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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0년 버텨온 ‘동방의 금자탑’… 만년 굳센 고구려 축조기술

    1500년 버텨온 ‘동방의 금자탑’… 만년 굳센 고구려 축조기술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고구려 고분 유적1966년 1만1280기… 현재 6854기만 남아1~2세기 계장식·3세기 계단식 적석총 발전최종단계 모습 갖춘 ‘장군총’ 형식 완성北 “장수왕”… 南 “광개토왕” 묘주 이견200t 횡압 견딘 정교한 기술로 원형 유지적절한 거대함에 정교한 세부기법 백미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시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이 있던 곳이다. 왕국의 수도는 성곽과 왕궁과 왕릉을 갖추어야 한다. 퉁고우(通溝)성이라 부르는 성곽이 바로 고구려 도성의 성곽이며, 시정부 청사 부근이 왕궁 터다. 그리고 십여기의 대형 왕릉이 산재하고, 그 최후의 완성작인 장군총이 우뚝 서 있다. ●국내성, 묘분총릉으로 남은 도성 첫 수도 졸본성은 현재 랴오닝성 환런(桓仁)현 오녀산성으로 비정한다. 고구려라는 이름은 ‘고구리’에서 왔고, ‘높은(高) 고을(구리)’이라는 뜻이다. 첫 수도의 지형이 곧 나라 이름이 됐다. 도시국가적 성격이 강했던 고대의 국(國)이란 도성을 뜻하는 한자이며, 국내(國內)란 ‘도성 안’이라는 의미의 땅 이름이다. 2대 유리왕이 서기 3년에 천도한 국내성은 20대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25년간 수도였다. 평양 천도 후에도 평양성, 한성(황해도 재령 비정)과 함께 고구려의 큰 중심 도시로 군사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668년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은 형제 간의 권력투쟁에 밀려 국내성에 은신했고 당나라에 부역해 고구려 멸망에 앞장섰다. 이후로는 중국계 왕조의 영토가 되어 한국사의 범위에서 사라졌다.현존하는 국내성 일대의 중요한 유적은 거의 흔적만 남은 국내성과 환도산성의 성곽, 광개토왕비, 그리고 수많은 고분들이다. 고구려 고분은 1966년 조사 때 1만 1280기였는데, 1997년 통계는 6854기뿐이니 최근까지도 참담할 정도로 멸실되어 왔다. 600여년간 조성했던 고분들이 1400년 동안 파괴의 역사를 겪어 남은 것이 이 정도로, 전성기에는 최소 2만기 이상의 방대한 유적이었을 것이다. 5세기까지는 봉분을 돌로 쌓은 적석총, 그 이후는 흙으로 쌓은 봉토분으로 조성됐다. 국내성 일대에 현존하는 적석총, 즉 돌무지 무덤은 1700여기이며 추정 왕릉들은 모두 적석총이다. 무용총, 각저총 등 벽화로 이름 높은 무덤들은 돌방을 흙으로 덮은 봉토분들이다. 고고학에서 묘란 크고 작은 모든 무덤이며, 분총릉은 왕릉급 대형 무덤을 뜻한다. 그 가운데 매장자가 확실한 것은 릉, 매장자는 모르나 특징적인 유물이 출토된 것은 총, 매장자도 모르고 특징물도 없는 것은 분이라 부른다. 국내성 일대 왕릉으로 추정되는 대형 무덤은 13기 정도인데 서대묘, 칠성산211호분, 장군총, 태왕릉 등으로 다양하고 혼란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까닭이다.크고 높은 왕릉을 만들기 위해 초기에 발달한 축조법은 계장(階墻)식이다. 급경사지에 기대어 높은 돌담을 쌓고, 점차 낮은 돌담을 덧붙여 쌓는 방법이다. 완공되면 마치 아랫단부터 쌓아 올린 피라미드와 같은 모습이 된다. 국내성 일대의 계장식 적석총은 1~2세기에 조성된 마선구 626호분, 칠성산 871호분 등이다. 3세기부터는 완만한 경사지나 평탄지에 아래부터 여러 석단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계단(階段)식 적석총이 나타난다. 그리고 최종 단계인 천추총, 태왕릉, 장군총에 이르러 그 형식을 완성했다. 이 세 무덤은 7~11단을 계단식으로 쌓았고, 중간 단에 돌방을 만들어 관을 안치했다. 또한 최상단 위에는 기와집을 세웠던 흔적이 있다. 계장식 적석총은 밑변 길이 40여m, 높이 5m 이상의 큰 규모였고, 장군총을 제외한 계단식은 더 커져 밑변 60여m, 높이 10m 이상이었다. 대부분 붕괴되어 돌무지 언덕과 같이 남았지만, 뛰어난 기법으로 쌓은 장군총만은 그 온전한 모습이 남아 ‘동방의 금자탑’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금자(金字)탑이란 피라미드의 한자어다.●장군총, 동방의 금자탑 ‘장군총의 묘주가 어느 왕인가?’는 뜨거운 논쟁거리다. 서쪽 1㎞에 떨어진 태왕릉이 광개토왕릉, 장군총은 장수왕릉이라는 추정이 중국과 북한의 주류 의견이다. 그러나 평양 천도 64년 후에 죽은 장수왕이 굳이 국내성에 묻힐 이유가 없다. 따라서 장군총은 광개토왕릉이고, 태왕릉은 그 아버지 고국양왕릉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태왕이란 중국의 황제에 버금가는 고구려식 존호였고, 광개토왕뿐 아니라 고국원왕, 고국양왕도 태왕이라 불렀다. 밑면의 한 변 길이 31.6m, 높이 12.4m 규모다. 모두 7단을 쌓았고, 제4~5단에 석실을 만들어 묘실을 노출시켰다. 무덤의 표면은 잘 다듬은 사각형 큰 돌들을 쌓아 마감했다. 1100여개 마감돌 중 큰 것은 길이 5.7m, 너비 1.1m의 거석이다. 정방형 석실의 천장은 5평이 넘는 거대한 판석으로 덮었다. 제7단 위에 난간 구멍과 초석들이 있어 목조 기와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고, 중남미 마야의 피라미드는 제단이었다. 장군총을 비롯한 계단식 적석총 정상에 제사용 건물이 있었다면, 이집트와 마야의 기능을 합친 복합형 피라미드가 되는 셈이다. 장군총 뒤에는 2개의 작은 적석총 폐허가 나란히 남아 있다. 이른바 배장묘로 장군총 묘주와 밀접한 관계인의 무덤이라 보인다. 그 옆에 좁고 긴 돌무지 면이 있는데 제사를 지내던 제대로 추정한다. 제대를 가진 적석총이 대개 11기이고, 제대는 왕릉의 필수 요소였다. 무덤 주변으로 잔자갈을 넓게 깔아 묘역을 만들었고, 그 바깥으로 돌담을 둘러 묘역을 보호했다. 완성된 고구려의 왕릉을 그려 보자. 광활한 벌판에 능장을 둘러 독립된 묘역을 조성하고 배장묘와 제대를 부설한 뒤, 그 중심에 우뚝한 적석총이 산과 같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군총이 아직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비밀은 정교한 축조기술에 있다. 우선 지하를 깊고 넓게 판 뒤 돌들로 단단히 다져 기초층을 만들었다. 기초부 자연석의 형태에 맞추어 1층 기단석들을 깎는 그렝이 기법을 사용했다. 모든 마감석 상부 끝 모서리에 돌출된 돌턱을 만들어 윗돌이 밀려나는 걸 방지했다. 돌을 많이 쌓으면 수직압력뿐 아니라 옆으로 밀치는 횡압력이 발생한다. 이전의 거대 적석총들이 붕괴된 가장 큰 이유다. 그렝이질과 돌턱은 횡압을 견디는 견고한 장치다. 제1층 석단에는 거대한 호분석을 기대 놓았다. 한 변에 3개씩 모두 12개에 이르는 호분석은 무덤의 총체적 횡압을 견디는 버팀돌이다. 하나의 무게가 20t 정도이니 어림잡아 200여t의 횡압을 1500년 동안 버텨 온 것이다.●고구려의 미학, 거대함에서 적정함으로 장군총의 주인공으로 회자되는 광개토왕이나 장수왕은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왕들이다. 그 이전의 고구려는 잦은 외침으로 수도까지 함락당할 정도로 국력이 충분치 않았다. 왕권과 국력으로만 따진다면 훨씬 더 거대한 왕릉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장군총은 오히려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직전의 태왕릉은 한 변이 66m, 장군총은 그 절반이다. 이전의 모든 거대 적석총은 무너졌지만 4분의1 면적으로 축소된 장군총은 무너지지 않았다. 앞서 말한 정교한 기술들도 이유지만, 무엇보다 규모를 축소해 돌의 총무게를 줄인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거대함 속에는 늘 붕괴의 위험이 도사리게 된다. 태왕릉에서 출토된 전돌에 이렇게 쓰여 있다. “태왕릉이 산악과 같이 안정되고 견고하길 소망합니다.” 천추총에서도 문자 전돌을 발견했다. “천추와 만년의 세월 동안 견고하기를.” 무너질 줄 알면서 왜 그리 거대하게 쌓았을까? 권력이 약하면 허장성세가 커지지만, 충분히 강해지면 안팎이 일치하는 균형을 잡게 된다. 이전의 적석총들이 지나치게 커서 축소된 것으로 보일 뿐, 장군총 역시 거대한 크기다. 오히려 적절한 거대함이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정교한 세부 기법으로 충만하다. 아름다운 거인이며, 세련된 군왕이다. 장묘법은 가장 바뀌지 않는 풍습이어서 종족적·지역적 문화의 지표가 된다. 그러나 고구려의 묘제는 단순 돌무지무덤에서 출발해, 계장식 적석총으로, 그리고 거대한 계단식 적석총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장군총은 거대 형태를 추구한 적석총의 완성작이자 최후작이다. 이후의 고분들은 묘실 안을 화려하게 장식한 봉토분으로 바뀐다. 이제 무덤은 겉보기 대상물이 아니라 내세의 행복을 위해 은밀하게 준비된 실내가 된다. 허장에서 내실로, 현실에서 이상으로, 거대함에서 적정함으로. 장군총은 그 역동적 변화의 씨방이었다. 또한 고구려 문화의 풍부함과 역동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남겨진 화석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3金은 결국 못했지만… 한화 우승 꿈꾸는 수베로 감독

    3金은 결국 못했지만… 한화 우승 꿈꾸는 수베로 감독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정치계의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못지않게 한국 야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야구판 3김’이다. 김인식 감독은 두산 베어스에서, 김응용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김성근 감독은 SK 와이번스에서 우승을 했다. 그러나 한국야구의 명장으로 꼽히는 3김도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한화 이글스의 우승이다. 김인식 감독은 2005~2009년, 김응용 감독은 2013~2014년, 김성근 감독은 2015~2017년 중반까지 한화를 이끌었다. 한화에서의 성적은 김인식 감독이 2006년 준우승으로 가장 좋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한화에 새로 부임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꿈꿨다. 새로운 팀으로의 변신을 꿈꾸는 한화로서는 수베로 감독과 함께 비상을 노린다. 지난 27일 계약 소식이 전해진 수베로 감독은 “한화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주신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인생에 있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감독직에 대한 연락이 왔을 때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을 전했다.아시아 야구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던 그는 한화의 연락 이후 관심을 갖게 됐다. 이번 시즌 한화는 최하위에 그쳤지만 수베로 감독은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수베로 감독은 “젊고 역동적인 팀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한화의 의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며 “하루빨리 팀 뎁스나 선수들의 기량을 캐치해 장점은 극대화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남겼다. 2018년 제라드 호잉의 존재감과 불펜진의 맹활약으로 가을야구를 한 번 경험했지만 한화는 2008년부터 꾸준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다. 3김도 한화에서의 끝은 좋지 않았던 만큼 한화 감독자리는 무덤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수베로 감독은 당당하게 우승을 꿈꿨다. 그는 ”최종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며 ”계약기간 동안 팀이 점차 발전하면서 계약기간이 끝날 때쯤 목표를 달성해서 모두가 함께 즐거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수베로 감독은 내년 1월 입국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외국인 감독은 성공의 보증수표였던 만큼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변신하는 한화가 새 감독과 어떤 비상을 할지 주목된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리뷰] 성 토마스 교회에서 바흐의 절정 보여준 랑랑

    [리뷰] 성 토마스 교회에서 바흐의 절정 보여준 랑랑

    “인생의 많은 시기에 반복해 연주해 왔지만 그 때마다 완전히 다른 발견을 할 수 있는 작품”, “절망적인 느낌을 멈추게 하고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 피아니스트 랑랑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설명하는 표정이 어쩐지 비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으로 불리던 열 살,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듣고 빠져들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야말로 바흐의 전형이자 바로크 음악의 진수라는 목표가 그려졌다. 10대의 패기로 당차게 연주를 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부족함을 느꼈고, 그는 “수년 동안 연습하며 인생의 수많은 시기에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오랜 과제와도 같았던 이 작품을 랑랑은 드디어 앨범으로 완성했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과 함께 지난 3월 5일 바흐가 잠든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하며 더욱 제대로 목표를 이뤄냈다. 1시간 34분간 진솔한 연주로 바흐와 만난 랑랑의 모습이 도이치 그라모폰(DG) 스테이지 온라인 콘서트 영상을 통해 최근 공개됐다.평소 빈틈없는 속주와 화려한 기교로 자신의 매력을 알렸던 랑랑은 이번엔 꾸밈보다는 건반을 두드리는 그 자체에 진중하게 집중한 모습이었다. 지난 9월 음반 발매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설명할 때 특히 구조와 연결을 강조했다. “마치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아리아로 마무리 짓는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구조를 짜며 연주를 해야 제대로 바흐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조심스러운 느낌이 들 만큼 가볍게 건반을 누르며 서정적인 아리아로 깔끔하게 문을 열었고 4번, 5번, 7번…, 한 음씩 변주가 이어질수록 얼굴에 자신감과 미소가 짙게 띠었다. 랑랑은 인터뷰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 안의 바흐가 정말 바로크 시대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진정한 바로크 음악을 보여줄 수 있도록 순수한 테크닉을 보여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랑랑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그 철칙을 성 토마스 교회에서 지켜냈다. 특유의 기량인 속주보다는 오롯이 집중해 레가토와 스타카토를 구분지었고 그러면서도 표정부터 손 끝까지 변주마다 다른 감정을 실었다. 보통 50~60분 안팎의 작품이 차근차근 쌓아올려져 완성되기까지 90분이 넘게 걸렸다. 성스러운 교회 무대를 가득 채운 청중들이 그와 바흐의 소통을 숨죽이고 지켜본 뒤 묵직한 박수를 보냈다. 랑랑은 바흐의 무덤에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오늘 제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했다면 좋겠습니다.” 바흐의 음성을 들을 순 없었지만 이날 연주에서 랑랑은 “틀림 없이” 그를 느꼈다고 자신했다. 리사이틀과 스튜디오 녹음 일정 중이던 랑랑은 3월 5일 공연을 매우 망설였다고 한다. 빡빡한 스케줄의 압박 때문이었는데 마침 교회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3월 5일 뿐이라 강행하다시피 무대에 섰다. 그런데 이후 유럽에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공연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랑랑은 다음달 13일 국내 팬들과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만날 예정이었지만 내한공연도 결국 취소를 결정해야 했다. 그만큼 성 토마스 교회에서의 연주는 매우 많은 의미로 그에게 특별해 보였다.랑랑은 도이치 그라모폰 스테이지 온라인 콘서트를 소개하는 티저 영상에서 “바흐의 음악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최고 난제이자 큰 산 같았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완주하며 바흐를 만난 랑랑은 당시 영상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묶이길 바라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세상 떠난 어린 주인 무덤을 3년 간 지킨 반려견의 사연

    [여기는 베트남] 세상 떠난 어린 주인 무덤을 3년 간 지킨 반려견의 사연

    어린 주인이 세상을 떠난 지 어언 3년,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주인의 무덤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충견의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베트남 언론 VN익스프레스는 23일 올해 5살이 된 강아지 미노의 사연을 전했다. 3년 전 베트남 남부 롱안성 웃의 집에 입양된 미노는 첫날부터 걸음마도 떼지 못한 어린 끼엣을 가장 좋아했다. 끼엣 또한 강아지와 노는 것을 가장 즐거워했다. 하지만 1년 뒤 끼엣은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은 집 뒤에 끼엣의 무덤을 마련했다. 이때부터였다. 미노는 이른 아침부터 해가 저무는 저녁까지 끼엣의 무덤 위에 올라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끼엣의 할머니는 “강아지가 무덤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게 보기 좋지 않아서 여러 차례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았지만, 잠시 뒤면 다시 무덤 위에 올라가 있었다”면서 “강아지에게 소리도 치고 야단을 쳐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결국 한 달이 넘도록 강아지를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음을 안 가족들은 그냥 미노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가족들 모두 미노와 끼엣이 매우 특별한 관계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 미노는 하루 중 유일하게 정오 경이면 딱 한 번 무덤 위에서 내려왔다.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으로 묘비가 뜨거워질 때면 그곳에 머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욱 신기한 점은 맛있는 과일이나 빵이 생기면 먹지 않고 끼엣의 무덤에 가져다 두는 것이었다. 이웃 주민들도 “미노는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나 태양이 쨍쨍하나 변함없이 끼엣의 무덤에서 종일 시간을 보낸다”고 전했다. 또한 미노는 여느 강아지와 달리 매우 조용하고 똑똑한 강아지라고 덧붙였다. 영특하고 충실한 미노의 사연이 알려지자, 누군가 돈을 보내와 무덤 위에 튼튼한 지붕을 만들 수 있도록 돈을 보내왔다. 미노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3년이 흐르면서 끼엣의 가족들은 미노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끼엣의 할머니는“처음에는 동물이 이처럼 인간을 향해 절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곤 생각치 못했다”면서 “죽을 때까지 미노를 누구에게도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단독] 숨지기 전 일주일 98시간 배송… 툭 하면 욕설·독촉에 시달렸다

    [단독] 숨지기 전 일주일 98시간 배송… 툭 하면 욕설·독촉에 시달렸다

    배송물 파손 이유로 고객과 잇단 말다툼흉통 호소하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져질병판정위 “만성과로·스트레스받은 듯” 택배업무, 육체노동에 감정노동까지 겹쳐46% 언어폭력 경험… 가해자 87%가 고객택배 노동자 박준호(사망 당시 44세·가명)씨는 2019년 4월 25일 오전 고객과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배송 도중 물건이 파손됐다는 민원을 상대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박씨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소화가 안 된다며 식사를 잘 하지 못했지만 다툼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박씨는 속이 불편해 26일 내과와 한의원에서 잇달아 진료를 받았다. 다음날인 27일에는 병원 진료 때문에 배송하지 못한 물품을 배우자와 함께 날랐다. 28일 오전 5시 30분 박씨는 자택에서 심한 흉통을 호소했다. 가족이 119에 신고해 박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8개월 뒤인 2019년 12월 근로복지공단 산하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는 “박씨의 발병 전 1주간 업무 시간이 약 79시간 30분으로 평균 하루 250개의 택배상자를 배송했다”며 “종합적으로 볼 때 고인은 사망 전까지 업무를 수행하면서 만성적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정했다.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지난 6년간 과로사로 인정받은 택배 노동자는 총 9명(산업재해 신청 11명·불승인 2명)이다. 서울신문이 23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비례)로부터 확보한 이들의 업무상 질병판정서에는 살인적인 업무량이 무덤덤하게 기록돼 있다. 배송 도중 쓰러져 사망한 노동자만 5명이었다. 사망하기 전 1주일간 배달시간이 100시간에 가까운 노동자도 있었다. 숨진 택배 노동자들은 고객 민원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택배 업무가 육체노동을 넘어 감정노동이 돼 버린 것이다. 우체국 배송 위탁업무를 하다 2017년 1월 31일 사망한 김상호(당시 53세·가명)씨는 재해 1주 전 업무시간이 98.4시간에 달했다. 김씨는 사망하기 5일 전인 설 연휴 전날부터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들고 식은땀이 났다. 설날 특별 배송기간(11일) 휴무일과 휴식시간 없이 일한 영향이 컸다. 배송 물량이 몰린 탓도 있었지만, 명절 선물 중 고가의 신선 제품이 많은 이유도 있었다. 파손·부패·배송 지연이 되면 김씨가 배상해야 하기에 정신적 부담이 어느 때보다 컸다. 김씨는 명절 연휴에 쉬고 5일 뒤 출근해 평소처럼 일했지만, 경기 파주의 한 아파트에서 쓰러졌다. 지병이 없고 건강한 편에 속했던 김씨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판정위는 “김씨의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57시간 54분으로 최근 업무량이 30% 이상 증가했다”며 “1주간 배달량은 1000건 이상으로 신선식품의 부패 등 배송 지연 등에 따른 육체·정신적 스트레스가 다른 때보다 높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과로사로 숨진 택배노동자 9명 중 8명의 판정서에는 고객 민원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지난 1월 13일 협심증(추정)으로 숨진 이정진(당시 33세·가명)씨도 그렇다. 이씨는 자택에서 쓰러지기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9일 휴일이었음에도 고객 민원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해당 민원인의 집을 찾아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24일 택배 일을 시작한 이후 약 7개월간 총 31건의 민원을 받았다. 한 달에 4건꼴로 민원이 발생한 셈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 9월 택배 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고객 클레임(이의제기)에 따른 정신적 압박이 드러난다. 언어폭력을 당한 택배 노동자는 346명(46.2%)이었는데, 이들은 가해자로 고객(87.3%)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배송을 빨리해 달라는 독촉 역시 431명(58.3%)이 경험했다. 가해자는 고객이 45.4%로 가장 많았고, 대리점(31.6%), 원청(23.0%) 순이었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조위원장은 “분실·파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택배기사에게 뒤집어씌울 게 아니라 회사가 우선 책임지고, 추후 누구 책임인지 입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택배기사들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택배기사들은 배송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응원에 감사하게 여긴다. 무책임하게 배송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혹시 배송이 조금 늦더라도 따뜻한 격려를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년간 업무상 질병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택배 노동자 사례는 2015년 2건이었다. 이들의 재해 4주 전 주당 업무시간은 각각 27시간 41분, 52시간이다. 12주 전은 29시간 51분, 52시간이었다. 판정위는 단기·만성 과로 기준인 발병 4주 및 12주 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각각 64시간, 60시간을 초과하지 않아 객관적으로 업무상 과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비운의 공양왕 부부 ‘무덤에서 나온 귀신’으로 그린 고양시

    비운의 공양왕 부부 ‘무덤에서 나온 귀신’으로 그린 고양시

    경기 고양시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왕비의 실루엣(복장의 세부적인 디자인을 제외한 윤곽)을 ‘괴기’스럽게 꾸며 도심 대로변 배전함 가림막으로 설치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21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고양시는 4년 전 8500만원을 들여 덕양구 원당 호국로에 대한 경관개선사업을 추진하면서 인도에 한국전력이 설치한 배전함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덮개로 덧씌우는 작업을 추진했다. 덮개는 고양시를 상징하는 야옹이 캐릭터와 공양왕릉 등 역사문화유산 사진을 플라스틱 형태의 판으로 인쇄해 만들었다. 문제는 덕양구 주교동 고양주교세창짜임아파트 앞 인도에 설치한 배전함 가림막이다. 이 가림막은 인근 원당동에 있는 공양왕릉 사진 위에 왕릉 소개 설명문과 함께 공양왕 부부를 형상화한 실루엣을 넣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사진 참조) 인근 상인은 “비운의 공양왕 부부가 무덤에서 귀신이 되어 나온 형상”이라며 “누가 만들었는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혹평을 했다. 고양시는 서울신문이 지적하자 이날 경위 파악을 한 뒤 “빠른 시일 안에 교체 작업하겠다”고 밝혔다.앞서 2016년 10월 6일 고양시 성사1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원당호국로 경관개선사업’ 디자인 및 실시설계 용역 최종보고회에서 박시동 시의원은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반영한 배전함 커버 디자인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극찬을 했고, 다른 참석자는 “전체적으로 아주 완성도 높은 용역 결과”라고 평가 했다. 고양시에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왕비가 고려말 이성계 일당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고양시 식사동에서 숨어지내다, 지금의 공양왕릉 앞 연못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공양왕릉은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왕릉골에 위치해 있으며, 1970년 2월 사적 제191호로 지정됐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도 공양왕릉이 있으며 1995년 9월 강원도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고양 공양왕릉만이 문헌에 기록돼 있어 ‘진묘’로 인정받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In&Out] 태릉선수촌을 태릉전통무예촌으로/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In&Out] 태릉선수촌을 태릉전통무예촌으로/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태릉은 1408년부터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다. 일반인에게 왕릉은 어릴적 소풍 다니던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흔히 기억된다. 이 중 태릉은 올림픽과 세계 대회 등을 준비하는 국가대표의 요람, 태릉선수촌으로 널리 알려졌다.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에 문화재청이 태릉과 강릉 사이에 있는 태릉선수촌을 철거하고 왕릉의 원형을 복원시키겠다고 나서 현재는 선수촌 시설 대부분이 철거됐다. 대한체육회는 태릉선수촌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전체 시설 중 8곳을 존치하고자 했으나 4개만 남기기로 2018년 문화재청과 내부적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 진천선수촌이 새로 탄생했다. 선수촌을 현대적인 시설의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기만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 젊은 세대 중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우리나라 근대 체육의 메카인 서울(동대문)운동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태릉선수촌의 무조건 철거가 능사는 아니다. 그동안 선수촌 이전과 존치 문제를 스포츠적으로만 접근한 경향이 있었다. 태릉 지역은 조선시대 오군영의 하나인 수어청(守禦廳)의 중영(中營)이 있던 곳으로, 무예를 연마하는 공간, 강무장(講武場)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육군훈련소로 사용되고 광복 후 1946년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인 남조선국방경비대 및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자리했다. 2015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광복 이후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29.5%)을 첫손에 꼽았고, ‘88올림픽 개최’(19.0%)와 ‘IMF 극복, 금모으기 운동’(6.3%) 등을 그다음으로 꼽았다. 스포츠만큼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든 분야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태릉선수촌은 민족적 자존심을 높이고 대한민국을 우뚝 서게 한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다. 역사적으로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태릉을 조금 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태릉 지역을 조선왕릉 복원과 함께 세계무형문화유산인 택견과 씨름,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활쏘기 등의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들로 하여금 왕릉 수호군과 능군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태릉선수촌을 태릉전통무예촌으로 탈바꿈시켜 세계문화유산 단지로 조성하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왕릉 행차에 수반되던 ‘관사’(觀射·활쏘기)와 ‘열무’(閱武·무예)를 재현하는 행사도 가능하다. 대한체육회뿐만 아니라 문화재청 그리고 유네스코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곳을 단순한 왕실 무덤이 아니라 씨름, 택견, 활쏘기 등 전통 무예를 교육하고 민족 정신을 함양하는 전통무예촌으로 만든다면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민족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제르인에게 줄 바엔…” 고향집 불태운 아르메니아인들

    “아제르인에게 줄 바엔…” 고향집 불태운 아르메니아인들

    최근까지 총성이 울리던 분쟁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외곽지역 켈바자르에 살던 가로 다데부샨은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집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가 직접 지어 19년간 살던 집이다.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웃들도 쓰라린 이별의 표시로 정든 집에 불을 질렀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아르메니아 주민이 살던 켈바자르와 라친 지역은 15일 오전 0시부터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양됐다.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인 주민 600여명이 떠나게 된 것이다. 다른 아르메니아 주민은 AFP에 “자정까지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여기는 내 집이다. 아제르바이잔에 넘겨줄 순 없다. 집을 불태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부모님의 무덤도 옮겼다”며 “아제르바이잔인은 우리 무덤을 훼손하며 기뻐할 것이다. 그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데부샨은 “우리는 무슬림(아제르바이잔인)에게 아무것도 남겨 주고 싶지 않아 집에 불을 지르거나 폭파했다”고 말했다. 다데부샨의 아내인 루신은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본 뒤 “이제부터 우리는 노숙자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지었다. 주민들은 떠나기 직전 9세기부터 있었던 아르메니아 정교회에 모였다. 일부는 세례를 받는 모습도 목격됐다. 주민들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을 예감한 듯 사진을 찍었다. 성직자들은 성상과 성물을 떼어냈다. 길 건너 러시아 평화유지군은 무장 트럭에 탄 채 이런 모습을 지켜봤다. 주민들의 이동으로 아르메니아로 향하는 도로에는 차량 행렬이 수㎞나 이어졌다. 가재도구와 가구 등을 실은 차량의 대규모 탈출이었다.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는 것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지난 9일 러시아의 중재로 맺은 평화협정 때문이다. 평화협정에 따라 아르메니아는 오는 20일까지 아그담 지역과 가자흐 지역을, 켈바자르와 라친 지역을 각각 이달 15일과 12월 1일까지 아제르바이잔에 반환하기로 했다. 앞서 두 나라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지난 9월 말부터 6주 넘게 격전을 벌였다. 아르메니아는 231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사상자 수를 밝히지 않았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52시간제 연기’ 윤희숙에 내부서도 비판… “전태일 삶 욕보여”

    ‘52시간제 연기’ 윤희숙에 내부서도 비판… “전태일 삶 욕보여”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전태일 정신’을 끌어들여 주 52시간제 중소기업 적용 연기를 주장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가운데 같은 당에서도 윤 의원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자유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정책적 논쟁에 소환해 갑론을박하는 것은 그분들의 삶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어 “전태일 열사를 주 52시간 논란에 소환하는 것은 자신의 이념적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의 죽음의 의미를 지극히 자의적으로 또는 과도하게 추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며 “학자라면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옳은 방식이 아니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전태일 열사를 두고 정치적 편 가르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전태일 정신’을 둘러싼 논란은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지난 13일 윤 의원의 페이스북 글에서 점화됐다. 윤 의원은 해당 글에서 “52시간 근로 중소기업 전면적용을 코로나 극복 이후로 연기하는 게 전태일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노동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열사의 외침이 어떻게 주 52시간 도입을 연기하라는 것으로 들리는지 분노를 넘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아직도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는 장시간 노동으로 기업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식의 저열한 인식이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대한민국 경제를 후진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소리 하는 데에 왜 전태일을 파나. 저러니 저 당은 답이 없는 거다”라고 꼬집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전태일 열사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통곡을 할 궤변”이라고 적었다. 윤 의원은 논란이 일자 14일 페이스북에 또 다시 글을 올려 자신의 주장을 재차 펼쳤다. 윤 의원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것인데, 코로나로 절벽에 몰린 중소기업에 52시간제를 굳이 칼같이 전면적용해 근로자의 일자리를 뺏고 길거리로 내모는 게 전태일 정신인가. 이게 무슨 이념적 허세인가”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의 주장에 진 전 교수가 “자기 이념이나 반성을 하든지. 아직까지 철 지난 시장만능주의 이념이나 붙들고 앉았으니”라고 쏘아붙이는 등 비판이 이어지며 논란은 가열됐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투명방음벽은 새들의 무덤’...봉사단체, 충돌방지에 팔 걷어

    ‘투명방음벽은 새들의 무덤’...봉사단체, 충돌방지에 팔 걷어

    “많은 새들이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혀 안타깝게 죽어가고 있는데 그냥 둘 수 있나요.” 경기도 자원봉사센터와 하남시자원봉사센터가 14일 하남시 미사중학교 일대 투명 방음벽 84m 구간에서 방음벽 개선작업을 벌였다. 이날 자원봉사자 70여명은 투명 방음벽에 가로 5㎝, 세로 5㎝ 간격으로 점이 찍혀 있는 조류충돌 방지 테이프·필름을 부착했다. 이들이 방음벽 개선작업을 벌인 구간은 방음벽 조류 충돌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지역이다. 해당 구간에서 그동안 조류충돌 피해를 모니터해온 한 자원봉사자가 지난 1년간 조사한 결과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폐사한 조류가 210여 마리에 달한다고 자원봉사센터 측은 밝혔다. 하남시 미사지역은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투명한 유리벽이 곳곳에 설치돼 조류충돌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눈이 머리 측면에 있는 새는 전방 구조물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유리 등 투명한 구조물의 인지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조류 이동이 잦은 한강과 인접해는 점을 고려하면 이 지역은 새들에게 일종의 ‘킬링필드’인 셈이다. 투명방음벽 조류충돌 문제는 이곳 뿐만은 아니다. 강원 태백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새들이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어간다”는 민원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태백시 동점동 동점산업단지 인근에 산다는 시민 A씨는 “매일 아침 산책 때마다 동점산업단지 진입구에 설치된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들을 목격한다”며 “폐사체가 많을 때는 20마리도 넘었다”고 말했다. 투명방음벽은 동점산업단지 진입로와 진입로 아랫마을 사이에 길이 180m, 높이 2∼3m 규모로 2018년 설치됐다. 동점산업단지 주변은 울창한 숲이고, 마을 건너편은 하천이다. 즉 수분 섭취 등을 위한 새들의 이동 경로 사이를 투명방음벽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태백시 관계자는 “투명방음벽에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를 붙이는 등 피해 저감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말했다.권석필 경기도자원봉사센터장은 “더 이상의 무의미한 조류의 죽음은 없어져야 생태계 교란을 막고, 새들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한편 환경부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연간 약 800만 마리가 충돌로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전남도, 잠들었던 고대해상왕국 마한 깨우다

    전남도, 잠들었던 고대해상왕국 마한 깨우다

    전남도가 고대 해상왕국 마한역사문화를 알리기 위해 지난 13일부터 오는 15일까지 ‘2020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포럼’을 서울에서 개최한다. 서울마당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잠들었던 고대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전남도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전라남도 문화재단이 주관한다. 행사 첫날에는 ‘고대해상왕국 마한을 품은 전남, 새로운 기상과 도약’이라는 비전 선포식을 시작으로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마스터플랜 수립’에 대한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비전선포식에는 김영록 전남도지사, 김한종 전남도의회 의장, 정재숙 문화재청장, 신정훈 국회의원, 마한문화권 발전협의회 11개 시장 군수,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문체부장관과 김해시장은 온라인 영상으로 축하했다. 으뜸전남튜브와 서울마당 대형전광판으로 생중계된 비전선포식에선 국립 나주문화재연구소가 기증한 대형옹관 재현품을 활용해 도민의 염원을 담아 옹관을 봉인하는 독특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봉인된 옹관은 전남도청에 전시해 상시 공개할 예정이다. 14일 열리는 둘째 날은 마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홍보를 위해 ‘전남의 마한’과 관련된 모든 주제로 대학생 학술 및 웹툰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세계 각국의 주요 문화권 보존 정비와 활용사례’를 주제로 포스터 학술발표가 진행된다. 행사기간 동안 서울마당 야외에는 마한의 대표적인 유물인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비롯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대형옹관, 토기 등이 전시된다. 이밖에도 지난해 금동관편이 밝혀져 화제가 된 영암내동리 쌍무덤 등 마한유적의 발굴현장 등 마한 홍보영상이 서울마당 대형전광판과 영상홍보관에서 상영된다. 옹관에서 착안해 만든 옹이?너리 캐릭터 포토존, 흥겨운 퓨전 국악공연으로 행사의 재미를 더한다. 특히 마한사 연구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마한사 전문 연구자 양성을 위해 도내 역사?고고학과 대학생 30명을 선발해 SNS 홍보활동과 행사에 참여토록 했으며, 이중 우수 서포터즈를 선발해 표창한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전남도는 그동안 잊혀진 고대 마한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며 “마한문화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세계인과 국민이 즐길 문화관광자원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씨줄날줄] 보물이 된 서당/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보물이 된 서당/서동철 논설위원

    이지당(二止堂)은 대전과 충북 옥천을 잇는 4호선 국도에서 멀지 않은 소옥천 곁에 있다. 소옥천은 깻잎 농사로 유명한 충남 금산 추부에서 발원해 옥천 군북에서 금강에 합류한다. 소옥천 주변은 한마디로 절경이다. 대전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579m의 환산과 소옥천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이지당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이지당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된다. 서당은 향촌사회에 기초한 사설 초등 교육기관이었다. 관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사설 사회 교육기관인 서원은 그동안에도 적지 않게 국가지정문화재에 올라 있었다. 이제 경북 안동의 도산서당과 함께 이지당이 서당으로는 처음으로 보물 지정을 앞두고 있으니 문화유산으로 서당의 격도 한층 높아지게 됐다. 이지당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 중봉 조헌(1544~1592)을 기념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중봉의 고향은 경기 김포지만, 보은현감에서 물러난 뒤 옥천으로 낙향했다. 이지당의 처음 이름은 각신서당(覺新書堂)이었다고 한다. 이지당에는 중봉의 친필이라는 ‘각신서당’ 현판도 전해진다. 이지당이 중봉의 영향 아래 인재를 배출한 교육기관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가 직접 세워 운영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은 듯하다. 이지당은 마루와 온돌로 이루어진 일(一)자형 본채 양쪽 끝이 서로 높이가 다른 누각으로 마무리된 가옥이다. 소박한 규모지만 독특한 구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형태의 서당이었지만, 중봉을 기리면서 동시에 자연도 즐기는 다목적 공간으로 변형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지당이라는 이름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었다. ‘시전’(詩傳)의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에서 딴 것이다. ‘큰 산을 우러르며 그 뜻에 따르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지당에는 우암의 친필을 모사한 현판이 걸려 있다. 이지당의 보물 승격은 충남북 일대에 흩어진 ‘중봉 문화유산 답사코스’에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가 하나 더해졌다는 의미도 있다. 조헌을 중심으로 임진왜란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이라면 그 중심은 금산 칠백의총이 될 수밖에 없다. 중봉이 칠백의총이 아닌 옥천에 묻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옥천 안남면 그의 무덤 아래는 사당인 표충사와 재실인 영모재가 있다. 신도비는 청음 김상헌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과 김상용이 본문과 머리글 전서를 나누어 썼다. 청주 중앙공원의 ‘조헌 전장기적비’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중봉 의병이 금산전투에 앞서 영규 의승군, 박춘무 향토의병과 왜군에 빼앗겼던 청주성을 탈환한 것을 기념한다. sol@seoul.co.kr
  • ‘고대 해상왕국’ 마한의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키운다

    ‘고대 해상왕국’ 마한의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키운다

    영산강 유역은 기원전 2~6세기 중엽까지 ‘마한’이 지배하던 지역이다. 마한의 소국 연맹체 가운데 마지막까지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한 곳이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이다. 그래서 영산강 유역에는 마한의 최고 수장 무덤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지난 5월 마한문화권을 포함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남도는 그동안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마한사 재조명 등 영산강 고대문화권 복원·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는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13일부터 3일간 서울신문의 서울마당 및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마한문화 비전 선포식과 학술대회 등을 연다. 마한문화의 발전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국민 홍보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영산강 유역권의 지자체장들은 ‘백제 이전에 마한’이라는 역사적 실체가 존재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데 커다란 의미를 두고 있다. 또 마한이 고대 해상왕국이었다는 데에 자부심이 크다. 마한문화권의 중요성에 대해 해당 지자체장들의 염원과 소회를 들어본다.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200여기 고분군 정비·역사복원 시민교육 앞장” 영산강 중류에 해당되는 나주시는 거대한 고분군이 밀집된 곳이다. 마한인들의 생사관을 잘 보여주는 ‘옹관’(항아리 모양의 토기를 사용한 관)이다. 나주는 대한민국 고대사에 있어서 국가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 아닌데도 국가의 전시 연구기관이 2곳이나 있을 만큼 중요한 장소다. 영산강 유역의 고대 역사문화는 고인돌로부터 시작되는 역사 속에서 마한의 역사문화의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마한 유적과 관련이 깊고 출토된 물고기장식 금동신발, 용머리장식 금동신발 등 국보급 유물은 물론 유구 역시 당시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나주시 전역에는 마한·백제시대를 대표하는 200여기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반남면과 다시면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최초 발굴조사가 이뤄진 장소가 반남면에 있는 고분군들이다. 현재까지 기본적인 고분 정비가 돼 있지 않아 우리 손으로 조사한 발굴조사는 몇 건이 되지 않는다. 2000년대에 신촌리 9호분을 다시 발굴했는데, 무덤 장식토기인 원통형토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이같이 중요한 마한고분군에 대한 전체적인 종합정비계획을 세우고 이를 통한 체계적인 정비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반남고분군은 신촌리·덕산리·대안리를 중심으로 밀집돼 있다. 그 중심에 자미산성(자미산)이 있어 이러한 자연·인문환경을 활용한 역사공원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타당성이 있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검인정 국사교과서에 마한의 역사와 문화는 단 몇 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야는 몇 쪽의 분량에 이를 만큼 훨씬 더 서술돼 있다. 우리들이 준비를 못했고 여러 부분에서 부족한 결과다. 앞으로 중단기 계획을 세워 역사교과서 마한사 기술부분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을 통해 대한민국 고대사가 제대로 정립된 교과서로 마한의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수학 여행지가 되고, 그 학생들이 어른이 돼 다시 찾는 역사 관광지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마한역사복원과 관련한 시민모임도 만들어져 자발적인 시민교육 프로그램이 정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추진해 나가겠다.“담양 응용리·태목리 유적, 국가 사적 승격 추진” 마한 최대 취락 유적으로 추정되는 ‘담양 응용리·태목리 유적’은 마한시대 취락 형성과 발전, 소멸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당대의 생활상을 밝힐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지금까지 마한 유적의 조사와 연구는 영산강 중·하류에 있는 고분 중심의 지배층 문화에 집중되어 왔기 때문에 영산강 상류 취락유적으로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상호보완하는 가치가 크다. 현재 군은 ‘담양 응용리·태목리 유적’의 몇 차례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국가 사적 승격을 위해 노력 중이다. 영산강의 시원지(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하는 담양군의 대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 대나무 군락지가 바로 고대 마한인들의 생활터전이었던 태목리·응용리 유적과 동일선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나무는 담양을 대표하는 수종으로, 담양의 대나무 면적은 전국의 약 30%(2420㏊)를 차지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여지도서 등 역사자료에는 담양의 죽세품을 진상했다는 내용들이 있어 오래전부터 죽세품 산업이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군은 대나무숲의 관광자원을 넘어 대나무 자체가 갖는 생태물리학적 효능을 현실화하는 ‘대나무 신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담양 대나무밭은 2014년 국가중요농업유산, 2020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돼 농업수익 창출은 물론 지속적인 보존 관리를 통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담양 태목리 대나무 군락’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퇴적층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대규모 군락이다. 전통 생활문화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대나무로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지역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특히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하천습지로 지정된 ‘담양 하천 습지’ 내에 위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와 황조롱이, 수달 등을 비롯한 야생동식물의 서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환경학·생태학적 연구 및 보존 가치가 높다. 담양군은 자연유산으로서 대나무 가치를 더욱 부각시킬 ‘담양 태목리 대나무 군락’을 ‘담양 오방길’과 연계해 자연유산과 역사문화유산이 결합한 지속 가능한 생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마한문화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할 것“ 영산강 하류에 위치하는 영암군은 바로 해상교류의 중심지였음을 확인해주는 지역이다. 영암은 나주와 쌍벽을 이루는 거대한 옹관고분들이 집중적으로 위치해 있다. 이 무덤들의 주인공은 해상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정치세력이다. 부장품으로 다양하고 형형색색의 유리구슬들이 확인되고 있다. 고대 동북아시아의 맹주세력인 중국과 더불어 유리로 대표되는 동남아시아와 유리를 매개로 했던 해상세력이 고분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영암군의 고분 중 9기가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고, 대부분은 시종면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지표 조사된 것만 44개군에 180여기가 확인됐다. 최근 조사된 내동리 쌍무덤에서는 마한시대 최고 수장층으로 추정되는 피장자의 금동관편을 비롯한 유리구슬, 영락(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등이 발굴돼 이 일대가 고대 마한문화의 중심지역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군은 고대 문화를 알리고 활용하기 위해 옥야리 고분군 인근에 마한문화공원을 조성했으며 그 안에는 마한 고분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영암이 마한시대 주요 지역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에 맞게 마한문화공원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탐방로와 미로공원, 경관 개선 등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고분과 고려시대 유적지인 제사터를 한 곳에서 볼 수 있어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권의 세계문화유산 가치를 입증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레저 역사테마파크 공원이 될 것이다. 군에서는 마한문화를 밝히기 위해 체계적인 학술조사를 통해 자료를 축적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파악하고 고분발굴 조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영암의 고분 중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은 한 곳도 없다. 그동안 발굴조사가 미미하다고 판단돼 소홀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성격을 밝히고 조사 결과를 반영해 국가 지정문화재가 되도록 추진해 나가겠다. 또 마한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마한문화권과 관련된 시군들과 협력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 “임란 양민 원혼 담긴 日 귀무덤 돌려달라”

    “임란 양민 원혼 담긴 日 귀무덤 돌려달라”

    전남 순천 시민들이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조선 양민들의 ‘귀무덤’ 봉환 범시민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호남 희생 가장 커… 순천왜성 일대 봉환해야” 선순례 귀무덤봉환추진위 상임대표는 11일 “임진왜란 이후 1597년 정유재란은 조금 과장하면 호남과 일본의 싸움이었고, 무덤의 주인공은 전국 각지의 병사와 양민이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호남인이요, 순천 사람”이라면서 “이 같은 이유로 교토의 귀무덤을 봉환할 경우 이장의 최적지가 바로 ‘순천’으로, 지금의 순천왜성 일대”라고 주장했다. 일본 교토의 귀무덤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420여년 전 조선 병사들과 무고한 양민의 코와 귀를 베어 가 만들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로 조선군과 양민 12만 6000여명의 귀와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가져간 뒤 매장했다. 국내에서는 1992년 경남 사천의 삼중스님 등이 노력해 일본 귀무덤 근처 흙을 일부 가져와 이총 비석을 세우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반환 요구나 운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별도의 예산이 지원되지 않고 있고, 한국에서도 관심이 사라지면서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日서 방치… 대사관에 요구·학술대회 등 추진” 이에 70여명의 순천시민이 가칭 ‘귀무덤봉환추진시민모임’을 결성했다. 김종윤 공동대표는 “교토에 우리 대표단을 파견해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주한 일본대사관 및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관 등에 우리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 대표는 “앞으로 귀무덤의 역사적 사실 확인과 반환 요구의 국제법상 타당성 등을 알리는 학술대회 등을 열어 합리적 근거를 마련해가겠다”고 했다. 조사현 공동대표도 “허름하게 돼 있는 이총 현장을 본 한국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면서 “이 무덤을 무사히 안장하는 게 500여년 동안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달래는 길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다”고 힘줘 말했다. 글 사진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순천시민들, 일본에 있는 ‘귀무덤 봉환 범시민운동’ 전개 눈길

    순천시민들, 일본에 있는 ‘귀무덤 봉환 범시민운동’ 전개 눈길

    순천시민들이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조선 양민들의 ‘귀무덤’ 봉환 범시민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교토시에 있는 귀무덤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420여년 전 조선 병사들과 무고한 양민의 코와 귀를 베어가 만들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로 조선군과 양민 12만 6000여명의 귀와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가져간 뒤 매장했다. 국내에서는 1992년 경남 사천시에서 삼중스님 등이 노력해 일본 귀무덤 근처 흙을 일부 가져와 이총 비석을 세우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반환 요구나 운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별도의 예산이 지원되지 않고 있고, 한국에서도 관심이 사라지면서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표준시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주권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은 ‘대한민국 경도주권 탑’을 순천만국가정원에 세운 민간조직이 앞장 서 추진하고 있다. 경도주권찾기시민모임측은 (가칭) 귀무덤봉환추진시민모임을 결성중이다. 현재 70여명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선순례 귀무덤봉환추진위 상임대표는 “임진왜란 이후 1597년 재차 침범한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 지역이 순천이었다”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순천왜성에서 퇴각하던 왜군을 섬멸한 전투가 노량해전으로 이곳에서 7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선 상임대표는 “정유재란은 조금 과장하면 호남과 일본의 싸움이었고, 무덤의 주인공은 전국 각지의 병사와 양민이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호남인이요, 순천 사람이다”고 했다. 선 대표는 “이같은 이유로 교토의 귀무덤을 봉환할 경우 이장의 최적지가 바로 순천으로 지금의 순천왜성 일대다”고 강조했다. 김종윤 공동대표는 “교토에 우리 대표단을 파견해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주한 일본대사관 및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관 등에 우리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앞으로 귀무덤의 역사적 사실 확인과 반환 요구의 국제법상 타당성 등을 알리는 학술대회 등을 열어 합리적 근거를 마련해가겠다”고 했다. 조사현 공동대표도 “허름하게 돼 있는 이총 현장을 본 한국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며 “이 무덤을 무사히 안장하는 게 500여년 동안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달래는 길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다”고 힘줘 말했다. 이들 회원들은 지난 8월 대한민국의 ‘표준시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경도탑을 전국 유일하게 순천만국가정원에 세웠다. 시민 60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 5000만원으로 건립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어미곰과 새끼곰, 먹이찾아 러 핵잠수함 올라탔다가 사살

    어미곰과 새끼곰, 먹이찾아 러 핵잠수함 올라탔다가 사살

    굶주린 어미곰이 새끼곰을 데리고 핵잠수함에 올라탔다가 총살당했다. 9일(현지시간) 모스크바타임스는 인테르팍스 통신 보도를 인용해 러시아 극동 캄차카주에서 갈색곰 두 마리가 사살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영상에는 정박 중인 핵잠수함 갑판에 오른 어미곰과 새끼곰이 얼마 후 총에 맞아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이 담겼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대로 곰을 내쫓으면 마을을 위협할 것”이라는 해군 관계자의 목소리도 포함됐다.러시아 태평양함대 대변인은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크라셰닌니코프만을 헤엄쳐 해군 태평양함대 기지가 있는 리바치까지 다다른 곰들이 핵잠수함에 올라탔다. 군인들이 소리를 치며 곰을 쫓아내려 했지만 떠나려 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곰 사냥 전문가와 특화된 사냥 무기를 동원해 곰을 사살했다고 덧붙였다. 현지언론은 곰들이 먹이를 찾다가 잠수함 기지까지 흘러든 것으로 추정했다. 어미곰은 부상을 입고 매우 수척한 상태였으며, 새끼도 매우 날카로웠다고 설명했다. 마을 주민들도 어미곰과 새끼곰이 마을을 배회해 쫓아내곤 했다고 증언했다.캄차카반도에는 약 1만4000마리의 야생곰이 서식하고 있다. 주민들은 굶주린 야생곰이 민가에 출몰하는 일이 잦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먹이를 구하지 못한 야생곰은 관광 명소와 쓰레기 매립지는 물론 공동묘지 무덤까지 파헤치는 등 폭주하고 있다. 인기 관광 명소인 쿠릴 호수는 먹이를 찾아 내려온 야생곰 때문에 관광 프로그램이 중단되기도 했다. 배고픔에 예민해진 야생곰 습격으로 인명 피해도 잦다. 지난 6월에는 캄차카 서부 티길 마을에서 낚시하던 40대 어부가 갈색곰 공격을 받아 숨졌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창문을 깨고 민가로 들어온 곰 습격에 60대 남성이 사망했다. 앞서 10월에는 등대 수리 중이던 기술자 2명이 곰에게 맞아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투탕카멘 무덤의 사진사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투탕카멘 무덤의 사진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고학적 발굴이라 할 수 있는 ‘투탕카멘 무덤 발굴’은 1922년 11월 4일에 시작됐다. 이날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무덤의 첫 번째 계단들이 발견됐다”는 문장을 자신의 다이어리에 써 두었다. 그러니까 지난 11월 4일은 투탕카멘 무덤이 발견된 지 9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도굴되지 않은 왕묘는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들이 넘쳐나는 이집트에서도 그 예가 흔치 않은 것이었던 만큼, 무덤은 즉각적으로 학자들과 매스컴의 주목을 끌었다. 때는 바야흐로 20세기, 매스미디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무덤 발굴 소식도 그 바람을 타고 여러 언론을 통해서 전 세계로 신속하게 퍼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서구사회에서는 ‘이집트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때 형성된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학문으로서의 이집트학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사회적 배경이 됐다. 그런데 이때 투탕카멘 무덤 발굴 소식이 보다 더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식이 단지 글로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사진과 함께 전해졌기 때문이다. 무덤의 발굴 과정 전체를 촬영한 한 사진가 덕분이었다. 그 사진가는 바로 해리 버튼이라는 인물이다. 해리 버튼은 1879년 영국 링컨셔에서 목공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노동계층의 집안에서, 그것도 아주 많은 남매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컸지만, 우연히 같은 마을에 살던 미술사학자 로버트 헨리 커스트와 교분을 갖게 됨으로써 인생이 크게 바뀌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관심이 있던 커스트는 1895년께 아예 피렌체로 이주를 하는데, 이때 그동안 좋게 봐 왔던 해리 버튼을 자신의 비서로 데리고 갔다. 버튼은 커스트를 따라가 옮겨간 피렌체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감각을 키웠고, 결정적으로 당시에는 최신이었던 기술, 즉 사진 촬영술을 배우게 된다. 버튼은 1910년에 이집트로 휴가를 가게 됐는데, 이때 그의 사진 능력을 높이 산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를 발굴 작업 기록을 위한 박물관 전속 사진사로 고용한다. 당시는 발굴 작업을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대였고, 자연스럽게 발굴 현장에서의 사진 촬영이 갖는 중요성도 막 인식되기 시작했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고용된 버튼은 주로 미국인 이집트학자 허버트 윈록이 이끌던 발굴팀의 작업을 촬영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이후 버튼은 10년 넘게 이집트에서 머물며 점차 ‘고고학 전문’ 사진사가 돼 갔다.그러던 중 1922년 왕들의 계곡에서 발굴을 해 오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아주 놀라운 발견을 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황으로 보아 카터가 발견한 것은 도굴되지 않은 파라오의 무덤이었다.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플린더스 페트리의 발굴팀에서 훈련을 받아 고고학자로 성장한 카터는 아주 엄정하고 훌륭한 고고학자였지만, 아쉽게도 그의 발굴팀에는 전속 사진사가 없었다. 카터의 발견이 세기의 발견이 되리라 직감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대승적으로, 카터를 지원하고자 버튼을 카터 팀으로 파견했다. 결국 버튼은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 과정 전체를 사진 촬영할 수 있었다. 그의 사진은 여러 언론사를 통해서 전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서구사회에서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버튼의 사진들은 매우 퀄리티가 높아 오늘날에도 자주 귀중한 자료로 사용된다. 여러분이 투탕카멘과 관련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 좀 오래된 느낌의 흑백 사진들은 거의 대부분 버튼이 촬영한 것이다. 버튼은 이후에도 계속 이집트에 남아서 여러 고고학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파라오의 저주’라는 도시괴담을 비웃기라도 하이 당시 기준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60세까지 살았다. 그리고 이집트 중부 아슈트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묻힘으로써 영원히 이집트에 남았다.
  • 진중권, 절대 반지 언급한 조국에 “與, 골룸처럼 몰락”

    진중권, 절대 반지 언급한 조국에 “與, 골룸처럼 몰락”

    “검찰, 수사권·기소권 두 개의 절대 반지”“민주당, 절대 반지 들고 몰락하는 골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이 절대 반지를 끼고 어둠의 군주가 됐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그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그 절대 반지를 더불어민주당이 훔치려 하고 있다며 결국 여권이 골룸처럼 마그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몰락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진 전 교수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 전 장관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듯하다”고 지적하며 이 같이 말했다. 진 전 교수는 “다 좋다”며 조 전 장관의 말처럼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2개의 절대 반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반지의 제왕) 그 영화 속 골룸이다. 스미골로 착한 척하다가 결국 절대반지 들고 골룸으로 몰락해가는 존재다”고 주장했다. 지금 여권의 행태 모두 공수처 처벌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난쟁이 프로도 길잡이 노릇을 하다가 반지를 훔쳐 희열에 넘쳤지만 용암 속으로 떨어져 녹아버린 것처럼, 여권이 검찰 힘을 빼기 위해 절대 반지(기소권)를 뺏고 공수처라는 또 하나의 절대 반지를 손에 넣겠지만 결국 제 무덤을 판 꼴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조국 “검찰, 수사권·기소권 두 개의 절대 반지 껴” 앞서 조 전 장관은 7일 자신의 SNS에 “검찰이 월성 1호기 폐쇄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다”며 “검찰은 ‘정치’는 물론 ‘정책’에도 개입하고 있다”고 검찰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두 개의 ‘절대반지’를 낀 ‘어둠의 군주’(The Dark Lord)가 됐다”며 “‘사우론’에게는 작은 ‘프로도’가 우습게 보일 것이지만 ‘반지원정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는 말로 반지원정대(검찰개혁)가 악의 축 사우론(검찰)의 손에서 수사권이라는 절대 반지를 뺏어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거대 빙산 ‘A68a’, 펭귄들의 낙원 사우스 조지아섬에 충돌할 수도

    거대 빙산 ‘A68a’, 펭귄들의 낙원 사우스 조지아섬에 충돌할 수도

    세계에서 가장 큰 빙산 ‘A68a’가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불리는 영국령 사우스 조지아섬으로 똑바로 향해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영국 BBC가 3일(현지시간) 전했다. 물론 2004년에 빙산 ‘A38’처럼 이 섬 앞바다 얕은 바다에 갇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도 수많은 펭귄과 물개 사체들이 해변가에 즐비했다. 남극 바다를 떠다니는 이 빙산은 펭귄과 물개들이 많이 모여 사는 사우스 조지아섬과 크기가 맞먹는데 이 섬에 맞부딪치거나 그 앞바다에 머무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건 펭귄과 물개들이 먹잇감을 사냥할 길을 막아 어린 새끼들을 먹이는 데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A68a가 섬과 충돌하면서 동물들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이들 생태계를 원상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영국 남극연구(BAS)의 게레인트 타를링 교수는 “생태계는 물론 그 과정을 되돌릴 것이며 그럴 수 있지만 이 빙산이 충돌하면 (회복에) 10년 정도 걸릴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사우스 조지아섬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경제도 엄청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남극해의 영국령 섬들은 거대 빙산들의 무덤과 같은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짐승군(베헤모스, behemoth)처럼 거대한 이 빙산군은 강한 조류를 타고 하얀 대륙(남극)에서 떨어져 나와 이 외딴 섬을 둘러싼 대륙붕의 얕은 해역에 밑바닥만 얹고 있는 상태다. 검지를 들어 방향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하고 있는데 2017년 중반 남극에서 떨어져 나와 이른바 ‘빙산 통로(iceberg alley)’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데 현재 영국령 섬 남쪽에서 불과 몇백㎞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대략 영국 서머싯주 면적(4200㎢)만한 이 빙산의 무게는 몇천억t이나 되며 200m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얇아 세인트 조지아섬 해안에 닿기 전에 물살에 떠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빙산의 접근 만으로도 펭귄과 물개들은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엄청 돌아가야 하며 새끼들에게 돌아갈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만들어 굶어죽는 일이 속출할 것이라고 타를링 교수는 설명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마한史, 전남 뿌리이자 균형발전 상징… 세계유산 등재하겠다”

    “마한史, 전남 뿌리이자 균형발전 상징… 세계유산 등재하겠다”

    영산강 유역은 기원전 2·3세기에서 6세기 중엽까지 마한이 지배하던 지역이다. 고대 역사서에 따르면 마한은 삼한 중 가장 먼저 태동해 충청·전라도 지역을 지배했던 고대국가였다. 마한의 소국 연맹체 가운데 마지막까지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한 곳이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이다. 영산강 유역 마한세력의 최고 수장층 무덤인 전남 나주 반남 고분군 중 신촌리 9호분에서는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됐고, 국내 유일의 복합 고분인 나주 복암리 3호분도 발굴됐다. 전남도는 이 같은 마한문화권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마한 문화권 발굴·조사 등 오랜 숙원이었던 고대 마한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정립해 지역발전으로 연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김영록 전남지사를 만나 구상을 들어 봤다.-지난 5월 마한문화권을 포함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남도가 그동안 역점을 둬 추진했던 마한사 재조명 등 영산강 고대문화권 복원·개발사업에 탄력이 예상되는데 소감은. “신라와 백제, 가야 문화권과 비교하면 소외됐던 고대 마한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은 물론 오랜 숙원이었던 영산강 고대문화권 개발을 위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게 돼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은 문화권별 문화유산의 가치 정립과 지역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영산강 유역 고대 문화의 실체인 마한 역사의 재조명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책 발굴에 더 힘을 쏟겠다.” -이를 위해 영산강유역 마한문화포럼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개최 배경은. “전남의 고대 마한문화의 발전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대국민 홍보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오는 13일부터 3일간 서울마당 및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마한문화 비전선포식과 학술대회 등을 연다. 전남도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마한문화권발전협의회인 전남도 11개 시군과 국립나주박물관 등 유관기관뿐만 아니라 마한에 관심 있는 도내 대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등 민관학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성공적인 포럼이 될 것이다. 마한을 주제로 한 학술경연대회와 웹툰 경진대회, 대학생 서포터스 활동 등을 통해 도내 역사 및 고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의 마한사 연구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마한사 전문 연구자 양성에도 의미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사 연구를 복원하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우리 지역의 뿌리인 잊힌 마한의 역사를 복원하고, 나아가서는 국가균형발전 등의 의미도 내포한다. 마한에 대한 교과서 기록은 4세기대 백제의 근초고왕이 마한의 전 지역을 병합했다는 기록이 일본역사서(일본서기)에서만 신화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정작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마한 병합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하지만 마한의 54개 소국 중 14개 소국이 위치한 전남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800년간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지리적으로 영산강 유역권인 한중일 해상교류의 삼각점에 있었다. 중국과 교류하고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등 국제해상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했던 고대세력이었다. 그동안 잊혔던 마한을 전남의 본류로 인식하고, 발굴조사 연구 등을 통해 찬란했던 고대해상왕국 마한의 실체를 찾아가는 것인 만큼 아주 중요한 발걸음이다.”-전남에는 마한 유적지가 많아 영산강 유역의 가치가 남다르다. 앞으로 해결할 과제들이 많겠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 금동신발, 영암 내동리 쌍무덤의 금동관편, 백제와는 축조기법이 다른 영산강식 석실묘의 축조와 나주 복암리 고분으로 대표되는 아파트형 고분 등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돌무지무덤인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등을 보면 고대 영산강 유역에서는 6세기까지 강력한 고대 마한 세력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6세기 중엽까지 존속했던 마한을 전남이 중심이 돼 그동안 고대사에서 소외된 마한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받게 하고, 마한사 연구복원을 앞장서 추진하겠다. 도에서는 먼저 마한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중점을 두고 있다. 고대사에서 소외돼 온 마한의 역사를 교과서에 반영해 삼국에 버금가는 세력을 유지했던 고대국가로서의 역사적 위상 정립과 자긍심을 고취해 나가겠다. 영산강 유역 마한유적의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연차적 정비복원을 추진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마한문화유산의 문화관광자원화를 도모하도록 힘쓰겠다.” -마한사 연구조사 복원사업을 하면서 거둔 주요 성과는. “대표적인 주요 성과는 마한 역사 발굴 복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마한사 실체 규명 등 두 가지다. 그동안 도에서는 2017년 12월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계획’ 수립, 2018년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부터 마한연구 총서인 전남의 마한유적과 전남의 마한분묘유적 책자를 발간했다. 올바른 마한사 정립을 위해 2024년까지 관련 모든 자료를 정리한 연구총서를 순차적으로 발간해서 완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도내 11개 시군 및 8개 유관기관과 합동으로 마한문화권발전협의회를 발족하고 공동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말에는 전남의 마한역사문화 디지털 아카이브 웹서비스를 시작해 영산강 유역 마한사의 국내외 자료를 공개하고 마한사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갈 것이다. 특히 마한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 연구를 지원한 결과 쌓인 자료를 토대로 마한의 역사에 대한 실체를 규명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돌무지무덤인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영산강 유역에서 중국과 교류하고,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6세기까지 강력한 고대 마한 세력이 존속했다는 증거도 발견했다. -마한사 연구조사를 복원하기 위한 추진 방향은. “전남도는 2017년 12월에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고대해상왕국 마한을 품은 전남, 새로운 기상과 도약’이라는 비전과 체계적인 조사연구로 고대사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고증복원을 통한 지역민의 문화 자존감 회복에 역점을 뒀다. 마한의 역사문화 자원을 세계유산으로 승격하는 것을 목표로 해 2018년부터 2030년까지 3단계 15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마한역사 활용 및 관광벨트화 사업, 세계유산 등재,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마한사 반영 등이다. 무엇보다도 본격적인 유적발굴과 복원으로 고대사의 한 축으로 인정받는 게 시급한 과제인 만큼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마한사 복원의 필요성이 인식되고, 특별법도 제정돼 잊힌 마한을 바로 세우는 최고의 시기인데 계획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 공약에 머무른 마한문화권 사업을 향후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 내겠다. 마한사 복원의 궁극적 목적은 마한사 복원을 통한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와 차별화된 문화관광, 문화유산의 가치창출에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격언을 가슴 깊이 새겨 마한사 복원을 위해 행·재정적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마한사 발굴조사복원과 정비로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고, 전남의 비전과 목표인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인 내 삶이 바뀌는 전남 행복시대를 도민들과 함께 이뤄 나가도록 힘쓰겠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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