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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기형이…” 친딸 태어나자마자 생매장한 파렴치父

    “얼굴 기형이…” 친딸 태어나자마자 생매장한 파렴치父

    태어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자신의 딸을 외형적 기형이 있다는 이유로 생매장 한 파렴치한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인도 북서부 펀자브 주에 사는 챈드 칸은 태어난 딸의 외모가 비정상적인 것에 충격을 받고 아이를 생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챈은 친척들에게 “아이가 죽은 채 세상에 나왔다. 곧 장례를 준비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아이를 인근 묘지에 생매장 했다. 병원 측은 “출생 당시 분명 힘차게 울음을 터뜨렸으며, 건강에도 큰 이상이 없었다.”며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아이를 안고 묘지로 가는 그의 모습을 본 주민들이 이를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고, 조사 끝에 덜미를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칸의 부인은 아이가 생매장 당할 때 병원에 있었지만, 이 일에 동조했는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을 조사중인 경찰은 “아이가 건강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머리가 크고 비정상적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은 분명한 유죄”라면서 “아이에게 기형이 있다 해서 마음대로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인권위원회의 활동가인 파르자나 바리는 “이 사건은 파키스탄 전역에 깔린 아이들에 대한 편견, 특히 육체적 기형을 가진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문제의 남성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경찰 측은 무덤을 파헤쳐 아이의 시신을 발굴한 뒤 부검할 예정이며, 친딸을 생매장 한 칸은 사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23번째 희생자 나오기전 문제 해결을”

    “23번째 희생자 나오기전 문제 해결을”

    지난 3월 30일 쌍용차 해고 노동자 이윤형(36)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엿새 뒤인 4월 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23번째 죽음만은 막아 보겠다.”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뜻을 담아서다. 13일로 100일을 맞는다. 지난달 16일에는 시민 2000여명이 참여해 ‘쌍용차 함께 걷기’ 행사를 가졌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도, 세계적 석학 슬라보이 지제크도 분향소를 찾았다. 100일간의 투쟁은 해고자 문제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해고의 현실은 그대로다. 쌍용차는 2009년 4월 직원 2646명을 정리해고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이후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해고자와 가족은 모두 22명이다. 해고 노동자들은 생계 해결을 위해 대리운전 기사로, 일용직 노동자로 힘겹게 버텨 가고 있다.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을 만났다. →100일째다.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상처다. 분향소는 22명의 영정을 안는 상처의 공간이면서 하나의 무덤이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빚진 마음뿐이다. 찾아오는 시민들이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더는 죽지 않고 쌍용차 문제가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몇 번씩 지나치면서 미안한 마음에 오셨다는 분들이 많다. 어려운 발걸음을 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분향소는 쌍용차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문제를 환기시키는 자리이기도 하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것, 해고가 이렇게 아픔을 준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난 9일부터 해고자들이 전국 순회에 나섰는데. -오는 21일 평택 공장에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리해고·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시키자는 뜻도 있다. 또 쌍용차(S)·강정마을(K)·용산참사(Y) 해결을 위해 지난달 출범한 SKY 공동행동의 활동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모두 국가에 의한 폭력에서 비롯됐다. →목적은. -5대 요구안이 있다. 해고 노동자 전원 복직, 파업 진압 책임자 처벌, 회계조작 진상규명,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대책 수립, 또 정리해고·비정규직의 철폐다. 2009년 사측이 회계 조작을 통해 경영이 어려운 것처럼 꾸몄는데 국정감사나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100일간 소감과 어려운 점은. -꼬마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저 아이들의 미래는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당장 20대들의 삶도 위태롭다. 가장 힘든 점은 역시 죽음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파업 노동자’,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어 삶이 어렵다.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진실이 이긴다고 생각하니까. 문제는 얼마나 걸리느냐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유럽車 2위 푸조, 佛공장 문 닫는다

    유럽 2위의 프랑스 자동차업체 PSA푸조시트로앵이 공장을 폐쇄하고 대규모 인원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했다. 유럽 재정 위기로 자동차 판매량이 5년째 줄어드는 등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푸조는 오는 2014년까지 39년 동안 가동해온 프랑스 오네 공장을 폐쇄하고 렌 공장의 자동차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12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푸조는 또 종전 발표한 감원 규모(6000명)보다 34% 가까이 늘어난 8000여명을 감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오네 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 3000명을 합치면 전체 해고 인원은 1만 1100여명에 이른다. 필리프 바랭 푸조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우리는 무덤에 있는 상황”이라며 “유럽 경제위기와 향후 시장 전망 등을 감안해 생산량 감축과 조직 재정비 등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푸조는 최근까지 10억유로(약 1조 4070억원)의 비용 절감안을 세워 추진해왔으며, 지난 4월에는 파리 중심가 본사 빌딩도 매각하기도 했다. 푸조의 이번 구조조정은 지난해 순이익이 5억 8800만 유로로 2010년보다 무려 48.1% 곤두박질친 데다 올들어 유럽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경영난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올해 상반기 자동차 부문 적자 규모는 7000억 유로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판매량은 162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 줄었다. 공장 가동률도 86%에서 76%로 떨어졌다. 주가는 지난해 73% 추락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32% 추가 하락했다. 푸조뿐 아니라 유럽 자동차업계 전체도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업체 르노와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도 올해 자동차 판매량 감소폭이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터키의 ‘숨은 비경’ 말라티아·샨르우르파

    터키의 ‘숨은 비경’ 말라티아·샨르우르파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에페수스, 이즈미르…. 터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손꼽는 명소들이다. 어떤 이는 이 몇몇 곳에 지중해의 안탈리아나 흑해의 트라브존 등을 더해 터키의 전부를 가봤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다리만 만져 보고 코끼리의 전부를 안다고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아시아로 불리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곳곳에 시루떡 같은 층층의 역사와 비경을 품고 있다. 남동부에 위치한 말라티아와 샨르우르파도 그 명단에서 빠지면 섭섭하다고 할 곳들이다. 그곳에 가면 억겁의 시간 동안 오롯이 감춰뒀던 터키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6500만 년 전의 비경 레벤트 협곡 아나톨리아 남동쪽에 위치한 말라티아. 여행자들에게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막상 찾아가 보면 금세 흠뻑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도시다. 유프라테스강과 그 지류들이 만들어 놓은 너른 평야를 자랑하는 이곳은 살구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초여름이면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살구나무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말라티아의 비경은 레벤트 협곡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다. 말라티아 시내에서 서쪽으로 60㎞ 정도 달리면 만나는 이 협곡 앞에 서면 누구든 감탄사를 아끼지 못한다. 고원에서 내려다보는 까마득한 절벽은 아찔함과 상쾌함을 동시에 제공한다. 주변에는 고산지대 특유의 키 낮은 꽃들이 천상의 화원을 꾸며 놓았다. 원래 이 일대는 바다였다고 한다. 6500만 년 전에 바닷물이 빠진 뒤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총 28㎞의 협곡을 따라가다 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 카파도키아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심어 놓은 것 같다. 황량한 이 협곡 일대에도 95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지금도 70가구 400명 이상이 살구농사 등을 지으며 살고 있다. 깎아지른 것 같은 절벽 중간의 동굴집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큐축 퀴르네 마을의 슈크르 쿠르트(63). 옛날부터 이 마을을 지배했던 쿠르트 왕국의 60대 후손이라는 그는 조상 대대로 1000년 이상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히타이트, 로마, 비잔티움, 셀주크와 오스만 튀르크 등이 차례로 지배하면서 지나갔던 전쟁의 와중에도 안전한 피난처 역할을 한 셈이다. 쿠르트는 겨울에는 말라티아 시내에 살지만 여름에는 내내 동굴집에서 산다. 자연과 하나가 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얼굴에 배어 있다. 말라티아 주정부는 이 레벤트 협곡을 자연스포츠의 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트레킹 코스와 공중 테라스를 개설한 데 이어 번지점프대 등 각종 레포츠 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망상이 낳은 ‘위대한 유산’ 넴루트 산 터키 동남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넴루트 산이다. 해발 2150m로 말라티아 주와 아드야만 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넴루트 산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고깔 모양의 인공 산. 멀리서 가져온 거대한 돌을 주먹만 하게 쪼개 50m 높이로 쌓아 만든 돌무덤이다. 무덤치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거창하다. 이곳에 묻힌 사람은 역사 속에서 잠깐 빛났다 사라진 콤마게네 왕국의 왕 안티오코스 1세. 콤마게네 왕국은 기원전 190년경부터 유프라테스 상류에 존속한 작은 국가였다. 서기 72년 로마에 흡수되면서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 넴루트 산의 정상에 오르면 고대 신들의 조각상이 산재해 있다. 자신을 신과 동급으로 생각했던 안티오코스 1세는 거대한 돌덩이로 동·서쪽에 테라스를 만들고 자신을 포함해 아폴론, 제우스, 헤라클레스 등 신들의 석상을 세웠다. 이곳에는 신상들 외에도 사자와 독수리 석상, 그리고 안티오코스가 여러 신들과 악수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조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스스로를 신이라고 믿었던 안티오코스 1세의 ‘불멸의 꿈’은 자연의 힘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높이 8~9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조각상들은 당초 의자에 앉은 형상이었지만 지진으로 인해 머리가 몸통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뒹굴고 있다. 신이 되려고 했던 한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허무한 모습으로 남았을 뿐이다. ●아브라함의 땅…지상 最古의 신전을 찾아 넴루트 산에서 아드야만 쪽으로 하산해서 남쪽으로 4시간 정도 달리면 샨르우르파에 이른다.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공통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의 전설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과, 그가 니므롯 왕에 의해 화형당하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전설을 품은 발르클르 연못, 욥의 동굴 등이 있어 사철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샨르우르파에서 시리아 접경 쪽으로 40㎞ 정도 내려가면 폐허의 도시 하란이 있다. 이곳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정착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15년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아내가 될 라헬을 처음 만났다는 야곱의 샘도 이곳에 있다. 샨르우르파 외곽 언덕 위의 괴벡리테페에는 1만 2000년 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발굴현장 앞에 서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혼자 서 있거나 지지대에 기댄 거대한 돌들, 그리고 돌마다 새겨진 조각들. 서 있는 돌 중에 큰 것은 높이가 무려 5.5m나 된다. 수십t에 달하는 이 돌들은 700m 떨어진 곳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돌 이외에는 어떤 도구도 없던 그 시절, 기계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 그 험난한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 석회암 기둥에 양각으로 새겨진 소, 뱀, 여우, 멧돼지 등의 동물은 무척 정교하다. 사람 형상도 있는데 여우 가죽을 통째로 허리띠처럼 둘러 ‘중요 부분’을 가렸다. 1963년에 발굴을 시작한 이곳에는 모두 24개의 신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은 6개에 불과하다. 보면 볼수록 감탄을 아끼기 어렵다. 인간이라지만 겨우 유인원을 벗어나 동굴에 거주했을 그때, 무슨 염원을 품고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안으며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귀 기울여 본다. 글 사진 말라티야·샨르우르파 이호준 선임기자 sagang@seoul.co.kr ●여행수첩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에서 말라티야까지 1일 2회의 직항과 샨르우르파까지 직항 2회·앙카라 경유 2회를 운항하고 있다. ▲레벤트 협곡과 넴루트 산을 오를 때는 여름에도 겉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특히 넴루트 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오를 때는 두꺼운 옷이나 담요가 필수다. ▲샨르우르파는 기온이 최고 50도까지 올라간다. 한여름의 한낮에는 활동을 피하는 게 좋다. ▲말라티야는 살구와 체리 등 과일로 유명한데 말린 살구는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 ▲샨르우르파는 고추의 집산지로 매운 케밥이 유명하다. 대부분의 음식에 구운 고추가 따라 나오는데 무척 매우니 덥석 먹는 건 금물.
  • 유리관에 헌화까지…세기의 ‘돼지 장례식’ 화제

    최근 중국에서 사람 못지않게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세상을 떠난 ‘돼지왕’의 이야기가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난하이망 등 현지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달 27일 저장성 원저우의 한 시골마을에서는 몸무게가 1.1t에 달하는 일명 ‘돼지왕’(猪王)의 장례식이 열렸다. 올해 82세인 ‘돼지왕’의 주인은 2003년 시장에서 이 돼지를 구입한 뒤 10년 가까이를 동고동락했다. 당시 돼지왕의 몸무게는 45㎏에 불과했지만 몸무게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250㎏에 달했을 때 노인의 가족들은 돼지를 도축하자고 부추겼지만, 그는 강하게 반대하며 돼지를 식구로 보살폈다. 2007년이 되자 돼지의 몸무게는 1.1t에 달했다. 도축 업자에게 팔린 적도 있지만 식용으로는 부적합하다고 하자 결국 노인과 가족은 돼지를 다시 사들였고 이후 인근 절에 맡긴 뒤 다시 애정을 쏟았다. 이후 이 마을에서는 돼지에게 영험함이 있다고 믿고, 도축업자들의 접근을 막기 시작했다. 팔려갈 위기를 몇 번 이나 넘긴 돼지가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은 것. 하지만 지난달부터 돼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끼니도 제때 먹지 못하고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수의사가 와서 영양제와 치료제 등을 주사하려 했지만 지방층이 너무 두꺼워 이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돼지가 숨을 거두자 10여 명의 촌민이 자발적으로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몸을 깨끗하게 씻긴 뒤 깨끗한 담요로 사체를 덮었다. 폭 1.2m, 높이 1m, 길이 2.4m에 달하는 커다란 유리관을 제작하고 아래에는 얼음을 깔았다. 고온에서 부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며칠 동안 죽은 돼지 앞에 헌화하며 죽음을 안타까워 한 마을 사람들은 함께 돈을 모아 돼지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실제 ‘돼지왕’의 몸집 크기로 만든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한편 소식을 접한 일부 네티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처사는 이해되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초고령 사회 日, 슈카쓰 유행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초고령 사회 日, 슈카쓰 유행

    일본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이 급증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미리 준비하는 슈카쓰(終活·임종을 준비하는 활동)가 유행이다.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고 죽음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해 본다는 데서 노년층이 적잖이 공감하고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노인들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크게 걱정할 게 없는 사회였다. 장례를 지역사회에서 함께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일본인들에게 죽음은 가족, 형제, 부부의 공동 문제가 됐다. 가족뿐만 아니라 남에게 폐를 끼치는 ‘메이와쿠’(迷惑)를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로 떠올랐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폐가 안 될까를 오랫동안 고민한다. 무덤을 남기면 남겨진 사람들이 그것을 관리하고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어디에 무덤을 남겨야 하는지, 어떤 형태로 자신의 시신을 처리하고 뼈를 관리하는 것이 좋을지를 몇년 동안 숙고한다. 특히 가족이 없는 고령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누가 해 줄지, 이생에 남기는 자신의 짐들은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좋을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최근 들어 슈카쓰를 배우는 강좌도 늘어나고 있다. 슈카쓰 카운슬러협회, 시니어라이프매니지먼트협회 등은 고령자가 직면한 간병·의료·상속 관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가르치는 과정을 개설했다. 슈카쓰와 관련된 지식을 측정하는 ‘검정시험’도 실시 중이다. 서점에서는 ‘엔딩노트’를 판매한다. 이 노트는 병이 급격히 악화돼 의식이 없어졌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에서부터 장례절차와 장례식 참석자 명단, 자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등을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일기를 쓰듯이 작성하면서 자신의 노후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엔딩노트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좌도 곳곳에 개설돼 있다. ‘나 혼자 준비하는 임종’, ‘슈카쓰 핸드북’, ‘인생의 막을 내리는 준비장’ 등 슈카쓰와 관련된 책도 10여종이 출판돼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베이비부머인 단카이(團塊)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슈카쓰 관련 상품들과 업체도 성황이다. 특히 증권회사와 신탁은행이 치열한 고객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에서 상속업무는 신탁은행이 중심이었지만 2004년 규제 완화로 증권사도 취급할 수 있게 되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노무라증권이 퇴직 후 자산 운용, 유언장 작성법과 같이 세세한 조언을 하는 세미나를 열며 고객 잡기에 나섰다. SMBC닛코증권은 영업직원 4000명을 대상으로 상속지식에 관한 사내자격증을 따도록 했다. 슈카쓰가 본업 격인 신탁은행은 유언서 작성 및 보관은 물론 유언대로 자산을 배분하는 유산정리 서비스를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는 매년 상속되는 자산 규모가 50조엔(약 7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들어서는 무덤을 납골당처럼 간소화하거나 ‘데모토 구요힌’(손이 닿는 공양품)이 인기다. 데모토 구요힌은 화장 후 남은 뼈를 곱게 갈아 작은 동상 안에 보관해 가정집 내의 불단 위에 놓거나, 십자가 등 여러 가지 모양의 팬던트(보석을 달아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에 담는 물건들이다. 일본인들은 죽음을 치밀하게 준비하지만 이미 곁을 떠난 사람들도 오랫동안 기리는 문화가 일반화돼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3가구 중 1가구 독거노인… 공동묘 인기 상한가

    일본에서 최근 ‘고독사’(孤獨死)·‘고립사’(孤立死)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혈연·지연 등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모두 끊겨 외롭게 방치된 채 죽어가는 사람이 연간 3만 2000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일본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와 전통적 가족제도의 해체가 불러온 ‘사회적 재앙’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본 전체 4980만 가구 중 1588만 가구가 독거노인들이다. 전체가구 중 약 32%가 혼자 사는 셈이다. 혼자 살다 보면 주위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죽는 고독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최근 일본에서는 독신자들을 위한 합장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합장묘는 친지나 친족 간의 교류가 거의 없는 독거노인에게 죽음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위안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묘지를 구입하는 경우 수백만엔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합장묘를 이용할 경우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최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쿄에 있는 한 묘지공원의 독신녀를 위한 공동묘가 인기다. 300명을 안장할 수 있는 납골 공간이 있지만 이미 예약이 완료된 상태다. 이 합장묘를 운영하는 곳은 혼자 생활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인 ‘SSS 네트워크’다. SSS란 싱글, 스마일, 시니어 라이프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작가 마쓰하라 아쓰코(65)가 1998년 설립했다. 현재 회원은 50, 60대를 중심으로 900명 정도다. 회원들은 이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노후생활을 주제로 한 세미나 등에 참가한다. 또 노인들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회원 가입비, 영구 관리비, 영구 공양비 등을 모두 포함해 25만엔(약 364만원)을 받고 합장묘를 제공하고 있다. SSS 네트워크의 마쓰하라 대표는 “고인을 기리면서도 회원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면서 “1년에 한 차례 회원들이 모여 와인을 마시며 먼저 안장된 회원들의 추도식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총무성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여성 5명 중 1명(20.3%)이 혼자 생활하는 독거노인으로 남성(1.1%)보다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야마다 마사히로 주오대(가족사회학) 교수는 “이전의 독신 여성은 가족 무덤에 합장되거나 조카들이 자연스럽게 제사를 모셨다.”며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혈연의 의미가 옅어지면서 무덤도 자신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해 합장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이 여인들의 눈물, 외면할 수 있습니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다룬 ‘학살, 그 이후’(권헌익 지음, 유강은 옮김, 휴머니스트 아카이브 펴냄)는 제사상에 올리는 한 잔의 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저자는 한국인 인류학자다. 인류학자로서 1994년부터 틈나는 대로 베트남을 드나들며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전 특수로 인해 “내가 살던 가난한 동네에서도 물질적 상황조건이 개선”됐다는, 나중에 깨달은 “도덕적 궁지” 때문이다. 한국인 인류학자로서 저자는 이 책을 “공물(供物)로 내놓는다.”고 해뒀다. 학문적 땀방울 못지않게 인간적 눈물방울이 읽히는 이유다. 저자가 처음 꺼내 놓은 얘기는 1968년 2월 25일 한국군 해병대가 민간인 135명을 학살한 뒤 살아남은 몇몇 주민들이 시체들을 가매장해 둔 것까지 불도저로 모조리 밀어버렸다는 ‘하미 학살’이다.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16일, 미군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이는 ‘미라이 학살’로 널리 알려졌다. 한국군의 행위가 그에 못지않게 잔혹했고, 노엄 촘스키가 “43건의 미라이 학살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쓸 정도로 빈번했음에도 왜 미라이 학살만 알려졌을까. “하위 행위자는 폭력적인 마을 평정 작전에서 지배적 행위자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쉽게 말해 이름을 떨친 종군기자나 연구자들은 미군만 쫓아다녔지, 한국군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국가 정체성 운운하며 흥분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가 만난 학살 생존자들은 시계추처럼 오간 군인들의 극단적 이중성에 곤혹스러워했다. 어제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집 짓는 걸 도와주던 이들이 오늘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다는 것이다. 이 극단적 이중성이 어찌 그들 탓이랴. “전쟁이라는 냉혹한 태엽장치에서 시계추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고 “시계추에는 자체의 동학이 있지만 자신의 운동을 통제할 수 없”었을 뿐이다. 저자는 “전후의 삶을 통해 이런 잔인한 동요의 기억과 싸웠다고 믿는다.”는 수준에서 매듭짓는다. 저자가 힘을 모으는 지점은 학살된 이들을 베트남 사람들이 추모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저자가 에밀 뒤르켐의 수제자 로베르 에르츠의 ‘상징적 양손잡이’ 개념을 주된 화두로 붙잡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아노미 개념에서 보듯 뒤르켐은 사회적 유대감에 관심을 가졌다. 에르츠는 그다음 단계, 그러니까 사회적 유대가 격렬하게 깨졌을 경우 어떤 양상이 벌어지고 이를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를 연구했다. 이를 위해 제안한 것이 양손잡이 개념이다. 오른손에게 바른 손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왼손도 함께 바라봐 온전한 양손잡이가 되자는 것이다. 영웅적 군인이 오른손이라면, 학살 피해자는 왼손이다. 저자는 실제 현지조사를 통해 학살 피해자들이 베트남 내부에서도 왼손 취급당했음을 드러낸다. 전쟁 이후 베트남도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수행했다. 전선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젊은이들에게 국가는 전쟁영웅이란 칭호를 부여했고 기념비와 묘지를 바쳤다. 그러나 균열도 드러난다. 북베트남 전사들은 전쟁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 투입됐다. 해서 시체를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 웅대한 기념비 옆에 묻으면 된다. 접경지대격인 베트남 중부의 학살 피해자는 다르다. “영웅적 전사자라는 도식 안에서 보면, (학살 피해자들의) 집단 무덤은 재생의 가치가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편의 유해와 상대편의 유해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모호한 대상”이다. 그래서 “혁명 열사들의 유해를 모아 마을의 중심부로 가져왔을 때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유골은 논으로 바꿀 예정인 곳에서 외곽의 모래투성이 황무지로 옮겨졌다.” 비극적 죽음에 눈물 흘릴 공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해원을 위해 사당을 짓고 무당을 불렀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교조화되면서 의지할 곳을 잃은 부녀자들이 절과 무당집에 몰려갔듯, 베트남 주민들도 민간전통신앙에 의지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었다. 문제는 국가적 공식 기억에 맞지 않고 과학적 사회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베트남 정부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이는 딜레마를 낳는다. 전쟁 당시 베트남 인민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외국 군인들이 조상을 모신 사당을 부수고 사람을 함부로 죽였을 뿐 아니라, 장사조차 못 지내게 시체를 마구 훼손하고 뒤섞어 버린 만행이었다. “전쟁 동원 체제에 가장 뚜렷한 기여를 한 조상 사당들이 전쟁이 끝난 뒤에 정치적 불순성과 문화적 후진성의 상징으로 꼽힌 것은 아이러니다.” 이 갈등은 1990년대부터 수면 위로 치솟는다. 여러 가지 형태의 이장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조성한 공식 무덤에서 개인 사당으로 유골을 빼내오거나, 버려졌던 유골을 국가의 공식 무덤에 안치하는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베트남전은 이데올로기나 박정희 평가 문제,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의원의 반발(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자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도 북한에 사과해야 하느냐.”고 공격했다.) 등이 있어서 한국에서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빙빙 에둘러 왔지만, 사실 책의 백미는 이 부분이다. 하나만 꼽자면, 하미 전쟁열사묘지에는 ‘전쟁범죄 희생자 35인의 공동무덤’이 있다. 1986년 9월 하미에서는 하미 근처 하지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35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주민들은 이들 역시 열사라 보고 공식묘지에 묻어 달라고 요구하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열사란 직접 적과 맞서 싸운 이들”이라서다. 주민들 압력으로 결국 무덤은 조성되지만, 정부는 이들 묘를 파내려고 한다. 그때 주민들은 “낫이나 작대기를 무기 삼아 들었다.” “오늘부터 너희가 우리 적”이라면서. 저자는 무차별적인 학살 때문에 그 수많은 뼈와 해골 가운데 어느 것이 누구의 유골인지 모를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한 구 한 구 파내 정성스럽게 쓰다듬고 정리하고 가지런히 다시 묻는 이장의 과정 자체가 후손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커다란 치유가 된다는 증언들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저자가 끊임없이 길어올리는 것은 ‘농민인지 전사인지 구분 안 되는 악독한 빨갱이 베트콩’ 대신 ‘조상 모시면서 제 땅을 제가 파먹고 살길 원하는, 농경사회라면 흔히 발견되는, 한국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농민의 얼굴’이다. “농민 전사들이 군복을 입은 정규군 병사들과 악수를 하고, 정치 장교들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연설을 참고 들으며, 달 없는 밤을 틈타 재빨리 집으로 달려왔을 때, 그들이 여전히 군인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니까 “체제가 공간의 균질성과 정체성의 불변을 고집한 반면, 삶으로 직접 겪는 냉전의 현실은 모순적 공간이나 변증법적 공간이었고, 이러한 현실 속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 동일자가 아니라 쉽게 변화하는 존재였으며, 이런 변형성이야말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했다.” 모두가 베트콩이었으되, 그 어느 누구도 베트콩이 아닌 이런 상황을 저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07년 미국 인류학회가 수여하는 클리퍼드 기어츠상을, 후속작 ‘베트남전쟁의 혼령들’로 2009년 미국 아시아연구협회가 주는 조지 카힌상을 받았다. 해서 책 앞에는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의 서문이 붙어 있다. 한 구절 따온다면 이렇다.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들은 정치적 목적과 이데올로기를 위해 죽은 이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가족들에게서 그들을 앗아가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자(死者)들을 역사의 행위자가 아니라 도구로 뒤바꾼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지금까지도 격렬한 이념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연구가 수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자는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손잡고 ‘한국전쟁을 넘어서’라는 국제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다려지는 부분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60년 전 미스터리 사고 발생한 ‘얼음 무덤’ 찾았다

    미국 국방부 JPAC(The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사령부)이 60년 전 추락한 비행기 잔해와 당시 탑승객의 뼈 조각 일부를 발견했다고 USA투데이 등 현지 언론이 28일 보도했다. 사고 흔적이 발견된 곳은 알래스카 남부 앵커리지 인근의 크닉빙하(Knik Glacier)로, 일명 ‘얼음 무덤’(Ice Tomb)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사고는 1952년 11월 22일, 워싱턴 맥코드공군기지에서 알래스카 앨맨도프 공군기지로 이동 중이던 대형군용수송기 더글라스 C-124A 글로브마스터II(Douglas C-124A Globemaster II)가 8000피트 상공에서 추락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수송기에 탑승해 있던 군인 41명과 승무원 11명이 모두 목숨을 잃었지만, 정확한 사고 원인과 시신 등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10일 JPAC 조사팀이 알래스카의 빙하 인근에서 사고 잔해 및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조각 일부를 발견하면서 조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제이미 뎁슨 JPAC 대변인은 “60년 전 추락한 대형군용수송기의 잔해를 확인했다.”면서 “이제야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대형군용수송기 더글라스 C-124A 글로브마스터II는 미국 더글라스 항공사가 제작한 것으로, 특히 한국전쟁 시기에 주로 사용됐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초의 핸드백 독일서 발견…석기시대 패션리더가 주인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핸드백이 독일에서 발견됐으며 그 소유주는 석기시대 패션 리더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27일(현지시각)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스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발굴지는 독일 동부 도시 라이프치히 인근에 있는 기원전 2500~2200년 묘지다. 이곳에서 100개 이상의 개 이빨이 촘촘하게 박힌 상태로 발견됐다. 조사팀을 이끈 작센안할트 주(州) 고고학청 수잔네 프리드리히 박사에 따르면 개 이빨은 핸드백 외부 덮개(플랩)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프리드리히 박사는 “세월이 지나면서 가죽 또는 섬유 부분이 삭아 이빨만 남아 있었다.”면서 “이빨의 방향은 모두 같으며, 오늘날의 핸드백 덮개 부분과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이 개 이빨 핸드백은 약 100헥타르에 달하는 프로펜 유적 발굴 작업 중 발견됐다. 이 유적지는 오는 2015년에 노천 탄광이 준공될 예정이다. 이곳은 300기 이상의 무덤, 수백 점의 석기, 창(끝), 도자기, 뼈 단추, 호박 목걸이 등이 다수 출토돼 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의 지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 기원전 50년, 약 500g의 황금 장신구가 묻힌 여성 무덤 등 청동기 시대 이후의 유물도 대량 발굴되고 있다. 프리드리히 박사는 “출토품 속에서도 이 핸드백은 특별한 것”이라면서 “당시 가방을 사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 이빨로 장식한 핸드백은 드물지만 석기시대 북유럽에서 중앙 유럽에 걸쳐 매장된 유물에는 이 같은 재료(개 이빨)가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일대에서는 많은 이빨이 무덤에서 발견됐으며 개는 애완동물이자 가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시대의 다른 지역 무덤에서는 개 이빨 이외에 늑대 이빨과 조개도 촘촘히 정렬된 상태로 발견되고 있다. 시신을 이빨로 장식한 천으로 감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옷감과 함께 분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프리드리히 박사는 말한다. 하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발굴되는 유물은 머리 장식과 목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작센 고고학청의 선임 고고학자 헤럴드 스타우블 박사는 “당시 이 무덤의 주인은 상당히 멋쟁이었던 것 같다. 누구나 이런 부장품과 함께 매장된 것은 아니다. 일부 매우 특별한 무덤만이었다.”고 설명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스핑크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스핑크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7일 오후 11시 10분 EBS ‘다큐10+’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방영한다. 거대한 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의 신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웅크린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 모양을 한 이 조각상을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는 늘 궁금증의 대상이다. 과학자들은 마음이 급하다. 세계적 관광지로 떠올라서다. 앞에는 화려한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선 데다 차량과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주변의 건설열기도 뜨겁다.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개발이 이뤄지기 전에 뭔가 밝혀 내야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간 곳은 기자 지구. 기자 남쪽으로 480㎞ 떨어진 아비도스는 죽은 자들의 도시다. 딱 눈에 띄는 피라미드는 없는 곳이지만 이집트를 세운 역대 파라오들이 사막의 모래 밑 무덤에 매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집트 첫 왕조의 제1대 왕으로 알려진 파라오 아하(Aha). 이 무덤에서는 모두 35명의 건강한 성인의 뼈가 출토됐다. 그런데 검증 결과 이들은 모두 20살 이하의 어린 나이인 데다 모두 집단매장 형태로 묻혀 있었다. 여러 마리의 사자 뼈도 함께 출토됐다. 학자들은 이를 순장으로 여긴다. 사자가 함께 묻힌 것은 파라오의 권력을 상징한다. 스핑크스를 자세히 관찰하면 흥미로운 점들이 보인다. 스핑크스의 앞발은 피라미드처럼 수천개의 돌덩이로 구성됐다. 반면 상체와 머리는 하나의 거대한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이 거대하고 수많은 돌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연구 결과 스핑크스는 기자 고원에 있는 자연석을 깎아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다음은 어떻게 만들었을까다. 기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석공으로 일한 일꾼으로 하여금 실제 미니 스핑크스를 만들어 보도록 했다. 고대 연장을 고스란히 재현한 뒤 이 연장으로 직접 만들어 본 것이다. 몇주간의 고된 노동 끝에 미니 스핑크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그만 스핑크스 제작에도 그토록 많은 품이 드는데 거대한 스핑크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이 동원됐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자의 몸통에 인간의 머리를 지닌 스핑크스는 두 개의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다. 여기엔 두 명의 파라오가 묻혀 있다. 아버지인 쿠푸 왕, 그리고 아들인 카프레 왕이다. 학자들은 스핑크스의 얼굴이 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얼굴에서 따왔을 것으로 본다. 누구의 얼굴이냐를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린다. 얼굴만 가지고 따지는 게 그렇다면, 다른 증거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의문을 추적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시리아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1만년 전 건축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 소속의 고고학자인 로버트 메이슨 박사는 지난 2009년 시리아를 방문했다가 기이한 형태의 돌 건축물을 발견했다. 이 돌 건축물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5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근에는 19세기까지 사람들이 왕래하고 벽화 등이 보존돼 있는 마르무사 수도원이 있다. 주거의 흔적은 전혀 없지만 인근에서 거대한 선돌을 둥글게 줄지어 만든 환상열석(Stone circle)과 석기 등이 함께 발견됐으며, 연구팀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다는 특징 때문에 ‘죽음의 풍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메이슨 박사는 정확한 건축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주변 돌의 형태와 유일한 건축물인 수도원의 형태를 보아 신석기 시대 또는 초기 청동기 시대인 6000~1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4500년 전 보다 수 천년 더 이른 시기다. 또 인근에 있는 수도원의 지하에는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무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슨 박사는 “돌들은 매우 심플하게 배열돼 있으며, 처음 발견 당시 어떤 생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이 미지의 돌 건축물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여전히 내전이 활발해 조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곳은 ‘시리아의 스톤헨지’나 다름없다.”면서 “1만년 전 만들어진 돌 건축물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미스터리 돌 건축물 인근의 마르무사 수도원 전경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조선시대 청진동엔 왜 화장실 없었을까

    조선시대 때 300여 가구가 모여 살았던 현재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일이 숱하다. 화장실이 없었다는 점과 집집마다 우물을 파지 않았으며, 도성 한복판인 주택가에서 총통(銃筒)이 발견되고, 집 아래 땅속에 뚜껑을 덮은 항아리들을 묻은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청진동 사람들이 중국산 도자기를 좋아한 것과 무덤에 넣는 명기(明器)가 주거지에서 나온 점, 주택가에 묻혔던 인골 2점, 왕실과 관청에서만 쓰던 물품들이 발견된 사연, 곳곳에 동물의 뼈가 수두룩했던 점도 마찬가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6일부터 다음 달 29일까지 ‘아스팔트 아래 운종가-청진 발굴의 아홉 수수께끼’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전시회에는 400년 전 누룩과 그릇 등 재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이 선보인다. 운종가(雲從街)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든 곳이라는 뜻이다. 이번 발굴에서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수도를 건설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따라서 현재의 청진동 일대는 600여년 전인 당시와 도로, 골목길, 필지의 분할과 배치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정도로 조선조 초기 도시원형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피맛길은 너비 6m로 수레도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여서 오늘날의 피맛길보다 훨씬 넓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전시회는 9개의 수수께끼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가는 방식이다. 박물관 박상빈 전시과장은 “아스팔트 아래 묻혀 있었던 조선시대 서울 모습을 보면서 개발과 보존의 문제를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KBS1, 6·25 특집 풍성

    KBS 1TV가 6·25전쟁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오는 28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6·25 기획특집 ‘역사스페셜’에서는 ‘또 하나의 전쟁-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을 내보낸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장례를 치러주고 징계를 받았던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진중수기를 통해 후방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상을 조명한다. ‘KBS스페셜’은 24일 오후 8시 6·25기획 ‘허시 형제 이야기-캐나다판 태극기 휘날리며’를 방송한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투 중 사망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형 조지프 허시의 무덤에 묻히고 싶어서 유골로 한국을 찾은 아치 허시의 이야기 등 이역만리에서 피어났던 형제애를 소개한다. KBS 1TV는 25일 오전 10시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되는 제62주년 6·25전쟁 기념식을 중계한다.
  •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진주, 아랍서 발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진주, 아랍서 발견

    역사상 최초의 진주조개잡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랍의 신석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천연 진주를 발굴했다고 프랑스 연구진이 밝혔다. 18일(현지시각) 미국 디스커버리 뉴스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의 움무 알 쿠와인에서 발견된 이 진주는 기워전 5547~5235년 사이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석 업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진주가 5000년 전 일본에서 나온 조몬 진주로 여기고 있지만 이번에 아라비아 남동부 해변에서 발견된 진주가 더 오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프랑스 외교부 고고학 연구진이 ‘아라비아 고고학 및 금석학’(Arabian Archaeology and Epigraphy) 저널을 통해 밝혔다. 새로 발견된 이 진주는 약 7500년 전 생성됐으며 지름 0.07인치짜리로 측정됐다. 연구진은 지난 수년간 이 지역에서 발굴한 높은 품질의 진주를 제공하는 거대 진주조개 ‘핑크타다 마가리티페라’와 ‘핑크타다 라디아타’로부터 신석기시대 진주 101개를 출토했다. 연구진은 “고고학적인 진주의 발견은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고대 어촌의 전통을 보여준다.”면서 “진주를 캐기 위한 작업이 어렵고 위험했지만 진주층은 신석기 지역사회 경제의 중요한 자원이었다.”고 말했다. ‘핑크타다 마가리티페라’의 커다란 껍질은 참치와 상어 등의 대형어류를 잡기 위한 낚시 바늘을 만들 때 사용됐으며 동그란 진주는 장식과 장례 의식 등에 사용됐다. 실제로 이 지역의 구멍이 뚫리지 않은 진주는 무덤에서 발견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지방 공동묘지 조사 결과 진주가 종종 죽은자의 얼굴 위에 놓여 있었다. 기원전 5000년 천연 진주 중 절반이 뚫린 것은 남성과 전부가 뚫린 것은 여성과 연관됐다고 한다. 끝으로 연구진은 “이 지역에서 진주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진주는 역사의 중심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 사진=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바다 장례/주병철 논설위원

    사람의 죽음에 대한 관념은 종교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각 나라의 장례문화가 각양각색인 건 당연한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장례의식을 즐거운 행사로 치르는 곳도, 슬프게 진행하는 곳도 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찌르거나 뭉둥이로 머리를 내리치며 애도하는 예도 있다. 장례를 의식으로 치른 최초의 흔적은 시신 위에 꽃이 놓여 있었던 게 발견된 신석기시대로 전해진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사시대인 기원전 3100년 무렵 영국 월터셔의 솔즈베리 인근에 세워진 선돌 구조물인 스톤헤지가 거대의 축제장소이자 장례의식이 행해진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대국가가 출현하면서 피라미드, 진시황릉, 고인돌, 장군총 등 통치자의 무덤이 생겨났다. 장례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교다. 불교의 전통 장례방식은 화장으로 ‘다비’라고 한다. 장작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종이로 만든 연꽃 등으로 가린 후 불을 놓아 화장한다. 기독교는 각 교파별 의식에 따른 장례를 성직자가 집전한 뒤 시신을 매장하고 묘비를 세우는 예가 많다. 화장이 기독교의 부활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서 최근에는 화장도 장례의 한 방법으로 존중받는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기원전 8세기 이후 부활 교리의 영향으로 동굴에 시신을 모신 뒤 시체가 썩으면 유골을 관에 담았다. 실제로 마태복음에는 로마제국의 공권력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시신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의 동굴 무덤에 모셨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정착된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매장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 묘지가 부족한 데다 관리가 쉽고 위생적이라는 인식이 퍼져 지금은 화장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화장률은 67.5%로 2000년(33.7%)의 두 배를 넘어섰다. 토지가 모자라는 일본은 화장이 일상적인데, 49재 문화가 존재하는 게 우리와 비슷하다. 중국은 당나라 시기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확산되었으나 이후 매장 문화가 일반적이다. 미국은 주로 매장을, 영국 등 유럽은 화장을 많이 한다. 정부가 앞으로 화장을 해서 납골당이나 납골묘에 보관해야 하는 유골을 바다에 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환경 오염 등의 우려가 있었지만, 육지에서 5㎞ 이상 떨어지고, 양식장 등이 없는 곳에서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모처럼 수요자 중심의 정책결정을 내린 것 같아 박수를 보낸다. 화장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US오픈골프대회] 불운 끝났다, 심슨은 서광 맞으라

    [US오픈골프대회] 불운 끝났다, 심슨은 서광 맞으라

    2009년 PGA 투어에 데뷔한 웹 심슨(미국)의 나이는 이제 겨우 27세다. 불과 3년이라는 짧은 PGA 투어 경력을 지녔지만 불운과 행운을 두루 경험한 젊은 골퍼다. 2008년 퀄리파잉스쿨 공동 7위로 PGA 투어에 입문, 데뷔해인 2009년 밥호프클래식과 2011년 취리히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바람에 공이 움직이면서 벌타를 받는 바람에 땅을 치고 통곡했던 선수다. 그러나 불운은 그게 끝이었다. 지난해 투어 2승을 거둔 데 이어 이번에 승수를 한 개 더 쌓았다. 그것도 ‘골퍼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올림픽골프장 레이크코스(파70·7170야드)에서다. 112회째의 US오픈. 자신의 투어 3승째를 시즌 두 번째 메이저 우승컵으로 장식했다. ●스타들도 고전한 악마의 코스서 선전 심슨이 112번째 US오픈골프대회에서 80번째(다승자 포함) 미국인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18일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를 묶어 2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합계 1오버파 281타. 우승 스코어치고는 야박했다. 그 만큼 코스가 잔인했다는 방증이다. 당초 우승 후보군에도 끼지 못했지만 이 저주받은 코스에서 짐 퓨릭(미국), 그레이엄 맥도월(북아일랜드) 등 선두권 선수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역전승을 일궈 냈다. 맥도월은 합계 2오버파 282타를 쳐 공동 2위, 퓨릭은 3오버파 283타로 공동 4위에 그쳤다. 특히 9년 만에 US오픈 우승을 노렸던 퓨릭은 16번홀(파5)에서 뼈아픈 보기를 저지른 뒤 눈물을 뿌리며 선두 자리를 심슨에게 내줬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8위로 4라운드를 출발한 심슨은 5번홀까지 2타를 잃었지만 6번홀~8번홀까지 3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 선두권으로 뛰어올랐다. 10번홀(파4)에서도 1타를 줄인 심슨은 퓨릭이 13번홀(파3)에서 보기를 적어낸 덕에 공동선두에 오른 뒤 마지막까지 타수를 지켜냈다. 맥도월은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먼저 경기를 끝낸 심슨을 1타차로 추격했지만 18번홀 7.5m짜리 버디 퍼트가 홀을 외면해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지 못했다. ●최경주 공동 15위·우즈는 21위 경기를 먼저 끝낸 뒤 라커룸에서 TV중계를 지켜보다가 우승을 확인한 심슨은 “마지막 3개홀을 남겨 놓았을 때 기도를 했다.”면서 “하루 종일 평정심을 잃지 않은 것이 우승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심슨의 우승으로 지난 2년 동안 내리 정상에 올랐던 로리 매킬로이(2011년) 맥도월 등 북아일랜드의 돌풍은 사그라들었다. 한국 골프의 맏형 최경주(42·SK텔레콤)는 1타를 줄여 공동 15위(6오버파 286타)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15번째 메이저대회 정상을 넘봤던 타이거 우즈(미국)는 3타를 잃고 공동 21위(7오버파 287타)로 대회를 마쳤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분양가보다 싼 분양권 살까 vs 가격 낮춘 새 단지 노릴까

    분양가보다 싼 분양권 살까 vs 가격 낮춘 새 단지 노릴까

    정부가 ‘5·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수도권 공공택지 내 민영 아파트에 대해 분양권 전매를 1년으로 단축하면서 수도권에 분양권 전매 물량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수도권 택지지구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분양권 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부 아파트는 분양권 가격이 당초 분양가 아래로 떨어진 경우도 없지 않다. 이에 따라 인근 지역에서 신규분양을 하는 아파트도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신규분양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분양권 매입을 해야 할지 망설이게 하는 대목이다. ●동탄2신도시 분양가 높으면 역풍 불듯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휴가철과 오는 8월 영국 런던 올림픽 등을 앞두고 주택업체들이 수도권 등 주요 택지지구 등지에서 아파트를 앞당겨 분양하고 있다. 이달과 다음 달에만 분양 물량이 5만 가구를 넘어서고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이달과 다음 달이 신규분양을 골라 받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인 셈이다. 문제는 신규 분양 인근 단지에서 당초 분양가보다 가격이 떨어진 분양권 매물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달 초 경기 화성 동탄 2신도에서 GS건설과 롯데건설 등 6개 업체가 동시분양을 통해 5519가구를 분양한다. 분양가는 3.3㎡당 1050만~1110만원대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인근 광교신도시에서 일부 큰 주택형은 분양가보다 2000만~3000만원 낮은 가격의 분양권이 일부 나돌고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동탄2신도시에서 분양을 받아야 하는지, 광교신도시 분양권을 사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광교신도시는 동탄2신도시보다 입지여건이 뛰어나지만 분양가가 다소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동탄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분양권이 나오는 데다가 최근 동탄2신도시에 분양 예정인 일부 건설사가 중대형을 중심으로 분양가를 올릴 조짐을 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광교신도시의 경우 2008~2009년 분양 당시에는 3.3㎡당 1200만~1500만원대에 분양됐다. 지난해에는 한 아파트가 3.3㎡당 1280만원대에 분양되기도 했다. 자칫 동탄2신도시 일부 아파트는 분양가가 광교 분양가와 비슷해질 수도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광교 신도시 분양권이 나오는 만큼 동탄2신도시 분양의 성패는 분양가가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송도·청라 신규 분양 가격 내려가 청약해볼 만 아파트 분양의 무덤이라는 인천 송도와 청라지구 등도 인근에서 분양권 매물이 쏟아지면서 신규 분양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라지구의 경우 2010년을 전후해 분양한 아파트들이 속속 입주를 하면서 분양권 가격이 크게 내려간 상태다. 중대형의 경우 가구당 5000만원까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은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신규 분양을 하는 주택업체들은 분양가를 대거 낮췄다. 최근 송도에서 분양한 센트럴파크 푸르지오는 3.3㎡당 평균 1250만원으로, 이미 분양이 끝난 더샵 포스코 센트럴 2차(3.3㎡당 1350만원대)보다 가구당 100만원가량 낮게 책정했다. 낮은 분양가의 영향 때문인지 송도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평균 청약경쟁률은 2.96대1을 기록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인천지역에서는 빠른 입주를 원한다면 분양권을, 보다 낮은 분양가를 원한다면 신규 분양아파트를 공략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특파원 칼럼] “나는 게이입니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나는 게이입니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나는 동성애자(게이)입니다.” 그의 입에서 이 말이 알몸으로 튀어나왔을 때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지난 1월 6일 낮 로스앤젤레스(LA)에서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리처드 그러넬(45) 전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 대변인은 세상의 모든 엄마가 좋아할 것만 같은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인터뷰의 초점은 그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8년 동안 유엔에서 경험한 한반도 안보 문제에 맞춰졌다. 그러넬의 사무실에서 단둘이 마주보고 진행된 인터뷰가 중반쯤 이르렀을 때였다. 나는 그가 ‘모셨던’ 존 볼턴 당시 주유엔 미국대사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정말로 극우 보수 성향인가를 물었다. 그러넬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뒤 볼턴이 유연한 사고의 인물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게 ‘커밍아웃’했다. 그는 “나는 동성애자다. 그런데 볼턴은 그런 나는 물론 내 파트너(애인)에게도 아주 다정하게 대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나는 동성애자”라고 말한, 내가 난생 처음 맞닥뜨린 그 순간 내 입에서는 그만 “정말요?”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인터뷰 시간 내내 나는 인터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실례일 것 같아서 내 표정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헤어진 뒤 오랜 시간을 자책했다. 나름대로 떳떳하게 성 정체성을 밝힌 사람에게 “정말요?”라니…. 나는 왜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넘기지 못했을까…. 그러넬에게 못내 미안했다. 그후 그러넬 소식을 다시 들은 건 지난달 1일 뉴스를 통해서였다. 당시 공화당 대선 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국가안보 대변인으로 임명된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화당 내에서 사퇴 압력이 일었고, 결국 옷을 벗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동성애자가 어떤 위상인지를 누가 묻는다면 바로 그러넬의 사례를 들려주고 싶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동성애가 ‘자유로운’ 편이다. 공개적으로 성 정체성을 밝힌 그러넬처럼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도 동성애자임을 공개했고, CNN방송의 미남 앵커 돈 레먼도 최근 커밍아웃을 했다. 얼마 전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연방정부 여직원은 “우리 부서에 미남 상사가 있는데 동성애자”라면서 “왜 내 주변의 잘생긴 남자들은 죄다 동성애자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반면 그러넬처럼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요직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곳이 미국이다. 어느 인기 TV 앵커맨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전국민 여론조사에서도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반 여론이 엇비슷하다. 이런 배경을 숙지하고 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지지 입장을 밝힌 것은 대충 지나칠 일이 아니다.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오바마가 이토록 민감한 이슈에 대해 한쪽 편을 든 것을 놓고 미 언론은 일제히 “정치적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머리 좋은 오바마가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지도 않고 이런 ‘사고’를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용기와 소신이 얼마라도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히 내지르기 힘든 결단임은 틀림없다. 오바마의 행보는 예전 한국의 한 전직 대통령이 설파했던 ‘반보 앞 정치철학’을 연상시킨다. 너무 빨리 가면 국민이 못 쫓아 오고 너무 늦게 가면 국민이 외면하기 때문에 딱 반보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동성 결혼 찬성 여론이 과반에 다다른 시점에, 즉 반보 앞에서 주사위를 던졌다. 지금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일어난 잠룡들은 반보 앞에 있는가, 반보 뒤에 있는가. 분명한 건 한국이든 미국이든 반보 뒤에서 머리만 굴리다가 ‘하늘이 내린다’는 대권을 거머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넬이 하루속히 불운을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국왕의 선물/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왕의 선물/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2003년도에 일본 교토대학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그 대학 문학부에서 효종이 송시열에게 하사한 ‘주자어류’를 보는 순간, 그 내사본(內賜本)은 국왕이 신하와의 공치(共治)를 약속한 징표라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조선의 국왕이 사대부나 외국 사신들에게 유형무형의 선물을 증여하면서, 사대부와의 공치를 이루어내고 대외적으로 국가권력의 상징성을 견지해 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 근대 이전에는 국왕이 국가권력의 상징이자 권력의 실현 통로였다. 현실 공간에서는 왕권이 신권(臣權)보다 미약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하의 권력은 국왕을 통해 구현되었으므로 국왕의 존재가 없었다면 사대부 정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조선 500년 동안 국왕과 신하의 관계는 실로 어수(魚水)의 관계여야만 했다. 국왕과 사대부는 조선의 정치구조에서 민중의 삶을 책임지고, 외환에 대처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스스로의 존립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그들은 서로 견제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완하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고심했다. 국왕의 선물은 관직이나 마찬가지로 공기(公器)라고 일컬었다. 그것을 어떤 장(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국왕의 권력 행사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국왕 이외에 대비, 왕비, 세자도 신민들에게 갖가지 선물을 내렸지만 국왕의 선물이야말로 군신 간의 의리를 강화시켜 주는 보조 장치로서 큰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국왕이 신민들이나 외교 사절에게 내린 선물은 실로 다양했다. 동옷과 초구 같은 의복에서부터 활, 화살, 말, 서적과 문방사보, 약재와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많았고 그 이유도 갖가지였다. 어떤 물건은 아예 한 해의 증여량을 계산하여 상의원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다. 또한 상규를 벗어난 사면과 같은 것도 선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왕이 선물을 내리는 것을 한자로 내사나 하사 혹은 은급이라 했다. 이때에는 대개 선물의 발급주체와 발급관청이 명시된 은사문도 함께 내렸다. 국왕이 선물을 내리면 신하나 백성은 국왕에 대한 충성의 뜻을 표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은의 의식과 함께 사전(謝箋)을 받들어 올렸다. 태조는 동북면에 산재한 조상들의 무덤들을 보살피고 동시에 그 지역의 행정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렸다. 세종은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강역을 확정하기 위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주었다. 문종은 부왕의 뜻을 이어 함길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상중에 있던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주었다. 또한 태종은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을 내려 흥을 돋우어, 이후 국왕이 문한(文翰)의 관서에서 행하는 공연(公?)에 찬조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최익현에게 돈 3만냥을 선물하고, 양무위원 이기에 대한 징계를 사면하는 한편,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하여 상왕이 되었을 때는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는 등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조선의 국왕은 외교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로 노력하였다. 세종은 명나라에 대해 국격에 맞는 사절을 보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황화집’을 간행하여 명나라 사신에게 증정했다. 성종은 유구 사신을 칭하는 하카다 출신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려서 일본, 대마도, 유구와의 외교적 관계를 신중하게 이어나갔다. 그러나 국왕의 권력이 미약하거나 국왕이 혼암하여 선물을 잘못 내린 일도 있었다. 단종은 계해정난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신들에게 선물을 증여했고, 광해군은 부질없이 종계변무의 일을 재차 거론한 허균에게 녹비를 내렸다. 국권을 빼앗긴 순종은 의병들을 토적으로 규정하고 일본 거주민들을 위문하는 한편,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였다. 근대 이전의 왕정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국왕들은 대개 선물도 공기(公器)로서 중시하고 인문주의의 토대 위에서 품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사실은 오늘날 행정책임자들에게 하나의 ‘거울’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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