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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세 남아와 2세 여아 ‘이른 결혼식’ 치른 사연은?

    백혈병 아이를 둔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이른 결혼식’을 치러줬다. 백혈병과 싸우는 아이들이 겪는 고난과 역경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인민일보 등 중국 현지 언론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올해 3살인 ‘신랑’ 이천(依晨)과, 올해 2살인 ‘신부’ 톈이(天奕)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26일, 베이징항톈중심병원 인근에서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천은 평범한 신랑처럼 턱시도를, 톈이는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채 갖가지 모양의 풍선 등 장식품이 즐비한 무대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아이는 지난해 가을 비슷한 시기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허난성 출신인 두 아이는 다음 달 골수이식이 예정돼 있는데, 아이들의 부모는 수술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눈치 챈 것은 베이징에 사는 대학생 자원봉사자 한위치(韓雨岐)씨였다. 한씨는 평소 이들의 병원비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를 해 왔는데, 두 아이의 부모가 20년 후에는 아이들을 보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른 결혼식’ 아이디어를 냈다. 이천의 엄마인 후(胡)씨는 “만약 수술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결혼식은 (백혈병 아이를 둔 부모) 모두의 꿈과 같다”면서 “만약 수술이 성공한다면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부모는 너희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어 “두 아이는 병세 때문에 말을 잘 못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에는 서로 소통이 매우 잘 되는 모습이었다”면서 “두 아이는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만큼 매우 잘 어울렸다”고 덧붙였다. 현재 톈이의 부모는 한화로 1억 원이 넘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았고, 이천의 부모 역시 수술비를 위해 방송사에 사연을 알리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한씨와 두 아이의 부모는 백혈병 아이를 둔 부모의 심경 및 아이들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현지 언론에 해당 사진을 공개하고 도움을 구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그날, 잊으려 할수록 붉게 피어난다

    그날, 잊으려 할수록 붉게 피어난다

    흰 눈 위로 피 한 방울이 뚝 떨어집니다. 피는 얼음 결정을 따라 빠르게 번져 갑니다. 그 모습이 모가지 꺾어 떨어진 동백꽃을 닮았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흰 눈 위에 떨어진 피에서 혹독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길어 올렸습니다. 동백꽃은 그렇게 ‘제주 4·3 사건’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지요. 한 설문조사에서 4·3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3분의1, 관심 없다는 이는 절반을 넘었다고 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더욱 기억에서 멀어진 것이 4·3 사건입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과거가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사과할 건 사과하고 청산할 건 청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의 사악하고 검은 아가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이번 여정은 4·3 사건을 따라가는 것으로 꾸렸습니다.모처럼 제주까지 갔는데 상처의 흔적만 보듬고 오라는 말이냐고 힐난할 수 있겠습니다. 한데 앞서 결론을 밝히자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습니다. 단언컨대 처음 제주를 방문한 이라도 그렇습니다. 4·3의 무대는 아름다운 제주의 또 다른 면일 뿐입니다. 우리가 무심했을 뿐 명소라 알려진 곳에, 혹은 그 주변에 없는 듯 있었습니다. 제주의 4월을 두고 흔히 ‘침묵의 봄’이라고 합니다. 북촌리 ‘아이고 사건’에서 보듯 눈물마저 죄가 된 시절엔 누구나 말을 아껴야 했으니까요. 피 끓는 포한과 바닥 모를 체념의 끝은 침묵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니 입은 있으되 말하지 못했고, 기억은 선연하되 한사코 떨어내려고만 했겠지요. 제주엔 진작 제비가 왔습니다. 반팔 옷차림으로 훌훌 싸돌아다닐 만큼 기온도 포근해졌습니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시립니다. 물론 스스로 삭이겠지요. 그래도 주변의 위로가 더해지면 생각보다 빠르게 녹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본 한 장의 지도였다. 제주 전체를 행정 구역에 따라 나눈 뒤 색을 입혔다. 공통적인 건 붉은빛 일색이라는 것. 구역에 따라 빨강과 분홍 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체가 붉었다. 이는 ‘제주 4·3 사건’ 당시의 피해 정도를 표시한 지도다. 붉은빛일수록 더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4·3의 광풍에서 온전했던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는 게 지도에 담긴 의미다.●섬뜩한 진실과 마주한 ‘4·3 평화기념관’ 4·3 여정의 첫걸음은 제주 4·3 평화기념관이다. 4·3 사건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제주 사람들은 ‘4·3 사건’이란 이름 자체에 불만이다. 지나치게 ‘사실’(史實)에만 충실해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의미와 가치가 담긴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념관의 관람 동선 첫 코너에 ‘백비’(白碑)를 뉘어 놓은 건 그 때문이지 싶다. 백비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비석이다. 제주 사람들의 뜻은 간명하다. 언젠가 4·3 사건이 가치와 의미에 부합하는 이름을 얻게 될 때 이 비석에 새겨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기념관 안엔 4·3 사건과 관련된 각종 기록과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육지부’에서 ‘관광차’ 온 이들이라면 담기 버거울 정도의 섬뜩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기념관 밖은 평화공원이다. ‘비설’(飛雪)이란 이름의 모녀상과 제단, 1만 4000여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각명비 등이 조성돼 있다. 공원 가장 위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은 꼭 찾길 권한다. 4·3 희생자 중 행방불명인 3800여명의 이름을 새겨 표석으로 세웠다. ‘육지부’의 형무소로 끌려가 못 돌아온 이도 있고, 바다에 수장됐거나 여태 제주 땅 어딘가에 묻혀 있는 이도 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살아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지는 못했지만, 이름이나마 한라산 아래 산담(무덤을 둘러친 돌담)에 안겼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이념으로 시작해 희생으로 끝난 섬의 눈물 이쯤에서 4·3 사건에 대해 개략적이나마 살피자. 도화선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시내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집회였다. 경찰이 탄 말의 발굽에 어린아이가 차였다. 한데 기마경찰은 무심히 지나갔고, 이를 본 군중이 돌을 던지며 경찰을 쫓았다.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미 군정에서 사태파악에 나섰다. 미 군정의 조사 보고서는 “경찰 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며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라고 적었다. 제주가 ‘레드 아일랜드’(빨갱이의 섬)라 규정되는 순간이다. 이어 좌익 색출을 명분으로 서북청년회와 공권력의 탄압이 자행됐다. 이에 맞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에 나섰다. 이후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제주는 아비규환의 공간이 됐다. 물론 4·3 사건의 성격을 두고 여태 논란은 있다. 중요한 건 당시 제주도민의 9분의1에 달하는 희생자다. 최대 3만명에 이르는 희생자 가운데 목숨을 걸 만큼 정치적 신념을 가졌던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희생자 가운데 33%는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였다. 충돌의 배경은 이념이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었던 셈이다. 제주 4·3 사건을 이념보다 인권과 인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3 여정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단어는 ‘예비검속’이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다. 사상이 의심스러운 이들의 목록을 작성한 뒤 전쟁 등 유사시에 잡아들이거나 상황에 따라 즉결처형했다.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인근의 섯알오름이 대표적이다. 1950년 250여명의 예비검속자들이 총살당한 곳이다. 군이 출입을 통제한 탓에 1956년에야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32구의 시신은 인근의 백조일손 묘역에 안장됐다. 묘역의 이름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백여명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한날한시에 올려 한 자손이 된다는 뜻이다.●아이의 작은 묘탑에 놓인 애달픈 장난감 북촌리 너븐숭이를 찾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어린아이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봉분은 작다. 면적도 작고, 봉분을 둘러싼 산담도 작다. 봉분은 모두 20여기 정도 되는데, 그중 최소 8기는 4·3 때 목숨을 잃은 아이의 묘라고 한다. 묘지 앞엔 검은 돌로 만든 작은 탑이 세워져 있다. 돌과 돌 사이엔 동백꽃 등을 꽂아 뒀다. 미니어처 자동차도 눈에 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타요 버스’다. 4·3 당시 비운의 별이 된 아이가 타요 버스를 알 리 없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일 것이다. 늦은 밤이면 봉분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와 꽂아 둔 사탕을 먹고 장난감도 갖고 놀 것 같다.●비행기 소리로 덮인 최대 학살터 ‘정뜨르’ 북촌은 이른바 ‘아이고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954년 1월, 너븐숭이 주민 가운데 일부가 4·3 사건을 추모하며 설움에 북받쳐 울다가 경찰에 치도곤을 당했다. 이게 ‘아이고 사건’이다. 당시엔 이처럼 울음마저 죄가 됐다. 정뜨르는 어딜까. 4·3 당시 최대 학살터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4·3 지도에도 틀림없이 나와 있다. 한데 도두항 주변을 오가는 주민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고개를 외로 꼬기 일쑤다. 정뜨르는 지금의 제주공항이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너무 커서 보이지 않았던 거다. 손바닥 선인장 군락(천연기념물 429호)으로 이름난 월령리엔 고 진아영 할머니 집이 있다. 진 할머니는 ‘무명천 할머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4·3 당시 총탄에 턱을 다쳐 평생 무명천으로 턱 주변을 두르고 살았다. 작은 단칸방 한 켠에 진 할머니의 영정이 남아 있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가는길:4·3 사건 70주기를 앞두고 제주 곳곳에서 동백 배지달기 등 다양한 추념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이번만은 올레길에서 벗어나 4·3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 6~7㎞에 이르는 코스를 2시간 정도 걸으며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추천한 코스는 모두 4개다. 제주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미리 신청하면 ‘4·3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다. 4·3 콘텐츠 관련 내용은 제주관광공사 홈페이지(www.visitjeju.net)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4·3 길을 걷다’란 지도도 꼭 챙기는 게 좋다. 길잡이로 큰 도움이 된다.→맛집 : 도두 해녀의 집(743-1500)은 전복미역국 등을 잘한다. 주방의 손길보다 신선한 재료가 맛을 낸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음식에 별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담백하고 깊은 맛이 난다. 정뜨르(제주공항) 인근에 있다. 커피 한 잔 마시겠다면 쉴만한 물가(796-3808)가 괜찮다.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집 앞에 있다. 커피 맛은 옅은 편이어도 업소 앞 풍경은 매우 짙다. 명진전복(782-9944)은 전복돌솥밥 등으로 소문난 집이다. 식사 때가 아니더라도 15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명소 반열에 올랐지만 맛은 여전히 예전처럼 좋은 편이다. 다랑쉬 오름과 가깝다.
  • 직접, 직접, 직접…시진핑, 김정은에 ‘황제 의전’

    직접, 직접, 직접…시진핑, 김정은에 ‘황제 의전’

    손수 차 대접하고 오찬장 소개 차량 앞까지 나와 김정은 배웅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방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교될 정도로 ‘황제 의전’ 수준의 환대를 받았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머문 이틀 동안 환영 만찬과 환송 오찬 등 두 차례 연회를 가졌고 중국 국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 오찬장인 양위안자이를 직접 소개하는 등 북·중 친선관계를 돈독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중앙(CC)TV가 28일 공개한 일정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오후 베이징역에 도착한 뒤 국빈관인 댜오위타이에 여장을 풀었다. 김 위원장은 과거 북한 최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특별열차를 이용해 평양에서 단둥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의 비공식 방중은 공식 발표가 되기 전까지 모든 일정이 베일에 가려졌을 만큼 동선 관리부터 환영 행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철저한 의전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첫 일정으로 북·중 정상회담을 한 뒤 국가정상 방중 시 행해지는 의장대 사열을 했다. 중국은 의장대 사열도 비공식 방문한 김 위원장을 배려해 인민대회당 내부에서 진행했다. 첫날 정상회담 등 일정을 마친 뒤에는 인민대회당에서 호화로운 내부 장식으로 유명한 진써다팅에서 국빈 만찬이 열렸다. 만찬에는 리커창 총리와 왕후닝 상무위원을 비롯해 사실상 서열 2위로 불리는 왕치산 국가 부주석, 양제츠 정치국 위원 등 중국 주요 인사 대부분이 참석했다. 연회에 앞서 참석자들은 북·중 친선관계를 돈독히 했던 양국 지도자들의 활동을 수록한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만찬 후 트럼프 대통령이 자금성에서 경극 등을 관람했던 것처럼 만찬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환영 예술공연이 열렸다. 국빈 만찬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김 위원장은 댜오위타이 내에서 가장 좋은 숙소인 18호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8호각은 외국 정상들이 베이징을 방문할 때 주로 투숙하는 곳으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베이징 방문 당시 묵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튿날인 27일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을 방문했다. 중국 교통 당국은 특별 교통관제로 김 위원장의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했다.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은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환송 오찬 행사에서 오찬장인 양위안자이를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 방중 당시 자금성에서 차를 대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 부부에게 손수 차를 대접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오찬을 마친 뒤 의전 차량 앞까지 나와 귀국길에 오르는 김 위원장 부부를 직접 배웅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는 최순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는 최순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최순실,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 관저 방문박근혜, 최순실·문고리 3인방과 대책논의 후에야 중대본 방문 결정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에 ‘A급 보안손님’으로 방문해 박근혜 전 대통령,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세월호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밝혀졌다.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회의를 마친 뒤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하고 머리 손질을 받는 등 외출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수반인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무방비·무대책인 상태로 최씨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이른바 ‘세월호 늑장대응과 7시간의 비밀’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최씨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2시 15분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하는 업무용 승합차를 타고 검색 절차 없이 이른바 ‘A급 보안손님’으로 박 전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에 방문했다. A급 보안손님이란 검색 절차 없이 관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경호원들의 용어다. 박 전 대통령 재직 시 보안손님은 A급과 B급으로 구별됐다. A급은 검색 없이 차량을 타고 관저 정문인 인수문을 통과해 관저 마당까지 들어올 수 있었고 B급은 검색절차 없이 관저 정문인 인수문까지만 차량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A급은 최순실, 피부과 원장이던 김영재와 그 아내 박채윤 등 3명이었다. B급은 기치료사인 오모씨, 왕십리원장인 박모씨 등 비선진료인이었다. 이들 보안손님은 경호실에 출입기록이 남지 않았다.당초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 최씨의 청와대 방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및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 조사 등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 담당자 외에 외부인의 관저 방문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가 남산1호터널을 오후 2시 4분과 5시 46분 등 두 차례 통과하고 이 행정관의 신용카드가 결제된 내역을 확인했다. 이 행정관은 최씨의 거처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뒤에서 김밥도 사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를 단서로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비서관 등을 조사해 최씨의 관저 방문을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 오전 10시 22분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고, 이어 10시 30분에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 전화로 당연하고 원론적인 구조를 지시한 것 외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씨가 관저에 도착한 뒤 문고리 3인방과 함께 관저 내실의 회의실에서 세월호 사고에 관해 회의를 한 뒤 중대본 방문을 결정했다. 최씨는 관저에 오면서 정 비서관에게 세월호 관련 상황에 대해 물었고, 정 비서관은 “수석들 의견이 중대본을 방문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최씨는 내실 5인 회의에서 박 대통령에게 중대본 방문을 권했고 이를 박 전 대통령이 수용했다는 게 검찰이 확인한 내용이다.박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을 공식 보고받은 것이 아니라 ‘비선실세’ 최씨의 조언을 받아 국사를 결정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다만 검찰은 최씨의 이날 방문이 세월호 때문에 계획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조사 거부로 최씨의 관저 방문 목적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최씨의 이날 관저 방문이 미리 예정돼 있었고, 당시 회의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정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을 위해 제2부속 비서관실 소속 윤전추 행정관에게 화장과 머리손질을 담당하는 정송주, 매주씨 자매를 청와대로 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윤 행정관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정씨 자매에게 “상황이 급하니 빨리 청와대로 와달라”고 요청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프로야구] KIA, 홈런 6방… 삼성은 바라만 봤다

    [프로야구] KIA, 홈런 6방… 삼성은 바라만 봤다

    두산 후랭코프, 롯데 꺾고 첫승통합 디펜딩 챔피언 KIA가 홈런포 여섯 방을 작렬해 삼성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KIA는 27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로 불러들인 삼성과의 KBO리그 홈 경기에 장단 14안타를 집중하고 사4구 10개를 얻으며 17-0 대승을 거뒀다. 안치홍이 4회에만 홈런 두 방을 날려 삼성 투수들의 혼을 빼놓았다. 지난 24일 kt와의 개막전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했던 KIA는 이후 2연승을 거두고 위용을 되찾았다. KBO리그 2년차인 KIA 선발 투수 팻딘은 6과3분의1이닝 동안 3안타와 볼넷 하나만 내주고 삼진 4개를 곁들이며 무실점으로 막아 시즌 첫 등판을 승리로 장식했다. 반면 삼성의 새 외국인 투수 리살베르토 보니야는 3과3분의1이닝 만에 홈런 세 방 등 7안타와 볼넷 4개를 허용하고 9실점, 혹독한 리그 신고식을 치렀다. 3회말 KIA의 팀 첫 안타가 0-0의 균형을 깼다. 로저 버나디나가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중월 1점 홈런을 뽑아냈다. KIA는 4회말 선두타자 최형우의 중월 솔로포를 신호탄으로 나지완의 볼넷에 이어 안치홍의 좌월 2점 홈런을 시작으로 7안타와 사4구 3개를 엮어 대거 10점을 뽑아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KIA는 1사 후 김민식의 볼넷과 4타자 연속 안타로 4점을 보태 8-0으로 달아나며 보니야를 강판시켰다. 삼성 투수가 김기태로 바뀐 뒤에도 안치홍이 2사 1, 2루에서 좌중월 3점 홈런을 날려 11-0으로 달아났다. 안치홍은 KBO리그 역대 여덟 번째로 한 이닝에 홈런 두 방을 쏘아올렸다. 5회에는 김민식의 솔로포와 김주찬의 투런포가 터졌고, 7회에도 삼성 투수 황수범의 제구 난조로 인한 외국인 투수 세스 후랭코프의 완벽투를 앞세워 롯데 자이언츠를 완파했다. 두산은 잠실에서 후랭코프가 6이닝 동안 안타 2개와 볼넷 1개만 내주고 삼진 9개를 곁들여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롯데를 5-0으로 일축하고 KBO 데뷔전 승리를 신고했다. kt는 루키 강백호가 7회 3점, 황재균이 8회 1점 홈런을 날렸지만 한동민과 김동엽, 최정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바람에 SK에 5-8로 졌다. SK의 외국인 투수 산체스는 한국 무대 첫 승을 올렸고 SK는 개막 3연승을 내달렸다. 김동엽은 5타수 3안타 3타점로 활약했다. NC는 한화를 9-6으로 제쳤다. 넥센은 LG와의 연장 10회말 김재현의 시즌 첫 끝내기 안타를 앞세워 5-4로 이겼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WTO 세이프가드委 의장에 권혁우 주제네바 참사관

    WTO 세이프가드委 의장에 권혁우 주제네바 참사관

    권혁우 주제네바 대한민국대표부 참사관이 세계무역기구(WTO)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위원회 의장으로 26일(현지시간) 선출됐다. 임기는 1년이다.세이프가드위원회는 WTO 상품무역이사회 산하 11개 위원회 중 하나로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과 절차 등을 감독한다. 특히 지난 1월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 발동한 세이프가드 관련 분쟁도 다룬다. 산업부는 “주요국 수입 규제가 증가하는 때 세이프가드 의장직을 권 참사관이 맡아 다자 통상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권 참사관은 행정고시 45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산업부 TPP대책단 팀장, FTA협상총괄과장 등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아크부대를 ‘우정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청와대의 기획력

    아크부대를 ‘우정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청와대의 기획력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된 아크부대에서 27일 ‘우정의 무대’가 펼쳐졌다. 국군 장병이 보고싶은 가족을 만나는 감동의 옛 TV 프로그램이 이역만리 UAE에서 재현된 것이다.UAE를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이날 아크부대를 격려차 찾았다. 부대 내 식당에서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의 사회로 부대원들이 소감을 밝혔다. 특수전 3팀장을 맡은 이재우 대위가 마이크를 잡았다. 신혼인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파병이 확정된 후 결혼식을 10월로 미뤘다”면서 “아내는 신혼집에서 혼자 남편을 기다리고 있지만 국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군인이니까 잘 이해하고 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 부대변인은 이 대위에게 “뒤로 돌아 달라”고 말했다. 이 대위가 뒤로 돌자 아내 이다보미씨가 서 있었다.깜짝 놀란 이 대위는 아내를 힘껏 껴안았고 부대원들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문 대통령 내외도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 대위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정숙 여사가 직접 꽃다발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아크 부대장 김기정 중령은 이 대위에게 1박 2일의 부대장 특별휴가를 명했다. 문 대통령은 “두 분은 정말 축하한다. 대통령이 제대로 선물을 가지고 온 것 같다”면서 “정말 특별한 만남이 돼서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특전사가 주축이 된 아크부대를 방문해 “공수 130기, 공수특전단 출신 대통령”이라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아크 부대 임무 못지않게 여러분 개개인에게 중요한 임무가 또 있다. 건강하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며 “다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조국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복귀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다. 그 임무를 기필코 완성할 것을 대통령으로서 명령한다”고 덧붙였다. 간담회를 마친 문 대통령 내외는 정연수·정대용 상병이 함께 쓰는 숙소를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복무한 1공수특전여단 소속인 정연수 상병에게 “1여단 어느 부대 소속인가”라고 물었고, 정 상병이 “3대대 작전과 입니다”라고 답하자, “같은 3대대 작전과네. 내가 3대대 작전과 선배에요”라며 웃었다.김정숙 여사는 인도 시민권을 포기하고 자원입대한 정대용 상병의 사연을 물었다. 정 상병은 “한 번도 한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길을 택하는 젊은이도 있는데 남자로서 당당하게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훌륭하다.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정연수 상병은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에 사인을 받았고, 정대용 상병은 군복에 사인을 받았다. 아랍어로 ‘형제’라는 뜻을 지닌 아크 부대는 평시에 UAE 특수전 부대의 교육훈련 지원과 연합훈련 등 군사교류 활동을, 유사시에는 UAE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금인출기로 1조 3300억원 빼낸 급이 다른 범죄 조직

    현금인출기로 1조 3300억원 빼낸 급이 다른 범죄 조직

    전 세계를 무대로 스케일이 다른 범죄를 저질러 온 범죄 집단이 결국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번에 적발된 조직은 전 세계 금융기관 소속 임직원들의 이메일 주소로 바이러스가 든 메일을 보낸 뒤 이를 통해 해당 컴퓨터를 악성 소프트웨어에 감염시켰다. 이후 감염된 컴퓨터를 조작해 현금인출기(ATM)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침투했다. 조직원 일부가 시스템을 통제하는 동안 다른 조직원들은 현금인출기에서 마구잡이로 돈을 빼가는 수법을 썼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지난 5년 간 전 세계 100여개의 시스템에 불법 침입해 한번에 최대 1000만 유로(약 133억 2240만원)의 현금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형사 경찰 기구인 유로폴은 이 범죄 조직이 지난 5년간 전 세계에서 같은 수법으로 총 10억 유로(약 1조 3323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훔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범죄 조직은 이렇게 모은 돈으로 스페인에 주택과 차량 또는 비트코인을 사들이는데 쓴 것으로 조사됐다. 스페인 경찰은 유럽 공조 수사를 통해 이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급으로 추정되는 용의자인 데니스 케이를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범죄 조직원들은 서로의 얼굴이나 실명을 알지 못한 채 인터넷을 통해서만 연락을 취하고 범죄를 저질러 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두머리급이 체포됐지만 여전히 유사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방북 예술단, 북한 정서에 맞는 노래 부른다

    방북 예술단, 북한 정서에 맞는 노래 부른다

    지난 24일 방북 사전점검단이 돌아오면서 4월 초 우리 예술단이 평양 공연에서 부를 노래의 윤곽이 나왔다.25일 복수의 가요 관계자들에 따르면 출연 가수들은 북한에 잘 알려졌거나 정서에 맞는 대표곡을 비롯해 북한 노래도 부를 예정이다. 조용필과 이선희는 이미 거론된 대표곡들을 부른다. 지난 2005년 평양 단독 콘서트를 연 조용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전 애창곡인 ‘그 겨울의 찻집’을 비롯해 ‘친구여’, ‘꿈’, ‘모나리자’ 등을 노래한다. 이선희도 지난 2003년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기념 통일음악회에서 선보인 ‘J에게’와 ‘아름다운 강산’, ‘알고 싶어요’ 등을 부른다. ‘J에게’는 지난달 삼지연관현악단이 남한 공연에서 부른 곡이기도 하다. 첫 평양 공연에 나서는 백지영, 정인, 알리 등 디바 3인방도 각기 1~2곡의 무대를 꾸민다. 백지영은 발라드 위주의 히트곡 리스트를 전달했으며 그중 ‘총 맞은 것처럼’과 ‘잊지 말아요’가 선곡에 포함됐다.정인 측은 “이미 요청받은 ‘오르막길’을 부를 예정”이라며 “북한 연주자와의 협연 무대도 얘기가 있는데, 이 부분은 하루이틀 뒤 결정될 것 같다”고 밝혔다. 알리 측도 “우리가 제출한 리스트 중 ‘펑펑’이 선곡됐으나,조율 가능성도 있다”며 “컬래버레이션(협업) 무대도 있는데 누구와 협연하는 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일한 아이돌 그룹인 레드벨벳은 ‘빨간 맛’, ‘배드 보이’, ‘피카부’ 등의 히트곡 중에서 결정됐다. 레드벨벳은 반주 음원(MR)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러나 일부 가수 측은 “선곡 내용을 전달 받았으나, 협연 등이 있어 아직 조율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혀 약간의 변동 가능성을 시사했다.아울러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남측 공연에서 우리 가요를 여러 곡 선곡함에 따라 우리 예술단도 답례 차원에서 북한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지금껏 북한에서 열린 우리 예술단의 공연에서도 ‘휘파람’ 등 북한 노래가 불렸다. 이번에는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때 북한 가수들과 서현이 함께 노래한 ‘다시 만납시다’ 등이 불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통일부가 3일 남북 합동 공연이 결정됐다고 밝힘에 따라 방북 예술단의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실제 사전점검단은 이번 방북에서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싸이의 추가 합류를 협의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합의에는 이르지 못해 계속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현, 예술단 평양공연 진행 맡는다

    서현, 예술단 평양공연 진행 맡는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서현(본명 서주현·27)이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 사회를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25일 가요계와 공연계에 따르면 서현이 4월 초 평양에서 열릴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봄이 온다’에서 진행을 맡고 가수로도 무대에 선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다만, 서현이 1일 우리 가수들의 단독 공연과 3일 북한 예술단과의 합동 무대에서 모두 진행을 맡을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남북 실무접촉의 우리 측 수석 대표 윤상이 출연진을 발표한 뒤 공연의 사회자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일각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이 거론되기도 했다. 서현은 이번 평양 공연에서도 북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예술단은 31일부터 4월 3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동평양대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각 1회 공연한다. 공연에는 조용필과 최진희, 이선희, YB, 백지영, 서현, 알리, 정인, 레드벨벳이 출연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정남, 안정환과 패션쇼서 포착 ‘무슨 일?’

    배정남, 안정환과 패션쇼서 포착 ‘무슨 일?’

    모델 배정남이 전 축구선수 안정환과 패션쇼에 함께 참석한 모습이 포착됐다.지난 22일 배정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쇼 시작 두시간 전. #서울패션위크”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배정남이 안정환과 패션쇼 무대 뒤에서 셀카를 찍는 모습이 담겼다. KBS2 ‘1%의 우정’에 함께 출연 중인 두 사람은 파일럿 방송 당시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되면 함께 패션쇼에 서겠다”고 공약을 내건 바 있다. 공약을 실천한 두 사람의 모습이 예고되자 본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KBS2 예능프로그램 ‘1%의 우정’은 토요일 오후 10시 45분에 방송된다. 오는 24일에는 2018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중계로 결방한다. 사진=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데뷔 50년’ 조용필 7년 만에 방송 출연

    ‘데뷔 50년’ 조용필 7년 만에 방송 출연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68)이 7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다.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는 22일 “조용필이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전설로 출연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9일 녹화해 21일부터 28일, 5월 5일까지 3주에 걸쳐 방송된다. 조용필이 TV에 출연하는 것은 2011년 9월 MBC TV ‘나는 가수다’에 잠시 출연한 이후 약 7년 만이다. 조용필은 1993년 콘서트 무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뒤 방송 출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조용필 측은 “‘불후의 명곡’ 제작진이 2011년 첫 방송 이후 지난 7년간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 왔다”면서 “이번 출연은 조용필이 수많은 팬과 대중의 요청에 감사함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결심한 것”이라고 전했다. ‘불후의 명곡’이 한 가수를 3주에 걸쳐 특별 편성하는 것은 처음이다. 조용필은 오는 5월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50주년 투어 콘서트 ‘생스 투 유’(Thanks to you)를 개최한다. 이 공연은 지난 20일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 15만명의 동시 접속자가 몰렸고 10분 만에 매진됐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알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 ‘대학’에 통달해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 이런 기이한 재주를 세종 임금이 전해 듣고 직접 불러 시험하고 ‘뒷날 크게 쓰겠노라’ 다짐했던 사람. 그러나 평생 울분과 방랑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허름한 절간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람. 우리 한문소설의 명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그가 쓸쓸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거듭된 가정사의 참극으로 지쳐 가던 중 접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이었다. 불의의 소식을 들은 젊고 순수했던 21세 김시습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날 며칠을 통곡했다. 그러다 돌연 서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나서 승려의 행색으로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영월로 쫓아 보낸 뒤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반인륜적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을 방랑하던 끝자락,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한동안 지내며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리고는 “뒷날 반드시 나, 김시습을 알아줄 자가 있으리라”면서 그 책을 석실에 감췄다. 당대 현실과 화해할 수 없던 자신의 고뇌, 그리고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기이한 이야기에 은밀하게 담아두었음을 짐작게 하는 일화이다. 그런 점에서 금오신화는 울울한 삶을 살아간 한 중세 비판적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이라 일컬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 그의 바람처럼, 그의 이름과 삶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산사를 전전하던 자의 자기 초상 평생 전국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시습은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59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런 최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너무도 닮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모두 깊은 산속으로 홀연 자취를 감춰 버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는데, 김시습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궁벽한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며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직접 그림으로 그린 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찬시를 적어두기도 했다. 나의 초상에 쓰다(自寫眞贊)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의이치지) 너를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구학지중) 이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흔히 이백을 ‘적선’(謫仙)으로 부르듯, 당나라 시인 이하는 ‘귀재’(鬼才)로 불리던 천재 시인이었다. 김시습은 찬시 첫머리에서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오세 신동’으로 부르며, 그런 이하와 견주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아름다운 과거였다. 하지만 이하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그 자신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세상에 한번도 쓰이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몸서리치고 있다. 깊은 자괴, 아니 자조와 자기 경멸이 뼛속까지 배어들었다. 실제로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에는 이런 소외된 자의 울울한 심경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는 오로지 시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의 “마음이 세상살이와 어긋나기만 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네(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라는 고백은 결코 허투가 아니었다. 불의에 영합하지 않고 평생 방외인, 곧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혹독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대가를 치러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를 생육신(生六臣)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서울로 복귀한 또 다른 삶의 면모 김시습을 기억하는 우리 대부분은 머리를 깎고 승려의 복색을 한 채, 평생 산사를 전전했던 행적만을 주목한다. 그러나 김시습은 삶의 가장 중요한 장년기에 서울의 저잣거리를 누비며 다니기도 했다. 그가 38세 때인 성종 3년(1472년)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49세 때인 성종 14년(1483년) 다시 관동으로 떠날 때까지다. 이 12년 동안 수락산에 거처를 정해 놓고 종종 도성으로 내려와 당대 인물들과 교유했다. 어린 시절 교분이 있던 서거정, 김수온과 같은 고관대작도 만났지만, 진정 마음으로 교유한 부류는 자기보다 스무 살쯤 어린 젊은 선비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절친했던 남효온은 그런 사실을 ‘사우명행록’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김시습의 행동을 위태롭게 여기고는 교유하던 자들이 모두 절교하고 왕래하지 않았다. 그러자 홀로 저잣거리의 미치광이 같은 자들과 놀다가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바보처럼 웃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뒤에 설악산에 들어가기도 하고 춘천 산에서 살기도 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종말을 알지 못했다. 그가 좋아한 사람은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그리고 나 남효온이다.” 남효온은 김시습이 영의정 정창손의 행차를 만나자 길거리에서 “너 같은 놈은 벼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소리쳤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모두 위태롭게 여겨 절교할 만하지만,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남효온 등과는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다. 수양대군 왕위 찬탈을 용납할 수 없어 서울을 떠났던, 바로 그 혈기 왕성한 나이들이었다. 김시습은 그런 맑고 순수한 그들에게 자신이 20대 때 목도한 반인륜적인 비화를 들려줬다. 성종대의 젊은 신진사류들이 세조대의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분투를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도 생겼다. 김시습보다 스무 살 어린 남효온은 성종 9년(1497년) 스물다섯 나이에 단종의 생모인 소릉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모두 침묵하고 있던 세조의 행태를 역사 무대 위로 끄집어냈다. 또한 역적의 이름으로 죽어간 인물들을 충절의 인물로 복권하기 위해 ‘육신전’을 짓기도 했다. 그 대가로 남효온 또한 김시습처럼 평생 전국을 떠돌며 울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김시습은 승려의 행색으로 산사에 숨어 살며 은둔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대정신을 당대 젊은이들과 함께 벼려가기도 했다. 뒷날, 선조 임금의 분부를 받아 ‘김시습전’을 지은 율곡 이이는 그런 면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절의를 세우고 윤기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을 듣는 이는 나약한 사람도 용동하게 되니, ‘백세의 스승’이라 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애석한 것은 김시습의 영특한 자질로써 학문과 실천을 갈고 쌓았더라면, 그가 이룬 것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율곡은 김시습을 미친 자가 아니라 ‘백세의 스승’으로 마음에 간직했다. 실제로 김시습은 서울로 복귀해 지내다 환속해 머리를 기르고 결혼도 하며, 유자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김시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승려의 행색으로 관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꼿꼿한 삶의 자세 덕분에 그가 서울을 떠났다 해도 결코 감춰질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많은 지식인이 그를 추모했던 까닭이다.#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心儒跡佛) 율곡은 김시습의 삶을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는 네 글자로 집약했다. 마음은 유자였지만, 불자의 행적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제로 김시습은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는 깎았지만, 수염은 깎지 않았다. 그 이유를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함이요, 수염을 남겨둔 것은 장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의 삶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교의 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불·도에 정통했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다양한 사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자유인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시습의 그런 삶은 그 어디에도 심신을 잠시도 누이지 못했던, 극심한 방황의 흔적으로 읽는 게 올바른 독법일 것이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매월당집’은 김시습 사후 이자가 첫 유고 수집…선조의 명으로 총 23권 9책 발간 남효온은 ‘사우명행록’에서 “그가 지은 시문은 수만 편이 되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바람에 거의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조정의 신하들과 선배들이 혹 그의 글을 절취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작품을 도적질해 갔던 것이다. 실제로 김시습의 시문을 그의 사후, 그를 존중하던 이자가 중종 16년(1521년) 여기저기 흩어진 유고를 수습해 겨우 3권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박상, 윤춘년 등이 꾸준히 모아 가며 정식 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 매월당집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 전해지는 매월당집은 선조 16년(1583년) 임금의 명을 받아 경진자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분량은 총 23권 9책으로, 시집이 15권이고 문집이 8권이다. 매월당집 서두에는 이산해가 쓴 서문과 이이가 쓴 ‘김시습전’이 실렸다. 1927년 후손이 김시습 관련 기록을 부록으로 덧붙여 신활자로 간행하기도 했다. 197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5책으로 번역·출간했다.
  • 연체동물처럼 꺾인 허리로 걷는 ‘거미인간’

    연체동물처럼 꺾인 허리로 걷는 ‘거미인간’

    허리를 뒤로 꺾은 채 걸어다니는 ‘거미인간’ 남성이 다시금 화제다. 지난 21일(현지시각)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은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란 미국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공포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괴한 거미 모습으로 무대와 객석을 걸어 다니는 한 남성을 소개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속 한 흑인 남성이 바지를 벗은 후 기지개를 펴고 꼿꼿이 선다. 순간 허리가 완전히 꺾인 모습으로 바닥에 납작하게 쓰러지자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기겁한다. 그리곤 공포영화 ’엑소시스트‘ 속, 귀신 들린 소녀와 똑같은 모습으로 등이 꺾인 채 걷기 시작한다. 무대를 지나 관객 속으로 들어간 이 남성의 모습에 관객들은 그저 경악스럽고 놀라운 반응을 보인다.온몸의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 남성은 캐나다 출신의 고무인간 트로이 제임스란(Troy James) 배우다. 탁월한 유연성으로 엑소시스트(Exorcist), 스트레인(Strain), 인디안 프로브(Indian Probe) 등 여러 공포 영화와 TV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유명세를 얻고 있다. 그는 지난해 4월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을 통해 믿기 어려운 각도로 인체 관절을 구부려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을 올려 일약 스타가 됐다. 표정까지 완벽하게 일그러진 채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다.어떤 CG(컴퓨터 그래픽)도 필요 없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한 몸동작을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 이 배우가 앞으로도 어떤 ’섬뜻한 모습‘을 뽐낼지 사뭇 기대 된다.사진 영상=gino joseph, Sami Hussein/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한류 날라리풍’에 물든 북 주민들, 백지영·레드벨벳에 열광할까

    ‘한류 날라리풍’에 물든 북 주민들, 백지영·레드벨벳에 열광할까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한때 평양 대학생 애창곡 1위귀순 병사 오청성, 기운 차리자 “남한 노래 듣고 싶어”지난해 말까지 ‘비사회주의 섬멸전’ 주문했던 김정은南 예술단 평양공연에 어떤 반응 보일 지 주목 다음달 초 평양에서 열리는 우리 예술단 공연에 참가하는 가수 가운데 백지영의 노래가 북한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 문화에 관심 많은 평양 시민들이 조용필, 이선희, 레드벨벳 등 우리 예술단의 공연에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주목된다.22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후계 구축 시절인 2009~2011년 평양시 대학생을 상대로 ‘자본주의 날라리풍(한류)’ 집중 단속을 했고, 당시 대학생 방이나 가방을 뒤지면 가장 많이 나온 노래파일이 백지영의 노래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까지 한류 단속 업무를 했던 탈북민 A씨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특히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평양 대학생 애창곡 1위였다”면서 “백지영 노래가 하도 많이 나와 단속반도 그 노래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중국 등을 통해 들어온 한국 영화, 드라마, 가요 등 한류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격을 받으며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24)씨도 여러 차례 수술 끝에 일주일 뒤인 같은 달 21일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여기가 남쪽이 맞으냐”, “남한 노래가 듣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오씨는 국가정보원 조사에서 ‘드림하이’, ‘동이’ 등 한국 드라마를 USB 파일로 시청하며 남한 사회를 동경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개봉한 영화 ‘강철비’에서는 지드래곤의 노래를 북한군으로 등장한 정우성의 어린 딸이 즐겨 듣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몇년 전에 북에서 한국 가요가 인기가 있고, 특히 빅뱅이 인기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드래곤의 ‘삐딱하게’와 ‘미싱유’ 노래 2곡을 영화 소재로 사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북한 지도부는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한류 문화를 경계하며 단속해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4일 “비사회주의적 현상(자본주의화)과 섬멸전을 벌여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북한 관영 매체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던 당시 김 위원장은 제5차 당 세포위원장 대회 폐막 연설에서 “지금 미제와 적대세력들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책동과 제재 압살 책동을 전례없이 강화하는 것과 함께 우리 내부에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사상 독소를 퍼뜨리고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조장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북 당국이 대대적인 한류 단속을 예고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불과 일주일 뒤 내놓은 신년사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가능성을 언급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잡혀 있고, 완전 비핵화와 종전 선언 가능성까지 타진되는 등 ‘한반도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 이런 가운데 ‘한류의 얼굴’인 우리 가수들이 평양 무대에 선다. 평양 시민 등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 기대되는 이유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2018 반갑다! 프로야구] “내가 최고 거포” 동기들의 살벌한 경쟁

    [2018 반갑다! 프로야구] “내가 최고 거포” 동기들의 살벌한 경쟁

    최, 3년 연속 홈런 1위 도전 박, 2년 만에 국내 리그 복귀 최정(31·SK)이 ‘돌아온 거포’ 박병호(32·넥센)를 넘어설까. 오는 24일 개막하는 2018시즌 KBO리그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최정의 3년 연속 홈런왕 여부다. 그는 2016년 NC 에릭 테임즈(밀워키)와 공동 홈런왕(40개)에 오른 뒤 지난해에는 46개를 폭발하며 2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그가 올해도 홈런왕을 차지하면 ‘레전드급’ 거포로 이름을 올린다. KBO리그에서 3년 연속 홈런왕은 3명에 불과하다. 장종훈(1990~1992년·전 빙그레), 이승엽(2001~2003년·전 삼성), 박병호(2012~2015년)다.특히 박병호는 ‘전설’ 장종훈, 이승엽도 해내지 못한 4년 연속 홈런왕의 역사를 쓴 주인공이다. 그런 박병호가 미프로야구(MLB)에서 2년 만에 복귀하면서 최정이 선도할 홈런 레이스는 지각변동을 예고했다.최정의 2년 연속 홈런왕은 ‘박병호 없는’ 국내 무대에서 작성됐다. 그래서 국내 최고 거포로서의 이미지는 다소 빛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박병호와의 ‘진검 승부’에서 승리한다면 명실상부한 최고 거포로 입지를 굳힌다. 최정이 프로 동기생 박병호를 넘기는 녹록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 시즌도 박병호가 각종 개인 타이틀은 물론 팀 순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병호는 미국 진출에 앞서 4년 연속 홈런왕은 물론 타점왕도 동시에 일궜다. 게다가 2014~15년에는 사상 첫 2년 연속 한 시즌 50홈런 이상을 생산했다. 검증된 박병호가 올해 적어도 30홈런-100타점 이상 거뜬히 올릴 것으로 확신하는 모양새다. 박병호는 21일 종료된 시범 7경기에 나서 삼진 5개를 당했지만 홈런 두 방 등 17타수 5안타(타율 .294) 5타점 5볼넷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이에 견줘 최정은 6경기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16타수 2안타(.125)에 그치며 삼진 6개를 당했다. 비록 시범경기지만 박병호의 출발이 더 좋다. 거포 경쟁의 다크호스로는 김재환(30·두산)과 로맥(33·SK)이 손꼽힌다. 김재환은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면서도 2016년 최정에 3개 뒤진 37개(3위)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5개(3위)를 터뜨렸다. 로맥은 지난해 시즌 도중 가세했으면서도 31개(공동 6위)를 폭발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홈런에 자신감이 붙은 최정과 국내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는 박병호가 펼칠 홈런 레이스에 벌써부터 팬들의 이목이 쏠린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우리’ 손잡은 김정은, 12년 무관 恨 풀었다

    ‘우리’ 손잡은 김정은, 12년 무관 恨 풀었다

    김정은(31·우리은행)이 12년 동안 이어온 무관의 한을 드디어 풀었다.김정은은 21일 충북 청주체육관을 찾아 벌인 KB스타즈와의 여자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3차전에서 8득점 2어시스트 2스틸에 그쳤지만 박지수를 완벽하게 묶어 75-57 승리에 앞장서고, 기자단 투표 84표 가운데 53표를 얻어 최우수선수(MVP) 영예까지 차지했다. 3연승으로 퍼펙트 우승을 달성한 우리은행은 통산 챔프전 10번째 우승과 함께 역대 두 번째 통합 6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김정은은 1차전에서 14점으로 국내 선수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3점슛 네 방을 포함해 18점을 넣어 2연승의 주역이 됐는데 이날도 결정적인 순간 3점슛 두 방을 꽂고 박지수와 모니크 커리 등 상대 주포를 효율적인 수비로 묶었다. 우리은행은 3쿼터 중반 정미란과 커리, 강아정이 연속 3점슛을 집어넣은 KB스타즈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으나 김정은, 박혜진, 임영희의 침착하고도 집중력 높은 득점으로 상대 추격의 힘을 뺐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신세계에 입단한 김정은은 데뷔하자마자 큰 신장(180㎝)을 앞세운 정확한 슛과 거침없는 돌파력으로 주목받았다. 국가대표로도 발탁돼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프로 경력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지난 두 시즌은 부상 때문에 헤매다 이번 시즌 자유계약선수(FA)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으면서 예전의 기량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김정은은 “감독님이 우승보다 네가 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오늘은 영희 언니가 더 활약했는데 내가 큰 상을 받아 미안할 따름”이라고 몸을 낮췄다. 여자농구 사령탑 최초로 여섯 번째 우승을 달성한 위성우 감독은 매년 되풀이되는 선수들의 구타 강도가 약화된 것 같다는 평가에 “이제 나이가 들어 선수들이 봐주는 것”이라고 웃어넘긴 뒤 “어려운 여건에서 열심히 뛰어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머리를 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남·북·미 1.5트랙 대화…정상회담 성공 필요성 공감

    남·북·미 1.5트랙 대화…정상회담 성공 필요성 공감

    이틀간 이어진 남·북한, 미국 간의 ‘1.5 트랙 대화’에서 정상회담의 성공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이뤘지만 비핵화의 조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핀란드 헬싱키 북부 반타에서 20~21일 열린 이번 회담에서 3국 대표단은 정상회담과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대표단의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여러 사안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야기했다”면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정상회담의 성공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북측 대표단은 구체적인 비핵화의 조건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논의가 깊이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에는 1.5트랙이라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참석자는 “남북미 모두 그럴 만한 언급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참석한 회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이번 회담이 정상회담을 돕는 성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 측 역시 연구원 자격으로 왔기 때문에 자유롭게 견해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는 한국 미국 측에선 전직 관료와 학자들이 참석했지만, 북한에선 ‘미국통’인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국장 직무대행이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최 직무대행은 북한의 미국연구소 부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양 측은 사실상 이 모임을 정례화하기로 하고, 가까운 시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김 교수는 “향후 의제와 토픽을 개발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회의를 끝낸 뒤 발표문을 내고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1년 만 재결합’ 솔리드, 새 앨범 ‘Into the Light’ 발매+론칭 파티

    ‘21년 만 재결합’ 솔리드, 새 앨범 ‘Into the Light’ 발매+론칭 파티

    그룹 솔리드가 드디어 21년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솔리드(김조한, 이준, 정재윤)는 22일 0시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새 앨범 ‘Into the Light’를 발매한다. 이번 앨범은 지난 1997년 발표한 4집 ‘Solidate’ 이후 솔리드가 정확히 21년 만에 발매하는 신보로,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솔리드 완전체의 새로운 음악들이 담겨 있다. 앨범의 전체적인 콘셉트를 담은 첫 번째 타이틀곡 ‘Into the Light’는 경쾌한 리듬과 부드러운 보컬, 랩의 조화가 매력적인 곡으로, 80년대 신스팝 레트로 사운드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모던한 곡이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도전에 나선 이들에게 뒤를 돌아보며 미련과 후회,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용기를 내서 새로운 빛을 향해 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두 번째 타이틀곡 ‘내일의 기억 Memento’는 솔리드가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먼저 작업을 시작한 곡이자 이번 앨범이 진행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곡으로, 솔리드의 음악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발라드 사운드 트랙이다. 그 외에도 영화 ‘인터스텔라’ 속 시간처럼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20년이나 흘렀다는 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1996’, 1집 ‘Give Me a Chance’에 수록됐던 ‘기억 속에 가려진 너의 모습’을 현재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기억 속의 가려진 너의 모습 Flashback’, 잃어버린 소중함을 뒤늦게 알게 된 아쉬움과 예상치 않았던 이별 뒤에 느끼게 되는 그리움의 감정을 그린 곡 ‘Daystar’가 이번 앨범의 전반부를 책임진다. 여기에 후회와 두려움을 뒤로하고 한 발 더 나아가려는 다짐을 그린 ‘Here Right Now’,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솔리드의 대표곡 ‘천생연분’을 컴플렉스트로 장르로 리믹스한 ‘천생연분 Destiny (Fyke Remix)’, 전 세계 비트박스 대회를 휩쓴 비트박서 KRNFX가 참여한 ‘천생연분 Destiny (KRNFX Beatbox Redux)’, 타이틀곡 ‘Into the Light’의 리믹스 버전 ‘Into the Light (Nocturnal Remix)’까지 총 아홉 개의 트랙이 솔리드의 새 앨범에 수록됐다. 솔리드는 앨범 발매에 앞선 21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뮤직비디오 시사회 및 팬미팅을 겸한 앨범 론칭 파티를 개최한다. 21년 만에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서게 된 솔리드는 팬들에게 신곡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오랫동안 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을 직접 전할 예정이다. 한편 솔리드는 오는 5월 19일과 20일 이틀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2018 단독 콘서트 ‘Into the Light’를 진행한다. 티켓은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오픈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윤성빈 눈물 “윤성빈이 아닌 스켈레톤을 기억해달라”

    윤성빈 눈물 “윤성빈이 아닌 스켈레톤을 기억해달라”

    ‘아이언맨’ 윤성빈이 눈물을 흘렸다.윤성빈은 21일 서울 중구 서울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23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과 함께 최우수상을 받았다. 윤성빈은 지난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로 동계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따냈다. 수상 후 윤성빈은 “2016년 이곳에서 신인상을 받았는데 이제 최우수상까지 받았다”면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상을 두 번 받았는데, 모두 이곳에서 받아 영광스럽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말을 이어가려던 윤성빈은 잠시 목이 메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눈물을 흘렸다. 윤성빈은 “당초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 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컸던 목표는 비인기 종목인 스켈레톤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추스른 윤성빈은 “윤성빈 혼자만의 이름이 아닌 스켈레톤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 김연아의 응원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다시 웃음을 찾았다. 평소 김연아의 팬으로 널리 알려진 윤성빈은 “올림픽 때 응원을 와 주셨다고 들었다. 뒤늦게 들었지만 많은 힘이 됐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며 웃었다. 행사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윤성빈은 무대에서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흑역사를 쓴 것 같다”고 웃은 뒤 “지금까지 준비한 과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서러움이 많았다. 여기까지 온 과정이 생각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림픽 전에는 스켈레톤에 대해 1~2명만 알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올림픽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스켈레톤을 알고, 나를 응원해주는 느낌이 새로웠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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