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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잉카문명 전 추정되는 ‘문신’한 미라 발견

    약 10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신한 미라가 발견돼 화제다. 미국의 폭스뉴스는 “페루 후아우라 골짜기에 있는 무덤에서 특이한 미라가 발견됐다.”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희귀한 모습”이라고 23일 보도했다. 온 몸이 진홍빛으로 칠해진 이 미라는 눈이 금속으로 돼 있고 문신까지 있다. 발굴 담당자인 투레인(Tulane) 대학의 고고학자 키트 넬슨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특이한 미라를 발견했다.”며 “미라의 주인공은 AD 1000년에서 1400년 사이 찬케이 문화의 고위 관료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뉴스는 “찬케이 문명은 연구된 바가 얼마 없다.”며 “잉카 제국이 시작되기 전 찬케이 문명 전성기였을 때 이 미라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라의 나이는 30~45살 사이로 추정되며 간단한 옷을 입은 채 허리에 새총을 차고 있었다. 또 무덤 속엔 과일과 옥수수자루와 직물로 짜인 가방 등의 제물이 함께 묻혀 있었는데 폭스뉴스는 “미라와 제물 모두 찬케이 문명의 독특한 예술양식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11월까지 발굴을 마치기로 돼 있으며 발굴된 미라와 제물은 리마에 전시될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명인은 죽어 신체를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유명인은 죽어서 신체 일부를 남긴다?” 미국 폭스뉴스는 20일(현지시간) 유명인 10명이 남긴 신체 일부분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생전에 각종 역경을 통과했던 유명인들은 죽어서도 우여곡절에 시달렸다. 나폴레옹 1세의 성기는 1821년 부검 도중 비그날리 신부라는 성직자가 빼돌렸다. 이후 1977년 미국 비뇨기과 의사 존 킹슬리 래티머가 사들였다. 당시 돈으로 2900달러. 현재 가치로 1만달러 정도를 들였다. 현재 래티머의 후손들은 이 유물을 판매할 계획이다.10만달러 이상은 받을 걸로 기대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눈도 부검 도중 사라졌다. 안구 보관자는 미국 뉴저지주의 안과의사 헨리 에이브럼스 박사다. 현재 지역 은행 개인금고에 안구를 보관 중이다.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은 미국 텍사스주 한 서점에 전시돼 있다. 한 CIA 요원이 잘라낸 이 머리카락은 지난해 10월 경매에서 10만달러에 팔려나갔다. 베토벤의 머리뼈 일부분도 부검 도중 분실됐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대학이 머리뼈 조각들을 구입해 보관 중이다. 갈릴레오의 손가락은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과학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무덤 발굴 도중 사라졌었다. 링컨의 머리뼈 조각은 암살범이 사용한 총탄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국립 보건의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에디슨의 마지막 ‘날숨’은 미시간주 헨리 포드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밖에 올리버 크롬웰의 머리, 미국 24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종양 덩어리,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심장 등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사설] 또 쇠파이프와 물대포인가

    제헌절인 그제 밤 서울 도심에서 폭력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의 쇠파이프와 경찰 물대포가 또다시 등장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시위 이후 처음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참여와 호소로 폭력시위가 수그러드는 듯했다. 우리도 그동안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측과 정부간 대화를 촉구하며 폭력을 자제하길 당부해 왔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기에 그랬다. 따라서 19일만에 양측의 충돌로 부상자가 다수 생긴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또 대규모 거리집회를 열 계획이라니 걱정된다. 거듭 강조하건대 폭력은 안 된다. 서울 중앙지법은 어제 쇠파이프를 휘둘러 경찰관을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모씨에게 징역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혐의 인정은 물론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판결 이유다. 시위현장에선 한두 사람이 폭력을 선동해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바로 군중심리다. 폭력은 의도의 순수성에 상관없이 엄벌해야 마땅하다.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의 과잉진압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촛불시위 과정을 조사해온 국제앰네스티측은 경찰의 과도한 진압을 지적했다. 경찰도 인권단체의 속성이려니 탓하지 말고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물리력은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라는 얘기다. 최근 서울신문의 창간특집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1%가 “촛불집회를 그만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계속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은 29.2%에 불과했다. 촛불집회 강행의견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판국에 폭력행사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21)강릉시·정선군 석병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21)강릉시·정선군 석병산

    강릉, 동해, 삼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암지대다. 백두대간도 이 일대를 지날 때, 강릉 석병산을 시작으로 자병산, 두타산을 거쳐 삼척 덕항산까지 여러 개의 석회암 산봉들을 거느린다. 이 산들은 석회암지대가 보여주는 독특한 풍광과 함께 석회암지대에 특수하게 적응한 특이한 식물들을 키워내고 있다. 강릉과 정선의 경계를 이루며 달리는 백두대간에 솟은 석병산(1055m)은 정상 일대에 발달한 석회암벽이 마치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산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삽당령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산계령을 거쳐 자병산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경동지괴 지형으로 북쪽으로는 아찔한 벼랑을 이루고 있고, 동쪽 일대도 급경사 벼랑을 형성하고 있다. 동해 쪽으로는 절골, 상황지미골 같은 좁고 가파른 협곡이 발달해 있다. ●칼슘·탄산이온 많은 토양에 적응한 식물 많아 석병산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정상 근처의 일월문은 병풍 같은 바위 중간에 큰 구멍이 뚫려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강릉시 옥계면 절골에는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된 석화동굴이 자리잡고 있으며, 상황지미골 중앙에서는 쉰 길이나 되는 쉰길폭포가 허공으로 물줄기를 뿜어낸다. 산 동쪽 자락의 성황뎅이에는 호랑이에게 물려 화를 당한 사람들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이 있다. 겉으로 봐서는 석회암벽이 드러난 정상 일대와 석회암반으로 이루어진 동해 쪽 골짜기들만이 석회암의 성질을 가진 듯해 보이지만, 석병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대간의 남쪽과 서쪽, 즉 내륙 쪽을 이루는 곳이 임계면인데, 이 임계면이 바로 그 유명한 임계카르스트 지형이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곳곳에 크고 작은 돌리네가 형성되어 석회암지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이 일대는 지형적으로뿐만 아니라 식물학적으로 보면 석회암지대의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식물종들 가운데 석회암지대가 아니면 자라지 못하는 식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회암이 풍화된 토양은 칼슘과 탄산이온이 많아 수소이온농도가 중성 또는 약알칼리성이며, 배수가 잘 되어 건조해지기 쉽다. 이런 특성에 적응한 식물들을 호석회암식물이라고 하는데, 석병산에는 가는대나물, 방울비짜루, 백리향, 벌깨풀, 분꽃나무, 뻐꾹채, 사창분취, 산조팝나무, 산토끼꽃, 솔체꽃, 자병취, 자주쓴풀, 장대냉이, 절굿대, 회양목 등 매우 많은 종류가 자라고 있다.(이들 가운데 이맘때 꽃을 피우는 것으로는 나무지만 키가 10㎝쯤밖에 되지 않아서 풀로 착각하기 쉬운 백리향이 있다. 정상의 바위지대에서 개회향, 돌양지꽃, 돌마타리, 자병취 등과 함께 발견된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4종류나 살아 석회암지대에는 북방계식물들이 저지대에서 잘 자라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두메닥나무, 들완두, 바위구절초, 바위솜나물, 시호, 큰제비고깔 등은 북방계식물로서 남한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도 많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식물만 하더라도 노랑무늬붓꽃, 연잎꿩의다리, 솔나리, 한계령풀 등 4종류나 살고 있다. 솔나리는 석병산 여러 곳에서 널리 자라고 있어 개체수가 많다. 다른 곳에서는 고산지역에서만 발견되지만 이곳에는 해발 300m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점도 이채롭다. 법정보호종 이외에도 전문가들조차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이 많다. 꼬리겨우살이, 등대시호, 마키노국화, 벌깨풀, 좁은잎덩굴용담, 참작약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모두가 보호해야 할 것들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도 여러 종류가 자라고 있는데 만리화, 세잎승마, 참배암차즈기, 털댕강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웃 자병산은 시멘트 생산으로 파괴돼 유의해야 정상 북동 능선의 노간주나무들은 천연기념물급이다. 높이 15m, 지름 60㎝에 이르는 커다란 노거수 1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보통 2∼3m 높이로 자라는 노간주나무는 큰 것이라 하더라도 높이 8m, 지름 20㎝쯤이 고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에 자라는 개체들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상황지미골 쉰길폭포 일대에 발달한 까치박달 군락도 인상적이다. 폭포 아래쪽 급경사 사면에 다른 나무가 섞이지 않은 채 까치박달들만이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모습이 독특하다. 이맘때에 더위를 이겨내고 정상에 오르면 돌마타리, 돌양지꽃, 백리향, 시호 등이 바위지대에서 꽃을 활짝 피워 반갑게 맞아준다. 계곡에서는 노랑물봉선, 물레나물, 산꿩의다리가 피어 있고, 능선에서는 동자꽃, 속단, 참배암차즈기가 꽃을 피우고 있다. 석병산을 찾아가 귀한 식물들을 만날 때마다 이웃한 자병산의 운명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시멘트 생산이라는 국가적 대의명분 때문에 완전히 파괴되어 옛 모습을 잃어버린 백두대간 자병산에서는 그곳에 살던 귀한 석회암 식물들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자병산 파괴와 같은 전철이 다른 석회암 산지에서 다시금 일어나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아픔이 희망이 되다

    아픔이 희망이 되다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오늘따라 전직 읍장이라는 3층 환자의 고함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제 저녁까지도 나를 힘들게 했던 우리 층의 환자들도 조용하다. 나는 나이 오십에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환자 수발하느라 밤잠 못 자는 이 직업이 행복하다면 남들은 이상하게 보겠지만 나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10여 년 전 나는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다. 죽고 싶어 내 몸을 망가뜨렸던 일들이 당뇨병, 갑상선기능저하증, 망막증, 고지혈증, 고혈압 폐결핵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합의하에 헤어지게 되었을 때 나는 술에 의지했고, 병자 몸으로, 술도 못 먹는 주제에 폭음하여 응급실에서 깨어나기를 수차례. 딸들의 눈물 어린 만류도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늦둥이 아들이 발목을 잡아 생목숨을 끊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아들마저 남편에게 보내게 되자 세상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에 생명의 전화 마산지부에서 일하시는 숨은 봉사자 분들을 만나며 사랑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그 사람의 헌신적인 사랑과 정성으로 조금씩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으로 힘들었을 때 딸의 권유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들이 그리울 때면 소외된 곳을 찾아 봉사했고, 마음이 더 힘들어질 때면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나는 세상의 쾌락과 안락함 속에서 잘난 체하다가 지금쯤 무덤 속 주인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 세월은 사람답게 살다 오라고 신이 내게 주신 마지막 기회였다. 평범하지 않았던 인생은 봉사를 가르쳐주었고, 그것은 수많은 자격증과 건강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저녁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독한 약들을 먹고 있지만, 나는 건강하게 오래 살 거라고 자신한다. 남편의 큰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아직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2008년 7월
  • “국정원內 옛 영릉은 장경왕후 초장지”

    조선 세종이 처음 묻힌 초장지(初葬地)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의 옛 영릉(英陵)은 중종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를 처음 묻은 옛 희릉(禧陵)일 가능성이 커졌다. 1973년 옛 영릉을 발굴하면서 출토된 묘지석(墓誌石) 파편이 장경왕후의 무덤에 쓴 신도비문의 일부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재 실측설계 전문가인 안경호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간하는 ‘정신문화연구’ 2008년 여름호에 실린 ‘세종대왕 초장지(舊英陵)에 대한 재론(再論)’에서 이같이 밝혔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광고 댓글 수사’ 檢 방침에 네티즌 비난 봇물

    지난 14일 검찰이 조선·중앙·동아일보를 상대로 한 ‘광고중단 운동’에 대해 인터넷 뉴스에 달린 댓글도 수사 범위에 포함시켜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의 진원지로 알려진 다음 아고라에서는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검찰을 향해 ‘권력의 개’라고 비하하는 등 분노한 네티즌들의 공세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검찰의 네티즌 수사 강화 방침를 전한 ‘속보! 검찰,기사 댓글도 처벌’이란 제목의 게시글에는 “떡(떡값)이나 받아먹는 검찰들한테 뭘 바라겠나.”(Sophia),“정부와 검찰이 스스로 무덤 파고 있다.”(고기밥),“대한민국 네티즌을 모두 다 잡아가 봐라.권력의 개들아.”(내려와라),“검사들은 월급을 조중동에 받나보다.”(도현덕)처럼 검찰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나라에 말 한마디 못하고 국민만 괴롭히는 이상한 정부”(남대천),“죄없는 네티즌들 조사하지 말고 독도나 지켜라.”(sackdongh),“독도 문제·북한 문제·경제 문제….풀어야할 문제들이 사방에 널렸는데 국민들 입이나 막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양말)처럼 검찰 수사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줄지어 올라왔다. ‘광고중단 운동’을 더 활성화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젊은날’ 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나는 이제부터 영구적으로 불매운동을 하겠다.한 번 잡아가 봐라.”라는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이 외에도 “검찰이 불매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ovisious),“다같이 불매운동 글을 올려보자.어차피 다 잡아가지도 못한다.”(비도) 등의 의견도 속속 올라왔다. 대검찰청과 서울지방검찰청 홈페이지의 민원 게시판에도 항의의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네티즌들은 “나도 (광고중단)운동하고 있으니 잡아가라.”(심비연),“소비자가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왜 범법행위인가.”(박영표),“검찰은 양심도 없나.”(지영철),“내가 낸 세금이 아깝다.”(박해현)와 같은 비난의 글도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이창성’이라는 네티즌은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검찰이 엄중처벌 하겠다고 밝힌 ‘조중동 광고주 명단’을 올렸고,이에 동조한 네티즌들이 같은 내용을 담은 홈페이지 주소를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신라 귀족유물 1200점 쏟아져

    신라 귀족유물 1200점 쏟아져

    지난해 3월20일부터 발굴조사가 벌어지고 있는 경주 황오동고분군의 이른바 ‘쪽샘지구’가 신라문화의 보고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조사가 이루어진 80기 남짓한 5∼6세기 신라 귀족의 무덤에서 허리띠와 귀고리 등 장신구와 마구, 토기 등 1200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1일 현장설명회를 갖고 그동안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55기와 덧널무덤(목곽묘) 9기, 돌덧널무덤(석곽묘) 6기, 옹관무덤 7기, 제사터 3곳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쪽샘지구는 전체면적이 38만 4000㎡에 이르며, 이번에 조사가 이루어진 면적은 1만 6500㎡이다. 쪽샘지구는 1926년 작성된 ‘경주시내 고총고분분포 현황도’에도 많은 고분이 보이고 있지만,1960년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민가 밀집 지역으로 바뀌었다. ●‘신라문화의 보고´ 재확인 경주시가 2000년부터 이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고 정비작업을 펼치면서 민가는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발굴현장에선 아직도 하수도관이나 시멘트·타일 바닥 등이 쉽게 눈에 띈다. 심지어 정화조를 제거한 B4호 무덤의 바닥에서 금귀고리 1점이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무덤은 대부분 상부 유구가 유실되어 바닥 구조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상당수 무덤에는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현장에선 여기저기에 토기가 부장될 당시처럼 무더기로 쌓여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중요한 유물은 1933년 일본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발굴조사하여 갑총과 을총으로 이름지은 제54호 서쪽의 B지구 무덤 밀집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B1호 무덤에서는 주곽에서 은제허리띠와 금귀고리·곡옥 같은 장신구와 삼엽환두대도·삼루환두대도가, 부장칸에서는 철솥과 등자·재갈과 같은 마구류 등이 집중적으로 출토됐다. ●장신구·마구류 등 집중적 출토 특히 B2호 무덤에서는 나뭇잎 모양으로 가공한 광물질인 운모판이 폭넓게 확인되었는데, 도교에서 영생불사의 선약(仙藥)으로 본다는 점에서 당시 신라에 도교가 유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에선, 쪽샘지구가 당초 계림로 건너에 있는 대릉원처럼 신라 금관이나, 금관에 필적하는 중요한 유물이 대거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모았다는 점에서 출토 유물에 다소 실망감을 표시하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다. 이주헌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발굴은 쪽샘지구 전체 지역의 극히 일부에서 진행된 것”이라면서 “봉토 또는 지표에서 3∼4세기 아(亞)자형 토기의 구연부(입부분)와 뚜껑조각이 나온 것은 학술적으로 중요한 성과로, 현재의 무덤 아래 신라의 국가성립기 무덤군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추가 발굴을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쪽샘지구의 발굴조사는 경주시의 역사문화도시 조성계획에 발맞춰 오는 2032년까지 진행된다. 전체를 5개 구역으로 나누고, 한 구역을 5년씩 모두 25년 동안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글·사진 경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다음 조중동 뉴스중단’ 네티즌 무덤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가 7일 0시부터 국내 2위 인터넷 포털 ‘다음(www.daum.net)’에 뉴스 공급을 끊었지만 네티즌들은 그다지 ‘뉴스거리’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관련 기사에 대한 댓글도 별로 없었고, 간간이 조·중·동 조치에 대한 찬반 의견 정도가 올라올 뿐이었다.조·중·동이 ‘촛불시위’와 관련해 뉴스공급 중단의 핵심사유로 지목한 다음 ‘아고라’에서는 일부 네티즌들이 “조·중·동 아웃(OUT) 환영”,“다른 포털에도 조·중·동이 없었으면 좋겠다.” 등 의견을 내놓았다.“다양한 기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중·동의 기사공급 중단은 아쉽다.”는 의견도 일부 개진됐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조·중·동에 대한 공격도, 옹호도 별로 없어 뉴스공급 중단 자체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다음에 대한 증권가의 분석도 비슷했다. 삼성증권은 “뉴스 서비스 이용자의 대부분은 언론사가 아닌 기사 제목을 보고 선택하기 때문에 (이용자 감소 등)즉각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동양증권도 “지난 5월 기준으로 다음의 전체 이용량에서 조·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0.4%에 불과했기 때문에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흥선대원군 장례식 사진 첫 발굴

    조선 제26대 군주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장례식 장면을 담은 사진이 발굴됐다. 그의 장례식 관련 사진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청계천문화관 김영관 관장은 마이니치신문사에서 1978년 발간한 ‘일본식민지사 1, 조선(朝鮮)’이란 책자 67쪽에 이 사진이 수록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사진은 운현궁으로 여겨지는 건물을 중심으로 수많은 조문객들이 몰린 장면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아래에는 ‘대원군의 장의(葬儀). 이조(李朝) 제26대 고종의 생부. 만년의 실의(失意)의 사람이었다. 메이지(明治) 32년(1899) 사거(死去)’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하지만 대원군은 1898년 2월22일(음력 2월2일) 79세로 사망했고, 발인은 그 해 5월15일(음력 윤 3월25일)이었으므로 그의 사거 시점을 1899년으로 표기한 것은 오류다.김 관장은 “이 사진이 정확히 언제 촬영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운현궁에 그의 빈소가 마련되고 발인하기까지 어느 시점이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제국시대사를 전공한 서울역사박물관 연갑수 학예부장은 “이 사진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또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장은 “대원군 장례식 장면을 담은 사진 자체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대원군은 고종 35년(광무 2년) 2월에 지금의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던 운현궁 별장에서 사망했고, 그의 빈소는 운현궁에 마련됐다가 그해 5월에 공덕동에 묻혔다. 이후 그의 무덤은 파주로 갔다가 다시 마석으로 옮겨져 지금에 이른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29일 ‘박봉술제’ 무대서는 송순섭 명창

    29일 ‘박봉술제’ 무대서는 송순섭 명창

    “저녁 일곱시부터 ‘흥보가’를 부르기 시작하여 밤 열한시 반이 되었으니 조금 있으면 새해가 밝을 참인데 한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박수를 칩디다. 말로는 도저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재미 때문에 말려도 자꾸 완창에 나서는 것 같소.” 송순섭 명창이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무대에 다시 오른다.29일 오후 3시부터 달오름극장에서 박봉술제 ‘적벽가’를 부른다. 드물게 동편제 소리를 고수한 그는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박봉술로 이어지는 이른바 송판 ‘적벽가’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송 명창은 2006년 12월31일 국립극장의 제야 완창판소리에서 ‘흥보가’를 부르기에 앞서 “나이가 칠십이니 다시 완창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936년생으로 올해 72세지만, 호적에는 1939년생으로 올라 있다. 주변에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송 명창의 마지막 판소리 완창’이라고 이날 무대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웬걸, 그는 한밤중의 소리판에서 오히려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이 좋은 소리, 앞으로 더 오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스승 박봉술 명창 이어 송판 ‘적벽가´ 독보적 존재 송 명창은 2000년 풍을 맞았다. 남성적인 ‘적벽가’가 장기로 알려진 소리꾼이 ‘흥보가’를 한번 불러봤더니 청중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박수바람에 미쳐서 돌아가다 보니’ 그해에만 완창이 5차례였다. 그는 결국 11월16일 쓰러졌다. 그럼에도 자신의 표현대로 ‘덜렁덜렁한’ 오른 팔과 다리로 약속한 두 개의 공연을 마치고 나서야 입원했다. 그러는 사이 문화재청에서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려면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2001년 5월31일 ‘적벽가’를 완창하여 예능보유자에 올랐다. 가족과 제자들이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렸지만, 그는 오히려 ‘적벽가’를 부르며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2000년 풍 맞고도 그해 완창무대 5차례 올라 전남 고흥 출신인 그는 광주에서 공옥진 명인의 아버지 공대일 선생, 성창순 명창의 아버지 성원복 선생, 김명환 명고수에게 소리를 배울 때 “박봉술의 소리가 중후한 소리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에 새겼다. 그는 이후 부산에 살던 박 명창을 찾아가 그곳에 눌러앉았고, 스승이 서울에 자리잡자 다시 밤기차로 오가며 배웠다. 그는 지금도 박 명창에게 ‘적벽가’뿐 아니라 ‘흥보가’와 ‘수궁가’까지 세 바탕을 물려받았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송 명창은 순천에 세워진 동편제판소리전수관에 박봉술 명창의 무덤을 이장하는 한편 동편제판소리보존회를 만들어 송만갑 명창의 자서전을 펴내고 명맥이 끊어졌던 ‘순천대사습’을 되살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2006년부터는 광주시립국극단장도 맡고 있다. 송 명창은 요즘 하루에도 서너 시간씩 소리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부터의 완창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하늘이 주시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는 “기운이 딸리는 것은 걱정이 아닌데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아니리를 하면서 말더듬이가 될까 걱정”이라며 웃었다. 북은 박근영과 정항자. 전석 2만원.(02)2280-4115∼6.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아웅산 수치 여사를 풀어줘라”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63) 여사가 19일 강요된 침묵 속에 생일을 맞았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측근들과 해외 망명단체를 중심으로 여사에 대한 석방 촉구와 안녕을 비는 편지 보내기 등 지구촌의 수백만명이 행사를 펼쳤다고 보도했다.AP는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주의동맹(NLD)의 한 당원이 사원을 찾아가 그녀의 부친 아웅산 장군 무덤에 새로운 날을 축원하는 뜻으로 노란 국화 64송이를 바쳤다고 덧붙였다. 망명단체가 운영하는 ‘버마(미얀마의 옛 국명)를 구출하라(Save Burma)’는 여사가 전화도 이용하지 못하고 들어오는 편지 한 통도 검열받는 등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상태로, 방문객이라고는 정기 건강검진을 위한 의료진뿐이라고 밝혔다. AFP는 이날 여사가 갇힌 바닷가 자택을 찾아갔다가 경찰관들에게 쫓겨 NLD 당사로 이동했던 시민 7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연금을 해제하라. 사이클론에서 생존한 것마저 고통이다.”고 외쳤다. 당사 앞에 모인 100여명은 여사 석방을 빌며 참새 63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탄 슈웨(75) 국가평화개발위원장이 이끄는 군부는 지난달 초 나라를 할퀴고 지나간 사이클론 나르기스 대참사로 불거진 국제사회 압력이 몰고 올 파장 때문에 연금해제를 겁내고 있다.지난해 9월 말 민주화 시위 때 찾아온 승려들에게 수치 여사가 집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눈물을 비쳐 한 달 넘도록 불길이 번진 일도 군부에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으로 남았다. 1988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여사는 이듬해부터 19년 가운데 12년 7개월(238일) 연금에 묶였다. 군부는 법률에 가택연금 최대 연수로 규정한 5년을 지나 2003년 5월부터 내리 6년 넘도록 풀지 않았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좋은나라 운동본부(KBS2 오후 8시55분) 식사 때 뿐 아니라 늦은 밤 출출할 때 야식이나 술안주로 즐겨 먹는 감자탕. 많은 사람이 찾는 인기 먹을거리 감자탕은 과연 안전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 본다. 하루 평균 327만대의 차량이 이용하고 있는 고속도로. 이선영 아나운서가 고속도로 순찰대에 합류한다.   ●김정은의 초콜릿(SBS 밤 12시25분) 흥겨운 음악으로 돌아온 보석 같은 밴드 ‘자우림’. 그들의 대표곡부터 최근 앨범 신곡까지 들어본다. 아이 엄마가 되어 돌아온 김윤아와 새 앨범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어본다. 초콜릿 카니발의 특별한 손님은 캐나다의 드림 서커스 ‘Nebbia’. 탄성이 절로 터져나오는 몸짓으로 이끄는 환상의 세계를 만나본다.   ●CEO특강(EBS 밤 12시10분) 현대 전문가들에겐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요하다. 전문성과, 상식,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A자형 인재’야말로 안철수(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꼽는 진짜 인재이다. 미래의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이 갖춰야 할 자질을 그로부터 들어본다.   ●산너머 남촌에는(KBS1 오후 7시30분) 모내기를 마친 대흥리 남자들은 옆마을 작목반장의 초대로 카바레를 가게 된다. 거기서 근처 리조트에 근무하는 여직원들과 부킹까지 하면서 제대로 판을 벌여 놀아버린 남자들은 이 사실을 무덤까지 비밀로 가지고 가기로 약속을 하지만, 인수가 맘에 든 리조트 여직원 중 한 명이 마을을 찾아오는데….   ●스포트라이트(MBC 오후 9시55분) 국장은 태석에게 심층리포트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하고, 태석은 우진과 순철에게 회의내용을 전달한다. 심층리포트 프로그램은 여기자 단독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는 태석의 말에 우진과 명은은 긴장하고, 진행자는 사회부 내에서 테스트를 거쳐 뽑기로 결정한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쇠고기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인지, 또 미국이 쇠고기 재협상을 받아줄 때 한·미 FTA 자동차 부문 재협상을 제안할 경우의 대응책은 무엇인지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들어본다. 화물연대 파업, 고유가·고물가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듣는다.
  • [박기철의 플레이볼] 영원한 야구기자 이종남 선배를 추모하며

    “야구 기록이란 나비와 같아서 살아서 날아다닐 때는 아름답지만 죽으면 핀에 꽂힌 박제일 따름이다.” 1982년 겨울 어느 날, 서울 정동의 소줏집에서 고(故) 이종남 기자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 당시 필자 신분은 백수. 정확하게는 졸업식을 치르지 않은 대학 4학년이었다. 가까운 사람들도 필자가 그해 10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낸 사표가 정식 수리됐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필자는 그해 3월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KBO 운영부 직원으로 입사했다가 한국시리즈가 끝나면서 사직서를 제출했고 우여곡절 끝에 수리됐다. 대신 다음해부터 계약직인 공식기록원으로 일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당시 이종남 선배의 뜻은 아무리 기록이 많아도 기자가 그것을 알아주고 써주지 않으면 박제일 따름이니 언론계로 들어와 기록을 활용하는 야구 기자가 되란 것이었다. 요즘 비정규직 차별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당시에도 정규직을 버리고 비정규직을 택하자 미친놈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하지만 필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유니폼을 입지는 않지만 경기에 직접 관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이 일을 택했다. 필자의 뜻을 이해한 이종남 선배는 더 이상 강권하지 않았다.이후 약 10년간 필자는 서투른 기록원 생활을 이어갔고 이 선배는 스포츠서울의 창간 멤버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고 왕성하게 야구 서적의 저술과 번역에 힘썼다. 그동안 필자에겐 술친구이자 바둑친구였고 유일하게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스승이었다. 이 선배는 데스크를 거쳐 편집국장, 이사 등 관리직으로 승진했고 필자도 사무직으로 복귀하면서 만남도 줄어들었다. 지방을 다닐 때는 매일 얼굴을 보다시피 했는데 같은 서울에 근무하자 한 달에 두세 번 보게 됐다. 스포츠 전문지가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IMF 사태, 인터넷의 등장은 신문 경영에 극심한 압박을 줘 때맞춰 관리직으로 승진한 선배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현장 기자이자 저술가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뛰었으나 경영자로선 지독히 운이 없었다. 하지만 항상 후배를 만나면 미소와 격려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필자에게 “암 걸린 건 난데, 왜 네가 더 얼굴이 안 좋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지난 4일 2주기를 맞아 선배의 마지막 작품인 야구발전연구원 임원들과 함께 묘소를 찾았다. 기독교식 추도를 끝낸 뒤 형수는 우리끼리 추모를 하라며 자리를 피해 주셨다. 우리끼리 추모란 절한 뒤 무덤에 술 뿌리고 묘비에 담배를 피워 올려놓는 것이다. 폐암으로 눈감은 이에게 잔인한 짓이라 눈 흘길지도 모르지만 죽어서 또 걸릴 일은 없으니 마음 놓고 피우라는 심정이었다. 그해 겨울 필자의 대답은 이랬다.“박제면 어때요. 예쁘잖아요. 연구하기에도 좋고.”‘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정말, 정말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서 일구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 동안 민족적 자존과 긍지, 통일의 그날에 대비코자 쑥물만을 삼키는 듯한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가. 아, 그래서 우리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켜 둔 등잔불 혹은 촛불 밑에서 제발 이 나라가 평화스럽기를, 사람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빌고 빌지 않았던가.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히로히토 천황군’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터에까지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들의 쓰라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빌면서, 우리는 어느덧 이렇게도, 키가 훌쩍 커버리지 않았던가. 국군과 공산군의 몸이 무더기로 묻혀, 함께 썩어간 이 땅 삼천리 한반도…. 한국전쟁 직후, 무밥과 해초밥만을 먹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땅 삼천리 한반도가 제발 폭력과 총소리가 없는 날이 계속되기를 천지신명께 빌지 않았던가. 너무나 빠른 나이에 목숨을 잃은 고향사람들의 무덤 위에서 철없이 뛰놀던 우리들의 유년시대(the Age of Korean Boys), 전후 반공시대의 흑막 속에서 수많은 정치가들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에미애비도 없던 우리들의 슬픈 유년’은 코밑 수염이 시커먼 청년기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우리들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떠났던 것이다. “아아 잘있거라 부산 항구야/미스 김도 잘 있거라 미스 리도 안녕히….” 그렇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면서 베트남으로 떠나갔던 10년 동안 연병력 55만여명의 따이한 병사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대가로 250억달러를 벌어와 1960,70년대의 한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아아 그 시절의 안타까운 젊은 영혼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 병사들의 두 손에 묻은 붉은 피의 냄새들! 그랬다. 베트남전쟁에서 별을 달고 돌아온 일부 장군들은 1980년 5월, 자신들의 조국―한반도의 남녘땅 광주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총소리, 총소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잿밥(정치)에 눈이 어두워 지키라는 최전방(DMZ)을 뒤로하고 후방인 ‘빛고을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광주시민들과 전체 국민들의 함성이 모아진 19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대한민국은 비로소 ‘정치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것 아닌가. 신군부 출신 전두환·노태우를 ‘세기의 재판’을 통해 단죄코자 한 김영삼의 문민의 정부→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권위주의를 불식시키려 했지만 ‘경제민주주의’의 코드를 찾아내지 못한 가운데서 연약한 생명을 유지하다가 CEO 출신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에게 대권의 바통을 넘긴 참여정부의 노무현-. 아 그런데 2008년 6월, 이른바 ‘이명박호(號)’는 어떤가. 과연 항해가 순조로운가. 우리가 볼 때는 아직 출항 직전인 것 같다. 아직 항로가 불투명하고 안개 속인 것 같다. 아니 어둠보다 더 걱정스러운 안개 속에서 좌초 직전에 놓인 듯이 보인다.“이래서는, 저래서는 안되는데….”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비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다니! 그 발상부터가 틀리다는 것을 어서 빨리 알아차리고 애당초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끼운 다음, 새로운 출항의 자세로 ‘민주주의의 항로’를 계속하길 바란다. 민주정치와 민주경제는 동전의 앞뒤처럼 같다는 것을, 달리는 열차로 말하면 두 레일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 님께서도 세종로에 나와, 촛불 앞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돌이켜보길 부탁드린다. 이 땅의 구성원들 모두를 ‘ 끝끝내 보낼 수 없는 님’으로 손잡아주면서 함께 일어서주길 바란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 ‘나달 딜레마’

    남자프로테니스(WTA) 세계 1위 로저 페더러(스위스)가 3년 연속 롤랑가로 결승 코트에서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나달을 상대로 한 전적도 6승11패로 약세를 보였다. 더욱이 1승9패로 완벽한 열세를 보이는 클레이코트는 페더러에겐 ‘무덤’이나 다름없다. 페더러의 변명은 무엇일까. 그가 나달과의 경기에서 패할 때면 늘 받는 질문 하나.“과연 나달을 이길 수 있느냐.”다. 그때마다 페더러는 “점점 더 (승리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 페더러는 지난해부터 나달에 대한 공격 패턴을 자신의 주무기인 백핸드 공격에 ‘다운 더 라인’(사이드 라인에 떨구는 직선공격)을 접목했다. 왼손잡이인 나달의 백핸드 약점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페더러는 자신의 전술을 간파한 나달에 또 뒤통수를 맞았다. 올해 결승에서 나달은 한동안 수비 위주였던 자신의 백핸드를 보다 공격적으로 바꾸고, 때로는 재빨리 돌아선 뒤 포핸드로 맞받아쳐 페더러를 당황케 했다. 더 큰 패착은 ‘나달 극복’에 대한 히스테리성 반응이다. 페더러는 ATP 투어 통산 16승 가운데 15승을 클레이코트에서 일궈낸 호세 히구에라스(55)를 코치로 영입했지만 나달의 벽을 넘는 데 또 실패했다. 자신만의 플레이를 창조하는 대신 나달의 플레이에 너무 연연하다 보니 그만 ‘동화’되고 만 것이다. 반면 나달의 코치는 “페더러를 이기는 것보다는 대회 4연패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멘탈’에서 확실하게 앞서 있음을 암시했고, 나달은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퍼펙트승’을 거뒀다. 올해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윔블던을 2주 앞으로 남긴 지금 페더러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끝없이 진화하고 있는 나달은 이제 ‘흙의 신’의 경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잔디 코트에서도 페더러가 나달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할 경우 윔블던 6연패는 자칫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남아공월드컵] 7일밤은 다함께 대~한민국

    [남아공월드컵] 7일밤은 다함께 대~한민국

    허정무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플레이메이커로 활용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달 31일 요르단과의 남아공월드컵 3차예선 3차전에 왼쪽 윙포워드로 나섰던 박지성을 7일 밤 11시30분 요르단 암만 킹압둘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요르단과의 리턴매치에는 원톱 박주영(서울)의 뒤를 받치는 섀도 스트라이커 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세우기로 한 것. 홈경기에서 이 포지션이었던 안정환(부산)은 후반 경기 흐름을 뒤집거나 끝내기 위한 특급 조커로 활용된다. 좌우날개로는 이근호(대구)와 설기현(풀럼)의 선발 출격이 점쳐진다. 박지성에겐 중원에서 공격 조율과 함께 좌우 측면과 전방까지 폭넓게 움직여 공격을 주도하라는 주문인 셈. 골 욕심을 내기보다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며 동료에게 기회를 열어주어야 하는 자리라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희생을 해야 하는데, 박지성은 인터뷰에서 기꺼이 그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수비진 운용은 허 감독이 가장 조심스러워하는 대목. 변화가 크면 안정감을 해치게 되기 때문.4-2-3-1포메이션과 3-5-2포메이션을 혼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때 노쇠화 현상을 보이는 이영표(토트넘) 대신 곽희주(수원)를 투입하는 방법도 거론됐으나 이영표를 다시 한번 믿는 쪽으로 변화했다. 홈 경기 때처럼 포백을 먼저 쓰되 이정수(수원) 자리에 강민수(전남)를 넣어 이영표-강민수-곽희주(수원)-오범석(사마라)이 선발로 나설 것 같다. 하지만 선제골이 터져 앞서나가면 스리백으로 바로 전환, 중앙수비 3명에 2명의 윙백이 가세하는 뒷문 잠그기를 시도한다. 승점 3을 노려 ‘지키는 축구’를 하겠다는 것. 골키퍼는 역시 정성룡(성남)이 장갑을 낀다. 가장 큰 문제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원 사령관의 부재. 박지성의 역할이 공격에 치우친다면 중원에서 이를 뒷받침하며 경기 템포를 조율하는 임무가 절실하다. 김남일(빗셀 고베)과 조원희(수원)는 패스워크를 다듬어 유기적인 플레이를 도와야 한다. 무더위와 홈 텃세 등 원정의 불리함은 여전하다. 요르단축구협회는 새로 깐 킹압둘라 스타디움의 잔디에 적응할 시간을 뺏기 위해 요르단에는 두 차례, 한국에는 경기 전날 한 차례밖에 연습 기회를 주지 않았다. 요르단 선수단은 전력 감추기에 몰두하고 있다. 허정무호가 달라진 전술로 요르단의 홈 텃세를 무너뜨리고 4경기 무승부의 악몽을 털어내며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 원정 길에 오르게 될지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토목보다 우선 제도를 건설하자/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열린세상] 토목보다 우선 제도를 건설하자/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중국 역사상 모두 245명의 황제가 군림하였다. 사람들은 그 중에서 최고의 명군은 당태종 이세민을, 최악의 폭군은 수양제 양광을 꼽는다. 당태종은 평소 백성은 물이고 군주는 배라고 말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 배를 무사히 저어가고 싶다면 항상 물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백성을 섬기는 위민정신이 배어 나오는 현군의 어록이다. 하지만 그가 베스트 황제로 숭앙받는 진짜 이유는 민본주의 치국이상을 현란한 언사로만 표현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도화하여 실천한 데 있다. 당태종은 갖은 악법을 폐지하고 3성6부제, 주현제, 과거제 정비와 함께 조세·군역의 감면 등 민생을 위한 좋은 법제를 많이 창제하였다. 특히 그의 재위시절에 확립된 당률(唐律)은 후대황조들의 기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양사회의 제도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수양제는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인 토목건설을 일으켰다. 그는 연인원 1억 5000만여명의 백성을 동원하여 만리장성을 새로이 쌓게 하였으며, 수문제가 중단시킨 대운하 공사를 재개시켰다. 황제 전용의 거대한 용주(龍舟)를 대운하 양안에서 8만여명의 백성들이 밧줄로 끌고 다니게 하는 패악을 저질렀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경제적 기반을 자기과시용 토목공사와 대외원정에 탕진해 버려 결국 부하에게 교살당하고 수나라도 단명하고 말았다. 수양제의 무덤은 장쩌민 전 주석의 고향인 양저우(揚州) 교외 후미진 숲속에 ‘양광지묘’라 쓰여진 초라한 빗돌 하나를 앞세우고 쪼그리고 앉아 있다. 능이 아닌 묘로 불리는 유일한 황제의 무덤이라는 사실에서 그의 악정에 후세가 얼마나 몸서리를 쳐왔는지 알 듯하다. 중국 최고와 최악 황제 둘 다 ‘건설’에 힘썼으나 최고명군은 ‘제도건설’에, 최악폭군은 ‘토목건설’에 몰두하였다. 둘 다 ‘배’와 ‘물’의 키워드로 함축되지만 당태종호는 물(민심)을 항상 보살펴 중국사의 바다에 빛나는 항해를 하였고 수양제호는 물을 업신여겨 분노한 민심의 파도에 침몰하고 말았다. 현재 중국은 당태종 치세시의 영광의 재현을 위하여 경제건설 제일주의에서 제도건설, 즉 법과 제도에 의한 의법치국(依法治國)의 국가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과거 최고지도층이 이공계출신 일색이었던 것과는 달리, 후진타오 주석의 양팔이자 차기 최고지도자로 손꼽히는 시진핑, 리커창은 모두 법학박사 출신이라는 변화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호는 지금 성난 민심의 노도에 흔들리고 있다. 초·중·고 어린학생들조차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명박호가 겸허히 국민의 소리를 수렴하여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것을 믿는다. 새 대통령이 중국의 베스트 황제, 당태종처럼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소망하면서 국정어젠다를 ‘토목건설’에서 ‘제도건설’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할 것을 제언한다. 버려야 구한다. 대운하 등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토목건설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헌법의 리모델링(개헌)을 비롯한 민생을 안정시키는 제도건설에 힘쓰자. 현행 헌법은 20여년 전 중남미 정치후진국에서 운용되던 대통령단임제 통치프레임을 기초로 하여 가건물 세우듯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다. 개헌은 지난 대선 당시 후보들의 다짐을 받은 바 있으며 이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영원한 명예는 40번의 승전이 아니라 자신의 법전이라고 말했듯 그의 정치군사적 업적은 덧없으나 나폴레옹법전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첨단빌딩을 건설하듯 우리도 각계각층의 지혜를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은 참 좋은 헌법,‘이명박 헌법’을 건설하자. 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 夜~好 그곳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夜~好 그곳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여행은 밤에도 멈추지 않는다. 은은한 경관 조명이나 교교한 달빛 아래 낮보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여행지가 적지 않다.‘꿈결 같은 야간 여행´에 걸맞은 여행지를 모았다. # ‘별 헤는 밤´ 경기 양주 송암천문대 송암천문대는 스페이스센터와 천문대, 호텔급 숙소 등을 갖추고 있는 천문테마파크다. 첨단우주체험기기로 가득 차 있어 낭만과 즐거움을 찾는 연인, 가족 모두에게 제격인 별 여행지. 천문테마파크 너머 북한산까지 이어진 능선 위로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들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천문대 아래 스페이스 센터에는 사계절의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플라네타륨과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그래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챌린저 러닝센터 등이 갖춰져 있다. 개관시간 주중 오전 11시∼오후 10시, 주말은 오전 10시∼오후 10시. 천문대 이용권+케이블카 왕복 탑승권+플라네타륨 관람권 어른 2만 6000원, 청소년 2만 3000원.3인 가족은 패밀리티켓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6만 1000원. 양주시청 문화체육과 031)820-2121, 송암천문대 894-6000∼2. # ‘천년의 도시´ 전북 전주 한옥마을 한옥마을은 1930년대 일본인의 세력 확장에 반발한 인사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이 일대 한옥군은 주변 일본 가옥들과 대조를 이루는 한편, 화산동 선교사촌 등 서구식 건물들과 어우러지며 기묘한 도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해질 녘 한옥마을 야경 탐방에 나서면 호젓하게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다. 경기전을 기점으로 도보로 10분 거리에 풍남문, 전동성당, 오목대 등의 볼거리는 물론 감칠맛 나는 오모가리탕 집들이 늘어선 가리내길 등 전주를 대표하는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덕진공원 야경도 빼놓으면 서운하다.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은다. 전주시청 문화관광과 063)285-5151, 전주한옥마을 282-1330. # 화려한 신라의 달밤 경북 경주 경주 야경의 백미로 꼽히는 임해전지(안압지)와 월성, 계림, 첨성대 등은 국립경주박물관과 대릉원 사이 7번 국도 1.5㎞ 구간에 모여 있다. 천천히 걸어도 20분 정도면 닿는 거리. 저마다의 야경도 화려하거니와 이들을 자연스레 이어주는 산책로 또한 무척 운치가 있다. 임해전지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 공연이 펼쳐진다. 신라문화원에서 마련한 ‘달빛·별빛 역사기행’도 인기 프로그램. 매월 보름을 전후한 토요일에 경주시 유적지를 둘러본다.14일,21일 출발. 참가비는 별빛 1만 4000∼1만 6000원, 달빛은 1만 6000∼1만 8000원. 경주시청 문화관광과 054)779-6061, 신라문화원 774-1950. # “밤이 멋져부러∼” 전남 여수 수많은 섬과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이 어우러지며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여수는 밤만 되면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유람선 투어. 해맞이 포인트로 유명한 오동도의 음악분수대 앞에서 출발해 자산공원∼해양공원∼돌산대교∼국동 어항단지를 1시간가량 돌아본다.10월 말까지 운항한다. 여수의 또 다른 관광명소인 진남관은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 단층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향일암은 한국 4대 관음기도처 중 한 곳. 암자 내 울창한 동백나무숲과 아열대 식물이 금오산 주변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항아리 속처럼 오목한 방죽포 해수욕장도 가볼 만하다. 여수시청 관광진흥과 061)690-2037. # 달빛 아래 젖는 효심(孝心) 수원 화성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수원시 화성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배어 있는 곳.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가까이에서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살기 위해 2년8개월에 걸쳐 축성했다. 저녁이 되면 수원화성 전체가 은은한 조명 속에서 한껏 매력을 드러낸다. 특히 정조의 어좌가 있었던 방화수류정의 용연은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해서 수원8경의 하나로 꼽힌다. 하늘에 뜬 달이 용연과 술잔에 비치고, 다시 그 달들이 연인의 눈동자에 뜬다는 것.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무예 24기 시범, 장용영 수위의식 등 다양한 상설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창룡문 근처에 활쏘기체험장, 용차탑승장 등이 있다. 활쏘기 체험은 초등학교 1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1순(5발)당 1000원. 용차는 연무대앞과 팔달산 강감찬 장군 동상 앞을 순환하는 코스로 운영된다.1500원. 수원시청 문화관광과 031)228-2068, 수원시화성사무소 228-4410∼4, 수원시티투어 256-8300. # 야(夜)한 곳 찾아가는 여행상품 ▲‘감춰진 보석 김천! 별빛기행’은 김천시에서 지난달 31일 처음 시작한 야간 프로그램. 해 지는 직지사 경내를 둘러보는 산사체험과 경쾌한 음악 분수쇼를 즐길 수 있다. 솔항공여행사 02)2279-5959. ▲‘야(夜)∼한 밤에 섬&크루즈’는 퇴근 후 데이트를 즐기고픈 커플들을 위해 저녁시간대에 유람선을 출발시킨다. 인천 연안의 고즈넉한 섬, 세어도에서의 도보 데이트와 서해 야경을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현대마린개발 032)885-0001. ▲‘별 따라 소리 따라 남도 선비여행’은 첫날 전남 장흥 천문문학관에서 별 헤는 밤을 체험하고, 이튿날 밤 목포 루미나리에 거리 야경을 감상한다. 롯데관광개발 1577-3700.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충북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中原)지역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지리적 요충으로 삼국의 각축장이었다. 장미산성을 쌓은 한성백제가 물러난 뒤 고구려는 국원성을 설치하고 5세기 중원고구려비를 남겼다. 신라의 진흥왕은 557년 국원성을 빼앗아 국원소경을 두었고,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은 742년 오소경(五小京)의 하나로 중원경을 이곳에 설치했다. ●삼국시대 유적 반경 2㎞에 몰려 있어 특히 충주시 가금면에는 반경 2㎞도 되지 않는 좁은 지역에 장미산성과 중원고구려비, 그리고 중원경의 존재와 연결지을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7층석탑인 중앙탑이 한데 몰려 있다. 따라서 학계는 국원성과 국원소경, 중원경의 행정·군사적인 중심지인 치소(治所)도 현재의 충주 시가지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이 지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학계는 물론 지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중원경 등의 치소를 찾는 작업이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의 출범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중원문화재연구소는 삼국시대 이후 지방행정 치소를 밝히는 것을 포함한 ‘고대 중원경 종합학술연구’에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 연구소는 당장 가을부터 고구려의 국원성과 통일신라의 중원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 주변을 각각 시굴조사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이 지역 2만 6000㎡를 대상으로 지하에 유구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물리탐사를 벌였다. 그 결과 중앙탑 북쪽의 탑평리에서는 5칸 이상의 대형 건물터를 비롯한 인공 구조물의 하부구조가 대규모로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냈다. 중앙탑 주변에서는 1992∼1993년 한국교원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도 규모가 큰 건물터가 여럿 확인되었고,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기와조각도 상당수 나왔다. 실제로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용전리에서 중앙탑이 있는 탑평리에 이르는 남북 2.1㎞, 동서 1.6㎞의 남한강 주변을 돌아보면 탑평(塔坪)이라는 땅이름처럼 반듯하고 넓은 지역으로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들어서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누암리·하구암리서 신라 양식 무덤 확인 연구소는 특히 탑평의 뒷산에 해당하는 누암리와 하구암리 일대에서 신라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대규모로 확인된 것은 상당한 인구를 가지고 있었을 중원경의 존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누암리고분군에서는 1989∼1991년 발굴조사에서 모두 38기의 신라고분이 발견된 데 이어 후속 지표조사에서는 봉토 직경이 11m 안팎인 대형 무덤 40기를 포함하여 모두 271기의 고분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웃한 하구암리고분군에도 400기가 넘는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으며, 축조연대를 비롯하여 무덤의 양식과 유물의 출토양상이 모두 누암리와 거의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신창수 중원문화재연구소장은 4일 “중원경 등의 치소를 확인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최근 이 지역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은 물론 지역의 최고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의 존재를 하루빨리 밝혀내지 못한다면 자칫 개발의 삽날에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출범 6개월 맞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中原문화’ 정체성 확립 주도적 역할 기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경주와 부여, 가야(창원), 나주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5번째 지역 연구소로 지난해 12월11일 출범했다. 중원연구소는 이른바 중원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활용가치를 창출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지역에서는 ‘지역문화’ 차원에서 연구되었던 중원문화가 국가차원에서 조사·발굴·연구된다는 점에서 연구소의 출범을 누구보다 크게 반겼다. 이에 부응하듯 중원연구소는 중원경의 치소(治所)를 찾는 시굴조사와 고분군 정밀실태조사,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실태조사를 비롯한 학술 연구의 기반 조성 사업에 나서고 있다. 올해 ‘중원의 산성’을 발간하고, 중원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주제별 학술총서도 연차적으로 발간하는 등 지역 문화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은 소장과 학예연구실장 등 2명의 학예연구관과 2명의 학예연구사 등 정원이 9명에 불과해 의욕만큼 현실은 따라주지 않고 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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