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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구 최고야!] 도봉 녹색공간 ‘비비추 능선’의 할미꽃

    [우리구 최고야!] 도봉 녹색공간 ‘비비추 능선’의 할미꽃

    “할미꽃! 도대체 할미꽃이 뭐야.” 홈지기 언니가 닉네임을 당장 바꾸라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안개꽃, 아네모네, 이쁜공주 등 깜찍하고 발랄한 이름을 지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끌린다. 언니는 다들 젊어지려고 예쁜 이름을 찾느라고 난리들인데 하필이면 늙음을 자초하는 할미꽃이냐며 불평을 한다. 그러나 나는 할미꽃이 좋다. 할미꽃은 고향의 꽃이다. 그 꽃잎 속의 오솔길을 따라가노라면, 초가집과 기와집 사이의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하던 친구들이 보인다. 흰 눈이 내린 겨울밤 할아버지가 단종애사를 창(唱)으로 부르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기도 한다. 할미꽃은 할머니의 무명 행주치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른 봄 보송보송한 솜털로 뽀샤시하게 화장하고 보일듯 말듯 수줍게 고개 숙여 피는 새악시 같은 꽃, 그 충격적인 아름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어느 외로운 이의 무덤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꽃. 나는 그 꽃의 고운 마음 씀씀이 때문에 더욱 애착이가며 정겹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충격줄 만큼 아름다운 ‘고향의 꽃´ 지금 우리 주변에는 할미꽃이 희귀종이 되어 가고 있다는 슬픈 소식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무분별하게 캐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며칠 전 도서관 가는 길에서 ‘비비추 능선’이라는 작은 오솔길을 발견하였다. 그곳은 사라져가는 우리 야생화를 심어서 자연친화적으로 동산을 만들고 있었다. 푯말에는 들꽃 동산은 자라나는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의 좋은 체험학습장이 될 것이며 도봉구 창1동 동사무소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나는 꽃을 심고 있는 아저씨께 “고생이 많으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니 “풀에서도 산소가 나와요. 산소가…”하는데 풀냄새와 흙냄새가 향긋하게 풍겨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비추, 금낭화, 원추리, 초롱꽃, 꽈리, 둥굴레, 노루오줌, 할미꽃, 꽃범의 꼬리 등 이름만 들어도 예쁜 꽃들이 오목조목 심어져 있었다. ●또다시 마구잡이로 캐 가면 어쩌나 ‘비비추 능선’에 할미꽃이 있다니 나는 너무 반가워 이리저리 살펴 보았지만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몇 번을 산을 오르내리다 겨우 찾았을 때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사람들이 또 무분별하게 채취해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할미꽃이 꽃은 지고 호∼ 불면 날아갈 듯한 솜털이 할머니의 흰머리마냥 바람결에 흔들린다. 나는 그곳에서 내 고향 들녘을 떠올려 보았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사금파리로 소꿉놀이 하던 그 곳에도 할미꽃이 정겹게 피어 있었지. 나는 할미꽃 옆에 앉아서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세 딸들의 집을 찾아가는 할머니를 그려 본다. 두 딸들에게 문전박대당하고 셋째딸네 집을 찾아가다 쓰러진 곳에서 피어난 꽃. 삭막해져 가는 우리들 가슴에 효(孝)를 생각하고 반성하게 하는 꽃, 할미꽃이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할미꽃은 노고초(老姑草),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하며 뿌리는 해열, 소염, 이질 등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원추리는 망우초(忘憂草)로 모든 시름을 잊게 해 주며 주로 뜰안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 꽃은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우리 꽃을 이름 지어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조팝나무꽃은 북극으로 가는 기차 도란도란 꽃, 은방울꽃은 성모마리아의 눈물, 엄지공주꽃, 할미꽃은 고개 숙였다고 스탠드 꽃이라고 한다. 도심의 근처에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비비추 능선’이 우리의 꿈 동산이 되고 청라언덕이 되길 기원해 본다. 오늘 비비추 능선에 핀 할미꽃은 명심보감 한 구절을 떠 올리게 한다. ‘一日淸閑(일일청한)이면 一日仙(일일선)이니라.’ 하룻동안 마음이 깨끗하고 한가하면 하룻동안 신선이니라. 정희숙 창1동 주민
  • 儒林(620)-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3)

    儒林(620)-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3)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3) 퇴계가 특히 이 돌우물을 사랑하고, 그 샘물의 맛을 ‘달고 맑다.’고 극찬하고,‘서로의 마음을 얻었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맹자의 말처럼 자신의 학문이 아홉 길이나 팠으나 아직 수맥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남은 인생을 바로 이 돌우물이 위치한 도산서원에서 제자들을 가리키며 진리의 근원에 이를 때까지 여생을 거경 궁리할 것을 결심하는 단심가(丹心歌)였던 것이다. 분황(焚黃). 조선시대에 있었던 사후의식으로 죽은 사람에게 벼슬이 추증되면 조정에서 추증된 관직의 사령장과 황색종이에 쓴 부본(副本)을 주는데, 이를 받은 사람은 추증된 선조에게 고하고 황색종이 부분을 그 자리에서 태우는 의식을 분황이라고 하였다. 퇴계는 이미 59세의 나이 때 이 분황의식을 치렀었다. 넷째형 해(瀣)가 사화에 휩쓸려 유배 도중에 장독으로 급사하게 되었으며, 훗날 조정으로부터 억울하게 죽어 사후에 벼슬을 받게 되었으므로 퇴계는 자신이 직접 분황의 제사를 올려 주었던 것이다. 그 때 퇴계는 가장 사랑하였던 형 온계의 무덤에서 조정에서부터 내려온 황색부본을 태우며 울면서 생각하였다. 이 종잇조각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죽은 후에 ‘정민공’이란 시호가 내려지고 추증으로 ‘대사헌감사’란 벼슬이 내려진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퇴계가 67세 때 명종이 승하하고 인산이 끝나기도 전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여론이 분분하였음에도 끝내 이를 물리치고 서당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이미 자신에게 내려지는 벼슬이 죽은 사람에 내려지는 분황에 불가하다는 자의식 때문이며, 여생동안 진리의 원천인 수맥에 도달하기까지 계속 한 우물을 파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남아 있는 도산서원 앞마당에 있는 돌우물,‘열정’은 퇴계의 마음을 닦는 심경(心鏡)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돌우물 곁에 내려진 두레박을 천천히 들어올려 우물 속으로 집어 던졌다. 첨벙― 바위틈을 뚫고 지표로 솟아오른 샘물의 깊이는 아득하였다. 두레박 가득 물을 담은 노인은 끈을 잡아 당겼다. 이윽고 노인은 두레박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갈증이 해소된 듯 남은 두레박의 물로 손과 얼굴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서당에서부터 인기척이 있었다. 갓 쓴 유생 하나가 서당 쪽으로부터 물동이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마실 물을 떠갈 요량 같았다. 우물가에서 더러워진 손과 얼굴을 씻던 노인은 화들짝 놀라서 물러서며 물어 말하였다. “여기가 도산서당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만.” “퇴계 선생님이 계시오신 서당이 맞습니까.” “그렇소이다.” 유생은 의심쩍은 눈빛으로 남루한 차림의 노인을 쳐다보면서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 춤으로 보는 고구려인의 기상

    춤으로 보는 고구려인의 기상

    고구려식 주름치마를 입고 허리에 방울을 달고 추는 ‘요령고무’, 장구를 손에 들고 하늘을 나는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요고’, 높은 목발을 신고 재주를 부리는 ‘목발춤’, 고구려의 상징인 검은색 조복을 입은 선인이 추어보이는 ‘조의선인의 춤’, 아주 작은 북을 끌어안고 추는 ‘손북춤’, 고구려 건국왕 주몽의 아내 소서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서노의 춤’…. 국수호디딤무용단이 9,10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일 고구려 춤들이다.‘고구려’라 이름 붙여진 이번 춤극 무대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복식과 춤사위 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 고구려인들의 웅대한 기상을 그대로 전해준다.1998년 신라춤 ‘천마총의 비밀’,1999년 백제춤 ‘그 새벽의 땅’을 선보인 안무가 국수호의 삼국시대 춤 재현 시리즈 완결판.‘몸으로 1500년 전 춤 무덤을 열며’라는 부제가 붙었다. 고구려 벽화속 장구를 재현해 추는 기악천무, 민속춤인 발구름춤, 종교적 의식무 등 다채로운 춤판을 펼친다. 고구려의 깃털 모양 절풍모, 긴 소매의 고색창연한 의상, 흰색 무용신 등이 눈길을 끈다.63명의 국수호디딤무용단원들이 출연한다.1만∼10만원.(02)421-479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기고] 호국 보훈의 달에/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그것을 우리는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세계에는 그렇게 해서 많은 불가사의가 회자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왕궁이나 탑, 무덤들. 그 중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이 세계 불가사의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이 궁은 젊은 나이에 죽은 왕비를 못 잊어 왕이 22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세운 묘지라 한다. 이후 왕은 아들의 반역으로 왕위를 빼앗기고는 타지마할이 바라보이는 건너편 왕궁에 갇혀서 아내의 묘를 바라보면서 눈물짓는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불멸의 신비로운 궁전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왕비에 대한 시공을 초월한 그리움, 영원한 삶에 대한 희구가 아니었을까.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선열들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 지킨 것은, 시대와 생명을 초월해 조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보인 것으로, 이러한 살신성인의 정신이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겠는가. 타인과 국가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며, 자기 희생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인류사회는 개선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안위를 접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의로운 삶이 모여 국가적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미래의 국가발전을 위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하겠다. 철기 이범석 장군은 우둥불에서 ‘조국이라는 글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 위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다시 없으리라 본다.’고 하였다.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금 확인케 하는 달이다. 우리가 지금 세계 경제대국의 위치에서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과 편안함은 피어린 항일투쟁으로 나라를 찾은 선열들, 가까이는 6·25전쟁의 참화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낸 호국영령들의 의로운 삶이 바탕이 되었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보훈의 참뜻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응분의 예우를 통해 국민의 애국심을 키워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공동체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일에 있다.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공익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국력이 결집되고 국가적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훈은 국민을 통합시켜 국가를 성장시켜 나가는 열쇠인 것이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토요일 아침에] 소유권과 관리권 사이에서/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북관대첩비는 일제시대 때 반출되어 그 유명한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가 일본과 한국의 두 노스님의 관심과 열정에 힘입어 100여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남한을 거쳐 북한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를 지켜보면서 유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의미가 있다는 원론에 동의하면서도 새삼 관리와 소유의 경계선이 어딘가를 되묻게 한다. 지난 5월 한달동안 국립박물관의 기획전인 ‘사리함(舍利函)’전시회를 접한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절집의 소유물임이 분명한데 어떤 경로를 밟아 박물관의 관리를 받으면서 국가의 소유 아닌 소유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소유자와 관리자의 한계마저 모호해졌다. 경천사지 10층석탑을 용산의 신축 박물관에 복원하면서 탑이 가지는 예배대상으로서의 종교적 의미는 무시한 채 사리공(舍利孔)에 사리도 없이 ‘이건기(移建記)’만 넣겠다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리함을 맡기기에는 원소유자로서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다. 마치 남의 무덤 앞에 있는 무인석을 뽑아다가 정원장식물로 쓰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 의미는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미적 조형물로만 인식하는 의식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문화재 관리자가 원소유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계속 관리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소유자의 관리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그건 유물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극히 프로다운 생각이니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그동안 유물 관리비용을 적지 않게 투자하다 보니 내 소유물이 된 양 착각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관리하다 보니 거기에 묻은 손때와 정성 그리고 유물과의 교감으로 인한 집착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원소유자가 그동안의 복원관리비용을 모두 지불하겠다고 해도 돌려받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최근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의 반환소식을 접하면서 또 소유와 관리의 경계선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역으로 불교계가 관리자의 입장에 속하는 문화재이다. 월정사 경내의 영감사는 오대산 사고(史庫)를 지키기 위하여 지어진 암자이다. 임진란 이후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될 때가지 몇백년을 사찰에서 관리해 왔다. 보존을 위해 시설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승군까지 조직해 외곽을 지켰다. 물론 소유자는 조선왕조였다. 왕조가 망한 후 대리 관리를 자처하며 가져갔으나 결국 일본에서 대지진을 만나 거의 소실되었다. 마침 그 무렵 대출된(빌려간 연구자가 누구인지 그 후손에게라도 감사패를 드려야 할 것 같다.) 74책만이 무사하여 27권은 일제말기 경성제국대학으로 이미 돌아온 상태였고, 나머지 43권은 도쿄대학에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를 알고서 오대산 월정사 스님네들이 반환을 위하여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기존 관리자인 사찰이 아니라 서울대 규장각으로 반환된다고 한다. 도쿄대학이 관리자와 소유자 사이에서 반환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를 줄타기하다가 나름대로 고심하여 내린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규장각에는 같은 종류의 완질본이 남아있다. 물론 이본(異本)이니 똑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따라서 산질(散帙)인 오대산본을 부분적으로 중첩하여 가지고 있는 것은 ‘소유’라는 욕심 충족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기존 27권과 이번에 돌아오는 43권을 포함한 오대산본 74권 모두를 원소재지에 두는 것도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다. 왜 북관대첩비가 휴전선을 넘어 자기 자리로 가야 했는지 우리는 그 도리를 알아야 한다. 현재 오대산에는 두 채의 텅빈 사고(史庫)가 복원되어 있다. 건물은 있는데 내용물이 전혀 없는 것은 사리없는 탑을 보는 것만큼이나 허전하다. 그리고 이끼 낀 석물들이 도굴로 실려 나가버린 오래된 큰무덤을 바라보는 것처럼 안쓰럽기까지 하다. 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5·31 이후] CEO출신 무덤 된 ‘5·31’

    [5·31 이후] CEO출신 무덤 된 ‘5·31’

    5·31 지방선거에선 삼성과 현대 등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경기지사 선거에 도전했다가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쓴맛을 본 열린우리당 진대제 후보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이다. 삼성반도체를 세계 톱으로 올려놓은 주역인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뒤 이번 선거에 차출됐다. 진 후보는 여론조사 지지율에 있어서 출발부터 김 후보에게 크게 뒤진 상황에서 막판까지 분전했지만 거의 두배나 되는 지지율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밑바닥을 헤매는 열린우리당 지지율 때문에 “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뽑아달라. 경제도지사가 되겠다.”며 ‘인물론’을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한나라당 후보로 제주지사에 도전했다 낙마한 현명관 후보는 삼성물산 회장 출신이다.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김태환 현 지사에게 초반 크게 뒤지던 판세를 극복하고 박빙의 승부를 펼쳤지만 간발의 차이로 석패했다. 그는 4월 말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에 11%P 뒤졌지만 김 후보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려 했다가 거부당하는 사태를 맞은 뒤 지지율 격차를 점차 좁혀 나갔다. 특히 선거 하루 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제주도를 방문하면서 ‘판세가 뒤집혔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남제주 출신이지만 제주와 관련 없는 일을 해와 ‘뭍 사람’으로 인식됐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역 민심을 얻지도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캐피탈 회장 등을 역임한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예선전격인 당내 경선에서 강금실 후보에게 패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실물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막판까지 분전했고 당 안팎에서 “당내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후보가 나오자 “강금실을 상대하기 위한 맞춤형 후보인 오세훈을 이기려면 나를 전략적으로 선택해달라.”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전세를 뒤엎지는 못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우표가 되려는 그림전 6월11일까지 서울 목동 SBS 아트리움.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 아날로그의 따뜻함을 되찾자는 취지의 기획전. 김을 임국 노재운 정은영 이승애 백지희 박병춘 손동현 정연두 등 현대 미술작가 20명이 우표 제작을 위해 만든 작품을 원본 사이즈로 선보인다.(02)2113-3458. ■ 장원경 개인전 31일부터 6월6일까지 서울 인사동 학고재. 장신구에서 환경조형물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탈 영토화’를 추구하며 제작된 조각과 오브제 40여점을 전시한다. 의식과 무의식, 음과 양 등 삶의 양 극단적 요소를 조형화했다.(02)739-4937. ■ 로랑스 파보리 6월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된 대상들을 작품에 담아온 로랑스 파보리의 국내 첫 개인전. 작가 자신과 지인들이 간직해온 실제 인형을 소재로 한 회화, 조각, 사진 등을 보여준다.(02)3217-0288. ●어린이 ■ 이중섭 그림속 이야기 18일까지 화∼일 2시·4시, 수 11시·2시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화가 이중섭의 그림이 무대에서 인형으로, 영상으로, 움직임으로 되살아난다.(02)382-5477. ●클래식 ■ 안트리오 내한 공연 8일 서울 세종문화화관 대극장 오후 7시30분. 루시아(피아노) 안젤라(바이올린) 마리아(첼로) 세 명으로 구성된 피아오 3중주단. 한국 출신 미국 보컬리스트 수지 서도 게스트로 출연. ■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 6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3시(6월3일)·7시30분, 일요일 오후 4시(월요일 공연없음). ●연극 ■ 악당의 조건 1일~7월9일 소극장 축제. 악당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소시민의 좌절을 극사실주의와 판타지적 요소를 뒤섞은 독특한 감각의 드라마로 녹여낸다.‘차력사와 아코디언’으로 주목받은 극작가 장우재와 ‘웃어라 무덤아’의 연출가 김광보의 앙상블만으로도 믿음직한 작품. 윤영걸 김지성 박민규 출연. 화∼금 7시30분, 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1만 2000∼2만원.1544-1555. ■ 모래여자 2일∼7월30일 화∼금 8시, 토 4시·8시, 일 2시·6시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 지하 20m의 모래 늪에 갇힌 사람들을 통해 일상에 대한 관념을 블랙 유머로 풀어낸다. 일본 작가 아베 고보의 소설이 원작. 고선웅 연출, 이인철 하덕성 김대희 등 출연.1만 5000∼3만원.(02)3676-7845. ■ 귀족놀이 3∼11일 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4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몰리에르의 희곡 ‘귀족수업’을 국립극단이 한국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했다. 바로크 음악을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등 동서양 문화의 조화를 꾀했다. 에릭 비니에 연출, 이상직 조은경 등 출연.2만∼3만원.(02)2280-4115. ●뮤지컬 ■ 아이 러브 유 6월18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18개월간 520회 공연,25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남경주, 정성화 등 초연 멤버들이 뭉쳤다. 남경주는 단 두번을 제외한 전 공연에 참여, 단일 공연 최장 출연 기록을 갖게 됐다.3주간의 서울 공연 이후 지방 10개 도시 투어에 들어간다. 화∼금 8시, 토 4시·7시30분, 일 3시·6시30분 2만∼4만 5000원.(02)501-7888. ■ 미스터 마우스 무기한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3시·6시 라이브극장. 천재가 된 바보는 행복할까. 현대과학의 힘으로 하루 아침에 천재가 된 인후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이현규 연출, 서범석 박정환 등 출연.2만 5000∼3만원.(02)747-2070. ■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7월17일까지 화∼금 8시, 토·일 3시·6시 청담동 유시어터.2001년 첫 공연 이후 유료 관객 40만명을 모은 흥행작. 백설공주를 짝사랑하는 반달이의 순수한 마음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박승걸 작·연출, 최인경 구윤정 등 출연.2만 5000∼3만원.(02)515-0589.
  • ‘北 발견’ 발해 고분벽화 첫 공개

    지난 2004년 9월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 금성리에서 발견된 발해(698∼926)시기 고분벽화가 처음 공개됐다. 금성리고분은 안길(널길)과 장방형인 주검칸(널방)으로 구성된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돌칸흙무덤)으로, 이 고분의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릎 아래 일부만 모습이 남아 있지만 발해시대 복식 이해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발해 복식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민지(미국 거주)씨가 국내에서는 접근이 차단된 북한 웹사이트 ‘내나라’에 게재된 자료를 확인, 지난 27일 공개한 것이다. 이 고분은 원래 주검칸 벽과 천장에 회를 바른 뒤 동·서·북쪽 벽면에 벽화를 그렸지만, 발견 당시 북쪽 벽면 아랫부분에만 약간의 회벽과 함께 벽화가 남아 있었다. 벽화 속 인물 그림은 흰 각반을 차고 검은 신발을 신은 사람의 다리를 표현했다. 발해시대 벽화고분은 지금까지 1980년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에서 발견된 정효 공주묘와 91년 발해 수도였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상경성(上京城) 부근에서 확인된 싼링둔(三靈屯) 2호분이 학계에 보고돼 있으나, 후자는 실물사진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금성리 벽화고분은 북한에서 처음 발견된 발해 벽화고분인 셈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월드컵 개최도시를 가다

    월드컵 개최도시를 가다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여행객들의 마음 또한 설레기 마련이다. 혹시 독일이나 유럽 여행 계획이 있다면 우리 축구팀 경기가 열리는 곳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일내의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하노버 등으로 간다면 재미가 열배에 달할 것이다. 축구도 보고 관광도 하고…. 우리팀 경기가 열리는 도시 주변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많은 박물관과 공원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지난 2002년 4강신화를 재현할 역사의 현장으로 함께 떠나 보자.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도움말 엔투어유럽팀장 정명화(www.ntour.co.kr) # 독일의 심장, 프랑크푸르트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보다 세계적으로 더 알려진 도시가 프랑크푸르트. 유럽 금융의 중심지라는 의미로 ‘방크푸르트’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독일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으며, 금융과 산업 등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오는 6월13일 오후 3시부터 아프리카의 강호 ‘토고’와 물러설 수 없는 경기가 열린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전 세계 축구 팬들과 모여 ‘파이팅 코리아’를 연호하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매력에 빠져 보자. 대부분의 독일 도시, 아니 유럽 도시들이 그렇듯 프랑크푸르트도 유적지가 구시가에 잘 보존되어 있으며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크푸르트 관광의 출발점은 뢰머광장(Romerberg). 동화 속의 중세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층진 지붕으로 독특하게 지어진 ‘구 시청’과 과자로 만든 집들 같은 ‘오스트차일레’, 그리고 ‘정의의 분수’가 아름답다. ‘역사박물관’, 성 니콜라스(산타클로스) 조각상과 40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카리용(편종)으로 유명한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1562년부터 1792년까지 신성 로마제국 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카이저 돔(Kaiserdom, 대성당)’ 등도 둘러 보자.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괴테 집은 뢰머광장 북서쪽에 있으며 옆 건물에는 그가 사용했던 물품들과 작품들이 전시된 소박한 박물관이 붙어 있다. 이 외에도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오페라 하우스’, 프랑크푸르트의 상징인 독수리가 부조된 ‘에셴하이머 탑(Eschenheimer Turm)’,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결합된 ‘성 레온하르트 교회’, 고대에서부터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 ‘리비크 하우스(Liebig-Haus)’ 등도 놓치면 안 된다. # 종교와 교육, 예술의 중심지인 라이프치히 고도(古都) 라이프치히.1409년에 이미 대학이 설립된 문예의 도시로 오랫동안 독일의 출판 및 도서관 문화의 중심지였다. 또한 동서 분단 시절부터 동부 독일에서 베를린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프랑크푸르트, 하노버와 함께 3대 박람회가 열린다. 바로 여기서 6월19일 저녁 9시 아트사커군단인 프랑스와 일전을 치른다. 맛있는 독일 맥주 몇 캔을 사서 전광판이 있는 거리로 가보자. 경기가 저녁이라 라이프치히는 낮에 한번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발달된 철도문화를 가진 유럽에서도 가장 큰 기차역인 라이프치히의 중앙역(1915년에 지었음). 수백 개의 기차 레일과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에 놀라게 된다. 역 바로 앞의 트램 정거장 건너편 ‘라이프치히 정보센터’ 오른쪽 길을 따라 구시가 산책을 떠나자. 길 왼편으로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이 ‘니콜라이 교회’다. 이곳은 16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내부로도 유명하지만 구 동독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부드러운 혁명’의 모임 장소로 사용된 역사적인 곳이다. 니콜라이 교회로 들어선 골목으로 조금만 더 걸으면 라이프치히의 중심광장(Marktplatz)이 나온다. 이 광장에는 독일 시청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구 시청사’와 라이프치히 법대생이었던 괴테의 기념비가 서 있다. 중앙광장에서 남서쪽에 있는 토마스 교회(Thomaskirche)는 작고 볼품없지만 바로 이곳이 독일이 낳은 위대한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덤이 있는 곳. 그는 이 교회에서 1723년부터 1750년까지 27년 동안 성 토마스 소년 성가대를 이끌었다. 또한 교회 맞은편에는 ‘바흐 박물관’이 있다. 라이프치히를 이미 보았다면 프라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드레스덴’이나 역사적·철학적으로 의미 깊은 ‘바이마르’를 당일치기로 가보는 것도 좋다. # 동화와 전설이 깃든 하노버 독일 북부의 하노버는 영국느낌이 나는 지역이다. 하노버의 선제후(중세 독일에서 황제 선거의 자격을 가진 제후)의 장남이 1714년 영국의 왕좌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후 산업이 발달하면서 물류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하노버에서 6월24일 저녁 9시에 조별 예선의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와 경기가 열린다. 저녁 9시이므로 하노버 중앙역 앞의 ‘정보 센터’에서 무료 관광지도를 구해 여행을 떠나면 된다. 하노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건축 대가인 ‘라베스’가 설계한 세련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오페라 하우스다.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걸으면 하노버가 자랑하는 ‘니더작센 주립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회화 작품들과 플랑드르 화가들을 비롯하여 낭만파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대적으로 구분된 ‘슈프렝겔 박물관(Sprengel Museum)’에는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하이라이트는 단연 피카소와 박스 베크만의 작품들이다. 인공호수를 따라 다시 북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중앙에 둥근 돔으로 바로크 양식의 궁전처럼 지어진 신 시청사, 라이네 강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17세기에 지어진 ‘라이네 성(Leineschloss)’이 자리잡고 있다. 성 북쪽으로는 하노버의 중심광장이 있으며 이곳에는 붉은 벽돌 고딕 양식과 독창적인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광장 교회(Marktkirche)’가 있다. 중앙광장 주변에는 옛 하노버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목조가옥들과 ‘발호프(Ballhof)’라는 시민들을 위한 운동장 등 유럽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곳이 관광객을 맞는다.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밀양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밀양길

    경남 양산시 원동면 가야진사 앞을 지나온 옛길은 밀양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작원관 터부터 밀양 땅이다. 이곳을 지나 낙동강을 끼고 가다 삼랑진과 무흘역을 통과해 밀양시내에 들어선다. 그러나 밀양 땅은 쉽게 기자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밀양 땅의 유일한 옛길 출입로인 작원관터는 폭이 불과 70여㎝. 겨우 사람 한명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왼쪽은 절벽이고 오른쪽은 경부선 철도이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고심 끝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사람 진입을 막기 위해 처놓은 철조망을 뚫고 작원관터를 향해 갔다.5분 간격으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열차 때문에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50m 전방까지는 다가갔으나 더 이상은 어려웠다. 작원관터에서 500m쯤 올라가면 작원마을이 있다. 과거에는 꽤 큰 부락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0여가구만이 살고 있다. 작원관에서 삼랑진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길로 포장돼 있다. ●작원관터 옛길 폭 70㎝로 좁아져 이 길 중간에는 밀양시 안태리에서 흘러 내리는 안태천을 건너는 3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현재는 돌다리 흔적만 있다. 동행한 밀양시립박물관 김재학(47)씨가 이 다리에 담긴 슬픈 사연을 들려줬다. 첫눈에 한 여인에게 반한 스님이 이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한 여인은 스님에게 돌로 다리 놓기 시합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먼저 다리 놓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시합이었다. 시합 결과 스님이 져 물에 빠져 죽자 처녀도 뒤따라 물에 뛰어들었다는 전설이다. 이때 놓인 다리가 작원대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다리는 작원석교라고도 불린다. 삼랑진은 낙동강과 밀양강, 밀물과 썰물이 합쳐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김해 방면으로 나가는 나룻목으로도 번창했으며 지금은 경부선과 경전선의 분기점이다. 토박이라는 김길수(67)씨는 “과거 삼랑진은 경남 일대에서는 가장 큰 장이 섰다. 현재도 4일과 9일 5일장이 서지만 규모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삼랑진읍 네거리에서 옛길은 두갈래로 갈라진다. 우회전해 무흘역을 가는 것이 길손들이 많이 이용했던 길이다. 그러나 평민들이나 홍수가 나서 길이 침수되었을 때에는 삼랑진네거리에서 좌회전해 뒤기미 마을로 거쳐 무흘역에 도착한다. 김재학씨는 “양반들은 가장 빠른 직선 길을 이용했지만 평민들은 길에서 양반들에게 머리 숙이기 싫어 우회길을 선호했다.”며 “옛길에는 평민들의 고통과 눈물이 담겨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전리의 미전고개가 무흘역이 있었던 자리다. 옛날에 역은 역마(驛馬)를 갈아타는 곳이었다. 사람과 말이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의 구실도 하였으며,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현재의 역은 철도라는 특정한 교통수단 용어로 축소되었다. ●“양반에 머리 숙이기 싫어” 평민들 우회길로 무흘역 터에는 말을 매두곤 했던 500여년 된 포구나무가 마을에 있었으나 40여년전 어느 목사에 의해 베어져 없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흘역에서 밀양으로 가는 옛길은 1022번 지방도를 가로질러 무월터널 위쪽 산등성이를 타고 무월터널 맞은 편에 다다른 뒤 다시 경부선 철도좌측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을 따라 곧 바로 밀양시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양시내로 들어서는 길손은 먼저 밀양강을 건너야 했다. 밀양강은 상시범람해 현재 번화가인 삼문동 일대는 조선시대 늪지대나 다름 없었다. 나룻배가 밀양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인 시절에는 영남루 밑에 큰 포구나무에 배를 묶었다. 주변 바위들은 선착장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인 1910년에야 여러 척의 배를 놓아 만든 배다리를 띄워 왕래했다.1935년 콘크리트 다리가 가설됐으며 현재의 밀양교는 1995년 이 다리를 개수한 것이다. 밀양시청 이인수 공보계장은 “현재 두란노기독서점과 내일동사무소 자리가 밀양관아였다.”고 설명했다. 1479년 조선 성종 10년에 축조된 밀양읍성은 현재 일부가 복원돼 있다. 또 아동산 망루 아래에서 무봉사까지 300m, 아동산과 밀양여고 뒷산 아북산 정상까지 2.2㎞ 등에서 옛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기생 운심이 묘 벌초하면 소원 이루어진다” 밀양읍성을 벗어난 옛길은 밀양향교를 지나 제사고개를 넘어간다. 제사고개는 ‘만주에서 죽은 아버지의 혼이 이 지점에서 닭울음 소리를 듣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들이 제사장소를 이 곳으로 옮긴 데서 유래됐다. 제사고개에서 기회송림과 금곡마을을 지나면 신안마을이 나온다. 신안마을 500m 위에는 바위절벽이 두갈래로 움푹 팬 자리에 조그마한 무덤이 하나 있다. 사모하던 한 관리를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이곳에 묻힌 기생 운심이의 묘다.8월초 이 묘를 벌초하면 한가지의 소원은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퍼져 이맘 때면 벌초꾼들로 붐빈다. 옛길은 현재의 상동교인 상동나루와 구역마을 관마을, 유천을 지나 청도로 넘어간다. 글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왜적 침공 방어하던 요새지 작원관은 경북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옛길의 2대 관문 가운데 하나다. 동래에서 한양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작원나루로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도 이곳에서 검문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었다. 숙박시설인 역원의 기능도 했다. 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새지로 고려 고종때 창건됐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부사 박진이 이곳을 통해 침범해 오던 소서행장(小西行長·괘시유키나가)의 군대를 막기 위해 제일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 항전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박진은 700여명의 군사로 1만 8700여명의 소서행장 정예부대와 맞서 하루 이상 전투를 벌였다. 박진 군사의 활약으로 조선 군대는 전열정비에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곳 일대 옛길은 황산잔도만큼 험하다는 것이 동국여지승람 작원조의 기록이다. 물금취수장 부근에 있는 황산잔도는 황산장 주막에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과거보러 가던 옛 선비들이 무수히 빠져 죽을 만큼 험하기 그지 없었다. 일제시대 때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작원관은 인근 50m 옆으로 옮겼고 1923년 낙동강 대홍수 때 유실되었다. 그동안 비만 설치돼 있었으나 밀양시가 당시 있었던 곳에서 1㎞쯤 떨어진 삼랑진읍 검세리 산101번지에 지난해 12월 복원했다. 모두 25억원을 들여 작원관 이외 비각과 충혼탑 등이 들어섰다. 작원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두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때 어느 임금이 행차를 위해 이곳 나루를 건넜을 때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수많은 까치들이 지저귀며 일행을 맞아 유래됐다는 설과 부왕과 함께 종군한 백제 공주가 신라 진영을 교란하기 위해 이곳에 날아와 앉았다는 유래가 있다.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밀양가면 웅어회·돼지국밥 꼭 드이소 밀양에 가면 2가지 음식은 꼭 먹어야 한다. 웅어회와 돼지국밥이다. 이곳에서 ‘보리누루미´라고도 불리는 웅어는 갈치와 비슷한 은빛을 띤 바다 생선이다. 전어와 맛이 비슷한 웅어는 산란철인 5월말에 낙동강으로 올라온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막걸리로 씻는 것이 밀양 웅어회의 특징이다. 전어는 조금 무르지만 웅어는 부드럽고 고소하다. 묵은 김치에 웅어회를 곁들여 먹으면 맛을 더해 준다. 약간의 군내가 기름진 맛을 없애줘 개운하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은 여행자의 음식이다. 열을 식히고 피로회복에도 좋다. 또 먹기 쉽고 값이 싸 주머니 걱정을 덜어준다. 막걸리 한잔이 생각 나도 별도로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된다. 국밥에 있는 고기가 훌륭한 안주다. 옛길을 걸은 나그네는 밀양에서 꼭 돼지국밥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밀양의 돼지국밥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밀양 터미널 앞 단골집은 3대에 걸쳐 40여년 동안 돼지국밥을 팔고 있다. 이 식당의 특징은 돼지국밥에 김치를 넣는다는 것이다. 식당 이름과 같이 단골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등 돼지국밥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화이트칼라 계층이 다수이다.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오늘의 눈] 고분, 그대로 잠기게 할 것인가/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17일 베이징에서 중국 쑨자정(孫家正) 문화부장을 만났다. 온갖 좋은 얘기가 오갔는데, 최근 압록강 윈펑(雲峰)댐 수몰지구에서 발견된 2000여기의 고분에 관한 대화는 없었다고 한다. 김 장관은 특파원들과 만남에서 “민감한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야죠. 처음 만났는데…”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김하중 주중 대사와도 상의를 했다.”면서 “정부가 제기해야 할 문제인지, 민간 차원에서 할 얘기인지, 또 교류·만남의 자리에서 꺼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의 발언은 2004년 양국간 합의 사항도 염두에 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 뒤 양국은 ‘정치문제화 방지’를 약속했다. 게다가 “엄격히 말해 문화재는 문화재청 소관이지 문화부의 일은 아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뒤집어 보면, 고분 얘기를 들어야 할 중국쪽 인사가 쑨자정 장관만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여기에 김 장관은 중국 체육총국장의 초청으로 방문하면서 쑨 장관을 만난 것이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점을 감안할 때 김 장관이 고분 얘기를 꺼내기 쉽지 않은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실리적 측면에서든 외교적으로든 거론하는 게 옳은지 여부도 쉽게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러고 나니, 고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문제는 고스란히 남게 됐다. 나중에 문화재청이 나서야 하는 건지, 외교부가 손을 들어야 하는 건지, 정리가 어려우니 총리실이 개입할 일인지 생각을 좀 해볼 일이다. 아니면 정부 차원은 부담스러우니,‘활빈단’ 같은 민간 단체가 나서야 하나. 고구려 시대의 고분이 유력해 보이니,‘고구려 재단’이 맡을 일인가. 고분들은 6월이면 다시 물속으로 ‘조용히’ 사라질 전망이다. 발견된 고분이 중국의 주장처럼 한나라 시대의 것이길 바라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일 수 있겠다. 그런데, 만약 또 다른 무덤들이 대량 발견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jj@seoul.co.kr
  • [MLB] BK ‘쿠어스필드의 수호신’

    미 프로야구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해발 1600m에 자리잡아 공기 저항이 적은 이곳에선 변화구 구사가 어렵고 공의 비거리는 평균 7.5%에서 최대 10%까지 늘어난다. 워닝트랙에서 잡힐 수 있는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해 투수로선 죽을 맛이다. 하지만 김병현(27·콜로라도)은 유독 쿠어스필드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항상 타자를 공격하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선다.”는 김병현은 지난해 홈구장에서 프랜차이즈 사상 세번째로 낮은 4.50의 빼어난(?) 방어율을 남겼다. 시즌 방어율인 4.86보다 되레 낮았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17일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LA 다저스전에 선발등판한 김병현은 7이닝 동안 올시즌 최소 피안타인 4안타 1실점으로 시즌 2승(1패)째를 낚았다. 김병현은 5-1로 앞선 8회 마운드를 넘겼고 호세 메사와 스콧 도맨이 1이닝씩을 깔끔히 막아 김병현의 승리를 지켰다. 볼넷을 5개 내줄 만큼 초반에 흔들렸지만 위기관리능력과 동료들의 도움에 힘입어 방어율도 5.89에서 4.62까지 끌어내렸다. 지난해 9월4일 이후 8개월여만에 홈구장 승리. 투구수 102개 가운데 스트라이크는 66개였고, 삼진 5개를 보태 개인통산 600탈삼진에 3개를 남겨뒀다. 출발은 끔찍했다. 톱타자 라파엘 퍼칼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도루를 허용한 김병현은 평정심을 잃었다.2번 케니 로프턴과 3번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타석에서 어이없는 폭투를 기록했고 모두 볼넷으로 출루, 무사 만루에 몰렸다. 지난 1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4와 3분의2이닝 동안 7실점했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 4번 J.D. 드류를 맞은 김병현은 볼카운트 2-0에서 안이하게 가운데에 집어넣다가 우전안타를 맞았다.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우익수 브래드 호프가 정확한 홈송구로 2루주자를 아웃시켜 한숨을 돌렸다. ‘쿠어스필드의 수호신’ 김병현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이때부터. 지난해보다 한층 성숙해진 그는 스트라이크존 하단에 걸치는 정교한 제구력을 회복, 제프 켄트와 호세 크루스 주니어를 삼진과 1루 땅볼로 돌려세웠다. 타석에선 우익수 브래드 호프가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1회 수비에서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했던 호프는 0-1로 뒤진 2회 동점 적시타를 날린 데 이어 4회 무사 1·2루에서 역전 3점홈런을 뿜어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서양신화에 더 익숙한 우리를 반성하며…

    여기, 지난 50년간 한국인의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온 노학자가 있다. 반만년 우리 신화와 전설에서 길어올린 한국인의 모습을 추적해온 석학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를 통해 한국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그가 이번에는 한국인의 맵짠 삶과 미학을 담은 한국인의 ‘한국인의 자서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써냈다. 저자는 한국인의 절박한 삶과 정신세계를 찾기 위해 전국 곳곳에 분산된 문헌들을 조사하고 지역 사람들을 만나 잊혀져가는 우리 신화와 전설을 채록했다. 마르지 않은 상상력을 통해 신화와 전설 속에 담긴 한국인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탁원한 논리와 날카로운 예지를 통해 풀어내면서, 위트와 유머를 통해 존재론적 성찰까지 유도한다. 신화와 전설의 언어(뮈토스)를 푸는 데는 몇가지 열쇠가 있다. 저자는 뮈토스를 바탕으로 주체할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글을 읽다보면 명확해지는 상징 속에서 질박한 한국인의 삶이 절로 그려진다. 혹독하고 애절한, 순박하고 해학이 넘치는 한국인의 숨결이 곳곳에 스며있는 것. 뮈토스의 세계에서 추려낸 주옥같은 상징들은 ‘어머니’로 시작해 ‘탄생’‘자라고 크고’‘사랑’‘결혼’‘세상살이’‘죽음’ 등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며 집단 자서전의 원재료 역할을 수행한다.이렇게 길어올린 상징에는 현실과 희망을 잇는 ‘영혼의 동아줄’을 찾고 싶었다는 저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상징의 세계 곳곳에 담긴 다양한 신화들은 흥미롭다. 저자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신에게 아기를 점지해 달라며 거대한 남근석에 ‘몽돌’을 비벼댄 ‘아기 빌이’를 비롯, 버려져서 영웅이 된 ‘바리데기’, 죽은 아기를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번데기무덤’ 등을 통해 열망과 사랑, 시련과 아픔, 순환론적 죽음론 등을 웅변한다. 또 우리의 첫 어머니인 물과 산을 시작으로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깊은 굴속에서 고해의 시간을 보낸 웅녀를 만난다.우리 옛 여인들의 입술신화를 넘어 선덕여왕의 ‘섹스담론’을 듣는 대목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혜안과 해학도 느껴진다. 저자는 “우리의 자서전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인의 맵고 짠 근성을 다져준 고난과 인내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단 자서전은 더 많이, 널리 쓰여지고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다.‘그리스 로마신화’나 ‘삼국지’는 잘 알면서도 정작 우리 옛이야기에는 무관심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오래된 우리 상징의 세계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고유성을 알려주려는 노력이 담겨져 있는 책.1만 2000원.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백제의 숨결 공주 공산성

    백제의 숨결 공주 공산성

    우리나라 산에는 거의 산성(山城)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를 1500년 넘게 지켜온 공산성(公山城)처럼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도 드물다. 특히 커다란 고목을 어루만지며 오솔길 모퉁이를 걸어 옛 성벽에 올라보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지난 주말 현지를 다녀왔다. 성벽 가에는 노랗고 빨간 꽃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파란 하늘로 쭉 뻗은 나무가 싱그러운 신록을 뽐내고 있었다. 파란 이끼낀 돌덩이 뒤로 푸른 비단을 풀어 헤쳐놓은 듯 도도히 흐르는 금강(錦江)이 발 아래에 있었다. 공산성은 5월이 가장 아름답다. 또한 곳곳에 백제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공주 자체가 역사박물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혹적이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찾아가는 길이 한층 더 가까워져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글 사진 공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숲길 사이로 흐르는 금강…인조의 시름 그렇게 씻었나보다 공주 시가지와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공산성(사적12호)은 공주를 들렀다면 꼭 살펴봐야 하는 곳. 여기저기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누각, 절 등이 가득해 백제의 진한 향기를 느끼기에 최고다. 또한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공주를 1500년 넘게 지켜온 공산성의 봄 풍경은 넉넉하고 싱그럽다. # 파란 금강의 물줄기와 싱그러운 신록 공주 공산성은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뺏긴 백제가 60여년간 백제의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한 이 성은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곽의 길이는 2660m.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 무렵에 1925m의 성곽을 돌로 다시 쌓았다. 산성 입구 매표소에서 금서루(錦西樓)를 향해 오른다. 머리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빨간 철쭉의 바다와 파란 하늘을 칼로 가르듯 공산성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펼쳐진다. 산을 따라 감싸돌며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산성의 고운 맵시에 기분이 좋아진다. 금서루는 공산성 4개의 성문 중 서쪽에 만든 문루이다. 금서루를 지나면 길은 세 갈래. 금강과 어우러진 공산성의 ‘자태’를 먼저 보고 싶어 왼쪽으로 성벽을 밟으며 걸었다. 성벽은 잘 정비돼 걷기에 좋았다. 성벽 가의 무성한 풀 속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노랑·빨강·하얀 야생화, 성벽을 따라 아름드리 나무들도 새순을 가득 머금고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저 앞에는 연인들이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감싸고 밀어를 속삭인다. 아마 ‘인생의 5월’을 한껏 즐기고 있으리라. 조금 올라서자 나무 사이로 파란 금강의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잠깐 벤치에 앉았다.‘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던 조선 인조도 금강의 시원한 물줄기를 내려다보았을 게다. 이젠 내리막. 아래에는 조선시대 지은 만하루(挽河樓).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강 건너의 공주 시가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만하루에 걸터앉아 금강의 물줄기처럼 끝없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만하루와 금강 사이에는 백제시대 연못터인 연지(蓮池)가 있다. 그런데 한쪽이 무너져 내려서인지 보수가 한창이다. 혹자들은 연지가 연못이 아니라 배를 대던 부두 시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멋진 풍광에 넋을 잃고 있다가 우연히 뒤를 돌아보니 정말 소박하다 못해 단출한 사찰이 보인다. 영은사. 조선 세조 때 지은 사찰로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합숙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강바람이 처마를 스치니 해맑은 풍경소리가 마음 속에 울린다. 작지만 운치 있는 사찰이다. 다시 나무가 우거진 성벽을 걸었다. 싱그러운 봄바람에 초록의 신록이 묻어난다. 이렇게 30분을 걷자 8·15광복을 기린 광복루(光復樓), 백제 동성왕 때 연회장으로 사용했던 임류각(臨流閣),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鎭南樓), 인조가 공산성에 머문 것을 기념하는 정자인 쌍수정(雙樹亭) 등을 차례로 만난다. 이렇게 쉬엄쉬엄 걷다 보니 2시간이 걸렸다. # 다양한 재미가 있는 공산성 공산성에는 주말마다 색다른 재미가 기다린다. 주말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1시간에 한차례씩 공산성 수문병 교대식이 펼쳐진다. 백제 장수와 병사들의 힘찬 외침과 왕족의 행렬 등 볼거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한 아이들이 직접 백제의 옷을 입어보는 의상체험, 전통 활쏘기와 투호놀이, 백제 문양 탁본 체험, 전통 탈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산성 곳곳에서 펼쳐져 아이들에게 인기다. 또 다른 볼거리는 저녁 8시부터 밤 12시까지 화려한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는 공산성.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가히 환상적이다. ■ 공주 관광 베스트5 # 공주 국립박물관 박물관이라고 다 눈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공주국립박물관 1층은 무령왕릉실로 꾸며졌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108종 2906점의 유물 중 묘지석과 금제관식(국보 154호), 다리작명 은제팔찌(국보 158호), 금제귀고리(국보 156호), 용과 봉황이 장식된 환두대도 등 1000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왕릉출토 유물에 대한 입체적이면서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3D 영상시스템도 재미나다. 또 2층 웅진문화실에는 웅진시대의 백제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이 지역의 주거, 분묘, 성곽 및 대외 교류 관련 자료가 전시됐다. 1층 복도에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체험장이 있다. 선사시대 돌도끼, 청동기 시대의 칼, 도끼 등을 직접 만질 수 있으며 각종 토기들을 재미난 퍼즐식으로 맞추어 볼 수 있다. 또한 찰흙이나 한지로 백제의 문양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인기다.(041)850-6361. # “백제 구경도 식후경” 공주 맛집 공주에는 소문난 맛집이 있다. 공산성 앞쪽에는 근사한 식당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 연문 오채비빔밥(041-856-0757)은 제철 나물들을 아홉번 구운 소금으로 만든 된장에 비벼 먹는데 맛이 담백해 남녀노소가 좋아한다. 또한 정갈한 반찬이 함께 나온다.6000원. 또 새이학가든(041-854-2030)의 ‘따로국밥’도 유명하다. 사골뼈와 잡뼈 등을 넣고 이틀 동안 고아 국물에 양지 사태 등을 삶아놓고 파, 마늘,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을 풀면 그 맛이 얼큰하고 담백하다.5000원. 금강변에 옛날배씨네집(041-852-7371)의 장어구이와 참게탕도 이름이 자자하다.30년이 넘게 한 곳에서 음식을 만드는 집으로 알이 꽉 찬 참게 맛이 일품이다. # 계룡산 도예촌서 분청사기축제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계룡산 자락에 멋진 예술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다름 아닌 계룡산 도예촌이다. 도예인 18명이 둥지를 틀고 철화분청사기를 만들고 있는 곳으로 마을 자체가 예술이다. 공방 지붕 꼭대기를 장식한 자전거와 돌담 위의 뻥튀기 기계, 서구풍 펜션을 닮은 공방 앞의 도자기 인형들, 비둘기 자기들로 벽면을 가득 메운 운치 있는 도예공방 등 도예가들의 개성과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설치미술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 11일부터 14일까지 계룡산분청사기축제가 열린다. 도자기 체험은 기본이고 20여명의 시인들과 도예촌 도예인들이 글짓기와 시낭송회, 창작도예전을 펼치며 작가 공방에서 테마별 작품전시, 전통 장작가마 도자기 굽기 시연, 작가가 만든 도자기에 음식 담아 나눠먹기 등 다양하고 재미난 행사도 열린다.(041)857-8811. # 공주대 ‘밝달´ 1박2일 여행상품 보통 공주는 모든 유적지가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어 개별적으로 여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들 한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 보지 못하고 유적들을 보기 때문이다. 좀 재미나게 공주를 여행하고 싶다면 올해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우수 관광 상품인 무령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참가해보자. 공주대학교 관광학부 동아리인 밝달(배달이란 말의 어원) 학생들과 함께하는 1박 2일의 여행상품이다. 직접 무령왕릉과 박물관에서 재미있는 설명을 듣고 임종 체험, 탁본 체험 등도 해보는 체험학습 여행 프로그램이다.(02)733-3900,www.hyecho.com # 무령왕릉 모형전시관 무령왕릉을 보지 않고 백제를 안다함은 어불성설이다. 무덤에서 발굴된 지석(誌石)에는 ‘사마왕(무령왕)이 서기 523년 5월에 사망,525년 8월에 왕릉에 안치되었고, 왕비는 526년 12월에 사망,529년 2월에 안치되었다.’고 쓰여 있다. 이 지석 하나가 백제문화를 신화에서 살아있는 역사로 만들었다. 수습된 유물만 108종에 2906점.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점이다. 유물들은 빛나는 백제문화의 수준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하지만 무령왕릉은 벽이 기울고 금이 가는 등 훼손이 심각해 공개 25년만인 1997년 말 영구 폐쇄됐다. 그래서 지금은 무령왕릉 모형전시관에서 그 실물을 느낄 수 있다. 무령왕릉, 인근 5·6호 무덤을 실물과 똑같이 복원해 놓았으며 절개 모형을 통해 무령왕릉 내부도 생생히 보여준다. 무령왕릉 전시관을 보고 나면 출구 쪽에서 바로 연결되는 송산리 고분군을 둘러보자. 맨 위쪽 솔밭에서 실제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의 고분군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일품이다.(041)856-0331.
  • 터키 2000년전으로의 여행

    터키 2000년전으로의 여행

    무너져 내린 돌덩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에 손을 대어보자. 느껴지는가,2000년 전의 그들의 외침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터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었던 대표적인 ‘신탁’의 성지였다. 무채색의 올리브 나무, 파란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한 바다와 하늘의 절묘한 조화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해안 도시로의 여행은 낯선 이방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에게해, 마르마라해, 흑해 그리고 지중해 사이에 기묘한 모양으로 떠있는 나라, 터키 여행은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또한 지중해를 따라 가득 들어선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과 아폴로 신전, 고대 기독교 문화의 에페소 등 세계 문명의 흔적들이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시계를 2000년 전으로 맞추어 놓고 코발트빛 바다가 펼쳐진 지중해를 따라 터키를 돌아보자. 글 사진 터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터키 서남부 해안을 달리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좁다란 해안도로가 뻗어 있는 터키의 서남부 해안을 버스로 달렸다. 따스한 봄바람에 실려오는 싱그러운 바다 내음에 기분이 들뜨기도 하고, 로마와 그리스의 위대한 문화를 칭송하듯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파도의 노랫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을 시작했다. # 진짜 코발트 블루, 이런 색이야 터키의 지중해 여행은 안탈리아에서 시작한다. 이스탄블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지중해 해안 도시로 터키 관광의 중심으로 불릴 정도로 최고급 호텔과 빌라 등 여행자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편의시설이 많다. 또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안탈리아에서 주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버스투어’는 유럽인들에게는 인기. 첫번째 목적지인 올림포스까진 이름 모를 크고 작은 해변들을 끼고 달렸다.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니 ‘김형영씨 시’가 생각난다.‘하늘과 바다가 내통하더니/넘을 수 없는 선을 하나 그었구나/나 이제 어디서 널 그리워하지.’ 낯선 땅이라서일까, 슬픔을 간직한 색 ‘블루’때문일까. 뜻모를 슬픔이 가슴을 메운다. 파란 도화지에 흰점 같은 버스는 하얀 선을 그리며 달리고 또 달린다. 올림포스 해변은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했으며 아직도 해안 절벽 위에는 집터들이 남아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도굴되어 겉모양만 남아 있는 AD2세기 오데모스 장군의 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 흔적과 담장 등이 기다린다. 또한 올림포스는 레포츠의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산과 바다, 계곡이 잘 어우러져 캠핑이나 산장에서 머물며 트레킹, 카약, 스쿠버다이빙, 암벽 등반 등을 즐긴다. 많은 산장 중에 트리하우스가 유명하다. 산타클로스로 유명한 성니콜라스 교회와 바위절벽에 굴을 파 만든 암굴 묘가 있는 미라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 게코바가 있다. 비잔틴 시대의 아름다웠던 도시가 수차례 지진으로 인해 물에 잠겼다. 그래서 지금은 산 정상에 있는 리키아인들의 무덤만 슬픔 역사를 조린다. 하지만 에메랄드빛 바다 속에는 당시의 아름다운 도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면 이젠 로마와 그리스의 거대한 문화에 취해보자. # 아폴로 신을 만나다 ‘아폴로 신전’이 터키에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게코바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리면 디딤이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 역시 그리스와 로마시대 번영을 누렸던 항구도시다. 그러나 지금 남겨진 것은 아폴로 신전이 유일하다. 아폴로 신전으로는 그리스 델포이 신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터키에도 디딤을 비롯한 아폴로 신전이 두개나 있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규모 면에서는 그리스 델포이보다 크다. 그러나 온전히 서 있는 기둥이 3개에 불과해 세상에 덜 알려졌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에 발을 디뎠다. 인간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신들의 영역은 지금 몇 번의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 신전 앞에 뒹굴며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몇 아름도 넘는 기둥에 눈을 감고 손을 대어보았다. 혹시 아폴로 신을 만날까 하고 말이다. BC6세기경에 지어진 이 신전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고위 사제만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 하늘의 계시를 듣고 그 내용을 밖에 있는 왕이나 백성들에게 전하는 그런 곳이었다. # 황홀한 로마의 도시 에게해 해안 도시 이즈미르는 오디세이로 유명한 호메로스의 고향으로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셀주크에는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에페소가 기다린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하며 로마시대에는 25만 명이 살던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다. 에페소로 들어서자 기다리는 것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신전의 기둥, 나뒹구는 대리석, 허물어진 건물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기둥 하나, 돌멩이는 모두 로마의 역사다. 특히 에페소는 기독교인이면 꼭 한번 들러보는 성지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갖은 핍박을 받으며 전도를 했던 곳이며 옥중에서 에페소 교인들에게 보냈던 편지가 바로 신약성서의 ‘에베소서’이다. 또한 사도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에 머물며 요한복음을 썼던 기독교 역사상 아주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에페소에는 없는 것이 없다. 여러 신전은 물론이고 대중들을 위한 목욕탕, 돈을 받고 운영했다는 화장실, 평민과 귀족들의 공간을 나누었던 헤라클래스가 새겨진 기둥문, 병원을 상징하는 조각, 대리석에 새겨진 ‘발’보다 작으면 미성년자로 취급해 들어 갈 수 없었던 창녀의 집, 도서관, 각종 하수도 시설 등 정말 고대 로마의 발달한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원형극장도 두개다. 귀족들이 회의를 했던 작은 것과 무려 2만 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을 위한 원형극장도 재미나다. 과학적인 설계로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뒤쪽까지 잘 들린다. 에페소에서 가장 멋있는 건물은 단연 켈수스 도서관이다. 비록 거의 다 무너져 내려 앞쪽만 간신히 건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건물의 높이가 16m나 되고 1만 2000권의 책을 가지고 있던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2000여년전 기계도 하나 없던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대한 신전과 건물들을 오직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따사로운 봄햇살이 내리쬐는 켈수스 도서관 앞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잠시 발을 멈춘다. 한쪽에서 3인조 오케스트라가 관광객을 위해 음악을 선물한다. 정말 2000년 전 그들의 삶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곳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인근 셀주크 박물관이나 에페소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 터키 여행정보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은 터키항공(02-777-7055)이 월·목·토요일 1주일에 3차례 뜬다. 현재 전세기를 띄우고 있는 대한항공(1588-2001)도 조만간 주 3회 정식 취항할 예정.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약 12시간 걸린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통화는 터키 리라인 에테르(YTL)를 쓴다. 1달러에 1.25 YTL 정도.1유로는 1.45YTL. 우리 돈으로 720원 정도. 달러와 유로 모두 통용된다. 미리 달러로 환전을 해서 출국하는 편이 좋다.
  • “차별없는 공존의 세상 노래하고 싶어”

    “차별없는 공존의 세상 노래하고 싶어”

    이들은 직장인 밴드다. 연습이나 공연을 하는 주말을 제외하면 주중에는 대부분 전기부품, 종이, 철판 공장 등에서 고된 일을 한다. 다국적 밴드이기도 하다. 쓰는 언어가 서로 다르다. 네팔, 버마, 인도네시아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공용어는 한국어. 이 땅에서 이들은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이다.‘탄압을 중단하라.’는 뜻. 특히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탄압 중단´ 의미의 스탑크랙다운 2003년 겨울 서울 태평로 성공회교회 등 여러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장기 농성을 벌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제추방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 음악을 좋아하던 몇몇 이주노동자들이 ‘특별한’ 뜻을 모았다. 노래를 통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려 나가기로 했다.‘위 러브 코리아’,‘친구여 잘 가시오’,‘희망’ 등 8곡을 담은 록 사운드 1집을 발표했고,2004년 말에는 박노해 시인 헌정 음반과 공연에 ‘손무덤’으로 참여하며 주목받았다.4인조로 출발했으나 현재 라인업은 미누(보컬·네팔) 소모뚜(기타·버마) 소띠하(베이스·〃) 꼬네이(드럼·〃) 해리(키보드·인도네시아) 등 5인조로 늘어났다. 길게는 14년, 짧게는 5년 째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다. 틈 나는 대로 이주노동자가 있는 현장이나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노래하는 게 어느새 주말 일상이 됐다. ●수익금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후원 오는 21일에는 이화동 나들목 정림마당에서 천지인 출신 민중가수 손현숙과 함께 ‘인권콘서트-밥, 자유, 평등, 평화’를 펼친다. 지난해 ‘노래마라톤’ 이후 1년여 만에 다시 만났다. 스탑크랙다운의 신곡도 선보이는 한편 다큐멘터리 ‘이 땅에서 이주노동자로 산다는 것’도 상영된다. 연영석 등이 게스트로 나와 ‘코리안 드림’을 부른다. 수익금은 이주노동자에게 자국 책을 빌려주고 지원하는 ‘일터로 찾아가는 꼬마도서관’(아시아인권문화연대)을 후원하게 된다. 이번 공연이 이주노동자와 한국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이해하는 자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스탑크랙다운 멤버들을 지난 7일 홍대 근처에서 만났다. 이들은 “각자 공동체 활동이나 고국 민주화 활동이 있으면 모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준비를 많이 하지 못한 것 같아 걱정된다.”고 슬며시 고민을 내비친다. 그래도 어떠하랴. 공연이 곧 연습이고 실전이고, 가슴 벅찬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삶 꾸밈없이 노래 무대에 오르면 욕을 먹어도, 맞아도, 다쳐도 참아야 하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노래한다. 소모뚜는 “기계 속에 묻혀 버렸던 솔직한 마음을 음악으로 꺼내놓는 거죠. 우리도 사람이고,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같은 처지 동료들에게 희망을 보듬는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스탑크랙다운 멤버들은 자신들의 공연을 본 다른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무대에 올라갈 수 있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한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이나, 한국에서 일하다 불구가 됐지만 제대로 된 재활 교육도 없이 고국으로 쫓겨 가는 장애 이주노동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손현숙은 “영어를 배우고 서구화되는 게 세계화가 아닙니다.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살고 있는 한국은 이미 세계화가 된 것과 마찬가지예요.”라면서 “편견과 차별 의식을 버리고 평화로운 공존 세상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가 아닐까요.”라고 전했다. ●원망보다 좋은기억 갖고 싶어 열악한 현실이지만 한국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미누는 “우리 노래 가운데 ‘위 러브 코리아’라는 곡이 있어요.‘한국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그런 노래를 부르냐.’고 말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있죠. 하지만 한국은 우리가 일하며 살아가며 정을 쌓은 곳이예요. 원망보다는 좋은 기억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보다 밝은 미래를 그렸다. 소모뚜가 던지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쓸모있을 때는 쓰고, 다치거나 쓸모없어지면 보내 버리고…. 독재자의 나라도 아니고 민주화가 된 나라에서 창피한 일 아닌가요?”(02)735-8035.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공직 초대석] 홍도 항로표지관리원 이상익씨

    [공직 초대석] 홍도 항로표지관리원 이상익씨

    “외로움요? 일이 많아 그럴 틈이 없습니다. 이젠 숙달되기도 했고요.” 전남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을 넘게 달리면 절해고도가 눈에 들어온다. 뭍에서 110㎞ 떨어진 곳에서 온통 기암괴석으로 몸치장을 한 섬, 홍도다. 이상익(43)씨는 이곳의 몇 안되는 공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1931년 세운 홍도 등대가 근무처다. 그런데 직함은 ‘등대지기’가 아니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등대지기로 일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더니 “등대지기는 1988년부터 쓰지 않는 말”이란 설명이 돌아왔다. 해양수산청이 아직도 ‘등대 직렬’로 공무원을 뽑고는 있지만, 공식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얀 돔 지붕을 머리에 얹은 등대는 선착장에서 내려 꼬불꼬불 가파른 산길을 400m 정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해발 89m에 자리잡은 관리소에 들어서니 갑자기 주변이 툭 터지면서 망망대해가 시원스레 펼쳐졌다. 발치 아래로 펼쳐진 부드러운 곡선의 만(灣)도 한눈에 훤히 굽어다보인다. 말그대로 절경이다. 이씨는 지난해부터 홍도등대에 근무하고 있다. 목포해양수산청 관내의 소흑산도·강사도·죽도·가사도 등을 두루 거친 뒤 7번째 근무처이다.2년마다 교대 근무를 하니, 그가 등대와 함께 밤바다를 지킨 지도 벌써 14년째다. 홍도 등대엔 이씨를 비롯해 모두 3명이 일한다. 박정율(57) 소장은 25년, 막내 황진성(26)씨는 이제 막 근무를 시작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13m 높이의 등탑 꼭대기에 설치된 등명기를 관리하는 것. 이씨의 안내로 나선형 철제계단을 걸어 꼭대기 방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장비가 현대화돼 “굳이 등탑에 올라가지 않고도 원격 조종으로 점등·소등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1930년대엔 석유백열등으로 밤바다를 밝히다 가스등을 거쳐 요즘은 700W짜리 어른 얼굴만한 전구가 활용된다. 등대 불빛은 홍도에서 45㎞ 떨어진 곳까지 퍼져 나간다.“전국에 유인등대가 모두 49곳인데, 깜빡이는 간격이 모두 서로 다르다. 홍도 등대는 20초에 한번 깜빡이는 곳”이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안개가 자욱한 날엔 등명기도 무용지물이다. 이 때문에 등명기 뿐 아니라 ‘무(霧) 신호기’가 등대마다 갖춰져 있다.“뿌∼우” 하는 뱃고동 소리가 45초를 쉬고 5초 동안 울려 퍼진다. 도달 거리는 5㎞. 해무가 낀 칠흑같은 밤을 항해하는 선박에는 생명의 소리인 셈이다. 전기가 끊어질 경우에 대비한 발전기와 축전기를 관리하고, 관리소 내 환경을 정비하는 것도 주요 일과의 하나다. 유람선을 타고 홍도의 기암괴석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일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이씨는 “겨울철을 빼면 하루 100∼200명씩 찾는다. 일도 많지만 외로울 틈이 없다.”고 말했다. “섬에서만 14년을 근무했는데, 쉽지 않았겠다. 가족들과도 떨어져 있어야 하고….” 위로삼아 말을 건넸더니 무덤덤한 반응만 돌아왔다.“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다 그렇지요.14년이면 얼마 안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을진 몰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였다. 글 사진 홍도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주말탐방] 인천세관 검색장

    [주말탐방] 인천세관 검색장

    “아, 저건 17년산이네요.”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 2층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 X레이 검색대. 인천 세관 조사총괄과 윤혜영(42)씨가 컴퓨터 화면을 쓱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짐 속의 물건이 양주 밸런타인 17년산이라고 자신있게 찍는다. 모니터상으로는 어렴풋이 병의 윤곽만 잡힐 정도인데…. 암만 들여다봐도 기자의 눈으로는 참기름병인지, 술병인지조차 분간이 안 됐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짐보따리를 풀어헤치니 밸런타인 17년산 양주 1병이 옷가지와 함께 꼭꼭 숨겨져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별거 아니에요. 밸런타인 17년은 병 목 부분이 다른 양주와 달리 좀 특이하거든요. 이런 특징만 잘 기억해두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윤씨는 X레이 검색대에서 일한지 1년 정도 된다. 웬만한 반입품은 이제 척보면 어떤 것들인지 브랜드까지 정확하게 맞힐 정도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육안검사로 선별해 내기 어려운 물품도 적지 않다. 형체가 없는 물건들이다. 대표적인 게 마약이다. 과거에는 드물었지만 요즘엔 인천항을 통해서도 심심치 않게 마약이 밀반입된다. 그래서 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역시 가장 많이 들여오는 물건은 양주다. 원래는 개인당 1병만 들여올 수 있다. 그 이상 갖고 오려면 정해진 세금을 물어야 한다. 이를 어기고 짐 속에 몰래 숨겨서 들여오다 발각되면 즉시 세관에 유치된다. 밀반입되는 양주는 밸런타인 30년이나 21년산도 가끔 있지만, 역시 17년산이 가장 많다. 양주 말고도 농산물 등 품목마다 반입량이 정해져 있다. 기준치를 넘겨서 갖고 들어오면 역시 모두 세관에 빼앗긴다. ‘중국술 6병(2병까지만 허용), 양주 2병, 녹용 780g(300g까지만 허용)…” 윤씨는 이날 압류한 물품 목록을 차근차근 일지에 작성해 나갔다. 이제 오늘 세번째인 마지막 배에서 내린 여행객들의 짐만 검색하면 퇴근이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짐 검색을 하느라 아까부터 눈이 침침하다. 공항세관과 달리 항만세관은 일이 두 배는 더 고되다. 교대자가 따로 없어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밥먹을 시간도 따로 내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가장 큰 고역은 공항세관에 비해 검색할 짐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1∼2개의 가벼운 짐만 갖고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대부분 공항을 이용하는 반면 항만세관은 ‘보따리상’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다 보니 검색할 짐도, 압류할 대상도 훨씬 많아진다. 물건을 빼앗긴 여행객들이나 보따리상들과 사사건건 부딪혀야 하는 점도 피곤한 일이다. 일단 자기 물건을 압류당한 여행객들은 거친 욕설을 쏟아내면서 항의하기 일쑤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욕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속이 많이 상했어요.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얼마 지나고 나니까 이젠 무덤덤해지대요.” 윤씨는 “오히려 요즘에는 가급적 그분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쓴다.”고 까지 말했다. 기자가 찾아 갔던 이날 오후에는 중국 다롄(大連)에서 대인호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온 여행객 400여명이 짐 검색을 기다리고 있었다. X레이 검색대를 통과하면 이번에는 본격적인 짐 검색이 남아 있다. 공항세관과 달리 여기서는 원칙적으로 의심이 되는 짐은 일단 모두 열어본다. “에이, 별거 없다는데 뭘 그렇게 다 뒤집어 까봅니까?” “자, 빨리빨리 짐을 다 올려놓으세요. 뒷사람들 기다리잖아요.” 마스크를 쓴 검색대 직원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보따리상으로 보이는 50대 남성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왜 유독 내 짐만 깐깐하게 보느냐는 원망의 표정이 역력하다. 옆에서는 막 검색을 무사히 통과한 한 여행객이 풀어헤친 짐보따리를 다시 주섬주섬 쌓느라 손길이 바쁘다. 여행객 거의 대부분이 저마다 접착테이프를 하나씩 손목에 끼고 있는 모습도 여기서만 구경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이곳 1터미널에는 중국 옌타이(煙臺), 다롄 등지에서 하루 세 차례 정도 배가 들어온다. 과거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역시 여행객의 70∼80%는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이다. 과거와 달리 보따리상들의 절반 정도가 중국인들이라는 점은 새로운 트렌드다. 때문에 세관 직원들도 이제는 영어, 일본어뿐 아니라 중국어까지 어느 정도 할줄 알아야 한다.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해 중국인 보따리상들 중 일부는 막무가내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세관직원들이 귀띔해준다. 중국과 인천항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은 힘들고 피곤한 생활을 이어간다. 이날 다롄에서 18시간 동안 시달리며 인천항에 들어온 보따리상들은 다음날 오후가 되면 다시 중국행 배에 몸을 싣는다. 말 그대로 ‘배를 쫓아 다니는 인생’이다. 오죽하면 선장보다 배를 더 많이 타는 게 보따리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들끼리는 자연스레 ‘무리’가 생긴다. 거의 날마다 같은 배를 타고, 같은 곳에 가서 물건을 구입하고 들어오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현상이다. 보따리상들과 세관 직원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얼굴을 알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뿐일 뿐 더 이상의 ‘접촉’은 금물이다.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다. 어차피 한쪽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물건을 들여와야 하는 입장이고, 다른 쪽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이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세관에서 개인당 반입할 수 있는 물건의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자 보따리상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보따리상들 사이에서는 그룹별로 ‘대표’격인 사람도 있다. 자신들의 입장을 세관에 전달하는 역할도 이들이 맡는다. 인천 세관 휴대품 1과 조학규씨는 “보따리상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만 무리 중에 대표격인 몇 명에게 바뀐 검색기준 등 세관의 공지사항을 쉽게 알릴 수 있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인천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백화점 방불하는 압류창고 들여다 보니 150평 남짓한 인천 세관 압류창고에는 온갖 물건이 쌓여 있다. 여기가 백화점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인천세관에서 압류하거나 유치한 물품의 10∼20%정도만 이곳에 보관된다. 고추, 참깨, 콩, 찹쌀 등 농산물이나 부패하기 쉬운 수산물 등은 냉장시설이 갖춰진 외부 창고 10여곳에 보관료를 따로 주고 맡겨둔다. 때문에 인천세관 압류창고에는 농수산물을 제외한 물품 등만 보관돼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자에 담겨 쌓여 있는 중국산 가짜담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담배의 종류는 던힐, 레종, 원이 많다. 워낙 디자인이나 색상을 정교하게 위조해 던힐 같은 경우, 본사에 진위 여부를 의뢰한다고 세관 직원은 설명해준다. 그 옆쪽으로는 ‘짝퉁(모조품)’상품이 눈에 띈다. 루이뷔통 핸드백, 크리스티앙 디오르 핸드백, 미즈노·혼마·테일러 메이드 가짜 골프채….‘명품족’이라면 혹할만한 물건들이지만 아쉽게도 전부 가짜다. 짝퉁은 상표법 위반으로 원천적으로 적발 즉시 세관에 압류된다. 한쪽에는 경찰청장 등의 허가를 받지 않고 들여온 검도용 수련검도 상자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짝퉁 의류와 신발류. 가짜 나이키 신발, 폴로 재킷 등이다. 이곳에 있는 짝퉁 물건은 분기에 한번씩 폐기된다. 아깝기는 하지만, 시중에 풀리면 유통 질서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란다. 짝퉁 의류는 상표권자의 동의를 얻어 장애인시설에 예외적으로 기증되기도 한다. 가짜가 판치는 와중에 창고에 있는 양주는 유독 ‘진짜’란다. 밸런타인류가 가장 많다. 반입 기준(개인당 1병)을 넘겨 들어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옆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진귀해 보이는 인도네시아산 산호까지 있다. 컨테이너로 수입하다 적발된 것이다. 걸릴 게 뻔할텐데 왜 밀반입했을까? 압류창고에 있던 세관 직원은 “컨테이너로 수입되는 물품 가운데 검색 대상이 10%도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면서 “대다수는 양심적인 수입업자이지만,‘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배짱수입’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압류창고에 보관 중인 주류를 비롯해 진짜 상품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국보훈복지공단에 넘겨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매에 부친다. 세관은 공매에서 걷힌 판매대금 중에서 세금만 가져간다. 인천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보따리상에 대한 사심 금물 가짜반입 가차없이 No예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분들을 보면 저희도 답답합니다.”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X레이 검색을 맡고 있는 인천세관 조사관실 원미희(31·9급)씨는 검색업무가 갈수록 쉽지는 않다고 털어놓는다. 원씨는 세관에 들어온지 9년째,X레이 검색대에서 일한 지는 1년 정도 됐다. “제가 상대하는 분들은 대부분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이나 부모님 연배의 분들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의 짐을 압류하거나 유치해야 할 때는 솔직히 더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정해진 기준대로 법을 집행하는 입장인 만큼 ‘사심’에 이끌릴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래서 자주 드나드는 여행객들이 인사를 건네와도 선뜻 웃으면서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반입 기준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무리해서 물건을 많이 갖고 들어오는 분들을 보면 솔직히 답답합니다. 어차피 면세 기준을 넘는 물건은 세관에 유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물건을 빼앗긴 사람들은 할말이 많다.“짝퉁(모조상품)을 들여오다 걸린 분 중에는 ‘내가 쓸 물건인데 왜 그러느냐. 돈이 없어서 진품은 못 사고, 가짜물건 한 두개 사왔는데 뭐가 문제냐.’며 항의하는 분들까지 있습니다.” 최근에는 반입 수법도 교묘해져 밀수품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일반 약통에 섞인 중국산 유사 비아그라를 찾는 일은 쉬운 일에 속한다. 난이도가 높은 일 가운데 하나는 반입이 전면 금지된 중국산 장뇌삼을 찾아내는 것. 중국산 장뇌삼은 현지에서 우리돈 1000원 정도면 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0만∼50만원까지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에 ‘인기 밀수품목’이다. “장뇌삼은 농약유출 위험 때문에 아예 국내에 들여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흔히 농산물 상자에 함께 넣어 들여오곤 하죠. 고추더미 속에 넣어서 반입하는데, 장뇌삼이 고춧잎 속에 가려지면 X레이로는 사실 판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씨는 끝으로 “보따리 상인들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라면서 “서로 웃으면서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정해진 반입 기준을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인천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긴장의 ‘미군부지 평택 대추리’ 르포

    긴장의 ‘미군부지 평택 대추리’ 르포

    ‘빼앗긴 들’에 봄은 없었다. 주한미군 이전 부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부지를 접수하려는 국방부와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돈 3일 오전 11시쯤 그곳은 화사한 봄볕에 어울리지 않게 황량했지만, 예상 밖으로 평온해 보였다. ‘대추리’란 이정표에 진입하면서 너른 농지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농민들의 모습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미군기지 이전 반대’ 등의 구호가 어지럽게 적힌 깃발과 현수막들이 외지인을 맞았다. 반미성향의 시민단체인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주둔’하고 있는 대추분교 폐교 건물은 이미 단아한 시골학교의 외관을 잃어버리고 전체가 온통 울긋불긋한 깃발과 포스터, 현수막 등으로 어수선했다. ‘범대위 사령부´답게 경계가 삼엄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건물은 비어 있었다. 한참을 서성거린 뒤에야 범대위 관계자로 보이는 30대 여성이 자전거를 몰고 들어왔다. ▶거의 전쟁 분위기로 알려져서 와봤는데 너무 평온하다. 왜 사람들이 없느냐. -“들에 일하러 나갔다.” ▶국방부에서 접수를 강행할 것이란 얘기가 있는데…. -“(무덤덤하게)내일쯤 온다고 들었다.” ▶충돌이 일어나면 다치는 사람이 나올 텐데 어떻게 하느냐. -“죽을 각오가 돼 있다.” 주민들을 찾아 학교건물 옆 언덕 너머 들판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농지는 상당부분 논갈이 작업이 돼 있었다. 다시 대추분교 쪽으로 돌아나오다가 길가에서 얘기를 나누는 60대가량의 여성 주민 두 명을 발견했다. 반가워서 말을 붙였는데, 잔뜩 경계를 하며 대꾸를 피했다. 마침 길 건너편 평상에 한 할머니(송순분·80세)가 걸터앉아 있었다. ▶여기 얼마나 사셨나요. -“15살 때 옆동네(숙성리)에서 시집와서 쭉 살았지. 그런데 이제 와서 떠나라니, 나는 못해. ▶다른 사람들은 많이 떠났나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이 집도 떠났고, 저 집도 떠났어. 서운하지. ▶정부에서 보상금을 준다는데 안 떠나세요. -“주긴 뭘줘. 나중에 다 다시 갚아야 한대. ▶그렇지 않아요. 누가 그러던가요. -“몰라. 그렇대.” ▶여기에 땅은 갖고 계신가요. -“없어. 남의 논에서 농사 짓고 살아왔어.” ▶정부에서 곧 들이닥친다는데, 다치면 어쩌시려고…. -“얼른 죽었으면 좋겠어.” 연로한 주민들에게 뭔가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는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갖고 발걸음을 뗐는데 멀리 마을회관 앞에 주민들이 걸터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막 점심을 먹고 나온 모양이었다. 대부분 50∼60대 이상 연배에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고, 흙이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기자가 다가가니 대뜸 소속이 어디냐부터 묻는다. 그러면서 “○○일보,○○일보 놈들은 오면 가만 안 둔다.”고 말한다. 기자가 들으라는 듯 주민들이 경쟁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다.“국방부 개XX들, 오려면 오라고 해. 다 죽으면 그만이지.”라는 식으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떤 주민은 주머니에서 ‘평택, 제2의 광주되나.’라고 적힌 전단지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마을회관 안팎을 합쳐도 20여명으로 한산했지만, 주민들은 남아 있는 사람이 70여가구라고 했다. 기자가 주민들에게 이것저것 캐묻자 범대위 관계자로 보이는 청년 두어 명이 “자꾸 우리가 미군철수 주장하는 것처럼 연결시키지 말라.”“보상금 때문에 그런다는 식으로 유도질문하지 말라.”고 제지했다.“그러다 봉변당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도 뒤따랐다. 도리없이 발길을 돌리는데 그제서야 길가에 앳된 얼굴의 전경들이 드문드문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택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與, 사학법 ‘진퇴양난’

    밀실합의, 타협, 변절, 제 무덤 파기…. 최근 사립학교법 재개정 논란으로 자중지란에 휩싸인 열린우리당의 현주소에 대한 비판론에서 나온 표현들이다. 한나라당은 압박하고, 내부 반발은 거세고,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재개정안 요구에 ‘양보안’을 내놓자 사실상 사학법 근본을 뒤흔든다는 당 안팎의 반대에 직면했다. 오히려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한나라당보다 훨씬 아픈 뭇매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당 지도부는 “개방형이사의 ‘개’자만 손대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언했지만 양보한 실상은 ‘개악안’에 가깝다는 당내 비판을 사고 있다.이사장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의 학교장 취임금지조항을 삭제하고 초·중·고 개방형 이사 자격의 정관규정 허용, 이사의 겸직금지조항을 삭제하는 ‘선물’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년 6개월 만의 산고 끝에 지난해 연말 사학법안을 통과시킨 뒤 “열린우리당이 가장 잘한 일”이라던 자화자찬은 불과 몇 개월 만에 탄식으로 변했다. 고위 관계자는 “당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사학법 밑에 두려고 한다.”며 지도부의 행보를 비판했다. 교육위 간사인 정봉주 의원은 “개정 사학법에 손을 대는 순간 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재야파 그룹인 민평련은 지난 27일 모임을 갖고 사학법 훼손에 대한 강한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교육시민단체들은 법 개정 취지가 훼손될 경우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간다는 ‘선전포고’를 내렸다. 당 지도부는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한나라당에 맞서려면 최소한의 양보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비판의 강도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기세다. 당 일각에서는 5·31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고육지책이라면 차라리 사학법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라는 압박카드를 내놓았다. 노혜경 노사모 대표일꾼은 “국민이 선거에만 관심있는 줄 아느냐.”며 흔들리는 당 정체성에 일침을 가한 뒤 “국회 공전이 여당으로선 무섭겠지만 타협해 주기보다는 선거를 통해 한나라당이 어떻게 국회를 볼모로 잡는지, 국민의 60% 이상이 찬성한 개정 사학법을 정치적 흥정물로 전락시킨 한나라당의 실체를 알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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