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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울산 망해사 쌍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울산 망해사 쌍탑

    부도(浮屠)란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무덤입니다. 부도는 부처를 뜻하는 부다(Buddh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라고 하지요. 처음엔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승탑(僧塔)을 모두 의미했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처럼 승탑으로 한정된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통일신라는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이 조성된 8세기까지 ‘석탑의 나라’였다면 9세기부터는 ‘부도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승탑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었습니다.‘자기의 본성을 깨달으면 곧 부처(見性成佛·견성성불)’라는 종지(宗旨)를 가진 선종이 유행하면서 법맥을 이어받은 선문조사(禪門祖師)는 부처와 다름없는 존재로 받들어졌지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석탑을 만드는 것처럼 일생을 마친 선사의 사리를 안치하는 부도를 자연스럽게 조성했을 것입니다. 통일신라의 부도는 예외없이 팔각형의 집 모양입니다. 이런 모양의 부도는 중국에 선례가 있는데,746년 허난(河南) 회선사(會善寺)에 세워진 정장선사탑과 800년을 전후해 조성된 창안(長安) 초당사(草堂寺) 소요원(逍遙院)의 구마라습사리탑이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탑이나 불전, 누각과 정자 등의 팔각형 집을 매우 고귀한 곳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아미타부처와 관음보살의 도량도 팔각형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팔각형 집 모양의 탑이라고 해서 모두 부도는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부도처럼 보이는 울산 망해사 쌍탑이 승탑이 아닌 불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울산 울주군 문수산 중턱에 있는 망해사(望海寺)는 신라 헌강왕(875∼885년) 때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망해사라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면 ‘삼국유사’에 나타난 처용(處容) 설화의 배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망해사는 옛 절터 아래 새로 터를 닦은 작은 절입니다. 신용철 통도사성보박물관 수석학예사는 망해사터가 부도모양의 쌍탑이 동서로 세워지고 북쪽에 건물을 배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쌍탑가람의 형식이라는데 주목했습니다.9세기 승탑은 양양 진전사터의 도의선사 부도처럼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되다가,10세기에 접어들면서 300보 안팎의 거리에 세워지는 사례가 늘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에 같은 형식의 부도를 같은 장소에 함께 세운 사례는 망해사가 유일하지요. 승탑에는 탑비가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망해사 쌍탑에서는 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지붕돌에 풍탁 같은 장식물을 달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장엄공을 만들어 놓은 것도 불탑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처용 연구가인 김경수 중앙대 국문과 교수는 망해사가 국방상의 이유로 창건된 경주 감은사와 놀라울 만큼 비슷한 구조와 지형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감은사에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이견대(利見臺)가 존재하듯, 망해사에도 옛 절터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바다를 통한 외래인의 왕래를 관찰할 수 있는 망해대(望海臺)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망해사 쌍탑이 불탑이 분명하다면,200년 남짓한 시차가 있지만,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은 신문왕이 부처의 가피력으로 외적을 물리쳐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681년 창건한 감은사의 동서탑과 똑같은 기원이 담겨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망해사 쌍탑은 승탑일 수도, 불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탑이라면 부도 모양으로 조성한 그 배경이 궁금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질 것 같아 불탑설(說)로 조금 더 마음이 기울게 됩니다. dcsuh@seoul.co.kr
  •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김경식(金景植)특파원> 말이 쉬워 1천2백만「달러」지 돈 많은 나라 미국에서도 이 정도의 매상이면 백만장자축에 낀다. 이런 미국에서 10년전 단돈 50「달러」를 가지고 건너온 한 한국청년이 이 기적을 이루어 놓았다. 바로 가발 수출업체인 다나무역의 안인모(安仁模)사장(37). 흑발 전문의 가발업자로 이미 미국선 널리 알려져 「뉴요크」시 한복판 「웨스트」32번가. 밀림처럼 들어선 「빌딩」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은 다나무역 「뉴요크」사무소는 흑발(黑髮) 전문의 가발수출업자로 이미 미국안에선 널리 이름나 있다. 「웨스트」32번가 하면 미국 가발시장의 핵심. 미국안에서 소비되는 가발의 50%가 한국산이니 32번가 한복판에 안사장의 사무실이 들어앉았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서 흔히 자수성가라고 일컫는 재력(財力)에의 욕망을 미국선 「밀리어네어」(백만장자)의 꿈으로 부른다. 재력이 그 사회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큰 미국인지라 백만장자가 되려는 꿈은 청년이면 누구나 한두번쯤 품어보는 꿈. 숱한 세계의 젊은이들이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뉴요크」를 찾아오지만 정작 이 자수성가의 꿈을 이룩한 사람은 미국 전인구의 0.5%도 채 못된다. 더우기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에겐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고작해야 백인의 그늘에서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면 다행이다. 이런 하늘의 별따기를 안사장은 투지와 「아이디어」로 이루어 놓았다. 안사장이 「뉴요크」에 꿈을 둔 것은 10년전인 1960년. 그해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안사장은 거친 사회에의 첫발을 소위 취직시험이란 관문을 거쳐 내디뎠다. 안사장이 처음 이력서를 내민 직장은 자동차판매를 주로하는 어느 외국인상사. 취직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같은 대학의 2,3년 선배를 포함, 모두 1백명에 가까왔다. 그중에서 시험을 거쳐 최종합격된 사람은 단 두명뿐. 물론 안사장도 그 두사람중의 하나였다. 50대1의 험난한 관문을 뚫고 취직은 되었으나 그다음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초라했다. 일을 했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월급밀리기 석달째. 안사장은 회의에 잠겼다. 도미후 먹고 살기도 바빠 아예 공부할 생각은 포기 『이런 취직을 왜 해야하나?』 험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을 때의 꿈은 월급 3개월 체불로 말끔히 사라졌다. 생각끝에 사표를 내기로 했다. 『미국에 가 다시 더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고 사표를 써 집어내던진 것이 취직 6개월째. 그러나 마음먹은 미국가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무역회사가 있어 이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도미후 무보수로 이 회사의 일을 거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도미수속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받게 된 것. 60년 겨울. 「트렁크」 한개와 1백「달러」를 가지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주위에서 얼마 돈을 더 보태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1백「달러」이상을 갖고나가는 것은 불법이며 또 귀한 외화를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 오직 믿는 구석이 있다면 「뉴요크」 「자마이카」 병원에 석달 먼저 와 「인턴」으로 지내고 있는 아내뿐. 「뉴요크」에 도착, 아내와 만났을땐 호주머니속엔 겨우 50「달러」가 남아 있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으로 여러 대학에 「스칼라십」을 얻기 위해 편지를 내어보왔다. 그러나 주급 70「달러」인 아내의 월급으론 대학공부는 커녕 먹고 살기도 바빴다. 그래 어느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3백여 사원중 황색인종은 안씨 단 하나뿐. 제법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주위의 질시로 이 직장도 끝. 다음 들어간 것이 어느 한국수출업계의 한 회사. 그러나 결국 「샐러리맨」으로선 아무런 승부도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자립의 길을 찾았다. 안사장은 밤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국에서 원료를 많이 구할 수 있고 또 인건비가 싼 한국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런 안사장 머리에 가발이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세계 가발시장은 「유럽」제품이 지배하고 있었고, 일본제품이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할 무렵. 안사장은 우선 일본제품을 사들여 미국시장에 팔아 보았다. 제법 잘 팔려나갔다. 63년 안사장은 「체이스·맨해턴」은행으로 부터 3천「달러」를 융자받아 기술자와 약품을 들고 서울로 돌아와 공장을 차렸다. 첫 제품은 아무래도 「유럽」제품보다는 못했다. 흑인여성에게 알맞은 검은 가발에 착상 그러나 장사는 판로가 제일 큰 문제. 안사장은 이미 「유럽」제품에 정들어 있는 백인여성들 대신 흑인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성이라면 흑백을 불문하고 아름다와지려는 욕망은 마찬가지. 이런 점에 착안한 안사장은 검은 「세일즈맨」을 써 한국산 검은 가발을 검은 여성들에게 팔았다. 이 판매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첫 해에 벌써 물건이 달려 못 팔 지경. 자신을 얻은 안사장은 서울공장을 신갈로 옮겨 확장했다. 해마다 매상은 3배에서 10배까지 뛰어올랐다. 그간 안사장이 가발 수출한 실적을 살펴보자. 66년엔 6만7천「달러」, 67년엔 67만「달러」, 68년엔 1백만「달러」, 69년엔 4백80만「달러」, 올해는 11월말 현재 1천55만「달러」를 수출했다. 이렇게 보면 한해 수출액의 증가율은 2배에서 10배. 다나무역의 성장율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성장율 뒤에는 『질좋은 상품, 새로운 「디자인」, 그리고 신용만 지키면 가발시장은 튼튼하다』는 안사장의 철학이 숨어 있다. 안사장은 또 『돈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란 신조를 갖고 있다. 외대(外大)재학시절부터 불우아동을 돕는 「등대회」「멤버」이던 안사장은 해마다 시립아동병원의 어린이들에게 구호의 손을 뻗친다. 내년부터는 모교인 외대에 장학기금도 마련할 생각. 1천2백명의 여공을 갖고있는 신갈공장에선 매달 한번씩 YWCA와 공동주최로 교양강좌를 연다. 단순히 봉급받고 일하는 직장이 아니라 다나의 가족을 만드는 것이 노사협조를 위한 지름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 그래서 여공들의 기숙사는 마치「호텔」과도 같다. 지난 11월30일 제7회 수출의 날에 철탑산업훈장을 탄 안씨의 구호는 『「달러」를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①간접비의 절약 ②과감한 수출행정의 간소화 ③국내업자끼리의 과당경쟁 지양등이 우선 이루어져야겠다고. 이제 안사장의 꿈은 포화상태인 미국시장을 떠나 「유럽」시장을 꼭 제패하고야 말겠다는 것이 안사장의 포부. 2남1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화마에 휩싸인 神들의 땅

    그리스 국토 절반을 잿더미로 바꾼 최악의 산불이 아폴로 신전 등 고대 유적을 위협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잇달아 보도했다. 화재 나흘째인 27일 현재 사망자는 63명으로 늘었다. abc 방송과 AP 통신 등에 따르면 그리스 최대의 문화유적지 인근에 있는 올림피아 마을까지 불길이 접근했다. 그러나 고대 올림피아의 기오르고스 아이도니스 시장은 “유물을 긴급대피, 현재로서는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게오르게 불가라키스 문화부 장관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유적지의 화재 손실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불분명한 태도를 보였다.산불은 강한 편서풍과 고온건조한 기후에 영향을 받아 계속 번지고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고 나면 불이 새로 생긴다고 표현할 정도다. 신들은 산불이 고대 그리스 문명을 파괴할 지 모른다며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2500년 전 펠로폰네소스 문명의 중심지인 그리스 남서부 안드리차니아의 트리폰 아타나소파울로스 시장은 “아폴로 신전을 보호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크로노스 언덕 아래 국제올림픽아카데미(IOA) 앞뜰과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무덤이 있는 숲도 재로 변했다. 교사 게라시모스 카프로울리아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호되고 있다던 유적지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일 줄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스 정부는 올 여름 내내 이어진 가뭄과 폭염이 재앙을 불러왔지만 불과 나흘이라는 짧은 기간에 170여곳이나 산불이 일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며, 방화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개발업자의 소행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세계야생기금(WWF) 그리스 사무소의 니코스 게오르기아디스 박사는 “방화 동기는 산림 지역에 건물을 짓거나 목초지, 개간지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는 그리스에서 방화가 횡행하는 데는 빈약한 환경보호 의식과 정부의 안일한 대처 등 이 나라에서 두드러진 문제점들이 주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환경론자들은 그리스에서는 이런 유형의 방화범을 체포해 처벌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환경보호 의식이 없다 보니 산불 진화에 대한 조치마저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반발도 거세다. 지난 6∼7월 그리스 파르니타산 등지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한 뒤 아테네에서는 수천명의 시민이 정부의 신속하지 못한 대응을 비난하고 화마가 휩쓴 지역에 나무를 새로 심으라고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반면 이번 재앙을 계기로 환경 문제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됐다. 다음달 16일로 예정된 조기총선 결과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테네 뉴스의 편집장 존 프사로풀로스는 “지금 우리는 균열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분명코 큰 문제가 될 것이며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리스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특별 긴급자금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이젠 더 희생되면 안돼”

    “이젠 더 희생되면 안돼”

    인도 시인 안와르 알리(42)가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글을 서울신문에 보내왔다. 시론집 ‘물의 평안’과 시집 ‘우기’ 등을 출간한 시인은 말라얄람어와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인도 케랄라주의 대표 작가다.‘아시아문화네트워크’,‘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지난 수년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연대활동을 펼쳐왔다. 피랍자 무사귀환을 호소하는 제3세계 작가의 글이 한국 언론에 실릴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와르 알리는 현재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학번역원이 진행하는 ‘문화동반자사업’(2007년 6월1일∼11월30일)에 참여, 국내에 머무르며 한국 문학과 문화를 배우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세상의 모든 오사마들 2004년 1월 먼지 가득한 오후, 나는 인도 케랄라주 트리반드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영화 한 편을 보고 있었다. 케랄라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영화 ‘오사마’(탈레반 정권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영화)였다. 넘쳐나는 관객 한가운데서 난 85분 동안 서서 영화를 봤고, 영화가 끝났을 때 내 마음은 피 끓는 눈물로 요동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사마’는 부시나 빈 라덴과는 아무 상관없는 영화다. 탈레반의 냉혈정치로 남성의 보호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다. 전쟁으로 남자 가족을 모두 잃자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소녀와, 어머니, 할머니 세 사람은 동굴 같은 집에 웅크리고 앉아 밥을 굶어야 했다. 할머니가 고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은 손녀의 머리를 잘라 남장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오사마란 이름으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지만, 소녀는 곧 직장을 잃고 탈레반 전사를 양성하는 학교로 보내진다. 남자 행세를 위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 여자임이 밝혀진 소녀는 젊은 여성들을 죄수처럼 집에 가둬두는 늙은 물라(무슬림 사제)의 여럿 아내 중 한 명이 되는 벌을 받는다. 영화 ‘오사마’는 잔혹하다. 그 잔혹함은 ‘침략자 미국’의 이미지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 상영 후 어두운 마을 골목길로 도망치듯 걸어갈 때, 소녀와 어두운 집에 갇힌 어머니, 할머니의 탄식이 인간애가 죽어 묻힌 창백한 무덤길을 따라 나를 쫓아왔다. 며칠 동안 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고향 케랄라는 수천 종의 생물로 가득한 열대지역이다. 수많은 카스트와 종교가 존재하는 저개발 지역이고, 우리 중 다수는 미국과 유럽, 걸프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 공동체는 카스트 내, 종교 내 결혼을 반대하기에는 너무 보수적이다. 다른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데 열려 있으면서도, 때로 우리 자신의 모순에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 난 종교를 믿지 않고, 개인적으론 더 이상 무슬림도 아니다. 하지만 난 이슬람의 위대한 정신과 우리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보여준 자비로운 이슬람식 삶을 존중한다. 힌두교 및 기독교 이웃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인 피랍자들 속 오사마 일년 전 아프가니스탄 거리에서 마니야판 쿠티라는 한 이주노동자가 살해 되는 일이 있었다. 탈레반은 그의 머리를 잘랐고 시체를 고속도로 옆에 던졌다. 최하층 카스트 출신이었던 그는 가난한 가족을 돌보기 위해 외국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그의 운명은 어린 오사마와 다를 게 없었다. 지금 난 마이야판과 오사마와 그들의 가족이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내 눈앞에 서 있음을 본다. 내가 인질 상태에서 풀려난 두 명의 한국 여성을 텔레비전에서 봤을 때, 그들의 눈물과 흐느낌을 보고 들었을 때, 난 그들 속에서 오사마와 그녀의 어머니를 봤다. 풀려나지 못한 다른 한국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 내 이슬람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을 대신해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또한 종교적·경제적 판타지에 갇혀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기도한다. 한 명의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절망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쓴다. 한 망명객이 고국에서 그를 찾아온 손님에게 물었다.“내 낙타 주라이크는 잘 있습니까?” “죽었소.” “죽었다고요?” “당신 아내에게 너무 많은 물을 나르느라고요.” “내 아내가 죽었어요?” “네, 그래요.” “어쩌다가요?” “당신 아들을 위해 너무 많이 울었으니까요.” “내 아들도 죽었어요?” “그렇습니다.” “왜요?” “집의 지붕이 무너져 아들을 덮쳤어요.” 정말이지, 이젠 그만 죽어야 한다.
  • [주말탐방] 제주도 무덥가에 쌓은 돌담은

    제주의 무덤가에 쌓은 돌담의 비밀은? 제주를 방문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뭍(육지)의 묘소와 달리 묘소 주위를 둘러친 독특한 돌담을 궁금해 한다. 제주에서는 사각형 또는 원형으로 쌓은 이 돌담을 ‘산담’이라 부른다. 산담은 예부터 제주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분묘의 모습이다. 말이나 소의 방목으로 인한 분묘의 훼손을 막고, 산불이나 병충해 방제 목적의 들불로부터 분묘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흙이 적은 제주이기에 애서 쌓은 봉분의 흙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산담을 설치했다는 설도 있다. 제주에는 돌이 많지만 산담을 쌓기에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장례 당일에 쌓는 경우도 있고 장례가 끝난 뒤 따로 날을 잡아 쌓기도 했다. 제주의 산담에는 죽어서도 망자의 혼령이 집으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문(출입문)’을 만들었다. 산담의 출입문은 망자의 성별에 따라 오른쪽은 남자 것, 왼쪽은 여자 것이다. 시문이 없이 산담을 쌓는 경우에는 시문의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돌계단을 만든다. 미술평론가 김유정씨는 “제주 산담은 단순한 돌담이라는 차원을 넘어 제주사람들의 정신 문화가 담긴 공간이며 전대가 남긴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새로운 장묘문화의 등장으로 제주 산담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제주의 산담 중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해 문화재로 지정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2) 봉선사 큰법당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2) 봉선사 큰법당

    절 구경에 이력이 쌓여가면 불상이나 석탑에서 대강의 조성 시기를 읽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양식(樣式)이라고 부르는, 나름대로의 시대정신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상이나 석탑, 탱화가 예배의 대상을 넘어 미술품으로 대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불교미술은 장인의 창작품이라기보다는 그 시대 신앙의 양상이 조형적, 혹은 회화적으로 번안된 것입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작품에서 드러난 실마리를 풀어내어 조성 당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요즘도 절은 끊임없이 세워지고, 그만큼의 불상과 석탑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훗날 미술사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원만하게 조성되었다고 칭송받는 불상도 오늘날 신앙생활의 양상을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광릉 숲 속에 있는 봉선사의 한글 이름 ‘큰법당’은 20세기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 했던 드문 노력의 하나로 보고 싶습니다. 조선 세조(1417∼1468)의 무덤 광릉(光陵)의 수호 사찰인 봉선사는 예종 원년(1469)에 세워졌다고 김수온의 ‘봉선사기(1469)’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 89칸의 적지 않은 규모였는데 건축 과정에서 부실공사라는 지적을 받아 허물고 다시 지었을 만큼 정성을 들였다고 하지요. 큰법당은 한국전쟁으로 삼성각(三聖閣)말고는 봉선사의 전각이 모두 부서진 뒤 1970년 운허(1892∼1980)가 초창 당시 대웅전을 복원하면서 새로 붙인 이름입니다. 운허는 평양 대성중학교 출신으로 중국 봉천에 동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에 힘쓴 데 이어 한족신보 사장으로 독립운동에 몸담았다고 하지요. 그는 산문(山門)에 들어선 뒤 불교경전을 파고들었는데, 광복 이후에는 봉선사에 머물며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힘썼습니다. 봉선사의 중심 전각을 큰법당이라고 이름지은 것도 불경을 우리말로 풀어내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불경 번역은 세조가 1461년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법화경언해(1463년)’ 등 9종의 경전을 한글로 옮긴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봉선사와 불교의 한글화 작업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법당은 편액뿐 아니라 기둥글(柱聯)도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온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큰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부처님 공덕 다 말못하고(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라는 선시(禪詩)이지요. 순수한 한글로 최대한 풀어쓰고, 의미전달을 위해서는 의역(意譯)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는 운허 번역의 특징이 짤막한 기둥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큰법당은 그러나 우리 불교계에 과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당의 이름은 공간의 성격까지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대웅전과 극락전, 대적광전 등은 각각 석가모니부처와 아미타부처, 비로자나부처로 주체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큰법당은 어떤 예배가 이루어지는 공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성격 부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법당을 장엄하는 장인들도 옛것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dcsuh@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도 양주 불곡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도 양주 불곡산

    대동여지도에 경기도 양주의 진산이라 되어 있는 불곡산(佛谷山·465m)은 한북정맥이 도봉산으로 연결되기 직전에 솟아난 암봉이다. 웅장한 도봉산의 자태에 비해 자칫 낮고 밋밋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기자기한 암릉과 능선, 탁월한 조망 등 근교산행지로 부족함 없는 조건을 갖췄다. 특히 주말이면 인파로 들끓는 도봉산, 북한산에 비해 제법 한산한 편이라 조용한 산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은 장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서울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불곡산에서 호젓한 산행을 만끽할 수 있다. ●남·북쪽으로 백화암·부흥사 불곡산은 ‘불국산(佛國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불곡산이든 불국산이든 부처의 자비로운 기운이 골골이 배어 있다는 한뜻이리라. 이름값을 하듯 산의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백화암과 부흥사가 자리잡고 있다. 신라 때인 898년(효공왕 2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백화암은 창건 당시에는 불곡사(佛谷寺)라 불렀으나 이후 재난과 중건을 거듭하다 1956년 복원되면서 절 이름이 백화암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절 앞마당에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사찰의 역사를 실감나게 한다. 또 백화암 아래에 있는 약수터는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고 전한다. 불곡산 산행 들머리는 크게 양주시청, 유양리 공단 입구(채석장)와 백화암 입구, 산북리 등 4군데로 나뉜다.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3시간 정도면 산행을 마칠 수 있어 부담이 없다. 볼거리가 많은 백화암, 정상부, 임꺽정봉을 중심에 놓고 교통편을 참고하면서 적절하게 등산 코스를 잡으면 편리하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코스는 백화암 입구∼시멘트길∼백화암∼십자고개∼정상∼불무리 쉼터∼420봉(무덤)∼임꺽정봉∼유양리 공단 입구. 이 코스는 임꺽정봉까지 올라가 전망을 감상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임꺽정봉 직전 안부까지 되돌아 내려와 남쪽계곡으로 내려서는 것이 좋다.3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두 번째 코스는 백화암에서 부흥사를 거쳐 산북리로 넘어가는 코스. 백화암 입구에서 출발해 시멘트길∼백화암∼십자고개∼정상을 거쳐 불무리 쉼터∼부흥사∼산북리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백화암과 부흥사 두 절집을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불무리 쉼터에서 임꺽정봉을 거쳐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더 타고 올라가다 부흥사로 내려설 수도 있다. 반대로 산북리 샘내 정류소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거쳐 백화암으로 내려오는 역코스도 3시간 정도 걸린다. 세 번째 코스는 양주시청 뒤 현충탑에서 출발해 십자고개∼정상∼불무리 쉼터∼임꺽정봉을 거쳐 유양리 공단 입구로 내려오는 코스로 주능선을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길게 잇는 방법이다. ●정상에 서면 도봉산·북한산 ‘한눈에´ 불곡산 주능선은 온통 암릉으로 되어 있으며, 구간구간 아찔한 곳이 있으나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정상에서 임꺽정봉까지 암릉 구간이 특히 재미있다. 화강암과 소나무가 조화로운 불곡산 정상에 서면, 사방이 활짝 열린다. 시원스레 뻗은 산줄기들 중에서 특히 남서쪽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도봉산과 북한산 능선의 흐름이 압권이다. 글 정수정 사진 남영호(월간 MOUNTAIN 기자)
  •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최근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대 초반 여성 연예인들이 잇따라 결혼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가인, 이요원, 홍은희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장신영·한채영까지 ‘어린 아줌마’ 대열에 합세했다.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던 현 결혼적령기를 거스르는 이들을 20&30세대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일반적인 결혼 적령기보다 앞당겨 결혼하는 ‘조혼’과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만혼’에 대한 20&30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 봤다. 강국진 류지영기자 betulo@seoul.co.kr ■ ‘조혼’ 이래서 좋다 ●“일찍 결혼하면 노후가 편안해” 다음달이면 결혼 10주년을 맞는 경찰관 권모(37)씨는 지금도 결혼에 대해 후회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좀 더 일찍 결혼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의 아내와 ‘캠퍼스 커플’이 된 권씨는 군복무와 시험준비 끝에 경찰이 돼 1997년 결혼할 때까지 3년이나 자신을 기다려준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남자 나이 25살 정도에 결혼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고시나 박사 학위 등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대학생들은 졸업 뒤 ‘월급쟁이’로 살게 되잖아요. 어차피 요즘 세태로 보면 50세 이전에 생업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데 50세 전후로 자식들 결혼시키고 사랑하는 아내와 마음 편히 여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경제적·정서적으로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요?일찍 결혼한다는 것은 아내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안정된 기반이 사회적 성공 앞당겨” 결혼 7년차인 회사원 이모(34)씨는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7대3 정도의 비율로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이씨는 “외환위기 직후 결혼해 국가경제가 어려웠지만 맞벌이를 해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오히려 풍요로웠다.”고 회상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귀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총각 시절 겪는 여러 가지 방황들을 겪지 않았다.”면서 “결혼은 나에게 안정된 기반 위에서 오직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다.”고 만족해했다. “일찍 결혼한 덕분인지 전 이미 외모부터 말투까지 명실상부한 ‘아저씨’가 됐지만요. 그래도 세월의 연륜으로 여기며 만족하고 있어요. 아직도 총각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직도 그들이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나는 자식들 밥 굶기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살아가는데 결혼 안 한 친구들이 문화 생활이나 데이트, 해외 여행 얘기만 들먹이는 걸 듣다 보면 솔직히 괴리감이 들죠.” ●“조건 구애없는 순수한 사랑 가능해” 방송국 PD 김모(31)씨는 조혼 예찬론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취직 뒤 곧바로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입장이다. 평생 순수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어서라고. 그 역시 취직하자마자 대학 때부터 만났던 여자친구와 결혼해 5살배기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남녀 모두 어느 정도 ‘때’가 묻게 마련이잖아요. 결혼 상대방이 집을 마련해 올 수는 있는지, 월급은 충분한지, 학벌은 좋은지 등등을 따지다 보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아직 ‘세상물정’ 모를 때 결혼하면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히 상대방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늘 아내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 싸워도 곧바로 화해할 수 있어요. 살다 보면 반드시 인생의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인데 조건을 보고 결혼했다면 힘든 시기에 그런 조건이 없어졌을 경우 결혼생활이 어떨까요? 이런 의미에서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순수한 사랑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생의 ‘축복’이라고 봅니다.” ■ ‘만혼’ 이래서 좋다 ●준비 안 된 결혼은 오히려 버거워 회사원 장모(36)씨는 큰 아들이 11살인 ‘조혼남’이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늦게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20대 초반부터 책임과 희생을 짊어지며 살아온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듯 남편과 아빠 또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장씨의 지론이다. “결혼을 언제 했는지도 가물 가물하네요.24살에 했으니까 남자치곤 상당히 빨리 했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을 돌볼 여자가 필요했거든요.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너무 일찍 한 것은 아닌가 아쉬울 때는 있어요. 당장 아이 교육비만 해도 30대 중반인 제 월급으로는 버거운 게 사실이거든요. 최근 결혼해 아직도 신혼생활의 달콤함에 젖어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교육비·집값 등 경제적 부담으로 고민하고 있는 제 처지가 딱하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아이를 일찍 키워 놓으면 노후가 편하다고들 하지만 남들 40대에 고민해야 할 문제를 10년이나 앞서 매달리다 보니 ‘조로(早老)’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결혼 뒤 후회 말고 많이 만나 보시길 아직 미혼인 회사원 송모(36)씨는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온 뒤 직장생활을 3∼4년 정도 한 3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라면서 “결혼이란 서로 다른 경험을 해 온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인 만큼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몇 년 전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성이 있었지만 당시 완벽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헤어졌다는 송씨는 “좀 더 노력해 1∼2년 안에 준비된 결혼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방탕한 생활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고요. 결혼 전 가급적 많은 상대방을 만나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수능시험을 보는데도 모의고사를 많이 보면 그만큼 자신있게 대처할 수 있잖아요. 하물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렇다고 결혼 전 만나는 사람을 ‘연습용’으로 생각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요. 만날 때마다 늘 ‘나’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최선을 다하되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만나다 보면 진짜 내 ‘짝’이라 느끼는 사람을 만나게 돼도 실수없이 잘 해 나갈 수 있겠죠.” ●결혼은 인생의 무덤…가급적 천천히 동시통역사를 준비중인 최모(27·여)씨는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꿈을 펼치고 싶은 그에게 결혼은 꿈을 구속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최씨는 30대 중반은 돼야 결혼을 생각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물에 손 한번 안 담그게 다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아요.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손에 물이 묻냐 안 묻냐가 아니라 남편이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느냐 하는 것이죠. 주위에 결혼을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는 여성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들도 아내가 애 낳고 키우다 제 풀에 꺾여 꿈을 포기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전 하고 싶은 일들을 어느 정도 이룬 뒤 생각해 볼래요.”
  •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최근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대 초반 여성 연예인들의 잇따라 결혼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가인, 이요원, 홍은희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장신영·한채영까지 ‘어린 아줌마’ 대열에 합세했다.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던 현 결혼적령기를 거스르는 이들을 20&30세대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일반적인 결혼 적령기보다 앞당겨 결혼하는 ‘조혼’과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만혼’에 대한 20&30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 봤다. 강국진 류지영기자 betulo@seoul.co.kr ■ ‘조혼’ 이래서 좋다 ●일찍 결혼하면 노후가 편안해 다음달이면 결혼 10주년을 맞는 경찰관 권모(37)씨는 지금도 결혼에 대해 후회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좀 더 일찍 결혼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의 아내와 ‘캠퍼스 커플’이 된 권씨는 제대하고 3년간 시험준비 끝에 경찰이 돼 1997년 결혼했다. “남자 나이 25살 정도에 결혼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고시나 박사 학위 등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대학생들은 졸업 뒤 ‘월급쟁이’로 살게 되잖아요. 어차피 요즘 세태로 보면 50세 이전에 생업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데 50세 전후로 자식들 결혼시키고 사랑하는 아내와 마음 편히 여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경제적·정서적으로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요? 일찍 결혼한다는 것은 아내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안정된 기반이 사회적 성공 앞당겨 결혼 7년차인 회사원 이모(34)씨는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7대 3 정도의 비율로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이씨는 “외환위기 직후 결혼해 국가경제가 어려웠지만 맞벌이를 해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오히려 풍요로웠다.”고 회상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귀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총각 시절 겪는 여러가지 방황들을 겪지 않았다.”면서 “결혼은 나에게 안정된 기반 위에서 오직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다.”고 만족해했다. “일찍 결혼한 덕분인지 전 이미 외모부터 말투까지 명실상부한 ‘아저씨’가 됐지만요. 그래도 세월의 연륜으로 여기며 만족하고 있어요. 아직도 총각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직도 그들이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나는 자식들 밥 굶기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살아가는데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유럽식 자본주의’니 뭐니를 들먹이며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솔직히 괴리감이 들죠.” ●조건 구애없는 순수한 사랑 가능해 방송국 PD 김모(31)씨는 조혼 예찬론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취직뒤 곧바로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입장이다. 평생 순수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어서라고. 그 역시 취직하자마자 대학 때부터 만났던 여자친구와 결혼해 5살배기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남녀 모두 어느 정도 ‘때’가 묻게 마련이잖아요. 결혼 상대방이 집을 마련해 올 수는 있는지, 월급은 충분한지, 학벌은 좋은지 등등을 따지다 보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아직 ‘세상물정’ 모를 때 결혼하면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히 상대방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늘 아내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 싸워도 곧바로 화해할 수 있어요. 살다 보면 반드시 인생의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인데 조건을 보고 결혼했다면 힘든 시기에 그런 조건이 없어졌을 경우 결혼생활이 어떨까요?이런 의미에서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순수한 사랑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생이 ‘축복’이라고 봅니다.” ■ ‘만혼’ 이래서 좋다 ●준비 안 된 결혼은 오히려 버거워 회사원 장모(36)씨는 큰 아들이 11살인 ‘조혼남’이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늦게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20대 초반부터 책임과 희생을 짊어지며 살아온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듯 남편과 아빠 또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장씨의 지론이다. “결혼을 언제 했는지도 가물 가물하네요.24살에 했으니까 남자치곤 상당히 빨리 했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을 돌볼 여자가 필요했거든요.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너무 일찍 한 것은 아닌가 아쉬울 때는 있어요. 당장 아이 교육비만 해도 30대 중반인 제 월급으로는 버거운 게 사실이거든요. 최근 결혼해 아직도 신혼생활의 달콤함에 젖어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교육비·집값 등 경제적 부담으로 고민하고 있는 제 처지가 딱하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아이를 일찍 키워 놓으면 노후가 편하다고들 하지만 남들 40대에 고민해야 할 문제를 10년이나 앞서 매달리다 보니 ‘조로(早老)’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결혼 뒤 후회 말고 많이 만나 보시길 아직 미혼인 회사원 송모(36)씨는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온 뒤 직장생활을 3∼4년 정도 한 3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라면서 “결혼이란 서로 다른 경험을 해 온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인 만큼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몇 년 전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성이 있었지만 당시 완벽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헤어졌다는 송씨는 “좀 더 노력해 1∼2년 안에 준비된 결혼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방탕한 생활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고요. 결혼 전 가급적 많은 상대방을 만나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수능시험을 보는데도 모의고사를 많이 보면 그만큼 자신있게 대처할 수 있잖아요. 하물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렇다고 결혼 전 만나는 사람을 ‘연습용’으로 생각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요. 만날 때마다 늘 ‘나’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최선을 다하되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만나다 보면 진짜 내 ‘짝’이라 느끼는 사람을 만나게 돼도 실수없이 잘 해 나갈 수 있겠죠.” ●결혼은 인생의 무덤…가급적 천천히 동시통역사를 준비중인 최모(27·여)씨는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꿈을 펼치고 싶은 그에게 결혼은 꿈을 구속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최씨는 30대 중반은 돼야 결혼을 생각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물에 손 한번 안 담그게 다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아요.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손에 물이 묻냐 안 묻냐가 아니라 남편이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느냐 하는 것이죠. 주위에 결혼을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는 여성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들도 아내가 애 낳고 키우다 제 풀에 꺾여 꿈을 포기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전 하고 싶은 일들을 어느 정도 이룬 뒤 생각해 볼래요.”
  • 오! 株여 등록금 날리고 대출금 날리고…개미들의 비명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증시 폭락의 후유증이 심각하다. 대출로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던 직장인과 등록금을 투자했던 대학생 등 ‘개미투자자’들이 원금 손실로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에 손을 댔다가 거액을 잃은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폭락장세를 빗댄 ‘쌀국장 중계’,‘도시락 폭탄’ 등 냉소적인 신조어도 등장하고 있다.●“자살막아라” 경찰 한강 경계강화 소문 17일 인터넷 증권 사이트 게시판 등에는 2000포인트를 넘어선 주가가 최근 일주일 새 300포인트 이상 떨어지자 개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린 한 대학생 투자자는 “등록금 납부일까지 몇 주간 기일이 남아 등록금 450만원으로 중견기업 A사에 투자했다 일주일도 안 돼 30% 넘는 손실을 입었다.”면서 “지금 주식을 팔아도 등록금이 100만원 넘게 모자란 상황이라 휴학을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인터넷 주식정보 사이트 토론방에 글을 올린 한 직장인 투자자는 “선물·옵션에 투자했다 16일 증시 폭락으로 5700만원의 손실을 봤다.”며 허탈한 심정으로 자신의 선물·옵션 거래내역을 올리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지난 6월 선물·옵션 투자 실패로 14억원의 빚을 지고 자살한 재야고수 ‘시골국수’(필명)가 유언으로 남긴 ‘(선물·옵션 등)파생 상품은 사기판이자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면서 “이번 폭락으로 ‘제2의 시골국수’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3년차 전업투자자 김모(37)씨는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서 다음주부터 펀드 환매가 시작된다는 등의 각종 루머가 횡행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했거나 파생상품에 투자한 이들의 자살이 잇따를 것을 우려해 경찰이 한강 다리 주변 경계를 강화했다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폭락 빗댄 `쌀국장 중계´ 등 신조어 등장 한 주식사이트 주식갤러리에는 17일 새벽 미국 다우존스 지수가 300포인트 넘게 떨어지며 1만 2600선마저 붕괴되자 “쌀국장이 -2% 넘게 굴착 중이다.” “쌀국장 오늘도 또 떡실신했다.”는 등의 게시글을 올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쌀국장’이란 최근 폭락의 원인이 미국 증시에 있는 만큼 미국을 일부러 한자어 ‘미(美)’를 ‘미(米·쌀미)’로 고쳐 ‘쌀(米)국(國)장(증시)’으로 부른다. 또 ‘도시락 폭탄’은 최근 증시가 점심시간인 12∼1시 사이에 외국인 선물 매도가 몰려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굴착중’이라는 말은 땅을 파듯 떨어진다는 뜻이며,‘떡실신’도 떡이 되도록 기절(실신)했다는 인터넷 신조어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北 수해복구 적극 지원할 때다

    북한의 수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소식이다. 평양 등 북한 전역에 40년래 가장 많은 비가 일주일째 쏟아지면서 농경지의 11%이상이 침수되거나 매몰·유실됐다고 북한 중앙통신이 밝혔고, 외신도 이재민이 30만명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유엔도 긴급구호를 위한 현황 파악에 이미 나섰다고 하니, 우리가 앞장서 동포애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본다. 북한이 수년간 해마다 수해를 겪은 탓인지 대북 수해 복구 지원에 관한 한 우리 국민의 여론이 무덤덤해진 경향이 없지 않은 듯하다. 핵 문제나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북한 지도부의 석연찮은 태도가 자초한 측면도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동족으로서 수수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주민의 고통이 심대하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도로와 통신·전력망이 끊기고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북측의 보고가 부풀려졌다고만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경기도 제2소방본부가 임진강에서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시신 5구를 인양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남측 대북지원 단체들이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대북 수해 복구 지원이 민간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인도적 지원은 어차피 소규모일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을 앞둔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한때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미국조차 유엔을 통한 지원을 검토하는 상황이 아닌가. 물론 긴급 수해 복구 지원과는 별개로,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한 남북 협력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당국의 정책 실패에 대한 자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남쪽보다 유독 북한에서 연중행사처럼 더 큰 물난리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1) 해인사 홍제암 석장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1) 해인사 홍제암 석장비

    아무리 명품 청자나 백자라도 금이 가거나 수리한 흔적이 있으면 골동품시장에서 쳐주는 값은 크게 떨어지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온전했을 때보다 깨진 뒤 더욱 높은 값어치가 매겨지는 옛 사람의 자취도 없지는 않습니다. 경남 합천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비가 그렇습니다. 홍제암은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친 뒤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나타나지요. 예전에 해인사에서 홍제암에 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지만, 이제는 대형버스도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 닦였습니다. 홍제암은 임진왜란 당시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었던 나라를 구해낸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입적(入寂)한 곳입니다. 광해군은 대사에게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를, 영정을 모신 영자전에는 홍제암(弘濟庵)이라는 편액을 내렸습니다. 대사를 기리는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는 홍제암 오른쪽의 부도밭에 세워져 있지요. 그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종 모양의 소박한 부도는 홍제암 뒷동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612년(광해군 4년)에 세워진 석장비는 높이 3.15m의 당당한 모습이지만,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비석 한가운데가 열십자(十) 모양으로 쪼개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장비가 중요한 것은 사명대사의 일생을 어떤 기록보다 소상히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의 책방에 나와 있는 사명대사 전기는 대부분 이 비문에 나타난 삶의 궤적을 뼈대로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이 교산 허균(1569∼1618)이라는 것도 석장비의 가치를 높입니다. 한글 소설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조선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홍길동전’을 쓴 바로 그 사람이지요. 교산은 비문에서 “나는 비록 유가(儒家)에 속하는 무리이지만, 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누구보다 스님을 깊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산의 비문에는 당시 사명대사에 대한 뜻밖의 시선도 드러나 눈길을 끕니다.‘대사가 중생으로 하여금 혼돈의 세계인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일을 등한히 하고, 구구하게 나라를 위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살생을 금하는 불법의 수호자로 병장기를 잡아야 했던 사명대사의 고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을 것 같습니다. 석장비는 일제강점기인 1943년 합천경찰서장이었던 다케우라(竹浦)가 네동강냄으로써 역사적 가치는 오히려 극대화되었습니다. 일경은 이때 이고경 전 주지를 비롯해 해인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7명의 항일불교인사를 체포하는데, 이른바 ‘해인사사건’입니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에 귀중한 보물이 있느냐.”고 묻자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가장 귀한 보물로 알고 모두 노리고 있다.”고 일갈한 사명대사의 기개가 해인사에 ‘불온한’ 분위기를 조성한 주범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앞서 일경은 1942년 항일 불교청년운동 조직인 만당(卍黨)의 근거지이자, 독립운동자금의 조달창구였던 백산상회의 연락소였던 사천 다솔사를 급습했지요. 다케우라는 합천에 부임하기 직전 사천경찰서장이었다니 두 사건을 모두 일으킨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석장비는 1958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영원히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남았지만, 이 상처가 없었다면 석장비가 주는 감동은 조금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dcsuh@seoul.co.kr
  • ‘미로밴드 라이브’ 유튜브에 올라 ‘망신살’

    ‘미로밴드 라이브’ 유튜브에 올라 ‘망신살’

    신인그룹 ‘미로밴드’의 라이브공연이 해외 네티즌의 입방아에까지 올랐다. 해외 UCC사이트 유튜브(YouTube.com)에는 지난 8일 미로밴드가 공연한 너바나(Nirvana)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의 라이브영상이 올려졌다. ‘한국 밴드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이 영상에는 록음악 팬들의 ‘전설’인 너바나의 곡을 망쳤다는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 네티즌들은 한국보다 더욱 과격하게 리드보컬인 미로(22.서동천)의 가창력을 비난하고 나섰다. 네티즌 ‘BMX0588’은 “커트 코베인(너바나 리드보컬)이 무덤을 박차고 나올 일”이라며 비꼬았고 ‘jeff90oky’는 “이게 뭐냐! 관객들에게 내가 다 미안해진다.”는 댓글을 올렸다. 이외에도 “제대로 엉망인 영어”(defstone999), “내가 한국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나을 듯”(drive165) 등 힘겨운 음역 때문에 망가진 영어 발음을 꼬집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또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ShowBox)는 의견들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국내외 ‘가창력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미로밴드는 타이틀곡 ‘마마’가 미국 록밴드 의 곡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인터넷에서 제기되면서 최근 표절 시비까지 휘말렸다. 미로는 이에 대해 “가창력 논란과 표절 시비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며 “더 노력해서 라이브에 계속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미로밴드 “무리한 도전 인정”(동영상보기) 사진=유튜브 캡처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차 남북정상회담] 李·朴캠프 득실계산 분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투표를 11일 앞두고 8일 나온 2차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이명박·박근혜 후보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남북정상회담의 파괴력과 남북관계의 미묘함을 고려하면 당장 한나라당 경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키 어렵다. 다만 국민적 관심사가 정상회담쪽으로 옮아가면서 최대 변수까지는 안 되더라도 미묘한 흐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우선 경선 이슈 자체가 남북정상회담에 잠식당할 경우 막판 추격전을 펴며 ‘정치공작’ 공세까지 폈던 박 후보측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상회담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긴 어렵겠지만 경선전 열기가 한껏 올라가는 도중에 나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현재 앞서는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두 캠프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예견된 일”이라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이 후보측은 특히 “유·불리를 따질게 없다.”,“대세는 뒤집을 수 없다.”는 평을 내놓았다.“이미 게임은 끝났는데 무슨 변수가 되겠냐.”는 기조가 깔려 있다. 이번 경선보다는 12월19일 대선 본선 때를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겠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왔다. 박 후보측은 “경선 이슈가 정상회담에 파묻혀 검증공방이 물 건너갔다.”는 반응 속에 신중론을 펴고 있다. 정상회담이 ‘안보’와 직결되는 민감한 이슈라는 점에서 오히려 당내 보수 표심을 집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박 후보의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은 “이번 경선이 대의원과 당원 등 18만 5000명을 상대로 한 당내 선거라는 점에 주목한다.”면서 “이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정상회담을 (참여정부의)위장 평화공세, 정권연장의 음모로 인식할 것이고 이럴 경우엔 오히려 정체성이 확실하고, 남북관계에 있어 원칙이 확고한 박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박 후보가 평소 남북관계에 있어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반대 해석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 사건 이후 박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는데, 이는 안보와 외교·국방 같은 이슈에선 여성 후보보다는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여 전형적 산악 지역인 경남 함양의 삼봉산(1186.7m)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 통한다. 함양읍과 마천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계에 솟은 삼봉산과 그 아래 백운산(902.7m)∼금대산(847m) 능선은 엄천강 물줄기에 의해 지리산과 나뉘었지만, 삼봉산 기운은 서쪽 투구봉(1068m)에서 팔령을 지나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를 가르며 연비산(842.8m)∼안산(641m)∼아홉새드리를 거쳐 천왕봉을 출발한 백두대간과 맞닿는다. 이 혈맥이 육십령∼덕유산으로 이어지니, 남녘의 큰 산줄기 지리산과 덕유산의 양대 기운을 모두 품은 산이라 할 수 있다. 동서로 길게 누운 삼봉산은 급경사가 많아 대체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반면 남원 산내 쪽으로 신라 고찰 실상사와 백장사, 마천 쪽으로는 금대암 등 좋은 절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실상사에는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을 비롯해 석등, 철제여래좌상 등의 보물이 여러 점 있고, 백장사에는 국보 제10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금대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수령 500년의 전나무가 자라고 있는 등 문화재와 볼거리도 다양하다. 삼봉산 산행 들머리는 크게 네 군데로 나뉜다. 남원과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상의 팔령에서 투구봉으로 오르는 길이 약 4.75㎞, 상죽림을 거치는 길은 2.6㎞, 동쪽 오도재에서는 3.9㎞쯤 된다. 서쪽의 남원 산내면 백장사에서도 오를 수 있다. 네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정상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리산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백운산, 금대산을 거쳐 내려오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삼봉산∼백운산 구간은 숲이 우거진 곳이 많지만 금대산과 가까워지면서 자주 시야가 트이며 겹겹이 두른 지리산 봉우리들이 잘 보인다.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의 등구재는 산내와 마천, 즉 전남과 경남을 잇는 고갯마루다.‘등구’라는 지명은 ‘거북이 기어 올라가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고 곶감이 달기로 유명한 곳이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바로 등구 마천이다. 오도재를 출발해 삼봉산, 백운산, 금대산을 차례로 거쳐 금대암으로 내려서는 데 약 5시간이 걸린다. 산행 들머리는 해학적인 표정의 장승들이 손짓하듯 서 있는 오도재 임도. 거기서 10분쯤 올라가면 잠시 쉬어가기 좋은 정자 관음정이 나오고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삼봉산 정상에 닿게 된다. 지리산 전망대답게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쪽엔 하봉∼웅석봉을 주축으로 한 동부능선이, 서쪽으론 반야봉∼만복대로 이어진 서북릉이 주르륵 펼쳐진다. 등구재 안부를 통과하면 꾸준한 오르막이 계속되고, 무성한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면 곧 백운산. 삼봉산에서 30분 남짓 걸린다. 반쪽짜리 무덤 때문에 백운산 정상 표지석이 구석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 수풀이 무성할 땐 잘 보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정상석∼무덤과 일직선 나무 사이에 지리산 천왕봉이 가깝다. 백운산에서 금대산도 지척이다. 바위가 많은 금대산에 다가설수록 등산로는 삼봉산 구간과 달리 시야가 탁 트이며 조망이 시원하다.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서면 마천 일대와 걸어온 오도재∼삼봉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외로운 고사목 하나가 바위틈에 뿌리를 두고 앙상한 뼈처럼 꽂힌 곳도 있다.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바위에 올라서니 멀리서 보던 산불감시초소 건물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대산이다. 하산은 금대암 쪽으로 하며 정상에서 금대암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 금대암 사찰 뜰에는 눈앞의 지리산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게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자. 글 정수정 사진 황소영(월간 MOUNTAIN 기자)
  • [2차 남북정상회담] ‘경제영향’ 엇갈리는 전망

    [2차 남북정상회담] ‘경제영향’ 엇갈리는 전망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영록 재정경제부 2차관은 “남북 경제교류와 협력이 한 단계 진전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그동안 논의는 이뤄졌지만 경제 외적 요인으로 진척이 더뎠던 경협 과제들도 광범위하게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남북간 철도 연계와 지하자원 개발, 경공업 분야에서의 협력 등이 탄력을 받을 수 있고 개성공단도 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는 “남북 정상회담이 국내외에 ‘대선용 이벤트’로 비춰진다면 오히려 국내 경제에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북핵위험을 크게 낮추는 만큼 장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시킬 것으로 봤다. 배상근 박사는 “고질적인 불안 요인으로 지적돼온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어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8일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에서 중대한 진전인 것은 분명하나 한국이 처해 있는 근본적인 위험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은 “최근 외국인들의 자금유출 속도가 빨랐는데 정상회담 개최로 유출 속도가 늦춰지거나 재유입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외국인 자본이 유입될 경우 원화 강세 요인으로 환율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신 연구위원은 “그러나 6자회담이 재개되고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 이미 북핵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 이번 정상회담 개최가 당장 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연구원 하준경 연구위원은 콜금리 인상 여부와 관련해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경협을 촉진시키는 등 경기 회복을 강화시켜줄 것이므로 금리인상 요인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은 주식시장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대북 관련주에 대한 투자심리는 일단 좋아질 전망이다. 이 역시 구체적 사업으로 연결돼 기업가치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민상일 한화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 관점의 호재는 분명하지만 긍정적 영향은 단기적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문제 해결의 핵심 변수라기보다는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무덤덤’은 2000년 ‘학습효과’에 기인한다.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은 한 해 동안 코스피지수가 50.9%나 떨어진 해다. 회담 이야기가 나오던 3월부터 공식 발표일까지는 주가가 5% 올랐다. 그러나 정상회담 당일 5.9% 하락한 것을 비롯, 정상회담이 열렸던 날까지는 14.5% 떨어졌다. 그동안 외국인의 순매수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정상회담 이후 한 달 동안에는 주가가 5.4% 올랐다. 백문일 문소영 전경하기자 mip@seoul.co.kr
  • 온몸이 철사로 감긴 유골 中서 잇달아 발견

    최근 중국의 한 도시에서 철사로 칭칭 감겨져 있는 유골이 연달아 출토돼 학계에 큰 관심을 끌고있다. 관영 CCTV는 “지난달 11일에 첫 발견된 ‘철사유골’과 유사한 유골이 또 발견됐다.” 며 “새로운 소수민족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8일 보도했다. 지난달 구이저우(贵州)성 안쉰(安顺)시의 한 주민이 밭에서 2중으로 된 돌무덤을 발견한 이후 계속되는 출토작업 끝에 이번에 특이한 유골이 또 다시 발견된 것. 이번에 발견된 철사유골은 양팔과 다리 그리고 손가락까지 모두 철사로 감겨져 있다. 안쉰시 문화부 관계자는 “이 유골은 약 800~1000년 전 것으로 철사는 당시 여자들이 착용하던 장식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장식물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으며 철사를 감는 방법 또한 매우 독특하다.”고 감탄했다. 이어 “돌무덤 속의 반지와 목걸이등의 출토물은 현재 안쉰시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부이(布依)족의 매장방식이나 장식물과는 확연히 다르다.”며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소수민족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이 유골과 함께 발견된 출토물은 송(宋)나라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의 부족한 문물의 공백을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성윤석 시집 ‘공중묘지’

    성윤석 시집 ‘공중묘지’

    쇠뜨기, 바랭이, 쑥부쟁이가 무연묘(無緣墓)를 뒤덮었다. 비석도 상석(床石)도 없다. 활개도 축대(築臺)도 없다.10년이 지나도 찾는 이 없고, 묘적부에서도 지워졌다. 바람 불어 초록 풀씨 날리면 묘지는 수풀 속에서 형태마저 잃는다.‘더욱 버려져’ 마음 아린 무연묘에 시선을 주며 쓸쓸해하는 이, 성윤석(42) 뿐이다. 성윤석은 경기도 용미리 서울시립묘지 관리인 생활을 시작하고도 2년이 지나서야 놓았던 펜을 다시 들 수 있었다.25살 대학 4학년(1990년) 때 등단했고,31살(1996년) 때 첫 시집(‘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문학과지성)을 냈던 시인. 두 번째 시집 ‘공중묘지’(민음사)가 나오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공중묘지’는 죽음으로 꽉 차 있다. 썩은 시체 눈알이 굴러 떨어지고, 시즙(屍汁)이 뚝뚝 흐른다. 몸에서 막 빠져나간 영혼은 ‘사랑해서 생긴 약점’(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맘에 걸려 세상을 떠돈다. 시집에 내리 깔린 죽음의 이미지엔 시인이 보낸 가혹한 시간이 더해졌다. 11년 동안 그는 신문기자와 공무원을 거쳤고, 사업에 실패했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동생이 죽었고, 충격받은 어머니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몸의 평형기능을 상실하는 ‘양성발작성변환이석증’에 걸려 시인의 눈은 환상을 봤다. 지하철을 타면 두 다리가 공중에 붕붕 떴고, 눈 옆으로 꽃이 폈다. 밤마다 하얀 원피스 입은 소녀가 미간을 스쳐갔다. 묘지 앞에서 만난 시인은 “공포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회고했다. ●묘지에 와서야 공포를 떼어내다 시인은 그 공포를 무심한 언어로 옮겼다.“어머니는 기절했으며 / 조문객들은 낄낄대며 술추렴을 했다”(‘아우가 죽었다’)고 썼고,“미쳐 버리고 싶은데, 미쳐지지 않는 늦은 밤”에 “가끔 뒤로, 뒤로 / 정신의 불빛이 나가 버리곤 한다”(‘1과 8사이엔 무엇이 있나’)며 전정기관 망가진 자신을 관조했다. 공포로부터 자신을 떼어내 객관화할 수 있었던 건 살아 움직이는 것 없는 공중묘지, 온갖 버려진 것들의 집결지에 와서야 가능했다. “목매러 왔다 줄만 매달아 놓고 간 사람, 미혼모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아이 시체, 묘지를 떠도는 애꾸눈 애완견…. 묘지의 살아있음이 눈에 보이면서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인 묘지에서 도리어 이야기는 살아나더군요.”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며, 묘지 인부들마저 침 뱉으며 멀리하고, 까마귀떼만 날아오르는 공중묘지가 이제 시인에겐 일상이자, 밥을 벌고, 삶을 구하는 터전이 됐다. 늙은 산역 작업부가 “자네 이제 묘지 관리인이 다 되었네”(‘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라고 할 만큼 ‘내공’ 쌓인 그는 죽음 가득한 행간에 생의 의지를 꼭꼭 숨겼다. 공중묘지는 죽어 떠도는 영혼이 마지막으로 의탁하는 안식처(‘공중묘지 6’)이자, 시체의 자양분을 찾아 산마가 무덤 밑으로 끝없이 뿌리 뻗는 곳(‘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이다. 생명이 부글거리는 공간(‘알박기’)이다. “아버지가 묻혀 있는 동그란 무덤 속 / 아버지의 살점을 자양분으로 / 살모사는 새끼를 낳자마자 죽고 낳자 죽고 / 두더쥐와 굼벵이와 들쥐와 구더기는 아버지의 / 평생 속고 속아 썩어 문드러진 가슴께에서 / 햇빛처럼 떨어지는 생을 향해 / 부글부글거리겠지.”(‘알박기’) 시인은 “이승의 끝인 공중묘지에서 삶을 긍정함으로써 신산한 인생들이 겪어온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묘지 관리인으로 활동하며 창작 ‘공중묘지’에 실린 58편의 시적 밀도가 모두 균일한 건 아니다. 묘지 관리인으로 일하며 쓴 최근 시들(1부)의 압도적 정서에 비해, 과거 젊은 날에 쓴 시들(2∼3부)은 다소 성긴 게 사실이다. 그 간극의 차이를 시인은 “영화처럼 꿈꿀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시절과 달리 지금은 인생의 속살이 찬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성윤석은 용미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죽음도 공포가 아닌 평생 붙들고 씨름하고픈 화두가 됐다. 온갖 ‘아름다운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저 바깥 세상, 그곳이야말로 거대한 공중묘지임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9) 고려 태조 왕건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9) 고려 태조 왕건상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고려 태조 왕건상’이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왕의 ‘초상조각’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데다, 옷을 입지 않은 나상(裸像)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지요. 왕건상은 남쪽의 특별전이 끝난 뒤 현재는 평양의 조선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3년 고려 태조 무덤인 현릉(顯陵)에서 발굴된 이후에는 줄곧 개성 고려박물관에 있었지요. 고려박물관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개성의 성균관 건물을 그대로 전시시설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쪽에서 각광받는 왕건상이 북쪽에서는 한동안 그리 주목받지 못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1996년 평양에서 발간된 ‘고려태조 왕건’의 말미에는 현릉 발굴 결과가 실렸는데, 왕건상을 ‘금동불상’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같은 해 사이토 타다시(齋藤忠) 일본 다이쇼대학 명예교수가 펴낸 ‘북조선고고학의 신발견’에도 사진이 실렸지요. 경주 황남동 109호분을 발굴하기도 한 사이토 교수는 북한학자들의 해석을 존중해 ‘불교의례의 일단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적었습니다. 이듬해 기쿠다케 준이치(菊竹淳一) 일본 규슈산업대학 교수가 고려박물관에서 이 금동조각을 발견하여 북한 관계자들에게 왕건상일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고 합니다. 당시 왕건상은 ‘보살상’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채 적조사 철조석가여래좌상 등 다른 불상과 나란히 전시되고 있었다고 하지요. 기쿠다케 교수는 ‘고려 태조 왕건상 시론(試論)’에서 학술 논문으로는 이례적으로 ‘부기(附記)’를 달아 왕건상을 만난 과정을 간단하지만 지극히 감상적으로 술회했습니다. 그는 고려박물관을 방문하기 전날 밤 만월대에 올랐다고 합니다.‘하늘에 가득한 별 아래서 술을 마시며 감격해서 왕궁전터의 땅바닥에 누웠을 때, 태조 왕건이 나에게 개성에 머무는 동안 자신을 찾으라고 계시하였다.’는 것입니다. 이후 왕건상에 얽힌 갖가지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준 사람은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입니다.951년쯤 조성되어 봉은사 태조진전(太祖眞殿)에 모셔져 있던 왕건상은 고려가 망함에 따라 지금의 숭의전이 있는 경기도 마전현의 작은 사찰로 옮겨졌고, 주자학적 제례법을 따르려는 세종의 의도에 따라 초상조각이 목주(木主·나무로 깎은 위패)로 대체되면서 세종 11년에 현릉에 묻혔다는 것이지요. 왕건상은 나체조각만 남았지만, 고려시대에는 옷을 입혔습니다. 발굴 당시 왕건상의 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얇은 비단천과 금도금을 한 청동조각이 붙어 있었다고 하지요. 노 교수는 조상제례에 옷을 입히는 조각상을 사용하는 것은 한국 고대 이래의 문화전통이라고 설명합니다. 왕건상은 ‘동명왕 어머니 유화의 소상(塑像)이 3일 동안 피눈물을 흘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 시조신상(始祖神像)의 특징을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기쿠다케 교수는 ‘얇은 비단천’에서신체를 훤히 비치게 표현한 ‘수월관음도’ 같은 고려불화를 떠올렸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속살이 투명하게 비치는 보살의 시스루(see-through) 패션’이라며 고려불화의 표현법에 감탄한 적이 있지요. 그리스 조각이 육체의 아름다움을 직접 드러냈다면 ‘수월관음도’나 왕건상은 얇은 천 너머로 육체가 비쳐 보이게 하여 살아 있는 듯 느껴지게 표현하는 고려시대 특유의 미의식을 보여 준다고 기쿠다케 교수는 해석했습니다. dcsuh@seoul.co.kr
  • [Local] 경주 ‘발굴~전시’ 특별전 열어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오는 31일부터 9월2일까지 박물관 전시실에서 ‘발굴에서 전시까지’ 특별전을 연다. 특별전에서는 최근 발굴된 신라와 백제시대 유적지 17곳에서 나온 2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며 도성, 궁궐, 사찰, 생산시설, 무덤 등은 모형으로 복원돼 공개된다. 또 경주박물관과 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신라왕경 유적의 발굴 성과, 사천왕사지 발굴성과, 최근에 발굴된 신라 및 백제의 기와, 신라의 공방유적, 신라 및 백제 불교미술품 등의 설명회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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