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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우치 효과’... 美 의대지원 몰린다

    ‘파우치 효과’... 美 의대지원 몰린다

    올해 의대 지원 지난해보다 18% 올라스탠포드 90명 모집에 1만 1000명 응시정치보다 과학으로 방역한 파우치 효과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도 정치적 견해보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해 온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의 영향으로 의대지원자가 크게 늘었다. 미 언론은 이른바 ‘파우치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국 공영라디오(NPR)은 7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올 가을 대학 등록비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했지만 ‘파우치 효과’로 의과대학에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지원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의과대학협회(AAMC)에 따르면 올해 의과대 지원자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18% 늘었다. 특히 스탠포드 의대는 90명 모집에 1만 1000명 이상이 몰렸다. 지난해보다 50%나 늘어난 수치다. 보스턴 의과대학도 110명을 뽑는데 지원자가 1만 2024명이 몰려 지난해보다 27% 증가했다. NPR은 의대 입학사정관들이 올해 나타나는 의대 지원자 증가 현상을 ‘파우치 효과’라고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보스턴 의대 입학처장은 “(학생들이) 파우치나 지역사회의 의사들을 보고 ‘정말 대단해. 이게 내가 변화를 만들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파우치 소장은 NPR에 “파우치 효과라기 보다 의사라는 직종이 개인 건강과 세계 보건에 희망적이고 성공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한다”며 “하지만 청년들을 의대에 입학시키는 효과가 있다면 내 이름을 붙여도 무관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2033년까지 5만 4100명에서 13만 9000명에 이르는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 중 40%가 향후 10년간 정년에 이른다. 의대 졸업생들이 지는 학자금 대출은 평균 24만 1560달러(약 2억 6000만원)다.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 발병 초기 트럼프 대통령이 “저절로 바이러스가 없어질 것”이라고 경시하고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과를 과장하는 등의 반응을 보일 때 과학에 근거해 대처하면서 중심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파우치 소장을 유임하는 한편 대통령 수석보좌관 업무도 맡겼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현장] 민주, ‘野 무력화’ 공수처법 7분 만에 일사천리 통과, 손바닥으로 “탕탕탕”…“도둑질”(종합)

    [현장] 민주, ‘野 무력화’ 공수처법 7분 만에 일사천리 통과, 손바닥으로 “탕탕탕”…“도둑질”(종합)

    법사위 전체회의 상정 7분 만에 처리윤호중, 야당 의원 반발에 미동도 안 해윤호중, 안건 표결 부쳐 과반 찬성 의결 선포의사봉 아닌 손바닥 쳐 처리…최강욱도 찬성표與, 급히 처리하다 절차적 실수 범하기도비용추계 생략 의결 잊었다 뒤늦게 처리김도읍 “앞으로 법사위, 민주당끼리 해라”9일 본회의 자동 상정, 강행 처리될 듯추미애, 취재진 질문에 일절 답 않고 떠나더불어민주당이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날 오전 법사위 안건조정위와 전체회의가 열린 지 2시간 만이다. 전체회의가 열린 지 단 7분 만에 속전속결로 개정안이 처리됐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까지 몰려가 막으려고 했지만 수적 열세에 할 수 있는 건 고성을 지르고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손을 막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안건조정위서 공수처 처리한 지 30분 만에 법사위 전체회의 강행주호영 “민주화 운동 했다면서 말이 돼” 애초 오전 9시 시작할 예정이던 안건조정위는 시작부터 회의 공개 여부를 두고 30여분 동안 지속된 여야 신경전에 지연됐다. 본격적인 논의는 1시간 만에 종료됐다. 여권 조정위원 4명의 찬성으로 개정안은 안건조정위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사위 회의장 앞으로 모여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민주당은 오전 10시 30분 안건조정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가결한 지 불과 30여분 만에 전체회의를 열었다. 애초 낙태죄 관련 공청회가 예정된 전체회의였지만,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공청회에 앞서 안건으로 공수처법을 올렸다. 법사위 회의장 복도에 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하나둘 전체회의장으로 들어왔다. 주호영 원내대표와 법사위 간사 김도읍 의원, 장제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 위원장 주변으로 몰려들어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지만 윤 위원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개정안 상정을 강행했다. 윤 위원장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하자 주 원내대표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 이게 말이 되냐”면서 “자기(민주당)들이 법 만들어놓고 아직 조정이 안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과 장 의원도 안건조정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이 조정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윤 위원장에게 큰 소리로 항의했다.전주혜 “토론 신청한다, 안건 완결 안돼”윤호중 “진행할 상황 아냐, 토론 종결!”주호영 “도둑질도 절차 지켜야 한다” 與간사 백혜련, 항의하는 전주혜·조수진목소리 뚫으려 한껏 목청 높여 의결 보고조수진이 마이크 내리자 백혜련 노려봐 그럼에도 윤 위원장은 절차에 따라 여당 간사이자 안건조정위원장 백혜련 의원에게 법안 심사보고를 진행시켰다. 심사 보고 중에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과 같은 당 조수진 의원이 백 의원 앞에서 강하게 항의했다. 백 의원도 눈앞에서 항의하는 전 의원과 조 의원의 목소리를 뚫으려 한껏 목청을 높여 가며 의결 내용을 보고했다. 백 의원의 발언 중간에 조 의원이 마이크를 내리자 백 의원은 조 의원을 노려보면서 심사보고를 끝까지 이어갔다. 이후 윤 위원장은 법안에 대한 대체 토론 절차를 진행했다. 전주혜 의원이 5분의 발언 기회를 잡았지만 야당 의원들의 고성 속에 토론을 이어가지 못했고 윤 위원장은 그대로 토론을 종결 시켰다. 전주혜 의원은 이후 토론을 신청해 “오늘 회부된 안건은 조정이 완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윤호중 법사위원장은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로 장내가 정리되지 않자 “지금 토론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므로 토론을 종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회의장 안에 있던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윤 위원장을 향해 “토론을 종결하는 게 어디 있나.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다. 주 원내대표도 “윤호중 위원장 이러면 안 된다. 도둑질을 해도 절차는 지켜야 한다”며 윤 위원장의 진행을 비판했다. 더 커진 항의의 목소리를 뚫고 윤 위원장은 안건을 표결에 부쳐 과반 찬성으로 의결을 선포했다. 윤 위원장은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한 기립 표결 절차에 돌입했고 여당 소속 법사위원만 모두 일어나 찬성표를 던졌다.‘김진애 사보임’ 최강욱도 찬성표주호영 “최강욱이 야당이냐”윤호중 “야당이다” 응수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의 법사위 사보임으로 상임위가 바뀐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도 이날 찬성표를 던졌다. 이 때 주 원내대표가 “최강욱이 야당이냐”고 따지자, 윤 위원장은 “야당이다”라고 응수했다. 여야 동수 총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3분의 2 (4명) 이상 찬성으로 안건 처리가 가능한데, 민주당 의원 3명에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최 대표까지 비교섭단체 몫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쉽사리 통과된 점을 비판한 것이다. 이후 윤 위원장은 오전 11시 12분쯤 의사봉이 아닌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공수처법 개정안을 법사위에서 통과시켰다. 법사위 전체회의 개의 7분 만에 공수처법 개정안이 의결된 것이다.野 “날치기도 이런 날치기가 없다”“의원 되니 세상이 안 무섭냐”조수진 “더불어독재하세요” 공수처법이 의결되는 순간 법사위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안건조정위에서 제대로 조정되지 않았다는 야당의 계속된 항의에 대해서도 윤 위원장은 “조정위에서 의결 처리 됐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게 국회냐,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법안이 의결되자 조수진 의원은 “더불어독재하세요”라며 거세게 여당을 비판했고, 김도읍 의원도 “이제 윤 위원장과 민주당 의원, 최강욱 대표 이렇게 법사위를 운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원장석을 둘러싼 국민의힘 의원들은 “날치기도 이런 날치기가 없다”, “의원 되니 세상이 안 무서우냐”, “대명천지에 이런 독재가 있을 수 없다”고 항의를 거듭했다.윤호중 “공수처법 앞서 비용추계 생략 의결해야 하는데 시끄럽게 해 생략”장제원 “날치기 하니까 실수를 하지”野 “야당은 없나. 이게 민주주의냐” 혼란 속에서 윤 위원장이 절차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여당이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면서 비용추계에 대한 논의와 의결이 생략된 채 의결한 것이다. 윤 위원장은 법안을 의결한 이후 다시 법사위원들에게 비용추계 생략에 이의 여부에 대해 질문한 뒤 기립 표결로 의결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위원장이 이견을 좁혀야 한다. 아무것도 조정된 것이 없다”며 “재정추계 신청을 하는 것을 상정하고 논의하는 것도 안됐다. 부칙은 무효냐”고 따져물었다. 그러자 윤 위원장은 의결 후 “공수처법 의결에 앞서서 비용 추계를 생략하는 의결을 해야 했는데 옆에서 시끄럽게 하셔서 생략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여쭙겠다. 공수처법의 비용추계서 생략이 이의 없으시냐”고 물은 뒤 “과반 위원이 이의 없다고 하므로 생략됐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장제원 의원은 “날치기를 하니까 실수를 하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장 의원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한 거 아니냐”면서 “민주당 혼자서 다해라. 오늘부터 법사위는 없다”고 했다. 같은 당 김도읍 의원은 “앞으로 법사위원회 윤 위원장하고 민주당끼리만 하라. 야당은 없냐. 이게 민주주의냐”고 항의했다. 다른 의원들은 “인간도 아닌 사람들이랑 무엇을 하느냐”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법사위에서 더이상 논의할 것이 없다는 뜻을 밝힌 뒤 법사위장에서 모두 이석했다.주호영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지 않은다음에야 어떻게 이렇게 무도한 짓 하나” 야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법사위장에서 나온 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는 야당이 필요 없는 국회가 돼 버렸다”며 “민주당이 청와대의 오더(지시)에 의해 야당이 아무리 의견을 제시해도 밀어붙인다. 저희는 법사위 전체회의장 각 의원 책상 앞에 붙어 있는 명패를 모두 떼어서 윤 위원장에게 반납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야당이 할 일이 없어졌다”며 “청와대와 민주당이 책임지고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독재에 대한 심판은 받아야 한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은 당명에서 민주를 빼야 한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이렇게 무도한 짓을 할 수 있느냐”며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또 이렇게 온갖 절차를 위반하는 이런 짓을 국민이 똑똑히 봤을 것”이라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오늘 이렇게 공수처법을 무도하게 개정함으로써 폭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9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본회의에서도 수적 우위를 앞세운 여당을 103석에 불과한 국민의힘이 막기는 어렵다. 한편,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의결된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등에 대한 취재진에 물음에 일절 답하지 않고 떠났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그리스 비극 만난 판소리, 애달픈 恨이 터졌다

    그리스 비극 만난 판소리, 애달픈 恨이 터졌다

    옹켕센 연출 싱가포르·네덜란드 등서 찬사 인물별 악기 하나… 소리꾼 에너지에 집중10년간 이어진 전쟁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패전국 여인들에겐 더욱 잔혹한 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들이 전쟁으로 죽고 떠난 뒤 여인들은 승전국 노예로 끌려 갈 운명에 놓였다. 폐허가 된 고국을 떠나기 전 몇 시간, 피끓고 몸서리치도록 아픈 한(恨)이 절절한 판소리와 만나 터져 나온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판소리라는 장르가 가진 힘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작품이다. 우선 무대를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한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애초 출발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만큼 서구는 물론 여러 문화권에서 익숙한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을 소재로 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불씨가 돼 트로이와 그리스·스파르타 연합군이 10년간 벌인 참혹한 전쟁의 상흔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충분했다. 싱가포르예술축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던 옹켕센의 연출로 2016년 11월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뒤 2017년 싱가포르, 2018년 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의 페스티벌 무대에서 찬사를 받았다. 올해 프랑스와 미국 공연도 초청됐지만 코로나19로 이뤄지지 못했고 지난 3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국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전 세계로 넓힌 무대를 가득 채우는 음악은 오롯이 우리 전통 판소리였다. 흰색 바탕 무대와 여인들의 흰색 의상은 매우 단출하다. 움직임도 최소화해 소리꾼들의 에너지를 온전히 소리에 담았다. 판소리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알리고 싶다는 옹 연출의 주문도 더해진 결과다.무대 앞에 7개의 악기가 놓였지만 반주도 고수 한 사람만 있는 판소리답게 캐릭터별로 하나의 악기만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트로이 마지막 왕비 헤큐바(김금미 분)의 강렬한 소리를 거문고가 묵직하게 받쳤고 갓난아기 아들까지 빼앗기는 안드로마케(김지숙 분)의 애끓는 심정은 아쟁이 따라갔다. 복수심에 불타는 공주 카산드라(이소연 분)는 대금이 짝을 지었다. 전쟁의 원인이자 트로이 멸망의 씨앗이 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김준수 분)는 유일하게 국악기가 아닌 피아노 반주로 소리가 이어졌다. 트로이 여인들과의 경계를 뚜렷이 한 것이다. 배삼식 작가의 글을 바탕으로 안숙선 명창이 작창하고,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율을 만들어 애달픈 이야기를 견고히 쌓았다. 대본과 악보에 그리지 못한 무수한 감정은 소리꾼들이 거칠면서도 뜨거운 울림으로 터뜨렸다. 처절한 분노와 슬픔이 극대화되는 110분, 결국 신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운명 앞에 선 여인들의 절규는 관객들의 기력까지 쏙 빼놓을 만큼 몰입도가 높다. 헤큐바와 여인들은 끝내는 “버티어 서라! 우리는 누구도, 아무도, 제 발로 걸어 트로이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친다. 어떤 운명이 닥쳐도 버티어 선다는 트로이 여인들의 힘이 어쩐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용기 같기도 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심훈은 1930년에 ‘필경’(筆耕)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당시 일제에 짓밟혔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원고지에 붓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으로 말하고자 했다. 이는 후에 심훈이 충남 당진으로 낙향해 지은 집 ‘필경사’의 당호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제 치하의 농민들의 현실을 필경하듯 지은 소설 ‘상록수’를 창작한다. 그는 어찌하여 시도 집도 모두 ‘필경’이라 칭했던 것일까. 게다가 또 무슨 이유로 당대의 인기 소설가이자 시인, 연극과 영화배우이면서 감독이고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경성방송국의 아나운서이자 프로듀서, 신문사의 기자이기도 했던 팔방미남이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썼던 것인가. 그 이유를 찾아 충남 당진에 있는 심훈의 필경사로 가 보았다.1901년 경기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난 심훈의 본명은 심대섭이다. 1926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필명인 ‘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흔히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지만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학교에선 퇴학을 당하고, 법원에선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미 그 당시 복역한 지 8개월이 지난 뒤였다. 출소 후 중국으로 건너가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고 이때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등과 교류하며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조선에 돌아와 최초의 영화소설을 썼고, 영화 ‘장한몽’의 이수일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기세를 이어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지만 심훈이 제작한 영화가 식민지의 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이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와 신문 연재소설을 쓰며 영화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울분을 토해 냈는데 이 역시도 일제에 의해 연재 중단 조치를 당하게 된다. 다시 식민지 조선의 처지를 암시했다는 이유였다. 연이어 1930년 3·1운동을 기념하고자 쓴 시 ‘그날이 오면’을 완성해 시집으로 출간하려던 계획 역시도 출간금지에 처하면서 무산됐다. 이때 출간하지 못한 시집은 심훈의 사후 13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시집 ‘그날이 오면’의 이야기다.“삼십이면 선(立)다는데 나는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사십의 마루터기 위에 섰습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이 좀썰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마를 타게 되는 날까지의 내 정감의 파동은, 이따위 변변치 못한 기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시집 ‘그날이 오면’의 머리말 중에서) 3·1운동 이듬해 경성방송국 문예담당 기자로도 입사했지만 사상 문제로 퇴직한 심훈은 아버지와 친척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던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다. 장조카인 심재영의 집에서 2년여간 기거하면서 필경사의 터를 닦고 집을 짓는다. 이후 필경사에서 쓴 소설 ‘상록수’가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돼 그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소설가 심훈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언제나 푸르른 나무의 눈, 계몽 소설 ‘상록수’는 당진 부곡리에서 심재영이 벌이고 있던 야학운동과 공동경작회 활동을 토대로 경기도 반월면에서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다 요절한 최용신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심재영은 박동혁으로, 최용신은 채영신으로 등장했다. 소설은 심훈이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측에서 벌인 문자보급운동을 소설의 첫머리에 두고 시작한다. 일제가 추진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교육이 금지되고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기 시작하던 그때, 농촌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훈은 이 소설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계몽운동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중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의 러브 라인만 심훈의 상상이고 그 외의 모든 정황들은 그 당시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 넣어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소설 ‘상록수’ 중에서) 심훈은 이렇게 빼앗긴 나라의 선각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불어넣어 농촌계몽소설을 썼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동아일보의 판매 부수가 늘었고, 신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판대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소설가 심훈의 인기와 계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방증한다. 심훈은 동아일보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상록학원에 기증해 더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힘을 썼다. 1936년 상록수의 단행본 작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뒤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다섯 해 짧은 생을 마친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과 호외 당진에서 잠시 상경했던 심훈은 때마침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는 신문의 호외를 접하게 된다. 너무도 감격에 겨웠던 나머지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호외의 뒤쪽에 썼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 작품은 당진의 심훈기념관에 손기정의 우승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중에서)●바다 옆에 놓인 심훈기념관 심훈이 일생 동안 부르짖었던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가치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의 산실인 당진의 필경사 주변으로는 심재영 고택과 심훈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그날이 오면’ 기념비와 심훈의 동상도 오롯하게 서 있는 곳이다. 심훈의 생전에는 필경사 바로 앞까지 바다였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개간된 이후로는 바다가 조금 멀어졌다고 한다. 필경사의 창은 바다를 향해 나 있는데, 그 안에 심훈이 썼던 책상이 보존돼 있다가 훼손이 심해지자 기념관 내부로 책상을 옮겼다.한때 교회로 이용되기도 했던 필경사는 유족들과 심훈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다시 본연의 필경사로 돌아왔다. 서른다섯 해를 살다간 그의 사후에 서른여섯 해의 두 배가 훌쩍 넘도록 이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널리 회자되는 것은 그의 다양한 활동만을 이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녔던 민족성에 대한 고취,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농촌계몽운동과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일들과 그의 시와 소설이 만난 자리의 깊은 울림이 아닐까. 상록학원은 현재 상록초등학교가 돼 여전히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의 배움터로 남아 있다. 이것이야말로 상록수이자 심훈 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한 글자씩 배운 글로 모두가 입을 모아 읽는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 그리고 심훈.바닷가 옆 필경사의 자리는 심훈만의 터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든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받아 적는 모든 손길들이 주인인 곳이다. 누구든 와서 무엇이든 깨우치고 가는 자리, 그리하여 다시 이 자리는 이파리가 푸른 나무 밑에 앉아 어쩌면 아직도 오지 않은 ‘그날’을 헤아리며 하늘의 뜻을 받아 적는 자리인 당진 심훈기념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산업부 공무원 2명 구속 검찰 칼끝 청와대로 향하나(종합)

    산업부 공무원 2명 구속 검찰 칼끝 청와대로 향하나(종합)

    월성 1호기 원전과 관련한 내부 자료를 대량으로 삭제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혐의를 받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 중 2명이 구속됐다. 이제 검찰의 칼끝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청와대 등 윗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과 감사원법 위반 등 혐의로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 A(53)씨와 부하직원(서기관) B씨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오 부장판사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 B씨에게 월성 1호기 관련 문서 삭제를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지난해 12월 2일 오전에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이 잡히자 전날인 일요일 오후 11시쯤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444건을 지웠다고 감사원 등은 밝혔다. 당시 B씨는 중요하다고 보이는 문서는 나중에 복구해도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한 뒤 없애다가, 나중엔 자료가 너무 많다고 판단해 단순 삭제하거나 폴더 전체를 들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감사원에서 “감사 관련 자료가 있는데도 없다고 말하면 마음에 켕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과장(C씨)이 제게 주말에 자료를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밤늦게 급한 마음에 그랬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다른 부하직원인 과장 C씨의 영장은 기각됐다.조만간 대전지검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 전 장관과 당시 청와대 등 윗선 관여나 지시 여부가 검찰이 보는 이번 원전 수사의 핵심이다. 산업부 삭제 문서에 청와대 협의 자료 등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었던 것이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확인된 만큼 수사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대전지검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채 사장 휴대전화 등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파견 행정관과 사회수석실 산하 기후환경비서관실에 파견돼 근무한 산업부 소속 행정관 휴대전화도 압수한 바 있다. 앞서 대전지검이 수차례 관련 공무원 구속 필요성을 대검에 보고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이후 대검이 이 사안을 뭉갰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윤 총장은 직무 복귀 하루 만에 영장청구를 승인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여권이 원전 수사를 ‘정치 수사’로 규정하고 맹렬한 공세를 펼쳤던 가운데, 이번 영장 발부로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정당성을 얻은 격이 됐다. 한편 직원 2명이 구속된 산업부는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한 고위 공무원은 “총론으로 보면 이 사안은 대통령 공약사항과 국정과제 이행에 관한 것이고, 기존의 원전·석탄 중심 에너지 구조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이런 총론은 온데간데없고 자료삭제만 부각됐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특히 산업부 내부에서는 원전 혹은 에너지 관련 부서에 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앞으로 에너지 차관이 신설되는 등 조직이 커지고 업무도 많아질 예정이지만, 정쟁에 휘말릴수 있다는 우려에 산업부 직원들 사이에 ‘탈원전’이 일고 있는 셈이 됐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평양서 짐싸는 국제기구 직원들…코로나 때문?

    평양서 짐싸는 국제기구 직원들…코로나 때문?

    北 상주 국제적십자 외국인 직원 전원 철수 북한에 상주하면서 활동하던 국제구호기구 직원들이 코로나19 방역 강화 등으로 최근 북한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나줌 이크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아시아태평양담당 대변인은 지난 3일 “북한에 남아있던 마지막 국제 요원들이 2일 북한을 떠났다”고 밝혔다. ICRC는 평양의 국제적십자위원회 사무소는 계속 운영하지만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활동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또 진행중인 대북지원 프로젝트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적십자사가 관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크발 대변인은 또 “(적십자 소속 국제요원들이) 다른 기구들의 국제요원들과 대사관의 외교사절과 함께 북한을 떠났다”면서 구체적인 규모는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도 지난 2일 평양에 상주했던 유엔 기구 직원을 비롯해 약 40명의 외교관 및 구호 기관 직원들이 육로를 통해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 단둥으로 갔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평양에 남아있는 구호 기관 외국인 직원은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 2명, 아일랜드 비정부기구인 ‘컨선 월드와이드’ 1명 등 3명뿐이다. 북한은 현재까지 보고된 코로나19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되자 방역을 최고 수준은 ‘초특급’ 단계로 격상하고 국경 봉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내 상점이나 음식점 등이 대부분 문을 닫고 업무도 비대면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이번엔 장난감 경매… 비대면 문화 선도하는 중구

    이번엔 장난감 경매… 비대면 문화 선도하는 중구

    구청장이 직접 홈쇼핑 코너 장난감 소개“수익금은 불우이웃에… 코로나블루 위로”‘따로 또 같이 건강 걷기’ 역대급 대회 호평무인민원발급기 등 디지털 행정도 강화IoT·AI 등 활용한 비대면사업 속속 발굴“자, 주민 여러분. 대상 연령 24개월 이상, 정상 판매가격 23만 5000원 하는 미니주방놀이대를 지금 판매합니다. 수익금은 전액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됩니다. 단돈 3000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서울 중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는 특별한 동영상 녹화가 진행됐다. 서양호 중구청장이 ‘중구&토이 플리마켓’에서 목청 높여 중고 장난감 경매를 진행했다. ‘깜짝 셀러’로 등장한 서 구청장은 ‘양호’s 홈쇼핑’ 코너에서 사회자와 함께 시종일관 밝게 웃으며 장난감을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 행사는 서울 중구 공식 유튜브 채널 을지로전파사에서 생중계됐다. 채팅창에는 쉴 새 없는 대화와 갖가지 이모티콘, 경매 금액이 연이어 올라왔다. 동시접속자 수는 171명이었다. 서 구청장은 3일 “코로나블루를 겪고 있는 주민들이 많은데 이런 기회를 통해 서로가 함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하며 긍정 에너지를 받는 시간이 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비대면 문화를 선도해 가는 중구의 이런 행보가 유독 눈에 띈다. 중구의 비대면 축제는 주민들의 열띤 호응 속에서 이어졌다. 지난 10월 29일부터 개최된 ‘따로 또 같이 비대면 걷기 대회’는 7000여명이 신청해 5000여명이 함께 참여한 역대급 걷기 대회가 됐다. 콩나물을 키워 기부하는 ‘온(溫)세상 우리동네 캠페인’은 중구민 1100명의 참여로 저소득 노인들의 한 끼 반찬거리를 만들어 내는 등 속깊은 의미까지 더해졌다. 행정 업무도 비대면으로 속속 전환되고 있다. 중구 15개 모든 동에는 무인민원발급기를 설치해 비대면 서류발급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지방세 카톡 상담을 비롯해 스마트무인도서관, 인공지능(AI) 재활용품 무인회수 자판기 설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활용한 무인공유주차공간 확대 등 주민들의 편의를 향상시킬 수 있는 분야부터 하나씩 디지털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지난 10월 8일 신설한 ‘디지털행정혁신팀’이다. 디지털이나 비대면이 생소한 주민을 위해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주민들이 이런 기회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무인화, 사물인터넷(IoT), AI를 활용한 비대면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갈 방침이다. 서 구청장은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디지털 행정 구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예산 반대 있습니다”…원내 1인 정당 용혜인·조정훈의 반대표

    “예산 반대 있습니다”…원내 1인 정당 용혜인·조정훈의 반대표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거대 양당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자랑 틈바구니에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2021년도 예산안 반대를 외쳤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해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원내 1인 정당으로서 거대 양당과는 다른 목소리로,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용 의원은 지난 9월 4차 추가경정예산 처리에 이어 2일 내년도 예산안 본회의에서도 반대 토론에 나섰다. 용 의원은 전 국민 보편지급이 이뤄졌던 1차 재난지원금을 예로 들며 “1차 재난지원금은 국가가 재난 상황에 단 한 명의 국민도 뒤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고 했다. 또 “백만원이란 금액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의 경험이었고, 국가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상 초유의 재난이라면서 국가는 왜 이렇게 낡은 방식에 집착하느냐”며 “선별하면 더 효율적이고 추석 전에 지급할 수 있다던 2차 지원금은 왜 아직도 신청조차 끝내지 못했느냐”고 일침했다. 당찬 초선 의원의 토론에 의석에서도 응원의 박수가 나왔다.조 의원도 입장문을 통해 “처음으로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졌다”며 내년도 예산안이 양극화 해소에 미흡하고,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거대 양당의 밀실 짬짬이 심사 절차도 문제 삼았다. 조 의원은 “대기업을 총괄 기관으로 하는 예산 수백억원을 포함해 정부 주도 경제의 전형인 ‘기업보조금’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며 “반면 개인과 가계에 대한 보조금은 인색하고 한국형 뉴딜 예산에서도 양극화 해소는 주변으로 밀렸다”고 지적했다. 3차 지원금 예산에도 “규모나 방식에서 마지못해 찔끔찔끔, 그것도 선별지급 하다 보면 결국엔 재정안정성도 잃고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내수진작도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당 간사 협의로 상임위 소위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한 예산이 뒤집힌 점을 들며 “이번 예산 검토에서 소수존중의 원칙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국회는 코로나19 대응의 긴급 상황을 고려해 내년도 예산안을 2일 여야 합의로 6년 만에 법정 시한에 맞춰 처리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제외한 비교섭단체 정당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정의당도 이날 논평을 통해 “아무도 알 수 없게 합의하면서, 예산 심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바빴던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실망스럽다”며 “매년 반복되고 있는 비공식적인 논의를 통한 예산의 합의는 법적인 근거도 없는 무법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구도 알지 못하고 속기록도 없는 협의 과정을 통해 원내교섭단체 간 합의문이 발표되는 것이 정상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北, 코로나 방역 ‘초특급’ 수준으로 다시 격상

    북한이 코로나19 방역 단계를 최고 수준인 ‘초특급’으로 다시 격상하고 코로나19 검사 인원을 대폭 늘렸다. 겨울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중앙방송은 2일 “초특급 비상방역조치들을 복원한 데 맞게 중앙비상방역부문에서는 비상방역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엄수하도록 강하게 대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일부 상점이나 음식점, 목욕탕 등의 영업이 중지되고 이동도 제한됐다. 업무도 화상회의 등 비대면 수단을 이용하도록 했다. 북한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비상방역법’을 제정하고 감염병 전파 속도와 위험성에 따라 방역 등급을 1급·특급·초특급 세 단계로 분류했다. 초특급은 지상·해상·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봉쇄하고 모임과 학업을 중지하거나 국내 지역을 완전히 봉쇄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앞서 지난 2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초특급 방역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북한은 한 달 사이 약 5000명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지난달 25일까지 총 1만 6914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에드윈 살바도르 WHO 평양사무소장은 지난달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지난 10월 29일 기준 코로나19 검사 인원이 총 1만 2072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살바도르 소장은 1일 RFA에 북한 당국이 최근 몇 주간 일주일에 평균 1600회가량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겨울이 시작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독감 의심증상이나 중증급성호흡기감염증 증상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대북전단 금지법’ 與 단독 처리…野 “김여정에 헌법 조공” 퇴장

    ‘대북전단 금지법’ 與 단독 처리…野 “김여정에 헌법 조공” 퇴장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이 야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2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는 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국민의당은 법안 처리에 반대해 모두 퇴장했다.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행위 등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를 하는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야권은 이 법안이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반대해왔으나, 민주당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처리가 시급하다며 강행했다. 대표 발의자인 송 위원장은 “표현의 자유는 얼마든지 보장된다. 탈북민들이 광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면서 “이것을 제한하는 이유는 군사 분계선 인근 접경지역 주민들이 생계에 위협을 느낀다고 아우성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며 “야당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법안 처리를 중지해야 한다고 일제히 반발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비난하지 않았다면 이 법을 만들었겠는가. 아니잖나. 이 법안은 명백한 ‘김여정 하명법, 김여정 존경법, 김여정 칭송법”이라고 맹비난하며 “당론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도 “바다 위에서 해수부 공무원이 피살된 참사가 일어난 지 이제 겨우 두 달여가 지났다”며 “북한이 만행에 제대로 사과도 없고 진상규명에 비협조적인 상황에 이 법을 강행 처리하려 하니 ’북한 심기관리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표결 불참 후 기자회견을 열고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까지 움직인 초유의 굴종적인 사태”라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북한 김정은 정권유지를 위해 위헌적인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기현 의원은 기자회견 후 취재진에게 “김여정·김정은에게 상납한 것이다. 조공으로 대한민국 입법을 갖다 바친 것”이라며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에 대해 징역을 보내느냐”고 비판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파견직원에 경쟁사·상조상품 영업 지시…하이마트 ‘과징금 10억원’

    파견직원에 경쟁사·상조상품 영업 지시…하이마트 ‘과징금 10억원’

    파견종업원에 소속회사 아닌 제품도 판매 지시제휴상품 판매, 매장청소, 주차장관리 업무까지판매장려금 183억원 부당 수취해 회식비 등에공정위 “개선의지 안보인다” 시정명령 관리감독 파견종업원에게 경쟁사 제품 영업을 지시하고 심지어 이동통신·상조서비스 가입 업무까지 시킨 하이마트가 과징금 10억원을 물게 됐다.공정거래위원회는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롯데하이마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0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이마트는 2015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31개 납품업자로부터 1만 4540명의 종업원을 파견받아 다른 납품업자의 전자제품을 판매하게 하거나 카드발급, 이동통신이나 상조서비스 가입 등 제품상품 판매 업무까지 지시했다. 예를 들어 쿠첸 종업원이 자사 제품이 아닌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제품까지 판매한 것이다. 대규모유통업법상 납품업자 종업원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파견될 수 있고, 파견이 되더라도 ‘소속 회사가 납품한 상품의 판매와 관리 업무’ 외에 다른 업무에 동원되어선 안된다. 그럼에도 하이마트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파견종업원별 판매목표와 실적까지 철저하게 관리했다. 공정위가 확보한 하이마트 회의자료에선 ‘소속메이커 비중 극도로 높은 직원 사유 파악(하라)’며 오히려 소속 회사 제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렇게 파견종업원이 하이마트에서 판매한 총금액의 50.7%인 5조 5000억원어치는 다른 납품업자 제품이었다. 이외에도 하이마트는 파견종업원에게 자신과 제휴계약이 맺어져 있는 100건의 제휴카드 발급, 9만 9000여건의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 22만건의 상조서비스 가입 업무도 시키고, 심지어는 매장 청소, 주차장 관리, 재고조사, 판촉물 부착, 인사 도우미 등 업무에도 수시로 동원했다. 또한 하이마트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기본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약 183억원의 판매장려금을 80개 납품업자로부터 부당 수취했다. 판매장려금이란 직매입거래에서 납품업자가 자신이 납품하는 상품의 판매촉진을 위해 대규모유통업자에게 지급하는 경제적 이익으로, ‘성과장려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하이마트는 사전 협의되지 않은 판매장려금을 받아냈고, 이 가운데 ‘판매특당’ 혹은 ‘시상금’이라는 명목으로 수취한 160억원은 하이마트 우수 판매지점 회식비나 우수 직원 시상 등 자신의 판매관리비로 사용했다. 수수료 인상분을 납품업체에 떠넘기기도 했다. 하이마트는 2015년 1월부터 3월까지 당시 계열회사인 롯데로지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물류비를 인상하자,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46개 납품업자에게 물류대행수수료 단가 인상분을 최대 6개월 소급적용해 약 1억 1000만원을 부당하게 받았다. 이후에도 하이마트는 2016년 2월 같은 방식으로 71개 납품업자에게 8200만원을 받아냈다. 권순국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이번 사건은 가전 양판점시장 1위 사업자가 장기간 대규모로 납품업자 종업원을 부당하게 사용하고, 심지어 자신의 영업지점 회식비 등 판매관리비까지 기본계약 없이 수취해온 관행을 적발한 사건”이라며 “하이마트의 위법성 정도가 큼에도 불구하고 조사·심의 과정에서 개선 의지가 크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동일한 법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정명령 이행 여부 등을 철저히 감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이마트는 조사 과정에서도 제도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재발시 해당 직원을 징계하겠다’고 답했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이어 권 과장은 “하이마트 외 다른 대규모유통업자의 납품업자 파견종업원 부당사용 관행도 적발시 엄중 제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하이마트 측은 공식입장을 내고 “지적사항에 대해선 제도를 개선했고, 임직원 교육과 점검을 강화해 재바하지 않게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면서 “공정위 의결에 대해서는 의결서 내용을 확인하고 대응방안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견과 별개로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 분야에서 납품업자 등의 종업원 파견 및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개정해 내년 2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에는 복수의 납품업자가 종업원을 공동으로 파견한 경우 그 종업원을 파견한 납품업자들의 상품 판매·관리에만 종사할 수 있는 점을 명확히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90살 동갑내기, 70년 전 함흥의 풍경을 되살리다

    90살 동갑내기, 70년 전 함흥의 풍경을 되살리다

    김일성 사진이 걸린 공회당 2층 지붕은 날아갔고 벽은 반 정도가 아예 주저앉았다. 폐허가 된 도시지만, 사람들은 명절을 즐기며 춤을 춘다. 1955년 함경남도 중심지 함흥의 풍경이다. 최근 출간된 사진집 ‘함흥, 사진으로 보는 전쟁과 재건의 역사’ (논형)엔 조선 태조 이성계가 무도를 닦던 반룡산을 품은 1940년대 함흥의 모습을 비롯해 폭격을 맞아 유령도시가 된 풍경, 옛 동독이 참여한 복구 활동, 당시 북한 주민의 생활상 등 70년 전 함흥의 풍경과 생활상이 담겨 있다. 함흥 출신의 1930년생 동갑내기 신동삼(오른쪽)씨와 한만섭(왼쪽) 전 서울대 공대 교수의 공동 저작물이라 의미 깊다. 1952년 동독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된 신씨는 1955년 동독 함흥시 재건단(DAG) 통역으로 합류해 고향을 찾았다. 함흥은 B29기의 맹렬한 폭격으로 전체 건물의 95%가 파괴된 상황. 신씨는 “당시 함흥에는 모래와 점토, 그리고 인민들의 정열적인 힘만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시설계가, 건축가, 현장감독, 지질학자, 측량사, 벽돌공 등 500명의 독일 기술진이 8년 동안 여러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는 장면이 책에 생생하다. 신씨는 1995년 한국 관광을 왔다가 ‘동독과 북한-1954년/62년 함흥시 재건사´를 낸 독일 작가를 40년 만에 다시 만나 자료를 넘겨받았다. 여기에 개인 소장 자료 등을 모아 사진집 ‘신동삼 컬렉션´(2013, 눈빛)을 냈다. 2018년 1월 미국에 살던 한 전 교수가 지인의 소개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씨를 만나 컬렉션에서 다루지 못한 자료 900여장을 다시 분류하고 디지털 보정 작업을 했다. 중학교 때까지 함흥에서 지낸 한 전 교수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씨는 “한국전쟁 직후 북한 사회상을 연구하는 사가들에게 좋은 사료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사진집에 관해 “반세기 전 떠나온 북녘 동포들에 대한 채무감에서 시작한 일”이라며 “분단된 우리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보아 “나훈아 선배님 무대 보며 반성… 20년은 ‘애기’더라구요”

    보아 “나훈아 선배님 무대 보며 반성… 20년은 ‘애기’더라구요”

    기념 앨범 ‘베터’, 보사노바·브릿팝 시도 무대서 20년째… 강약 조절·노련함 터득힘들 땐 자신의 과거 영상 보며 힘 내목표는 몸관리 잘 해 ‘30주년’ 맞는 것 “음악에 대한 사랑과 보아라는 이름, 제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20년을 이어 온 힘입니다.” ‘케이팝의 개척자’, ‘아시아의 별’. 늘 가장 앞에 서서 케이팝의 세계시장 진출을 이끌어 온 가수 보아는 데뷔 20주년까지 달려온 원동력을 이렇게 꼽았다. 보아는 1일 20주년 기념 앨범 겸 정규 10집 ‘베터’(BETTER)를 발매하고 온라인으로 기자들을 만났다. ●음악·보아·무대에 대한 책임감… 세 가지 힘 어쩌면 모범생 같은 답변이지만, 열정과 책임감은 보아의 20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다. 간담회 내내 두 단어를 반복한 보아는 기념 앨범을 소개하며 “20년이 지나니 깨닫는 것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막연히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강약 조절과 노련함을 터득했어요.” 같은 안무도 다시 해보니 새로운 게 보인다는 그는 “20년이라고 해서 거창한 의미보다는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음악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자작곡 3곡, 작사곡 1곡 등 총 11곡을 담은 이번 앨범은 R&B 외에 보사노바, 재즈, 브릿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특히 타이틀곡 ‘베터’는 20년 전 데뷔곡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를 만들 때처럼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 유영진 이사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 “어제까지도 지지고 볶으면서 뮤직비디오 얘기를 했다”는 보아는 이제 이 총괄프로듀서와는 “자타공인 ‘톰과 제리’”라며 웃었다. 2000년 만 열세 살 ‘소녀 가수’로 등장한 이후 그는 작사, 작곡 등 싱어송라이터의 능력까지 키우며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로 성장했다. 전곡 프로듀싱을 한 8집 ‘키스 마이 립스’(Kiss My Lips·2015)는 “늘 성실히 하는 가수였다”고 자평할 만큼 노력해 온 결과였다. 그는 “지금도 힘이 빠질 때면 20년 전 제 모습을 다시 본다”면서 “어떻게 저렇게 독하게, 꿋꿋하게 살아남았나 싶어서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했다. ●열세 살 데뷔, 韓·日 차트 석권… 美 진출까지 보아의 역사는 곧 케이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해외 진출의 선구적 역할도 멈추지 않았다. 일본에서 2002년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를 내놓은 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한일 양국에서 정점을 찍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2008년 미국 진출 이후 낸 데뷔 앨범 ‘BoA’는 한국인 최초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127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많은 케이팝 스타가 보아를 롤모델로 꼽는 이유다. ●높아진 케이팝 위상 덕… ‘선구자’ 칭송받아 최근 높아진 케이팝의 위상에 대해 보아는 “오히려 제가 ‘선구자’라고 불리며 덕을 보고 있어서 감사하다”며 조언보다 제안을 덧댔다. “후배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성과를 이루고 있어요. 저도 자극을 많이 받아요. 앞으로 케이팝 발전을 위해서 모두 고민하고 연구해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백현, 레드벨벳, 갈란트 등 후배 가수들이 ‘아틀란티스 소녀’, ‘온리 원’, ‘밀키웨이’ 등을 부르며 보아의 20년을 기념했다. 그런 그는 ‘대선배’ 나훈아의 무대를 보면서 반성을 했단다. “20년은 ‘애기’더라”며 다음 목표로 ‘30주년’을 꼽은 그는 “몸 관리 잘해서 앞으로 좋은 퍼포먼스를 꾸준히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與 “징계위서 잘 판단할 것” 野 “秋장관 즉각 경질해야”

    與 “징계위서 잘 판단할 것” 野 “秋장관 즉각 경질해야”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이 1일 잇따라 법무부의 검찰총장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 조치 과정에 부당함이 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준 데 대한 여야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찰위와 법원의 결론을 평가절하하며 오는 4일 열릴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힘을 실었다. 야권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의 대국민 사과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이날 법원 판단과 관련, “법원의 결정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사유가 적정한지를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징계위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감찰위 결론에 대해서도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그 부분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 않으냐”며 “이후 징계위에서 잘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감찰위의 권고를 충분히 참고하겠다면서도 징계위를 강행키로 한 추 장관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법원 결정과 감찰위 권고에 이어 징계위원인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사의 표명까지 한 데 대한 당혹감도 감지됐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본회의 후 취재진의 질문에 “뉴스를 보지 못했다”며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반면 야권은 “법과 양심에 따른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며 추 장관을 해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이 무도하고 포악하게 위법을 행하면서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총장을 찍어 내려 했지만 살아 있는 양심들이 이를 지켜 낸 것”이라며 “무리하게 위법 과정을 거친 추 장관은 즉시 경질해야 하고 사태가 이런 지경에 오기까지 손을 놓고 있었던 문 대통령과 정 총리도 국민들에게 이 사태에 관해 제대로 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입장을 내고 “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무법부’라는 비아냥을 듣는 법무부의 수장을 바꿔야 한다”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을 경질하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안 발의도 고려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추 장관을 두고 “사면초가에 빠진 꼴”이라며 “이제 스스로 모든 불법적 조치들을 철회하고 법무부를 떠나야 한다.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 그것이 정도이고 국민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원칙적으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징계위는 검찰개혁 대의를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윤 총장 징계 문제를 불편부당하게 판단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보아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감, 20년 달려 온 힘”

    “보아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감, 20년 달려 온 힘”

    걸크러시 매력·다양한 장르 11곡 담아“열정과 이름에 대한 책임감으로 버텨”케이팝 선구자·싱어송 라이터로 성장“힘들 땐 20년 전 내 모습 보며 다잡아” “음악에 대한 사랑과 보아라는 이름, 제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20년을 이어 온 힘입니다.” ‘케이팝의 개척자’, ‘아시아의 별’. 늘 가장 앞에 서서 케이팝의 세계시장 진출을 이끌어 온 가수 보아는 데뷔 20주년까지 달려온 원동력을 이렇게 꼽았다. 보아는 1일 20주년 기념 앨범 겸 정규 10집 ‘베터’(BETTER)를 발매하고 온라인으로 기자들을 만났다. 어쩌면 모범생 같은 답변이지만, 열정과 책임감은 보아의 20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다. 간담회 내내 두 단어를 반복한 보아는 기념 앨범을 소개하며 “20년이 지나니 깨닫는 것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막연히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강약 조절과 노련함을 터득했어요.” 같은 안무도 다시 해보니 새로운 게 보인다는 그는 “20년이라고 해서 거창한 의미보다는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음악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자작곡 3곡, 작사곡 1곡 등 총 11곡을 담은 이번 앨범은 R&B 외에 보사노바, 재즈, 브릿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특히 타이틀곡 ‘베터’는 20년 전 데뷔곡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를 만들 때처럼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 유영진 이사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 “어제까지도 지지고 볶으면서 뮤직비디오 얘기를 했다”는 보아는 이제 이 총괄프로듀서와는 “자타공인 ‘톰과 제리’”라며 웃었다. 2000년 만 열세 살 ‘소녀 가수’로 등장한 이후 그는 작사, 작곡 등 싱어송라이터의 능력까지 키우며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로 성장했다. 전곡 프로듀싱을 한 8집 ‘키스 마이 립스’(Kiss My Lips·2015)는 “늘 성실히 하는 가수였다”고 자평할 만큼 노력해 온 결과였다. 그는 “지금도 힘이 빠질 때면 20년 전 제 모습을 다시 본다”면서 “어떻게 저렇게 독하게, 꿋꿋하게 살아남았나 싶어서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했다. 보아의 역사는 곧 케이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해외 진출의 선구적 역할도 멈추지 않았다. 일본에서 2002년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를 내놓은 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한일 양국에서 정점을 찍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2008년 미국 진출 이후 낸 데뷔 앨범 ‘BoA’는 한국인 최초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127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많은 케이팝 스타가 보아를 롤모델로 꼽는 이유다. 최근 높아진 케이팝의 위상에 대해 보아는 “오히려 제가 ‘선구자’라고 불리며 덕을 보고 있어서 감사하다”며 조언보다 제안을 덧댔다. “후배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성과를 이루고 있어요. 저도 자극을 많이 받아요. 앞으로 케이팝 발전을 위해서 모두 고민하고 연구해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백현, 레드벨벳, 갈란트 등 후배 가수들이 ‘아틀란티스 소녀’, ‘온리 원’, ‘밀키웨이’ 등을 부르며 보아의 20년을 기념했다. 그런 그는 ‘대선배’ 나훈아의 무대를 보면서 반성을 했단다. “20년은 ‘애기’더라”며 다음 목표로 ‘30주년’을 꼽은 그는 “몸 관리 잘해서 앞으로 좋은 퍼포먼스를 꾸준히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스타트업 ‘라이브케이’, 5G 기반 혼합현실 콘텐츠 제공

    스타트업 ‘라이브케이’, 5G 기반 혼합현실 콘텐츠 제공

    올 한해는 ‘멈춤’ 이라는 단어가 지겨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 머리 속에 각인된 2020년이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여행이나 관광업계는 제대로 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행에 목마른 사람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동영상으로나마 여행지나 가상현실의 동영상 콘텐츠를 보면서 마음에 위안을 삼고 있다. 코로나시대가 우리의 생활을 바꿔 놓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동영상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필요할 때 정보차원에서 찾아보던 동영상이 지금은 하나의 사업영역으로 창출하는 시대가 됐다. 좀 더 퀼리티 있는 영상들을 소유, 편집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상현실의 공간을 넘나드는 5G 기반의 홀로그램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도 인기다. 라이브케이는 5G 기반의 홀로그램 라이브 스튜디오를 소유한 스타트업이다. 2015년 5월 개인사업을 시작, 2019년에 법인으로 전환했다. 처음 회사가 만들어 진 후 국가사업을 위주로 사업 아이템을 잡았다. 모션그래픽, 미디어 퍼포먼스, 홀로그램, 미디어 인터렉션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회사를 키워 나갔다. 2016년 리우올림픽 한국홍보관 대표 홀로그램 전시공연인 ‘천상무도’를 제작 및 수행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방송업계에서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 했다. 2017년에는 ‘평창올림픽 한국관 ICT체험관’ 기획 및 운영 수행을 진행하면서 국가사업에서의 경력을 쌓으면서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2019년에는 ‘5G 가상증강현실 플래그십 프로젝트’ [5G HOLO LIVE]에 선정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5G 기반의 홀로그램 라이브 기술 강자로 우뚝 서게 됐다. 최근에는 ‘2020 제26회 드림콘서트 CONNECT:’에서 글로벌3D 랜드마크 제작 라이브 방송을 진행, 실시간 합성을 통해 콘텐츠를 연출하는 ‘버추얼 스테이지‘ 등의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시각적 만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라이브케이의 조남권대표는 “혼합현실과 홀로그램 기술의 경우 국내외로 경쟁사가 많지 않고 라이브케이만의 국내 독자 기술이라고 한다면 영상을 촬영한 후 보정, 편집하는 것이 아닌 5G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홀로그램 영상으로 추출해 라이브로 스트리밍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라이브케이가 유일하고 차별화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2020년은 비대면으로 공연을 진행한 사례가 많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대면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대면 공연은 예전만큼 아티스트를 향한 호응도 약하고 공연장의 현실감이 떨어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악재 속에도 라이브케이는 실시간 합성이 되는 버추얼 라이브 스테이지를 만들어 내면서 음악방송 콘텐츠도 새로운 기술을 적용 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실시간 게임엔진 기반 합성 디지털 세트를 구성해 버츄얼 라이브쇼와 버츄얼 토크를 진행했고 버츄얼 라이브 미팅도 진행하면서 방송 콘텐츠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주도해 가고 있다. 최근 라이브케이는 5G 네트워크상 합성된 방송영상을 저지연, 고화질로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 가능하도록 설계하면서 전세계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고려한 5G 클라우드 방식의 버츄얼 라이브 스테이지와 디지털 세트를 준비하고 있다. 라이브케이 조남권 대표는 “2020년 상반기 언택트 공연만해도 시장규모가 2000억원 수준이었다”며 “앞으로 언택트 공연 시장은 5000억원 이상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기 때문에 라이브케이도 트랜드에 맞게 언택트 공연 시장도 앞으로 집중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라이브케이는 MBC와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라이브케이는 MBC 홀로그램 씨어터를 재건축하는 것은 물론 코로나19 극복 MBC 특별생방송 ‘We Believe 우리가 희망입니다’ 프로그램 출연하는 태권트롯 나태주를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물리치는 홀로그램 공연을 연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은 스타트업 육성 지원사업’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8년부터 추진해 온 지원 사업인 ‘콘피니티(CON:FINITY=CONTENT+INFINITY)’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콘피니티는 콘텐츠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뜻한다. 지금까지 라이브케이는 국가사업 등 B2G에 해당되는 사업을 위주로 발전해 왔고 B2B사업도 병행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B2C사업도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다. 홀로그램과 모바일의 접목이나 독자적인 스튜디오를 통한 시너지를 낼 생각이다. 라이브케이는 버추얼 라이브 스테이지 및 방송 디지털 세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튜디오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등 영상 제작에 필요한 실시간 게임엔진 기반 실사 수준의 디지털 세트를 활용해 추후엔 1인 방송 촬영도 가능하도록 구현할 계획이다. 라이브케이 조남권 대표는 “언택트 공연부터 1인 방송 등 앞으로의 사업영역은 라이브케이가 가진 기술을 통해 다양하게 발전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방송과 음악방송 분야 등을 바탕으로 현재는 사업구상을 하고 있고, 번외로 여행과 해외 미술관 방문에 목마른 소비자를 위해 ‘버츄얼 세계 미술관 아트 콘서트’ 도 제작 중이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장 위 32구 시신의 진실”…오대양 사건, 그날의 흔적

    “천장 위 32구 시신의 진실”…오대양 사건, 그날의 흔적

    70도 넘는 천장에 속옷 차림 시신 32구“사회기업으로 포장한 사이비 종교”“32명 4박 5일간 천장에 숨어 있다 숨져” 1987년 발생한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 1일 온라인상에서 재조명됐다. 오대양 사건을 단독 보도했던 사회부 기자와 당시 현장 감식을 총지휘한 경찰 그리고 살아남은 회사 직원들의 증언이 지난 2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등장했다. 오대양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87년 8월 24일 대전, 3년 차 사회부 기자 윤모 씨는 ‘사스마와리’(경찰서를 도는 것) 중이었다. 사스마와리 코스는 병원 응급실, 장례식장, 경찰서였다. 윤 기자는 마지막 코스인 대전서부경찰서에 갔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윤 기자는 “새벽 6시인데 4명, 5명이 앉아있는데 눈이 풀려 있었다. 피곤한 게 아니었다. 의지가 없는 눈이었다. 아바타 같은 조종당하는 눈빛이었다”고 회상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던 사람은 13명으로 다 같은 회사 직원이었다. 며칠 전 중년 부부를 회사 창고에 감금하고 12시간 동안 집단 폭행을 했다는 이유다. 이유는 채권 포기 각서 때문이었다. 폭행당한 중년 부부는 주유소를 몇 개를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부부의 자식은 7명이었는데 그들 모두 이 회사의 직원이었다. 큰딸은 사장의 비서, 사위는 상무였다. 이 회사는 민속 공예품을 만드는 회사로 대통령상도 받고 88올림픽 공식 지정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전에 본사, 공장이 있고 용인에도 공장이 있었다. 사회사업에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보육시설, 초중고대학교 지원하는 학사 운영, 직원 기숙사 생활 보장, 생필품까지 지원해줬다. 우선적으로 직원의 가족을 채용하는 전통도 있었다. 회사 사장의 이름은 박순자. 자수성가한 여성 사업가라며 대전에선 그를 칭송했다. 남편은 도청의 고위 공무원이었기에 신뢰가 아주 두터웠다. 주유소 운영하는 부부도 신뢰할 수 밖에 없어서 사업자금을 투자했다고 한다. 당시 대전 18평 아파트 시세는 1300만 원 선, 이 부부는 무려 5억을 빌려줬다. 이후 이 부부가 목돈이 필요해 큰딸에게 다시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고, 일부만이라도 회수하겠다고 하자 딸이 사장님과 직접 이야기하라고 전했다. 그렇게 중년 부부는 대전 본사로 찾아갔다. 건물 문을 여는 순간 젊은 사람들이 부부를 둘러싸고 문을 걸어 잠궜다. 직원들은 창고로 부부를 밀어 넣더니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 후 채권포기각서를 들이밀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현장에 큰딸과 사위도 있었는데 말리지 않고 부모가 맞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는 것. 결국 지장을 찍고 풀려났고 이 부부는 경찰에 고발했다. 윤 기자에 따르면 박순자 사장이 경찰에 붙잡히자 방송국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잡혀 온 박순자 사장은 그 자리에서 졸도를 했다. 이후 병원에 간 박 사장과 자식 셋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후 그 회사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채권자들의 숫자는 상상 초월이었다. 이틀만에 100명 이상. 액수를 합산해보니 80억, 현 시세로 260억이었다. 박 사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사업자금으로 쓰고 남는 이득은 모두 돌려주겠다며 돈을 빌렸다. 이자 지급은 은행 계좌로 이용하고 지급일은 1시간도 어기지 않았다. 이자율은 무려 원금의 30~40%정도였다고 한다. 3년간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해왔다. 윤 기자는 공장에 대해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했고 공장을 찾았더니 작업장도 제품이 있었지만 이 공장에서 제조한 흔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후 경찰은 단순 폭행에서 대형 사기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전환했다. 박 사장은 지명수배가 됐다. 박사장의 남편도 아내와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한날한시에 80여 명 사라져…70도 넘는 천장에 시신 32구 대전 본사에 있던 직원, 보육 시설의 아이들까지 모두 사라졌다. 한날한시에 80여 명이 사라진 것이다. 용인 공장도 텅 비어있었지만 단 한 사람 주방에서 일하던 장씨 아줌마가 있었다. 남편과도 안면이 있어 사람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없다’, ‘계속 모른다’고 일관했다. 남편과 기자, 경찰 등이 이 공장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림자도 못 찾았다. 나흘째 되는 날, 경찰에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사람들이 다 용인 공장에 있다”는 전화였다. 창고 안을 뒤지던 경찰이 작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창고 안쪽 박스가 벽처럼 보일 정도로 채워져 있었다. 박스 너머를 살펴본 경찰, 그 뒤에 사람들이 있었다. 49명이 3박 4일간 숨죽이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30명 남짓의 사람의 행방이 묘연했다. 경찰은 숨어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했지만 모두 묵비권이었다.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 명단을 확인했더니 특징이 있었다. 투자 유치를 많이 받아온 사람들이었던 것. 박스 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빌린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주방 장씨 아줌마를 추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오후 장 씨가 “공장에 찾으시는 분들이 있다”며 찾아왔다. 장씨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천장이라고 알려줬고, 천장에 올라가 손전등을 켜는 순간 속옷 차림의 한 남자가 보였다.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더 위쪽을 봤더니 서까래에 목을 멘 것이었다. 그 남자가 공장장 최모씨다. 장 씨는 “다른 사람들도 다 저기 있는데 불러로 대답이 없다”고 했다. 천장을 뚫어 올라가 보니 목을 맨 공장장 옆에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12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상태로 2중, 3중으로 쌓여있었다. 5m 더 떨어진 곳에 시신이 더 있었다. 박순자 사장과 아이 셋의 시신까지 있었다. 4박 5일 동안 찾지 못한 박 사장과 직원들은 천장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모두 속옷, 잠옷 차림이었고 손은 결박이 되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목을 조른 흔적이 있었다. 31명은 교살, 공장장만 자살로 판명이 났다. 부검결과 독극물, 마취제도 없었다. 사망 추정 시간은 그날 29일 새벽 1시부터 아침까지였다. 박 사장의 남편과 식당 아줌마가 이야기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변사체 피살 뒤 운반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었다. 가장 미스터리 한 것은 32명의 시신 중 어느 누구도 저항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절대로 입 닫아라. 이미 의식 없으시다. 네 시간 전부터 다섯 명 정도 갔다. 오늘 중으로 다 갈 것 같다. 성령 인도로 너만 버텨라’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천장에 있던 사람이 장 씨에게 보내려던 쪽지였다. 생존자이면서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던 장 씨는 결국 경찰의 계속된 추궁에 “박순자 사장은 교주고 나머지는 신도”라고 진술했다. 이 회사의 이름은 ‘오대양’. 민속공예품 회사가 아닌 종교 단체였다. 박순자 사장은 과거 암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었는데 기도로 완치됐다면서 그 이후로 종교에 심취했고 결국 자신만의 종교를 창시했다. 그는 신도 확보를 위해 사회사업가로 포장했다. 복지사업을 하고 투자자에겐 확실한 이자로 신뢰를 확보한다. 신뢰를 쌓은 후 오대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오대양의 교리는 1988년 말세론이었고, 구원받으려면 교주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오대양 직원들은 채권자이면서 채무자였다. 오대양은 부부간도 각방을 쓰도록 했다. 교주의 지시를 어기면 신도들끼리 ‘사랑의 매’를 때리게 했다.사건 터지자 자신과 천장에 올라갈 31명 추려… 사건이 터지자 박순자는 자식 셋과 용인 공장에 갔고 신도들 모두를 모이게 했다. 다 빚진 사람들이었다. 천장에 숨으려는 데 너무 좁아서 80명을 다 데리고 갈 수 없었고 자신과 천장에 올라갈 31명을 추렸다. 가장 열성적인 믿음을 보인 신도들을 천장에 올리고 나머지는 박스 뒤에 숨었다. 천장에 올라가지 못해 생존한 사람들은 “천국 소리가 들린다고 손을 잡고 있었다. 같이 못 올라간 게 너무 서운했고, (교주에게) 버림당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박순자와 신도들은 스스로 천장으로 올라가 시멘트 통로 위에 각목과 합판을 깔아 은신처를 만들었다. 1.7평, 2.9평, 0.4평이었다. 이곳에서 32명이 4박 5일을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문제는 생리현상과 더위였다. 이들은 아예 먹지 않는 것을 택했다고. 당시 8월이었는데 경찰이 낮에 온도를 쟀더니 70도까지 올라갔다. 다들 사망 후 발견 시 속옷 차림이었던 이유다. 당시 교주의 시신이 가장 부패가 심했고, 기진맥진 상태의 사람들을 집단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졌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윤호중 “윤석열, 정말 도 넘는 수사해 와…추미애 결단할 때”(종합)

    윤호중 “윤석열, 정말 도 넘는 수사해 와…추미애 결단할 때”(종합)

    尹, 조국 가족·월성 원전 중단 수사 겨냥 해석“대통령 개입할 일 아냐, 야당 정치공세”“秋·尹국조는 같이 해야…단, 尹수사 뒤에” ‘야당 간사 사보임’ 발언에 “사과할 일 아냐”국회 법사위원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직무배제와 징계 처분 청구 후 법무부 징계위 결정을 앞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검찰이 그동안 해온 수사는 정말 도를 넘는 수사였다”고 비난했다. 윤 의원은 일선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조치가 법치주의를 훼손한 위법 부당한 행위라며 추 장관의 책임론을 제기한 데 대해 선을 그으며 “지금이 결단해야 할 때”라고 추 장관을 옹호했다. “추미애 책임론? 정의로운 검찰 정착 위해 어려움에도 끌고 나간 것” 윤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 여권을 겨눈 수사를 하다가 찍어내기 당한다는 지적’에 대해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안 했나, 지금도 하고 있고 계속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여당은 월성 원전 조기 가동 중단에 정부가 조작·개입했다 감사원 발표에 따라 대전지검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원전수사를 착수하자 윤 총장을 맹비난해왔다. 윤 총장은 지난해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투기 의혹 등이 제기됐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일가 수사를 지휘하면서 여당의 뭇매를 맞았다.문 대통령이 직접 현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야당 주장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법무부의 징계절차”라며 “대통령을 자꾸 끌어들이려는 것은 야당의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책임론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검찰과 사법체계가 정착되려면 지금이 결단해야 할 때”라며 “그런 일을 추 장관이 어려운 가운데서 끌고 나간 것”이라고 옹호했다. 윤 의원은 야권의 국정조사 공세에 대해선 “윤 총장과 추 장관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국조를 하면 같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윤 총장은 징계위 심사 중이고, 일부 사안은 수사의뢰됐다. 이런 게 일단락돼야 국조가 가능하다”고 했다. 법사위에서 ‘야당 간사 사보임’을 언급한 일로 사과 요구를 받는 데 대해 “사과할 일 없다. 막말을 한 것도 아니다”라고 받아쳤다.윤호중, “윤석열 국회로 출발”하자“누구 멋대로” 법사위 즉각 산회 김도읍, 尹직무정지에 추·윤 국회출석 요청윤, 김 의원 보좌관 겨냥 “제대로 보필해” 법사위원장인 윤 의원은 지난달 26일 윤 총장의 출석을 요구하는 야당을 향해 ‘간사 사보임’을 거론했다가 반발을 샀다. 그는 국회서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에 대해 “사전 협의조차 안 하고 일방적으로 간사 활동을 해 불쾌감을 느꼈다”면서 “국민의힘 원내대표께서 김도읍 간사를 사보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공식 요청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의 보좌관에 대해 “좀 제대로 보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미국 의회에는 입법보좌관 자격시험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을 도입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김 의원 측 보좌관 자질을 깎아내렸다. 윤 위원장은 이어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김 의원에게 “협의를 전혀 하지 않는 자세로는 간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이에 김도읍 의원은 “이제 법사위원장이 야당 간사 직무도 정지시키려 하느냐”며 “왜 남의 당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고 항의했다. 자신의 보좌관을 두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우리 방 식구들도 인권이 있고 인격이 있다”며 “그 말을 한 것이 사실이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김 의원은 25일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및 징계 처분 조치에 대한 현안 질의를 위해 윤 총장과 추 장관의 국회 법사위 출석을 요청했다. 김 의원이 “윤 총장이 국회로 출발했으니 기다려달라”고 하자 위원장인 윤 의원은 “위원회가 요구한 적도 없고, 의사일정이 합의된 것도 아니다”라면서 “누구하고 이야기를 해서 검찰총장이 멋대로 들어오겠다는 것이냐”며 즉각 산회를 선포했다. 윤, 조수진에 “찌라시 만들 때 버릇 유감” 윤 위원장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두고도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어떤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찌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 것 같아 유감스럽다”며 “회사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웃었다. 조 의원이 동아일보 출신이라는 점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사과를 촉구하며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동아일보 출신이라고 꼬집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기고] 변화를 꿈꾸는 수용자에게 희망을/추미애 법무부 장관

    [기고] 변화를 꿈꾸는 수용자에게 희망을/추미애 법무부 장관

    교정행정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사랑을 기초로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정은 엄정한 법 집행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엄정한’이라는 단어 속에 함축된 의미는 죄에 대한 응보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돼 있다. 여기에는 수용자의 인권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면 환경·사고·방법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시설, 인본주의적 처우, 자원의 효율적 사용 등 혁신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이번에 수립한 ‘제1차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기본계획’은 큰 의미가 있다. 11개 부처의 협력과 공감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본계획은 ‘변화를 향한 믿음, 함께 만들어 가는 국민 안전’을 비전으로 한 5개년 실천계획이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종합적인 교정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인권 중심, 다양성 존중, 국민 신뢰, 조직 혁신, 스마트 교정’ 등 5가지 추진 목표를 세웠다. 교정시설의 과밀 수용 해소, 시설 현대화로 수용자 인권을 보장하고 처우 강화, 직업훈련 활성화로 실질적인 사회 복귀가 가능한 교정 환경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교정 정책의 투명성 확보와 인력의 적정한 배치, 비대면 교정서비스 제공 등 교정 행정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교정공무원의 업무도 수용 관리에서 교정 교화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용자의 변화를 지지해 주고 국민과 함께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려 한다.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희망임을, 그것이 우리 사회 안전에 토대가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국민들 중에는 ‘흉악범들의 인권이 존중될 필요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하지 않으면 범죄는 계속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그들의 변화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자. 국민들의 믿음은 그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지지대가 될 수 있다. 인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굽이치는 강물처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고, 그러한 시대적 물길을 잘 터 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다. 인권이라는 물줄기가 잔잔하고 거침없이 흐를 수 있도록, 그 물길 속에 교정행정이 녹아들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려 한다. ‘제1차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기본계획’으로 시작하는 교정 물줄기에 국민 여러분의 충고와 격려를 부탁드린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은 더 많은 이해와 응원이 필요한 시기다.
  • 무장봉기 이끈 승려… 만세운동 주도 고교생… 일제 수탈 맞선 해녀들

    무장봉기 이끈 승려… 만세운동 주도 고교생… 일제 수탈 맞선 해녀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몽골이나 왜구의 지배와 침략을 받았던 지역으로 외부 세력에 대항하며 독자적으로 존립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일제의 입장에서 제주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풍부한 어족자원을 가진 주요 약탈 지역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일제의 수탈이 격심해지자 항거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어느 지역보다 거세게 일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배를 온 유학자들이나 개화파들은 제주도민들의 학문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는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제주 지역에서는 광복 때까지 크고 작은 항일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3대 항일운동으로 일컬어지는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현장을 찾아보았다. ●1914년부터 김연일 주지 “일본인 축출” 설법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인 제주도 서귀포 옛 법정사 터는 해발 680m나 되는 한라산 중턱에 있었다.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너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산속에 일제가 불태워 버린 절터가 나타났다. 집 한 채 크기도 안 되는 작은 터에는 무너져 내린 벽체의 흔적인 돌무더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에서도 항일·독립운동이 줄기차게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3·1운동보다 다섯 달 앞서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은 승려들이 주도하고 주민 700여명이 참여한 제주 최대의 항일운동이었다. 법정사 주지 김연일은 1914년 무렵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이 부당하며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설법을 통해 주장하고 있었다. 김연일은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거사 6개월 전부터 곤봉과 화승총을 마련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1918년 9월 말 정구용은 “면장과 이장은 장정을 모아 10월 7일 오전 4시 하원리에 집합하고 8일에는 제주향을 습격해 일본 관리를 체포하자”는 격문을 붙였다. 총지휘자 김연일을 필두로 좌대장, 우대장, 선봉대장, 중군대장, 후군대장 등의 의병과 비슷한 군사 조직 체계를 갖추었다.김연일은 1871년 경북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에서 태어나 출가한 뒤 경북 경주 기림사의 승려로 있었다. 같은 절에 있던 승려 방동화와의 인연으로 제주도로 와서 1914년쯤 법정사 주지가 됐다. 김연일은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할 목적을 갖고 제주도로 왔다고 한다. 왜 하필 제주도까지 와서 독립운동을 했느냐는 의문에 유족들은 “우리나라 모습에서 제주도가 닻이라서 거기서부터 들어 올려야 독립 바람이 육지까지 분다고 (김연일이) 말했다”고 설명한다. 김연일은 조상의 묘까지 제주도로 옮겼다. 이를 이용해 군자금과 물자를 갖고 제주도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드디어 거사 당일인 7일 새벽 법정사 마당에서 출정식이 열렸다. 김연일은 “일본인을 쫓아내어 원래의 한국 시대를 회복하자”고 선언했다. 선봉대장 강창규와 좌대장 방동화, 우대장 강민수, 모사 장임호와 박주석 등의 지휘에 따라 승려와 신도 등 34명은 깃발을 흔들며 마을로 내려갔다. 미리 참여를 독려하고 격문을 붙여 놓아 참여자는 순식간에 700여명에 이르렀다. 도순·하원·월평·영남·대포·상예리 등 서귀포의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일제를 몰아내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중문리에 도착한 군중은 전선을 자른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일본인 일행을 구타하기도 했다. 이어 현재 중문파출소 자리에 있던 경찰 주재소로 가서 몽둥이로 기물을 부수고 문서를 불태운 다음 건물을 소각했다. 오전 11시쯤 일경의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공격해 왔다. 함성을 지르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경들은 법정사로 올라가 절을 불태웠다.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모두 66명이 검거됐고 김연일이 1심에서 10년형을 받는 등 46명이 형을 선고받았는데 감형과 가출옥으로 실제 수감 기간은 줄어들었다. 김연일은 3년 3개월, 강창규는 6년가량 옥살이를 했다. 박주석, 강수오, 강춘근 등 5명은 고문 후유증과 가혹한 감옥생활로 옥사했다. 특히 강춘근은 재판을 받기 전에 사망했다. 고문사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정황은 남아 있지 않다. 김연일은 출옥 후 고향 영일로 돌아가 항일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했고 다시 붙잡혀 투옥되기도 했다. 정부는 법정사 항일운동 주도자 가운데 32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했다. 김연일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 강창규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日 주도자 모두 연행, 거사 계획 미리 파악한 듯 제주시의 동쪽에 있는 조천은 일제강점기에는 육지에서 사람과 물건이 활발하게 오가던 제법 큰 항구였다. 조천은 신촌·함덕·신흥 등의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제주시와 서귀포로 파급된 제주도 만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제주항일기념관과 삼일독립운동기념탑 등이 들어선 조천만세동산(미밋동산)이 조성돼 있다. 평일인 지난달 17일 찾은 조천읍내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마침 애국선열추모탑 앞에서는 임시정부가 1939년 법정기념일로 정한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및 제18회 제주 지역 애국선열 합동추모식이 제주도 독립운동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었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생이던 김장환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들어오며 시작됐다. 아버지 김시학은 일본 유학파로 1차 세계대전 중에 사회 각계각층 1만명의 연서를 받아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인물이다. 김장환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을 지켜보며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보름 후인 16일 조천에 내려온 김장환은 숙부 김시범과 당숙 김시은에게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들려주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이튿날 김시범, 김시은, 김장환은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어 김용찬, 김형배, 고재륜, 황진식 등 14명의 동지를 모았다. 이들은 대형 태극기 4본과 소형 태극기 300여장을 만들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김시범 등은 거사일을 제주도에서 명망이 높았던 유학자인 맏형 김시우의 소상(小祥·첫 기일)인 3월 21일로 잡았다. 21일 아침 8시쯤. 미모치에 14인 동지를 비롯, 조천 주민들과 이웃 마을인 함덕·신촌·신흥 등지의 주민과 서당 생도 등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미모치는 오름의 이름으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한라산 정기가 마을 동쪽 끝으로 흘러 우뚝 솟은 성소(聖所)로 전해지던 곳이었다. 대형 태극기가 미모치 정상에 꽂히고 ‘독립만세’라고 쓰인 깃발이 나부꼈다. 김시범은 독립선언서를 20여분 동안 낭독했다. 낭독을 마친 김시범은 “조선을 제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시키기 위해 한국독립만세를 부르고 행진하라”고 소리쳤다. 김용찬도 “일본 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하도록 한국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마을 안을 행진하자”고 외쳤다. 이어 김장환이 ‘대한독립만세’라고 선창하자 군중도 따라 외쳤다. 어떤 이는 창호지에 ‘한국독립만세’라는 혈서도 썼다. 시위대는 일제의 본거지인 제주성으로 행진했다. 조천은 제주성의 동쪽 약 12㎞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2~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도중에 신촌·삼양·화북·건입마을을 거치면 참가자가 더 늘어날 수 있었다.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500~600명이 된 시위대는 조천오일장터를 거쳐 비석거리에 도착해 ‘한국독립만세’를 크게 외치고는 계속 행진해 신촌리에 다다랐다. 일경은 급히 제주경찰서에 증원을 요청했고 오후 늦게 무장한 순사 30여명이 도착해 시위대와 맞부딪쳤다. 일경은 공포탄을 쏘고 소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로 타격하며 시위를 진압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3명이 다쳤고 김시범, 김시은, 김용찬, 김장환 등 13명이 연행됐다. 이들이 모두 주모자였음을 볼 때 일경은 거사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시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 조천오일장터에서 김필원, 백응선, 박두규 등이 중심이 돼 200여명이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신촌리를 향해 2차 만세시위를 벌였다. 여기서 박두규와 김필원이 체포됐다. 시위 소식은 함덕리까지 전해져 다음날에는 조천과 함덕 양쪽에서 3차 시위가 벌어졌다. 이문천·백응선·김연배 등이 계속해서 시위를 주도했다. 이문천은 조천오일장터에서 주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 100여명을 이끌고 오일장이 열리던 함덕리로 이동했다. 함덕리에 이르자 시위대는 8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날은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참여했다. ●김장환은 월북했다는 이유로 국가 서훈 없어 시위 확산에 두려움을 느낀 일경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강제 해산시키고 이문천과 백응선 등 8명을 체포했다. 또 신흥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귀동이라는 여성이 “대한독립만세, 같이 죽자 만만세”라는 구호를 외치자 제주경찰서로 연행했다. 여성까지 무차별로 체포한 데 대해 도민들이 격앙하자 부담을 느낀 일제 경찰은 사흘 뒤 여성을 석방했다. 3월 24일 4차 만세운동은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이날은 조천오일장날이었는데 상인과 장을 보러 온 부녀자들까지 약 15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투석전까지 벌어지는 등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경은 발포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김연배 등 4명을 체포했다. 일경은 군 병력까지 불러들여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네 차례의 시위에서 주도자 14명은 모두 검거됐다. 이들을 포함해 기소된 사람은 모두 29명이었고 24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5월 김시은, 김시범, 김장환 등 주도자 14명은 징역 6개월에서 1년을 받았다. 그보다 옥고와 고문에 따른 희생이 컸다. 백응선은 고문과 옥고로 1920년 3월 순국했다. 김연배도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과 옥고로 가출옥했지만 1923년 11월 27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김시은과 김시범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장환에 대한 서훈 기록은 없다. 월북했다는 이유다. 백응선과 김연배는 대통령표창을 받았을 뿐이다.●일제 해녀 요구 들어준다고 해놓고 약속 어겨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제주시 구좌읍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옆 해녀 노래비에 쓰인 마지막 절이다. 제주 우도 출신 독립운동가 강관순이 지은 노래다. 제주 해녀 투쟁은 연인원 1만 7000여명이 참여하고 238차례의 시위가 벌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항일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기념해 구좌읍 하도리에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오후 늦은 시간에 찾은 공원에는 운동 삼아 왔다갔다하는 여성만 보일 뿐 참배객은 아무도 없었다. 일제의 수탈에 제주도 해녀들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제주에서는 해녀들의 채취 활동이 일제로서는 독보적인 수입원이었다. 1920년대 중반 일제는 해녀들의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만든 제주해녀어업조합을 어용화했고 해녀들이 힘들게 거둔 해산물을 헐값에 매입하는 등 횡포를 부렸다. 입거 수수료와 세금도 과다 징수했다. 1931년 6월 해녀들은 공동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12월에는 관제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의 요구 조건과 투쟁 방침을 정하고 대표를 선출했다. 이듬해 1월 7일 세화리 장날에 해녀 300여명이 1차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구좌면사무소에 이르자 면사무소 측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 신임 제주도사 다쿠치 데이키가 1월 12일 세화장날 시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날 세화리 장터에 해녀들이 모여들었다. 구좌면 하도리·세화리·종달리·연평리와 정의면의 오조리·시흥리 등 6개 마을 해녀들이었다. 손에는 호미와 비창(전복 따는 도구)을 들었다. 해녀들은 다쿠치가 탄 차량을 에워쌌고 다쿠치는 굴복한 척하며 요구 조건을 5일 안에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짓 약속이었음은 금세 드러났다. 일제는 제주 지역 청년운동가들을 배후세력으로 규정했다.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23일부터 하도리 오문규, 종달리 한향택과 한원택, 세화리 문도배와 문도후 등을 각종 죄목을 붙여 검거하기 시작했다. 24일에는 이에 격분한 해녀 1500여명이 세화주재소로 몰려들었고 일경은 무장경관을 출동시켜 해녀 34명을 포함한 50여명을 체포했다. 27일에는 종달리 해녀 100여명이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진압당하고 말았다. 주동자로 찍힌 해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은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이들 말고도 일제에 검거돼 고초를 겪은 해녀가 100여명에 이르렀다. 세 명의 해녀는 항일운동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다.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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