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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초등학교 운동장서 ‘해적’ 유골 발견 화제

    英 초등학교 운동장서 ‘해적’ 유골 발견 화제

    운동장 아래에 누군가의 유골이 묻혀있다는 이야기는 어느 학교에나 있음직한 흔한 괴담 중 하나다. 그런데 실제 스코틀랜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해적’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굴돼 눈길을 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유골은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든버러 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빅토리아 초등학교의 건물 증축을 위해 시의회 직원들이 지반을 검사하던 중 발견됐다. 빅토리아 초등학교는 뉴하벤 항구와 인접해 있어 시의회 직원들은 옛 선박 정박지의 터가 발굴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과 달리 정체불명의 유골이 대신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 직후 고고학자들은 유골의 손상이 심각하며 그 옆에서 4000년 전의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됐다는 점을 근거로 유골이 청동기 시대 인물일 것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탄소연대 측정방식을 통해 알아본 결과 유골의 주인은 16~17세기에 생존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망 당시 이 인물은 50대 남성이었고 고고학자들은 그가 해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로 이 남성이 사망했을 시기 뉴하벤 마을에는 교수대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마녀 누명을 쓴 여성들이나 해적들이 처형됐다. 또한 유골이 손상됐다는 점, 그리고 주변의 여러 다른 묘지 중 하나에 묻히는 대신 바다 가까운 장소에 묻혔다는 사실 등에 미루어 봤을 때 이 남성은 처형 직후 바다 위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매달려 ‘전시’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다른 해적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 또한 이 유골은 깊지 않게 매장됐으며, 무덤임을 나타내는 어떠한 표식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남성의 묘를 찾아올 친인척이 도시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가 연고 없는 범죄자였을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리처드 루이스 에든버러 시의회 문화의원장은 “에든버러 시의 고고학 및 박물관 인재들이 힘을 합쳐 이 같은 발견을 해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로라 톰슨 빅토리아 초등학교 교장은 “학생들은 놀이터 깊은 곳에서 유골이 발견됐다는 사실에 흥분한 상태”라며 “곧 고고학자들에게 유골 분석과정에 대한 특별 강의를 열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학습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1년만에 회복한 ‘좀비 고양이’ 새해인사 감동

    1년만에 회복한 ‘좀비 고양이’ 새해인사 감동

    지난해 1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무덤에서 걸어 나와 이른바 '좀비 고양이(Zombie Cat)'화제를 불려 모았던 고양이가 다시 건강을 되찾은 모습으로 새해 인사를 전해 감동과 함께 화제를 몰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州) 탬파베이 동물보호 단체는 지난 1일(현지 시간), 자체 페이스북에 지난해 좀비 고양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화제를 모았던 고양이 바트(Bart)가 새해 인사 모자를 쓰고 회복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만신창이가 된 모습의 바트 사연은 1년 전인 지난해 1월 온 세상을 휩쓸었다. 바트의 주인이 집에 주차를 하다 실수로 바트를 치었고 이내 숨진 것으로 판단해 바트를 땅속에 묻고 말았다. 하지만 바트는 무덤을 뚫고 나와 묻은 지 5일 후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다. 당시 만신창이가 된 바트의 모습은 이른바 '좀비 고양이'로 불리며 언론을 통해 알려져 전 세계 네티즌들의 관심과 연민을 한몸에 받았다. 바트는 발견 당시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턱뼈가 뿌려져 있었으며, 한쪽 눈도 실명한 상태로 발견돼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 끝에 지난 1년 동안 동물보호 단체의 보살핌으로 겨우 회복을 할 수 있었다. 바트를 발견한 이웃 주민들은 발견 당시 바트가 움직일 수 있었으며, 얼굴이 불에 탄 흔적도 있는 등 바트가 죽어서 묻었다는 주인의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트의 주인은 묻기 전에 친구에게도 물어보았고, 바트가 분명히 죽은 것으로 판단해 바트를 땅에 묻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재 동물보호단체의 관계자는 바트가 완전히 회복되는 대로 입양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바트의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아 법적인 다툼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발견된 좀비 고양이가 회복했다는 내용이 새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고양이 주인은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면서 "바트가 좋은 새 주인을 맞이하기 바란다"는 댓글을 올리는 등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천문학+] 우주에 관한 놀라운 ‘진실 7가지​’

    [천문학+] 우주에 관한 놀라운 ‘진실 7가지​’

    우주의 팽창속도가 갈수록 가속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우주팽창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은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는 데 천문학자들은 이견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팽창의 끝에는 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우주의 운명은 어떻게 끝날까? 우주의 물질 밀도는 갈수록 떨어져 결국에는 우주가 텅 비다시피 될 거라고 천문학자들은 예측한다. 일찍이 라이프니츠는 “왜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졌는데, 현대 우주론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신경 쓸 거 없다. 머지않아 텅 비워질 테니까.” 우리가 사는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기묘한 동네임이 분명하다. 새해를 맞이한 이 시점에서 우주에 관한 놀라운 진실 7개를 알아보기로 한다. 1. 우주는 정말 오래된 것이다​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WMAP 같은 초정밀 측정기기를 탑재한 탐사선을 우주로 내보내 측정한 데이터로부터 뽑은 계산서이기 때문에 오차 범위는 1억 년을 넘지 않는다. 우주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 밀도를 측정하고 팽창속도를 연관 지어 계산하면 빅뱅이 언제 일어났는가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그래서 알아낸 것이 138억 년이다. 100년을 초로 환산하면 약 30억 초인데, 그 30억 초도 제대로 못사는 인간을 생각할 때 138억 년이란 거의 영겁 같은 시간이다. 이처럼 우주는 오래되었다. 2. 우주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1920년대에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정적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다는 혁명적인 발견을 세상에 알렸다. 지구가 한 자리에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 둘레를 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겨우 300년밖에 안 되었는데, 하늘까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만사가 불안정한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이렇게 땅이고 하늘이고 간에 삼라만상이 무상한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황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우주공간이 계속 팽창해 가더라도, 물질의 속성인 만유인력에 의해 점차 속도가 늦추어지거나, 종국에는 수축할 것이라고 예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주의 팽창속도가 점차 빨라져 가고 있다는 관측보고가 다시 들어왔다. 1998년, 허블 우주망원경은 아주 먼 거리에서 폭발한 초신성을 자세히 관측한 결과, 오랜 과거에는 우주가 지금보다 느리게 팽창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주의 팽창을 가속하고 있다는 말인가? 과학자들은 그 범인을 암흑 에너지라고 지목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 에너지가 우주공간을 점점 더 빨리 잡아 늘이고 있다는 것이다. ​ 3. 우주 팽창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미스터리에 싸인 암흑 에너지의 존재가 우주를 단순히 팽창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속 팽창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천문학자들을 당혹 속에 빠뜨렸다. 1998년, 두 팀의 천문학자 연구진이 그동안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똑같이 이러한 결론에 이르렀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더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다고 한다. 우주의 가속팽창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중력에 반하는 척력으로서 우주팽창을 가리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의 우주상수를 부활시켰다. 우주의 가속팽창을 발견한 3명의 과학자는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4. 우주는 편평하다​​ 우주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우주에 담겨 있는 물질에 기초한 중력과 우주를 팽창시키는 척력과의 줄다리기다. 우주의 물질 밀도가 임계치 이상이면 우주는 닫혀서 공 표면처럼 된다. 이를 닫힌 우주라 한다. 이 우주는 경계는 있지만, 끝은 없는 우주다. 개미가 구면을 한없이 기어가더라도 끝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이나 같다. 이 우주는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기 시작하여 종국에는 한 점으로 붕괴할 것이다. 이를 ‘대파열’(Big Crunch)이라 한다. 반대로 밀도가 임계치 이하이면 무한 팽창을 영원히 계속하는 열린 우주가 된다. 그 형태는 말안장과 같은 꼴이다. 그 끝에는 물질의 밀도가 극도로 낮아져 온 우주가 자체로 거대한 무덤이 되는 ‘열사망’이 기다리고 있다. 열사망이란 온 우주의 온도가 얼음 덩어리처럼 완전 평형을 이루어 어떤 에너지도 이동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만약 우주의 물질 밀도가 임계치에 딱 들어맞는다면, 우주의 기하학적 모양은 종잇장처럼 ‘편평’한 꼴이 된다. 이 우주는 영원히 팽창은 하겠지만 결국 팽창률은 영(0)에 수렴된다. ​최근의 관측결과는 2% 오차 범위 내에서 우주는 편평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지루하겠지만 당분간 팽창하는 우주를 하염없이 바라다볼 운명인 셈이다. 5. 우주는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물질로 꽉 차 있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 중에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이나 행성, 은하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4%밖에 안 된다. 나머지 96%는 보이지 않는 것들, 곧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는 얘기다. ​이 둘에 '암흑'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빛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으며,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천문학자들은 그들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반물질과 중력으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복면을 쓴 이 암흑물질을 본 과학자는 아직 한 사람도 없다. 그 존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말이다.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의 최대 화두가 바로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다. 이들을 뺀 나머지 4%의 가시적인 물질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캄캄한 우주를 올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6. 우주는 그 탄생의 ‘메아리’를 갖고 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소리를 고고성(呱呱聲)이라 한다. 우주도 태어날 때 고고성을 울렸다. 단, 소리가 아니라 엄청나게 뜨거운 ‘열’이었다. 모든 열은 빛을 낸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할 때 뿜어냈던 열은 138억 년이 흐르는 동안 많이 식어 마이크로파가 되어 우주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을 우주배경복사라 한다. 랠프 앨퍼, 조지 가모브 등이 이론적으로 그 존재를 예측했고, 오늘날 배경복사의 온도는 5K, 즉 대략 -268℃쯤 된다는 계산서를 뽑아냈다. ​마침내 1964년에 미국의 전파 천문학자 아노 페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고감도 안테나로 배경복사를 발견했고, 이들은 이 공로로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당신도 이 빅뱅의 메아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이 없는 TV 채널을 켜면 지직거리는 선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중 1%는 바로 우주가 탄생할 때 나온 전자기파가 138억 년 동안 우주를 떠돌다가 TV 안테나를 타고 당신의 시신경을 건드린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7. 다른 우주들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수많은 우주 중에서 하나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바로 다중 우주론이다. 다중 우주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빅뱅 이후에 시작된 ‘영구적인 인플레이션(Eternal Inflation)’ 과정에 있다고 본다. 다중 우주론을 배태시킨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우주가 밀도가 무한한 한 공간에서 시작됐으며 초창기에 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이 인플레이션 과정에서 우주 안팎에 각각 다른 물리 법칙들이 지배하는 새끼 우주들이 계속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다중우주론은 그동안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아직까지 순전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우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평행하게 진행하고 있는 다른 우주를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관측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중우주론자들은 우주배경복사에서 우주 충돌의 단서를 열심히 찾았지만 어떤 조짐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신의 존재 증명처럼 영원히 증명할 수 없는 가설로 끝날지, 아니면 어떤 단서가 밝혀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사진=NASA/ESA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新국토기행] 강원 홍천군

    [新국토기행] 강원 홍천군

    강원 홍천군은 면적이 1819.7㎢로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넓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홍천강을 거슬러 황포돛배가 오갔고, 대동미 창고가 있어 중부지역 동서를 아울러 문물이 모이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래서 곳곳에 보물 같은 유적지와 전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홍천은 전형적인 산촌문화를 간직한 농촌이다. 굽이굽이 시원하게 홍천을 감싸고 흐르는 400여리 홍천강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차량으로 30~40분대 거리에 놓이며 사계절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강줄기와 산맥을 따라 월인석보가 발견된 수타사와 정희왕후의 태가 봉안됐다는 공작산, 명당자리에 묘를 써 중국의 임금이 됐다는 전설이 깃든 가리산, 여덟 봉우리마다 스토리를 간직한 팔봉산과 대명 비발디파크, 세계적 무희 최승희의 우물터, 정감록 고서에 명당으로 소개되는 삼둔오가리와 삼봉약수, 살둔산장 등 오롯한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깊은 자연 속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홍천을 찾아 지난 한 해의 버거웠던 짐을 내려놓고 새해 설계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볼거리] ●국보 월인석보 품은 공작산 수타사… 석가의 삶 되짚다 해발 887m인 공작산 정상에서는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사계절 풍광이 아름다워 전국에서 관광객과 가족형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조선 정희왕후의 태가 봉안돼 있다는 명산이기도 하다.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고 기암절벽과 분재 모양의 노송군락, 눈 덮인 겨울 산도 일품이다. 산 끝자락에 천 년 고찰 수타사가 자리잡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대적광전 팔작지붕과 1670년에 만든 동종, 고려 후기에 세워진 3층 석탑이 잘 보존돼 있다.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해 대적광전, 범종, 후불탱화, 홍우당부도 등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영서 내륙의 최고 고찰이다. 수타사 경내 자리한 수타사성보박물관은 수타사가 소장한 보물 월인석보와 영산회상도, 지왕시왕도와 관세음보살상 사리함 등 문화재를 보관·전시하고 있다. ●100만명 발길 닿은 공작산 생태숲… 자연을 거닐다 공작산 생태숲은 ‘힐링의 고장’ 홍천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2009년 개장 이래 100만명 이상이 찾았다. 서울 등 수도권으로부터 차량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놓여, 근교 산림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천 년 고찰 수타사를 중심으로 163㏊의 넓은 산림에 다양한 종류의 수목과 화초류가 심어져 있다. 생태체험 관찰로, 수생식물원이 조성돼 있을 뿐 아니라 치유쉼터, 명상공간, 숲속교실 등 다양한 구성으로 심신의 피로를 푸는 힐링 명소로 자리잡았다. 생태숲 교육관, 수생식물원, 소나무 광장, 숲 관찰로, 숲속치유쉼터 등이 있다. 수십여 종의 야생화와 수목 등이 심어져 있다. 다양한 포유류, 조류, 양서류 등을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생태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숲 해설사에게 직접 수타사와 생태숲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숲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다. 연중 무료 운영된다. 수타사계곡을 굽이치는 덕치천 물길과 넓은 암반, 큼직큼직한 소(沼)들도 장관이다. ●철분과 불소 가득 담은 가칠봉 삼봉약수… 치유를 마시다 가칠봉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 태고의 원시림을 간직한 산으로 전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산이다. 이 산자락에 유명한 삼봉약수가 있다. 가칠봉, 사삼봉, 응복산 세 봉우리 가운데 위치해 있다 해서 삼봉약수로 불린다. 수질이 우수해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됐다. 사이다 같이 톡 쏘는 맛의 약수는 빈혈, 당뇨병, 신경통, 위장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실개울을 낀 산기슭의 바위틈 3곳의 구멍에서 샘솟는 삼봉약수는 지름과 깊이가 모두 30㎝ 안팎이다. 구멍마다 솟는 약수가 저마다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 약수 주변은 숲이 울창하고 풍광이 뛰어나 머물며 요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삼봉자연휴양림은 산장, 등산로, 삼림욕장, 오토캠핑장 등 휴양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름엔 약수터 옆 키큰이깔나무 숲 그늘이 시원하고, 가을엔 주위의 깊은 숲에 오색 단풍이 운치를 더한다. ●8개 암봉과 홍천강 휘도는 팔봉산… 자연의 보물 그리다 해발 327.4m로 산세가 아담하고 기암과 절벽 사이로 등산로가 있어 등산의 묘미가 짜릿하다. 팔봉산을 안고 흐르는 홍천강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이 특징이다. 봉우리마다 바위 위에 올려진 수석처럼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천연의 전시장을 방불하게 한다. 저마다 독특한 봉우리 모양을 형상화해 많은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다. 산세가 나지막해 가족단위의 산행에 좋다. 산 아래 강에서는 메기, 쏘가리 등 민물고기를 낚을 수 있고 관광지 안에 체육시설물이 있어 단체 관광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봄과 가을에는 등산객들이, 여름철은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홍천강을 낀 넓은 백사장은 피서철 야영하기에 좋은 곳이다. ●열두 산골 서곡마을·이야기 골프길… 추억을 말하다 서곡마을은 안실, 여창, 밧실, 덕탄골, 샛가람골, 논틀골, 선바위골, 도반골, 말무덤골, 물안골, 절골, 괘석골 등 12개 산골 동네로 형성돼 있다. 이 산골 동네를 잇는 이야기 둘레길을 만들어 ‘이야기 골프길’이라 했다. 골프 코스 개념을 접목해 만든 이야기 골프길은 4개의 구간으로, 전체 길이는 8.317㎞에 이른다. 18개 지점에 길 안내 표지물이 세워져 있다. 길 주변에 있는 99개의 명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걸을 수 있게 구성됐다. 걸으면서 다음 지점까지 몇 걸음으로 갈 수 있을 것인지를 정하고 걸어, 목표지점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잘 맞췄는가를 만보기로 비교해 보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골프코스 개념의 길이다. 자기의 보폭을 통해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걷기운동에 도움을 주는 길이 이야기 골프길이다. ●가리산 레포츠파크 플라잉 짚·서바이벌… 모험을 떠나다 힐링과 체험, 모험과 스릴을 함께할 수 있는 가리산 레포츠파크가 지난 8월 운영에 들어갔다. 꿈에 그린 전원도시 홍천을 슬로건으로 관광도시로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레포츠 파크에는 플라잉 짚, 포레스트 어드벤처, 서바이벌 체험장 등이 있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즐기는 가리산 플라잉 짚은 길이 969m, 7개 라인으로 구성된 시설로 동력 없이 탑승자의 무게와 낙차에 따라 빠른 속도를 체험할 수 있다. 별도 훈련 없이 남녀노소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나무와 지주대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하고 탑승자와 연결된 간단한 트롤리를 와이어에 걸어 빠른 속도로 반대편으로 활강하는 익스트림 스포츠이다. [먹을거리] ●참나무 향 ‘양지말화로숯불구이’ 홍천의 대표적 먹거리로 양지말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10여집의 화로구이촌이 형성돼 명소로 자리잡았다. 고추장, 된장, 벌꿀 등 15~20가지 양념으로 돼지 숯불구이를 버무려 낸다.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없고 참나무 숯불에 구워 미식가는 물론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화로숯불구이촌은 홍천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맛집이다. 홍천더덕과 함께 구워 먹으면 더욱 일품이다. ●원조의 맛 ‘닭갈비와 막국수’ 홍천사람들은 닭갈비와 막국수는 원래 홍천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50~60년 역사를 간직한 태화닭갈비, 옥수닭갈비 등 20여곳의 닭갈비집들이 향토음식점으로 알려져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닭갈비와 더불어 막국수도 홍천 산골마을에서 시작했다는 건강 웰빙음식이다. ●6년근 인삼을 먹은 ‘인삼 송어회’ 홍천만의 특화된 송어를 개발하기 위해 6년근 홍천인삼을 먹인 송어가 일품이다. 전국은 물론 홍천에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홍천인삼송어 회와 매운탕은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힌다. 일반 송어에 비해 육질이 단단하고 고소한 맛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인삼을 먹이는 만큼 양식장에서 무항생제로 키워 건강에 좋다. 특히 양식 첫해에 나온 햇송어를 최고로 친다. ●메밀전병 브랜드 ‘홍총떡’ 국내산 메밀가루로 만든 촌떡을 브랜드화시켜 홍천 전통시장에서 항상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전통 건강음식이다. 메밀전에 소를 넣고 말아서 만든 전병은 매콤 달콤한 고향 음식으로 택배로 배송까지 돼 전국에서 주문할 수 있다. ●고급육의 차별화 된 홍천 한우 ‘늘푸름’ 늘푸름은 최고급 홍천한우 브랜드로 유명하다. 늘푸름 홍천한우는 ‘청정한우 브랜드부문’에서 인지도와 대표성·만족도·충성도·글로벌 경쟁력·브랜드 종합 호감도에서 모두 상위권을 기록하며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홍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IS “美, 겁나서 지상군 못 보내” 조롱

    IS “美, 겁나서 지상군 못 보내” 조롱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7개월간의 침묵을 깨고 육성 메시지를 통해 미국, 러시아의 공습에도 IS는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의 전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IS 조직을 다잡고 대원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메시지를 발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바그다디는 26일(현지시간) 인터넷에 공개된 음성 녹음을 통해 “전 세계가 뭉쳐 하나의 세력(IS)에 맞선 일은 이슬람 역사상 전례가 없다”며 “세계의 모든 불신자가 모든 무슬림에 대적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IS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는 미국 등 연합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그들은 우리를 위협할 수도, 우리의 결의를 파괴할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들은 우리의 전사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감히 (IS 영토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며 지상군 파견을 꺼리는 미국을 조롱했다. 알바그다디는 지난 15일 수니파 국가 34개국을 연합해 IS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을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도 비난했다. 그는 “사우디가 주도하는 동맹국은 진정한 이슬람이 아니다”라면서 “사우디 국민은 ‘이슬람교를 배반한 독재정권’에 맞서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협박도 이어 나갔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며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인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5월 육성 메시지를 공개한 뒤 은둔 생활을 이어 온 알바그다디가 이날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데 대해 CNN은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 전장에서 패퇴하고 있는 IS 대원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바그다디는 “IS의 대원들은 옳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인내해야 한다”면서 “신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인내하자”고 말했다. 최근 이라크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은 미국 등이 공습을 강화함에 따라 IS에 대한 반격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라크 정부군은 IS가 지난 5월 점령한 라마디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안바르주의 주도인 라마디는 수도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110㎞ 떨어진 핵심 요충지다. 이라크 정부군은 26일 정부청사가 있는 라마디 도심 알후즈를 점령했으며 청사 주변에서 IS 대원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AFP가 보도했다. 하이다르 압바디 이라크 총리는 전날 정부군이 라마디를 수복한 뒤 모술을 탈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리아 반군 연합세력인 시리아민주군도 이날 IS 수도인 락까 인근의 티슈린댐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락까에서 22㎞ 떨어진 티슈린댐은 유프라테스강의 주요 3대 댐 중 하나로 시리아 북부 지역 대부분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IS가 통제해 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MLB] 기쁘다 25번 오셨네

    [MLB] 기쁘다 25번 오셨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소식이 국내 야구팬들에게 날아들었다. 미국프로야구(MLB)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24일 김현수(27)와의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17일 김현수가 미국으로 건너가 메디컬테스트를 받은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이를 놓고 온갖 억측이 난무했지만 결국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한 것이다. 이로써 김현수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하고 MLB에 직행하는 최초의 한국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볼티모어는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김현수와 2년간 총액 700만 달러(약 82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한 뒤 그를 팀의 ‘액티브 로스터’(MLB 출전가능 명단)에 올렸다. 등번호는 25번으로 배정했다. 김현수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기쁘고 무엇보다 메이저리거가 된 것에 기쁨을 느낀다”며 “어릴 적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이 꿈이었다. 지금 눈물을 흘리라면 흘릴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으로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자부심이 있다. (앞서 MLB에 진출한) 강정호가 잘 다듬어 놓은 땅에 민폐가 되지 않도록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며 각오를 밝혔다. 김현수의 팀내 타순은 추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 매체에서는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내년 정규리그 초반 6~7번 하위 타순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지만, 김현수가 ‘타격기계’로 불릴 정도로 출류율이 좋기 때문에 앞쪽 순번을 배치해 ‘테이블세터’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포지션과 관련해서는 팀내 외야수 가운데 이미 중견수와 우익수로 뛰고 있는 주전급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김현수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좌익수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볼티모어가 김현수를 주목한 것은 그의 탁월한 타격 능력과 선구안 때문이다. 김현수는 한국프로야구에서 10년 동안 통산 출루율 0.406을 기록했으며, 통산 볼넷(597개)이 삼진(501개)보다 많다. 특히 올해에는 볼넷 101개를 얻는 동안 삼진은 63개만 당하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또 구장 규모가 커 ‘타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올 시즌 홈런 28개를 쏘아올렸다. 볼티모어의 홈 구장인 캠든 야즈는 타자친화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김현수의 활약이 기대된다. 댄 듀켓 볼티모어 단장도 계약서 사인을 마친 뒤 “김현수의 출루율은 매우 뛰어나다. 그는 삼진보다 더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타자다”며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는 25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오는 29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MLB에 진출한 소감을 밝힐 예정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 예고편&티저 포스터 공개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 예고편&티저 포스터 공개

    ‘엑스맨’ 프리퀄(본편보다 시간상 앞선 속편) 시리즈 3부작 대미를 장식할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1차 예고편과 티저 포스터가 공개됐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전편 ‘엑스맨: 데이즈 오프 퓨처 패스트’의 사건 이후의 이야기다. 고대 무덤에서 깨어난 악당 ‘아포칼립스’가 자신을 따르게 할 ‘포 호스맨’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엑스맨들의 사상 최대의 전쟁을 그렸다. 이 작품은 ‘엑스맨’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리부트시킨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시리즈 중 최고 흥행 수익을 거둔 ‘엑스맨: 데이즈오브 퓨처 패스트’에 이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SF 블록버스터다. 이번에 공개된 예고편에는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아포칼립스’와 그의 수하인 ‘포 호스맨’에 맞서 엑스맨들이 힘을 합치는 과정을 담아내 보는 이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또한, 22일 공개된 티저 포스터 2종에는 ‘아포칼립스’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엑스맨의 상징인 ‘X’가 조금씩 타들어가는 모습을 담아냈다. 이는 아포칼립스가 가진 강력한 힘을 예고함과 동시에 인류와 엑스맨들에게 최악의 위기가 다가왔음을 암시한다. 이번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엑스맨’, ‘엑스맨2-엑스투’,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까지 시리즈 세 편의 연출을 맡아 흥행시킨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또 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벤더, 제니퍼 로렌스, 니콜라스 홀트, 루카스 틸을 비롯해 오스카 아이삭, 소피 터너, 올리비아 문 등의 출연으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6년 5월 개봉 예정. 사진 영상=이십세기폭스코리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목을 ‘낫’으로 고정시킨 ‘뱀파이어 유골’ 폴란드서 발견

    과거 동부 유럽지역에서 행해지던 특별하게 매장된 유골이 또다시 발견됐다. 최근 과학전문매체 라이브사이언스는 폴란드 북서쪽 드로스코 지역에서 목과 골반 등이 낫으로 고정된 유골 5구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약 17-18세기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이 유골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들이 소위 '뱀파이어'라는 주장 때문이다. 당시 지금의 폴란드를 비롯 불가리아 등지의 주민들은 뱀파이어로 여겨진 인물을 특이한 방식으로 매장했다. 바로 심장 부위에 금속 재질에 말뚝을 박거나 이번 폴란드 사례처럼 낫으로 신체 부위를 고정해 파묻는 것. 이는 뱀파이어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수 없도록 한다는 의미로 자신들과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이다.   발굴을 진행한 연구팀은 "지난 2008년 이후 소위 뱀파이어 매장 방식의 유골이 다수 발견됐다"면서 "목에 낫을 고정시킨 것은 일종의 반-악령 의식으로 다시 이들이 부활해 흡혈과 저주를 막기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동유럽 지역에서는 이같은 유골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불가리아 고고학 연구팀은 수도 소피아의 한 수도원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심장부위에 금속 말뚝을 박은 유골 2구를 발견한 바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매장이 13~17세기 사이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뱀파이어로 여겨져 묻힌 이들은 대부분 지식인, 귀족, 성직자등 특권층으로 치열한 권력 암투에 밀린 희생양이 주장. 두 번째는 해당 시기 유럽은 흑사병 공포가 만연했는데 일부 특권층을 뱀파이어로 몰고 병균의 원인으로 지목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민중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다. 종합해보면, 과거 실존했던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흡혈귀가 아닌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하게 희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지연의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 (19) 스마트카 ③ 대륙의 춘추전국 시대

    [김지연의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 (19) 스마트카 ③ 대륙의 춘추전국 시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차가 중국으로  전기자동차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면서 물밑에서 진행되던 인력 쟁탈전과 인수 합병이 표면화되고 있다. 테슬라의 CEO 엘런 머스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플의 인력 빼가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애플은 우리가 해고한 사람만 채용한다”며 “애플은 테슬라의 무덤이다”라고까지 했다. 올해 2월 전기자동차 배터리 회사인 A123는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애플이 작년 6월부터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무지브 리자즈와 핵심인력들을 불법으로 스카우트했다며 매사추세츠 법원에 제소를 한 것이다. 올해 5월 두 회사는 합의를 하고 소송은 취하되었는데 합의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A123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으로 오바마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전기차 배터리 전문 업체이다. 전기자동차 회사인 피스커(Fisker)와 GM 등에 납품하였으나 품질 문제와 경영난으로 2012년 파산 신청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완샹(萬向)이 2억 5700만 달러에 인수하게 된다. 완샹은 올해부터 미국 미시간주와 중국 항저우 등지에 3억 달러를 투자하여 공장을 증설하고 생산량을 2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시장조사 기관 내비건트 리서치가 발표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기업 평가에서 A123는 중국의 BYD에 이어 7위로 올라섰다. 완샹은 단번에 전기자동차 사업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이다.   2014년 완샹은 A123가 배터리를 납품하던 피스커 자동차까지 인수하게 된다. 피스커는 BMW에서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린 헨릭 피스커가 2007년 설립한 회사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배터리와 엔진을 함께 사용하는 전기자동차) 스포츠카인 카르마(Karma)를 출시하여 화제가 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수퍼카’로 불리는 카르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저스틴 비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등 유명인들의 차로 관심을 모았다. 피스커는 테슬라 보다 먼저 주목을 받았던 전기자동차 회사였지만 자금난과 화재 사건, 태풍 피해 등 악재가 겹치면서 파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완샹은 1억 4950만 달러를 들여 피스커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전기자동차 기업으로 또 한번 도약하였다. 중국 자동차 업체의 해외 기업 인수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010년에는 설립한 지 12년밖에 되지 않은 중국의 지리(吉利, Geely)자동차가 83년 전통의 스웨덴 볼보자동차를 18억 달러에 인수하였다. 당시 중국 언론은 “가난한 중국 시골 총각이 스웨덴 공주를 아내로 맞았다”라며 대서특필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하기도 했다. 지리의 창업주 리수푸(李書福) 회장은 거리의 사진사로 시작해서 냉장고 부품업체와 오토바이 회사를 거쳐 1998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지리는 2020년까지 전기자동차 비중을 90%까지 올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며 친환경 스마트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둥펑(東風)자동차는 2014년 프랑스 자동차의 자존심인 푸조-시트로앵(PSA)의 지분을 인수하였다. PSA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 채무위기를 겪으며 자금난에 봉착하자 중국 파트너인 둥펑에게 손을 내밀었다. 국민 기업인 PSA가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로 프랑스 정부와 푸조 가문 그리고 둥펑이 14%씩 지분을 나누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최근 PSA는 파리에서 보르도까지 580km의 고속도로 자율주행에 성공하였고 2020년까지 유럽과 중국 동시 출시를 목표로 둥펑과 전기자동차 공동 개발을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땅을 살 때 중국의 자동차 회사는 차에 투자하고 있었다.  IT 삼인방 스마트카에 꽂히다  중국의 IT 3인방으로 불리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도 스마트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12월 10일 ‘중국의 구글’ 바이두(百度, Baidu)가 베이징 시내에서 자동차가 운전을 하는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BMW3 모델에 센서와 카메라를 달아 개조한 자동차로 차선 변경, 추월, 앞차와 간격을 조절하며 최대 시속 100km로 주행을 하였다. 바이두는 북경에 딥 러닝(Deep Learning) 연구소와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 연구소를 설립하고 이 분야 3대 대가 중 한 명인 스탠퍼드 대학의 앤드류 응 교수를 영입하였다. 자율주행의 두뇌에 해당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바이두 오토브레인’(Baidu AutoBrain)은 이곳에서 탄생하였다. 바이두는 자율운행 자동차의 핵심 기술인 물체 인식(Recognition),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고정밀 3차원 지도(Baidu Maps)를 모두 가지게 되었다. 우선은 정해진 노선에서 운행하는 대중교통을 대상으로 적용하고 일반 차량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이와 같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현명해 보인다.   중국의 최대 인터넷 기업인 마윈의 알리바바도 상하이자동차와 손잡고 스마트카 진출을 선언하였다. 올 3월에는 양사가 10억 위안(약 18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고 공동으로 스마트카 개발을 시작하였다. 알리바바는 운영체제인 윤(Yun) OS와 빅테이터, 클라우드, 전자 지도 등 IT 기술을 제공하고 상하이자동차는 전기자동차와 하드웨어를 담당한다. 2016년 10월 중국 최초의 스마트카를 출시하여 26조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알리바바는 온라인 장터 T몰에서 자동차 판매를 추진하고, 전 세계 자동차 부품을 거래하는 알리치페이(阿里氣配)를 오픈하는 등 자동차 유통시장까지 흔들 기세이다.  마화텅 회장의 텐센트는 인터넷과 자동차를 연계하는 ‘커넥티드카’(Connected Car)를 포드자동차와 공동으로 개발한다고 발표하였다. 6억 명이 사용하는 텐센트의 위쳇을 기반으로 음성인식 인터페이스와 같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분야부터 협력을 시작한 것이다. 2014년에는 지도 서비스 업체인 내브인포에 1억 87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인터넷으로 차량과 도로 정보를 알려주는 ‘루바오박스’라는 하드웨어를 출시하며 스마트카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올해는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과 스마트카 개발 협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스마트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카 군웅할거 시대 BAT의 뒤를 이어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판 유튜브’ 러스왕(樂視網, LeTV)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외신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미스터리 기업 파라데이 퓨처(Faraday Future)가 미국 네바다주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전기자동차 공장을 설립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파라데이 퓨처는 내년에 공장을 짓기 시작해서 2017년에 테슬라의 모델S (85kWh)보다 성능이 좋은 럭셔리 세단 전기자동차 (98kWh)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야심 찬 도전 뒤에는 억만장자인 러스왕의 지아 유에팅 회장이 있다고 한다. 러스왕은 상하이자동차에서 부사장을 지낸 딩레이를 영입하여 자동차 사업부를 신설하고 내년에는 첫 번째 전기차인 뮬카(Mule Car)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에는 007 영화의 ‘본드 카’로 유명한 영국의 자동차 회사 ‘애스턴 마틴’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스마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러스왕이 2014년 12월 전기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비야디(BYD)는 1995년 배터리 회사에서 출발하여 매출 10조 원이 넘는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올해 7월에는 5천 대가 넘는 전기자동차를 팔아 3개월 연속 세계 판매 1위를 기록하였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비야디의 전기차 판매는 2020년까지 매년 평균 57%씩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당신의 꿈을 이루어 드립니다(Build Your Dream)’라는 메시지를 회사의 이름에 담은 BYD는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지분을 투자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올해 비야디는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2015년 세상을 바꾼 혁신기업 50’에 15위로 이름을 올렸다.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비야디의 왕촨푸(王傳福) 회장은 오늘도 친환경 자동차로 세계를 제패할 꿈을 꾸고 있다. 이 밖에도 중국의 대표 IT 기업인 화웨이,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 대륙의 실수 샤오미도 스마트카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한정된 지면에 다 소개하지는 못하였지만 글을 마무리하면서 중국의 스마트카 굴기(屈起)가 이미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3회에 걸쳐 스마트카 시대를 준비하는 실리콘밸리의 IT 기업과 기존 자동차 업계 그리고 중국 기업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글로벌 5위인 우리의 자동차 산업이 다시 한번 변화와 혁신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다음에는 스마트카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서동철 칼럼] 백제 역사도시, 경주는 모델이 아니다

    [서동철 칼럼] 백제 역사도시, 경주는 모델이 아니다

    문화유산의 운명은 뜻밖에 정치권력의 향배와 매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출향 인사가 가진 정치권력이 커질수록 해당 지역의 개발 압력은 높아지게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문화유산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도로를 넓히고 산업단지가 들어서게 되면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도 팽창한다. 이 과정에서 매장 문화재부터 훼손된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라는 경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곳은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유산의 관광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부작용이 더해지기도 한다. ‘만년 2인자’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고향인 부여는 이런 압력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1인자에 올랐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얼마 전 JP의 부여 방문 소식이 지역 신문에 실렸다.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다. 그는 과거 자신이 추진한 백제권 개발사업을 상기시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부여에만 다 해놓아 관광객들이 다 그리 간다”고 농담을 했다는 것이다. JP가 언젠가 털어놓았다는 ‘2인자론(論)’은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 보지 말라’는 것과 ‘조금도 의심받을 일은 하지 말라’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JP는 부여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부여에만 다 해놓았다”는 덕담에도 불구하고 정작 부여에서는 “JP가 고향에 해준 것은 백마강 다리 하나뿐”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신라의 수도 경주가 그동안 빠르게 개발됐음에도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는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불만의 표출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땅치 않을 그 ‘개발되지 않은 낙후함’이 오히려 가장 역사도시다운 역사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지난 7월 백제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이후 공주·부여·익산은 들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교통·숙박·음식 등 관련 산업이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지역 사회에서는 새로운 볼거리를 늘리고 주변 지역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실제로 곳곳에서 발굴조사가 벌어지고 있다. 등재를 신청하기에 앞서 발굴 예산을 늘려 놓은 데다 등재 이후에는 더욱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주에서는 공산성 발굴에서 며칠 전 백제사다리가 완전한 모습으로 출토되어 화제를 모았고, 중요한 유물이 쏟아진 수촌리 고분군의 추가 발굴에도 시동이 걸렸다. 부여에서는 사비시대 왕궁 터로 추정하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그리고 사비성의 외성인 나성의 발굴조사가 연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백제 왕족의 무덤이 추가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능산리 고분군 주변 구릉지에 대한 발굴조사도 시작된다. 부여시내에서 떨어진 은산 금강사 터도 중장기적인 정밀조사에 앞서 시굴조사에 들어간다. 익산에서도 왕궁리 발굴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이라는 희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경주의 전철을 밟아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경주의 오늘이 바람직스러운 역사도시의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가 갖는 장점은 말할 것도 없이 앞서간 이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회피하거나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지금은 경주 개발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경주가 아니라 인사동, 삼청동, 북촌이 자생적으로 거대한 전통문화지구를 이룬 서울이나 한옥마을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든 전주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낫다. 진정성 있는 역사도시일수록 부가가치는 높아진다. 개발이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로 갈수록 더 큰 황금알을 낳을 진정성 있는 문화 자원을 섣부른 개발로 퇴색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고 있는 백제 역사도시 가꾸기에 중앙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 유적도시를 개발 압력에서 보호하는 신도시가 필요하더라도 지자체 차원에서는 추진하기 어렵다. 논설위원
  • 내 가족 반려동물을 찍다, 관계를 담다

    내 가족 반려동물을 찍다, 관계를 담다

    항상 주인을 반겨 주는 영원한 친구이자 가족, 반려동물. ‘핑크&블루’ 프로젝트, ‘컬렉터’ 프로젝트 등 인물과 공간의 연관성, 인물과 사물과의 연관성에 주목했던 작가 윤정미가 이번에는 반려동물을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18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반려동물’에서 작가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주인과 반려동물을 그들의 공간에서 촬영한 작품을 선보인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던 아이들 때문에 반려견 몽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반려동물이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주변의 지인들과 그들의 반려동물을 찍기 시작했다. 산책 길에 만난 사람부터 소개를 받아 찾아간 사람까지 대상을 차츰 늘려 가면서 반려동물의 종류도 개, 고양이에서 기니피그, 토끼, 거북이, 이구아나까지 다양해졌다. 작가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던 최근 2년간 100명 정도를 촬영했다”며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 이들이 함께한 공간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들이 “가족사진을 찍듯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진을 찍음으로써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하더라”며 “서로 주고받는 게 많아서 그런지 반려동물도 주인을 닮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무덤덤하게 있는 그대로를 툭툭 담아냈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주인과 반려동물 간의 끈끈한 관계를 감출 수는 없는 법.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반려동물과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담은 작품들은 보는 내내 유쾌하고 즐겁다. (02)730-7818.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동작구 노량진의 ‘속살’ 엿보다

    [서울 핫 플레이스] 동작구 노량진의 ‘속살’ 엿보다

    추위에 종종걸음치는 수험생의 거리로 알려진 노량진. 그 거리를 지난 4일 5시간가량 누비고 다닌 이유는 ‘겉핥기로 알고 있다’며 샅샅이 구석구석 걸어 보라고 추천한 지인 때문이었다. 노량진이 변하지 않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도 사실이다. ‘재수생·고시생의 고향’으로 불릴 만한 학원들의 흔적과 단돈 3000원이면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노점들, 오래된 가게들 사이에 10년 정도 장사한 이는 명함도 못 내미는 분위기가 그렇다. 하지만 노량진의 속살은 젠트리피케이션(자본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앓기 전, 서촌이나 가로수길에서 볼 수 있었던 숨은 보석이다. 바쁜 수험생들이 만드는 역동적인 낮의 풍경, 연인이 꼭 붙어야 지날 수 있는 연인 골목길, 하늘, 강, 도시가 제각각 별빛을 품은 아름다운 야경이 장관이다. [낮에는 열정] 뜨거운 청춘들이 만드는 역동적인 낮 노량진로에서 CTS기독교TV 건물을 끼고 노량진로8길로 접어든 후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왼편의 노량진로6가길을 타고 걷다 보면 ‘연인길’을 만날 수 있다. 입구에 곰과 토끼가 연인처럼 나란히 손을 잡고 있어 금방 알 수 있다. 길 폭이 50㎝에 불과해 연인끼리 꼭 안다시피 하고 걷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연인길·벽화 가득 등용로길 ‘사랑’ 꽃피네 연인길 초입에서 만난 주민 이모(65·여)씨는 “2013년도 이맘때 학생들이 와서 5일간 벽화를 그렸는데 봄가을이면 젊은 연인들이 꼭 붙어 지나다니곤 한다”면서 “이 길을 쭉 타고 가면 학생들이나 구청에서 만든 벽화를 계속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인길을 따라가다 노량진로6길을 만나 좌회전한 후 조금 걸으면 오른쪽으로 등용로4길이 있다. 이 길에서는 꽃이 핀 계단과 하트가 가득한 벽을 볼 수 있다. 이후 KT동작지사의 담이 앞을 가로막으면 왼쪽으로 내려가다 노량진로6나길로 진입할 수 있다. 동작구에서 연인을 상징하는 꿀벌 그림을 가득 그려 놓았다. 역시 폭이 80㎝에 불과해 ‘썸’을 타는 누군가와 자연스레 손을 잡기 좋다. 동도중학교, 수도여고, 경희대 등 곳곳의 벽화마다 그린 이들의 소속이나 이름을 써 놓은 것도 특징이다. 동작구청 뒷길인 노량진로8길은 먹자골목이다. 칼국수와 부대찌개, 진한 맥주를 파는 치킨집을 만날 수 있다. 구청 바로 뒤 건물 2층에 있는 양꼬치구이집은 꽤 알려졌다. 만일 노량진 재수생 시절의 옛 맛을 찾는다면 삼거리시장 가운데 순댓국집이 있다. 재난등급 E등급을 받아 곧 철거될 곳이니 서둘러야 한다. 32년 된 순댓국 맛은 한결같다. 아침마다 사골 국물을 내고 순대를 직접 만드는 방식도 그간 변하지 않았다. ●‘수험생들의 낙원’ 먹자골목·거리가게 노량진 수산시장은 설명이 필요 없는 명소다. 10월마다 열리는 ‘도심 속 바다축제’가 유명하다. 올해 축제에는 20만명 이상이 다녀갔다. 다만, 내년이면 바로 옆에 지은 새 건물로 이전하기 때문에 왁자지껄한 재래시장의 활기와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걷다가 목이 마르다면 노량진역 건너편 만양로에 있는 G마트를 추천한다. 50% 할인된 과자, 75% 할인된 음료수 등을 쉽게 만날 수 있어 고시생들이 붐빈다. 임모(29)씨는 “각종 식료품을 싸게 팔기 때문에 돈이 없는 고시생에게는 꼭 필요한 곳”이라면서 “요즘에는 다른 지역에서 싼 가격에 장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삼익플라자 지하 1층에 음식백화점이 있다. 5단 덮밥, 칼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이 10여개 있는데 웬만한 먹보가 아니라면 혼자 먹을 수 없는 양이다. 만양로 옆 노량진로16길은 대표적인 젊은이의 먹자골목이다. 아메리카노를 1000원에 즐길 수 있다. 3500원 베트남 쌀국수집도 유명하다. 3000원에 숙주덮밥, 소유라멘, 닭갈비덮밥, 컵밥, 햄버거, 와플 등을 골라 먹고 싶다면 최근 이전한 ‘노량진 거리가게 특화거리’로 가면 된다. 노량진소방서 건너편의 270m 구간에 규격화된 박스형 거리가게 28곳이 있다. 구청은 노점상을 합법화하는 대신 위생적인 환경에서 안전한 음식을 팔도록 했다. 주변 상권과 마을을 위해 거리가게 업주들은 매달 기금을 낸다. 일반 점포와 달리 거리가게는 사고팔 수 없고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위반하면 시정명령 후 영업 정지되거나 철거된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는데도 꽤 많은 이들이 거리에 서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와플을 먹던 이모(21)씨는 “겨울이 되니 그나마 괜찮은데 지난달만 해도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밥을 사 먹기가 힘들었다”고 전했다. [밤에는 힐링] 하늘·강·도시가 빚어낸 아름다운 밤 ●용봉정·근린공원에서 본 야경 끝내줘요 날이 어둑해지면 사육신공원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사육신묘소, 사육신역사관, 한강의 전경 등을 즐길 수 있다. 역사관은 3층 규모로 단종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을 기리는 전시물들이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하지만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옆에 있는 근린공원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야경은 백미로 꼽힌다. 많은 수험생들이 이곳에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고, 성공을 기뻐하며, 실패를 위로한다. 마침 눈이 온 날이라 한옥식 사당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더 높은 곳에서 서울 최고의 야경을 보고 싶다면 9호선 노들역 3번 출구에서 동산 위로 올라가자. 10분 정도면 용봉정에 닿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힐링 그 자체다. 하늘의 별과 건물의 불빛이 만들어 내는 땅 위의 별, 한강에 비친 별까지 온 세상이 별빛이다. 내려오는 길에 용양봉저정(서울시유형문화재 제6호)에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조선의 왕 정조가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경기 화성을 참배하러 갈 때마다 쉬던 정자다. 이달 말까지 동작구가 5곳의 골목길에 설치할 ‘노량진 응원 가로등’도 시범 운영을 마치고 장소 선정만 남았다. 한 청년이 노량진 청춘들을 응원하려고 땅바닥에 응원 글이 비치는 가로등을 설치하자고 한 게 계기였다. 문구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힘내’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죠? 수고했어요’ ‘당신은 지금도 아름답지만 웃을 때 더욱 아름다워요’ 등이다. ●‘수험생의 고향’에서 ‘힐링 관광지’로 동작구 전체를 돌아보고 싶다면 동작충효길이 있다. 노량진 노들역에서 1코스가 시작된다. 고구동산, 중앙대 후문, 잣나무길 등을 지나는 3.2㎞다. 전체 7개 코스가 서로 이어져 있으며 총길이는 25㎞에 달한다. 자세한 코스는 구 홈페이지(www.dongjak.go.kr)에서 찾을 수 있다. 구 관계자는 “최근 노량진이 ‘수험생의 고향’에서 ‘힐링 관광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면서 “수험생뿐 아니라 거친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모두 위로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시론] 제3의 동력, 공익재단/이동식 경북대 로스쿨 교수

    [시론] 제3의 동력, 공익재단/이동식 경북대 로스쿨 교수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소득 재분배여야 한다.” 한 여론조사 결과다. 외환위기 후 심화되어 온 양극화 현상을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딱한 것은 정부 주도형 소득 재분배에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가진 자로부터 더 걷어 없는 자를 위한 복지에 충당하는 것이나,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에 마냥 손을 벌리기도 어렵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본질적 속성과 양립되기 어렵다. 외국에서는 기부로 설립된 공익재단이 양극화 해소의 일익을 맡는다. 기부는 자발성을 전제로 하므로 저항이 없고, 기부 재원은 기부자의 뜻대로 사용되므로 그 전부가 양극화 해소 등 공익적 사업에 사용될 수 있다. 정부가 징수된 세금을 복지 재원으로 풀 때보다 효과가 크다. 공익재단의 존재 이유이자 공익재단을 ‘제3의 동력’이나 ‘제3섹터’로 부르는 이유다. 그럼에도 공익재단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곱지 않다.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상당수 대형 공익재단은 재벌 오너에게 사회적 물의가 생긴 뒤 설립됐다. 가뜩이나 반기업 정서가 강한 터에 여론 무마용 공익재단을 곱게 볼 턱이 없다. 거기에 주식을 출연받아 설립된 공익재단들도 많다. 세금 혜택을 누리면서 공익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계속 행사한다는 비난이 항상 따른다. 그러나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벨재단은 노벨이 죽음의 상인이라는, 록펠러재단은 록펠러가 정경유착과 무자비한 인수합병, 환경오염을 일삼는 냉혈한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각각 받은 후 설립됐다. 카네기도 홈스테드제철소 파업 시 무자비한 노동 탄압으로 코너에 몰렸다. 그런 후 설립된 것이 카네기재단이다. 카네기와 록펠러에게는 절세설계용으로 재단을 설립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따랐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그룹의 대주주는 발렌베리 가문이 설립한 4개 공익재단이다. 이들 재단이 보유한 그룹주식은 26.4%이다. 이 중 85%가 크노트&앨리스발렌베리재단 소유다. 부인 앨리스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던 크노트 발렌베리가 후계구도를 고민한 끝에, “그룹을 지배하되 소유하지는 않는다”는 모토하에 설립한 것이 이들 공익재단이다. 이 모토는 5대째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 공익재단들도 설립 배경이나 목적이 순수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세계인들이 이들을 신뢰하는 것은 설립자나 그 가문이 재단운영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했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 무슨 재산을 출연받아 설립됐는가와 설립 후에 쌓게 될 양극화 해소 등 공익적 업적이 전혀 별개의 이슈임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우리 공익재단 활성화는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공익재단에 특정기업 주식의 5% 또는 10%(성실공익재단)를 넘어 출연하면 공익재단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증여세를 면제받으면서 공익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계속 행사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공익재단에 주식이 출연되는 순간 그것은 재벌 오너가 아니라 제3섹터의 것이 되고 공익재단이 청산되면 잔여 재산은 국고로 귀속된다. 그런 터에 굳이 한도를 낮게 잡아 주식 출연을 막을 이유는 없다. 그런 만큼 이제는 주식 출연 한도를 대폭 인상하되 공익재단이 출연자를 위해 활동하는 것을 엄히 금지하는 제도의 도입이 공론화되어야 한다. 의결권주의 50%까지 출연할 수 있게 하되, 공익재단이 특정 기업을 위해 활동할 수 없도록 못 박은 일본의 입법례는 참고할 만하다.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동시대 기업인 카네기와 록펠러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부의 축적과정에서 저지른 악행은 그 부로 어떤 자선을 하더라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다. 이들이 설립한 재단이 미국의 공기(公器)가 되어 쌓은 위대한 업적과 재단을 향한 미국인들의 절대적 사랑을 보면서 무덤 속 루스벨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자신의 단견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있을 것이다. 평생 일궈놓은 기업의 주식을 공익법인에 출연한 공로는 제쳐 둔 채 이를 경영권 보존 수단으로만 백안시해 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중천中天/김수복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중천中天/김수복

    중천中天/김수복 네가, 네가 새가 되어 내 가슴에까지 와서 죽을 줄을 몰랐다 그러나 너를 묻어줄 무덤이 없다
  • [아하! 우주] 태양의 미래… ‘죽은 별’ 들의 무덤 포착 (허블망원경)

    [아하! 우주] 태양의 미래… ‘죽은 별’ 들의 무덤 포착 (허블망원경)

    별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빛나지만, 그 역시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태양과 비슷한 질량을 가진 별은 태어난 지 100억 년 정도 후 별 중심부의 핵연료가 고갈되면 결국 백색왜성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우리 은하계에는 이런 백색왜성이 매우 흔하다. 특히 은하 중심부의 벌지(bulge)에는 매우 많은 수의 백색왜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있는 별들은 생성된 지 오래되어 이미 백색왜성이 된 별이 많기 때문이다. 거대한 별들의 무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보통 백색왜성은 일반적인 별보다 어두워 관측이 어렵지만, 미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 우주 망원경은 수만 광년 떨어진 은하 중심부에서 백색왜성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 우주 망원경 연구소의 아날리사 칼라미다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에 포착한 70개의 백색왜성은 조사 지역에 존재하는 백색왜성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연구팀의 추정으로는 무려 10만 개의 백색왜성이 이곳에 존재하며 이번에 관측에 성공한 것은 백색왜성 중 매우 밝은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연료가 떨어져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백색왜성이 어떻게 밝게 빛날 수가 있을까? 그 비밀은 온도에 있다. 백색왜성은 남은 핵연료 부산물들이 강한 중력으로 뭉쳐 행성만 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큰 질량을 가지고 있다. 지구와 비슷한 지름의 백색왜성이라도 밀도는 지구의 20만 배 수준이다. 따라서 막대한 열에너지가 백색왜성에 보존될 수 있다. 별이 타고 남은 재라도 그 안에는 상당한 열에너지가 있다. 별의 남은 부분이 백색왜성이 되어 작은 크기로 압축되면, 표면적이 작아지면서 도리어 표면 온도는 섭씨 수만 도까지 올라갈 뿐 아니라 열을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이 열이 식기 전까지 백색왜성은 일반적인 별보다는 당연히 어둡지만, 스스로 빛을 방출한다. 이 백색왜성들은 50~60억 년 이후 태양의 미래를 먼저 보여주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던 태양도 먼 훗날 이렇게 작고 밀도가 큰 백색왜성이 될 것이다. 생자필멸은 인간은 물론 태양 역시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태양의 먼 미래… ‘죽은 별’ 들의 무덤 포착 (허블우주망원경)

    태양의 먼 미래… ‘죽은 별’ 들의 무덤 포착 (허블우주망원경)

    별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빛나지만, 그 역시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태양과 비슷한 질량을 가진 별은 태어난 지 100억 년 정도 후 별 중심부의 핵연료가 고갈되면 결국 백색왜성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우리 은하계에는 이런 백색왜성이 매우 흔하다. 특히 은하 중심부의 벌지(bulge)에는 매우 많은 수의 백색왜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있는 별들은 생성된 지 오래되어 이미 백색왜성이 된 별이 많기 때문이다. 거대한 별들의 무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보통 백색왜성은 일반적인 별보다 어두워 관측이 어렵지만, 미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 우주 망원경은 수만 광년 떨어진 은하 중심부에서 백색왜성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 우주 망원경 연구소의 아날리사 칼라미다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에 포착한 70개의 백색왜성은 조사 지역에 존재하는 백색왜성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연구팀의 추정으로는 무려 10만 개의 백색왜성이 이곳에 존재하며 이번에 관측에 성공한 것은 백색왜성 중 매우 밝은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연료가 떨어져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백색왜성이 어떻게 밝게 빛날 수가 있을까? 그 비밀은 온도에 있다. 백색왜성은 남은 핵연료 부산물들이 강한 중력으로 뭉쳐 행성만 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큰 질량을 가지고 있다. 지구와 비슷한 지름의 백색왜성이라도 밀도는 지구의 20만 배 수준이다. 따라서 막대한 열에너지가 백색왜성에 보존될 수 있다. 별이 타고 남은 재라도 그 안에는 상당한 열에너지가 있다. 별의 남은 부분이 백색왜성이 되어 작은 크기로 압축되면, 표면적이 작아지면서 도리어 표면 온도는 섭씨 수만 도까지 올라갈 뿐 아니라 열을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이 열이 식기 전까지 백색왜성은 일반적인 별보다는 당연히 어둡지만, 스스로 빛을 방출한다. 이 백색왜성들은 50~60억 년 이후 태양의 미래를 먼저 보여주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던 태양도 먼 훗날 이렇게 작고 밀도가 큰 백색왜성이 될 것이다. 생자필멸은 인간은 물론 태양 역시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위의 시는 우리의 가난한 시인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첫 연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 위의 시처럼 ‘서러운 사랑’ 이야기 하나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하지만 마냥 서럽기만 한 사랑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긴 배웅길 주인공은 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벼슬아치와 기생이다. 선조 6년(1573년) 가을 어느 날, 저 함경도 땅 홍원에서 처음 만난 순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엮여지게 되었는데, 남자는 문관 출신 시인인 최경창(崔慶昌), 여자는 홍원 관아 기생인 홍랑(洪娘)이다. 그때 홍랑은 나이 열 예닐곱의 갓 피어나는 처녀 몸이었지만, 고죽(孤竹) 최경창은 그보다 17, 8살이나 많은 34살의 중년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나이차를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詩)와 음악이었다. 29살인 선조 원년(1568년)에 문과에 급제한 최경창은 당대의 문인 이율곡, 정철, 이산해, 양사언 등과 어깨를 나란히 교유하며 시와 문장으로 문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청절하고 담백한 시풍은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였다. 또 고죽은 피리의 고수였고, 홍랑 또한 거문고 연주가 최고수준의 기량이어서, 둘이 음률을 즐기며 시와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다 보니, 고죽은 이래저래 홍랑에게 대책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럼 과연 홍랑은 어떤 기녀였던가, 그 내력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홍랑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열두어 살 무렵에 잃었다. 말하자면 고아가 된 것이다. 그녀를 거두어준 것은 어머니의 병을 돌봐준 마을의 의원으로, 홍랑은 그로부터 글을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홍랑은 시와 음률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타고난 미모와 영특함으로 꽃다운 규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가난을 떨칠 수가 없어 기적에 몸을 올리고 홍원 관아에서 지냈다. 최경창이 홍랑을 만난 곳은 임지인 경성으로 가던 중 하룻밤 묵었던 함경도 홍원 관아였다. 당시 경성은 함경도 북부에 웅거하던 여진족들이 자주 출몰하던 곳으로, 말하자면 최전방 지역이었다.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는 경성도호부에 고죽 같은 문신을 북평사(北評事)로 보내는 것은 무관 출신인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기 위함이었다. 홍원 객사에서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은 고죽과 홍랑은 경성으로 가는 길에는 동행하지 못한다. 부임지에 가면서 댓바람에 관기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두 사람은 경성의 군막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여기서 홍랑의 다릿심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홍원과 경성은 굽이굽이 험한 산길로 이어지는 천릿길이다. 서울-부산 간 거리와 맞먹는 셈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기 위해 홍랑은 남장을 한 몸으로 이 멀고도 험한 길을 주파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막중(幕中)에서 두 사람이 마주 섰을 때, 그 감동과 애틋함이 어땠을 것인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꿈은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선조 7년(1574년)인 이듬해 봄, 고죽이 경성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경성에서 한양까지는 경흥대로를 따라가는 2천릿길이다. 홍랑은 차마 헤어지기 싫어서 배웅을 나선다. 문 밖 배웅 정도가 아니라,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따라 나선 길이 천릿길 홍원을 지나고, 함관령(함흥-홍원 간 고개) 넘어 쌍성(영흥)에까지 이르렀는데, 출발지인 경성에서 무려 1,300리 길이었다. 역사상 최장의 배웅길이 아닐까 싶다. (기네스북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다릿심 좋은 홍랑도 여기서는 더이상 갈 수가 없다.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해놓은 것이다. 이른바 양계(兩界/평안도·함경도)의 금(禁)으로, 두 도의 백성들은 도계를 넘어 남쪽으로 올 수 없었다. 오랑캐의 침입이 잦아 빠져나가는 인구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관북이 무인지경이 될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최고의 걸작 시조 ‘묏버들’ 두 사람은 쌍성 고갯마루에서 작별을 고했다. 때는 봄절이어서 골짜기마다 빛 고운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 길은 한 40년 후 백사 이항복이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를 읊으며 귀양간 길이기도 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하염없이 걷다 보니 함관령 고갯마루다. 날이 저물고 차가운 빗발까지 뿌린다. 홍랑은 발길을 멈추고 길가의 산버들을 몇 가지 꺾었다. 그리고 지필묵을 펼쳐 시조 한 수를 적어내려갔다. 고죽은 자신의 일기에다 함관령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와 이별한 뒤,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홍랑이 내게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이 시조가 바로 유명한 ‘묏버들’ 시조다. 한국문학사상 이보다 아름다운 연시는 없을 것이다. 묏버들 갈해^ 꺾어 보내노라 님의손대^자시는 창 밖에 심거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갈해/가려 ^님의손대/님에게로) 예전엔 이 시조 역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는 이 시조를 두고 우리 시조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했고, 작가 이태준은 “그 뜻의 그윽함과 소리의 매끄럽고도 사각거림이 묘미”라고 극찬했다. 여기에 ‘사각거림’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 전편에 ‘ㄱ‘ 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읽는 맛을 더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버들가지는 옛사람들이 친구나 정인과 이별할 때 꺾어주던 정표이다. 봄에 가장 잎이 빨리 피는 버들가지처럼 빨리 돌아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홍랑은 묏버들 몇 가지와 이 시조를 보자기에 정성껏 여며 인편으로 고죽에게 보냈다. 고죽은 이것을 받아들고 위와 같은 일기 기록을 남긴 외에도 이 시조의 한역가 ‘번방곡(飜方曲)’을 지었는데, ‘번방’이란 즉석 번역이란 뜻이다. 가람 이병기 시인은 두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는 그 원가(原歌)가 ‘번방곡’이란 한시보다도 낫게 되었다. 간곡하고 심절한 그 석별의 뜻이 언사에 넘친다. 종래 시가에도 증절류(贈折柳)와 같은 것이 없지 않으나, 이것은 그런 걸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한 작품이다. 우수한 것이다. 한 보배이다.” 두 사람은 그후 한 3년간은 서로 만나지 못한 듯하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요샛말이고, 당시에는 국법으로 도계(道界)도 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홍랑의 사랑은 그것마저 넘었다. 한성으로 간 뒤 시름시름 앓던 고죽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홍랑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길을 나섰다. 홍원에서 한성까지는 함관령을 넘고 나서도 천릿길이다. 이 먼 길을 홍랑은 놀라운 다릿심으로 이레 동안 밤낮으로 걸어 마침내 한양에 들어왔다(이것도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감이다). 그리고 그리운 고죽을 만났다. 실로 3년 만의 재회였다. 그러나 뼈밖에 남지 않은 고죽은 홍랑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때부터 홍랑의 눈물겨운 병수발이 시작되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는 필사의 간병이었다. 옆에서 보는 고죽의 본부인도 그 부모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눈물겨운 정성이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고죽은 이윽고 건강을 회복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최경창이 건강을 되찾은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다. 선조 9년 봄, 사헌부는 최경창의 파직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홍랑이 관기의 신분으로 지역을 이탈하여 양계의 금을 어겼다는 것이다. 더욱이 홍랑이 최경창을 찾아온 때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죽은 지 1년이 안된 국상기간이었다. 선조는 사실 고죽의 팬이었다. 그의 시를 무척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분을 버리면서 고죽을 감쌀 수는 없었다. 결국 최경창은 파직을 당했고, 홍랑도 다시 고죽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홍랑이 떠나던 날 고죽은 이별의 시 두 편과 ’번방곡‘을 홍랑 손에 건네주었다. 시로 맺어졌던 두 사람이 아니었던가. 고죽이 이별 선물로 건넨 ’송별‘이란 제목의 칠언절구는 다음과 같다. 고운 두 뺨에 눈물지으며 봉성을 나서네새벽 꾀꼬리도 이별이 서러워 그리 우는가비단옷에 말 타고 강 건너 떠나갈 제풀빛만 아득히 외로운 나그네 전송하리  홍랑의 ’묏버들‘ 시조 육필 서첩 발견​ 최경창은 파직당한 얼마 후 복직되어 함경도 종성 부사 등 변방의 한직으로 오래 떠돌았다. 홍랑을 한성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 고죽으로서 외직을 자청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그 동안 연면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선조 16년(1583년) 봄, 고죽은 경성절도사로 근무하다가 성균관 직강으로 발령받아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지금의 왕십리 부근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그때 나이 겨우 마흔 다섯이었다. 멀리 함경도 홍원 땅에서 고죽의 부음을 들은 홍랑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길을 나섰다. 객사를 한 만큼 무덤 돌볼 사람이 마땅히 없어 고죽이 홀로 외로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묘살이는 움집에서 생활하며 조석으로 상식 올리기를 3년 동안 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힘들어 기한을 지키는 예가 많지 않았다. 대개는 석 달 정도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파주 한강 옆 고죽의 무덤 곁에 움집을 짓고 시작한 홍랑의 시묘살이는 한강의 매운 바람 속에서 장장 9년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시묘살이라기보다 숫제 고인과의 동거였다. 세상 무엇으로부터도,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홍랑은 시묘살이를 하는 중에 혹시 불측한 일이 일어날까 하여 스스로 ’용모를 흐트렸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는 인두로 얼굴을 지졌다고도 하는데, 실상은 잘 알 수 없다. 기나긴 홍랑의 시묘살이를 마감시킨 것은 다름아닌 임진왜란이었다. 최경창이 남긴 시 원고와 유품을 챙겨든 홍랑은 다시 함경도 홍원 땅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7년 동안 그녀의 행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고죽의 시와 문장이 담긴 '고죽집'(孤竹集)이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남편의 유고를 생명처럼 아낀 홍랑 덕분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홍랑은 해주 최씨 문중을 찾아와 최경창의 유작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고죽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멀고 먼 고행으로 이어졌던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자기를 남편 곁에다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1598년 11월에 끝났으니, 홍랑의 기질로 보아 아마 그 이듬해 봄을 맞아 고죽에게로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때 홍랑의 나이 마흔 두셋 정도로, 고죽이 떠난 지 16년째의 봄이다. 자신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고난과 고행으로 점철되었던 홍랑의 삶은 그렇게 마침표가 찍어졌으리라. 홍랑이 죽자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를 집안 사람으로 받아들여 장례를 지냈다.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을 작은마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홍랑의 무덤은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해주 최씨의 문중 산에 고죽의 묘소와 홍랑의 무덤이 있다. 홍랑과 고죽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어 그 후손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음이 얼마 전에 밝혀졌다. 그리고 또 지난 2000년에는 홍랑과 고죽의 연시가 수록된 11쪽짜리 서첩이 발견됐다. 이 서첩엔 홍랑의 ‘묏버들’ 원본과, 고죽이 홍랑과 헤어지면서 써준 고죽 육필의 ‘송별’ 등 한시 두 편이 실려 있다. 단아한 글씨의 ‘묏버들’은 홍랑의 친필로 밝혀졌다. 이 서첩을 보고 가람 이병기 시인이 감상기를 적어넣은 발문도 함께 공개됐다. 그 멀고 먼 길을 걸었던 홍랑의 고단한 여정은 그녀가 10년 세월을 보냈던 파주 다율리 산자락에서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의 무덤자리를 찾는 후세인들의 발걸음은 아직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모양이다. 홍랑시비도 지난 1981년 무덤을 찾아온 시인들의 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어느 해 여름이던가, 홍랑 묘를 찾았을 때, 보라색 무릇꽃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무덤 앞에 ‘시인 홍랑지묘’라고 새겨진 오석 빗돌이 서 있고, 앞쪽의 아담한 시비에는 홍랑의 ‘묏버들’과 고죽의 번방곡’이 앞뒤로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400년도 더 지난 지금에까지, 묏버들 피는 봄을 지나 무릇꽃 흔들리는 산자락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완결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사탄의 인형?…소녀 무덤서 눈물 흘리는 인형

    사탄의 인형?…소녀 무덤서 눈물 흘리는 인형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아르헨티나의 한 공동묘지에서 눈물을 흘리는 인형이 발견됐다. 인형이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동묘지가 있는 작은 도시엔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괴담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난 곳은 아르헨티나 지방 라리오하에 있는 엘차냐르 공동묘지. 공동묘지 직원들은 최근 여느 때처럼 관리순찰을 돌다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다. 한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는 인형을 본 때문이다. 무덤의 주인은 12년 전 사망한 한 여자어린이다. 여자어린이의 부모는 딸이 사망하자 건물식 가족묘에 시신을 안치하고 딸이 생전에 갖고 놀던 인형들을 넣어주었다. 눈물을 흘리는 인형은 2개의 아기인형이다. 1개의 아기인형은 검은 피눈물을, 모자를 쓴 또 다른 아기인형은 맑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형들은 유리박스 안에 넣어져 건물식 가족묘 안에 보관돼 있다. 가족묘 밖에서 인형을 볼 수는 있지만 밀봉된 유리박스 안에 있는 인형을 만지는 건 불가능하다. 깜짝 놀란 직원들은 여자어린이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인형이 눈물을 흘린다"고 알렸다. 가족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망한 여자어린이의 언니는 "엄마가 1달 전 무덤에 갔을 때 인형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오셨다"고 말했다. 가족들도 인형의 눈물에 공포를 느끼는 건 마찬가지였다. 여자어린이의 언니는 "영적인 현상 같지만 무서워서 말하기 싫다" 면서 "가족들도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눈물을 흘리는 인형이 발견된 후 무덤에 유령이 산다는 등 소문이 무성하다"면서 공동묘지를 발길을 끊은 사람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사진=노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대새 배우’ 류준열, 화보마저 츤데레… 복고 패션으로 레트로 감성 자극

    ‘대새 배우’ 류준열, 화보마저 츤데레… 복고 패션으로 레트로 감성 자극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한 류준열이 빈폴과 함께한 화보 컷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류준열은 <응답하라1988>에서 친구를 위해 나설 줄 아는 ‘상남자' 김정환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극 중 류준열은 무덤덤한 표정 뒤에 좋아하는 여자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며 여성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츤데레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특히, 류준열은 츤데레 매력을 패션 화보에서까지 보여주며 시크한 면모를 마음 껏 발휘했다. 화보 속 그는 쌍문동의 대세남 다운 복고 패션을 선보였다. 전문 모델 같은 포스로 80년대 빼놓을 수 없는 청청 패션을 센스 있게 현대화시켰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웻 셔츠와 더플 코트 체크셔츠 등의 빈폴 아이템을 활용하여 감각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80년대 레트로 감성을 자극시켰다. 사진제공: 삼성물산 패션부문 BEANPOLE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1] 불화(佛畵)에 담긴 일제강점기 사회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1] 불화(佛畵)에 담긴 일제강점기 사회상

     감로탱(甘露幀)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신앙했는지 보여 주는 불교회화이다. 전생에 지은 죄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에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 과정을 거쳐 극락에 이른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감로탱화, 감로왕도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과거-현재-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3단으로 그려졌다. 아래부터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헤매는 중생도 단이슬(甘露)이 상징하는 풍성한 음식이 베풀어진 의식을 거치고 나면 부처가 머물고 있는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감로탱은 산천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나 조상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란분재에서 쓰였다. 이렇듯 독창적인 그림이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꽃을 피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감로탱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1589)이다. 각각의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윤회상이 조성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록화이자 풍속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 의미가 뚜렷한 감로탱 가운데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가 있다.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의 원찰 흥천사는 1939년 감로왕도를 새로 봉안했다.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畵脈)의 대표적 화승 보응 문성과 그의 제자 병문이 참여했다. 두 화승은 기존의 도상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것은 물론 당시 핵심적 사회상을 서양화법으로 담아냈다.  두 화승 가운데 병문의 족적은 흥미롭다. 병문은 일제강점기부터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 조각가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를 주도한 김복진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1949년 출범한 ‘불교미술연구회’에는 미술부장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흥천사 감로왕도가 그려진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고, 1941년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기 직전이었다. 보응 문성과 병문은 이 언저리의 시대상을 먹선으로 분할한 31개의 화면에 담았다. 전투함이 돌진하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가 하면, 기세등등한 육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상대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 통감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담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총독부로 바뀌었으니 당대의 모습은 아니다. 자동차 여행, 기차가 다니는 어촌, 코끼리 서커스단, 전당포, 전신주 공사, 전화 거는 모습, 스케이트 타는 모습 등 새로운 문물의 양상도 보인다.  흥천사 감로왕도는 최근까지 전쟁 장면이 담긴 몇몇 장면은 호분칠을 하고 흰 종이로 가려놓기도 했다. 하단의 오른쪽 맨 아래 장총을 둘러메고 일렬로 행진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호분칠이 짙어 종이를 떼어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럼 모습은 흥천사 감로왕도를 한때 친일적인 사회상을 담은 불화(佛畵)로 분류하게 만든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당대의 새로운 사회상을 가감없이 투영한 이 그림을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불교회화의 하나로 적극 재평가하고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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