서 챙겨주기식 인사가 여전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경찰청과 경기도가 지난해 말 인사 체계를 바꾸는 개혁의 칼을 뽑아든 것도 이런 지적 때문이었다. 경기도는 지난해 ‘소양고사’(시정 현안 논술)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는 다면평가를 도입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부터 근무평가(근평) 공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내부 평가는 사뭇 다르다. “근평 갑질을 쇄신하고 있다”는 경찰의 내부 평가가 나오는 반면 경기도는 노조가 시위를 하는 등 반발이 거세다. ●이재명표 인사시스템 개선…노조 반대 시위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해 취임 직후 공무원 승진후보자를 대상으로 소양고사를 시행해 “정확하게 업무를 파악하고 논리정연한 분들을 발탁하겠다”고 밝혔다. 소양고사는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부터 5·6급 승진후보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정책 시험’이다. 2012년 1월 5급 승진후보자를 대상으로 ‘성남시의 세수증대 방안과 시민복지증진 방안’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게 소양고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경기도 공무원의 반발은 거셌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산하 3개 공무원 노조가 소양고사 도입 반대 시위를 벌였다. 공무원 94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찬성 8.8%, 반대가 90.7%나 됐다. 여기에 다면평가까지 시행돼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 다면평가는 승진 대상자에 대해 같은 직렬·직급 직원들이 서로 평가하는 제도다. 경기도청 공무원 노조 홈페이지에는 “같은 진용에 속해 있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로 정말 신사다우신 분을 (승진에서) 제외했다”며 “승진자를 주변 동료 3명이 평가하는 건 정말 할 짓이 못 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런 논란에 대해 경기도는 두 제도 모두 인사를 개선하고자 시행한 것으로 당장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경기도 인사담당자는 “5급 승진자는 경기도의 중요한 중간관리자로서 도가 진행하는 주요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 소속 부서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업무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소양고사를 보는 것”이라며 “소양고사 내용을 교육 제도에 포함시키는 것은 논의할 여지가 있지만 폐지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다면평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일로 업무에 소홀한 직원도 있는데, 이를 인사과에서 다 파악할 수 없다”며 “인사 때 동료를 활용해 그런 부분들도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찰청 “공정·투명한 인사 평가 위해 공개” 지난달부터 공개로 전환한 근평 제도에 대해 경찰 공무원 사이에선 찬반이 엇갈리지만 대체적으로 ‘긍정 평가’가 많은 편이다. 최근 경찰청에서 지방 일선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창호 총경이 승진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인사 갈등이 터져나왔지만 ‘근평 공개’에 대해서는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인사 근거여서 찬성의 목소리가 많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이모 경찰관은 “(주변에) 찬성 의견이 훨씬 많다.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데 가늠자 역할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긍정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가자는 자신의 평가가 노출된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고, 평가 대상자들도 결과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반대하는 일부는 평가자와의 관계가 서먹해진다. 조직의 단합을 저해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며 “다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다수는 아니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전귀성 경찰청 인사운영계장은 “그동안 근평을 어떻게 받는지를 알 수 없어서 상호 소통이 어려웠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평가를 위해 근평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가 주관주의적 문화부터 넘어서야” 전문가들은 평가제도 자체보다 관가의 온정주의 문화를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존에도 새로운 인사제도를 여러 차례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제도 자체보다 이를 악용하는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이건 경기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온정주의 문화가 만연해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에 도입한 공무원 성과평가제도가 결국 ‘성과급 나눠 먹기’로 변질된 것도 이런 온정주의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기 때문에 관가의 평가가 객관적으로 진행된다”며 “한국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주관주의적 문화가 있다 보니 좋은 제도라도 결국 공무원 개인에게 큰 피로도를 주는 불만 요소가 된다”고 분석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아내의 맛’ 조쉬♥국가비, 떡국 준비+세배까지 ‘한국식 새해맞이’

    ‘아내의 맛’ 조쉬♥국가비, 떡국 준비+세배까지 ‘한국식 새해맞이’

    ‘아내의 맛’ 국가비, 조쉬 부부가 런던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국식 새해맞이’를 선보인다. 15일 방송되는 TV조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이하 ‘아내의 맛’)에서는 한복을 차려입은 것도 모자라 떡국부터 신김치까지 완벽하게 풀 세팅된 영국남자의 ‘한국식 새해맞이’가 공개된다. 조쉬, 국가비 부부는 1월 1일 아침 메뉴로 한국 새해 전통 음식인 떡국을 준비했다. 김치를 사랑하는 영국남자 조쉬는 한국인보다 더 맛있게 먹는 ‘신김치 먹방’으로 패널들의 감탄을 끌어냈다. 더욱이 이날 현장에서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스킨십이 끊이지 않는 ‘로맨틱 부부’로 정평이 난 ‘조가비 부부’가 사실 ‘연상연하 부부’라는 사실이 밝혀져 주위를 놀라게 했다. 새해 아침 조쉬가 평소와 달리 국가비를 향해 ‘누나~’라고 부르며 세배를 건네는 반전 애교를 시전한 것. 심지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조가비 부부’는 영국인 시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어 ‘한국식 세배’를 올린 후 세뱃돈을 받기 위한 요절복통 설득을 벌이면서 런던의 새해를 유쾌함으로 물들인다. 남편 조쉬에게 세배를 받은 국가비의 리얼한 반응은 어땠을지, 조가비 부부는 시부모님으로부터 세뱃돈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증이 모이고 있다. 뒤이어 조쉬, 국가비는 오랜만에 런던 시내에 나가 ‘알콩달콩한 데이트’를 만끽했다. 하지만 런던의 랜드 마크인 런던아이를 바라보던 중 남편 조쉬의 과거 연애가 들통 났고, 결국 아내 국가비와 ‘귀여운 신경전’이 벌어졌다. 과연 ‘꽁냥꽁냥의 극치’를 달리는 두 부부의 새해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런던의 맛’으로 더욱 글로벌해진 ‘아내의 맛’을 통해 남김없이 공개된다. 제작진은 “런던의 새해를 너무도 ‘한국스럽게’ 맞이한 ‘조가비 부부’의 일상은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 정도로 유쾌하고 신선했다”라며 “‘아내의 맛’에 뜬 조쉬, 국가비 부부의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새해 풍경’에 많은 기대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아내의 맛’은 15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기고] 진정한 지방분권은 양원제에서 나온다/이시종 충북지사

    [기고] 진정한 지방분권은 양원제에서 나온다/이시종 충북지사

    충북 괴산(842㎢)은 서울 강남(39㎢)보다 22배나 크다. 괴산군은 강남구에 없는 다양한 행정 업무도 맡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 수는 0.25명으로 강남구(3명)의 12분의1에 불과하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면서 이 지역 국회의원 수도 크게 늘었다. 수도권은 전체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국회의원 수는 48.2%나 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기초자치단체 수는 3대7이지만 국회의원 수는 5대5로 거의 차이가 없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10~20년 안에 수도권 국회의원 비율이 전체의 6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을 ‘수도권 공화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지방분권 개헌과 공직선거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균형발전·지방분권과 관련해 현행 국회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건의하고 싶다.첫째, 지금의 단원제 형태의 인구 중심 국회로는 지역 대표성을 충족시킬 수 없다. 충북 괴산군과 서울 강남구는 같은 기초자치단체지만 인구 차이 때문에 등가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둘째, 현 국회 제도는 행정(정치)의 다양성을 배제하고 있다. 지방의 군(郡)은 대도시 구(區)에는 없는 가뭄과 홍수, 산불, 조류독감(AI), 유해동물 등 수많은 행정 업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국회의원 수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셋째, 국가균형발전·지방분권이 국가 어젠다에서 점차 외면받고 있다. 수도권 국회의원 수가 점차 많아지다 보니 자연히 국회에서 비수도권 의원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다. 일례로 19대 국회에서는 수도권 주한미군 반환 공유지에 ‘지방대 이전 반대’ 법안이 지방 의원들의 힘으로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선 수도권 의원들의 강력 반대로 폐기됐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수도권 의원들의 힘에 눌려 상임위 통과조차 안 되고 있다. 따라서 현 단원제 형태의 국회를 지역 대표성과 등가성을 반영해 재조정하거나 지금의 국회를 하원으로 하고, 지역 대표성을 반영한 상원을 새로 만들어 의회를 양원제로 이원화해야 한다. 미국처럼 인구에 관계없이 모든 시·도에 같은 수의 상원의원을 배정하고 균형발전·지방분권 문제에 대해서는 상원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300명인 국회의원 수 범위에서 상·하원 수를 조정하면 여론이나 예산에서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수천 가지 법령을 제·개정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역 대표성을 강화한 상원은 지방 발전의 최후 보루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을 달성하는 지름길이다.
  • [길섶에서] 늦봄, 평화를 심다/박록삼 논설위원

    꽤 오랫동안 우리 삶에 분단은 너무도 당연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했지만, 바라는 건 북한의 붕괴였다. ‘북한과 공존’은 상상 바깥 영역이었다. 늦봄 문익환 목사(1918~1994)가 1989년 첫날 새벽 지은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에서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며 노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낭만적 통일운동가의 치기로 치부됐다. 그는 그해 3월 상상을 행동으로 옮겼다.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 포옹했고, 논쟁했고, 격려했다. 남북, 해외 모두 화들짝 놀랐다. 돌아와 7년형을 선고 받았고, 공안정국 한파가 몰아쳤다. 하지만 늦더라도 봄은 그리 찾아오는 법. 분단과 냉전에 길든 이들의 가슴 속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 민간 통일운동의 물꼬 또한 서서히 열렸다. 꼬박 30년이 흘러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한반도 평화는 그가 꿈꾸고 퍼뜨린 세상이다. 남북과 북·미 정상이 만나는 길은 그가 곳곳에 박아놓은 이정표를 따라간 걸음이다. 더이상 전쟁 위협은 한반도에 없어야 하리라. 오는 18일은 문 목사가 세상을 떠난 지 25주기 되는 날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기다리며 구름 위에서 덩실거릴 듯하다. “것 봐. 내 뭐랬어. 통일은 다 됐다니까.” youngta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족보도서관 설립, 시장 바뀔 때마다 달라집니다…우리 핏줄의 역사 문제 아닙니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족보도서관 설립, 시장 바뀔 때마다 달라집니다…우리 핏줄의 역사 문제 아닙니까”

    65년 족보 인쇄 외길 회상사 박병호 대표가 말하는 ‘족보’“6층에 보관하고 있는 족보 책이 한 3만~4만 권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필름으로도 그만큼 보관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문중의 족보는 여기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족보 인쇄가 사양길에 접어들다 보니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관하는 족보는 개인 재산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핏줄 역사가 담긴 문화재입니다. 대전시가 족보도서관 만들어 영구보관한다고 이야기 나온 게 십수년이 됐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6층 회상문보원 서가엔 900여가문 족보 빼곡히 꽂혀 65년째 족보 인쇄의 외길을 걷는 대전시 동구 중동 회상사(回想社)가 족보 보관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1일 박병호(73) 대표를 찾았다. 회상사 겉모습은 출판사라기보다는 창고와 같아 보였다. 건물 1층 사무실에 석유난로를 켜고 직원 몇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에 ‘박병호 대표를 만나러 왔다.’라고 했더니 한쪽 책상에 앉아있던 ‘내가 박병호입니다.’라며 일어나 기자를 맞았다. 1층 사무실을 둘러보니 벽에는 철제 캐비닛이 몇 개 서 있고, 책상만 몇 개 놓여 있었다. 박 대표는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더니 석유난로를 옮겨왔다. 족보 책은 보이지 않았다. 족보 전문 출판사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족보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나가자고 했다.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갔다.6층엔 회상문보원(回想文譜院)이란 간판 아래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서화 냄새가 어우러진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 안에는 금천 강씨(衿川 姜氏)부터 900여 가문의 족보가 가나다순으로 서가에 꽂혀 있었다. 한쪽 벽면엔 각종 문집과 향교지 등도 보관하고 있었다. “1991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족보도서관인 여기에 보관된 족보가 한 3만~4만 권쯤 될 겁니다. 2007년 제가 취임한 후로 대동보(大同譜) 500여종, 세보(世譜·일명 파보) 1500여종, 가승보(家乘譜) 900여종 등 모두 600만 부 이상 발간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휘호도…윤보선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납 활자본도 고스란히…희귀 벽자 700여개도 보관“하루 족보 35쪽 입력…족보 한권은 통상 800쪽”5층엔 선친 박홍구의 아호를 딴 춘전(春田)기념관이 있다. 여기에는 족보를 받은 문중에서 기념으로 선물한 고서화, 병풍 등이 가득했다.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화친(和親)’도 보였다. 1983년 윤보선 전 대통령의 해평윤씨 대동보 발간 기념 친필 휘호,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 백자 도자기,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상사 방문 및 친필 실사구시(實事求是) 휘호도 받아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따로 연락이 없었다고 말한다. 4층엔 납으로 인쇄하던 시절의 활자본이 보관돼 있었다.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은 옥편에도 안 나오는 한자를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읽는 법은 당사자에게 물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한자로 짜잡기해서 글자를 만든 벽자(僻字)도 700개 남짓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선 족보를 만들기 위한 인쇄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여성직원이 기존의 족보 책을 뜯어내 하나하나 컴퓨터로 입력하고 있었다. “몇십 년 전에 납 활자로 인쇄한 족보는 컴퓨터 데이터가 없어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입력합니다. 하루 8시간 작업하면 35~40페이지 정도 입력합니다. 족보 만들 때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보통 족보 한 권이 800페이지 전후이니 수작업의 번거로움이 짐작된다. 창문 너머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저곳엔 족보 필름이 책으로 환산하면 3만~4만 권이 보관돼 있지요.”그가 5층과 6층의 족보도서관과 기념관을 보여주고 나서 문을 자물쇠로 굳게 잠그고 나서 다시 확인했다. “도서관이라면서 왜 이렇게 잠그느냐”라고 물었다. “도둑이 들어서…. 과거엔 사람들이 와서 열람도 하고 했는데 이젠 인력이 부족해 관리가 소홀하니 족보도 훔쳐가고 고서화도 훔쳐가고 해서…. 도난당한 족보만 해도 수천 권에 이를 갑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도 도둑맞은 겁니다. 모사품을 새로 걸어둔 것이지요.” 그리고 보니 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아무렇게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낙관도 어쩐지 흑백이더라. 체계적 보관과 관리가 시급해 보였다. “도난당한 족보 수천권…박정희 대통령 휘호도 도난당해체계적 관리, 영구보존 대책 시급…시장 박뀌면 백지화”“이렇게 관리상에 어려움이 많아도 이 자료들이 나름대로 귀중한 문화재 아닙니까. 소멸하면 혈족에 관한 국가적 문화재가 사라지는 것이니 출판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를 빼고 모든 자료를 대전시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영구보존하려는 것이죠. 회상사가 설립된 1954년부터 출판한 450문중의 대동보와 14문중의 인터넷 족보, 600문중의 전자족보, 800여 권의 한문 서적 등을 기증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전시가 족보도서관을 만든다고 이야기가 나온 지 십수년이 됐습니다만 확약서를 쓰지 않은 탓인지 여태까지 잘 안 되고 있단다. “우리 회상사가 대전시에 기증할 족보와 고서화 등의 자료를 보관할 장소가 500~600평 정도 필요하지만 대전시문화원이 제공하려는 공간은 260평 정도로 협소하고, 관리·보존이나 재원 마련 계획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바뀌면 이런 계획마저도 백지화됩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요즘 일거리가 많은지 물었다. “1970~80년대 족보 만들기가 붐이었지요. 전쟁통에 불타거나 잃어버린 집안이 많아서…. 그때는 집성촌을 찾아가 남아있는 족보를 모아서 복원하곤 했지요. 족보 인쇄를 시작하면 문중에서 개판식(開版式)을 성대히 치렀습니다. 특수(特需)를 톡톡히 누렸지요. 그런데 요즘엔 누가 족보 만들려고 하나요. 그래도 제대로 족보 만드는 기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텐데….” 최근에 한글을 병기한 족보에 조상의 사진도 넣는다고 한다. 일부 문중은 전자족보, 인터넷 족보를 운영한다고 귀띔했다. “한때는 디스크나 CD롬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요즘 컴퓨터엔 CD플레이어가 부착돼 있지 않으니 보려면 불편합니다. 첨단기술이라는 게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종이 족보는 보관만 잘하면 수백 년 흘러도 볼 수 있고 편리합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납 활자로 족보를 만드는 기업, 200년 역사의 회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부 문중 전자족보, 인터넷 족보 운영종이 족보 보관 잘하면 수백년 문제 없어”요즘 또 다른 고민은 가업인 족보 인쇄를 맡아갈 아들을 찾는 것이다. “사양 산업으로 돈벌이가 잘되지도 않으니, 아들들이 서로 맡지 않으려 합니다. 아들이 넷이 있는데 서로 상의하고 있겠지요.” 그도 1954년 설립된 회상사를 2007년에서야 맡았다. “선친이 장남인 제게 이 일을 물려줄 생각에 공고에 가라고 해서 대전공고에 들어갔죠. 그때만 해도 족보 만드는 일을 계승할까 했는데, 어느 날 경쟁업체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쳐들어와서 큰 싸움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걸 보고 오만 정이 다 떨어져, 선친의 뜻을 어기고 약대로 진학했습니다. 도립 충남홍성병원에서 약제과장을 지내다 약국 개업도 했지요. 그때도 선친이 회사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저는 뿌리치고 시의원과 초대 및 3대 대전 동구청장을 지내며 제 길을 갔습니다.” “구청장 임기 끝나고부터 회상사 일을 맡았습니다. 선친이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그때가 2007년 1월이었습니다. 직원들 퇴직금도 밀린 상태였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한창 때는 직원이 150명도 넘었는데 …. 이 일대가 한창때 우리가 일거리를 주면서 생겨난 업소들 거리였습니다. 이젠 어엿한 ‘인쇄 골목’이 됐지만.” 족보를 만들면서 봤거나 겪었던 특이하거나 재미난 성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박 대표는 “그 문중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며 한사코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어떤 문중에서는 족보가 발간되자마자 이를 받아들고 회상사 건물 앞 계단에서 조상님들께 고하는 고유제를 지냈습니다. 또 직원들 한명 한명 붙잡고 감사하다고도 인사했지요.” “한창 시절, 경쟁업체가 도끼 들고 쳐들어와만정 떨어져, 가업 계승 대신 구청장 길 걸어발간된 족보 들고 제사 지내는 문중도 있어”회상사엔 세가지 불문율이 있다. 먼저 족보 내용이 인쇄된 파지는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또 인쇄된 용지는 밟고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족보는 ‘모신다.’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족보 유래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왕실의 제왕년표(帝王年表)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 의종 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시초다. 민간 족보는 1423년(세종 5년)에 나온 문화류씨(文化柳氏)의 영락보(永樂譜)인데 기록만 전한다. “회상사에는 선친의 피눈물이 들어있습니다. 이를 가업으로 잘 넘겨주는 것이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선친은 충북 제천에서 ‘권학사’라는 서점을 운영하며 돈을 좀 만졌습니다. 6·25때 총부리를 겨누고 협박하는 인민군에게 돈을 빼앗겼고, 다시 방첩대는 인민군에게 돈 줬다고 선친을 불러다 엄청나게 때리고 재산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전쟁 이후 권력 기관에 의해 괴롭힘을 무척 많이 당했습니다. 선친이 한번은 어린 저를 붙잡고 치욕적이라며 부들부들 떨며 우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맨손으로 아무도 모르는 대전으로 나왔던 거죠. 인쇄소에 1년 남짓 다니시다가 족보를 인쇄할 생각을 하셨던 거죠. 그리곤 전국 최대의 족보 인쇄 회사를 일구셨습니다.” 가짜 족보 문제도 많다고 얘기를 꺼냈다. “우리는 족보를 출판하는 인쇄업자입니다. 족보 내용은 문중의 종친회장인 발행인의 승낙 없이는 손대지 못합니다. 문중의 어르신들이 와서 돋보기를 들고 하나하나 다 교정을 봅니다. 족보는 정확성입니다. 그것이 신뢰이고, 우리의 철칙입니다. 요즘 가짜족보 문제는 문중 재산 즉 조상 땅 싸움 때문에 발생합니다. 문중에서 법정 소송이 벌어지면 족보가 증거로 채택됩니다. 검찰에서 우리가 보관한 족보를 복사해 간 적이 몇번 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족보에 끼워달라는 부탁을 몇 차례나 받았습니다만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최근 가짜 족보 문제는 문중 재산 싸움 탓우린 출판업자, 발행인 승낙 없이 수정 못해족보는 과거 아닌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그에겐 족보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가업을 승계하는 차원을 넘었다. “고리타분한 핏줄, 즉 혈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족보는 그런 면에서 현재의 나와 조상을 이어주는 네트워크인 셈입니다.” 한편, 2015년 통계청 조사결과 한국인의 성씨는 모두 5582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5인 이상인 성씨는 530여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00년대의 270여개 성씨와 비교하면 급증한 것이다. 다문화의 영향으로 외래 성씨가 급격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삼국시대부터 일부 계층이 성을 갖게 되었다. 한국인 모두 성을 갖게 된 것은 110년 전인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대전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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