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덤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2만명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리뷰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동참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09
  • “예수처럼 부활 할 것”...무덤에 스스로 들어간 목사, 결국 사망

    “예수처럼 부활 할 것”...무덤에 스스로 들어간 목사, 결국 사망

    ‘그리스도 부활’의 기적을 재현하겠다며 생매장을 부탁한 잠비아의 한 목사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은 예수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이다. 18일 잠비아와치독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잠비아 차디자에 위치한 시온교회의 제임스 사카라(22) 목사는 신도들에게 부탁해 자발적으로 생매장되고 3일 후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사카라 목사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두 번째 부활의 기적”을 증명하겠다며 신도들을 모았다. 그는 신도들에게 자신은 예수처럼 3일 만에 부활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다며 자신을 산 채로 매장하라고 전했다. 사카라 목사는 순백색 가운을 입고 발에 갈색 가죽 슬리퍼를 신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집 인근에서 빌린 괭이로 직접 무덤을 파며 신도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여. 지금 보고 있는 이 사카라를 묻어라”며 “그러면 나는 죽음에서 깨어나 다시 숨을 들이쉴 것이다”고 말했다.신도들 대부분은 그의 부탁을 거부했지만, 몇몇 신도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후 사키라 목사는 자신이 판 무덤에 생매장됐다. 신도들은 그의 무덤 주변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그가 되살아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사카라 목사는 결국 부활하지 못했다. 그가 묻힌 지 3일째 된 날 무덤을 다시 파헤쳐 본 결과, 그는 이미 숨져 있었다. 현지 매체는 “당시 그가 성령에 이끌린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목사를 매장하는 데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피어슨 피리와 패트릭 다카 등을 체포하기 위해 수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안중근 참배에 ‘윤봉길 의사’…윤석열 ‘또’ 헷갈렸나

    안중근 참배에 ‘윤봉길 의사’…윤석열 ‘또’ 헷갈렸나

    ‘윤석열 대통령 예비후보가 윤봉길의사의 그 깊은 뜻을 담은 술 한잔 올려드립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15일 광복절을 맞아 이날의 행보를 자신의 캠프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 윤석열 전 총장은 이날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를 찾았고, 안중근 의사 영정에 술잔을 올리는 사진을 올리며 ‘윤봉길 의사’라고 적는 실수를 했다. 단순 이름 실수가 아니었다. ‘너희들이 만약 장래에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에 용감한 투사가 되어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술 한 잔을 놓아 부어라’는 말을 함께 적었다. 이는 1932년 12월 19일 윤봉길 의사가 남긴 말로 안중근 의사를 윤봉길 의사로 착각한 것이다.17일 현재 이 게시물은 삭제됐고, 다른 사진으로 수정됐다. 윤봉길 의사의 뜻을 담아 안중근 의사에게 술을 올리는 게 이상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게시물을 바꾼 것이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틀릴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이런 결례를”이라며 “예 갖춰 술잔 올린다며 순국선열 함자를 틀리다니. 술 올리고 절하면서 누군지도 모르고”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석열 캠프는 안중근 의사 사진은 이날 현장에서 촬영한 수많은 사진 중 한 장이며,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은 해당 사진의 내용이 아닌 전체 당일 행보에 대한 글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일부 댓글에서 사진과 설명의 불일치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 게시물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아닌 실수…‘부마항쟁 이한열’ 윤석열 전 총장의 이러한 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7일 부산 민주공원을 찾아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 정문 앞에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장면이 담긴 조형물을 바라보며 “이건 부마(항쟁)인가요”라고 물었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중순에 벌어졌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은폐 규탄과 6·10대회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경이 던진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윤석열 전 총장은 “당시 내가 27살이었는데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것을 보고도 모르는 사람이 저희 또래에 또 누가 있겠느냐”고 해명했다.
  • 英·러·美 모두 포기한 아프간… 中도 ‘강대국의 무덤’에 묻히나

    英·러·美 모두 포기한 아프간… 中도 ‘강대국의 무덤’에 묻히나

    미군이 철수 중인 아프가니스탄이 순식간에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수중으로 넘어가자 중국이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강대국의 무덤’으로 불리는 아프간에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발을 들여놓을지 주목된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아프간 인민이 자신의 운명과 앞날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존중한다”며 “중국은 아프간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아프간 탈레반을 승인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도 사설에서 “우리는 절대로 서방 여론이 중국에 쳐 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이 남겨 놓은 ‘진공’을 메울 뜻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이 조만간 아프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이라는 서구 세계의 전망을 일축한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대사관 대피를 하지 않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강대국들이 탐을 내던 곳이다. 그러나 19세기 대영제국, 20세기 러시아에 이어 21세기 미국마저 아프간을 점령하지 못하고 철군했다. 가혹한 기후와 거친 산악 지형, 이슬람 전사들의 끈질긴 저항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은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 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테러 활동을 지원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CNN방송은 “과거 중국은 미국의 요구로 아프간 침공(2001)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중동을 휩쓸던 테러 조직의 발호에 맞서 미국이 베이징의 협조를 얻고자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눈감아 준 대가였다. 이때부터 아프간 탈레반이 중국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위구르족과 아프간 탈레반 모두 수니파여서 동질감이 남다르다. 위구르족이 탈레반을 믿고 신장에서 분리주의 활동을 시작하면 티베트도 이에 자극받아 저항에 나설 수 있다. 아프간과 중국은 서로 국경을 맞대 충돌이 발생하면 피하기도 쉽지 않다. 탈레반의 부상으로 중국 지도부가 난처한 현실에 처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밝혔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은 지난달 말 톈진에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 “탈레반이 모든 테러 단체와 철저히 선을 긋고 지역의 안전과 발전 협력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탈레반의 정통성을 인정할 테니 신장 등 중국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이지만,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원치 않아도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아프간 사태에 개입해야 할 수도 있다. 이에 파이낸셜타임스는 “제국들의 무덤인 아프간이 이제 중국을 부른다”고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 ‘힘의 공백’ 생기는 중앙아시아…중러, 탈레반 세력 확대에 긴장

    이달 말 미군 완전 철수를 앞두고 무장반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빠르게 점령, 15일 정부군이 사실상 백기 선언을 내놓음에 따라 미국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군 철수, 탈레반 장악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힘의 공백’이 생길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열강의 무덤’으로 치달았던 제국주의 당시의 중앙아시아 정세가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제기됐다. 미국 정치권에선 최근 아프간의 상황을 ‘1975년 프리퀀트 윈드 작전’에 빗대는 논평이 나왔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아프간 상황은 1975년 사이공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보다 더 최악인 속편”이라면서 “9·11 테러 20주년에 탈레반이 카불의 미국 대사관을 불태우며 축하하는 최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가 꺼내 든 ‘프리퀀트 윈드 작전’은 베트남전쟁 막바지에 미군이 포격을 피해 감행한 탈출 작전으로 당시 이틀 동안 13만 8000여명이 다급하게 탈출해야 했다. 탈레반이 빠르게 진격하면서 미국이 이날 카불의 자국 대사관에 있는 주요 인력들을 36시간 안에 대피시킨다는 작전에 돌입하자 매코널 의원이 미국이 패배한 전쟁인 베트남전을 언급한 것이다. 2500~3500명 수준이던 미군 병력을 단계적으로 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공군력을 추가로 동원해 탈레반 세력 확대를 막는 작전을 병행했어야 했다는 아프간 전문가들의 주장도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미군은 철수하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중러는 이미 지난주에 중국 북서부에서 대규모 대테러 합동훈련을 가졌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터(SCMP)가 15일 보도했다. 양국은 다음달 중순엔 러시아 오렌부르크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추진하는 중국과 유라시아경제연합 무역권을 구상하는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잠재력에 기대를 품어 왔다. 그런데 아프간을 탈레반이 장악한다면 중러와 중앙아시아 간 경제협력 구상에 차질이 생길 뿐 아니라 안보위협 또한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특히 탈레반의 부흥이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의 이슬람 테러 가능성을 높일 가능성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탈레반의 전신인 무자헤딘이 지원했던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의 세력이 커지는 데 따른 우려이다.
  • 그냥 지나쳤던 독립성지 이번 여름엔 꼭!

    그냥 지나쳤던 독립성지 이번 여름엔 꼭!

    서울 외곽에도 덜 알려진 독립운동의 성지들이 있다. 등산이나 피서, 하다못해 업무 때문에라도 한번쯤 지나쳤을 곳에 선열들의 공간이 숨겨져 있다.봉황각부터 찾는다. 3·1만세운동을 이끈 의암 손병희(1862∼1922) 선생이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지은 교육·수련시설이다. 1912년 세워졌으니 내년이면 꼬박 110년이 되는 건물이다. 현재는 천도교 의창수도원 건물 중 하나다. 박충남 수도원장에 따르면 당시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은 3만평에 이르는 땅을 800원을 주고 매입했다고 한다. 당시 ‘경성’(일제강점기 서울을 부르던 이름)의 규모로 볼 때 의암이 사들인 북한산 일대는 인가가 거의 없는 심산유곡이었을 것이다. 봉황각과 이웃한 도선사도 당시엔 도선암이란 산중 암자였다고 한다. 의암이 이처럼 외딴곳에 수련시설을 지은 이유는 자명해 보인다.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가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3·1운동을 이끈 33명의 지도자 가운데 15명이 봉황각에서 수학했고, 봉황각 출신 독립투사 483명이 나라 곳곳에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천도교 쪽에선 한발 더 나가 ‘3·1운동의 발상지’로 추앙하는 분위기다. 봉황각 조성 당시엔 의친왕 이강(1877~1955)이 자주 의암을 찾았다고 한다. 박 원장은 “두 분이 함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항일 투쟁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벌였을 것”이라며 “봉황각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벌어진 건청궁과 비슷한 형태로 지어진 것도 의친왕의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원장 등 천도교 측의 주장이긴 하나, 역사학계에서 한번쯤 짚어 볼 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의친왕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친왕은 고종과 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5남이다. 일본에서 교육받은 스무 살 아래 동생 영친왕에게 황태자 지위를 내주고, 말년에 영양실조 상태에서 죽음을 맞은 비운의 왕족으로 알려져 있다. 의친왕은 한때 주색에 빠진 파락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한데 이는 자신에게 쏠리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조조의 장막 아래 비굴한 겁쟁이로 지냈던 삼국지 유비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광복 이후에도 쉬 바뀌지 않았던지, 그가 영양실조 등으로 죽음을 맞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의친왕이 1919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남긴 글이 인상적이다. “나는 차라리 자유 한국의 한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정부의 친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임시정부에 참여해 독립운동에 몸바치기를 원한다고도 했다. 비록 중국 안동역(현 단둥역)에서 체포되며 망명 시도는 물거품이 됐지만, 이후에도 그는 일제의 일본행 제안이나 단발령을 거부하는 등 일제와 대립각을 세우며 지냈다. 봉황각은 110년 된 건물치고는 상당히 말끔한 편이다. 그동안 한국전쟁 등 변고가 많았던 걸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자주 썼던 ‘봉황’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이다. 현판은 당대의 명필 위창 오세창이 썼다고 한다. 봉황각 외형은 명성황후의 침전이었던 건청궁 내 곤녕합의 구조와 흡사하다. 봉황각 조성 때 의친왕의 의견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천도교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건물 내부엔 의암 초상화와 3·1운동을 숙의하는 벽화 등이 있다. 봉황각 옆의 기와집은 의암이 실제 기거했던 공간이다. 박 원장에 따르면 의암은 이 사저에서 7년 정도 생활했다고 한다. 봉황각 바로 앞에 있는 적벽돌 건물도 무척 고풍스럽다. 1922년 지어진 천도교 중앙종리원 건물(중앙총부 본관)이다. 원래 종로에 있다가 1970년쯤 수운회관이 들어서면서 현 위치로 고스란히 옮겨 왔다. 옛 중앙총부 건물은 세계어린이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 건물이 종로에 있을 당시 의암의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이 머물며 어린이 잡지를 내는 등 어린이운동을 펼쳤다. 이제 망우리 공원으로 넘어간다.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공동묘지’였던 곳. 한데 잠든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묘지’나 ‘공원’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될, 성지 같은 곳이다. 만해 한용운 등 독립지사는 물론 시인 박인환, ‘코리안 엘비스’라 불렸던 가수 차중락, 화가 이중섭, 작가 김말봉 등의 묘가 너른 공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중 하나가 도산 안창호의 묘터와 태허 유상규의 묘다. 둘의 사연은 몇 번을 곱씹어도 애틋한 감동을 안겨 준다. 태허는 도산의 비서다. 경성의전(현 서울대 의대) 출신의 의사였던 태허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도산의 비서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나선다. 그러다 인재가 필요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도산의 권고로 1924년 귀국한 그는 의사와 독립운동가의 길을 병행하다 세균에 감염돼 1936년 39세로 요절하고 만다. 둘의 사연은 2년 뒤 도산이 세상을 뜨기 전 남긴 말이 회자되며 세인의 가슴을 적셨다. “나 죽거든 내 시체를 고향에 가져가지 말고, 달리 선산 가튼 데도 쓸 생각을 말고, 서울에다 무더 주오. 공동묘지에다가. 유상규군이 눕어잇는 그겻 공동묘지에다가 무더 주오.”(당시 표기법을 따름) 도산에게 태허는 죽음 이후의 세계마저 공유하고 싶은 정신적 아들이자 동지였던 거다. 유관순(1902~1920) 열사의 무덤도 있다. 다만 단독 봉분은 아니고 합장묘 형태다. 일제가 1936년 2만 8000여기에 달하는 이태원 공동묘지의 무연고 분묘를 망우리로 이전할 때 유 열사의 유해도 함께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이태원 합장묘는 공원 초입에 있어서 찾기 쉽다. 태허의 묘와 도산의 묘비는 산자락 중턱에 있어서 20분 남짓 걸어 올라야 한다. 공원 측이 조성한 ‘사잇길’이 지름길이긴 하지만 거의 등산에 가까운 수준이다. 다소 돌더라도 완만하게 오를 수 있는 둘레길로 가길 권한다. 망우리 공원 주차장은 공사 중이다. 주변 주차장에 차를 두거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 웅치전적지 국가사적 승격 추진

    임진왜란 당시 곡창지대 호남을 침공하려는 왜군과 전라도 관군·의병의 격전지 웅치전적지가 국가사적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전북도는 최근 개최된 문화재위원회에서 웅치전적지 문화재지정구역 이 기존 완주군 소양면 365만609㎡에서 완주군 소양면 75만8039㎡와 진안군 부귀면 16만2087㎡로 변경해 국가사적 승격을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 웅치전적지는 1976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역사·지리·고고학적 연구와 분석을 통해 웅치전투의 주 전투지가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덕봉마을에서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두목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웅치 옛길을 중심으로 과학적 분석(인성분 검사)을 한 결과, 추론으로만 떠돌던 웅치전투의 실제 모습이 실증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전북도는 이번 지정구역 변경 내용을 토대로 오는 9월 현재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인 웅치전적지의 국가사적 승격을 추진한다. 두 자치단체가 지역을 넘어 국가사적을 신청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유일하다. 문화재 전문위원들은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 그리고 과학적 분석을 통해 웅치전투의 주 전투지가 진안 부귀면 세동리 덕봉마을에서 완주 소양면 신촌리 두목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즉 지금의 웅치길(덕봉길)이라는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이 고개가 임진왜란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를 벌인 장소였다는 점에서 이후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해 보존·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웅치전투는 1592년 7월 전주로 침공하려는 일본군과 전라도 관군·의병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임진왜란 초기 호남 방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웅치싸움이 끝난 후 왜군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에 깊이 탄복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순사(殉死)한 조선군의 유해를 모아 무덤을 만들고, ‘吊朝鮮國忠肝義膽(조조선국충간의담)’이라는 표목을 세워 영혼을 위로하였다.
  • ‘가슴·엉덩이 만졌다’ 가장 심각했던 쿠오모 피해자 인터뷰 “범죄였다”

    ‘가슴·엉덩이 만졌다’ 가장 심각했던 쿠오모 피해자 인터뷰 “범죄였다”

    쿠오모 전 비서 코미소, CBS 방송 인터뷰 “그가 내게 한 짓은 범죄였다. 법 어겼다”쿠오모, 바이든의 사퇴 촉구에도 인정 안해 미국 뉴욕주 검찰이 지난 3일(현지시간) 공개한 165페이지의 ‘(앤드루) 쿠오모의 성추행 혐의 조사 보고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피해를 당했던 전직 비서가 입을 열었다. 보고서에는 익명으로 처리됐지만,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쿠오모 뉴욕주 주지사의 성추행이 범죄’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조사 결과 성추행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이를 부인하고 있는 쿠오모가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CBS방송이 8일 쿠오모의 전 비서 브리트니 코미소(32)와 인터뷰 예고방송을 내보낸 가운데, 코미소는 “(형사 고소는) 올바른 일이었다. 주지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주지사가 범죄 혐의로 기소되는 게 책임을 지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가 내게 한 짓은 범죄였다. 그는 법을 어겼다”고 밝혔다. 뉴욕주 검찰이 민사 성격이 섞여 있다며 기소는 하지 않자, 코미소는 뉴욕주 올버니카운티 보안관실에 쿠오모를 고소했다. 코미소의 인터뷰 전체 영상은 9일 공개된다. 검찰 보고서에서 그는 ‘비서 #1’로 지칭됐다. 당시만 해도 본인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기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에 2019년 12월 31일 관저에서 셀피를 찍자고 제안한 쿠오모가 “손으로 5초 이상 엉덩이를 문질렀다”고 증언했다. 또 지난해 11월 16일에는 쿠오모가 사무실에서 블라우스 안으로 손을 넣어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고 했다. 이에 대해 쿠오모는 사무실에 있던 10명의 직원 앞에서 그런 짓을 한 것이 말이 되냐는 취지로 부인했지만, 검찰은 당시 사무실 안에 10명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기술했다. 코미소는 보고서에 실명을 밝힌 다른 여성들보다 더 쿠오모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자신의 당시 상사가 쿠오모의 오른팔이었고, 자신이 피해 사실을 말할 경우 쿠오모에게 타격을 주기는 커녕 자신이 다른 곳으로 전출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이혼 후 소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또 지난해 12월 피해자 중 처음으로 쿠오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던 린제이 보이란(37) 전 특별 고문에 대해 쿠오모 측이 그를 부정적으로 기술한 내부 기밀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보복에 나선 것도 바로 옆에서 봤다고 했다. 보이란은 2017년 쿠오모에게서 “스트립 포커를 치자”는 말을 들었고, 2018년 쿠오모의 맨해튼 사무실에서 입맞춤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후 코미소는 피해 사실을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지만 지난 3월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쿠오모의 발언에 화를 참지 못해 동료들에게 알렸다고 했다. 반면 쿠오모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이 사퇴를 촉구했음에도 부적절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사임을 거부하고 있다. 뉴욕주 의회는 탄핵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 [세종로의 아침] 스스로 제 무덤 판 여성가족부/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스스로 제 무덤 판 여성가족부/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여성가족부를 놓고 한쪽에서는 없애자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슨 망발이냐고 반박한다. 이참에 체급을 올려 부총리급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필자 입장을 밝히면 여가부 폐지에는 반대다. 더 키우자는 의견에도 반대다. 우리 사회 곳곳에 여성 진출이 늘면서 남성 역차별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성평등 사회를 향한 길은 아직 멀다. 여가부가 계속 피리를 불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소망과 기대를 배신한 것은 다름 아닌 여가부다. 젠더갈등 문제 등을 외면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지난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때 여가부가 한 짓에 대해 국민은 지금도 분노한다. 정부 양성평등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부처가 어떻게 피해 여성을 ‘피해호소인’이라 부르는 여권의 눈치를 보며 절절맬 수 있나. 응당 목소리를 내도 모자랄 중차대한 사안에 여성권익 향상을 위해 뛰어야 할 여가부의 심장은 멈췄다. 누가 없애지 않아도 여가부는 이미 그때 죽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둔 나라에서 20년 역사의 여가부가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보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외쳤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앞세워 제 주머니를 챙겼다는 의혹을 받던 여성의원에 대한 여가부의 ‘관대함’도 속을 뒤집어 놓았다. 여가부의 정책 대상자는 여성, 다문화가정, 청소년 등 하나같이 약자들이다. 이들이 피해를 입으면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왜 권력 앞에만 서면 작아지나. 가장 비정치적 행동을 해야 하는 부처가 가장 정치적 행보를 하는 바람에 부처 폐지론까지 나왔다는 지적에 여가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공직사회에서 여가부가 ‘방 안의 코끼리’(모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는 커다란 문제)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업무가 다른 부처와 중첩되고, 정책역량은 떨어진다. 현 장·차관, 기획관리실장 등 ‘넘버 3’ 모두 외부 출신이다. 직원들도 여러 부처에서 모여든 모래알 조직이다 보니 맨파워가 약하다. 최근 여가부는 스스로 ‘밑천’을 드러냈다. 정책기획은커녕 집행에서도 구멍이 뚫렸다. 2019년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낸 ‘아이돌봄 지원사업’ 사업비 2244억원 중 339억원이 쓰고 남았는데도 돌려받지 않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과 관련, 서울시 현장점검에서 핵심 내용을 빼고 발표했다는 서울신문 보도에 대해 ‘민간전문가의 부대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민간전문가를 포함해 현장점검단을 꾸려 놓고 그들의 의견은 여가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궤변이다. 얼마 전 줌 화상 기자간담회를 한다면서 기자들 마이크는 일방적으로 꺼 놓고 장관 혼자 ‘원맨쇼’를 했다. ‘소통한다’면서 정작 기자들의 ‘입’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여가부는 권력형 성범죄 등 큰일이 터지지 않으면 사실상 국회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다른 상임위와 겸직하고, 여가부는 국정감사도 늦게 받다 보니 신경을 덜 쓴다. 견제받지 않다 보니 비판 기사가 나오면 자신을 되돌아보기는커녕 대변인이 장관에게 ‘언론사에 나쁜 의도가 있다’고 거짓보고를 하는 행태가 용인되는 조직이 됐다. 그런데도 ‘권한이 없어 일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여가부를 보면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권한과 예산을 늘려 준다 해도 실력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 없다. 현 정부하에 중소기업청에서 승격한 중소벤처기업부의 경우 타 부처에서 중소기업 업무를 이관받았지만 정책역량 부족으로 다음 정권에서 손볼 부처 중 하나로 꼽힌다. 여가부가 살아남으려면 ‘자강’(自强)밖에 없다.
  • [2030 세대] 아프가니스탄, 베이징의 무덤?/임명묵 작가

    [2030 세대] 아프가니스탄, 베이징의 무덤?/임명묵 작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군하면서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한 페이지가 완전히 넘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뒤에 펼쳐질 새로운 역사가 희망적일지는 값비싼 대가에도 불구하고 미지수다. 미군이라는 억제력이 사라지면서 필연적으로 세력을 키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폭력과 야만을 키우지 않을까? 일부 관찰자들은 미국이 빠진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이 그 자리를 채우길(?)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이런 기대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지정학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내륙 산악 지형은 복잡한 부족, 종파 질서를 형성했고 아프간인들은 이곳에서 안정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외부 세력을 완강히 거부해 왔다. 그런 이유로 19세기, 20세기, 21세기에 각각 영국, 소련, 미국에 이르는 강대국들이 이 나라에 진입했다가 호되게 당하기만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렇기에,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은 결코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중국 또한 아프가니스탄에 얽혀 들어가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지정학적으로 약화됐으면 하는 일종의 기대감의 투영인 것이다.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근거도 나온다. 탈레반이 위구르족을 선동할 것이라는 이야기, 중국이 진출한 파키스탄에서 불안정성을 키울 것이라는 전망 등. 이런 위협 때문에라도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제국의 무덤’은 베이징도 예외로 두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실현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앞선 강대국들, 특히 소련과 미국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이유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과 소련은 이념적 제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 소련식 혹은 미국식 사회체제를 이식하고자 했다. 이런 시도는 문화적으로 완고한 현지 세력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중국식 체제를 수립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이권이다. 이 점에서 베이징과 탈레반이 손잡을 요인이 생긴다. 탈레반이 극악무도하다고 하지만 그들의 잔인함은 오직 내부로만 향한다. 탈레반의 관심사는 아프가니스탄 국경 안에서 자신들의 지도력을 공고화하는 것이지 이슬람국가(IS)처럼 외부로 테러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일대일로’로 탈레반 지도부에게 이권을 보장해 주고 그들의 사회운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탈레반은 오히려 중국의 지정학적 전망에 적극 협조할 수 있는 셈이다. 많은 곳에서 ‘중국은 나쁜 나라니까 위기에 처해야 한다’는 인식이 심심치 않다. 하지만 나쁜 것과 강한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실제 중국이 겪는 곤경과 외부인들이 그저 실현되기만을 원하는 곤경도 전혀 다를 수 있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중국 세력의 팽창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이유다.
  •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고작 모기 때문에 멸망한 문명이 있다?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고작 모기 때문에 멸망한 문명이 있다?

    환경 파괴에 이은 기후변화, 멈출 기세가 없는 전염병까지. 인류는 지금 역사상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연구팀은 각종 원인으로 불안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뉴질랜드를 꼽았다. 아이슬란드, 호주 태즈메이니아 등 온대 기후 섬나라이면서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이 뒤를 이었다. 전력과 식량 생산 능력, 물밀듯 밀려온 난민 유입 저지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과거에도 기후적 요인, 전염병, 전쟁 등 오늘과 다르지 않은 이유로 문명들이 사라졌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화학자인 하랄트 하르만은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에서 인류 역사에서 사라진 25개 문명을 돌아본다. 20세기 중반 터키 아나톨리아에서 발굴된 차탈회위크는 특이하게도 모기 때문에 멸망했다. 이곳은 기원전 7500~56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도시다. 1만명이 넘게 살았고, 무려 18층의 취락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온이 상승하면서 말라리아모기가 창궐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 속 유골에서 말라리아에 따른 일련의 기형적 뼈를 다수 확인했다. 비교적 최근 소멸한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은 기후 변화가 원인이었다. 700~1100년 이주자들이 들어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자신들만의 상징인 거대한 석상 ‘모아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섬 전체에 흩어져 있는 석상은 대략 880여개로 높이 4m에 지름 1.5m, 무게 50t에 달한다.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바라보는 석상은 ‘죽은 조상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 영원히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큰 바위를 산기슭의 채석장에서 평지로 운반하는데, 굴리든 썰매를 이용하든 많은 나무를 벌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1650년 무렵 시작된 소빙하기에 식용 식물 재배가 줄고 생필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내분이 일어났고, 문명도 쇠퇴했다. 소빙하기의 도래가 지구적 활동이긴 하지만, 심각한 벌목 또한 이스터섬의 멸망을 앞당긴 게 분명하다. 이 외에도 로마제국에 맞선 팔리마 제국, 스키타이 기마 유목민, 흑해의 여전사 공동체 아마조네스 등 다양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멸망의 원인을 하나씩 떠올려 보면, 오늘 우리가 겪는 바로 그 이유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반대로 책은 우리에게 조곤조곤 알려준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할지.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 [여기는 남미] 땅만 파면 유적이…콜롬비아서 고대문명 무덤 발견

    [여기는 남미] 땅만 파면 유적이…콜롬비아서 고대문명 무덤 발견

    남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또 고대문명 옛 원주민 무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 역사고고학연구소(ICANH)는 우스메 구역 도로확장 공사 현장에서 무이스카 문명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26기를 발견했다. 무이스카는 스페인이 중남미를 점령하기 전 지금의 콜롬비아에 거주했던 종족으로 한때 잉카나 마야에 견줄 만한 국가를 형성했었다. 무덤이 발굴된 곳은 버스전용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현지 언론은 "지난 2월 기둥 흔적과 세라믹 유물, 돌로 만든 유물이 발견된 게 그 시작이었다"면서 "연구소가 발견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추가발굴을 진행해 왔다"고 보도했다. 연구소가 무덤 발굴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건 한참 뒤인 지난 30일(현지시간)이다. 스페인의 중남미 점령이 막 시작됐을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발굴된 유골 중 셋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이들의 무덤에선 부장품 그릇류가 세트로 발굴됐다. 도시개발연구소의 부소장 호세 펠릭스 고메스는 "스페인이 중남미에 도착할 즈음에 형성된 무덤들로 보인다"면서 "유골과 유물은 모두 역사고고학연구소로 옮겨져 정밀분석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보고타에서 고대문명의 무덤이 무더기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대규모 보급형 주택을 건설하는 현장에서 고대 무이스카 문명이 남긴 무덤 2500기가 한꺼번에 발굴된 바 있다. 당시 발견된 유골은 성인과 어린이를 포함해 135구, 발굴된 유물은 세라믹 30만 점에 이른다. 고고학계는 "지금의 우스메 구역이 한때 무이스카 문명의 최대 거주지였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유적이 발견되자 콜롬비아는 2014년 우스메를 '고고학 보존구역'으로 지정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우스메에 사상 첫 고고학공원을 개설했다. 콜롬비아 고고학역사연구소는 "고대 무덤은 수백 년간 이어진 장례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면서 "고대문명이 생명에 대해 갖고 있던 개념, 땅과 생명의 관계에 대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넘친다"고 밝혔다.
  • 송영길 野 비판하며 “불임정당”, 정의당 “성차별적…난임은 불명예 아니다”

    송영길 野 비판하며 “불임정당”, 정의당 “성차별적…난임은 불명예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야당을 비판하며 ‘불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구설에 올랐다. 단어를 사용한 의도와 관계 없이 불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대표는 5일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겨냥해 “문재인 정부에 의해 키워진 사람들을 데려다가 용병으로 쓰는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불임정당임을 자백한 꼴”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의 대선 주자 중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 전 원장 등 자당 출신이 아닌 후보들이 다수 포진했다는 점을 꼬집은 말이었다. 그러나 불임정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곧바로 이어졌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영길 대표가 어떤 취지로 그 발언을 했는지는 알겠다”면서도 “하지만 타당을 비판한답시고 쓴 그 비유는, 실제 고통을 겪는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표현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나 질병을 부정적인 비유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 최소한의 인권감수성 아닌가”라며 “불임 운운하는 표현 역시 그 연장선상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강 대표는 “난임과 불임은 불명예가 아니다”라며 “국민의힘을 비판하는데 있어, 임신의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몸이 비유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무신경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라고 꼬집었다. 지금껏 정치권 내 여성 비하는 자주 있어왔다. 과거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바른정당을 겨냥해 “첩이 아무리 본처라고 우겨본들 첩은 첩일 뿐”이라고 비유해 구설에 올랐다. 바른정당 최고위원이었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홍 대표와 논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무덤이 될 것”이라면서 “일베로 혁신하는 자유한국당은 ‘제삿날 받아 놓은 영구 불임정당’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며 부적절한 비유를 해 덩달아 구설에 올랐다. 인명진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2017년 1월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반성 다짐 화합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불임정당이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다만 국민들이 우릴 지지해줘야 하는데 국민들이 지지해주려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후보를 내는 것보다 당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지만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 추악한 성추행 피해 11명…추락한 대선후보 쿠오모

    추악한 성추행 피해 11명…추락한 대선후보 쿠오모

    보좌관 성추행·폭로 보복 조치 등 공개CNN 앵커 동생 크리스, 대응 과정 관여당시 중립성 위반 논란에도 뉴스 진행 바이든 “사퇴하라”… 주의원들은 “탄핵” 쿠오모 “주지사 자리 노린 수사” 반발코로나19 방역 영웅이자 유력 대선주자로 평가받던 앤드루 쿠오모(64) 뉴욕 주지사의 잇단 성추행 의혹이 검찰 조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피해자만 11명에, CNN의 간판 앵커인 동생 크리스 쿠오모도 대응 과정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오모 주지사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 및 민주당 지도부가 일제히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정치적 생명이 사실상 끝난 것으로 평가된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165쪽에 달하는 ‘쿠오모의 성추행 혐의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전·현직 보좌관에 대한 쿠오모 주지사의 성추행은 연방법과 뉴욕주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피해자 중 처음으로 쿠오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던 린지 보이런(37) 전 특별 고문은 2017년 “스트립 포커를 치자”는 말을 들었고, 2018년 쿠오모의 맨해튼 사무실에서 입맞춤을 당했다. 쿠오모 측은 보이런의 소송 이후 그를 부정적으로 기술한 내부 기밀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보복에 나서기도 했다. 익명의 보좌관은 쿠오모가 관저에서 함께 셀카를 찍다 엉덩이를 움켜잡았고, 지난해 11월에는 블라우스 안에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실을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지만 지난 3월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쿠오모의 발언에 화가 나 동료들에게 알렸다고 했다. 보고서는 쿠오모가 만든 “공포 가득한 직장 문화와 적대적인 근무 환경”도 비판했다. 또 동생 크리스는 올 초 성추행 의혹이 본격 불거지자 조직된 쿠오모 대응팀의 일원이 돼 형에게 잘못을 뉘우치는 식으로 대응하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그간 크리스가 ‘보도 중립성’을 위반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그는 이날 CNN 밤 9시 뉴스를 그대로 진행했다. 쿠오모의 아버지 고 마리오 쿠오모는 전 뉴욕 주지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남 쿠오모도 3선에 걸쳐 주지사를 하는 등 이탈리아계 정치 가문으로 유명하다. 이번 수사는 제임스의 임명으로 한국계인 준 김 전 뉴욕남부지검장 대행과 앤 클락 변호사가 지난 3월부터 맡아 진행했다. 뉴욕주 검찰은 민사 성격이 있다며 쿠오모를 직접 기소하지는 않을 방침을 밝혔지만, 다른 수사기관이 기소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은 이날 기자들이 쿠오모의 거취를 묻자 “그가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도 성명에서 “진실을 말하려 나선 여성들을 지지한다. 그가 물러나길 촉구한다”고 했고, 뉴욕주가 지역구인 민주당 소속 척 슈머 원내대표도 사퇴를 요구했다. 뉴욕주 의원들은 쿠오모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하원 150석 중 과반 찬성 후, 상원 63석 중 3분의2가 동의하면 쿠오모는 탄핵당한다. 이미 지난 3월 쿠오모의 성추행 폭로가 잇따라 나왔을 때 주 상원의원 63명 중 55명이 사퇴 요청 서한에 서명을 한 바 있어 쿠오모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쿠오모는 이날 검찰 발표에 대해 “사실과 아주 다르다”며 포옹하고 뺨에 입맞춤하는 것은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또 제임스가 차기 주지사 자리를 노린다며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 13년째 아디스아바바 골목 누비는 군수님

    13년째 아디스아바바 골목 누비는 군수님

    6·25 참전용사 후손 찾아 장학금 지급화천군민·군부대 도움… 올 188명 선발끼니 걱정 ‘용사촌’ 변화… 의사 등 배출他지자체도 돕지만 일회성 안타까워최 군수 “고향 내려가 노인회 총무가 꿈”“강원 화천군에 자유를 찾아준 이들을 위한 ‘보은의 장학사업’은 계속돼야 합니다.” 최문순(67) 화천군수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장학사업에 열정이 남다르다. 13년째 이어오면서 장학생을 발굴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9번이나 다녀왔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장학금을 해마다 지급해 오고 있다. 장학사업은 에티오피아의 6·25참전용사촌에 의사와 변호사를 키워 내며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최 군수는 화천의 장학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발전시켜 우리나라의 모범적인 해외 장학사업으로 자리매김시켰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등교육에 대한 서러움이 컸던 것이 계기였다.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면 고향인 화천 하남면 원천리로 돌아가 노인회 심부름꾼인 총무를 맡는 것이 꿈이다. 3일 산천어축제에 이어 장학사업까지 글로벌 단체장으로 떠오른 최 군수에게 에티오피아 장학사업에 대해 들었다. -화천군이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선 계기는.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지만 당시 북한 지역에 포함돼 있던 화천군에는 자유를 얻게 된 전쟁이었다.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을 고심하던 끝에 화천의 수복을 위해 피흘린 참전 국가 가운데 우리보다 어렵게 사는 에티오피아를 돕기로 결정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화천군 지역복지과장으로 있으며 에티오피아 돕기사업을 기획했다. 처음에는 현지에 학교를 지어 줄까, 우물을 파 줄까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2008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6·25참전용사촌을 직접 찾아가 실상을 돌아보고 장학사업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현지 참전용사 후손들의 집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참전용사들이 6·25전쟁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뒤 1972년 쿠데타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빈민촌으로 내몰려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의 반짝이던 눈빛과 미소를 잃지 않았던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장학사업의 규모는. “2009년 장학사업을 시작한 이후 올해까지 13년째 이어 오고 있다. 에티오피아 현지를 직접 찾아 참전용사 후손임을 확인한 뒤 매달 지급해 오고 있다. 초등학생은 30달러, 중·고교생은 40달러, 대학생은 50달러씩 주고 있다. 4인 가족이 끼니를 해결하고 학교에도 갈 수 있는 수준이다. 첫해 105명을 선발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는 188명을 선발했다. 13년째 실천해 오며 그동안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사회에 진출한 학생이 308명에 이른다. 해마다 1억 2000여만원씩 투입되는 장학금은 화천군민과 화천 지역 주둔 군부대 부사관급 이상 간부들의 도움으로 지급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전국에 뜻을 같이하는 후원자들까지 생겨났다.” -장학생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선발되는가. “지금까지 9번 에티오피아를 직접 찾아 발품을 팔았다. 서울시내 골목길은 몰라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골목 곳곳은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고 자부한다. 코로나19로 지난해와 올해는 못 갔지만 1년에 한 번 정도씩 찾는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1주일씩 현지에 머물며 밤낮으로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현지 참전용사 후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 빈민촌을 뛰어다닌다. 현지를 찾은 화천군 공무원들이 3개팀으로 나누어 답사하며 참전용사 후손임을 확인한다. 6·25 당시 참전용사는 6300여명이었지만 지금은 100여명만이 생존해 있다. 12년 전 장학사업 초기만 해도 850여명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참전용사들이 줄어들고 있다.” -13년째 장학사업을 하면서 얻은 성과는. “희망이 사라지고 끼니를 걱정하던 에티오피아 6·25참전용사촌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들 가운데 3명의 현지 의사가 배출됐고, 올해도 의사 3명과 변호사 1명이 나올 예정이다. 화천군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면 희망이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최근 장학금 지급 방식도 조금 바꿨다.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조금 더 주고, 공부를 게을리하면 조금 덜 주는 인센티브 방식을 도입했다. 공부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다.-장학사업 외에 참전용사들을 위한 사업은.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화천에서 주요 전투를 치르며 화천군이 자유를 찾고 수복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우리에게 자유를 찾아 준 은인들이다. 지금은 거꾸로 이들 참전용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은혜를 갚는 맘으로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한다. 그동안 참전용사회 간부들을 서너 차례 화천으로 초청해 감사를 표시했다.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 모두를 화천으로 초대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연로한 참전용사들이 먼 대한민국까지 여행하는 게 쉽지 않다. 또 다른 참전국인 콜롬비아에는 체육관을 지어 주었다. 수년 전 주한 콜롬비아 대사의 요청으로 참전용사들이 사는 보고타 현지를 찾았다. 에티오피아보다 잘사는 모습을 보고 장학사업보다 체육관을 지어 준 것이다.” -6·25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부대는 어떤 부대인가. “6·25전쟁 때 참전한 16개국 가운데 아프리카의 유일한 참전국이 에티오피아다.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가 왕실근위병을 중심으로 보병 1개 대대를 편성해 강뉴부대란 이름을 붙여 파병했다.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던 에티오피아 황제가 1만㎞나 떨어진 대한민국을 위해 최정예 부대를 보낸 것이다.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7월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강뉴부대는 미군에 배속돼 강원도 화천 적근산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10월 철의 삼각지 공방전에서는 단 한 차례도 고지를 내주지 않았다. 무려 253전 253승이라는 전승을 거둬 무적의 부대로 불렸다. 종전까지 124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다. 포로는 한 명도 없었다. 부대원 모두 황제의 특명을 지킨 것이다. 전우의 시신도 모두 수습해 돌아가 부산 유엔군 묘역에는 에티오피아군 병사의 무덤이 하나도 없다.” -에티오피아 장학사업의 정부 지원과 아쉬운 점은. “현재 에티오피아 장학사업은 화천군이 중심이 돼 10년 넘게 이어 오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돕기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 일회성에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 수년 전부터 국가보훈처에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을 대상으로 ‘낙전사업’을 벌이고 있다. 보훈처 직원들이 월급의 일정액 이하 금액을 모아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화천군의 장학사업이 단초가 됐다고 본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우리의 도움에 감사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함을 감추지 않는다.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 정부 차원의 행사나 지원을 성의 있게 지속적으로 해 주길 바라고 있다. 후원의 도움을 받은 에티오피아 아이들이 자라 먼 훗날 주류층이 됐을 때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장학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이유는. “나는 화천 읍내에서도 8㎞를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마을 가난한 집 10남매 가운데 7째로 태어났다. 중·고교 때는 읍내까지 걸어서 다녔다.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던 시절이라 춘천 지역 상급학교와 대학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2년간 서울생활도 해 보고 고향에서 농사도 지었다. 이후 공직에 들어와 44년째 공무원으로 살아 오고 있지만 교육복지에 대한 갈증이 크다. 어린 시절 도시락을 못 싸가 뒷동산에서 물로 배를 채우고, 월납금이 없어 시험지를 빼앗겨 서럽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이후 산골마을 화천의 ‘교육복지’를 위해 일찌감치 학생들이 교육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교육정책들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고장으로 변했다. 에티오피아 장학사업도 이런 연장선에서 실천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의 장학사업은 계속돼야 한다.”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투탕카멘과 할머니의 머리카락/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투탕카멘과 할머니의 머리카락/이집트 고고학자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견했다. 무덤은 도굴이 되지 않았고, 이집트에서 도굴되지 않은 왕묘가 발견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에 이 발굴은 즉각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발굴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2022년은 바로 이 고고학적 성과가 이루어진 지 정확하게 100년이 되는 해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는 벌써 여러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6월 22일부터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투탕카멘 무덤 발굴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시작됐다. 전시는 내년 4월까지 계속된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 모두 다 이집트가 소장하고 있다. 이 유물들은 해외 반출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황금 마스크나 황금관 등 주요한 유물들은 이집트의 법률로 일시적인 해외 반출조차도 완전하게 금지하고 있다.이집트의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 때 해외로 반출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집트인들이 투탕카멘 유물에 대해 엄격하게 구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고고학 유물이 먼 거리를 이동하면 아무래도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러한 관리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투탕카멘의 유물을 보려면 직접 이집트에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이집트 여행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는 이집트에 관심이 있는 모든 한국 시민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되는 유물들은 모두 진품이 아니라 재현품들이다. 그러나 이 재현품들은 공신력이 높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인 만큼 진품을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번 전시는 무덤의 발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게 구성돼 있다. 관람객이 1922년 당시의 무덤을 발굴한 고고학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전시 구성이다.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역시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마스크는 10㎏이 넘는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라피스라줄리, 홍옥수, 터키석 등 준보석으로 파라오 얼굴의 각 부분이 정교하게 장식돼 있다. 별다른 배경 지식 없이 유물을 보더라도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유물이다. 물론 재현품은 황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재현품 마스크는 먼저 구리를 사용해 공인받은 장인이 수작업으로 틀을 만들고 그런 다음 전기분해 방식으로 금박을 입혀 완성됐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이 황금 마스크가 아니더라도 모두 다 주목할 만하다. 그중 ‘왕실 가보’로 분류되는 것들이 있다. 투탕카멘 본인 생전에 제작돼 사용되던 것들이 아니라 선대 파라오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물건들이다. 그렇다 보니 물건들에는 투트모스 3세나 아멘호테프 2세, 아멘호테프 3세 등의 이름이 쓰여 있기도 하다. 이 ‘왕실 가보’들도 모두 다 재현이 돼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특별히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유물이 하나 있다. 바로 아멘호테프 3세의 부인이자 투탕카멘에게는 할머니인 티예 왕비의 머리카락 다발이다. 이 머리카락은 4중으로 이루어진 2개의 미니어처 목관과 2개의 금박관 안에 담겨 있었는데, 이를 통해 머리카락이 아주 소중하게 다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투탕카멘은 어쩌면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받았던 사랑을 잊지 못해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계속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간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인 아케나텐의 혁명적 개혁과 아케나텐 사후 이뤄진 급격한 전통 복고의 시대를 모두 다 경험한, 힘없는 파라오였을뿐더러 몸조차 아주 건강하지는 않았던 투탕카멘의 처지를 떠올려 보면 그의 할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3300여년 전의 인물 투탕카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우상’ 양학선 앞에서 훨훨… 이제, 도마 하면 신재환이다

    ‘우상’ 양학선 앞에서 훨훨… 이제, 도마 하면 신재환이다

    중2 때 런던올림픽 보고 양학선에 ‘입덕’단체전 대표 탈락… ‘세계 1위’ 자격 출전양, 결선 진출 실패… 관중석서 열띤 응원신 “학선이형은 스승… 덕분에 金 땄다”한국 체조의 ‘비밀 병기’를 넘어 ‘최종 병기’가 됐다. 새로운 도마 황제 시대가 열렸다. 이제 도마 하면 여홍철(50·경희대 교수), 양학선(29·수원시청) 대신 신재환(23·제천시청)을 떠올리게 됐다. 신재환은 2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결선에서 화려한 대관식을 치렀다. 결선에 오른 8명 중 여섯 번째로 나와 출발에서 착지까지 최고의 4초 예술을 선보였다. 자신이 꿈꿨던 것처럼 세계인의 뇌리에 ‘신재환의 4초’를 각인시켰다. 자신의 우상 양학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따낸 메달이라 기쁨이 더욱 컸다. 신재환은 1차 시기에서 난도 6.0점짜리 ‘요네쿠라’(도마 옆 짚고 공중에서 세 바퀴 반 비틀기)를 구사했다. 착지가 한 발 앞으로 나가며 14.733점을 받았다. 2차 시기에서는 난도 5.6점짜리 ‘여2’(도마 앞 짚고 공중에서 두 바퀴 반 비틀기)를 했다. 뒤로 한 발 물러났지만 비교적 깨끗이 착지해 14.833점을 받았다. 여홍철의 ‘여2’ 기술로 금메달을 확정한 것이다. 신재환은 ‘양학선 키즈’다. 도마는 운명이었다. 다른 종목도 해볼 생각도 있었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도마를 더 파자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런던올림픽에서 양학선이 ‘도마의 신’으로 등극하는 것을 보고 푹 빠져들었다. 양학선이 하는 것이면 운동 자세에서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법, 밥 먹는 모습까지 따라 하고 싶었다. 양학선과 똑같은 난도 6.0점, 5.6점짜리 기술을 펼칠 정도다. 평소 “대표팀에서 학선이 형과 함께 훈련하고 올림픽에 꼭 같이 나가고 싶다”고 말하던 신재환은 이번 도쿄올림픽을 통해 ‘성덕’(성공한 팬)이 됐다. 대한체조협회가 고질병이 된 오른쪽 허벅지 햄스트링 부상을 극복한 양학선을 추천 선수로 대표팀에 합류시켰기 때문이다. 양학선은 예선 9위에 그치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관중석에서 목청이 터져라 후배를 응원했다. ‘도마 스페셜리스트’ 신재환은 단체전 대표 4명에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부지런히 랭킹 포인트를 쌓아 도마 세계 1위(단체전 출전 12개국 선수 제외)를 차지하며 개인 자격으로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다. 지난달 24일 예선에서 도마 1, 2차 시기 평균 14.866점을 획득해 전체 1위로 결선에 올라 메달 전망을 부풀렸다. 신재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실감이 잘 안 나서 무덤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마하는 사람들은 손을 짚는 순간 아는데 안 됐다는 느낌에 무조건 서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며 “잘했다는 안도감을 빼고는 허무함이 느껴졌다”고 ‘금빛 착지’의 순간을 돌이켰다. 그러면서 “어제 동메달을 딴 (여)서정에게 기를 좀 불어넣어 달라고 부탁해 주먹을 부딪치며 기를 받았다”며 “학선이 형은 ‘너를 믿고 잘하라’고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줬다”고 덧붙였다. 특히 양학선에 대해 그는 “형은 선배이자 스승”이라며 “형 덕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형은 70%이던 한국 도마 수준을 95%로 끌어올렸고 그걸 따라가려다 보니 실력이 평균 이상으로 올라갔다”며 양학선에게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이제 ‘신재환 키즈’가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에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며 웃었다.
  • ‘양궁여제’ 안산 “심장 터질 듯 기뻐요”…눈물 쏟은 금메달 3관왕 (종합)

    ‘양궁여제’ 안산 “심장 터질 듯 기뻐요”…눈물 쏟은 금메달 3관왕 (종합)

    안산 “모두에 감사, 뿌듯…경험 많은 도움될듯”“‘속으로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혼잣말 했다”시종 무덤덤 강심장, 금메달 걸고 눈물불필요한 ‘숏컷 페미 논란’에 속앓이시종 침착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10점을 내리꽂았던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안산(20·광주여대)이 시상대에서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사상 첫 3관왕을 일궈내며 양궁여제 자리를 꿰찬 스무살 안산은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저 원래 되게 많이 울어요”“김제덕 파이팅 도움 많이 돼” 안산은 이날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 계속 훌쩍거리며 소감을 말했다. 속으론 많이 긴장했다는 안산은 “속으로 혼잣말을 계속하면서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되뇌었다고 한다. 안산은 “지도자 선생님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이번 시합 때 잘 할 수 있었다”면서 “모두에게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또 혼성 금메달을 합작한 남자 양궁 막내 김제덕(경북일고)의 관중석에서 보내준 우렁찬 ‘파이팅’ 소리에 대해 “목 아프겠다고 생각했다”며 모두의 응원 덕분에 힘을 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안산은 “김제덕 선수의 파이팅이 혼성전 때 도움이 많이 됐다. 단체전, 개인전에서도 관중석에서 지도자 선생님들과 함께 (김제덕이) 파이팅을 보내줬는데, 긴장이 풀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안산은 “저 원래 되게 많이 울어요”라며 10점을 내리꽂던 ‘강철 멘털’을 보여준 시합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안산은 “엄마가 해주는 애호박찌개를 정말 좋아하는데 빨리 먹고 싶다”고 웃었다. 안산은 기자회견에서 “첫 목표는 단체전 금메달이었지만, 영광스럽게 3개 가지고 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면서 “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은 이날 준결승전과 결승에서 두 번이나 슛오프 끝에 극적으로 이겼다.“슛오프 날릴 때 10점 확신 들어 기뻐”‘숏컷 페미 비난’ 논란엔 “답하지 않겠다” 안산은 결승전 슛오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4강 슛오프를 해 봐서 그때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고, 나 자신을 혼잣말로 다독이면서 슛오프를 준비했다”고 돌이켰다. 안산은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10점이라는 생각이 들 때를 굉장히 좋아한다”면서 “그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10점이라는 확신이 들어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안산은 이날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전에서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6-5(28-28 30-29 27-28 27-29 29-27 <10-8>)로 제압했다. 안산은 슛오프에서 10점을 쏘며 8점에 그친 오시포바를 눌렀다. 금메달 색깔을 가른 결정적 한 방이었다. 안산은 준결승에서도 매켄지 브라운(미국)에 슛오프로 피말리는 접전 끝에 탁월한 집중력으로 금빛 과녁을 정조준했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혼성전과 여자 단체전 금메달로 이미 2관왕에 오른 안산은 이날 개인전 우승을 통해 대회 전관왕이라는 위업도 달성했다. 양궁은 지난 올림픽까지 남녀 개인전, 단체전만 열렸지만, 이번부터 혼성단체전이 추가되면서 5개로 늘어 3관왕이 나올 수 있게 됐다. 한국 양궁 사상 처음이자, 올림픽 역사상 최초다. 한편, 안산은 일각에서 그가 페미니스트라며 비난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묻는 말에 “경기력 외에 관한 질문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했다.숏컷·여대 재학 중이란 이유만으로‘금 박탈’ 등 일부 네티즌 안산 공격외신 “안산에 온라인 학대” 비난 앞서 안산은 ‘숏컷’ 헤어스타일과 함께 그가 여대 재학 중이라는 점을 묶어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의혹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돼 외신들까지 “온라인상에서 혐오 공격을 받고 있다”며 도를 넘은 페미 공격을 보도했다. 안산이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하는 네티즌들 가운데 일부는 “금메달이나 연금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로이터통신은 29일(현지시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딴 한국 양궁 선수의 짧은 머리가 반페미니스트들을 자극했다”면서 “온라인 학대(abuse)”로 규정했다. 로이터는 “그 배경에 젊은 한국 남성들 사이의 반페미니즘 정서가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방송 역시 “안산이 온라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 서울 주재 특파원 로라 비커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공격은 자신들의 이상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공격하는 소수 인원의 목소리”라고 분석하며 “한국이 성 평등 문제와 씨름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뉴욕타임스(NYT) 서울지부 객원기자인 켈리 조도 트위터에 “안산이 짧은 헤어스타일 때문에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면서 “헤어스타일이 아직도 특정 그룹에선 논쟁거리일 정도로 반페미니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베가 떠오른다. 헤어스타일 하나로도 혐오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궁 혼성단체와 여자단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오른 안산은 인스타그램에서 ‘왜 머리를 (짧게) 자르나요’라는 질문에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답해 주목을 받았다. 로이터나 BBC 외에도 미국 폭스뉴스와 독일 유력일간지 슈피겔도 ‘한국의 반페미니스트들이 헤어스타일을 이유로 안산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스타그램을 즐겨쓰는 안산은 지난 28일 자기소개란에 “좋아하는 거 좋아하면서 살래”라는 메시지와 함께 “DM(다이렉트 메시지·인스타그램의 쪽지 기능) 못 볼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최근 논란과 관련해 수많은 DM이 쏟아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에 맞서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안산 선수를 보호해달라”, “악성 댓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을 처벌해 달라”는 등의 글이 이틀 동안 수천건 올라왔다. 이들은 양궁협회에 전화를 걸어 ‘안산이 사과하게 만들지 말라’고 촉구하는 운동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재명·이낙연 둘다 때리는 정세균…“단일화 없다”

    이재명·이낙연 둘다 때리는 정세균…“단일화 없다”

    이낙연 캠프 양기대 단일화 발언에 “좀 주제넘은 말씀”호남·열린우리당 출신 정세균, 이재명·이낙연 때리기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30일 당내 1·2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한 검증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전 대표와의 단일화와 관련해서는 “단일화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KBS 라디오에서 이 지사를 겨냥 “지역주의 발언과 관련해서 지역적 확장력이 무슨 뜻이냐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이 지역적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답변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를 두고는 “탄핵 논란에 대해서 왜 말을 바꿨냐. 원래 평생 죽을 때까지 무덤에 가져가겠다고 했는데 사실 최근에 탄핵에 반대했다고 이렇게 밝혔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이낙연 캠프의 양기대 의원이 이낙연·정세균 단일화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좀 주제넘은 말씀을 하신 것 같다”며 불쾌함을 표했다. 그러면서 “단일화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지난 27일 전북에서 “두 후보가 단일화를 결선 투표 즈음에 할지, 언제 할지 알 수 없다”며 “이낙연·정세균 대선 후보 간 단일화는 인위적으로 할 수 없고, 국민이나 지지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 출신이자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저항했던 정 전 총리는 앞으로도 지역주의와 탄핵 문제로 두 후보를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 전 총리는 지난 28일 본 경선 첫 토론회에서 이 지사를 겨냥해 “은연중에 호남 불가론을 얘기한 것으로 읽힌다. 납득이 안 된다”고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이 지사는 “인터뷰 맥락을 보면 지역을 얘기한 게 아니다”라며 “전문을 읽어보면 알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 전 대표를 향해서도 “(탄핵 관련) 태도를 바꾼 이유가 뭔지, 진실이 뭔지 밝히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가 “거듭 말하지만 탄핵에 반대했다”면서 “그 당시 민주당(새천년민주당) 내부의 고통을 잘 이해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정 전 총리는 “좀 모호한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 짐 싸는 美 vs 발 들인 中… 아프간 힘의 공백, 새 갈등의 서막인가

    짐 싸는 美 vs 발 들인 中… 아프간 힘의 공백, 새 갈등의 서막인가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지도는 조금이라도 이 지역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존재가 됐다. 프라이팬 손잡이처럼 동쪽으로 길고 가늘게 뻗어 있는 아프가니스탄 동부지역은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으로 불린다. 회랑의 북쪽으로는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 고원이, 남쪽에는 힌두쿠시 산맥이 자리잡고 있다. 황량해 보이는 이곳은 오랫동안 중국과 서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중 하나였고, 고선지 장군과 마르코폴로 등 역사적 인물들이 이용한 통로였다. 묘한 모습의 와칸 회랑은 19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100년 동안 러시아와 영국이 중앙아시아를 놓고 대결을 벌인 ‘그레이트 게임’의 결과물이다. 양국은 1873년 아프가니스탄을 중립지대로 하고 그 남쪽을 영국이, 북쪽을 러시아가 다스리는 것으로 합의했다. 양국의 세력이 국경을 접하는 와칸 계곡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려고 서로 물러서고 이곳을 중립지대인 아프가니스탄에 속하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와칸 회랑은 지도상에 등장하게 됐다. 해발 5000m에 위치한 와칸 회랑은 이곳을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을 이동하면 순식간에 3.5시간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폭의 시차가 발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완충지대가 되면서 잊혀진 존재가 됐던 와칸 회랑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과정에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고 2021년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두 번째 그레이트 게임의 배경이 되고 있다. ●英·소련 이어 美… ‘제국의 무덤’ 된 아프간 2001년 9·11 테러사건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철수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021년 8월 31일까지 철수하는 것을 목표로 병력과 장비를 이동시키고 있는 미국은 19세기 영국, 20세기 소련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후퇴하는 또 하나의 세력이 됐다. 20년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철수는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95% 이상의 인력과 장비가 이미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알카에다의 위협을 근절하고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 그룹에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했던 미국의 목표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엄청난 전비 지출에도 결국 달성될 수 없었다.미군 철수가 본격화되던 지난 5월부터 탈레반 반군은 정부군을 상대로 전면적 공세를 지속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많은 행정구역이 탈레반 관할로 넘어갔으며, 이에 따라 카불 등 대도시에서는 20년 만의 탈레반 복귀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군의 이탈과 도주 등으로, 과거 미군 철수 이후 남베트남이 붕괴했던 것과 같은 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언론을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의 진격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방어선 축소의 결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파키스탄 정부군은 수도인 카불과 몇 개의 대도시,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중심으로 전선을 축소시켜 방어선을 강화하고, 이를 공격하는 탈레반의 인명손실을 증가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정부군의 의외로 강한 반격, 그리고 탈레반에 반대하는 민병대의 등장으로 탈레반의 공세는 곳곳에서 둔화됐으며, 두 달 사이 6000명 이상의 탈레반이 사망해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초 예상과 달리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일방적 붕괴와 탈레반의 조기 권력 장악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군의 철수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거대한 힘의 공백지대를 만든다. 이 공간을 누가, 어떻게 차지하느냐에 따라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의 질서는 1990년대 초반 구소련의 붕괴 이후 다시 큰 변화를 맞이할 상황이다.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 철수 이후 중국이 이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유력하게 대두된다. 중국은 와칸 회랑을 통해 70㎞ 정도를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으로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선택적으로 개입하기 유리한 지리적 위치에 있다. 중국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최대 3조 달러로 추산되는 리튬, 철, 구리, 코발트와 같은 아프가니스탄의 천연자원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으며, 아프가니스탄과 두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다.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는 와칸 회랑이 중국에서 주요한 전략적 요충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내륙국인 아프가니스탄의 특성상 전쟁물자 보급에 어려움을 겪던 미국과 영국은 파키스탄을 경유하는 기존 경로를 대체하면서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보급로로 활용하기 위해 와칸 회랑과 연결되는 지역을 개방해 줄 것을 중국 측에 다양한 경로로 요청했다. 최종적으로는 거부했지만, 당시 중국 내부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고 엉뚱해 보이는 이러한 요구는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2009년부터 국경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국경 10㎞ 근처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새롭게 건설하고 이동통신 중계시설도 설치해 원활한 국경 경비와 통신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 여기에 더해 2013년부터 시작된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아프가니스탄과 와칸 회랑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과 관련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필요성을 절감한 중국은 와칸 회랑을 통과해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결속을 강화함과 동시에 최종적으로는 이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도로망을 기존의 카라코람 고속도로와 연결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전략적 위치를 감안할 때 이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는 북쪽 중앙아시아와의 교역을 늘리는 동시에 남쪽으로는 파키스탄 서부의 과다르 항구와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혹독한 지형과 기후조건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도로는 중국 측에서 보면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략적 사업인 것이다. 와칸 회랑과 아프칸에서의 도로 건설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사이의 더 짧은 파이프라인 경로를 위한 길을 열어 중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앙아시아 경제를 중국에 더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중재자’ 자처한 中, 아프간 정정 안정 우선시 하지만 이러한 구상의 실현 조건은 아프가니스탄 정정의 안정이다. 중국은 탈레반을 적으로 하지 않는 외교적 접근을 꾸준히 시행해 왔으며, 탈레반 역시 중국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고 우호적 관계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2021년 7월 탈레반이 현재 중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와칸 회랑 동쪽의 바다흐샨 지역을 장악하면서 중국과 탈레반 사이의 갈등은 최소한 단기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탈레반의 아프간 지배 이후 중국은 이슬람 무장 세력의 침투 등을 우려해 왔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무장집단인 투르키스탄 이슬람당(TIP)이 아프가니스탄 내부에 존재하며, 최근 이들이 중국 신장 자치구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중국으로 이슬람 전사들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의 안보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2016년부터 와칸 회랑과 인접한 국가인 타지키스탄에 군 기지를 설치하고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 지대 경비를 강화해 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은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외에 파키스탄까지 포함하는 4각 테러대응 조정기구를 만들면서 테러 대응을 명분으로 이 지역의 안보적 위협에 대한 대응태세를 높이고 있다.중국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안보적 위협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관계 역시 강화되고 있다. 2019년 6월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새로운 시대 조정의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협력의 수준을 격상시키고 지구적 안보 이슈에 대한 상호 지원과 긴밀한 조율을 다짐한 것의 배경에는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경제적 입지 강화를 일정 부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가장 긴장하고 있는 국가는 인도다. 중국과 국경분쟁을 치르고 있는 인도로서는 도로를 비롯한 중국의 인프라 확충이 경제적 이유를 넘어선 병력의 빠른 이동과 배치를 위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도로망의 확충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상호의존성을 강화시키면서 인도를 북쪽에서 포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의 철수로 발생하는 힘의 공백과 이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할 능력을 가진 국가는 중국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이를 조용히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의 힘을 공백을 중국이 효과적으로 메운다면 중국은 이란으로부터 러시아 극동지역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에 대한 장악력을 높일 수 있으며, 미국의 압박에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충돌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고 있으며,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직접적인 단독 개입보다는 주변국과의 협력과 지원을 통한 간접적인 영향력 확대와 안정화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의도가 계획대로 관철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병력 재배치를 통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고자 인도, 일본 등과 함께 중국에 대항하는 체계를 전략적으로 정비하고 있는 미국은 전술적으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병력을 보다 기동성 있는 체계로 변화시킴으로써 중국을 압박하려 하고 있다. 병력 재배치와 더불어 해병대의 역할 재정립, 그리고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탄도미사일 배치도 진행하고 있다. 남중국해 및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대립은 본격화될 것이 확실하다.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는 중앙아시아에서의 사건의 마무리가 아닌 아시아 전역에서의 변화와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내는 시작점인 셈이다. ●미중의 또 다른 대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무대로 하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100년 가까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던 영국과 러시아는 불과 몇십 년 후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힘을 합치면서 독일에 대항했던 것이다. 국제질서를 양자택일의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지속되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층위와 단계들이 존재하고 있다. 국력에 걸맞은 넓은 시야와 장기적인 관점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며, 대립 속에서 우리의 역할과 전략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냉정하고 과감한 실행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남원 가야계 무덤서 화살촉·깃발꽂이·칼집 장신구 출토

    남원 가야계 무덤서 화살촉·깃발꽂이·칼집 장신구 출토

    전북 남원 대가야계 무덤떼인 사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의 대형 고분에서 도굴 이후 남은 무기류와 토기가 일부 발견됐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30호분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화살촉 다발, 깃발꽂이, 칼집 끝 장신구를 수습했다고 28일 밝혔다. 연구소가 지난해 9월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조사를 시작하며 첫 대상으로 정한 30호분은 금동신발과 동경(구리거울) 등 중요한 유물이 나온 32호분과 가깝고, 잔존 길이가 23∼24m인 큰 무덤이다. 조성 시기는 5세기 말∼6세기 초로 추정된다. 고분 내부는 시신을 두는 매장주체부와 부장품을 넣은 별도 공간인 부장곽(副葬槨)으로 구성됐다. 봉분 외곽에서는 고려시대 석곽묘(돌덧널무덤) 한 기가 추가로 확인됐다. 매장주체부는 덮개돌과 벽을 이루는 돌이 무너지고, 길이가 짧은 벽 쪽을 통해 이미 도굴이 심하게 이뤄진 상태였다. 하지만 도굴하기 위해 뚫은 구멍인 도굴갱을 메운 흙에서 쇠화살촉 다발과 토기 조각이 일부 출토됐다. 또 매장주체부 바닥에서는 철봉을 구불구불하게 구부려 만든 깃발꽂이와 5∼6세기 신라·가야 고분에서 많이 나오는 칼집 끝 장신구 ‘초미금구’가 발견됐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깃발꽂이는 완전한 형태가 아닌 길이 30㎝ 정도로 나무에 금박을 한 초미금구도 부서져 있었다”며 “피장자는 유력자이자 무사 계급에 속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도굴 피해를 보지 않은 부장곽에서는 대가야 양식 기대(그릇받침)와 항아리 약 30점이 나왔다. 서해와 남해에서 잡히는 우럭조개와 피뿔고둥이 항아리 안에 존재해 눈길을 끌었다. 조개류는 경주 신라 고분인 금령총과 서봉총 등에서도 나왔으나, 지리산 북쪽에 있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당시 해양세력과 남원 사이에 교역망이 갖춰져 있었을 수 있고, 높은 사람이 죽자 조문하면서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무덤 축조 기법도 파악했다. 마치 화산처럼 매장주체부를 중심에 두고 주변을 볼록하게 흙으로 쌓았다. 봉분 내부는 작은 흙덩어리를 교차하며 봉토를 다져 올렸다.이 기법은 경북 경산·고령, 경남 함안 등지의 가야 고분에서 나타난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영남 지역의 가야 고분군 6곳과 함께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