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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시각] “타이완은 타이완일뿐이다”/이석우 국제부 차장

    ‘덴노(일왕)’의 더듬더듬 이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린원슝(林文雄) 4형제와 가족들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무조건 항복’ 소식을 남의 일인양 무덤덤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1945년 8월15일. 타이완의 한 작은 마을의 린씨 일가.1989년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작품 ‘비정성시(悲情城市)’는 이렇게 시작된다. 일본의 빈 자리를 총칼로 밀고 들어온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와이성런(外省人·대륙에서 온 중국인). 린씨 형제들은 이들과의 조우 속에서 뜻하지 않은 소용돌이에 휘말린다.3년이 지난 48년 여름. 영화는 린원슝의 늙은 아버지가 어린 손자와 며느리, 그리고 와이성런의 학대로 백치가 된 둘째아들 원량(文良)과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창 너머를 응시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80년대 암울하던 억압적 분위기에서 민중의 삶을 흑백 기록영화처럼 그려내며 타이완영화의 새 물결을 열었던 감독 허우샤오셴(候孝賢)은 이 영화에서 타이완 사람들의 정체성 혼란과 부재, 그런 민초의 삶을 그려냈다. 린씨 가족처럼 타이완인에게 일본이나 국민당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장남 린원슝은 권력의 비호를 받는 와이성런 조폭에 살해되고 막내 원칭(文淸)은 반체제인사로 찍혀 국민당에 잡혀갔다. 일본군에 징용간 셋째아들은 소식이 없고…. 오직 백치가 된 아들만이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뿐이었다. 오랜 장마철의 우중충함과 음습한 끈적거림의 타이완 기후처럼 영화는 내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통치에서 명나라와 만주족 청나라로 지배자는 바뀌어 왔다. 민초들은 “내가 누군인가.”를 확인할 필요도, 그런 겨를도 없이 지배자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 민초들이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 것은 장제스의 유산과 국민당 1세대의 힘이 퇴색되고 민주화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한 80년대였다. 이런 움직임은 연극·영화, 노래와 무용, 미술과 비평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진행됐다. 2000년과 2004년 재야변호사인 천수이볜(陳水扁)의 두차례에 걸친 총통 당선과 사회 전반을 휩쓴 독립열기는 이같은 정체성 찾기 노력의 정치적 귀결로도 볼 수 있다. 국민당 철권통치가 유지되던 70∼80년대 타이완에 유학했던 몇몇 지인들은 “최근의 타이완 방문은 새로운 경험”이라며 놀라워했다. 베이징 표준어가 듣기 어려워졌고 타이완 방언이 이를 대신한 것도 변화를 상징한다. 이런 변화는 반면 대륙의 중국인들을 당혹스럽고 성나게 한다. 중국의 한 학자에게서 미국의 한 국제학회에서 겪은 일을 들은 적이 있다. 학회에서 젊은 타이완대학 교수를 발견한 이 베이징대 교수는 반가운 마음에 “중국 분이시죠.”라며 말을 걸었더니 상대방은 냉랭한 표정으로 “아뇨. 저는 타이완사람입니다.”라고 외면하더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타이완이 독립선언을 하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다.‘설마, 전쟁까지야.’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현지 체감온도는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천 총통이 베이징올림픽을 이용해 독립선언을 할 것”이란 추측이 돌자 “그까짓 올림픽 포기하고 ‘조국수호 전쟁’을 벌이자.”는 격앙된 분위기가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있다. 식자층일수록 더 격렬하게 반응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지난 7일 타이완 국민대회는 헌법을 개정, 간선기구를 거치지 않고 국민투표로 곧바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게 하는 등 독립선언을 향한 또 하나의 포석을 놓았다.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즉 미군의 방어목적 외의 이동과 한반도 밖의 작전·활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제동을 거는 것도 상당 부분 타이완발(發) 군사위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까닭이다. 유사시 중·미간의 군사충돌에 끌려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미국 정부가 천 총통의 독립선언 움직임을 찍어누르면서도 중국의 무력사용엔 군사 개입을 불사하겠다는 경고의 수위를 최근 더 높인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타이완 정체성 찾기가 갖는 문화·역사적 의미는 별도로 하고, 그 강한 휘발성과 폭발력 때문에 우리 관심 밖일 수가 없다. 타이완 해협의 불똥이 우리 경제와 안정을 허물어뜨리고 존립 기반을 흔들어댈 수 있는 그런 지정학적 조건에, 그런 동북아시대에 우리는 서 있고 살아가고 있다. 이석우 국제부 차장 jun88@seoul.co.kr
  • “실종 산악인 시신안장 계속”

    “국민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무택이를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고 박무택씨 등 1년전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대구 계명대 산악회원 3명의 시신을 수습하러 떠났던 엄홍길(45·트렉스타) 대장 등 ‘휴먼원정대’가 13일 박씨의 유품을 안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휴먼원정대는 지난달 29일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8750m)에서 잠들어 있는 박무택씨의 시신을 수습해 세컨드스탭(8600m) 위에 돌무덤을 만들어 안장했다. 지난 4일에는 베이스캠프에서 박무택, 장민, 백준호씨를 비롯, 휴먼원정대를 응원하러 갔다온 뒤 고산병으로 숨진 한승권 계명대 산악회 OB회장 등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고 그들의 이름을 묘비에 새겼다. 엄 대장은 “에베레스트에서 날씨와 몸 상태 등 여건이 좋지 않았을 때는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결국 무택이에게 한 약속을 지키게 돼 마음이 편하다.”며 “앞으로도 산에서 숨진 뒤 방치된 산악인들의 시신을 찾아 따뜻한 곳에 안장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 엄 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계명대에서 열린 합동 추모식에는 유족과 동료 산악인들이 대거 참석,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車는 불황에 ‘色쓴다’

    車는 불황에 ‘色쓴다’

    얼마전 출시된 쌍용의 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카이런은 SUV 답지 않은 파격 색상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색상 이름은 ‘파라이다스 블루’. 자동차의 색깔 파괴 붐이 ‘보수적인’ SUV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전통적으로 소형차는 흰색, 중형차는 은색, 대형차는 검정색이 강세이지만 갈수록 이런 구분법이 무색해지는 양상이다. 그러다보니 ‘로맨틱 장미’ ‘애틀랜틱 블루’ 등 색상 작명에 들이는 업체들의 공도 각별하다. 오랜 내수침체를 ‘컬러 마케팅’으로 뚫어보려는 의지도 숨어 있다. ●‘色있는 차’ 판매 비중 5년전과 비교해보니… 12일 기아자동차에 따르면 올 들어 5월말까지 판매된 프라이드와 스포티지 가운데 레드 스피넬(적색), 하와이안 블루(청색) 등 유채색 차량의 비중은 각각 36%,22%였다. 반면 2000년 동급 모델인 리오와 카렌스의 유채색 판매 비중은 각각 18%,8%에 불과했다(그래픽 참조). 물론 흰색·검정·은색 등 무채색 차량의 비중이 아직은 절반을 넘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유채색 차량의 판매 비중이 크게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스포티지 로맨틱 장미(빨간색)를 구입한 임지인(29·회사원)씨는 “영업사원이 로맨틱 장미를 받으려면 평균 대기시간(한달)보다 한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꼭 이 색을 갖고 싶어 두달을 기다렸다.”면서 “계약에서 출고까지 두 배나 더 걸렸지만 너무 만족한다.”고 말했다. ●불황때 컬러 차량이 더 잘 팔리는 이유 유채색 차량의 판매 비중이 늘어난 데는 젊은 운전자와 여성 운전자의 증가 영향이 가장 크다. 불황도 여기에 한몫 한다는 이색 주장도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무채색 차량이 많이 팔리고, 불황때는 유채색 차량이 많이 팔린다는 것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호황때는 통상 출고 대기시간이 길어지는데 여기에 특이한 색상을 주문하면 시간이 더 길어지기 때문에 유채색 차량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불황때는 상대적으로 출고 대기시간이 짧아 특이 색상을 주문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또하나의 장외 승부 ‘색상 작명’ 자동차에 입히는 색상도 점점 과감해지고 있다. 현대차는 뉴쏘나타에 진한 와인색과 오로라 청색 등을 적용했다. 쏘나타가 중형 세단인 점을 감안하면 ‘도발적인’ 색상 선택이다. GM대우도 뉴마티즈를 출시하면서 지중해색·잔디색·살구색·올리브색 등 새로운 색상을 선보였다. 칼로스 2005년형은 푸른바다색·비둘기빛 은색 등 파스텔톤으로 기존 색상에 변화를 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장외 싸움을 이끌어냈다. 바로 색상 작명이다. 청색 계열이라 할지라도 업체마다 붙인 이름은 각양각색이다. 색상의 미묘한 차이를 살려, 기아는 하와이안 블루, 쌍용은 파라다이스 블루, 르노삼성은 애틀랜틱 블루로 이름붙였다. 스포티지의 메인 색상으로 채택된 하와이안 블루는 자동차로는 유일하게 한국 색채학회가 주는 색채 디자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스포티지 전체 판매량의 10% 이상이 이 색상이다. 그러다 보니 빨강·파랑 등 무덤덤한 이름은 업계에서 아예 ‘퇴출’됐다. 프라이드의 경우,4∼6가지였던 외장색이 10가지로 늘어나면서 색상 이름도 실버 크리스털·토파즈 골드·블루 사파이어·오렌지 투어마린 등 화려한 보석이름에서 빌려왔다. 인터넷 투표를 통해 뽑힌 인기 색상을 실제 차량에 채택하는 컬러 이벤트도 병행했다. 경쟁이 가열되다 보니 색상 이름에 듣도보도 못한 외래어를 남발하는 부작용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프로야구 2005] 두산 4연승 ‘희’ 삼성 4연패 ‘비’

    두산이 거침없는 4연승을 질주하며 선두 삼성에 1.5경기차로 턱밑까지 추격했다. 반면 삼성은 올시즌 첫 4연패, 롯데는 6연패 수렁에 빠져 선두권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두산은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연습생’ 출신 손시헌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앞세워 기아를 5-2로 따돌렸다. 승리의 1등공신은 선린정보고-동의대를 졸업한 3년차 손시헌. 최근 5경기에서 타율 .474(19타수 9안타)에 6타점을 쓸어담은 데 이어, 이날도 2안타 2타점으로 물오른 타격감각을 뽐냈다. 졸업 후 연고팀의 지명을 받지 못해 연습생으로 2003년 프로에 뛰어든 손시헌은 2군에서 빼어난 수비실력을 앞세워, 그해 7월 1군무대를 밟았고, 타고난 성실성으로 김경문 감독의 눈도장을 찍어 결국 꽃을 피웠다. 기아는 연이은 실책으로 무덤을 팠다.2-1로 앞선 두산의 5회말 공격. 선두 전상열은 좌전안타로 출루한 뒤, 장원진의 타구를 기아 내야진이 잇따른 실책을 범하는 새 홈까지 밟았다. 이어진 1사 만루에서 임재철의 평범한 땅볼은 3루로 향했다. 홍세완은 한 발자국만 옮겨 3루를 찍고 홈으로 던져 여유있게 병살처리할 수 있었지만,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 잡기에 급급했다. 결국 후속 손시헌이 우전안타로 주자 2명을 불러들여 승부를 갈랐다. 현대는 수원에서 ‘루키’ 손승락의 호투와 송지만의 홈런포에 힘입어 선두 삼성을 9-4로 제쳤다. 삼성은 선동열 감독 취임 이후 첫 4연패를 당해 선두 수성에 빨간불을 켰다. SK는 문학구장에서 손인호와 박기혁의 홈런을 앞세워 롯데를 5-3으로 따돌렸다. 롯데(28승29패)는 4월23일 SK전 이후 48일 만에 5할승률을 밑돌아 시즌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LG-한화의 대전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수요기획(KBS1 밤 12시) 지난 6월 5일 열린 박찬호의 100승 경기(캔자스시티 로열스전)를 현지에서 직접 취재했다. 박찬호의 분투와 교민들의 열띤 응원,100승 기념행사 등 역사적인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 박찬호와 벅 쇼월터 감독, 현지 기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박찬호가 올린 메이저리그 100승의 의미를 집중 조명한다. ●돌아온 싱글(SBS 오후 9시55분) 금주는 현금 대신 일도와 맞선을 보게 된다. 일도는 스테이크를 시켜 게걸스럽게 먹는 금주의 모습에 놀라고, 금주 또한 현금에게 다시는 대타로 맞선을 봐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한편, 혜란은 민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만 민호가 무덤덤하게 대하자 속이 상한다. ●박주현의 시사 업 클로스(YTN 오후 3시5분) 교육계가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하다. 교원평가제와 ‘3불 정책’ 등 당면 현안을 놓고 교육부와 교원단체, 대학 등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6월 임시국회도 교육문제가 큰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에 김진표 교육부총리를 만나 교육계의 현안에 대해 들어본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요즘 10대들의 이성교제에 대한 생각이나 애정표현 방식이 기성세대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아직도 부모들은 10대들의 이성 교제를 탈선이나 일탈 등 부정 일변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달라진 10대들의 데이트 문화를 짚고 이성교제와 관련한 그들의 고민을 함께 알아본다. ●사과나무(MBC 오후 7시20분) 한국 록의 자존심 윤도현의 밤무대 시절 경험담과 대장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 월드컵 시작에 맞춰 신혼여행을 떠나 ‘오 필승 코리아’의 인기가 오히려 낯설었던 사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초보 아빠 윤도현의 못말리는 딸 사랑과 함께 윤도현의 사과나무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부활(KBS2 오후 9시55분) 하은의 생일날 아침, 은하는 생일상을 차려놓고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하은은 은하를 찾아 나서고, 결국 어릴 적 추억의 장소인 등대 앞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같은 날, 이화는 전 남편의 기일을 맞아 찾아간 납골당에서 전 남편의 후배 경 반장과 만난다.
  • 타란티노 참여한 ‘CSI’ 최신작 방영

    ‘CSI’ 최신 시리즈가 한국에 상륙한다. 케이블·위성방송 영화채널 OCN이 범죄수사 시리즈 ‘CSI’ 다섯 번째 시즌을 6일부터 매주 월·화요일 오후 7시40분에 내보낸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9월23일 시작돼 지난달 19일 막을 내린 최신 방송분. 이번 시즌에서는 길 그리섬 반장을 제치고 라스베이거스 과학수사대 부국장으로 승진한 콘래드 에클리의 농간으로 그리섬 팀이 둘로 나뉜다. 캐서린 윌로스는 반장으로 승진, 워릭 브라운과 닉 스톡스를 지휘하게 된다. 연구실 수습요원 그레그 샌더스가 본격적으로 현장 수사에 나서는 것도 흥밋거리다. 특히 이번 시즌의 백미는 ‘저수지의 개들’,‘펄프 픽션’,‘킬빌’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마지막 에피소드 ‘무덤 속의 위험’(Grave Danger). 통상 한 에피소드의 방영 시간은 40분 전후지만, 타란티노가 담당한 마지막 편은 1시간24분에 달해, 훌륭한 극장판 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CSI’의 인기 비결은 범죄 사건을 실제로 보는 듯한 현장감과 이를 과학적인 증거 수집을 통해 해결해 가는 과학수사대의 활약에 있다. 게다가 요원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양념으로 곁들여지며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이 드라마는 지난 2000년 10월 미국 CBS를 통해 첫 번째 시즌이 방영된 이후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는 2001년 8월부터 OCN에서 소개됐으며, 역시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인 대상 설문조사를 토대로 발표하는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People’s Choice Awards)에서 2003부터 3년 연속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제리 부룩하이머는 ‘나쁜 녀석들’ ‘더 록’ ‘아마게돈’ 등으로 유명한 영화 제작자.‘CSI’의 성공 이후 ‘CSI-마이애미’ ‘CSI-뉴욕’ 등 배경을 달리한 스핀오프 시리즈를 잇달아 선보이며 히트를 거듭해 TV 드라마 제작 쪽에서도 ‘미다스의 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딥 스로트/육철수 논설위원

    언론사들은 독자나 취재원의 제보에 일정 부분 의존한다. 신문의 경우 자체 안내전화란에 반드시 제보전화 번호를 표기해 24시간 제보를 기다린다. 제보는 특종으로 이어지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경우가 많아 언론사마다 접수통로를 마련해 놓고 요긴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의혹으로 포장된 채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던 대사건들도 이런 제보의 과정을 거쳐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보 사실이 조직이나 사회, 국가의 이익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언론의 존재 의의와 역할은 더욱 빛날 것이다. 제보자가 공직자이거나 특정조직의 일원일 경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제보내용이 조직부패와 관련된 것이든 국가안보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이든 으레 위에서 제보자 색출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두어달 전 외교통상부에서는 ‘동북아균형자론’과 관련한 혼선과 비판보도를 싸고 제보자를 찾기 위해 과장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게 대표적 사례다. 지금 미국에서는 1974년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제보자가 얼굴을 드러내 떠들썩하다. 익명으로 극비에 제보했다는 뜻에서 이 사건의 취재기자는 그를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불렀는데, 놀랍게도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제2인자였던 마크 펠트(91)였다. 워터게이트는 1972년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 대통령과 민주당 맥거번 후보의 대선 과정에서 닉슨측이 민주당의 선거본부를 도청한 사건이다. 단순절도로 지나칠 뻔했던 이 사건은 펠트가 워싱턴포스트에 그 엄청난 흑막을 알림으로써 재선의 닉슨을 사임시키며 일대 정치적 파장을 몰고 왔다. 취재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에게는 퓰리처상을 안겼다. 워터게이트의 딥 스로트에 대해서는 취재기자와 편집국장 등 4명만이 알고 있었을 뿐 신문 발행인조차 몰랐다니 30년이 넘도록 취재원을 보호한 그들의 인내력도 대단한 셈이다. 그러나 제보사실을 공개하기까지 펠트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긴 세월동안 자부심과 자책의 감정을 오가며 ‘스스로의 감옥’에서 살아왔다고 실토하는 걸 보면…. 정보기관에서 일한 사람이면 직무수행 중 얻은 정보를 무덤까지 갖고 간다지만, 그는 현직에 있을 때 부도덕한 권력을 용기있게 고발했다. 그런데도 영웅이니 배신자니 평가가 엇갈리는 현실은 정치적 이해가 너무 깊었던 탓일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Love & Wedding]김기범(32·회사원)·이승기(28·회사원)

    [Love & Wedding]김기범(32·회사원)·이승기(28·회사원)

    ‘인연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1999년 10월 첫번째 토요일 점심.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심심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던 그날, 방 안에 있기가 군대에 있을 때보다도 답답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친하게 지내던 여동생한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소개팅이라도 해 달라고 조를 심산이었다. 때마침 여동생은 신촌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놀고 있다고 했고 나는 이때다 싶어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신촌으로 나오라고 했다. 청춘남녀 3대3으로 번개팅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인연은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나는 청순하고 맑은 첫 인상의 그녀에게 용기내어 관심을 표현했다. 그런데 무덤덤한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어쨌든 그날 바로 연락처를 받고 다음날 만나 남산을 걸어서 올라갔다. 그녀와 함께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마냥 즐거웠다. 남산에서 내려와 비디오방에 갔다. 상·하나뉘어진 ‘조 블랙의 사랑’이라는 긴 영화라 오히려 오랫동안 같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는 거의 끝나가는데 그녀의 손은 잡기 힘들었다. 이상한 녀석으로 보면 어쩌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망설임의 끝에 결국 그녀의 손 위로 내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내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어질해지고 온몸이 마비되는 듯 얼어붙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그녀에게 뭘 하고싶은지 물어 보았더니 그녀는 예전부터 친구들과 같이 놀기로 약속을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 약속을 깰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는 애인이 생겼는데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취소하고 나랑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나는 직접 그녀의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애인임을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 결국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원도 오색약수터로 여행을 떠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끽했다. 그 뒤 1999년 12월31일에서 드디어 2000년 1월1일로 새천년을 맞이하러 에버랜드로 갔다. 그 날도 하늘에서 새하얀 눈꽃이 새천년을 축복하듯 하늘을 수 놓았고 우리는 차 안에서 히터를 틀고 라디오를 들으며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제는 내 옆에 함께 있는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사랑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제 사랑했다고 오늘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현재형이다. 사랑한다. 승기!
  • [MLB] 찬호, 100승 -1 강자에 강했다

    100승-1.‘코리안특급’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가 통산 100승에 단 한 고개만을 남겨놓게 됐다. 박찬호는 30일 최악의 조건 속에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경기에 선발등판,6이닝을 6안타 3실점으로 막는 쾌투를 뽐내며 시즌 5승과 함께 통산 99승을 달성했다. 팀동료 크리스 영과 함께 리그 다승 9위. 볼넷과 탈삼진을 4개씩 기록했고, 방어율은 4.61에서 4.60으로 조금 낮췄다. 투구수 104개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58개였고, 최고구속은 153㎞. 온통 악재투성이였다. 메이저리그 1위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 다승선두 존 갈랜드(8승2패)와의 맞대결. 또한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 못지않은 아메리퀘스트필드에서 열린 데다 전날 비로 경기가 취소돼 등판이 하루 밀린 탓에 컨디션도 엉망이었다. 3회까지 무실점으로 시카고 타선을 꽁꽁 묶던 박찬호는 1-0으로 앞선 4회 지난 17일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맞았던 AJ 피어진스키에 1점포를 맞고 흔들려 3점을 내줬다. 하지만 계속된 1사1루에서 스콧 포세드닉을 병살타로 잡아내 이닝을 마무리했다. 1-3으로 뒤진 6회초, 마운드에 오르려던 박찬호를 벅 쇼월터 감독이 붙잡았다. 투구수가 94개에 달해 투수교체를 마음먹은 것. 하지만 쇼월터 감독은 “찬호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 6회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결국 텍사스는 박찬호의 6이닝 역투와 6회말 케빈 멘치의 역전 스리런홈런 등을 묶어 대거 6득점, 결국 12-4 대승을 거뒀다.8연승을 질주한 텍사스는 서부지구 선두 LA 에인절스를 반경기차로 추격했다. 반면 시카고는 3연패에 빠졌다. 경기를 마친뒤 박찬호는 “99승보단 1승,1승이 소중하다.”면서도 “예년과 달리 타자들의 도움으로 승운이 따라 올해는 정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박찬호는 동료 페드로 아스타시오의 등판 여부에 따라 새달 4일 혹은 5일 ‘최약체’ 캔자스시티 로열스(30일 현재 13승37패)전에 출전해 대망의 ‘100승 고지’에 도전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엄홍길씨 조난당한 친구시신 찾은 ‘휴먼’ 등정

    엄홍길씨 조난당한 친구시신 찾은 ‘휴먼’ 등정

    ‘에베레스트는 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에베레스트(해발 8848m)의 만년설 속에 묻혀 있던 한 알피니스트의 주검이 동료 산악인들에 의해 수습됐지만, 결국 이국 땅에서 잠들게 됐다.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45·트렉스타) 대장이 이끄는 15명의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29일 오후 1시20분쯤(이하 한국시간) 8750m지점에서 고 박무택씨의 시신을 찾아냈지만, 악천후 탓에 운구에 실패하고 세컨드스텝(절벽)위에 돌무덤을 쌓아 박 대원을 안치한 것. 지난 3월 네팔을 향해 떠난 지 꼭 76일 만이며, 함께 실종됐던 백준호와 장민 대원의 시신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백준호·장민씨 시신 수습은 실패 박씨는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뒤 하산 도중 계명대산악회의 백준호 장민씨와 함께 ‘불귀의 객’이 됐고, 오랜동안 사선을 함께 넘나들었던 엄 대장은 고인들을 가족 품에 돌려보내기 위해 지난 3월14일 현지로 떠났다. 당초 5월17일을 D-데이로 삼았던 원정대는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초속 20m의 눈보라가 몰아친 대자연의 심술 탓에 일정을 계속해서 미뤄야 했다. 그러던 중 이날 오전 4시30분 해발 8300m에 위치한 캠프3를 떠나 마지막으로 수습작업에 나섰다. 4시간30분여 동안 거센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과 씨름한 끝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박씨의 시신을 쉽사리 떼어낼 수 없었다. 에베레스트가 눈과 얼음으로 그의 몸을 꽁꽁 묶고 놓아주지 않았던 탓. ●악천후등 상황악화로 국내 운구 포기 행여 시신에 손상이 갈까 3시간이 넘도록 조심스레 얼음을 떼어낸 원정대는 2㎞거리인 캠프3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너무 많은 난관이 버티고 있었다. 5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급경사의 바위지대로 보호벽을 쌓은 에베레스트는 노련한 산악인도 혼자 몸으로 내려오기 버거운 조건.100m를 뚫고 가는 데만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될 만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모험은 무리였다. 결국 대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박씨를 안장한 뒤 유품을 수습, 오후 5시쯤 캠프3로 귀환했다. 원정대 베이스캠프(5100m) 관계자는 “얼어있는 시신이 100㎏에 가깝게 불어났고 눈발이 몰아쳐 원정대원들의 안전문제를 고려해 시신을 안치했다.”고 밝혔다. 휴먼원정대는 끝내 박씨의 시신을 가족의 품에 안기지는 못 했다. 하지만 ‘친구를 얼음산 속에 홀로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계 산악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도전에 나선 것 만으로 이번 원정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랑스오픈테니스] 애거시·미스키나 “집으로”

    ‘무덤이 따로 없다.’‘강자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시즌 두번째 메이저 테니스대회 프랑스오픈.115년째 맞는 올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깜짝 우승으로 ‘러시아 돌풍’에 방아쇠를 당겼던 아나스타샤 미스키나(사진 오른쪽·24·러시아)가 여자부에서 무명 마리아 산체스 로렌조(스페인)에게 패해 대회 사상 처음으로 1회전에서 탈락한 디펜딩챔피언이라는 불명예를 남긴 데 이어 20년 동안 8차례나 메이저 정상에 오르는 등 남자코트의 지존으로 통하던 앤드리 애거시(왼쪽·35·미국)도 1회전에서 탈락한 것. 최고령 출전자이자 세계 랭킹 7위의 애거시는 25일 무명의 예선통과자 야르코 니미넨(핀란드·95위)에 1회전에서 2-3으로 패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애거시가 거푸 1회전에서 탈락한 것은 데뷔 당시인 지난 1986∼87년 이후 처음. 한때 클레이코트의 황제로 군림하던 선수들도 줄줄이 나가떨어졌다.2002년 챔피언 알베르트 코스타(스페인)는 빈스 스패디아(미국)에게 무릎을 꿇었고,3차례나 우승컵을 품었던 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도 1회전에서 앙투카(클레이코트의 일종)의 붉은 흙바람 속에 짐을 꾸려야 했다.2회전에 진출한 역대 챔피언은 카를로스 모야(98년)와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03년·이상 스페인), 가스톤 가우디오(04년·아르헨티나) 등 3명뿐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MLB] 박찬호 ‘99승 고지’는 높다

    ‘코리안특급’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가 빅리그 100승 길목에서 최대 난적을 만났다. 오는 29일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시카고 화이트삭스(31승14패)를 홈구장 아메리퀘스트필드로 불러들여 시즌 5승(통산 99승)에 도전하는 것. 게다가 선발 맞상대로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존 갈랜드(26)가 유력해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화이트삭스는 지난 17일 시즌 첫 대결에서 1회 만루홈런을 포함,5이닝 동안 5득점을 뽑아내 박찬호의 4승에 재를 뿌렸던 ‘눈엣가시’ 같은 존재. 위압감을 주는 슬러거는 없지만,1번 스콧 포세드닉-2번 다다히토 이구치 ‘테이블세터’를 중심으로 50도루(전체 1위)를 기록할 만큼 ‘기동력의 야구’로 상대수비를 정신없이 흔든 뒤 점수를 뽑아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지난 23일 ‘투수들의 무덤’ 아메리퀘스트필드에서 열린 휴스턴전에서 텍사스 입단 이후 첫 무사사구로 호투, 통산 98승(시즌 4승) 고지에 올라서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박찬호의 구위를 감안하면 충분히 상대타선의 예봉을 꺾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아지 기옌 화이트삭스 감독이 5일 로테이션을 유지한다면 24일 LA 에인절스전에 선발로 나선 우완 정통파 갈랜드가 29일 또다시 출전하게 된다는 것. 2002년부터 3년 내리 12승을 기록,‘미완의 대기’로 기대를 모으면서도 들쭉날쭉한 컨트롤로 애를 먹은 싱커볼 투수 갈랜드는 데뷔 6년만인 올시즌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당기는 등 투구폼 교정을 하면서 ‘언히터블 투수’로 거듭났다. 비록 24일 LA 에인절스전에서 7이닝 3실점으로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8승1패 방어율 2.56으로 다승 선두를 질주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박찬호가 욕심을 버리고 휴스턴전처럼 투심패스트볼 위주의 맞춰잡는 피칭을 한다면, 팽팽한 투수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중파 FOX채널을 통해 미 전역으로 생중계될 경기에서 박찬호가 갈랜드를 거꾸러트리고 100승을 향한 마지막 디딤돌을 놓을지 기대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5%의 자부심’ 서울토박이

    ‘5%의 자부심’ 서울토박이

    “낚싯대가 따로 없어 나무막대 끝에 끈 매달아 쇠로 만든 낚싯바늘을 묶었어. 반세기 전만 해도 청계천에서 가물치도 건져올렸지, 아∼암.” 청계천 쪽인 서울 중구 장교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순형(69·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 전 서울의대 학장은 청계천 얘기가 나오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이렇게 지난 날을 돌아봤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부회장인 그는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서울에만 살아온 그야말로 진짜 토박이다. 뿐만 아니라 1960년 신도시로 개발됐던 불광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청계천 근처에만 살아온 ‘청계천 토박이’이니 청계천 복원공사와 최근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눈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만나 사랑맺은, 내 고향 서울은 아름답고 건강한 도시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곳이기도 하지만, 서울은 회원들에게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을 안겨주는, 어머니 품속과 같은 고향인 것이다. 이 속담 아닌 속담도 “600여년 전부터 타향에서 몰려든 8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향을 지키려는 방어의식으로 생긴 얌체짓 탓”이라고 회원들은 그럴 듯한 해석을 내놓는다. 역시 서울토박이인 강동구 김종구(58) 기획재정국장은 “어릴 적 한강에서는 뜰채로 참복어도 엄청 많이 걸려 올라왔다.”면서 “그 맛이 요즈음 말로 짱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국장은 “이따금씩 강물 위로 시체가 떠내려왔는데, 미군부대 꿀꿀이죽이나 기껏해야 수제비국으로 연명했을 정도로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에 생긴 변고였다.”며 사연을 들려줬다. “불그런 색깔을 띤 복어 알이 둥둥 떠내려오면 가뜩이나 굶주린 눈에 얼마나 먹음직스러웠는지 모른다.”면서 “복어 알인 줄 꿈에도 모르고 뜰채로 덥석 건져올려 먹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 고향은 지금 국립현충원이 있는 자리인데 현충원 분수대 쪽은 당시 콩밭이었다.”면서 “50년 전만 해도 50가구 남짓 모여 살았다.”고 덧붙였다. 동작동 248번지라는 사실도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고향에 대한 흔적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한강으로 다이빙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필 바위에 닿는 바람에 생긴 상처라고 왼쪽 다리를 보여줬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임기완(65) 상임부회장은 “7대째 210여년이나 서울에만 살고 있다.”면서 “현재의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터가 바로 선조들이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고향마을이었다.”고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소개했다.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무덤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참봉(종9품·무덤 관리자) 벼슬을 지낸 증조부 이래 1969년 세브란스병원이 증축될 무렵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나 비석은 아직 백양로에 남았다고 집안 내력을 보탰다. ●“서울을 노래하자.”…판박이 활동 벗어나 야심찬 회원 배가운동 임 부회장은 “토박이 모임은 인증서까지 주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현재 ‘선조가 1930년 이전부터 현 서울시 행정구역내에 정착한 시민으로, 서울시 행정구역 안에서 계속 주거해온 사람과 신청 1세대의 자손’이라는 가입자격 규정을 뒀다. 현재 인증받은 사람은 2500여가구에 1만여명. 3대 이상 거주자 5만가구 20만명으로 늘리는 게 1차 목표다. 어느 시민은 최근 “제가 충북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 있으나 출생 1년 전후로 서울에 올라와 할머니, 아버지와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해왔다. 서울토박이 중앙회는 가입을 희망하는 시민들이 신청서 1부와 부친, 또는 조부의 재적등본 1부(자치구 발행), 반명함판 사진 2매를 내면 심사를 거쳐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란, 서울을 고향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슬로건처럼 젊은이들도 많이 들어와 서울 가꾸기에 동참할 것을 바라고 있다. 서울을 아끼는 만큼이나 수도이전 등 삶의 구조를 크게 바꿔놓을 사안에는 어느 모임에 못잖게 똘똘 뭉친다. “모이자, 서울광장으로…. 깨자, 우리 고향을 깨려는 검은 무리들….” 지난해 6월 29일 수도이전반대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토박이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중앙회는 수도이전 반대 성명서까지 냈다. 최근 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 발표 때 한 회원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혈세 10조원 이상을 들여 서울을 여기저기 분산시키려 한다.”면서 “12부,4처,3청을 옮긴다는데 토박이들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중앙회에는 초등학생부터 90세가 넘은 장성기(95·성북구 정릉2동)옹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가입해 있다. 중앙회 산하에는 중랑·서대문·강북·송파·관악·중구지회가 따로 짜여졌다. 이 부회장은 “전해 내려오는 선조들 말씀에 따르면 족보가 불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최소한 10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되뇌었다.“한국전쟁이 끝나고 몇해 뒤인 1950년대 중반에만 해도 지금의 수색 근처에 조상들의 묘가 위로 10대까지 있었다.”고 했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02)2274-3291.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3대이상 거주해야 ‘성골’ 대접 3대째 내리 서울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는 100명 중 5명 정도로 추산된다. 또 서울에서 태어난 시민 가운데 31%는 서울을 고향으로 여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민 가운데 조부모 세대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토박이는 2004년 말 현재 4.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말 조사된 6.5%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시정연은 시내 2만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4년 서울 서베이’ 결과 시민들 가운데 63.9%가 본인 세대부터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부모 세대부터 거주한 비율은 30.9%로 나타났다.2003년 본인 세대부터 57.2%, 부모 세대부터 33.6%와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토박이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전년과 같이 종로구(8.1%)로 나타났다. 원남동, 안국동, 궁동, 청운동, 삼청동 등 비교적 전통적인 가옥구조를 보이는 탓도 있다. 반면 서울토박이가 가장 적은 곳은 광진구(2.8%)로 조사됐다. 서울시민 전체에서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67%,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민은 33%였다. 서울시민 고향인식도는 2003년도 63%보다 상승한 수치다.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는 비율을 권역별로 보면 도심권(종로·용산·중구)이 75.9%로 가장 높았다. 자치구별로는 용산 81.6%, 광진 77.2%, 중구 75.4%, 강동 72.4%, 동대문 70.9%, 성북 70.5%였다. 반면 아파트 중심 주거문화 지역인 도봉구(58.4%)와 금천구(59.6%)는 매우 낮아 정체성 확립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원조토박이들이 말하는 서울사람 “우리 토박이들을 업신여기니 청계천 사고가 일어나지….” 18일 서울 중구 수표동 56의 17 청계천 3가 골목길에 자리한 건물 4층 서울토박이 중앙회 사무실에서 만난 자칭 ‘4대문 원조 토박이’ 10명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참된 서울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은데 끼워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사뭇 배어 나왔다. “프랑스에선 파리지앵, 일본에서는 에도코(江戶)라고 불리는 수도의 토박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도시에서는 도심 건물을 헐 때나 나무 한 그루를 잘라낼 때도 토박이들과 의논합니다.” “서울시가 서울만의 문화를 보존한다, 수도를 지킨다느니 하면서 토박이들에겐 관심도 없는데, 일을 잘못하면 우리가 나서서 혼쭐을 내야 합니다.” 이날 모임에는 회장단 13명 가운데 일정이 겹친 3명을 빼고 모두 찾아와 모처럼 얘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전통음식 등 서울문화를 들먹거리면서도 어떤 경로를 거치는지 몰라도 정작 대대로 살아온 우리들 말은 듣지도 않고 활약하는 단체도 더러 눈에 띄더라고요, 참….” 각 지방 사람들의 성격이 식습관에서 유래한다며 음식 얘기로 돌아갔다. 서울 사람들은 맵고 짠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는 음식을 만들 때 실고추를 위에 얹는 관습에 잘 나타난다고 입을 모은다. 고춧가루 쓰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타난 성격이 악착같지 않다는 점이다. 원래 살던 고향이라고 당연히 여기다 보니 아등바등 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고의구(71) 부회장은 “내 분수만큼만 행세하지, 절대 남의 것은 쳐다보지 않는 성격”이라면서 “서울 깍쟁이라는 말도 남들에게 불필요하게 손을 벌리지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주지도 않는 성격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서울 사람들이 자존심 강하기로 치면 어느 정도냐 하면 말이지.‘맹추’라는 소리를 들었지.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광복 뒤 헐값에 처분하거나 버리고 도망간 집이 많았는데, 셋방에서 버틸지언정 들어가 살지는 않았어.” 그는 서울사람 대신 발빠른 외지인들이 집을 차지해 내로라하는 부자로 성장한 사례가 많았다고 소개했다. “나서려고 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 때문에,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부자 가운데서도 섣불리 모임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하소연도 쏟아졌다.“다른 향우회에서는 서로 나서지 못해 안달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오후 2시 시작해 6시까지 이어진 이날 자리에서 그들은 서울토박이로서의 자랑 아닌 자랑도 늘어놓았다. “산업화 물결로 갑자기 서울 인구가 엄청 늘면서 누구나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서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서울 사투리도 있어서 누가 토박이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했걸랑요’ 등 ‘요’로 끝나는 말을 많이 쓴단다.‘다’로 마치는 말과 달리 여성스러운 말투여서 다른 지방 사람들로부터 ‘간지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웃었다. 중앙회 출범 10주년이던 지난해 11월에는 효재학교 동창인 이원임(여), 이상용, 박영한(이상 81) 회원들이 70여년 만에 우연히 한 자리에 모여 추억을 되새기는 뜻 깊은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토박이 모임을 만든 덕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문희상·강금원/김경홍 논설위원

    최근 몇몇 대통령 측근들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광재 의원이 ‘유전개발 의혹’과 관련해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열린우리당의 문희상 의장이 출처가 불투명한 5억원의 돈으로 채무를 갚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강금원씨는 배임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뒤 6개월 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문 의장이나 이 의원, 강씨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들이다.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이나 이들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운영이 개입된다면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보여주는 의리나 측근들의 처신은 과거시절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 한 월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문 의장은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 때 2000만원을 준 한 사업가의 아들을 청와대 직원으로 취직시켰고, 비서실장에서 물러났을 때는 고급승용차까지 제공받았다고 한다. 살고 있는 집도 지인의 것으로, 무상으로 살고 있다 한다. 문 의장측은 사업가의 아들은 경력이 충분해서 데려다 쓴 것이고, 승용차도 나중에 4000만원을 주고 인수했다고 해명했다. 집도 부도가 나서 경매에 넘어가자 친구들이 모금해서 경매낙찰을 받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인이 많은 것은 문 의장이 살아오면서 베푼 덕이 많았거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위에 있었다면 오히려 거절했어야 할 문제였다. 강금원씨는 특별사면 후 “맹장수술한다고 배를 쨌다가 맹장이 이상하지 않으니까 여드름을 짠 격”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문 의장도 “그 사람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라고 옹호하다가 최근에는 “강씨는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하는 사람중에서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그래도 자기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친다는 지적을 받는 판에 다른 중소기업가들은 깨끗하지 않다는 얘기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정권이 내세우는 개혁은 주도세력들의 도덕성과 엄격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주변인사들의 구설은 “빚이 많으면 무덤덤하고, 이가 많으면 가려운 줄 모른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MLB] 찬호 “못믿을 불펜”

    ‘박찬호가 문제인가, 불펜이 문제인가.’ 올시즌 4승 고지를 앞두고 있는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가 벌써 3번이나 불펜의 ’불쇼’로 승리를 날렸다. 17일 US셀룰러필드에서 가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원정경기에서 6이닝 동안 삼진 4개를 솎아냈지만 1회 만루홈런을 포함,6안타 5실점을 허용했다. 타선의 도움으로 6-5로 앞선뒤 마운드를 내려와 승리요건을 갖췄지만 마운드를 넘겨받은 구원투수 닉 레질리오가 8회말 이구치 다다히토에게 동점 솔로홈런을 허용, 승패조차 기록하지 못했다. 이날 박찬호는 투구수 96개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55개였고, 최고구속은 146㎞를 찍었다.3승1패를 유지했지만, 방어율은 4.99에서 5.32로 뛰어올랐다. 텍사스는 9회 케빈 멘치의 결승홈런에 힘입어 7-6으로 이겼지만 불펜진의 박찬호 구원 실패는 올시즌 벌써 3번째. 지난 4월 9일 시애틀전에서는 5와 3분의2이닝 동안 3실점하며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내려왔지만 불펜이 7회 역전을 허용하는 바람에 승리를 날렸고, 지난 11일 디트로이트전서도 6회 2사까지 4-2로 앞선 채 마운드를 내줬지만 구원투수가 동점을 허용,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3번의 똑같은 상황을 놓고 여러가지 원인 분석이 있지만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박찬호의 강박관념에서 찾는다. 그는 “6이닝을 놓고 보면 제구력은 80∼85점을 줄 만큼 평균치”라면서 “투구 메커니즘의 문제가 아니라 ‘불펜의 핵’ 프랭크 프란시스코와 카를로스 알만자의 공백으로 구멍이 난 구원투수진에 넘기기 전 최대한 끌고가려는 강박관념이 무덤을 팠다.”고 분석했다. 실제 박찬호는 이날 1회 투아웃까지 손쉽게 잡아냈지만 3번 애런 로완드에게 중전안타를 내준 뒤 폴 커네코와 칼 에버렛을 맞아 귀신에 홀린듯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지 못했다. 확연히 볼로 보이는 유인구를 고집하다 볼넷을 반복한 것. 좌타자 AJ 피어진스키에게 0-2로 몰린 박찬호가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던진 투심패스트볼은 밋밋하게 복판으로 쏠렸고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그랜드슬램이 됐다. 고개를 떨궜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옛 LG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차분히 축사를 읽어가는 구본무(60) LG 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허씨와의 57년간(47년 락희화학 설립 기준)의 ‘동거’를 당대에서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사돈이자 ‘동반자’였던 GS그룹 허창수(57)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 울려퍼진 ‘사랑해요 LG’는 앞으로도 두 그룹이 여전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구 회장은 이에 앞서 3월14일 ‘당숙’인 구자홍(59) 회장·구자열(52) 부회장이 이끄는 LS그룹 출범식에도 참석, 새로운 길을 떠나는 집안 어른들을 축하했다. 연이어 열린 GS·LS그룹의 출범은 LG의 역사상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동업으로 일궈 합작으로 키웠다.’는 LG의 사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GS의 분리로 자산이 지난해 61조 6000억원에서 50조 8800억원으로 줄어든 LG는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재계순위에서 현대자동차그룹(56조 400억원)에 2위(한전 제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1974년과 1980년에는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 1위까지 올랐던 LG그룹으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조부때부터 늘 확장일로를 걷던 사업을 ‘정리’한 구 회장은 LG의 비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던 종합그룹에서 전자·화학중심의 ‘글로벌 리딩그룹’으로 재확립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올해 경영목표를 매출 94조원, 경상이익 4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5%,26%나 높게 잡은데서 ‘제3의 창업’을 향한 LG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친이 준 자금으로 사업 시작 재계3위 LG그룹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원은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시작한 ‘구인회 상점’이 출발이다. 구인회 회장은 1907년 8월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할아버지 만회 구연호 공의 외아들 춘강 재서 공과 진양 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잠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과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유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세때 서울 중앙고보 2년을 마치고 귀향, 사업에 뜻을 보였는데 엄격한 유교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부와 부친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장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24세에 이미 3남 1녀와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둔 집안의 가장이었던 구 회장은 아버지가 건네 준 2000원과 첫째 동생 철회씨의 사업자금 1800원을 더해 자본금 3800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7년 뒤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출발은 일렀지만 규모는 작았던 셈이다. 구 회장의 첫 사업은 ‘실패’였다. 사업 첫 해 무려 500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듬해 고향마을의 땅을 담보로 8000원을 빌린 구 회장은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그 해 장마로 포목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후 사업이 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1936년 대홍수로 가게가 떠내려 가고 말았다. 첫 시련은 가혹했지만 구 회장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장마가 든 해에는 풍년이 들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주변 사람에게 다시 돈을 빌려 포목사업을 벌였다. 구 회장의 예측대로 그해 풍년이 들어 결혼수요가 폭증하자 포목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고 구 회장의 사업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씨와의 인연 LG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씨-허씨 동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부터 시작됐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왔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인회 회장 역시 열네살 나던 해인 1921년 담 하나 사이 이웃인 허만식씨의 장녀 을수씨와 혼례를 올렸다. 조부 만회공의 셋째 딸이 허만식씨의 둘째아들 인구씨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후 구씨와 허씨는 무려 8건의 겹사돈으로 맺어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구씨와 허씨는 1946년 1월 구 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인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준구(당시 24세)를 데리고 당시 구회장이 살던 부산으로 찾아오면서 사돈에서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허만정씨는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고 구 회장은 동경 유학생 출신의 준구씨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구씨는 첫째 동생 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이미 남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 허준구씨는 LG건설·LG전선 회장 및 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의 역사와 함께했고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 허정수(55) GS네오텍(전 LG기공) 사장,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 등 그의 아들들도 LG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LG의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씨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준구씨의 친형인 고 허학구씨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당시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허준구씨의 동생으로 당시 ‘조선통운’에 다니던 허신구씨를 끌어들였다. 허신구씨는 락희유지 상무시절인 62년 동남아출장에서 ‘합성세제’를 처음보고 구인회 회장에게 세제 사업 진출을 건의,66년 ‘하이타이’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신구씨는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고 장남 허경수씨는 87년 코스모그룹을 창립하며 독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허만정씨는 8형제를 뒀는데 학구-준구-신구씨는 LG에 발을 담은 반면 장남 고 허정구씨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창업동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정구씨의 2남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허신구씨의 차남 허연수씨도 GS리테일(전 LG유통) 상무로 일하고 있고 허만정씨의 막내인 허승조씨는 GS리테일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들의 맹활약 LG는 그동안 숱한 계열분리를 통해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오너일가’는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상당수가 구씨, 허씨일 정도로 가족경영이 활발했다. 오너일가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LG의 창업과정에서 이들의 공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인회 회장은 첫째 동생 철회씨와 동업으로 ‘구인회상점’을 창업했다. 철회씨는 형과 함께 사업을 일구며 락희화학, 금성사 등의 사장을 맡았다. 둘째 아우 정회씨도 경성전기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정회씨는 45년 구인회 회장이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화장품 기술자 김준환씨를 영입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어 ‘럭키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도 정회씨였다. 셋째 아우 태회씨는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면서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같은 해 장조카 구자경 명예회장도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태회씨는 이후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53년 락희화학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태회씨였다. 태회씨는 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역시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넷째 아우 평회씨는 락희화학 지배인 시절인 1954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청년상공인회의(JCI)에 참석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는 공을 세웠다. 공전의 히트를 친 ‘훌라후프’도 평회씨의 제안으로 들여왔다.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때는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씨가 아버지와 형(맹희씨)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5년 연속 세계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락희화학 전무시절 “고층빌딩이 계속 늘고 있어 에어컨이 앞으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시작했다.67년 9월 미국 GE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 첫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워시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나온 구자두씨는 금성사 관리부장 시절인 62년 동남아 통상사절단을 수행하며 홍콩의 바노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주문 받아오는 등 LG의 첫 수출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럭키치약 광고판을 부산 연지동 공장에 세우는 등 본격적인 광고개념을 도입한 것도 자두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6남4녀의 ‘방대한 혼맥’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르지만 권력 핵심이나 정계쪽과는 인연이 없어 세칭 ‘정략결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LG가는 특히 아들이 많은데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에 달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장녀 양세(83)씨는 15세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의 아들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진동씨에게 출가했다. 박씨는 광복후 좌우익투쟁으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사망했다. 장남 구자경(80) 명예회장은 17세때인 42년 5월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81)씨와 혼례를 올렸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진주공립중 4학년이었고 한살 위인 신부는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구 명예회장 부부는 올해로 63년째 해로하고 있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71)씨와 선을 본 뒤 4개월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과 홍재선씨와의 우애는 유명한데 홍씨는 훗날 구 회장이 한때 자신을 ‘바람둥이’로 오해해 혼사가 어려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평소 안면이 있던 다방 마담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고지식한’ 구 회장이 오해를 한 것이다. 3남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70)씨와 57년 결혼했다. 구 회장은 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동양TV방송 이사,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쳐 본가로 돌아왔다. 4남 구자두(72)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67)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미 사돈을 맺었던 홍재선씨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씨는 64년 동양TV 사장으로 일하다 삼성과의 동업파기로 물러났고 이후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삼성과 LG는 동양TV사장에 이병철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씨와 구인회 회장의 사돈인 이흥배씨를 나란히 앉혀 ‘공동경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흥배씨의 장남인 이희종(72)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낼 정도로 LG와 인연이 깊었다. 5남 구자일(70)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김청자(66)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68)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아우인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장남에게 외식업을 해보라고 권유,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F’를 처음 들여왔다. 3녀 자영(66)씨는 제일은행장을 지낸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68)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의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4녀 순자(62)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법원장 아들이자 서울지검 검사였던 류지민씨에게 시집갔다. 이 혼례도 사돈인 이흥배씨가 주선했는데 구씨의 혼사는 이처럼 사돈이 연결해 준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무척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류씨는 43세때 요절했다. 유일하게 구 회장 타계후 결혼한 6남 자극(59)씨는 이화여대 교수인 조필대 교수의 딸 아란(54)씨와 결혼했다. ●창업주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LG가문의 혼맥이 늘 주목받는 것은 구인회 회장 형제들의 혼사가 본가 못지 않게 화려하기 때문이다.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는 부인 안남이(작고)씨와 4남 4녀를 뒀는데 딸들의 결혼이 눈에 띈다. 장녀 위숙(77)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했다.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자애(66)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1·전 현대피부과원장)씨에게 시집갔다.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에게 시집갔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원(70) 넥스원퓨처 회장은 류영희(63)씨와, 차남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갑희(62)씨 등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4남인 자준(55) LG화재 부회장의 부인인 임방인(61), 이영희(53)씨도 재계나 정·관계 집안은 아니다. 다만 구자훈 회장의 3녀 문정(31)씨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에게 시집가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정회(78년 작고)씨는 부인 김증문(작고)씨 사이에 5남 2녀를 뒀다. LG유통 사장을 지낸 장남 자윤(작고)씨는 정정자(62)씨와 결혼했다.2남 형우(62) 전 부민상호저축은행 사장은 전 대한석탄공사 전무였던 이길주씨의 딸 화숙(57)씨와 결혼했고 장녀 숙희(59)씨는 이구종 전 대한교과서 대표의 아들 규영(62)씨와,3남 자헌(작고)씨는 조종렬 한일수산 회장의 딸 금숙(55)씨와 결혼했다.LG MMA 사장을 지낸 4남 자섭(55)씨는 최근 LCD 회로부품업체인 한국SMT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부인은 심영숙(51)씨. 박정화(50)씨와 결혼한 5남 자민(50)씨는 지난해 말 LG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3개월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고 형 회사인 한국SMT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2녀 명희(52)씨의 남편은 하영준(56) 전 세원기업 사장이다. 셋째 동생으로 국회예결위원장·부의장을 지낸 태회(82)씨는 최무(83)씨와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은 지순혜(60)씨와 결혼했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에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다. 차남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김태향(55)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의 사위가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이다.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의 부인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딸 미연(53)씨다.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는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결혼이 예정돼 있다. 구씨가문으로서는 두산가로 출가한 자혜씨에 이은 두번째 두산과의 혼사다.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넷째 평회(79)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씨의 딸 현주(48)씨와 결혼했다. 차남인 구자용(50) E1사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 현주(46)씨와 결혼했다.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독고진(46)씨와, 막내 혜원(46)씨는 주진규(49)씨와 결혼했다. 막내동생 두회(77)씨는 유한선(72)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 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택수씨는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점점 ‘소박’해지는 혼맥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회장 못지않은 4남 2녀를 낳아 ‘다산’의 전통을 이었다. 장남인 구본무(60)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 유학을 마친 72년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충북 괴산의 ‘수재’로 불린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 장녀 연경(27)씨는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막내 연수(9)양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지난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27)씨를 양자로 영입해 ‘대’를 잇고 있다. 장녀 훤미(58)씨는 구 회장 작고 직후인 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4남 화중(작고)씨와 결혼했다. 훤미씨의 딸인 김선혜(34)씨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전무와 결혼해 대림가와 대를 이은 혼인관계를 이어갔다. 김용관씨는 경방 회장과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의 동생이다. 화중씨는 “딸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사돈이나 사위는 아들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는 LG의 ‘가풍’대로 계열사였던 희성금속 사장을 지냈다. 95년 일찌감치 독립한 2남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은 차경숙씨와 결혼했다.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인 은미(48)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2녀 미정(50)씨는 대한펄프 창업주인 고 최화식 회장의 아들인 최병민(53)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4남 구본식(47) 희성전자 사장은 조경아(45)씨와 결혼,1남 2녀를 뒀다. ●LG를 떠나는 滋자 돌림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자승(작고)씨는 홍승해씨와 3남 1녀를 뒀다. 장남 본걸(48)씨는 LG상사 대주주이자 부사장을 맡고 있고 본순(46), 본진(41)씨도 LG상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LG상사는 LG의 다른 자회사와 달리 ㈜LG가 대주주가 아니어서 자승씨 집안 몫으로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한 둘째 동생 자학씨는 이숙희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남 본성(48)씨는 심재석 전 장은할부 부회장의 딸 윤보(44)씨와 결혼했다. 본성씨는 처가인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 삼성캐피탈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까지 지냈다. 장녀 미현(45)씨는 고 이문호 서울대의대 교수의 아들인 이영렬(50) 한양대의대 교수와 결혼했다.2녀 명진(41)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 동생 자두씨 역시 2000년 LG벤처투자를 갖고 분리했다. 이의숙씨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는데 장녀 혜란(45)씨는 심창유 청주사대 학장의 아들 현주(50)씨와,2녀 혜선(43)씨는 장홍식 전 극동정유 사장의 아들 원우(44)씨와 결혼했다.LG벤처투자 사장인 장남 본천(41)씨와 차남 본완(39)씨는 각각 2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넷째 동생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처음부터 LG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했다. 본길(39), 은미(38)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차녀 구자혜씨는 이재연 전 LG카드 부회장과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명망가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아시안스타 사장인 장남 선용(44)씨는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의 딸 은주(40)씨와 결혼했다. 차남 지용(42)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38)씨와 결혼했다. 막내 구자극(59)씨는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을 그만두고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코일, 변성기 등을 생산하는 이림테크를 인수(현 엑사이엔씨)한 뒤 스피커 전문업체인 모토조이, 성주음향의 중국 톈진공장 등을 인수하며 종합부품그룹을 키우고 있다. 엑사이엔씨 사장인 장남 본현(37)씨와 차남 본우(26)씨는 엑사이엔씨 지분 24%,4%를 각각 보유중이다. ukelvin@seoul.co.kr ■ 그룹 분가-지분율 따라 재산분배… ‘잡음’ 없어 LG는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LG벤처투자, 아워홈,LS,GS그룹 등을 차례로 분리했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예사이지만 유독 LG만은 큰 잡음없이 대규모 분가를 마무리지었다. 이는 LG가 엄격한 유교집안으로 집안 어른이 정한 기준을 자손들이 철저히 지키는데다 수십년간 그룹에서 친족들의 지분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분가에 앞서 일부 친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지분율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LG화재는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분리됐다. 한때 대한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어 손해보험-생명보험을 영위하려했던 LG는 생명보험사업이 좌절되면서 LG화재를 독립시키려 했고 집안회의에서 고 구철회씨 가족들이 화재를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LG벤처투자를 갖고 떠난 구자두씨 가족은 얼핏 ‘재산’이 너무 적어 보이지만 윗대인 구철회씨 가족에 비해 가족수가 적기 때문에 지분도 그만큼 적었다. 아워홈의 구자학씨는 한때 삼성에서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배가 이뤄졌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구태회·평회·두회씨가 LG의 창업공신인데다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게다가 LS전선은 허씨 가문의 고 허준구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허씨들이 경영을 맡아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태평두씨’ 가족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주면서 마무리됐다. LG그룹의 가장 큰 지각변동은 허씨들이 갖고 간 GS그룹의 분리다.GS칼텍스,GS건설,GS홈쇼핑,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18조 7200억원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형제들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에 비해 허씨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관계자는 “고 허만정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에도 허씨들은 계속 자금을 출자했고 그 비율은 일찌감치 65대 35로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지분비율은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업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은 전선사업에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진 금융관련 계열사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씨측의 어른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측의 대표인 고 허준구 회장이 이미 수년전에 정해 놓은 ‘분리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허 회장이 타계했지만 두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의 ‘약속’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ukelvin@seoul.co.kr ■ 필립스 “具·許씨 동업에 감명 LCD합작” 1999년 9월 LG전자에 1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전 회장은 합작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구본무 회장의 화답도 이에 못지않았다.“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잃지 않아야 한다.” LG의 58년 역사에는 숱한 합작사가 등장한다. 합작사만 한때 20개에 달할 정도였다.60년대에 이미 66년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고,68년에는 미국 콘티넨털카본사와 합작으로 한국콘티넨탈카본을 세웠다.70년에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으로 금성알프스전자를,71년에는 일본 포스타전기와 합작으로 금성포스타를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일본 후지전기와 3사 합작으로 금성통신을 설립했고 74년에는 일본 NEC와 손잡고 금성전기를 세웠다. 80년대 들어서도 합작은 계속됐는데 84년 다우코닝과 공동출자로 럭키DC실리콘을 설립했고 84년에는 제어시스템 메이커인 미국 하니웰과 공동으로 금성하니웰을 만들었다. 이후 동업관계가 끝났지만 87년 미국 EDS와 합작으로 만든 STM(현 LG CNS),96년 IBM과 맞잡은 LGIBM도 합작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LG계열사 가운데도 합작사가 적지 않다. 히타치LG는 히타치와, LG MMA는 일본 스미토모상사와 합작한 회사다.LG텔레콤은 영국의 BT가 합작투자했고 필립스와는 LG필립스LCD에 이어 LG필립스디스플레이를 합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키사와 함께 루셈을 만들었고 올 상반기중으로 LG전자와 캐나다 노텔사의 합작사인 ‘LG-노텔’이 출범할 예정이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국정원장 “핵실험 징후 증거없다”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은 13일 “한·미 양국은 90년대 말부터 함북 길주지역에서 용도 미상의 갱도굴착 징후를 포착하고 관련 동향을 추적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고 원장은 이날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참석, 함북 길주 지역 일대에서의 핵실험 준비설 보도와 관련,“아직 핵실험 징후로 파악할 증거는 없다.”면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정보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임종인 의원이 전했다. 고 원장은 이날 외신들이 핵실험 준비설을 보도하고 있는 길주 일대의 최근 동향을 위성사진 판독 결과 등을 바탕으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길주지역에서 터널 메우기, 관람대 신축 등 핵실험 준비 동향이 포착됐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보고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예전에 지하 핵실험을 수직·수평 갱도에서 했고, 인도와 파키스탄도 그렇게 (핵실험을) 했다.”면서 “우리도 계속 (북한을) 관찰하고 있으나 그런 징후는 없다.”고 설명했다고 임 의원은 전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문희상 의장도 간담회 참석 후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북한 핵실험의 특이징후는 없다. 이는 한·미 양국이 똑같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문 의장은 “북한이 수직·수평으로 길주지역에서 90년대 말부터 지하갱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특이하게 변화하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지하갱도 부근에) 10명 정도의 인력과 흙을 파낸 무덤 등이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고 원장은 “핵실험을 위해서는 관측소 등 추가시설을 세우고 이를 위해 많은 사람과 물품이 포착돼야 하는데 이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다른 한 정보위원이 전했다. 다만 고 원장은 “길주 지역은 암반지역으로 핵실험 장소로 좋은 환경”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한편 고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북한이 최근 폐연료봉 8000개의 인출 작업을 완료했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핵무기고 증강 주장이 허언이 아니라고 압박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배경을 분석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MLB] BK ‘빗속 쾌투’

    계속된 부진으로 침몰하던 김병현(26·콜로라도 로키스)이 ‘투수들의 무덤’으로 악명높은 쿠어스필드에서 올 시즌 최고의 피칭으로 재기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었다. 연일 대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빅초이’ 최희섭(26·LA 다저스)도 3안타를 몰아치며 시즌 첫 3할타율(.302)에 진입했다. 김병현은 12일 홈구장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선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 깜짝 선발등판,5이닝 동안 5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3안타 1실점 쾌투를 펼쳤다. 좌완 조 케네디의 부상으로 올 시즌 처음이자 지난해 5월11일 클리블랜드전 이후 꼭 1년 만에 선발등판의 행운을 잡은 김병현은 최고 구속은 138㎞에 그쳤지만 꿈틀거리는 공끝을 뽐내며 고비마다 삼진을 낚아냈고, 방어율도 7.62에서 6.00으로 크게 낮췄다. 김병현은 콜로라도가 2-1로 앞선 5회말 타석에서 대타 제이슨 제닝스로 교체돼 승리요건을 갖췄지만, 구원투수 호세 아세베도가 6회초 라이안 랭어한스에게 동점홈런을 맞아 승리를 날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1회 3타자를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눈부신 호투를 예고했다. 타선도 1회말 선취점을 뽑아 김병현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었다.2회 2사만루의 위기를 삼진으로 정면돌파한 뒤,3회 마커스 자일스와 치퍼 존스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처리해 첫승의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4회 앤드루 존스에게 동점 우월 솔로홈런을 허용,‘옥에 티’를 남겼다.2사뒤 유격수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내 제구가 흔들린 김병현은 연속 볼넷 2개로 만루까지 몰렸지만, 라파엘 퍼칼을 낙차 큰 커브로 3구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마무리지었다. 콜로라도는 6-5로 승리했다. 최희섭은 같은 날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서 1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출장해 2루타 하나를 포함,4타수 3안타 1타점의 맹활약을 펼쳤다. 1회 무사2루에서 상대선발 제프 수판에게 우전안타를 뽑아낸 최희섭은 1-2로 뒤진 3회 무사 1루에서 수판의 2구째를 힘껏 끌어당겨 우중간 펜스를 원바운드로 맞추는 통렬한 2루타로 동점타점을 수확했다. 공이 홈으로 송구되는 사이 재치있게 3루까지 내달린 뒤, 후속 JD 드루의 1루 땅볼때 홈으로 파고들어 역전 득점.5회에도 무사 1루에서 결대로 밀어쳐 좌중간 안타를 뽑아내며 안타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다저스는 최희섭의 맹타에도 불구하고 3-9로 무릎을 꿇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명성황후 무덤 찾아 ‘사죄의 눈물’

    명성황후 무덤 찾아 ‘사죄의 눈물’

    “할아버지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오는 10월8일은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하게 시해된 지 110년째 되는 날이다. 그날의 참극을 일으켰던 시해범 48명 가운데 한 명인 구니토모 시케아키(國友重章)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ㆍ84)와 이에이리 가가치(家入嘉吉)의 손자며느리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77), 그리고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10명 등 12명이 10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위치한 홍릉을 찾아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홍릉은 명성황후가 고종황제와 함께 묻혀 있는 곳이다. 가와노씨 등은 이날 묘소 앞에 국화꽃 한다발과 일본 전통차를 올린 뒤 10여분 동안 무릎을 꿇은 채로 조상을 대신해 속죄했다. 가와노는 “명성황후의 무덤을 대하는 순간 ‘용서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면서 “시해에 가담했던 다른 분들의 후손도 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와노 일행은 고종황제의 둘째 왕자였던 의친왕의 기일을 맞아 이날 홍릉을 찾은 의친왕의 9번째 아들 이충길(67)씨 등 황실 후손들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또 시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구마모토에서 400개의 연을 날리는 등 일본 역사교과서들이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도록 시민 운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들은 11일 명성황후 시해 장소인 경복궁 건청궁 등을 둘러본 뒤 12일 출국할 예정이다. 이번 방한은 다큐멘터리 감독 정수웅씨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길섶에서] 봄날은 간다/심재억 문화부 차장

    뭔가 헝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예전에야 손가락으로 삼한사온을 세며 절기를 신기해 했고, 풋보리 서리라도 해야 봄을 여의는 줄 알았지요. 그랬던 사람들, 언제부턴가 그런 통과의례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자연과 멀어져 그러기 쉽지 않을 뿐더러 배가 고프지 않으니 그럴 필요도 없게 된 탓이지요. 봄 한 철, 우리가 치렀던 습속의 의식은 많습니다. 무논 개구리가 울어댈 무렵에는 돌미나리며 쑥을 뜯었고, 할미꽃 무덤가에서는 봄볕에 늘어져 더덕 향기에 취했습니다. 그러다 보리 이삭 내밀면 참 허기지게도 보리피리 불어댔지요. 나대다 지쳐 노랗게 가라앉는 아이들을 보며 “배 꺼진다, 뛰지마라.”던 때가 바로 이 무렵입니다. 이렇듯 예전의 일상은 예측 가능한 섭리의 틀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경험칙만으로 살아도 때와 시를 아는 일이 틀림 없었는데, 기계가 엄청 좋다는 요새 들어 뭔가 자꾸 꼬이는 듯합니다. 벌써 초여름 날씨를 보인다고들 떠드는 것도 그렇습니다. 봄을 느끼자마자 여름이라니요. 훨씬 더 좋아졌다는 세상이 기실 더 엉망으로 헝클어지는 것이나 아닌지. 그런 가운데 우리의 봄날은 또 가고.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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