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덤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매물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KCC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519
  • [현장 행정] ‘석관동 1일동장 체험’ 김영배 성북구청장

    [현장 행정] ‘석관동 1일동장 체험’ 김영배 성북구청장

    “안녕하세요. 석관동 동장 김영배입니다. 동장으로서 바라보고 만나는 주민들과 성북은 또 다른 친근함을 갖게 됩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7일 가슴에 ‘1일동장’ 명찰을 달고 하루 종일 석관동을 누볐다. 구청장이 아닌 동장으로서 그는 오전 6시 30분 석관고등학교 운동장과 성북종합레포츠타운, 의릉(조선시대 경종 임금을 모신 무덤)에서 아침운동을 하는 주민들을 만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에는 아예 신발을 운동화로 갈아 신고 교회, 구립어르신사랑방, 황금시장, 돌곶이공원 등 석관동 곳곳을 다니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날 하루 그가 걸어다닌 거리만 해도 10㎞ 가까이 된다. 김 구청장이 소개한 석관동은 성북구에서 면적이 가장 넓고 인구는 종암동(4만 3000여명) 다음으로 많은 3만 8000명이나 된다. 단독주택 밀집 지역이다 보니 다양한 민원이 존재하고 지역공동체 가능성도 높은 지역이다. 1일동장으로서 가장 자주 들은 주민요구 사항은 석계초등학교와 석관고등학교 옆에 재활용쓰레기 집하장이 있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쓰레기 문제와 주민안전을 위한 CCTV 설치 요구를 조율해 달라는 것이었다. 1일동장으로서 김 구청장은 석관동 지역 현안을 듣고 개선책을 논의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열린 주민대표간담회에서 허숙 석계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이 “이미 있는 집하장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학생들 안전을 위해 등교 시간에 쓰레기차를 운행하는 건 피해 달라”는 요청을 하자 김 구청장은 즉석에서 “청소과에 얘기해 시정하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오후에는 주민 80여명과 함께 CCTV 설치 설명회를 열고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확보한 예산을 바탕으로 CCTV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구청장은 “CCTV 설치는 단순히 내 가족만 안전해지자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 모두가 좀 더 안전한 환경을 누리자고 하는 사업”이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슬기를 발휘해 달라”고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주민설명회를 마친 김 구청장은 오븐기 등 제빵 설비를 구입해 직접 빵을 구워 나눠 주는 봉사활동을 벌이는 석관제일교회를 찾아 이영찬 목사와 자원봉사 교인들을 격려했다. 곧이어 구립어르신사랑방에서 대청소 활동을 하는 석관동자율방재단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노인들과 환담을 나눴다. 김 구청장은 “늘 느끼는 것이지만 현장 방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책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면서 “목민 행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하루가 됐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칠레서 고래 수십마리 떼죽음 미스터리

    남미 칠레에서 고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고래들의 무덤이 된 곳은 칠레 남부도시 푼타 아레나스에서 가까운 한 해변가 마을 칼레타 수사나라는 곳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가다가 파도에 밀려 해변가에 늘어져 있는 고래떼를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했다. 푼타 아레나스 해양자원보호당국은 즉시 구조반을 현장으로 보냈다. 자동차와 보트에 나눠 타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반이 확인한 결과 물 밖으로 몸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는 고래는 46마리였다. 구조반은 어부들과 함께 보트를 이용해 고래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한계가 있었다. 26마리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생명을 건졌지만 20마리는 죽어버렸다. 칠레 남극연구소와 마가야네스대학 연구팀은 연구 목적으로 폐사한 고래의 견본을 채취했다. 당국은 신고를 받자마자 구조반을 현장에 파견, 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고래떼 절반이 폐사했다. 한편 고래들이 해변가로 밀려 나와 떼죽음을 당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DB를 열다] 1964년초 주민들이 손으로 잡은 송충이 무덤

    [DB를 열다] 1964년초 주민들이 손으로 잡은 송충이 무덤

    땅을 파서 작은 봉우리처럼 쌓아 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엄청난 수의 송충이들이다. 요즘은 송충이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산에 가면 송충이가 바글바글했다. 민둥산 녹화사업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 소나무를 고사시키는 송충이는 국가의 적이었다. 그래서 당국은 봄철이면 공무원들이나 학생, 주민들을 동원해 송충이 잡기에 나섰다. 여학생들은 징그럽다고 싫어했지만, 남학생들은 그저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즐거움에 소풍을 가는 것처럼 산에 올라 송충이를 잡았다. 송충이를 몇 마리 잡느냐가 점수로 매겨지기도 했다. 살충제가 부족해 사람의 손으로 송충이를 잡았지만, 약품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방제법이었다. 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어 소나무에 붙은 송충이를 집어 깡통에 넣는다. 한 마리씩 잡는 것이 성에 차지 않을 때는 소나무를 마구 흔들면 송충이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러다 보면 몸에 떨어져서 송충이 독이 올라 피부가 벌겋게 부어 오르기도 했다. 잡은 송충이들은 구덩이에 넣어 석유를 뿌려 집단 다비식을 했다. 사진은 1964년 2월 25일, 서울 화계동 주민들이 잡은 송충이들이다. 그 양이 무려 150가마니나 된다고 사진 설명에 쓰여 있다. 화계동은 우이동, 번동, 수유동을 관할하던 행정동인데 1970년 5월 동 이름이 없어졌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인간이 존재의 시작을 찾아나섰다. 자신의 시작이 된 어머니, 그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며 거슬러 가보니, 태초에 흑인 여성이 있더라. 같은 맥락으로, 음악을 실마리 삼아 시스터즈의 기원을 찾아보니, 숙자매와 펄시스터즈, 코리아키튼즈를 거쳐 김시스터즈에 다다르더라. 손녀뻘인 미미시스터즈가 시스터즈의 계보도를 그려 음악극으로 만들었으니, 이름하야 ‘시스터즈를 찾아서’라더라.’ 하늘거리는 빨간색 원피스에 빨간 빵모자와 검은 망사 장갑을 매치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표정은 무덤덤하게.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미미시스터즈(이하 미미들)는 익숙한 그 모습으로, 자신들이 쓴 음악극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동경한 ‘시스터즈의 낭만과 유머’를 찾아가는 거죠.” 가슴 크기로 호칭을 정했다는 미미들 중 ‘작은’ 미미의 말이다. 미미들은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로 데뷔했다. 복고풍 의상과 덤덤한 표정, 요상한 춤으로 관심을 끈 ‘얼굴들’이었다. 잘 활동하는가 싶더니 2011년 초 별안간 독립하고 1집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거야’를 내놓았다. 그들은 이를 두고 ‘합의이혼’이라고 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그저 재미있게 놀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관심을 무척 많이 가지시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하게 됐죠.” 데뷔부터 1집까지 과정을 묻자 미미들은 한몸인 양 주거니 받거니 대답을 완성해 나갔다. “사람들이 미미들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선글라스에 가려진 채로 잊힐까 봐” 두렵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음악을 해보자”는 의지로 독립했다. 그런데 음반 반응이 엇갈렸다. 쟁쟁한 음악인들과 작업했더니, 미미들이 피처링해 준 느낌이라는 말도 들렸다. 덜 익은 채로 대중 앞에 나선 미미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의 이유’였다. 그즈음 만난 기획전에서 답을 찾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작곡가 김해송과 가수 이난영, 애자·숙자·민자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를 조명한 ‘가문의 영광’전이다. “김시스터즈는 미국 슈프림스보다 먼저 데뷔한 걸그룹이에요. 부모에게 철저히 음악교육을 받아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세 분이 합쳐 스무 개가 넘는 재능 집합체죠. 시스터즈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 그런데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큰 미미) 선배 ‘시스터즈’를 연구하고, “뒷조사를 하듯”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펄시스터즈의 배인순, 코리아키튼즈의 윤복희와 전화 연결이 됐다. 유명을 달리하거나 해외에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는 때도 있었다. 큰 미미가 한 모임에서 만난 남인우 연출이 취지에 ‘대공감’하면서 의기투합했다. 미미들이 일기처럼 쓴 글들을 극으로 다듬고, 키보드 연주자 고경천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음악극 형식이 됐다. 우리나라 여가수들의 역사를 따라가는 시간여행으로 확장했다. 두산아트센터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 ‘두산아트랩’에 선정돼, 새달 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올리게 됐다. 1시간 남짓한 공연에서 미미들은 자작곡 3곡을 부르고, ‘커피 한 잔’, ‘거짓말이야’, ‘첫사랑’ 등을 노래한다. “관객에게는 시대를 풍미한 시스터즈를 돌아보는 계기를 주는 것,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게 공연의 의미죠.”(작은 미미) “공연을 준비하면서 진짜 미미들을 찾았으니, 자신있게 2집을 내려고요. 1집에서는 뭣 모르고 호기롭게 전설이라고 했는데, 이젠 달라졌다는 뜻에서 2집은 ‘정신차렸어, 본격 1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큰 미미) 이번 공연은 미미들이 목적지로 가는 과정의 하나다. 최종 종착점은 ‘시스터즈 다큐멘터리’ 제작이다. “시스터즈들은 굉장히 매력적인 역사를 만들어냈죠. 이시스터즈는 멤버들이 출산을 번갈아가며 10년 동안 활동했고요. 이쁜 게 잘못인가, 누가 뭐 사랑해 달랬나(펄시스터즈의 ‘아저씨가 좋아요’)라고 당당하게 노래하기도 하죠.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시스터즈 전설을 맛보게 될 겁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집 마당에 고양이 묻는다며… 신생아 생매장하려던 미혼모

    경기 안성경찰서는 18일 홀로 출산한 신생아를 집 마당에 묻어 살해하려 한 혐의(영아살인미수)로 A(26·여·미혼)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4일 오후 3시쯤 안성시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남자 아기를 출산한 뒤 검은색 비닐봉투로 감싸 마당에 묻으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의 행위는 때마침 현장을 지나던 이웃 주민에 의해 적발돼 경찰에 신고되면서 중단됐다. 이 주민은 경찰에서 “A씨가 고양이를 묻으려 한다고 말하길래 들여다보니 고양이는 없고 아기만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아기는 충남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A씨는 전 직장 상사였던 현장소장(기혼)을 아기 아버지로 지목했다. 가족들은 A씨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전 직장 상사의 아기를 낳은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아기를 살해하려 했다고 무덤덤하게 진술했으며 아기를 돌볼 사람이 없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北 3차 핵실험 강행] 北 리스크 학습효과… 주가·환율 영향 미미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에도 국내 금융시장은 무덤덤했다. 주가는 소폭 하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되레 떨어졌다. 미리 예고된 악재인 데다 북한 리스크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1, 2차 핵실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우리 경제에 주는 영향이 단기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아시아 주요 시장이 휴장했고 일본을 제외한 주요국의 공식 대응이 아직 나오지 않아 예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12일 코스피 지수는 전거래일보다 5.11포인트(0.26%) 내린 1945.79로 장을 마쳤다. 홍순표 BS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가 단기 하락 후 다시 복원되는 상황이 반복돼 북핵 문제는 더 이상 시장 위협 요인이 아닌 것 같다”면서 “오히려 북핵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국인은 되레 주식을 1353억원어치 사들였다. 지난달 2일(1740억원 순매수) 이후 한 달여 만에 최대 매수세다. 원화가치도 ‘거꾸로 강세’를 보였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달러당 4.9원 내린 1090.8원으로 마감, 5거래일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다. 통상 북한 리스크는 원화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환율 상승)으로 작용하지만 이번에는 ‘불확실성 요인’이었던 핵실험을 확인하자 차익실현 차원에서 방향을 튼 것으로 분석(손은정 우리선물 연구원)된다. 과거와 비교하면 ‘당일 쇼크’도 없는 수준이다.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 때는 주가가 33포인트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15원이나 올랐다. 2009년 5월 25일 2차 때는 사흘새(거래일 기준) 주가는 42포인트, 원화가치는 22원 떨어졌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충격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은 “우리 경제가 위기에 단련되어 온 만큼 3차 핵실험이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도 같은 견해다. 다만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될 가능성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점검에 들어갔다. 한범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러시아 등이 북한 핵실험에 반대 의사를 보인 만큼 주변국들의 반응과 유엔 안보리의 경제 제재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센터도 북한의 맞대응 수위 등에 따라 시장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혈관과 수도관

    혹시 혈관을 수도관과 흡사하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지요? 기능만을 생각하면 확실히 비슷합니다. 인간은 물 없이 살 수 없고, 몸은 피 없이는 단 1초도 견디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이 비유에는 결정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혈관은 유기체인 몸의 일부인 반면 수도관은 기계적 장치라는 사실입니다. 혈관은 그 자체로 생명의 조건이지만 수도관은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합니다. 수돗물 없다고 사람이 못 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혈관의 중요성을 무시합니다. ‘혈관=수도관’이라는 안일한 인식이 만든 근거 없는 자기학대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혈관이 수도관이라고 믿는 순간, 혈관의 생리적 기능은 피를 나르는 통로 쯤으로 평가절하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지육림에 빠져 살면서도 혈관만큼은 아직 건강하다고 믿고, 일주일에 운동으로 땀 한번 흘리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피는 잘 돈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것처럼 혈관은 튼튼하지도 않고, 문제가 생기면 얼렁뚱땅 수선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위협적인 만성질환 고혈압이나 동맥경화가 바로 혈관의 병이며, 고지혈증과 당뇨병 역시 혈관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순식간에 생사의 처지를 바꿔놓는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역시 혈관의 문제라는 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이 정도면 단순히 막히거나 터질 뿐이며, 문제가 생기면 구청에 전화 한 통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수도관과 혈관이 비슷하다는 믿음이 얼마나 황당하고 편의적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혈관의 건강을 뜻하는 두개의 조건이 있습니다. 혈관은 날씬하고 탄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뱃가죽과 내장의 비만은 혈관이 쌀찌는 것보다 덜 치명적입니다. 혈관이 살찌면 구멍이 좁아져 종국에는 특정 신체 부위의 허혈상태를 초래하게 되고, 당연한 수순이지만 혈압도 올립니다. 동맥경화와 심장마비 또는 심근경색에서 보듯 혈관이 탄력을 잃는 것도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정도면 혈관을 수도관으로 아는 ‘무덤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남의 얘기라고요. 천만에, 바로 지금, 당신의 얘기입니다. jeshim@seoul.co.kr
  • 미스터리 ‘클레오파트라 목걸이’ 시베리아서 발견

    과거 클레오파트라가 목에 걸던 목걸이는 이런 모습일까? 최근 러시아의 한 학자가 시베리아에서 발굴한 정교하게 만들어진 목걸이를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알타이 산맥에서 발굴된 이 목걸이는 2400년 된 무덤에 있던 한 여성이 목에 걸고 있던 것으로 아름다운 모양의 17개 유리 구슬이 촘촘히 박혀있다. 8년 전 한 고고학자가 발견한 이후 연구를 진행하다 최근 이같은 사실을 공개한 것은 바로 목걸이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 노보시비르스크에 위치한 인류고고학 연구소 안드레이 보로도브스키(53) 교수는 “목걸이가 깊고 밝은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절묘하게 만들어져 있다.” 면서 “30년 이상 골동품을 연구해왔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물건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연구소 측은 특히 목걸이가 멀리 고대 이집트에서 넘어와 ‘클레오파트라 목걸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 여성은 25세의 처녀 사제로 추정하고 있다. 보로도브스키 교수는 “과거 이곳은 문명이 전해지는 주요한 통로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이집트 물건이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면서 “목걸이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전세계에 있는 관련 전문가와 함께 연구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인터넷뉴스팀 
  • [공연리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공연리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6·25전쟁통에 남북 병사가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대부분 이야기는 이렇게 흐른다. ‘위기 속에서 투닥거리던 이들은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결국 우리는 한가족, 피를 나눈 형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설정도 들어간다. ‘저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로 시작하는 고백.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박소영 연출, 한정석 극)도 이런 뻔한 플롯을 가지고 간다. 그런데 뻔하지 않게 풀어낸 매력이 있다. 전쟁의 비극을 유쾌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대목은 영화 ‘웰컴투동막골’이나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여신님이’는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 웃다가, 울다가, 가슴 졸이는 등의 온갖 감정이 범벅되는 120분을 만들어 낸다. 극의 배경은 전쟁이 한창인 1952년 4월. 국군 대위 영범(이준혁)에게 북한군 포로를 거제도로 이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가기 싫은데 포로들 분위기도 이상하다. 눈빛이 심상치 않은 북한군 간부 창섭(임철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순호(윤소호), 속을 알 수 없는 동현(지혜근)과 눈치 없는 주화(주민진)까지. 설상가상으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영범과 국군 병사 석구(최성원), 북한군 포로 넷이 무인도에 고립된다. 수적으로나 힘으로나 전세 역전.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은 배를 수리하는 것뿐인데 유일하게 배를 고칠 줄 아는 순호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영범이 딸을 그리워하며 만든 환상에 순호가 호기심을 보이면서 급기야 여신이 탄생했다. 순호는 여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또 북한군과 국군은 순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여신 놀이’를 시작한다. 북한군과 국군이 긴박하게 대립하다가도 순호의 말에 따라 언어를 순화하고 폭력적인 남자는 부드러워지는가 하면 무덤덤한 남자는 마음을 연다. 여섯 남자가 율동을 섞어 가며 부르는 ‘그대가 보시기에’는 경쾌하지만 “다가올 시련 앞에 맞서 이겨낼 수 있게…내게로 와요. 잠들어요”라는 여신의 노래에는 마음이 짠해진다. 여섯 남자에게는 가상의 존재였던 여신(이지숙)이 극 중에서 짝사랑 누나, 여동생, 그리운 어머니가 되면서 전쟁의 상처를 전한다. 영범 역에는 최호중·이준혁, 순호 역에는 신성민·전성우·윤소호가 번갈아 나온다. 3월 10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4만 5000원. (02)744-7090.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시론] 안보 위협에 무덤덤한 국회/김열수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국제정치학 교수

    [시론] 안보 위협에 무덤덤한 국회/김열수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국제정치학 교수

    한국 국방비는 지난 10년간 GDP의 2.8%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올려주어도 모자랄 판에 국회는 오히려 국방비를 깎았다. 국방비 삭감에 대한 진지한 토의도 없었다. 2013년도 예산이 해를 넘겨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뉴스 자막이 나왔다. 그 다음 자막은 국방비가 대폭 삭감됐다는 내용이었다. 차기 전투기, 대형 공격헬기, 해상 작전헬기 등 구매 사업 비용이 2000억원 이상 삭감됐고 전차, 장거리공대지유도탄, 장거리대잠어뢰 사업 등에서 1231억원이나 깎였다. 무려 3000억원 이상의 전력증강비가 삭감된 것이다.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도 발표되었다. 그는 “군력(軍力)이 곧 국력이며, 군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길에 강성국가가 있고 인민의 행복이 있다”고 했다. “첨단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이 군사력을 강화하자고 발표한 날, 한국 국회는 국방예산을 대폭 깎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 의회도 2013년도(2012년 10월~2013년 9월) 국방예산을 통과시켰다. 재정절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두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던 때라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해 1월 페네타 국방부 장관은 향후 10년 동안 4879억 달러(약 516조 1982억원)의 국방비를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2013년도 국방비가 대폭 감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초 2013년 국방비를 약 6130억 달러 수준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의회에 제출할 때 이보다 100억 달러 이상 늘어난 6238억 4800만 달러를 요청했다. 당연히 의회에서 국방비 삭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미 상원은 지난해 12월 ‘2013년 국방수권법’을 통해 정부가 제출한 국방비가 안보상황 대처에 미흡하다고 판단해 오히려 1억 5200만 달러나 증액시켰다. 한국 국회가 깎은 반 이상을 올려주었던 것이다. 일본도 방위비를 늘리고 있다. 일본의 전통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 10년 동안 일본의 방위비는 거의 정체되었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위협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4월부터 시작되는 2013년도 방위비가 늘어난다. 지난해에 비해 1200억엔(약 1조 4329억원) 늘어난 4조 7700억엔이 편성될 전망이다. 아베 정부는 그것도 모자라 추가경정예산안에 방위비 2124억엔을 편성했다. 패트리엇(PAC3) 미사일 도입, 초계 헬리콥터 도입,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 구입 등을 위한 예산이다. 정규예산과 추경을 통해 늘리는 예산이 무려 3324억엔이다. 한국 국회가 깎은 국방비의 약 10배 이상을 증액시킨 것이다.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의회나 일본 의회에 비해 한국 국회는 태평하다. 한국이 처한 안보 환경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자기들 스스로 여유를 즐기는 것도 그렇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위험 국가’로 분류된다. 굳이 세계로부터 평가를 받지 않더라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을 통해 얼마나 위험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매년 두 자릿수의 국방비를 증액해 나가는 중국을 이웃에 두고도 이를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주변국의 위협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는 이스라엘은 GDP의 6%를 국방비에 투입한다.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싱가포르도 GDP의 4% 이상을 국방비에 투입한다. 그러나 한국 국방비는 지난 10년간 GDP의 2.8%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올려주어도 모자랄 판에 국회는 오히려 국방비를 깎았다. 국방비 삭감에 대한 진지한 토의도 없었다. 수많은 민원성 쪽지가 폭탄이 되어, 예산을 깎아도 불평할 것 같지 않은 국방부를 정조준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최근 한 달 사이에 미국, 한국, 북한, 그리고 일본에서 일어났다. “국방예산을 깎아 죄송하니 우리 외유비를 없애 국방비에 보태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웃음 짓는 모습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국가안보엔 원래 감정이 없다. 심해도 너무 심한 것 같아 해 본 말이다.
  • 숲은 복지다

    숲은 복지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가 109조원으로 평가됐다. 국가 전체 복지예산을 웃도는 액수로 국민 1인당 연간 216만원에 해당하는 ‘무형의 혜택’을 받고 있다. 산림이 울창해지면서 공익적 가치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소득 증가와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화두가 된 복지의 지향점을 숲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산림복지는 ‘숲’이라는 건강 자산을 활용,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복지라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토의 64%(639만㏊)를 차지하는 산림을 배제하고 어떠한 ‘행위’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8명이 1년에 1회 이상 등산을 즐기고, 숲길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등 산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도시화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숲은 힐링(치유)의 공간이자 안식처로 자리매김했다. 산림복지는 건강과 삶의 만족을 높일 수 있도록 숲을 활용한 3차 서비스다. 과거 목재 자원 공급기지에 국한됐던 ‘산림’이 휴양·교육·문화·치유의 공간이자 일자리 창출까지 스스로 역할과 가치를 높여 가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산림에서 행복’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산림청의 생애주기별 산림복지 프로젝트(G7·Green Welfare 7 Project)는 2010년부터 본격화됐다. 나무를 심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서 활용하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G7 프로젝트’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인간의 생애를 7주기로 나눠 각 단계에 적합한 산림 서비스를 제공한다. 등산 및 휴양, 중·장년층 등 일부 세대에 한정됐던 산림 서비스를 전 세대가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화했다. ‘탄생기~유아기~아동·청소년기’에는 인성을 배울 수 있는 산림교육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숲 태교에서 숲 유치원, 산림학교 등으로 연계된다. 현재 산림교육 시설 및 프로그램 확대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박산우 산림청 산림휴양문화과장은 “어릴 적부터 산·숲에 대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체험의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크면서 자연스레 숲과 자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년기’에는 기존 임도를 활용한 산악레포츠와 트레킹 등 레저·문화활동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한 숲길 조성을 통해 산을 찾는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트레킹 숲길은 정복이 아닌 자연생태와 문화·역사를 즐기고 체험하는 ‘슬로 워킹’으로 각광받고 있다. ‘중·장년기~노년기’에는 산림치유와 산림요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산림치유는 산림이 지닌 보건·의학적 기능을 활용한 산림치유 기반을 확대해 국민 건강 증진 기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삼봉자연휴양림 등 장기체류형 휴양림과 조성된 산촌생태마을을 산림요양마을로 전환해 운영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산림의 공익 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지구 또는 단지 형태인 산림복지단지(가칭)를 조성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로 했다. ‘회년기’는 수목장이라는 자연으로의 회귀다. 2008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수목장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 국유림(1곳)과 공유림(2곳)을 포함해 전국에 57개 수목장림이 운영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면서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는 2007년부터 강원 홍천에서 ‘힐리언스 선마을’이라는 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세로토닌 전도사로 알려진 그는 ‘행복은 자연에서 온다’는 믿음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 질병 치료를 위해 숲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숲이 병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산림치유는 휴식보다 치유 기능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산림휴양과 구별되고 산림욕보다 한 단계 발전된 개념이다. 산림치유는 경관·소리·피톤치드·음이온 등 산림 내 다양한 환경 요소를 활용해 인체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활동이다. 숲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감과 활력을 느끼는 이유다. 산림청은 숲 치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반영해 경기 양평(산음 휴양림)과 전남 장성(편백나무숲), 강원 횡성(청태산 휴양림)에 치유의 숲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2011년 15만 7000명이 방문했고 지난해에는 방문객 31만 4797명, 프로그램 이용자 3만 1215명에 달했다. 숲 치유는 노인 의료비 지출 감소 등의 효과와 함께 삶의 질도 높여 줄 수 있다. 등산 활동에 따른 연간 의료비 절감액이 2조 8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숲 치유는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산림청은 2017년까지 100만명에게 산림치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총 5000억원을 들여 숲을 건강 자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산림교육도 본격화됐다. 산림교육은 지난해 7월 ‘산림교육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전국의 자연휴양림과 수목원 등이 청소년의 산림교육 장소로 개방되고 숲 해설가를 활용한 산림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산림교육 참가자가 50만명에 달했다. 특히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게임중독 등을 해결하기 위한 ‘숲으로 가자’ 운동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산림교육이 학교폭력 예방과 함께 사회성 향상 및 우울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125곳에서 열린 치유 캠프에는 5만 7478명이 참여했다. 산림이 잘 보전된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산림을 활용한 복지 프로그램이 제도화돼 있다. 산림과 숲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산림법에 근거해 산림교육을 진행하는데 1993년 정식 교육과정으로 인정받았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숲유치원이 1000여개에 달하고, 14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산림학교도 설립됐다. 일회성 방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본은 2001년 삼림·임업기본법이 제정됐다. 임업기술자 양성을 위한 전문임업교육과 함께 삼림환경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삼림환경교육은 다양한 체험과 이용 등을 통해 산림의 이해와 관심을 증진시키자는 것이 취지다. 집단따돌림 등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으로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산림복지에 대한 개념이나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예산 지원이 가능해지는 등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 프로그램 개발과 인력 양성에 나서야 한다. 숲유치원협회가 결성되는 등 변화하고 있지만 대학에 산림치유 관련 학과가 없는 등 사회적 인식과 기반이 열악하다. 인프라도 매우 부족하다. 일회성 방문으로 학생들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산림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해 찾아가는 것은 무리다. 정책 추진 시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유민영 생명의 숲 정책실장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산림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면서 “취약계층 대상 치유 시설은 국가나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이어 “산림 훼손에 대한 우려가 높은 만큼 숲 관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길섶에서] ATM 창구의 변신/정기홍 논설위원

    추위가 맹위를 떨친 며칠 전 밤 9시 무렵, 서울 지하철 발산역 근처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창구 안에 외투로 무장한 중년 10여명이 들어차 있었다. 생경한 풍경이다. 이 시간대에 무엇을 하는 이들일까. 작은 발짓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순간, 한 사람의 손에 든 단말기가 울렸다. 그는 말없이 문을 박차고 나선다. 이날 10여분간 신호음을 받은 사람은 3명. 모두가 발길을 바삐 옮겨 문 밖으로 사라졌다. 대리운전 기사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추운 바깥 날씨 탓에 이곳을 손님을 기다리는 장소로 애용하고 있었다. 일부는 한밤 대리운전에 나선 ‘투잡스족’인 듯했다. ATM 창구가 혹한 속에 이들의 ‘대기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 가장들의 쓸쓸한 자화상을 이곳에서 볼 줄이야···.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걷는 퇴근길이면 이들의 무덤덤한 모습이 문득문득 발길에 차인다. 바깥 날씨가 아주 매섭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춘삼월 봄은 언제쯤 올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시인 고은(80)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예술과 문학론, 사랑과 술을 빼놓을 수 없다. 한 30대 문학평론가는 고은에 대해 “선생은 지리산 자락 깊은 곳에 핀 이름 모를 꽃의 존재에 대해서도 경남의 꽃, 대한민국의 꽃, 아시아의 꽃, 지구의 꽃, 태양계의 꽃, 우주계의 꽃으로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확장된 시각을 이미 1960~70년대부터 드러낸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시각인 것 같은데 당시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시에 대한 고은의 욕망은 이런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야 끝나는 시. 아니 모든 멸망 뒤에 다시 이어지는 시. 우주 허공계의 시. 나라는 존재 따위 다 사라져 버린 영구 부재의 시. 시. 시.시. 미치겠다.” (1974년 9월 24일 일기) 고은이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강화할 때 그의 문우이자 술친구인 민음사 박맹호 사장과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사장은 ‘문학을 지켜라. 정치의 자승자박은 안 된다’라며 찬성하지 않았지만, 고은은 자신의 방식대로 문학을 끌어안았다. “시대에 지지 말자./ 시대를 팽개치지 말자./ 시대는 가고 문학은 남는다./ 문학은 그가 태어난 시대를 떠난다.”(1974년 12월 23일 일기)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인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 서재에서 고은은 “내 운명은 시다. 평론도 소설도 써봤지만, 시로서 내 삶을 완결해야 한다. 이제 막 새로운 시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시들이 들어오고 있다. 시인으로서 끝 무렵이 아니라 시작 무렵이다. 나에게는 종결이 없다”라고 말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1958년 등단한 고은은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년)을 시작으로 41살까지 6권의 책을 냈다. 그의 저작활동은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왕성해져, 1986년 1권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24년 동안 만인보 시집만 30권을 냈다. 외국에 고은이 ‘만인보’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이유다. 만인보 외에 시집과 소설, 평론집, 산문집, 시선집, 여행서, 동화집, 동시집, 전기, 자서전, 편집한 책까지 합치면 150여권이 된다. 2013년 새해 벽두에는 1973~1976년까지 일기를 묶은 ‘바람의 사상’과 평론가 김형수와 대담한 ‘두 세기의 달빛’을 한길사에서 펴냈다. 대담집은 앞으로 7~8권 더 나올 예정이어서 고은이 낸 책은 조만간 160여권을 훌쩍 넘을 것이다. 시인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은은 “모국어로 시인이 되어야 할 운명인 사람인데, 소학교에 입학하니 조선어 사용이 금지됐다. 모국어를 상실함으로써 배움을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죄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밤이면 머슴 대길에게 비밀리에 한글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한글 덕에 해방되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월반했다. ‘국문을 아는 사람 손들어’라고 했을 때 고은이 유일했단다. 흔히 그의 프로필에 종교는 불교로 나와 있다. 20대에 10년을 승려로 살았으니, 으레 그리 짐작한다. 그러나 흰 종이에 육필로 시를 적어나가는 고은은 “나에겐 백지가 종교다. 다른 종교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 완벽한 백지가 있으니까, 다른 완벽함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삶은 힘들어지고, 문학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고은은 “한국전쟁 당시 사람들 속에 진짜 시적인 것이 있었다. 그 시대를 견뎌온 힘은 강력한 정서, 시적인 품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시가 더 풍부했다. 시단의 시적인 성취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사람들은 시와 함께 있고 싶어했다. 지금은 시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줄었는데, 오히려 시인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 시인들이 시적인 품성이 갖춰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설적이다”고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오히려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조언했다. “자아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다. 산 너머 이웃마을의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 자아의 골짜기에서만 머물지 말고 나와서, 세상을 돌아보고, 바라보고 해야 한다. 현대인의 특징은 시력이 약해져, 먼 곳을 보지 못한다. 인류가 짐승일 때는 멀리까지 바라봤다. 문명 속에서 익숙해진 시야라서, 아파트 단지의 건너편 창문을 바라본다. 시야가 연장되지 않고 누에고치처럼 내면에 둥지를 튼다. 그러면 어떤 때는 자신에 충실하지만, 자칫 자폐가 된다. 예술은 끊임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삐걱삐걱’ 소리가 들려야 하고, 뜨거운 숨결이 밖으로 나가고 밖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 안 그러면 사막이 돼 양쪽이 다 죽어버린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간사를 맡아 ‘참여파’는 물론이고 ‘순수파’까지 101명을 그러모아 ‘101 선언’을 추진한 저항시인다운 문학론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치적이었느냐? 1974년 12월 27일의 일기를 보자. “문학은 비겁한 것인가. 문학은 현실에 대해, 힘에 대해, 이렇게밖에 존속될 수 없는 것인가. (중략) 절대로 권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우리는 팔 하나씩 잘라버려야 한다. 자유실천문협은 한국문협, 자유문협, 그리고 한국문인협회의 그것일 수 없기 때문에 현대 한국문학사를 새로 쓰는 문학의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문학이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도 경계할 것이다. 문학은 문학으로 끝난다.” 지금은 하회탈 같이 속탈한 웃음을 짓는 고은이지만 1951년 교사시절이나 승려로 지낸 시절의 사진은 자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여간 부담스러운 얼굴이 아니다. 고은은 “고비와 극한을 많이 경험해서 그렇다. 마음의 평화는 인생의 후반기, 지금부터 한 20여년 전에서야 얻었다”고 했다. “내 마그마는 마음의 지하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데, 지층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달래놓고 유보시키고 하는 것이다. 어느덧 내 무의식의 일상이 지하의 마그마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조절하고 달래주고 있다. 나는 본능의 신성성을 인정한다. 본능은 천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아주 신성한 것이다. 그것을 내 규범에 의해 억압하면 내가 싫어한다. 그것이 나의 자연이다. 불이 나의 친구다. 그러니까 ‘얘가 덜 필요한가보다’ 하면 자기가 물러나주고, 필요한 듯싶으면 기꺼이 다가오고 그래준다.” 본능의 신성성을 높이 평가한 덕분인지 고은의 여성편력은 화려했었다는 것이 문단의 평가다. 그러나 그는 1974년 9월 5일에 만난, 당시 덕성여대 강의를 나가던 15세 연하의 이상화(66·중앙대 영문과 교수)를 만난 뒤로 사랑에 빠졌다. 이 즈음 고은은 “한 달도 안 됐는데 결혼을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결혼식은 만난 지 약 10년 만인 1983년에야 했다. 고은의 나이 50살 때다. ‘생활은 문학의 무덤’이라던 고은의 부인 사랑은 지극하다. 2008년 고은이 그림 전시를 한 뒤로는 생일이 되면 고은 부부는 그림을 그려 생일선물을 대신한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결혼 이후 성실한 가장으로 살았고, 특히 딸을 얻은 뒤로 우주를 얻은 듯 기뻐했다”고 회고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부인 이상화 교수는 고은의 통역을 자청해 왔다. 흔히 전문통역사들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고은의 발언을 풀어 설명한다면, 이 교수는 그러지 않는다. 이 교수는 “고은 시인은 발언 자체가 시다. 시를 산문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고은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이다. 고은은 “사람들이 그렇게 술 마시며 언제 시를 쓰느냐고 묻지만, 나는 일을 다 털고 난 뒤에 술을 마신다. 일을 했으니 나를 방임하고, 해방시켜줘야 한다”고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황홀했던 주막을 사랑했다. 그렇다면 주량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주량은 내가 측정한 적이 없다. 가장 오래 마신 기록은 이틀을 잠 안자고 계속 마신 적이 있다. 서너 명이 마시다 다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둘이 대작했는데 내가 졌다. 고은을 이긴 사람이 누구냐고? 다들 죽었다”라며 쓸쓸한 표정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고은에게 술은 대부분 “대취”와 “뻗었다” 사이에 있었다. 맑은 소주를 좋아했다. ‘대취’ 무렵의 그의 술친구를 직함을 생략하고 순서 없이 대충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박맹호, 박성룡, 김현, 이청준, 이어령, 남재희, 한승헌, 김병익, 황석영, 손소희, 이시영, 김승옥, 조해일, 백낙청, 김동리, 이문구, 서정주, 최순우, 조세형, 김현종, 최인호, 김기영, 신경림, 염무웅, 권영민, 민음사 여직원 3명 등등. ‘황홀한 주막’은 서울 종로구 청진동 가락지와 열차집, 신촌 역전 술집, 낭만, 서린동 술집 등등으로 무교동과 청진동, 광화문 언저리다. 그가 기억하는 최고의 술자리는 1960년대 어느 날 새벽 1~2시에 혼자 마시던 술이다. 잠든 세상에서 비장한 비극성을 즐기며 “나는 세상을 숙직하는 자다. 세상을 지키는 취기다”라며 마셔댄 것이다. 연세도 있는데 술을 끊을 것인가? “술을 끊으면, 수사자에게 수염이 없는 것 같다, 원숭이에게 꼬리가 없는 것 같다, 조가비에게 진주가 없는 것 같다. 이별하지 말고 작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야지. 옛날 삼거리 주막집에서 나그네들이 만나서 술 마신 뒤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헤어지듯이 그래야지. 술에게 가혹하게 굴면 안 된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잘해줬느냐. 술이 운다. ”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불황 속 부동산 관심지역은

    불황 속 부동산 관심지역은

    2013년 부동산시장 전망도 좋지 않다. 하지만 어두운 전망 속에서도 부동산 수요자들의 관심을 끄는 지역은 있기 마련이다. 올해 분양시장은 신도시 지역이 이끌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신규 분양지를 살펴봤다. 수도권 분양시장에서는 동탄2 신도시와 위례 신도시가 관심 지역이다. 동탄2 신도시는 지난해 꽁꽁 얼어붙은 분양시장에서 그나마 좋은 성적을 거둔 지역이다. 지난해 7559가구가 분양된 동탄2 신도시는 대부분 물량에서 80% 이상의 계약률을 보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입지가 좋은 동탄2 신도시가 올해도 수도권 분양시장을 이끌 것”이라면서 “지난해 시범단지에 분양한 아파트들의 성적이 모두 좋았고 한화건설이 중대형 아파트 분양에도 성공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6500가구 이상이 공급되는 동탄2 신도시는 다음 달 롯데건설 1416가구, 대원건설 714가구, 호반건설 922가구 등 4800여 가구가 분양을 앞두고 있다. 3월에도 대우건설이 1355가구, 포스코건설이 874가구를 내놓는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동탄1 신도시에서 사는 사람 중 상당수가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갈까 고민하고 있어서 다른 수도권 분양지보다 수요층이 탄탄하다고 본다”면서 “특히 지난해 분양에서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대우와 롯데, 포스코 등 유명 브랜드를 가진 건설사들의 기대감이 높다”고 전했다. 강남까지 접근성이 뛰어난 위례 신도시도 블루칩이다. 위례는 지난해 대우건설이 549가구를 분양해 완판했다. 특히 지난해 대우건설이 내놓은 물량은 138~146㎥ 규모의 중대형이었다. 올해는 삼성물산이 6월에 419가구를 공급하는 것을 비롯해 2000여 가구가 분양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6월 삼성물산이 내놓는 물량도 127~154㎥의 중대형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위례 신도시는 중대형도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위례 신도시는 2015년 인근의 문정동에 법조타운이 들어서고 생활 편의성이 뛰어나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송파구 위례성길과 위례 신도시를 잇는 도로가 건설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법조타운이 들어오면 비교적 높은 소득을 가진 수요자들이 대기 중이라는 것과 함께 강남 접근성이 다른 어떤 신도시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강남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도 주요 투자처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대림산업이 올 하반기에 분양할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한신1차 재건축 단지다. 인근에 센트럴시티와 신세계백화점 등 편의시설이 풍부하다. 총 1487가구 중 전용면적 56∼113㎡ 667가구가 일반에 분양된다. 분양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강남구 노른자위에 위치한 청실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래미안대치청실 아파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실수요층이 탄탄한 중소형 평형에다 교통이 편리하고 학군이 뛰어나 일반 분양분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강남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매력이 있는 투자처”라면서 “하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분양가를 꼼꼼히 따져보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판교 알파돔도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면서 판교가 ‘하우스푸어’의 무덤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상 초기 판교에 분양을 받았던 사람들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판교가 대표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지역으로 인식되면서 투자자들이 꺼리고 있지만 분양 당시 가격이 3.3㎡당 중소형이 1200만원, 중대형이 1800만원 수준이었고 현재 평균 시세가 200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했을 때 2008년 상투를 잡은 사람이 아니라면,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면서 “새로 공급되는 알파돔은 판교 역세권이라는 점과 가격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모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알파돔에는 현대백화점, 호텔 등 대규모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분양가는 3.3㎡당 2000만원 선에 책정될 전망이다. 정부부처들의 이전이 이어지는 세종시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만한 지역이다. 지난해 말까지 총리실을 비롯,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6개 부처가 세종시 이전을 완료했다. 앞으로 학교와 상업시설 등 인프라 구축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계획이어서 향후 주택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공무원 집단 주거지에 투자해 실패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지난 8일 기준으로 지난해 7월에 비해 아파트 가격이 3.5% 뛰었다. 이 기간 전국 아파트 가격이 1.7%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집값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세종시에서는 이달 말쯤 호반베르디움 688가구를 비롯해 중흥건설 2272가구, EG건설 473가구 등 상반기에 3000여 가구, 연말까지 7000여 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무덤에서 큰 부자 무슨 소용있겠는가…죽기 전에 쉬는 법을 먼저 배워야”

    “무덤에서 큰 부자 무슨 소용있겠는가…죽기 전에 쉬는 법을 먼저 배워야”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명상 수행가 아잔 브라흐마(62) 스님이 한국에 왔다. 10일 개막해 16일까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에서 열리는 ‘세계명상힐링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스님은 ‘선정체험과 실체 깨침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고대 불교명상을 과학적 명상체계로 복원한 자신의 집중수행을 즉문즉설과 실참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캠프 개막에 앞서 10일 조계사에서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명상을 하나. -(앞의 찻잔을 들어 보이며)이 잔을 1분을 넘겨 5분가량 들고 있으면 팔이 저려 오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30초만 내려놓았다가 다시 든다면 훨씬 쉽게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명상을 하는 이유이다. 명상은 마음의 고요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알게 해 준다.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를 그만두고 출가한 이유는. -출가 전 모든 종교를 탐색해 보았다. 일종의 시장조사를 먼저 한 셈이다. 불교가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처음 명상을 배웠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명한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 가운데 불교신자가 많다. 대학시절 존경했던 교수들과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불교신자 물리학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주 세계는 여러 번의 빅뱅이 있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은 가장 최근 것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생겼다가 소멸하는 이 우주현상을 현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도 출신인 불교도의 입장에서 굳이 불교와 과학을 분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불교 명상에 편승한 힐링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2500년 불교의 역사는 마음 탐색이 핵심을 이룬다. 마음 작용이 어떻게 용서와 평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구 의학계는 지금 불교와 건강의 상관관계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몸의 건강에 마음 건강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한 성과도 숱하다. 한국사회의 힐링 열풍도 그런 맥락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아잔 스님의 명상과 한국불교 간화선의 수행법은 어떻게 맞닿아 있나. -다른 종류의 명상이라고 해서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이든 기아차이든 목적지에 가 닿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명상의 방편에 상관없이 어떻게 수행하는지가 중요하다. 명상 자체를 떠나 평화롭고 친절하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이 안고 사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요즘 사람들은 빨리빨리 서두를 줄만 알았지, 가만히 고요하게 머물지 못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갈수록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오래 살 수 있다. 무덤에서 큰 부자로 있다는 게 무슨 소용 있나. 죽기 전에 편하게 쉬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경험하고도 초기의 선정으로 돌아간 이유는 뭔가. -수행자들을 해탈의 경지로 데려다 주는 일종의 운송수단이라고 봐야 한다. 부처님 자신도 초선에서 경험한 환희심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 초선의 환희심을 궁극의 깨달음으로 연결하도록 이끈 방편이 아닐까 한다. →명상센터나 스승을 만나지 않고도 일상에서 명상 수행을 할 수 있나. -요리를 배울 때 일단 요리법을 먼저 배운다면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명상이 고요하고 평화롭게 된다면 굳이 스승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양 사람들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 나쁜 악업을 많이 쌓았다. 그 악업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서로의 종교를 존중했으면 한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는 아름답다. 굳이 서구문화를 좇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아잔 브라흐마 스님은 1951년 영국 런던 태생.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던 중 불교에 심취했으며 태국에서 아잔차의 제자로 출가했다. 호주 보디니야나 수행센터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명상수행법을 전파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명상 에세이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의 저자이며 근간으로 ‘성난 물소 놓아주기’, ‘놓아버리기’, 명상안내 요약집 ‘멈춤의 여행’을 내놓았다.
  • [2013 재계 이슈] (3) 올 국내 차시장 어디로

    [2013 재계 이슈] (3) 올 국내 차시장 어디로

    ‘1층 김 대리도, 3층 분식점 이 사장도 타는 수입차.’ 지난해 팔린 자동차 10대 중 1대는 수입차로, 내수 점유율이 10%를 넘어섰다. 수입차 전체를 하나의 업체로 보면 한국지엠보다 더 많은 차량을 팔았고 매출액을 놓고 보면 업계 1위인 BMW(약 2조여원)가 한국지엠을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국내 자동차업계의 이슈는 ‘수입차 점유율 확대’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수입차의 거침없는 질주가 화두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현대·기아차 등 국내 업체들이 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를 높이지 못한다면 수입차의 질주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답은 우리나라와 자동차 시장구조가 비슷한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에서 자국 업체의 점유율이 30%가 넘는 나라는 미국(2010년 기준 수입차 점유율 32.8%)과 일본(7.3%), 독일(36.0%), 프랑스(46.1%), 이탈리아(69.4%), 한국(6.9%)뿐이다. 이 중 점유율에서는 일본이, 산업 구조 면에선 이탈리아가 우리와 비슷하다. 일본의 수입차 점유율은 1986년 2%대에서 10년 만인 1996년 10.6%를 정점으로 2000년대 7~8%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일본이 ‘수입차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공략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자국 업체들의 경쟁력 때문이다. 일본은 토요타가 30%, 나머지 혼다와 닛산 등 6개 업체가 60%대로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토요타 외에도 미쓰비시와 스바루, 마쓰다 등 경쟁력 있는 업체가 여럿 있다. 여러 업체가 다양한 차종을 선보이는 만큼 소비자도 수입차에 눈길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는 대중차 브랜드로 피아트가 유일하다. 1984년 내수 점유율은 64%로 지금 현대차그룹과 비슷했다. 하지만 피아트는 1984년을 정점으로 최근엔 점유율 30%대로 곤두박질쳤다. 국내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폭스바겐 등 대중 수입차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지난해 마케팅인사이트가 국내 소비자 9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수입차가 초기 품질과 내구성 등 제품 만족도에서 국내 업체보다 월등한 점수를 받았다. 즉 현대·기아차 등 국내 업체들은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들이 수입차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수입차의 시장 잠식 속도는 한국지엠과 르노삼성, 쌍용차에 달렸다. 한국지엠 등 3개 업체가 높은 만족도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일본처럼 수입차 점유율은 10% 안팎에 머물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미국이나 이탈리아처럼 30~70%에 이를 수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제 차량 선택의 기준은 애국심이 아니라 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라면서 “현대·기아차 등 국내 5개 업체가 소비자 만족도를 높여야 수입차의 성장세를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서울광장] 박 당선인, 국민과의 허니문이 가기 전에/구본영 논설실장

    [서울광장] 박 당선인, 국민과의 허니문이 가기 전에/구본영 논설실장

    독일의 역사학자 위테크는 “신은 누군가를 멸망시키기에 앞서 뜨거운 권력을 누리게 한다”는 ‘섬뜩한’ 명언을 남겼다. 부디 당선인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초심만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니문.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시절이다. 하지만 그 꿈같은 밀월은 아쉽게도 금세 가 버린다. 신혼 여행지의 해변에 부서지는 물보라처럼 말이다. 평생 혼자 살았던 엘리자베스 1세가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고 했던가. 지난 대선에서 독신 박근혜 후보도 나이 육십에 대한민국에 청혼했다. 국민은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박 당선인에게는 앞으로 짧으면 6개월, 길어야 취임 후 1년이 가장 행복하면서도 중요한 시간일 듯싶다. 미국에서도 6개월∼1년이란 허니문 기간엔 야당과 언론이 백악관에 대한 거친 비난을 자제한다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박 당선인은 야당과의 긴 허니문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1987년 직선제 재도입 이후 처음 과반 득표, 최다 득표로 당선되긴 했지만, 상대 후보에 표를 던진 48% 역시 역대 최대 비율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 다수는 문재인 후보의 ‘급격한 변화’보다 당선인의 ‘책임감 있는 변화’에 손을 들어 줬기에 ‘안티세력’의 발목 잡기를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게다. 다만 금쪽같은 허니문을 스스로 허비하는 자충수는 없어야 한다. 인수위 출범 과정에서 ‘밀봉 인사’등 온갖 잡음이 나왔기에 하는 얘기다. 당선인이 허니문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뭔가. 무엇보다 집권 5년의 국정 기조를 명료하게 제시하는 일이 아닐까.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핵심 국정 모토로 ‘국민행복’을 내세우긴 했다. “무너진 중산층을 70%까지 복원해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한 바 있다. 한데 당선인이 선거 막판 내건 ‘잘 살아보세’란 낯익은 구호의 원조는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 간명한 메시지를 18년 집권 중 일관되게 밀어붙여 절대 빈곤을 추방하고 산업화의 기반을 성공적으로 닦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그의 독백에서 보듯 장기 독재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측면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당선인의 국정 철학이 아버지 때와 달라져야 할 이유다. 5년 단임 정부가 단숨에 물질적 풍요를 국민에게 선물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음을 이명박 정부의 부도난 747공약(7% 성장, 4만 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이 입증했다. 더 큰 문제는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진 이후엔 더는 소득과 정비례해 국민의 행복지수가 상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하기야 인기 없는 이명박 정부도 올 들어 1인당 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을 일컫는 20-50클럽에 가입하고 국가신용등급이 일본을 추월했다. 하지만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149개국을 대상으로 국민행복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놀랍게도 96위였다. 박근혜 정부가 담대하게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할 까닭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총량적 소득 증대에서 국민 ‘삶의 질’의 고양이라는 목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레게 리듬에 실려 오는 ‘굼베이 댄스 밴드’의 올드팝 ‘엘도라도’를 듣다가 무릎을 쳤다. “진정한 엘도라도는 다이아몬드와 황금이 아니라 평화와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이라는 대목에서였다. 당선인은 국민의 평균적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임을 인식하고 소외계층을 보듬는 데 진력해야 한다. 물론 지속가능한 복지는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박근혜식 ‘잘 살아보세’는 복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기에 아버지 시절보다 훨씬 지난한 과제일 게다. 하지만 어쩌랴. 시대의 소명이라면. 독일의 역사학자 위테크는 “신은 누군가를 멸망시키기에 앞서 뜨거운 권력을 누리게 한다”는 ‘섬뜩한’ 명언을 남겼다. 부디 당선인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초심만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kby7@seoul.co.kr
  • 1월의 오키나와, 눈 시린 쪽빛 풍경화

    1월의 오키나와, 눈 시린 쪽빛 풍경화

    노인들은 여전히 일본인이길 거부한다. 대신 이곳 사람임을 뜻하는 ‘우치난추’라는 말로 정체성을 세운다. 450년간 독립 왕국이었다가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또 30년 가까이 미 군정을 겪은 뒤 다시 일본에 반환된 곳. 원주민들과 무관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로 20만명이 죽은 서글픈 역사가 서려 있다. 그러나 비극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희석되고 있다. 우치난추뿐 아니라 한국인 위안부와 징용자들의 슬픈 넋까지 에메랄드 바다 빛에 가려진 땅 ‘아시아의 하와이’ 오키나와다. 오키나와는 1976년 일본의 한 현(縣)으로 편입됐지만 거리상으로는 한국이나 중국에 더 가깝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10분이면 겨울철 평균 최저기온이 섭씨 17.2도인 아열대 해양성 기후의 섬으로 피한(避寒)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한겨울에도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없어 북방의 관광객들은 가벼운 차림에 카디건이나 바람막이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에도 오리털 파카를 입는다. 오키나와의 관문인 나하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키 작은 소철나무와 파인애플을 닮은 아당나무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미 군정에서 일본으로 반환된 후 오키나와의 농업이 환금성 높은 사탕수수 경작으로 치우치면서 식량까지 바닥나자 현지인들은 ‘보릿고개’를 겪게 됐다. 그때 우치난추들의 배를 채워 준 것이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아당 열매와 3일간 물에 담가 독을 뺀 뒤 삶은 소철나무 잎이었다. 독을 빼는 3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먹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나하공항이 있는 나하섬은 오키나와의 본섬으로 제주도의 4분의3 크기다. 여기에 슈리성, 추라우미 수족관, 오키나와 월드, 국제거리 등 주요 관광지가 밀집해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절경을 품은 나하섬 주변의 크고 작은 섬 160개(유인도 40여개)를 모두 합하면 제주도의 1.5배에 이른다. 그중 도카시키 섬은 오키나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변과 투명한 코발트 블루 물빛을 자랑한다. 특히 도카시키 섬 내 ‘아하렌 비치’는 세계적인 수준의 투명도를 갖고 있다. 배를 타면 수심 20m 아래까지도 훤히 보인다. 인근의 ‘도카시쿠 비치’도 투명한 물빛과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로 유명하다. 도카시키 섬은 오키나와 해양스포츠의 메카다. 아하렌 비치와 도카시쿠 비치 모두 해변 가까이에 산호초가 넓게 자라고 있다. 산호초 사이로는 색색의 물고기들이 오가며 전 세계 스노클러들을 유혹하고 있다. 도카시키 섬 곳곳엔 전흔(戰痕)도 숨어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본섬에 상륙하려는 미군을 기습 공격하기 위해 도카시키 섬을 포함한 게라마제도에 함선을 주둔시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군이 대규모 선단으로 게라마제도를 공격했고, 궁지에 몰린 일본군은 주민들과 함께 도카시키 섬 최북단으로 도망친다. 여기서 일본군은 민간인들에게 명예로운 자살을 종용한다. 이날의 아픈 기억은 도카시키 섬 북부 ‘집단자결지’에 새겨져 있다. 본섬에서 오키나와의 독특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과거 류쿠왕국의 고도(古都) 슈리성이다.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은 1429년 쇼하시(尙巴志) 왕이 오키나와 본토를 통일하고 류쿠왕국을 세운 이후 450년간 역대 왕이 머물렀던 곳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대부분 파괴됐지만 성곽과 전각을 복원해 1992년 슈리성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중국과 류쿠의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양식은 일본 본토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1975년 세워진 추라우미수족관도 오키나와 관광에서 건너뛸 수 없는 곳이다. 7500t의 수압을 기둥 하나 없이 견뎌내는 세계 최대 수준의 수족관이 자랑이다. 대형 고래상어와 쥐가오리, 특이한 모양의 산호, 열대어들이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오키짱극장에서는 돌고래 쇼를 감상할 수도 있다. 오키나와의 해양성 기후는 남다른 야생미가 물씬 풍기는 자연풍경을 소성해 냈다. 이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포레스트 어드벤처’(www.forest-adventure.jp)는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다. 안전장치를 건 채 와이어를 타고 그물 다리를 건너 숲속을 탐험한다. 울창한 고사리 나무 숲을 걸으며 힐링을 하는 방법도 있다. 북부 ‘얌바루 이코이노 모리’ 휴양림에서는 ‘히카게헤고’라는 원시 고사리 나무 3000그루와 각종 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오키나와의 상처가 더 궁금하다면 평화기념공원을 찾아보자.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다. 대한민국 각지에서 가져온 돌을 위령탑 앞에 쌓아 뒀다. 탑 앞에 선 비석은 충청도에서 가져온 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글씨를 쓴 것이다. 한국, 한국인의 흔적도 여기저기 숨어 있다. 미야코지마에는 조선시대 홍길동 후손의 것으로 알려진 무덤이 있다. 슈리성 한켠에서는 고려대장경을 ‘모셔둔’ 장경각도 만날 수 있다. 고려시대 삼별초가 이곳까지 유입됐다는 얘기도 전한다. 국제거리와 마키시 공설시장에 가면 오키나와 사람들이 뭘 즐기고 먹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본토 일본인과 묘하게 외모가 다른 우치난추들의 생김생김을 슬쩍슬쩍 훔쳐보는 것도 재미다. 글 사진 오키나와(일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여행수첩 →진에어가 저비용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지난달 24일 인천~오키나와 정기편을 취항했다.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오키나와를 다녀올 수 있게 됐다. 주 7회 운항하며 매일 오전 10시 35분 인천을 출발한다. 홈페이지(www.jinair.com) 참조. 1600-6200. →자유여행이라면 렌터카를 빌리는 게 편하다. 12시간 기준 5000엔 수준. 오키나와 중심부는 나하공항에서 슈리성까지 설치된 모노레일로 돌아볼 수 있다. →쇼핑은 오모로마치에 있는 DFS갤러리아 오키나와점과 대형 아웃렛몰인 아시비나가 유명하다. 특산물은 자색고구마로 만든 ‘베니이모타르트’다. →전통요리는 오이과의 채소 ‘고야’를 두부, 계란과 함께 볶은 ‘고야찬푸르’다. 해초의 일종인 ‘모즈쿠’도 일본 전역에서 소비될 정도로 유명하다. ‘오키나와 소바’는 강한 양념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오키나와 전통주인 아와모리와 오키나와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오리온 맥주, 오키나와 사탕수수 흑설탕을 이용한 도넛 ‘사타안다기’ 등도 맛있다. 일본 요리 뷔페인 ‘다이콘노 하나’ 등에 가면 다양한 오키나와 요리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마틴 루터 Martin Luther 독일의 성직자, 교수. 르네상스와 모더니즘의 방아쇠를 당겼다. 학자들은 그를 두고 마지막 중세를 살았던 인물로 평가한다. 당시 그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스타 종교인이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지 500년이 되는 2017년까지 루터도시 곳곳에서는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신에서 인간으로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 루터의 자취를 좇는 루터도시 순례에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시공간을 찾아갔다.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독일 소도시 여행에서 구도자의 삶을 엿본다. 내가 찾아간 독일은 다시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시대였다. 루터가 살았던, 죽었던, 설교했던, 공부했던, 결혼했던, 세례를 받았던 독일의 튀링겐주와 작센안할트주 일대는 아예 루터도시Lutherstadt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2017년이면 루터가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성당에 못 박은 지 500년이 된다. 독일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한창이다. 500년이 흐른 지금도 루터가 부지런히 상기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정의 끝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루터로의 시간여행은 시작됐다.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각 나라 언어로 제작된 박물관 안내서가 구비돼 있다 ●아이슬레벤Eisleben 루터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도시 본격적으로 루터의 자취를 좇는 여행은 그가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시작됐다. 인구 2만5,000명이 사는 아이슬레벤은 우리나라 폐광촌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구리 채굴로 번성했던 도시의 과거 영화는 시민 계급의 주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지금은 한적하기만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매년 찾아오는 50만명의 관광객으로 그리 외롭진 않다. 루터가 태어난,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프로테스탄트의 성지라는 점이 그들의 발길을 이끈다.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도시 곳곳에서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루터는 티셔츠에 머그컵에 부지런히 등장하는 체 게바라처럼 인기 있는 혁명가 아이콘이다. 루터는 갤러리에 걸린 팝아트에도 등장하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 인형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루터 시대 먹었던 음식을 재연한 이색적인 레스토랑도 인기다. 도시 광장 한복판에 성서를 들고 있는 루터 동상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객의 사진 포인트.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알았던 소수의 전유물이던 성서를 독일어로 최초 번역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소수자’로 태어난 루터는 대중의 언어인 독일어를 일부러 배우고 익힌 후에야 번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시대 계층간의 단절이 새삼 놀랍다. 그가 번역한 성서는 당시 1,000만권 정도 복사된 최고의 밀리언셀러였다. 지식을 독점하면서 우위를 누렸던 성직자들이 루터를 고운 눈으로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루터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깊어 갔다. 화답이라도 하듯 루터는 현 루터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한다. 그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상트 안드레아스 키르헤 교회도 예전 그대로다.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단상에 올랐을 노성직자가 아른거린다. 교회를 나와 세상에서 첫 번째 박물관으로 탄생한 루터의 생가로 향한다. 루터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복원돼 있다. 방명록에는 심심치 않게 한글이 눈에 띈다. 한국인 성지 순례자가 꼭 들르는 관광지다. 생가 이층에서 창문을 열면 루터가 세례를 받은 상트 페트리 바울리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가톨릭 세계관에서 세상에 태어난 생일은 중요치 않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야 그 삶에 비로소 의미가 있었다. 종교인으로서 시발점이자 종결점이 된 이 도시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이기도 했다. 교회에는 아기 루터의 머리를 적신 성수가 담겼던 세례 그릇이 복원돼 있다. 새겨진 문구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말씀을 실행한 루터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독일인이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에서 만난 루터 동상. 이곳은 세계 최초의 박물관으로 지정됐다 2 루터를 종이인형으로 형상화한 그림. 루터는 아이슬레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콘이다 3 루터가 마지막으로 설교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른 신랑, 신부 ●비텐베르크Wittenberg 근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다 루터의 본류를 좇으려면 비텐베르크가 빠질 수 없다. 이곳은 500여 년 전 지구상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치열했던 땅이다. 중세 학문의 중심지였던 비텐베르크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여들었고 수준 높은 학문이 교류됐다. 루터는 이곳에서 생애 가장 많은 시간, 가장 치열한 한때를 보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으로 향했다. 시청에 내걸린 거대한 루터 현수막 아래로 진짜 루터가 등장했다. 은발의 노신사가 루터와 같은 수도복을 입고 추종자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다. 독일식 코스튬플레이인가 싶어 절로 웃음이 났는데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비텐베르크 시민들도 이제는 그냥 그를 루터라고 부른다는 말에 뒤집어졌다. 당시 루터는 중세의 아이돌이었다. 동경하고 추종하는 자도 많았으니 내가 루터라고 주장하는 가짜 루터들도 출몰할 법했다. 루터가 1511년부터 거주한 수도원은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돼 ‘루터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다량의 루터 초상화다. 젊은 루터, 늙은 루터, 박사모를 쓴 루터, 수도복을 입은 루터 등등 화가들은 쉴 새 없이 화폭에 루터를 담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조목조목 따지고 든 95개 조의 반박문을 1517년 성교회Castle Church에 못 박은 일이었다. 루터는 거침없었다. 교회의 처사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에게는 통쾌한 대자보였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권력 대한 반박문은 종교개혁에 소중한 첫걸음이 됐다. 루터하우스에서 성교회까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은 도보로 20여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중세의 매듭이 묶이고 근대라는 시간이 스멀스멀 탄생한 것이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루터는 근대의 불을 인간에게 안긴 프로메테우스가 됐다. 그리고 그는 설교로 계속 그 불의 온기를 유지해 나갔다. 그가 최초로 또 2,000회 이상 독일어로 미사를 올렸던 성 마리아 교회의 첨탑이 광장 동쪽으로 삐죽이 솟아 있다. 거칠게 생각해 보면 루터는 역사책 안의 인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와는 상관도 인연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엔 교회 대신 백화점으로 향하는 내게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신나는 ‘빨간 날’일 뿐이다. 그럼에도 종교를 개혁한 마틴 루터에게 우리는 분명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우리의 관심사를 신에서부터 인간으로 되돌린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건 거창하다. 다만 구시대의 모순에 하나둘 반기를 들었던 행동들이 모여 역사가 흘러갔다는 것.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의 용기 덕분에 근대의 수혜를 입었다는 것. 그게 제일 크겠다. 이제 세상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과학적인 합리성에 의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과학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새 질서를 꿈꾸는 이때 독일인은 부지런히 루터를 소환하고 있었다. 다시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루터도시는 희망의 증거를 내준다. 4 비텐베르크 광장.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걸개가 걸려 있다 5 맥주는 빠질 수 없는 독일인의 문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을 정도로 루터 역시 맥주를 즐겼다 6 비텐베르크는 루터로 꽉 찬 도시 같다 ●밤베르크Bamberg 천년의 낙차를 여행하다 루터가 살았던 중세를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밤베르크만한 곳이 없다. 이름도 생경한 이 도시에 들어서려면 다소 긴 관문을 통과한다. 뮌헨 공항에 내려 세 시간여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이 도시에 다다르면 여독보다 더 강렬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이동의 피로감은 뒷전이 된다. 밤베르크는 수로를 따라 발달한 도시다. 볕에 대기가 달궈지기 전 찬 공기와 만난 수면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니 그 운치는 몇 곱절로 늘어난다. 시간이 흐르자 밤베르크에는 볕이 가득하다. 조도가 높았다. 워낙 일조량이 적은지라 아이가 태어나면 항우울성 예방주사부터 맞힌다는 독일에서 운 좋은 시작이었다. 골목골목 독일 특유의 목조건물이 즐비하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담장을 넝쿨이 따라간다. 약속이나 한 듯 건물 위에 얹은 빨간 지붕 옆으로 너른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 건물과 자연의 보색대비가 도드라진다. 느릿한 걸음으로도 두 시간 남짓이면 도시를 크게 한 바퀴 휘감을 수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 간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는 1993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인리히 2세 황제가 신성로마제국 중심지로 가꾼 밤베르크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 때문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쯤은 감내해야 한다. 황홀한 낙차를 즐기며 걸음걸음을 옮기다 보면 밤베르크가 살아있는 고도古都라는 데 공감이 간다. 레그니츠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업을 잇던 어부들의 집 주변으로 상가가 조성돼 있다. 지금도 그곳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점이 늘어섰다. 꽤나 낡아 보이는 집들도 아직 짱짱한 현역이다. 밤베르크 사람들은 고작 몇백년 된 건물이라고 받아친다. 우리 같았으면 당장 ‘진입금지’를 뜻하는 펜스부터 둘렀을 법한데 10세기에 조성된 이 도시는 현대적인 기능까지 돋보인다. 겹겹이 쌓인 지층처럼 천년의 시간 위에 현재의 삶이 덧입혀진 모습이 아름답다. 과거를 기억하는 건 비단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선조의 문화를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이들이 밤베르크 여행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가장 유명한 곳은 슈렝케를라Schlenkerla로 불리는 양조장. 밤베르크에 있는 8개의 맥주 양조장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비틀 걷는 모양이라는 뜻의 의태어가 가게 이름이 됐다. 지금도 아버지의 아버지가 마시던 맥주를 마시려는 애주가들로 슈렝케를라 앞은 북적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맥주 맛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훈증을 거친 몰트로 맥주를 빚기 때문에 ‘훈제맥주’로 불리는 맥주는 구운 치즈와 같은 향을 가졌다. 짙은 훈제맥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건 밤베르크 여행의 색다른 묘미다. 6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현 주인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훈제맥주는 ‘적어도 세 잔은 마셔야 진가를 알 수 있다’며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안주를 공수한다. 맥주는 인류가 천년을 이어온 고급문화의 정수라며 문명이 있는 곳에 술이 있다고 한다. 옛 맛을 기억한 손님이 다시 찾아와 줄 때 가장 행복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맥주는 마시자마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리퀴드 타임머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했다. 덕분인지 밤베르크 성인의 맥주 섭취량은 독일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성인 한 명이 연중 288L의 맥주를 마신다고 하니까. 중세부터 지금까지 밤베르크 사람들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외쳤던 루터의 ‘명언’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밤베르크의 맥주로 미각을 깨웠다면 이제 영혼을 깨울 차례다. 밤베르크의 역사는 건축물로 상징된다. 구시가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노란빛 구시청사가 위태롭게 자리했다. 반면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황제의 대성당Imperial Cathedral과 성미카엘교회St.Michael’s Church는 위풍당당하다. 이 건축물들의 대비가 정치와 종교의 투쟁을 겪어 온 유럽의 역사를 드러낸다고 하면 오산일까. 지금도 밤베르크 시민의 90%는 가톨릭을 믿고 있을 만큼 구교의 위세는 예부터 대단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시선이 맞닿는 곳에 대성당과 교회를 지었고 교회 내부 또한 화려하게 꾸몄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천국임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금은보화로 교회를 치장하는 것이었다. 밤베르크 교회는 더 나아가 그 당시 가장 희귀했던 식물 578가지를 천장에 수놓았다. 중세 유럽에 처음 전파된 토마토도 보인다. 값지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교회에 있었다. 종교는 교회만큼 아름다운 사후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장했다. 하지만 교회의 절대적인 권력에 슬슬 금이 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시청사 부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교는 한뼘의 땅도 허락하지 않았던 탓에 시민들은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 한복판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주교의 소유권이 강을 경계로 끝난다는 데 착안한 묘수였다.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 시민의식이 한데 모아져 보란 듯이 인공섬 위에 시청을 세웠던 것이다. 그제야 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의 구시청사를 아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싸워서 얻어낸 성지와도 같았다. 그래서 지금껏 밤베르크의 랜드마크는 교회와 성당이 아니라 낡은 시청사다. 절대적이었던 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라….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 있는 도시 어디에서든 루터의 흔적이 보였다. 껑충 시간을 뛰어넘은 여행자에게 밤베르크는 루터 여행을 매듭짓기에 완벽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모던 아트와 결합된 황제의 대성당 2 실제로 운행되는 증기기차. 밤베르크와 쌍둥이 도시인 퀘들린부르크에서 탑승할 수 있다 3 7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 천천히 골목골목을 걷기 좋다 4 슈렝케클라에서 훈제 맥주와 맛보는 전통음식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ravel/kr 02-773-6430 ▶travie info 밤베르크 비어 투어 맥주가 없는 밤베르크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비어 투어는 가이드와 함께 도시 내 양조장을 돌며 밤베르크의 맥주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 2013년 12월까지 운영된다. 밤베르크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한다. 비용 1인당 20유로 문의 0951-2976-200 홈페이지 www.bamberg.info ●Travel to Lutherstadt 루터 도시 기행 루터를 더 깊숙이 체험할 수 있는 루터의 도시들 아이제나흐Eisenach 루터가 학생 시절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에는 1483년부터 1501년까지 루터가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루터의 집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 멋진 담장이 인상적이다. 학창시절을 보여 주는 전시품을 통해 루터의 과거를 엿볼 수 있을 뿐더러 현대적인 전시관에는 멀티미디어 기술로 종교개혁을 재현해 놨다. 에어푸르트Erfurt 독일의 중부지방에 위치한 에어푸르트는 오늘날 튀링겐주의 주도다. 중세 도심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시가가 인상적. 구불구불한 골목과 광장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마리아 성당과 세베루스 교회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돋보인다. 중세시대 종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글로리사’도 볼 수 있다. 매년 11월10일 수천명의 에어푸르트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대성당 광장에서 마틴 루터의 생일을 축하한다. 슈말칼덴Schmalkalden 섬세하게 복구된 중세 목조 건물들과 뾰족한 계단 모양 지붕이 있는 석조 건물들, 후기 고딕 양식의 성게오르그교회, 르네상스 시대의 빌헬름스부르크성이 도시의 역사를 전해 준다. 슈말칼덴의 군주였던 필립 폰 헤센은 최초의 개신교 선제후 중의 한 사람으로, 카를 5세에 맞서던 인물. 16세기 독일 및 유럽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도시다. 토어가우Torgau 마틴 루터는 “토어가우의 건축물들은 그 아름다움에서 모든 고대 건축물들을 능가한다”고 평했다. 토어가우에는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들이 500여 곳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수많은 문화유산 건축물들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술을 보여 주고 있다.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의 무덤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루터 도시로 Rail & Fly 밤베르크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뮌헨공항,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에서는 베를린공항이다. 루프트한자가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 각각 주 6일, 주 7일 운항하고 있다. 베를린까지는 루프트한자 국내선을 이용할 수 있다. 루프트한자 국제선과 독일철도를 연계해 사용할 수 있는 Rail & Fly 티켓 서비스도 편리하다. 독일 내 모든 기차역에서 독일 국제 공항까지 이동하는 티켓이 편도 25유로, 왕복 50유로부터 제공된다. 루프트한자 한국어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www.lufthansa.com 1 밤베르크에 있는 어부들의 집. 중세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 성당에 현대적인 조각을 함께 설치한 독일인들의 부러운 감각 3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중세 독일 기행. 골목길마다 작은 탄성이 이어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소비세 인상·원전사고 대책 미흡… 불신 키워

    소비세 인상·원전사고 대책 미흡… 불신 키워

    2009년 중의원(하원) 총의석 480석 중 64%인 308석을 얻어 54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일본 민주당이 16일 총선에서는 100석 이하의 의석을 획득하는 데 그쳐 참패했다. ●480석 중 100석 이하 획득 1998년 중도 노선을 표방하며 창당한 민주당은 2003년 옛 자민당 탈당 세력을 중심으로 한 오자와 이치로의 자유당과 합쳤다. 합당 이후 5년 만에 자민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았다. 의기양양하게 등장한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재정 지출의 물줄기를 바꾸고 복지를 확충하며 아시아 중시 외교정책을 펴겠다고 공약했으나 대부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2009년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마찰을 빚다 정권 자체가 흔들렸다. 2010년 간 나오토 총리가 들어선 뒤 참의원(상원)에서 패배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민주당은 나락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여기에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이후 미흡한 사고 대책으로 민심이 돌아섰다. 민주당이 2009년 총선 당시 아동수당 등 포퓰리즘적 정책을 대거 채택하고 소비세(부가가치세) 동결을 공약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지난 8월 자민당, 공명당 등 야권의 힘을 빌려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다. ‘증세는 없다’며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공약까지 파기하자 당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했다. 부채 비율이 230%에 달하는 일본의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는 세출 조정과 함께 세수 확대가 절실하지만 소비세 인상은 ‘정권의 무덤’이 됐다. ●한·중과 영토 갈등… 지지층 이탈 보수 성향의 노다 총리는 영토 문제로 한국, 중국과 갈등을 빚는 등 민주당을 ‘도로 자민당’으로 만들어 놔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까지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민주당 지도부의 내분도 악영향을 미쳤다. 간 전 총리와 노다 총리는 민주당 정권의 ‘대주주’인 오자와 전 간사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했고 이에 반발한 오자와는 결국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해 분당 사태에 이르렀다. 결국 민주당 정권 3년은 결국 진보·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감만 키워놓은 꼴이 됐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