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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철의 플레이볼] ML 커미셔너와 약물파동 책임론

    지난주 발표된 미첼 보고서로 메이저리그가 충격을 받고 있다. 전현직 메이저리그 선수 80여명이 스테로이드성 약물을 복용했고 그 가운데는 사이영상을 7차례나 타고 장차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한 로저 클레멘스의 이름까지 들어 있다. 프로스포츠는 선수들이 가장 큰 자산이란 점에서 선수들이 규정을 위반해도 징계가 사실상 쉽지 않다. 선수에 대해 징계를 할 경우 선수가 받는 피해 이상의 손해를 소속 구단도 입는다. 또 그 스포츠 자체의 이미지에도 엄청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 사건은 2005년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세상이 다 아는 일이 되었지만 메이저리그 조직은 이런 이유에서 사건 처리에 미적거렸다.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은 도박사에게 매수되어 고의로 경기에서 패배한다. 소문은 파다했지만 법정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당시의 최고 행정 책임자는 구단주가 겸임하고 있어 징계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조치는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어 메이저리그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대한 극약 처방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야구의 고결성을 유지하며 전혀 현재 야구 조직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야구 전반에 대한 황제의 권한을 주는 커미셔너 직제의 도입이었다. 1921년 초대 커미셔너로 부임한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 판사는 관련 선수 전원을 직권으로 영구 제명하는 등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41년 죽을 때까지 유감없이 휘둘렀다. 엄한 시어머니 잘못 모셔 혼난 구단주들은 이후 입맛에 맞는 커미셔너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커미셔너에 부여된 권한 자체도 줄여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9년 취임한 페이 빈센트 커미셔너와의 분쟁에 지친 구단주들은 커미셔너에게 사임 압력을 가해 쫓아냈다. 이후 후임 커미셔너를 찾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법석을 떨었는데 당시 후임 커미셔너 선정 위원장이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주 출신인 버드 셀릭이었고 단골 후보로 거론되던 사람이 전직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이며 이번 스테로이드 사건의 보고서를 발표한 조지 미첼이다. 셀릭은 커미셔너를 찾는 흉내만 열심히 내다가 커미셔너 대행으로 실권을 잡았고 이후 아예 대행 꼬리표까지 떼고 정식 커미셔너가 되었다. 당시는 노사문제가 가장 현안이라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2005년 발생한 스테로이드 사건은 구단에도 피해가 가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구단주 출신의 커미셔너가 제대로 된 조사와 조치를 할 수 있을지 상당한 의구심을 주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적거리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였고 금년 배리 본즈가 홈런 신기록을 세우면서도 축하 분위기가 아닌 스테로이드 홈런이라는 오명을 쓴 결과를 나았다. 메이저리그가 커미셔너 후보이기도 했던 제 3자인 미첼에게 조사를 의뢰하고 이번 보고서가 나왔지만 후속 조치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는 이런 역학 관계 때문이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1) 중인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인왕산 공동체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1) 중인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인왕산 공동체

    중인들은 한 집안에서 같은 직업을 이어받으며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렸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사를 들여놓고 잡과 시험공부를 시켰으며, 자기네들끼리 추천하여 정원을 나눠 가졌다. 혼인도 같은 직업끼리 했다. 그렇지만 이웃과 어울려 즐길 줄도 알았다. 한 마을에서 자라며 같은 서당에서 공부하다보면 형제 이상의 우정이 생겨,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혼이 중심이었던 옥계사(玉溪社) 동인들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자고 계를 꾸렸으며, 장혼의 서당에서 글을 배웠던 장지완의 친구들도 형제처럼 밤낮 머리를 맞대고 지냈다. ●공동체의 규범인 사헌을 정하다 인왕산에서 태어난 장혼의 친구들이 1786년 7월16일에 옥계(玉溪) 청풍정사에 모여 시사(詩社)를 결성한 이야기는 제1회에 소개했는데, 이들은 옥계사의 정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헌(社憲)을 정해 공동체를 만들었다.22조 가운데 몇 조목만 살펴보아도, 이들이 꿈꾸었던 인왕산 공동체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 우리는 이 계()를 결상하면서, 문사(文詞)로써 모이고 신의(信義)로써 맺는다. 그러기에 세속 사람들이 말하는 계(契)와는 아주 다르다. 그러나 만약에 자본이 없다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각기 한 꿰미씩의 동전을 내어서 일을 성취할 기반으로 삼는다. 이자돈을 불리는 것은 다섯 닢의 이율로 정한다. 1. 여러 동인들 가운데 우리의 맹약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내어는다. 그래도 끝까지 뉘우치지 않으면 길이길이 외인(外人)으로 만든다. 1.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노는데, 반드시 대보름, 봄과 가을의 사일(社日), 삼짇날, 초파일, 단오날, 유두(流頭), 칠석, 중양절, 오일(午日), 동지, 섣달 그믐으로 정하여 행한다. 낮과 밤을 정하는 것은 그때가 되어 여론에 따른다. 회계나 모임을 알리는 글은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지 못하게 한다. 1. 시회(詩會) 때마다 만약 시를 짓지 못하면 상벌(上罰)을 베푼다. 1. 우리 동인들이 정원에서 모이는 모습이나 산수(山水) 속에서 노니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내어,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1. 우리 동인들 가운데 만약 부모나 형제의 상을 당하게 되면 한 냥씩 부의(賻儀)하고, 종이와 초로 정을 표시한다. 자식이 어려서 죽게 되면 술로써 위로한다. 집안에 상을 당하게 되면 성 밖까지 나가서 위로하며, 반드시 만사(輓詞)를 짓되 그 정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만장군은 각기 건장한 종 한명씩을 내어 놓는다. 1.(벼슬을 얻어) 출사례(出仕禮)를 치를 때에는 후박(厚薄)에 따라 세 등급으로 한다. 상등은 무명 3필, 중등은 2필, 하등은 1필로 한다. 돈으로 대신 바칠 때는 두 냥씩 바친다. 1. 여러 동인들 가운데 상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날로 각기 비석 한씩을 내어 세운다. 장례 하루 전까지 여러 동인들이 각기 만사(輓詞) 한 수씩을 지어 상가로 보내며, 만장군을 그날 저녁밥 먹은 뒤에 보내되 각기 만장을 가지고 가게 한다. 상가 근처에서 명령을 기다리게 하되, 상여가 떠날 때에 검속하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되니, 여러 동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무덤 아래까지 이끌고 간다. 장례가 끝난 뒤에 신주를 모시고 돌아올 때에도 따라오되, 마세전(馬貰錢)은 거리가 멀고 가까움에 따라 곗돈 가운데서 지급한다. 1. 여러 동인들 가운데 기복(朞服)이나 대공복(大功服)의 상복을 입게 되는 사람이 있으면, 상복을 처음 입는 날 모두 함께 찾아가서 위문한다. ●인왕산 기슭, 옥계와 필운대 사이에 모여 살다 천수경이 옥계로 먼저 이사오자, 장혼이 찾아와 시를 지었다. “예전 내 나이 열예닐곱 때에/이곳에 놀러오지 않은 날이 없었지./바윗돌 하나 시냇물 하나도 모두 내 것이었고/골짜기 터럭까지도 모두 눈에 익었었지./오며 가며 언제나 잊지 못해/시냇가 바위 위에다 몇 간 집을 지으려 했었지./그대는 젊은 나이로 세상에서 숨어 살 생각을 즐겨/나보다 먼저 좋은 곳을 골랐네그려./내 어찌 평생동안 허덕이며 사느라고/이제껏 먹을 것 따라다느니라 겨를이 없었나./싸리 울타리 서쪽에 남은 땅이 있으니/이제부턴 그대 가까이서 함께 살려네./이 다음에 세 오솔길을 마련하게 되면/구름 속에 누워서 솔방울과 밤톨로 배 불리세나.” 어릴 적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이웃에 살았는데, 이들의 서재 이름은 다음과 같다. 천수경:송석원(松石園) 장 혼:이이엄(而已), 다 허물어진 집 세 간뿐. 임득명:송월시헌(松月詩軒), 이웃에 지덕구가 살았다. 이경연:옥계정사(玉溪精舍). 적취원(積翠園)은 아들 이정린에게 물려주었다. 김낙서:일섭원(日涉園). 아들 김희령에게 물려주었다. 왕 태:옥경산방(玉磬山房). 뒷날 육각현으로 이사갔다. 이들은 인왕산 친구들끼리 모이면서,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은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그랬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게 통문을 돌렸으며, 한때 동인이었더라도 일단 쫓겨나면 외인(外人)으로 취급했다. 이들의 계()는 진나라 시인 왕희지의 난정수계(蘭亭修)를 본뜬 문학적 모임이지만, 계(契)의 성격을 살려 기금을 모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였다. 이들의 직업은 다양해서 만호(차좌일), 규장각 서리(김낙서, 임득명, 김의현, 박윤묵), 승정원 서리(이양필), 비변사 서리(서경창), 훈장(천수경, 장혼), 술집 중노미(왕태) 등이었는데, 시 짓기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들은 보고 싶을 때마다 이웃 집에 찾아가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그러나 직장 일에 얽매이다보니 자주 만날 수 없어, 일년에 며칠을 미리 정해 놓고 만났다.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날마다 이들이 모여 시를 짓고 놀았던 것을 보면, 이들은 친척보다 옥계사 동인들과 더 친밀하게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일년 열두달의 모임터 이들은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그날 할 일도 정했는데,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이들이 정한 ‘옥계사 십이승’은 다음과 같다. 7월. 단풍 든 산기슭의 수계(楓麓修) 8월. 국화 핀 뜨락의 단란한 모임(菊園團會) 2월. 높은 산에 올라가 꽃구경하기(登高賞華) 6월. 시냇가에서 갓끈 씻기(臨流濯纓) 1월. 한길에 나가 달구경하며 다리밟기(街橋步月) 4월. 성루에 올라가 초파일 등불 구경하기(城臺觀燈) 3월. 한강 정자에 나가 맑은 바람 쐬기(江淸遊) 9월. 산속 절간에서의 그윽한 약속(山寺幽約) 10월. 눈속에 마주앉아 술 데우기(雪裏對炙) 11월. 매화나무 아래에서 술항아리 열기(梅下開酌) 5월. 밤비에 더위 식히기(夜雨納凉) 12월. 섣닫 그믐날 밤새우기(臘寒守歲) 이들은 이따금 인왕산을 벗어나기도 했는데, 이들이 정한 우선 순위를 보면 역시 단풍 든 가을과 꽃 피는 봄의 모임을 좋아하고, 눈 내리는 겨울이나 더운 여름은 덜 좋아했다. 모일 때마다 자신들이 노니는 모습을 시로 짓고 그림으로 그렸는데,1786년 7월의 모임에서는 12승에 해당되는 달마다 동인들이 1수씩 시를 지었다. 이때 편집한 ‘옥계사(玉溪社)’ 수계첩에는 모두 156편의 시가 실리고, 겸재 정선의 제자인 임득명의 그림이 2월,1월,9월,10월의 시 앞에 실려 있다. ●인왕산 10경을 선정하고 그림 그려 즐기다 이들은 참석자 숫자만큼 수계첩을 만들어서 나누어 가졌는데,1786년 7월16일의 수계첩은 당시 가장 연장자였던 최창규의 소장본이 삼성출판박물관에 남아 있으며,1791년 유두(流頭)의 ‘옥계아집첩’은 김의현의 소장본이 한독의약박물관에 남아 있다. 갑자년(1804) 명단에 세상을 떠난 선배들 이름이 보이지 않더니, 무인년(1818) 수계첩에는 송석원 주인 천수경의 이름마저 명단에 보이지 않는다. 영국 대영도서관에 소장된 무인년 수계첩에는 임득명이 그린 옥계십경(玉溪十景)이 실려 있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은 주관적인 평가인데, 아름다운 경치의 숫자를 정해놓고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내는 예술적 작업이 바로 팔경(八景), 또는 십경(十景)의 선정이다. 팔경이나 십경 앞에서 시인들은 시를 짓고,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 경치에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포함된다.‘아름다운 나무의 무성한 그늘(嘉木繁陰)’은 한여름의 인왕산 모습이고,‘깊은 눈속의 이웃집(數隣深雪)’은 겨울의 인왕산 모습이다. 인왕산은 하나이지만, 철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옥계 외나무다리를 건너 이웃 친구를 찾아가는 시인의 모습에서 인왕산의 문기(文氣)를 엿볼 수 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FT “한국 대선판 ‘역술ㆍ풍수’에 빠지다”

    ”한국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조상이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돌아눕는다” 한국 대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풍수를 비롯해 각종 역술에 의존하는 후보들의 모습이 다시 해외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몇달 전 선산을 이장한 대선 ‘삼수생’ 이회창 후보의 사연 등을 통해 한국 대선판에 불고 있는 ‘풍수 바람’을 전했다. 이 후보는 풍수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조상 묏자리를 좀 더 상서로운 장소로 이장한 경우로 소개됐다. 앞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지난 2005년 선산의 조상묘를 새단장한 바 있다. 신문은 대선에서 2차례 고배를 마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후 조상의 묘를 옮겼으며 세번째 도전인 지난 1997년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풍수 전문가 박미찬씨는 “풍수는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라며 “조상의 묏자리를 이장한 뒤 운이 트인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역술가의 예언 역시 대선판의 단골 메뉴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는 이 후보의 사주에 ‘금(金)’이 4개나 들어있어 특별한 운을 상징한다며 의기양양하고 있다. 장안의 역술가들은 저마다 대선 결과를 둘러싼 ‘천기누설’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의 최진 소장은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암시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싶어한다”며 “선두주자는 역술을 통해 승리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다른 후보들은 희망을 얻는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클론의 역사

    베른의 ‘달나라 여행’,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은 미래소설이 어떻게 한 시대를 뒤흔든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꿈에서 덜 깬 소리에 지나지 않았을 그 이야기들에서 사람들은 무얼 찾고 싶었던 걸까.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인간은 쉼없이 자기복제를 욕망해왔다. 미래소설들이 독자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불을 지펴온 이유를 찾는다면, 그게 바로 답이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당장 우리에겐 황우석 사건이 있었다. 독일 다름슈타트 공대 생화학 교수였던 한스 귄터 가센과 그의 제자 자비네 미놀이 인류의 ‘인간만들기 프로젝트’의 장구한 역사를 정리했다. 과학문명의 숙명적 딜레마로 떠오른 생명복제 문제에 관한 한 그들의 책 ‘인간, 아담을 창조하다’(정수정 옮김, 프로네시스 펴냄)에는 없는 이야기가 없다. 유전공학과 현대인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뿌리깊은 역사를 조명하느라 고대 신화에서부터 종교, 미술, 문학 등 시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활강한다. #인간복제, 예술작품의 상상에서 태어나다 이 논의 자체는 이미 진부하다. 오리무중인 해답을 독자가 제각기 판단해볼 수 있게끔 방대한 근거를 제시해주는 배려가 이 책의 최대 매력이다. 무엇보다 신화, 문학작품, 영화 등 익숙한 소재에서부터 논의를 이끌어내는 순발력이 전문식견이 없는 독자들에겐 무척 반가울 듯하다. 자기복제의 열망은 인간에겐 본능 같은 것이었다. 진흙으로 신을 닮은 인간을 빚어 생명을 불어넣은 대가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힌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 히브리 전설에 나오는 진흙 인간 골렘, 사람의 시체를 짜깁기해 괴물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 자기복제의 인간 욕망이 적나라하게 투시된 주인공들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종교인, 문학가, 철학자들이 인간복제의 역사에 기여한 몫이 얼마나 큰지 책은 독자들에게 에둘러 넘겨짚게 만든다. 관련 문학작품들의 내용과 탄생배경도 상세히 소개한다. 읽는 재미를 두배로 부풀리는 ‘이스트’다. 예술가들의 분방하다 못해 “고삐풀린” 상상력은 복제과학의 가장 적극적인 촉매제였다. 예술작품에 담긴 상상화(想像)가 과학자들의 연구 열망을 부추겼다. 반대로, 윤리의식이 결여된 분별없는 과학자들에게 디스토피아적 메시지로 매섭게 경고한 역할자 역시 예술작품이기도 했다. 책이 의미심장한 밑줄을 긋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메리 셸리의 처녀작 ‘프랑켄슈타인’은 결과를 책임지지 않은 무모한 과학자, 그러니까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였다. 자신의 역할을 대체할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사이보그의 역사에서도 입증된다. 그리스ㆍ로마신화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판도라, 영화 ‘스타워즈’의 깡통로봇, 터미네이터, 로보캅, 주나라 무왕 때 등장했다는 인간조각상 등 인간복제를 꿈꾼 사례는 차고넘친다. #유전공학은 은총일까, 저주일까 고대인들이 인형을 만들어 복제의 꿈을 꿨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다. 그리스 여신의 성전이나 무덤에서 관절인형(기원전 5세기)들이 자주 발견되곤 한다. 고대인들은 인간의 초상으로서 인형을 대했던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 뱀에서 인간창조의 역사가 이미 시작된 건지 모른다. 복제를 향한 욕망이 이처럼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면 좀더 우호적인 시각으로 생명공학 문제를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여론은 왜 늘 현대기술에 비판적인지, 두루 성찰하게 하는 이 책은 지난해 7월 현지에서 출간됐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는 뇌의 메커니즘을 완전해부해 ‘인간 만들기’의 고지를 밟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우리 욕망은 지금 몇부 능선쯤 넘어서고 있는 걸까.1만 6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380V 전압에도 ‘무덤덤’…러시아 전기인간

    최근 러시아에서 380V의 전압에도 꿈쩍않는 ‘전기인간’이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77세의 알렉산더 이그나토프(Alexander Ignatov)할아버지는 16세 때부터 전기에 감전되도 아무 이상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가 전도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220V 뿐 아니라 380V의 전압도 무섭지 않다.”며 “두 개의 쇠못을 220V 콘센트에 하나씩 끼우고 손가락으로 못을 잡으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특히 할아버지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전도체’ 능력을 이용해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손으로 잡고 물에 넣으면 열이 발생해 물이 데워진다.”고 설명한 뒤 “이렇게 만들어진 물에는 ‘치유력’이 있다. 암환자도 이 물을 오래 마시고는 호전되었다.”고 설명했다. 할아버지를 진찰한 한 의사는 “몸 전체, 특히 손이 전도체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와같은 체질은 100만분의 1의 확률을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며 신기해 했다. 이어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서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430여개 고분 中서 무더기로 발견

    최근 중국에서 이집트의 ‘왕들의 계곡’(유명한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고분 군(群)이 발견돼 고고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더기의 고분이 발견된 곳은 최근 남수북조(南水北調·중국 남부의 풍부한 담수 자원을 물이 부족한 북부로 끌어오는 사업)공사가 한창인 허난(河南)성의 안양(安陽)시로 고분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의 출토도 이어지고 있다. 안양시 문물고고연구소장 쿵더밍(孔德铭)은 “이 곳에서 발견된 무덤들은 전국시대(BC 403~BC 221)부터 수나라(581∼618)시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역사적 사료가 부족했던 서한(西漢)시대의 역사적 기록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전국시대 후기의 무덤 127개와 서한시대 초기의 무덤 33개 이외에도 남북조(420~589)와 수나라 시대의 묘로 추정되는 것까지 합치면 총 430여개의 무덤이 발견된 셈”이라며 “현재도 계속 발굴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고분 군이 각 시대의 장례 풍속 및 문화적 특징을 매우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채호 가묘, 정식 묘소로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가묘가 충북 청원군에 의해 3년여 만에 새로 단장된다. 청원군은 26일 “가묘를 새로 단장해 정식 묘소로 만들기로 최근 유족,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고령 신씨 고천군파 종중과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군은 1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다음달에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 있는 단재 가묘 정비사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지반을 견고하게 하고 화강석 계단, 길이 100m의 배수로 설치, 묘소 주변 조경사업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단재의 묘소는 유족들이 수맥으로 봉분 붕괴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인근 지역으로 이장해 줄 것을 요구하다 2004년 9월 굴착기로 무덤을 파냈고 군은 당시 파헤쳐진 묘소 부근에 가묘를 만들어 선생의 유골을 안장했다.청원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지도자 이산의 참모습 알리고파”

    조선시대 정조(正祖)대왕이 축성한 수원 화성 등 문화재 복원 업무를 맡고 있는 학예사가 어린이들을 위한 정조대왕 전기를 펴냈다. 경기 수원시 화성사업소 학예연구사 김준혁(41)씨는 25일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지도자 정조의 참 모습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책 제목은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이다. 이산은 정조대왕의 본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올해 5월 탈고했지만 책을 만드는 작업에 시간이 걸리면서 공교롭게 정조대왕을 다룬 드라마 ‘이산’의 인기가 한창일 때 책이 나왔다. 164페이지 분량의 책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대리청정, 정조의 개혁정치, 조선 최강의 부대 장용영, 화성 능행 등 정조의 사상과 발자취를 보여주는 주제로 꾸며져 있다. 특히 ‘정조는 숭유억불 시대에 왜 용주사를 만들었을까?’,‘정조는 과연 독살되었는가?’ 는 등 정조시대 당시 논쟁거리였던 14가지 이야기를 구성해 논술교육에 활용하도록 했다. 본문 중간마다 어려운 단어를 풀이해 놓아 청소년들이 쉽게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거중기와 장용영 훈련 모습을 그린 삽화, 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과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 등 사진도 삽입해 글을 읽는 재미를 높였다. “정조의 사상과 정책이 서양보다 앞선 것이라는 것을 청소년들이 알고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습니다.” 정조대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정조에 대해 조예가 깊은 김씨는 “정조는 흔히 문예 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양반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제도를 백성을 위한 제도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혁신적인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성인들을 위한 정조이야기를 준비 중이라는 김씨는 ‘이순신’,‘전태일’,‘알기 쉬운 화성이야기’,‘수원화성 행궁’을 썼으며 공저로는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화성’,‘우리고장 수원’,‘우리 전통문화와의 만남’,‘강좌 한국사’ 등이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박종훈 ‘가족 실내악’ 무대 선보인다

    박종훈 ‘가족 실내악’ 무대 선보인다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조트리오(조영방, 조영창, 조영미), 안트리오(루시아 안 , 마리아 안, 안젤라 안)…. 실내악을 추구하는 클래식 연주자들 가운데 유독 가족이 많다. 그 이유는 뭘까. 보통 3중주,4중주부터 최대 10명이 넘는 인원까지 소화하는 실내악은 연주자들 간의 호흡이 관건이다. 독주 무대에서 아무리 재능을 뽐냈다 하더라도 자신을 낮추고 팀에 녹아들지 못하면 공연을 망치게 마련. 때문에 서로 배려하며 눈빛만 봐도 척 통하는 혈연 관계의 연주자들이 유독 실내악 무대에서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홀로 무대를 누볐던 피아니스트 박종훈도 가족과 함께 꾸미는 실내악에 도전한다. 역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일본인 아내 치하루 아이자와,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는 동생 부부 박치상·박미선과 함께 무대에 선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음악적 파트너로 한 길을 걷는 이 행복한 4인방이 펼치는 무대에 클래식 애호가들의 귀가 쫑긋 세워질 만하다. 완벽한 호흡을 선사하기 위해 이들이 고른 음악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조세프 라벨의 작품이다. 박종훈은 이번 무대를 위해 라벨의 대표곡인 ‘볼레로’‘쿠프랭의 무덤’ 중 ‘리고동’ 등을 자신만의 색깔로 편곡했다. 라벨의 음악은 대담한 화성과 기품 있는 음색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의 손에 의해 라벨의 음악이 어떤 색깔을 띨지 자못 궁금하다. 공연은 새달 1일 오후 5시 호암아트홀에서 한차례만 열린다.(02)2658-3546.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완벽 보존된 1천년전 미이라 中서 발견

    최근 중국에서 치아 및 손톱이 완벽하게 보존된 미이라가 발견돼 학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얼마전 중국 신장(新疆)자치구에서 발견된 이 미이라는 남색의 긴 옷을 입고 있으며 변발로 길게 묶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또 전신이 종이처럼 창백했으며 솜 이불을 덮고 두 눈은 허공을 향해 뜬 채로 발견되었다. 발굴 전문가는 “조사 결과 이 미이라는 40세 정도의 남자로 판명되었다.”며 “약 1천여년 전 사람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놀라운 사실은 이 미이라가 서양인의 미이라라는 것. 발굴연구팀은 “이 미이라의 머리카락이 곱슬인데다 피부 조직이나 생김새등이 명백히 유럽인의 모습”이라고 전한 뒤 “손톱과 치아 등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며 놀라워 했다. 이어 “이 지역에서는 종종 고대 무덤이 발견되기는 하나 이처럼 완벽히 보존된 서양인의 미이라가 발견되기는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미이라가 눈을 뜨고 있으며 칼등 날카로운 것에 찔린 흉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 채로 죽임을 당한 후 미이라로 처리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400년 된 술은 어떤 맛일까?…中서 발견

    2400년 된 술은 과연 어떤 맛일까? 최근 중국에서 담은지 2000년이 훨씬 넘는 고주(古酒)가 발견돼 애주가 뿐 아니라 전 중국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산시(陕西)성 시안(西安)시 바이수이(白水)현 고대 무덤 발굴팀은 조사 중 지하 7m 깊이의 한 유적실에서 청동단지들을 발견했다. 발굴팀이 나무로 만든 마개로 밀봉되어 있는 단지를 열자 2000여년동안 묻혀 있었던 향긋한 술 냄새가 풍겨져 나와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조심스럽게 4개의 유리병으로 옮겨진 이 술은 아름다운 붉은 빛을 띄고 있어 포도주와 비슷했으며 간단한 검사를 마친 조사팀은 “전국시대(BC 403년~221년)의 술이 확실하다.”고 판정한 뒤 “주 성분이 무엇인지는 알기 위해서는 세밀한 성분조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연극리뷰] 테러리스트, 햄릿

    [연극리뷰] 테러리스트, 햄릿

    다섯 구의 죽은 몸뚱이가 널린 무대에 부왕의 덧없는 망령만 남았다. 그리고 툭 떨어지는 왕관. 독일의 차세대 연출가 옌스 다니엘 헤르초크와 국립극단 배우들이 쌓아올린 ‘테러리스트, 햄릿’(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영국 극작가인 셰익스피어와 독일 연출가, 한국 배우가 트라이앵글을 이룬 작품이다. 올가을 공연계의 눈에 띄는 현상은 ‘십이야’‘햄릿’‘사랑의 헛수고’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것. 이 가운데 주목받는 작품의 관건은 얼마나 원작을 기억하게 하느냐보다 얼마나 원작을 잊게 하느냐인 듯하다. ‘테러리스트, 햄릿’도 이 범주에 있다.“단편적인 선악 구분을 떠나 햄릿의 복합적인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는 연출가의 말은 무대에 사실적으로 실현된다. 햄릿은 소주병으로 ‘병나발’을 불고 감자칩을 씹어 삼킨다. 그는 음울함에 머무르지 않고 테러리스트로 극을 전복한다. 오필리어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무대 위를 뒹구는가 하면 강간하는 듯한 몸짓으로 그녀를 조롱하는 모습에서는 극단적인 폭력성마저 표출된다. 총 한 자루에 세상의 명쾌한 종말을 기대하는 그의 모습에는 처연함마저 느껴진다. 16m 길이의 무대는 객석 세 열을 잠식해 뚫고 나왔다. 의상과 소품은 우리 일상에서 그대로 빼내온 것들이다. 스니커스에 리바이스 블랙진을 입은 햄릿에 교복에서 탈피해 일본의 코스튬플레이광처럼 미니스커트에 요술봉을 들고 나타나는 오필리어가 단적인 예다. 호레이쇼는 ‘디카’로 현장을 저장하고 햄릿은 “동영상으로도?”하고 확인한다. 영국으로 떠나는 햄릿은 여행용 슈트케이스를 끌고 나온다. 노란 안전모를 쓴 무덤지기가 땅을 파내듯 조립식 바닥을 흙 대신 무섭게 밀어내는 모습은 ‘원전의 현대적인 해석’이라는 진부한 클리셰마저 신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의상과 소품뿐 아니라 배역들의 정서도 실용주의와 민주주의의 혜택을 입은 현대인을 닮았다.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동요,70년대 가요 등을 상황에 맞게 고루 내보내는 시도도 귀기울여볼 만하다. 파격이 겉도는 순간도 있다. 원전에서 가져와 한꺼번에 쏟아내는 일부 대사는 현실의 무대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발성이 귀에 정확히 꽂히지 않는다는 대사처리의 기술적인 미숙함과 주고받는 대사마저도 독백처럼 일방적으로 터뜨리는 감정의 과잉은 아쉽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역대 횡혈식 석실분중 가장 큰 규모

    한성도읍기 백제시대의 거대한 지하고분이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서 발굴됐다. 지하 궁전을 연상케 하는 이 무덤은 3m 이상 땅을 방형으로 파내려간 다음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인 묘광(墓壙)이 한 변이 5m에 이르는 길이로 조성돼 있다. 외부에서 무덤방으로 향하는 무덤길 또한 길이가 무려 8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흥종)는 지난 4월30일부터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이후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각종 생활유적과 고분 등을 205곳에서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이 가운데 해발고도 72m인 송원리 송계동 마을 북쪽 야산 정상의 평탄지역에서 확인한 백제시대 고분 KM-016호분은 외부에서 묘광으로 통하는 길을 별도로 마련한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큰 규모여서 관심을 모은다. 이 무덤은 묘광 전체를 지하에 마련한 첫 번째 백제시대 고분으로 기록됐다. 이 무덤은 네 변 길이가 각각 4.74m이며 최대 3.48m까지 땅을 파 묘광을 조성하고 네 벽면에 깬돌을 촘촘히 쌓되 모서리 각을 죽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궁륭형(穹隆形) 석실로 축조됐다. 무덤길은 8.13m에 달한다. 책임조사원인 김무중 연구실장은 “무덤방은 흡사 낙랑 전축분(벽돌무덤)인 평양 석암리 99호분을 연상케 한다.”면서 “아직 무덤 내부가 제대로 조사되지는 않았으나 광구장경호(아가리가 넓은 목 긴 항아리)나 삼족기(세발토기), 개배(뚜껑접시) 같은 토기 유물로 보아 한성도읍기 중 말기에 속하는 고분임이 확실하며, 나아가 그 시대에 이 지역에 대단한 지역적 기반을 갖춘 세력가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번 조사에서 백제시대 고분만 석실분 6기, 석곽묘 19기, 토광묘 16기, 주구토광묘 9기, 옹관묘 5기 등이 확인됨으로써 이 지역이 공주나 부여 못지않은 대규모 백제시대 유적지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한편 정부는 향후 행복도시 건설에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해당 지역을 현재 자리에 보존할지 이전해 보존할지 등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설령 현재 위치 보존이 결정된다고 해도 고분 발굴지역의 면적이 넓지 않아 전체 공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3)김시습과 만복사 석불입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3)김시습과 만복사 석불입상

    매월당 김시습(1435∼1493)처럼 전국 곳곳에 흔적을 남겨 놓은 옛사람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매월당이 최후를 마친 충남 부여 무량사에는 그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도가 있습니다. 무량사에는 그의 초상화도 영정각에 모셔져 있는데, 유·불·선(儒·佛·仙)을 넘나든 이 사상가가 이곳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선사(禪師)로 대접받았음을 뜻합니다. 최근 매월당의 관향(貫鄕)이자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했던 강릉의 경포대에는 김시습기념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율곡 이이가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태어난 오죽헌이 지척이지요. 율곡은 선조의 명으로 매월당의 전기를 짓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인연이 깊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은 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고,1455년(단종 3년) 마침내 보위에 오르자 책을 불사르고 방랑을 시작합니다. 그는 모두 2200편에 이르는 시를 남겼습니다.‘유관서록(遊關西錄)’과 ‘유관동록(遊關東錄)’,‘유호남록(遊湖南錄)’,‘유금오록(遊金鰲錄)’은 일종의 기행연작시이지요. 시의 제목을 훑어가다 보면, 전국적으로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보다 닿지 않은 곳을 찾는 편이 오히려 빠를 지경입니다. ‘유금오록’은 김시습이 30대 시절, 오늘날에는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경주 금오산에서 지은 것입니다. 짐작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소설인 ‘금오신화’도 그가 금오산 남쪽 용장사에 머물고 있을 때 썼습니다. ‘금오신화’는 5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것으로,‘만복사 저포놀이(萬福寺樗蒲記)’도 그 하나이지요. 저포란 나무로 만든 일종의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겨루는 중국 놀이라고 하는데, 우리식의 윷놀이도 한자로는 저포라고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복사는 전북 남원의 기린산에 있었던 절입니다. 지금도 남원시내에서 순창으로 가는 길가에서 절터를 찾을 수 있습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문종(1019∼1083)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하지요. 탁발을 마치고 만복사로 돌아가는 스님의 행렬(萬福寺歸僧)이 ‘남원 8경’의 하나로 꼽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만복사 저포놀이’는 양생(梁生)이란 노총각이 만복사를 찾아가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여 이기고는, 소원대로 불공을 드리러 온 처녀를 만나 이승의 3년에 해당하는 꿈 속 같은 3일을 지내고는 헤어진다는 내용입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처녀는 왜구의 난리를 만나 죽임을 당한 혼령으로, 이후 양생도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만복사는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100년도 훨씬 전에 씌어진 ‘만복사 저포놀이’에 벌써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퇴락의 원인도 왜구의 침입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만복사에는 창건 당시 조성된 석불입상이 하나 전하고 있습니다. 원만하고 양감있는 얼굴과 유려하고 굴곡있는 신체 곡선이 자연스럽습니다. 전체 높이가 2m라지만 대좌와 광배를 제외하면 부처님은 사람키와 비슷하지요. 저포놀이를 하자는 양생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 같은 친근한 모습입니다. 매월당은 세조 8년(1462) 여름을 순천 송광사에서 보내다 남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광한루에 오르니 피리소리 들리다’는 시를 남겼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 때 만복사에 머물며 지금은 보물 43호로 지정된 이 석불입상을 만났을 것입니다. 춘향과 판소리의 고장에서 뜻밖에 ‘금오신화’의 주인공과 마주치고, 매월당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dcsuh@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한국축구, 강력한 리더십의 감독 원한다

    마침내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이름이 거론됐다. 주제 무리뉴 첼시 전 감독에서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감독까지 외국인을 비롯해 박성화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나 김학범, 조광래 같은 국내파도 거론됐다. 축구협회는 이르면 다음 주중으로 최종 선택을 할 예정인데, 그동안 거론됐던 이들 외에도 제라르 울리에 전 리옹 감독과 마이클 매카시 울버햄프턴 감독, 밀란 마찰라 바레인 감독 등도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유럽 한복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감독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 보이는 이 시점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마지막 분수령이다. 신임 감독은 한국의 축구 문화가 아직 미성년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중도 하차한 코엘류 감독은 선수들이 ‘포백 수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본프레레 감독은 축구협회가 여론에 쉽게 휘둘리는 상황을 버티지 못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핌 베어벡 감독은 한국 축구의 고독한 산책자가 되고 말았다. 신임 감독은 자신이 ‘감독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으로 취업을 하게 된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는 다 자라지 않은 미성숙한 조건에서 온갖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그 때문에라도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가 선임될 필요가 있다. 독불장군을 뜻하는 게 아니다. 리더십은 다양하게 존재하거니와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대표팀이 운영되도록 강력한 지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감독이어야 한다. 원만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선수단 시스템과 전술에 있어서는 바윗장 같은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체질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실천해야 한다. 한국 선수들은 비체계적인 성장 과정 탓에 경기를 풀어 나가는 안목과 공간 파악 능력이 약하다. 하지만 뛰어난 승부 근성과 학습 능력을 갖고 있다. 새로운 축구에 대한 욕망도 강하다. 신임 감독에게는 완성된 선수들을 조율하는 것보다 원석을 다듬어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드는 창조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다시 꿈을 꾸자.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은 가시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성취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신임 감독은 합리적인 시스템 속에서 야심차게 자신의 철학을 관철한다. 가능성이 풍부한 젊은 선수들은 새로운 지평에 눈을 뜨게 되고 그 성과들이 자연스럽게 K리그의 자산으로 남는다. 바로 이러한 꿈을 위해 우리는 신임 감독을 박수로 환영할 일이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강북구 맞춤형 방문관리

    강북구 맞춤형 방문관리

    강북구의 ‘맞춤형 방문관리 사업’이 손바람을 내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필요한 주민에게 맞춰 진행하다 보니 지원대상 등록 인원이 늘어나고 자원봉사에 나서는 주민들도 많아졌다.‘의료복지 1등구’의 자부심이 생겨난다는 말이 주민들의 입에서 절로 나오고 있다. ●환자 상태와 환경에 따라 설계 5일 강북구에 따르면 맞춤형 방문관리 사업의 출발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찾아가는 ‘방문간호’. 가정방문을 요청한 환자의 집을 찾아가 건강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자녀수, 월수입 등 생활환경을 확인한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지원의 틀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방문간호의 주기를 정한다. 환자가 식생활에 곤란을 겪으면 이웃들의 기부물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푸드뱅크 이용자’로 등록한다.‘의료비 지원대상’이 되는지도 살핀다. 혼자 살면서 거동을 못하면 ‘이동목욕 대상’이 된다. 때에 따라 성인용 기저귀 등 ’의료소모품 제공 대상’이 되는지도 따진다. 환자의 상태가 심하면 ‘방문진료’ 대상으로 한 단계 높아진다. 방문진료는 의사와 간호사, 운전자로 구성된 전문팀이 맡는다. 환자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1차 진료를 받도록 하고, 투약도 한다. 진료 중에 병세가 악화되면 2,3차 진료기관으로 옮긴다. 이동목욕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한달에 1∼2번 꼴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방문하는 사업이다. 목욕 일은 주부 등 자원봉사자들이 맡는다. ●취약계층 9300여가구 혜택 혼자서 목욕을 못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빨래, 청소, 외출 동행 등이 필요한 저소득 노인과 장애인이라면 ‘가정도우미’를 요청하면 된다. 구청에 등록하면 적합성 판단을 거쳐 자원봉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등록대상은 아니더라도 잠시 자원봉사의 손길이 필요하면 ‘일일 응급도우미’(944-0781∼9)를 하루 전에 신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말기 암환자 등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을 위한 ‘호스피스’ 사업도 무료로 운영된다. 서비스는 전화·방문 신청→방문간호사 방문→가족건강기록부 작성→자원봉사자 연결→필요하면 입원 주선→사망→저소득 주민에 장례지원→유족 위로방문 순으로 진행된다. 지난 9월말 현재 의료취약 주민은 3만 6804가구. 이 가운데 방문간호 대상은 9380가구로 지난해(7083가구)보다 2297가구 늘었다. 병세가 위중한 방문진료 대상자는 60명으로 올들어 총 567회 진료를 받았다. 가정도우미 104명, 이동목욕 15명, 호스피스 3명 등이 혜택을 입고 있다. 등록 환자가 늘면서 간호사 수도 7명에서 17명으로 늘렸다. 동별로 간호사 1명씩을 할당한 셈이다. 자원봉사자들도 늘면서 비교적 힘든 이동목욕의 봉사자가 54명이다. 방문간호 차량 3대, 방문진료 차량 1대와 욕조 및 목욕설비를 갖춘 이동목욕 차량 1대에 모두 22세트의 의료기구를 비치했다. 강북구 홍미자 방문간호팀장은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방문관리 대상자는 많지만 자원봉사자의 손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서 “최근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분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베일벗은’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맨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약 3300년 전 숨진 고대 이집트 왕국의 소년 파라오였던 투탕카멘 미라가 ‘황금마스크’를 벗는다. 4일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 전시실에서 처음으로 맨얼굴이 일반에 공개됐다. 투탕카멘은 1922년 11월4일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집트 남부의 나일강변 마을인 룩소르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후 황금 마스크를 쓴 그의 미라와 수많은 부장품이 보존된 무덤은 금세 유명해졌다. 투탕카멘 미라는 이후 85년간 전문가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접근이 허용됐다. 카터는 당시 투탕카멘 미라의 몸 속에 숨겨진 부적과 부장품을 찾아내기 위해 18조각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라의 얼굴이 황금 마스크를 벗겨내는 과정에서 훼손되기도 했다. 특수 제작된 유리상자에 안치돼 이번에 일반에 공개되는 투탕카멘의 미라는 전문가들이 훼손된 부분을 고쳐 복원한 것이다. 일반 관광객들은 5일부터 흰색 아마포로 싸인 투탕카멘의 몸과 맨얼굴을 볼 수 있다. 무스타파 와지리 ‘왕가의 계곡’ 관리소장은 “투탕카멘 미라의 얼굴은 멋진 미소를 머금고 뻐드렁니를 한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집트 정부는 투탕카멘 미라의 공개로 룩소르 관광객과 관광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집트는 지난해 900여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이들의 80% 이상은 룩소르를 다녀갔다. 카이로 연합뉴스
  •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임진왜란 때인 1598년 전북 남원에서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400년 이상 흘렀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6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뿌리찾기에 나섰다. 그는 규슈 가고시마현 미야마 마을에 정착, 지금도 14개 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조선도공들 가운데 박씨의 후손이다. 한·일관계는 물론 뒤엉킨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도고 교수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시게노리 2차대전 때 외무대신 역임 도고 교수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전과 패전시 외무대신을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다. 아버지도, 그도 고위외교관 출신으로 3대 외교관 집안이다. 도자기노예인 조선도공 박씨 집안 3대가 일본의 고위 외교직을 차례로 역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게노리는 원래 박무덕이었다. 부친 박수승 대까지 도자기노예 후예로서 모진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으로 차별이 심화됐다. 수승은 박씨란 성을 자신의 대에서 끊고 귀화했다.1882년생 시게노리가 5살 때이다. 수재 시게노리는 고향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학에 들어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그 뒤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독일 외교관시절 만난 그의 아내는 독일여자였다. 아이가 다섯 있던 그녀의 사별한 남편 게오르그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기본 설계한 건축기사다. 시게노리는 독일과 소련 대사를 역임한 뒤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인 1941년 외무상에 발탁되었다. 군부에 맞서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외무상을 그만뒀으나 종전 직전인 45년 4월 외무상에 재기용됐다. 그때 일왕에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라고 강력 주장, 조기종전으로 일본사람의 전멸을 피하게 했다는 칭송도 받았다. 시게노리는 A급 전범으로 20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개전 반대 노력 등을 전범재판소가 평가, 사형은 피했다. 도고 교수는 “다섯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막연한 기억밖에 없다. 어머니, 형과 함께 가끔 스가모형무소로 면회갔을 때 낭하에서 검붉은 환자복을 입고 걸어나오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시게노리는 미군병원에서 1950년 7월 숨졌다. 시게노리는 겉으로는 도공 박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겼지만 가보지 못한 조선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국장 시절 조선에서 최초로 외교관 시험에 합격, 일본 외무성 과장으로 부임했던 직원에게 자신도 조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토로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시게노리는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고, 무덤은 도쿄시내 아오야마묘지에 있다. ●DJ납치, 주한미군철수와 아버지 시게노리는 외동딸만을 두었다. 딸과 결혼한 자신의 비서관 출신 사위를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켜 도고 후미히코라고 하게 된다. 후미히코의 한국사랑은 유별났다.1973년 한일 각료회의 때 외무성 심의관으로 한국을 방문, 김대중납치사건을 처리했다. 문세광의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뒤 한국을 재방문, 사건수습에 진력했다고 한다. 외무성 차관 때도 한국과 인연을 맺었으며 차관 사임 뒤 부부가 한국을 다시 방문해 판문점과 휴전선 부근의 남침용 땅굴을 보고, 한국의 안보 상황을 체험했다.77년 카터 전 미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일본대사로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자 워싱턴 조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 한·일 공동외교를 폈다. 부친이 한국과 공동외교전을 폈다는 사실에 대해 도고 교수는 “거의 모르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아버지는 사무차관 때 중국 및 한국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오래 전부터(400여년전) 한국과 연결됐다.”고 독백처럼 말했다. 후미히코는 20여년 전, 부인은 10여년 전 숨졌다. ●남원의 박씨 집안 후손… 뿌리를 찾아나섰다 후미히코는 태평양전쟁 말기 노약자 소개정책에 따라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을 뒀다. 형 시게히코는 워싱턴포스트지 도쿄특파원을 하다 최근 퇴직했다. 특파원 시절에는 한국도 여러번 방문, 따뜻한 가슴으로 여러편의 기사를 작성해 신문에 실었다.“현재 퇴직후 공부중”이라고 한다. 도고 교수는 도쿄대학 출신 엘리트외교관이었다.17년간 러시아관계 일을 맡아 러시아어, 영어에 능통했다.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마디만 할 수 있다. 두 아들(각각 34·30세)은 현재 일본의 회사에 재직중이다. 형도 아들만 둘이다. 도고 교수는 “내 핏속에는 독일인 피도 4분의1이 흐른다. 일부 조선인의 피도 흐른다.”며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일본이 나의 유일한 조국”이라며 단호했다. 그러나 핏줄찾기 열의는 대단하다. 최근의 일본인들에게 핏줄의식은 없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하기 전 고향 미야마 마을을 찾았다고 밝힐 때는 고향·핏줄을 중시하는 조선도공의 영향이 느껴졌다. 그의 조상들이 남원서 왔다는 것은 형의 ‘조부 시게노리’라는 책에 실려 있다.“한국에 있는 4개월 동안 반드시 가보고 싶다.”면서 남원과 ‘춘향전’,‘광한루’ 등이라고 적은, 소중하게 갖고 온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형 시게히코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조선시대 도자기 사발을 가보로 모신다. 자신도 미야마의 조선도공 출신 심수관씨로부터 받은 몇 개의 도자기를 도쿄 미나토구 한국대사관 근처 자택에 “소중히 보관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연결된 끈들이다. ●현대사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도고 교수는 2002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촉망받던 고위 외교관리였다.1997년 유럽아시아 국장이었다.98년 11월 조선도공들의 가고시마 정착 400주년 기념식장에 당시의 한·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김종필 한국 총리 등과 동석하는 큰 영광도 누렸다. 그 해에 ‘시게노리 기념관’이 생겨나는 등 고향 미야마 마을은 온통 조선도공의 열기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양국 총리와 외무장관 등이 시게노리의 동상 등을 방문했을 때는 마을의 지도자와 한국측 참석자들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를 “아주 독특하고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복잡한 일본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측근인 외무성의 사토 마사루가 2차대전 뒤 일·러간 현안인 북방4개 섬 일본 반환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2002년 구속되면서다. 그도 네덜란드대사 부임 8개월 만에 해임돼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지난해 6월 사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까지 4년 이상 일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조국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4개 섬 일괄반환론 틀 안에서 4개 섬의 귀속을 인정해주면 러시아가 언제까지 보유해도 무방하다는 ‘가나와 제안’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안 되면 우선 2개 섬 반환을 확실히 하고,2개 섬은 다음에 교섭하는 단계론을 펴다 우익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맹렬한 공격에 사토가 구속되고 실무 추진 당시 상사였던 그는 해임됐다. 도고 교수는 “북방영토가 일본의 영토라는 원칙은 전후에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지 교섭 방법론이 문제였다.”며 당시에는 자신도 네덜란드에서 귀국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본행을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눌러앉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망명은 저널리즘적인 표현이다. 그저 일본이 싫어서 귀국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외무성을 퇴임한 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2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2년, 타이완 단코대 4개월,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 6개월 등의 교수를 거쳤다. 지난 7월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부인과 함께 일본 도쿄에 주민등록을 해 영주키로 했다. ●“한국학생들 매우 논리적” 그는 미국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번 학기 초빙교수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일주일에 3시간짜리 한 강좌를 맡고 있다. 한국 학생 20명과 외국학생 10명에게 한·일관계 등 동북아 외교 현안을 정면으로 가르친다. 도고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논리적이다. 이들이 한국지도부에 들어가는 날 한·일 양국관계는 매우 밝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학자, 시민단체 등 새로운 형태의 한·일 교류가 활발한 것도 반기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 정권이 한·일 관계를 잘 해갈 것이라며 급한 국내과제를 해결, 일본 내부 반발을 해소해 정권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최근 정치·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감이 북한·일본과의 관계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봤다. 대통령선거 뒤 한·일 양국이 정상간 셔틀외교를 재개하길 바랐다. 아울러 ‘일본은 없다’,‘혐한류’ 등 책이 출판돼 양국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도고 교수는 일본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 동북아시아 평화시대를 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사회가 우경화됐다지만 우경화되거나 반한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상으로 한반도는 통일될 시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도고 가즈히코 교수 ▲1945년 나가노현 출생(태평양전쟁말기 노약자의 소개정책으로 인해 모친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거주중) ▲68년 도쿄대학 교양학과 졸업 ▲68년 4월 외무성 입성 ▲72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근무(모두 3차례 대사관 근무를 포함 소련과장과 유럽아시아국장 등으로 17년간이나 러시아관계 일을 맡음) ▲91년 워싱턴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98년 외무성 조약국장 ▲99년 유럽아시아 국장 ▲2001년 네덜란드대사 부임 ▲02년4월 네덜란드대사 해임 ▲02년5월 일본을 떠나 유랑 ▲07년7일 5년 만에 일본 귀국 ●최근의 저서 ‘북방영토 교섭비록’(일어) ‘일본외교 1945∼2003’(영어)
  • “왕흥사 목탑, 위덕왕이 세 왕자 위해 세운것”

    “왕흥사 목탑, 위덕왕이 세 왕자 위해 세운것”

    충남 부여 왕흥사터에서 최근 출토된 백제시대 사리장엄에 새겨진 명문에서 그동안 ‘망(亡)’자로 읽혀졌던 글자는 ‘삼(三)’자의 이체자(異體字)로 밝혀졌다. ‘망(亡)왕자’가 아니라 ‘삼(三)왕자’라면, 백제 위덕왕(554∼598)은 죽은 세 왕자를 위하여 577년 왕흥사에 목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한 것이 된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亡’자처럼 보이는 글자는 ‘三’의 이체자로 중국 제나라의 방주타 무덤에서도 ‘三’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31일 밝혔다. 이 교수는 “‘망왕자’로 판독하면 세상을 떠난 왕자가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면 ‘망왕자 누구누구’라는 식으로 이름을 쓰거나, 몇째 왕자로 언급했어야 했다.”면서 “문맥상으로도 ‘삼왕자’로 판독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이체자란 뜻과 음은 정자와 같으나 형태가 다른 글자를 말한다. 왕흥사 사리장엄의 동제 사리호에 새겨진 ‘삼’자는 정자 ‘三’의 중간획과 아래획의 왼쪽 상하로 획을 하나 더 파놓은 모습이다. 왕흥사 명문에는 三을 비롯해 立(입)·刹(찰)·本(본)·葬(장)·神(신) 등이 이체자이다. 이 교수는 “세 왕자가 모두 고인이 된 시대적 배경을 찾는 일이 긴요하다.”면서 “‘위덕왕 8년(561년) 백제가 신라의 변경을 침공했으나 패하여 1000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위덕왕 24년(577년)에는 신라 서변을 침공하다가 3700여명이 전사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백제와 신라의 577년 전투는 10월의 일로, 목탑이 건립된 577년 2월15일보다 오히려 늦지만, 신라측 사료에서 나온 기록인 만큼 신라 기년에 따르면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개토왕릉비문’에서 확인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즉위년은 ‘삼국사기’ 기록보다 1년 앞선 391년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렇듯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전몰한 왕자의 숫자가 3명에 이르렀던 것 같다.”면서 “위덕왕의 뒤를 아들이 아닌 아우인 혜왕이, 그것도 70세 안팎의 고령에 계승한 것은 아들들이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왕이 신라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아들인 위덕왕도 전쟁을 몸소 치렀듯이 왕실이 왕자들을 사령관으로 하는 전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왕자들이 잇따라 전사했고,‘亡’자와 닮은 이체자로 사망한 왕자들을 위해 목탑을 세운다는 의식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아좌태자의 존재 또한 “당시는 왕의 동생도 왕자라고 표기한 만큼 위덕왕의 아들이기보다는 아우일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교수는 “경주 ‘황룡사찰주본기’에 나오는 刹柱(찰주)가 ‘탑기둥’을 뜻하는 것 처럼, 왕흥사 명문에 나오는 立刹(입찰)도 ‘절을 세우다.’가 아니라 ‘탑을 세우다.’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다.”면서 “따라서 왕흥사는 ‘삼국사기’ 기록대로 600년(법왕 2년)에 축조되고,634년(무왕 35년) 낙성되었다는 데 아무런 변동이 없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일본의 유명 ‘여자귀신’은?

    일본의 유명 ‘여자귀신’은?

    매년 10월 31일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서양의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다. ‘영혼’에 대한 동·서양의 관념 차이는 매우 크며 동양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귀신’이라고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여자 귀신’은 긴 머리와 교태 섞인 웃음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처녀귀신’ ‘구미호’ 등의 귀신이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가운데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어떤 여자 귀신이 유명할까. 첫번째는 ‘괴물입귀신’(鬼一口) 학원괴담에 자주 출연하는 귀신으로 괴물의 입 앞쪽에서 미끼역할을 한다. 괴물에게 끌려가는 척하다 사람이 구하러 다가오면 단숨에 잡아먹어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두 번째는 ‘검은무덤귀신’(黑塚) 밤 동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시체를 땅속에서 캐내어 생전에 살았던 집 앞에 갖다 놓아 사람들을 놀래키는 못된 장난을 좋아하며 때로는 시체를 여러 부위로 잘라놓고 놀기도 해 ‘시체토막귀신’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세 번째는 ‘익녀귀’(溺女鬼) 일본의 온천에서 자주 출몰하는 귀신으로 일본 어른들은 종종 어린아이들에게 욕조 안에서 물에 빠져있는 미녀를 본다면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한다고 한다. 목욕을 하는 사람들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잡아먹는 수마(水魔)의 일종이다. 네 번째는 ‘우부메’(姑獲鳥) 일본 여성들이 임신 했을 때 가장 두려워 하는 귀신으로 어린아이를 먹어치운 임산부가 화(化)하여 생긴 귀신이라는 전설이 있다. 다른 집 아이들을 몰래 데려다 키우다가 먹어버리며 개를 매우 무서워한다. 이밖에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일본 여자 귀신으로는 담배를 피우면 연기 속에서 나타나 사람을 홀린다는 ‘담배요녀’(烟羅)와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에서 눈이 내린 깊은 산속에 살며 아름다운 미모로 지나가는 산악인들을 붙잡는다는 ‘설녀’(雪女)가 있다. 사진=163.com(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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