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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축구] 공격본능 불꽃튄다

    올 시즌 프로축구에서 포항은 34경기를 뛰며 442차례 슈팅을 때렸다. 유효한 것은 46%인 202차례. 모두 69골을 뽑았다. 반면 36경기를 치른 성남은 518차례 슈팅 가운데 39%인 202차례를 문전으로 날렸고 , 총 52골을 기록했다. 29일 K-리그 플레이오프(PO)에서 맞붙는 2007년 챔피언 포항과 전년도 챔프 성남은 공격적인 팀컬러를 뽐내는 터라 그야말로 ‘피 튀기는’ 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 리그 상대전적에선 성남이 1승1무(4득점 2실점)로 우세를 보였다. 하지만 포항도 전원 득점이 가능할 만큼 가공할 공격력을 자랑한다. 유창현(11골), 데닐손(10골)과 스테보(8골), 노병준(7골)이 건재하다. 성남도 나란히 리그 8골을 뽑은 몰리나와 조동건, 한동원(7골), 김진용(6골), 김정우(5골) 등 주전들의 활약이 고르다. 포항에선 19명, 성남에선 12명이 득점포를 가동했다. 슈팅 비교에서 드러나듯 포항이 ‘더블 스쿼드’를 앞세워 한층 경제적인 축구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후 3시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리는 PO 단판승부엔 젊은 사령탑 세르지우 파리아스(왼쪽·42·포항), 신태용(오른쪽·39·성남) 감독 가운데 누가 ‘불패’ 기록을 벌일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파리아스 감독은 올해 홈에서 정규리그(6승8무)와 피스컵 코리아(3승), FA컵(1승),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5승1무)를 통틀어 24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스틸야드를 ‘원정팀의 무덤’으로 만들었다. 포항은 피스컵 코리아와 AFC 챔스리그 우승을 꿰차며 무서운 상승세를 탔다. ‘신태용 사단’은 올 시즌 포항에게 무패를 기록한 유일한 팀이다. 성남은 리그 2경기에서 모두 포항에 선제골을 내주고 나서 역전과 동점에 성공해 ‘파리아스 매직’을 풀어냈다. 첫 번째 홈 경기에서는 3-1로 이겼고, 두 번째 원정에서는 1-1로 비겼다. FA컵 8강에선 2-1로 승리했다. 그러나 두팀 모두에겐 그늘도 있다. 공격 일변도의 포항으로선 역습기회에서 빈 공간을 만드는 허점도 생긴다. 상대의 스루패스, 빠른 침투공격에 취약하다. 수비수들의 커버 플레이가 다소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성남으로선 퇴장과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는 중앙 수비수 사샤와 전광진의 공백이 아쉽다. 나란히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전술을 펼치기 때문에 체력도 관건이다. 22일 인천전, 25일 전남전에 이어 1주일새 무려 3경기를 치르는 성남이 더 부담스럽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객원칼럼] 눈물에 대하여/김동률 KDI 연구위원

    [객원칼럼] 눈물에 대하여/김동률 KDI 연구위원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첼로곡이 있다. 늦가을에 듣기에 딱이다. 과거 TV 드라마 ‘옥이 이모’의 주제곡으로 유명해졌다. 이 비운의 첼리스트는 당대 최고봉인 카잘스, 로스트로포비치 등을 사사했으며, 22세이던 1967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한다. 그러나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거리에서 쓰러졌고 마흔둘에 사망했다. 그녀를 동정하는 이들이 분노하는 대목은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 병이 가장 심할 때 이혼하고는 사후에도 무덤을 찾지 않았다. 최근 통독 기념 음악회에서 본 오만한 바렌보임도 이젠 늙었다.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은 자클린 뒤 프레의 추모곡으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가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을 찾아내 같은 제목으로 헌정한 곡이다. ‘말뫼의 눈물’이란 골리앗 크레인이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이 2003년 스웨덴 말뫼의 코컴스 조선소에서 도입한 것으로, 세계최대 크기다. 크레인이 스웨덴을 떠날 때 수많은 말뫼 시민들이 눈물 속에 배웅했으며 이날 이후 ‘말뫼의 눈물’로 불린다. 단돈 1달러에 팔려 멀고 험난한 여정에 사라져 가는 도시 상징물에 대한 말뫼 시민의 그리움과 애착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터미네이터도 속눈물이 있다. 미래의 인류를 구원할 지도자를 위해 스카이 넷과 싸우던 터미네이터는 임무를 완수하자 펄펄 끓는 용광로에 스스로 몸을 던져 사라지려 한다. 그 순간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터미네이터가 묻는다. 도대체 그 액체가 무엇이냐고. 로봇에는 없는 액체에 대해 소년 존 코너가 말한다. 인간은 감동을 느끼면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나온다고. 존의 눈물을 보며 터미네이터는 묘한 감동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 로봇 테미네이터가 정작 감동받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터져 나오는 이상한 액체, 즉 눈물이었다. 행복한 왕자가 흘리는 눈물도 있다. 늦가을 저녁, 남쪽을 향하던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쉬는 순간 왕자의 눈물이 떨어진다. 살아 생전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자리잡게 되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목격, 눈물을 흘리게 된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많은 보석을 떼내어 그들에게 나눠주게 한다. 떠날 시기를 놓친 제비는 왕자의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고는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한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멋있는 왕자가 보석이 사라진 흉측한 쇠붙이로 변해 있자, 창피하다며 녹여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영국사회의 물질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오스카 와일드의 짤막한 이야기다. 눈물이라는 단어는 이처럼 어디 갖다 붙이기에는 그리 간단치 않다. 여자야 즉각 넘쳐 흐를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눈물을 준비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눈물의 의미는 여간 의미심장한 게 아니다. 이렇게 넘겨서는 안 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넘겨서는 안 되는데 하는 사이에 세밑이 다가왔다. 막막한 아쉬움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0년 뉴 밀레니엄을 감격해하며 불꽃놀이에 흥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십년이 훌쩍 흘렀다. 삶이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얼마남지 않게 되면 점점 빨리 돌아가게 된다. 세월이 흐르며 눈물도 점차 메말라 간다. 초대하지 않은 겨울이 이미 옆에 있어 서성이는 11월의 끝, 감동으로 눈물 흘릴 일은 어디 없을까. 김동률 KDI 연구위원
  • “연천 횡산리 유적은 신석기시대 적석총”

    “연천 횡산리 유적은 신석기시대 적석총”

    경기 연천 군남 홍수조절지 안의 횡산리 적석총 발굴유적이 신석기 시대 적석총(績石塚·돌무지무덤)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문화재연구원(원장 이재)은 19일 발굴조사 결과 이 유적이 강변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제방 위에 만들어진 고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적에서는 돌무지를 쌓아 올린 원래 무덤 중에서도 바닥에 깔았던 이른바 즙석(葺石)시설이 그대로 확인됐다. 지금은 제방의 정상부가 평평한 형태이지만 원래보다 1.5m가량이 깎여 나간 것임을 현지 주민들에게 확인했다고 연구원 측은 전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 각종 빗살무늬 토기 조각을 비롯해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무늬를 두드려 만든 토기) 조각과 창 등의 철기류, 옥제품과 석제품 등이 출토됐다. 조사단은 특히 이중 타날문토기와 철기류 등이 적석총 축조 무렵에 매납된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석재들이 발견된 양상에 비춰볼 때 적석총은 남북 길이 58m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적석총을 축조한 주체는 고구려에서 남하한 백제건국자 집단, 고구려와 말갈, 백제변방 수장층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일단은 고구려에서 남하한 백제건국자들의 무덤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즙석 시설이 적석총의 바닥 시설인지 여부 등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美고등훈련기 10년 임무마치고 귀환

    美고등훈련기 10년 임무마치고 귀환

    무덤에서 부활했던 미 공군의 고등훈련기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간다. 공군은 16일 세계 첫 초음속 훈련기로 우리 공군이 1999년 미국에서 임대한 뒤 10년간 조종사 940여명을 양성한 미 공군 T-38 훈련기를 반환한다고 밝혔다. T-38은 ‘항공기의 무덤’이라 불리는 애리조나 사막의 미 공군 ‘초과품 저장창(AMARC)’에 보관돼 있었다. 1950년대 초도 생산 이후 40여년이 경과한 낡은 훈련기였으나 공군은 1999년 기술 및 정비전문가를 미국으로 파견, 사막의 모래 속에서 우리 공군이 쓸 만한 T-38 훈련기를 선별했다. 이렇게 선별된 T-38 30대가 임대됐다. 지난 10년간 94 0여명의 정예 조종사를 양성하는 훈련기로 활용됐다. 공군은 40년이 된 T-38 훈련기를 운용하면서 8만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을 수립했다. 애리조나 사막에 파묻혔던 훈련기가 부활해 한국 공군이 가진 세계 수준의 정비능력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6월 1차로 T-38 15대가, 오는 12월 나머지 15대가 돌아간다. T-38의 빈 자리는 2007년 10월 첫 조종사를 배출한 국산 초음속훈련기 T-50이 대신한다. 공군은 이날 이계훈 공군참모총장 주관으로 72명의 조종사를 배출하는 고등비행교육과정 수료식을 거행했다. T-38 훈련기는 이날 10년 임무를 끝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국세청 “술 품질 공개한다”

    술도 식품처럼 품질 분석 결과가 공개될 전망이다. 품질에 불합격 판정을 받아 제조·출고 정지나 영업정지 등을 받은 술과 술 회사 명단도 같이 공개될 예정이다. 맥주·소주 등 대형 주류업체는 품질로 적발되는 일이 거의 없어 무덤덤한 반응이지만 영세 주류업체는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최근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소규모 막걸리 업체들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국세청은 11일 “주류에 대한 안전성 확보와 소비자 정보권 확보 차원에서 주질(酒質) 분석 결과를 국세청 홈페이지에 게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국세청은 개인 과세정보라는 이유로 주질 분석 결과 공개를 꺼려왔다. 주류 품질에 문제가 발견돼도 비공개로 제조·출고 정지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위반 내용이 인체 해로움과는 무관한 알코올 도수 위반, 사카린 등의 첨가물 위반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소주회사 관계자는 “대량 생산이 이뤄지는 대형 주류회사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국세청기술연구소의 품질 조사를 받고 있으며 위반 사례도 거의 없어 정보가 공개돼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아직 주질이 일정치 않은 영세 주류업체들은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류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정보 공개가 바람직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동행(KBS1 오후 11시30분) 인천 서구의 어느 빌라. 넓은 세상에 믿고 의지할 데라곤 서로밖에 없는 봉관, 진관, 시온 삼형제가 살고 있다. 올해 3월, 아빠가 간경화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덩그러니 남겨진 삼형제. 형제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아빠와 이혼 뒤 집을 떠난 엄마를 찾는 일이다. 과연, 삼형제는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노래를 위한 원칙을 고집하는 이은미. 노래는 나의 운명, 무대는 나의 힘이라 말하는 이은미를 만난다. 국내에서 라이브 공연을 가장 많이 했지만 무대에 서기 전 심하게 긴장하는 이유, 그녀가 일부러 목소리를 변화시킨 사연, 힘들었던 공백기를 거치고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의 히스토리를 들어본다. ●사주후愛(MBC 오후 6시50분) 술만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어 버리는 남편을 감당할 수 없다는 아내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몰라주고 술 마시는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남편. 동거생활 포함 4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점점 악화되어 가기만 하는 부부관계. 그들은 왜 이렇게 다른 입장에 서게 된 것일까?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강원도 평창의 한 야산에 자리 잡은 문제의 무덤. 무덤 하나를 두고 벌어진 믿지 못할 사건. 무덤은 분명 하나인데, 주인이 무려 세 명. 서로 자신의 조상 묘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결국 파묘를 하기로 한 세 집안. 하나의 무덤을 둘러싼 세 집안의 신경전, 과연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수만년의 역사를 지닌 선사시대 유물인 고부스탄의 암각화와, 세계의 비경으로 꼽히는 진흙화산. 카스피해 해안에서 탈리쉬인들의 오랜 전통과 풍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라카란. 169세로 생을 마감한 세계 최장수자가 살았던 장수마을, 레릭. 불의 땅 아제르바이잔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한다. ●전설의 시대(OBS 오후 11시) 1960년대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소년 김웅용. 당시 그는 4세에 아이큐는 무려 210이었다. 생후 6개월 때 자연교과서를 읽었고, 5세에 대학교 그리고 8세에 미 항공우주국 NASA에 초청 받아 13살에 열물리학,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과연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대상 폴란드 영화 ‘할머니와 거짓말’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대상 폴란드 영화 ‘할머니와 거짓말’

    폴란드 토마시 유르키예비치 감독의 단편 ‘할머니와 거짓말’이 10일 막 내린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폐막식 겸 시상식을 열고 모두 9개 부문 수상작을 발표했다. 최우수 해외작품상은 말레이시아 탄 취 무이 감독의 ‘에브리데이 에브리데이’가, 최우수 국내작품상은 이병헌 감독의 ‘냄새는 난다’가 각각 차지했다. 정유미 감독의 ‘먼지아이’는 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었고, 정은경 감독의 ‘관객과의 대화’는 맥스무비상(정은경), 단편의 얼굴상(배우 김태훈)을 받아 2관왕에 올랐다. 이 밖에 관객심사단이 직접 뽑는 아시프관객심사단상은 이스라엘 켄 살렘 감독의 ‘텔아비브로 가는 길’에, 실험성 뛰어난 작품에 주는 크링상은 싱가포르 준펭 부 감독의 ‘집으로’에 돌아갔다. 사전제작을 지원하는 아시프펀드 프로젝트상은 지태경 감독의 ‘무덤가’가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금융시장 ‘서해교전’ 무덤덤

    서해교전이라는 돌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은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다. 10일 코스피지수는 9일에 비해 5.51포인트(0.35%) 오른 1582.30, 코스닥지수는 1.51포인트(0.31%) 내린 482.94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1162.20원으로 1.20원 오른 가격에 장을 마감해 서해교전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북핵 리스크는 금융시장에 이미 반영돼 있기 때문에 최근 북핵 미사일 발사 때도 시장이 흔들리지 않았다.”면서 “서해교전도 주식시장 상승세를 약간 주춤하게 했을 뿐 그다지 영향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세종로 어디로] 열받는 원주민…무덤덤 기업들

    정부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면서 산업용지 분양가격 인하설이 나오고 있으나 기업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인하된 가격을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할 경우 기업에 대한 특혜론이 불거지고, 원주민 택지분양가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9일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따르면 세종시 조성원가는 3.3㎡(평)당 22 7만원에 이른다. 공사 관계자는 “20 16년 이후에 세종시 산업용지를 분양할 예정이어서 분양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조성원가보다는 싸게 분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에게 산업용지를 절반 이하로 분양한다는 등 여러가지 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분양가가 3.3㎡당 60만원 이하가 되지 않으면 기업이 자발적으로 세종시로 올지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예산군 등 주변 군지역의 최근 산업용지 분양가격은 50만~60만원에 그치고 있다. 올해 처음 분양이 이뤄진 당진군 석문공단은 76만 4000원이다. 당진은 수도권과 가깝고 항만 등을 끼고 있어 세종시에 비해 산업단지 입지로 보면 훨씬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달 중 분양될 대구 테크노폴리스의 경우 3.3㎡당 70만원대 분양가를 놓고 대구시는 “분양에 성공하려면 더 올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토지주택공사는 “더 올리자.”고 맞서고 있다. 시 관계자는 “부산항과 30분 거리에 있고 구미, 울산, 마산 등 주변 인구까지 1500만명에 달해 세종시에 견줘 입지가 뒤지지 않지만 너무 비싸면 실패한다.”고 내다봤다.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등 주요 대기업도 아직은 세종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상황과 정부의 인센티브를 따져보고 관심을 갖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에서 땅값을 인하, 기업에 산업용지를 공급해도 아파트 부지를 공급받은 건설업체나 이주자 택지를 분양받은 원주민과의 형평성도 문제가 된다. 행정도시 건설계획이 흔들리면서 이곳 아파트 부지를 분양받은 12개 업체 가운데 2곳이 계약을 해지했고, 나머지 업체도 지난해 11월 있은 2회차부터 중도금 지급을 미뤄오고 있다. ‘원형지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도 극에 달하고 있다. 연기군 남면 고정1리 주민 정헌도(60)씨는 “원주민에게 평당 150만원에 팔고 기업에는 돈을 지원하면서까지 무상으로 주네, 30만~40만원에 주네 하는데 이해가 되느냐.”면서 “기업에 땅 나눠주라고 조상 묘까지 다 옮겨가면서 고향 땅을 내놓은 줄 아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연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일본은 ‘현대車 무덤’

    일본은 ‘현대車 무덤’

    일본차의 국내 시장 잠식이 무섭다. 반면 일본 시장은 여전히 ‘현대 자동차의 무덤’이다. 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일본에서 786대를 파는 데 그쳤다. 지난해 연간 판매량 5 01대와 비교하면 늘었으나 현지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0.54%에 불과하다. 게다가 올해 일본 수출량 523대를 뺀 나머지 263대는 지난해 재고분이 소진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1000대 팔기가 버겁다. 반면 일본차는 야금야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도요타 브랜드는 론칭 3주 만에 5200여대의 계약판매고를 올리며 질주하고 있다. 현대차는 2001년 일본에 진출했다. 같은 해 일본 도요타도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한국행 배를 탔다. 9년이 흐른 지금 두 회사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현대차는 2002년 월드컵 특수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몇 년간 연간 2000대 안팎 팔았으나 이후 철처히 외면당했다. 전문가들은 “경소형차 비중이 3분의2를 넘고 주차장이 협소한 일본의 특성에 맞춘 현지 전략 차종 개발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차는 현지화에 성공하고 있다. 렉서스(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차는 2001년 국내 진출 첫해 반일감정 등에 밀려 841대밖에 팔지 못했다. 그러나 2006년 1만대를 넘기더니 지난해에는 2만 1912대를 팔았다.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점유율도 35.5%까지 끌어올렸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1만 2229대를 팔았다. 특히 지난달 21일 국내 진출한 도요타 브랜드는 누적 계약대수 5200대를 넘었다. 캠리는 지난달 열흘 만에 529대를 팔아치웠다. ‘일본차 바람’은 경쟁 모델인 현대차의 쏘나타, 그랜저 등이 상대적으로 ‘가격 대비 품질’에서 미흡하다는 소비자 판단이 개입된 결과로 업계는 분석한다. 쏘나타는 98년 EF쏘나타 출시 이후 가격이 72%(최고급 트림 기준) 뛰었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37.5%)의 두 배에 가깝다. 반면 일본차들은 같은 기간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가 내수 점유율 85%의 보호망 속에서 소홀히 해 온 차량 가격 합리화, 품질 개선, 애프터서비스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1500년전 가야 ‘순장 인골’ 미스터리 풀렸다

    1500년전 가야 ‘순장 인골’ 미스터리 풀렸다

    2007년 12월 경남 창녕 송현동에 있는 한 고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골 네 구가 발견됐다. 남녀 두 쌍이 한 무덤에서 나왔으나 발굴팀은 신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미 도굴꾼들이 다녀간 뒤였기 때문이었다. 무덤 주인 자리에는 관조차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남아 있는 인골도 여인으로 추정되는 한 인골을 빼고는 팔다리의 뼈만 남아 있었다. ●학제간 융합연구의 개가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유골마저 도굴꾼들에게 짓밟힌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고학 법의학 해부학 유전학 화학 물리학 등 국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처럼 힘을 합쳤다. 이들 인골은 애초 법의학적인 방법으로 수습돼 컴퓨터 단층촬영과 3차원 정밀스캔, DNA 분석 등 각종 최첨단 검사를 거쳤다. 그 결과 이들은 1500년 전 함께 순장됐다는 사실 등 인골에 얽힌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풀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사인이 중독 또는 질식사였다는 것. 넷 중 여자 인골은 사랑니도 채 자라지 않은 키 152㎝의 16세 소녀였는데, 목이 졸리거나 독약을 먹고 죽어 주인과 함께 순장됐다. 당시의 사회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넓은 얼굴에 팔이 짧은 이 소녀는 정강이와 종아리뼈의 상태를 볼 때 무릎을 많이 꿇는 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머리뼈와 치아 상태에서는 평소 빈혈과 충치를 앓았음을 알 수 있고, 출산 경험은 없었다. 소녀의 신분은 6세기 가야지방에 살았던 시녀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이른바 학제간 융합으로 밝혀낸 쾌거였다. ●잡곡보다 쌀·콩·고기 많이 먹어 함께 무덤 속에 누워 있던 다른 인골들은 팔다리 뼈 정도만 남아 있어 자세한 사정은 알기가 어렵지만 잡곡보다는 쌀·보리·콩·고기 등을 많이 먹어 영양 상태는 양호했다. 두 남자는 DNA 분석결과 외가쪽이 같은 혈통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더 있다. 남자 한 명은 엄지·새끼를 뺀 나머지 발가락마다 뼈마디가 하나씩 더 발견됐다. 이성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처음에는 기형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사슴뼈로 판명됐다.”고 전했다. 사슴뼈가 왜 거기서 나왔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전례도, 알려진 풍습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 등이 실시한 ‘고대 순장인골 복원연구사업’의 성과다. 7일 전북대에서 열리는 제33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通史로서의 우리역사 오롯이 복원

    通史로서의 우리역사 오롯이 복원

    수천년 전 고조선의 기억을 오롯이 담고 있는 기록과 유물이 제 이름을 되찾았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 100주년을 맞아 통사(通史)로서 우리의 역사를 완벽하게 복원하게 됐다. ●랴오닝식 동검 등 고조선 유물 100여점 한자리 국립중앙박물관은 3일부터 기존의 ‘원삼국실’이라는 이름을 해체하고, 고조선실을 새롭게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식민사관의 잔재이자 일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만 쓰이던 이른바 ‘원삼국실’에 있던 나머지는 ‘부여·삼한실’로 이름을 바꿔 진한·변한·마한 등의 유물로 세분화된다. 고조선실에 들어서면 가장 앞 줄에서 고조선의 표지적 유물이 될 수 있는 랴오닝(遼)식 동검(銅劍)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비파형 동검이라고도 하는 랴오닝식 동검은 한반도에서만 80여점이 발견됐으며 같은 청동기 시대의 다른 칼과 달리 몸통과 칼날이 분리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고조선 동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시실은 ‘고조선의 형성’, ‘기원전 5세기 무렵 고조선의 변화’, ‘기원전 4세기 이후 고조선의 발전’, ‘고조선의 멸망과 문화의 파급’ 네 부분으로 나뉘며, 고조선 유물 100여점과 관련 유물 등 200여점이 전시된다. ●가평 달전리서 발굴된 동검·쇠검 첫 공개 평안북도 의주 동굴 유적에서 처음 발견된 ‘미송리식 토기’ 역시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다. 납작한 바닥에 아가리가 벌어지는 형태를 갖고 있는 미송리식 토기는 복제품이다. 또한 경기도 가평 달전리에서 발굴된 한국식 동검, 쇠검 등은 이번 고조선실 개관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유물이다.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고조선계 무덤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송의정 박물관 고고부장은 “고조선 멸망 이후 유민들을 통해 그 문화가 남쪽으로 내려왔음을 증명함과 함께 이미 철기가 쓰이기 시작했음에도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동검을 계속 사용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고조선실을 통해 정치적 실체를 가진 국가로서 고조선을 다시 한번 우리의 역사로 인정함과 동시에 고조선에서부터 조선까지 완벽한 통사 형태로 일단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 장례풍속 유물 8000점 전시

    서울역사박물관은 4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조선시대 한양(서울) 사람들의 장례 풍속을 보여주는 ‘은평 발굴, 그 특별한 이야기’ 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회는 은평뉴타운 조성 과정에서 나온 유물 8000여점으로 마련됐다. 전시회는 총 5개 마당으로 ▲첫째 마당(옛 은평을 향하다)에선 은평의 역사와 무덤이 많은 이유를 알아보고, ▲둘째 마당(옛 서울사람을 만나다)은 이말산에 남아 있는 비석으로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살펴본다. 사람 뼈를 통해 과거 서울 사람들이 앓았던 질병도 추적해 본다. ▲셋째 마당(예법과 풍습을 돌아보다)은 한 서울 사람의 죽음에서 매장까지 과정을 추적하며, 발굴된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 장례를 알아본다. ▲넷째 마당(발굴현장을 찾다)은 발굴 성과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물과 모형이 전시된다. ▲다섯째 마당은 무덤 이외에 절터와 가마터 등의 유적이 전시된다. 한강문화재연구원과 중앙문화재연구원은 2005년부터 지난 7월까지 은평뉴타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근대 무덤 5000기와 통일신라시대 가마터 등을 발굴했다. 분청사기어문매병, 백자명기세트, 유리제 구슬 등 유물 총 8000여점이 출토됐다. 북한산 서쪽 자락에 있는 은평뉴타운 지역은 조선시대 개경에서 한양으로 들어서는 경계이자 도성과 서북지방을 잇는 서북대로의 출발점이다. 전시회 개막식은 3일 오후 3시 개최되며 일반관람은 4일부터 시작된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오후 9시, 주말 오전 10~오후 6시. 관람료는 19~64세 700원, 그 외에는 무료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월하의 공동묘지’, 드라마ㆍ영화로 리메이크

    ‘월하의 공동묘지’, 드라마ㆍ영화로 리메이크

    1967년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둔 한국 공포영화의 고전 ‘월하의 공동묘지’가 드라마와 영화로 리메이크된다. 30일 영화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베르디픽쳐스 측은 “내년 여름을 겨냥해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월하의 공동묘지’는 만화 ‘월하의 공동묘지’가 최근 모바일과 웹에 연재되고 있고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로 기획 제작될 예정이다. 한편 한국 고전 공포영화의 대명사 ‘월하의 공동묘지’는 1967년 개봉작으로 권철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강미애, 박노식, 도금봉 등이 출연했다. 모함과 누명으로 인해 죄 없이 목숨을 빼앗긴 여인의 원혼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그린 ‘월하의 공동묘지’는 개봉 당시 무덤이 반으로 갈라지는 특수효과 장면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진 =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 포스터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효종때 북벌주도 이후원 묘역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

    효종때 북벌주도 이후원 묘역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

    조선 효종 때 우의정을 지내며 북벌(北伐) 계획을 주도한 완남부원군 이후원(1598∼1660년)의 묘역이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원형이 잘 보존된 강남구 대모산 동남쪽 자락의 이후원 묘역 일대가 개발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시 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이후원의 묘역은 그의 두 아내가 함께 묻혀 있는 무덤과 제물과 향 등을 올려놓는 상석, 무덤 양옆에 세운 망주석 등으로 이뤄졌다. 다른 사대부 묘역과는 달리 봉분을 돌(호석)로 두르고 해치상이 배치된 점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 성리학자 송준길과 송시열이 각각 비문과 추모의 글을 짓고 명필인 이정영이 비문의 글씨를 썼다. 이후원은 광평대군 이여(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5번째 아들)의 7세손으로 인조 때의 공신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서우 “형부에 대한 욕망·질투… 감정몰입 정말 힘들었죠”

    서우 “형부에 대한 욕망·질투… 감정몰입 정말 힘들었죠”

    영화에도 생명이 있다면, 지금쯤 ‘파주’(28일 개봉)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터이다. 주인공 은모 역을 서우가 맡아주어서, 그래서 안개마냥 가늠하기 힘든 제 몸뚱아리를 파닥이는 생물체로 만들어주어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터이다. 배우 서우(24)는 ‘파주’와의 만남을 운명으로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확’ 느낌이 왔어요. 게다가 찍고 있던 드라마 ‘탐나는도다’가 그때쯤 중단이 됐어요. 여러 가지가 굉장히 운명처럼 다가왔죠. 내가 꼭 해야 할 작품이란 암시를 주는 것 같았어요.” ●“‘파주’는 운명처럼 만난 작품” 상황이 운좋게 들어맞아 출연을 결정했더라도, 연기는 온전히 배우의 몫이다. 형부 김중식(이선균)에 대해 질투, 욕망, 미움, 배신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처제 최은모 역할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버진(‘탐나는도다’)과 은모(‘파주’)의 캐릭터가 워낙 상반돼서 왔다갔다하는 게 힘들었어요. 흔히 몰입, 집중이란 말로 표현되지만, 사실 연기는 그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한 인물이 됐다가 빠져나와 판이한 인물이 되는 것이니 힘들었죠.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니깐요.” 하이톤의 목소리가 처절했던 과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파주’가 그려낸 7~8년의 세월은 은모의 성장기와 겹쳐 있다.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 은모는 중학교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인생의 가장 큰 급변기를 관통한다. 동안의 사춘기 소녀와 23세의 서늘한 숙녀. 한 가지 마스크로 동시에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서우이기에 가능했다. “폭넓은 연령대 연기가 이 영화에선 가장 큰 숙제였어요. 걱정했지만 해내야 했죠. 그중에서도 스물세 살 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중고등학교에다 이후 시간까지 플러스한 시기이고, 감정이나 사건이 가장 고조되는 시점이었으니까요.” ‘파주’는 그녀가 첫 성인연기를 선보인 작품이 됐다. 키스신이 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정신적 파고나 깊이로 따지더라도. 은모가 자신과 너무 달라서 “이해하는데 피가 터져서 뇌에서 쏟아지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서우는 뼈대에 살점을 붙여나가듯 하나하나 상상을 하며 은모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고 말했다. “전 원래 되게 단순해서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데, 은모는 반대였어요. 혼자서 너무 많은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고 살아가는 애인데, 그걸 또 속으로 다 담아두는 애였죠.” ●사춘기와 성인 오가며 카멜레온 연기 사실 ‘파주’는 오해받기 쉬운 영화다. 통속적 냄새의 소재 하나만으로 ‘이용’ 당하거나 ‘팽’ 당하기 좋은 영화다. 선입견 강한 이들은 이 영화가 구현한 인간 죄의식에 대한 심미적 탐구를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서우의 생각도 비슷했다. “시나리오 읽을 때 불륜이란 걸 거의 의식하지 못했어요. 금기의 사랑, 형부에 도발하는 처제 같은 센 느낌이 전혀 아니었죠. 두 사람의 관계성을 부인할 순 없지만, 제가 느낀 건 다만 ‘두 사람이 참 불쌍하게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거였어요. 누구나 영화를 직접 보면, 예상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파주’는 박찬옥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박 감독은 ‘질투는 나의 힘’ 이후 6년 만에 이 작품을 들고 왔다. 그와의 작업은 어땠을까. “성격이 참 무덤덤한 분인데, 그런 분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주로 혼자 삭히죠. 제가 언니에게 기대기만 했지, 정작 언니가 힘들다고 터놓은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서우는 감독을 ‘언니’라 불렀다. “감독이 아닌 언니로 바라봤을 때 가엾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도 연기지도하실 땐 조곤조곤히 할 말 다 하세요. ‘서우야, 요번 건 이상했어.’라고 정곡을 콕 찔러주시죠.” 형부 역으로 함께 호흡을 맞춘 이선균에 대해서는 “앵글 밖의 그에게 존경심을 느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운 신 찍을 땐 중식이 은모를 보살피듯 항상 옆에서 챙겨줬고, 편안한 신일 땐 장난도 많이 치고 맛있는 것도 잘 사줬단다. 또 스케줄이 힘들 때면 스태프들에게 약을 사서 돌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데뷔 2년 만에 주연… 충무로 기대주 2007년 장진 감독의 영화 ‘아들’에서 조연을 맡으며 배우로 데뷔했으니, 이제 갓 2년된 신인. 지난해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에서 전교 왕따 서종희를 연기해 대한민국 영화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자그마치 7개의 신인상을 휩쓴 충무로의 유망주. 큰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냐고 묻자 “저에 대한 눈높이가 제가 갖고 있는 것보다 높은 것 같다.”며 “소심해서 그런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수그러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씩씩해진다. “당분간 쉰 다음에 ‘파주’처럼 읽기만 해도 느낌이 오는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저희 뭐 했어요.’ 라고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일본 최고 ‘5툴 플레이어’ 아오키 노리치카

    일본 최고 ‘5툴 플레이어’ 아오키 노리치카

    올시즌 일본 센트럴리그는 투고타저가 극심했다. 3할 이상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7명 뿐이었으며 출루율 4할은 단 한명만 기록했을 정도로 리그 전체가 타자들의 무덤이었다. 단 87득점으로 리그 득점왕이 탄생했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불허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타자가 있다. 바로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간판타자 아오키 노리치카다. 아오키는 ‘일본에는 두명의 이치로가 있다’ 라고 할만큼 프로데뷔 후 ‘제2의 이치로’로 불리며 일본리그는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맹타를 휘두르며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한국의 이용규(KIA)가 롤 모델로 꼽는 선수가 바로 아오키다. 올시즌 아오키는 첫 풀타임으로 활약했던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타율 .303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부문 타이틀 2개를 손에 넣는 특이한 시즌을 보냈다. 출루율(.400)과 득점(87) 타이틀이 바로 그것. 비록 득점왕은 홈런왕 토니 블랑코(주니치), 사카모토 하야토(요미우리)와 공동 1위를 차지했지만 아오키는 이것 외에도 5년연속 150안타 이상을 쳐내는 기염을 토했다. 미야자키 휴가시 출신인 아오키는 와세다 대학 졸업 후 2004년 야쿠르트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 1군에는 단 10경기 출전한 게 전부였지만 그해 이스턴 리그 타율 1위(.372)를 기록할 정도로 방망이 솜씨만큼은 인정을 받았다. 미래의 간판타자로서의 자질을 보였던것이다. 이듬해 아오키는 당시 팀의 주축선수였던 이나바 아츠노리가 니혼햄으로 이적하는 것과 맞물려 개막전부터 그자리를 대신한다. 그해 아오키는 센트럴리그 역사를 바꿔 놓을 정도의 맹타를 휘두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데 시즌 종료 후 그의 손에 쥔 성적표는 타율 1위(.344)와 최다안타 1위(202개), 리그 신인왕은 보너스였다. 이해 아오키의 성적이 놀라운 것은 이치로 이후(1994년) 한시즌 첫 200안타 주인공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센트럴리그에선 최초의 200안타 기록이다. 이듬해인 2006년에도 최다안타 1위(192개)와 득점왕(112)을 차지한 아오키는 도루왕(41개) 타이틀까지 수상하며 시즌 전 열린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 발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2006 시즌이 끝난 후 아오키는 자신의 야구인생의 전환점이 될 모험을 시도한다. 타격폼을 수정한 것이다. 아오키는 그해 성적이 하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체를 세운 업라이트(up-right) 준비자세를 웅크린 자세로 바꾼 것이다. 당시 아오키는 “좀 더 많은 홈런을 치기 위한 수정이다. 훗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발생할수 있는 기동력 저하를 장타력으로 대체하려는 시도” 라고 밝히며 자신의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안목을 보여줬다. 타격폼을 뜯어고친 아오키는 2007년 타율 1위(.346)와 출루율 1위(.434) 득점 1위(114)는 물론 이치로도 기록하지 못한 3년연속 190안타 이상(193안타)를 쳐낸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타격폼 변화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내기라도 하듯, 20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장타력까지 갖춘 타자로 완벽히 변신에 성공한다. 타격폼 수정은 웅크린 상체만큼이나 하체의 로테이셔널(rotationl)이 보다 원활해지면서 ‘회전력의 스윙’이 용이해졌기에 많은 홈런이 생산된 것이다. 다소 곧추세웠던 방망이 위치도 뒤로 뉜 상태에서 발사되기에 스윙궤적 역시 이전과는 달라진 상태가 됐던 것이다. 2008년 아오키는 시즌초 부상과 베이징 올림픽 출전 등으로 인해 112경기만 뛰면서 타율 .347를 기록했지만 공격부문 타이틀은 수상하지 못했다. 아오키는 시즌이 끝난 후 구단측에서 제시한 10년 장기계약(40억엔)을 거절했는데 그역시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픈 욕심이 있기에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올시즌 아오키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한 휴유증으로 고생하며 시즌중반 한때 타율이 2할대 초반까지 떨어지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후반기 들어 맹타를 휘두르며 팀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 올시즌까지 아오키는 통산 타율 .331 출루율 .405를 기록중이다. 지금 아오키는 일본최고의 ‘5툴 플레이어’ 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큼의 고른 기량을 갖춘 선수로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한편 아오키는 올시즌 도중 결혼을 발표해 화제가 된적이 있는데 그의 반려자는 텔레비전 도쿄 아나운서 출신의 오타케 사치라는 여인이다. 오타케는 일전에도 모구단의 야구선수와 교제를 했던 전력이 있지만 도쿄를 본거지로 두고 있는 야쿠르트 팀의 아오키를 낚아채는데 결국 성공했다. 아오키가 훗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시 오타케로 인해 언어소통에는 큰 불편함이 없을듯 보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43) 양양 구룡령 옛길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43) 양양 구룡령 옛길

    구룡령 옛길이 온전히 살아남은 건 거의 기적이다.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넘어 홍천 내면 명개리에 이르는 옛길은 양양과 고성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꿈 많은 길이고, 양양의 아버지들이 동해의 해산물을 지고 홍천으로 넘어가 곡식과 바꿔왔던 고단한 길이다. 일제가 동해안 지역의 물자 수탈을 위해 옛길에서 1㎞쯤 떨어진 곳에 비포장도로를 냈고 1994년 비포장길이 말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옛길은 아주 잊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갈천리 마을 주민들이 수풀 속에서 묻혀 있던 길을 발굴하고 보살핀 덕분에 구룡령 옛길은 새롭게 태어났다. 구룡령 옛길은 말 그대로 옛길이 간직한 미덕이 오롯이 담겨 있다. 험준한 오르막은 굽이굽이 돌면서 부드럽게 이어지고 하늘을 찌르는 금강소나무들은 활엽수들과 어울려 그윽한 숲의 정취를 풍긴다. 그리고 갈천리에서 명개리까지의 거리는 지금의 포장도로보다 훨씬 짧다. 이러한 옛길의 원형과 정취를 담고 있기에 갈천리에서 옛길 정상까지 2.76㎞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문화재 길’이 되었다(홍천 내면 명개리에서 옛길 정상까지 3.7㎞는 뒤늦게 복원된 탓에 명승 길이 아니다). 국내의 명승 길은 이곳 외에도 문경새재, 죽령 옛길, 문경의 토끼비리(관갑천 잔도)가 있다. 구룡령 옛길의 탐방은 갈천리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명개리까지 고개를 온전하게 잇는 것이 정석이지만 명개리로 내려가면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포장도로 구룡령 정상에서 시작해 옛길 고갯마루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을 잇고, 옛길을 따라 갈천리까지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현재의 길과 과거의 길이 백두대간을 통해 연결되는 이 코스는 힘들이지 않으면서 옛길과 백두대간을 체험할 수 있는 기막힌 코스다. 거리는 4.36㎞로 2시간30분쯤 걸린다. 56번 국도가 지나는 구룡령의 본래 이름은 ‘장구목’이다. 도로가 포장되면서 이름이 구룡령으로 둔갑해 지금까지 굳어졌다. 구룡령 생태터널 앞에는 ‘백두대간 구룡령’이란 거대한 돌비석이 서 있다. 그 뒤로 난 길은 약수산과 오대산 방향이고 도로 건너편으로 나무계단이 보인다. 구룡령 옛길로 가려면 그쪽으로 올라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100m쯤 가면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을 밟게 된다. 1000m가 넘는 고도지만 길은 평지처럼 순하다. 30분쯤 걸었을까. 쏴~ 갑자기 파도소리가 들린다. 백두대간 능선을 넘으면 동해가 펼쳐지는 것을 아는 듯, 내륙에서 불어온 바람은 능선의 나무들을 두들기며 파도 흉내를 내더니 뺨을 후려치고 달아난다. 낙엽이 진 능선은 심술궂은 바람이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1121m 봉우리에 올라서자 나뭇가지 사이로 갈천리 마을이 보인다. 여기서 본 갈천리는 그야말로 백두대간 아래 첫 마을이다. 1121봉에서 내려서면 구룡령 옛길 정상.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고 갈천리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본격적으로 옛길 탐방에 나선다. 완만한 산비탈 길에는 수북한 낙엽이 발바닥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활엽수들은 이미 잎사귀를 떨어냈고 낙엽들은 무언가 움켜쥔 것을 놓은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가랑잎 하나를 쥐고 냄새를 맡으니 뜻밖에 좋은 냄새가 난다. 아직 나무의 향기가 마르지 않았다. 잎사귀에서 향기가 사라지면 가을도 떠나리라. 길은 산의 허리춤을 파고들면서 구불구불 휘어진다. 구룡령(九龍領)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구불구불 거리며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구룡령 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옛길에서 새길까지의 거리는 불과 1㎞가 안 되지만, 세월의 거리는 참으로 아득하다. 이윽고 눈부시게 흰 돌이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횟돌반쟁이. 옛 행인들이 쉬어가던 곳으로 장례식에 쓰는 횟돌이 나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물자작나무라고도 하는 거제수나무 몇 그루가 단풍과 어울린 그윽한 길을 내려서니 굵은 소나무 그루터기들이 보이는 곳은 솔반쟁이. 이곳의 금강소나무들은 1989년 경복궁 복원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구불거리는 길이 잠깐 평지처럼 순하게 이어지다 무덤 하나를 만난다. 군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홍천 명개까지 양양 수령을 업고 뛰다 돌아오는 길에 지쳐 죽은 젊은 청년의 무덤인 묘반쟁이다. 무덤을 지나면 하늘을 찌르는 금강소나무들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그 중 하나는 둘레가 270㎝, 높이 25m, 나이는 무려 180살이다. 이렇게 기품 있으면서도 야생이 살아있는 금강송은 전국적으로 흔하지 않다. 목이 아픈 줄 모르고 금강송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덧 계곡을 만나면서 옛길은 끝난다. 맑은 물에 땀을 닦고 있는데 심술쟁이 바람이 찾아와 낙엽 한 움큼을 머리 위로 뿌려놓는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구룡령은 대중교통이 불편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해 홍천까지 이른 후에 56번 국도를 타고 창촌을 지나 구룡령에 닿는다. 양양에서 갈천리행 버스는 1일 5회(08:10 홍천행, 11:00, 13:30, 16:00, 18:10) 운행한다. 구룡령에 차를 댔으면 갈천리에 도착한 후에 갈천리 주민들의 픽업서비스를 이용한다(엄주현 이장 011-294-2427). 갈천리 관광 정보는 마을홈페이지(http://www.치래마을.kr)에 잘 나와 있다. 갈천리는 산나물과 토끼탕이 유명하다. 갈천약수가든(033-673-8411), 치래마당(033-673-0050) 등에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다.
  • [길섶에서] 왕릉지킴이/노주석 논설위원

    매번 지나쳤다. “한번 가 봐야지.”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빚진 기분이었다. 입으로 얘기하면서 눈으로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헌인릉 말이다. 서울 내곡동에 있는 헌인릉에는 조선 제3대 태종의 헌릉과 제23대 순조의 인릉이 모셔져 있다. 개성에 있는 정종의 후릉 등 2기를 빼고 남한에 남은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다. 가서 보니 왕릉 구경보다 왕릉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왕릉도 스토리가 없으면 죽은 자의 무덤에 불과한 것 아닌가. 왕릉 지킴이로부터 조선시대 장의문화에 대한 무지를 깨쳤다. 왕릉 지킴이는 문화유산 자원봉사자들이다. 20여명으로 구성된 즉석 왕릉교실 학생들은 지킴이의 인도에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왕릉은 왕이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도록 왕궁에서 10~100리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왕릉 순례에 나설 참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조선왕릉은 조선의 정신이자 우리의 뿌리가 아닌가. 왕릉에 눈뜨게 해준 지킴이들의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언도된 1910년 2월14일부터 3월26일 순국까지 최후 40여일간 글씨를 써서 남겼다. 유묵의 수신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이에 대해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법원과 감옥의 일반 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고 밝혔다. ●日 류코쿠대 소장품 3점 국내 첫 공개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친필 유묵은 50여점이다. 이 가운데 34점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안중근 의사 의거와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여는 ‘안중근-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에서다. 이들 유묵은 안 의사의 손때가 묻은 유일한 유품임에도 지금까지 한 곳에서 전시되거나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묵 34점은 국·공립박물관 및 개인 소장 국가보물 20점과 미공개 작품 5점, 일본 소장품 7점, 중국과 미국 소장품 각 1점 등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들 유묵을 내용별로 정리해 ▲독립·평화 ▲의거·순국 ▲인간 안중근 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립투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동양평양론’을 주창한 사상가, 종교인, 선비로서의 안중근을 복원시킨다. 특히 일본 류코쿠(龍谷)대의 소장품 3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또 안 의사의 유묵 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의 실물(동국대박물관 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안중근 글씨의 서체 및 서풍은 엄정 단아한 해서와 해행이 주가 되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모두가 침착 통쾌한 안중근의 성정 기질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 유묵의 내용은 안중근의 사상과 실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안중근 실존의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의거서 순국까지 담은 사진원본도 이번 전시에는 이들 유묵 외에 의거에서 순국까지 5개월간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 28점과 관련 자료 10점이 함께 공개된다. 1909년 10월20일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뤼순 이룡산에 올라 러시아군 전몰자의 무덤에 참배한 뒤 찍은 사진과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27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의 사진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 원본도 전시된다. 전시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안중근 동양평화학교’특강이 열린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김우종 중국 하얼빈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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