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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株여 등록금 날리고 대출금 날리고…개미들의 비명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증시 폭락의 후유증이 심각하다. 대출로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던 직장인과 등록금을 투자했던 대학생 등 ‘개미투자자’들이 원금 손실로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에 손을 댔다가 거액을 잃은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폭락장세를 빗댄 ‘쌀국장 중계’,‘도시락 폭탄’ 등 냉소적인 신조어도 등장하고 있다.●“자살막아라” 경찰 한강 경계강화 소문 17일 인터넷 증권 사이트 게시판 등에는 2000포인트를 넘어선 주가가 최근 일주일 새 300포인트 이상 떨어지자 개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린 한 대학생 투자자는 “등록금 납부일까지 몇 주간 기일이 남아 등록금 450만원으로 중견기업 A사에 투자했다 일주일도 안 돼 30% 넘는 손실을 입었다.”면서 “지금 주식을 팔아도 등록금이 100만원 넘게 모자란 상황이라 휴학을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인터넷 주식정보 사이트 토론방에 글을 올린 한 직장인 투자자는 “선물·옵션에 투자했다 16일 증시 폭락으로 5700만원의 손실을 봤다.”며 허탈한 심정으로 자신의 선물·옵션 거래내역을 올리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지난 6월 선물·옵션 투자 실패로 14억원의 빚을 지고 자살한 재야고수 ‘시골국수’(필명)가 유언으로 남긴 ‘(선물·옵션 등)파생 상품은 사기판이자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면서 “이번 폭락으로 ‘제2의 시골국수’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3년차 전업투자자 김모(37)씨는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서 다음주부터 펀드 환매가 시작된다는 등의 각종 루머가 횡행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했거나 파생상품에 투자한 이들의 자살이 잇따를 것을 우려해 경찰이 한강 다리 주변 경계를 강화했다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폭락 빗댄 `쌀국장 중계´ 등 신조어 등장 한 주식사이트 주식갤러리에는 17일 새벽 미국 다우존스 지수가 300포인트 넘게 떨어지며 1만 2600선마저 붕괴되자 “쌀국장이 -2% 넘게 굴착 중이다.” “쌀국장 오늘도 또 떡실신했다.”는 등의 게시글을 올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쌀국장’이란 최근 폭락의 원인이 미국 증시에 있는 만큼 미국을 일부러 한자어 ‘미(美)’를 ‘미(米·쌀미)’로 고쳐 ‘쌀(米)국(國)장(증시)’으로 부른다. 또 ‘도시락 폭탄’은 최근 증시가 점심시간인 12∼1시 사이에 외국인 선물 매도가 몰려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굴착중’이라는 말은 땅을 파듯 떨어진다는 뜻이며,‘떡실신’도 떡이 되도록 기절(실신)했다는 인터넷 신조어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北 수해복구 적극 지원할 때다

    북한의 수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소식이다. 평양 등 북한 전역에 40년래 가장 많은 비가 일주일째 쏟아지면서 농경지의 11%이상이 침수되거나 매몰·유실됐다고 북한 중앙통신이 밝혔고, 외신도 이재민이 30만명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유엔도 긴급구호를 위한 현황 파악에 이미 나섰다고 하니, 우리가 앞장서 동포애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본다. 북한이 수년간 해마다 수해를 겪은 탓인지 대북 수해 복구 지원에 관한 한 우리 국민의 여론이 무덤덤해진 경향이 없지 않은 듯하다. 핵 문제나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북한 지도부의 석연찮은 태도가 자초한 측면도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동족으로서 수수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주민의 고통이 심대하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도로와 통신·전력망이 끊기고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북측의 보고가 부풀려졌다고만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경기도 제2소방본부가 임진강에서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시신 5구를 인양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남측 대북지원 단체들이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대북 수해 복구 지원이 민간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인도적 지원은 어차피 소규모일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을 앞둔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한때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미국조차 유엔을 통한 지원을 검토하는 상황이 아닌가. 물론 긴급 수해 복구 지원과는 별개로,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한 남북 협력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당국의 정책 실패에 대한 자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남쪽보다 유독 북한에서 연중행사처럼 더 큰 물난리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1) 해인사 홍제암 석장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1) 해인사 홍제암 석장비

    아무리 명품 청자나 백자라도 금이 가거나 수리한 흔적이 있으면 골동품시장에서 쳐주는 값은 크게 떨어지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온전했을 때보다 깨진 뒤 더욱 높은 값어치가 매겨지는 옛 사람의 자취도 없지는 않습니다. 경남 합천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비가 그렇습니다. 홍제암은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친 뒤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나타나지요. 예전에 해인사에서 홍제암에 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지만, 이제는 대형버스도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 닦였습니다. 홍제암은 임진왜란 당시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었던 나라를 구해낸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입적(入寂)한 곳입니다. 광해군은 대사에게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를, 영정을 모신 영자전에는 홍제암(弘濟庵)이라는 편액을 내렸습니다. 대사를 기리는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는 홍제암 오른쪽의 부도밭에 세워져 있지요. 그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종 모양의 소박한 부도는 홍제암 뒷동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612년(광해군 4년)에 세워진 석장비는 높이 3.15m의 당당한 모습이지만,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비석 한가운데가 열십자(十) 모양으로 쪼개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장비가 중요한 것은 사명대사의 일생을 어떤 기록보다 소상히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의 책방에 나와 있는 사명대사 전기는 대부분 이 비문에 나타난 삶의 궤적을 뼈대로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이 교산 허균(1569∼1618)이라는 것도 석장비의 가치를 높입니다. 한글 소설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조선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홍길동전’을 쓴 바로 그 사람이지요. 교산은 비문에서 “나는 비록 유가(儒家)에 속하는 무리이지만, 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누구보다 스님을 깊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산의 비문에는 당시 사명대사에 대한 뜻밖의 시선도 드러나 눈길을 끕니다.‘대사가 중생으로 하여금 혼돈의 세계인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일을 등한히 하고, 구구하게 나라를 위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살생을 금하는 불법의 수호자로 병장기를 잡아야 했던 사명대사의 고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을 것 같습니다. 석장비는 일제강점기인 1943년 합천경찰서장이었던 다케우라(竹浦)가 네동강냄으로써 역사적 가치는 오히려 극대화되었습니다. 일경은 이때 이고경 전 주지를 비롯해 해인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7명의 항일불교인사를 체포하는데, 이른바 ‘해인사사건’입니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에 귀중한 보물이 있느냐.”고 묻자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가장 귀한 보물로 알고 모두 노리고 있다.”고 일갈한 사명대사의 기개가 해인사에 ‘불온한’ 분위기를 조성한 주범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앞서 일경은 1942년 항일 불교청년운동 조직인 만당(卍黨)의 근거지이자, 독립운동자금의 조달창구였던 백산상회의 연락소였던 사천 다솔사를 급습했지요. 다케우라는 합천에 부임하기 직전 사천경찰서장이었다니 두 사건을 모두 일으킨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석장비는 1958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영원히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남았지만, 이 상처가 없었다면 석장비가 주는 감동은 조금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dcsuh@seoul.co.kr
  • ‘미로밴드 라이브’ 유튜브에 올라 ‘망신살’

    ‘미로밴드 라이브’ 유튜브에 올라 ‘망신살’

    신인그룹 ‘미로밴드’의 라이브공연이 해외 네티즌의 입방아에까지 올랐다. 해외 UCC사이트 유튜브(YouTube.com)에는 지난 8일 미로밴드가 공연한 너바나(Nirvana)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의 라이브영상이 올려졌다. ‘한국 밴드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이 영상에는 록음악 팬들의 ‘전설’인 너바나의 곡을 망쳤다는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 네티즌들은 한국보다 더욱 과격하게 리드보컬인 미로(22.서동천)의 가창력을 비난하고 나섰다. 네티즌 ‘BMX0588’은 “커트 코베인(너바나 리드보컬)이 무덤을 박차고 나올 일”이라며 비꼬았고 ‘jeff90oky’는 “이게 뭐냐! 관객들에게 내가 다 미안해진다.”는 댓글을 올렸다. 이외에도 “제대로 엉망인 영어”(defstone999), “내가 한국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나을 듯”(drive165) 등 힘겨운 음역 때문에 망가진 영어 발음을 꼬집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또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ShowBox)는 의견들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국내외 ‘가창력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미로밴드는 타이틀곡 ‘마마’가 미국 록밴드 의 곡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인터넷에서 제기되면서 최근 표절 시비까지 휘말렸다. 미로는 이에 대해 “가창력 논란과 표절 시비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며 “더 노력해서 라이브에 계속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미로밴드 “무리한 도전 인정”(동영상보기) 사진=유튜브 캡처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여 전형적 산악 지역인 경남 함양의 삼봉산(1186.7m)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 통한다. 함양읍과 마천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계에 솟은 삼봉산과 그 아래 백운산(902.7m)∼금대산(847m) 능선은 엄천강 물줄기에 의해 지리산과 나뉘었지만, 삼봉산 기운은 서쪽 투구봉(1068m)에서 팔령을 지나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를 가르며 연비산(842.8m)∼안산(641m)∼아홉새드리를 거쳐 천왕봉을 출발한 백두대간과 맞닿는다. 이 혈맥이 육십령∼덕유산으로 이어지니, 남녘의 큰 산줄기 지리산과 덕유산의 양대 기운을 모두 품은 산이라 할 수 있다. 동서로 길게 누운 삼봉산은 급경사가 많아 대체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반면 남원 산내 쪽으로 신라 고찰 실상사와 백장사, 마천 쪽으로는 금대암 등 좋은 절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실상사에는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을 비롯해 석등, 철제여래좌상 등의 보물이 여러 점 있고, 백장사에는 국보 제10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금대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수령 500년의 전나무가 자라고 있는 등 문화재와 볼거리도 다양하다. 삼봉산 산행 들머리는 크게 네 군데로 나뉜다. 남원과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상의 팔령에서 투구봉으로 오르는 길이 약 4.75㎞, 상죽림을 거치는 길은 2.6㎞, 동쪽 오도재에서는 3.9㎞쯤 된다. 서쪽의 남원 산내면 백장사에서도 오를 수 있다. 네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정상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리산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백운산, 금대산을 거쳐 내려오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삼봉산∼백운산 구간은 숲이 우거진 곳이 많지만 금대산과 가까워지면서 자주 시야가 트이며 겹겹이 두른 지리산 봉우리들이 잘 보인다.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의 등구재는 산내와 마천, 즉 전남과 경남을 잇는 고갯마루다.‘등구’라는 지명은 ‘거북이 기어 올라가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고 곶감이 달기로 유명한 곳이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바로 등구 마천이다. 오도재를 출발해 삼봉산, 백운산, 금대산을 차례로 거쳐 금대암으로 내려서는 데 약 5시간이 걸린다. 산행 들머리는 해학적인 표정의 장승들이 손짓하듯 서 있는 오도재 임도. 거기서 10분쯤 올라가면 잠시 쉬어가기 좋은 정자 관음정이 나오고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삼봉산 정상에 닿게 된다. 지리산 전망대답게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쪽엔 하봉∼웅석봉을 주축으로 한 동부능선이, 서쪽으론 반야봉∼만복대로 이어진 서북릉이 주르륵 펼쳐진다. 등구재 안부를 통과하면 꾸준한 오르막이 계속되고, 무성한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면 곧 백운산. 삼봉산에서 30분 남짓 걸린다. 반쪽짜리 무덤 때문에 백운산 정상 표지석이 구석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 수풀이 무성할 땐 잘 보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정상석∼무덤과 일직선 나무 사이에 지리산 천왕봉이 가깝다. 백운산에서 금대산도 지척이다. 바위가 많은 금대산에 다가설수록 등산로는 삼봉산 구간과 달리 시야가 탁 트이며 조망이 시원하다.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서면 마천 일대와 걸어온 오도재∼삼봉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외로운 고사목 하나가 바위틈에 뿌리를 두고 앙상한 뼈처럼 꽂힌 곳도 있다.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바위에 올라서니 멀리서 보던 산불감시초소 건물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대산이다. 하산은 금대암 쪽으로 하며 정상에서 금대암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 금대암 사찰 뜰에는 눈앞의 지리산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게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자. 글 정수정 사진 황소영(월간 MOUNTAIN 기자)
  • [2차 남북정상회담] 李·朴캠프 득실계산 분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투표를 11일 앞두고 8일 나온 2차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이명박·박근혜 후보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남북정상회담의 파괴력과 남북관계의 미묘함을 고려하면 당장 한나라당 경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키 어렵다. 다만 국민적 관심사가 정상회담쪽으로 옮아가면서 최대 변수까지는 안 되더라도 미묘한 흐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우선 경선 이슈 자체가 남북정상회담에 잠식당할 경우 막판 추격전을 펴며 ‘정치공작’ 공세까지 폈던 박 후보측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상회담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긴 어렵겠지만 경선전 열기가 한껏 올라가는 도중에 나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현재 앞서는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두 캠프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예견된 일”이라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이 후보측은 특히 “유·불리를 따질게 없다.”,“대세는 뒤집을 수 없다.”는 평을 내놓았다.“이미 게임은 끝났는데 무슨 변수가 되겠냐.”는 기조가 깔려 있다. 이번 경선보다는 12월19일 대선 본선 때를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겠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왔다. 박 후보측은 “경선 이슈가 정상회담에 파묻혀 검증공방이 물 건너갔다.”는 반응 속에 신중론을 펴고 있다. 정상회담이 ‘안보’와 직결되는 민감한 이슈라는 점에서 오히려 당내 보수 표심을 집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박 후보의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은 “이번 경선이 대의원과 당원 등 18만 5000명을 상대로 한 당내 선거라는 점에 주목한다.”면서 “이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정상회담을 (참여정부의)위장 평화공세, 정권연장의 음모로 인식할 것이고 이럴 경우엔 오히려 정체성이 확실하고, 남북관계에 있어 원칙이 확고한 박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박 후보가 평소 남북관계에 있어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반대 해석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 사건 이후 박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는데, 이는 안보와 외교·국방 같은 이슈에선 여성 후보보다는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2차 남북정상회담] ‘경제영향’ 엇갈리는 전망

    [2차 남북정상회담] ‘경제영향’ 엇갈리는 전망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영록 재정경제부 2차관은 “남북 경제교류와 협력이 한 단계 진전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그동안 논의는 이뤄졌지만 경제 외적 요인으로 진척이 더뎠던 경협 과제들도 광범위하게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남북간 철도 연계와 지하자원 개발, 경공업 분야에서의 협력 등이 탄력을 받을 수 있고 개성공단도 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는 “남북 정상회담이 국내외에 ‘대선용 이벤트’로 비춰진다면 오히려 국내 경제에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북핵위험을 크게 낮추는 만큼 장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시킬 것으로 봤다. 배상근 박사는 “고질적인 불안 요인으로 지적돼온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어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8일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에서 중대한 진전인 것은 분명하나 한국이 처해 있는 근본적인 위험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은 “최근 외국인들의 자금유출 속도가 빨랐는데 정상회담 개최로 유출 속도가 늦춰지거나 재유입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외국인 자본이 유입될 경우 원화 강세 요인으로 환율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신 연구위원은 “그러나 6자회담이 재개되고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 이미 북핵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 이번 정상회담 개최가 당장 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연구원 하준경 연구위원은 콜금리 인상 여부와 관련해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경협을 촉진시키는 등 경기 회복을 강화시켜줄 것이므로 금리인상 요인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은 주식시장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대북 관련주에 대한 투자심리는 일단 좋아질 전망이다. 이 역시 구체적 사업으로 연결돼 기업가치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민상일 한화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 관점의 호재는 분명하지만 긍정적 영향은 단기적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문제 해결의 핵심 변수라기보다는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무덤덤’은 2000년 ‘학습효과’에 기인한다.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은 한 해 동안 코스피지수가 50.9%나 떨어진 해다. 회담 이야기가 나오던 3월부터 공식 발표일까지는 주가가 5% 올랐다. 그러나 정상회담 당일 5.9% 하락한 것을 비롯, 정상회담이 열렸던 날까지는 14.5% 떨어졌다. 그동안 외국인의 순매수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정상회담 이후 한 달 동안에는 주가가 5.4% 올랐다. 백문일 문소영 전경하기자 mip@seoul.co.kr
  • 온몸이 철사로 감긴 유골 中서 잇달아 발견

    최근 중국의 한 도시에서 철사로 칭칭 감겨져 있는 유골이 연달아 출토돼 학계에 큰 관심을 끌고있다. 관영 CCTV는 “지난달 11일에 첫 발견된 ‘철사유골’과 유사한 유골이 또 발견됐다.” 며 “새로운 소수민족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8일 보도했다. 지난달 구이저우(贵州)성 안쉰(安顺)시의 한 주민이 밭에서 2중으로 된 돌무덤을 발견한 이후 계속되는 출토작업 끝에 이번에 특이한 유골이 또 다시 발견된 것. 이번에 발견된 철사유골은 양팔과 다리 그리고 손가락까지 모두 철사로 감겨져 있다. 안쉰시 문화부 관계자는 “이 유골은 약 800~1000년 전 것으로 철사는 당시 여자들이 착용하던 장식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장식물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으며 철사를 감는 방법 또한 매우 독특하다.”고 감탄했다. 이어 “돌무덤 속의 반지와 목걸이등의 출토물은 현재 안쉰시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부이(布依)족의 매장방식이나 장식물과는 확연히 다르다.”며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소수민족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이 유골과 함께 발견된 출토물은 송(宋)나라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의 부족한 문물의 공백을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성윤석 시집 ‘공중묘지’

    성윤석 시집 ‘공중묘지’

    쇠뜨기, 바랭이, 쑥부쟁이가 무연묘(無緣墓)를 뒤덮었다. 비석도 상석(床石)도 없다. 활개도 축대(築臺)도 없다.10년이 지나도 찾는 이 없고, 묘적부에서도 지워졌다. 바람 불어 초록 풀씨 날리면 묘지는 수풀 속에서 형태마저 잃는다.‘더욱 버려져’ 마음 아린 무연묘에 시선을 주며 쓸쓸해하는 이, 성윤석(42) 뿐이다. 성윤석은 경기도 용미리 서울시립묘지 관리인 생활을 시작하고도 2년이 지나서야 놓았던 펜을 다시 들 수 있었다.25살 대학 4학년(1990년) 때 등단했고,31살(1996년) 때 첫 시집(‘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문학과지성)을 냈던 시인. 두 번째 시집 ‘공중묘지’(민음사)가 나오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공중묘지’는 죽음으로 꽉 차 있다. 썩은 시체 눈알이 굴러 떨어지고, 시즙(屍汁)이 뚝뚝 흐른다. 몸에서 막 빠져나간 영혼은 ‘사랑해서 생긴 약점’(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맘에 걸려 세상을 떠돈다. 시집에 내리 깔린 죽음의 이미지엔 시인이 보낸 가혹한 시간이 더해졌다. 11년 동안 그는 신문기자와 공무원을 거쳤고, 사업에 실패했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동생이 죽었고, 충격받은 어머니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몸의 평형기능을 상실하는 ‘양성발작성변환이석증’에 걸려 시인의 눈은 환상을 봤다. 지하철을 타면 두 다리가 공중에 붕붕 떴고, 눈 옆으로 꽃이 폈다. 밤마다 하얀 원피스 입은 소녀가 미간을 스쳐갔다. 묘지 앞에서 만난 시인은 “공포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회고했다. ●묘지에 와서야 공포를 떼어내다 시인은 그 공포를 무심한 언어로 옮겼다.“어머니는 기절했으며 / 조문객들은 낄낄대며 술추렴을 했다”(‘아우가 죽었다’)고 썼고,“미쳐 버리고 싶은데, 미쳐지지 않는 늦은 밤”에 “가끔 뒤로, 뒤로 / 정신의 불빛이 나가 버리곤 한다”(‘1과 8사이엔 무엇이 있나’)며 전정기관 망가진 자신을 관조했다. 공포로부터 자신을 떼어내 객관화할 수 있었던 건 살아 움직이는 것 없는 공중묘지, 온갖 버려진 것들의 집결지에 와서야 가능했다. “목매러 왔다 줄만 매달아 놓고 간 사람, 미혼모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아이 시체, 묘지를 떠도는 애꾸눈 애완견…. 묘지의 살아있음이 눈에 보이면서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인 묘지에서 도리어 이야기는 살아나더군요.”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며, 묘지 인부들마저 침 뱉으며 멀리하고, 까마귀떼만 날아오르는 공중묘지가 이제 시인에겐 일상이자, 밥을 벌고, 삶을 구하는 터전이 됐다. 늙은 산역 작업부가 “자네 이제 묘지 관리인이 다 되었네”(‘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라고 할 만큼 ‘내공’ 쌓인 그는 죽음 가득한 행간에 생의 의지를 꼭꼭 숨겼다. 공중묘지는 죽어 떠도는 영혼이 마지막으로 의탁하는 안식처(‘공중묘지 6’)이자, 시체의 자양분을 찾아 산마가 무덤 밑으로 끝없이 뿌리 뻗는 곳(‘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이다. 생명이 부글거리는 공간(‘알박기’)이다. “아버지가 묻혀 있는 동그란 무덤 속 / 아버지의 살점을 자양분으로 / 살모사는 새끼를 낳자마자 죽고 낳자 죽고 / 두더쥐와 굼벵이와 들쥐와 구더기는 아버지의 / 평생 속고 속아 썩어 문드러진 가슴께에서 / 햇빛처럼 떨어지는 생을 향해 / 부글부글거리겠지.”(‘알박기’) 시인은 “이승의 끝인 공중묘지에서 삶을 긍정함으로써 신산한 인생들이 겪어온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묘지 관리인으로 활동하며 창작 ‘공중묘지’에 실린 58편의 시적 밀도가 모두 균일한 건 아니다. 묘지 관리인으로 일하며 쓴 최근 시들(1부)의 압도적 정서에 비해, 과거 젊은 날에 쓴 시들(2∼3부)은 다소 성긴 게 사실이다. 그 간극의 차이를 시인은 “영화처럼 꿈꿀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시절과 달리 지금은 인생의 속살이 찬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성윤석은 용미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죽음도 공포가 아닌 평생 붙들고 씨름하고픈 화두가 됐다. 온갖 ‘아름다운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저 바깥 세상, 그곳이야말로 거대한 공중묘지임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9) 고려 태조 왕건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9) 고려 태조 왕건상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고려 태조 왕건상’이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왕의 ‘초상조각’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데다, 옷을 입지 않은 나상(裸像)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지요. 왕건상은 남쪽의 특별전이 끝난 뒤 현재는 평양의 조선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3년 고려 태조 무덤인 현릉(顯陵)에서 발굴된 이후에는 줄곧 개성 고려박물관에 있었지요. 고려박물관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개성의 성균관 건물을 그대로 전시시설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쪽에서 각광받는 왕건상이 북쪽에서는 한동안 그리 주목받지 못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1996년 평양에서 발간된 ‘고려태조 왕건’의 말미에는 현릉 발굴 결과가 실렸는데, 왕건상을 ‘금동불상’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같은 해 사이토 타다시(齋藤忠) 일본 다이쇼대학 명예교수가 펴낸 ‘북조선고고학의 신발견’에도 사진이 실렸지요. 경주 황남동 109호분을 발굴하기도 한 사이토 교수는 북한학자들의 해석을 존중해 ‘불교의례의 일단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적었습니다. 이듬해 기쿠다케 준이치(菊竹淳一) 일본 규슈산업대학 교수가 고려박물관에서 이 금동조각을 발견하여 북한 관계자들에게 왕건상일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고 합니다. 당시 왕건상은 ‘보살상’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채 적조사 철조석가여래좌상 등 다른 불상과 나란히 전시되고 있었다고 하지요. 기쿠다케 교수는 ‘고려 태조 왕건상 시론(試論)’에서 학술 논문으로는 이례적으로 ‘부기(附記)’를 달아 왕건상을 만난 과정을 간단하지만 지극히 감상적으로 술회했습니다. 그는 고려박물관을 방문하기 전날 밤 만월대에 올랐다고 합니다.‘하늘에 가득한 별 아래서 술을 마시며 감격해서 왕궁전터의 땅바닥에 누웠을 때, 태조 왕건이 나에게 개성에 머무는 동안 자신을 찾으라고 계시하였다.’는 것입니다. 이후 왕건상에 얽힌 갖가지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준 사람은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입니다.951년쯤 조성되어 봉은사 태조진전(太祖眞殿)에 모셔져 있던 왕건상은 고려가 망함에 따라 지금의 숭의전이 있는 경기도 마전현의 작은 사찰로 옮겨졌고, 주자학적 제례법을 따르려는 세종의 의도에 따라 초상조각이 목주(木主·나무로 깎은 위패)로 대체되면서 세종 11년에 현릉에 묻혔다는 것이지요. 왕건상은 나체조각만 남았지만, 고려시대에는 옷을 입혔습니다. 발굴 당시 왕건상의 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얇은 비단천과 금도금을 한 청동조각이 붙어 있었다고 하지요. 노 교수는 조상제례에 옷을 입히는 조각상을 사용하는 것은 한국 고대 이래의 문화전통이라고 설명합니다. 왕건상은 ‘동명왕 어머니 유화의 소상(塑像)이 3일 동안 피눈물을 흘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 시조신상(始祖神像)의 특징을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기쿠다케 교수는 ‘얇은 비단천’에서신체를 훤히 비치게 표현한 ‘수월관음도’ 같은 고려불화를 떠올렸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속살이 투명하게 비치는 보살의 시스루(see-through) 패션’이라며 고려불화의 표현법에 감탄한 적이 있지요. 그리스 조각이 육체의 아름다움을 직접 드러냈다면 ‘수월관음도’나 왕건상은 얇은 천 너머로 육체가 비쳐 보이게 하여 살아 있는 듯 느껴지게 표현하는 고려시대 특유의 미의식을 보여 준다고 기쿠다케 교수는 해석했습니다. dcsuh@seoul.co.kr
  • [Local] 경주 ‘발굴~전시’ 특별전 열어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오는 31일부터 9월2일까지 박물관 전시실에서 ‘발굴에서 전시까지’ 특별전을 연다. 특별전에서는 최근 발굴된 신라와 백제시대 유적지 17곳에서 나온 2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며 도성, 궁궐, 사찰, 생산시설, 무덤 등은 모형으로 복원돼 공개된다. 또 경주박물관과 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신라왕경 유적의 발굴 성과, 사천왕사지 발굴성과, 최근에 발굴된 신라 및 백제의 기와, 신라의 공방유적, 신라 및 백제 불교미술품 등의 설명회도 개최한다.
  • 태안 앞바다 청자 침몰선 발굴·인양 현장

    충남 태안 앞바다의 고려시대 침몰선에 실려 있는 청자는 그동안 서남해안에서 잇따라 발굴이 이루어진 다른 침몰선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쉽게 말해 왕이나 귀족의 무덤에 껴묻거리로 특별히 제작한 청자를 예외로 한다면, 왕실과 귀족, 승려들이 실생활에 쓰던 것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실제로 2002∼2003년 군산 비안도와 2003∼2004년 군산 십이동파도,2006∼2007년 군산 야미도에서 모두 1만점이 넘는 청자가 수습되었지만, 도자기 역사를 규명하는데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모양과 빛깔은 그리 좋지 않은 중하급품이었다. 하지만 태안 대섬 청자는 아직까지 한 점이 인양된 참외형 주전자처럼 몇몇 특별한 형태가 아니라, 대종을 이루는 사발과 찻그릇이라도 하나하나가 박물관에 진열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기형이 뛰어나고 빛깔도 훌륭하다. 1983∼1984년 전남 완도 어두리의 12세기 고려선박에서 도자기 3만여점이 발굴된 적이 있음에도, 태안 대섬을 송·원대 도자기 2만 2000여점 등을 수습한 1976년의 전남 신안 중국 무역선 이후 최고의 수중발굴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용이 명지대 교수는 “상감청자가 확인되지 않는 반면 상감청자의 전단계로 흰선을 그려 넣은 백니청자가 나온 것은 침몰연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면서 “사발과 대접, 접시, 찻그릇은 물론 승려가 쓰던 바릿대까지 다양한 그릇이 쏟아져 청자의 편년에 결정적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침몰선이 발견된 태안 대섬 해역은 신진항에서 3㎞ 남짓, 국방과학연구원이 마주 보이는 육지와는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았다. 주꾸미 어장으로 각종 선박이 빈번하게 오가는 데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 고려시대 선박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불가사의하게 여기는 분위기이다. 태안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8월15일 오사카서 ‘겨레얼살리기’ 행사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장)는 8월 15일 오전 11시 일본 오사카 민단본부 5층 대강당에서 제62주년 광복절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재일교포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는 것이 행사의 취지. 일본 기타큐슈대 김봉진 교수가 ‘일본에서의 한류현상과 겨레얼살리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가수 정수라의 노래무대와 이화여대 곽은아 교수의 가야금 연주 등 공연이 마련된다.8월 16일 오전 10시 교토 귀무덤에서는 임진왜란 희생자 위령제도 열린다.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3) 월출산~나주 영산포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3) 월출산~나주 영산포

    전남 영암은 ‘소금강’인 월출산(해발 809m) 자락에 휘감겨 있다. 귀양길에 재를 넘던 윤선도가 “미운 게 안개로구나.”라고 탄식했듯, 기암괴석 봉우리는 늘상 구름 속에 노닌다. 월출산은 해남·강진·장흥쪽 길목이어서 나그네 쉼터로 그만이다. 또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박사,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최지몽이 월출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한다. 천년 고찰 도갑사, 왕인박사 유적지에는 산의 정기를 받으려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덕진 할머니의 돌다리 30여m 복원 한때 기선(汽船)이 드나든 포구였던 영암천은 1981년 영산강둑이 바닷물을 막으면서 작은 시냇가로 오그라들었다. 옛날 영암천은 덕진포로 불렸다. 포구 양쪽 언덕배기에 나그네들의 여정을 풀어주는 주막이 즐비했다.‘덕진’은 이곳 주막의 주모 이름이다. 그가 평생 모은 300냥으로 1000척(尺·303m) 되는 돌다리를 놨다고 전한다. 당시 돌다리 모습이 하천에 30여m 복원됐다. 앞에는 덕진 숭덕비가 세워졌다. 조만국(78·덕진면 장선리) 영암노인대학장은 “해마다 5월5일 단오날에 덕진면장 주관으로 면민들이 덕진 추모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조씨와 함께 나온 노인들은 “왕건과 견훤이 사생결단을 벌인 곳이 덕진포 전투이고 이 싸움에서 이긴 왕건이 금성(나주)에 입성해 통일 발판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영암천 앞 벌판 한가운데쯤이 영보역이다. 이 역은 통일신라 멸망으로 경주로 가는 길이 쇠락하면서 조선 초에 덕진면 영보리에서 영암읍으로 옮겨왔다. 그래서 지명 그대로 영보역이다. 당시 영보역 자리에는 영암 공설운동장이 들어섰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모이게 하는 기능은 같지만 영보역을 기억하는 주민도, 푯말도 없다. 다만 영암산림조합 뒤편 마을인 역리 1∼4구가 역이 있었다는 명맥을 잇는다. 영보역에서 나주 영산강 앞까지는 28㎞(70리길)다. 오가는 데 가파른 고갯길이 없고 낮은 구릉이다. 옛길도 국도 13호선(나주∼강진)과 겹치는 등 엇비슷하다. 길 양쪽 들판 여기저기에 벼농사용 물을 가둬두는 인공 저수지가 보인다. 옛길을 짚어가는 주변 마을에는 ‘원등’이라고 불리는 곳이 적잖았다. 원님이 말을 타고 가다 발을 쉬게 하던 곳이다. 마을회관에서 수박을 먹던 문재현(73·신북면 이천리)씨는 “어렸을 때 원등에서 놀다가 땅을 파보면 깨진 기왓장과 주춧돌이 나왔다.”고 기억했다. 세월 속에 정자는 오간 데 없고 구부러진 소나무 대여섯 그루만 풍상을 견디며 자리를 지킨다. 영암군 문헌에는 이천리에 있던 부소원에서 나그네들이 쉬어갔다고 했다. 그래선지 마을 노인들은 옛길을 그런대로 잘 기억했다. 노인들은 “원등에서 100m쯤 아래로 가면 양반들이 타고 가던 말에게 물을 먹이던 방죽이 있고 그곳을 말 물통이라고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백제와 신라군이 맞붙어 싸웠다는 전설 같은 말도 곁들였다. 이곳은 수백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연꽃과 억새 등으로 뒤덮인 손바닥만 한 방죽이었다. 영암휴게소 건너편 대방제(저수지)에서 조금 올라간 곳이다. 동네사람들은 나그네들이 행장을 추스른 뒤 방죽 둑길을 따라 한양길을 재촉했다고 덧붙였다. 이 언덕배기 옆으로 난 국도 13호선도 옛길처럼 오르막이다. 영보역에서 12㎞(30리)쯤 온 지점이니 주막거리가 있었을 법하다. ●100여년 전 새로 생긴 고을 ‘신북면´ 지금은 주유소를 겸한 영암휴게소가 주막집을 대신하고 있다. 비탈길이 평지로 바뀔 즈음엔 100여년 전에 새로 생긴 고을이라는 뜻의 신북면이 있다. 면 소재지인 월평리에서 ‘보해마트’를 하는 류진문(74)씨는 생생한 기억을 되살렸다. 류씨는 “13호선 바로 옆 연안주유소 뒤로 산비탈 길이 있었는데 달구지가 다닐 만큼 넓었다.”고 했다. 신북면 소재지에서 4㎞쯤 서쪽으로 가면 경주 왕릉에 버금가는 나주 반남 고분군이다. 반남면 자미산(해발 98m) 좌우 1.8㎞ 안에 무덤 35개가 흩어져 있다. 고대국가 형성 이전에 영산강을 지배하던 세력들의 무덤으로 추측된다. 일제가 4트럭 분량 유물을 마구 도굴하고 덮어버렸다고 한다. 이천∼호산∼월평을 지나 6∼7㎞를 더 가면 나주시 세지면 죽동리와 왕곡면 신원리로 접어든다. 국도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신가리가 있었다. 신가리1구 한재근(77)씨는 “말이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을 때 여기에 신안역이라는 역촌이 자리했다.”고 말했다. 포장도로가 신원리1구 마을 한복판을 뚫고 지나면서 마을이 나눠졌다. 나주 신원리 보건진료소는 길 아래쪽에 있다. 지금부터 200년 전에 생긴 이 마을을 사람들은 ‘쌍다리’라고 부른다. 면장을 지낸 황치봉(74·신원1구)씨는 “원님이 말을 타고 한양 다니기 좋게 쌍다리를 놨다는 말을 들었다. 영산강 흘러드는 만봉천의 작은 고랑에 어른 키만한 돌 2개로 놓은 쌍다리를 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원님이 지났던 쌍다리 77년 사라져 이 마을 노인회관 앞 회관 건립 표지석에는 ‘1977년도에 원님이 지났던 쌍다리가 경지정리로 사라졌다.’고 적었다. 또 마을에서 해마다 겪는 홍수를 피하기 위해 농악놀이와 함께 꼭 거문고를 타서 액운을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원리는 ‘거문고 금’자를 써서 금동마을로도 불린다. 지금은 영산강 제방으로 물길이 틀어져 마을 앞은 논으로 변했다. 논둑에 서서 고개를 빼들면 양산리와 장산리 들판이 다가선다. 흐르는 땀을 닦고 선들바람을 쐬니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이 반긴다. 영암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장보고와 평생 동지 정년 선암마을 앞뒷집서 출생 “영보역은 통일신라 말까지 수도인 경주로 가는 가장 큰 길목으로 내동마을 뒷산인 옥녀봉 능선 야트막한 자락을 넘으면 영암 금정면으로 이어집니다.” 신희범(74·호남의병 연구가·덕진면 운암리 선암마을)씨는 이 길(영보리∼경주간)은 지금으로 치면 고속도로 나들목만큼이나 우마차와 사람들 왕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영보역 주변에는 동헌과 객사, 주막, 난전, 술집 등으로 번잡했다. 여기에다 길을 재촉하는 외지인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했다.6·25전쟁 때는 이 길 옆으로 작전 도로가 났다. 지금은 광주∼완도간 고속도로 건설 예정지다. 하지만 조선시대 초 영보역은 덕진면 영보리에서 지금의 영암읍내로 옮겨갔다. 지금은 ‘원조’ 영보역도, 그후 이전한 영보역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덕진면 내동·강곡 등 12개 마을을 통틀어 영보리로 일컫는다. 대부분 거창 신씨, 전주 최씨 일문이 산다. 신씨는 “1967년에 마을 덕진포 앞에서 배수로 공사를 할 때 쏟아져 나온 배 뻘판 등이 마을 앞까지 바다였음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박인규(76·송석정 마을)씨는 “지금은 간척지로 논이지만 어릴 적에 마을 이름을 선창마을 또는 선창머리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내동마을 앞에는 오늘날 학교인 영보정(永保亭·지방기념물 104호)이 400년 된 소나무(나무둘레 2.8m)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곳 학도들이 1931년 형제봉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630년 전주 최씨와 거창 신씨 두 집안이 화의를 다지며 같이 세웠다. 처마 밑 ‘영보정’이란 현판은 조선 명필 한석봉이 쓴 것이다. 이곳 출신인 신희남(1580년 강원 관찰사)이 그의 스승이다. 신씨는 이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장보고(본명 궁복)와 그의 평생 동지인 정년이 이곳 선암마을 앞뒷집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지금껏 장보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출신지가 ‘해도인(海島人)’으로만 기록돼 있을 뿐이다. 신씨는 “예부터 이들 두 사람 때문에 선암마을은 무장골로 불렸다. 당시 덕진포는 완도까지 관할했는데 장보고는 마을 앞 덕진포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뒤 이 마을은 동백나무가 많은 천민 집단인 ‘동백소’로 전락했다고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암 동쪽 15리 지점에 동백소가 있다’라고만 적었다. 영암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CEO칼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영하 LG전자 사장

    [CEO칼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영하 LG전자 사장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구절을 신라시대 원효대사의 일화에서 배웠다. 원효대사가 불법(佛法)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로 가던 도중 노숙하게 됐다. 밤에 자던 중에 목이 말라 머리맡에 있는 숭늉을 아주 맛있게 마셨다. 이튿날 깨어 보니 노숙한 곳은 오래된 무덤이었고 머리맡에 있는 물은 해골 바가지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 순간 구역질이 나고 토했지만 이미 소화가 된 뒤라 나올 리 만무했다. 여기서 원효대사는 깨달았다.“어떻게 같은 해골 물이 몰랐을 때는 맛있었고 알았을 때는 구역질이 나는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일체유심조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불경에 나오는 구절인 것 같다. 이 말은 이후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가훈이기도 하다. 지금도 회사를 경영할 때 종종 이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어려움이 수시로 닥쳐 온다. 그럴 때마다 사업의 어려움이란 것이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아니고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구성원들의 하고자 하는 마음이 합쳐지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꿈과 비전을 갖는다는 것이다. 큰 꿈과 포부가 있어야 나아갈 길을 명확히 알고 흔들림 없이 나갈 수 있으며 남들보다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고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안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된다고 마음을 먹고 방법을 구하다 보면 반드시 해법은 나오기 마련이다. LG전자 창원공장에는 수많은 ‘TDR’(Tear Down Redesign·제품을 아예 뜯어보고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혁신 방안을 찾아내는 활동) 팀이 가동되고 있다. 그 중에는 놀랄 정도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내는 곳이 있다. 그때마다 사람의 지혜와 자발적인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매번 성공체험을 맛보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결과에 앞서 100%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전력투구를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도전조차 하지 않는 사람과 도전하는 사람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도전하는 사람은 실패의 경험 속에서 반드시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 차이는 바로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간다 마사노리는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가 분명한데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공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의 말처럼 힘이 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가능한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젊은이들이 큰 꿈과 비전을 갖기 바란다. 그리고 항상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해낼 수 있다는 ‘일체유심조’의 마음가짐을 갖자. 그러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영하 LG전자 사장
  • [깔깔깔]

    ●우리 문화를 뭘로 보고 한 서양인이 친구의 무덤에 꽃을 놓고 기도를 했다. 마침 그때, 바로 옆 무덤에 한국인이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평소 한국 문화를 우습게 여긴 서양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 같으니…. 당신 친척이 언제 나와 그 음식을 먹지요?” 아무 말없이 서양인과 무덤에 놓여진 꽃을 보던 한국인, “당신 가족이 일어나 꽃향기를 맡을 때쯤이면.”●등대지기 한 외딴섬의 등대에 남자 등대지기가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날 우편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러 등대지기를 찾았다. “기껏 잡지 하나 배달하려고 배 타고 꼬박 하루 걸려 이 섬에 도착했소.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기분이 상한 등대지기가 한마디했다. “당신, 자꾸 투덜거리면 일간신문 구독할 거야.”
  • [웃음치료사 최규상의 Smile again]가정을 행복하게 운전하는 법

    [웃음치료사 최규상의 Smile again]가정을 행복하게 운전하는 법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유머 하나로 시작합니다. 남자 1: 결혼 10주년이라 아내와 함께 호주여행을 가려고 해 남자 2: 우와. 대단하네. 그럼 결혼 20주년에는 어디 갈 건데? 남자 1: 글쎄. 그때 호주 가서 아내를 데려와야겠지? 웃었지만 씁쓸한 유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스개도 요즘 대유행입니다. 어느 날 남편을 출근시켜 놓고 한 아내가 로또복권을 맞춰보고 있는데 세상에 1등에 당첨된 것입니다. 너무나 신이 나서 남편에게 1등에 당첨됐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점심 먹고 회사를 조퇴하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남편: 여보! 로또 1등에 당첨된 거 정말이야? 아내: 응 정말이야. 자기. 빨리 짐 싸! 남편: 알았어. 남편은 짐을 기분 좋게 꾸리면서 말했다. 남편: 근데 어디로 갈까? 호주, 캐나다 아냐. 아냐. 스위스의 알프스로 떠나자. 아내: 아니… 그게 아니고, 너 나가! 얼마 전 한 잡지에서 40~50대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에서 “버릴 수만 있다면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남편이 1위로 나타났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완벽하게 “나는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부는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살다보면 무덤덤해지는 것이 부부관계인 모양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때로 무관심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무관심은 무표정으로 그리고 무반응으로 진행되면서 부부의 사랑도, 관계도, 사는 것도 덤덤해져 버리는 것이겠지요. 이번 호에는 부부관계뿐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웃음을 회복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서로를 위한 몇 가지 기법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당당하게 져주면서 살자고요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이 만든 “당신 멋져!”라는 건배사가 최근 인기입니다. 그런데 건배사의 내용이 참 재미있습니다. 당: 당당하게… 신: 신나게… 멋: 멋지게… 져: 져주면서 살자 당당하고 신나게 멋지게 사는 것도 좋은데 져주면서 살라는 말이 맘에 듭니다. 사소한 것에도 자존심이 발동되어 갈등을 만들어낸다면 이미 부부간의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져주면서 살면 어떨까요? 이기려고만 한다면 1cm 떨어진 부부간의 거리도 지구 한바퀴를 돌아오는 멀고 지루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떨어진 거리만큼 미움과 원망이 커지게 됩니다. 둘째, 즐거운 대화법을 쓰자고요 미국의 코미디언 ‘크리스 룩’은 세 가지 문장만 잘 반복하면 어떤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첫째, “그래?” 둘째, “음” 셋째, “공감이야!”입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절대로 따지지 말고 일단 맞장구를 쳐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의 대화는 주로 감정 표현을 위한 것이고 남자들의 대화는 인정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마디의 말로 충분히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123행복화법’을 구사한다면 부부간의 대화는 더 맛깔스러워질 것입니다. 1분 이내로 말하고 2분 이상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며 3번 이상 맞장구를 치며 칭찬을 해준다면 대화가 더 즐거워질 것입니다. 똑같이 자녀에게도 사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셋째, 유머를 나누어 보세요 유머는 참으로 흥미있는 주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유머 코칭이나 컨설팅을 하게 되면서 100명에게 물어보면 거의 95명 정도가 자신은 유머 감각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결국 그만큼 웃을 일이 적다는 것이며 삶이 딱딱하며 무미건조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 또한 유머 감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년 반 전부터 하루에 하나씩 아내에게 유머를 해주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아내는 웃기 시작했고 재미없더라도 크게 웃어주었습니다. 그래야 제가 힘이 나서 다음날에도 또 유머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아내와 웃게 되면서 웃음이 회복되었고 서로간에 풍부한 대화의 물꼬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해보면 알겠지만 웃음거리는 마음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이야기깃거리가 없는 부부들이 참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부터는 유머를 나누어 보세요..인터넷에 널려 있는 유머들을 나누어 보세요. 유머는 사랑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했던 것 중에 가장 멋진 히트작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꼭 사용해 보세요.. ”여보… 내일 경복궁에 가자” ”아니…, 갑자기 경복궁은 왜?” ”응…. 처갓집에 못 간 지 오래됐잖아.” 얼마 전 어떤 방송에서 부부간의 대화 시간을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하루 평균 부부간 대화 시간이 2분 37초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 28명의 주부가 가출하는데 근본 원인은 대화 부족에 있다고 합니다. 작지만 사소하지 않는 것. 바로 웃음과 유머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글 최규상 한국유머전략연구소(http://blog.daum.net/humorcenter) 소장 (cutechoi@dreamwiz.com)
  • 일제시대 살인의 추억 ‘조선형사 홍윤식’

    일제시대 살인의 추억 ‘조선형사 홍윤식’

    ‘샤알록 홈즈’는 산 사람일까, 죽은 사람일까. 서대문경찰서 강력1반 사환 말희가 형사 홍윤식에게 묻는다. 홍윤식은 입술을 씰룩인다. “그래, 얘기 속에서만큼은 그럴 듯하게 살아 있으니까…그 얘기가 살아있는 한 쉽게 죽을 수가 없겠구나.” ‘조선형사 홍윤식’(9월 2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2관)은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는다. 그게 그에겐 첨단과학이다.1933년 경성 죽청점(서울 충정로)에서 잘려나간 아기 머리통이 발견되자, 홍윤식이 제일 먼저 들여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주는 현미경. 그러나 정작 사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이 해결해 준다. 순간, 홈즈의 실재를 부정하던 홍윤식은 말희의 말을 떠올렸을 게다.“그렇지만 도까비는 실제로 있었세요. 봤다는 사람도 있는 걸요.” 작품은 잔인한 소재로 먼저 ‘지르고’ 들어간다. 그러나 사근거리는 말희의 입말이 무거운 주제를 동동 띄운다.‘모단’에 눈떠가는 당시 일상의 세밀화도 볼거리다. 머릿수건 하나 집어던지며 아낙에서 여학생으로 변했다가, 가고시마산 고구마 소주를 훔쳐 달아나는 도깨비로 분하는 세 여배우의 넉살은 훈훈하다. 그대로 극장 밖으로 나가도 손색없을 노숙자 ‘뻐꾸기’의 과장되지 않은 웃음과 언어유희도 좋다. 이렇듯 ‘조선형사’의 외피는 모던보이의 유쾌한 걸음을 닮았다. 거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돈 몇 푼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이 겨누고 있는 지점은 배꼽이 아니라 근대와 전근대, 일본과 한국, 빈부 사이의 모순이다. 새로 생겨난 도시의 흥성거림 속에서도 죽은 아이 묻을 돈이 없어 밤에 몰래 무덤을 파는 하층민이 있다. 본인도 ‘조선놈’이면서 “조선놈들은 닦달해야 말을 하는 습성이 있어.”라며 애먼 노숙자를 잡아패는 형사도 있다. 결말은 생경하지만,‘조선형사’는 장면장면에 깃든 이야기의 매력이 진하다. 홍윤식, 그도 얘기가 살아 있는 한 쉽게 죽을 순 없을 것 같다.‘샤알록 홈즈’가 그랬듯이….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한류는 일본개신교 부흥에 최고 기회”

    “한류는 일본개신교 부흥에 최고 기회”

    “흔히 일본은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말을 합니다. 신자가 1%도 채 안될 만큼 기독교가 자리잡기 어려웠지요. 개인적으로 한류는 이 무덤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3월부터 일본에서 ‘러브 소나타’ 순회공연을 마련해온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는 “가정의 위기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야말로 복음화의 큰 방편이 될 수 있다.”며 ‘러브 소나타’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의 개신교는 지난 100년간 엄청난 성장을 해왔지만 ‘회개’와 ‘반성’이 큰 화두로 대두될 만큼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반면 그런 성장과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일본의 개신교는 부흥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 목사가 기대하는 것은 비단 선교와 복음화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한류가 확산되면서 종전과 다르게 일본인들이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문화와 영적 측면에서 한·일 양국 국민이 일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지요.” 우선 한·일 양국이 문화 교류를 통해 지난 역사의 갈등과 아픔을 풀고 화해한다면 한·일을 넘어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심각한 북한, 중국, 인도, 이슬람 세계에까지 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릴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일본에 잘 알려진 한류 스타들을 대거 참여시킨 것은 무엇보다 비신도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한 것. 하 목사는 “사이타마현 공연 참가자를 2만여명으로 추정했지만 지금 추세라면 예상 인원을 초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러브 소나타’가 한·일 양국 기독교계에 새로운 부흥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하 목사는 11월중 삿포로·센다이 순회 공연에 이어 내년 1만 2000명이 참여하는 타이완 공연을 추진하는 등 ‘러브 소나타’를 아시아권 전체로 확산시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美 네오콘 ‘이라크 철군론’ 대반격

    美 네오콘 ‘이라크 철군론’ 대반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내에서 이라크 주둔군의 철수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신문 10일자 1면 참조> 이라크전쟁을 주도해 온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등 보수강경파들은 “지금 물러서면 끝장”이라며 “버티는 게 최선”이라고 조지 부시 대통령을 다그치고 있다. 네오콘을 대변하는 위클리스탠더드의 윌리엄 크리스톨 편집장은 9일(현지시간) 이 잡지의 웹사이트에 게재한 글에서 “부시에게 이라크 조기 철군 결단을 압박하는 논의가 백악관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다.”면서 “대통령은 철군 주장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톨은 의회에서 이라크 철군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백악관 내부에서 미군 철수 “대타협”을 조언하는 목소리가 제기됨에 따라 이번 주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미군에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느냐, 철군 요구를 수용하느냐의 ‘결단의 순간’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대통령이 지금 철군 요구에 굴복한다면 좌파들은 잘못된 전쟁을 벌였다고 공격하고 우파들은 전쟁에 실패했다고 추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럴 경우 그는 “부시는 남은 임기동안 피범벅이 된 물 속에서 상어떼들이 죽이려 달려드는 것과 같이 의회조사를 받느라 허우적거려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 철군 결정을 내리면 대통령은 철군 부작용을 완화하거나 관리할 능력을 잃고, 알 카에다와 이란에 승리를 안겨 주고 미국에는 도덕적·지정학적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샤르 제바리 이라크 외교장관도 미국내 철군 논의와 관련,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미군이 철수하면 무덤을 파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내전이 일어나 이라크가 분단되고 더 나아가 중동지역 내에 분쟁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이날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철군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와 관련,“현재로서는 이라크 철수 논의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정치적 판단이 아닌 군사적 결정에 따라 이라크 미군을 철수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스노 대변인은 오는 11월까지 이라크 전역의 치안권을 현지 병력에 이양하겠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거기에 이를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비관적인 이라크 상황을 부인하지 않았다.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과 미국의 주요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고 현지에 주둔 중인 미군을 즉각 철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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