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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00년 된 세계서 가장 오래된 ‘바지’ 발견

    3300년 된 세계서 가장 오래된 ‘바지’ 발견

    만들어진지 약 3,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고(最古) 바지가 발견돼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과학전문주간지 사이언스뉴스 온라인 판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진이 중국 신장(新彊) 위구르 자치구 서부 ‘타림 분지’ 유적에서 3,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지를 발견했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타림 분지 양하이 무덤유적에서 발굴된 이 바지는 함께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벨트, 천 조각 등 기타 부장품과 함께 발견됐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밝혀진 이 바지의 제작연도는 놀랍게도 약 3,300년 전. 이것이 확실하다면 이 바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지라는 기록을 얻게 된다. 3쌍의 천 조각이 맞물려져 만들어진 이 바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 상당히 마모가 진행되었음에도 훌륭한 보존 상태를 유지해 발굴자들을 놀라게 했다. 여기에서 주어진 질문은 한 가지 더 있다. 과연 이 바지를 입었던 주인은 누구이고 용도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단서는 함께 출토된 다른 물품에서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바지와 함께 채찍, 전투 도끼, 활 등도 발굴했는데 이는 바지가 ‘승마용’ 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언어학자 빅토르 메어 박사는 “아마 해당 시기, 타림 분지 일대에 거주하던 유목민이 말을 타고 사냥할 때 쓰던 용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바지의 기원은 고대 유목민들이 승마 시 불편하지 않도록 개발된 의류에서 찾을 수 있다. 학자들은 해당 시기를 약 4,000년 전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발굴된 바지의 측정연대와 엇비슷해 상당한 설득력을 주고 있다. 한편 양하이 무덤 유적은 총 면적 5만 4,000㎡에 달하는 광활한 고대 무덤지역으로 타림 분지 특유의 건조 기후가 수천 년간 묻혀있던 의류 및 기타 유물 을 보존에 큰 도움이 됐다. 현재까지 해당지역에서는 1970년대 첫 발굴이 시작된 후 500개가 넘는 무덤유적이 발견됐다. 사진=사이언스뉴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밝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담론이다. 이미 19세기의 토머스 칼라일은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권력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고, 20세기의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은 텔레비전의 거대한 위력을 보고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언제나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함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되면 그것은 사회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지 못하고 무서운 폭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제4의 권력’이라고 말하는 언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웨인 부스는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사실과 가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언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담론이지만, 고급한 정론지(혹은 건강한 공정방송)의 길을 걷지 못하고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저급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지닌 가치와 사회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오히려 사회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뉴스의 가치는 신속·정확함에 있다고 하지만, 거의 모든 방송사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끝을 보겠다는 자세로 24시간 계속해서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카메라로 비쳐 국민들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MBN과 JTBC는 정부를 불신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겠다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자학(自虐)에 빠질 정도로 집단적인 외상(外傷)을 입혔다. 이러한 일부 방송사들이 보인 무절제한 태도에 말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나라 전체가 완전히 침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때문에 블레이크의 말처럼 ‘뼈가 묻힌 무덤이라도 달구지는 몰아야’ 한다. 수장(水葬)을 한 304명이나 되는 후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쓰러져 있지 않고 일어나야만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슬픔을 위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문학적인 담론을 얘기한다면, 비록 방송인들은 뉴스는 신속해야 하고 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것이다. 화이트헤드와 폴라니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우주에는 사실과 가치가 분리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들이 세월호 참상에 대해 나라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절제력 잃은 충격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너무나 많이 난립한 방송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문제로 인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방송기자들이 시청자들에 대해 언제나 일방적인 통로로 담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착시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권력이 강해지면 아이러니하게 자칫 그것의 힘에 지배되거나 압도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린 불손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 윌리엄 피트는 “무제한의 권력은 지배자를 타락시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중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제4의 권력을 행사하는 언론사들이 KBS처럼 겸손의 미학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물론 동료 간의 신뢰마저 버리고 진영 논리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면,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최근 언론인 5623명이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국선언을 하며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 “고대 개, 거대한 매머드 멸종에 큰 역할”

    “고대 개, 거대한 매머드 멸종에 큰 역할”

    인간의 가장 오래된 애완동물이자 친구인 개가 1만 년 전 매머드 멸종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매머드는 1만 년 전 급격한 지구 기온 변화와 인간의 사냥으로 멸종했다는 주장이 유력했던 가운데, 여기에는 인간이 사육하고 길들인 개 역시 한 몫을 했다는 주장이 새로 나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연구팀은 유럽 전역의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에서 수많은 매머드의 흔적 및 매머드의 뼈로 지은 주거지를 발견했다. 이 주거지는 4만5000~1만50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초기에는 매머드의 뼈를 포함한 각종 동물의 뼈로 지어졌다. 연구팀은 고대 인류가 이렇게 많은 매머드를 도축할 수 있었던 원인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했다. 벨기에 왕립자연사박물관 연구팀과 함께 이번 연구를 이끈 팻 쉽맨 박사는 “그 당시에 몇 되지 않은 도구(무기)로 어떻게 이 많은 매머드를 죽일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었다”면서 “다양한 화석과 유적지에서 거대한 이 육식동물(매머드)이 인류 초기에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개의 사냥감이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쉽맨 박사는 매머드의 ‘거대 무덤’에 늑대가 아닌 잘 길들여진 갯과 동물의 흔적을 함께 발견했고, 또 수많은 매머드가 죽어있는 유적지에서 매머드 뿐 아니라 고대 늑대와 여우 등의 포식자 화석도 함께 발견됐는데, 이것이 인류의 ‘오랜 친구’인 개가 늑대나 여우를 대신해 매머드를 죽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증거로 연구팀은 보고 있다. 쉽맨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개는 인간보다 움직임이 빠르고 여러 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거대한 동물을 에워쌀 수 있으며 사냥이 계속되는 동안 으르렁거리거나 짖는 등의 행위로 매머드를 한 곳에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이러한 ‘기술’이 매머드 사냥의 성공률을 높인 것으로 추측된다. 과거에 인간이 길렀던 개는 몸집이 커서 사냥물을 집으로 가지고 오거나 사냥한 동물의 사체를 지키는데에 유리하기도 했고, 여우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육식동물에 매우 경계적인 태세를 보이는 성질이 있으며, 자신만의 구역과 먹잇감을 지키는데에 매우 민감한 특성이 있다. 연구팀은 개가 매머드 사냥에 주된 역할을 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더 자세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논문은 과학전문매체인 Phys.org에 소개됐다. 사진=체코에서 발견한 2만5000년 전 갯과 동물 화석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금동관모 등 초기 백제 유물들 화성서 첫 발굴

    금동관모 등 초기 백제 유물들 화성서 첫 발굴

    경기 화성에서 백제시대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금제 귀걸이, 둥근고리 큰칼(환두대도), 마구류 등 고급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발굴 전문 기관인 한국문화유산연구원과 문화재청은 화성 향남2지구 동서간선도로 예정지의 삼국시대 덧널무덤(목곽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유물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두었던 한성백제에서 웅진(공주)·사비(부여)백제 시대로 넘어가는 4~5세기 유물들이 경기지역에서 처음 출토됐다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 금동관모와 금동신발이 경기지역에서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단은 “5세기 이후 백제의 본거지였던 충청권에선 이들이 상당수 출토됐으나, 초기 한성백제의 본거지인 경기권에서 발굴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출토품 중에는 목관에 쓰인 꺾쇠와 관못 등 목관 제작 방법을 알 수 있는 유물도 다수 포함됐다. 학계에서는 이 유물들을 백제 조정이 지방세력에게 권위의 징표로 내려준 ‘위세품’으로 보고 있다. 위세품은 희귀한 물건을 독점해 신분을 과시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2003년 공주 수촌리 유적에서 비슷한 유물이 대거 발굴되면서 백제의 영역을 구분 짓는 단초가 됐다. 조사단은 “이곳의 목관 결구 방식은 공주 수촌리 고분군과 비교 대상”이라며 “목곽 모서리에 철정이라고 하는 덩이쇠를 묻는 방식은 오산 수청동 고분군, 서산 기지리·부장리 고분군과 매우 유사하다”고 밝혔다. 이은석 문화재청 연구관은 “금동관모, 금동신발 등 유물은 4~5세기 화성 일대가 백제의 주요 거점이었음을 알려 주는 동시에 백제가 중국과 교역하던 주요 루트였다는 사실을 추정하게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베들레헴의 화해

    베들레헴의 화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현지시간)부터 3일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등 중동 순방에 나섰다. 바티칸과 교황은 “기도하는 자의 성지 순례”라며 종교 행사로 선을 그었지만 종교적, 정치적 전쟁으로 얼룩진 중동의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동 순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쟁지를 피하기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 분쟁 지역과 가톨릭·동방정교회·유대교·이슬람교 갈등 지역을 방문해 화해와 평화를 설파하고 있다. 첫날 요르단 암만의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한 그는 사실상 종파 분쟁인 시리아 내전에 대해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교황은 “수많은 난민의 유입에 따라 인도주의적 비상 상황을 맞게 된 요르단을 국제사회가 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며 협력을 호소했다. 둘째 날인 25일에는 팔레스타인이 통치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다. 이스라엘을 거치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직접 방문한 교황은 그가 처음이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교황이 베들레헴 구유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을 바티칸에 초대하고 싶다”고 밝히자 양측은 즉각 수락 의사를 밝혔다. 아바스 수반의 대변인은 “(바티칸에서의) 정상회담이 6월에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페레스 대통령 측은 “교황의 초청을 환영한다. 대통령은 평화를 가져오는 모든 방안을 지지해 왔다”고 밝혔다. 교황은 아바스 수반을 만난 뒤 난민촌으로 향했다. 마지막 날인 26일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이동해 역대 교황 중 최초로 ‘헤르츨의 무덤’에 헌화한다. 유대계 언론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 운동)의 창시자로 유대 국가 건설을 주장한 인물이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가진 ‘마가의 다락방’(시나클)을 방문해 미사를 집전한다.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 성지로 여기는 만찬방에서 교황이 미사를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교황은 이번 순방에서 오랜 친구인 아르헨티나의 유대교 랍비, 이슬람교 지도자와 동행했다. 바티칸은 교황이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공식 일정에 동행하는 것은 최초라고 밝혔다. 종교적 분쟁을 완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동방정교회 수장인 바르톨로메오스 1세 총대주교와 만나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간의 우호 선언에 서명할 계획이다. 1054년 전 종교적 원칙 문제로 갈라진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그의 광폭 행보가 긴장 완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특히 헤르츨 무덤 방문, 마가의 다락방 미사 등에 대해 각각 이해가 다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극단주의자들의 불만이 크다.이스라엘 경찰은 극단주의자 15명에 대해 교황 방문지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으며 교황 방문지에서 시위 중인 극단주의자 26명을 체포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펴낸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저자와 차 한잔]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펴낸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500년 이상 이어진 왕조의 왕릉 가운데 훼손 없이 원래의 모습이 보존돼 있는 건 세계적으로 조선 왕릉이 유일합니다. 두 곳만 빼곤 도굴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종호(66)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이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북카라반)조선왕릉 편과 전통 마을 ①편을 동시에 출간했다. 그는 조선 왕릉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시신과 함께 묻힌 부장품이 모조품이었기에, 다시 말해 가짜였기에 도굴해봤자 돈이 안 됐던 거죠. 임진왜란 때 선릉이 파헤쳐 졌으나 진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후엔 도굴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는 모조 부장품의 종류와 내용은 ‘산릉도감의궤’란 책에 상세히 남아 있다고 전한다. “42기의 조선 왕릉 가운데 선릉과 정릉을 제외하곤 그 어떤 왕릉도 도굴되지 않았던 다른 이유는 과학적인 건축 기술도 한몫을 했습니다. 왕릉 석실의 벽과 천장은 두께가 76㎝나 되는 화강암을 통째로 사용했습니다. 또 석실 주변에는 일종의 시멘트라고 할 수 있는 삼물을 120㎝ 두께로 둘러쌌습니다. 또 다른 도굴 방지책들도 여럿 도입했습니다.” 저자는 “죽은 이에게 명당은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좋으며,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이면서 토양이 중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땅은 대개 산성입니다. 그런데 명당의 토양을 조사해 보니 중성이더라고요. 중성의 땅은 뼈를 보존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수천년간 썩지 않고 남아 있는 단군 묘터의 토양도 중성입니다.” 그는 조선 왕릉이라는 유산이 훼손 없이 남아 있는 이유의 근본은 과학에 입각해 무덤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져 갈 게 없이 만들어서 도굴 의욕이 생기지 않게 하고 혹 그래도 있을지 모르는 도굴에 대비해 철저한 방지책을 마련한 것이 가장 과학적인 대비책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전통 마을 ①편은 현재 남한에 남아 있는 20여곳의 전통 마을 가운데 10곳을 답사한 기록으로, 저자는 그곳에서 마을의 문화가 형성된 배경뿐만 아니라 마을을 조성한 사람들의 과학적 속성까지 분석했다. “충남 아산군 송악면에 있는 외암마을은 풍수지리에 딱 들어맞는 천혜의 입지가 아니라 실상은 불리한 입지에 조성된 마을입니다. 위치상 겨울에 북서풍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우백호 역할을 하는 소나무 숲을 인공적으로 조성해 방풍림 역할을 하게 했죠. 또 가옥은 왼쪽으로 향하게 했죠. 모두 강한 북서풍을 막기 위한 조치죠.”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크기를 감안할 때 풍수지리를 충족하는 입지가 많지 않다”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하려는 선조들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과학적인 대응을 하게 만들었다”고 밝힌다. 그는 “우리나라 기후나 자연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초가집”이라면서 “초가집을 황토로 지으면 금상첨화”라고 말한다. “짚으로 만든 지붕은 가벼운데다 비와 눈을 잘 막고, 좋은 단열재이기도 합니다. 두꺼운 황토는 흙이 습도를 저절로 조절해주기 때문에 가습기가 필요 없습니다. 또 유익한 미생물도 많습니다.” 건축공학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10여개의 특허를 20여개국에 출원했고, 9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앞으로 전통 마을 ②편을 포함해 공룡 편, 유네스코 세계유산 편, 국보 건축물 편 등으로 나눠 과학문화유산 답사기를 6~7권 더 낼 계획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26년전 골동품점서 산 유화, ‘달리 진품’ 확인

    26년전 골동품점서 산 유화, ‘달리 진품’ 확인

    26년 전 스페인 골동품점에서 150유로(약 21만원) 정도에 사들인 유화 1점이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의 진품으로 확인됐다고 미술 전문가들이 22일 밝혔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의 미술사가인 토메우 라모가 소장하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자궁으로부터의 탄생’(The intrauterine Birth)은 그가 1988년 스페인 북동부 지로나에 있는 한 어수선한 골동품 상점에서 2만 5000페세타(당시 통화단위)를 주고 구매한 것으로, 그동안 진품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어 왔다. 이 작품은 화산 상공을 나는 천사들이 그려져 있으며 달리의 서명도 들어가 있다. 토메우 라모는 “작품의 색상을 보고 달리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지 이는 사견에 불과해 증거는 없었다”면서 “조사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달리의 그림이라는 확신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처음엔 미술계에서 진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서명 옆에 “1896”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 이 시점은 달리가 태어나기 8년 전에 해당한다. 2004년부터 2013년에 걸쳐 적외선과 엑스선, 자외선 등을 이용한 최신 기술로 감정한 결과, 미술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확실히 달리가 17세였던 1921년쯤 그린 작품이라고 결론지었다. 달리 연구의 일인자로 이 작품의 감정 작업을 진행해 온 니콜라 데샤르네는 “이 그림이 달리의 손에 의한 최초의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1896’이라는 숫자에 대해 라모는 엉뚱한 주장을 하거나 미디어를 시끄럽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달리의 작품이니 쉽게 찾게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을 속이는 데 성공한 달리는 반드시 무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모는 이달 이 작품을 익명의 수집가에 매각했다고 한다. 매각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은 이번 발표에 대해 아직 어떤 성명도 밝히지 않았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시론] 교실과 선실/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시론] 교실과 선실/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모처럼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 친구들과 여행할 생각에 잠을 설치며 그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여행은 결국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경기 안산 단원고의 어느 교실 칠판에 ‘꼭 돌아오기’, ‘죽지 말기’라는 과제가 적혀 있지만, 아직 시신조차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희생자들이 찍은 동영상이 복원되면서 사고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동영상을 볼 때마다 사고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같아 가슴이 꽉 막힌다. 나란히 서서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지척에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 그러나 선실에서는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만 계속 흘러나올 뿐이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처럼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만일 어른들의 말을 의심하거나 거역할 용기가 있었다면 선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 주었다면, 몇 개의 문과 창문이라도 열어 주었다면, 그 선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파된 교실은 이제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처박혀 있다. 그곳에서 구명복의 끈을 서로 묶어주며 죽음의 공포를 견뎠을 아이들. 그러나 구명복은 고스란히 수의가 되고 말았고, 산산조각난 선실의 부유물들만이 바닷물에 둥둥 떠다닌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제 목숨만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존재에 불과했다.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선장과 선원들에게 아이들의 목숨은 짐짝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은 안산 단원고 아이들만의 것일까. 수학여행과 야외활동을 금지하거나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예방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4월 16일 세월호를 예약한 학교가 바뀌었다면, 그 희생자 명단 속에는 바로 내 아이의 이름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온 국민이 유족들의 슬픔을 함께하며 집단적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도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의 대열에 동참한 학생이나 교사를 불순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게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면, 타인의 슬픔에 감응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하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세월호 밖의 수많은 교실에서는 지금도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은 그 명령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걸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는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대한민국호의 침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을 살펴볼수록 어느 구석 썩지 않은 곳이 없고, 유착과 편법을 통해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행태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뒤늦게나마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개조를 언급한 것은 그 총체적 난국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해경 해체나 정부조직 개편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풍토가 개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심성이 달라지지 않는 한 급조된 후속 조치들은 포장 바꾸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획일화된 가치와 규칙을 강요하는 교육으로는 자율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없다. 공부라는 패키지 상품을 학생이라는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교육으로는 공생적인 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 지금도 난파된 교실에는 아이들이 갇혀 있다. 의자 밑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들과 유리창을 탕탕 두드리는 손들이 있다. 그 완강한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 [기본을 지키자] 요람에서 무덤까지 연줄문화 청산하자

    [기본을 지키자] 요람에서 무덤까지 연줄문화 청산하자

    주부 김현선(38)씨는 주말마다 7살짜리 아들을 서울 강남의 한 사설 축구교실에 보낸다. 강동지역에 사는 그는 애초 집 근처 축구교실에 아이를 등록시키려 했지만 “‘친맥’(친구 인맥)을 관리해줘야 한다”는 주위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알고 보니 5~6살 된 이웃 아이들도 강남지역 문화센터의 블록(교육용 놀이)교실이나 수영장에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김씨는 “아이들이 영악해서 초등학생만 돼도 집안 배경을 따져 친구를 사귄다더라”면서 “평생 갈 인맥인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좋은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친구를 사귀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맥에 의존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연줄 문화’는 요람에서 황혼까지 이어진다. 일부 젊은 학부모들에게 자녀 인맥관리의 시작은 초등학교, 혹은 이전부터 시작된다. 교육·경제 수준이 높은 데다 학부모 네트워크가 끈끈한 강남지역의 산후조리원이나 어린이집 등에 강북이나 분당에서 원정을 오는 경우가 많다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주부 윤모(42·서울 석촌동)씨는 “중·고교 때 조기 유학을 가거나 대학 학부를 외국에서 나오는 건 인맥을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돼 요즘 부모들은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사립 초등학교와 중학교, 외국어고 또는 자립형 사립고 등을 나오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한국에서 사회생활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 비슷한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가진 부모를 둔 아이들끼리 그룹과외를 해 인맥을 쌓거나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몰리는 종교 시설에 아이를 일부러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선·후천적으로 마련된 연줄은 구직과 취업 이후 힘을 발휘한다. 한 취업 전문가는 “대기업의 서류 전형 등에서는 연줄을 동원하기 어렵지만 면접 단계까지 가거나 인턴 등을 통해 구직을 시도하면 인맥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 이후에도 유력인사의 자녀로 알려지면 후견인을 자처하는 상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대형은행에 다니는 김모(33)씨는 “여전히 출신 학교나 출신지 등을 따져 자신의 ‘라인’을 만들고 관리하는 임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해피아(해양수산부 관료+마피아) 논란에서 보듯 퇴직 뒤 재취업에도 패거리 문화는 힘을 발휘한다.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행정고시로 해마다 300명가량을 뽑으니 인사 적체가 심하고, 현직에 계속 남는 후임자는 퇴직하는 전임자가 (공공기관 등) 좋은 곳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길을 봐주는 암묵적 계약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또 공기업에서도 ‘갑’인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출신이 기관장 등으로 오면 외풍을 막아줄 수 있다고 보고 오히려 ‘낙하산’ 인사를 환영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성장과 효율에만 매몰된 탓에 ‘연줄’을 무기로 활용하는 관행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연고주의에 의지하는 것이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 “정해진 법규나 규칙을 뛰어넘으려다 보니 연줄을 동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 상명대 교수(금융경제학)는 “사회시스템이 낙후한 탓에 연줄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다”면서 “기업을 비롯한 조직에서 인사평가 때 성과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다 보니 학연·지연 등 연줄에 의존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대 이집트, ‘날씨’ 때문에 멸망…근거 찾았다

    고대 이집트, ‘날씨’ 때문에 멸망…근거 찾았다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고대 이집트 왕국이 급격한 기후변화 때문에 멸망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뉴욕 코넬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이집트 문명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파라오 세소스트리스 4세의 피라미드 인근에 묻혀있던 관에서 추출한 나무조각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나무의 방사성탄소를 측정해 역사를 추정하는 ‘Dendro radiocarbon wiggle matching’ 기술을 이용했다. 오차범위 10년 이내의 정밀한 기술로 알려진 이를 토대로 해당 관에 쓰인 나무의 나이테를 정밀 분석한 결과 따뜻해야 할 시기에 비정상적으로 기온이 바뀐 흔적을 찾아냈다. 이는 급격한 기후변화, 즉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뭄의 증거이며, 가뭄은 곧 전쟁과 기근, 질병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가뭄은 식량 및 사회공공시설 전반을 파괴했고, 결국 이집트 문명은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연구를 이끈 사투아르트 매닝 박사는 “나무의 나이테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급격한 기후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면서 “BC2000년 경 이집트에 가뭄이 불어 닥쳤고, 이것이 정치적·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왕국이 가뭄으로 멸망했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발표된 바 있지만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10년 영국 런던대학교의 페크리 하산 교수 역시 같은 주장을 펼쳤는데, 이집트 남부에 있는 고대 지방 통치자 ‘안크티피’ 무덤에서 상형문자로 쓰인 역사 기록을 근거로 제시했다. 기원전 2200년 전 작성된 이 기록은 “모든 사람들이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고 결국 자신의 자식마저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팀은 “이집트 인근 이스라엘 지역의 연간 강수량이 20% 이상 줄어들었으며 지구 곳곳에서 가뭄 등 급격한 기후변화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나일강을 기반삼아 발전한 이집트 고왕조 문명이 갑자기 몰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실패에서 배운다’ 인간 한계 도전한 시도들

    ‘실패에서 배운다’ 인간 한계 도전한 시도들

    위대한 실패/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장혜경 옮김/율리시즈/336쪽/1만 5000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실패자에 대한 기록은 잘못된 것, 극복해야 할 대상 정도로 사용된다. 독일 작가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는 “과거에 대한 언급이 항상 옳은 것일 수는 없다”면서 그렇게 ‘기만당한’ 역사적 사실과 사람들을 끄집어냈다. ‘위대한 실패’는 그중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시도에서 비롯된 12가지 실패를 살핀다. 저자는 “야망, 노력,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에 얽힌 매혹적인 이야기라는 점과는 별개로 이러한 큰 실패 사례들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고 했다. 제목에 붙은 ‘위대한’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고, 때론 황당한 계획이었지만 그조차 후대에 남기는 메시지가 있다는 의미다. ‘보베 생 피에르 대성당’이 저자가 드러내고자 한 오만과 자만이 부른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고딕’은 구시대적인 것, 교회의 음험한 지배, 비참한 백성의 생활 등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한 경멸의 의미로도 쓰인다. 생 피에르 대성당은 그 표상이자 과욕이 부른 불행이다. 1140년 7월 프랑스 국왕들의 무덤이자 가문의 수도원인 생 드니 베네딕트 수도원은 성당을 고딕 양식으로 개축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으로 권위를 과시하기 좋은 고딕식 대성당이 완공되자 다른 성당들은 너도나도 그 스타일을 따랐다. 생 드니 개축 이후 300년 동안 프랑스에는 대성당 100개가 건축됐고, 대형 성당도 500여개가 생겼다. 현대의 마천루 경쟁의 시초라 할 만하다. 서로 최고가 되려는 경쟁에 프랑스의 부자 도시 중 하나인 보베가 뛰어들었다. 왕실 관할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보베의 주교들은 세속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위용을 뽐낼 만한 성당 건축에 나섰다. 그러나 건축은 경제, 권력이동 등 상황 변화에 취약한 프로젝트라는 것을 간과했다. 1225년 성당 건축을 시작한 뒤 제단을 완공한 1272년까지 주교가 세 번 교체됐고, 공사는 진행과 중단을 반복했다. 1284년 11월에는 제단 천장이 무너졌으나 어수선한 시대 분위기 탓에 1480년대에야 재건축이 논의됐다. 1560년대 135m짜리 종탑을 완성했지만 1573년 탑이 내려앉는 재앙을 맞았다. 현재 보베 대성당을 동쪽에서 보면 장대함에 놀라지만 남쪽 면으로 돌아서는 순간 옹색한 외관을 가진 건물이 되고 만다. 연속된 불행의 결과이자 자만이 부른 참담한 흔적이다. 책은 또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의 의사·언어학자였던 루드비히 자멘호프를 불러온다. 공동의 언어를 갖게 되면 모든 민족적 증오가 사라질 것으로 믿고 국제 언어인 에스페란토를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자국 언어의 쇠퇴를 우려한 강대국의 반대와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보급 운동은 실패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상주의적 노력의 실패가 위대한 것은 비록 비현실적이지만 그 목표의 숭고함은 영속하기 때문”이라면서 “어떤 역경에도 씩씩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인류가 짊어진 숙제요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이 밖에도 기존의 달력을 바꿔 ‘1주 10일’을 주장했던 프랑스 혁명력,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고자 지중해 수면을 낮추려 했던 아틀란트로파 계획, 인간 본성의 개량을 목표로 시도됐던 인간과 원숭이의 교배 등을 다룬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 당대 역사와 실패의 원인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풀어내면서 나름의 해설을 덧댄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심해 2,000m 속 ‘고래·상어 공동묘지’ 발견

    심해 2,000m 속 ‘고래·상어 공동묘지’ 발견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몸집으로 대양을 누비는 고래와 날카로운 이빨과 타고난 사냥 감각으로 물고기들의 공포존재로 위압감을 과시하는 백상아리들이 노쇠하고 지쳤을 때 찾는 마지막 안식처는 어디일까? 영국 BBC 방송은 플리머스 대학 해양연구소 연구진이 아프리카 앙골라 인근 심해지역에서 거대 고래, 상어들의 전용 묘지를 발견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앙골라 해안 심해 2,000m 지역에서 발견된 해당 지역은 수m~수십m에 달하는 고래와 백상아리 등의 대형 해양 동물들 사체 4구가 잠들어있었고 주위에 50여개가 넘는 바다 가재, 새우, 게, 먹장어, 해삼 등 일명 ‘바다 청소부’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수중원격탐사장비로 관측된 해당 지역은 일명 ‘고래무덤’이라 불리는 곳으로 총면적 1㎢에 달한다. 연구진은 이 고래무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온 심해 생물 생태계의 중요 식량공급처로 추정했다. 실제로 고래와 같은 대형 어종이 조용히 해당 지역에서 사망하면 주변 내 갑각류, 장어 등 어종들이 모여드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대형 동물의 사체가 해당 지역 평균 식량 공급량의 약 4%를 제공하는 것으로 연구진은 파악했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 온라인 학술지인 ‘PLos one’에 발표됐다. 사진=BBC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최인훈 ‘광장’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최인훈 ‘광장’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됐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물의 정체는 갈등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이명준의 이 독백은 이명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이명준은 어떻게 했을까. 분명한 것은 적어도 그가 전후의 파편화된 현실을 그대로 추인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광장이 집단적 삶, 사회적 삶을 상징하고 밀실이 개인적인 삶, 실존적 삶을 상징한다면 ‘광장 없는 밀실’(남한)과 ‘밀실 없는 광장’(북한)은 1950년대 한반도에 존재한 두 자화상이었다. 이명준은 이러한 상황을 자포자기하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3의 선택을 한다. 작가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4·19는 세월을 어떻게 산 것인가에 대한 국민의 의사 표현으로, 광장을 쓰게 한 추동력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듯이 이 작품은 4·19혁명 후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독재에 대한 저항에서 탈출구를 분명하게 발견하지 못한 시대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6·25 한국전쟁 전후 시기다. 1948년쯤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이명준은 남한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죽고 철저한 공산주의자인 아버지 이형도는 월북한 상태였다. 공산주의자 아버지와 달리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한 그였지만 그가 현실에서 대면하는 것은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꺾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구’,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여 있는 광장’이다.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비어 죽는 곳’이 남한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대남 비난 방송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치안 당국자들에게 고문을 받으며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으리라는 기대는 무너진다. 밀실의 보루였던 윤애와의 사랑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이명준이 이상적인 사회를 기대하며 간 북한도 다르지 않다. 이명준은 북한에서 기자로 활동하지만 획일화된 기사내용만을 강요받을 뿐이다. 이명준이 보기에 ‘광장에는 꼭두각시뿐 사람이 없는’, ‘공문과 명령된 혁명’만 있어서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이었다. ‘명준이 스스로 사람임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안을 때뿐’이었지만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촉발한 전쟁은 은혜를 죽음으로 끌고 갔다. 밀실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잃은 후 그는 결국 중립국행을 선택한다. 그러나 동중국 바다를 지날 때 윤혜와 딸을 떠올리며 바닷물에 몸을 던진다. 이명준의 선택에 대해 논의가 다양할 수 있는데, 작가가 여섯 번에 걸쳐 개작한 ‘광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작품을 감상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갈매기에 대한 상징과 결말부의 변화다. ‘바다를 본다. 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며 중립국으로 가는 이명준의 뒤를 쫒는 갈매기 두 마리를 이명준이 사랑한 여자 은혜와 둘 사이의 딸로 표상한다. 또한 이 작품을 발표한 ‘새벽’ 지에서는 명준이 ‘떨어진 모양이었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그의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았지만, 개작을 통해 나온 ‘민음사판’과 ‘문학과 지성사판’은 ‘다른 데로 가버린 모양이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죽음을 또 다른 삶의 연장으로 암시하고 있다. 이전 판본에서 명준의 죽음은 체제에 의한 희생양이었다면 개작에서는 은혜와의 동일시로 ‘푸른 광장’인 또 다른 삶의 선택이다. 중립국에서도 희망 없음을 깨달은 자의 죽음이 ‘무덤에서 몸을 푼 여자의 용기’에 해당하는 사랑의 행위로 변화한 것이다. ‘밀실만 충만하고 광장은 죽어버린’ 남한에 구토를 느끼고 ‘끝없는 복창만 강요하는’ 북한에서도 안식처를 발견하지 못한 지식인 이명준의 문제의식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북한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비판하며 진정한 삶의 행복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이명준이 발견할 수 없었던 제3의 이데올로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절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소설의 진행은 문제적 개인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며 ‘개인에게는 이질적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순히 존재하고만 있는 현실에서 침울하게 갇혀 있는 개인이 자기 인식에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언급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은 이명준이 남과 북의 두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여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광장과 밀실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랑으로 자기인식에 도달하고자 한 여정이다. 이명준이 ‘광장’에서 자기인식에 도달하려 제3의 선택을 했다면 최인훈의 다른 소설에서는 좀 더 확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회색인’과 ‘서유기’에서 역사까지 포함하는 사유를 보여주는 독고준으로, ‘구운몽’에서 분열적인 심리상황을 보여주는 독고민으로, ‘화두’에서는 ‘나’를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실상과 세계 속의 우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에 대한 인식과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겼던 청년 이명준은 동중국 바다에서 사라졌지만 어쩌면 그는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명준의 변화처럼 독자인 나의 감상은 읽을 때마다 달라졌다. ‘광장’을 처음 읽은 고등학교 시절엔 이 글로 감상문을 써서 상을 받은 기억도 있는데 당시 감상문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삶을 살아가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쓰며 이명준을 비판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살아보니 선택의 가능성은 무수히 많고 매번 선택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으며 어떤 선택이든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삶의 순간순간이었다. 그 뒤로 읽은 ‘광장’은 자유주의의 열망을 가진 지식인 청년이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와 합의점을 찾지 못해 고뇌하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결국 모든 문제 해결의 도착지는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메시지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지 54년이 지났다. 54년이 지나는 동안 이명준은 이데올로기의 고뇌를 벗어나 보다 초월적인 사랑을 선택했다. 광장과 밀실이 온전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살았던 시절보다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문득 휴대전화로 전달된 선거 홍보문구와 광고문자들을 지우며, 밀실과 광장의 경계가 흐려진 지금을 생각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밀실’이 이명준이 살았던 그때보다 더 나아졌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대답에 머뭇거리는 것을 보면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고 말했던 이명준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팁: 2004년에 시인, 소설가, 평론가와 교수 등을 대상으로 한 한국문학 100년 최고의 소설 설문에서 ‘광장’은 이상의 ‘날개’와 함께 공동 1위로 꼽혔다. 1960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이상의 날개와는 24년의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바라보는 비슷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광장’에서 바다를 ‘푸른 광장’으로 보듯이 ‘날개’의 주인공은 자기 삶에 드리워진 모종의 억압을 끊고자 올라간 옥상에서 몸에 ‘날개’가 돋아난다. 이는 현실과 체제의 종결이자 새로운 희망과 꿈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최인훈의 다른 작품과 더불어 이상의 ‘날개’를 비교하며 읽기를 추천한다.
  • [길섶에서] 청계천 이팝나무/정기홍 논설위원

    서울 청계천 이팝나무의 마지막 꽃잎이 지고 있다. 올해는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지근의 이팝 꽃을 즐기지 못한 채 보내는 게 못내 아쉽다. 늦은 봄날, 겨울 흰 눈이 쌓인 것 같은 이팝 꽃의 모습은 운치로서는 그만한 게 없다. 야단스레 피었다가 떨어지는 벚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팝이 쌀밥을 뜻하는 ‘이밥’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흥미롭다. 꽃 모양이 쌀알처럼 생겼다. 사연 또한 애달픈 나무다. 제삿밥을 짓던 며느리가 뜸을 확인하려고 밥알을 입에 넣었는데, 오해를 한 시어머니가 심하게 구박해 죽고 며느리 무덤가에는 이팝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배고파 죽은 아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팝나무를 무덤 곁에 심었다고도 한다. 둘 다 배고픔의 한이 서려 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이팝 꽃이 필 때면 이웃 간 정을 도탑게 하려는 잔치를 여는 풍습도 있다. 청계천 이팝나무 아래에선 며칠째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를 책임지라”고 하고, 대통령은 “사회 분열은 결국 국민의 고통”이라며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호소한다. 어느 게 옳은 건가. 길손에게 현답(賢答)을 묻는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무려 5600년전…‘이집트 선왕조시대’ 무덤 발견

    무려 5600년전…‘이집트 선왕조시대’ 무덤 발견

    이집트의 파라오 제1왕조 이전 시기인 5600년 전의 무덤이 발견, 미라와 유물이 발굴됐다. 이로써 이집트 선왕조시대가 새롭게 조명될 것이라고 이집트 유물부가 7일 밝혔다. 발굴된 무덤은 기원전 3100년쯤 상(上)·하(下) 이집트를 통일하고 이집트의 제1왕조를 창시한 나르메르 왕의 통치 기간보다 오래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무덤 위치는 이집트 남부 룩소르와 남동부 아스완 사이의 콤 알-아흐마르 지역에 있는 고대 도시 히에라콘 폴리스의 유적 내에서 발견됐다. 이 도시는 상 이집트의 수도였다. 무덤에서는 수염을 기른 남자의 상아조각상과 10대 후반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무덤 주인의 미라가 나왔다. 이외에도 상아로 만든 빗 10개와 도구류, 칼, 화살촉 등이 발견됐다. 이번 발굴을 이뤄낸 다국적 고고학 팀을 이끈 르네 프리드만 박사는 “무덤의 보존 상태가 좋으므로 선왕조시대의 의례 등 새로운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히에라콘 폴리스에서는 나르메르 왕과 이집트 통일의 기반을 닦은 선왕조시대 라 왕의 무덤이 발견된 바 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외면받던 지방 아파트 분양 시장 살아난다

    외면받던 지방 아파트 분양 시장 살아난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서 외면받았던 지방 주택 시장이 투자자와 실수요자들부터 조명받고 있다. 올 초부터 시작된 지방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분양 상품이 쏟아지는 이달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치솟는 전세가에 개발 호재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지방 아파트에 대한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에도 지방에서 분양되는 상품은 많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이달 수도권 분양가구 수는 1만 225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늘었다. 반면 지방은 6119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1%나 증가한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1만 1249가구로 가장 많고 경남 2463가구, 충남 1496가구, 광주 1410가구, 서울 1007가구, 경북 354가구 등의 순이다. 지방 분양 상품이 많은 이유는 과거 수년 동안 경기침체로 주택 공급이 거의 없었던 것과 전세 가격 상승, 혁신도시 개발 등 여러 요인이 뒤섞이면서 공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분양시장의 무덤으로도 꼽혔던 대구 지역의 분양 열기가 유례없이 뜨겁다. 대구 지역은 지은 지 20년 이상 된 노후 주택 단지가 넘쳐나는데다 2008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신규 공급 아파트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주택 공급이 이뤄지는 한편 대구 신서혁신도시에 한국가스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감정원 등 공공기관이 이전하면서 주택 수요도 늘어나게 됐다. 이렇다 보니 지난달 10일 청약한 대구 북구 칠성동2가 ‘대구 오페라 삼정 그린코아 더 베스트’는 409가구 모집에 1순위에서만 3만 1436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이 76.86대1에 달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203가구 모집에 2만 1362명이 청약해 105.23대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6일 “대구 지역은 그동안 부동산 시장이 극도로 침체돼 있었지만 최근 경기 회복과 함께 공급이 늘어나고 개발 호재와 함께 전세 가격이 상승하면서 투자보다는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가격 상승도 한몫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평균 68.1%로 2002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서울의 전세가율은 63.2%로 2001년 12월(63.4%)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지방의 전세가율은 서울보다 훨씬 높았다. 광주(77.8%), 대구(74.1%), 울산(72.3%), 대전(71.2%) 등은 이미 70% 선을 넘었다. 전세 가격이 높은데다 입지 좋은 새로운 물건이 나오다 보니 이참에 지방에 목 좋은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가격도 지방이 수도권보다 더 오른 편이다.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 자료를 보면 전국의 공동주택 1126만 가구의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0.4% 올랐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0.7% 내린 반면 다른 지역은 2.6% 오르며 지방이 강세임을 보였다. 광역 시도별로는 대구가 10.0%로 가장 많이 올랐고 그 다음으로는 경북 9.1%, 세종 5.9%, 충남 5.1% 등이었다. 반면 서울은 0.9% 하락했다. 경기도 0.6% 떨어졌다. 이런 지역별 편차에 대해 국토부는 “서울과 경기 지역은 부동산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개발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서 공시가격이 하락했다”면서 “경북과 충남 등의 공시가격 상승은 장기간 주택의 공급부족 등으로 주택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아프간 집단 무덤 선언, 2천 명 묻혔는데 수색작업 중단 “생존 가능성 없다”

    아프간 집단 무덤 선언, 2천 명 묻혔는데 수색작업 중단 “생존 가능성 없다”

    ‘집단 무덤 선언’ 최악의 산사태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이 ‘집단 무덤 선언’을 했다. 3일(이하 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산사태의 생존자 수색 작업을 중단하고 4000여 명에 달하는 이재민 구호에 중점을 두겠다며 집단 무덤을 선언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아브 바리크 마을을 찾은 카림 칼릴리 부통령은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수색을 계속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며 참사 현장인 동북부 바다크샨주(州) 아브 바리크 마을을 집단 무덤(mass grave)이라고 선언 했다. 또한 바다크샨주 샤 왈리울라 아디브 지사도 “수 톤의 흙더미 밑에 깔린 우리 형제자매가 모두 사망했기에 그들의 명복을 빌 뿐”이라고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전했다. 앞서 2일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약 300가구 2000∼2100명이 진흙더미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한 사망자 수는 277명이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4일을 산사태 희생자를 기리는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집단 무덤 선언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집단 무덤 선언, 정말 끔찍하다”, “집단 무덤 선언, 자연 앞에 아무것도 아닌 인간”, “집단 무덤 선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뉴스 캡처(집단 무덤 선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프간 산사태 현장 ‘집단 무덤’ 선포

    아프간 산사태 현장 ‘집단 무덤’ 선포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3일(현지시간) 생존자 수색과 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4천 명에 달하는 이재민 구호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바다크샨주(州) 아브 바리크 마을에 산사태가 발생한지 하루 만에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카림 칼릴리 부통령은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수색을 계속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며 바리크 마을을 ‘집단 무덤’으로 선포했다. 국가재해대책위원장을 맡은 칼릴리 부통령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 수가 277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바타크샨주 부지사는 300가구에 2천여 명이 진흙더미에 묻힌 채 행방불명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4일을 이번 산사태 희생자를 기리는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사진·영상=SkyNew 영상팀 seoultv@seouol.co.kr
  • 개성상인의 ‘홍삼로드’ 개척기

    개성상인의 ‘홍삼로드’ 개척기

    향대기람/공성구 지음 /박동욱 옮김/태학사/188쪽/1만 2000원 1928년 4월 30일 개성삼업조합의 조합장인 개성의 거부 손봉상, 부조합장 공성학과 그의 사촌 공성구 등은 미쓰이사의 직원 아마노 유노스케와 홍삼 판로 시찰을 떠난다. 이들은 6월 10일까지 홍콩과 타이완의 주요 지역을 돌며 동아시아 곳곳에 퍼져 있는 미쓰이 지사를 방문하고 지역의 명승지를 관광한다. 공성구는 42일간의 행로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향대기람’(香臺紀覽)을 남겼다. 예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고려인삼의 명성은 자자했다.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인삼에 관한 이권을 장악했던 이유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전매국이 홍삼과 관련한 권한을 보유하다 1914년 이후 미쓰이물산에 독점 판매권을 줬다. 이 때문에 당시 개성상인들은 홍삼 판매를 위해 미쓰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개성상인들의 동아시아 시찰도 그렇게 이뤄졌다. 개성에서 시작된 여정은 부산과 시모노세키, 대만, 홍콩, 마카오, 상해까지 이른다. 그들은 곳곳에서 격랑의 근대 동아시아 역사와 마주한다. 5월 14일에는 타이베이에서 독립운동가 조명하가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를 독검으로 찔렀다. 그 기간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는 일본군과 중국 국민당 혁명군이 무력 충돌해 중일전쟁을 촉발한 ‘지난 사건’이 벌어진다. 중국 각지에서 배일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엔화를 거부하고 일본인을 공격하는 통에 육지에 오르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무덤덤하다. 반면 곳곳에서 열린 미쓰이 지사 초대의 연회는 분위기까지 상세하게 기록하면서도 정치와 역사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심지어 일본과 타이완의 신사에 꼬박꼬박 참배했다. 이들의 관심사는 신문물과 현대 문명에 집중됐다. 시모노세키에서 타이베이 항으로 가는 배에서는 선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배의 내부를 구석구석 시찰하기도 한다. 타이완에서 원시림의 거대한 목재를 운송하는 철도시설이나 운송 수단에 주목하는 등 조선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운송 및 교통수단, 도로, 기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주요 도시의 인구와 주요 산업을 점검하며 홍삼 판매량을 계산하기도 하는 철저한 상인의 모습을 보였다. 번역을 맡은 박동욱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교수는 “개성상인인 그들의 관심사는 정치나 역사보다 경제와 시장이었다”며 “책은 근대 한문학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 일제강점기에 홍콩과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일기 형식으로 상세한 묘사를 남긴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헌사·역사적 사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책은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엮어 이해를 돕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 미스터리’…드디어 해결?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 미스터리’…드디어 해결?

    이집트 사막 한복판에 건설된 100m가 훌쩍 넘는 ‘피라미드’는 그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건축방법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어왔다. 특히 최소 2톤, 최대 20톤에 달하는 석회암 덩어리를 고대 시대에 어떻게 운반했는지는 역사학자들이 추적해온 공통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 미스터리가 드디어 해결된 것일까? 미국 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닷컴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물리학 연구진이 피라미드의 기반이 된 석회암 운반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원전 2000년 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자(Giza)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는 높이 146m, 밑변 길이 230m로 카이로 인근에서 채취한 무게 2~20톤의 석회암 230만 개로 만들어졌다. 현대 건축학자들은 숙련된 건설기술을 가진 전문 인력 4,000~5,000명이 거의 10년에 걸쳐 피라미드를 쌓아올렸다고 추산하는데 이 중 가장 큰 의문점은 고대 시대에 엄청난 무게의 석회암을 어떻게 운송했는지 여부였다.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진은 빅토리아 시대 때 고대 무덤(tomb of Djehutihotep)에서 발견된 이집트 고대 벽화에서 이것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석회암 덩어리를 거대 썰매에 담아 운반하는 모습이 그림에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의문은 남아있다. 아무리 썰매로 운송한다 하더라도 수 톤에 달하는 암석무게 때문에 모래 속에 푹 박혀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다시 벽화에서 힌트를 찾는다. 썰매 앞 쪽에 물을 뿌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작업자의 모습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물을 뿌리는 모습은 단순한 의식의 순간이었을까? 연구진은 조금 더 과학적인 원리가 숨겨져 있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모래는 물이 스며들수록 더욱 강성을 띠고 단단해진다. 만일 석회암을 운반할 때 미리 모래에 물을 충분히 적셔주면 그만큼 땅이 단단해져 한결 운송이 쉬워진다는 것이다. 물리학 연구진은 실제로 모래를 이용해 가상실험을 진행했다. 건조한 모래와 물을 적신 모래 위에서 일정 무게의 금속 조각을 끌어보며 힘과 운반속도의 차이를 측정해본 것이다. 결과는 모래에 물을 적실수록 운반에 필요한 힘이 적게 들었고 훨씬 이동이 수월했다. 이는 수분이 모래에 스며들면서 입자들의 사이 간격을 메꿔주기 때문이다.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도 이동에 제약을 줬다. 이들은 모래 부피의 2~5% 정도의 수분함량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 연구를 주도한 암스테르담 대학 물리학과 다니엘 본 교수는 “모래에 함유된 수분이 썰매의 지표면의 마찰력을 줄여줘 운송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해당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지난 29일(현지시간) 발표됐다. 자료사진=포토리아·Daniel Bonn/University of Amsterdam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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