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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참호가 아닌 무덤을 판 셈” 러시아 군 떠난 체르노빌에는...

    [포토+] “참호가 아닌 무덤을 판 셈” 러시아 군 떠난 체르노빌에는...

    러시아군 점령 후 안전 우려가 제기됐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현재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군이 머물렀던 체르노빌 원전과 내부 시설, 참호 등의 모습을 현지 근무자 인터뷰와 함께 보도했다. 지난 1986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건이 벌어진 바 있는 체르노빌 원전은 지난 2월 말 개전 첫주 러시아군에 장악됐다. 유출 사고 이후 체르노빌의 모든 원자로 가동은 중단됐으나 사용 후 남은 핵연료를 냉각 시설에 보관 중이었기 때문에 방사능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체르노빌 원전을 장악하고 우크라이나 근무자들을 한 달 넘게 억류했던 러시아군은 그러나 지난달 31일 갑자기 철수했다. 이에대해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 운영 기업인 에네르고아톰은 “러시아군이 체르노빌 일대에서 가장 유독한 지역인 ‘붉은 숲‘에 참호를 팠다”며 이것이 철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붉은 숲은 체르노빌 원전 10㎞ 근처 숲을 가리킨다. 시간당 방사선량은 최대 10밀리시버트로, 일반인 연간 방사선 피폭 한도(1밀리시버트)의 10배에 달한다. 이번에 촬영된 사진에도 문제의 참호는 담겼다. 사진 상으로는 평범한 구덩이로 보이지만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러시아군이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일 체르노빌 원전을 방문한 바 있는 게르만 굴라시첸코 우크라이나 에너지장관은 “러시아군이 방사능에 오염된 땅을 파면서 방사능을 흡입했다”면서 “일부 군인들이 상당한 양의 방사능에 노출되면서 1년 이내 사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방사능이 강한 곳 중 한 곳에 별다른 보호장비도 없는 러시아 군인들이 참호를 팠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AP통신은 취재진이 이 지역의 흙 위를 걷는 것 조차 불허돼 참호를 자세히 조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또한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떠난 원전 곳곳에는 모래자루가 높이 쌓여 있었으며 이들이 버리고 간 차량과 약탈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한 달 넘게 러시아군에 억류돼 일을 한 엔지니어 발레리 세메노프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체르노빌을 점령한 이후 35일 연속 일했으며 밤에는 3시간만 잤다"면서 "이들이 원전의 무엇인가를 손대고 시스템을 손상시킬까 너무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체르노빌에 근무한 30년 중 최악의 상황이었으며 러시아인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위험했다"고 덧붙였다.한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일 체르노빌 원전 운영이 정상을 되찾았으며 한 달여 만에 직통선이 복구됐다고 발표했다. 이 직통선은 국가원자력규제사찰단(SNRIU)과 체르노빌 원전을 직접 연결하는 통신으로, 지난달 10일 러시아군에 의해 차단된 바 있다. 
  • ‘진영이탈’ 씌워, 승전보 도착 날 참형…비운의 희생양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진영이탈’ 씌워, 승전보 도착 날 참형…비운의 희생양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조선군이 참패를 거듭하던 임진왜란 초기 양주 해유령전투는 누구나 인정하는 육전(陸戰) 최초의 승전이다. 부원수 신각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며 조선군과 백성 모두에게 왜적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신각 장군은 한강방어전에서 패퇴하면서 도원수가 아닌 유도대장 진영에 합류했다는 이유로 해유령 승전이 조정에 알려진 바로 그날 처형되고 말았다. ●양주에서 군사 수습해 왜군 요격 신각 장군은 출생 연대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1574년 경상좌수사, 1576년 경상우병사, 1587년 경상도방어사로 무관의 요직을 거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좌수사에 임명된 해는 왜란이 일어나기 18년 전이다. 종친이어서 32세에 전라우수사에 올랐을 이억기 장군을 예외로 하면 경상좌수사 당시 신각은 40세가 넘었을 것이다. 1592년 신각은 아무리 적어도 60세 안팎이 아니었을까 싶다. 5월 16일 해유령 승전을 선조수정실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신각은 처음 부원수로 도원수 김명원을 따라 한강에서 방어했는데, 김명원의 군사가 패하자 이양원을 따라 양주에서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했다. 마침 응원하러 온 함경 병사 이혼을 만나 군사를 합쳐 진을 결성했는데, 마을에 흩어져 약탈하는 왜병을 양주의 게재(蟹嶺·해령)에서 요격해 패배시키고 70급을 베었다.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한 뒤로 처음 이런 승전이 있었으므로 원근에서 모두 의기가 용동하였다.’ 용동(聳動)이란 솟구쳐 뛰어오르는 듯한 움직임을 가리키니 백성 모두가 승전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다는 뜻이다. 게재는 오늘날의 해유령(蟹踰嶺)이다. 게가 넘나들었다는 ‘게너미고개’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해유령은 파주 광탄과 양주 백석을 잇는다. 광탄은 한양에서 개성으로 가는 의주대로에서 혜음령과 임진강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한양도성을 점령한 왜군은 다시 북상해 임진강에서 조선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보급이 충분치 않았던 왜군은 주변 지역을 약탈했는데 이들을 노린 기습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해유령의 양주 쪽 경사면인 백석읍 연곡리에는 해유령전첩지(戰捷地)가 조성됐다. ●김명원, “불복종” 패전 책임 물타기 그런데 승전은 어이없는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신각은 임진왜란 역사에서 가장 억울한 장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징비록’은 도원수 김명원이 임진강에서 올린 장계에 ‘신각이 제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는 등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의정 유홍이 글을 읽은 대로 임금께 보고했다. 조정은 신각을 처형하려 선전관을 보냈는데, 그 순간 신각의 승리 소식이 전해졌다. 조정에서는 부랴부랴 다른 선전관을 보내 처형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이미 신각은 죽은 뒤였다고 했다. 신각의 처형은 조선군이 임진강전투에서도 패퇴한 5월 18일 직후인 듯하다. 김명원은 임진강 방어에는 나름 성공하고 있었지만, 대치가 열흘이 넘어서자 선조는 조급해졌다. 게다가 ‘적군이 서울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했는데, 멀리서 오느라 발이 부르트고 피곤해 쓰러져 있으니 몽둥이를 가지고도 격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소문마저 전해졌다. 선조는 도원수에게 ‘임진강을 건너 왜군을 무찌르고 한성을 회복하라’고 재촉했지만, 왜군의 기세를 알고 있던 김명원은 조심스러웠다. 선조는 명나라에 갔던 주청사 한응인이 연경에서 돌아오자 여진족을 상대로 풍부한 전투 경험을 쌓은 평안도 정예병력까지 모두 맡기면서 김명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한다. 한응인은 충주 전투에서 순절한 도순변사 신립의 아우로 함남병사를 지낸 수어사 신할로 하여금 임진강을 건너도록 했다. 신할은 백전노장인 원수별장 유극량의 만류에 ‘늙은 겁쟁이’라고 모욕을 주며 군사를 몰아붙였다. 유극량이 분전했지만 조선군은 몰살당하다시피 했고, 건너편의 병력마저 흩어져 버렸다.●선조, 정치적 처형 결정 당시 신각과 경상좌병사 이각의 처형은 임진강 전투의 오판에 따른 비판에서 비껴 가려는 선조의 ‘정치적 결정’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럴수록 동래성 방어전을 회피한 데 이어 울산병영성마저 버리고 새벽에 도주한 이각과는 달리 신각의 처형에는 조정 내부에서도 상당한 성찰이 있었던 듯하다. 광해군 시대 편찬된 선조수정실록이 ‘신각이 비록 무인이기는 하나 나라에 몸바쳐 일을 처리하면서 청렴하고 부지런하였는데, 죄없이 죽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원통하게 여겼다’고 적은 것도 그렇다. 김명원도 신각에 대한 ‘군율(軍律) 시행’으로 한강 방어 실패 책임의 일부는 그에게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선조수정실록에는 ‘유도대장 이양원은 당시 산골짜기에 있었으므로 상황 보고가 끊겼고, 김명원은 부원수 신각이 이양원을 따른다고 핑계대고 도망쳤다고 장계를 올려 처벌할 것을 청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하지만 선조가 보낸 선전관은 신각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신속히 달려가 목을 벴다. 신각이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을 조정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비변사가 신각을 명령불복종으로 군법에 회부할 것을 청하는 내용의 선조실록 기사에는 ‘심지어 도원수가 이문하여 잡아가려 하였으나 버티면서 꼼짝도 하지 않으므로 도원수도 어쩔 도리가 없어 장계를 올린 것’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이문(移文)이란 기관과 기관 사이의 소통이다. 김명원이 유도대장 이양원 진영에 신각의 도원수 진영 복귀를 촉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는 뜻인 듯싶다. 왜적은 5월 3일 서울에 무혈입성했다. 김명원은 한강을 방어하는 도원수, 이양원은 한양도성을 지키는 유도대장이었다. 앞서 조정은 이양원을 도성을 방어하는 수성대장으로 임명하고 이진·변언수를 각각 좌·우대장, 신각을 중위대장으로 보좌토록 했다. 그런데 조정은 신립 장군이 충주에서 패하자 수도 한양을 버리는 파천을 결정하고 이양원을 임금이 도성 밖에 거동할 때 도성을 지키는 유도대장(留都大將)으로 다시 발령하면서 신각도 이양원 휘하에서 김명원 휘하의 부원수로 옮겨 임명한다. 조정은 한양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양원은 “병조가 뽑은 군사는 4500명인데 도성은 3만의 성가퀴에 궁가(弓家)가 7200이니 한 궁가에 한 사람식 배치한다 해도 절반도 채울 수 없으니 증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성가퀴는 성벽 위에 쌓은 낮은 담장, 궁가는 활을 쏠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명색이 도원수인 김명원의 군사 역시 1000명 남짓에 불과했다. ●징비록 ‘김명원 무기 버리고 도주’ ‘징비록’은 ‘제천정에 머물고 있던 김명원은 적이 밀어닥치자 그저 바라만 볼 뿐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무기와 화포를 모두 강물 속에 버린 후 옷을 갈아입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양에 있던 이양원 또한 한강을 지키던 병사들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이미 글렀다 생각하곤 양주로 도망쳐 버렸다’ 고 썼다. 제천정은 서울 한남동에 있던 정자다. 며칠 전까지 이양원 휘하의 중위대장이었던 신각이다. 우의정 이양원 휘하로 들어가 싸우는 것을 ‘도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월 말의 연성대첩(延城大捷)은 신각의 비극적 죽음에 안타까움을 더하게 했다. 전 연안부사 이정암이 이끈 의병이 왜군의 나흘 밤낮 공격을 격퇴하고 연안성을 지킨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신각의 연안부사 시절이 떠올랐다. 1591년 3월 옥천 선비 조헌은 왜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는 상소를 했는데 답이 없었다. 조헌은 아들 조완도를 시켜 평안감사 권징과 연안부사 신각에게 참호를 깊이 파고 성곽을 수리해 수성전(守城戰)을 준비하도록 글을 보냈다. 권징은 크게 웃으면서 ‘황해도와 평안도에 왜적이 올 리가 있겠는가. 돌아가 그대 부친에게 부디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각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적의 공격에 대비해 대대적으로 성을 수리하며 방어전을 준비했다. 이듬해 왜란이 일어나고 이정암이 연안성을 지켜내자 고을 사람들은 신각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 그 공을 기렸다는 것이다. 선조수정실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권징은 임진강 전투 당시 경기감사로 신할과 왜군 공격에 뜻을 모아 조선군을 참패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신각의 무덤은 알려진 것이 없다. 황해도 연안에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는 비석이 남아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 은수미 전 정책보좌관 “경찰관 청탁 보고하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은수미 전 정책보좌관 “경찰관 청탁 보고하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은수미 성남시장의 전 정책보좌관 박모(구속 기소)씨는 경찰관들의 시 산하 기관 인사·계약 청탁 요구와 관련해 “(시장이) 저에게 알아서 하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15일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은 시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씨는 은 시장의 변호인이 “시장이 경찰관의 청탁을 들어주라고 한 것이냐 들어주지 말라고 한 것이냐”고 묻자 이같이 “알아서 하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은 시장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는 받지 못한 것이냐”는 변호인 질문에 “그렇다”고 했고,“경찰관들의 청탁 사실을 보고하자 시장의 반응은 어땠냐”는 질문에는 “무덤덤했다”고 답했다. 박씨는 “2018년 은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 진행 상황을 시장에게 보고했냐”는 검찰 질문에는 “가끔 보고했다”고 답했다. 검찰이 “경찰관들의 청탁 요구를 들어준 이유는 뭐냐”고 묻자 “은 시장에 대한 조사 결과에 조금이나마 우호적인 부분이 반영될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고 말했다. 반면 은 시장은 “경찰관들의 부정한 청탁과 관련한 보고를 받은 적도, 지시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은 시장 변호인 측은 “검찰 조서에 의하면 박씨가 경찰의 이권요구와 인사청탁 등을 보고할 때 은 시장은 화를 내며 ‘말도 안되는 상황이네’라고 했다”며 “화를 냈다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2018∼2019년 명절 등을 앞두고 수행 비서를 통해 은 시장에게 와인을 주고, 휴가비 명목으로 현금 200만원도 직접 전달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변호인이 “은 시장이 선물과 현금을 주는 직원을 더 신뢰하는 스타일인가”라고 묻자 “제가 모시는 분이어서 예우의 의미였지 그런 건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이날 공판은 검찰의 요청으로 증인석과 피고인석 사이에 가림막이 설치됐다. 박씨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한 이 사건의 핵심인물이다. 때문에 박씨의 증인신문도 검찰의 주신문과 재주신문, 변호인 측의 반대신문으로 5시간 동안 치열한 법적공방을 펼쳤다. 은 시장은 박씨와 공모해 2018년 10월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던 경찰관들로부터 수사 기밀 취득 등 편의를 받는 대가로 그들이 요구한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다음 공판 기일은 이달 22일이다. 당일 박씨에 대한 추가 증인 신문이 열린다.
  • “할아버지 묘 파낸 5촌 어른 처벌해주세요”…웬수 된 가족들 [판도라]

    “할아버지 묘 파낸 5촌 어른 처벌해주세요”…웬수 된 가족들 [판도라]

    백발의 노인 한종수(가명·77)씨가 법정에 섰다. “제 얘기 잘 들리세요?” 판사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지 손에 든 보청기를 귀에 가까이 댄 한씨는 멍한 표정을 했다. 한씨는 맞은 편에 앉은 5촌 조카에게 고소를 당해 법정에 오게 됐다. 집안 종손인 조카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선산에 있는 무덤을 파내 화장했다는 이유였다. 사이가 틀어진 가족들은 심문기일 내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가족의 갈등은 2020년 12월 한씨가 자신 명의의 경기 포천시 선산에 있는 조상 묘 2기를 발굴하면서 시작됐다. 한씨의 외조부모이자 조카 전씨에게는 증조부모의 묘였다. 선산 부지를 평탄화할 계획이었던 한씨는 묘를 발굴해 유해를 화장했다. 한씨는 묘 이장 과정에서 이종사촌 형인 전씨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했다. 문제는 전씨였다. 장남인 전씨는 2015년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이 심해지고 2018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제사를 도맡아 지냈다. 전씨는 “아버지는 치매로 정상적인 사리 분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넘겨받은 내게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씨를 분묘발굴 혐의로 고소했다. 한씨에게 적용된 ‘분묘발굴죄’는 권한이 없는 자가 분묘를 함부로 발굴하면 성립하는 범죄로 5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묘가 있는 토지를 소유했거나 묘에 묻힌 자의 후손이더라도 죄를 물을 수 있고, 묘에 묻힌 자가 누군지 불분명해도 현재 제사와 숭경의 대상이면 보호 대상이 된다. 서울고법 형사30부(부장 배광국)는 지난달 16일 전씨가 한씨를 상대로 낸 재정신청 사건의 심문기일을 열었다. 전씨는 한씨가 분묘발굴 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자 법원에서 다시 판단해달라며 재정신청을 했다. 전씨는 아버지와 함께 법정에 나왔다. 90세 가까이 된 전씨의 아버지는 “전○○씨세요?”라고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전씨의 대리인은 “지금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법정에서도 전씨와 한씨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전씨는 “내가 분묘기지권을 넘겨받았으니 묘 이장·훼손을 하지 말라는 내용증명을 2017년 한씨에게 보냈다”고 했다. 반면 한씨는 “내용증명에 땅 이야기만 있었고 분묘 훼손 이야기는 없었다”면서 “당시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해 아예 답변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특히 한씨가 내세운 건 전씨의 아버지가 작성한 각서와 대화 녹취록이었다. 2020년 4월 한씨의 아내가 묘 이장을 허락받고 받아온 각서였다. 방청석에서 심문을 참관한 한씨의 아내가 말했다. “본인이 그거(각서)를 다 쓰셨어요. 워낙 문장력이 좋으시거든. ‘우리야 고맙지 나는 애들 엄마 유골도 갖다 하면 좋겠는데 애들이 반대해서 못한다’고 하셨어.” 반면 전씨는 한씨 부부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전씨와 한씨는 1년간의 수사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듯했다. 전씨는 “5촌 아저씨뻘 되지만 40년 만에 처음 뵙는다”면서 “나도 인간적인 도리를 하고 싶었지만 먼저 사촌형님뻘인 아버지에게 인간의 도리를 배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법정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 땅은 분명히 제 땅이고 허락받고 발굴을 한 것인데 이상하게 트집을 잡고 있다”면서 “전씨가 나를 못된 놈이라고 평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했다”고 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한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건 기록과 신청인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면밀히 살펴보면 검사의 불기소 처분을 수긍할 수 있고 달리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 “고통받는 북한·우크라 형제들, 평화 되찾길”

    “고통받는 북한·우크라 형제들, 평화 되찾길”

    정순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대주교가 부활절을 앞두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 대주교는 12일 “부활의 은총과 생명이 온 세상에 함께하기를 빈다”면서 “우리와 한 형제인 북한의 형제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하루빨리 평화를 되찾아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신앙생활이 어려웠던 점을 언급한 정 대주교는 “이제 팬데믹이 정점을 지나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면서 “평화방송 미사나 인터넷 방송 미사가 많은 위로를 주는 통로 역할을 해줬으나 이제 각자의 ‘동굴’에 ‘안전하게’ 또 더러는 ‘안일하게’ 방송 미사에 안주하고 싶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하고 불러내시는 듯하다”고 강조했다. 라자로는 요한 복음서 11장에 나오는 인물이다. 병으로 죽어 동굴 무덤 안에 있던 라자로에게 예수가 “이리 나오라”고 하자 라자로가 살아 나왔다. 정 대주교는 “신앙은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이고, 방송으로는 미사의 성사성을 채울 수 없다”면서 “방송으로 미사를 시청하는 것은 실제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아니기에 완전한 미사와 같은 것이 아니지만, 몸이 불편해 부득이 성당에 올 수 없는 분들은 여전히 고마운 도구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를 향한 메시지도 남겼다. 정 대주교는 “2년 이상의 코로나 사태로 어려우신 분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잘 챙겨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 대주교는 오는 17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주례한다.
  • [STOP PUTIN] 러시아 군에 짓밟힌 우크라이나 여성 최초의 육성 증언

    [STOP PUTIN] 러시아 군에 짓밟힌 우크라이나 여성 최초의 육성 증언

    너무 끔찍하고 잔인한 얘기를 옮겨야겠다. 러시아 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남편이 죽임을 당한 우크라이나 여인의 생생한 증언이다. 수도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70㎞ 떨어진 시골 마을에 사는 안나(가명, 50)가 들려준 얘기다. 영국 BBC는 러시아 군의 퇴각 이후 숱하게 나온 성폭행 전언들 가운데 최초로 얼굴을 드러내고 육성을 들려준 안나의 피맺힌 증언을 11일(이하 현지시간) 상세히 옮겼다. 외국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왔던 지난달 7일 안나는 남편과 함께 집에 있었다. “총을 쏘는 순간, 그는 날 근처 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내게 ‘옷을 벗지 않으면 쏴버린다’고 위협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날 죽이겠다고 계속 겁을 줬다. 그 뒤 나를 강간하기 시작했다.“ 안나는 그가 러시아와 한 패인 체첸 출신의 젊고 마른 병사였다고 했다. “그가 날 강간하는 동안, 네 명의 군인이 더 들어왔다.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를 데려간 뒤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난 다른 병사들에 의해 구원 받았다고 믿는다.” 그녀가 집에 돌아와 남편을 찾았는데 배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그는 날 구하기 위해 쫓아오다 총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이웃 집에 피난처를 마련했지만 교전 때문에 남편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었다. 결국 남편은 이틀 뒤 숨졌다.안나는 얘기를 들려주는 내내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이웃과 함께 남편을 묻은 집 뒤뜰의 무덤을 보여줬다. 큰 나무 십자가가 무덤에 서 있었다. 안나는 현지 병원에 다니며 심리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구해준 병사들은 며칠 더 그녀 집에 머물렀다. 병사들은 총구를 겨눈 채 남편이 쓰던 물건을 달라고 했다. “그들이 떠났을 때, 나는 마약과 비아그라를 발견했다.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종종 술에 취해 있었다. 대부분은 살인자, 강간범 및 약탈자다. 괜찮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안나의 집을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면서 BBC 기자는 또 다른 소름끼치는 얘기를 들었다. 한 여성이 강간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웃들은 안나를 짓밟은 병사가 똑같이 이 여인을 범한 것이라고 했다. 피해 여성은 40대인데 그녀는 개전 후 주인이 떠난 집의 침실에 갇혀 끔찍한 일을 당했다. 매트리스와 이불에 커다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구석에 립스틱으로 글씨를 적은 거울이 있었는데 ‘모르는 이에게 고문 당하고 러시아 병사들에 의해 묻혔다’라고 쓰여 있었다. 옥사나란 이웃은 러시아 병사들이 그 여인의 시신을 발견하고 묻어준 뒤 떠났다며 “그들이 내게 그녀가 강간당했으며 목이 베이거나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다 죽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피가 아주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여인 역시 그 집 마당에 묻혔다. BBC 기자가 방문한 다음날 경찰이 부검했는데 정말로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목에 길고 깊게 베인 상처가 있었다고 했다. 키이우 경찰 책임자인 안드리 네비토프는 키이우 서쪽 50㎞ 떨어진 다른 마을의 성폭행 사건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례는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지난달 28일 보도했던 내용으로 보인다.네비토프는 마을의 끝에 30대 부부와 어린 자녀가 살고 있었는데 “지난달 9일 여러 러시아 병사들이 집안에 들어왔고, 남편은 아내와 아이를 보호하려 애썼지만 결국 마당에서 그들의 총알 세례를 받고 말았다”고 전했다. 그 뒤 두 병사가 번갈아 아내를 강간했다. 그들은 떠났다가 돌아와 그녀를 범하고 또 범했다. 그들은 그녀가 저항하면 어린 소년을 해칠 것이라고 위협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저항하지 못했다. 군인들은 떠나며 집을 불태우고 가족의 개들도 쏴죽였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탈출한 뒤 경찰에 신고했고, 네비토프의 팀이 그녀를 만나 증언을 들었다. 이웃들이 남편의 시신을 정원에 묻었다. 경찰은 무덤을 파헤쳐 부검을 했다. 그들은 이 사건을 국제법정에 제기할 계획이다. 우크라이나 인권 옴부즈맨 류드밀라 데니소바는 몇몇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다. “14~24세의 소녀와 여성 25명이 부차의 한 집 지하실에 감금된 채 체계적으로 강간당했다. 그들 중 9명이 임신했다. 러시아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갖지 못하게, 어떤 남자와도 성적 접촉을 원하지 않을 정도로 강간하겠다고 말했다.” 데니소바는 여러 제보 전화를 받고 있다고 했다. “25세 여성이 전화를 걸어 16세의 여동생이 앞 거리에서 강간당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들이 여동생을 강간하면서 ‘모든 나치 매춘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외치더라고 했다.” 방송 기자는 점령 기간 러시아 군대가 저지른 성범죄의 규모를 평가할 수 있는지 물었다. 데니소바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대다수는 현재 심리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증언하지 않으면 범죄로 기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가 강간을 포함한 전쟁 범죄 혐의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단죄하기 위해 유엔에 의해 특별재판소가 설립되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나의 말이다. “푸틴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해가 안 된다. 우리는 석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데, 왜 그는 협상을 할 수 없는가? 왜 그는 점령하고 죽이고 있는가?”
  • [열린세상] 죽은 왕실의 사회, 살아 있는 시민의 사회/양동신 건설인프라 엔지니어

    [열린세상] 죽은 왕실의 사회, 살아 있는 시민의 사회/양동신 건설인프라 엔지니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멀게만 느껴졌던 조선 왕조의 인간미를 입체감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임오화변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이루어 냈던 영정조의 안정적인 치세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융건릉을 찾아갔다. 융건릉은 정조는 물론 장조(사도세자), 헌경왕후(혜경궁홍씨) 등 다양한 인물들이 합장돼 있는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융건릉의 면적은 84만㎡가량 된다. 2만 가구 정도의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는 크기의 땅이다. 산책길은 3㎞가량 되는데 울창한 수목을 따라 천천히 조선의 기억을 더듬으며 걸으니 한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이어 융건릉 앞으로 나오니 20여년 전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청계천 건설을 위해 필요한 상사모형을 융건릉 인근의 실험실에서 만들었는데, 연구를 하다 보면 밤늦은 시간까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화성시는 아직 많이 발달되지 않은 지역이었고, 종종 차가 끊겨 고생한 기억이 살아났다.  하지만 다시 융건릉이 위치한 화성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그 예전의 발달되지 않은 지역이 아니었다. 서쪽으로는 봉담신도시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 무려 80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동탄신도시가 존재한다. 융건릉 인근에도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22층 796가구 규모의 단지였다. 주변에 대학가나 맛집들도 많은데, 아마도 다시 20년 후에 찾으면 이 지역 역시 상당히 도시화가 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입주민들도 살짝 부러웠는데, 이처럼 산책하기 좋고 잘 보존된 유적지가 주변에 있으니 삶이 윤택해질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반년 넘게 논쟁 중인 장릉 검단신도시 아파트 불법건축 논란이 떠올랐다. 물론 현재 법적 분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해당 사건은 법적인 판단에 따라 처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보자면, 과연 왕릉의 경관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것도 세종대왕이나 영정조와 같은 성군도 아니고, 병자호란으로 대표되는 인조의 아버지 무덤인데 말이다.  수원 화성은 정조가 세운 이상적인 도시로서, 성벽만 최신 기술로 올린 게 아니다. 축만제와 같은 저수지를 지어 농업 기술의 발달을 이끌고 소출량도 늘린 자급 도시였다. 성 안의 상업시설까지 발달했다. 백성들이 윤택하게 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돼 있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관점에서 만들어진 도시가 화성이라는 말이다.  만약 융건릉 인근에도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서 김포 장릉에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죽은 정조는 어떤 말을 할까. 본인이 처음 계획도시로 시작한 화성이 이처럼 수백만 명이 윤택하게 살아가는 도시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기뻐하지 않을까. 김포 장릉이 지어질 당시 서울의 면적은 고작 44.3㎢에 불과했지만, 현재 서울의 면적은 605.2㎢에 이른다. 당시에는 김포도 화성도 구리도 다 사람이 별로 없던 시골이었겠지만, 지금은 각각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풍수지리학적 문화재 가치 보존을 앞세워 현대인들의 주거 방법을 제한하는 게 온당한 일일까. 왕릉과 같은 문화재를 옮기자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무덤의 경관이라는 이유로 건물의 높이가 제한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냐는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죽은 왕실의 사회보다, 살아 있는 시민들의 사회가 됐으면 한다.
  • 서방 우크라 무기 지원, 러 시리아戰 사령관 임명… 돈바스 일촉즉발

    서방 우크라 무기 지원, 러 시리아戰 사령관 임명… 돈바스 일촉즉발

    英총리·EU위원장 등 우크라 방문“절대 침략받지 않도록 지원할 것”젤렌스키 “푸틴 나서야 협상 진전” 러, 마카리우서 132명 학살 의혹새 사령탑 ‘시리아 민간 살해’ 혐의‘부차 학살’과 ‘크라마토스크 기차역 폭격’을 계기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립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의 목표를 돈바스 지역 등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으로 수정하면서 서방은 잇달아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지원 확대 및 대러 제재 강화를 약속하는 반면 러시아는 최고 야전 사령관을 교체하며 전쟁의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했다. 사전에 공개되지 않은 방문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영국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장갑차 120대와 새로운 대함 미사일 등 1억 파운드(약 1600억원) 규모의 군사 원조와 세계은행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출 보증 확대 등을 약속했다. 존슨 총리는 “영국이 매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절대 침략받지 않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치 지도자가 국제 안보 상황에서 ‘절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흔치 않다”면서 존슨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전면적이고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고 평가했다. ‘부차 학살’을 계기로 비극의 현장을 확인하려는 서방 지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요제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지난 8일 부차의 집단 무덤을 방문하고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절차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9일에는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가 부차를 찾았다.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의혹도 잇따랐다. 키이우에서 50㎞ 떨어진 도시 마카리우의 바딤 토카르 시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마카리우에서 132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며 시신이 대규모 공동 무덤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에 점령당했던 키이우 인근 부조바 마을에서도 수십 구의 민간인 시신이 주유소 근처 배수로에서 확인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돈바스 총공격을 준비하는 러시아군은 시리아 내전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남부군관구 지휘관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60) 장군을 이번 전쟁의 총사령탑으로 임명했다고 미국과 유럽 정부 관계자들이 밝혔다. 드보르니코프는 2015년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군사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반군이 장악한 도시 알레포의 인구밀집 지역 폭격을 지시해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를 낸 의혹을 받고 있다. 동부 지역에서는 사실상 러시아군이 패배한 키이우 등 북부 지역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잭 와틀링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게재한 칼럼에서 “러시아의 항공 방어는 돈바스 지역에서 범위가 비교적 넓으며, 상당한 공군력을 동원해 (공격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의 장비 손실률은 지금까지보다 높을 것이며 일부 부대를 재건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공세 강화에 대비해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재차 호소했다. 그는 ‘민간인 집단 살해’ 상황에서도 평화협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현재까지 푸틴 대통령을 제외한 실무 대표단에 협상이 한정됐다는 점에서 신속한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최종 협상안이 되도록 빨리 나오려면 자신과 푸틴 대통령의 양자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 대가야의 왕·귀족 무덤 700여기 줄지어 장관 연출

    대가야의 왕·귀족 무덤 700여기 줄지어 장관 연출

    한반도 최대 삼국시대 고분군봉분 없는 소형 무덤도 수만기대가야고분군(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주산(해발 310m)의 남동쪽 능선 위에 있다. 대가야 왕을 비롯한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봉토분) 700여기가 줄지어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서기 400년 전후부터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160여년간에 걸쳐 조성됐다. 무덤은 해발 160∼180m 구간에 직경 20m 이상의 대형분, 해발 100∼160m 구간에 직경 10∼15m의 중형분이 집중돼 있다. 올라갈수록 규모가 큰 것을 볼 때 왕의 힘이 커지면서 더 높은 곳에, 더 큰 무덤을 만들려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형분의 주위와 능선 사면에는 봉분이 없는 소형 무덤 수만 기가 자리잡았다. 한반도 최대의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특히 주산 능선 정상부의 44·45호 고분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 묘(껴묻이) 왕릉이다. 중국의 순장은 100~200명을 집단으로 묻거나 머리만 따로 묻는 형태인데, 대가야의 순장은 하나의 봉분 주인공과 같은 공간에 순장자들을 매장하거나 별도의 순장곽에 묻었다. 이를 통해 사후에도 현세의 삶이 재현되고, 권력자들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이 계속되기를 원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대가야 고분들이 도읍지나 집단 거주지를 감싸는 산이나 구릉에 있는 점도 왕이나 귀족세력이 죽어서도 국가나 자신들의 영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피묻은 장갑 끼고…”법의학팀, 부차의 비극 밝힌다

    “피묻은 장갑 끼고…”법의학팀, 부차의 비극 밝힌다

    때로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다.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우크라이나 부차(Bucha)에서는 거리에 널린 시신들이 ‘그날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키이우 법의학 수사팀이 6주 간의 러시아 침공 동안 러시아군이 민간인에게 가한 테러를 기록하기 위해 부차에 도착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너무 심하게 타서 머리와 몸통의 절반만 남거나 참수됐거나 두개골이 함몰된 시신들이었다. 수석 조사관이 무릎을 꿇고 조용히 사인을 나열하면 동료가 담담하게 그것을 기록했다. ‘가죽 재킷, 휴대폰, 신분증 없음. 부패된 구강 내부, 부러진 팔다리의 움직임 범위, 파편으로 인한 화상, 총알 상처’ 등을 기재하면 도시의 자원 봉사자가 각 시체를 수습하도록 도왔다. 법의학팀의 파란색 장갑은 곧 붉은 피로 젖어갔다. ‘부차=러시아 전쟁범죄 피해’ 동의어로 분쟁이 시작되기 전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 떨어진 인구 3만 7000여 명의 조용한 소도시는 이제 러시아 전쟁 범죄와 동의어가 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부차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동쪽에 병력을 재집결하기 위해 철수한 첫 번째 장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점령군이 남기고 간 살인, 강간, 고문, 약탈 등 민간인에 대한 폭력의 잔상은 끔찍했다. 시민들은 증언했다. “우리는 러시아인들에게 시신을 매장하게 해달라고 간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신이 차갑기 때문에 신경쓸 필요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곧 개들이 시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위생 문제때문에라고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결국 무덤을 파도록 허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부차시의 장례식과 사망 등록을 감독하는 셰르히 카플리치니는 “영안실에는 전기도 없는데 순식간에 시신들로 가득 찼어요. 거리에는 여전히 널려있는 시신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차 시의회 헬프라인 자원봉사자 타티아나 리핀스카는 “저격수가 우물에서 물을 길러 오려던 민간인의 다리를 쐈고 적어도 한 명의 여성이 사망했어요”라고 말했다. “어떤 형제국이 탱크타고 이웃집 쏘나요?” 비판 러시아 군인과 대화를 나눴다는 47세의 한 남성은 “그들은 우리가 형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제가 탱크를 타고 집에 와서 이웃을 쏘나요?”라고 울먹였다. 러시아 외무부는 사망한 민간인의 영상과 사진이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해 미국에 ‘명령’을 받은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러위성사진을 비교하면 러시아군 점령 시기에 민간인으로 보이는 이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AFP 통신 등이 지난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 조사팀의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 9∼11일 사이 부차의 야블론스카 거리에는 사람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검은 물체가 등장한다. 이 물체들의 위치는 지난 2일 우크라이나군이 부차를 탈환한 후 민간인 복장의 시신을 발견한 곳과 정확히 같으며 분석 결과 이 물체들이 3주 이상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NYT는 보도했다. 러 점령 뒤 민간인 사망이 벌어졌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러 부인에도 위성사진으로 포착된 민간 사살 증거 미국 민간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한 위성사진에도 부차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들이 러시아의 부차 점령 기간에 생긴 것임을 증명한다고 AFP는 전했다. 스티븐 우드 맥사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부차에서 수집된 맥사의 고해상도 위성사진은 거리에 누워있는 시신들이 수 주 동안 방치돼 있던 것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 [속보] “러시아군, 마카리우서도 132명 집단학살”

    [속보] “러시아군, 마카리우서도 132명 집단학살”

    바딤 토카르 마카리우 시장 우크라이나 의회TV 인터뷰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 마카리우에서도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마카리우 시장은 밝혔다. 프랑스 dpa 통신 등에 따르면 바딤 토카르 마카리우 시장은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의회 TV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마카리우에서 132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토카르 시장은 “러시아군이 쏜 총에 맞은 시신들을 시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으고 있다”며 “대부분 시체는 대규모 공동 무덤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또한 마카리우의 거의 모든 기반 시설이 파괴됐고 아파트 단지·병원이 폭격을 받아 부서졌다고 그는 전했다. 도시의 약 45%가 파괴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거의 한 달 이상 전기·수도·가스·전화선 없이 지내고 있다”며 “집에 필수품도 없으며 의사들이 모두 대피해 의료적 재앙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뢰가 마을 주변에 뿌려져 주민들이 통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마카리우는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곳이다. 침공 전에는 주민 약 1만5000명이 거주했으나 현재는 1000명도 남지 않았다.
  • “러시아군이 거의 매일 아파트에 포격” 마리우폴 탈출 일가족 증언

    “러시아군이 거의 매일 아파트에 포격” 마리우폴 탈출 일가족 증언

    러시아군이 포위공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탈출한 일가족이 전쟁의 참상을 전했다. 7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최근 마리우폴에서 탈출한 변호사 올가 아노소바(41)는 자신과 가족이 함께 살던 아파트가 러시아군의 포격 대상이었으며, 아파트에 거의 매일 포탄이 떨어졌다고 했다.1층에 살던 올가는 남편 알렉산데르(29)와 아들 키릴(8) 그리고 2층에 살던 어머니 루드밀라(65)와 함께 인근 9층짜리 건물에 있는 지하 대피소로 이동했다. 가족은 50㎡(약 15평) 정도의 주차 공간을 다른 주민 40여 명과 함께 썼다. 당연히 누울 공간은 없었다. 낮에는 포격, 밤에는 영하 8도의 추위를 견뎌야 했다. 그 사이 올가의 어머니가 고혈압 등 지병의 영향으로 숨지고 말았다.며칠 후 올가는 아파트에서 먹을 것을 가져오기 위해 외출을 감행했다. 러시아군의 포격이 잦아든 데다가 민간인 탈출을 위해 일시 휴전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가 아닌 돌무더기뿐이었다. 결국 그는 전쟁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고 남편과 상의 끝에 피란길에 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올가 가족이 떠난 지하 대피소에는 이틀 후 포탄이 떨어져 거기 머물던 주민 16명이 숨지고 말았다. 당시 올가는 마리우폴을 떠나는 유일한 버스가 러시아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와 가족은 버스를 타고 해안을 따라 러시아가 점령한 한 마을까지 갔다. 거기서 일행은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자포리지야로 향하는 적십자 버스에 가까스로 올라탔다. 그후로는 남서부 오데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현재 오데사 대피소에서 머물고 있는 올가와 그 가족은 이제 친적이 사는 몰도바로 향할 계획이다. 그는 “세계는 마리우폴의 참상을 알고 있지만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한때 행복했던 우리 집은 이제 무덤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 “러시아군, 어린이 등 우크라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썼다” 주장 나와

    “러시아군, 어린이 등 우크라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썼다” 주장 나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가운데,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썼다는 명백한 증언이 나왔다. 7일(현지시간) 키이우 북부의 마을인 오부호비치 주민들은 영국 BBC와 한 인터뷰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군이 인근 학교에 숨은 뒤, 주민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학교로 끌고가 가둔 채 인간방패로 썼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지난달 14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아 전선에서 밀려났다. 이후 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찾아낸 뒤 총으로 위협해 지역 학교에 가뒀다. 해당 학교에는 우크라이나군을 피해 몸을 숨긴 러시아 군인들이 머물고 있었다.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쓰기 위해 학교로 끌고가는 과정에도 폭력이 행사됐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집 대문에 우크라이나어로 ‘사람’이라는 단어를 써놓았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민간인이 대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러시아군에게 빌미가 되고 말았다. 러시아군은 집 문을 두드리다가, 집주인인 문을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갔다. 이렇게 ‘인간방패’를 위해 데려간 주민은 노인과 어린이를 포함해 약 150명에 달했다. 60세의 한 남성 주민은 BBC와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인들은 파시스트이고 반달족이다. 아이들과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러시아군 일부는 술에 취한 채 주민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벨라루스로 끌고가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BBC는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인근 이반키우 지역에서도 민간인에게 총을 쏘고 포로로 잡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키이우 북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오부호비치를 점령하고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해당 지역이 벨라루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가깝기 때문이다. 러시아, 집단학살로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현재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했지만, 러시아군이 철수한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는 집단 매장된 민간인 주검이 잇따라 발견됐다. 키이우 북서부 외곽도시 부차의 아나톨리 페도루크 시장은 두 개의 대형 무덤에서 약 270명의 거주민 주검이 매장된 채 발견됐으며, 길거리에서도 손발이 묶여 처형된 이들 30여명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부차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졌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쏟아졌고, 결국 유엔총회는 7일(현지시간)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가결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이유로 미국이 추진한 이번 결의안에 서방 국가들과 한국 등이 찬성표를 던진 반면 북한, 중국, 이란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2011년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한 리비아에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쫓겨난 두 번째 나라가 됐다.
  • [씨줄날줄] 카틴 숲과 부차/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카틴 숲과 부차/임병선 논설위원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은 1943년 4월 13일 서부 스몰렌스크 근교 카틴 숲에서 무려 4400명이 묻힌 무덤을 발견했다. 또 메드노예에 6300명, 벨라루스 민스크에 3870명, 우크라이나 하리코우에 3800명의 집단 매장지가 있었다. 키이우와 헤르손에서도 비슷한 무덤들이 발견됐다. 신원을 확인했더니 1940년 9월 소련군에 끌려간 폴란드군 장교와 경찰, 지식인들이었다. 1939년 8월 23일 불가침 조약을 맺은 나치와 소련은 중간에 낀 폴란드를 유린하게 됐다. 나치는 그해 9월 1일 침공을 시작해 폴란드 서쪽으로, 소련은 같은 달 17일 폴란드 동쪽으로 쳐들어갔다. 바르샤바가 함락되자 폴란드군은 나치보다 그래도 공산 혁명을 표방한 소련이 낫겠다고 판단해 그들에게 항복했다. 소련군은 사병들은 풀어 줬지만 장교 등은 사상이 불온하다며 자국의 코젤스크·스타로벨스크·오스타슈코프 수용소로 이송했다. 이렇게 2만 2000명이 끌려갔다. 독일은 수용소로 이송된 포로들을 소련군이 처형한 것이라며 침공의 당위성을 선전했다. 소련은 폴란드 포로들이 1941년 스몰렌스크 공사에 투입됐는데 나치가 몰살한 것이라고 맞섰다. 독일을 패망시키려면 소련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던 영국과 미국은 못 들은 척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군의 잔학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소련 주장대로 폴란드 땅을 넘겨줬다. 소련 정부가 진실을 고백한 것은 1990년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였다. 지난 주말 러시아군이 퇴각한 키이우 외곽 부차, 모티진 등에서 두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머리 뒤에 총알이 박힌 민간인 시신들이 나왔다. 카틴 숲 참사와 닮았다. 한 시신은 눈과 코가 드러날 정도로 묻어 망자(亡者)에 대한 예도 차리지 않았다. 어제는 길을 가는 민간인에게 러시아군 탱크가 발포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폴란드가 포로들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스탈린이 만주로 달아났다고 거짓말했는데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동영상을 조작했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우리처럼 단일 민족으로 분단된 폴란드가 겪은 아픔을 원자력발전소는 있지만 핵무기와 핵물질 농축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되풀이하고 있다.
  •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거리 곳곳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 있어요. 0.5m 깊이의 얕은 무덤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묻혔어요.” 러시아군에 한 달 넘게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출한 여성은 거리에서 목격한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친러 반군 활동지인 동부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무력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저지선으로 결사항전했던 우크라이나군에게 보복하듯 러시아군은 집요하게 포격과 공습을 가해 대부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시간) “지난 몇 주간 러시아군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그중 210명이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러시아군이 전쟁범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동식 소각 시설에서 시신들을 태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이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것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라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을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수용소에 빗댄 것이다. 최소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와 보로카의 참극을 잇는 마리우폴의 재앙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쟁 전 인구 40만명의 마리우폴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민간인이 15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기반시설의 90% 이상이 파괴된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은 극도의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하베르투르크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도적 화물을 싣고 마리우폴에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러시아)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한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 등 거점 도시에서는 필사의 탈출이 시작됐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돈바스 지역 민간인에 대한 긴급 대피령을 선포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피란 행렬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7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 합의하고 다양한 무기 시스템을 제공할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 부차와 러시아의 통제에서 최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본 끔찍한 민간인 살해를 규탄했다”면서 “용감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기 위해 지금, 또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시가전으로 숨진 어린이만 210명‘이동식 소각’으로 증거인멸 의혹 유엔, 러 자격정지 결의안 표결러 “반대표 던져라” 대놓고 협박“거리 곳곳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 있어요. 0.5m 깊이의 얕은 무덤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묻혔어요.” 러시아군에 한 달 넘게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출한 여성은 거리에서 목격한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친러 반군 활동지인 동부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무력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저지선으로 결사항전했던 우크라이나군에게 보복하듯 러시아군은 집요하게 포격과 공습을 가해 대부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시간) “지난 몇 주간 러시아군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그중 210명이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러시아군이 전쟁범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동식 소각 시설에서 시신들을 태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이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것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라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을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수용소에 빗댄 것이다. 최소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와 보로카의 참극을 잇는 마리우폴의 재앙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쟁 전 인구 40만명의 마리우폴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민간인이 15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기반시설의 90% 이상이 파괴된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은 극도의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일 이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민간인 대피를 시도했지만 러시아군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한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 등 거점 도시에서는 필사의 탈출이 시작됐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돈바스 지역 민간인에 대한 긴급 대피령을 선포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피란 행렬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은 7일(현지시간) 1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총회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을 표결한다. 기권·불참국을 뺀 나머지 3분의2 회원국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지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회원국들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오는 7월 장관급 회의, 11월 정상회의가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회의체의 러시아 퇴출을 촉구했다.
  • [영상] 러軍 탱크의 무덤이 된 키이우 고속도로…줄줄이 박살

    [영상] 러軍 탱크의 무덤이 된 키이우 고속도로…줄줄이 박살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선 러시아군의 군사적 손실도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7일(이하 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가루가 된 러시아군 탱크와 군용 차량이 키이우 고속도로를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보도했다. 6일 국제 군사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블루사우론’은 러시아군이 떠난 키이우의 현재 모습을 공유했다. 하늘에서 본 키이우는 폐허로 변해 있었는데, 곳곳에서 우크라이나군 반격에 박살 난 러시아군 탱크가 제법 눈에 띄었다.특히 키이우와 다른 주요 도시를 잇는 E40 고속도로는 러시아군 탱크의 무덤이 돼 있었다. 블루사우론은 “키이우에서 러시아군 행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첨부했다. 동영상 속 러시아군 탱크와 보급 트럭 등 군용 차량은 줄줄이 가루가 되어 있었다. 이를 두고 데일리메일은 우크라이나군 전략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을 몰아내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매복 공격이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키이우에서 약 25㎞ 떨어진 모슈춘에서도 우크라이나군 공격으로 파괴되거나 러시아군이 버리고 간 탱크가 확인됐다. 모슈춘은 키이우 북서쪽 호스토멜 비행장 근처 최전선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곳이다.지난달 25일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351명이 전사하고 3825명이 다쳤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군 전사자가 7000명~1만 5000명이라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1만 6000명이라던 우크라이나 정부 추산과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러시아가 전사자를 축소한 게 아니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자국 전사자 시신 수습을 거부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 공격을 받은 처지지만, 개나 고양이가 죽어도 이렇게 행동해선 안 된다”며 “그들은 동물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현재 최소 2000구의 러시아군 시신을 보관 중이다.
  • “0.5m 깊이 무덤에 수많은 시신들이...” 마리우폴의 비극

    “0.5m 깊이 무덤에 수많은 시신들이...” 마리우폴의 비극

    “거리 곳곳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 있어요. 0.5m 깊이의 얕은 무덤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묻혔어요.” 러시아군에 한달 넘게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출한 여성은 거리에서 목격한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친러 반군 활동지인 동부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무력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저지선으로 결사항전했던 우크라이나군에게 보복하듯 러시아군은 집요하게 포격과 공습을 가해 대부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시간) “지난 몇주간 러시아군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그 중 210명이 어린이었다”고 밝혔다.  시당국은 러시아군이 전쟁범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동식 소각 시설에서 시신들을 태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이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것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라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을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수용소에 빗댄 것이다.  최소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와 보로댠카의 참극을 잇는 마리우폴의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쟁 전 인구 40만명의 마리우폴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민간인이 15만명으로 추산된다. 기반시설의 90% 이상 파괴된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은 극도의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일 이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시도했던 민간인 대피마저 러시아군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하베르투르크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도적 화물을 싣고 마리우폴에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러시아)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한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 등 거점 도시에서는 필사의 탈출이 시작됐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돈바스 지역 민간인에 대한 긴급 대피령을 선포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피란 행렬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은 7일(현지시간) 1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총회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을 표결한다. 기권·불참국을 뺀 나머지 3분의 2 회원국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지라”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회원국들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오는 7월 장관급 회의, 11월 정상회의가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회의체의 러시아 퇴출을 촉구했다.
  • “마리우폴 거리 곳곳에 시체가..민간인 5천명 죽어

    “마리우폴 거리 곳곳에 시체가..민간인 5천명 죽어

    우크라이나인 알렉산드르 오베딘스키는 죽은 줄 알았던 12세 손녀 키라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러시아군에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인 마리우폴을 어렵게 탈출했지만 키라의 아버지는 러시아 군 총에 숨졌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손녀의 생사조차 몰라 불안에 떨던 그는 연락을 받고 기뻤지만 곧 낙심했다. 오베딘스키는 “키라는 현재 도네츠크의 한 병원에 있고 귀와 얼굴, 다리를 다친 상태”라면서 “부상이 나으면 손녀가 곧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울먹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마리우폴을 간신히 빠져나온 율리아라는 이름의 한 여성도 “거리 곳곳에 시체들이 있다. 고작 0.5m깊이로 만든 얕은 무덤에 사람들이 수없이 묻혀 있다”며 자신이 목격한 고향의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전략적 요충지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 점령지인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합병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다. 이 점 때문에 러시아군이 한달 이상 이 지역을 둘러싸고 집중 포격·공습해왔다. 어린이 병원에 여러 개의 폭탄이 떨어졌고 제1시립병원 건물 중 하나가 파괴됐다.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거의 50명이 산 채로 불에 탔다”며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격을 피해 숨어 있던 드라마 극장도 폭격을 당했다”고 참담한 상황을 알렸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와 또 다른 위성도시인 보로?카에서 수백명이 학살당한데 이어 남부 마리우폴에서도 참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최근 한달 간 러시아의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으며, 그중 210명은 어린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도시기반 시설 90% 이상이 파괴됐고 이중 40%는 더이상 복구할 수 없는 수준이다. 키라처럼 수용소로 끌려가는 이들도 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은 우리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곳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다”라고 말했다고 USA투데이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우슈비츠는 과거 나치에 의해 유대인 대량 학살이 자행됐던 수용소다. 가디언에 따르면 인구 40만명인 이 도시에서 15만여명이 현재 군에 포위된 상태다. 러시아 군은 국제적십자위원회의 구호물자 버스 진입도 막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학살을 은폐하려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 독립운동 순국 ‘창원 8의사 묘’ 국립묘지수준 관리...국가관리묘역 지정 기념식

    독립운동 순국 ‘창원 8의사 묘’ 국립묘지수준 관리...국가관리묘역 지정 기념식

    1919년 경남 대표 독립 만세운동인 4·3 삼진(진동·진전·진북면)의거 당시 순국한 8인 의사 묘역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기념식이 7일 창원 진전 8의사 묘역에서 열렸다.창원시는 4·3 삼진의거 의미를 되새기고 순국한 8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날 진전 국가관리묘역에서 경남동부보훈지청이 주관해 기념식을 했다고 밝혔다. 창원 진전 국가관리묘역은 4·3 삼진의거에서 순국한 김수동, 변갑섭,변상복, 김영환,고묘주,이기봉,김호현,홍두익 등 8인 의사의 합동 묘역이다. 유족들이 각기 무덤을 조성해 모시던 8의사를 1981년 4월 22일 진전면에 한 곳으로 모아 8의사 합동묘역을 조성했다. 이들은 1919년 4월 3일 마산합포구 진전면·진북면·진동면 3개 지역 주민이 연합해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삼진의거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순국했다. 1981년 4월 조성된 8의사 묘역은 국가보훈처의 국가관리묘역 지정 제도에 따라 지난 1월 26일 창원 진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됐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등이 안장된 국립묘지 외의 장소를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기 위해 2020년 9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이에 창원시는 지난해 12월 17일 8의사 묘역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실태조사서 및 지정요청서를 경남동부보훈지청에 제출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됐다. 오는 7월 중에 창원 진전 국가관리묘역 지정이 고시될 예정이다. 진전 8의사 묘역의 국가관리묘역 지정은 전국에서 서울 수유 국가관리묘역과 경기 안성 사곡 국가관리묘역, 거제 일운 국가관리묘역 등 7곳에 이어 여덟 번째다. 경남동부보훈지청은 묘역관리 설계 용역을 거쳐 환경정비와 보완공사를 하는 등 8의사 묘역을 국립묘지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한다.이날 기념식에는 황기철 국가보훈처장과 지역 국회의원, 보훈단체장, 8의사 유족 등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 경남동부보훈지청과 창원시는 국가관리묘역 관리와 활성화를 위해 협력하고 함께 노력하기로 협약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1981년 8의사 묘역이 조성된 뒤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되기까지 묘역 관리에 힘쓴 창원시에 감사패를 수여했다. 황 보훈처장은 기념사에서 “국가관리묘역에 걸맞은 품격있는 추모공간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로 잘 관리해 유가족과 창원시민의 긍지와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서무 창원시장은 “지자체와 지역 주민이 함께 뜻을 모아 노력한 덕분에 8의사 묘역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면서 “순국선열의 헌신을 기억하고 희생에 보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훈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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