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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15일 오사카서 ‘겨레얼살리기’ 행사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장)는 8월 15일 오전 11시 일본 오사카 민단본부 5층 대강당에서 제62주년 광복절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재일교포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는 것이 행사의 취지. 일본 기타큐슈대 김봉진 교수가 ‘일본에서의 한류현상과 겨레얼살리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가수 정수라의 노래무대와 이화여대 곽은아 교수의 가야금 연주 등 공연이 마련된다.8월 16일 오전 10시 교토 귀무덤에서는 임진왜란 희생자 위령제도 열린다.
  • 태안 앞바다 청자 침몰선 발굴·인양 현장

    충남 태안 앞바다의 고려시대 침몰선에 실려 있는 청자는 그동안 서남해안에서 잇따라 발굴이 이루어진 다른 침몰선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쉽게 말해 왕이나 귀족의 무덤에 껴묻거리로 특별히 제작한 청자를 예외로 한다면, 왕실과 귀족, 승려들이 실생활에 쓰던 것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실제로 2002∼2003년 군산 비안도와 2003∼2004년 군산 십이동파도,2006∼2007년 군산 야미도에서 모두 1만점이 넘는 청자가 수습되었지만, 도자기 역사를 규명하는데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모양과 빛깔은 그리 좋지 않은 중하급품이었다. 하지만 태안 대섬 청자는 아직까지 한 점이 인양된 참외형 주전자처럼 몇몇 특별한 형태가 아니라, 대종을 이루는 사발과 찻그릇이라도 하나하나가 박물관에 진열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기형이 뛰어나고 빛깔도 훌륭하다. 1983∼1984년 전남 완도 어두리의 12세기 고려선박에서 도자기 3만여점이 발굴된 적이 있음에도, 태안 대섬을 송·원대 도자기 2만 2000여점 등을 수습한 1976년의 전남 신안 중국 무역선 이후 최고의 수중발굴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용이 명지대 교수는 “상감청자가 확인되지 않는 반면 상감청자의 전단계로 흰선을 그려 넣은 백니청자가 나온 것은 침몰연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면서 “사발과 대접, 접시, 찻그릇은 물론 승려가 쓰던 바릿대까지 다양한 그릇이 쏟아져 청자의 편년에 결정적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침몰선이 발견된 태안 대섬 해역은 신진항에서 3㎞ 남짓, 국방과학연구원이 마주 보이는 육지와는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았다. 주꾸미 어장으로 각종 선박이 빈번하게 오가는 데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 고려시대 선박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불가사의하게 여기는 분위기이다. 태안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CEO칼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영하 LG전자 사장

    [CEO칼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영하 LG전자 사장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구절을 신라시대 원효대사의 일화에서 배웠다. 원효대사가 불법(佛法)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로 가던 도중 노숙하게 됐다. 밤에 자던 중에 목이 말라 머리맡에 있는 숭늉을 아주 맛있게 마셨다. 이튿날 깨어 보니 노숙한 곳은 오래된 무덤이었고 머리맡에 있는 물은 해골 바가지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 순간 구역질이 나고 토했지만 이미 소화가 된 뒤라 나올 리 만무했다. 여기서 원효대사는 깨달았다.“어떻게 같은 해골 물이 몰랐을 때는 맛있었고 알았을 때는 구역질이 나는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일체유심조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불경에 나오는 구절인 것 같다. 이 말은 이후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가훈이기도 하다. 지금도 회사를 경영할 때 종종 이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어려움이 수시로 닥쳐 온다. 그럴 때마다 사업의 어려움이란 것이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아니고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구성원들의 하고자 하는 마음이 합쳐지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꿈과 비전을 갖는다는 것이다. 큰 꿈과 포부가 있어야 나아갈 길을 명확히 알고 흔들림 없이 나갈 수 있으며 남들보다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고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안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된다고 마음을 먹고 방법을 구하다 보면 반드시 해법은 나오기 마련이다. LG전자 창원공장에는 수많은 ‘TDR’(Tear Down Redesign·제품을 아예 뜯어보고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혁신 방안을 찾아내는 활동) 팀이 가동되고 있다. 그 중에는 놀랄 정도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내는 곳이 있다. 그때마다 사람의 지혜와 자발적인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매번 성공체험을 맛보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결과에 앞서 100%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전력투구를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도전조차 하지 않는 사람과 도전하는 사람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도전하는 사람은 실패의 경험 속에서 반드시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 차이는 바로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간다 마사노리는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가 분명한데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공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의 말처럼 힘이 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가능한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젊은이들이 큰 꿈과 비전을 갖기 바란다. 그리고 항상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해낼 수 있다는 ‘일체유심조’의 마음가짐을 갖자. 그러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영하 LG전자 사장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3) 월출산~나주 영산포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3) 월출산~나주 영산포

    전남 영암은 ‘소금강’인 월출산(해발 809m) 자락에 휘감겨 있다. 귀양길에 재를 넘던 윤선도가 “미운 게 안개로구나.”라고 탄식했듯, 기암괴석 봉우리는 늘상 구름 속에 노닌다. 월출산은 해남·강진·장흥쪽 길목이어서 나그네 쉼터로 그만이다. 또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박사,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최지몽이 월출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한다. 천년 고찰 도갑사, 왕인박사 유적지에는 산의 정기를 받으려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덕진 할머니의 돌다리 30여m 복원 한때 기선(汽船)이 드나든 포구였던 영암천은 1981년 영산강둑이 바닷물을 막으면서 작은 시냇가로 오그라들었다. 옛날 영암천은 덕진포로 불렸다. 포구 양쪽 언덕배기에 나그네들의 여정을 풀어주는 주막이 즐비했다.‘덕진’은 이곳 주막의 주모 이름이다. 그가 평생 모은 300냥으로 1000척(尺·303m) 되는 돌다리를 놨다고 전한다. 당시 돌다리 모습이 하천에 30여m 복원됐다. 앞에는 덕진 숭덕비가 세워졌다. 조만국(78·덕진면 장선리) 영암노인대학장은 “해마다 5월5일 단오날에 덕진면장 주관으로 면민들이 덕진 추모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조씨와 함께 나온 노인들은 “왕건과 견훤이 사생결단을 벌인 곳이 덕진포 전투이고 이 싸움에서 이긴 왕건이 금성(나주)에 입성해 통일 발판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영암천 앞 벌판 한가운데쯤이 영보역이다. 이 역은 통일신라 멸망으로 경주로 가는 길이 쇠락하면서 조선 초에 덕진면 영보리에서 영암읍으로 옮겨왔다. 그래서 지명 그대로 영보역이다. 당시 영보역 자리에는 영암 공설운동장이 들어섰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모이게 하는 기능은 같지만 영보역을 기억하는 주민도, 푯말도 없다. 다만 영암산림조합 뒤편 마을인 역리 1∼4구가 역이 있었다는 명맥을 잇는다. 영보역에서 나주 영산강 앞까지는 28㎞(70리길)다. 오가는 데 가파른 고갯길이 없고 낮은 구릉이다. 옛길도 국도 13호선(나주∼강진)과 겹치는 등 엇비슷하다. 길 양쪽 들판 여기저기에 벼농사용 물을 가둬두는 인공 저수지가 보인다. 옛길을 짚어가는 주변 마을에는 ‘원등’이라고 불리는 곳이 적잖았다. 원님이 말을 타고 가다 발을 쉬게 하던 곳이다. 마을회관에서 수박을 먹던 문재현(73·신북면 이천리)씨는 “어렸을 때 원등에서 놀다가 땅을 파보면 깨진 기왓장과 주춧돌이 나왔다.”고 기억했다. 세월 속에 정자는 오간 데 없고 구부러진 소나무 대여섯 그루만 풍상을 견디며 자리를 지킨다. 영암군 문헌에는 이천리에 있던 부소원에서 나그네들이 쉬어갔다고 했다. 그래선지 마을 노인들은 옛길을 그런대로 잘 기억했다. 노인들은 “원등에서 100m쯤 아래로 가면 양반들이 타고 가던 말에게 물을 먹이던 방죽이 있고 그곳을 말 물통이라고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백제와 신라군이 맞붙어 싸웠다는 전설 같은 말도 곁들였다. 이곳은 수백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연꽃과 억새 등으로 뒤덮인 손바닥만 한 방죽이었다. 영암휴게소 건너편 대방제(저수지)에서 조금 올라간 곳이다. 동네사람들은 나그네들이 행장을 추스른 뒤 방죽 둑길을 따라 한양길을 재촉했다고 덧붙였다. 이 언덕배기 옆으로 난 국도 13호선도 옛길처럼 오르막이다. 영보역에서 12㎞(30리)쯤 온 지점이니 주막거리가 있었을 법하다. ●100여년 전 새로 생긴 고을 ‘신북면´ 지금은 주유소를 겸한 영암휴게소가 주막집을 대신하고 있다. 비탈길이 평지로 바뀔 즈음엔 100여년 전에 새로 생긴 고을이라는 뜻의 신북면이 있다. 면 소재지인 월평리에서 ‘보해마트’를 하는 류진문(74)씨는 생생한 기억을 되살렸다. 류씨는 “13호선 바로 옆 연안주유소 뒤로 산비탈 길이 있었는데 달구지가 다닐 만큼 넓었다.”고 했다. 신북면 소재지에서 4㎞쯤 서쪽으로 가면 경주 왕릉에 버금가는 나주 반남 고분군이다. 반남면 자미산(해발 98m) 좌우 1.8㎞ 안에 무덤 35개가 흩어져 있다. 고대국가 형성 이전에 영산강을 지배하던 세력들의 무덤으로 추측된다. 일제가 4트럭 분량 유물을 마구 도굴하고 덮어버렸다고 한다. 이천∼호산∼월평을 지나 6∼7㎞를 더 가면 나주시 세지면 죽동리와 왕곡면 신원리로 접어든다. 국도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신가리가 있었다. 신가리1구 한재근(77)씨는 “말이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을 때 여기에 신안역이라는 역촌이 자리했다.”고 말했다. 포장도로가 신원리1구 마을 한복판을 뚫고 지나면서 마을이 나눠졌다. 나주 신원리 보건진료소는 길 아래쪽에 있다. 지금부터 200년 전에 생긴 이 마을을 사람들은 ‘쌍다리’라고 부른다. 면장을 지낸 황치봉(74·신원1구)씨는 “원님이 말을 타고 한양 다니기 좋게 쌍다리를 놨다는 말을 들었다. 영산강 흘러드는 만봉천의 작은 고랑에 어른 키만한 돌 2개로 놓은 쌍다리를 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원님이 지났던 쌍다리 77년 사라져 이 마을 노인회관 앞 회관 건립 표지석에는 ‘1977년도에 원님이 지났던 쌍다리가 경지정리로 사라졌다.’고 적었다. 또 마을에서 해마다 겪는 홍수를 피하기 위해 농악놀이와 함께 꼭 거문고를 타서 액운을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원리는 ‘거문고 금’자를 써서 금동마을로도 불린다. 지금은 영산강 제방으로 물길이 틀어져 마을 앞은 논으로 변했다. 논둑에 서서 고개를 빼들면 양산리와 장산리 들판이 다가선다. 흐르는 땀을 닦고 선들바람을 쐬니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이 반긴다. 영암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장보고와 평생 동지 정년 선암마을 앞뒷집서 출생 “영보역은 통일신라 말까지 수도인 경주로 가는 가장 큰 길목으로 내동마을 뒷산인 옥녀봉 능선 야트막한 자락을 넘으면 영암 금정면으로 이어집니다.” 신희범(74·호남의병 연구가·덕진면 운암리 선암마을)씨는 이 길(영보리∼경주간)은 지금으로 치면 고속도로 나들목만큼이나 우마차와 사람들 왕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영보역 주변에는 동헌과 객사, 주막, 난전, 술집 등으로 번잡했다. 여기에다 길을 재촉하는 외지인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했다.6·25전쟁 때는 이 길 옆으로 작전 도로가 났다. 지금은 광주∼완도간 고속도로 건설 예정지다. 하지만 조선시대 초 영보역은 덕진면 영보리에서 지금의 영암읍내로 옮겨갔다. 지금은 ‘원조’ 영보역도, 그후 이전한 영보역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덕진면 내동·강곡 등 12개 마을을 통틀어 영보리로 일컫는다. 대부분 거창 신씨, 전주 최씨 일문이 산다. 신씨는 “1967년에 마을 덕진포 앞에서 배수로 공사를 할 때 쏟아져 나온 배 뻘판 등이 마을 앞까지 바다였음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박인규(76·송석정 마을)씨는 “지금은 간척지로 논이지만 어릴 적에 마을 이름을 선창마을 또는 선창머리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내동마을 앞에는 오늘날 학교인 영보정(永保亭·지방기념물 104호)이 400년 된 소나무(나무둘레 2.8m)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곳 학도들이 1931년 형제봉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630년 전주 최씨와 거창 신씨 두 집안이 화의를 다지며 같이 세웠다. 처마 밑 ‘영보정’이란 현판은 조선 명필 한석봉이 쓴 것이다. 이곳 출신인 신희남(1580년 강원 관찰사)이 그의 스승이다. 신씨는 이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장보고(본명 궁복)와 그의 평생 동지인 정년이 이곳 선암마을 앞뒷집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지금껏 장보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출신지가 ‘해도인(海島人)’으로만 기록돼 있을 뿐이다. 신씨는 “예부터 이들 두 사람 때문에 선암마을은 무장골로 불렸다. 당시 덕진포는 완도까지 관할했는데 장보고는 마을 앞 덕진포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뒤 이 마을은 동백나무가 많은 천민 집단인 ‘동백소’로 전락했다고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암 동쪽 15리 지점에 동백소가 있다’라고만 적었다. 영암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깔깔깔]

    ●우리 문화를 뭘로 보고 한 서양인이 친구의 무덤에 꽃을 놓고 기도를 했다. 마침 그때, 바로 옆 무덤에 한국인이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평소 한국 문화를 우습게 여긴 서양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 같으니…. 당신 친척이 언제 나와 그 음식을 먹지요?” 아무 말없이 서양인과 무덤에 놓여진 꽃을 보던 한국인, “당신 가족이 일어나 꽃향기를 맡을 때쯤이면.”●등대지기 한 외딴섬의 등대에 남자 등대지기가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날 우편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러 등대지기를 찾았다. “기껏 잡지 하나 배달하려고 배 타고 꼬박 하루 걸려 이 섬에 도착했소.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기분이 상한 등대지기가 한마디했다. “당신, 자꾸 투덜거리면 일간신문 구독할 거야.”
  • [웃음치료사 최규상의 Smile again]가정을 행복하게 운전하는 법

    [웃음치료사 최규상의 Smile again]가정을 행복하게 운전하는 법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유머 하나로 시작합니다. 남자 1: 결혼 10주년이라 아내와 함께 호주여행을 가려고 해 남자 2: 우와. 대단하네. 그럼 결혼 20주년에는 어디 갈 건데? 남자 1: 글쎄. 그때 호주 가서 아내를 데려와야겠지? 웃었지만 씁쓸한 유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스개도 요즘 대유행입니다. 어느 날 남편을 출근시켜 놓고 한 아내가 로또복권을 맞춰보고 있는데 세상에 1등에 당첨된 것입니다. 너무나 신이 나서 남편에게 1등에 당첨됐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점심 먹고 회사를 조퇴하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남편: 여보! 로또 1등에 당첨된 거 정말이야? 아내: 응 정말이야. 자기. 빨리 짐 싸! 남편: 알았어. 남편은 짐을 기분 좋게 꾸리면서 말했다. 남편: 근데 어디로 갈까? 호주, 캐나다 아냐. 아냐. 스위스의 알프스로 떠나자. 아내: 아니… 그게 아니고, 너 나가! 얼마 전 한 잡지에서 40~50대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에서 “버릴 수만 있다면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남편이 1위로 나타났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완벽하게 “나는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부는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살다보면 무덤덤해지는 것이 부부관계인 모양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때로 무관심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무관심은 무표정으로 그리고 무반응으로 진행되면서 부부의 사랑도, 관계도, 사는 것도 덤덤해져 버리는 것이겠지요. 이번 호에는 부부관계뿐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웃음을 회복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서로를 위한 몇 가지 기법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당당하게 져주면서 살자고요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이 만든 “당신 멋져!”라는 건배사가 최근 인기입니다. 그런데 건배사의 내용이 참 재미있습니다. 당: 당당하게… 신: 신나게… 멋: 멋지게… 져: 져주면서 살자 당당하고 신나게 멋지게 사는 것도 좋은데 져주면서 살라는 말이 맘에 듭니다. 사소한 것에도 자존심이 발동되어 갈등을 만들어낸다면 이미 부부간의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져주면서 살면 어떨까요? 이기려고만 한다면 1cm 떨어진 부부간의 거리도 지구 한바퀴를 돌아오는 멀고 지루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떨어진 거리만큼 미움과 원망이 커지게 됩니다. 둘째, 즐거운 대화법을 쓰자고요 미국의 코미디언 ‘크리스 룩’은 세 가지 문장만 잘 반복하면 어떤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첫째, “그래?” 둘째, “음” 셋째, “공감이야!”입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절대로 따지지 말고 일단 맞장구를 쳐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의 대화는 주로 감정 표현을 위한 것이고 남자들의 대화는 인정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마디의 말로 충분히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123행복화법’을 구사한다면 부부간의 대화는 더 맛깔스러워질 것입니다. 1분 이내로 말하고 2분 이상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며 3번 이상 맞장구를 치며 칭찬을 해준다면 대화가 더 즐거워질 것입니다. 똑같이 자녀에게도 사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셋째, 유머를 나누어 보세요 유머는 참으로 흥미있는 주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유머 코칭이나 컨설팅을 하게 되면서 100명에게 물어보면 거의 95명 정도가 자신은 유머 감각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결국 그만큼 웃을 일이 적다는 것이며 삶이 딱딱하며 무미건조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 또한 유머 감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년 반 전부터 하루에 하나씩 아내에게 유머를 해주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아내는 웃기 시작했고 재미없더라도 크게 웃어주었습니다. 그래야 제가 힘이 나서 다음날에도 또 유머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아내와 웃게 되면서 웃음이 회복되었고 서로간에 풍부한 대화의 물꼬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해보면 알겠지만 웃음거리는 마음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이야기깃거리가 없는 부부들이 참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부터는 유머를 나누어 보세요..인터넷에 널려 있는 유머들을 나누어 보세요. 유머는 사랑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했던 것 중에 가장 멋진 히트작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꼭 사용해 보세요.. ”여보… 내일 경복궁에 가자” ”아니…, 갑자기 경복궁은 왜?” ”응…. 처갓집에 못 간 지 오래됐잖아.” 얼마 전 어떤 방송에서 부부간의 대화 시간을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하루 평균 부부간 대화 시간이 2분 37초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 28명의 주부가 가출하는데 근본 원인은 대화 부족에 있다고 합니다. 작지만 사소하지 않는 것. 바로 웃음과 유머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글 최규상 한국유머전략연구소(http://blog.daum.net/humorcenter) 소장 (cutechoi@dreamwiz.com)
  • 일제시대 살인의 추억 ‘조선형사 홍윤식’

    일제시대 살인의 추억 ‘조선형사 홍윤식’

    ‘샤알록 홈즈’는 산 사람일까, 죽은 사람일까. 서대문경찰서 강력1반 사환 말희가 형사 홍윤식에게 묻는다. 홍윤식은 입술을 씰룩인다. “그래, 얘기 속에서만큼은 그럴 듯하게 살아 있으니까…그 얘기가 살아있는 한 쉽게 죽을 수가 없겠구나.” ‘조선형사 홍윤식’(9월 2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2관)은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는다. 그게 그에겐 첨단과학이다.1933년 경성 죽청점(서울 충정로)에서 잘려나간 아기 머리통이 발견되자, 홍윤식이 제일 먼저 들여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주는 현미경. 그러나 정작 사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이 해결해 준다. 순간, 홈즈의 실재를 부정하던 홍윤식은 말희의 말을 떠올렸을 게다.“그렇지만 도까비는 실제로 있었세요. 봤다는 사람도 있는 걸요.” 작품은 잔인한 소재로 먼저 ‘지르고’ 들어간다. 그러나 사근거리는 말희의 입말이 무거운 주제를 동동 띄운다.‘모단’에 눈떠가는 당시 일상의 세밀화도 볼거리다. 머릿수건 하나 집어던지며 아낙에서 여학생으로 변했다가, 가고시마산 고구마 소주를 훔쳐 달아나는 도깨비로 분하는 세 여배우의 넉살은 훈훈하다. 그대로 극장 밖으로 나가도 손색없을 노숙자 ‘뻐꾸기’의 과장되지 않은 웃음과 언어유희도 좋다. 이렇듯 ‘조선형사’의 외피는 모던보이의 유쾌한 걸음을 닮았다. 거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돈 몇 푼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이 겨누고 있는 지점은 배꼽이 아니라 근대와 전근대, 일본과 한국, 빈부 사이의 모순이다. 새로 생겨난 도시의 흥성거림 속에서도 죽은 아이 묻을 돈이 없어 밤에 몰래 무덤을 파는 하층민이 있다. 본인도 ‘조선놈’이면서 “조선놈들은 닦달해야 말을 하는 습성이 있어.”라며 애먼 노숙자를 잡아패는 형사도 있다. 결말은 생경하지만,‘조선형사’는 장면장면에 깃든 이야기의 매력이 진하다. 홍윤식, 그도 얘기가 살아 있는 한 쉽게 죽을 순 없을 것 같다.‘샤알록 홈즈’가 그랬듯이….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한류는 일본개신교 부흥에 최고 기회”

    “한류는 일본개신교 부흥에 최고 기회”

    “흔히 일본은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말을 합니다. 신자가 1%도 채 안될 만큼 기독교가 자리잡기 어려웠지요. 개인적으로 한류는 이 무덤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3월부터 일본에서 ‘러브 소나타’ 순회공연을 마련해온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는 “가정의 위기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야말로 복음화의 큰 방편이 될 수 있다.”며 ‘러브 소나타’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의 개신교는 지난 100년간 엄청난 성장을 해왔지만 ‘회개’와 ‘반성’이 큰 화두로 대두될 만큼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반면 그런 성장과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일본의 개신교는 부흥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 목사가 기대하는 것은 비단 선교와 복음화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한류가 확산되면서 종전과 다르게 일본인들이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문화와 영적 측면에서 한·일 양국 국민이 일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지요.” 우선 한·일 양국이 문화 교류를 통해 지난 역사의 갈등과 아픔을 풀고 화해한다면 한·일을 넘어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심각한 북한, 중국, 인도, 이슬람 세계에까지 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릴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일본에 잘 알려진 한류 스타들을 대거 참여시킨 것은 무엇보다 비신도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한 것. 하 목사는 “사이타마현 공연 참가자를 2만여명으로 추정했지만 지금 추세라면 예상 인원을 초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러브 소나타’가 한·일 양국 기독교계에 새로운 부흥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하 목사는 11월중 삿포로·센다이 순회 공연에 이어 내년 1만 2000명이 참여하는 타이완 공연을 추진하는 등 ‘러브 소나타’를 아시아권 전체로 확산시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100년전 궁중무희의 비애 생생히 느껴지네요”

    “명성황후는 이곳에서 초식동물처럼 쫓기다 숨을 거뒀습니다. 정신적인 어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걸 두 눈으로 봐야 했던 건 리진만의 비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을미사변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소설 ‘리진’의 작가 신경숙(44)이 10일 오전 독자 70명과 함께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건천궁 앞에 섰다. 프랑스 공사인 콜랭 드 플랑시를 따라 프랑스로 떠났다 돌아온 궁중 무희 리진의 자취를 따라 나선 길이다. 간간이 비가 뿌렸지만, 신씨는 “이건 금방 지나가는 여우비 같은데요.”라며 앞장섰다. 문학평론가 이선우의 사회와 작가의 설명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문학동네와 한국관광공사,YES24 공동 주최로 마련됐다.●경복궁 돌며 리진·명성황후 궤적 밟아답사팀은 오전에 경복궁 곳곳을 돌며 리진과 명성황후의 궤적을 밟았다. 오후에는 명성황후와 고종의 무덤이 있는 홍릉,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의 생가를 찾았다. “궁전이라는 곳은 혼자와서 볼 때와 책 읽고 와볼 때가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어제 여러분께 설명하려고 책을 읽고 와보니 더 뜻깊더군요.” 신씨가 독자들을 처음 안내한 곳은 콜랭과 리진의 첫만남 장소인 영제교. 그곳에서 콜랭은 리진에 반해 카메라를 조끼 안에 넣고 다닌다. 신씨는 “피사체 모르게 찍고 싶어하는 욕망은 그때도 있었나 보네요.”라고 말해 독자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교태전 뒤뜰에서는 리진으로 분한 배우가 멍하니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품어 주던 명성황후의 죽음을 목격한 뒤다.“왕비가 생을 다한 뒤 리진은 왕비가 살던 교태전에 들어와 사흘간 곳곳을 손으로 짚어 봅니다. 패망을 앞둔 나라에 대한 비애와 아울러 왕비에 대한 비애도 느꼈을 겁니다.” 신씨는 지금까지 우리는 명성황후를 권력자나 국모로만 생각해 왔으며, 그에 대한 왜곡도 적잖이 이뤄졌다면서 왕비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소설 낭독 이어 춘앵무 펼쳐져경회루 앞에서는 콜랭이 리진에게 반하게 된 춤인 춘앵무가 펼쳐졌다. 피리 소리를 배경으로 작가의 소설 낭독이 끝나자, 노란 앵삼을 입은 권효진(23·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씨가 소매를 곱게 들어올렸다.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자 경회루를 감싸고 돌던 물결도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리진’의 팬으로 답사길에 함께 따라나섰다는 소설가 김훈씨는 “경복궁에 여러번 왔었지만 오늘 와보니 진짜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리진은 전근대와 근대라는 모순을 똑같이 사랑해 근대화 과정에서 무너져 버린 아름다운 생명”이라고 평가했다. 친구들과 함께 문학투어에 참가한 대학생 변희(25)씨는 “소설로 읽었던 아름다운 장면을 실제로 보면 실망할까봐 걱정했는데 작가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니 상상한 것 이상을 느낄 수 있었다.”고 흐뭇해했다.취업준비생인 전수정(25)씨는 “하나의 소설이 완성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 같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학답사를 이끈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직접 둘러 보니 소설을 쓰던 때보다 생생하다고 활짝 웃었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美 네오콘 ‘이라크 철군론’ 대반격

    美 네오콘 ‘이라크 철군론’ 대반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내에서 이라크 주둔군의 철수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신문 10일자 1면 참조> 이라크전쟁을 주도해 온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등 보수강경파들은 “지금 물러서면 끝장”이라며 “버티는 게 최선”이라고 조지 부시 대통령을 다그치고 있다. 네오콘을 대변하는 위클리스탠더드의 윌리엄 크리스톨 편집장은 9일(현지시간) 이 잡지의 웹사이트에 게재한 글에서 “부시에게 이라크 조기 철군 결단을 압박하는 논의가 백악관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다.”면서 “대통령은 철군 주장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톨은 의회에서 이라크 철군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백악관 내부에서 미군 철수 “대타협”을 조언하는 목소리가 제기됨에 따라 이번 주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미군에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느냐, 철군 요구를 수용하느냐의 ‘결단의 순간’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대통령이 지금 철군 요구에 굴복한다면 좌파들은 잘못된 전쟁을 벌였다고 공격하고 우파들은 전쟁에 실패했다고 추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럴 경우 그는 “부시는 남은 임기동안 피범벅이 된 물 속에서 상어떼들이 죽이려 달려드는 것과 같이 의회조사를 받느라 허우적거려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 철군 결정을 내리면 대통령은 철군 부작용을 완화하거나 관리할 능력을 잃고, 알 카에다와 이란에 승리를 안겨 주고 미국에는 도덕적·지정학적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샤르 제바리 이라크 외교장관도 미국내 철군 논의와 관련,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미군이 철수하면 무덤을 파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내전이 일어나 이라크가 분단되고 더 나아가 중동지역 내에 분쟁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이날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철군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와 관련,“현재로서는 이라크 철수 논의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정치적 판단이 아닌 군사적 결정에 따라 이라크 미군을 철수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스노 대변인은 오는 11월까지 이라크 전역의 치안권을 현지 병력에 이양하겠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거기에 이를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비관적인 이라크 상황을 부인하지 않았다.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과 미국의 주요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고 현지에 주둔 중인 미군을 즉각 철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dawn@seoul.co.kr
  • [11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임정훈, 박은실씨 부부의 사랑과 배려가 세 쌍둥이라는 귀한 결실을 맺게 했다. 소문난 6공주를 보살펴야 하는 어려움도 서로가 있기에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조금씩 아빠, 엄마를 돕기 시작하는 세 자매와 하루가 다르게 살이 통통해지는 세 쌍둥이가 6공주를 돌보느라 지친 부부에게 미소를 안겨준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것과 함께 국무총리의 얼굴이 바뀐 지 꼭 100일이 지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취임사에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서민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 무엇보다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의 지난 100일을 짚어 보고 앞으로의 각오도 들어본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돌발적인 홍수가 일어나,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고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과학자들이 정확한 일기예보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재난을 사전에 경고함으로써 수많은 목숨을 구하게 될 것이다. 정확한 일기예보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세계의 기상학자들을 만나본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지난해 2월 전남 해남의 노송리 저수지. 미모와 재력을 두루 갖춘 지역 유명인사였던 50대 여인이 물속에 잠긴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교통사고로 잠정 결론지었고, 유족은 장례를 치렀다. 저수지에서 벌어진 의문의 교통사고로 무덤까지 파헤친 재수사, 묻혀진 38시간의 진실은?   ●내곁에 있어(MBC 오전 7시50분) 정자는 배선장에게 용기와 민회장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협박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얼마 후 정자는 배선장을 불러 사표를 요구한다. 배선장은 정자가 민회장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 아니냐며 다시 건물을 요구한다. 정자는 법대로 하면 자기도 벌을 받겠지만 배선장도 무사할 수 없다고 받아친다.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한강하구의 철책선을 철거하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환경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반대하고 있다. 철책선이 철거되면 습지 생명체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장항습지에 사는 생명체들을 살펴보고, 습지 보존을 위해 지켜져야 할 철책선의 순기능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2)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2)

    한국불교연합회 소속 대학생 50여명이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고구려의 옛 땅인 중국 동북지역 탐방을 떠났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의 인도로 ‘코리아의 고구려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이번 탐방길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편집자주- 아침 일찍 압록강에 도착했다. 지도에서만 보았던 압록강에 와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북한의 아이들이 중국땅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똑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북한이 중국과는 그나마 교류가 있다는 것이 한민족인 우리들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강 너머로 북한이 보인다.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과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뻗어져나오는 795km의 길이를 가진 강으로 결코 큰강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자 교류의 요지로 선사시대때부터 고구려 6대 태조왕때까지 이 압록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구려 시대에도 압록강 하구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드라마 ‘주몽’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소서노도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선사시대, 고조선, 고구려 모두 압록강지역은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압록강변에서 북한의 담배와 우표를 볼수 있었다. 조선우표에 김정일이 나와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옥수수를 신기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이 창고는 고구려 시대 부경이라고 불리는 창고와 같다. 저렇게 보관하며 삶아 먹기도 하고 떡을 해먹기도 한단다. 고구려 시대에도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고구려 선조들의 지혜가 현재 중국인들의 삶속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 유적 ‘박작성’은 일부 남아있는 성벽만 현재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이 명나라때 쌓은 ‘호산장성’을 박작성 위에 복원하고 박작성의 흔적을 호산장성의 것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호산장성 박물관에 박작성의 우물을 발굴할 당시 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에는 호산장성의 흔적으로 설명이 되어 박작성의 역사를 호산장성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었다. 박작성에서 역사 왜곡의 현장을 확인한 우리 일행은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볼 수 있는 5호묘로 향했다. 5호묘는 입구까지만 촬영이 가능하고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다. 기록을 담아갈 수 없게 하는 것이 야속했다. 5호묘에 들어가니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 사방신(四方神)과 해신, 달신, 연꽃, 화염무늬 등 당시 샤머니즘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을 개방한 뒤로 점점 그림들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때도 많이 희미해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4호묘와 5호묘는 내부가 유사하여 4호묘는 개방 직후 곧 문을 닫았고 5호묘만 관광지로 개방하고 있다. 화강암에 안료를 가지고 그렸다는 신비함과 이곳을 볼 수 있다는 감동, 무덤이라는 두려움 등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연대기대로라면 아버지의 무덤인 광개통대왕릉에 먼저 가야했겠지만 시간상 아들인 장수왕의 묘로 추정되는 장군총을 먼저 갔다. 사방에 각각 3개씩 세워진 정호석. 총 12개의 정호석이 토목공학적인 균형을 이루어 왔는데 뒤쪽만 하나가 사라져 뒤가 점점 내려앉고 있다고 한다. 장군총을 둘러본 후 갑갑한 방탄유리 안에 갇힌 광개토대왕비를 찾았다. 광개토대왕비 또한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촬영이 불가능했다. 문 밖에서 찍을 수 밖에 없었다. 곧이어 광개토대왕릉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 광개토대왕릉 위가 명당이라는 얘기를 나눴다. 물론 사실 확인은 해보지 않았다. 저녁 무렵, 부지런히 ‘환도산성’을 향했다. 환도산성은 산의 능선과 절벽 등을 그대로 활용한 고구려의 전형적인 고로봉식 산성으로서 평양의 ‘대성산성’, 단동 근처 봉성의 ‘봉황산성’과 함께 가장 큰 성이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 근처에 두어 대피성 겸 장기농성전을 위한 수비성으로 활용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환도산성을 나오는길에 국내성터를 지났다. 국내성터는 도로가라 내려서 볼 여건이 안됐다. 사진과 같이 창문너머로만 보며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변을 다시 지났다. 압록강의 야경과 함께 탐방 두 번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 (계속)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1)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김옥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민선4기 취임 1년 뭘 하셨습니까] 김효겸 관악구청장

    [민선4기 취임 1년 뭘 하셨습니까] 김효겸 관악구청장

    김효겸 관악구청장은 취임 1주년을 앞둔 지난달 ‘서울시 제3영어마을 유치’라는 대어를 낚았다. 영어마을 유치는 취임 당시 김 구청장의 제1공약이었다. 김 구청장은 “교육여건을 개선해야 관악이 발전한다는 믿음에 ‘교육특별구’를 목표로 정했다.”면서 “영어마을 유치가 교육특구의 기틀을 다진 셈”이라고 강조했다. 영어마을은 2009년 11월 관악구 봉천7동 낙성대 부근 2만㎡ 부지에 들어선다. 총 사업비는 222억원. 지상 1층, 지상 3층 규모로 출입국 심사대·도서관 등 영어권 국가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 40개가 만들어진다. 특히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과 10분거리여서 기숙사가 없는 ‘통학형 캠프’로 운영할 방침이다. 그만큼 비용도 풍납·수유 캠프보다 저렴하다. 또 기업체 후원을 받아 저소득층 자녀들의 무료 입소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다른 관악구의 교육 사업은 서울대와 손잡고 추진하는 ‘관악 에듀밸리 2020’.‘요람에서 무덤까지’‘실업에서 취업까지’‘일상에서 예술까지’라는 기치로 지역 주민의 평생교육을 서울대가 도맡는 중장기 프로그램이다. 김 구청장은 “세부적인 실천사항을 서울대와 공동연구하고 있다.”면서 “에듀밸리 사업이 추진되면 진정한 교육도시로 부상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교육특구로 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다. 영어마을은 운영 주체가 결정되지 않았다. 서울대, 서울시 과학전시관 등 주변 교육시설과 연계해 영어마을을 운영할 기관을 물색하고 있지만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 서울시는 통학형보다 합숙형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교육시설도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봉천동 북부 지역에는 이렇다할 고등학교가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봉천2·5동 재개발이 끝나면 교육 여건을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김 구청장은 “서울시 교육청이 고등학교(총 24학급) 건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고래실 펴냄

    보존과학자인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가 충남 공주 송산리 6호 벽돌무덤을 처음 찾은 것은 1956년이었다. 그는 습기가 많은 여름철이었는데도 바닥을 포함한 벽과 천장의 벽돌 표면 전체가 완전한 건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의문스러웠다고 한다. 특히 바닥의 중앙부로 곧게 뻗쳐 있는 골이 인상깊었다. 배수로처럼 보였는데 손을 넣어 보니 차가웠고 골을 만들고 있는 통로 표면은 젖어 있었다. 배수로는 묘 주위의 둘레석까지 5m 이상이나 길게 구축되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 보니 배수로에는 어떤 실용적 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항상 묘실의 벽돌 온도는 배수로의 벽돌온도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었다. 밤이나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면 묘실 공간에 퍼져 있던 수분은 배수로 벽돌에 우선적으로 결로(結露)될 것으로 생각됐다. 이 배수로 아닌 배수로는 제습기 구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생각해도 기가 막히게 훌륭한 결로 방지 장치였다고 노학자는 술회했다.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고래실 펴냄)’에 담겨있는 내용이다.‘문화유산… ’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50년대부터 문화유산을 과학적 시각으로 연구한 과학자들의 성과를 정리하고자 ‘고미술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2005년 실시한 특별강좌의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전상운(문화재 위원) 전 성신여대 총장은 “15세기 조선 세종시대 과학자들이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질과 양에서 동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사의 시야에서 볼 때도 유례가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고 우리 역사에 대한 이유없는 열등감을 질타한다. 일본에서 1983년 나온 ‘과학사 기술사 사전’은 1400년에서 1450년까지 주요 업적으로 한국이 29건, 중국이 5건에 일본은 없으며, 동아시아 이외 나머지 전 지역이 28건으로 정리되어 전 세계 학계가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밖에 ▲박성래(문화재 위원)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최항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박상진 전 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 ▲조병묵 강원대 제지공학과 교수 ▲정시영 서강대 기계공학부 교수 ▲강성군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이성구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가 전공분야별로 우리 과학사의 성과를 정리했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최근 출토 백제유물 300점 한자리에

    최근 출토 백제유물 300점 한자리에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백제 고분 발굴이라는 2003년 충남 공주 수촌리 유적에서는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중국제 청자, 마구류 등이 쏟아졌다. 2005년 충남 서산 부장리 유적에서도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철제자루솥 등이 대거 출토되며, 이 해 전국을 통틀어 최고의 발굴성과로 꼽혔다.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기 이전 4∼5세기 한성백제 시대에 유력한 세력이 두 지역에 존재했고, 중앙에서 이 세력을 통제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일간신문의 지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두 유적의 출토품은 이후 보존처리에 들어갔고, 고대사 전공자들이나 미술사학자들은 관심을 갖고 있어도 접근이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수촌리 및 부장리 등 유적 조사에 참여한 충남역사문화원과 손잡고 ‘그리운 것들은 땅 속에 있다’는 제목의 특별전을 새달 3일부터 26일까지 갖는다. 충남역사문화원이 지난 5년동안 백제지역에서 발굴한 300여점의 중요 유물이 출품된다. 백제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관련 학계가 최근의 출토 유물을 연구자료로 적극 활용해 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수촌리 유적에서 금동관모는 1호와 4호 무덤 두 군데서 출현했다. 보존처리가 거의 끝난 4호 무덤 출토품은 지난해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에 출품된 적이 있지만 1호분 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다. 내관(內冠)에 표현된 용무늬는 몸통에 비늘을 표현할 정도로 세밀하며 불을 내뿜는 듯한 혀 또한 인상적이다. 수촌리 1호분의 금동신발도 나온다. 앞과 옆에 T자형 무늬, 바닥에는 마름모꼴 무늬를 각각 반복적으로 넣었다. 이 신발에서는 무덤 주인공의 발뼈가 확인되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부장리 출토 금동관모는 청동 바탕에 금을 입혀 만든 반원형으로,6각형 거북등무늬(구갑문·龜甲文)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안쪽에는 용과 봉황을 속이 보이도록 투조(透彫)했다. 이밖에 웅진도읍기 백제의 토기 생산과 유통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한 청양 학암리 토기가마터와 부여 읍내의 각종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 그리고 백제 지방 산성의 축조 및 운영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인 금산 백령산성 출토품 등이 함께 전시된다. 특별전은 유물을 성격별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별 유적의 양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질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수촌리 1호분이라면 출토된 금동관과 칼, 토기 등을 하나의 세트로 전시하는 방식이다. 이병호 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백제지역에서는 최근 잇따른 발굴로 고고학적 자료들이 다수 축적됐지만 고대사 등 관련 학계와 공유되지 못하고 있어 전시회를 기획했다.”면서 “앞으로 백제지역에서 활동하는 발굴조사기관을 하나씩 선정하여 발굴 결과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별전을 지속적으로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인천 무의도 호룡곡산

    [산이 좋아 산으로] 인천 무의도 호룡곡산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섬 무의도(舞衣島). 인천 연안부두나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닿을 수 있던 곳.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영종도까지 육로가 연결되고 무의도는 세간에 급속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영화 ‘실미도’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무의도는 어느덧 유명 관광지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인천 중구 용유동에 속하는 무의도는 면적 9.43㎢, 해안선 길이가 18.7㎞인 아담한 섬이다. 주변으로 실미도, 무도, 해녀도, 사렴도 등 여러 작은 섬들이 떠있는 모습이 그림 같고 하나개 해수욕장과 실미도 해수욕장은 여름철 피서지로 그만이다. 임야가 섬 전체 면적의 88%를 차지하고 있으니 섬은 그대로 산. 남쪽에 솟은 호룡곡산(虎龍谷山·245.7m)과 북쪽의 국사봉(230m)을 잇는 등산로가 섬의 중앙을 가로지른다. 호룡곡산 산행 코스는 단순하다. 북쪽 큰무리 선착장을 들머리 삼으면 국사봉∼호룡곡산 코스가 되고, 남쪽 샘꾸미 선착장에서 출발하면 호룡곡산∼국사봉 코스다. 영종도에 공항이 들어선 이후로는 접근성이 좋은 큰무리 선착장 쪽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큰무리 선착장에서 실미도 방향으로 가다 야트막한 고개를 들머리로 국사봉과 호룡곡산에 오른 후, 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된다. 거기서 ‘환상의 길’이라 불리는 해변 길을 따라 하나개 해수욕장까지 가는 코스는 총 6㎞로 3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무의도에 가기 위해서는 영종도와 시멘트 다리로 연결된 손바닥만 한 잠진도에서 배를 타야한다.5분 만에 닿게 되는 큰무리 선착장을 빠져나와 삼거리에서 실미도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10분 정도 가면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산행은 여기서 시작된다. 고갯마루에서 왼쪽(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잡풀이 우거진 무덤 위로 올라서면 등산로가 나타난다. 은은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15분 걸으면 2m 높이의 바위 부석암이 나오고, 여기서 처음으로 전망이 트인다. 부석암에 올라서면 서쪽의 실미도가 잘 보인다. 과거 특수부대원들이 북파 훈련을 받았다는 영화 속 실미도는 밀물 때 바다가 갈라지며 무의도와 연결된다. 도로 고갯마루에서 국사봉까지는 40분 거리로, 중간쯤에 전망 좋은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서쪽 바다가 시원하게 뚫리고, 주변 산세가 웅장하여 마치 깊은 산속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정작 국사봉 정상은 비좁고 잡목이 우거져 볼품없다. 국사봉에서 20분 내려가면 조망대가 나온다. 국사봉 아래 능선이 재빼기 고개로 내려서기 직전에 한번 용틀임하여 솟아난 봉우리로 사방 전망이 빼어나다. 특히 백사장이 드넓은 하나개 해수욕장과 건너편 호룡곡산이 장관이다. 조망대에서 15분 내려오면 작은 구름다리가 놓인 재빼기 고개다. 국사봉과 호룡곡산을 이어주는 재빼기 고개는 지대가 워낙 낮아 고개라는 생각보다는 다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호룡곡산으로 올라가는 게 부담스럽지만 50분쯤 발품을 팔면 무의도의 최고봉 호룡곡산 정상에 닿게 된다. 정상에 설치된 삼각 철탑을 지나면 바위지대가 나오고 전망이 시원스레 열린다. 북동쪽으로 하나개 해수욕장이 펼쳐지고, 그 뒤로 국사봉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가 바다를 향해 발을 뻗어 내려오는 모습이 일품이다. 하산은 주능선을 10분 더 타다가 마당바위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을 따르면 된다. 갈림길에는 ‘하나개’라는 간판이 서 있다. 부처바위를 지나 능선을 타고 15분 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계곡으로 내려가게 되고, 직진하면 능선을 타게 된다. 두 길 모두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모든 내리막이 끝날 즈음 눈앞에 바다가 성큼 다가선다. 물이 빠져 훤히 드러난 황톳빛 갯벌, 붉은 바위들이 벼랑을 이룬 해안,1㎞나 길게 이어지는 환상의 길을 따라 걷노라면 어느새 하나개 해수욕장이다. 글 사진 정수정 진우석(월간 MOUNTAIN 기자)
  • [깔깔깔]

    ●딸꾹질 남자가 약국에 들어가 말했다. “딸꾹질 멎게하는 약좀 주세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면서 약사는 약을 찾는 척하더니 갑자기 남자의 뺨을 철썩 후려쳤다. 그리고 히죽거리며 말했다. “어때요?딸꾹질 멎었죠?” 그러자 남자가 약사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 말고, 우리 마누라.”●마누라 때문에 유언장을 작성 공증을 받으러 온 50대 남자에게 변호사가 물었다. “이 유언장을 보니 돌아가신 뒤에 바닷물 속에 묻어달라고 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아니, 왜 하필이면 바다를 선택하셨죠?” “그게 다 마누라 때문이지요.” “네?” “내 마누라는 내가 죽으면 무덤 위에서 춤을 추겠답니다. 그래서 바닷물 속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어디, 출 테면 춰보라지.”
  • [Local] 대가야 왕릉 발굴 30돌기념 포럼

    경북 고령군은 15일 고령읍 대가야박물관에서 대가야 왕릉 발굴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포럼을 연다. 이 행사에서는 윤용진 경북대 명예교수 등 고고학 전문가와 당시 발굴에 관여한 연구자들이 참여, 대가야 왕릉의 발굴 의미와 현장 출토 유물 현황 등을 밝힐 계획이다. 대가야 왕릉은 국내 최대 순장묘(왕과 함께 백성들을 묻은 무덤)인 지산동 44,45호 고분이 1977년 고령군에서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굴되면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 나달 프랑스오픈 3연패

    ‘왼손 천재’ 라파엘 나달(21·스페인)이 11일 파리 롤랑가로에서 막을 내린 프랑스오픈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1위 로저 페더러(26·스위스)를 3-1로 제압했다.1981년 비욘 보리(스웨덴·4연패) 이후 26년 만의 대회 3연패다.‘황제’로 불리는 페더러가 유독 클레이코트에 약한 이유는 뭘까. 나달이 ‘클레이의 황제’로 불리는 건 왜일까. 상대 전적은 8승4패로 나달의 우세. 더욱이 클레이코트에선 6승1패로 압도적이다. ●앙투카의 비밀 테니스코트의 종류는 크게 잔디와 하드, 그리고 클레이 등 세가지로 나뉜다. 이들이 구별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튀는 공의 스피드 때문이다. 가장 빠른 곳은 잔디코트. 하드코트 역시 스피드가 빠르지만 잔디코트에 견줘서는 덜하다. 따라서 하드코트는 베이스라인(끝줄)을 타고 내리면서 강서브와 스트로크를 주무기로 삼는 속전속결형 ‘베이스라이너’에게 절대 유리하다. 페더러가 윔블던 4연패(잔디코트)와 US오픈, 호주오픈(하드코트)을 각각 3차례나 우승한 이유다. 반면 클레이코트에서는 공의 바운스가 가장 느리다. 물론 롤랑가로에 깔린 바닥은 순수한 흙으로만 만들어진 건 아니다. 붉은 벽돌을 갈아 만든 모래를 흙과 섞은 ‘앙투카’다. 영어로 번역하면 ‘in all cases’(전천후)’다. 배수성이 좋아 소나기가 잦은 유럽에서 일찍부터 사용해 왔고, 벽돌가루를 섞은 만큼 공의 스피드를 종잡을 수 없다. 나달의 조국 스페인은 대부분의 코트를 클레이, 혹은 앙투카로 만들어 적합한 기술을 습득시킨다. 프랑스오픈에서 스페인이 통산 9차례 우승으로 최다 우승국의 영예를 뽐내고 있는 배경이다. ●페더러, 맨땅에선 안된다? ‘하드코트 강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 앙투카코트에서 페더러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연 그는 약할까?사실 그는 어릴 적부터 하드코트가 아닌 클레이코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궁합’이다. 그는 홈페이지에서 “클레이는 오래 전부터 친숙하지만 하드코트가 내 스타일에 더 맞는다.”고 밝혔다. 또 하드코트의 강자답게 베이스라이너이기도 하지만 ‘클레이 전문가’가 구사하는 ‘서브 앤 발리’에도 능하다. 그럼에도 그는 스피드를 중요하게 여기는 공격 지향적인 선수다. 페더러는 포인트 한 개를 따기 위해 3,4구 앞을 미리 내다보는 치밀한 전략으로 상대를 몰아붙인 뒤 강한 포핸드로 결정타를 날려 대세를 틀어쥔다. 그러나 클레이에서는 다르다. 한번 튀어오른 공은 큰 마찰로 인해 스피드가 떨어지고 바운드가 커진다. 반응 시간도 길어져 타점과 스윙폭에도 영향을 미친다. 짧고 빠르게 끊어치는 페더러로서는 잘 훈련된 나달에게 당할 재간이 없는 노릇이다. 특별한 대안없이 나달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전술로 나선 것도 ‘앙투카의 재앙’을 자초한 이유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시론] ‘6·10항쟁’ 성찰과 실천/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시론] ‘6·10항쟁’ 성찰과 실천/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6월 민주항쟁이 벌써 스무돌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4·13 호헌발언을 거쳐 6·10 대투쟁,6·29선언,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가 12월16일 대통령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결말로 일단락된 6월 민주항쟁. 그후 20년동안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6월 민주항쟁이 이룬 것과 남긴 것들을 축으로 하여 움직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민주화라고 부르든 분단체제의 변동이라고 부르든 한국사회가 이를 계기로 결정적인 질적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질적 변화를 ‘시민민주혁명의 성취’라고 불러도 좋다.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악조건에서도 남한의 시민계급은 비약적 경제성장으로 독자적인 물적 토대를 구축해 왔고 마침내 6월 민주항쟁과 그후 ‘민주정권’들의 실천을 통해 상부구조로서의 민주적 정치제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분단체제의 탈냉전화와 연성화에도 영향을 미쳐 이제는 통일, 혹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오랜 과제 역시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표면적 성취에 눈이 어두워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군사독재의 오랜 사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도취하고 만족해 질적 변화의 본질을 올바로 꿰뚫어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었던 시민민주혁명은 우리의 오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사적 변화의 한반도적 부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1970년대를 휩쓴 오일쇼크에 의해 순조로운 확장을 저지당한 세계자본주의가 마련한 돌파구는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국가중심적 경제체제를 붕괴시키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무한대로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지구적 관철이었다. 이에 따라 전세계의 ‘민족주의적’ 보호경제는 연쇄적으로 붕괴되었으며 보호경제를 지탱했던 정치적 권위주의 역시 전세계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것이 중남미의 민주화 도미노이고,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군사독재체제의 붕괴와 민주화 역시 그러한 세계사적 외압의 작용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높은 파고 앞에서 심각한 동요를 겪고 있다.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역대 민주정부는 한편으로는 시민민주혁명을 추진해온 ‘민주화권력’이었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권력’이기도 했다.20년 전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주의가 단지 대통령 직선제나 하는 형식적 민주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연대와 사랑을 실천하는 본질적이고 전면적인 민주주의였다면 지금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승자독식의 개인주의와 경쟁주의, 야만적 시장주의의 무한한 확장과 사회적 양극화는 우리가 갈망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배반이자 모욕이 아닐 수 없다. 6월 민주항쟁 20년, 올해는 기념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국가기념일 대우를 받게 된다고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혁명기념일은 곧 혁명의 무덤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흥청망청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어긋난 혁명의 행로를 다시 돌이키는 전면적 성찰과 실천에 다시 불을 지피는 일이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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