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덤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17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브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논란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09
  • [사이언스 톡톡] “쇠똥구리, ‘똥’ 편식 안 해서 공룡 멸종에도 살아남았다”

    [사이언스 톡톡] “쇠똥구리, ‘똥’ 편식 안 해서 공룡 멸종에도 살아남았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 방증 어휴 힘들다. 좀 쉬었다 가야겠어. 5월 초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더워서야 원.안녕? 날 좀 소개할게. 난 몸길이 16㎜에 몸색깔은 검은색이고 편평하고 타원형의 늘씬한 몸매를 갖고 있지. 날 모르겠다고? 난 딱정벌레목 풍뎅이과에 속하는 쇠똥구리야. 우리 활동 시기는 늦봄부터 가을까지라지만 6~7월에 가장 많이 볼 수 있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나 말, 낙타 그리고 사람의 똥을 먹고 살지. 우리는 모든 영양분을 똥에서 얻지. 심지어 수분까지도 말야. 우리는 똥을 둥글게 빚어서 땅속의 굴에 밀어넣고 거기에서 알을 낳아.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들이 태어나자마자 똥에서 바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야. 우리의 생태에 대해서는 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 선생님이 쓴 ‘곤충기’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어. 똥을 만진다고 하니 지저분하게 느껴지겠지만 우린 고대 이집트 신화에도 등장해.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가 똥을 굴리고 가는 모습을 보고 태양신 ‘라’가 태양을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렸대. 그래서 라의 분신인 또 다른 신 ‘케프리’는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지. 또 우리가 똥 속에 알을 낳는 모습은 부활을 상징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무덤 속에 쇠똥구리 모양 장신구를 넣어 부활을 기원하기도 했다지. 내가 주로 사는 지역은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와 유럽 등이지만 내 먼 친척 쇠똥구리들까지 다 포함시킨다면 사막과 초원, 숲 등 남극을 뺀 모든 대륙에서 살고 있어. 한국에도 다양한 종류의 쇠똥구리들이 살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점점 개체 수가 줄기 시작해 2012년 5월 31일에는 환경부가 ‘멸종 위기동물 2급’으로 지정했어. 그런데 최근에 우리에 관한 재미있는 논문 하나가 나왔더군. 체코 팰라키대 동물학과, 호주 커먼웰스 과학기술연구회 소속 국립곤충박물관, 퀸스랜드공대(QUT) 지구환경생물과학대 공동연구팀이 자연과학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4일자에 발표한 연구 결과였어. 이 사람들은 ‘공룡과 함께 살았던 쇠똥구리들이 어떻게 대멸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쇠똥구리 화석과 현재 살아남아 있는 쇠똥구리와 친척인 풍뎅이들 450여종의 DNA를 분석했더라구. 그 결과 우리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최소한 1억 1500만년 전으로 이전까지 알려진 것보다 3000만년이나 더 오래됐대. 당시 지구를 지배하던 동물들은 2억 3000만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에 나타난 공룡들이었지. 당연히 우리의 먹이도 공룡의 똥이었지. 지금이야 주로 포유류의 똥이 주식이지만, 우리가 막 탄생했을 때 포유류는 생쥐보다도 작은 크기였어. 그러니 그들의 똥 역시 건조하고 콩알만 해서 우리의 먹이로는 적절치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던 공룡들이 사라진 거야. 공룡의 똥만을 먹으며 편식을 했던 동료들은 공룡과 함께 사라지고 다른 동물들의 똥도 먹었던 쇠똥구리들만 살아남은 거지. 말 그대로 ‘적자생존’에 성공한 종류들만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거야. 1억년 이상 살아온 우리도 요즘은 정말 힘들어. 지구 온난화에다 농약과 항생제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 때문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게 점점 줄고 있어서 우리도 곧 먼 옛날 공룡들처럼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돼 잠도 오지 않아. 제발 사람들과 함께 오랫동안 살 수 있도록 노력해 줘.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이탈리아 밀라노를 찾는 여행자들은 밀라노 대성당과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다시 밀라노를 찾게 되거나 처음 밀라노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브레라 미술관이다. 로마의 바티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높이 평가받는 곳으로 특히 회화 컬렉션이 워낙 유명하기에 회화관이라는 뜻을 강조해 ‘피나코테카’로 불린다.  브레라 거리(Via Brera)에는 참신한 디자인의 액세서리 전문점과 가구, 갤러리, 인테리어 점, 주방용품점이 늘어서 있다. 옛 골목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브레라 거리 28번지에 미술아카데미와 미술관이 있다. 거리에서 보면 입구는 평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을 둔 매우 아름다운 벽돌 건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층에 브레라 미술아카데미가 있고 2층에 미술관이 있는 브레라 궁(Palazzo Brera) 건물은 처음 지어진 17세기 당시에는 예수회의 밀라노 본부였다. 14세기 부터 있던 수도원 자리에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치니 부자의 설계로 1627년 완성된 건물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고 기능에 충실하다. 하느님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하며 높은 도덕심과 인내, 소명에 따르는 생활을 통해 각자의 인격을 완성하고 교육하고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예수회의 건물다운 엄격하지만 아름다운 외관이다.  이곳이 미술관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1773년 예수회 해체를 명하자 이곳은 원래의 목적을 잃게 된다. 계몽군주를 자처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이곳을 문화와 예술을 계몽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명했다. 그에 따라 미술 교육기관 브레라 아카데미가 들어섰고 학생들이 고상하고 세련된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조각과 회화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천문대와 도서관이 들어섰다. 건물은 1776년 아카데미의 교수 주세페 피에르 마리니의 설계로 추가 증축을 거쳤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기증한 소규모 컬렉션은 요제프 2세(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아들)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통치할 때 종교기관을 환속시키면서 많이 늘어났다. 수도원들이 문을 닫고 몰수한 교회의 제단화들을 옮겨 왔고, 아카데미 교수들이 이탈리아 명작 회화 컬렉션을 확보하면서 미술관의 규모를 갖추자 1786년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미술품은 나폴레옹 통치 시대(1799~1815)에 크게 증가했다. 나폴레옹은 밀라노를 이탈리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북이탈리아 전역의 궁전과 귀족들로부터 약탈한 미술품들을 브레라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수천점에 달하는 회화 작품을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의 교회와 귀족들로부터 압수해 브레라로 보내왔다. 그동안 쌓인 방대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1809년 새로운 미술관을 개관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프랑스 군대가 철수한 이후에도 몰수된 예술품은 그 자리에 남아 오늘날 브레라 미술관의 주요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미술관은 개관 이후 브레라 아카데미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1882년 공식 분리돼 북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으로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대 학생들로 북적이는 브레라 미술아카데미를 지나서 오른 쪽 큰 계단을 올라가면 미술관이다. 왼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고 오른 쪽부터 전시실이 이어진다. 방을 따라서 관람하다보면 처음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브레라 미술관의 컬렉션은 13세기에서 20세기까지를 아우른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베네치아 화파와 롬바르디아 화파의 그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부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만테냐의 작품을 비롯한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컬렉션은 이 미술관의 백미로 꼽힌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북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의 ‘죽은 예수’(1475~1478년)다. 7번 방에 있는 이 그림은 엄격한 사실과 자유로운 상상력, 원근법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만테냐의 대표작으로 독특한 앵글로 잡은 구도와 사실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만테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만테냐는 관람자(혹은 화가 자신)의 시선을 대리석 침대에 누인 예수의 발 아래에서 시작해 화면 상단에 머리를 그리고, 왼쪽 구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며 슬퍼하는 마리아와 요한의 얼굴을 측면으로 그렸다. 2차원 화면이지만 정확한 원근법을 구사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다. 파도바 근처의 이초라 디 칼투로 출신인 만테냐는 스카르초네 밑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지만 파도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조각가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았다. 만테냐의 작품이 견고한 조각적 성격을 띠는 것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베네치아 화파의 시조인 야코포 벨리니의 사위가 되면서 자연스레 베네치아 화파의 영향을 받아 강한 조각적 성격은 조금 누그러뜨리고 엄격한 북방적 사실주의를 견지하며 북이탈리아 화파의 르네상스 양식을 수립했다. 이 작품에서도 못에 박혀 심하게 상한 발바닥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죽은 예수의 얼굴도 초라하고 비극적이며 이를 보고 눈물 흘리는 마리아의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만테냐가 만토바의 산탄드레아 성당에 있는 자기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미술관에는 만테냐가 1453년 완성한 성누가 제단화도 있다. 만테냐가 성 귀스티나 성당의 성누가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22세에 완성한 초기의 작품으로 12개의 패널로 이뤄져 있다. 만테냐의 또 다른 작품 ‘아기 천사들과 성모자’(1485년)는 원래 베네치아의 성 마리아 마지오레 수도원에 있던 것이 나폴레옹 시대에 브레라로 옮겨졌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뒤로는 구름 사이로 수많은 아기 천사들이 있는 작품으로 아기 천사들의 다양한 표정이 사랑스럽다.  지오바니 벨리니(1430~1516)의 ‘피에타’(1460년)도 브레라 미술관에서 놓치면 안될 마스터피스로 꼽힌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스승인 조바니는 야코포 벨리니의 아들로 형 젠틸레와 함께 3부자가 베네치아 화파의 중심을 이뤘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벨리니의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와 그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제자 요한의 슬퍼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성모의 결혼’(1504년)은 브레라 아카데미 초기에 유입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이다. 중앙에 사제를 두고 요셉이 마리아에게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나서는 장면을 그린 작품은 라파엘로 특유의 우아함과 섬세함과 고요함, 조화로운 채색과 구도, 각 인물과 사물의 정교하고 부드러운 묘사가 매우 아름답다.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명인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나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르비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라파엘로는 1500년경 페루자 부근에 있던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으며 제단화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성모의 결혼’은 그가 수련기간 동안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 시타 디 카스텔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는 산 주세페 예배당의 패널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전경에 인물들을 반원 형태로 배치하고 뒤로는 아치들이 반복되어 있는 웅장한 신전을 배치했다. 중심 인물들 뒤로 기하학적으로 연결된 길을 통해 시선을 자연스럽게 신전으로 이동시킨다. 전경의 인물과 공간, 건축물의 아치들을 조화롭게 연출하면서 화면에 통일감을 주고 있다. 스승인 페로지노가 페루지아의 두오모를 위해 그린 같은 제목의 제단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만 공간과 인물의 조화에서 이미 스승을 능가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스스로 매우 만족했던지 당시 갓 스물을 넘긴 라파엘로는 화면 속 신전의 중앙 아치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완성한 날짜를 적어 넣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6~1492)의 ‘몬테펠트로 제단화’(1474년)도 놓치면 안될 작품. 그는 이론가로서 ‘투시화법에 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고 건축물이 조화롭게 배치된 패널화 ‘이상도시’(1470년)를 통해 원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엄밀한 원근법으로 재현된 건물의 내부에 성모가 아기예수를 무릎 위에 눕히고 있고 그 앞에 갑옷을 입은 우르비노 공작 몬테펠트로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주위는 성녀와 성인들이 에워싸고 있다.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공간에 인물의 크기도 위치에 따라 비례를 정확하게 계산해 그려 착시를 일으킬 정도다. 맑은 색채와 위엄 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 표현이 당시로서는 매우 전위적이다.  벨리니 형제가 그린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마르코’(1506년)와 베네치아 화파의 또 다른 거장 틴토레토의 ‘성마르코 유해의 발견’(1566년), 카라바조의 ‘엠마우스에서의 저녁식사’(1605년) 등 마스터피스들을 감상하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다. 북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달콤한 ‘입맞춤’(1859년) 앞에서 피곤을 달래보자. 아이에즈는 브레라 아카데미의 원장을 지냈고 30년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화가로 부드럽고 세밀한 묘사, 인물의 정교한 감정표현에서 뛰어났다. 고성의 으슥한 계단 앞에서 두 남녀가 입을 맞추는 작품은 매우 낭만적이다. 남자는 아마도 떠돌이 음유시인이고, 여자는 양가집 규수일 수 있겠다. 달콤해 보이는 그림 뒤에는 정치적인 은유가 내포돼 있다고 한다. 남자의 옷 색깔이 붉은 색, 여자의 비단 드레스 색깔이 푸른색인데 이는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상징한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두 남녀의 입맞춤을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불안한 동맹관계를 표현했다. 미술관이 있는 팔라초 브레라의 담을 끼고 오른편에 팔레트를 손에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동상이 서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마녀보감 장희진, 스틸컷 보니 ‘단아한 기품+불안한 눈빛’ 흑주술 동참

    마녀보감 장희진, 스틸컷 보니 ‘단아한 기품+불안한 눈빛’ 흑주술 동참

    배우 장희진이 ‘마녀보감’에서 슬픈 운명의 왕비로 분해 절제되고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욱씨남정기’ 후속으로 방송되는 JTBC 새 금토드라마 ‘마녀보감’ (연출 조현탁, 극본 양혁문, 제작 아폴로픽쳐스·드라마하우스·미디어앤아트) 측은 6일 극중 중전 심씨 역을 맡은 장희진의 촬영 스틸컷을 전격 공개했다. 공개된 ‘마녀보감’ 스틸 속 장희진은 단아한 매력과 왕비의 우아한 기품을 과시하고 있다. 절제된 표정 속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맺힌 촉촉한 눈망울은 아련하고 슬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녀보감’에서 장희진이 연기하는 중전 심씨는 대비 윤씨(김영애 분)의 수렴첨정으로 허수아비 신세인 명종의 비다. 14세에 왕비로 책봉된 뒤 수 년 간 아이 소식이 없어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다 흑주술을 통해 세자를 낳으려는 대비 윤씨와 홍주(염정아 분)의 위험한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슬픈 운명에 휩싸이는 중전 심씨는 훗날 죽은 세자에게 집착하는 모성애로 서리의 운명을 위협하게 된다. 중전 심씨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자태로 본래 얼굴을 감추고 있지만 그 속내를 쉽게 짐작하기 힘든 복잡한 내면의 인물이다. 서리에게 덧씌워진 저주와 슬픈 운명의 시작점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장희진은 중전 심씨가 가진 복잡한 욕망과 감정들을 드러내기보다 내면으로 삭히며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을 표현해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아련하고 애자한 눈빛은 중전 심씨의 슬픈 운명을 예고하는 듯하다. 특히 소복을 입은 여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장희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장희진은 무덤덤한 듯 아슬아슬한 얼굴로 이 여인을 바라보며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두 여인이 얽힐 수밖에 없는 사연과 이들의 만남이 서리와 허준(윤시윤 분)의 운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점 심씨는 표현보다 절제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캐릭터. 쉽지 않은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장희진은 극도로 몰입하며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흑주술에 동참한 장본인이자 그로 인해 위험한 운명에 빠져드는 중전 심씨를 연기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대본을 손에서 떼지 않는 다는 후문. 섬세한 계산을 통해 탄생한 티저 영상 속 오열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마녀보감’ 제작진은 “중전 심씨는 온화한 외면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다. 흑주술을 통해 세자를 가지려는 욕망, 세자를 향한 집착과 모성애 등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인물. 장희진은 섬세하고도 깊이 있는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중전 심씨라는 인물은 장희진의 연기 덕분에 더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인물로 탄생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조선 청춘 설화 ‘마녀보감’은 저주로 얼어붙은 심장을 가진 마녀가 된 비운의 공주 서리와 마음 속 성난 불꽃을 감춘 열혈 청춘 허준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조선의 마녀’라는 독특한 소재에 지금까지의 드라마에서 선보인 적 없는 피 끓는 ‘청춘’ 허준 캐릭터를 재탄생 시키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윤시윤 김새론 이성재 염정아 곽시양 김영애 전미선 문가영 조달환 장희진 최성원 이이경 이지훈 등 최강 라인업과 ‘하녀들’ 조현탁 PD의 합류로 JTBC 명품 사극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마녀보감’은 ‘욱씨남정기’ 후속으로 오는 5월 13일 JTBC에서 첫 방송된다. 사진= ‘마녀보감’ 스틸컷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성북 역사문화지구

    [서울 핫 플레이스] 성북 역사문화지구

    서울 한복판에 중국 진시황의 병마용 갱과 같은 압도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옛날 왕과 고관대작의 무덤에 세운 문인석 300~400개가 있는 성북동 우리옛돌박물관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을 비롯해 옛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사를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성북동이다. 성북동 역사문화지구가 도로 다이어트와 박물관 특화거리를 통해 더욱 찾고 싶은 곳으로 거듭난다. ■걷다 보면 시진핑이 놀란 가구박물관… 백석의 사랑 깃든 길상사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란 말이 있죠? 성북동 주민들이 우선 기쁘고 편안하면 멀리에서도 성북동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성북구의 전경이 손에 잡힐 듯이 들어오는 우리옛돌박물관 4층 옥상에서 성북동 역사문화지구에 대한 구상을 펼쳐놓았다. 성북동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 12점을 소장한 간송미술관, 중국 시진핑 주석이 감탄한 한국가구박물관,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애끓는 사랑 이야기가 깃든 길상사 등 역사문화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부터 성북초등학교 부근 선잠단지 앞까지를 보행 친화 거리로 만든다. 성북동 역사문화지구는 외부 관광객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성북동 주민들이 우선 만족하고 즐겨야만 나중에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등이 올라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김 구청장의 생각이다. 지나친 관광위주 개발로 변질한 삼청동, 북촌과 달리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성북동의 또 다른 매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우리옛돌박물관은 성북동 박물관거리의 신생아다. 오후 9시까지 야간 개관을 하는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100여명 이상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옛돌박물관은 천신일 세중 회장이 건립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절친’답게 옛돌박물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언덕에는 이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소나무가 성북동을 굽어본다. 천 회장은 40년 가까이 석조 유물을 모아 대지 5500여평에 석물 1200여점을 갖춘 옛돌박물관을 열었다. 사립박물관이 도굴품이나 장물을 종종 전시해 논란을 일으켰지만, 옛돌박물관은 지난 15년간 용인에서 전시하면서 시비를 없앤 유물만 내놓았다. 전시품은 천 회장이 골동상이나 미술대학 교수로부터 사들였다. 특히 일본인 구사카 마모루부터 사들인 문인석 70점은 천 회장의 자랑거리다. 일본에서 문화재를 환수하는데 천 회장이 들인 정성은 일제 강점기의 ‘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박물관 1층에서 단아하게 똑 떨어지는 조명을 받는 문인석은 고고한 기운을 풍긴다. 문인석은 왕이나 고관대작 사대부들이 무덤에 세운 석물이다. 진시황이 죽어서도 능을 지키라며 병마용을 만든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세워졌다. 주은경 학예사는 “어른들은 어릴 때 지나가며 보던 돌 조각의 의미를 새로 배우고, 처음에는 무섭다고 울던 아이들은 박물관을 나갈 때면 벅수를 친근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 걸으면 석물 1200여점 옛돌박물관… 국보 창고 간송미술관 벅수는 동네 입구에 서 있던 돌장승이다. 생소하고 어렵고 무섭게만 느꼈던 돌 조각에 담긴 뜻을 깨우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옛돌박물관이다. 성북동 입구인 한성대입구역은 성북동역으로 문패를 바꿔달 예정이다. 지하철역부터 선잠단지 앞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약 850m의 길은 현재 왕복 6차선이다. 이 길은 도로 다이어트를 통해 왕복 2차선으로 줄이고 8~20m 이상 넓어진 보도에는 소규모 공연장, 상설 전시관, 거리카페 등이 생긴다. 현재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집터 앞에 만들어진 ‘방우산장’이 성북동길 다이어트의 좋은 예다. 시인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만 있는 곳 앞에 공공 조형물인 의자가 여럿 놓였다. 의자는 도시에 놓는 장식용 건축물인 ‘어반폴리’로 실제로 주민이나 성북동 탐방객들이 앉아서 쉬어 갈 수 있다. 방우산장은 조 시인이 자신이 살던 곳에 붙였던 이름이다. 박원순 시장은 성북동에 옛날 사람들의 의식주를 모두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 특화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조선의 왕비들이 명주를 생산하고자 잠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지 옆에는 실크박물관을 만든다. 모시를 표백하던 마전터에는 공예공방을 조성하여 조선의 의생활을 엿볼 수 있다. 최순우 옛집, 성락원, 길상사, 이종석 별장, 심우장 등 아름다운 옛 건축물이 조화롭게 들어선 성북동에서는 한옥의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시 산하기관인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면서 복합문화공간이란 기능을 못하는 데다 ‘임원 공짜식사’로 논란을 낳은 삼청각은 한국전통 식문화 체험공간으로 탈바꿈한다. 300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 음식 문화의 전당’으로 2018년까지 재탄생한다. 1층은 한식당과 한식아트몰, 2층은 문화공간, 별채들은 테마 한식관으로 꾸며 민간업체에 운영을 맡긴다. 용인민속촌까지 가기 어려운 외국인들이 성북동에서 전통 의식주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성북구는 유엔아동기구인 유네스코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아동친화도시로 인증한 만큼 아이들을 위한 배려도 빠질 수 없다. 수유시설을 마련하고 유모차도 힘들지 않게 한양도성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무장애 보도를 조성한다. 김 구청장은 “코끼리 열차 같은 친환경 교통수단을 마련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성북동 전철역에서 한양도성까지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서동철 칼럼] 백자 가마터 402곳, 광주시의 고민

    [서동철 칼럼] 백자 가마터 402곳, 광주시의 고민

    지금 경기 광주시 목현동의 야산에서는 조선백자 가마터의 시굴 조사가 한창이다. 가마터는 광주시청이 있는 송정동에서 성남일반산업단지가 있는 성남시 상대원동으로 넘어가는 이배재의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오른쪽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면 나타난다. 목현동 일대에만 모두 7곳의 조선시대 가마터가 있다고 한다. 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목현동 1호 가마터는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시굴 조사에서는 조선백자 특유의 오름가마 4기가 확인됐다. 갑발(匣鉢)과 뚜껑도 대량 출토됐다. 재나 티끌이 묻지 않도록 도자기를 넣어 굽는 용기다. 갑발을 씌워 구운 최상급 백자가 갑번(匣燔)이다. 갑번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나중에는 조정 신료들도 다투어 썼다. 정조는 “보통으로 구운 그릇도 쓸 만한데 어째서 갑번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며 궁중용을 포함해 갑번을 아예 굽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글씨가 새겨진 사금파리도 적지 않게 나왔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이 ‘봉선’(奉先)이라고 새겨진 파편이었다. 봉선이라면 봉선사를 뜻할 것이다. 경기 남양주의 봉선사는 세조의 무덤인 광릉의 수호사찰이다. 봉선사에는 세조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봉선전도 세워졌는데, 적지 않은 왕들이 봉선전에 직접 나가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제기(祭器)를 포함한 봉선전의 기물 역시 궁궐에서 공급받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갑발과 ‘봉선’ 명(銘) 백자는 목현동 1호 가마가 왕실 그릇 제작소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광주시가 목현동을 비롯해 조선백자 가마터를 단계적으로 시굴 조사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가마의 성격을 규명하겠다는 목적이 일차적이다. 하지만 요지의 존재에 따른 규제 지역 범위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겠다는 속마음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광주시에 흩어져 있는 조선백자 가마터 78곳은 1985년 사적으로 일괄 지정됐다. 궁중의 먹거리를 관장하는 사옹원(司饔院)의 그릇을 만드는 분원(分院)이 있던 곳이다. 분원은 그릇을 굽는 데 필요한 땔감을 찾아 수없이 옮겨 다녀야 했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당연히 개발이 불가능하다. 목현동만 해도 사적으로 지정된 1호 가마터는 물론 주변의 비지정 가마터도 문화재 구역으로 묶여 있다. 여기에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가 훼손, 멸실될 우려가 있을 때 문화재 구역의 경계로부터 주변 500m를 현상변경허가 대상 구역으로 각 시·도가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목현동 가마터도 사적 면적은 1490㎡이지만, 문화재 규제를 받고 있는 지역은 사방 1㎞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광주시는 사적 지정에 따른 문화재 관련 규제를 받는 면적이 시 전체의 9.5%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광주시에 78곳의 지정 가마터 말고도 324곳의 비지정 가마터가 더 있다는 것이다. 비지정 가마터라도 가마터의 성격과 가치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 제한은 불가피하다. 그러니 규제를 받는 전체 면적은 상상을 초월한다. 초월읍, 곤지암읍, 도척면, 퇴촌면, 남종면, 남한산성면, 모현동, 탄벌동, 송정동 등 시 전역을 망라한다. 여기에 시 북부의 개발제한구역이 전체 면적의 32%, 시 중동부의 상수원보호구역이 전체 면적의 19%나 된다. 광주시에 402곳의 조선시대 가마터가 모여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광주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남한산성과 백자 가마만으로도 광주시의 문화관광 자원은 걱정이 없다. 실제로 남한산성에 이어 조선백자 요지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노력은 경기도 차원에서는 벌써 시작됐다. 지금 곤지암도자타운에서는 광주왕실도자기축제도 열리고 있다. 벌써 19회에 이르렀다니 도자기 역사의 중요성은 일찍부터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기초자치단체에 조선백자 가마터의 연관성을 한데 꿰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보존 대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이제는 중앙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유적 보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주민은 주민대로 불편을 겪는 현실이 안타깝다.
  • 기원 전 2세기 부여 세도면 널무덤 청동방울·세형동검 등 무더기 출토

    기원 전 2세기 부여 세도면 널무덤 청동방울·세형동검 등 무더기 출토

    충남 부여 세도면의 구릉에 조성된 토광묘(土壙墓·널무덤)에서 청동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 21일부터 9월 17일까지 부여 세도면 청송리 35~42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제사장이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한 도구로 추정되는 청동 방울을 비롯해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 등을 찾아냈다고 3일 밝혔다. 지난해 7월 태양광발전시설 공사 도중 확인된 이 널무덤은 금강에서 약 2㎞ 떨어진 구릉의 정상부 아래에 있으며, 풍화암반을 1.5m 깊이로 파고 목관을 안치했다. 이 무덤에선 방울, 동검, 거울 외에도 청동 투겁창(나무 자루에 끼우는 창) 4점, 청동 꺾창(나무 자루에 직각으로 연결하는 창) 1점, 청동 도끼 1점, 청동 새기개 2점, 청동 끌 2점 등도 나왔다. 대롱옥 14점, 돌화살촉 3점도 발견됐다. 연구소는 “출토 유물의 조합과 위계 등으로 볼 때 초기 철기시대인 기원전 2세기쯤 이 지역 수장이 묻힌 무덤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과 청동 유물 12점의 부식생성물에 대한 납동위원소를 분석해 재료의 산지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얻었다. 잔줄무늬거울은 충청도와 전라도 광산에서, 청동 방울은 태백산 분지 인근 광산에서, 나머지 유물은 경상북도와 강원도 지역 광산에서 각각 채굴된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청동 방울과 일련의 유물이 같이 나오는 유적은 국내에 10곳이 되지 않아 보물급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청동 방울은 수장자가 권력과 재화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출토된 유물을 오는 10일부터 이틀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부여 세도면 널무덤서 청동유물 다량 출토

    부여 세도면 널무덤서 청동유물 다량 출토

     충남 부여 세도면의 구릉에 조성된 토광묘(土壙墓·널무덤)에서 청동유물(사진)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 21일부터 9월 17일까지 부여 세도면 청송리 35~42번지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제사장이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한 도구로 추정되는 청동 방울을 비롯해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 등을 찾아냈다고 3일 밝혔다.  지난해 7월 태양광발전시설 공사 도중 확인된 이 널무덤은 금강에서 약 2㎞ 떨어진 구릉의 정상부 아래에 있으며, 풍화암반을 1.5m 깊이로 파고 목관을 안치했다. 이 무덤에선 방울, 동검, 거울 외에도 청동 투겁창(나무 자루에 끼우는 창) 4점, 청동 꺾창(나무 자루에 직각으로 연결하는 창) 1점, 청동 도끼 1점, 청동 새기개 2점, 청동 끌 2점 등도 나왔다. 대롱옥 14점, 돌화살촉 3점도 발견됐다. 연구소는 “출토 유물의 조합과 위계 등으로 볼 때 초기 철기시대인 기원전 2세기쯤 이 지역 수장이 묻힌 무덤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과 청동유물 12점의 부식생성물에 대한 납동위원소를 분석해 재료의 산지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얻었다. 잔줄무늬거울은 충청도와 전라도 광산에서, 청동방울은 태백산 분지 인근 광산에서, 나머지 유물은 경상북도와 강원도 지역 광산에서 각각 채굴된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청동 방울과 일련의 유물이 같이 나오는 유적은 국내에 10곳이 되지 않아 보물급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청동 방울은 수장자가 권력과 재화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출토된 유물을 오는 10일부터 이틀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소이현♥인교진, 딸 품에 안고 즐거운 나들이 “아빠가 더 신났네”

    소이현♥인교진, 딸 품에 안고 즐거운 나들이 “아빠가 더 신났네”

    배우 인교진 소이현 가족의 여유로운 일상이 공개됐다. 3일 소이현 인스타그램에는 “아빠가더 신남~”이라는 짧은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에는 편안한 복장의 아빠 인교진이 딸 인하은 양을 품에 안고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가족 나들이에 신난 듯 개구진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인교진과는 대조되는 딸 인하은양의 무덤덤한 표정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네티즌들은 “예쁜 부녀 보기 좋다”, “아빠가 너무 귀엽다”, “아직은 꽃가루 조심하세요”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인교진 소이현 가족은 KBS2 주말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고정 멤버로 합류할 예정으로 지난 22일 첫 촬영을 진행했다.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무령왕릉 발굴에 숨은 고고학·권력의 유착

    무령왕릉 발굴에 숨은 고고학·권력의 유착

    직설 무령왕릉/김태식 지음/메디치/480쪽/2만 2000원 1971년 7월 무령왕릉 발굴을 중심으로 고고학과 권력의 유착을 파헤쳤다. 1971년 당시 발굴단과 정부 관계자, 언론 관계자들의 증언을 광범위하게 채집, 비교하면서 발굴 당일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낱낱이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무령왕릉 발굴이 이후 정권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주관광개발종합계획으로 계승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무령왕릉이 발굴된 그해 정부에서 보문관광단지 개발과 신라시대 유적 발굴 홍보 전시를 양대 축으로 한 경주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저자는 “당시 정부는 경주개발을 통해 국민정서를 원하는 대로 개조하며 유신하고자 했다”면서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반공정신으로 무장한 국민들을 만들고자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고학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풀이했다. ‘고고학은 필연적으로 과거 영광을 재현하는 학문이고, 유물 대부분은 군주시대 정점을 이뤘던 왕과 관계가 있다. 독재자는 흔히 국수주의 성향을 지니며, 과거 어느 때인가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 여기서 고고학과 독재정권은 접점을 이루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454쪽) 책은 남북을 중심 축으로 삼는 무덤에서 망자의 머리를 북쪽에 둬야 함에도 왜 무령왕 부부는 정반대인 남쪽으로 머리를 뒀는지, 무령왕릉을 누가 축조했는지 등 무령왕릉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히 다뤘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울시의회 김영한의원, 여주 장애인 복지시설 방문

    서울시의회 김영한의원, 여주 장애인 복지시설 방문

    서울시의회 김영한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송파5, 더불어민주당)은 4월 25일,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날을 기억하며 여주 라파엘의집(원장 정지훈)을 방문했다. 여주 라파엘의집은 시각장애와 함께 지적장애, 발달장애, 지체장애, 청각, 언어장애 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각 중복 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학령기 아동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 1986년 서울시 종로구 작은 가정집에서 시작된 여주 라파엘의집은 현재 교육시설, 문화시설, 직업재활시설 및 생활 시설은 물론 종사자 기숙사까지 마련되어 있다. 시각중복장애인을 위한 체계적인 서비스가 시설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날 시설을 꼼꼼히 살펴본 김영한 의원은 “여주 라파엘의집에서 하고 있는 중복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돌봄의 손길, 그리고 이들의 자립이 가능케 해주는 직업재활훈련을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재활센터도 훌륭하다. 이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문화예술센터’ 운영이다”라며 “생존을 위한 기초 생활을 보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행복’을 위한 문화예술센터와 활발한 외부 견학 등의 프로그램은 중복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한 의원은 “의료 및 재활 서비스가 좀 더 원활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인근 병원과의 MOU 등 방안들이 찾아지기 바란다”고 전했다. 김영한 의원은 함께 숙식하며 장애인들을 돌보는 종사자 및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중복 장애인들이 좀 더 배려받을 수 있도록 서울시가 직업재활서비스 등에 대해 관심갖고 할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여주 라파엘의 집 관계자는 “시각중복장애인에게 필요한 특별하고 체계적인 서비스가 한 곳에서 제공되는 종합적 복지센터건립이 목표”라며 “일상생활 서비스는 물론 물리치료, 심리치료, 언어치료 등 각종 치료서비스, 특수교육서비스, 노인요양서비스 등을 제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고 싶다”며 협조를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재지킴이’를 찾아서] “구암동 고분 문화재 지정될 때까지 봉사 올인!”

    [‘문화재지킴이’를 찾아서] “구암동 고분 문화재 지정될 때까지 봉사 올인!”

    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 인근의 문화유산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건 쉽지 않다. 문화재 지정 주변 지역은 개발이 어려워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은 지역민들이 있다. 대구 북구 함지산 자락 구암동 고분군 인근 주민들이다. 이들은 지역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구암동 고분군 문화재 지정에 앞장서고 있다. 구암동 일대에서 확인된 고분은 346기로 대구 지역 최대 규모다. 1975년 한 차례 발굴된 이후 40년 가까이 방치돼 왔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 도굴로 훼손된 고분도 적지 않다. 존재가 희미해졌던 고분은 향교 어르신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지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향교 어르신들이 발굴 조사도 다시 하고 문화유산으로 잘 보존하자며 지역민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주민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대를 꾸려 ‘고분 지키기’에 나섰다. 고분군 주변 나무와 풀을 제거해 고분의 모습을 하나씩 되살리고 있다. 한 주민은 꽃집으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를 ‘구암동 고분 홍보관’으로 개장해 지역 안팎에 고분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영남문화재연구원도 지역민들의 여망을 실현시키고자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구암동 1호분 발굴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봉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과 달리 적석석곽분(積石石槨墳·돌무지돌덧널무덤)인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원은 “영남 지역에선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특이한 구조를 보여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금동제귀고리를 비롯해 다량의 토기도 출토됐다. 주민들은 “고분군 내에 산소나 밭이 있는 주민들도 흔쾌히 문화재로 지정되는 데 찬성했다”면서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문화재로 지정돼 후대에 잘 전해졌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재청은 “일부 지역은 문화재로 지정하려 하면 주민들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구암동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문화재로 지정되길 원한다”면서 “해당 구청과 대구시를 거쳐 문화재청으로 문화재 지정 신청서가 접수되면 지정 가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세조가 세운 ‘깨달음의 사찰’… 연산군 땐 기생 관리 장소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세조가 세운 ‘깨달음의 사찰’… 연산군 땐 기생 관리 장소로

    한양은 유교를 국시로 내세운 조선의 계획도시였으므로 고려시대 절이 남아 있었다고 해도 훼철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1000년이 넘은 불교국가의 전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었고, 불덕(佛德)에 의지하는 분위기는 왕실이 더욱 짙었다. 태조는 도성 안 세 곳에 사찰을 세웠다. 곧 흥천사, 흥덕사, 흥복사다. 태조가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인 정릉을 덕수궁 터에 만들고, 명복을 비는 원찰로 세운 것이 흥천사다. 그런데 태종이 배다른 어머니의 무덤을 도성 밖 오늘날의 돈암동 고개 너머로 옮겼으니 흥천사도 돈암동에 다시 터를 잡아야 했다. 흥덕사는 ‘태상왕이 새 전각을 희사하여 사찰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에 지은 절이다. ●‘불교대호왕’ 세조, 원각사를 조선 불교 거점으로 흥복사는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다. 세조는 흥복사를 넓혀 원각사를 건립하고 불경을 간행하는 등 불교의 거점으로 삼았다. 원각사의 흔적은 지금도 국보 제2호 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로 남아 있다.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는 탑골공원은 3·1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세조는 불교대호왕(佛敎大護王)으로 불릴 만큼 조선왕조에서는 전무후무한 불교 후원자였다. 그가 불교중흥에 힘쓴 것은 흔히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업보(業報)를 씻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어린 단종이 즉위함에 따라 왕권을 제약할 만큼 성장한 신흥사대부를 견제하겠다는 목적이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실제로 도성 한복판에, 그것도 주변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12m 불탑이 세조 13년(1467년) 완성됐을 때 유신(儒臣)들의 굴욕감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시기, 석탑의 8층 이상이 땅바닥에 끌어내려진 것도 그 불쾌감의 일단을 보여 준다. 십층석탑은 1946년 미군공병대의 크레인을 동원하고서야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였던 만큼 세조는 원각사를 창건하고자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실록에는 일종의 창건설화마저 등장한다. 효령대군이 회암사에서 원각법회를 베풀자, 여래가 나타나고 신(神)의 음료라고 할 감로(甘露)가 내렸다. 황색 가사를 입은 신승(神僧) 3인이 나타나니 밝은 빛이 일어나고, 채색 안개가 공중에 가득 찼으며, 부처님의 사리가 저절로 늘어나는 분신(分身)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세조는 ‘이처럼 기이하도록 상서로운 일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우므로 홍복사를 다시 세워 원각사를 삼고자 한다’고 했다. 원각(圓覺)이란 깨달음의 다른 말이다. 회암사에서 원각법회가 계획됐을 때부터 세조는 도성에 새로 지을 거대 사찰의 성격과 구체적인 이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흥복사는 세종시대까지도 왕실의 불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조는 원각사 조성의 명을 내린 이튿날 흥복사에 거둥했는데 왕세자와 효령대군, 임영대군, 영응대군, 영순군 같은 왕실의 핵심 인사들이 앞장선 가운데 영의정 신숙주와 좌의정 구치관, 병조판서 윤자운을 비롯한 관리들을 대동한다. 못마땅한 신하도 없지 않았겠지만, 불만을 공개적으로 토로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조는 앞서 회암사의 법회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부터 대사면령을 내리며 민심을 자기편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도 13차례에 걸쳐 상서로운 조화가 있었다며 사면령을 내리거나 관계자를 포상했다. 원각사를 인간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새로 짓는 것으로 뇌리에 각인시키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림정치 기반 공고해지면서 사찰 명맥 끊겨 하지만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마저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데 이어 13세에 불과한 성종이 즉위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사림정치의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성종 5년(1474) 원각사의 백옥불상은 회암사로 옮겨지고 승려들도 퇴출된다. 연산군은 즉위 10년(1504) ‘흥덕사를 원각사로 옮기게 하라’고 전교한다. 이듬해 장악원(掌樂院)을 원각사로 옮기도록 했다. 사찰로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흥덕사와 원각사의 기능도 이때 완전히 중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악(禮樂)을 관장하던 장악원의 기능도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성리학적 이상국가로 만들겠다며 도학정치를 부르짖던 중종시대 원각사터는 집터로 팔려나갔다. 반정으로 중종이 집권한 직후 원각사 건물은 한동안 한성부 관아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명종시대 잇따라 큰불이 나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원각사터는 빈터로 남게 된다. 원각사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 오늘날까지 십층석탑과 탑비가 남아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슈가맨 테이크, 이승현 치웨이 부부 뜨거운 관심..화보 보니 ‘섹시 미모’

    슈가맨 테이크, 이승현 치웨이 부부 뜨거운 관심..화보 보니 ‘섹시 미모’

    ‘슈가맨’에 출연한 테이크 멤버 이승현과 그의 아내 치웨이 부부가 온라인에서 뜨거운 이슈다. 19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는 2005년 발매된 ‘나비무덤’의 테이크(이승현, 김도완, 장성재, 신승희)가 슈가맨으로 등장했다. 이날 테이크 멤버 이승현이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라는 근황이 알려졌고 그의 아내가 중국의 10대 미녀라 불리는 중국 가수 겸 배우 치웨이라는 사실도 공개됐다. 1984년생인 치웨이는 영화 ‘중경미녀’ ‘회마창’ ‘마이 브로드캐스트 걸프렌드’ 등의 주연을 맡는 등 중국의 톱스타. 치웨이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화보를 보면 치웨이는 어깨를 드러낸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중국 10대 미녀’라는 말이 손색없는 빼어난 미모를 뽐내고 있다. 테이크 이승현과 치웨이는 지난 2012년 드라마 ‘세계상령일개아’를 통해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2014년 9월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딸 럭키를 출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슈가맨 테이크 이승현 “‘나비무덤’ 부를수 있어 감사” 유재석과 인증샷

    슈가맨 테이크 이승현 “‘나비무덤’ 부를수 있어 감사” 유재석과 인증샷

    ‘슈가맨’에 출연한 테이크 이승현이 MC 유재석과의 셀카를 공개하며 출연 소감을 전했다. 2005년 ‘나비무덤’으로 큰 사랑을 받은 테이크는 19일 방송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통해 10여년 만에 완전체로 무대에 섰다. ‘슈가맨’ 방송 이후 테이크와 멤버 이승현 김도완 장성재 신승희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테이크 이승현은 중국의 미녀 배우 치웨이와의 결혼으로 주목받았다. 이승현은 20일 자신의 웨이보에 “초대해 준 ‘슈가맨’ 제작진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테이크가 10년이 지난 뒤에 같이 무대에 서 함께 노래 ‘나비무덤’ 부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라며 ‘슈가맨’ 출연진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테이크 멤버들과 개그맨 유재석, 걸그룹 2NE1 산다라박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테이크 이승현은 현재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슈가맨 테이크 이승현, 치웨이와 상의 탈의한채 밀착 화보 ‘폭발적 섹시미’

    슈가맨 테이크 이승현, 치웨이와 상의 탈의한채 밀착 화보 ‘폭발적 섹시미’

    ‘슈가맨’에 테이크가 출연해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멤버 이승현의 아내 치웨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는 2005년 발매된 ‘나비무덤’의 테이크(이승현, 김도완, 장성재, 신승희)가 슈가맨으로 소환됐다. 테이크 멤버 김도완은 이승현에 대해 “중국에 떴다하면 경찰이 동원된다. SNS 팔로워가 300만 명에 육박한다. 중국 10대 미녀 치웨이와 결혼을 했다”고 밝혔다. 이승현 치웨이 부부는 슬하에 딸도 두고 있다. 치웨이는 중국의 유명 가수 겸 배우다. 이에 이승현 치웨이 부부의 화보에도 눈길이 쏠렸다. 이승현은 지난 2월 자신의 웨이보를 통해 치웨이와의 부부 커플 화보를 공개했다. 사진 속 이승현 치웨이는 상의를 탈의한 채 몸을 밀착하며 아찔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편 이승현은 테이크로 활동하다 중국으로 건너가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드라마 ‘세계상령일개아’를 통해 만난 이승현 치웨이는 연인으로 발전해 2014년 9월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딸 럭키를 출산했다. 사진=JTBC ‘슈가맨’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배웅/서동철 논설위원

    출근길 광역버스 정류장에는 제법 긴 줄이 만들어진다. 어느 날 초로(初老)의 아주머니가 달음질치다시피 줄에 합류했다. 그러곤 조금 있다 나타난 젊은 여성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딸인 듯싶었다. 어머니의 미소는 환하기만 했다. 딸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일까.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대견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딸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흐뭇하기만 했다. 딸은 신입 사원이 아니더라도 지각하면 곱지 않은 눈초리에 시달릴 사회 초년병일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배웅을 넘어 초조한 딸의 속마음까지 배려하는 것일까. 반면 딸의 표정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어머니가 이야기를 건네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딸이 버스에 오르면 어머니는 어디 앉았는지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쳤는지 미소를 보낸다. 보지는 못했지만, 이때도 딸은 살가운 표정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잘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모녀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테이크 이승현, 아내 치웨이 “중국 10대 미녀..아이까지 있다”

    테이크 이승현, 아내 치웨이 “중국 10대 미녀..아이까지 있다”

    ‘슈가맨’ 테이크 이승현이 중국 10대 미녀 배우 치웨이와 결혼한 사실을 밝혀 화제다. 19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서는 2005년 발매된 ‘나비무덤’의 테이크(이승현, 김도완, 장성재, 신승희)가 슈가맨으로 소환됐다. 이날 테이크는 감미로운 하모니를 뽐내면서 히트곡 ‘나비무덤’을 열창했다. 테이크 이승현은 근황을 묻는 질문에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테이크 멤버 김도완은 “이승현이 중국에 떴다하면 경찰이 동원된다. SNS 팔로워가 300만 명에 육박한다”며 그의 인기를 전했다. 이어 “중국 10대 미녀 치웨이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딸도 있다. 드라마를 찍다가 만났다. 제가 쫓아갔다”고 덧붙여 거듭 놀라움을 자아냈다. 사진=JTBC ‘슈가맨’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테이크 ‘나비무덤’, 슈가맨 소환..훈훈 비주얼에 ‘깜짝’ 유희열 “역대 최고”

    테이크 ‘나비무덤’, 슈가맨 소환..훈훈 비주얼에 ‘깜짝’ 유희열 “역대 최고”

    ‘나비무덤’ 테이크가 ‘슈가맨’에 등장했다. 19일 방송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는 ‘나비무덤’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남성 4인조 그룹 테이크(이승현, 김도완, 장성재, 신승희)가 슈가맨으로 소환됐다. 이날 유희열은 “한국가요계에 음반시장이 불황기이던 2005년, 음반에서 음원시장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48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등장한 아름다운 하모니가 돋보인 남성그룹”이라고 테이크를 소개했다. 이어 유희열은 ‘나비무덤’을 부르며 등장한 테이크에 대해 “역대 슈가맨 중 비주얼 탑”이라고 감탄했다. 테이크는 ‘나비무덤’으로 환상의 하모니를 선보이며 출연진과 객석을 사로잡았다. 이날 테이크와 함께 슈가맨으로 소환된 가수 에스더 또한 ‘나비무덤’ 무대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JTBC ‘슈가맨’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5살 소년 장례식, ‘스파이더맨’ 복장 참석한 경찰 사연

    한 경찰관이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한 소년의 장례식에 참석한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미국언론 CNN은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텍사스주(州) 포트워스에서 열린 5살 소년의 특별한 장례식 사연을 보도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소년의 이름은 조슈아 가르시아(5). 소년은 지난 2일 집 근처에서 뛰어놀다 이웃집 풀장에 빠져 익사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당시 소년의 실종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정말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었던' 포트워스 경관 데이먼 콜이었다. 콜 경관은 수색 중 물이 혼탁해 바닥이 보이지 않던 이웃집 풀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조슈아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조슈아는 부모의 오열 속에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콜 경관은 "구조 당시 정말 슈퍼파워를 가진 영웅이 되고 싶었다"면서 "16년의 경찰생활 중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직접적으로 가슴 아팠던 것은 처음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콜 경관이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장례식에 가게된 것은 생전 조슈아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스파이더맨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평소 콜 경관은 슈퍼영웅으로 코스튬하고 각종 어린이 자선행사에 참여한 바 있어 유족은 장례식에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와달라고 요청했다. 장례식이 열린 이날 콜 경관은 실제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해 조슈아를 추모했고 유족은 평소 아이가 좋아했던 스파이더맨 복장을 무덤에 함께 묻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4월에도 콜 경관은 암에 걸린 7살 소년을 응원하기 위해 슈퍼맨으로 변신해 무려 11시간 자동차를 몰고 일리노이주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열린세상] 고령화와 고고학의 지혜/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고령화와 고고학의 지혜/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유명한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나이 40에 14살 연하였던 고고학자 맥스 맬로완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이후 범상치 않은 그들의 결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부부는 ‘고고학자는 오래될수록 흥미를 더 느끼니 여자에겐 최고의 남편감’이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실제로 크리스티가 85세로 죽을 때까지 이 부부는 금실 좋게 살았다. 게다가 상대방의 일에도 큰 도움을 주었으니, ‘메소포타미아 살인사건’을 비롯한 그녀의 여러 추리소설에 고고학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들 고고학을 값진 보물을 캐는 직업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고고학에서는 유물보다는 유물이 놓인 위치, 즉 층위를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물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발견된 위치를 모른다면 그 유물을 만들어 낸 인간들의 역사를 제대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에게는 화려한 보물보다는 한 자리에서 살아온 수천 년 인간의 역사가 더 소중하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도 마치 고고학의 층위처럼 인생의 경험이 한층 한층 쌓여 가는 과정이다. 사람이 노화된다고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풀숲에 가려진 옛 유적처럼 그들의 지혜는 오히려 무의식의 저편에 묻혀 있다가 필요할 때에 발현되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언제나 늙은이의 지혜를 믿어 왔다. 그렇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인간의 수명은 매우 짧았기에 늙어 가는 것은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진 기회였다. 동북아시아에서 최초의 청동기시대인 4000년 전 하가점하층문화의 무덤 유적인 다뎬쯔에서 700여기의 무덤에 묻힌 인골을 분석한 결과 그중 40대 이상은 10% 이하였다. 문명의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늙어 가는 것은 운 좋은 소수만 가능했다. 인생 100세를 넘보는 지금의 고령화 사회는 지난 수백만 년의 역사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다. 더욱이 의학의 발달로 수명뿐 아니라 지적인 능력도 계속 유지가 된다. 예전에는 진즉에 은퇴했을 법한 백발의 전문가들이 녹슬지 않은 전문적인 지식에 연륜을 더해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고고학의 층위처럼 쌓인 인간의 지혜와 경험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늙어 가는 모습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젊을 때 경험과 생각을 앞세우며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부 노년 세대도 있고, 반대로 늙은 세대가 자신들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고 갈등의 각을 세우는 일부 젊은 세대도 있다. 이런 모순은 늙어감을 지혜의 축적보다는 생산성의 퇴보로만 생각하는 사회적 통념과도 관계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늙음을 거부하려고만 한다. 동안 열풍도 결국은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기를 거부하려는 열망이 표현된 것이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원래 나이에 관계없이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라는 말이지만 요즘은 늙음을 거부하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을 바꾼다고 해도 나이는 바꿀 수가 없다. 매스미디어는 동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경쟁적으로 비추어 주지만, 사실 수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노화를 늦추는 것일 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시도, 중국의 진시황도 찾지 못한 영원한 젊음의 길을 우리라고 찾을 수 있을까. 오히려 늙어감의 기쁨을 찾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100세 인생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절반은 생식을 비롯한 육체적 그리고 사회적인 능력이 감퇴한 채로 산다는 뜻이다. 이 절반의 인생을 위해 물질적인 연금은 물론 노년의 지혜가 제대로 발휘되는 정신적인 연금을 쌓기 위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지난 세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탈식민지, 민주화와 그리고 경제발전을 이룩해 왔다. 그 소중한 역사를 담은 세대들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함께하며 그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앞날을 모색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축복이 아닐까. 유적의 층위 사이에서 인간의 역사를 찾아내면서 우리의 앞날을 모색하는 고고학의 지혜가 급격히 고령화되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