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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탈출… 18P 치솟아/주가 후장뜀박질 7백20선 회복

    ◎금융주 거래 1천만주 넘어 주가가 18포인트나 뛰었다. 7일 주식시장은 최근의 무덤덤한 조정국면을 돌연 벗어던지고 상승가도로 내달았다. 종가는 전날보다 18.03포인트가 올라 종합지수가 7백20.96까지 올라섰다. 거래량도 2천1백18만주에 달했다. 개장지수로 플러스 7.8을 기록하면서 이날 장세는 탈조정기의 기미를 나타냈다. 전이틀장 연속하락해 종합지수 7백선이 재차 위협받자 개장전부터 기술적 반등에 대한 기대와 예측이 크긴 했으나 이같은 출발은 예상을 웃돈 것이었다. 따라서 2포인트가량 더 오르다 마이너스권까지 급반락한 후속장세가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전장 마감지수인 플러스4를 이날 전체시황의 결론으로 보는 투자자도 많았다. 그러나 후장 들자마자 장세는 급상승으로 다시 돌아서 종가까지 내쳐 뛰었다. 후장 급등세는 조정기를 마무리하는 기술적 측면보다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쏟아진 여러 풍문에 기인해 향후 장세에 대해서 부담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풍문사항은 여권의 내분이 어렵게 수습된 만큼 정국의 정상화를위해 여권이 지자제에 관련해 야당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지자제가 선거 그리고 시중유동성 급증으로 연결되는 탓에 증시가 들뜰 수밖에 없지만 일부에서는 이와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거래량도 전장분 8백40만주에 비해 후장에 크게 늘어나 전체거래량이 전날보다 8백만주가 불어났다. 금융업종에 다시 매기가 불붙어 1천2백만주 넘게 매매되면서 4.5%나 치솟았다.
  • “내각제가 3당통합 목적은 아니다”/김영삼대표 일문일답

    ­당내분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당개혁을 위한 복안은. 『모든 것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 ­노태우 대통령의 수습책 제시 이후 당내분이 수습될 것으로 예측됐는데 최창윤 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과 김윤환 총무를 만난 뒤 상황이 달라진 이유는. 『그분들을 만나 얘기를 잘 들었다. 최 수석은 비서관인데 어떻게 깊은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김 총무와는 여러 얘기를 많이 했다. 모든 것을 다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을 얘기했다』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 면담계획은. 『지금은 어떠한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오늘 회견내용을 내각제개헌 반대의 뜻으로 봐도 되는가. 『그렇다. 사실 당의 방침은 올 연말까지 물가ㆍ치안ㆍ민생문제 등 산적한 현안에 전력을 다하고 내각제를 연내 공론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는 당론이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로 당내부적으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을 알았다. 문서까지 봤다. 대표최고위원이 모르는 사이에 일이 추진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정치에서무결정 상태를 오래 끌고 가는 것은 옳지 않으며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국민다수와 야당이 내각제를 반대하는 것이 확실한데 개헌문제를 내년까지 끌고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4당체제로의 복귀도 고려해봤나. 『앞으로 모든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겠다. 남북통일과 정치ㆍ경제ㆍ사회안정을 위해 3당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국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 ­3당통합을 잘 했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는가. 『통합목적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일부에서는 내각제가 3당통합의 목적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통합결정은 통일과 국가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구국적 차원에서 내렸던 것이었다』 ­각서서명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이 지지하고 야당이 동의해준다면 내각제를 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권력구조 변경문제는 지도자들 간에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이나 야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려고 해도 개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이승만ㆍ박정희 씨의 불행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인이 약속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면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도 국민보다 우위에 갈 수 없다』 ­당내에서 내각제 반대투쟁을 할 것인가. 『오늘 회견 후 아버지를 뵈러 마산에 내려간다. 내려가서 여러생각을 해보겠다』 ­지방에서의 일정은. 『현재로선 모르겠다』 ­내각제에 대해 노 대통령과 시각이 다른 것 같은데 결별할 의사가 있나. 『여러 분 판단에 맡기겠다. 노 대통령에게는 여러 차례 절대로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역대 정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민주계 의원들은 합의각서가 공작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부끄러운 일이다. 박준병 총장에게는 동정이 간다』 ­당무복귀는. 『모든 문제를 혼자서 천천히 생각하겠다』 ­현재의 기분은. 『홀가분하다』
  • 「마르크스ㆍ고르비」의 평화/이재근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오늘의 세계에서 혜성과 같은 사나이다. 국제 정치무대의 스타플레이어이다. 안으로는 개혁과 개방,밖으로는 세계의 화해를 논하더니 하루아침에 노벨 평화상마저 거머쥐었다. 고르비의 노벨평화상을 서방측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부시 미 대통령은 『세계의 평화적 변혁을 추진한 용감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고 통일독일의 콜 총리는 『동서관계의 근본적 개선,유럽대륙분단의 종식,군축,지역분쟁해결에 기여한 공로』라고 찬양했다.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세계와 유럽의 화해 및 민주화 성공에 있어 그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했다. 이밖에 「일­소관계의 근본적 개척자」(가이후 일본총리),「지당한 일」(대처 영국수상),「소련 및 동구의 사회변혁 촉진 공로」(하벨 체코대통령)라는 찬사가 나왔다. 정작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쪽은 소련 내부였다. 그동안 소련인들 사이에는 고르비의 개혁정책이 너무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며 위선적이라고 하여 불만ㆍ불신의 소리가 높아온 터였다. 평화주의자,개혁의 기수,이 시대의영웅 고르비의 얼굴은 그래서 하나가 아니다. 언젠가 소련과학아카데미는 투표를 통해 고르비가 「레닌이후 최대의 인물」이라는데 동의했다. 반면 전소련 최고회의의장 그로미코(작고)는 고르비를 평하되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라고 했다. 두얼굴의 사나이 고르비의 관상은 어떤가. 우선 독일의 빌트지가 소개한 그것은 서양쪽의 「눈」이 될 것이다. 훤한 이마(대머리부분을 포함해서)는 지성과 의지력을,날카로운 눈은 탁월한 기억력,눈과 눈 사이의 깊은 골은 냉엄한 현실주의,듬직한 귓바퀴는 집요한 권력에의 의지를 나타낸다. 동양쪽의 고르비관상은 좀더 감칠 맛이 있다. 관상가 C씨에 의하면 고르비는 한세기에 한두사람 나올까 말까한 극귀의 상을 가졌다. 눈ㆍ코ㆍ귀 등 오관은 물론 두상과 체상전체가 둥글다. 북방계에 많은 정수체상으로서 마치 공이 비탈길을 굴러내려가듯 머물지 못하는 성격이다. 대단한 정력가이다. 게다가 아주 멀고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위력적인 눈은 세상사를 바로 볼줄 안다. 코끝이 굵고 둥글며 산근보다 코허리부위가 더 잘룩한 것은 코믹한 면도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쇼맨십도 풍부해서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설명이다. 결론컨대 C씨는 『물은 흐르는게 자연법칙이다. 계곡을 타고 강을 이루어 평화의 바다에 이르는 날이 멀지않다』고 했다. 고르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언했다고 봐줄 수 있다. 관상얘기가 좀 길어졌다. 어쨌든 고르비가 탁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견해들이다. 소련은 강대국이다. 마르크스­레닌이념으로 무장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종주국이다. 그 소련에 대한 침략이나 도발 또는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팽창적인 패권주의는 용납되지 않는다. 소련자신에 대한 보위와 같은 차원에서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혁명 70여년을 일관해온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의 세계전략이었다. 80년대초 브레즈네프 독트린개념이 담고 있는 것도 이것이었다. 마르크스­레닌은 전쟁이전에 폭력을 거론했다. 그들에 있어서는 폭력이야말로 피착취자가 착취자를 타도하는 수단으로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관계는 착취자의 폭력과 피착취자의 폭력사이의 계급투쟁이며 그것의 확대가 전쟁이다. 마르크스­레닌은 전쟁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에 있어서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제국주의가 사회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침략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확신에 따른 이른바 「전쟁불가피론」이다.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완전한 사회주의 아래서는 전쟁이 없어지고 따라서 군대의 필요성도 없어진다. 마르크스주의의 그러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주의 소련은 적대하는 진영에 포위된 사회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현저한 군국화의 길을 걸어온게 사실이었다. 그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희대의 인물 고르비가 천명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최대의 배경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적 사회주의가 막다른 곳에 왔고 소련체제와 그 이데올로기의 권위가 소련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렇게 보면 고르비의 개혁과 평화는 어디까지나 권력유지와 국제전략적 필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고르비는 누가 뭐래도 마르크스­레닌의 후예이다. 그런 고르비가 무엄하게도 「마약」과 같은 자본주의와 타협하여 시장경제ㆍ사유재산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레닌에의 반역이지만 그 후예일 수 밖에 없는 고르비가 노벨상을 그것도 평화상을 탄 것이다. 무덤속의 마르크스와 레닌,스탈린 세사람이 만난다면 그들 후예 고르비의 행각을 놓고 무슨 의논들을 할 것인가.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고르비의 정책이념과 성과가 세계평화에 기여했다고 인정되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앞날에 있다. 그 앞에는 발트3국 등의 분리독립문제,소수민족의 자치요구,경제재건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고르비가 국내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으로 회귀하는 사태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본의아니게도 평화파괴나 전쟁도발의 결과가 되지말란 법도 없다. 물론 상상이고 기우이지만 그런 상상해봐서 무익한 것은 없다. 소련과의 수교이후 새 관계를정립해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고르바초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지켜보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어서 생각해본 것이다.
  • 한ㆍ중,발해고분 첫 공동발굴/서울신문조사단ㆍ연변박물관팀,길림성서

    ◎7인몫 유골ㆍ토기다수 발견/“한민족여부 가려낼 중요한 사료” 【연변=황규호특파원】 서울신문사 중국 동북3성 역사유적 학술조사단은 언론사상 최초로 지난1일부터 발해유적발굴현장에 참여했다. 국내 저명 사학자 및 고고학자로 구성된 서울신문사 학술조사단은 연변박물관이 실시하고 있는 길림성 안국현 영경 동청촌 발해무덤에서 토기 등의 유물과 당시 발해사람들의 인골을 확인함으로써 발해삼채도기조사(서울신문 9월25일 보도)에 이은 두번째 학술조사성과를 거두었다. 연변박물관이 현재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발해무덤 군은 모두 11기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첫번째 발굴한 무덤에서는 당시 발해사람들을 형질인류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7인몫의 인골과 토기편이 쏟아져 나왔다. 토기편이외의 다른 껴묻거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전에 도굴당한 무덤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발굴한 10기의 무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발해문화의 실체를 규명할 유물들이 또 한차례 출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북길이 3m,동서너비 2.5m인 이 무덤은 북옥저 사람들의 무덤을 토대로 고구려사람들의 무덤형태를 추가로 받아들인 굴식돌방흙무덤(수헐식 석실봉토분)으로,발해시기에 유행한 다장풍속을 보여주었다. 발굴현장에서 인골을 감정한 서울대 최몽룡교수(고고학)는 7인몫의 인골가운데 단 1명만이 여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인 것으로 가려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인듯한 피장자는 키 1m70㎝ 나이 30세 정도의 남자로 추정되었으며 무덤속 남서쪽 모서리에 묻혔던 30∼35세 정도의 남자자뼈(척골)에서는 칼을 맞았던 깊은 상처흔적을 찾아냈다. 이 무덤군이 자리한 안국현 영경 동청촌은 목단강 지류 고동하를 지척에 둔 발해주요교통로상의 요충지. 고동하를 따라 북상하면 목단강 유역의 발해 세번째 도읍지 상경 용천부(오늘의 흑룡강성 발해진 동경성)로 이어질 뿐 아니라 용천부에서 두번째 도읍지 현덕부(오늘의 길림성 화용현 두도구)를 거쳐 당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동북3성에 대한 학술조사는 해방전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대가 민속분야에 국한해 실시했을뿐 유적발굴 현장참여는 이번 서울신문사 역사유적조사단이 처음이다.
  • 발해때 삼채도기 첫 공개/연변박물관,작년7월 길림성무덤서 발굴

    ◎3색 혼합 토기병ㆍ주발등 2점/서울신문사 역사유적학술조사단 제1신 【연변=황규호특파원】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 실체인 발해국(AD698∼926년) 옛 땅에서 나온 화려한 색조의 병과 주발 등 2점의 삼채도기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서울신문사 중국 동북3성 역사유적 학술조사단이 우리민족의 기원과 고대사에 관련한 잃어버린 역사의 땅에 도착,학술활동을 벌인지 2주일만인 24일 길림성 연변박물관에서 이 귀중한 자료를 확인한 것이다. 연변박물관은 화룡현문물관리소 문물공작대에 의해 지난해 7월 길림성 화룡현 팔가자진 북대촌 발해무덤에서 발굴된 이 유물은 연변박물관이 지금까지 전혀 공개하지 않고 보관해 왔다. 서울신문사 역사유족학술조사단과 연변박물관에 의해 해동성국 발해의 중요문화유산으로 공동평가된 이 삼채도기는 발해 옛 땅의 최초 출토품으로 밝혀졌다. 크기는 병의 경우 높이 18.2㎝,배지름 14.7㎝,밑지름 7.8㎝이고 사발은 높이 5.3㎝,입지름 11.6㎝,굽높이 8.7㎝,굽지름이 6.1㎝로 되어있다. 연변박물관학예연구팀과 서울신문사 역사유족 학술조사팀은 이 삼채도기가 당시 당의 삼채도기에 대응한 발해의 독자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하는데 견해를 같이했다. 이에따라 이 삼채도기를 학술상의 용어로 「발해삼채」라는 이름을 쓰기로 합의했다.
  • 「명기 홍도」의 전말을 보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느닷없이 기생 「홍도」의 묘비가 화제를 만들었다. 30년대 신파극의 대표적인 히로인 홍도가 실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원래 그런 이름의 명기가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극중 주인공이라는 식의 화제였다. 찬찬히 따져보면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좀 우습다. 어차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하는 홍도는 화류계 출신이고 화류계에 진출하려면 옛날 기생이름을 따는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으니,변사또의 수청기생 점고만 귀여겨 들어도 찾아질 수 있는 홍도를 작가는 주인공이름으로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조선시대의 기생 홍도가 그 모델이기라도 한 것처럼 연결하는 일은 턱도 없는 짓이다. 이치가 이렇게 명료한데도 미디어마다 이 뉴스를 상당한 크기의 지면을 별러가며 소개하고 있다. 제목도 「조선기생 홍도는 실존인물」식으로 붙여서 사진 곁들여 큼직큼직하게 소개했다. 왜 그랬을까. 「홍도」에 대한 관심이 왜 그리 높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새로 발견한 「명기」의 존재와 행적때문이었던 것 같다. 「명기」라는 말에는 호방한 남성문화가 조소되어 있다. 요즘처럼 왜소해지고 위축된 시대의 남성들에게는 아득한 전설처럼 들릴 그런 문화다. 새로 발견되었다는 「홍도의 묘비」는 남성들의 마음속 낡은 창고속에 먼지를 쓰고 망각되어가던 어떤 정서를 들춰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잡초가 무성히 자라 돌보는 이 없어보이는 스산한 무덤앞에 중둥머리께가 딱 잘린 채 서 있는 비석과 묘는 이상하게 누구의 눈길이나 끌게하는 데가 있기는 하다. 특히 당대의 지방 문장가와 풍류객들이 비문을 쓰고 모금을 해서 세웠다는 비석은 흥미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어떤 풍류객들이었을까. 문득 떠오르는 시조 한 수가 있다. 『청초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다/잔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선조때 문인 임제의 시조다. 뛰어난 문장가요 기개있는 선비였던 그가 천하 명기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읊은 시조다. 벼슬자리에 부임하러 가던 길에 이 시조를 써서 읊은 그는 신성하게 이도에 임해야 국록받는 선비가 한낱 천기 무덤앞에서 함부로 문장을 농했다고 해서 이후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일화가 따른다. 유난히 규율과 규범이 엄격했던 것이 선비들의 삶인데 비명에 당당히 이름을 새겨넣어가며 기생을 찬양해놓은 이 홍도의 비는 꽤 흥미롭다. 더구나 이 비석은 사진으로 보아서는 허리께가 딱 잘려졌음을 보여준다. 더러 금이 가는 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딱 잘린 것은 아무래도 누군가가 심술삼아 잘랐던 것같아 보인다. 풍류로만 떠도는 지아비를 둔 어느 양반집 내당여인이 누군가를 시켜 잘라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하는 몰골이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께서는 딸들을 나무랄때 입버릇처럼 기생을 들먹이셨었다. 『기생이냐,버선을 지루신게?』 『상스럽게 반절을 하면 못쓴다. 기생이나 그런 절을 하느니라』 『망측스럽게 치마를 외루 입었구나. 기생이나 그렇게 입는 법이니라』 조선시대 기생은 백정ㆍ장인ㆍ중과 함께 낮은 신분에 속했었다. 관에 기적이 매어 있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종과 진배없는 신분이었다. 그렇게 낮은 신분이면 양반집 내당마님들은 경멸만 하면 그만이었을터인데 사사건건 빗대어가면서 기생을 들먹여 빈정거리는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보면 기생이라는 존재가 사대부가의 아낙들에게 끼쳤던 심리적 갈등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천하의 영웅 호걸이라도 눈이 멀어 녹아나는 것은 「기생첩」이었다. 「권련의 마지막 한대」를 아낀다는 뜻으로 『기생첩도 안준다』는 말도 있다. 남성들이 애지중지할 수 있는 상징의 집약이 「기생」이었을 터인즉,임금의 장인께 사랑받으며 만고의 호강을 다했을 기생 홍도가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낙향을 즐기는 모습은 규방깊숙이 갇혀 사는 내당마님들에게는 눈허리가 시었을 게 뻔하다. 게다가 아무리 명문가의 며느리가 되어도 죽은 뒤에 아녀자의 무덤앞에 묘석같은 기념비가 세워질 수는 없다. 더구나 글을 읊는 호걸 한량들이 문장을 지어 바치는 명예로운 대접은 받지 못한다. 홍도 묘비의 허리를 자르고 싶은 심경을 가진 양반가의 「부인」들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경주시 도지동 야산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기생 홍도의 잡초무성한 무덤과 비석이 화려하게 화제를 뿌리게 된 까닭은,웬만하면 남성이 영웅호걸이 될 수 있었던 옛날에 대한 향수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서양의 기사도가 아름다운 숙녀에 대한 존경을 척도로 했듯이 동양의 영웅을 구성하는 조건도 미색에 있었다. 그 미색은 법도나 가문에 의해 정해지는 「부인」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홍도는 「살롱」 문화의 여주인처럼 풍류객들의 「대모」노릇도 했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경주가 낳은 「조르주 상드」쯤 된다. 그런 여인을 향해 찬사를 바치고 비명을 지어줄 수 있었던 당대의 남성들에게 오늘의 남성이 선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10여년전 일본에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전직 수상이었던 거물급 정치인이 자신의 소첩이던 여인의 죽음을 맞아 영정을 들고 장례식에 참례하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최후의 명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마돈나선풍을 일으키며 새 수상감이 나오는 족족 「스캔들」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본여성들의 힘을 보며 「최후의 명치인」이라는 말의 탁월한 지적을 다시 음미하게 되었었다. 천한 신분의 기생들 사이에서 원석하나를 찾아내어 「명기」로 탁마해 놓고 호방하게 천하를 논하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를 추념하노라면 우리 남성들은 오늘의 자신들이 좀 작아진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홍도전말」이 그런것이었던듯 여겨진다. 시대는 한참 변했고 남성들에 의해 「히로인」이 만들어지던 시대도 이제는 가버린 것 같다. 아무리 아쉬워하고 쓸쓸해 해도 변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안됐지만 그것이 오늘이다.
  • 중동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사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략을 규탄하는 국제사회는 다시 그들의 쿠웨이트합병 발표이후 직접적인 응징을 위한 확고한 대응태세를 굳히고 있다. 그럴수록 중동지역의 전운은 더욱 짙어지면서 일촉즉발의 파국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 전쟁이란 어느 일방의 공격과 그 대응에 의해 확대되게 마련이다. 이라크는 선제 무력침공행위를 반성하거나 철회하기는 커녕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응징태세에 반격하듯 사우디아라비아 침공 의사를 보였다. 그들은 「성전」이라는 이름아래 1백만명을 추가 징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전쟁도발자이며 국제적 범죄자인지 얼른 분간하기조차 어렵게 된다. 또 침공에 대한 응징이 선인지 응징에 대한 「성전」운운의 대응이 악인지 한계가 모호해진다. 지금 중동이 처한 모순과 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전면전을 불가피하게 할 수도 있는 이라크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끝내 포기되지 않는다면 그에대한 국제적 제재와 응징은 마땅한 것이다. 유엔안보리는 이미 대이라크 경제적 제재와군사적 행동을 결의한 바 있다. 소련 역시 다국적군에 참여할 뜻을 굳혔다. 소련이외에도 일부 북대서양동맹국들과 아랍연맹국가들도 대이라크 제재행동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는 지금 중동 위기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유엔이나 아랍동맹국들의 중재 노력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전쟁은 도발한측의 실수로서 곧장 끝나야 한다. 확전은 전쟁 당사국은 물론 그 동맹세력까지도 피폐케 한다. 그것이 바로 인류공통의 평화의지를 말살하는 전쟁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 정부가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와 무기판매를 금지한 제1차 결의에 지체없이 동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전쟁에 대한 혐오와 기피,평화에의 의지와 노력에 있어 우리는 누구보다도 앞서는 민족이다. 우리는 동족전쟁을 겪었고 그보다 오래전에 일제의 침략과 병탄에 의한 국권상실의 뼈저린 경험도 갖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전쟁적 대결과 체제ㆍ이념의 대립에 의한 민족분단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의쿠웨이트침공에 남다른 증오와 응징의 결의를 갖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할 것이다. 마침 이라크의 침공과정에서 실종됐던 우리 근로자 3명이 돌아왔다. 우리로서는 더이상의 사태전개와 관련해서 현지의 우리 근로자및 교민들 안전문제에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외교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세계와 인류는 국제화해와 긴장완화라는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무력대결은 극력 피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확전위험속에서 이라크가 경솔하게도 화학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것은 파멸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가 회교도들의 무덤이나 비극의 땅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라크는 평화공존의 논리가 성숙되어가는 세계사적 조류에 동참해야 한다. 즉 전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 김종필 최고위원 방일

    민자당의 김종필최고위원은 일본 미야자키현 초청으로 백제 유적지등을 돌아보기 위해 1일 상오 출국했다. 김최고위원은 미야자키현 남향촌의 백제 왕족 무덤과 유물등을 돌아보고 장군상 증정식에 참석한 뒤 5일쯤 귀국할 예정이다. 김최고위원은 방일기간중 다케시타 전총리및 아베신타로 전외상등 일본 자민당 중진들과 만나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최고위원의 이번 방일에는 민자당의 옥만호·이인구·김두윤의원과 신광섭 국립부여박물관장이 수행했다.
  • 일본도 장지난 심각(세계의 사회면)

    ◎유해 겹겹으로 쌓는 묘 이용 늘고 서민들,집안에 유골함 안치 일쑤/도쿄인근 사설묘지 비용 2만불 일본 도쿄(동경)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급등함에 따라 수도 인근에서 장지구하는 일 역시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도쿄 일원에서 장지 구하기가 힘들게 되자 대개의 가정에선 유해를 여러 층으로 된 무덤이나 도쿄 교외로 옮겨 매장하고 있다. 뒤늦게 묘지부족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 후생성은 최근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한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1차로 지난달 공공묘지에서 차지하는 1기당 묘의 면적을 현재의 4㎡에서 1.5㎡로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이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도쿄지역에서는 묘 쓸 자리가 거의 바닥났음을 지적하면서 오는 2천년까지 2백80만㎡∼4백만㎡의 땅(서울 여의도 광장의 7∼10배)을 도쿄도 당국이 마련하도록 건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땅이 곧 금」인 도쿄에서 이런 규모의 묘지를 마련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보통종교단체가 관리하는 사설 묘지의 경우 공공묘지에 비해 그 값은 엄청나게 비싸다. 그 한 예로 도쿄에서 45㎞ 떨어진 하치오지에 있는 4㎡ 크기 개인묘지의 땅값은 미화 7천8백달러에 이르며 장의비용과 연간 관리유지비까지 합하면 무려 2만3천7백달러에 육박한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도쿄시민들은 유골함을 집안에 안치하기도 하며 매장을 하지 않은 채로 유해를 보관하는 겹겹으로 된 묘를 이용하고 있다. 또 적지 않은 시민들은 연간 관리비가 32달러에 불과한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매장건물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최근 도쿄 주위에서는 매장건물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매장건물은 일종의 임시 유해안치소로 지난 1938년에 처음 등장한 것인데 공동묘지의 한 유형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국토의 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더 작은 편이어서 「죽는 것도 쉽지 않은」 일본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다가설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김현철기자〉
  • 묻혔던 금관가야의 실체 구명/김해 대성동 2호 고분 발굴의 뜻

    ◎파형 동기ㆍ통형 동기,일 근기것 보다 앞서/“지배영역 일본까지 확대”입증 김해 대성동 2호고분에서 발견된 금관가야시대 지배층의 무덤은 가야의 출발지인 금관가야의 실체를 밝히고 우리 고대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4세기대 역사 해명에 상당히 접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김수로왕이 AD42년에 건국한 것으로 전설적으로 전해져 오는 금관가야는 지금까지 6가야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취약점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발견과 주곽이 8m가 넘는 대형목곽묘라는 사실 확인은 한국고대사에서 금관가야의 역사적 비중을 높이는 것이어서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함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다량의 갑주류가 출토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금관가야가 당시에 이미 고도로 정비된 군대를 보유한 강력한 정치집단이었음을 실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이 김해를 중심으로 발달된 고도의 갑주문화가 신라는 물론 나아가 일본까지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주목되는 유물로는 파형동기와 통형동기로 전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며 후자는 김해 동래 함안 등에서도 출토되지만 극히 희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유물 역시 일본의 근기지방에서 출토되는 것과 비슷해 금관가야의 활동영역이 일본에까지 뻗쳤음을 알려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2호분 주곽에서 청동제 경판이 붙은 재갈,장식성이 풍부한 고수준의 마구류 등이 발굴된 것은 이 지역이 문화적ㆍ정치적으로 선진지역임을 입증해 주는 또다른 증거가 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출토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다량의 토기중 2호분 부곽출토의 원저장경호는 고령지역 대가야 토기의 조형으로 삼국시대 토기문화의 중심지가 김해지역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발굴조사단은 보고서에서 이번 발굴이 가야의 출발지인 금관가야의 실체를 규명할 단서가 될뿐 아니라 고대사중 해명되지 못했던 부분을 재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것이라고 밝히고 이같은 실체 규명의 보완을 위해 오는 9월 제2차 발굴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국사교과서 고고학 용어 우리말 표기 반응좋다

    ◎“알기쉽고 재미있다” 학생ㆍ교사들 큰 호응/방추차→가락바퀴ㆍ토광묘→널무덤/압형토기→오리토기ㆍ양각→돋새김/대학선 한자식 사용… 혼란 우려도 중ㆍ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고고학용어가 올해부터 알기쉽고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으로 개정돼 교사ㆍ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학계와 국사편찬연구회 등의 자문을 거쳐 개정된 국사교과서는 「마제석기」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뜻의 「간 석기」로 고치는 등 60여개의 고고학 용어를 우리말로 풀어씀으로써 신선한 맛을 주고 있다. 즉 개정된 중학교의 국사교과서는 선사∼철기시대를 다루는 제1과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이라는 단원에서 타제석기를 쪼거나 떼어내서 모양을 만들었다는 뜻의 뗀 석기로,반월형석도를 반달돌칼로,물레의 실을 감는 쇠꼬챙이를 의미하는 방추차를 순 우리말로 가락바퀴로 고쳤다. 묘에 대한 표현도 토광묘를 흙으로 관을 만들었다는 뜻에서 널무덤으로,수혈식을 구덩식으로,횡혈식을 굴식으로,옹관묘를 항아리모양을 했다해서 독무덤으로 각각 바꾸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암각화를 바위그림,즐문토기를 빗살무늬토기,입석을 세워져 있다는 뜻의 선돌,압형토기를 오리토기,원시무문토기를 이른민무늬토기,패총을 조개더미,노지를 불을 붙이던 곳이라해서 화덕자리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 조침은 낚시바늘,양각은 밖으로 돋아나게 새겼다는 뜻으로 돋새김,돌을 쌓아서 만든 적석총은 돌무지무덤,뇌문은 번개무늬,주거지는 집터로 각각 개정했다. 이밖에 구석기인을 가리키는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각각 곧선사람과 슬기슬기사람으로 풀어쓰고 있어 학생들의 배우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렇게 용어를 쉽게 풀어씀으로써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지만 일부 학자ㆍ교사들 사이에는 교육의 일관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즉 현재 대학에서는 교양과목이나 전공으로 국사 또는 고고학과목을 가르칠때 한자식용어를 쓰고있기 때문에 개정된 국사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한차례 용어의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동국대 부속고등학교의 정의완교사는 『국사교육에서 한글용어를 많이 쓴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때 바람직한 일이며 가르치는데도 신선한 맛을 느끼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사교육의 특성상 중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의 일관성을 갖출 수 있도록 문교부 등 관계기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학생들의 부담을 덜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구 곳곳 유태인묘 훼손행위의 충격파(특파원 코너)

    ◎「나치즘망령」에 시달리는 유럽/「거대독일」 출현ㆍ극우파준동에 주변국 공포/“반유태주의 경고”… 파리선 10만명 침묵시위 유럽에 인종차별을 앞세우는 극우세력의 확산과 함께 반유태주의의 부활징후가 나타나고 있어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각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유태인묘지훼손사건은 동서독의 통일에 따른 거대 독일출현의 가능성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는 주변국들에게 다시 나치즘의 망령을 되새기게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지난 14일 상오 파리근교 클리시 수 브와지역의 마을 공동묘지안에 있는 유태인 묘역에서 32개 무덤의 묘석이 깨지고 파헤쳐지거나 더럽혀진 채로 발견됐다. 쓰러지거나 파괴된 비석에는 예외없이 나치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같은날 역시 파리근교의 이시노지역의 공동묘지에서도 유태인 묘지만 10기가 파괴됐다. 이들 사건은 특히 지난 9일 프랑스남부 카르펑트라마을의 유태인 공동묘지에서 34기의 무덤이 훼손된 사실이 알려져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히다 시피한 상황에서 대담히 저질러져 사람들을 더욱 아연케 했다. 카르펑트라마을에서는 봉분이나 묘석ㆍ비석 따위만을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사지낸지 2주밖에 안되는 시신을 꺼내 쇠꼬챙이로 난자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러 분노를 사게 했다. 이 사건이 있던날 프랑스남서부 바욘느시의 공동묘지에서도 유태인묘지 파괴사건이 일어났다. 유태인묘지 훼손행위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4일 이탈리아 베론시에서 40여개의 무덤이 파헤쳐 졌고 폴란드의 베이에 로보마을에서도 10개의 묘지가 파괴됐다. 또 스웨덴에서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묘지만을 골라내 10여기를 훼손했으며 유태인의 고향인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올리비에마을과 하이파마을에서는 무려 2백50기의 무덤이 파괴되거나 오손된 것으로 보도됐다. 누가 왜 이같은 짓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느곳에서도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반유태주의자들의 소행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또한 극우나치주의자들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들이 아니고서야 산사람에 대한 어떠한 못된 행위보다도 더욱 심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묘지 훼손행위를 유태인을 대상으로 저지를 부류들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프랑스에서는 매스컴을 비롯한 각계에서 일제히 반유태주의자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으며 지난 14일 저녁에는 10만여명이 참가,유태인 배척행위와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대규모 침묵시위가 파리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현직대통령부부가 데모에 앞장서기는 프랑스역사상 처음이라는 화제까지 낳은 이날 시위에는 프랑스의 거의 모든 정당 종교단체 인권단체들이 참가했다. 프랑스사회가 이번 사건을 얼마나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는 정치 지도자들의 거동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카르펑트라마을사건이 보도되자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은 그날로 조셉시트뤼크 프랑스유태교회장 자택을 직접 방문,유감을 표시 했으며 카르펑트라 마을 유태교회목사에게는 따로 조문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로랑 파비우스국회의장,야당인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당수,공산당의 조르지 마르세서기장,시몬 베이유 전유럽의회의장 등이 모두 시위대의 앞열에 섰으며 이들은 한결같이 『천인이 공노할 만행』『짐승같은 행동』또는 『야만인의 행위』라고 비난했다. 다만 정당중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가장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국민전선당(FN)만이 불참했다. 장 마리 르 펭당수가 이끄는 국민전선당은 외국인의 국외추방,외국이민의 입국금지 등 인종차별적이며 국수적의적인 정강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극우파 정당이다. 르 펭당수는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자 『우리당을 음해 하려는 정치적 모략』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과거의 행적이나 반유태주의 반대데모 불참 등 이번 사건이후의 거동이 비난을 자초한 셈이 됐다. 프랑스유태교단체협의회의 장칸의장은 『국민전선당이 직접 저지르지는 않았더라도 그와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온 책임은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유태인묘지 오손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에만도 80년대들어 한해 한 두건씩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파문이 의외로 넓게 번지고 있는 것은 최근 극우파가 눈에 띄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여러나라에서 동시다발로 빚어진데다 나치즘의 악몽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이외의 사건들은 연대성 보다는 카르펑트라 사건의 모방성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유럽각국의 골칫거리인 스킨헤드족들로 대표되는 반유태주의의 극우파 행동대원들의 소행임이 거의 틀림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의 극우파 정당들은 오히려 정치적 목적으로 사건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묘지파손 행위 자체의 부도덕성은 말 할 것도 없고 그와 같은 행위가 국가간 민족간 화해를 바탕으로 하여 추진되고 있는 유럽통합작업에 역행하는 처사일 뿐만아니라 앞으로 유럽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독소로 커나갈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는데 유럽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 삼한칠기화살통 첫 출토/의창유적서,철촉 9점도 함께

    경남 의창군 동면 다호리 삼한시대 널무덤(목관묘)유적에서 AD1세기 쯤의 칠기 화살통이 출토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다호리 유적조사발굴단(단장 정양모)이 지난 3월28일부터 5월7일까지 실시한 제5차 발굴에서 출토한 이 화살통은 몸체는 거의 부패되었으나 옷칠을 한 겉부분(칠피)은 윤곽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 칠기화살통은 길이 90㎝,지름 7㎝정도의 크기로 제작되었는데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고 다만 위를 3부분으로 나누어 모두 5개의 회전띠(공대)를 돌린 형태이다. 이 칠기 화살통 안에는 본래 화살대가 달려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철촉9점이 들어 있었다.
  • 법질서 확립이 민주의 요체다/이해구 국회의원ㆍ전치안본부장

    ◎공권력 회복을 위한 긴급제언/“민주” 들어 무조건 공권력매도 안될 말/자유 침해않는 범위서 엄정행사 필요 현재의 시국상황을 모두들 입을 모아 총체적 난국이라고 한다. 여도 야도 국민도 모두 난국이라고는 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 이 난국을 헤쳐나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정도를 잃은 노사분쟁,부동산투기,물가상승,범죄의 난무 등 문제는 얽히고 설켜 있는데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끝없는 공론만 메아리지고 있는 감이 든다. 법질서 확립을 위한 공권력사용 문제만 해도 현대중공업이나 KBS에 대한 공권력투입을 두고 의견들이 다르다. 한쪽에서는 공권력투입이 불가피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잘못됐다고 하며 또 다른 쪽에서는 공권력투입이 난국을 초래했다고까지 하고 있다. 민주화를 외치면서 파출소,검찰청사 등 공공기관에 화염병을 던지고 점거하기를 예사로 하던 학생들이 지난 4월30일에는 급기야 경찰국에까지 난입,농성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지난 한햇동안 경찰관서 1백17개소가 피습됐고 올들어서만도 40여곳이 습격당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더욱이 경찰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 아프고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정말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경제를 발전시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쯤 우리 모두가 난국 타개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실천해야 하며 그중 법질서확립을 위한 공권력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창안한 가장 가치있는 제도중의 하나로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모든 구성원의 자율과 자유,목소리와 행동이 최대한으로 존중되고 보장되는 제도라 하겠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법질서의 뒷받침이 있을때만 그 빛을 발 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법치주의라고도 하는게 아닌가. 법질서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무수한 욕구의 마찰로 무질서의 혼란이 불가피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혼란없이 번영을 이룩하려면 기본적으로 법질서라는 「갓끈」을 꼭 매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된다. 물론 총체적 난국이라고 지칭되고있는 현재의 어려움이 초래되기 까지에는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다. 경제문제,정치문제,사회문제,도덕과 윤리문제,계층간의 불균형문제 등등 허다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은 법질서의 기반위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알고 잘 키우고 가꾸어 나가려면 먼저 법질서를 소중하게 알고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법이 문제가 있으면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은한 법은 지켜야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법질서는 확립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법질서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게 되기 때문이다. 공권력이란 사회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에 근거해서 행사되는 권력적 작용을 말한다. 즉,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수단이다. 따라서 공권력이란 쓰려면 쓰고 말려면 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법질서 확립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사용해야 한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권력의 행사는 자칫 민주주의의 본질인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 최소한도에 그쳐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세력과 노력이 존재하고 있고 공권력의 행사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아래,또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매도하는 분위기가 있으며 또 이런 분위기에서 꼭 필요한 경우에도 공권력행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법질서가 문란해지고 혼란과 불안이 만연되고 있는 것이 총체적 난국의 주요한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법질서확립을 위해 필요한 경우 공권력은 엄정하게 행사돼야 현재의 난국을 헤쳐나갈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물론 국민들의 이해와 뒷받침이 있어야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공권력은 경찰조직,더 구체적으로 말해 경찰관에 의해 집행된다. 따라서 공권력의 엄정한 집행은 경찰의 능력,경찰의 이미지 경찰의 자질,경찰의 사기 등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눈부신 발전과 변화에 경찰이 적절하게 부응할 만큼 뒷받침을 하지못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듯이 「도둑은 날고 있는데 경찰은 기고 있다」든지 「범죄는 기동화,지능화하고 있는데 경찰은 구태의연하다」는 말들이 우리 경찰의 현실이다.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 맞은 전문적인 연구나 요원들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예나 지금이나 장비ㆍ인력 처우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여러가지 시대적 변화에 의해 공권력의 행사마저 여러면에서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경찰이 강도를 멀리서 쫓으려 할 뿐 가까이 다가가 잡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법노사분규 현장에는 신고가 있어도 가급적 출동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린다. 도둑을 잡거나 시위를 막다 경찰이 다치면 별다른 관심이 없고 어쩌다 도둑에게 총을 쏘거나 시위학생이 다치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야단들이다. 이런 현실에서 경찰관들에게 막중한 사명감만을 강조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결국 우리 가정,우리 사회의 평화와 안녕이 제대로 지켜지기를 바란다면 이를 책임지고 있는 경찰,경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에 대한 존중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청개구리가 저의 어머니 무덤을 냇가에다 써놓고 비만오면 그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슬피운다는 얘기가 있다. 개구리가 더이상 울지 않으려면 그 무덤을 산으로 옮기는 처방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가 어려워지고 범죄가 날뛰며 사회가 어지러워 모두가 불안해 하고 있다. 난국이라고들 하고 있다. 불안해만 할게 아니라 법질서확립이라는 처방위에 경제를 되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법질서 아래 다양한 목소리가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도록 해 난국도 극복하고 민주주의도 꽃피워 나가야 하겠다.
  • 백제유물 무더기 출토/청주 신봉동서/철제판갑옷등 3백50점 발굴

    충북 청주시 신봉동 야산고분군에서 백제시대의 철제판갑옷(단갑)과 말갖춤(마구)이 처음으로 발견되는등 4세기말 쯤의 백제유물 3백49점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 고분발굴사상 백제권역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철제판갑옷과 말갖춤은 국립청주박물관 백제유적발굴조사단(단장 이원복)에 의해 널무덤(토광묘)에서 발굴되었다. 삼각형 철판을 맞대어 못을 박고 두들겨 마감하는 방법으로 철판을 이어서(삼각판 원두정)만든 이 판갑옷(높이46㎝ㆍ최대너비47㎝ㆍ앞뒤폭25㎝)은 입을 때 필요한 열고닫는 장치가 없이 통자로 고정시킨 형태이다. 같은 널무덤에서 출토된 말갖춤은 멈치가 딸린 재갈(마금)과 나무심을 박았던 철제발걸이(등자)등으로 되어있다. 이밖에 칼ㆍ화살촉등 철제 무기류도 다량으로 나왔다. 이번 신봉동 백제고분유적은 AㆍB지구로 나뉘어 모두 79기가 발굴되었다. A지구는 충북대박물관유적발굴조사단(단장 차용걸)이,B지구는 국립청주박물관이 맡아 발굴한 이 유적의 출토유물은 철기 1백90점을 비롯,토기 1백40점,기타 19점 등으로단연 철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이총 원혼 “4백년만의 환국”/어제 일 교토서 김해공항에

    ◎임란때 우리양민 코·귀 12만6천개 베어가/법회등 행사뒤 오늘 부산 동명불원에 안치 4백년 통한의 12만6천여 귀무덤(이총) 원혼이 24일 일본으로부터 고국의 품에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됐다. 귀무덤호국영령환국봉안위원단은 23일 하오6시 김해공항을 통해 4백여년만에 조국의 품에 안긴 영령들을 위해 김해공항에서 환국환영법회를 가진데 이어 이들을 꽃차에 모셔 부산시내를 지나 부산시 남구 용당동 동명불원에 안치했다. 우리측 봉환위원단은 이에 앞서 지난22일 일본 교토 귀무덤에서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지장기도를 밤새워 한데 이어 스님들의 범패와 소복단장한 불음합창단의 찬불가 등으로 이어진 엄숙한 봉송의식을 가졌다. 위원단은 봉안장소를 제주도로 하려 했으나 부산으로 정한 것은 임진왜란때(1592년4월) 왜군이 부산에 그 침략의 첫발을 디뎠고 양민의 귀 12만6천여 혼을 배에 싣고 떠난 곳도 부산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귀무덤은 교토의 풍신수길 전승기념관앞에 초라한 비석과 함께 버려두었던 것을 지난 82년 박삼중스님이 안본형무소 교화사업차 이곳에 갔다가 발견,한일이총영혼환국봉송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우선 영혼만이라도 환국시키게 된 것이다. 귀무덤은 임진왜란때 왜군들의 전공을 평가하는 자료로 삼기위해 풍신수길의 명령에 따라 우리병사들뿐 아니라 양민들의 귀와 코까지 잘라 일본으로 가져가 묻었던 무덤. 풍신수길이 죽자 그동안 그의 무덤앞에 전리품으로 초라한 비석하나만 세워 방치해 두었다. 이번 영령의 환국에는 고 이방자여사와 친동생인 이본덕언이 일본측위원회 명예회장으로 선임된 가운데 8만여 신사가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환국은 일본의 조선침략과 만행을 일본인 스스로가 인정하고 이를 참회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 “위대한 몽골리안”… 칭기즈칸 복권운동 한창(깨어나는 몽고:2)

    ◎민족혼 “재점화”/민주화 바람 타고 “민족적 영웅” 추앙/“침략자”로 격하 70년만에 명예회복/배지ㆍ달력등 기념품 불티…묘찾기 작업 본격화 영하 15도에 매서운 한풍까지 심하게 몰아치던 4월1일 정오 울란바토르 시중심가에 자리한 야달트(승리) 극장앞. 약 5백명의 군중이 마이크 앞에서 외치는 연사들의 연설 내용을 듣고 있었다. ○행사장마다 추모행렬 군중이나 연사 모두가 추위에 아랑곳 않는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칭기즈칸은 우리 몽고민족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2백만 몽고 인민공화국 국민은 물론 중국의 내몽고나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들은 이제 칭기즈칸의 정신밑에 하나로 뭉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연사의 말이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또 다른 연사가 등장. 『늑대를 잡으려고 초원 한 곳에 불을 질렀으나 그 늑대는 다른 넓은 초원으로 달아 났습니다. 소련은 칭기즈칸 정신을 말살시키려고 그에 관한 책이나 사적을 없애고 한낱 전쟁 미치광이로만 선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몽고인의민족적 자긍심은 초원을 끝없이 달리는 늑대처럼 굳세고 힘차게 우리 가슴속에 살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칭기즈칸을 위해 만세를 부릅시다』 『칭기스칸 만세!』 『만세!』 ○“칭기즈칸 정신” 강조 곧이어 쇼열엘덴(발전하는 사회)이란 록그룹이 등장,칭기즈칸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자 군중들도 모두 따라 합창을 했다. 추운 날씨속에 계속된 이 집회는 「칭기즈칸 추모사업회」 발족을 위한 것이었다. 연단앞에 걸린 거대한 그의 초상화가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몽고의 저명작가 도초도르치를 비롯,시인ㆍ언론인ㆍ학자 등 지식인들이 주관했다. 흔히 외국인들이 「칭기즈칸」(Khan)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몽고 사람들은 틀린 발음이며 「칭기즈한」(한)이 정확하다고 했다. 칭기즈는 몽고말로 강성하다라는 뜻이며 한은 왕ㆍ지배자를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요즘 몽고인들의 칭기즈칸 추모 열풍은 대단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폐기시킨 민주화가 민족혼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국민적 영웅인 칭기즈칸의 복권운동으로 점화된 것이다.○관련서적ㆍ사적 없애 추모사업회를 이끄는 작가 도초도르치는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ㆍ기념탑등을 건립하고 그의 무덤을 찾아내 기념박물관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두 곳 뿐인 관광호텔과 단 하나의 외국인 백화점에선 칭기즈칸 배지ㆍ달력 등 그에 관한 기념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 1921년 몽고가 소련의 지원으로 공산혁명에 성공한 이후 칭기즈칸은 철저히 무시당해 왔다. 몽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소련으로선 역사적으로 칭기즈칸에 대해 매우 굴욕적인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최초의 국가인 키예프러시아를 1240년 멸망시킨 것이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이며 이들 몽고 기병은 불과 일주일만의 맹공으로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킵차크한국을 세워 무려 2백40년 동안이나 러시아인들을 노예로 부렸던 것이다. 몽고의 지배로 러시아는 서구의 르네상스ㆍ종교개혁 등 근대화에 필요했던 시대의 흐름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정체의 역사를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울란바토르의 몽고 국립역사박물관장 다바삼부는 『칭기즈칸을 극도로 혐오한 스탈린의 영향을 받아 몽고의 민족 영웅인 칭기즈칸이 지나치게 천대받아 왔다』면서 앞으로 그의 유물과 유적을 모으고 보관하는데 여생을 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역사 박물관에는 3층 맨구석에 칭기즈칸의 초상화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 더 이상 그에 관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동상ㆍ기념탑 건립계획 박물관 안내를 맡았던 튤스양에 따르면 몽고라는 표기도 현재 중국ㆍ한국ㆍ일본 등 한자권의 국가에서만 쓸 뿐 다른 곳에선 몽골(Mongolㆍ용감하다는 뜻)로 부른다고 했다. 몽고의 정식 국명도 몽골인민 공화국이다. 몽고란 명칭은 원래 한족 중심의 중국인들이 주변 이민족을 몽매한 야만인라고 경멸하는 뜻에서 붙인 것이라 했다. 또 몽골은 칭기즈칸이 속했던 부족 이름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테무친(철목진)으로 불렸던 그가 타타르,나이만 등 다른 부족을 평정,대초원에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몽골이란 말이 국명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초상하나만 덩그렇게 튤스양은 또 역사상 모스크바를 점령한 사람은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두 명 뿐이나 나폴레옹은 그나마 며칠 후 퇴각하면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비교가 안된다며 칭기즈칸을 추켜세웠다. 아시아에서 유럽에 거쳐 대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진 칭기즈칸은 1227년 여름 서하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현재 중국의 감숙성 진주 육반산에 갔다가 그해 9월 65세로 풍운 가득찬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고향땅으로 옮겨져 울란바토르 동북쪽 케룰렌강 주변에 묻혀졌다고 한다. 때문에 최근 몽고에선 그의 묘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정확한 지점이 어디인가는 아직 어림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몽골리아지는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인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몽고인들이 과거 봉분의 풍습이 없었던 데다 후세 이민족이 시신을 훼손할 것을 우려,칭기즈칸의 묘지 소재를 비밀에 부쳤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잡지는 당시 칭기즈칸이 묻힌 자리를 1천마리의 말이 밟아 흔적을 없앴으며 그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3년동안 몽고기병들이 파수를 보았다고 했다. 또 묘지 넓이는 직경이 30리에 이르고 귀중한 부장품이 엄청나게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칭기즈칸」 노래 유행 칭기즈칸의 아들과 동생들은 몽고대제국을 킵차크ㆍ오고타이ㆍ차가타이ㆍ일한국등으로 나눠 통치했으며 손자인 쿠빌라이는 원나라를 세워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이 방대한 대제국도 원의 멸망과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다. 『용서해주세요 칭기즈칸/우리는 당신의 어두운 면만을 얘기했답니다/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당신을 민족최고의 영웅으로 받들겠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칭기즈칸 노래의 내용이다. 비록 소련의 입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조국에서 조차 제국주의자ㆍ전쟁광으로 낙인 찍혀 멸시 당했던 칭기즈칸. ○낙후 몽고에 새 활력 그러나 초원을 휩쓸고 있는 민주개혁의 열풍으로 다시 몽고 국민들의 우상이 된 그가 공산주의로 찌들리고 낙후된 이 나라의 내일에 어떤 형태든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울란바토르=우홍제특파원〉
  • “땅굴은 남침위험 증거” 노대통령,육사 졸업식 치사

    ◎북의 반민족책동 경고 노태우 대통령은 6일 『지난 3일 동부전선에서 또 다시 발견된 땅굴은 온 국민과 세계에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다』면서 『북한이 휴전선 남쪽으로 곳곳에 땅굴을 파고 있는 것은 그들이 내외로 맞고 있는 극단적 어려움을 언제든 도발로 분출할 수 있는 위험을 현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육군사관학교 제46기 졸업식에 참석,이같이 말하고 『반민족적인 책동으로 북한이 얻을 것은 자멸의 무덤일 뿐이라는 점을 북한의 최고책임자에게 분명히 경고해둔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우리는 확고한 안보태세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막아 평화를 지켜야 하며 그들이 적화통일의 허튼 꿈을 버리고 민족통합의 광장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방위역량은 통일의 문을 여는 지렛대』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우리는 굳건한 한미안보협력체제를 유지해 가면서 우리군이 국토방위의 주체가 되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실현해가야 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우리군은방위능력을 극대화하도록 군사적인 사고,조직과 편성,전력의 구조와 배치를 우리 현실에 맞도록 개혁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 「제4땅굴」곳곳에 부비트랩/10개 발견/수색중 지뢰터져 군견 폭사

    강원도 양구 동북쪽 26㎞지역 군사분계선 남쪽1㎞지점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제4땅굴에는 북한측이 매설한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폭발물이 묻혀있어 아군의 탐색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따라 제4땅굴의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파악하는데는 최소한 10여일이 걸릴 전망이다. 국방부는 5일 『4일 낮12시5분쯤 아군 특수수색조가 우리측의 역갱도를 통해 북한측이 남침용으로 파놓은 제4땅굴에 들어가 북쪽으로 7백m쯤 전진한 지점에서 앞서가던 군견 한마리가 북한측이 매설해 놓은 목함지뢰를 밟아 폭발,즉사했다』고 발표하고 『제4땅굴속에서 이미 10여개의 위장지뢰(부비트랩)를 찾아내 제거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 폭발사고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땅굴안에 돌풍현상과 함께 흙먼지사태가 일어나면서 산소가 극히 희박해져 실험용으로 들여보낸 십자매가 질식사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앞으로 군사분계선까지 남은 3백m가량의 구간을 더 탐색할 예정이나 이 잔여구간은 각종 폭발물 등이 매설된 복합장애물지대로 추정되고 있다』면서 『이 구간의 탐색작업은 더욱 어려울 것이므로 약 12일정도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75년3월 제2땅굴이 발견됐을 때도 수색작업에 나섰던 아군병사 8명이 지뢰를 밟아 폭사한 일이 있었다』고 상기시켜 탐색작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탐색작업에 나선 현지 군사령부는 4일 제4땅굴에서 폭사한 군견을 「충견」이라 명명하고 역갱도 입구에 무덤과 묘비를 세우기로 했다. 한편 아군측의 역갱도가 제4땅굴과 관통된 뒤 북한측은 1백55마일 휴전선에서 확성기를 통해 『땅굴은 없으니 찾지말라』 『고리타분한 땅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일선부대들이 전했다.
  • 고르바초프의 무덤에는… /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이 나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소련내 인종분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가 과연 살아 부지할 수 있을 것인지,나아가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입방아들을 찧고있던 터였다. 고르비(고르바초프의 애칭)의 실각설은 그 진위가 어떻든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의 실각은 그가 줄기차게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의 후퇴를 의미하고 그동안 우리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던 동구의 변화 물결에도 영향을 미칠게 뻔한 일인 때문이다. 더욱이 페레스트로이카가 조성해 주었던 동서간 화해분위기나 평화 무드에도 얼마간 찬바람이 일게될 것이다. 확실히 그는 세계의 스타다. 누구도 그사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미국사람들까지 80년대의 인물로 그를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뿐이랴. 스타가 없는 세상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다. 일이 이쯤되고 보면 그의 신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요즘 세계의 소련문제전문가란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제가끔 한마디씩 하고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애당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둥,고르바초프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동구권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이라는 둥…고만고만한 얘기들에서부터 아주 상반된 전망까지 고르비의 운명이 다채롭게 조명되고 있다. 실패론의 선두는 역시 미국의 학술계간지 디덜러스(DEDULUS)겨울호에 실려 화제가 됐던 「Z」의 분석이다. 공산주의는 스스로 개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그런 측면에서 자유세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도울 수 없으며 도와봤자 결국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는 논리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본 취지는 개혁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공산당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도해야 하는 체제의 논리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는 얘기다. 기실 고르바초프가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도 공산당 지도하의 개혁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견해로는 소련의 지배엘리트들이아무리 개혁에의 열망에 불타고 있다해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과를 거둘 만큼 과감한 변혁을 허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소련공산당의 지배상실과 소연방의 해체,나아가 세계무대에서의 힘의 상실로 이어질 개혁의 길을 소련지도자들이 스스로 택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성공쪽을 본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행돼 버렸다는 관점이다. 그것은 고르바초프나 소련ㆍ동구의 것만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이라는 견해다. 그 누가 저처럼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련의 군부내 보수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몰아내고 다시 중앙통제 체제를 강요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뿐 페레스트로이카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논지도 편다. 그것은 일시적인 반동일뿐 반동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힘에 다시 밀리고 그렇게 되면 소련사회는 본질적으로 뒤바뀌는 사태로 급전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논쟁들인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의 실각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권좌가 무너졌다고 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좌절되리라고 보는 것은 명철한 시각이 아니다.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불가피했던 동구사회의 현상을 대변했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한계를 말하고 대안이 없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기존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스탈리니즘,다시 말하면 좌익 전체주의에 대한 자성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는 본질적으로 해체기능을 할 뿐 그것 자체가 대안을 수반하거나 동구사회를 재통합하는 기능까지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은 해체의 시기인지 모른다. 해체의 시기에는 해체될 뿐 바로 재통합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해체의 속도,해체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점들이 충분히 드러난 연후에야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붕괴되고 있는 동구가 재통합의 에너지를 얻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르바초프 스스로도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빚어내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런 대안이 없음을 고백한 일이 있다. 그는 지난해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에 쓴 「사회주의사상과 혁명적 페레스트로이카」란 글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고 자문하고 『페레스트로이카는 끝을 알 수 없는 정치적 프로세스일 뿐』이라고 자답했다. 어떤 학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효과가 20년 후에나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체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금세기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적인 좌익 전체주의를 무너뜨린 거대한 공적을 이미 남긴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저는 인간화,자유화다. 자유와 휴머니즘은 인류가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다. 고르바초프는 실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의 실각여부와 관계없이 페레스트로이카는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훗날 그의 무덤에는 빨간 장미꽃 다발이 끊이지 않고 꽂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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