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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전문가 칼럼

    비무장지대는 신비롭다.신화의 저편에 있는 동굴처럼….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군인 외에는 아무도 가볼 수 없는 곳.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50년 넘게 숨겨진 비경이라는 생각에 일단 처녀림·원시림이라고 치부한다.이번에 나타난 하늘색 청개구리도 여태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생물이니 ‘신화의 메신저’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를 인공위성으로 조사해 보면 산림이 뜻밖에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우리 주변에 있는 산림도 그렇게 울창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비무장지대의 숲의 양은 대략 그것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그동안 북한이 불을 놓으면 남한은 맞불을 놓고,서로 감시하기 위해 시계(視界)청소를 한 결과다. 그렇다고 비무장지대가 생태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비무장지대는 한국동란의 휴전과 동시에 철조망으로 겹겹이 싸여 사람은 물론 짐승도 맘대로 오갈 수 없었다.남방계 생물과 북방계 생물이 함께 서식하는 한반도의 허리부분이 완전히 가로막힌 채 50년 이상 격리돼 있다는 것은 생물·지리학적인 특성이나 생물의 이동성향을 감안할 때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현상이다.과거에 군사활동의 결과로 산불이나 시계청소가 이루어졌지만,이는 오히려 다양한 생태경관을 형성하여 진귀한 식물과 곤충,새와 짐승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기회인자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무장지대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말 특이한 생태계다.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비무장지대는 처녀림이거나,원시림이 아니라 ‘특이한’ 생태계다.가볼 수 없는 비경이라는 그리움이 만든 막연한 신비감보다는 제대로 알아도 정말 신비로운 것이 바로 비무장지대의 진면목이다.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아픔이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가 되었다는 아이러니는,어미 말을 거꾸로 따르다가 무덤마저 잃을까봐 목놓아 울어야 하는 청개구리의 처지와 닮았다. 하늘색 청개구리가 나타난 것은 상서로운 일이다.우리의 손발이 묶임으로써 이런 귀한 생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연보전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또한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한다.남북은 역사 이전에 신화를 공유하고 있었다.이제 우리는 이런 신화의 메신저를 맞이하여 비무장지대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이끌어내고,환경공동체로서 통일의 기초를 다지는데 나서야 한다. 신준환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 [정가 카페] 강삼재 “10번넘게 자살생각”

    안기부 예산 횡령 의혹,즉 ‘안풍’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강삼재 전 의원은 6일 “1심 유죄 선고 후 번민 끝에 한강에 투신할 생각을 10번 이상 했고,3∼4차례는 실제 결행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강 전 의원은 이날 경남 마산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일부에서 모셨던 분에 대한 배신을 거론하지만 1심 판결 전까지 3년간은 정치적 신의를 지켰다.”면서 “어쨌든 내가 모신 분에 누를 끼친 것은 사실이며 언젠가 만나 뵙고 진실과 참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이어 “1심 유죄 선고 후 정계를 은퇴하고 모든 것을 던졌으며 이 재판의 성격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는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인간적 의리보다 더 큰 것은 국민에 대한 신의며 진실을 무덤까지 갖고 가는 것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US여자오픈] 미셸 위 ‘천재 샷’

    ‘천재 소녀골퍼’ 미셸 위(15)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험난한 코스 앞에서 박세리(CJ)와 박지은(나이키 골프) 등 ‘코리아 군단’이 줄줄이 오버파 스코어를 내며 부진했지만 미셸 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미셸 위가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사우스하들리의 오처즈골프장(파71·6473야드)에서 열린 US여자오픈 3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3개,더블보기 1개를 묶어 이븐파 71타로 선전,중간 합계 1언더파 212타로 공동 7위에 올랐다. 미셸 위는 선두에 6타차로 뒤져 우승은 버거워 보이지만 지난 4월 나비스코챔피언십 4위에 이어 메이저대회 두번째 ‘톱10’에 청신호를 켰다.더구나 내로라하는 프로들이 모두 참가한 이 대회에서 아마추어로는 유일하게 이날까지 언더파 스코어를 냈다. 미셸 위는 전반 2타를 잃어 위기를 맞았지만 1라운드 이글에 이어 2라운드에서 버디를 잡았던 9번홀(파5)에서 장타력을 앞세워 1타를 줄여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이후 3개의 버디를 뽑아내 맹렬한 기세로 선두권을 위협했다. 특히 ‘무덤’으로 불리는 16번홀(파4)에서 빨랫줄 같은 롱 드라이브샷을 폭발시킨 뒤 8번 아이언으로 홀 2m 거리에 공을 떨궈 그림 같은 버디를 낚은 것은 이날 플레이의 압권이었다.하지만 18번홀(파4)에서 욕심을 낸 드라이브샷이 러프에 떨어졌고,두번째 샷도 갤러리들 속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2타를 까먹어 아쉬움을 남겼다. 미셸 위가 3일 연속 대담하고 정교한 샷을 뽐내자 “미국골프협회(USGA)가 예선을 면제시키면서까지 그를 특별 초청한 것은 US여자오픈의 권위를 떨어뜨린 것”이라는 비판 여론도 쏙 들어갔다.수십대의 TV 카메라는 오직 미셸 위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첫날 5언더파를 몰아치며 돌풍을 일으켰던 무명의 아마추어 브리타니 린시컴(18·미국)이 이틀 만에 합계 6오버파까지 추락하자 미셸 위의 천재성은 더욱 빛났다.한편 ‘필리핀의 희망’ 제니퍼 로살레스는 이날 2언더파 69타를 쳐 합계 7언더파 206타로 이틀 연속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지난 5월 칙필A채리티챔피언십에서 데뷔 5년만에 처음으로 우승했던 로살레스는 2개월만에 시즌 두번째 우승과 생애 첫 메이저대회 정상을 넘보게 됐다. 메이저대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1언더파를 쳐내며 합계 4언더파 209타로 매사추세츠주 출신의 노장 멕 말론 등과 함께 공동 2위로 추격,최종라운드에서 역전 우승을 노리게 됐다. 이븐파 71타를 친 김미현(KTF)은 합계 2오버파 215타로 공동 16위에 올라 국내파 선수 가운데 순위가 가장 높았다.안시현(엘로드)은 합계 3오버파 216타로 공동 20위에 머물렀고,박세리는 합계 4오버파 217타로 장정과 함께 공동 27위에 그쳤다.박지은은 58위(9오버파)까지 떨어졌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고구려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쑤저우 연합|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각각 등재됐다.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1일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서 회의를 열고 북한과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각각 등재하기로 결정했다고 회의에 참석한 우리측 정부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WHC 회의에서 21개 위원국 대표가 참가한 심의를 통과했다.”며 “형식은 양측 유적을 개별적으로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박흥신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을 단장으로 한 한국 대표단은 북한 고구려 유적의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지원활동을 전개했다. 북한이 ‘고구려 고분군’(The Complex of the Koguryo Tombs)이라는 이름으로 등재 심의를 요청한 고구려 유적목록은 5개 지역 63기(벽화고분 16기)의 고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는 ▲동명왕릉 주변 고분군(15기/이중 벽화고분 3기) ▲호남리 사신총 주변고분(34기/벽화고분 1기) ▲덕화리 고분군(3기/벽화고분 1기) ▲강서삼묘(3기/벽화고분 2기) ▲독립 고분(8기/벽화고분 8기) 등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지난해 제27차 파리 총회에서 이들 유적에 대한 등재 신청을 했으나 보존상태 미비 등을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그리고 귀족의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신청,이날 등재가 확정된 목록에는 ▲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 ▲통거우(洞溝) 고분군 ▲태왕릉과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오회분 ▲산성 아래의 고분들: 왕자총(王字塚) ▲기타: 염모총ㆍ환문총ㆍ각저총ㆍ무용총ㆍ마조총(馬槽塚)ㆍ장천 1호분ㆍ장천 2호분ㆍ임강총 (臨江塚)ㆍ서대총(西大塚)ㆍ천추총(千秋塚) 등이 있다.˝
  • [깔깔깔]

    ●야단맞을 때 듣는 말들 난 중1이다.보통 우리가 잘못하면 ‘너희가 초등학생이야?’라며 꾸중한다.그래서 초등학교 때를 떠올렸다.이럴 수가.모두 이런 꾸중을 들었다. 6학년때 - 너희 조금만 있으면 졸업이야. 5학년때 - 너희들 내년이면 최고 학년 되는데 이게 뭐야! 4학년때 - 너희들이 저학년이냐? 3학년때 - 너희들이 1,2학년 애야?(시간표에 처음으로 5교시가 나오니 이렇게 말한다) 2학년때 - 너희가 1학년짜리냐? 1학년 때 - 너희가 유치원생이야? ●뻔한 결말 한 남자가 직장 동료에게 애인과 어젯밤에 벌인 싸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어제 애인과 심하게 다퉜어.내가 볼링을 치러 가자니까 글쎄 그녀는 영화를 보러 가자는 거야.” 동료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그래서 무슨 영화를 봤는데?”˝
  • 세계유산으로 올린 고구려 유적들

    ■ 北 첫 등재 남북 공조 이번 중국 쑤저우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는 남북 공조가 전례가 없을 만큼 입체적으로 진행됐다. 우선 북한은 지난 2001년 신청했던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가 ‘일부 유적의 원형 훼손과 고분 비공개’ 이유로 지난해 보류권고를 받은 뒤 적극적으로 로비활동을 폈으며 한국측 대표단도 막판까지 지원활동을 전개했다. 한국은 회의 장소가 중국이며 의장 역시 중국인이란 점이 북한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감안,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서 활동해온 인물들을 총동원해 각국 대표단을 설득했다. 이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회의 개막일인 지난 28일 저녁 주최국 초청 대표단 만찬에서는 남북 대표단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中 쑤저우 WHC회의서 협력 강화 남북 대표단은 28일 회의 개막 직후 협의를 통해 북한 최초 문화유산 등재 성사를 계기로 문화재 보존과 관리를 위한 전문가 협력 방안 등을 활성화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따라 이번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남북의 공조활동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이 고구려 역사도시 전체 유적을 등재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며,이는 향후 동북공정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다는 게 학계의 일치된 견해다.따라서 북한이 고구려 유적을 중국측에 대등하게 격상하려면 차후에 북한내 왕경(王京) 유적을 전체로 묶어 다시 등재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남북한 공조가 반드시 필요하며 유적 복원에 필요한 기술과 재정지원에 남한 정부와 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고분 89기에 城·유적비도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이 심의 요청한 고구려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개별 등재된다.당초 30일 중국의 유산 등재건이 먼저 처리되고,북한의 유산은 하루 뒤인 7월1일 처리될 것으로 전해졌지만 다른 심의 일정이 길어져 중국의 고구려 유적 관련 심의도 1일로 연기됐다.한국측 수석대표인 박흥신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은 그러나 “북한 유산의 등재와 관련해 심사를 맡은 21개 회원국 가운데 영국이 ‘문의할 내용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을 뿐 다른 나라들은 모두 지지 의사를 표명해 등재는 확정적”이라고 말했다. ●어떤 유적들이 등재되나? 고구려는 705년 동안 수도를 크게 세번 옮긴다.(1)BC 37∼AD 3년(40년)-홀본(졸본) (2) AD 3∼427년(424년)-국내성 (3)AD 427∼668년(241년)-평양. 이번 쑤저우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목록 등재가 결정될 고구려 유적들은 모두 이 세 수도에 있는 것이다. 연대순으로 본다면 첫 수도부터 설명을 해야 하지만 세계유산에 관한 얘기를 할 때는 평양의 고구려 유적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다.왜냐하면 북한이 2001년 세계유산 등록 신청을 할 때까지 중국은 고구려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할 의사가 전혀 없었고,북한의 일 처리가 늦어지는 사이 2년 뒤인 2003년에야 신청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고구려 고분군(The Complex of the Koguryo Tombs)’이란 이름으로 등재 신청한 유적은 모두 5개 지역 63기(벽화무덤 16기 포함)다.평양시,남포시,황해도 안악 같은 곳에 분포한 벽화무덤에는 우리가 잘 아는 강서큰무덤(강서대묘)을 비롯해 쌍기둥무덤(쌍영총),약수리무덤,수산리무덤,용강큰무덤의 벽화들이 모두 신청됐다. 2년 뒤 신청한 중국은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및 귀족무덤(Capital Cities and Tombs of Ancient Koguryo Kingdom)’을 신청했다. 고구려 첫 수도인 홀본(졸본)은 현재 랴오닝성 환런(桓仁)현에 있는 오녀산성 정상에 있고,두 번째 수도 국내성과 한때 수도였던 환도산성은 지린성 지안(集安)시에 있다.중국이 신청한 중요한 유적들은 대부분 고구려 국내성이었던 지안시에 있다. 국내성에서는 유명한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장수왕릉(장군총)을 비롯한 12개의 왕릉과 귀족무덤 26기(그 가운데 16기의 벽화무덤)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된다.우리가 잘 아는 춤무덤(무용총)과 씨름무덤(각저총)을 비롯해 다섯무덤(오회분)이 모두 이곳에 있다. ●등재의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 우선 북한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유산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이다.그러나 북한과 중국에서 등재를 신청한 결과를 보면 두 나라의 고구려 유적이 내용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용을 모르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치 고구려의 수도와 중심지는 모두 중국 땅에 있고 북한에는 일부 무덤떼만 남아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중국 또한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후기 평양성을 비롯해 안악궁·대성산성 같은 왕성들과 정릉사·중흥사·광법사 같은 고구려 절터(중국에서는 단 하나의 절터도 발견하지 못했다.)를 기준에 맞게 정비해 추가로 등재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그러나 이런 유적들을 보존 복원하는 데는 높은 기술과 많은 재정적 후원이 필요하다.바로 여기에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는 공조정신이 필요하다.이 공조과정에서 북한은 남쪽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성공적으로 고구려 후기 도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고 남한의 학자들은 고구려 유적과 유물을 폭넓게 연구해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처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회장 ˝
  • “이라크를 용서합니다” 故 김선일씨 영결식

    “이라크를 용서합니다.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고 김선일씨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10시 부산 동래구 사직동 사직실내체육관에서 3000여명의 가족·친지·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유족대표로 나선 김씨의 형 진국(38)씨는 영어와 아랍어로 통역되는 가운데 “한국이 이라크를 사랑하는 것,세계가 이라크를 사랑하는 것,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것 안에 선일이가 꽃피우고자 했던 꿈이 있었다.”고 ‘이라크를 향하여 전 세계로’라는 용서의 메시지를 전 세계를 향하여 읽어내려갔다.영결식장은 오전 9시50분쯤 경찰의장대의 호위를 받는 운구행렬이 경찰악대의 장송행진곡에 맞추어 들어서면서 한꺼번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유가족들은 울음을 참으며 말없이 운구형렬을 뒤따랐으나,자리에 앉자마자 아버지 김종규씨가 끝내 비통한 표정으로 고객를 숙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고,어머니 신영자씨도 조용히 “선일아,선일아.”를 부르며 울먹였다. ‘고 김선일 형제 기독연합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최홍준 목사의 사회로 임보혜(24·여)씨의 추모시,허남식 부산시장과 기독교 대표 길자연 목사 등의 추모사,이동수 목사의 약력 소개,유족대표의 추모사,헌화 등의 순으로 3시간동안 진행됐다. 고인이 이메일편지에서 ‘보혜가 해주는 음식을 마음껏 싶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던 임씨는 “당신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해야만했던 우리는 할말이 없다.”고 추모했다.임씨는 특히 고인이 테러범들 앞에 무릎꿇고 외쳤던 “나는 죽고싶지 않다.나는 살고 싶다.(I don’t want to die.I want to live)”를 다시 절규하여 영결식장의 분위기를 더욱 숙연케했다.영결식장의 단상 가운데는 김씨의 대형영정과 한국어·영어·아랍어로 ‘나는 이라크를 사랑합니다’라고 쓴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2개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고인이 이라크 테러단체에 납체된 직후로 추정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소개되면서 ‘그의 피가 이라크를 새롭게 하기를 기도한다.’는 메시지가 자막으로 전해졌다. 가수 윤형주씨는 이 자리에서 고인이 이라크에서 사용하다 유해와 함께 돌아온 손때 묻은 기타로 ‘순례자의 노래’를 불렀다.장로인 윤씨는 “고인이 순례자처럼 이 세상을 떠돌다 고향인 하늘나라로 가라는 뜻으로 이 노래를 추모곡으로 골랐다.”고 밝혔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구덕체육관을 출발,거제교회∼양정로터리∼시청앞∼연산로터리∼온천장∼금정문화회관∼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오후 1시쯤 장지인 영락공원에 도착했다.이어 오후 2시 영락공원 제7묘원 39블록에서 박의영 목사의 하관예배로 안장됐다.고인이 묻힌 묘역은 일본 도쿄 지하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의 무덤에서 10m 정도 떨어져 있다. 한편 이날 서울·부산·울산 등 전국 26곳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추모의 촛불을 밝혔다.또 국내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이라크 민정 이양을 규탄하는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儒林(12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마침내 노나라로 도망친 공자 일행은 제나라의 왕도인 임치에 도착한다. 이 무렵 임치는 전국시대의 모든 도읍을 통틀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내륙지방이었던 노나라와는 달리 제나라는 바다를 끼고 있어 풍부한 해산물과 소금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무역하여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노나라의 왕도인 곡부와는 비교가 안되는 멋진 신세계였던 것이다. 전국시대에 유명한 유세가였던 소진(蘇秦)은 이 무렵의 임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임치의 성 안에 가구 수는 7만이었으니,그 안에 살고 있는 인구만 해도 수십만이 넘을 것이다.성 안은 풍요롭고 번성해서 백성들은 악기를 타고 노래를 불렀으며,닭싸움,장기의 일종인 쌍륙,공차기 등을 즐겼다.” 소진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이 2500년 전의 고대도시는 최근에 발굴되었는데,사방 수천m에 이르는 성벽이며,수백 필의 말을 순장시킨 무덤이며,폭이 10여m에 이르는 대로,제철소 등 번화했던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무렵의 명재상 안영의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공자 일행은 번화한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눈부신 문명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거리는 인파로 넘쳐흐르고 있어 공자를 실은 수레의 바퀴는 다른 수레의 바퀴와 맞부딪치고,오가는 행인들의 어깨가 서로 닿을 정도로 혼잡하였다.시가의 번화한 모습을 형용하는 ‘곡격견마(擊肩摩)’란 고사성어는 ‘수레의 바퀴통이 부딪치고 어깨가 스친다.’는 임치의 번화한 거리를 표현한 데서 나온 말. 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공자가 제자들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과연 번화하구나.사람들의 옷깃을 이으면 방장과도 같고,소맷자락을 올리면 장막과도 같고,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을 내쉬면 그 입김으로 구름을 만들 수 있고,사람들이 한꺼번에 땀을 흘려 그 땀을 훔치면 마치 비가 올 것 같은 정도로구나.” 물론 공자의 말은 농담이었다.평소에 제자들 앞에서 함부로 농담을 하지 않는 근엄한 공자가 제자들 앞에서 이처럼 농담을 해보인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공자가 했던 말 역시 안영의 말을 빌려온 인용어였기 때문이었다. 안영은 일찍이 중원의 패자인 초(楚)나라의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다.초나라의 영왕(靈王)은 안영이 온다는 통지를 받고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 신하들과 상의하였다. “안영은 키가 5척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신이지만 제후들 사이에 그 명성이 자자해, 과인의 생각으로는 초나라는 강하고 제나라는 약하니 이번 기회에 제나라에 치욕을 남겨주어 초나라의 위엄을 떨치는 것이 어떻겠소.” 그리하여 초나라에서는 안영을 놀려주기 위한 계책을 미리 세워둔다.안영이 초나라의 도성 동문에 도착하였으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문지기를 불러 성문을 열라고 하자 이미 안영을 놀려주기 위한 계책을 전해 받은 문지기는 안영을 성문 옆의 작은 문으로 안내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재상께서는 이 개구멍으로 들어가십시오.이 개구멍만으로도 재상께서는 출입하시기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귀찮게 성문을 여닫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왜소한 체구를 빗대어 문지기가 비웃자,안영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것은 개가 출입하는 문이지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 아닙니다.개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은 개문으로 출입해야 하고,사람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은 사람문으로 출입해야 하는데,내가 지금 사람나라에 왔는지 개나라에 왔는지 모르겠군요.설마 초나라가 개나라는 아니겠지요.”˝
  • 儒林(12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2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마침내 노나라로 도망친 공자 일행은 제나라의 왕도인 임치에 도착한다. 이 무렵 임치는 전국시대의 모든 도읍을 통틀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내륙지방이었던 노나라와는 달리 제나라는 바다를 끼고 있어 풍부한 해산물과 소금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무역하여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노나라의 왕도인 곡부와는 비교가 안되는 멋진 신세계였던 것이다. 전국시대에 유명한 유세가였던 소진(蘇秦)은 이 무렵의 임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임치의 성 안에 가구 수는 7만이었으니,그 안에 살고 있는 인구만 해도 수십만이 넘을 것이다.성 안은 풍요롭고 번성해서 백성들은 악기를 타고 노래를 불렀으며,닭싸움,장기의 일종인 쌍륙,공차기 등을 즐겼다.” 소진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이 2500년 전의 고대도시는 최근에 발굴되었는데,사방 수천m에 이르는 성벽이며,수백 필의 말을 순장시킨 무덤이며,폭이 10여m에 이르는 대로,제철소 등 번화했던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무렵의 명재상 안영의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공자 일행은 번화한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눈부신 문명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거리는 인파로 넘쳐흐르고 있어 공자를 실은 수레의 바퀴는 다른 수레의 바퀴와 맞부딪치고,오가는 행인들의 어깨가 서로 닿을 정도로 혼잡하였다.시가의 번화한 모습을 형용하는 ‘곡격견마(擊肩摩)’란 고사성어는 ‘수레의 바퀴통이 부딪치고 어깨가 스친다.’는 임치의 번화한 거리를 표현한 데서 나온 말. 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공자가 제자들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과연 번화하구나.사람들의 옷깃을 이으면 방장과도 같고,소맷자락을 올리면 장막과도 같고,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을 내쉬면 그 입김으로 구름을 만들 수 있고,사람들이 한꺼번에 땀을 흘려 그 땀을 훔치면 마치 비가 올 것 같은 정도로구나.” 물론 공자의 말은 농담이었다.평소에 제자들 앞에서 함부로 농담을 하지 않는 근엄한 공자가 제자들 앞에서 이처럼 농담을 해보인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공자가 했던 말 역시 안영의 말을 빌려온 인용어였기 때문이었다. 안영은 일찍이 중원의 패자인 초(楚)나라의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다.초나라의 영왕(靈王)은 안영이 온다는 통지를 받고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 신하들과 상의하였다. “안영은 키가 5척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신이지만 제후들 사이에 그 명성이 자자해, 과인의 생각으로는 초나라는 강하고 제나라는 약하니 이번 기회에 제나라에 치욕을 남겨주어 초나라의 위엄을 떨치는 것이 어떻겠소.” 그리하여 초나라에서는 안영을 놀려주기 위한 계책을 미리 세워둔다.안영이 초나라의 도성 동문에 도착하였으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문지기를 불러 성문을 열라고 하자 이미 안영을 놀려주기 위한 계책을 전해 받은 문지기는 안영을 성문 옆의 작은 문으로 안내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재상께서는 이 개구멍으로 들어가십시오.이 개구멍만으로도 재상께서는 출입하시기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귀찮게 성문을 여닫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왜소한 체구를 빗대어 문지기가 비웃자,안영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것은 개가 출입하는 문이지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 아닙니다.개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은 개문으로 출입해야 하고,사람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은 사람문으로 출입해야 하는데,내가 지금 사람나라에 왔는지 개나라에 왔는지 모르겠군요.설마 초나라가 개나라는 아니겠지요.”
  • [29일 TV 하이라이트]

    ●불새(MBC 오후 9시55분) 세훈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미란은 약과 와인을 먹는다.미란의 메시지에 사색이 된 지은이 급히 오지만 이미 미란은 죽어 있다.미란의 무덤 앞에서 우연히 만난 지은과 세훈.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게 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서로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의 눈가가 붉어진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해외로 빼돌려진 이집트 유물들을 되찾기 위한 이집트 학자들의 활동을 알아본다.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람세스 1세로 추정되는 미라를 이집트로 돌려주겠다고 했다.이집트 학자들은 이번 미라의 귀환이 이집트의 빼앗긴 역사를 찾는 데 큰 역할과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문화인(EBS 밤 12시) 이만익 화백이 즐겨 다루는 소재는 우리의 민담과 설화의 숨결 속에 살아있는 친근한 인물들이 주류를 이룬다.자신만의 영감과 확고한 문학 언어로 어렵고 모호한 그림이 아닌,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독창적인 ‘한국적 화풍’을 보여주고 있는 이만익 화백의 그림이야기를 들어본다. ●실제상황(iTV 오후 10시50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옷을 벗어야 했고,더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했던 여자.그 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지만 그 돈을 못받게 되자 해결사를 고용하게 된다.버팀목이 필요했던 여자와 돈이 필요했던 해결사는 점점 가까워져 같이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데…. ●장길산(SBS 오후 9시55분) 신복동은 탈주를 시도,장충과 대결을 벌이지만 장충에게 덜미를 잡혀 다시 옥에 갇힌다.봉순은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장길산을 만나러 남장으로 길을 떠난다.길산을 만난 봉순은 자기를 평생 배필로 여기고 지금 이 자리에서 혼인서약을 하자며,묘옥도 자기가 거두겠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1교시(KBS2 오후 11시) 희망을 말하는 휴머니스트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과 국민대표 연예인 윤종신이 함께한다.대통령 출마에 대한 김근태 의원의 속마음을 공개한다.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조안무가 김용수와 42번가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신나는 탭댄스와 탭의 기본기를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인체의 3.5%밖에 되지 않는 미네랄이 신체의 구성요소는 물론 기능을 조절하는 영양소로,또 비타민과 함께 필수 영양성분으로서의 역할이 새로 부각되고 있다.미네랄이 우리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일상생활 속에서 균형있는 미네랄 섭취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
  • 환관과 궁녀/박영규 지음

    왕조시대 환관이나 궁녀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TV 사극의 단골소재로 익히 접해왔기 때문이다.그러나 드라마 속의 환관과 궁녀는 역사의 소품이나 장식물 정도로 다뤄질 뿐이다.공식 역사의 이면에서 정국을 움직인 궁궐의 제3세력으로 당당히 조명받지는 못했다. ‘환관과 궁녀’(박영규 지음,김영사 펴냄)는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환관과 궁녀를 역사의 주인공 자리에 올려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역사대중화의 기수로 평가받는 저자는 “환관과 궁녀의 내밀한 역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왕조사”라고 강조한다. 책은 ‘제왕의 그림자,환관’과 ‘살아있는 궁궐 귀신,궁녀’의 2부로 꾸며졌다.환관편에서는 환관의 기원과 어원,거세기술자인 엄공(工)의 환관만들기,환관학교와 환관부부,조선왕들의 환관정책과 환관조직 등을 다룬다. 저자는 조선은 중국이나 고려에 비해 매우 이상적인 환관정책을 폈다고 지적한다.고려 왕조가 환관에게 낮은 벼슬을 내리고도 정사와 관련된 업무를 맡긴 것과 달리 조선은 환관의 벼슬을 높여준 대신 역할은 궁궐의 잡일로 한정시켰다.이런 정책이 바로 환관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환관의 폐해를 막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역사를 뒤흔든 환관들의 일화도 소개한다.스스로 승상의 자리에 올라 황제를 마음대로 갈아치운 진시황의 환관 조고,궁형의 슬픔을 딛고 은밀히 ‘사기’를 집필해 중국역사의 아버지가 된 사마천,환관정치의 대명사인 고려 의종대의 환관 정함,조선시대 영조의 최대 정적인 경종대의 대전 환관 박상검 등이 대표적인 예다. 궁녀편에서는 고대 중국의 하·은·주 세 왕조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궁녀의 역사를 기술하고 궁녀와 관련된 주요 사건 등을 정리한다.연산군 때 궁녀인 전향과 수근비의 능지처참 사건,인조시대 소현세자빈의 폐출과정에서 벌어진 전복구이 사건,숙종시대 삼복형제와 연관된 홍수의 변,장희빈의 인현왕후 저주사건 등을 통해 궁녀의 역할과 피해상을 살핀다. 환관은 문화나 풍속에 따라 일본의 경우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도 있지만 궁녀가 없었던 나라는 한 곳도 없다.그런 점에서 볼 때 궁녀는 왕조시대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조선의 궁녀 수는 대개 600∼700명선.영조 때의 학자 이익이 쓴 ‘성호사설’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하지만 궁녀의 수가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었다.‘연산군일기’에는 왕이 두모포에 놀이를 갔는데 궁녀 1000여명이 뒤따랐다는 내용이 나온다.또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한 고종 말기에는 궁녀 수가 200명으로 줄어들었다. 책에는 조선의 마지막 상궁 성옥염,마지막 궁중요리사 조충희,환관족보인 ‘양세계보’,서울 월계동의 환관무덤,궁녀들이 사용한 남근목 등 60여점의 귀중한 사진자료가 실려 있어 역사의 실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1만 4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학계 “고구려史 재정립 서둘러야”

    ‘등재만이 능사인가.’ 오는 28일부터 새달 7일까지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에서 북한이 심의요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벌써부터 학계에서 향후 대응과 과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中 동북공정 계획 치밀 대응” 촉구 모두 53개의 후보 유산을 심사하는 이번 총회에서 북한과 중국의 영토 내에 있는 고구려 유적은 등재가 확실시된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세계유산 검토회의에서 양국의 고구려 유적을 각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권고키로 의결했기 때문이다.ICOMOS의 권고결정은 이변이 없는 한 총회에서 그대로 통과되는 게 관례다.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경우 북한도 명실상부하게 세계유산 보유국으로 승격하면서 국가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이를 위해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의 장·단기 보존관리 대책과 관광지 개발계획 수립,모니터링시스템 구축 등 WHC의 요구 기준을 따라야 한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중국과 북한이 각각 요청한 고구려 유적의 규모가 현격하게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등재후의 남북한 및 중국학계의 고구려사 비교연구 문제,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국내의 대응 방안이 과제로 남는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 고구려수도 전체 등재 추진 우선 양국이 심의요청한 고구려유적의 규모.북한은 평양의 동명왕릉과 그 주변의 고구려 고분을 포함한 63개의 고구려 고분만을 묶어 신청한 반면 중국은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그리고 귀족의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등재 심의를 요청해놓고 있다. 북한은 단순히 고분군만 올린데 비해 중국은 고구려 역사도시(왕경) 전체유적을 등재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이는 고구려가 차후에 왕경 전체유적을 다시 등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석굴암·불국사가 먼저 세계유산에 등재된데 이어 경주 도시 전체를 다시 등재해야 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고구려 건국시기·존속기간 이견 이와 함께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와 맞물려 고구려사 정립을 위한 남·북한,중국 등 삼국의 비교연구가 큰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각국 학계에서 고구려 건국시기·존속기간과 관련해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여기에 남한과 북한 및 중국의 서로 다른 고구려에 대한 영문표기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학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양국 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후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와 관련한 움직임과 국내 학계의 대응자세이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큰 틀에서 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추진해온 만큼 향후 중국 정부의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국내에서 중국과 북한의 고구려 유적 동시 등재를 ‘윈윈’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많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에 비해 북한이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동북공정에 더욱 치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부 학계 시민단체의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이번 총회에 박흥신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을 수석대표로 하고,최종덕 문화재교류과장,허권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교육문화팀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파견한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사회플러스] 내셔널트러스트 ‘동강 5202평’ 매입

    한국내셔널트러스트(NT)는 22일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 동강 주변 사유지 5202평을 매입했다고 밝혔다.한국NT가 자연 유산을 매입한 것은 지난해 강화도 매화마름(희귀식물) 군락지에 이어 두번째다. 조명래 한국NT 이사는 “이번에 산 토지는 동강 중류에 있는 백운산 등반로 초입에 해당하는 곳”이라며 “수달과 원앙 등 희귀 동식물의 서식처이고 주변에 고인돌과 돌무지무덤 등 선사시대 유적이 산재해 보전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 재계2위 다툼 ‘新3국지’

    “공정거래위원회의 자산기준 순위가 공식 순위 아닙니까.”,“부채까지 포함되는 자산보다는 매출이 중요하지요.”,“자산이나 매출만 많으면 뭐합니까.시장에서 평가받는 시가총액이 진짜지요.” LG그룹의 분할을 계기로 재계 2위 다툼이 치열해질 전망이다.현재 기준으로 LG가 분할되면 자산은 현대차가,매출은 LG가,시가총액은 SK가 많은 ‘삼국지’형국이 된다.이들 그룹은 2위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무덤덤한 반응이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순위변동에 초연하긴 어렵다. LG는 7월1일자로 유통·서비스 지주회사인 GS홀딩스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LG정유·홈쇼핑·유통을 주축으로 한 GS홀딩스는 올해까지는 LG 품안에 있지만 내년말까지 대주주간 지분정리가 끝나면 따로 살림을 차릴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1일자로 발표한 대규모기업집단 순위에 따르면 삼성그룹이 자산 91조 9000억원 계열사 63개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한전이 자산 94.8조원으로 삼성에 앞서지만 공기업이라 같은 기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LG그룹은 LG전선그룹이 분리되면서 자산이 5조 1000억원이나 줄었지만 61조 6000억원으로 2위를 유지했다. 현대차그룹이 52조 3000억원으로 3위로 올라섰고 SK는 47조 2000억원으로 4위로 내려앉았다. 내년까지도 이같은 재계 순위에 큰 변동은 없을 전망이다.문제는 GS홀딩스가 완전 분리된 뒤부터다. GS홀딩스는 올 1·4분기 기준으로 LG정유 8조 437억원,유통 1조 4664억원,홈쇼핑 4130억원에 LG건설(2조 8100억원)이 계열사로 편입되면 16조원대의 대그룹으로 태어난다.15조 1000억원으로 재계 12위인 한화그룹을 제치고 단숨에 10위권으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반면 LG그룹은 지난해 전선그룹에 이어 올 들어 LG카드·증권을 떼어내 자산이 60조원으로 줄어든 데다 GS홀딩스가 분할되면 44조원으로 재계 4위로 밀려난다.1974년과 1980년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1위까지 등극했던 LG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LG관계자는 “파주 LG필립스LCD 공장 설립 등 꾸준한 설비투자로 자산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3위는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출 규모를 둘러싼 신경전도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올해 95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GS홀딩스쪽의 18조원을 빼고도 77조원으로 2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현대차는 69조 6400억원,SK는 53조원으로 올해 경영계획을 잡았다. 시가총액으로는 연일 엎치락뒤치락 하는 형국이다. 22일 종가 기준으로 SK가 27조 4524억원으로 2위다.21일 4위로 처졌던 LG가 19조 1627억원으로 현대차 19조 788억원을 다시 앞질렀다.LG는 LG필립스LCD가 7월 상장을 앞두고 있어 2위 진입을 자신하고 있다.LG필립스LCD의 시가총액은 13조∼15조원으로 전망됐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현대와 삼성의 재계1위 다툼처럼 앞으로 재계2위 자리를 놓고 세 그룹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길상 김경두기자 ukelvin@seoul.co.kr˝
  • [MLB] 찬호·노모 아! 옛날이여

    1990년대 중반,LA 다저스의 경기를 지켜본 미국 야구팬들은 문화적 충격에 빠지곤 했다.소수의 히스패닉을 제외하고 온통 서구인이던 메이저리그에서 노모 히데오(36) 박찬호(31) 두 동양인 투수의 맹활약은 경이롭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눈 앞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과 시속 160㎞대 강속구로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미국인들은 이들을 ‘황색 돌풍’이라 불렀다. 10년 가까이 지난 요즘 당시 ‘한·일 공습’ 주인공들의 위용은 간데 없다.부상과 부진에 허덕이다 못해 이적설에 시달리고 있다.지난 94년 LA에 첫 발을 디딘 박찬호는 96년 5승5패의 성적을 거두며 빅리그의 기대주로 부상했다.이후 97년부터 2001년까지 거둔 승수는 모두 75승(49패).팀의 에이스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악몽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2년.텍사스 레인저스에 새 둥지를 튼 뒤 허벅지,허리 등의 부상으로 지난해까지 겨우 10승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겼다.부진은 올해도 이어졌다.2승4패 방어율 5.80의 부진 끝에 지난달 27일 부상자명단(DL)에 올랐다. 결국 단순 근육통으로 판명됐지만 등판 날짜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박찬호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는 팀이 그의 메이저리그 등판을 꺼리고 있는 것.설상가상으로 팀 안팎에서 트레이드설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노모는 데뷔 원년인 95년 포크볼 하나로 13승6패 방어율 2.54를 거두며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다.그해 신인왕과 ‘닥터K’ 타이틀을 휩쓴 것은 물론이다.이듬해에는 ‘투수들의 무덤’ 콜로라도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북미 전역에 ‘토네이도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듬해 부상 여파로 2승7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그는 뉴욕 메츠,밀워키 브루어스 등을 전전하다 2001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두번째 노히트노런을 올리며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이듬해 LA로 돌아온 그는 2년 연속 16승을 거두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올해 성적은 3승8패 방어율 7.26.지난 4월27일 뉴욕 메츠 전 이후 7연패에 빠졌다.빅리그 진출 이래 최악이다.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미 30대 후반의 나이.세월의 흐름 따라 떨어지는 구속을 붙잡을 수는 없다.내셔널리그 피홈런 1위(13홈런)의 멍에까지 쓰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儒林(120)-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20)-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여인은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흰 상복을 입은 여인은 자로와 저만치 서 있는 공자일행을 본 후 별로 자신을 해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듯 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곳은 호랑이의 피해가 아주 심한 무서운 곳입니다.” 여인은 손가락을 들어 세 무덤을 차례차례 가리키면서 대답하였다. “따라서 몇 년 전에는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고,작년에는 남편이 당해서 이곳에 묻혔습니다.그런데 이번에는.” 여인은 가장 앞쪽에 있는 아직 떼도 입히지 못한 흙무덤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그만 아들까지도 호랑이에게 잡아먹혔습니다.내 신세가 처량하고 슬퍼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은 다시 통곡하기 시작하였다.여인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공자가 천천히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그런데도 부인께서는 왜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까.” 공자가 묻자 여인은 세 무덤을 물끄러미 쳐다본 후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은 비록 호랑이들이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곳이기는 하지만 세금을 혹독하게 물리거나 못난 벼슬아치들이 백성들에게 함부로 노역을 시키거나 재물을 빼앗는 일이 없답니다.그래서 감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인의 사연을 들은 공자일행은 다시 여정을 떠났는데,한참을 가던 공자는 갑자기 수레를 멈추게 하고 제자들에게 탄식하여 말하였다. “잘 명심해 두어라.여인에게서 들어 잘 알겠지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공자의 유명한 말은 공자가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첫 번째 출국을 단행하던 도중에서 나온 제일성이었던 것이다. 이 말은 그 무렵 공자의 심정을 절묘하게 나타내 보인 증언이기도 했다.공자는 바로 자신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가혹한 정치로 어지러운 노나라를 빠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노나라는 한마디로 난세 중의 난세였다.노나라의 임금은 소공이었으나 정치권력은 삼환(三桓)씨 손아귀에 완전히 놀아나고 있어 임금은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노나라의 군대도 완전히 이 세 집안의 사병으로 되었고,경제적으로는 이들 세 집안이 서로 자기네 채읍을 넓혀 많은 가신을 두고 재물을 쌓아 노나라는 재정이 바닥나 있었던 것이다.그 중에서도 계(季)씨의 세력이 가장 컸는데,심지어는 소공이 자기 아버지 양공(襄公)을 제사지내는 날,계씨의 집에서도 제사가 있었는데,춤추는 악공 중 양공의 묘당으로 가서 춤을 춘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고,나머지 악공들은 모두 계씨의 사묘로 가서 춤을 추었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계씨 집안의 우두머리였던 계평자(季平子)의 참상(僭上)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노하였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계씨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팔일무(八佾舞)를 자기 묘정에서 추게 하다니,이것을 참고 보아 넘길 수 있다면 그 무엇을 참고 보아 넘길 수가 없겠느냐.’” 팔일무란 64명의 악공들이 여덟 줄로 늘어서서 추는 춤으로 규정에 의하면 천자의 묘정에서나 출 수 있는 것이었다.계씨는 대부의 신분으로 감히 천자나 할 수 있는 의식을 거행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한참 나이에 공자는 ‘이런 비례를 어떻게 그대로 보고만 있겠는가.’하면서 격분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분노하고 있다. “삼환씨 집안에서 옹(雍)을 노래하며 제기를 거두었는데 공자는 말씀하셨다.‘시경 옹편에 제후들이 제사를 돕고 천자의 거동이 우아하시다라고 하였거늘 어찌 감히 세 집안의 묘당에서 이것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말한 옹은 ‘옹철(雍徹)’의 준말로 ‘천자가 종묘제사를 지내고 물러설 때 시경을 읊던 일’을 말함인데,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옹은 천자만이 제사를 지낼 때 쓸 수 있는 노래였던 것이다.
  • 儒林(120)-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여인은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흰 상복을 입은 여인은 자로와 저만치 서 있는 공자일행을 본 후 별로 자신을 해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듯 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곳은 호랑이의 피해가 아주 심한 무서운 곳입니다.” 여인은 손가락을 들어 세 무덤을 차례차례 가리키면서 대답하였다. “따라서 몇 년 전에는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고,작년에는 남편이 당해서 이곳에 묻혔습니다.그런데 이번에는.” 여인은 가장 앞쪽에 있는 아직 떼도 입히지 못한 흙무덤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그만 아들까지도 호랑이에게 잡아먹혔습니다.내 신세가 처량하고 슬퍼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은 다시 통곡하기 시작하였다.여인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공자가 천천히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그런데도 부인께서는 왜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까.” 공자가 묻자 여인은 세 무덤을 물끄러미 쳐다본 후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은 비록 호랑이들이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곳이기는 하지만 세금을 혹독하게 물리거나 못난 벼슬아치들이 백성들에게 함부로 노역을 시키거나 재물을 빼앗는 일이 없답니다.그래서 감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인의 사연을 들은 공자일행은 다시 여정을 떠났는데,한참을 가던 공자는 갑자기 수레를 멈추게 하고 제자들에게 탄식하여 말하였다. “잘 명심해 두어라.여인에게서 들어 잘 알겠지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공자의 유명한 말은 공자가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첫 번째 출국을 단행하던 도중에서 나온 제일성이었던 것이다. 이 말은 그 무렵 공자의 심정을 절묘하게 나타내 보인 증언이기도 했다.공자는 바로 자신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가혹한 정치로 어지러운 노나라를 빠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노나라는 한마디로 난세 중의 난세였다.노나라의 임금은 소공이었으나 정치권력은 삼환(三桓)씨 손아귀에 완전히 놀아나고 있어 임금은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노나라의 군대도 완전히 이 세 집안의 사병으로 되었고,경제적으로는 이들 세 집안이 서로 자기네 채읍을 넓혀 많은 가신을 두고 재물을 쌓아 노나라는 재정이 바닥나 있었던 것이다.그 중에서도 계(季)씨의 세력이 가장 컸는데,심지어는 소공이 자기 아버지 양공(襄公)을 제사지내는 날,계씨의 집에서도 제사가 있었는데,춤추는 악공 중 양공의 묘당으로 가서 춤을 춘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고,나머지 악공들은 모두 계씨의 사묘로 가서 춤을 추었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계씨 집안의 우두머리였던 계평자(季平子)의 참상(僭上)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노하였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계씨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팔일무(八佾舞)를 자기 묘정에서 추게 하다니,이것을 참고 보아 넘길 수 있다면 그 무엇을 참고 보아 넘길 수가 없겠느냐.’” 팔일무란 64명의 악공들이 여덟 줄로 늘어서서 추는 춤으로 규정에 의하면 천자의 묘정에서나 출 수 있는 것이었다.계씨는 대부의 신분으로 감히 천자나 할 수 있는 의식을 거행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한참 나이에 공자는 ‘이런 비례를 어떻게 그대로 보고만 있겠는가.’하면서 격분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분노하고 있다. “삼환씨 집안에서 옹(雍)을 노래하며 제기를 거두었는데 공자는 말씀하셨다.‘시경 옹편에 제후들이 제사를 돕고 천자의 거동이 우아하시다라고 하였거늘 어찌 감히 세 집안의 묘당에서 이것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말한 옹은 ‘옹철(雍徹)’의 준말로 ‘천자가 종묘제사를 지내고 물러설 때 시경을 읊던 일’을 말함인데,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옹은 천자만이 제사를 지낼 때 쓸 수 있는 노래였던 것이다.˝
  • 儒林(119)-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19)-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기원전 517년 소공(昭公) 25년.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노나라를 빠져 나와 제(齊)나라로 찾아가고 있었다.지금의 산동(山東)을 반으로 나누어 북쪽은 제나라,남쪽은 노나라가 차지하고 있어 제나라는 노나라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이웃나라였다. 이때 공자의 나이는 35세.이미 열 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던 공자는 서른 살에 사고와 행동에 있어 자립하고 있었으므로 공자의 명성은 이미 노나라 뿐 아니라 많은 열국에서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이미 수많은 제자들이 공자 주위에 몰려들어 학문을 배워 스승으로서의 권위를 갖추고 있었다. 훗날 공자는 논어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열 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서른 살에는 자립하였으며,마흔 살에는 미혹하지 않게 되었고,쉰 살에는 천명(天命)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예순 살에는 귀로 듣는 대로 모든 것을 순조로이 이해하게 되었으며,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 성인 공자의 말대로라면 공자가 첫 번째 출국한 35세에는,그러니까 스스로 자립하는 30대와 미혹하지 않게 된 40대의 중간나이에 접어들었던 무렵이었다.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태산(泰山)을 지날 무렵이었다.예부터 태산은 중국의 오대명산 중에서도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존중받아왔다.중국에서는 방위를 계절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 봄을 동쪽으로 보았다.봄은 만물이 생명의 싹을 피우는 계절이기에 사계절 중에서 으뜸으로 좋아하고 있었는데,태산은 최 동쪽 끝에 있어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특히 태산은 황제가 태평세계의 실현을 신에게 보고하는 동선의 의식이 거행되는 신성한 곳으로 유명한데,진정으로 덕이 있는 황제만이 이 의식을 올릴 수 있는 특권을 허락받았다.후세에는 한나라의 무제와 천하통일을 이룬 시황제 등 72명이 동선을 하였지만 공자가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출국할 무렵에는 이 의식을 거행한 적이 거의 없었던 전인미답의 성산이었던 것이다. 태산이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가는 지름길에 있지 않고 돌아가는 우회로에 있으면서도 굳이 공자가 이를 택한 것은 태산등정을 마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신앙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태산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해발 1524m.그러나 대부분의 명산이 산맥 속에 있어 겹겹이 산들이 합심해서 무등을 태우듯 고산을 이루는데 유독 태산만은 평지에 우뚝 홀로 솟아 있어 다른 명산보다 더 높고 더 신비하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태산을 들러 제나라로 갔음을 기리는 뜻으로 오늘날에도 태산에는 공자의 사당이 남아 있는데,태산을 순례하고 돌아가던 공자일행이 잠시 지친 몸을 쉬기 위해서 산기슭에 머무르고 있을 무렵이었다.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자세히 듣고 보니 여인의 곡성이었다.수레에서 내려 쉬고 있던 공자는 갑자기 그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스승님,어딜 가십니까.” 자로가 이를 말렸으나 공자는 말없이 여인의 울음소리가 나는 풀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기슭 숲 사이에는 무덤이 셋 있었는데,한 여인이 그 무덤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공자는 나뭇가지에 몸을 기대고 경의를 표하고는 제자들에게 그 여인에게 다가가서 우는 사연을 알아보라고 말하였다.이 말을 듣자 제자 중에서 가장 성미가 급한 자로(子路)가 여인에게 다가가 물어 말하였다. “부인,무슨 일로 그리 슬피 울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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