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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피투게더3’ 이상우 “김소연, 내 허름한 모습에 반했다”

    ‘해피투게더3’ 이상우 “김소연, 내 허름한 모습에 반했다”

    멀끔해서 더 웃기다. 배우 이상우가 대체 불가능한 엉뚱 매력으로 ‘해피투게더3’에 빅 재미를 불러왔다.KBS 2TV ′해피투게더3′(이하 ‘해투3’)의 15일 방송은 한지혜-이상우-박선영-여회현-금새록이 출연한 ‘해투동-같이 살래요 특집’과 UN 최정원-멜로망스 김민석-케이윌-어반자카파 조현아-모모랜드가 출연한 ‘전설의 조동아리 : 내 노래를 불러줘-귀호강 어벤저스 2탄’으로 꾸며졌다. 이 가운데 ‘해투동’에서는 시청률 40% 신화를 쓴 ‘황금빛 내 인생’의 바통을 이어받은 KBS2 새 주말극 ‘같이 살래요’ 팀이 출격해 끈끈한 팀워크와 신선한 예능감을 뽐내며 시청자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 이 가운데 이상우는 독특한 4차원 매력을 꽃피우며 입만 열면 웃음을 빵빵 터뜨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방송 초반에는 이상우의 독특한 면모를 밝히는 한지혜-박선영의 증언이 웃음보를 자극했다. 한지혜는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미팅하는 자리에서 배우 롤 모델을 여쭤보시더라. 그런데 이상우가 엉뚱하게도 이주일 선배님이라고 답했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이에 이상우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어릴 때는 웃기다는 소리를 들었었다”고 말했고, 전혀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이상우의 주장에 유재석은 “신생아 때 얘기하시는 거냐?”고 되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박선영은 “저는 이상우 씨의 첫 데뷔작을 같이 했다. 당시에 말을 못하는 친구로 나왔는데 진짜 말을 못하는 분인 줄 알았다. 로봇연기의 창시자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이상우는 마치 로봇연기를 펼치고 있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답해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이상우는 아내 김소연과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하면서도 엉뚱함을 드러냈다. 이날 이상우는 “처음부터 아내에게 호감이 있었다. 또 드라마에서 상대역으로 만나기 직전에 같이 의류모델을 같이 했었는데 그때 좋은 모습을 봐서 드라마 출연까지 결정하게 됐다”며 핑크빛 스토리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핑크빛 무드도 잠시, 이상우는 김소연과의 독특한 연애 비화를 공개해 분위기를 급 반전시켰다. 김소연이 자신의 허름한(?) 모습에 반했다고 주장한 것. 이상우는 김소연과 드라마를 찍는 8개월 동안 내내 같은 옷만 입었다고 밝혀 모두를 경악케 만들었다. 이어 이상우는 “계절은 저한테 딱 한번만 바뀐다. 더울 때와 추울 때. 여름에는 집업을 좀 내리고 가을에는 지퍼를 좀 올린다”며 엉뚱한 의상철학으로 폭소를 유발했다. 또한 이상우는 비밀연애 당시 김소연에게도 허름한 옷차림을 코치했다고 밝혀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상우는 김소연에게 “자세도 약간 구부정하게 하고 다니라고 조언했다”고 밝히며 직접 ‘시선을 끌지 않는 걸음걸이’의 시연을 했는데, 되려 시선을 강탈하는 ‘좀비 워킹’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포복절도케했다. 급기야 이상우는 “걸리면 허리를 다시 편다”며 허술하디 허술한 비밀연애 비법을 설파해 웃음보를 자극했다. 한편 이상우는 김소연과의 엉뚱한 러브스토리뿐만 아니라 남다른 알바 스케일로도 큰 웃음을 자아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타워팰리스와 성수대교를 지었다고 밝힌 것. “성수대교를 지나갈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하는 이상우를 향해 MC들은 이동루트가 주로 성수대교냐고 물었다. 이에 이상우는 “그래도 제일 많이 타는 건 영동대교”라며 예측불가한 답변을 꺼내놔 웃음으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이상우는 떡볶이 장사를 했던 일도 공개했는데 “선점하고 있던 상인 분들이 ‘저쪽으로 가라’고 해서 장사자리를 이동했는데 가다가다 막다른 골목까지 갔다”고 말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상우는 감정연기 비법을 묻는 질문에도 독특한 매력을 십분 드러냈다. 파트너 한지혜가 감정연기를 위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예전에는 눈을 계속 뜨고 있었다”고 과도하게 인간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 급기야 이상우는 “그래도 안되면 눈을 살짝 찌른다”고 덧붙여 ‘해투3’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한편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해피투게더3’ 1부의 전국 시청률은 5.1%, 수도권 시청률은 4.8%를 기록하며 동 시간대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수성했다. ‘해피투게더3’는 매주 목요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여기는 남미] 페루 나스카서 발견된 신기한 미라…인간 맞나?

    [여기는 남미] 페루 나스카서 발견된 신기한 미라…인간 맞나?

    지난해 페루 나스카라인에서 발견된 미라 '마리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라의 게놈(유전정보)을 분석한 일단의 러시아 학자들이 '휴머노이드'라는 결론을 내렸다. 13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의 학자 콘스탄틴 코로트코프는 "미라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23개 염색체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염색체의 위치가 인간과 일치하는지 정밀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신을 미라화하는 데는 염화카드뮴이 사용됐다는 사실도 러시아 학자들은 밝혀냈다. 염화카드뮴은 향균효과를 가진 물질로 종종 보전처리에 사용된다. 러시아가 상당히 과학적인 설명을 내놨지만 페루는 여전히 미라 '마리아'에 대해 불신의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페루 문화부는 "미라가 발견된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면서 "선사시대의 미라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관계자는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면서 "(가짜라면) 당연히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라 '마리아'는 2017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루 나스카라인 주변의 한 무덤에서 발견됐다.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미라가 발견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미라 '마리아'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 특이한 생김새 때문이다. 미라 '마리아'에겐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3개뿐이다. 우주인처럼 길쭉한 머리통을 갖고 있다. 현지 언론은 "과학적인 분석이 진행되고 있지만 논란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유럽프레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中관광객 또 물의, 1000년 된 고대 화상석에 올라

    中관광객 또 물의, 1000년 된 고대 화상석에 올라

    중국 현지 사찰에 있는 고대 화상석이 또 다시 관광객들의 공격에 짓밟혔다. 9일(현지시간)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 허난성 절천현에 있는 한 사찰의 화상석에 관광객 무리가 올라간 사진이 공개되면서 이들에 대한 처벌 요구가 일고있다고 보도했다. 화상석은 중국 한위시대에 돌로 된 무덤이나 사당의 벽, 돌기둥, 벽돌 등에 추상적 도안이나 다양한 내용을 암각해 장식한 것을 말한다. 해당 화상석은 부처의 형상이 도드라지도록 얕은 돋을 새김을 한 것으로 1000년의 역사를 가졌다. 관광객들의 만행을 포착한 관광객 유 씨는 “이들의 행동은 도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비난했다. 사진을 접한 일부 네티즌들 역시 남성들이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왜 중국 관광객들이 전세계에서 욕을 먹을까? 이는 관광지 입장표를 사기만 하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중국 사람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달 말 허난성 뤄양시에 있는 사찰인 백마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약 1000년 된 말 석상 위에 올라타는 일도 있었다. 사진=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대학원 특혜 논란’ 정용화 군 생활 모습 공개...훈련병 속 ‘무덤덤한 표정’

    ‘대학원 특혜 논란’ 정용화 군 생활 모습 공개...훈련병 속 ‘무덤덤한 표정’

    그룹 씨엔블루(CNBLUE) 정용화의 군 생활 모습이 공개됐다.지난 11일 50연대 교회 커뮤니티에는 이달 초 입대한 그룹 씨엔블루 멤버 정용화(30)의 사진이 올라왔다. 정용화는 기초 군사 훈련을 받는 중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커뮤니티에 공개된 사진에는 군복을 입고 동료 훈련병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용화의 모습이 담겼다. 정용화는 앞서 지난 5일 강원도 화천군 육군 15사단 승리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약 4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 이후 자대 배치를 받고 현역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전역일은 2019년 12월 4일이다. 한편 정용화는 지난 1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특혜 입학 논란에 휩싸였다. 소속사 측은 사건이 불거진 지 9일 만에 정용화의 입대 소식을 전했다. 경찰 수사 결과 정용화는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돼 입대 전까지 조사를 받았다. 사진=50연대 교회 커뮤니티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딸의 눈사람 망가지자, 보복으로 눈사람 부대 만든 엄마

    딸의 눈사람 망가지자, 보복으로 눈사람 부대 만든 엄마

    딸을 위해 애써 만든 눈사람이 망가지자 엄마는 눈사람 부대를 만들어 진정한 복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선, 메트로에 따르면, 더럼주 게이츠헤드시에 사는 레이첼(29)은 첫째 딸 알릭스 톰슨과 함께 막내 딸 라일라(3)를 위한 여자 눈사람 ‘브렌다’(Brenda)를 만들었다 핸드백과 스카프를 두른 브렌다의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한밤 중 누군가가 브렌다를 망가뜨리면서 세 살 딸의 기쁨도 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한 이웃은 “삽으로 참수돼 썰매 위로 끌려나가는 브렌다를 보았다”고 알렸다. 절망한 레이첼은 “페이스북에 서 많은 사람들이 브렌다의 사진을 좋아했는데 이 사건이 발생한 후, 발칵 뒤집혔다”고 말했다. 여론이 들끓자 레이첼은 큰 딸과 새벽 1시 넘어서까지 더 많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모녀는 눈사람 20개로 ‘앙갚음의 눈사람 부대’를 탄생시켰고, 집을 에워싼 눈사람에게 브렌다를 추모하는 의미로 보라색 스카프를 둘렀다. 눈사람 부대는 온라인상에서 ‘브랜다를 위한 정의’(#JusticeForBrenda) 캠페인으로 확대됐고, 주민들도 눈사람 만들기에 합세했다. 이웃 키런 매케너는 조문객들에게 둘러싸인 브렌다의 무덤까지 세웠다. 그 결과 마을에는 총 43개의 눈사람이 생겼다. 레이첼은 “브렌다를 없앤 사람이 눈사람 부대도 망가뜨릴 수 있을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합류해 기뻤다. 미국, 캐나다 등 멀리서도 지지를 보내줬다. 무엇보다 눈사람을 좋아하는 딸이 모든 경험을 즐거워했다”고 전했다. 사진=메트로, 더선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박양숙 서울시의원 발의 ‘공영장례 조례안’ 통과

    박양숙 서울시의원 발의 ‘공영장례 조례안’ 통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양숙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성동4)이 대표 발의한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안」이 7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안」은 무연고사망자와 저소득층이 삶의 어려운 무게를 견디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故人)들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장례문화를 중심으로 한 상부상조의 공동체 의식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적 가치실현을 목적으로 대표 발의된 조례이다. 이번 조례안은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최초로 제정되는 조례인 바,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무연고사망자 및 연고자가 있어도 장례를 치를 능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박양숙 위원장은 조례안을 대표발의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장례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문제를 가족 공동체가 책임지고 해결하기에는 점차 한계상황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 대표적 사례가 ‘고립사(孤立死)’와 ‘무연고사망자’의 증가라고 설명했다. 기초수급자와 같은 취약계층은 죽어도 연락할 가족이 없거나, 연고자가 있더라도 오랜 교류 단절,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러한 같은 경우의 무연고사망자는 ‘직장(直葬)처리’ 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양숙 위원장은 조례안 제정의 필요성과 당위성과 관련하여 공영장례제도를 통해 연고자가 없는 사람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최소한 가족과 지인 그리고 사회와 이별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공공이 마련해서 최소한의 장례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하며, 고인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살아 있는 가족들이 돌아가신 분과 제대로 이별할 시간을 보장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본회의에서 조례안이 가결됨에 따라 서울시는 공영장례제도를 적극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서울시는 장례식장 빈소차림 및 장례 서비스 지원사업, 자치구의 공영장례 지원을 위한 적극적 역할 부여 및 서울시 지원체계 구축사업, 서울시 저소득시민 장례지원 모델 검토, 무연고사를 위한 공간 마련과 장례의례서비스 사업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가족장례와 마을장례 등과 같은 새로운 저소득 시민 장례지원 사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취약계층의 장례 지원을 위해서 운구차와 같은 차량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공영장례 지원 내용에 인력, 물품, 장소뿐만 아니라 차량 지원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된 바, 운구차 제공 서비스사업을 적극 반영할 수 있게 됐다. 박양숙 위원장은 “이번 제정안은 무연고자와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가족과 지인이 함께 하며,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발의했다. 앞으로 공영장례조례가 만들어내는 정책적 공간과 틀 속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영장례의 모습이 갖추어져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느 활동가가 전하는 ‘퍼시픽랜드의 비밀’

    어느 활동가가 전하는 ‘퍼시픽랜드의 비밀’

    동물권단체 케어는 지난 3일,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가 들려주는 ‘퍼시픽랜드의 비밀’ 영상을 공개했다. ‘돌고래무덤이 된 제주 수족관 퍼시픽랜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해당 영상은 쇼에 이용되는 돌고래들의 아픈 현실이 담겨 있다. 조 대표는 “핫핑크돌핀스가 2011년 여름부터 캠페인을 시작한 게 바로 퍼시픽랜드”라면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제주 바다에 있는 돌고래들을 불법으로 잡아 국내에 있는 다른 수족관들에 공급했다”며 이는 “내부 고발자가 제보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돌고래 불법포획 관련 해경 수사가 시작됐고, 2012년 2월 1심 재판이 시작됐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것은 2013년 3월 28일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제돌이·춘삼이·삼팔이, 2015년에는 복순이와 태산이가 바다로 돌아갔다. 현재 퍼시픽랜드에 있는 돌고래에 대해 조 대표는 “2009년 이전에 포획된 남방큰돌고래는 재판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 한 마리가 남아있다. 그 돌고래가 바로 비봉이다. 2005년 포획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랑이라는 돌고래가 타이지에서 수입되어온 개체이고, 비봉이와 아랑이 사이에서 계속 새끼가 나왔다. 그렇게 2008년 태어난 새끼가 똘이, 2005년 태어난 애가 바다”라며 “어미 돌고래가 수족관에서 새끼를 낳고, 3~4일 만에 새끼와 함께 쇼를 했다”고 덧붙였다. 또 조 대표는 2004년 돌고래가 쇼 도중 죽었다는 전직 조련사의 증언 내용과 퍼시픽랜드에서 태어난 20마리 이상의 새끼 돌고래 중 두 마리만 남고 모두 죽었다는 비공식 통계 내용도 함께 전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단독] “각서·금품 약속 받은 사람들, MB 집권하자 靑 찾아가 압박”

    [단독] “각서·금품 약속 받은 사람들, MB 집권하자 靑 찾아가 압박”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김성곤 위원이 만났습니다 - ‘MB 저격수‘ 정두언 前의원 평창동계올림픽이 마무리되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유용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MB) 전 대통령 소환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이미 MB의 형인 이상은 회장, 조카 이동형 부사장, 아들 이시형 전무(이상 다스), 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 등 친인척이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 관심은 MB와 부인 김윤옥 여사로 모아지고 있다. 2007년 대선 때 MB의 가족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 세 가지가 있었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정두언 전 의원을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뜻 맞는 전직 관료들이 모여서 일한다는 그 법인의 휴게실 벽엔 수십 병의 와인이 채워진 와인 냉장고가 있었고, 옆엔 드럼, 색소폰, 기타 등이 있는 연주실이 구비돼 있었다. 그때서야 정 전 의원이 음반을 낸 아마추어 가수라는 게 기억났다. 동료가 모여서 가끔 노래와 연주를 한단다. 궁금한 것은 경천동지였지만 바로 묻진 못했다. “그런 것은 말 못 해요”라고 하면 인터뷰가 싱겁게 끝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근황부터 물었다.→요즘 같으면 정치를 접은 것 같다. 방송인도 괜찮은 것 같은데. -종편과 라디오 몇 개, 자원봉사 겸해서 다문화TV에 나가서 진행도 하고 패널도 한다. 인터넷 강의로 상담도 하고 있다. 진짜 은퇴하면 자원봉사하려고 자격증도 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카운슬러라면 잘할 것 같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지 않나. 허허허. →그래도 본업은 정치 아닌가. -정치는 그만뒀다. 접었다. 지구당 사무실도 정리했고 당 소속도 없다. 정치 접었다고 써도 된다. 어릴 적 꿈은 연기였다.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는데 연락이 안 온다. 이 나이에 주인공을 할 것도 아니고, 악역을 하고 싶다. 황정민이나 송강호도 악역으로 시작한 것 아닌가. 그래야 뜬다. 하하하. →‘MB 저격수’로 불려서 나중에 정치에 부담되는 것 아닌가 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하자고 다짐했다. 정치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정치를 하면서 무엇을 하는가가 목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다. 난 다섯 번 출마를 했는데 한 번도 공천 경합을 한 적이 없다. 우리 지역구(서대문을)가 구여권에 굉장히 불리한 곳이어서 공천 신청자가 없었다.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마음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느 당에 가겠나. 정치를 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길이 있어야 정치를 하지. 당이 있어야 정치를 하지, 정치권이 천지개벽하듯이 변하면 몰라도 지금은 정치를 할 수 없다. 자의 반 타의 반 정치 그만두게 된 거다. →본래 고향은 어디인가. -광주다. 작고하신 백부가 광주에서 6선 하신 정성태 전 의원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생활이 어려워 어렸을 때 광주 외가 등에서 좀 살았다. 하지만 학교는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차별을 받아서인지 호남 사람이 서울에 살면서 호남 출신이라고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되니까. 평생 안 그러다가 “내가 호남이다”라며 총리도 하고, 장관 한 사람도 많다. MB 정권 땐 장관을 시켜 놓고 원적을 찾아내 호남 사람 만들기도 했다. 오기 때문인지 차별받으니까 오히려 난 호남이라고 박박 우기며 살았다. 공무원 시절 청와대 파견 갔는데 신원 조회에서 세 번이나 걸렸다. ▶ [단독] “각서·금품 약속 받은 사람들, MB 집권하자 靑 찾아가 압박” →MB가 당선되고 인수위원회에서도 그런 게 있었나. -그때 내가 인사를 많이 주관했다. 요즘 실세라고 하나. 견제가 심했다. 세 번에 걸쳐 나를 음해했다. 엉뚱하게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도 하고, 대구에서 국회의원도 한 H씨가 MB를 만나 “물갈이를 해야 하는데 정두언을 그대로 두면 호남 출신만 중용할 것이다.” 이게 첫 번째다. MB가 수긍 안 하니까 “정두언이와 일하는 애들이 운동권인데 그대로 두면 빨갱이 세상 못 바꾼다.” 두 번째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세 번째로 들이댄 게 “정두언이가 부인 화랑을 하면서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했다더라. 결국은 내가 나오고 그 자리를 박영준(당선인 비서팀 총괄팀장)이 차지했다. 형님(이상득 전 의원) 뜻대로 된 것이다. 그 후 그들이 결국 인사를 좌지우지한 것 아닌가. →MB가 왜 그렇게 형님에게 의존했다고 보나. -형님한테 빚을 많이 진 셈이다. 특히 돈 관리는 위험한 것인데 형님이 다 했다. 그래서 이상득 전 의원이 한 번은 저축은행으로, 그다음은 포스코 관련으로, 이번에는 특수활동비로 조사를 받는 것 아닌가. 역할 분담을 한 것이다. MB는 우유부단해서 인사나 이런 것은 결정을 못 한다. 형님이 그런 것 나서서 많이 했다. 인사를 못 한다는 것은 사람을 못 믿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의심하는 줄 아는가. 잘 속이는 사람이 의심도 많다. 남들도 다 그러리라 생각한다. →MB와 틀어지게 된 계기는. -결정적인 게 한상률 전 국세청장 때문이다. 대선 후 국세청에 MB 파일을 내놓으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한 전 청장이 만든 것들이다. 검찰에서 ‘도곡동 땅이 제삼자의 것으로 추정된다’며 애매하게 결론 내렸지만, MB를 많이 괴롭힌 파일이다.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최대 걸림돌이 도곡동 땅이었고 본선 때는 BBK였다. 그래서 MB에게 국정원과 국세청 파일을 받겠다고 보고까지 했다. 그런데 국정원 자료는 신문 스크랩 수준이었다. 국세청에도 파일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아무리 독촉해도 안 내놓았다. 이게 남아 있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할 줄 모르니까 (방비 차원에서) 한 것인데…. 아마 그때가 한 전 청장과 이상득 전 의원이 거래를 했던 때였던 것 같다. 이 전 의원 아들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을 때니까. 그런데 한 전 청장이 “정두언이가 MB 파일 뒤지고 있다”고 모함을 한 것이다. MB에게 “쓸데없는 짓하고 다닌다”며 한 시간을 깨졌다. 당선자 신분이니까 롯데호텔에서 박영준 팀장, 김모 교수 등 셋이 있는 자리였다. 나는 그를 보호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 파일이 진짜 문제가 있는 거였다. 지금 그게 드러나고 있다. 그때부터 틀어졌다. 자기가 떳떳하지 못하니까 날 배척한 것이다. →그런데도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인수위에서 나왔는데 나를 괴롭혔다. 뒷조사하다가 나에게 들켰다. 그때 내가 모 언론사 간부하고 술 먹다가 욱해서 MB 정권의 인사 등에 대해 하소연을 했는데 그게 ‘고소영 강부자’(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에 강남 부동산 자산가가 요직을 차지한다는 것을 빗댄 말) 내각 건이다. 그 이후에 박영준 등 청와대 참모 개편이 이뤄졌다. 원인은 이상득 전 의원이다. 한나라당 55인 서명 파동도 이재오 전 의원이 시작해 놓고 쏙 빠지면서 내가 총대를 멨다. 65세 이상을 커트라인으로 정해 박희태 전 의원 등은 공천에서 다 날리면서 형님만 준 것 아닌가. 결국은 내가 주동자를 자임했다. 내가 모든 게 옳진 않지만, 그래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박근혜 정부 때 유승민 의원 쫓아내려고 할 때도 나는 바른말을 했다. 그러다가 배신자로 덧칠해졌고, 권력과 투쟁만 하는 사람이 돼 버렸다. →경천동지를 언급해 화제다. 욕도 많이 먹고. -경천동지를 꺼낸 배경을 생각했으면 한다.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착실하고 깨끗한 친군데 이혼했다가 재결합했다. 어려울 때 집이라도 하나 만들어 보려고 실수를 한 것인데 “너 돈 받은 놈 아니냐” 하고 내쳐 버렸다. 김희중은 MB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실수 한 번에 내쳐졌다. 부인이 기다리다가 출소 두 달 전에 자살했는데 문상도 없었다. 그런데 각종 의혹에 대해 최근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떳떳한 것처럼 하는 것을 보고 나서 어이가 없어서 그런 얘기를 했다. 사실 MB와 나만 아는 것이 있잖겠는가. 적어도 본인은 알 텐데, MB는 공사 구분이 안 된다. ‘권력의 사유화’란 말을 내가 처음 만들어 냈다.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은 것이라고 했잖나. 국민은 MB는 실제로 돈이 많은데,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 왜 그러냐고 욕한다. 병적이다. 돈이 신앙인 것이다. →MB 구속이 불가피해 보인다. -형량이 얼마냐만 남은 것 같다. 그에게는 선민의식이 있다. “하늘이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자기 뜻대로 인생이 흘러왔고 돈, 명예, 권력을 다 가진 그에겐 지금이 괴로울 것이다. →경천동지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 보자. 가족과 돈 얘기라고 했는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관련된다고 얘기했다. 돈 얘기 아닌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돈이다. 이후에 돈이 들어갈 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밝히면 MB에게 큰 위해가 간다. 지금도 MB는 물려 있는 데 나까지…. →김윤옥 여사 얘긴가. -(한참 생각을 하더니) 엄청난 실수를 했다. 정신 나간 일을 한 것이다. 당락이 바뀔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일을 막느라고 내가 무슨 짓까지 했냐면 ‘집권하면 모든 편의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각서도 써 줬다. 거기서 요구하는 돈도 다 주면서…. 사재를 털어 가면서 많이 줬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MB 정부 출범 후에 찾아왔더라. 그래서 내가 “권력하고 멀어져 있었는데 살아 있는 권력에 가서 얘기하라”고 했다. 자기네가 기획 일을 한다고 하더라. 인쇄 이런 것인데 당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도와주라고 했더니 그냥 대충해서 보낸 모양이더라.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도 자꾸 괴롭히기에 청와대 가족 담당하는 민정수석실 경찰 출신 김모 행정관에게 연결해 줬다. 그 후 보상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이 건도 수사를 할 것으로 보나. -검찰에서 누군가 선을 대서 내게 한 번 연락이 왔다.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엮이긴 싫었다. 그리고 아마 MB가 구속되더라도 거기까진 안 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지간하면 가족을 같이 구속하지는 않으니. 여기까지만 하자. sunggone@seoul.co.kr■ 정두언 前의원 프로필 4집 음반을 낸 아마추어 가수다. 지금은 시사평론가이지만 꿈은 연기자였다. 악역을 원해 곳곳에 문을 두드리지만 아직 답을 못 받았다. 좀더 늙으면 어려운 이웃에게 상담을 해주는 카운슬러가 되려고 한다. 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상과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24회)에 합격해 21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끝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4년 17대 총선(서울 서대문을)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된 뒤 3선을 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이명박(MB) 후보를 도와 서울시장 당선에 기여했고,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을 맡는 등 MB의 최측근이었다. 대선 뒤 당선자 비서실 보좌역으로 인수위원회에 참여했지만, MB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등 영포라인(경북 영일·포항)에 밀려 중도 하차한다. 이후 한나라당 최고위원, 여의도연구소장, 19대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뒤 우울증에 빠져 모진 맘을 먹기도 했었다. 지금은 방송에 출연하며, 행정서비스 자문 및 대행 법인인 ALPS의 고문직을 맡고 있다.
  • ‘복면 인터뷰’ 로드첸코프 “폐회식에 러 국기 휘날리게 하면 올림픽 사망”

    ‘복면 인터뷰’ 로드첸코프 “폐회식에 러 국기 휘날리게 하면 올림픽 사망”

    복면 강도나 테러단체 지도자의 인터뷰가 아닙니다. 하지만 머리카락 보이지 않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짙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코까지 덮은 마스크를 쓴 그의 모습은 마치 그런 인물을 연상케 합니다. 영국 BBC의 댄 론 기자가 러시아의 국가 주도 도핑 의혹을 폭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철저히 신분을 숨긴 채 미연방수사국(FBI)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 아래 살아가는 내부제보자 그리고리 로드첸코프(59)를 단독 인터뷰해 24일 그 내용을 전재했습니다. 로드첸코프는 전날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플라워 세리머니 때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를 연주하게 만들어 우승자 알리나 자기토바(16)가 입술을 삐죽거리게 만든 장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토바는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자격으로 시상대에 올라 대회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걸고 올림픽 찬가 연주를 듣는 참담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습니다.여튼 러시아 모스크바 반도핑 실험실 소장을 지낸 로드첸코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5일 폐회식 때 OAR 선수들이 러시아 국기를 휘날리게 하는 것을 허용하면 “최악의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IOC는 24일 평창에서 집행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로드첸코프는 “깨끗한 스포츠를 위한 싸움을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올림픽이 사망할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또 IOC가 러시아의 도핑 시도가 오랫동안 이뤄져 왔음에도 이를 적발하지 못해 반도핑 운동을 “속여왔으며” 국제종목연맹들은 “태업”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자신은 따랐을 뿐이며 러시아는 선수나 임원들의 반칙을 적발할 생각조차 없었다고 3년 전 미국으로 탈출했을 때의 발언과 같은 맥락의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영국 선수들의 의심스러운 사례에 대한 증거를 여러 건 갖고 있다는 주장도 되풀이했습니다. 아내와 딸들을 러시아에 두고 온 것에 대한 후회도 털어놓았으며 무엇보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러시아의 도핑 때문에 피해를 본 깨끗한 선수들에게 사과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러시아를 탈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디 있을 것 같으냐”는 론 기자의 질문에 “무덤일 것이다. 아주 쉽게 생이 끝났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여러 명의 러시아 도핑 가담자들이 목숨을 잃은 사실 때문에 그는 러시아 정부의 획책으로 암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변호인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일버릇 때문인지 인터뷰 내용보다 방법에 더 눈길이 갑니다. 인터뷰는 미국 모처에서 이뤄졌는데 어느 도시로 비행기 타고 와라, 그 도시의 공항에 내린 다음에야 어디로 오라는 얘기를 듣고 택시를 타 로드첸코프가 기다리던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그의 안전을 위해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방송은 설명했습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인천공항에서 서울과 평창을 거쳐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대관령국도에 의존하던 강릉과 영서(嶺西)의 교통은 앞서 1975년 왕복 2차로의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 이후 대관령고개를 넘는 대신 여러 개의 터널로 이은 4차로 확장공사가 2001년 마무리되면서 영동고속도로는 훨씬 편안해졌다.이제 서울역에서 KTX 열차에 올라 1시간 40분이면 강릉이다. 하지만 지하터널로 백두대간을 지나는 경강선을 타면 결정적인 여행의 재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대관령 고개 너머에 펼쳐진 강릉시내와 동해바다의 장관이 그것이다. 대관령에서 강릉을 바라보면 산과 바다가 제법 멀리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동지방에서는 드물게 토지는 넓고 비옥하다. 강릉 도심의 서쪽은 태백산맥의 준령이 가로막고 북쪽은 야트막한 산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겨울바람을 차단한다. 그 남쪽으로는 남대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조선시대 강릉도호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吉地)다. 그러니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발굴조사에서는 심곡리와 홍제동, 옥계면 현내리와 주수리 등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초당동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적은 헤아리기 어렵다.강릉은 예(濊)의 옛 땅이었다. 이때부터 하슬라((河瑟羅)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곳에서 빈번히 맞부딪친다. 고구려에는 남쪽에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이었고, 신라에도 북방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일 수밖에 없었다. 하슬라가 신라의 영역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진흥왕(재위 540~576) 시대라고 한다. 이후 하서소경(河西小京)과 명주(溟州)로 잇따라 이름과 지위가 바뀐다. 하서는 하슬라의 한자식 표기다. 고려시대에는 1263년(원종 4년) 강릉도, 1308년(충렬왕 34)에는 강릉부, 1389년(공양왕 1) 강릉대도호부로 변화를 겪는다. 오늘날에도 흔히 쓰이는 임영(臨瀛)은 공양왕이 붙인 강릉의 별호(別號)다. 대도호부 체제는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강릉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해변 휴양도시로 완전히 거듭나고 있다. 강릉은 태백산맥과 동해바다, 경포호만으로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여기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역사가 남겨 놓은 다양한 전통문화, 이 도시의 새롭고도 특별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 문화’는 여행자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강릉이 가진 흥미로운 역사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은 김유정과 김주원 부자(父子)다. 태종무열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모두 생몰 연대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신라가 하대로 접어드는 8세기 중·후반을 살았다. 김유정이라면 낯설어도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얽힌 설화라면 익숙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남대천 월화정 설화’를 가장 자세히 적어 놓은 글은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고산 허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라고 한다. 김무월랑은 강릉에 머무는 동안 연화부인과 사귀었다. 그런데 무월랑은 경주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연화부인은 편지를 써서 연못에 던졌는데 잉어가 물고 갔다고 한다. 어느 날 경주의 무월랑 집에서는 잉어를 시장에서 사 왔는데 배 속에 연화부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려사’ 악지(樂誌)에 나오는 ‘명주가’(溟州歌)의 배경설화이기도 하다. 강릉 남대천 남쪽의 바위 언덕 위에는 월화정(月花亭)이 있다. 무월랑과 연화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 지은 정자다. 1933년 강릉대도호부의 객사인 임영관의 부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월화정은 1936년 대홍수 때 남대천이 범람해 휩쓸려 간 것을 2003년 복원한 것이다. 연화부인의 집이 이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연화정은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강릉중앙시장과 마주 보고 있다. 중앙시장은 이제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옛 동해북부선 다리는 최근 인도교로, 철로를 걷어낸 시장 골목은 ‘월화거리’로 새 단장했다. 김유정과 연화부인의 혼인은 중앙귀족과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지방호족의 결합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아들이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해 통일신라를 다룬 각종 사서(史書)에는 그의 이름이 예외 없이 등장한다. 선덕왕이 785년 후사(後嗣) 없이 죽자 군신(群臣)은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김주원이 때마침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해 건너지 못하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며 상대등 김경신을 추대했으니 곧 원성왕이다.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김주원은 명주로 낙향했는데, 원성왕은 786년 그를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했다. 식읍(食邑)은 강릉은 물론 오늘날의 통천·양양·삼척·울진·평해에 이르렀다고 한다.강릉 성산면 보광리 대관령 중턱에는 명주군왕 김주원의 무덤이 있다. 다만 당초의 무덤인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무덤은 조선 명종 때 강릉 부사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후손 김첨경이 복원한 것이다. 이름처럼 왕릉을 방불케 한다. 군왕이라는 호칭은 좀 낯설다. 원성왕은 당나라로부터 선덕왕의 ‘검교태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 신라왕’(檢校太尉 鷄林州刺史 寧海軍使 新羅王)의 작위를 물려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를 두고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원성왕이 스스로 황제국의 제후라는 것을 내보여 대외적 입지를 강화하면서 국내적으로는 특정 지역 세력을 군왕에 봉하는 일종의 봉작제(封爵制)로 황제적 지위를 행사하려 했다는 학계의 시각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김종기는 김주원의 아들인데 작위를 물려받아 왕이 됐다. 김정여는 김종기의 아들인데 처음 조정에 벼슬해 상대등에 이르렀고, 명원공에 책봉됐다. 김양은 정여의 아들인데 김명의 난(亂) 때 신문왕을 도와 사직을 안정시켰고 명원군왕에 추봉됐다’는 대목이 보인다. 김주원 말고도 아들 김종기와 증손 김양이 군왕에 오른 것이다. 김주원 집안이 신라왕의 책봉을 받는 군왕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국가를 추구했다는 연구도 있다. 김주원은 당나라의 수도를 모방해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의 수도를 정했는데, 오늘날 남대천 북쪽의 장안동이 그 흔적이라는 것이다. 당나라의 장안은 고유명사이면서 동시에 천자(天子)의 국도(國都)를 통칭하는 일반명사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김주원의 꿈은 원성왕의 그것보다도 컸다. 명주군왕묘는 강릉시가 제작한 관광지도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무덤 입구의 숭의재(崇義齋)는 김주원을 기리는 사당이다. 정문에는 삼왕문(三王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세 사람의 군왕, 곧 김주원, 김종기, 김양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겠다. 무덤 일대를 돌아본 전체적 인상은 이렇다. 강릉 김씨 종중의 기념물이라는 시각을 덜어내고 객관적 역사를 부각시키면 훨씬 더 진정성 있는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서울시의회 박양숙 위원장,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안’ 수정안 가결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양숙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성동4)이 2017년 11월 9일자로 대표 발의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안」이 2018년 2월 13일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수정 가결되었다.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안」은 무연고사망자와 저소득층이 삶의 어려운 무게를 견디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故人)들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장례문화를 중심으로 한 상부상조의 공동체 의식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적 가치실현을 목적으로 박양숙 위원장이 서울시의회에 발의한 조례이다. 무연고사망자 및 저소득계층 장례지원을 위한 조례안으로써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최초로 발의된 조례인 바,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무연고사망자 및 연고자가 있어도 장례를 치를 능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박양숙 위원장이 당초 대표발의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서울시 차원의 취약계층 장례지원 사업을 위해 진일보된 조례안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과 같은 시민단체는 공영장례지원 대상자를 일정한 취약계층을 한정할 것이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으로 확대하고 빈소 마련과 운구차 지원 등으로 공영 장례지원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해왔다. 시민단체는 「‘제대로 된’ 서울시 공영장례조례 제정 청원」 2,058명분의 서명부를 2018년 2월 22일 서울시의회에 방문하여 박양숙 위원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박양숙 위원장은 서울시 집행기관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청취하여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상임위원회 심의에 앞서서 공청회를 개최하여 시민단체, 집행부, 학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명실상부한 공영장례제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에 수정가결된 조례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지원대상자를 무연고 사망자뿐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모두 포함하도록 했다. 다만 기초생활수급자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하여 시장이 실효적으로 지원대상을 정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그 뿐만 아니라 고독사가 발생한 경우에 구청장이나, 동장, 마을공동체에서 장례를 치루는 경우에도 공영장례 지원이 가능하도록 명시함으로써 가족장례와 마을장례 등과 같은 새로운 저소득 시민 장례지원 사업이 가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취약계층의 장례 지원을 위해서 빈소 마련과 운구차와 같은 차량 지원이 절실하다는 시민단체의 의견을 감안하여, 공영장례 지원 내용에 인력, 물품, 장소뿐만 아니라 차량 지원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설치함으로써 앞으로 빈소와 운구차 제공 서비스를 반영할 수 있는 정책적 통로를 만들어냈다. 박양숙 위원장은 “금번 제정안은 무연고자와 장례를 치루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가족과 지인이 함께 하며,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발의했다. 시민단체의 반론이 있었으나, 시민단체와 집행부와의 숙의 과정을 통해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수정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으로 공영장례조례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공영장례조례가 만들어내는 정책적 공간과 틀 속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영장례의 모습이 갖추어져 나가기를 희망한다.”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박양숙 위원장이 대표 발의하고 상임위원회에서 수정가결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안」은 2018년 3월 7일 서울시의회 제278회 임시회 본회의에 상정 처리될 예정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10년 동안 주인묘 지킨 충견, 결국 주인 옆에서 숨져

    10년 동안 주인묘 지킨 충견, 결국 주인 옆에서 숨져

    주인을 끝까지 지키다 숨진 개의 사연이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22일(현지시간) 영국 더 선은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죽인 주인의 묘를 10년 동안 지키다 죽은 충견에 대해 소개했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 비야 카를로스 파스(Villa Carlos Paz) 시립 묘지. 이곳은 지난 10년 동안 죽은 주인의 무덤을 떠나지 않고 지킨 충직한 독일 셰퍼드종 ‘캐피탄’(Capitan)으로 유명하다. 개 주인 미구엘 구즈만(Miguel Guzman)은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 직후 캐피탄은 주인이 떠난 집에서 사라졌고, 몇 달 뒤 캐피탄은 놀랍게도 주인의 묘가 있는 비야 카를로스 파스 시립 묘지에서 발견됐다. 그 후로 캐피탄은 무려 10년 동안 무덤 곁을 떠나지 않고 주인을 지켰다. 그는 낮에는 묘지 주변을 돌아다녔고 오후 6시면 무덤으로 돌아와 밤새 주인의 곁을 지켰다. 캐피탄의 애절한 사연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으며 캐피탄은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9일 캐피탄은 15살의 나이로 주인 곁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캐피탄을 치료한 수의사 크리스티안 셈펠즈(Cristhian Sempels)은 그의 나이와 상태로는 신부전을 견딘 수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고 수술 중 죽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캐피탄은 주인이 있는 무덤 곁으로 보내졌다. 신부전의 합병증으로 평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관절로 인해 잘 걷지도 못했던 캐피탄이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주인 곁에 머무르며 생애를 마감했다. 10년 동안 주인 묘를 지킨 충견 캐피탄은 어디에 묻힐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동물보호단체 FUPA 회원들은 캐피탄이 주인 옆에 묻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캐피탄은 미구엘 구즈만이 2005년 13살 아들 데이안에게 선물한 애완견이었지만 그는 다음 해인 3월 갑자기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CENTRAL EUROPEAN NEWS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문화재도 수난…1000년 된 석상 올라타는 中 관광객들

    문화재도 수난…1000년 된 석상 올라타는 中 관광객들

    국가의 오랜 자산으로 소중히 보호받아야 할 문화재가 일부 시민들의 몰지각한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중국 동영상 사이트 피어비디오는 음력 설 연휴 기간 동안 허난성 뤄양시에 있는 사찰인 백마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약 1000년 된 말 석상 위에 올라타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 중 한 곳인 백마사 외부에는 2개의 말 석상이 있는데, 이는 송나라(960~1279) 시대에 만들어져 황제의 사위이자 장군이었던 인물의 무덤에서 옮겨진 것이다. 석상 주위에는 돌 난간으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었지만 관광객들은 이를 뚫고 석상으로 접근했다. 사실상 난간들은 높은 석상 위를 기어오르는 편리한 디딤돌로 사용되고 있다. 피어비디오가 공개한 영상에는 4명의 아이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한꺼번에 말 석상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근처 상인이 “말 석상은 송나라의 유물이다. 등반을 금한다”며 관광객들을 수차례 타이르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소용이 없었다. 조각 상 위에서 사진을 찍으려 포즈를 취하는 여성에게 한 스님이 달려와 “어서 내려오세요. 나이도 드실만큼 드신 분이 어떻게 그 곳에 올라갈 수 있습니까?”라며 야단을 치기도 했다. 3년 전 중국 정부는 몰상식한 관광객의 이름을 밝혀 창피를 주기 위해 ‘관광객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미비한 실정이다. 최근 들어 설 연휴 동안 문제가 되는 관광객들의 사진과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면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피어비디오캡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10년간 주인 무덤 지킨 충견, 끝내 주인 곁으로 떠나

    10년간 주인 무덤 지킨 충견, 끝내 주인 곁으로 떠나

    10년 넘게 죽은 주인의 무덤 곁을 지킨 아르헨티나의 충견 '캡틴'이 세상을 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캡틴은 19일(현지시간) 주인이 묻혀 있는 비야 카를로스 파스의 공동묘지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각국 외신에도 소개되면서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충견으로 널리 알려진 캡틴은 올해 15살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으로 치면 이미 노인과 다름 없었고,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다. 꾸준히 공동묘지를 방문해 캡틴을 돌봤던 수의사 크리스티안 스템펠스는 "캡틴이 약 4년 전부터 신부전을 앓았고, 부분적으론 시력도 잃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자주 토하고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괴로하는 날이 많았지만 캡틴은 끝까지 주인의 무덤 곁을 지켰다. 스템팰스는 "걷는 것도 힘들어 했지만 죽기까지 주인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캡틴이 비야 카를로스 파스의 공동묘지에 나타난 건 2007년 1월이다. 그때부터 캡틴은 아예 공동묘지에 살면서 주인의 무덤을 지켰다. 다만 캡틴이 주인의 무덤을 어떻게 찾았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캡틴의 주인 미겔 구스만은 2006년 3월 사망했다. 카를로스파스 병원에서 사망한 그의 시신은 바로 빈소로 옮겨졌고, 여기에서 장례를 치른 뒤 공동묘지에 묻혔다. 가족들은 캡틴을 병원이나 빈소에 데려가지 않았다. 무덤에 데려간 적도 없다. 주인이 사망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캡틴은 갑자기 연기처럼 집에서 사라졌다. 가족들은 캡틴이 집을 나간 줄 알고 찾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사라진 캡틴이 나타난 곳은 주인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다. 지금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는 공동묘지 관리책임자 엑토르 베사가는 "어느 날 갑자기 캡틴이 나타나더니 하루종일 묘지를 돌다가 혼자 주인의 무덤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캡틴은 그날 이후 아예 공동묘지에 눌러앉았다. 가족들이 무덤에서 캡틴을 발견한 건 몇 개월 뒤다. 가족들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공동묘지를 혼자 찾아갔다는 건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연을 알게 된 공동묘지 직원들은 캡틴을 진심으로 돌봤다. 캡틴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공동묘지 직원들이다. 직원들은 "이제 캡틴은 떠났지만 캡틴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다"면서 "매일 공동묘지를 돌다가도 정확히 오후 6시가 되면 주인의 무덤을 찾아 지키던 캡틴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라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오달수가 밝힌 연희단거리패 3대 원칙

    오달수가 밝힌 연희단거리패 3대 원칙

    곽도원 “이윤택 때문에 연극 못 하게 돼…영화계 진출”이윤택 “이민정 남달리 예쁘고 예의 발랐다”이희준, 윤제문, 최무성, 황석정도 연희단거리패 출신 연극계 대부 이윤택의 성추행·성폭행에 대한 폭로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그가 이끈 연희단거리패 출신 유명 배우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윤택 추문’으로 최근 해체된 연희단거리패는 실력파 배우를 배출하는 ‘연극사관학교’로 불렸다.연희단 출신 배우들이 말하는 이윤택과, 이윤택이 평가한 연희단 출신 배우들을 과거 인터뷰를 통해 짚어봤다. 오달수는 지난 2016년 2월, 연희단의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스승’ 이윤택과 함께 씨네21 인터뷰에 응했다. 오달수는 “자신의 극단을 운영하면서 몸담았던 ‘연희단의 미덕’을 가져오게 됐다”며 연희단의 3가지 규칙을 소개했다. 그는 “약속시간 엄수, 상호비방 금지, 지금은 크게 완화된 걸로 아는데 연애 금지”라면서 “스승의 좋은 정신을 가져왔다”고 했다.이에 이윤택은 “당시 극단원들이 연애를 하도 해 연극이 안 될 정도라 연애를 금지시켰는데 몰상식한 짓이었다”면서 “요새는 연애 권장”이라고 말했다. 오달수는 연희단에서 연출을 하며 단원들의 따돌림을 받았던 기억도 떠올렸다. 그는 “연희단에 있을 때 단원 훈련용으로 ‘쓰레기들’을 연출한 적이 있다. 연습이 끝나고 으레 단원들이 있겠다 싶은 단골 술집에 들렀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상해서 보니까 다들 신발을 숨기고 날 따돌렸다”면서 “나는 연출하면 안 되는구나 느꼈다. 남한테 상처나 주고 나도 상처받고…. 능력도 안 됐다. 외로워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스스로 더 외로워지는 무덤을 파고 있었다”고 말했다.배우 곽도원은 이윤택과의 악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2년 8월 씨네21과 인터뷰에서 “선배들 말을 안 듣는다고 연희단에서 쫓겨 났었다. 앞이 캄캄했다”면서 “이윤택 대표는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가장 높은 분이고 내가 어느 극단에서 연극을 해도 ‘저놈은 잘라’ 하면 잘리는 정도의 파워를 가진 분이다. 그러니 이제 연극을 못하게 된 거다”라면서 이 일로 밀양에서 만나 4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곽도원은 “여자친구한테 복수를 하고, 나를 연기 못하게 한 이윤택 대표에게 떳떳하게 나서고 경제적으로 힘든 걸 극복하자고 마음먹었다”면서 “그러려면 영화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며 영화배우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를 설명했다. 곽도원은 연희단 출신인 오달수를 찾아가 ‘키워달라’고 부탁했으나 오달수가 ‘나는 못 키운다’고 거절한 일화도 소개했다. 이윤택도 곽도원에 대한 인상을 지난 2016년 7월 월간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얘기한 바 있다. 그는 “곽도원은 7년 반을 여기(연희단)에 있었는데 굉장히 게을렀다. 여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곳인데 말이다”라면서 “대신 순발력이 굉장히 뛰어난 배우였다. 연극보다는 영화가 훨씬 어울렸다”고 말했다.배우 이병헌과 결혼한 이민정도 한때 연희단에 몸을 담았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서 연출을 배우던 이민정은 지도교수의 눈에 띄어 연극을 통해 연기에 입문했다. 이민정은 2004년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연극 ‘서툰 사람들’의 화이 역을 맡았다. 이윤택은 2012년 10월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민정에 대해 “남달리 예쁜 배우 지망생이 밀양연극촌에서 연기를 열심히 배웠는데 그때 이미 될성부른 나무라는 것을 직감했다”면서 “미모도 타고났지만 똑 부러진 연기와 예의 바른 생활태도로 더 주목받은 배우”라고 회상했다. 이윤택은 앞선 브라보 마이 라이브와 인터뷰에서 이민정이 출연한 서툰사람들에 대해 “관객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민정이) 너무 예쁘고 너무 잘해서였다. 어떻게 이런 배우가 부산에 있느냐고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영화 1987에서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를 연기한 이희준은 연희단 9기 출신이다. 이희준은 2016년 씨네21 인터뷰에서 “2002년 무렵 서울에서 열린 연기 워크숍에서 처음으로 이윤택 선생님을 뵀다”면서 “선생님이 ‘연극이 그렇게 좋니? 하루 종일 연극을 하게 해 주겠다’며 알려주신 곳이 밀양연극촌 워크숍이다. 8개월 동안 정말 마음껏 연극만 했다”고 말했다. 이희준은 “하루 3시간 남짓 자고 연습하고 연기했든 그 시절만큼 카타르시스를 느낀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이밖에 배우 윤제문도 1996년 연희단 산하 우리극연구소에서 연극에 입문했다. 그는 연희단에서 같이 공연한 여배우를 아내로 맞았다. ‘응답하라 1998’에서 택이(박보검) 아빠를 연기한 최무성과 개성있는 조연인 황석정도 연희단 출신이다.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우주를 보다] 이곳에 무덤이…카시니호가 뛰어든 토성 지역 공개

    [우주를 보다] 이곳에 무덤이…카시니호가 뛰어든 토성 지역 공개

    지난해 9월 15일 오전 7시 55분(한국시각 15일 저녁 8시55분)께 토성 대기권으로 뛰어들어 장렬한 죽음을 맞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토성탐사선 카시니호의 최후 목적지가 공개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간) NASA는 카시니호가 '최후의 다이빙'을 위해 뛰어든 지역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이 사진은 카시니호가 전날인 14일 촬영한 것으로 탐사선과 화성과의 거리는 63만 4000㎞다. 이후 카시니호는 사진 속 동그라미가 그려진 지역으로 뛰어들어 토성 대기 속에서 산화했다. 곧 사진 속 지역은 카시니호의 무덤이 된 곳이다.   카시니호는 NASA와 유럽우주국(ESA)이 1997년 10월 발사한 카시니-하위헌스호의 일부다. 7년을 날아가 토성 궤도에 진입한 카시니-하위헌스호 중 하위헌스는 모선에서 분리돼 2005년 1월 타이탄의 표면에 착륙해 배터리가 고갈될 때까지 한 시간 이상 데이터를 송출하고 수명을 다했다. 그간 카시니호는 아름다운 고리로 빛나는 ‘신비의 행성’ 토성과 위성의 모습을 촬영해 사진만큼이나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탐사 10주년이었던 2014년 기준, 카시니호는 총 500GB의 데이터를 보내왔으며 3000편 이상 논문의 ‘재료’가 됐다. 카시니호의 탐사덕에 인류는 토성 및 주위 고리와 육각형 태풍의 모습, 메탄 바다가 있는 타이탄의 비밀을 밝혀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염하에 손돌목 출렁다리 건설해 세계적 관광명소로 육성하자” 정왕룡 김포시의원 제안

    “염하에 손돌목 출렁다리 건설해 세계적 관광명소로 육성하자” 정왕룡 김포시의원 제안

    “구한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수많은 스토리와 애환이 서린 염하의 덕포진 손돌무덤에서 강화 광성보 용두돈대를 연결하는 ‘출렁다리’를 건설하면 세계적 관광명소가 될 것입니다.” 정왕룡 경기 김포시의원이 민선6기 의정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의회 5분 자유발언에서 21일 이같이 제안했다. 정 의원은 먼저 보름전 다녀온 강원 원주의 소금산 출렁다리 사례를 꺼내들었다. 원주 간현관광지에 소금산 등산로 구간의 암벽 봉우리를 잇는 소금산 출렁다리는 섬강 100m 상공에 설치돼 있다. 길이 200m, 폭 1.5m로 국내 산악보도교 중 최대 규모다. 직경 40㎜ 특수도금 케이블이 8겹으로 묶여 양쪽 아래위로 다리를 지탱하고 있어 몸무게 70㎏ 성인 1285명이 동시에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다. 전망대가 있으며 초속 40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고 섬강의 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소금산 출렁다리를 보고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는 정 의원은 “김포를 많은 분들이 하늘과 강·바다가 잇닿은 천혜의 자연환경 조건이라지만 강과 바다는 막혀 있고 하늘은 김포공항이라는 이름과 교통편의성만 제공한 채 김포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며, “ 그럼에도 한강하구 조강을 열고 바다로 향하는 뱃길을 열어 김포 발전을 옥죄고 있는 분단의 사슬과 각종 규제를 끊는 작업은 한시도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5분 자유발언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손돌목 출렁다리’ 건설을 제안했다. 정 의원은 “저는 소금산 출렁다리를 다녀오면서 강화와 김포사이를 흐르는 염하 한복판에 있는 손돌목을 떠올렸다”며, “덕포진의 손돌무덤에서 맞은 편 강화 광성보의 용두돈대를 잇는 출렁다리를 만든다면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손돌목 일대는 대몽항쟁을 비롯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운요오호 사건 등 수많은 스토리와 전란에 스러져간 민초들의 애환이 전승돼 오고 있는 곳이다. 손돌목 일대는 병인양요 당시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양헌수 장군과 그 부대가 도하한 곳이다. 또 삼남지방에서 출발해 조강을 거쳐 마포나루를 오르내리던 세곡선들이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정 의원은 “손돌목 출렁다리가 세워지면 김포에서 강화를 걸어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며 염하일대에 손돌목 둘레길을 만든다면 이 또한 명소가 될 것이고 관광김포, 문화김포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제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종일 자고 싶다”… 시크한 상남자 그대로 “꿈인가 싶게 기뻐”… 울보로 변한 강심장

    “인터뷰로 제 자유시간 뺏었다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저 어차피 약속도 없어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은 기말고사 보고 취업준비 해야 한다며 절 만나 주지도 않아요.”(윤성빈이 서울신문 2016년 1월 9일자 13면 인터뷰에서) “냉철한 승부사라고요? 저 은근히 잘 덤벙대요. 어릴 때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길 가다 무언가에 부딪히는 일도 종종 있었어요. 경기 전 긴장도 많이 하는 성격이고요.”(최민정이 서울신문 2015년 3월 21일자 10면 인터뷰에서) 설 연휴 값진 금메달로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국민을 기쁘게 한 윤성빈(24)과 최민정(20). ‘올림픽 영웅’으로 우뚝 서기 위해 둘은 지난 수년간 어떻게 성장했을까. 트랙이나 링크 위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둘은 어떤 모습일까. 둘이 과거 서울신문과 한 단독 인터뷰와 금메달을 딴 뒤 가진 기자회견 등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봤다. 2년 전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윤성빈은 ‘상남자’ 그 자체였다. 강원 평창에 있는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하던 윤성빈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깐 자유시간을 얻어 ‘세상’에 나왔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기자가 “천금 같은 시간을 뺏은 것 같다”고 미안해하자 “약속도 없는 몸”이라며 먼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윤성빈의 성격은 지난 16일 금메달을 딴 직후 평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꾸밈없이 시크한 매력을 발산하며 회견장을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통틀어 길이 남을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전화기 꺼두고) 종일 자고 싶다”고 했다. 윤성빈의 가슴속엔 어마어마한 승부욕이 숨어 있다.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로 “동메달만 따도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창은 내가 흘린 땀을 모두 쏟아붓는 무대”라며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올림픽 챔피언을 하고도 지기 싫은 건 마찬가지다. 이번 대회 6위에 오른 김지수(24)가 자신을 위협할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질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왕좌를)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도전에 굶주린 윤성빈은 스켈레톤에서 적수를 찾지 못하면 종목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썰매는 항상 재밌다. 기회가 되면 봅슬레이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뜻을 드러낸 바 있다. 윤성빈처럼 평소 무표정한 얼굴로 인해 ‘얼음공주’라는 별명을 얻은 최민정. 하지만 내면은 여린 소녀다. 지난 13일 500m에서 다 잡았던 은메달을 실격 판정으로 날렸을 때, 17일 15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 맨 위에 섰을 때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울음을 터뜨렸다. 물론 두 눈물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그는 금메달을 딴 직후 취재진과 만나 “너무 힘들게 준비해 감정이 북받쳤다. 4년간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니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게 만감이 교차했다. 꿈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기쁘다”며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때도 그랬지만, 최민정은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조곤조곤 말을 잘하는 성격이다. 항상 안경을 쓰고 있어 학구파처럼 보이는데, 실제 독서를 제1 취미로 꼽는다. 어릴 적부터 독서 습관을 키워 준 부모님 덕에 책을 옆에 끼고 다닌다. 중학교 시절부터 ‘쇼트트랙 천재’로 불린 최민정이지만, 정작 자신은 ‘노력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늘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운동선수에게 흔한 의례적인 멘트가 아닌, 운동철학이 담긴 말이다. 500m 실격 충격을 훌훌 턴 것도 이런 평소 신념에서 가능했다. 최민정은 “500m에서 결과는 그렇게 나왔어도 과정에선 후회가 없었다. 500m 결과에 연연하면 다른 종목에 지장이 있기에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힘들었던 순간을 되돌아봤다. 평창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사망선고 오류…11일간 관 속에서 몸부림 친 女, 결국

    사망선고 오류…11일간 관 속에서 몸부림 친 女, 결국

    브라질의 한 여성이 사망 판정을 받고 관 속에 묻히고도 무려 11일이나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북동부에 사는 37세 여성 산토스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패혈성 쇼크를 일으켜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은 그녀의 가족들은 다음 날 시신을 고향으로 옮긴 뒤 장례를 치렀다. 가족들은 시신을 돌로 만든 관에 안치한 뒤 시립묘지에 묻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은 이후 발생했다. 시립묘지 인근 마을 주민들이 때때로 무덤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었고, 소리의 출처가 산토스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들이 연락을 받고 산토스의 무덤을 다시 찾은 것은 시신을 매장한 지 11일이 지난, 2월 9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장한 관을 다시 꺼내 뚜껑을 열어 본 가족들은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망선고를 받은 산토스의 이마와 손에 상처가 가득했다. 산토스의 부러진 손톱이 관 구석구석에서 발견됐고 내부에는 핏자국도 선명했다. 무엇보다도 산토스의 ‘시신’이 조금 전까지 살아있었던 사람처럼 따뜻했다. 가족들은 사망선고를 받고 관에 묻힌 산토스가 깨어나 관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고 곧장 병원으로 다시 후송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산토스에게서 더는 생명의 징후를 찾을 수 없었고, 의료진은 ‘또 다시’ 그녀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산토스의 엄마는 “딸이 관 뚜껑을 열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심지어 부러진 손톱이 관 모서리에 박혀 있기도 했다”면서 “손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얼마나 관 밖으로 나오려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산토스의 가족들은 ‘첫번째 사망선고’를 내린 의료진에게 잘못이 있었다고 보고 있지만 법적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토스의 동생은 “우리는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다. 어떤 문제도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서 “다만 사람이 11일 동안 땅에 묻혀 있는데다 따뜻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지 경찰은 해당 사건이 발생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조사 중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1일간 관 속에 갇혀있다 죽은 브라질 여성

    11일간 관 속에 갇혀있다 죽은 브라질 여성

    장례식을 치른 여성이 관 속에서 11일간 버티다 숨진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더 선은 최근 브라질의 로산젤라 알메이다 도스 산투스(Rosangela Almeida dos Santos)란 여성이 11일간 관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바이아주 히아샹 더즈 네베스 마을의 37살 로산젤라는 두 번의 심장마비 후 패혈증 쇼크로 사망했다. 28일 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열렸고 그녀는 센오라 산타나 공동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콘크리트묘 내부의 목관 속에 묻힌 그녀는 죽지 않은 상태였다. 공동묘지 인근 주민들은 장례식이 11일 후인 2월 9일에도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겪은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결국 무덤을 파혀쳤고 관 속에 숨져있는 로산젤라의 모습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관 속 로산젤라의 손과 이마에는 상처가 있었고 관 내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그녀는 관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쳤지만 끝내 11일 만에 숨졌다. 현지 주민 나탈리아 실바(Natalina Silva)는 G1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덤 앞에 지났 때,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며 “두 번의 신음소리가 묘지 주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장난인 줄만 알았다”고 밝혔다. 친척 아나 프란시스코 디아스(Ana Francisco Dias)는 그로보 TV와의 인터뷰에서 “로산젤라의 장례식에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발을 만졌으며 모두가 그녀의 발이 아직 따뜻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며 사망 판정을 잘못 내린 병원의 과실을 지적했다. 현지 경찰은 로산젤라 가족의 요구에 따라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혐의가 있는 관련자들을 기소할 방침이다. 사진·영상= CASAL DOS VIDEOS 영상팀 seoult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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