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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단군부부 유골 발굴”/평양 소재 능서… 5천11년전 추정

    ◎키 1백70㎝… 당시 체격으론 “장대” 북한은 최근 평양강동군 소재의 단군릉에 대한 발굴,개축작업을 벌인 결과 무덤에서 단군의 유골을 출토했으며 그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5천11년전의 것으로 확증됐다고 2일 밝혔다. 단군릉 발굴작업을 주관했던 북한 사회과학원은 이날 발표한 「단군릉발굴보고」를 통해 무덤에서는 단군과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남녀 한쌍의 유골을 발굴했으며 그중 단군의 유골로 추정되는 남자의 뼈를 「전자상자성 공명법」을 적용해 2개의 연구기관에서 현대적 측정기구로 각각 24회·30회씩 측정한 결과 그같이 확증했다고 중앙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이 보고는 이어 단군의 유골이 5천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삭아 없어지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석회암지대에 묻혀 있었고 매장되어 있던 지점의 토양이 뼈를 삭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군의 유골이 발굴됐던 무덤에서는 두사람분에 해당하는 86개의 뼈가 출토됐는데 골반뼈를 기초로 감정을 벌인 결과 하나는 남자인 단군의 것으로,하나는 단군의 부인의 것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남자의 뼈는 길고 상당히 굵으며 키는 1백70㎝ 정도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단군이 생존했던 시대의 일반적인 남자의 키가 1백63㎝를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단군은 당시로서는 키가 상당히 크고 체격이 웅장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이 보고는 지적했다. 단군릉에서는 사람뼈 이외에 금동왕관 앞면에 세움장식과 돌림띠 조각이 각각 1개씩 출토됐다. 세움장식은 두껍게 금도금한 청동판으로 제작됐는데 윗부분은 복숭아씨 모양으로 생겼고 그 가운데 구멍이 있으며 아랫부분의 양쪽은 곧게 되어 있다. 돌림띠는 작고 길쭉한 청동판인데 역시 두껍게 금도금한 것이다. 무덤에서는 장방형의 청동판에 한쪽에 치우쳐 작은 구멍이 2개 뚫려 있는 금동띠의 표쪽도 1개 나왔다. 또한 여러개의 도기조각과 관에 박았던 관못도 6개분이 출토됐다. 단군의 유골이 발굴된 단군릉은 돌로 쌓은 고구려양식의 돌칸 흙무덤. 반지하에 만들어놓은 무덤칸은 주검칸과 무덤안길로 이루어진 외칸무덤이고 그 방향은 서쪽으로 약간 치우진 남향이다. 주검칸의 크기는 동서로 2백73㎝이며 바닥에서 천장고임 1단까지의 높이는 1백60㎝이다.
  • 복지지수(외언내언)

    사람은 자신이 언제 어디서 태어날지 알지 못한다.스스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인간은 얼마든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미케네디대통령은 경제적 차원이 아닌 인간의 행복추구를 「생활의 양보다 질」로 표현했고 「위대한 사회」란 국민생활의 수준·국민생활의 안정도·분배의 공정성이 가시된 사회임을 밝힌바 있다. 6·25 전후만해도 우리나라는 한 가정에 보통 5남매에서 10남매안팎의 자녀를 두었고 궁핍한 생활외에도 천연두니 홍역 각종 질병에 시달려 「10살」이 넘어야만 진짜 내 자식임을 확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가 한 국가의 복지수준을 어린이·여성과 관련하여 평가한 국가발전백서에 보면 우리나라 아동및 여성복지수준은 세계 1백28개국중 상위권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예를 들어 유아사망률은 출생아 1천명당 10명으로 선진국의 유아사망률인 11보다 낮으며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홍콩·싱가포르에 이어 3위.가족계획도 60년 출산력(기혼여성 1인당) 5.7에서 91년 1.7로 홍콩 1.4에 이어 두번째로 낮다. 실제로 86∼91년도 보건사회지표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전염병 이환율이 86년 9명에서 91년 3.2명으로 낮아졌고 특히 홍역·볼거리등은 당시 인구 10만명중 3명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의료 보건환경 개선에 따라 사회가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선진국형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다.이에따라 14세 미만의 유년인구는 86년 29.1%에서 91년 25.3%로 줄어들었다. 자녀를 알맞게 낳아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것은 핵가족현상에 따른 세계적 추세다. 사람이 몇십년을 살지는 모르지만 도무지 연습이 없는 한번뿐인 인생임을 염두에 둔다면 사는동안 인간다울 수 있는 최고의 복지수준,「양보다는 알찬 질」을 생각하는 행복추구는 누구라도 꿈꿀 자유가 있을 것이다.
  • 도굴꾼들(외언내언)

    BC330년 알렉산더대왕은 부하장교들을 죽은지 2백년이 지난 사이러스대제의 무덤에 보내 보존상태를 살펴보도록 했다.그리고 그로부터 6년후에는 자신이 직접 그곳에 가보고는 무덤이 파괴된채 보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것을 알았다.유골을 모아 다시 안치한후 자신의 문장으로 봉인했지만 그후 수차례 도굴로 무덤속은 완전히 텅비어 버렸다. 고대 이집트 왕들의 시신이 있던 피라미드도 마찬가지다.아무리 정교한 미로를 만들어도 도굴꾼들은 비장된 장소를 예외없이 알아내 부장품들을 발굴해갔다.파라오들은 그 방지에 고심한 끝에 BC16세기 투트메스1세는 1천7백년전부터 계속되어온 피라미드조영을 단념하고 산골짜기 암굴에 왕들의 시신을 매장했으나 도굴꾼들은 미소띠며 고분을 파헤쳐버렸다. 지난 76년 신안앞바다에서 1만여점의 주옥같은 보물이 인양되고 있을무렵 그곳 감시초소일지에는 선박통행이나 어로사실이 전무한 것으로 되어있음에도 도굴범들이 창궐하여 신안앞바다는 한때 「도굴범들의 황금어장」으로 불렸었다. 대체로 도굴범들의고분식별 안목은 전문가 뺨치는 실력이다.그들은 사냥개처럼 냄새맡고 번개처럼 파헤친다. 충남 당진 영탑사에 있던 금동삼존불상도난사건은 지난 68년 현충사 이충무공의 「난중일기」를 훔쳤던 거물급 문화재절도범이 배후조정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대학에서 사학과 전공후 공주에서 미술교사를 지낸 인텔리로 문화재 식별안목이 「귀신같다」는 평이다. 이번 전남 함평에서 미발굴의 백제 신덕고분을 파헤친 도굴범들의 안목 또한 문화재 관련자들을 앞지른 결과가 돼버렸다.그들은 「전국 곳곳에 발굴되지 않은 고분이 널려있다」느니 「경주의 한 고분도 자신들의 도굴이 계기가 되어 발굴된 예」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문화재가 한낱 도굴범들의 사유재산이나 문화재 발굴개가의 공적으로 치부될순 없다.만인 공유재산인 문화재를 좀더 철저히 지키고 가꾸는 효율적인 관리정책이 요구된다.
  • 김해 목관묘 57기서 삼한시대유물 출토/경성대팀 발굴

    【부산=이기철기자】 삼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관묘 등 유적 57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성대 박물관 학술조사단(단장 조만제교수)은 16일 김해 대성동 구지로확장공사 도중 2세기전반∼4세기전반까지의 것으로 보이는 구지로(구지로)분묘 57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분묘군은 사적 제341호인 대성동 고분군에서 북쪽으로 1백m쯤 떨어진 낮은 구릉지대에 형성돼 있어 구사국(구사국)등 가야시대 이전의 변한사회의 실체를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신장 1백75㎝정도로 추정되는 성인의 뼈와 2세기 전반부의 목관묘 12호분(길이 2백73㎝,너비1백㎝,깊이49㎝) 유리 및 대롱구슬 청동제팔찌 목걸이 철제머리장식 등 부장유물 등이다. 특히 12호분 피장자의 철제 머리장식은 국내 무덤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고구려인”“중국인” 논쟁(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15)

    ◎평남덕흥리 고적 묻힌 「유주자사 진」/“유주는 북경일대… 4C 고구려가 지배”/북한학자/“채색벽화 중국설화 표현… 중국인 분명” 중·일 학자 4세기 후반 고구려가 국토를 크게 넓혀 북경을 포함한 중국 동북부 일대를 지배했었을까.한국과 중국 양쪽의 어느 역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같은「사실」이 한 무덤의 발굴을 계기로 학계에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76년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옛 강서읍)덕흥리 무학산 기슭에서 발굴된 덕흥리고분은 찬란했던 고구려의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었다.전실과 후실 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이 석실분은,무덤 입구의 길인 선도(연도)와 내부통로인 묘도의 천장을 제외한 모든 벽면에 채색화가 그려진 벽화고분이기도 하다. 벽화는 무덤의 주인인「유주라사 진」이 유주소속 13개 군 태수로 부터 문안을 받는 장면,소수레에 탄「진」이 말탄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관내를 행차하는 장면등을 포함하고 있다.또 그의 일대기를 적은 묘지명등 6백여자의 먹글씨가 발견돼 4∼5세기를 걸쳐 살았던 한 인간의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진」은 □□(판독 불가능 글자)군 신도현 사람으로 건위장군·국소대형·요동태수·동이교위·유주자사등을 지낸 뒤 영락18년(광개토대왕 18년,408년)에 죽었다. 이같은 묘지명의 내용 중에 특히 관심을 끈 것이 그가「유주자사」를 역임했다는 부분이다.고구려 고분에 묻힌 인물이 유주를 관할하는 자사를 지냈다는 것은 당시 고구려가 현재의 북경일대인 유주를 지배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학설은 고분을 발굴한 북한에서 처음 나왔다.79년 북한학자 김용남은 논문을 통해▲신도현이 현재의 평북 운전·박천일대이며▲「진」이 역임한 관직이 모두 고구려의 벼슬이름 이므로「진」을 당연히 고구려 사람으로 보았다.그는 따라서『전연이 멸망해 북중국 일대가 혼란에 빠진 370년 무렵 고구려가 서쪽으로 진격해 유주를 점령,13군 75현을 두었으며 이때 진을 유주자사로 임명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나왔다.김원용박사는「진」을 고구려사람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추정했다.그의고향인「신도」를 고구려의 땅이름으로 본 것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중국 하북성에 같은 지명이 있는만큼「진」은 중국인임에 틀림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그는『진은 중국 왕조에서 유주자사까지 지낸 고위관리였으나 뒤에 고구려로 망명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논쟁은 결국「진」의 국적이 어디인가로 바뀌었다.그가 속한 나라가 곧 유주를 지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학계는 이후 ▲무덤이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이라는 점 ▲묘지명에는 유주에「13군 75현」을 두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중국 왕조중에는 이처럼 군을 구성한 적이 없다는 점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83년부터는 중국 학계가,87년부터는 일본 학계가 논쟁에 가담해 한국 학계와 함께 일제히「진=고구려인」설을 부인했다.이들은 고구려의 유주점령을 기록한 역사서가 일체 없는데다 벽화 내용이 주로 중국의 설화들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양쪽의 주장은 여지껏 팽팽히 맞서 있다.그러나 만약「진」이 중국인임이 밝혀진다 해도,그를 받아들여 호사한 무덤을 꾸며주었던 고구려의 국력과 관대함은 더욱 돋보일 뿐이다.
  • 라빈,“100년 투쟁사 종식 희망”/「이」­PLO상호승인 이모저모

    ◎라빈·이라파트 7월 파리서 비밀회동/가자지구 곳곳 찬성·반대시위 엇갈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10일 하오 4시(이하 한국시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대표로 인정하는 내용의 역사적인 이스라엘·PLO상호승인안에 정식 서명. 라빈총리는 이날 튀니스에서 도착한 요한 외르겐 홀스트 노르웨이외무장관으로부터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의 서명이 담긴 이스라엘·PLO상호승인안을 전달받아 정식 서명했다. 라빈총리는 서명식장에서 『지금은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순간 이후부터 팔레스타인인과 유태인,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1백년동안 계속돼온 피의 투쟁과 불행이 종식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라빈총리는 이어 이날 서명된 이스라엘·PLO상호승인안및 팔레스타인 평화자치협정이 포괄적인 중동평화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지만 엄청나고 중요한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적들에게는 축일” ○…이스라엘의 제1야당인 리쿠드당의 빈야민 네탄야후 당수는 이스라엘이 PLO를 승인한 9일은 『이스라엘로서는 「블랙 데이」며 적들에게는 축일』이라고 주장. ○PLO간부 무덤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상호승인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PLO간부들은 덤덤한 반응으로 일관.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듯 PLO는 상호 승인을 경축하는 공식적인 행사는 커녕 환영성명조차 내지 않았으며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계속 공석에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승인합의 2명 사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집행위원 2명이 PLO의 이스라엘승인에 항의,10일 집행위원직을 공식 사퇴했다. ○서명주체놓고 논란 ○…오는 13일의 팔레스타인 자치에 관한 평화협정 서명을 앞두고 튀니스의 PLO 관리들은 누가 PLO대표로 서명할 것이냐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워싱턴에 있는 아이탄 벤추르 이스라엘 대표는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 13일 백악관에서 열릴 이스라엘·PLO 평화협정 조인식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스라엘의 한 정부관리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상태. 이에반해 아라파트PLO대표는 PLO의 「외무부」격인 정치부서의 책임자인 파루크 카두미가 평화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정작 카두미 자신은 이스라엘과의 「부분적 또는 잠정적 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중동평화회담의 팔레스타인 대표단이 이 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 ○미 전대통령들 참석 ○…오는 13일 낮11시(한국시간 14일 자정)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릴 이스라엘·PLO 평화협정 조인식에는 조인 당사자인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을 비롯,조지 부시,로널드 레이건,지미 카터,제럴드 포드,리처드 닉슨 등 생존한 전 미역대대통령등과 세계각국의 저명인사 등 1천여명이 초대될 예정이라고 백악관측이 밝혔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PLO의장은 지난 7월1일 파리의 한 호텔에서 비밀리에 회동했다고 프랑스의 한 방송기자가 주장. 프랑스의 유태계 방송사에 근무하는 발레리 제나티(여)기자는 국영프랑스­2TV와의 회견에서 지난 7월 라빈 총리가 프랑스 방문기간중 묵은 콩코드 광장의 크리용 호텔의 스위트룸 앞에서아라파트를 보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점령 가자지구의 샤티 난민촌에서는 9일 이슬람 저항운동을 벌이는 하마스의 지지자 수백명이 『그들이 예루살렘을 팔아넘겼다』며 이스라엘·PLO상호승인에 관한 역사적 협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편 가자지구의 쉐이크 라단지역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협정지지 시위가 벌어지기도. □「이」­아랍 분쟁일지 ▲1947.11.29=유엔총회,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독립아랍국가로 분할하기로 결정. ▲1948.5.14=이스라엘 독립 선언. ▲1949.7.7=제1차 중동전 발발.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의 70% 차지. ▲1956.10.29=제2차 중동전 발발.이스라엘 시나이반도 점령. ▲1957.5=이스라엘,시나이반도서 철군. ▲1964.5.28=PLO,이스라엘 파괴와 팔레스타인영토 회복을 목적으로 공식 출범. ▲1965=PLO의 무장기구 파타 창설. ▲1967.6.5=제3차 중동전(6일전쟁)발발.이스라엘,시나이반도 가자지구 골란고원 요르단강서안 점령과 함께 동예루살렘 합병. ▲1967=아라파트,PLO의장에 취임.본격 게릴라전 시작. ▲1967.11.22=유엔안보이,이스라엘의 점령지철군 촉구결의안 2백42호 채택. ▲1974=아랍정상회담,PLO를 팔레스타인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 ▲1978.9.17=이집트·이스라엘,캠프 데이비드협정 체결.시나이반도 반환. ▲1981.12.14=이스라엘,골란고원 합병. ▲1982.6.6=이스라엘의 PLO거점 베이루트 침공으로 PLO전사 1만5천명 아랍 전역으로 흩어짐. ▲1987.12.9=점령지내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봉기인 「인티파다」 시작. ▲1988.11.15=PLO,가자지구·요르단강 서안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유엔안보리,팔레스타인 분할 인정. ▲1991.10.30=이스라엘·아랍국들간 중동평화회담 시작. ▲8.29=이스라엘·PLO,가자지구및 예리코시에 대한 자치원칙 합의. ▲9.9=이스라엘·PLO,상호승인.
  • 무령왕릉:상(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13)

    ◎국보 등 2906점 출토… 백제문화 보고/지석에 왕의 본명·사망연대 등 52자 기록/중식아닌 「계묘년」「붕」등 자주적 표기사용 1971년7월 충남 공주군 공주읍 금성동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은 한국 역사학계를 크게 흥분시켰다. 발굴될 때까지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았던 그「처녀분」은 6세기초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신라·고구려에 비해 사료가 절대 부족했던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보탬이 됐다.이와함께 고분 자신의 주인을 한국사에 명멸한 숱한 임금의 무리에서 빼어내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켰다. 무덤에서는 국보를 비롯,모두 1백8종 2천9백6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가운데서도 왕의 지석은 가장 관심을 모았다.모두 52자의 지석은 묻힌 사람이 「백제 사마왕」이며 62세로 「계묘년」에「붕」했다(숨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들 「사마」「계묘년」「붕」등의 자구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지석이 전하는「진실」을 따져보기에 앞서 우선 무덤의 주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무령왕은백제의 25대왕으로 462년에 태어나 523년 생을 마쳤다.임금자리에 있었던 기간은 510∼523년.이름은 사마(삼국사기에는 사마)또는 융이며 무령은 사후에 부쳐진 이름인 시호이다. 큰 키에 용모가 준수하고 인품이 고매했으며 백성을 사랑한 것으로 전해진다.또 고구려·말갈과의 전투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으며 중국의 양나라와 친선을 강화하고 왜에는 오경박사를 파견하는등 국내외로 치세에 뛰어난 임금이었다. 일본서기에는 「사마」「무령왕」등의 표현으로 그가 일본 땅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 일본과의 인연이 간단치않은 임금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지석에 그의 죽음을 「붕」으로 쓴 것은 당시 백제가 당당한 자주국가였음을 보여준다.공자가 예기에「천자의 죽음은 붕,제후는 훙,대부(고급관리)는 졸로 표기한다」고 밝힌 이래 한자문화권 사회에서는 이를 역사표기의 원칙으로 지켜왔다. 따라서 백제왕은 중국측으로부터 명목상의 관작을 받았을지라도 실제로는「황제」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이는 후에 고려·조선의 사가들이 임금의 죽음을 「훙」으로 표기한 것과 비교된다. 이와함께 그의 이름을 중국식인 「융」이 아니라 「사마」(섬의 옛말「사마」의 한자식 표기,그는 섬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음)로 쓴 점,사망연대에 중국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계묘년」으로만 기록해 독자적인 연대표기를 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한국 사학계를 흥분시켰다.그러나 정작 경악한것은 바다건너 일본의 학계였다.그들이 「황국사관」으로 똘똘 뭉쳐 숨기려고 했던 진실,일왕이 백제왕의 제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다음회에 다룬다.
  • “졸면 죽는다”…혀깨물며 사신 쫓아/구사일생 광원의 매몰 91시간

    ◎힘빠진 동료5명 차오르는 물속으로/생환일념으로 암흑·갈증·추위와 싸워 무덤속 같은 91시간이었다. 태백 통보광업소 매몰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여종업씨(32)는 2천m가 넘는 지하막장 탄더미속에 갇혔던 91시간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마지막 채탄을 위한 발파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위해 마무리를 하던 순간이었다.이때가 13일 낮12시쯤.갑자기 뒤쪽에서 『물이다』는 고함소리에 너나없이 채탄을 준비하는 막장으로 뛰었다.곧이어 「꽝」하는 굉음과 함께 물이 터졌다.막장안 광원들은 모두들 본능적으로 눈과 코를 막았다.발을 적신 물은 빠른 속도로 허리께로 올라왔다.막장은 30도정도의 경사진 2평남짓한 공간. 계속 물은 차올랐다.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동료 가운데 일부는 손도끼로 갱목에 「가족에게 2억원을 달라」는 유언을 새기기 시작했다. 물이 키를 넘어서면서 모두 천장의 갱목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얼굴만 내놓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그렇게 하기를 30분남짓. 힘이 부친 동료들은 갱목에서 손을 놓고 하나둘씩 「죽음」속으로 빠져들었다.몇시간이 지났을까.서서히 물이 빠져 나간 갱도 곳곳에 숨진 서승구씨 등의 5명의 사체가 드러났다. 비통에 잠길 겨를도 없었다.일단 동료들의 시신을 한데 모아놓고 주위를 살폈다.공기파이프가 절단돼 있었다.체력소모를 줄이고 산소를 아끼기 위해 시신옆에 반듯이 누웠다.이전에도 10시간 갱속에 갇힌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구조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암흑은 곧 죽음과도 같았다.엄습해오는 극심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12시간 쓸 수 있는 헬멧의 안전등을 2∼3분 간격으로 켰다 껐다.공포와 함께 찾아온 배고픔과 타는듯한 갈증이 혀를 태웠다.바닥에 깔린 물은 석탄물이어서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살기 위해 헬멧에 오줌을 받아마셔야 했다. 희박한 공기속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자면 죽는다」는 생각에 온몸을 꼬집었다.그럼에도 정신을 잃고 퍼뜩 눈을 뜨기를 몇차례를 거듭했다. 『나는 살 수 있다.아니 살아야 한다』­지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애태울 아내 지대숙씨(29)와 아들 형규(12)·성규(10)를 떠올리며 졸음을 이기려고 혀도 깨물었다. 멀리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구조대가 다가오고 있었다.살아난다는 확신을 「신념」이 아닌 「사실」로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 최고전시물/불가리아 금공예품/BC 4천년전 물품 20점 선보여

    93대전엑스포 전시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시물은 어느 것일까. 이집트,중국등 세계문명의 발상지로 이름높은 나라들의 전시물이 언뜻 떠오르겠지만 정작 가장 오래된 전시물은 우리에게 낯익지않은 동유럽국가인 불가리아에서 내놓았다. 불가리아의 바르나 황금공예품.이 공예품은 불가리아의 흑해부근 바르나연안지방에서 지난 72년 발굴됐다. 이 황금공예품이 만들어진 시대는 석기시대 말인 BC 4백만년전이다. 이집트의 황금공예품들보다도 2천∼3천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제까지 발견된 것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당시 부족장의 무덤 2백94개에서 출토된 황금공예품은 모두 14㎏ 분량.이번에 전시된 것은 그 가운데 귀걸이등 20여점으로 2㎏분량이다.모두가 24K의 순금이어서 쉽게 구부러지기 때문에 몹시 신경을 썼다고. ○수송비만 4천여만원 단추·귀걸이·팔찌를 비롯 번영을 상징하는 소의 형상,이집트 파라오의 상징물과 비슷한 십자형 홀등이 전시돼있다.전시물가운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순금 도박기구도 끼어있어 특히 눈길을끌고있다. 이 황금전시물들은 값을 따질 수가 없다.다만 불가리아측이 2㎏에 불과한 이 전시물을 수송하는데 수송비만 우리 돈으로 4천만원을 들였다는 점에서 이 전시물들의 가격이 엄청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불가리아관 전시책임자인 미하일 미하일로프씨는 『물론 엄청난 액수의 보험에도 가입했지만 보험액은 밝힐 수 없다』면서 『가격보다는 문화재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가치만큼이나 이 황금을 둘러싼 도난방지장치도 대단하다.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유리관속에 전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각종 보안장치가 설치되어있다. ○전자감응장치 설치 가로 세로 80㎝가량의 유리관을 감싸고 있는 사방 2m가량의 나무구조물 속에는 전자감응장치가 설치돼있어 길이 3∼5㎝에 불과한 황금공예품들을 하나 하나 전선으로 이어놓고 있다.나무로 만든 것은 외형상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기위한 것이다. 또 폐쇄회로 TV가 설치돼 24시간 관람객을 감시하고 있다. 전시실앞에 경비원이 24시간 배치돼있음은 물론이다.
  • 고려 호족 고분/충주서 첫 발견

    고려왕조가 성립할 당시 권력형성의 바탕이 됐던 지방호족(호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고분이 처음 발굴됐다. 건국대박물관 유적발굴단(단장 류태영 박물관장)은 29일 충북 충주시 단월동 산5의1 일대에서 통일신라 중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만들어진 고분 7기를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정교한 톱니바퀴 무늬의 팔찌와 귀걸이가 발굴돼 이곳에 묻힌 사람이 당시 지배계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가야(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12)

    ◎한반도서 처음 벼경작… 철기·쌀 수출국/한반도서 처음 벼경작… 철기·쌀 수출국/문헌사료 절대 부족속 70년대들어 연구 활기 가야-.고구려·백제·신라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으면서도 오랫동안 사가들에게 외면당한 나라.국내보다는 일본에서 관심이 높았던 나라.최근에는 유적발굴이 활발해 국내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나라.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가야사 연구가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문헌사료의 절대적인 부족을 들 수 있다.국내외 사료 가운데 가야가 등장하는 역사서는「삼국사기」「삼국유사」와 일본의「일본서기」,중국의「삼국지」「남재서」등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들 사서도 대부분 자국과의 관계에서만 가야를 언급했을 뿐 가야사 자체를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다.그나마 11세기에 편찬된「가락국기」의 일부 내용이 삼국유사에 옮겨 실린 것이 유일하게 전해질 뿐이다. 또「임나일본부」설에서 보듯 가야의 역사를 자국사의 일부로 다루려는 일본 학계의 공격적인 태도가 국내 학자들을 한동안 움츠러들게한 측면도 있다.그러나 70년대 들어 천관우의「복원가야사」가 나오면서 국내 학계의 연구도 활발해졌으며 특히 최근에는 옛 가야지역에 대한 유적발굴이 큰 성과를 거둬 사료부족을 보완해 주고 있다. 가야는 문헌기록에 여러가지 이름으로 나타난다.가야·가야·가야외에 구야(구사·구사)가라(가라·가양)가락등이 모두「가야」를 지칭하는 것이다.이밖에 일본서기등 일부에서는 임나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런 명칭들은 모두「가야」또는「가라」라는 음을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인데 그 뜻에 대해서는 ▲갈래(분파) ▲강 ▲겨레등으로 해석하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가야는 삼한중 경상남북도 일대에 위치했던 변한의 소국들이 발전해 서기전후해서 연맹왕국을 이뤄 형성됐다(삼국유사에는 건국연대를 서기 42년으로 못박고 있다).연맹에 속한 가야제국의 수나 그 명칭에 대해서는 사서마다 차이가 있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략 6∼12국 정도로 보고있다. 이 가운데 주요국가가 김해지방의 김관가야(별칭 구사·남가라),함안지방의 아라가야(안라),고성의 소가야,성주의 성산가야,고령의 대가야(가라),진주의 고령가야등이다. 이들 가야제국은 초기에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삼국및 낙랑,왜와 활발한 무역을 했다.주요 수출품은 이지역에 풍부한 철과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경작한 쌀등이었다.따라서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했으며 당시의 수준 높은 문물은 가야무덤에서 출토되는 각종 유물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4세기초 고구려의 침략을 받은 뒤로는 크게 약화됐다.5세기들어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 479년에는 중국 남재와 외교관계를 맺을 정도로 성장했으나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한다. 가야제국의 소국들을 연맹체로 결속시켰던 힘이 무엇인지,3국과 달리 연맹 형태를 끝까지 유지했던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왜와의 관계에서도,가야가 왜에 철기및 농경문화를 전달한 것은 분명하다.또 가야의 독특한 무덤형태나 거기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시기적으로 100∼200년 늦게 일본 각지에서 발견된다. 일본왕조는 한반도에서 3국의 등쌀에 시달린 가야주민들이 대한해협을 건너가 세운 일종의 정복왕국이 아니었을까.가야는 아직도 짙은 역사의 안개 속에 묻혀 있다.
  • 공원묘지 2중분양 사기/유족몰래 이장한뒤 되팔아

    ◎포천 「기독교상조회묘원」/관리장부 등 압수 공원묘지관리소가 공원내 묘지를 유족 몰래 이장시키고는 그 묘자리를 다른 유족에게 다시 팔아넘긴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28일 경기도 포천군 노흘면 무봉리 기독교상조회묘원(관리소장 유경렬)에 안장된 전모씨의 묘지가 당초 위치에서 5m가량 위쪽으로 옮겨지고 그 자리는 최모씨에게 팔려 가묘가 설치돼 있다는 유족들의 신고에 따라 분묘의 이장작업을 벌였던 인부 2∼3명을 조사,이장 사실등을 확인하고 관리소의 묘지매매장부 일체를 압수하는 한편 소장 유씨를 찾고 있다. 전씨의 부인 김상의씨(61·서울 도봉구 도봉1동 583의 15)는 『지난해 10월 유씨에게 묘지값과 4년치 관리비 2백50만원을 주고 10평의 묘지를 구입,남편을 안장한 뒤 지난달 20일 성묘를 가보니 무덤이 위쪽 모퉁이로 이전돼 있었다』고 밝혔다. 또 묘지관리소측은 처음에는 본래 위치라고 우기다가 장례식때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자 『문제삼아봐야 소용없으며 좋은 비석을 세워줄테니 조용히하라』며 유족들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공원묘지측은 유족들에게 사체의 보존여부도 확인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공원묘지측이 주로 연고가 없거나 유족들의 가세가 빈곤한 묘지를 불법으로 파헤쳐 이장하고 묘지를 되파는 수법을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고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영하원,내각신임안 가결/「마」 조약비준도 확실시/40표차로

    ◎메이저총리 정치적위기 모면 【런던 AP 연합 특약】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는 23일 하원에서 재신임을 얻으면서 유럽통합을 위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대한 의회 지지를 획득했다. 하원(총6백51명)은 이날 보수당의 메이저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통해 3백39대 2백99(과반수 3백26)로 신임 결정했다.또 이에앞서 실시된 야당인 노동당이 제안한 마스트리히트조약 영국비준에서의 사회분야 수용안에 대해 3백39대 3백1로 부결,메이저 정부의 사회분야조항 영국 제외 방침을 최종 확정시켰다. 이에따라 영국정부의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 절차중 상·하원 지지과정은 마무리되었다.단지 개인이 제소,내주부터 고등법원에서 다룰 조약 비준절차의 재검토 과정만 남겨놓고 있다. 전날 영국하원은 유럽통합조약중 사회분야 조항을 영국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보수당 정부의 정책과 관련,이 조항을 수용해야 한다는 야당안과 기존정책을 고수하자는 정부안을 모두 부결시켰었다.정국이 극도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메이저 총리는 즉각 내각신임투표 실시를 요구했었다.◎“집권유지” 당내 반대파도 가표/1년7개월 「비준논란」종지부(해설)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정부가 구사일생으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면서 유럽통합의 근간인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비준을 둘러싼 1년7개월에 걸친 지리한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고 유럽통합대열에 막차로 동승했다.. 하원이 22일 표결에서 노동법과 사회보장법률 등 사회분야조항 예외를 인정하는 정부측 조약안과 이를 거부하는 노동당안을 동시에 부결시킴으로써 메이저총리는 내각신임투표를 조약비준과 연계시키는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는 극한상황에 몰렸었다. 메이저총리는 EC의 노동비용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20%나 높아 경쟁력면에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에게도 유급 육아휴가를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사회조항을 도입하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격이라며 강력히 이의를 제기,지난 91년 조약체결 당시 영국의 사회분야조항 면제특권을 인정받은데 이어 이같은 내용으로 의회비준도 강행해왔다. 반면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노동당은 11개 EC회원국이모두 인정하는 노동자 권리헌장을 영국에만 적용시키지 않을 경우 영국을 노동착취국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극력 반대했다. 6백51석의 하원에서 집권 보수당은 3백36석으로 과반수를 10석 초과한다.22일 표결에서 반란표를 던졌던 문제의 보수당내 유럽통합 반대파 23명도 보수당의 인기가 노동당 뿐 아니라 자유민주당에도 뒤지는 처지에서 의회해산,총선거,제3당 전락의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 뻔한 내각불신임에 동조하기는 어려웠다.북아일랜드의 기독교계 울스터 통합파 소속의원 9명은 분란이 끊이지 않는 북아일랜드를 영국과 카톨릭 다수의 북아일랜드의 공동관리 아래 둘 계획인 노동당의 득세를 우려,보수당 편을 들었다. 영국고등법원이 지난 19일 이미 조약비준절차의 법률적 재검토를 명령한 상태여서 정식비준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큰 가닥은 다 잡힌 셈이다.그러나 지지율이 사상최저인 12%까지 떨어진 메이저총리의 국내정치위상에는 이번 승리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 돈으로 못사는 건강/장준근 산야초연구소장(굄돌)

    돈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면 빨리 죽는다는 말이 있다.후손에게 물려줄 넉넉한 재산이 있으니 장수하겠다고 좋다는 영약이며 용한 명의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이 역효과를 내기때문이다. 이 세상엔 몸에 좋다고 소문난 약이 숱하게 많다.그러나 완전식품은 없으며 아무리 뛰어난 보약이라도 역기능이 있는 법이다.「돈만 있으면 처녀불알도 산다」는 속담이 있지만 돈을 쏟아 부우면 무엇이든 최고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러한 행위는 목숨을 구걸하는 방황이나 마찬가지다. 건강은 돈으로만 살 수 없다.편히 앉아서 좋다는 것을 부지런히 먹기만하여 질병을 퇴치할 수도 없다.돈 뿌린다고 1백년을 더 살 것처럼 오산하면 안된다. 정신이 병들면 빨리 죽는다.돈으로 장수하겠다는 것이 썩은 정신이다.어느 경제학자는 백성들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살림이 몰락한다고 경고했다. 필자는 가끔 초청강연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를 마지막에 남긴다.『쓸데없는 10년을 살 것입니까.자랑스러운 1년을 살겠습니까!』자랑스러운 1년이바로 건강장수의 지름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군더더기 10년을 더 사노라면 마음이 불안정해지며 갈등과 욕망을 극복할 능력이 쇠진해지는 것이다.결국 빈곤한 정신 속에서 몸을 갉아먹는 질병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루소는 「에밀」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산다는 것은 호흡한다는 것이 아니라 활동한다는 것이다.장수한다는 것은 긴 세월을 산다는 것이 아니고 가장 강하게 생을 느끼는데 있다.세상에는 1백년의 장수를 누리면서도 출생후 곧 사망한 것과 같은 헛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어려서 무덤 속에 들어가더라도 훌륭하게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인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미국의 철학자 두란트의 한마디도 전하고 싶다.『운명의 장난을 일소에 붙이며 죽음의 부름도 미소로써 응하기를 배우고자 한다』 돈 많다고 우쭐대는 것은 바람개비와 같은 것.정신이 건전함으로써 건강 장수가 보장된다고 믿는다.
  • 국립묘지제 개선 시급/계급별 묘역·매장방법 달라/보사부

    ◎3평단일화 법령개정 추진 정부가 호화분묘 단속을 벌이며 한시적인 묘지제·납골당·화장제등을 적극 도입하려는 마당에 국립묘지만이 묘지크기를 달리하는데다 시신안장제를 허용하고 있어 개혁차원에서 국립묘지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보사부가 오는 정기국회에서 묘지의 크기를 3평으로 단일화하고 부족한 묘지난 해소를 위해 화장(화장)을 권장하는 입장이어서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지난 55년 7월 만들어진 동작동 국립묘지의 경우,전체 43만평의 부지 가운데 실제묘역은 10만평뿐이며 이마저 계급에 따라 묘지면적이 다르게 되어있다. 국립묘지령에 따르면 국가원수의 묘지면적은 80평,애국지사·국가유공자·장군·치안감이상은 8평,나머지 대령이하 경무관이하는 1평으로 정해져 있다. 또한 안장방법도 국가원수·장군·애국지사·국가유공자등은 시신안장을 하고 대령이하는 화장을 하도록 되어있다. 장군의 경우 초기엔 화장을 했으나 지난 83년 7월 안장된 이범천 소장부터 시신을 묻고 있다. 이에따라 지난 5월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묘지는 애국지사 14주,국가유공자 8주,장군 57주등 겨우 1백4주다. 안장대상 가운데 가장 많은 일반장병들의 경우 이미 지난 82년 6월말로 만장상태가 됐다. 국방부가 지난 85년 11월 99만평의 부지에 13만주의 안장능력이 있는 대전묘지를 만든 것도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이처럼 국립묘지가 계급에 따라 묘지의 크기및 안장방법을 달리하는 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율배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국대의 오홍석교수(지리학)는 『국민들이 화장을 정서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실정에서 장군등 지도급 인사들을 화장하지않고 시신안장하는 것은 화장을 권하는 정부입장과 이율배반적인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먼저 화장제를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개발연구원의 윤양수 수석연구원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묘지문제의 해결을 위해 천주교에서 부분운영중인 ▲시한부묘지제도의 확대도입 ▲화장확대 ▲납골묘설치등이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매장을 선호하는 국민의식의 변화와 지도층인사들의 솔선수범이 선행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립묘지관리사무소의 박종우 사무관도 『미국의 경우 웰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장군의 분묘크기나 일반사병의 분묘크기가 똑같은등 선진국에서는 계급에 따른 구분이 없다』면서 『살아 있을 때 필요한 계급에 따른 무덤크기는 당연히 똑같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점선·김원숙·조덕현·육근병개인전/수준높은 전시로 화랑가에“단비”

    ◎김점선 김원숙/절제된 감수성·감각 조화 돋보여/조덕현 육근병/평면전시 벗어나 관객 동화 유도 개성의 중견여류화가와 해외전시를 통해 국제적 성장가능성을 보인 30대 젊은 작가들이 의욕의 개인전으로 초여름화랑가를 풍요롭게 장식한다. 천재성과 괴팍함을 동시에 지닌 여류작가 김점선씨(47)와 뉴욕에서 활발한 활동을 갖고있는 김원숙씨(40),그리고 미국 LA인터내셔널에서 현지미술인들로부터 격찬을 받은 조덕현씨(36),지난해 카셀도큐멘타에 참가해 화제의 작가로 주목받은 육근병씨(36)등이 그들. 올상반기 내내 불황의 그늘에서 괄목할만한 이슈나 볼만한 전시가 별로 없던 미술계 상황에서 이들의 작업은 어느정도 갈증을 해소시킬수 있는 수준높은 전시로 평가된다.특히 두 여류의 그림은 극도로 절제된 감수성과 감각의 조화로,두 남성은 단순한 평면전시에서 벗어나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전시공간을 연출,눈길을 끌고있다. 23일부터 7월7일까지 수목화랑(518­5884)에서 전시를 갖는 김점선씨는 많은 일화를 남긴 화제의 여성이다.한때 실험영화를 감독한 전위여성이며 대학시절에는 자살을 하려다 자신의 재능이 그림그리기에 있음을 깨닫고 죽음을 포기하고 나머지 인생을 미술에 다시 건 인물이다.홍익대 대학원을 나온후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지난87,88년에는 연이어 예술평론가들에 의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으며 소위 화랑의 초대전으로만 개인전을 15번이나 연 작가.외부와의 관계를 멀리한채 작업에만 몰두해 대하기 어려운 작가란 소리도 듣는 그녀는 그러나 그 어떤 국내작가보다도 소박하고 천진스러운 꾸밈없는 형상들을 창출해내고 있다. 박여숙화랑(544­7393)에서 3년만의 국내전(27일까지)을 열고있는 재미화가 김원숙씨는 상징적이고 우회적인 형체위에 대위법적인 색상으로 도상을 표현해내는 작가.미국과 독일,일본등지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그녀는 여성의 모습이 주가 되지만 페미니즘적이기 보다는 인간의 삶이 포괄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독자적인 조형성을 과시하고있다. 22일 국제화랑(735­8449)에서 제8회 개인전을 개막하는 조덕현씨는 「빛바랜 흑백사진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화면에 되살리는 작가」로 독보적인 영역을 가꿔왔다.선대의 숨결을 담고있는 사진한장을 갖고 민족의 수난사를 대변하는 한편의 다큐멘터리같은 화폭을 낳아온 그는 지난3월 제1회 LA인터내셔널에 미국화랑의 초대작가로 출품,현지 매스컴과 화단의 큰 호평을 받았다.7월1일까지 여는 이번 전시는 전시공간에 가설벽면을 세우고 조명을 활용하여 관객의 동화를 유도하고있다. 오는30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724­6328)에서 설치작업을 선보이는 육근병씨는 지난해 「미술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카셀도쿠멘타에서 거대한 봉분형태의 설치작업으로 주목받은 작가.흙무덤안에 TV모니터로 깜박이는 눈을 연출해 성스러운 제의를 체험하듯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육씨는 이번에 또하나의 진기한 실험작업을 펼치고 있다.
  • “분규 없다면 경제회생 확실”/김 대통령

    ◎“공개경영·인간적대화로 노사갈등 없앴다” 김영삼대통령은 18일 상오 삼성전자의 김광호사장등 노사화합 모범업체 대표 10명을 비롯해 15명을 청와대로 초청,조찬을 함께하며 노사문제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피력했다. 다음은 이날 모임의 대화 요지. ▲김대통령=현대그룹에서 연중 행사처럼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노사화합을 이룬 여러 기업체의 대표들과 이처럼 조찬을 함께 하며 의견을 듣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삼성전자사장=우리 회사는 외부에서 노조를 만들려는 기도가 있었으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이러한 기도를 막았습니다. ▲박영주 이건산업사장=회사야 어떻게 되든지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는게 일부 의식화된 노동자들의 목적입니다.해직 근로자들의 일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인데 또 복직을 시키면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김대통령=근로자복직은 정부에서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기업체 자체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김태섭 신아조선사장=우리는 전사원지주제를실시하고 있습니다.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관리연구직이 적으므로 연구개발이 잘 안된다는 점인데 정부나 출연기관등에서 연구내용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이승철 대웅제약사장=우리회사는 종업원 주식이 15%이고 대주주 지분은 10%이지만 그것도 연구개발투자를 위해 그 정도로 해놓은 것입니다.성과배분제,청년중역제,전사원 여름캠프등을 실시하여 노사화합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성태 해덕기계사장= 근로자복지제도를 위해 많은 행사를 하고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인간적 대우입니다.노동자들과 가끔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김대통령께서 강조하신 고통분담을 호소하니 쉽게 호응해 주었습니다. ▲고영환 녹십자의료공업사장=우리 회사에는 노조가 없습니다.공개원칙으로 바닥까지 노동자들이 경영을 알게 했습니다. ▲황정현 경총부회장=대통령의 고통분담 호소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호응하고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법의 정신을 살리는 것입니다.노사 양쪽에 공정하고 엄격한 법 적용이 된다면 더좋은 노사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정진화 산업연구원책임연구원= 노사간의 공동운명체라는 의식이 있으면 됩니다.노동자가 경영정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이 선 노동연구원선임연구위원= 경제가 잘되는 나라는 노사관계가 잘 되는 나라입니다.기업의 여러가지 좋은 사례를 모아 새로운 노사관계의 모델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김대통령=현재 우리는 경제회복의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이런 기회를 놓치면 우리에게는 다시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현대는 다른 기업체보다 임금도 높은데 사용자측의 성의가 부족했던 것같습니다.돈만 가지고는 안되며 인간적 대우가 필요합니다.그러나 이번에는 회사측에서도 애쓰는 것이 역력하게 보입니다.과거 정부에게만 미뤘던 태도에서 달라지고 있는 것같습니다.우리 기업주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먼 곳에 집을 짓고 자동차로 출근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의 경영자들은 회사 가까이에 집을 두고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퇴근할 때마다 근로자 몇명씩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나누며 대화를 하는 일이 많습니다.여러분들처럼 주식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우리나라는 돈을 버는데 무슨짓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기업주들이 많습니다.돈을 갖고 무덤에 가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노동자들도 자기만 생각지 말고 회사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이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합니다.자기만을 생각함으로써 다른 계열사의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노사가 공동운명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금년에 노사분규가 없다면 우리 경제는 확실히 일어날 것입니다.당분간 고통을 참는다면 우리는 분명 큰떡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쌍둥이형 적석무덤 발굴

    ◎경기 연천서… 2∼3세기 축조 가능성/인골 조각·쇠화살촉·목걸이 등 출토 군사보호구역인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에서 2∼3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쌍둥이형 적석무덤이 발굴됐다. 지난 4월27일부터 이 무덤을 조사하고 있는 문화체육부 산하 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중간발표를 통해 이 무덤이 북한 자강도 자성군 송암리에서 발굴된 무덤과 비슷한 형태인데다 무덤기초부·돌덧널·무덤보호시설등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고구려의 독자적인 무덤양식이 백제영역에 유입되는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에서는 또 인골조각을 비롯해 삼국시대 초기의 쇠화살촉 2점,목걸이 2개,토기등이 발견됐다.
  • 신라초기 무덤/네모꼴로 확인/창원대 조사단

    【울산=이용호기자】 신라초기의 무덤형태가 원형이 아닌 네모진 형태였다는 사실이 국내 최초로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남 울산군 농소면 중산리 618 일대 중산리고분군을 발굴조사중인 창원대 박물관학술조사단(단장 박동백)은 15일 중산리 고분군 24·25호분은 봉분모양을 갖춘 신라고분 가운데 가장 빠르고 1백50년 앞선 3세기말엽의 적석목곽분(적석)으로 이고분의 구조는 원형이 아닌 방형(방형)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공초 문학상(외언내언)

    공초 오상순.우리나라 신시의 선구자이며 19 20년 문예지 「폐허」의 동인으로 참여했던 시인이다.해방후에는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 수복후에는 연기 자욱한 명동의 청동다방에서 「청동산맥」이란 사인첩을 만들어 놓고 문인들과 제자들에게 선문답같은 낙서와 시문을 적게했던 기이한 시인이다. 공초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행운류수처럼 떠돌이 생활을 해왔고의 탈속한 경지에서 그야말로 무애도인으로 살다 갔다.그래서 그는 많은 일화와 기행을 남기기도 했다. 어느날 공초가 기르던 고양이가 죽자 집에 초상이 났다고 부음을 보내어 친구들이 달려가본즉 뜰에 고양이 무덤을 만들어놓고 곡을 하더라는 것이다.그의 유명한 명문 『짝잃은 거위를 곡하노라』는 이때 쓰여진 것이 아닐른지. 공초의 숱한 기행과 일화는 너무나 유명해서 정작 그의 시 세계의 진가를 가리는 역할을 했다.공초의 시 세계는 서정성이 주류를 이루었던 우리 시문학사에서 드물게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며 구도적인 면을 지녔으며 우주적인 광활한 세계를내포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장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치 예언자의 절규같은 치열함을 보여준다.공초의 치열한 시 정신,심오한 사상성,그리고 우주적인 스케일이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고 재평가되고 있다. 올해는 공초의 탄생 1백년이자 30주기.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초 오상순선생 숭모회와 서울신문사가 함께 공초 문학상을 제정,제1회 수상자로 이형기시인을 선정했다.공초를 따르고 존경하던 후배문인들이 서화를 내놓아 전시회를 열고 그 판매수익금으로 1억여원의 기금을 조성하여 제정한 상이라 더욱 값지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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