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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굽이굽이… 너만의 이야기가 돋았다

    굽이굽이… 너만의 이야기가 돋았다

    경남 창녕에 아름다운 옛길이 있다. 꽃가람을 따라 걷는 ‘남지개비리길’이다. 명색이 국가 문화재(명승)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길에 깃든 옛이야기를 곱씹으며 걷는 맛이 제법 웅숭깊다. 봄의 낙동강은 예쁘다. 남지개비리길 입구까지 5㎞ 남짓, 10리가 넘는 강변이 죄다 벚꽃이다. 둑방길 아래 둔치에선 노란 유채꽃이 화사하게 제 자태를 드러내는 중이다. 꽃이 있는 강을 두고 선조들은 ‘꽃가람’이라 표현했다지. 이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장면이다.●산 절벽 강가 벼랑에 난 ‘꽃가람’길 남지개비리길은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의 마분산(馬墳山·180m) 바위 절벽에 난 벼랑길을 일컫는다. 용산리 용산마을에서 신전리 영아지마을까지 편도 약 3㎞ 거리다. 원점 회귀하지 않고 마분산 등산로로 우회해 돌아올 경우 왕복 6.4㎞ 정도 된다. 이름은 ‘강가(개) 벼랑(비리)에 난 길’이라는 뜻이다. 현지 사투리를 그대로 썼다. ‘개가 다닌 벼랑’이라는 견해도 있다. 모성 가득한 어미 개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오가던 벼랑이라는 내용인데, 개연성은 다소 떨어져 보인다. 오래전엔 소금과 젓갈을 등에 진 등짐장수가 이 길을 오갔고, 주민들이 장을 보러 갈 때나 남지읍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등굣길로 쓰기도 했다. 대동여지도 등 조선시대 고지도와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옛길 경로가 기록됐을 만큼 유서가 깊다. 지난해 말 명승으로 공식 지정됐다. ●임진왜란 승전지·6·25 최후의 전선 들머리인 남지수변 억새전망대 앞은 남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이 구간만 따로 ‘강이 갈라진다’는 뜻의 기음강(岐音江) 혹은 기강(岐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음강은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병들이 왜선을 격파하며 첫 승을 거뒀던 곳이다. 6·25전쟁 때는 국군이 낙동강 최후 저지선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들머리에서 용산양수장까지 1㎞ 정도는 평탄한 길이다. 낙동강을 눈높이에서 보며 걸을 수 있다. 길 양옆으로 수양벚꽃이 늘어서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그만이다. 다만 이 구간에 사유지가 몇 곳 있어 차량이 오가는 것이 흠이다. 실질적인 개비리길은 용산양수장을 지나 곽재우 장군의 고사가 전하는 ‘홍의장군 붉은 돌 신발’ 어름에서 시작된다. ●곽재우 애마의 이야기 깃든 마분산 개비리길은 산과 강을 거스르지 않고 난 길이다. 강물이 산을 안으면 같이 돌고, 휘어지면 같이 물러나 걷는다. 강 너머 마루금을 좁힌 산들과 너른 낙동강의 품도 시원하다. 벼랑 위의 마분산은 ‘말 무덤’을 뜻한다. 곽재우 장군이 자신의 애마에 벌통을 달아 적진에 뛰어들게 한 뒤 왜적이 놀라 허둥댈 때 기습해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 와중에 말이 죽고 말았다. 의병의 시신과 말을 수습해 산 정상에 묻은 이후 마분산으로 불리게 됐다. 마분산에는 줄기가 여럿인 소나무가 많다. 이를 마분송이라고 부른다. 곽재우 장군은 마분송에 옷을 입혀 의병 수를 많아 보이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길 곳곳에 옛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벼슬아치의 탕건에 장식된 ‘옥관자 바위’, ‘벼슬길에 오른 층층나무’,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여양진씨 감나무 시집보내기’, ‘영험한 팽나무 연리목’ 등 하나하나 읽으며 걷는 맛이 일품이다. 이 길이 문화재 반열에 오르는 데엔 이런 풍성한 역사 자료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풍성한 역사 이야기로 명승 반열 남지개비리길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진입로 주변의 강변길 전체가 벚꽃이다. 제방 아래 둔치에는 남지유채꽃 단지가 조성됐다. 무려 110만㎡(약 34만평)가 노란 유채꽃이다. 한반도 튤립정원, 태극기 정원 등 다양한 포토존도 갖췄다. 코로나19 탓에 올해도 유채꽃 축제는 취소됐지만 꽃밭 진입을 막지는 않는다. 낙동강을 가로질러 놓인 남지철교는 등록문화재다. 1933년 완공된 근대식 교량으로 형태가 매우 유려하다. 6·25전쟁 때 중앙 부분 25m가 폭파됐다가 1953년 복구된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현재는 도보와 자전거로만 오갈 수 있다. 다리를 넘으면 함안 땅이다.●고분부터 석탑까지 ‘작은 경주’ 창녕 창녕읍내엔 ‘작은 경주’라 불릴 만큼 역사 유적이 많다. 벚꽃이 만개한 요즘 가 볼 만한 곳은 만옥정공원이다. 신라 진흥왕 때 세운 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가 늙은 벚꽃들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 있다. 창녕객사, 퇴천삼층석탑 등도 볼거리다. 공원 아래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석탑으로 국보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필수 방문 코스다. 5~7세기에 걸쳐 형성된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군으로 알려졌다. 봉긋한 무덤의 유려한 선을 타고 흐르는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고분군 맞은편은 창녕박물관이다. 송현동 15호 고분에서 나온 뼈를 토대로 복원한 소녀 ‘송현이’ 등이 전시돼 있다. 1500여년 전 열여섯 나이로 순장됐다가 첨단과학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가야 소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 [STOP PUTIN] 1940년 러시아 카틴숲, 82년 뒤 우크라이나 부차

    [STOP PUTIN] 1940년 러시아 카틴숲, 82년 뒤 우크라이나 부차

    영화가 시작하면 1939년 9월 17일 안개가 걷힌 폴란드의 어느 다리 위다. 나치 독일의 침공에 밀려 동쪽으로 피란 가는 이들의 눈에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이 들어온다. 세상에나, 전쟁이 터졌는데 이쪽으로 달려오다니, 저 사람들 정신나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쪽에서 소련군이 침공해 피란 오는 이들이었다. 그 해 8월 23일 나치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약)을 맺었다. 이를 빌미로 두 나라는 중간에 낀 폴란드를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다. 나치는 커즌 선(線) 서쪽의 폴란드 땅을, 소련은 같은 선 동쪽의 폴란드 땅에 쳐들어갔다. 해서 앞의 다리 위에서와 같은 비극이 연출됐다. 폴란드 군은 소련의 공세에 압도돼 일찌감치 항복해 버렸다. 수천명의 장교가 포로 신세를 자처했다. 개죽음을 면해 훗날을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련의 코젤스크·스타로벨스크·오스타슈코프 수용소에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장교들을 비롯해 경찰, 지식인, 엘리트 등 2만명을 훨씬 넘겼다. 그런데 나치가 1941년 6월 소련까지 침공했다. 폴란드 포로들의 행방이 묘연했다. 영국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가 육군을 재조직하느라 수소문했더니 중국 만주로 달아났다거나 중동으로 이송됐다는 등 소련의 해명이 엇갈렸다. 재조직된 육군의 소집에 응한 것은 448명뿐이었다. 소련에서 1942년 새로 창설된 폴란드 육군이 중동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포로들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소련과 독일이 국경 획정을 놓고 입씨름을 한창 벌이던 1943년 4월 13일, 독일이 스몰렌스크 근교 카틴숲에서 커다란 무덤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시신들이 1940년 4월 이전 코젤스크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폴란드 장교들이라며 소련군이 그 다음달 포로들을 처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틀 뒤 소련 정부는 폴란드 포로들이 1941년 스몰렌스크 서쪽 건설공사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독일이 그해 7월 이 지역을 점령한 뒤 포로들을 사살한 것이라고 맞섰다. 카틴에서만 4400명의 시신이 나왔는데 민스크에서 3870명, 하리코우에서 3800명, 메드노예에서 6300명이 묻혀 있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인) 키이우와 헤르손에서도 학살극이 있었다. 1943년 4월 25일 소련 정부는 폴란드 망명정부와 단교했다. 폴란드가 조사해보니 소련 보안당국이 이들을 살려두면 폴란드 군이 재건돼 방해가 될 뿐이라는 독일 관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940년 봄에 집단 처형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독일을 패망시키기 위해 소련의 협력이 긴요했던 영국과 미국 정부는 못 들은 척했다. 폴란드인들의 진상 규명 요구가 독일을 위협하는 연합전선의 대오를 흐트러뜨린다며 소련의 요구를 받아들여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폴란드와의 국경을 커즌 선으로 합의했다.폴란드의 명감독 안제이 바이다의 2007년 작품 ‘카틴’을 보면 실제 감독의 부친이 포로로 억류된 이후의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폴란드 장교로 묘사돼 있다. 그의 모친은 다리 위에서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안나란 여성으로 그려진다. 수용소에서 카틴 숲으로 이송되는 버스로 향하던 장교들이 귀향하게 됐다며 좋아하다가 시체들로 가득한 구덩이를 보고 절망해 성호를 긋는 장면, 아무런 표정 없이 그들의 뒤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소련군 병사의 표정이 사뭇 충격적이다. 폴란드 장교들의 참담한 운명도 운명이지만, 거의 2만 2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이 독일 패망을 앞당길 수 있다며 미국과 영국이 카틴숲 학살의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련의 주장대로 국경을 획정한 사실이 그야말로 어이없기만 하다. 소련이 진실을 고백하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1990년 고르바초프가 소련군이 이오시프 스탈린의 명령을 받고 저지른 집단살육이었을 뒤늦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영화에 많은 후원을 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학살 70주기인 2010년 스몰렌스크의 추모비를 참배하려다 항공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것도 안타까움을 더한다.그런데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정부의 탈나치화를 목표로 침공(자신들 주장으로는 특별군사작전)한 러시아군이 지난달 30일 퇴각한 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 모티진 등에서 두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머리 뒤쪽에 총알 자국이 박힌 민간인 시신들이 “개들이 (흙을 파내)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묻는 시늉만 한 채로 묻힌 사진이 여러 장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처형하듯 총격을 가한 것은 80여년 전 카틴 숲에서의 모습과 똑닮았다. 한 청년은 코와 눈이 모래 밖으로 훤히 나와 있을 정도로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도 차리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당국과 군이 조작, 연출한 것이라고 오리발부터 내미는 것도 80여년 전 소련 당국의 해명과 똑닮았다. 우리처럼 단일민족에 분단의 아픔을 겪은 폴란드, 망명정부가 얼마나 허망한지는 어느 시인의 시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원자력발전소는 있지만 핵무기와 핵물질 농축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당하고 있는 고통도 못지 않다. 힘없는 민족에게 닥친 불행은 되풀이된다, 이것이 교훈이라면 역사는 너무 잔인하다.
  • [애니멀S] 개 도살장에서 강아지를 만나다..2살 안톤 이야기

    [애니멀S] 개 도살장에서 강아지를 만나다..2살 안톤 이야기

    2021년 8월 8일, 동물권행동 카라는 여주시 왕대리에 위치한 도살장을 급습했습니다. 도살장 내부는 처참했습니다. 개 한 마리도 좁을 사각 철망 안에 개가 몇 마리씩 구겨진 채 갇혀 있었고, 도살자는 그 상태로 물을 뿌려 전기 쇠꼬챙이로 찔러 감전사시키기 직전인 상황이었습니다. 또 도살장 곳곳에는 죽음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도살자의 손을 거쳐 죽은 개의 털과 도살 후 남겨진 목줄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도살장 뒤편에 숨겨진 냉동실은 개의 머리와 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도살장에서 만나는 대다수의 개는 오랜 기간 사람에 의한 고통과 상처로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왕대리 도살장에서 유독 사람을 보고 꼬리를 치며 반기던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톤은 잉글리시 포인터입니다. 포인터는 수렵견으로, 사냥감을 찾아 그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해 온 견종입니다. 구조 당시 약 2살로 추정되는 안톤도 사냥을 목적으로 분양을 받았으나 수렵에 적합하지 않아 유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곳저곳 끌려다니다 결국 도살장에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카라의 구조가 없었다면 전기도살로 잔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반려동물의 무덤, 개 식용 문화에서  안톤은 구조 후 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를 해보니 심장사상충이 진단되었습니다. 유기동물이나 개농장 개들 등 워낙 많은 개들이 심장사상충을 앓고 있어 자칫 쉬운 질병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치료를 않는다면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사상충 전처지 중에서도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전에 약만 잘 먹었다면 쉽게 피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한데, 안톤은 언제부터 방치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안톤은 구조 이후 카라 더봄센터로 입소했고 이후 사상충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왕성한 활동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줄산책만 해야 했는데, 그는 매너 있게 사람과 발맞춰 산책을 했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았던 티가 자연스럽게 납니다. 안톤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누구의 가족이 되었다가 그렇게 끔찍한 도살장에까지 갔을까요. 분양을 받을 땐 멋진 수렵견이었다가 어느 날 부터는 그냥 애물단지처럼 버려졌던 걸까요?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수는 1,500만 명에 달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개는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하나의 물건처럼 손쉽게 거래됩니다. 그 필요가 다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워지면 쉽게 버려집니다. 그나마 보호소로 가면 이력이 투명하게 관리됩니다. 안톤과 같은 대형견들은 도시에서 지내다가도 ‘밭 지키는 개’ 혹은 ‘집 지키는 개’로 시골로 종종 보내지고, 그 곳에서도 돌고 돌다가 개농장으로 팔려가곤 합니다. 동물이 학대를 당하는지, 방치를 당하는지, 죽임을 당하는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동물등록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안톤의 경우에만 해도 내장인식칩이 부재해 그의 보호자가 누군지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도살장은 반려견들의 무덤입니다. 안톤 또한 카라의 활동가들이 조금만 늦었다면 소중한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비단 안톤 뿐일까요? 사람들이 흔히 ‘식용개’라 생각하는 도사견이나 도사믹스들 말고도 시베리안 허스키, 장모 웰시코기 등 다양한 품종의 개들이 도살장에서 발견됩니다. 보호자들은 제 손에 피만 묻히지 않았을 뿐, 의도와는 무관하게 반려견이었던 이들을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우리네 반려동물 문화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안톤, 너의 꽃길을 바라며  구조 이후 안톤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해가는 중입니다. 이제 그는 견사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활동가들이 온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힘껏 꼬리치며 활동가들을 반겨주고, 식사 시간이 되면 깨끗하고 영양가 있는 사료를 먹습니다. 중앙정원이나 놀이터에 나가면 친구 개들을 만나 마음껏 뛰어놀 수 있습니다. 사실 개들과 뛰어노는 것보다는 활동가들 품을 파고드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병원에서의 치료도 씩씩하게 받는 중입니다. 이제 안톤에게 남은 건 좋은 가족을 찾는 일입니다. 안톤은 멋지고 사랑스러운 개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그가 반드시 좋은 가족을 만나, 두 번 다시 버림받지 않고 평생을 반려견으로서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안톤’들을 생각합니다. 물건처럼 거래되고, 버려지고, 죽어가는 개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합니다. 이미 불법인 개 경매장과 도살장을 폐쇄하고, 개 식용을 위시한 불법들을 단속한다면, 또 동물 매매를 강력히 규제한다면, 안톤과 같이 ‘처리’되는 동물들은 줄어들 것입니다.  더 이상 안톤과 같이 위기에 처하는 개가 나와서는 안됩니다. 생명의 상품화로 학대와 착취당하는 동물, 그리고 사람에 의해 죽어가는 개가 없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길 희망합니다.
  • [나우뉴스] ‘돈 없으면 죽지도 못해’...아파트보다 비싼 中묘지 가격

    [나우뉴스] ‘돈 없으면 죽지도 못해’...아파트보다 비싼 中묘지 가격

    중국의 치솟는 묘지 가격에 돈이 없으면 죽지도 못할 판이라는 불만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양상이다. 매년 청명절(3~5일) 이 시기 중국인들은 조상들의 묘를 찾아 묘지 주변을 정돈하고 참배하는데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청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운영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청명절 시기가 되면 중국 현지 매체를 통해 뜨거운 이슈가 되는 소식이 있다. 바로 집값보다 더 비싼 현지 묘지 가격 실태를 다룬 내용들이다. 4일 중국 시나 파이낸스 등 다수의 매체들에 따르면, 청명절 연휴(3~5일)을 맞은 중국에서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대도시의 묘지 가격이 급등해 이미 집값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해 논란이 된 중국의 묘지 가격은 지난해 대비 큰 폭으로 오른 단위당 최고 100만 위안(억 1억 9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도시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묘지 단위당 묘지 가격이 현지 주택 매매가격을 넘어서면서 현지 주민들 사이에는 하늘을 찌르는 묘지 가격이 폭리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날 시나 파이낸스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 푸동 외곽에 소재한 푸서우위안의 묘지 1평방미터당 가격은 무려 25만 8천 위안(약 5천만 원)에 달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의 대표적인 장례회사 푸서우위안이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해당 묘지 매매가격은 지난 2018년 해당 업체가 판매했던 1평방미터당 평균 묘지 가격 11만 위안(약 2천 100만 원)과 비교해 단 4년 사이에 2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이마저도 1평방미터당 묘지 토지 구입 비용 외에 묘지 시설 구축 및 관리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시세보다 2배 이상 비싼 1평방미터당 50만 위안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이 매체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묘지를 구입하겠다는 이들의 수가 끊이지 않는 탓에 지난해 기준 푸서우위안의 매출은 전년도 대비 무려 22.9% 증가한 23억 2600만 위안(약 439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기준년도 대비 무려 7억 2천만 위안 이상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장례 회사인 푸청(福成) 그룹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 수익은 7610만 위안을 초과 달성한 상태다. 이는 기준년도 동기 대비 당기 순이익이 무려 312% 증가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묘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외지 호적자에 대한 묘지 구매 제한 등 제한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외지 호적자의 묘지 구입을 제한하고 이 지역 주민들만 묘지 매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 지역 민정국은 민정부가 승인하고 허가한 묘지의 경우 이 지역 가구 등록거주자만 매매할 수 있으며, 실제로 묘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망 진단서와 화장 증명서, 무덤 이전 증명서 등 관할 정부가 발부하는 공식 서류를 지참토록 요건을 강화했다. 또, 상하이와 인접한 자싱 핑후시에서도 묘지 토지에 대한 상업적인 판매 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이 지역에 등록된 호적자에 한해서만 매매가 가능하도록 규제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중국 민정부는 매년 반복되는 묘지 가격 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망자 전원을 화장하도록 하는 권고 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중국 민정부는 중국 전국의 화장률을 100%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권고 사항을 공개하고 화장한 유골 중 40% 이상은 분말로 만들어 강과 바다에 뿌리도록 정책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 각 지방의 현 단위에는 최소 1개 이상의 장례식장과 장례서비스 지점을 개설해 화장을 적극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이 공개된 지 3년째인 올해에도 중국의 묘지 가격 고공행진은 여전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일각에서는 묘지 전용 토지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일괄적인 관리 감독 방침이 오히려 시장 의 수요 공급 문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푸단대학 부동산연구중심센터의 인보청 센터장은 “당국이 토지를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관련 기업들이 묘지 전용 토지를 쉽게 확보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묘지 가격 상승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조작하면서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의 묘지 토지는 일반적으로 1제곱미터 이하로 규정돼 있는데, 장례 규정에 따라 최장 2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돈 없으면 죽지도 못해’...아파트보다 비싼 中묘지 가격

    ‘돈 없으면 죽지도 못해’...아파트보다 비싼 中묘지 가격

    중국의 치솟는 묘지 가격에 돈이 없으면 죽지도 못할 판이라는 불만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양상이다. 매년 청명절(3~5일) 이 시기 중국인들은 조상들의 묘를 찾아 묘지 주변을 정돈하고 참배하는데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청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운영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청명절 시기가 되면 중국 현지 매체를 통해 뜨거운 이슈가 되는 소식이 있다. 바로 집값보다 더 비싼 현지 묘지 가격 실태를 다룬 내용들이다.  4일 중국 시나 파이낸스 등 다수의 매체들에 따르면, 청명절 연휴(3~5일)을 맞은 중국에서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대도시의 묘지 가격이 급등해 이미 집값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해 논란이 된 중국의 묘지 가격은 지난해 대비 큰 폭으로 오른 단위당 최고 100만 위안(억 1억 9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도시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묘지 단위당 묘지 가격이 현지 주택 매매가격을 넘어서면서 현지 주민들 사이에는 하늘을 찌르는 묘지 가격이 폭리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날 시나 파이낸스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 푸동 외곽에 소재한 푸서우위안의 묘지 1평방미터당 가격은 무려 25만 8천 위안(약 5천만 원)에 달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의 대표적인 장례회사 푸서우위안이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해당 묘지 매매가격은 지난 2018년 해당 업체가 판매했던 1평방미터당 평균 묘지 가격 11만 위안(약 2천 100만 원)과 비교해 단 4년 사이에 2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이마저도 1평방미터당 묘지 토지 구입 비용 외에 묘지 시설 구축 및 관리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시세보다 2배 이상 비싼 1평방미터당 50만 위안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이 매체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묘지를 구입하겠다는 이들의 수가 끊이지 않는 탓에 지난해 기준 푸서우위안의 매출은 전년도 대비 무려 22.9% 증가한 23억 2600만 위안(약 439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기준년도 대비 무려 7억 2천만 위안 이상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장례 회사인 푸청(福成) 그룹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 수익은 7610만 위안을 초과 달성한 상태다. 이는 기준년도 동기 대비 당기 순이익이 무려 312% 증가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묘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외지 호적자에 대한 묘지 구매 제한 등 제한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외지 호적자의 묘지 구입을 제한하고 이 지역 주민들만 묘지 매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 지역 민정국은 민정부가 승인하고 허가한 묘지의 경우 이 지역 가구 등록거주자만 매매할 수 있으며, 실제로 묘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망 진단서와 화장 증명서, 무덤 이전 증명서 등 관할 정부가 발부하는 공식 서류를 지참토록 요건을 강화했다.  또, 상하이와 인접한 자싱 핑후시에서도 묘지 토지에 대한 상업적인 판매 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이 지역에 등록된 호적자에 한해서만 매매가 가능하도록 규제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중국 민정부는 매년 반복되는 묘지 가격 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망자 전원을 화장하도록 하는 권고 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중국 민정부는 중국 전국의 화장률을 100%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권고 사항을 공개하고 화장한 유골 중 40% 이상은 분말로 만들어 강과 바다에 뿌리도록 정책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 각 지방의 현 단위에는 최소 1개 이상의 장례식장과 장례서비스 지점을 개설해 화장을 적극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이 공개된 지 3년째인 올해에도 중국의 묘지 가격 고공행진은 여전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일각에서는 묘지 전용 토지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일괄적인 관리 감독 방침이 오히려 시장 의 수요 공급 문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푸단대학 부동산연구중심센터의 인보청 센터장은 “당국이 토지를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관련 기업들이 묘지 전용 토지를 쉽게 확보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묘지 가격 상승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조작하면서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의 묘지 토지는 일반적으로 1제곱미터 이하로 규정돼 있는데, 장례 규정에 따라 최장 2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 [서울광장] 한국은행은 변화가 필요하다/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국은행은 변화가 필요하다/전경하 논설위원

    필자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신청자에게 보내 주는 이메일을 받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2020년 4월 9일의 ‘급여보호프로그램’(PPP) 대출 안내였다. 연준은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목표를 갖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고용안정에 힘이 실렸지만 ‘급여보호’라는 용어는 파격적으로 생각됐다. PPP는 은행 등이 중소기업청 보증을 받아 소기업에 대출하면 일정 기간 급여, 임대료, 공과금 지출 등에 대해 상환 의무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연준은 12개 지역 연준을 통해 금융사에 대출을 직접 지원했다. 미국의 코로나19 첫 사망자는 2020년 2월 6일 발생했는데 그해 3~4월 연준은 긴급대출제도 9개를 도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썼던 대책과 같거나 비슷한 것이 4개, 새로 도입된 대책이 5개였다. PPP는 새 정책이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후 새 대책을 2개 내놨다. 은행은 물론 증권·보험사가 갖고 있는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대출하는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와 회사채, 기업어음(CP)을 사들이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 설립이다. 금융안정특별대출은 코로나19 첫 사망자(2월 19일) 발생 이후 두 달 만에 이뤄졌으나 기업유동성지원기구는 그 해 7월에 세워졌다. 5개월간 한은의 회사채 매입이 한은법상 가능한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산업은행이 자회사를 세우고 여기에 한은과 산은이 대출하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주도적으로 나서기보다 발빠른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에 떠밀리는 모양새였다. 그즈음 한은은 중장기발전전략(BOK 2030)을 세우고 컨설팅회사(맥킨지)에 조직 자문을 맡겼다. 2020년 하반기에 이뤄진 임직원 설문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임직원 절반에게 물었는데 조직 건강도가 100점 만점에 38점으로 낙제점 수준이었다. ‘한은사’(韓銀寺),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 조직’, ‘수재의 무덤’ 등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한은은 금융공기업 중 제일 선호되는 직장이다. 영업에 내몰리지 않고 신입 초봉이 4898만원(2020년 기준), 직원 평균 연봉은 1억원이다. 임직원은 2430명으로 금융감독원(2184명)은 물론 기획재정부(1319명)보다 많다. 한은은 현장보다는 보고서 작성 등에 공을 들인다. 보고서 내용은 뛰어나지만 공개되는 보고서는 한정돼 있고 결론은 예측 가능하거나 평범하다. 통화신용정책이 독립성을 갖고 이뤄져야 한다지만 현장과의 소통이 적으니 한은이란 이름의 절(寺)이 맞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는 지난 1일 “정부와 대화를 안 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아니다”라고 했다. “금융위원회, 금감원과 다 같이 가계부채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떻게 정책을 펼지 중장기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은이 이렇게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적인 경우가 있었던가 싶다. 중앙은행이 은행만 염두에 두고 일하던 시기는 오래전에 끝났다. 금리를 조정하면 은행은 물론 증권·보험 등 비은행권, 자산시장 등이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경제 상황은 계속 새로운 변수에 노출된다. 낯선 상황은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장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신임 총재와 함께 한은이 변할 수 있는 좋은 시기를 맞았다. ‘돌다리’를 놓는 조직이 돼야 한다. 그럴 수 있지 않은가. 관행처럼 해 왔던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라. 총재는 은행장,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금융지주사 회장 등도 만나야 한다. 임직원 모두가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통화정책 안내) 발전 방안, 유동성 지원 방안 등에 대해 치열하게 자문자답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다른 사람이 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기 위해 창설”(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됐다. 달라진 한은의 모습을 보고 싶다.
  • 부차 주민 등 민간인 시신 410구… 삶의 터전이 거대한 무덤 됐다

    부차 주민 등 민간인 시신 410구… 삶의 터전이 거대한 무덤 됐다

    러시아군이 물러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주변은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전시장이 됐다. 3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 떨어진 소도시 부차에 들어간 AFP 통신과 CNN 등 외신들은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고 전했다. 마을 중심가 교회 마당에서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이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3.7m 길이, 1m 남짓한 깊이의 얕은 참호에는 검은 비닐에 싸인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주민들은 최소 150명의 민간인이 이 거대한 집단 무덤에 매장됐다고 추정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부차, 이르핀, 호스토멜 등 키이우 주변 소도시에서 약 410구의 시신을 수습했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집단학살”이라고 말했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이 지옥을 만든 짐승 같은 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차 주민들은 “러시아군은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쐈다”고 주장했다. 양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뒤통수에 총상을 입은 시신이 수십 구 발견돼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을 ‘처형’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차 학살’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4일 오전 부차를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천 명이 죽고 고문당하고 여성들은 강간당하고 아이들이 죽었다”며 “이것은 전쟁 범죄이며 국제사회가 집단학살로 인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전범행위 조사를 위한 정부합동 특별사법기구 창설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하르키우(하리코프) 인근 마을 말라야 로한에서 러시아 군인이 가족과 함께 학교에 숨은 여성을 흉기로 공격한 후 수차례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키이우 동쪽 외곽에서 남편, 아들과 살던 나탈리야(33·가명)는 지난달 28일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을 죽이고 자신을 성폭행한 러시아 군인들의 만행을 폭로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는 현지 여성단체에는 피해를 호소하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러시아는 민간인 학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에서 “부차를 점령하는 동안 단 한 명의 민간인도 다치지 않았다”며 시신 영상과 사진들이 “연출된 가짜”라고 주장했다. 크렘린궁도 집단학살이라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 “보이는 사람 모조리 쐈다” 부차는 거대한 집단 무덤

    “보이는 사람 모조리 쐈다” 부차는 거대한 집단 무덤

    러시아군이 물러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주변은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전시장이 됐다. 3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 떨어진 소도시 부차에 들어간 AFP 통신과 CNN 등 외신들은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집단학살(제노사이드)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고 전했다. 이날 마을 중심가 교회 마당에서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이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3.7m 길이, 1m 남짓한 깊이의 얕은 참호에는 검은 비닐에 쌓인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AFP가 이곳에서 확인한 시신은 57구였지만 주민들은 최소 150명의 민간인이 이 거대한 집단 무덤에 매장됐다고 추정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부차 외에도 이르핀, 호스토멜 등 키이우 주변 소도시에서 약 410구의 시신을 수습했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3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집단학살”이라고 말했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이 지옥을 만든 짐승 같은 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차 주민들은 “러시아군은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쐈다”고 주장했다. 양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뒤통수에 총상을 입은 시신이 수십 구 발견돼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을 ‘처형’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차 집단학살’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러시아의 모든 지도자들은 그들의 명령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 보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이어 “러시아의 전쟁범죄가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며 전범행위 조사를 위한 정부합동 특별사법기구 창설을 지시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하르키우(하리코프) 인근 마을 말라야 로한에서 러시아 군인이 가족과 함께 학교에 숨은 여성을 때리고 얼굴과 목 등을 흉기로 공격한 후 수차례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키이우 동쪽 외곽에 남편(35), 아들(4)과 살던 나탈리야(33·가명)는 지난달 28일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을 죽이고 자신을 성폭행한 러시아 군인들의 만행을 폭로했다. 러시아는 민간인 학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 [STOP PUTIN] 뒤로 두 손 묶인 채 즉결 처분 당한 듯, 로이터가 전한 사진

    [STOP PUTIN] 뒤로 두 손 묶인 채 즉결 처분 당한 듯, 로이터가 전한 사진

    아! 정말로 이런 사진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로이터 통신도 꽤나 고민한 끝에 올리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3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 마을의 거리에서 발견된 시신 모습이다. 뒤로 두 손을 결박당한 채 머리에 총상을 입은 남성의 시신이다. 물론 로이터는 시신 전체를 보여주는 다른 앵글의 사진도 여러 장 공개했으며 이 마을의 다른 도로에서 촬영된 적어도 네 구 정도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사진도 공개했다. 언론매체들은 시신이나 유혈이 낭자한 사진 등을 싣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으나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이런 저널리즘 원칙이 러시아군의 잔학상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일가족이 박격포탄 파편에 스러진 사진을 1면에 크게 보도했다. 로이터도 이를 좇아 부차에서 촬영된 사진을 공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군의 잔학상을 언제까지 인류가 참고 지켜봐야만 하는지 화도 나고 막막해진다. 5주 동안 점령하던 러시아 군이 지난달 30일 퇴각한 뒤 이런 식으로 죽임을 당한 주민이 수백명이란 증언이 나오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타라스 샤프라스키이 부차 부시장은 러시아 군이 물러난 뒤 50구의 시신이 새로 발견됐다며 재판을 통하지도 않고 민간인을 즉결 처형한 것이어서 전쟁범죄로 다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이터는 이들 주민의 죽음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 독자적으로 검증하지 못했다면서도 세 구의 시신을 직접 기자들이 봤다고 했다. 시신 한 구의 손은 결박돼 있었고, 두 구는 그렇지 않았는데 머리에 총상이 나 있어 아나톨리 페도룩 시장과 샤프라스키이 부시장이 처형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일치했다고 밝혔다. 세 구의 시신 모두에 머리 외에는 다른 상처가 없었다. 모두 민간인 복장의 남성들이었다. 결박 당한 채 숨진 이의 입술과 얼굴에는 화약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것은 아주 근접한 위치에서 총을 맞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손을 묶은 것은 흰색 완장 옷감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완장을 차고 있던 한 여성은 부차에 진주하던 러시아 군대가 주민들에게 민간인 티를 내라고 흰색 완장을 차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크렘린궁과 러시아 국방부에 기자들이 시신을 목격했다고 알렸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내 우크라이나 당국의 비난은 도발이라면서 어떤 부차 주민도 러시아군의 손에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또 퇴각하기 전에 키이우 일대에서 452t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했다고 주장했다. 샤프라브스키 부시장은 러시아군이 퇴각한 뒤 300명 정도의 시신이 발견됐으며, 관리들은 50명 정도가 러시아군에 의해 즉결 처형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런 집계를 따로 검증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페도룩 시장은 “러시아인들은 민간인을 살해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로이터 통신 기자들에게 시신 한 구를 보여줬다. 그는 주민으로부터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채 총알 하나로 숨진 것처럼 보이는 시신들도 봤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물론 이 주장의 진위 역시 통신사가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테탸나 볼로디미리브나는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 떨어진 이 도시가 러시아 수중에 떨어진 뒤 목숨을 잃은 남편의 묘 옆에서 슬픔에 젖어 증언했다. 부부는 나란히 해병대 출신인데 자신의 아파트에서 끌려나와 러시아 군이 사령부로 쓰는 같은 건물의 사무실로 옮겨졌다. 체첸 쪽에서 온 것이 확실해 보이는 남자가 자신들을 “해치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체첸 사람임을 알아챈 사실을 티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로이터는 역시나 체첸의 지도자이며 크렘린궁 충성파인 람잔 카디로프에게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답이 없다고 했다. 테탸나는 그들에게 이름만 말했을 뿐 성을 얘기하지 않았다. 나흘 뒤 풀려났는데 부부가 살던 건물의 지하 층계에 시신 몇 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운동화를 보고도, 바지를 보고도 누군지 알겠더라. 팔다리를 잘린 것 같았다. 몸이 차갑기만 했다. 이웃들이 그의 얼굴 사진을 갖고 있다. 머리에 총을 맞고, 팔다리는 절단되고 고문을 당했다.” 로이터 기자들이 사진을 검토했는데 얼굴과 몸에 칼자국이 난무했다. 총상을 입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남편 시신을 돌려 받아 이웃들의 도움을 얻어 건물 근처 마당에 묻었다. 흙을 깊이 파내지 못해 “개들이 파먹을 수 있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한 기자는 그녀의 남편 시신이 발견된 지하 층계에 다른 시신이 남아 있으며 주민들이 침대보를 덮어준 것이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였다고 했다. 한 여성은 코너만 돌아가면 두 남성이 묻힌 무덤이 더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본인이 목격하지않았지만 러시아 군에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했다. 두 구 모두 왼쪽 눈에 총상이 있었다. 다른 여섯 주민도 그녀의 주장이 맞다고 했다. 한 주민은 아파트 부속 건물에 살던 남자들이라면서 그 중 한 명은 우크라이나군 퇴역자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침공 직후 러시아 군의 수중에 떨어진 부차 마을을 비롯해 키이우 전역을 지난 2일 수복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부차의 도로들은 오발탄 천지였다. 불에 탄 탱크 잔해 옆에 로켓들이 꽂혀 있었다. 몇몇 주민들은 부비트랩이나 미사일 파편을 발견하고 “지뢰 조심해!”라고 연신 외쳐대며 벽에 딱 붙어 기어 다녔다. 볼로도미르 코파초프(69)는 러시아 군이 자신의 집 정원 옆에 로켓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고 말했다. 로이터 기자가 방문했을 때 탄약상자들과 포탄 껍질 등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반려견 사육자인 그는 서른세 살 딸과 그녀의 남자친구, 친구가 사살됐다고 했는데 러시아 군대가 퇴각 며칠 전에 ‘파티 스트리머’를 쐈다는 이유로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딸 등이 병사들을 해칠 의도가 없이 그저 저항의 제스처로 ‘파티 스트리머’를 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겨내는 일이 무척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중앙아시아에서 셰퍼드와 닮은 종으로 평가되는 알라바이 열 마리도 뒷마당에서 짖어댄다는 이유로 총에 맞았다. 그는 한 달 동안 집 밖으로 나서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보이는 족족 죽이더라. 누구도 ‘당신은 누구요, 왜 나돌아다니는 거냐?’고 묻지 않았다. 병사들은 그냥 쏴버리더라.”
  • [지구를 보다] 위성에 포착된 우크라 거대 무덤…러軍 민간인 대학살

    [지구를 보다] 위성에 포착된 우크라 거대 무덤…러軍 민간인 대학살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서부 소도시 부차는 거대 무덤으로 변해 있었다. 3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부차에서 거대 집단 무덤이 드러났다고 미국 민간위성업체 맥사(Maxar) 테크놀로지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맥사는 이날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약 37㎞ 떨어진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 집단 무덤으로 추정되는 구덩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10일 처음 포착된 구덩이는 그 크기가 점점 커져 현재는 길이가 13.7m에 달한다고 맥사는 설명했다.직접 해당 교회를 찾아간 미국 CNN방송 취재진에 의하면 러시아군은 전쟁 초기부터 학살한 민간인을 이곳에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주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구덩이에 매장된 시신이 150구 정도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 추정치는 이보다 더 많다. 부차 시장은 지난 2일 최대 300구의 시신이 이곳 집단 무덤에 묻혔을 수 있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CNN 취재진은 정확한 규모나 희생자 신원을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최소 수십 구가 포대에 든 채 무덤 안에 쌓여 있는 것을 확인됐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기자들 역시 지난 2일 부차에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시신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다만 맥사가 공개한 위성사진 속 교회가 자신들이 방문한 장소와 일치하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에서 물러난 이후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AFP통신이 인용한 지역 관리들에 따르면 부차에서 수습된 시신 수십 구 가운데 일부는 두 손이 등 뒤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의 샤를 미셸 상임 의장은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에서 극악무도한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그는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대학살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EU의 제재와 지원이 추가로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 “러軍 짐승들, 민간인 무차별 처형” 시신 깔린 키이우 ‘눈물의 탈환’

    “러軍 짐승들, 민간인 무차별 처형” 시신 깔린 키이우 ‘눈물의 탈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퇴각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이르핀에 이어 1일 부차, 호스토멜, 이반키우 등 키이우 서쪽 외곽 지역을 탈환했습니다. 키이우 동북과 서북 지역에서도 러시아군을 몰아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일대 30개 이상의 정착촌을 탈환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떠난 키이우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현지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러시아군이 떠난 키이우 거리에 민간인 시신이 널려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3일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길목마다 시신이 깔린 키이우의 참상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신(新) 스레브레니차. 키이우 부차는 지난 몇 주간 러시아 짐승들 손에 있었다. 그들은 현지 민간인을 닥치는대로 '처형'하였고, 손이 등 뒤로 묶인 시신이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고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스레브레니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단학살이 자행된 곳입니다.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5년 7월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UN 안전지역으로 지정된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8753명의 보스니아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스레브레니차를 언급했다는 건, 러시아군이 그만큼 많은 키이우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말입니다.실제로 러시아군은 키이우에서 퇴각하면서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러시아군 총에 맞아 숨진 민간인의 시신은 아무렇게나 길에 널려 있었습니다. 행여 시신이 훼손될까, 우크라이나 군용 차량이 갈지자로 키이우에 진입했을 정도입니다. 키이우 외곽 20㎞ 지점 고속도로에서는 벌거벗은 여성 등 4~5명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 야만인들은 길가에서 시신을 바로 불태우려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의 키이우 탈환 직후 부차에서는 최소 280구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던 자세 그대로 숨진 이의 시신은 러시아군의 학살이 얼마나 무차별적이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손이 뒤로 묶인 채 발견된 시신이 많았는데, 이는 조직적 학살의 증거라고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나톨리 페도루크 부차 시장은 "주민 수백 명이 숨졌다. 시신 280구를 집단 묘지에 매장했다"고 말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이후 다른 집단 매장지 근처에서 시신 57구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개중에는 14세 소년도 있었습니다. 유엔인도지원조정실(OCHA)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사망한 민간인은 1232명입니다. 이 중 112명은 어린이였습니다. 부상자는 193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나 OCHA는 실제 사상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 “400년째 못 돌아온 선조들 귀무덤 봉환할 것 ”

    “400년째 못 돌아온 선조들 귀무덤 봉환할 것 ”

    “400년 넘게 돌아오지 못한 민초들의 원혼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범시민운동을 펼쳐 나갈 겁니다. 일본은 한이 서려 있는 불쌍한 양민들의 귀무덤을 반드시 돌려줘야 합니다.” 김종윤 사단법인 귀무덤봉환추진본부 공동대표는 3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유재란 최대 희생지역은 일본이 왜성을 짓고 거주했던 순천이다”며 “귀무덤을 봉환할 경우 이장의 최적지로 가장 많은 죽음을 당한 순천이 최적지라는 판단이 들어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귀무덤봉환추진본부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베어 간 우리 선조들의 귀와 코가 묻힌 귀무덤을 봉환하는 운동을 위해 지난 30일 전남 순천문화예술회관에서 회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귀무덤은 일본이 정유재란 시기에 조선 병사들과 무고한 양민 20여만명의 귀와 코 등을 전리품으로 베어 간 후 교토 등 일본 본토 5곳에 조성한 무덤이다. 김 대표는 “발대식은 일본땅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조상들의 아픔을 달래는 첫걸음이었다”며 “전국에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주신다면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 사천의 삼중스님 등이 노력해 귀무덤 근처 흙을 일부 가져와 이총 비석을 세우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반환 요구는 없었다”며 “대대적인 운동본부 설립은 국내 처음일 것이다”고 했다. 공동대표 5명이 1000만원씩 지출, 회비 5000만원으로 시작한다. 조사현 공동대표는 “최근 하토야마 일본 전 총리가 귀무덤에 참배한 뒤 과오를 사죄했고, 교토 내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추모제를 지내기도 했다”며 “지난해 4월 순천 해룡에 조성된 한중일 평화공원에 이 귀무덤을 안치하면 가장 적합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국내에 무사히 안장하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다”며 “21세기 동북아의 중심국가로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민관이 적극 나서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초남이 성지 보전할까 정비할까-전문가 의견 엇갈려

    초남이 성지 보전할까 정비할까-전문가 의견 엇갈려

    호남 천주교의 발상지 ‘초남이성지’와 ‘바우배기’를 ‘복원’ 보다는 ‘보전’하자는 의견과 ‘성지역사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완주군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천주교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는 31일 완주군청 1층 대회의실에서 각계 전문가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초남이성지 역사 재조명과 종교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 제고 방안’을 위한 2차 학술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3인의 묘소 발굴에 따른 성지 개발은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염두에 두고 외적 화려함보다 내적 충실성을 다져나가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조 광 고려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는 ‘조선 후기 정치·사상적 변화와 천주교’에 대한 기조강연을 통해 “1791년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죽음으로 귀결된 ‘진산사건(珍山事件)’은 조선 천주교사회에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해 주는 사건이었다”며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작업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당시 조상제사 거부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반응을 가져왔고,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며 “이런 까닭으로 당시 양반지배층에서는 제사 거부를 혈연중심의 가족주의를 거부하는 패륜 행동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윤지헌의 묘소 발굴에 따른 유적과 유물의 보전 문제도 함께 언급하고자 한다”며 “이곳을 가꾸려는 사람들은 오늘날 로마 시내 중심부 가까이에 있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모여 활발히 활동했던 원로원과 사원, 개선문 등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조 교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로마 시대 유적을 보전했지 복원하지 않았다. 복원된 건물보다 남아 있는 흔적 자체가 더 소중하다고 건설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소박한 무덤은 소박한대로 보존될 때 바우배기 성지는 더욱 성지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바우배기에 가득 찰 거대한 건물들로 외적 화려함을 자랑하기보다 내적 충실성을 다져 나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순교자들의 정신을 널리 알고 따르는 일을 촉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유해 발굴로 각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완주군 초남이성지와 바우배기를 종교 차원의 역사적 장소를 넘어 세계적인 평화의 장으로 조성하는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됐다. 남해경 전북대 교수는 이날 ‘초남이성지의 정비 및 활용계획’ 주제발표에서 “초남이성지는 복자 유항검의 생가터이자 복음을 전파하던 곳이며, 약 1km 가량 떨어진 바우배기는 지난해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윤지헌의 유해가 확인된 곳”이라며 “이곳의 역사적·종교적 의미가 매우 큰 만큼 새로운 종교적, 문화재적 가치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한국 천주교사에 큰 획을 긋는 초남이성지에 ‘성지 역사관’을 조성하고 관광자원과 당시 사회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순교지를 중심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광장을 조성하고 주위에 성직자들의 수도를 위한 공간과 피정센터, 라키비움, 일반인이나 신도들을 위한 치유공간, 믿음살이 체험센터, 체험공간, 순례길, 종교정원(환경생태 관련 시설) 등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제시했다. 그는 “초남이성지는 천주교의 역사문화 자원이기도 하지만 행정 절차에 따라 단계적으로 국가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먼저 지난해 시행한 전라북도 건축문화자산 중에서 종교자산에 편입해 건축과 문화재계에 가치를 인식시키고, 관련 사료를 수집해 도지정문화재,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또 바우배기의 성역화 사업 등과 관련, “준비 단계부터 체계적인 마스터 플랜을 세워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초남이성지와 바우배기를 종교 차원의 단순한 역사적 장소를 넘어 세계 평화를 상징할 수 있는 새로운 장으로 조성하고, 문화재로 추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며 “이들 성지를 단순히 천주교 성지가 아닌 세계적인 평화의 장으로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완주 초남이성지는 지난해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 유해와 유물이 200여년 만에 발견돼 큰 관심을 끌었다. 신해박해(1791년) 때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복자의 유골과 신유박해(1801) 때 순교한 윤지헌 프란치스코 복자 등 3인의 유해와 유물이 확인됐고, 유해는 초남이성지 교리당에 안치됐다.
  • 김종윤 (사)귀무덤봉환추진본부 공동대표 “400년 넘은 원혼 국내 안치해야”

    김종윤 (사)귀무덤봉환추진본부 공동대표 “400년 넘은 원혼 국내 안치해야”

    “400년 넘게 돌아오지 못한 민초들의 원혼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범시민운동을 펼쳐나갈겁니다. 일본은 한이 서려 있는 불쌍한 양민들의 귀무덤을 반드시 돌려줘야합니다.” 김종윤 (사)귀무덤봉환추진본부 공동대표는 “정유재란 최대 희생지역은 일본이 왜성을 짓고 거주했던 순천이다”며 “귀무덤을 봉환할 경우 이장의 최적지로 가장 많은 죽음을 당한 순천이 최적지라는 판단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베어간 우리 선조들의 귀와 코무덤 봉환추진 운동을 위한 민간인단체가 출범해 관심을 끌고 있다. (사)귀무덤봉환추진본부는 지난 30일 순천문화예술회관에서 회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갔다. 귀무덤은 일본이 정유재란 시기에 조선 병사들과 무고한 양민 20여만명의 귀와 코 등을 전리품으로 베어간 후 교토 등 일본 본토에 조성한 무덤이다. 교토의 토요쿠니 신사 앞 무덤과 쓰시마(대마도), 호쿠오카 등 총 5곳에 귀무덤이 있다. 김 대표는 “어제 발대식은 일본땅에서 돌아오지 못한채 구천을 떠도는 조상들의 아픔을 달래는 첫 걸음이었다”며 “전국에서 마음으로 힘을 모아주신다면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2년 경남 사천의 삼중스님 등이 노력해 일본 귀무덤 근처 흙을 일부 가져와 이총 비석을 세우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반환 요구는 없었다”며 “대대적인 운동본부 설립은 국내 처음일 것이다”고 말했다. 공동대표 5명이 1000만원씩 지출, 5000만원 회비로 시작한다.조사현 공동대표는 “최근 하토야마 일본 전 총리가 귀무덤에 참배한 뒤 그들의 과오를 사죄했고, 교토 내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추모제를 지내기도 했다”며 “작년 4월 순천 해룡에 조성된 한중일 평화공원에 이 귀무덤을 안치하면 가장 적합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귀무덤의 역사적 고증과 추가로 귀무덤 찾기, 출판, 역사강연 등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칠 계획이다”며 “주한 일본대사관과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관 등에 우리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등 반환 요구의 국제법상 타당성 등을 알리는데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국내에 무사히 안장하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다”며 “21세기 동북아의 중심국가로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손잡고 나아갈수 있도록 민관이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지난 2020년 8월 대한민국 표준시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주권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은 ‘경도탑’을 전국 유일하게 순천만국가정원에 세워 역사의식을 심기도 했다. 높이 5m, 폭 2.55m 크기로 한국 표준시의 역사, 경도 주권 탑의 의미 등이 새겨져 있는 경도탑은 시민 60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 5000만원으로 건립했다.
  • 북촌리 너븐숭이 아기무덤의 비극…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다

    북촌리 너븐숭이 아기무덤의 비극…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권유린’을 한, 그 날이 다시 돌아왔다. 벌써 74주년. 올해 제주는 특별한 봄을 맞고 있다. 제주4·3특별법 개정으로 올 하반기부터 4·3희생자에게 국가 차원의 피해 보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엔 직권재심과 특별재심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 73명이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억울한 것은, 그 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어린 영혼들이 있다. 818명.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4·3의 비극을 다시 소환한다.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집단 대학살 지난 29일, 제주도 조천읍 북촌 너븐숭이 4·3 위령성지로 향했다. 함덕해변 옆동네라고 하면 대충 알게 되는 그 해안마을 북촌리는 1949년 1월 17일 대규모 집단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너븐숭이 4.3위령탑 앞에는 벚나무 3그루가 시리도록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그 옆에선 토종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2019년 12월 발간된 ‘제주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북촌리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448명(2021년 기준)이 희생된 곳이다. 그 슬픈 역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령비 옆 마늘 밭에는 노인네가 코발트빛 푸른바다를 배경 삼아 한가롭게 농삿일을 하고 있었다. 멀리 토벌대를 피해 배를 타고 나가 숨기도 했던 ‘다려도’가 아른거렸다. 그날 아침, 군인들을 태운 트럭이 북촌리를 경유해 함덕 대대본부로 가던 도중, 북촌국민학교 서쪽 고갯길 속칭 ‘마가리 동산’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사망했다. 주민들이 사망한 군인의 시신을 수습해 함덕국민학교 대대본부로 싣고 갔다. 군인들은 주민들이 보초 경비의 책임을 물어, 시신을 운구해 간 주민 중 경찰 가족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8명을 함덕리 고두물로 끌고 가 구타 후 총살했다. 그리고 군인들이 북촌리 마을을 덮쳤다. 오전 11시 전후, 무장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집집마다 들이닥쳐 총부리를 겨누며 전부 학교운동장으로 내몰고는 온 마을을 불태웠다. 400여 채의 가옥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쇠막(외양간)에 있던 소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1300명의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린 학생 등을 일으켜 세워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라고 들볶던 군인들은 이 일이 여의치 않자 주민 몇십 명씩 끌고 나가 학교 인근 밭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강요배 화백의 ‘젖먹이’ 그림은 북촌 학살 비극의 상징 4·3사건으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고모를 한꺼번에 잃은 제주4·3희생자유족회 감사인 이상언(59·북촌리 4·3유적지 해설사)씨는 너븐숭이4.3기념관으로 안내하며 마치 그날의 비극이 눈앞에서 펼쳐지듯 설명했다. “강요배 화백이 그린 ‘젖먹이’ 작품은 북촌국민학교운동장에서 실제 있었던 상황이에요. 학교운동장에서도 무장대와 내통한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협박했어요. 군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애기 업은 한 아주머니가 총에 맞아 죽어갔어요. 아주머니 등에 업혀 있던 애기가 쓰러진 엄마 품에서 빠져 나와서 젖을 물고 있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그림인데, 정말 그날 엄마는 죽고, 아기는 살았어요.” 이어 그는 “그림 속에 묘사된 여자 아이는 현실 속에서는 네 살 된 한경림이란 남자 아이로 40대에 세상을 떠났다”며 “북촌에는 한씨의 누님 두 분이 살고 있지만, 이 그림을 보면 가족사가 생각나는 듯 한동안 그림을 내려 달라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4·3사건으로 제주의 아이들은 세상에 나와 빛을 보기도 전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도내 10세 미만의 아이들 818명이 4·3사건때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너븐숭이 애기무덤에는 4·3사건 당시의 아이들 3~8기의 봉분과 함께 4·3사건 이전에 병사한 아이들의 12기 봉분 등 총 20기가 있다. #너븐숭이 아기무덤엔 어린 넋들을 위로하는 바람개비, 동백꽃, 그리고 ‘맛동산’ 이씨는 이곳 너븐숭이에서 영화 ‘폭낭의 아이들’을 촬영한 사유진 감독이 2020년 12월 16일 제주4·3평화공원 내 각명비 174개 중에서 10살 미만의 어린이 희생자 약 818의 이름을 각각 천에 적고 그 이름 적힌 천(이하 ‘위패’)을 인근 ‘평화의 숲’ 폭낭(팽나무)에 열명(列名)하고 그 이름 불러주었던 사연도 전했다. 심지어 제작팀은 제주4·3평화공원에서 북촌 너븐숭이 애기무덤까지 818명의 어린이 희생자 위패를 모시고 5시간을 도보 순례해 북촌리 희생자 유족회 회장 고완순(84)에게 인계했다. 유족회장은 위패 담긴 함을 받아 소나무에 묶어 넋을 위로했고 할머니들이 와서 가마솥에 밥을 해서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은 아이들을 위해 주먹밥을 동백꽃 모양으로 만들어 위로했다. 우연하게도 취재 현장에 간 날도 때마침, 너븐숭이 아기무덤 앞에선 4·3사건 74주년에 즈음해 추모 영상물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 때 희생된 아이를 재연하는 예닐곱살된 아이가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동백꽃을 무덤에 바치고 묵념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너븐숭이의 애기무덤은 이렇다할 조경이나 장식도 없다. 그러나 다크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이 곳에 올 때마다 아기무덤에 누군가는 동백꽃을 바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귀천’이란 시를 바치고, 또 누군가는 바람개비를 바치고 추념했다. 이날은 누군가가 ‘맛동산’ 과자들을 모든 무덤에 바치고 갔다. 초라할 지 모르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애달프다 못해 먹먹해지는 추모의 공간이었다. 오는 3일에도 ‘폭낭의 아이들’ 제작팀은 이곳에서 어린영혼들을 위한 추념식을 연다고 했다. 왜 하필 북촌 주민들은 밭일을 하다가 돌아올 때 쉬어가던 ‘너븐숭이’(넓은 언덕)에 어린아이들을 묻었을까. 아마도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농작물을 심어도 자랄 수 없는, 쓸모 없는 땅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옴팡밭에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비가 죽은 자들을 위로하듯 누워있다 너븐숭이 언덕 뒤엔 옴팡밭이 있다.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인 이곳도 ‘마치 무를 뽑아 널어 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100여명 희생됐다. 고완순 회장의 기억에 따르면 여자들은 하늘을 보고 죽고, 남자는 엎어져서 죽어 있었다. 한겨울이지만, 오후 4시쯤 해가 기울 때 햇빛에 비친 밭이 피가 땅 속으로 흐르다 대지 위로 흘러 나와 핏빛이었다는 것이다. 너븐숭이의 비극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알려졌다. 옴팡밭은 ‘순이삼촌’의 장면 장면을 돌 위에 비문처럼 새겨 놓았다. 마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하듯 누워있다. 북촌사람들은 4·3은 입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왜냐하면 북촌대학살이 있은 지 5년 후인 1954년 1월 23일 세칭 ‘아이고 사건’이 그 발단이 됐다. 이 날 전몰장병인 북촌 출신 김석태의 고별식을 끝내고 4·3 당시 허무하게 죽어간 주민들의 혼을 함께 달래려고 술 한 잔 올리고 ‘아이고’ 통곡한 것이 제주경찰서에 알려져 마을이장 등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했다. 그 후 사람들은 한날한시 지내는 위령제도 마음대로 지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 살았다.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싸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그러나 이 ‘순이삼촌’(1978년) 소설이 나온 뒤 사람들이 용기를 내 그 아픈 사연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에 새겨진 희생된 443명의 명단이 그것이다. 거기엔 네글자 이름도 있다. 아버지 이름 뒤에다 자식 子가 붙어 있었다. 홍영삼자, 고두필자, 김상순자…. 그들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이름없이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이었다.
  • 어제의 눈물로 피어난 오색빛깔 골목길

    어제의 눈물로 피어난 오색빛깔 골목길

    어느 도시에나 원도심은 있기 마련이다. 부산도 그렇다. 중구를 중심으로 멀리는 일제강점기, 가까이로는 6·25전쟁 당시 피란 수도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다. 이런 문화유산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재미가 아주 각별하다. 반면 부산의 동쪽은 요즘 변화가 극심하다. 새로운 것들이 밀물처럼 들어차고 있다. 해운대 너머 기장 일대의 새로운 놀거리들을 찾아봤다.원도심 투어의 들머리는 중구의 유라리광장이다. 유럽(유)과 아시아(라)가 모여 떠드는 소리(리)의 뜻을 가진 합성어다. 부산은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임시수도였다. 1129일의 전쟁 기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1023일(1026일이란 견해도 있다)이나 대한민국의 중심지였다. 유라리광장 위를 지나는 영도다리는 당시의 대표적인 흔적 중 하나다.●피란민 재회의 장소 ‘영도다리’ 영도다리는 피란민들이 재회의 장소로 약속한 곳이다. 생면부지의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였던 영도다리는 전쟁 통에 뿔뿔이 흩어진 이들이 훗날 만남을 기약하는 장소로 제격이었다. 원래 도개(선박 출입을 위해 다리 한쪽을 들어 올리는 것)로 유명한 곳인데, 코로나19 탓에 도개 행사는 잠정 중단됐다. 매달 둘째, 넷째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점검차 도개 작업이 진행될 때만 잠깐 볼 수 있다. 유라리광장 한켠엔 웃음등대가 세워져 있다. 웃고 있는 피에로 형태의 등대다. 부산은 자타가 인정하는 K코미디의 도시다. 웃음등대는 해마다 열리는 부산코미디페스티벌의 마스코트 ‘퍼니’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밤에는 미디어 파사드 등의 이벤트가 진행된다. 유라리광장에서 자갈치 시장 쪽으로 가면 ‘판도라의 숲’이 나온다.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조형물로 다시 제작해 전시했다.여기서 길을 건너면 용두산공원이다. 부산 원도심의 랜드마크라 할 ‘부산타워’가 오벨리스크처럼 솟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타워다. 120m 높이의 부산타워에 오르면 앞으로 갈 원도심 일대는 물론 부산의 명소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독립운동 전초기지 ‘백산상회’ 용두산공원 옆은 ‘한성1918 부산생활문화센터’다. 1918년 한성은행 부산지점으로 세워졌으니 무려 104년이나 건재한 건물이다. 현재는 부산 원도심 투어의 여행자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옆은 백산기념관이다.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1885~1943)를 기리는 공간이다. 기념관이 세워진 자리는 1914년 백산이 백산상회(백산무역주식회사의 전신)를 창업한 곳이다. 백산상회는 단순한 개인 사업체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핵심 전초기지였다.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임시정부의 운영자금 60% 정도가 백산이 지원한 자금이었을 정도로 백산상회는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했다. 당시 독립운동 자금을 운반할 때 망개떡 상자에 넣어 숨겼다고 한다. 백산의 고향이 경남 의령이고, 이 고장 주민들이 즐겨 먹던 음식 중 하나가 망개떡이었던 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그저 주전부리인 줄만 알았던 망개떡이 요깃거리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게 놀랍다.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오프닝 장면으로 유명한 ‘40계단’도 인근에 있다. 장성민(안성기)이 마약상(송영창)을 살해하는 장면이 촬영됐다. 록밴드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잔잔하게 흐르던 순간 펼쳐진 그 첫 장면은 당시 꽤 큰 반향을 불렀다. 요즘이야 계단 하면 영화 ‘조커’를 떠올리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청춘들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한 장면을 연기하며 내려오곤 했다. ‘40계단’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됐다. 6·25전쟁 때는 산복도로에 정착한 수많은 피란민들이 물동이를 이고 지고 오르내렸던 고난의 계단이었다. 부산의 옛 모습과 마주할 수 있는 근대역사박물관이 문을 닫은 건 다소 아쉽다. 내부 수리를 마치고 오는 6월쯤 재개장 예정이다.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이 나온다. 좁디좁은 골목에 없는 듯 숨어 있는 문화유산(등록문화재)이다. 캐나다 선교사의 사망보험금으로 매입한 땅에 1924년 지어 올렸다. 서울의 성공회 성당보다 2년 먼저 세워졌다고 한다. 성당 외벽은 붉은 벽돌이다. 세월이 쌓인 탓인지, 여느 벽돌보다 한결 붉다. 건물 오른쪽 회랑 부분을 제외하고 성당은 현재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돔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성당 인근의 부산지방기상청 건물도 1934년에 건립된 문화재(시 지정 기념물)다. 선박의 기관실 형태로 지어진 모습이 독특하다.●부산의 산토리니 ‘감천문화마을’ 보수동 책방골목을 지나 동아대 부민캠퍼스 쪽으로 가면 임시수도기념거리가 나온다. 이 일대에도 문화유산이 많다. 동아대 캠퍼스 내 석당박물관(등록문화재)은 임시수도의 정부청사로 쓰였던 곳이다. 1925년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이다. 옆으로 길게 뻗은 석조 건물의 자태가 자못 당당하다. 캠퍼스 초입에 서 있던 부산전차(등록문화재)는 교내로 옮겨져 수리 중이다. 1968년까지 시내를 달렸던 부산의 마지막 전차 중 한 대다.동아대 교정 바로 위는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다. 1926년에 건축된 목조 건물이다. 원래 경남도지사 관사였다가 1951년 1·4후퇴 때 부산에 내려온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3년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관저로 사용했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 등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원도심 투어의 종착지는 감천문화마을이다. 산허리를 따라 형형색색의 집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섰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닮아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불린다.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하며 생긴 낙후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환골탈태했다. 감천동 반대편은 아미동이다. ‘비석문화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오래전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곳인데 피란민들이 무덤 위에 집을 짓고 비석, 상석 등을 건축자재로 쓰면서 비석마을로 불리게 됐다. 부산시에서 자체 선정한 1호 등록문화재다. 요즘 부산은 벚꽃이 일품이다. 원도심 주변에 가볼 만한 벚꽃 명소들이 있다. 부산 야경 감상의 ‘고전’으로 꼽히는 황령산은 벚꽃 드라이브로 제격이다. 연분홍 벚꽃과 도심의 불빛이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빵집이 많아 ‘빵천동’이라 불리는 남천동 일대도 벚꽃 명소다. 얼추 40년을 헤아리는 늙은 벚나무들이 빼곡하다. 바람 부는 날엔 오륙도로 가야 한다. 용호동 해안 절벽에 세워진 ‘오륙도 스카이워크’ 아래로 울부짖는 바다의 모습이 장관이다. 스카이워크 뒤의 해맞이공원에선 유채꽃, 수선화 등 봄꽃들이 쪽빛 바다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여행수첩 -원도심 전체를 걸어서 돌아보려면 품이 꽤 많이 든다. 용두산공원이나 감천문화마을 등 핵심 포인트에 차를 주차하고 돌아보길 권한다. 원도심 곳곳에 공영, 민영 주차장이 잘 갖춰져 있다. -외지에서 원도심으로 들어가려면 복잡한 시내도로를 타야 한다. 다소 돌더라도 광안대교, 부산항대교(북항대교) 등 외곽도로를 이용하길 권한다. 바다 위로 뜬 다리를 지나며 부산의 외모를 훑어볼 수 있다. -중구청 바로 앞의 유명분식은 ‘쫄우동’으로 이름난 집이다. 쫄우동은 걸쭉한 우동 국물에 쫄면이 들어간 일종의 퓨전음식이다. 요즘 제철 음식은 갈미조개다. 광안리 해변 쪽에 갈미조개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는 ‘갈삼구이’ 집이 많다.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실패의 경험’ 메이둠 피라미드/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실패의 경험’ 메이둠 피라미드/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조세르가 최초의 피라미드를 계단식으로 만든 이후 두어 세대 동안은 계속해서 계단식 피라미드가 왕묘의 형식으로 사용됐다. 세켐케트, 카바 등의 피라미드는 보존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계단식으로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완전한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인 3왕조 말기~4왕조 초기의 일이다. 처음으로 일반형 피라미드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늘날 ‘붕괴 피라미드’라고 이름이 붙여진 피라미드다. 메이둠에 있는 이 피라미드가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외벽은 무너져 내리고 중앙부만 남아 현재는 3층 석탑 같은 모습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붕괴 피라미드는 3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후니(재위 기원전 2637~2613년)의 무덤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니는 피라미드가 완공되기 이전에 사망했고, 그의 후계자이자 사위였던 스네페루(재위 기원전 2613~2589년)가 장인의 무덤을 이어받아 지었다. 피라미드의 내부와 부속 시설이 어느 정도 완성돼 있는 것을 볼 때 붕괴는 완공 직전이나 직후에 일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이 피라미드는 애초에는 계단식 피라미드로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건설되는 도중에 일반형 피라미드로 설계가 변경됐다. 설계 변경에는 주류 이데올로기의 변화, 즉 별과 관련이 깊은 오시리스 신앙에서 라를 최고 신으로 섬기는 태양 신앙으로의 변화가 그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갑작스러운 설계의 변경은 공학적 결함을 야기했고, 그것이 결국 붕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붕괴로 인한 피해는 매우 컸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붕괴는 파라오의 건축가들에게는 꽤나 좋은 경험이 됐던 것 같다. 스네페루는 메이둠에서 선왕의 피라미드를 이어서 짓는 것과 동시에 다슈르에서 자신의 피라미드도 건설하고 있었다. 이 피라미드가 반쯤 완성됐을 때 메이둠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 붕괴는 스네페루 피라미드의 건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이렇게 허망하게 섬을 떠나고자 40년 세월 참아온 건 아닌데 이렇게 억울하게 한라산을 등지자고 칠흑 어둠에서 두눈 부라리고 기다려 온 건 아닌데 허나 서러워 마라, 내 아주 떠나는 건 아니니 그 좋은 날에 억새꽃 따라, 그대들 곁으로 다시 오리니 서러워 마라, 서러워 마라.” 독립영화 ‘다랑쉬굴의 슬픈노래’에서 마지막 유해를 뿌리러 바다로 떠나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제주 4·3의 참혹함과 학살의 실체적 모습을 응축하고 있는 다랑쉬굴이 발견되고 그 유해가 공개된 지 올해 30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제주4·3 어린이체험관 평화교육강당에서 “다랑쉬굴 발굴 30년, 성찰과 과제”를 주제로 특별세미나가 열렸다.  구좌읍 세화리 남서쪽 6㎞지점으로 해발 170m에 위치한 다랑쉬굴에서 지난 1992년, 유해 11구가 발굴됐다. 4.3 당시 진압작전을 피해 굴속으로 피신했다가 참화를 당한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피란민들이었다. 아이 1명과 여성 3명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유해는 정식·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 45일 만에 화장돼 바다에 뿌려져 진상규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랑쉬굴의 발굴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4·3학살 피해의 쇠망치 같은 것이었다. 1992년 4월 2일 제주4·3연구소에서는 제주경찰서 정보과에 다랑쉬굴 발견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 행정기관, 언론사에서 이날 현장 검증했다. 그러나 현장 검증 후 제주도지방경찰청은 죽음의 원인을 집단자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 발표했다. 경찰은 또한 이들 희생자들을 세화리 습격사건 무장대로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없었다. 발굴 유해 중에 9세의 어린아이와 4·3 당시 굴 밖에서 희생되어 이미 수습되었던 시신 중에 7,9세의 어린이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4·3학살의 광풍을 피해 피란했던 주민들임이 명백했다.도민들과 국회의원, 도의원들도 다랑쉬굴 4·3희생자 유해를 ‘도민장’으로 하고 합동묘역을 조성해 한과 상처를 치유하여 화합의 징표로 보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4·3연구소를 비롯한 도내 각계의 염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바로 관계기관이 개입이 본격화된 것이다. 또한 4·3 당시 무장대에게 피해를 당한 유족들도 동원돼 “폭도들의 무덤을 만들 수가 있느냐, 만약 무덤을 만든다면 그냥 둘 줄 아는냐”라는 색깔론이 불거졌다. 4·3의 트라우마를 일깨워 공포의 공작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5월 4일 결국, 도민장으로 가져갈 것을 목표로 했던 유해의 처리는 졸속으로 처리되어 한줌의 재로 김녕리 앞바다에 뿌려지고 말았다. 박경훈 제주4·3평화재단 전시자문위원장은 “다랑쉬굴 유해 발굴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지만, 발굴과 유해의 처리의 전 과정이 또 다른 살아 있는 4·3이었다”며 “공안정국 하에서 은폐와 왜곡으로 재빨리 이 사안을 숨기려했던 당시 당국의 조처는 4·3이 끝난 지 4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레드아일랜드의 시각으로 제주사회를 바라봤던 지배세력의 시각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며, 그들의 공작으로 4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일깨워까지 이용하고자 했던 제주사회 단면을 드러낸 또 다른 사건이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랑쉬 입구를 봉쇄한 지 30년, 이 사건은 마치 그 현장처럼 그 당시의 진실여부도 드러나지 못한 채 봉인돼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양정심 연구실장도 “당시에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발굴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발굴하느라 뼈 잔해와 놋그릇, 물허벅, 솥 같은 유물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4·3평화공원에는 다랑쉬굴 특별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 현장인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은 여전히 토지 소유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30년간 아무런 공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박 위원장은 “4·3 당시 다랑쉬 피란민 상태 및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뿐만 아니라, 다랑쉬굴 유해발굴 및 처리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며 “제주특별자치도 자체 예산, 또는 국비를 활용해 현 소유주인 이화재단을 설득하여 토지를 매입하고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 중의 하나인 다크투어리즘의 현장으로 차후 주변 정비 및 성역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STOP PUTIN] 76세 러시아 화가 “푸틴 위해 죽으면 안돼” 반전 상징으로

    [STOP PUTIN] 76세 러시아 화가 “푸틴 위해 죽으면 안돼” 반전 상징으로

    76세의 러시아 화가 엘레나 오시포바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맹렬히 반대하고 나서 반전 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4일(현지시간) 전했다. 엘레나는 최근 BBC 기자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작은 아파트로 초대해 자신이 직접 만든 반전 플래카드를 보여줬다. “푸틴이 전쟁이다. 우리는 푸틴을 위해 죽고 싶지 않다.” 푸틴 대통령을 뿔 달린 사탄으로 묘사한 그림도 아틀리에나 다름없는 아파트 안에 있었다. 엘레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너무 충격을 받아 사흘 동안 먹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 뒤 분노에 차 거리로 나가 항의했다. 얼마 안되는 군중이 박수를 보내며 “전쟁 반대!”를 외쳤다.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엘레나는 경관 두 명에 팔을 붙잡혀 연행되기도 했다. 경찰은 여전히 그녀의 플래카드 중 하나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 “난 붉은 튤립 몇 송이를, 아름답고 어린 꽃들을 받았는데 아주 빨리 죽고 시들어 버렸다. 그 꽃들은 무덤 속으로 스러지는 청년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 할머니는 포스터를 만들어 사람들이 죽음으로 보내지고 있다고 적었다. 다른 플래카드에는 러시아 병사들에게 총을 내려놓으면 영웅이 될 것이라고 간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병사 어머니회가 시 전역에서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징집병, 특히 이미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의 부모들이 합류하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아들을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수많은 전화가 걸려오는데 상부로부터 압력을 넣는 내용도 상당히 많다고 했다. 이 모임의 올가는 입 다물고 있으란 얘기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당국은 은폐하려고만 해요. 군에서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는 거짓 그림만 보여준다. 그들은 병사들의 어머니들이 무조건 인내하고 조용히 있기만을 바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물론 러시아 전역에서 당국은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행동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려고 애를 쓴다. 상트 경찰서 공보실은 바쁘게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작전을 지지하는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한 동영상을 보면 폭동진압 경찰관들이 사람들과 어깨를 결고 거리에 서 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글자 Z 모양으로 서 있다. 이 글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군용 차량들에 페인트로 칠해져 러시아의 공격을 지지하는 상징이 됐다. 물론 국영 매체들이 전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고 러시아가 잘하고 있다고 믿으며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에서 산책을 즐기던 나데즈다도 “조국을 사랑하고 대통령을 믿는다. 서구가 물자 공급을 끊어 우리를 겁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러시아인들은 추위와 배고픔 같은 것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레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은 수치스럽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당국은 대중들에게 애국적인 감정만 부추기고 있다. 모두 사기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몇년 동안 계속된 선전에 속고 변해 버렸다. 끔찍하다”고 개탄했다. 최근에 러시아인들은 많은 전쟁을 알게 됐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두 차례 체첸 전쟁을 치렀으며, 시리아 전쟁에도 러시아군이 개입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크라이나다. 크렘린궁은 그곳에서 특별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가 러시아의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 김해 대성동 출토 청동세·청동완 경남유형문화재 지정...국내 최초 출토

    김해 대성동 출토 청동세·청동완 경남유형문화재 지정...국내 최초 출토

    경남 김해시는 금관가야 왕가 무덤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청동용기 2점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 24일 밝혔다.이번에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대성동고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해 대성동 91호분 출토 청동세(靑銅洗·대야)와 청동완( 靑銅?·주발)이다. 최근 경남도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의 최종 지정 심의를 통과해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김해 대성동 91호분에서 출토된 청동세와 청동완은 중국 한(漢)~진(晉) 시대 귀족층 이상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됐다. 4세기 전반 동진으로 부터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신라권역에서 발굴된 중국계 청동 용기들은 5~6세기 시대 것으로 대성동 91호분에서 나온 청동 용기들이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다. 4세기 전반 조성 유적으로 조사된 대성동 91호분에서 완전한 보존상태로 발굴돼 출토지가 확실한 청동용기여서 유형문화재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청동세는 낮은 굽이 붙어 있고 바닥의 외면에 4조의 돌대가 돌려져 있다. 중국 낙양 화산로(華山路) CM2349와 요서 라마동ⅡM328호에서 출토된 것과 가장 비슷하다. 청동완은 바닥이 둥글고 동체에 1조의 돌대가 돌려져 있으며 중국에서도 같은 형식의 청동완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청동용기가 출토된 대성동 91호분은 중국 5호 16국시대의 전연(前燕)에서 많이 출토되는 금동용문양 말띠꾸미개 등 장식마구(말갖춤새)들이 많이 부장된 무덤으로 금관가야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해지역  경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32건, 기념물 14건, 무형문화재 3건 등 모두 49건이다. 박치우 김해시 가야사복원과장은 “김해지역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유물들을 꾸준히 발굴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밝히고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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