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덤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대본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분배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사인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복적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578
  • 한라산에서 휴전선까지 산야 누비는 ‘들꽃 아줌마’/ 야생화 전문가 나문심 씨

    “거창한 명분이나 철학을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우리 산하에 널브러진 이름모를 들꽃에 관심을 갖다 보니 야생화를 가꾸는 게 생활의 전부가 돼버렸어요.” 야생화 연구가 나문심(羅文心·41·전남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씨는 틈만 나면 전국의 산야를 누빈다.낯선 품종이라도 발견하면 종자를 채취하고 카메라에 정성스레 담는다.철따라 한라산에서 휴전선 부근까지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새로운 들꽃을 찾아 산야를 탐방할 때면 언제나 설렌다.”는 그는 한 때 흑산도 인근 작은 섬에서 ‘노랑 땅나리’를 발견했다.이 꽃은 원래 주황색이지만 노란색을 띤 변이종으로 확인됐다.또 전북의 한 습지에서 본래 자색인 ‘흰 물봉선’을 만나기도 했다. 지방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그가 들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86년.한 잡지사로부터 들꽃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은 게 계기였다.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맘먹었다.식물도감과 관련 서적을 찾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야생화에 푹 빠졌다.사진찍기가 취미인 그는 자연스레 동호인들과 어울리며 이산 저산을 돌며 들꽃을 관찰하고 생태도 연구했다.종자를 채취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화분에 옮겨 정성스레 가꿨다.이렇게 모은 야생화는 모두 400여종에 이른다. 그의 보금자리가 있는 산골마을에 이르면 ‘한백 꽃뜨락’이란 야생화 농장이 한눈에 들어온다.이 마을 산기슭에 꽃뜨락을 이루고 있다.그의 정성과 땀이 밴 농장에 들어서면 어디서 많이 봄직한 꽃들이 수줍은 꽃망울을 터트린다. 원추리·부처꽃·이질풀·동자꽃·비비루·노루오줌 등 여름꽃들이 수줍은 자태로 바람에 살랑인다.한 편에는 새우란·둥굴레·할미꽃·금낭화·붓꽃·꽃창포·수련·매발톱꽃·은방울꽃·며느리밥풀꽃 등이 제철을 기다린다.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꽃들이다.꽃에 얽힌 얘기도 흥미롭다.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올릴 밥을 짓다가 솥뚜껑을 열고 밥알 두 개를 입에 넣었다.그걸 본 시어머니가 먼저 밥을 먹었다고 괘씸하게 여겨 며느리를 때렸다.그 며느리 무덤에 피어난 꽃이 며느리밥풀꽃이다.이 꽃은 영락없이 입술에 밥알 두 개가 묻어 있는 모습이다. 어렵던 시절 슬픈 사연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이나 할미꽃 등에 대한 꽃이름의 유래와 생태,특징을 줄줄이 꿰고 있다.그의 야생화에 대한 애정과 천착이 얼마나 깊은 지를 엿볼 수 있다. 올 봄에는 광주시 북구 ‘문화의 집’에서 열린 ‘이야기와 시(詩)가 있는 우리 꽃 전시회’를 열어 야생화 보급과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데도 몫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에는 농장 한 편에 공방을 차렸다.그리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생화 생태 체험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어린이들이 직접 화분을 구워 만들고 그곳에 야생화 한 뿌리를 심어 가져가기도 한다.어릴적 우리꽃을 한번 가꿔본 경험이 정서함양에 도움이 될거란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지금은 대도시 어린이와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꽃들에 파묻혀 사니까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이를 가꾸고 관리하는 데는 강한 노동이 필요하다.”며 거칠어진 손바닥을 펴 보인다. 그는 “같은 꽃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생김새와 이름이 조금씩 다르며 서양 원예종 화훼도 그 나라 고유의 들꽃을 개량한 것들이 많다.”며 우리 들꽃의 ‘산업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자원으로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다.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고유의 수종을 지켜내고,이를 개량해 사시사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우리꽃’으로 만들어 가는 게 꿈이란다. 담양 최치봉기자 cbchoi@
  • 이라크서 차량폭탄 80여명 사망/시아파 최고 지도자 알 하킴 사망 나자프 이슬람 성지서… 229명 부상

    |테헤란·나자프(이라크) AFP 연합|이라크 최고의 시아파 지도자인 아야툴라 모하마드 바케르 알 하킴(사진·67) 이라크이슬람최고혁명회의(SAIRI)의장이 29일 이라크 중부 나자프에서 일어난 차량폭탄 폭발 사고로 숨졌다고 이란 관리들이 밝혔다. 현지 의료소식통들은 또 이날 폭발 사고로 적어도 82명이 숨지고 22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란 관리들은 이라크전쟁 종전 후 이라크로 돌아가기 전 이란에서 약 20년간 망명 생활을 했던 알 하킴이 경호원들과 함께 순교했다고 말했다. 이날 폭발은 바그다드 남방 180㎞ 지점인 나자프에 있는 이슬람교 시아파의 가장 신성한 성지의 하나인 알리 무덤에서 예배가 끝난 직후 일어났다.알 하킴은 사고 직전 이 곳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레바논 위성방송인 알 마나르는 폭발이 부비트랩이 장착된 차량에 의해 일어났으며 시아파 지도자 모하마드 바케르 알 하킴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나자프에서는 최근 종파간 충돌이 격화됐었고 시아파 내부에서도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24일에도 사망한 알 하킴의 삼촌이자 시아파의 또다른 최고 지도자 중 하나인 아야톨라 사이드 알 하킴을 노린 폭탄 테러가 발생했었다. 이날 알 하킴의 사망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라크는 더욱 혼돈으로 빠져들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사이버 주간뉴스 톱5

    ●대한민국은 뱃살빼기 중 대사증후군이라는 신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복부비만에 대한 관심이 높다.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도 알려져 있는 복부비만을 줄이기 위해 뱃살빼기 다이어트 키워드가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다. ●블랙푸드가 몸에 좋다며(?) 검은 콩,검은 깨 등 블랙푸드 건강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몸에 유익한 아토시아니 성분에 대한 검색과 함께 음식 조리법을 찾는 이도 많다. ●봉태규가 떴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코믹하고,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봉태규가 시트콤 논스톱4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네티즌의 클릭이 이어지고 있다. ●캐서린 햅번이 레즈비언(?) ‘황금연못’,‘밤으로의 긴 여로’ 등으로 유명한 고 캐서린 햅번이 레즈비언이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진실은 무덤 안에 있을 뿐이다. ●미녀 응원단에 촉각 ‘온다.’,‘안온다.’ 말이 많았던 북한의 미녀 응원단이 11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한반도기를 들고 열심히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에 네티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엠파스(www.empas.com) 제공
  • 소설에 담긴 마르크스주의/유기환 상명대교수의 ‘노동‘

    “이 책의 일차적 목표는 노동소설이 어떤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를 밝히는데 있고,부차적 목표는 그 이야기 구조가 어떤 사회정치적 의미를 가지는가를 논하는 데 있다.” 유기환 상명대 불문과 교수가 자신의 박사논문을 정리해 내놓은 ‘노동소설,혁명의 요람인가 예술의 무덤인가’(책세상 펴냄)는 마르크스의 현대적 의미를 문학적으로 되새긴 역작이다. 쌩쌩 나는 것을 타고 앞만 쳐다보는 시대에 느릿한 걸음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되돌아보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유 교수의 눈에는 19세기 중반 유럽을 배회한 마르크스의 유령은 이제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그는 이라크 침공,동구 몰락을 가져온 ‘빵의 문제’ 등을 예시하면서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조종을 울렸지만 사상,고통받는 다수를 위한 윤리로서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 지은이는 1장에서 노동소설의 의미를 “동일한 집단의식과 동일한 역사적 전망을 가진 사회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이 보여주는 동태적 이야기”라고 정의한다.이어 자신의 문제의식을 객관적으로 다듬기 위해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잭 런던의 ‘강철군화’,한설야의 ‘황혼’ 등의 작품에 확대경을 들이댄다.네 작품은 대표적 노동소설로서 다른 자본주의라는 모태에서 태어났지만 비슷한 미학적 특징을 보인다는 데 착안했다. 저자는 먼저 네 작품을 등장인물,시공간 등 다양한 구성요소로 요리조리 비교하면서 노동소설이 이데올로기적 선명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예술성을 해칠수 있다고 주장한다.이어 주인공의 성장구조 등의 분석에서는 노동소설의 낙관주의를 보여준다.또 투쟁관이라는 잣대를 통해서는 모든 문학작품이 하나의 정치 팸플릿일 수는 있지만 그 역(逆)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론은 뭘까? 저자는 “작품의 이데올로기적 선명성이 곧 그 작품의 예술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혁명과 예술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혁명)문학은 예술이며,예술인 (혁명)문학이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5)이어령-세계사 새 조류와 한국 지성인

    “우리는 지금 하나의 벽화 앞에 있다.그것을 너무 떨어져서 또는 너무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안된다.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것이다.말하자면 형상의 윤곽만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원거리와 반대로 어느 부분의 디테일만 보이는 근접된 거리에 서지 않는 것이 좋다.”(이어령 ‘저항의 문학’(1959)중에서) 전후문학(戰後文學)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어령 선생의 글을 접한 적이 있다.무덤 속에서 죽은 이상(李箱)을 깨워낸 그는 당대의 한국문학에 현대성과 보편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그리고 지금도 그는 한국사회의 한 끝에 서 있다. 어느 날 아침 라디오에서 기업가들을 앞에 놓고 세계사의 향방을 이야기하는 선생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하시는 말씀이 최신식이었던 까닭이다.나는 오늘도 그런 기대를 안고 선생을 찾아갔다. “문명비평가로서,중앙일보 고문으로서 선생님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내 나이가 이제 고희를 지났습니다.새로 시작하기보다는 정리하는 쪽으로 하려고 합니다.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하나는,내가 본래 문학평론을 했기 때문에 현암출판사 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와 소설을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방식으로 정밀 분석하는 시리즈를 내려고 합니다.두 번째는 10월부터 일본문화연구소의 초청으로 일본에 장기체류하게 되는데 거기서 동아시아 문화 읽기를 시리즈 방식으로 써나가려고 합니다.마지막은,서양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의 입장에서 새 문명의 지도를 그려보려는 뜻에서 세계 각국을 주유하면서 석학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잘 알다시피 영국·미국·호주·필리핀·싱가포르·일본 이런 나라들은 해양 국가들입니다.미국이라는 게 큰 대륙이지만 문명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떨어져나간 섬이죠.일본이 대륙권 문화에서 떨어져나간 섬처럼 말이죠.소위 섬들의 문화입니다.그런 해양 세력 하고 유럽 중심 속의 유라시아 하고 우리나라·러시아·중국 등을 대비해 보려고 합니다.그러니까 사실상 문명 충돌은 헌팅턴이 본 것처럼 이슬람 대 기독교,이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지정학적인,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치는 관계인 거죠.우리는 반도라는,양립성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선생을 문명비평가라 칭한 것은 잘한 일 같다. “선생님께서는 1934년생이신데요.어느 누구보다 부단한 갱신을 이뤄 오셨습니다.이를 가능케 한 시대나 세대상의 배경은 없을는지요?” “내가 성장하던 시대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게 없었던 시대였죠.서울의 도시체험이라고 하는 것도 첨단 도시가 아니라 완전히 폐허의 도시였어요.전쟁 때문에 울타리도 없고 길거리도 없고.한마디로 우리 세대는 자기 정체성마저도 상실된 시대이기 때문에 제로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리고 나는 이것이 굉장한 불행인 줄 알았는데 내 일생을 살아가는 데 귀중한 체험이 되었습니다.연필이 왜 좋은가.만년필이 있고 볼펜이 있는데.지울 수 있기 때문이죠.한번 쓰면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게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아닌가 해요.386세대,한총련세대 전부 지워지지 않는 볼펜 같습니다.우리 세대는 확실하게 지워질 수 있었습니다.끝없이 자기를 소거했던 거죠.내가 컴퓨터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리 어마어마한 것이라 해도 컴퓨터는 딜리트 키 하나만 누르면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이 쾌감이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겁니다.이것이 지금까지의 내 문학이론의 기본적인 바탕입니다.끝없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자기를 몰입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은 말을 끊을 사이도 없이 숨 가쁘게 말씀을 이어간다.나는 선생의 어조와 표정에서 씌었거나 들린 사람의 표징을 본다. “선생님은 문학비평에서 문명비평으로 그 폭을 넓혀 오시지 않았던가요?” “내가 역사나 사회로부터 도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요.문학이라는 것은 사회개혁의 수단이 아니라고 이야기한 것이지 내가 사회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나 보고 직함이 많다고 하는데,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단순하게 살아왔습니다.창조적 상상력을 위해서 일평생을 바쳤고,그것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바쳤다고 할 수 있지요.책도 그렇게 읽었고.다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 사람이에요.인생이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재미없게 왜 한 우물만 파느냐.토끼도 수십 마리 쫓아라,놓쳐도 좋다,수백 개의 우물을 파라는 겁니다.끝없이 수맥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우물을 하나 파서 마십니까.나는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고 토끼를 잡는 사람도 아니고 토끼를 쫓고 우물을 파는 사람,창조가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습니다.진짜로 토끼를 잡아서 놔주면 내 작업은 끝난 거예요.이것을 잡을 때까지 전심을 다하는 그 긴장을 나는 사랑하는 것이지 토끼 잡아서 뭐합니까.내가 목마름의 갈증이 있는 한 나는 또 하나의 우물을 파지만 우물을 파서 마셔도 내 갈증이 없어지지 않는데 내가 왜 한 우물만 팝니까.우물 파기와 토끼 잡기,이것이 내 평생의 일이지요.” 이제 나는 질문을 선생의 문명비평 쪽으로 돌려본다.“선생님께서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쓰신 칼럼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불러일으켰던 것으로 아는데요.” “내가 그 칼럼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오늘날 전쟁이 뭐냐 하는 것이었어요.새로운 시대에 있어서의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평화다,반전이다,참전이다를 가릴 것 없다는 거죠. 우리의 생활 곁에 끝없이 선고받은,종전 없는 전쟁이 들어섰다는 거죠.부뚜막에 전쟁이 올라와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죠.그것을 갖다가 모럴문제,환경문제,발전문제로만 보는 것은 좁다 이거죠.그러니까 새롭게 보아야 하는 것이죠.” “오늘날 세계는 이라크 전쟁,북한의 핵문제 같은 ‘낡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가 하면 초국가적인 기술 발전으로 인해 나날이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과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요?” “오늘날 어느 나라를 보든지 세계 시스템이라는 것은 국민국가예요.국민국가라고 하는 틀이 점점 커져서 글로벌화하다 보니까 다민족 국가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어요.중국 같은 나라가 55민족이 사는 나라가 아닌가 말이에요.미국도 다민족 국가고.스위스도 조그맣고 말레이시아도 조그마하지만 전부 다민족 국가예요.언어도 다 다르고.그게 바로 네이션 스테이트예요.그런데 지금 남들은 그런 국민국가에서 벗어나서 국민국가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국민국가는커녕 통일도 못하고 있단 말이죠.그런 와중에도 한국은 세계적인,소위 보편적인 시스템에 들어서 있습니다.한국은 지금 세계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이 보편 시스템에 들어와 있는 걸 거부할 수가 없어요.인권,보편주의,보편성,합리성,자유,평등 이걸 거부할 수가 없어요.북한은 80%의 질서 속에 남아 있고 우리는 20%의 질서 속에 들어와 있어요.지금 남한은 20% 중에서,세계 IT 국가 중에서도 최강국이다 이거예요.이걸 잘 알아야 된단 말이죠.그러니까 민족주의적 감상으로 보면,핵문제 등에서 물보다 피가 더 짙다고 얘기하면서,정권이 뭐 민족이냐 이런 디테일한 문제를 따지기 전에 그냥 진짜 민족이다 우리끼리,그러니까 남의 나라가 위협하면 같이 싸워야 된다,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현실적으로는 북핵문제라든지 이웃나라와의 공조문제라든지 했을 때는 20%에 속해 있으면서도 80%에 남아 있는 북한을 아우르는 데에서 오는 사고의 편차,물질적 경제적인 편차,국제적 외교관계들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지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요?” “소위 ‘엔드 오브 히스토리(end of history)’, 역사는 결론이 났다.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렇게 보았습니다.헤겔식 절대주의죠.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론에서 정반대로 문화는 상대주의다,어느 하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나는 후쿠야마도 헌팅턴도 잘못됐다고 봅니다.문명충돌이라고 할지라도 이슬람 하고 이렇게 싸우는 것이 아니죠.명색은 지금 이라크와 미국이 붙어서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이 싸우는 것 같지만,그러면 왜 유럽이 미국하고 손잡고 싸워야 하는데 안 그러느냐.왜 이슬람국가들이 다 같이 싸우지 못하고 방관하는 나라가 있느냐는 거죠.지금은 소위 지정학적 내셔널리즘이 지배하고 있어요.글로벌까지도 아니에요. 지역 컬처입니다.그럼 지역 컬처는 뭐냐.크게 보면 대륙문화권과 해양문화권의 충돌입니다.그러니까 세계를 좀더 복합적으로 크게 보아야 합니다.이런 눈으로 우리 반도를 보면 우리는 국내적으로가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그렇다면 혼자,일국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어딘가와 연맹을 지어야 하는데 이념적 연맹이 아니고 세계 시장질서 속에서 하나의 경제권이라는 연맹을 맺어야 해요.쉽게 말하자면 세계시장이 글로벌리즘으로 바뀌면서 경제내용이 바뀌었다는 거지요.물동 중심의 경제가 지금 문화 콘텐츠 중심 경제로 바뀌고 있어요.배고픈 경제로부터 눈 고픈 경제,귀 고픈 경제로 바뀌고 있어요.이러한 경제를 공유할 수 있는 문화 공유권을 만들어야 합니다.이것은 정치이념이나 경제이념 하고는 달라요.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위에 경제 공동체가 생기고 그것이 한 단위가 되어 세계시장에 참여하게 되는 거지요.그러니까 결론은 창조적인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화석처럼 굳은 사고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강렬한 해체를 통해서 재창조해야 합니다.” 선생의 사고는 크고 넓다.그 속에서 나는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선배들의 세계관을 엿본다.386이라는 이름으로 한정된 세계관으로는 이 세계관에 맞서 양립할 수가 없음이 명약관화하다.큰 사고가 없이는,우물 안 사고로는 한국사회는 이미 대적할 수 없는 괴물이 돼 버린 것이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문명비평가 이어령 ●긴장감 부르는 예리한 눈매·맺힌 입술 이번이 몇 번째 만남인가.나는 선생을 기억하지만 선생은 기억이 없으시다.‘구운몽’에 그런 구절이 있다.귀인은 잊기를 잘 한다고.귀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리고 귀가 긴 선생.집안이 원래 대대로 장수를 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었는데 앞에 우뚝 선 모습이 칠순의 연세에 그렇게 단단해 보일 수가 없다. 옛날 1950년대,1960년대 문학잡지에 나오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모습에서 그렇게 변한 게 없다.안경 너머로 눈매가 날카롭다.맺힌 입술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갖게 한다.저 모습 어디서 그 예민한 비평 감각이 솟아오르는 것인가. ●한국문학에 현대성·보편성 척도 제시 1934년생 충남 아산 출생.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 시절부터 28세로 요절한 천재 이상(李箱)의 문학을 재발견해 냈다. 1950년대 후반에 걸쳐 김동리,조연현,서정주 등 이른바 문협 정통파의 전통주의,복고주의에 대해 전통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구세대 문학에 대한 전후세대 문학의 독자성을 주장했다.(‘저항의 문학’)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특히 문학의 창조적 측면에 언어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비평활동을 전개하면서 김수영 등과 이른바 불온시 논쟁을 벌이면서 ‘문학적’ 저항을 주장했다.소설가 남정현이 ‘분지’로 필화를 겪을 때 증인 신분으로 변론을 맡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이화여자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장군의 수염’ 등을 위시한 소설 창작,‘문학사상’ 창간,이후 문화부장관,중앙일보 고문 등을 지내면서 다방면에 걸쳐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현대 한국문학에 현대성·보편성의 척도를 제시해온 비평가다.
  • ‘황색 돌풍’/차오친후이‘투수들의 무덤’서 벌써 2승

    황색 돌풍의 새로운 주역이 떴다. 타이완의 첫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투수인 차오친후이(사진·22·콜로라도 로키스)가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쿠어스필드에서 2승을 거둬 눈길을 끈다.지난달 26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데뷔전에서 첫 승을 거둔데 이어 7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도 승리로 이끈 것.13일 현재 2승1패 방어율 4.50.쿠어스필드는 지난해 9월 타이완 선수로 처음 첸친펑(LA 다저스 외야수)이 데뷔한 구장. 겨우 4차례 등판했지만 쿠어스필드를 무색케한 투구에 차오는 벌써부터 노모 히데오(35·LA)와 박찬호(30·텍사스 레인저스)의 뒤를 이을 아시아 대표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차오는 이날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에서 일본의 오카 도모카즈(27·몬트리올)와 메이저리그 사상 첫 타이완과 일본 투수 선발 맞대결을 펼쳐 이래저래 화제를 몰고다니는 선수가 됐다.5와 3분의1이닝 동안 3실점하고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삼진을 5개나 뽑아내는 등 강한 인상을 남겼다.콜로라도가 11회 연장전 끝에 6-3으로 승리.콜로라도에 젊은 피를 수혈할 유망주로 크고 있는 차우는 지난 1999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23이닝 무실점에 3승 무패를 기록,계약금 220만달러에 입단했다.같은 해 김병현(24·보스턴 레드삭스)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25만 달러,최희섭(24·시카고 컵스)은 120만 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차오는 시속 155㎞에 달하는 빠른 공과 뛰어난 체인지업,예리한 슬라이더가 주무기.2000년에는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아 선수생명이 끝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차오가 가세하면서 이젠 한국 타이완 일본 등 아시아 야구 3강이 메이저리그에서도 뜨거운 경쟁을 펼치게 됐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이 부부가 사는 법 / 최명주·이묘숙씨

    결혼식에서 신랑이 검은 옷을 입는 이유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웃자고 하는 말이라지만 분명 결혼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가득하다.무덤이란 극단적인 표현이 아니라도 결혼하면 대부분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산다.그것이 결혼이고,인생이라 생각한다.그리고 때때로 자조적으로 덧붙인다.“결혼생활이란 게 다 그렇지…”“문제없는 부부가 있나?”이 말들은 문제를 축소시킬 뿐 아니라 자기합리화에 딱 맞다.그러나 문제해결은 애당초 포기하는 말들이다.이럴 때 결혼 당시 자신들의 신념과 약속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엿보는 것은 어떨까.최명주(41·이야기 있는 외식공간 기획실장)-이묘숙(41·대학강사)씨 부부는 참 특별나다.남편 최씨는 세가지 결혼약속을 했고,이를 14년째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세 가지 해방’을 약속 최씨의 이씨에 대한 약속은 ‘세가지 해방’,즉 ‘가사로부터 해방,육아로부터 해방과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가사분담을 하겠다는 약속이야 요즘 웬만한 신세대라면 할 수 있겠다.하지만 육아로부터의 해방이라니? 최씨는 출산과 육아로부터 아내를 자유롭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결혼 후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더 공부하자며 ‘무지(無知)로부터의 해방’을 덧붙였다 한다. “흔히 결혼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희생해야 한다고 하지요.남자는 물론 여성의 경우 결혼 결정은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저희는 평생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약속한 겁니다.” 게다가 최씨가 사춘기 시절부터,“차 한잔을 놓고 밤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반려자로 맞겠다.”던 꿈까지 실천하면서 산다.지난 주말에는 영화‘싱글즈’를 통해 새로운 삶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느라 밤을 새웠다. 최씨는 부부간의 대화는 다양한 경험의 공유가 비결이라고 말했다.“영화,연극,뮤지컬 등 삶을 즐겁게 해줄 재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요.‘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즐길까’하면서 정보를 찾고 1주일 열심히 일한 뒤 주말을 확실하게 즐기면,대화의 소재가 샘솟지요.” 아내 이씨는 남편을 ‘일에는 도전적이고,적극적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잘 우는 여린 사람,남성적이면서 동시에 여성적인 양성성이 제대로 조화된 완벽한 사람’이라고 말했다.좀 과장된 칭찬이라는 지적에 웃음을 보였다.“그래서 흔히 ‘닭살 부부’라고들 해요.10년이 넘었는데도 그렇게 사랑이 넘치느냐고 이상하다고 합니다.하지만 결혼생활이 깊을수록 더 사랑이 깊어지고,커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성공이란 과정을 즐기는 것 최씨는 경기 양평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4년동안 돈을 벌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졸업했다.“주민등록도 없던 어린 시절부터 생업의 현장에서 뛰어야 했다.그때 나를 지켜준 것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생각이었다.”그뒤 우연히 외식업체에서 일하게 됐고,결혼과 동시에 두사람이 영국의 한 한식당으로 일을 배우러 가게 됐다.“당시만 해도 외식업이 이렇게 성장할 줄도 몰랐고,요식업이란 말로 천시받았죠.우연히 일도 배우고,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라 무모하게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지요.” 영국에서 그래픽디자인도 함께 배우느라 고생했다는 그는 귀국후 외식업체 ‘놀부’의 기획실장으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말레이시아,중국 등을 누비면서 한식을 세계화하는 데 힘썼다.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얼마 전에는 대그룹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만큼 외식업체 컨설팅에는 손꼽히는 사람이다.그리고 최근 컨설팅업체를 설립,서울 강남 외식업계를 한식으로 새롭게 공략할 준비를 마쳤다.“전 전통한식만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어요.외식산업이 지금은 새로운 맛과 퓨전으로 탐색중이라면 결국은 우리 입맛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거든요.세계인들은 특별한 음식으로 한식을 만나기 시작했고요.” 부인 이씨는 고교 졸업후 애니메이션회사를 다니다 결혼과 함께 영국으로 갔고,웨이트리스로 외식산업을 알게 됐다.한식당의 매니저로 일한 경험을 살려 한국으로 돌아와 ‘놀부’의 점장을 맡았고,95년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이어 경희대에서 외식산업학 석사과정을 마친뒤 올해 박사과정에 입학했다.올 가을학기부터는 대학에서 외식산업에 대한 강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두 사람은 지적 허영으로 학력을 쌓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공부 역시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겁니다.언제든 입학한 것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더이상 욕심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공부했어요.과정을 즐기고,행복감을 느끼면서요.그랬더니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세상의 아이가 모두 예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질문,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최씨는 조심스러워졌다.“저희도 아이를 좋아합니다.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문제에 천착하다 보니 아이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었던 것 뿐입니다.내 아이를 낳아서 이기적으로 키우기보다는 세상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녀는 “결혼 전에는 흔히 남자들이 아이 안낳겠다고 하잖아요.그러나 결혼하면 종족 보존의 본능인지 달라지고.처음 약속하면서도 아이 문제만은 믿지 않았어요.결혼 5년,10년째에 그리고 제가 40이 되기 전해에 마지막으로 ‘정말 아이를 원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끝내 남편의 생각이 바뀌지않는 것을 보고 ‘역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아이를 갖지 않은 데는 시어머니도 영향을 끼쳤다.“80이신 시어머니께서 오히려 두사람만 행복하면 된다고 격려해 주시니까요.” 어버이날,중학생인 조카로부터 카네이션을 받으면서 묘한 기분이 된다지만 내 아이가 아니라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 갖가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청소년범죄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그에게 저출산율을 들이대며 ‘비난’의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표현할수록 가슴 설렌다 이들에게 생활 속의 사랑표현을 물었다.이들은 집에서 매일 아침 6시,성대하게 거행되는 ‘아침작별 세리머니’를 소개했다.포옹하고,뽀뽀하는 것는 기본.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악수,문이 닫히기 전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차에 오르기 전 베란다에 나와 있는 아내를 향해 ‘바이바이’,비상라이트를 켠 채 아내의 시야를 벗어나는 250m가량을 주행한다.“이 순간을 진하게 느끼기 위해서입니다.‘이 다음∼’은 없거든요.” 최씨는 가정에서는 물론,직장에서도 ‘다음∼’이 아닌 ‘바로 지금,오늘’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산다고 말했다. 이씨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아직까지 결혼생활은 남성이 주도하는 만큼 남편의 의식이 결혼생활의 행복을 여는 열쇠”라면서 “닭살 부부로 살아보시지요.”라고 권했다. 허남주기자 hhj@
  • [CEO 칼럼] 우리미래 도덕성 회복으로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정부의 리더십 부족과 북핵문제,경제 침체,노사 갈등과 파업,청년실업,각종 부정부패 사건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다.대형 사건에는 으레 정치인과 사회 저명인사,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를 살려 가까운 장래에 2만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하지만 소득 2만달러 시대란 이토록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나라에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그래서 좀 더 냉철하게 우리를 돌아보면서 얽혀있는 난제를 풀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 수십 년동안 땀 흘려 일한 결과 국제적으로도 그 성과를 인정받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경제적인 삶의 질 또한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하루 하루가 어지러울 정도로 사건,사고가 터지고 있는 지금의 사회 시스템으로는 우리의 진정한 미래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사회가 이토록 혼란에 빠진 배경에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내재되어 있다.우선 소위 지도층 인사와 가진 자들의 전도된 가치관이 문제다.자신의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물질 만능주의적 사고는 지금 횡행하는 사회병리 현상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는 법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점이다.법은 계속 만들어지지만 지켜질 수도 없는 법들이 많아 존재가치와 목적이 사라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세번째는 사회의 불문율과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서구 사회는 구성원들간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불문율과 사회규범을 어겼을 때 작동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자정작용(自淨作用)을 한다. 마지막으로 도덕성 회복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많은 국민들이 부정부패나 도덕성 타락을 개탄하고,이로 인한 좌절감과 상실감으로 신음하고 있지만,정작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점 가운데 우리가 진정 절박한 심정으로 대해야 할 과제는 바로 도덕성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이해와 전략이 필요하다.우선 이 과업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기 어려운 과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최소한 50년 내지 100년의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국민정신개조운동’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음은 그저 ‘잘해 보자’는 식의 호소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일이다.사회시스템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개별 시스템들이 호환되며 선순환을 거듭하는 기틀을 구축해야 한다.또 규제 일변도의 법을 혁파하고,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철저히 집행함으로써 국민들이 ‘법을 지키면 이익’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범 사회적인 도덕성 회복 운동을 전개하는 일이다.과거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온 국민이 똘똘 뭉쳤던 새마을운동의 기억을 되살린다면 이 또한 국민적인 정신재무장 운동으로 충분히 승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덕성 회복은 혼탁한 사회를 구하고 우리의 미래를 여는 데 시급하고도 필수 불가결한 국가적 어젠다이다.인간다운 삶에 대한 척도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님이 분명할진대 우리는 그 당위성을 인정하고,이미 황폐화되다시피 한 우리의 자아를 ‘도덕의 거울’에 비추어 보는 일에서부터 단초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김 종 훈 한미파슨스 대표
  •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 임재철 프로그래머

    ‘영화에 미친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잔치’.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가 22일부터 열흘 동안 빛고을 광주를 달군다.그 모습은 도심에 자리잡은 무등산 같다.겉으론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 속엔 열기가 가득하다. 광주영화제는 전국 시네필(영화 애호가)의 잔치다.1회부터 토대를 다져온 임재철(42) 프로그래머를 만나 ‘시네필 잔치’의 모든 것을 들어보았다. 영화제 특성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가시돋친 질문을 던져보았다.“특성이 없다고요? 잘 몰라서 하는 소리죠.영화 마니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죠.1년에 영화 한편도 보지 않는 사람들과 자기 돈으로 40∼50편 보는 그룹은 다릅니다.광주 영화제는 후자에 비중을 두는 거죠.” 이런 임씨의 철학은 2년 전 프로그래머 제의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해온 영화제에 그대로 녹아 있다.그는 “다른 도시처럼 재미있는 행사로 만들자는 소리도 있었지만,굳이 돈을 많이 들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예향이면 예향답게 하자고 설득했다.”고 말한다. ‘영화다운 영화’에 대한 임씨의 애정은,이후 대중성에 비중을 두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그런 요구가 그의 원칙과 접점이 없을 경우 “언제라도 그만둘 계획”이라고 말할 정도로 확고하다. 마니아 영화제를 고수하려는 이유는 또 있다.임씨가 진단컨대 부산영화제처럼 갈 경우 ‘황새 따라간 뱁새’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부산영화제의 성공요인중 하나는 구미의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 고조와 맞물려 있습니다.그러나 한국 영화의 규모를 보면 이젠 그런 형태의 영화제로 가는 문은 닫혀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보통 이상의 관심을 가진 사람을 타깃으로 한 컨셉트는 1,2회에 오롯이 반영됐다.‘될성 부른 나무’인 신예 감독들을 조명하는 ‘영 시네마’와 ‘월드 시네마 베스트’,거장들의 회고전에 무게가 실렸다.이에 대해 임씨는 “영화인의 교양을 넓히고 토대를 다지는 작업인데,결국 영화를 살찌게 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두터운 마니아층’에 대한 임씨의 철학은 오래 전에 형성됐다.“영화를 보면 그저 편하다.”는 그는 94년 넘치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6년 동안의 중앙 일간지 기자생활을 접고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뉴욕시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뒤 마니아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전국을 순회하는 시네마테크에서 거장들의 회고전을 기획했다.임씨의 영화 사랑은 끝없이 이어져 “영화제가 좋은 문화행사니까 지원한다는 인식은 예산 배정에만 신경쓰는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까지 잊지 않는다.그의 안내를 바탕으로 영화제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이종수기자 vielee@ 사진 이언탁 기자 utl@ 주요작품 ●광주국제영화제 세번째 얼굴 ‘시네필,부활을 외쳐라’를 모토로,장편 100여편을 상영.개막작은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고 폐막작은 칠레 출신 라울 루이즈 감독의 ‘그날’이다. 1,2회에서 반응이 좋았던 ‘영 시네마 섹션’은 제3세계 감독들을 많이 소개하는 게 특징.또 근래 만들어진 작품중 걸작을 소개하는 ‘월드 시네마 베스트’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신작 ‘팜므 파탈’,장 피에르 미로뱅의 ‘노보’ 등이 기다린다.거장 회고전 코너는 ‘서부영화의 역사’ 존 포드 감독에게 눈길을 돌렸다. 관심이 가는 섹션은 올 처음 기획한 ‘논픽션 시네마’.극영화가 아닌 실험영화나 다큐 등을 소개하는데,임 프로그래머는 실험영화의 대가 마이클 스노의 신작 ‘코퍼스 칼로섬’과 안드레 헬러의 ‘히틀러의 여비서’를 특별히 권한다.또 60∼70년대 일본 액션영화 대표작을 돌아보는 ‘일본 영화 걸작선’코너도 놓치기 아까워 보인다.자세한 작품과 일정은 홈페이지(www.giff.or.kr)참조.
  • KBS SKY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

    케이블·위성 채널 KBS SKY DRAMA는 9일부터 여름특집 ‘전설의 고향’(월∼금 오후 11시10분)을 마련한다.‘구미호’‘살아있는 무덤’‘여우골’‘열녀문’‘오세암’‘저승에 핀 꽃’ 등 모두 18편이 방송된다. KBS SKY는 이에 앞서 8일부터는 KBS2 드라마 ‘여름향기’(연출 윤석호)를 화요일과 수요일 오전 10시30분에 재방송한다.
  • “독특한 영상 할리우드도 흉내못내”/ 126억 애니大作 ‘원더풀 데이즈’ 김문생 감독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김문생 감독의 말) 영화 한편에 매달려온 건 ‘무모한 짓’이다.한국에서 한번도 재미를 본 적 없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면 더더구나 그렇다.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에 7년이 걸려 탄생한 영화.세간에서 이런 수식어로 먼저 기억되고 있는 SF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제작 틴하우스·17일 개봉)는 CF감독이었던 김문생(44) 감독의 데뷔작이다.에코반(극중 주요공간인 미래도시)에서 마침내 ‘해방’된 감독을 서초동 제작사에서 만났다.안면몰수(?)하고 모두들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부터 던졌다. 총 제작비가 126억원이나 되니 영화가의 반응이 기대반 우려반이다.이런저런 이유로 제작기간과 개봉시점을 계속 미뤄 제작비가 110억원으로까지 불었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솔직히 처음엔 이렇게 큰 돈이 들 줄은 몰랐다.욕심이 커지면서 제작비도 불었고 그에 대한 부담감도 물론 비례했다.근년들어 블록버스터들이 줄줄이 깨지니까 걱정들을 많이 하는데,한국 애니메이션이 활짝 꽃피울 수 있는 싹은 틔웠다고 분명히 자신한다.물론 관객 동원에도 성공해야 하겠지만. 제작비는 무난히 회수할 것 같은가. -어렵게 생각하진 않는다.국내에선 100만∼150만명이 봐주길 바랄 뿐이다.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프랑스 지역에 50만달러(약 6억원)어치를 팔았고 독일,영국,이탈리아,일본 등과도 국내 개봉 전에 계약을 마칠 거다.해외 반응이 좋다. 최근 ‘오세암’도 기대 속에 개봉했다가 흥행엔 실패했다.한국 애니메이션이 실패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오랫동안 OEM(하청)제작만 하다보니 제조기술은 우수하지만 기획능력을 쌓지는 못했다.문화적 정체성을 견지하면서도 보편성을 갖춘 기획이 관건이다. 으레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관객을 의식하게 마련이다.‘원더풀 데이즈’는 타깃층이 좀 다른 것 같다.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긴 했으나,처음부터 영 어덜트(Young-adult)층을 겨냥했다.미국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일본 애니메이션이 오타쿠(마니아)층을 의식하듯 우리가 영 어덜트 시장을 뚫는 건 나름의 특화전략이다. 이 영화의 강점은 뭔가.하회탈 등이 등장하는 건 한국적 정서를 보여주기 위해선가. -하회탈은 내 별명일 뿐 특별히 뭔가를 노린 포석은 아니다.영상과 음악(작곡가 원일이 프라하 오케스트라를 동원했다.)이 독특한 형식의 영화가 목표였다.할리우드,일본 쪽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개성을 드러내고 싶었다.이전에 CF를 만들 때도 생활철학이 그랬다.‘유일해지는 게 곧 최고가 되는 길’이라고. 영상의 표현기법이 사실적이면서도 매우 독특하다. -바로 그게 영화의 무기다.손으로 표현하는 2D(셀)애니메이션,컴퓨터그래픽인 3D애니메이션에다 배무덤 등 주요공간들은 미니어처를 만들어 촬영해 이들을 합성시켰다.할리우드에서도 신기해 하더라.그들은 기술은 있으되 ‘여건’이 안된다.세 부분을 할리우드 제작시스템으로 결합시키려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기 때문이다.그걸 노렸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실사일지 애니메이션일지 모르겠다.SF,팬터지,액션 이런 요소들이 미지의 시공간 속에 뒤섞인 역사물을 해보고 싶다. 김 감독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왔다.1988년부터 그가 만든 CF는 줄잡아 200여편.특히 그 중에서도 ‘하벤’ ‘환타’ ‘치토스’ 등 애니메이션 특수광고 쪽에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수정기자 sjh@ ‘원더풀 데이즈’는 어떤 영화 시사에 앞서 감독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수한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영화를 소개했다.뚜껑을 열어본즉 그 말은 정확한 자평이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7년을 공들인 영화답게 ‘원더풀 데이즈’의 세련된 화면은 할리우드산 못지 않은 수준.손작업으로 이뤄지는 셀애니메이션과 컴퓨터그래픽,미니어처 실사 촬영이 뒤섞인 영상이,화면이 바뀔 때마다 다른 맛의 감상을 던지는 건 영화의 큰 매력이다.하지만 드라마의 서사가 그에 못 미쳐 아쉽다는 게 시사회 안팎의 중론이다. 영화는 2142년을 시대배경으로 한 SF.에너지 전쟁 이후 지구의 생존자들이 남태평양에 건설한 인공지능 도시 에코반이 주요공간이다.오염된 공기와 물을 에너지원으로 에코반이란 신도시가 건설됐다는 설정,즉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가이아 이론’을끌어들였다.그러나 정작 이야기는 에코반의 여자 경비대원 제이와 오래전에 사라졌다가 에코반을 찾아온 첫사랑 수하,둘 사이를 질투하는 에코반의 경비대장 시몬 등 세 사람이 엮는 멜로다. 지지부진한 이야기 전개와 지나치게 사랑이야기에 기대는 시나리오가 빼어난 화면기술의 기대치를 못 받쳐주는 게 흠이다.신인 성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손쉽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스타를 쓰지 않고 신인을 동원한 용기는 참신하다.그럼에도,감정변화에 따르지 못한 채 낮은 톤으로만 일관하는 미숙한 대사가 집중력을 떨어뜨려 아쉽다. 황수정기자
  • 박철 “같은 실수 되풀이 않겠다”/ 오늘 개국 iFM ‘… 2시폭탄’으로 컴백

    “깨끗하고 정갈한 방송은 체질상 잘 안 맞죠.‘거칠지만 괜찮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디오 방송계의 ‘폭탄’ ‘문제아’ 박철(35)이 돌아왔다.30일 개국하는 경인방송 FM라디오(iFM)에서 ‘박철의 2시폭탄’(월∼금 오후 2∼4시) 진행을 맡은 것.지난 4월 SBS 러브FM ‘박철의 2시탈출’ 진행 중 청취자에 대한 무례한 발언으로 “공중파 라디오 진행을 다시는 안 한다.”며 떠난지 2개월만이다. “당시 생각이 모자랐습니다.제 무덤을 판 측면이 강했죠.방송을 그만두기 두달 전부터 녹음 방송하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DJ와 청취자간 직접 대화가 특징인 라디오에서 생방송을 할 수 없다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괴로워하던 차에 ‘출연 자제 권고’ 등 물의가 일어 자의반 타의반 라디오를 떠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악한 온라인 방송국 사업을 하면서 오프라인 기반부터 확고히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새로이 출범하는 iFM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다시 시작하고 싶기도 했다.“지금은 ‘백의종군’의 처절한 각오입니다.” 그는 “같은 실수는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거듭 내비친다.“최소한 방송매체에서는 욕을 하지 않겠습니다.소리지르는 것도 자제하고요.제작진과도 두달간 거의 합숙하다시피 붙어다니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철저히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제를 하겠다는 것이지,거침없는 ‘말발’과 자신감 넘치는 발언 등 특유의 진행방식을 바꿀 마음은 없다고 했다. “프로그램의 이름을 제 별명인 ‘폭탄’에서 딴 이유는 펑펑 터지는 폭탄처럼 속시원한 방송을 하겠다는 뜻이죠.” 같은 시간대 방송사 전체 청취율에서 반드시 1위를 하겠다는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것 아니냐는 빈축도 받지만 어디에서든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곳이 곧 메이저리그”라면서 새롭게 개국하는 iFM의 개척자,견인차가 될 것을 다짐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편집자에게/ ‘망우묘지 테마공원’ 주민과 대화 필요

    -‘망우묘지 테마공원 추진’기사(대한매일 6월23일 10면)를 읽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예약하는 숙명적인 존재다.인간인 이상 예외가 없다.이 냉엄한 현실 앞에서 인간은 절망하기보다 이를 희망으로 승화시키곤 했다.먼 옛날 고분 속의 벽화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죽은 사람이 후손에게 복을 줄 수 있다는 풍수사상이 퍼져 명당을 찾는 풍수가들이 산천을 헤맸다.그 결과 산세가 좋은 곳에는 여지없이 무덤이 들어섰고 이제 이 나라는 무덤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런 때 망우묘지공원을 테마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납골당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고 주민에게 휴식공간과 운동시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우선 묘지공원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찬반이 격렬해 질 가능성이 있다.또 벽제화장장,납골당,용미리 시립묘지는 명절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교통 홍역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따라서 이 계획을 추진하기에 앞서 먼저 지역주민과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박시하 서울시의회 보건사회위원장
  • ‘太古와의 대화’ 글씨에 오롯이…/ 김광업 ‘문자반야의 세계’전

    한국 서예사에서 근현대는 사숙을 통한 기법중심의 도제식 교육과 공모전이 지배한 시대다.공모전은 전문적인 서예가 집단을 만들어내며 한국 서단을 이끌어 왔지만 늘 심사의 부작용과 작품의 질 문제가 뒤따랐다.그것은 특히 국전심사가 몇 사람에게만 독점되면서 노골화됐다.이 공모전 시대에 작가로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이란 공모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측에 순응하거나,아니면 극단적으로 저항하면서 자기 세력을 넓혀가는 것 뿐이었다. 운여(雲如) 김광업(1906∼1976)은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제3자적 입장의 ‘마이 웨이’를 고수한 서예가이자 전각가,화가였다.그렇기에 그의 작가적 개성은 ‘공모전의 무덤’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일부터 7월1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운여 김광업의 문자반야(文字般若)의 세계’전은 베일에 가린 운여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전면 재조명하는 자리다.은ㆍ주시대의 금문(金文)과 갑골문,진ㆍ한시대의 와전문,해서와 행·초서,대자서(大字書)와 파체서(破體書),전각등 각 장르의 작품들이 250여점의 자료와 함께 전시된다. ●갑골·금문·전각등 250점 재조명 운여는 애초부터 글씨로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본업이 안과의사로,생활에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글씨를 그 자체로 즐겼다.그에게 있어 글씨란 ‘오심재태고(吾心在太古)’란 말처럼 역사와 대화하고 태고의 마음을 건져 올리는 통로였다. 운여의 글씨는 시류와는 거리가 멀다.생경한 인상의 그의 글씨는,공모전이나 사숙에서 흔히 보는 전형적인 것과는 획질이나 결구부터 다르다.전서를 비백(飛白)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서의 필획으로 구사하는가하면,해서와 행서의 경우 잘라내도 좋을만큼 필획을 지나치게 길게 늘인다.그런가하면 한 화면에 전서,예서와 전각의 장법(章法)이 섞여 등장하기도 한다. ●석정스님과 교유… 불교관련 작품 많아 서울 영락교회 장로였던 운여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시대의 선지식이자 불화의 1인자로 꼽히는 부산 선주산방의 불모(佛母) 석정스님과 유달리 가까웠다.두 사람은 석정이 없었다면 운여가없었고 운여가 없었다면 석정이 없었다고 할 만큼 나이와 종교를 뛰어넘어 각별한 교분을 나눴다.이들은 운여가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작고할 때까지 20년에 걸쳐 서로의 작품에 대한 눈밝은 비평가 구실을 했다.이번에 선보이는 ‘운수유유(雲水悠悠)’는 둘 사이에 오간 편지 봉투에 쓴 작품.이밖에 ‘원상(圓相)’‘입불이문(入不二門)’‘범정탈락 성의개공(凡情脫落 聖意皆空)’‘천상천하 유아독존’등 불교와 관련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운여의 전각세계는 매우 특이하다.그의 전각예술은 상식을 깨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그는 대추나무,대나무 뿌리,돌 등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닥치는대로 새겼다.전각하면 보통 정방형을 떠올리기 쉽지만 운여는 둥글면 둥근대로 모나면 모난대로 각재의 인면(印面)에 글자를 집어넣었다.그렇게 평생 새긴 각이 몇 가마니는 족히 될 만큼 그는 전각예술에 심취했다.이번 전시에서는 세속사에 담담하면서도 언제나 세상을 너그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던 운여의 서격(書格)뿐만 아니라 인격까지도 접할 수 있다.(02)580-1511. 김종면기자 jmkim@
  • 안경알에 그린 일상의 희로애락 / 서양화가 황주리 개인전 28일까지 서울 노화랑

    “1991년 가을,나는 폴란드 여행길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았다.그 잔인한 추억의 장소에 들어선 순간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들어오자마자 빼앗긴 안경들을 쌓아놓은 거대한 안경무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그것은 내가 이제껏 본 그 어떤 미술 작품보다도 슬픈 흔적을 지닌 강력한 설치작품이었다.” 서양화가 황주리(46)의 안경 오브제 작품은 이런 시대의 비극을 배경으로 태어났다.그 이후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그는 안경을 캔버스 삼아 수백개의 그림을 그려왔다.낡아빠진 안경들이 비로소 주인을 만나 귀한 미술재료가 된 것이다.그의 안경 소품들은 오브제 차용의 결정판이다.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안경에 관한 명상’이라는 이름의 황주리 개인전에는 수백개의 안경 오브제 작품들이 걸려 있다.작가는 낡은 안경에 해학적 상상력이 넘치는 내면의 풍경을 담았다.보잘것없는 안경이 아담한 아크릴화로 다시 태어났다.안경알에는 일상의 희로애락이 익살스럽게 박혀 있다.사랑하고 다투고 놀고 일하는 삶의 온갖 정경이 만화경처럼 펼쳐져있다.각각의 안경알은 그 자체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세상을 관조하는 어엿한 명상의 장이다. 안경 작품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1년 미국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였다.국내에서 선보이기는 이번 노화랑 전시가 처음.2005년에는 이 작품들을 뉴욕 지하철에 공공미술 작품으로 설치할 예정이다.황씨는 1980년대 원고지에 이어 시계,골동품 등에 그림을 그리다가 이제 안경을 택했다.물론 캔버스 작업도 병행했다.이번 전시에는 안경 작품 외에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연작 등 평면작품도 여러 점 나와 있다.전시는 28일까지.(02)732-3558. 김종면기자 jmkim@
  • 집은 피난처이자 감옥? / 극단 전망 ‘하우스’ 내일 개막

    우리가 어떤 공간을 ‘집’이라고 부를 때,그것은 단순히 특정 건축물을 지칭하는 단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운명공동체의 아늑함이 상존하면서,때때로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과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곳이다. 극단 전망이 13∼22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리는 연극 ‘하우스’의 집도 마찬가지다.현대사의 가파른 질곡을 온몸으로 헤쳐나온 뒤,그 상흔으로 괴로워하는 주인공들의 피난처이자 동시에 감옥인 것이다. 이 집엔 중년의 두 남자 석재와 선우가 살고 있다.일반적인 가족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어느날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 청년 장이 이들을 찾아오면서 이 집에서 배제된 인물,즉 아내와 딸과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석재의 아내 미자는 10년째 정신병원에서 요양중이다.딸 유란은 프랑스로 유학간 뒤 단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유란의 애인인 장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석재에게 유란의 귀국소식을 알려주지만,석재와 선우는 웬일인지 당혹해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이 마침내 10년 만에 집에모이는 날,그동안 꼭꼭 감춰뒀던 비밀이 모습을 드러낸다. 군사독재 시절 석재와 선우는 살아남기 위해 한 친구를 배신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둘은 이 사실을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기로 했고,석재는 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미자와 결혼함으로써 속죄를 대신하려 한다. 석재와 선우는 끊임없이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떠날 수가 없다.이 집의 주인은 미자와 유란이며,그들의 부재로부터 석재와 선우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희곡을 쓴 차근호는 ‘조선제왕신위’‘암흑전설영웅전’‘투란도트’ 등으로 인정받은 젊은 작가이다.지난해 뮤지컬 ‘유린타운’과 연극 ‘양파’로 호평을 받은 심재찬이 연출을 맡았다.(02)766-1482. 이순녀기자
  • 고대이집트 미인 왕비 네페르티티 미라 발견

    |런던 카이로 AFP 연합|영국의 고고학자들이 고대 이집트의 최고 미인 가운데 한 명이자 파라오(왕)에 버금가는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전설적 왕비 네페르티티(사진)의 미라를 찾았다고 더 타임스 일요판이 8일 보도했다. 요크대학 고고학 연구진은 12년 간의 조사 끝에 이집트 왕가 계곡의 무덤에서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던 미라가 투탕카멘왕의 양어머니이자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렸던 여성인 네페르티티 왕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요크대의 조안 플레처 교수는 “미라는 18왕조(기원전 1575∼1308) 말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던 왕실 여인임이 분명하다.”며 “이 조건에 맞는 여성은 네페르티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미라는 지난 1898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 속에서 발견됐으나 훼손된 상태가 심해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1907년 단 한 차례 사진 촬영이 허용된 이래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플레처 교수는 이 미라의 사진이 1920년 이래 독일 베를린에서 전시되어온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과 흡사하다는 점을 발견,연구에 착수했다. ‘미인이 왔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은 긴 목과 높은 광대뼈,날렵한 콧날을 가져 현대적 기준으로도 손색없는 미인상으로 유명하다.
  • ‘코트 반란’ 주인공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 파리의 5월 하늘.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앙투카 코트,그 위를 적시는 뜨거운 땀방울과 환희와 눈물…. 세계의 테니스팬들은 해가 바뀌는 순간부터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 코트에서 펼쳐지는 ‘테니스의 향연’을 기다린다.호주오픈,US오픈,윔블던 등과 함께 세계 4대 메이저대회로 꼽히는 프랑스오픈이 바로 그것.호주오픈에 이어 올시즌 두번째 열리는 그랜드슬램대회인 프랑스오픈은 오는 26일(현지시간) 막을 올려 총상금 1421만 1000달러(약 178억 7000만원)를 놓고 다음달 8일까지 14일 동안 열전을 벌인다. ●‘이변의 무대’ 앙투카 코트 롤랑가로의 상징은 붉은 앙투카(en-tout-cas·전천후) 코트.프랑스오픈은 4개 그랜드슬램 가운데 유일하게 클레이코트에서 펼쳐진다.그러나 재질은 보통 흙이 아니라 붉은 벽돌가루를 섞은 인공 흙이다.따라서 비가 오더라도 배수가 빠르게 잘돼 전천후 코트로 불린다.그러나 타구의 탄력을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잔디나 하드코트에 익숙한 선수들이 타구의 속도가 느린 롤랑가로에서는 맥을 못추기일쑤다.하드코트에서 ‘서브 앤드 발리’를 구사하는 선수들에게는 ‘무덤’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랜드슬램 최다 타이틀(13개)을 갖고 있는 피트 샘프러스(미국)는 윔블던 7회 우승을 비롯해 다른 메이저대회를 두루 석권했지만 마지막 남은 롤랑가로 정복에는 실패,결국 그랜드슬래머 대열에 끼지 못했다. ●미국의 롤랑가로 정복은 이뤄질까 1990년대 이후 롤랑가로를 지배한 것은 남미와 스페인 선수들이다.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이 97년에 이어 2000·2001년을 석권했고,스페인의 안드레스 고메스(90년),세르기 부르게라(93·94년),카를로스 모야(98년),그리고 지난해 8차례 도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 알베르트 코스타가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클레이 전사’로 불리는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를 포함해 롤랑가로에서는 유독 남미와 스페인계 선수들이 득세했다. 이에 견줘 최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미국은 짐 쿠리어(91·92년)와 앤드리 애거시(99년)가 겨우 체면을 살렸을 뿐이다.하지만 미국은 앤디 로딕(세계 6위)을 비롯한 신예들에 기대를 걸고 있다.로딕은 지난 1월 호주오픈 4강에 오르며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고,비교적 클레이 코트에 강한 제임스 블레이크(27위)와 테일러 덴트(40위) 등이 우승권 진입을 노린다. 여기에 지난 호주오픈 우승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애거시와 ‘제왕’ 피트 샘프러스도 미국의 자존심을 곧추세우겠다는 태세다. ●‘세레나 신드롬’ 이어질까 여자 단식에서는 지난 호주오픈 우승으로 ‘세레나 슬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미국의 세레나 윌리엄스가 트로피 개수를 늘려나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세레나는 호주오픈 이후 “올시즌 4개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는 진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겠다.”고 기염을 토해 무한질주를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에게도 ‘적’은 있다.지난달 패밀리서클컵에서 세레나의 21연승에 마침표를 찍은 선수는 ‘벨기에의 새별’ 쥐스틴 에넹(4위).에넹은 대회 결승에서 세레나를 2-0으로 완파했다. 프랑스의 아멜리 모레스모도 지난 18일 이탈리아오픈 준결승에서 세레나에 2-1로역전승,시즌 두번째 패배를 안겼다. 두 대회는 모두 프랑스오픈과 같은 클레이 코트에서 열려 세레나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이밖에도 ‘휴이트의 연인’ 킴 클리스터스(벨기에)와 린제이 대븐포트(미국),제니퍼 캐프리아티(미국),예레나 도키치(유고) 등도 세레나에 도전장을 던졌다. 최병규기자 cbk91065@ ■프랑스오픈은 어떤 대회 프랑스오픈은 지난 1891년 국내선수만 참가하는 클럽 경기로 출발,1925년에 이르러 외국선수들에게 문을 열었다.지난 1968년에는 프로들이 가세해 그랜드슬램 가운데 처음으로 오픈대회의 명칭이 붙여졌다.대회의 규모가 제대로 갖춰진 것은 1928년 5월 롤랑가로 코트가 탄생하면서부터.1927년 9월 프랑스 테니스의 4총사로 불리는 장 보로트라,르네 라코스테,앙리 코셰,자크 부르뇽이 미국 땅에서 데이비스컵을 빼앗아왔다.파리시는 이듬해 재대결을 위해 현재의 부지를 99년간 임차,코트를 신축했고 여기에 1차대전의 영웅이자 최초로 지중해 횡단에 성공한 비행사 롤랑가로(Roland Garros)의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오픈은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에 예술성이 가득 담긴 것으로도 유명하다.포스터 디자인에 유명화가들이 참여한 것은 1980년.프랑스테니스협회는 매년 대회가 시작되기 전 화가들에게 디자인을 공모한다.이 가운데 정치·종교적인 색채가 있는 것은 빼고 대회 고유의 이미지를 반영한 작품을 선정한다. 올해 포스터는 역대 24명의 화가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미국의 제인 해몬드가 디자인했다.점토로 만든 캔버스에 구겨진 종이를 붙인 뒤 그 위에 선수들의 역동적인 플레이를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최병규기자
  • 주말 여기 어때요 / 공릉동 이스턴 캐슬

    “탕 탕 탕….” 총소리가 귀를 찢는 산울림 속에 가정의 화목과 사랑을 쌓아올리는 곳이 있다.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더위를 식히기에 으뜸인 스케이트장과 등반코스도 있다.바로 노원구 공릉동 ‘푸른 동산’이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지난 3월 ‘이스턴 캐슬(Eastern Castle)’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사격장 이미지를 털어내고 시민의 쉼터로 거듭난 곳이다. ●8만여평 ‘숲의 나라’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 쪽에 말끔히 단장된 아스팔트길이 쭉 뻗어있다.여기서부터 국내 최대라는 마로니에 군락과,멋드러진 아름드리 노송(老松)의 그늘 아래 산림욕을 맘껏 즐길 수 있다.왕복 2.4㎞. 마로니에와 함께 30년 이상 된 나무가 울창한 산책로 끝에 클레이사격장이 있다.이곳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보내며 친목을 다져도 좋다. 땀을 식히고 싶으면 계곡에 들어가 발을 물에 담그고 개울가 평상에 걸터앉아 숨을 돌려보자.옆에는 족구장도 있어 단체 방문객의 놀이에 그만이다.도시 소음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라 물 흐르는 소리가 폭포수 처럼 크게 들린다. 산책로 중간에는 어린이 놀이광장도 200여평 있다.전자게임장과 탁구장 등을 갖췄다. 수영장은 대형 2개,소형 1개가 있지만 아직 기온이 낮아 다음 달 말쯤에나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977-6363. ●주변엔 볼거리 수두룩 사격장에서 가족,연인,친구들과 환호성을 터트린 뒤에는 어디가 좋을까.출입문을 나와 맞은 편 육군사관학교는 때마침 토·일요일과 공휴일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없다. 육군박물관에는 보물 9종 11점을 포함해 1만여점에 이르는 고대와 현대의 각종 무기들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입장료는 어른 2000원,학생 1000원이다.토요일 오전 11시30분엔 생도들의 멋진 퍼레이드도 구경할 수 있다.2197-5990. 등산을 좋아하는 시민들은 클레이사격장에서 곧바로 불암산에 오를 수 있다.300여대 규모의 주차장이 따로 있어 사격의 참맛을 즐긴 뒤 상쾌한 기분으로 등반하면 된다. 태릉 국제스케이트장도 걸어서 10분 거리다.이용료는 초등생 2500원,중고생 3000원,일반 3500원이다.장비 대여료는 3시간에 3000원.970-0501. 노원구는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조선시대 문정왕후의 무덤인 태릉의 역사적 특성을 알리고,주민 편의를 위해 푸른 동산 인근 효성아파트 앞∼삼육대 5㎞도로 양쪽에 플라타너스를 심고 자전거길 2.5㎞를 만들어 ‘걷고 싶고,달리고 싶은 길’로 지정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
  • “5·18, 희망의 씨앗돼야 한풀이식 행사 의미없어”/ 5·18 동지회 상임의장 김준태 시인

    ‘이제 5·18은 무덤이 아닙니다.둥근 씨앗입니다.배달겨레 씨종자입니다.’ 시인 김준태(55)씨가 올해로 23돌을 맞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바친 헌시의 일부이다.이 시에서처럼 그는 5·18을 항상 ‘희망’으로 노래한다. ‘아아,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중략)…(‘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중에서) 그가 5·18을 주제로 쓴 시는 500여편에 달한다.‘5월 시인’이란 별명이 항상 그를 따른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통일을 꿈꾸는 색주가’ ‘아아 광주여,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등이 그것들이다. 지금도 난립한 5·18단체의 통합을 위해 ‘5·18민주유공자항쟁동지회’ 상임의장직을 떠맡고 있다.5·18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시인인지도 모른다. ●‘건준' 참여로 총살당한 아버지 그의 시 정신과 이력은 우리나라 역사와 이데올로기적 대립에서 잉태된 듯싶다.일제 때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의 탄광노무자로 징용됐다. 아버지는 남태평양 남양군도에 끌려갔다.천신만고 끝에 전장을 탈출한 아버지가 6·25전쟁 와중에 여운형이 이끌던 ‘건국준비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고향의 한 산골짜기에서 총살형을 당했다.당시 시인의 나이는 3살.6·25를 거쳐 군복무 시절 직접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는 80년대는 5월 항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그의 시와 삶의 여정에는 전쟁과 대립에 대한 증오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그는 대학시절인 스무살 때 고(故) 조태일 시인이 주관하던 시전문지 ‘시인’을 통해 김지하 등과 나란히 등단했다. 20대 당시 그의 시를 관통하던 주제는 ‘고향’ ‘대지’(흙)였다.시집 ‘참깨를 털면서’는 70년 개발독재시대 이농현상과 땅,고향에 대한 사랑과 감정 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담아낸 초기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80년 초 광주의 전남고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 중 5·18을 맞는다.그의 운명은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 ‘참여시인’으로 바뀐다.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으로 살벌한 군부독재 시절 그는 ‘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란 107행짜리 장편 시를 발표한다.이 시가 80년 5·18 항쟁기간 중 ‘전남매일’ 1면에 실리면서 ‘필화’를 겪게 된다.이 시는 원문이 외신을 탔고 ‘민중 선동혐의’로 계엄당국의 수배조치가 내려졌다.해당 신문사는 폐간되고 만다.그 역시 사랑하는 제자들을 뒤로한 채 한달여 동안 잠적했다.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는 그는 잠시 집을 방문했다가 주변에 잠복 중이던 보안사 요원에게 붙잡혔다.한달여 동안 각종 고문과 협박 등으로 교육청이 아닌 보안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교단을 떠난다. ‘현실을 외면하는 문학은 살아 있는 문학이 아니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시내 학원 강사로 전전하는 동안에도 역사와 민주와 통일을 노래한 시들을 쏟아냈다.지금까지 시집 12권과 산문,평론,5·18항쟁 창작 오페라,콩트 등 모두 23권을 펴냈다. ‘역사는 소금 뿌린 생선이 아니라 펄펄 살아 뛰는 생선’이란 그의 지론처럼 역사와 통일,민족문제 등에 천착한 시기였다.시대정신을 외면하고는 시를 쓸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3년여 학원강사 생활을 마친그는 전남 영암의 한 중학교를 거쳐 광주과학고로 전입했으나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고 ‘자리만 지키는 교사’ 생활이 이어졌다. 교단을 영원히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는 88년 신생 지방지였던 전남일보 문화부장으로 입사한다.그는 언론인으로서 5·18의 원인과 경과·결과 등을 총괄하는 ‘광주·전남 현대사’를 기획,일부 왜곡된 5월정신을 바로 잡는다.1944∼1961년의 이 지역 항쟁사 등을 담아냈다. ●“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 ‘오늘날의 사초(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한다.’는 그는 광주매일로 자리를 옮겨 ‘정사 5·18팀’을 만든다.프랑스,미국,베트남 등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혁명현장 등을 돌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뒤 5·18 특집 시리즈를 내고 그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IMF위기 때 잘려나가는 동료 기자들을 보고 스스로 언론 현장을 떠난 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지금은 조선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쓰는 것과 가르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그는 5·18을 통해 ‘출세’를노리는 일부 인사들과 다르게 살아왔다.그래서 금기시되곤 했던 5월단체 등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5·18기념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그는 “언제까지 한을 붙들고 살풀이하는 식의 행사가 되풀이돼야 하느냐.”고 반문한다.추모제도 없애고 시민 누구나가 하나되는 공동체 축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 이정표를 만든 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그는 ‘5월정신이 남남(극우-진보) 및 남북화해와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앞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강연과 집필활동에 열중할 것이라고 다짐한다.‘우리 후세에게 좋은 세상,전쟁과 갈등이 없는 나라를 물려주는 게 꿈’이란다. 글·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