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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핀란드 온국민 자산 매년 공개

    (헬싱키 AFP 연합) 부패감시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28일 발표한 세계 각국의 부패순위에서 3년 연속 가장 깨끗한 나라로 꼽힌 핀란드의 ‘청정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이 나라가 ‘투명하고 열린 사회’라는 데 있다.핀란드의 부패수사 전담기구인 국립수사국(NBI)의 로빈 라르도트 부국장은 “지금 헬싱키 법원에 계류돼 있는 (부패 관련)사건을 제외하곤 언제 그런 사건을 다뤘는지 기억이 안난다.그런 일은 원래 드무니까”라고 말한다. 라르도트 부국장이 말하는 사건이란 노르웨이의 한 회사가 핀란드로부터 다목적 쇄빙선을 값싸게 빌려쓰는 대가로 핀란드 고위 공무원들에게 신용카드를 제공하고 외국여행 접대를 했다는 것.라르도트 부국장은 “공공 부문과 관련된 사건들을 수사할 때는 뇌물수수도 범죄의 동기에 포함시켜서 상황을 가정해 보지만 이것이 사실로 입증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핀란드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외국 기업인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이다.핀란드국제상공회의소의 티모 부오리 사무국장은 “핀란드 사회가 워낙개방돼 있어 부패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누군가 부패행위를 한다면 주위 사람들이 당장 알아차리게 된다.”고 말한다. 핀란드에서는 익명의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세무당국이 전국의 모든 계좌에 관해 정보 검색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료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의 소득과 자산이 매년 공개된다. 이렇게 국민의 재산상태가 유리알처럼 환히 들여다보이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으로 값비싼 새 차를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TI의 프레드릭 갈퉁 조사팀장은 이같은 개방성 외에 “오랜 자치와 자립경제,그리고 강력한 지방정부의 전통”을 깨끗한 사회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는다.
  • 北·日적십자회담 결산/ 日, 北태도변화에 고무

    [도쿄 황성기특파원] 북한과 일본은 19일 평양에서 끝난 제6차 적십자회담에서 북송 일본인 처의 10월 고향방문에 합의했다. 일본인 행방불명자 49명의 생사확인 조사와 관련,북측은 6명의 소식을 확인했으며 앞으로도 조사를 계속해 생사여부가 확인되는 대로 일본측에 신속히 통보해 준다는 내용을 담은 4개항의 공동발표문을 발표했다. 일본측도 태평양전쟁 전후 일본에서 실종된 314명의 조선인 가운데 3명의소식을 확인하고 이 중 1명이 일본에 생존해 있다고 전달했다. 일본측 최대 관심사였던 납치 의혹자의 생사확인은 없었으나 일본측은 북측의 달라진 태도에 주목하고 있다.대표단의 평양 도착 때부터 18일 선상 환영만찬,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에서 이전과 다른 적극성과 공기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5일 평양에서 열리는 외무당국 국장급 협의에도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이번 회담에서 보인 북측의 대일 외교 자세는 회담 이틀째 일본인 행방불명자 조사를 맡고 있는 인민보안성과 평양시 인민위원회 간부가 일본대표단에 조사 경위,방법을 상세히 설명한 데서도 드러난다.과거 없었던 일이다. 인민보안성 주소안내소의 김완식(金完植) 부소장은 “지난 5월 조선 적십자회로부터 행방불명자 조사를 요청받고 지방지부에 이를 전달,주민등록을 기초로 (생사확인)조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대표단은 4차 고향방문단에 포함된 일본인 처 3명과 1963년 동해상에서 행방불명된 뒤 현재 평양에서 살고 있는 데라코시 다케시(寺越武志·52)씨를 면회했다.데라코시는 대표단과의 면회 후 일본 취재진들에게 “고향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일시 귀국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외무성의 한 관계자는 “행방불명자 조사에 대한 중간보고,일본인 처의 고향방문 합의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행방불명자 가운데 납치의혹자 8건 11명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5일 열리는 외무당국 협의 전망에 대해서는 “북측이 납치문제 등 인도적인 문제는 적십자회담,당국자협의에서는 전후 보상문제를 논의한다는 분리 전술을 쓸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측은 당국간 협의에서도 납치문제를 강력히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marry01@
  • 美, ‘한국과 계약’ 군수업체 조사

    (서울 연합)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이 과거 한국을 대상으로 한 무기판매 계약과 관련,미국 법무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다우존스 등에 따르면 레이시온은 지난 14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분기 보고서를 통해 지난 90년대 말 한국과 체결한 무기판매와 관련해 현지 법원의 소환을 받았음을 확인했다. 레이시온은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에서 소환장을 발부했으며 현재 조사에 충실하게 협조하고 있으나 당시 계약이 회사정책·절차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국 최대의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도 이달초 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난 6월17일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으로부터 지난 96년 한국 정부에 대한 통합개구형 레이더(SAR) 판매와 관련한 소환장을 받아 이에 응했다.”고 밝혔다.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록히드마틴의 레이더 계약과 관련해 당시 탈락했던 업체의 한 대행사가 록히드마틴측 대행사였던 로럴이 부당행위를 저질렀다며 지난 99년 소송을 제기한 것과 이번 조사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 北·日 내일 적십자회담

    (도쿄 황성기특파원) 북한과 일본의 적십자회담이 18일부터 이틀간 평양에서 재개된다. 지난 4월 일본인 납치의혹자(행방불명자) 안부 조사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던 양측이 이번 회담에서 납치문제에 대해 어떤 진전을 보일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일은 또 25,26일 평양에서 외무당국 국장급 접촉을 갖고 국교정상화 교섭을 위한 사전 협의를 하게 된다. 협의에서는 납치문제를 포함,지난 2000년 10월 중단된 수교협상 미타결 사항에 대한 의제 점검과 일본인처 고향방문,요도호 납치범 귀국 문제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marry01@
  • 강남·목동 학원 세무조사

    최근 아파트가격이 급등한 서울 대치동·역삼동·목동 일대의 입시학원,보습·어학원 등 사설학원에 대해 국세청이 일제히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13일 학원가에 따르면 이날 오전 강남구 대치·역삼동,양천구 목동 일대 학원 수십곳에 세무당국 직원들이 들어와 관련 자료를 압류해 갔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조세형평 차원에서 수강료를 신용카드로 받지 않는 정도가 심한 학원을 중점 관리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라면서 “조사는 1개월 정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원가에서는 이번 조사가 고급 학원들이 강남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부동산가격 급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국세청은 최근 세금탈루를 위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소규모 ‘고액 과외방’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6월 학원·병원·변호사사무소·스포츠센터 등 9개의 신용카드 취약업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연말까지 1000여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국세청 관계자는 “제보를받는 대로 학원·병원 등에 대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대상자는 계획보다 늘어날 수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한국춤의 흥과 멋 한마당/’바리바리 촘촘‘ 오늘부터 관객들과 대화나누며 공연

    “한국무용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한번 구경오세요.” 전통춤과 창작춤을 보여주면서 해설까지 곁들이는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가 6일부터 22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바리바리…’는 전통에 뿌리를 둔 창작춤을 발굴하고자 국립무용단(단장배정혜)이 지난해부터 마련한 특별 기획공연.타이틀은 촘촘하게 내딛는 잦은발 동작을 뜻한다. 춤에 관한 설명은 물론 관객과 공연자가 문답식으로 대화를 나누며 한국춤을 공부하는 게 이번 무대의 특징이라서 부제도 ‘대화가 있는 무대’로 정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무대는 6·7일(오후7시30분)예정된 국립무용단 주역 무용수인 장현수의 창작춤 ‘아야의향(阿爺意香)'.아야의향이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의 향이란 의미로,보통 사람들은 굿을 통해 죽은 자와 교감하지만 진정한 마음을 담고 있다면 춤을 통해 죽은 자를 기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장현수와,실제로 무당 수업을 받고 있는 양용은이 각각 경기 도당굿 중 도살풀이와 진도 씻김굿 중 지전을 선보인다.아야의향 공연에 이어 장씨가 춤을 설명하고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도 갖는다. 9·10일은 정길만의 전통무예 택견,12·13일은 부산 춤꾼 임현미의 봉산탈춤,15·16일은 윤명화의 영남 춤,18·19일은 국립무용단 중견 춤꾼 백형민의 승무,21·22일은 리을무용단 김윤진의 설장고가 무대에 오른다.(02)2274-3507∼8,2264-8448 주현진기자 jhj@
  • [건강칼럼] 사람 잡는 연고

    진료실을 찾은 20대 여성이 무척 속상하다며 상처를 내보였다.보는 순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상처가 생기면 지혈한다며 담뱃가루를 새까맣게 덮어 오거나 항생제 가루를 허옇게 뿌려서 상처 부위를 시쳇말로 ‘망가뜨려’오는 경우가 많았다.그랬던 것이 요새는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고 선전해 대는,이름만 말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외용연고를 상처 부위에 마구 바른 채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이 여성도 그랬다. 상처는 연고로만 치료가 되는 가벼운 경우도 있지만 깊게 다쳐 피부의 표피,진피는 물론 지방층까지 손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이런 때는 상처면의 이물질을 제거한 뒤 봉합치료를 해야 깨끗하게 아물고 흉도 최소화한다.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상처의 심각성을 살피지도 않고 응급처치라며 연고를 듬뿍 바른 다음에 병원을 찾는다.결국 이 연고가 이물질로 작용해 오히려 치료를 어렵게 하거나 흉터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차라리 연고를 안바른 것만 못한 결과다.“왜 이랬느냐.”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환자나 보호자들은 금방 볼이 부어오른다.“광고 보고 발랐는데 괜찮지 않겠는가.”정도의 반응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어떤 이들은 도리어 의사에게 따지고 든다.“광고에서 흉터가 안 남는다는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어이없고 난감한 경험이다. 더 기막힌 일도 있다.수술받은 환자가 실밥도 뽑기 전에 의사 몰래 이런 종류의 연고를 발라 상처가 쩍 벌어진 경우다.“수술까지 받았는데 의사의 지시를 잘따르겠지.”하고 생각해 이런 연고류의 부작용을 따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 탈이었을까.한 환자는 스스로 약국에서 ‘상처에 좋다.’는 연고를 사다 상처부위에 잔뜩 발라놓았다.그러다 보니 연고가 이물질로 작용해 상처가 흉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런 연고류는 긁히거나 벌어진 상처를 봉합한 후 완전 치유가 돼 흉이 생기는 성숙기에 바르면 효과가 있다.그런데 상처에 흉터가 안 생긴다는 선전만 믿고 시도때도 없이 발라대 ‘역효과’이상의 ‘악(惡)효과’를 내는 것이다.이 여성도 봉합을 해야 하는 상처에연고를 바르는 자가치료를 해 꽤 고생을 했으나 다행이 봉합이 잘 돼 치료 결과는 좋았다. 정보화 시대에 광고가 없을 수는 없다.하지만 역효과가 우려되는 광고는 신중하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줘야 한다.특히 환자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의약품 광고는 더더욱 신중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물론 사서 쓰는 사람이 조심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장충현(강북삼성병원 성형외과 교수) ※알림/건강칼럼 필자가 바뀝니다.이번 주부터 강북삼성병원 성형외과 장충현 교수가 맡습니다.그동안 집필해 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이성구 교수에게 감사드립니다.
  • [2002 길섶에서] 미운 사람 죽이기

    미운 사람을 감쪽같이 죽이는 비법이 담긴 옛날 얘기 한 토막.고약한 시어머니 밑에서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며느리가 있었다.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생각에 용한 무당을 찾아가 시어머니를 감쪽같이 죽이는 비방을 물었다.무당은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절미)을 백일 동안 하루도 빼지 말고 조석으로 해 바치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 예언했다. 며느리는 그 비방을 믿고 매일 찹쌀을 정성껏 씻고 잘 익혀 김이 모락모락나는 인절미를 해다 바쳤다.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겼던 시어머니도 변함 없는 며느리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점차 미움이 사랑으로 변했다.석달이 되는 날.며느리는 덜컥 겁이 났다.“이러다 시어머니가 정말 죽으면 어쩌나.” 며느리는 다시 무당에게 달려갔다.“내가 잘못 생각했으니 시어머니가 죽지 않을 방도만 알려달라.”고 사정하며 뉘우쳤다.이 모습을 본 무당은 빙긋이 웃었다.“미운 시어머니는 벌써 죽었지?” 염주영 논설위원
  • 주택공급규칙 개정안 문답/ 주택조합원 분양권 전매 가능

    건설교통부가 3일 입법예고하는 ‘주택공급에 관한규칙’ 개정안은 9월 서울지역 8차 동시분양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알아본다. ◇현재 분양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전매를 허용하면 법 개정의 취지가 퇴색하지 않나. 분양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분양권을 팔더라도 이를 산 사람은 일정 기간 되팔 수 없어 실수요자 외에는 매수자가 없을 것으로 본다. ◇전매제한 기간을 ‘중도금 2회 납부’ 및 ‘계약일로부터 1년 경과’로 정한 근거는. 중도금 4회 가운데 절반인 2회 이상을 내야 실수요자로 볼 수 있다.사업자가 중도금 횟수를 늘리더라도 조기 전매를 막기 위해 1년간 전매를 제한했다. ◇지역조합 등 주택조합 조합원도 전매제한 적용을 받나. 지역조합 등 주택조합 조합원은 청약과정을 거친 분양과 달리 조합원 자율 의사로 조합을 구성했기 때문에 전매제한을 받지 않는다.다만 사업승인 전 조합원 지위를 양도하는 것은 공급질서 교란행위로 여겨 금지한다. ◇분양권 전매 여부는 어떻게 적발하나. 사업자가 입주자 명단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명의 변경시 확인할 수 있다.재산상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는 고액의 분양권을 신고없이 음성적으로 팔고 사지는 않을 것이다.또 당첨자 명단을 시장·군수에게 통보,주기적으로 세무당국과 전매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불법 전매된 분양권 처리는. 사업자가 납부된 입주금에 대해 은행 정기예금 금리 수준의 이자를 주고 분양권을 다시 사서 예비당첨자에게 공급하게 된다.주택건설촉진에 관한 법률에는 불법으로 분양권을 판 사람에 대해 2년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주상복합건물이나 오피스텔도 전매제한 적용 대상인가. 건축법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아 짓는 주상복합건물 및 오피스텔은 사업승인 대상이 안되기 때문에 전매제한 대상이 아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월드 비즈뉴스/ 中 외국기업 대대적 세무조사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정부가 외국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은 “베이징시 세무당국은 외국기업의 주재사무소를 대상으로 개인소득세에 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으며,이번 조사는 9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라고 29일 보도했다. 통신은 또 지난 15일까지 3200개사에 대한 1차 조사 결과 이중 납세액이 부족하다고 인정된 1100개사에 대해 6356만위안(약 101억원)을 추징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등 사회적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다.중국의 개인소득세는 근로소득액에 따라 5∼45%로 차등 적용된다.월 과세소득의 4000위안(64만원)을 우선공제한다.이후 500위안(8만원) 이하에 대해서는 가장 낮은 과세율인 5%를 적용하고,10만위안(1600만원) 이상에 대해서는 가장 높은 과세율인 45%를 적용한다. khkim@
  • 연예인 訟事 제기 잇따라

    유명 연예인의 송사가 잇따르고 있다.탤런트 최불암씨는 24일 전속계약금을 사업소득으로 간주,종합소득세를 소급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 영등포세무서를 상대로 2억여원의 과세처분 취소요구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최씨는 “그동안 기타소득으로 인정되던 전속계약금을 세무당국이 지난해부터 근로소득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면서 “국세기본법은 소급과세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지난 1996∼2000년 MBC에서 받은 전속계약금 5억 6500만원에까지 소급해 종합소득세를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영화배우 유오성씨는 자신이 주연한 영화 ‘챔피언’의 투자배급사 코리아픽쳐스와 모 의류업체를 저작권 위반혐의로 최근 고소했다. 주현진기자 jhj@
  • 접대비 이대로 둬야 하나/ 한해 5兆규모… 밀실문화 ‘젖줄’

    기업들의 접대비가 이런저런 경로로 정치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흘러들어가 종종 사회문제가 되어왔다.최근에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과도한 접대비 사용도 도마위에 올랐다.지나친 접대비 지출은 기업들이 그만큼 연구개발비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향락문화를 조장하고 부패고리를 만들어낸다는 지적이다.접대비 한도 축소 논란과 바람직한 접대문화 정착 방안 등을 긴급 진단해 본다. ■실태와 문제점 ◇ 접대비 한해 4조∼5조원 = 현행 법인세법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접대비로 인정,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다.연간 매출1000억원인 기업은 세법 규정에 따라 연간 최고 8700만원의 접대비를 손비로 인정받아 부과대상에서 제외된다. 전체 국내 기업들이 쓰는 접대비 규모는 연간 약 3조∼3조 5000억원(1996∼2000년 국세청 신고 기준)에 이른다.세법상 접대비 한도를 넘는 것까지 합하면 적어도 4조∼5조원 이상이 접대비로 쓰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재벌들이 대통령 아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거금을 준 것은 영수증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돈”이라면서 “이런 돈이 바로 한도를 넘긴 기업접대비나 임원 활동비,기밀비 등에서 변칙 지출될 수밖에 없는 접대성 경비”라고 말했다. 접대비 규모가 이렇듯 엄청나다 보니 최근들어 기업 임직원들이 접대비를 회사업무가 아닌 개인용도로 쓰거나,제3자에게 법인카드를 빌려주고 접대비로 인정받는 등 편법지출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뇌물이나 향응에 가까운 접대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가 기업간 공정경쟁 풍토를 해치고 한국형 ‘정실(情實)문화’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 뿌리깊은 관행,사적 용도 = 기업 접대비를 개인적인 용도로 쓰고 이를 법인의 돈으로 지출하는 사례는 거의 모든 기업에 만연된 관행이다.인테리어공사전문 A사의 김모 사장은 장남(26)의 유럽배낭여행 때 법인 신용카드를 주어 300만원을 쓰게 했다.학원장 강모씨는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부부가 해외 여행을 다녀오면서 법인카드로 450만원을 썼다.의류업체인 E사의 대표이사 유모씨는 취업을 앞둔 딸(23)의 성형수술비 600만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그래도 이런 일은 약과다.일부 기업의 임원들은 심지어 TV·냉장고 등 가정용품을 회사 돈으로 사는가 하면,돌잔치비·예식장사용료·병원치료비·피부미용비 등에 이르기까지 기업 접대비의 사적 유용은 비일비재하다.이는 회사규모에 따라 일정 한도까지 세금혜택을 받는 접대비를 악용한 것으로,기업임원들의 도덕불감증과 범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무절제한 씀씀이 절제 움직임 = 접대문화가 건전하고 긍정적이기보다는 향락산업을 부추기고 사회병폐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에 대한 손비인정 한도를 축소하거나 룸살롱·단란주점 등 유흥향락업소에서 지출된 접대비에 대해서는 손비인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 제도개선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접대비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수록 기업들 역시 깨끗한 문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하고 있다.유한킴벌리·종근당 등은 임직원들에게 법인카드를 지급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을 수당으로 줘 무절제한 사용을 막고 있다.전국경제인연합회는기업들이 사치·향락업소에서 접대하는 것을 자제하고 지출액도 대폭 줄이는 내용의 ‘자정선언’을 검토 중이다.접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재의 사회문화시스템을 선진화하는 캠페인도 강구 중이다. H그룹의 한 임원은 “세무당국으로부터 기업 접대비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영수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족한 예산이지만 접대비 한도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회사돈의 씀씀이가 점점 투명해지면서 기밀비의 조성이나 타용도로의 예산 전용은 엄두도 못낸다.”고 요즘의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육철수 김태균기자 ycs@ ■접대비·기밀비 차이점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다 보면 거래선 확대나 판촉 등을 위해 써야 할 돈이있다.세법은 이런 경비를 접대비로 정해 세금 부과대상에서 빼준다. 접대비 한 건의 지출액이 5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세금계산서,신용카드·직불카드만 인정된다.일반영수증,법인명의가 아닌 신용카드·직불카드 사용금액 등은 접대비로 인정받지 못한다. 기밀비는 통상 어디에 썼다고 증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기업의 비용이다.1998년까지는 접대비 한도액의 20%,99년에는 10%까지를 기밀비로 인정해주었다.그러나 기밀비가 뇌물·촌지 등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 2000년부터는 폐지됐다.현재는 접대비만 세법상 인정된다. ■규제강화 반대-지나친 규제땐 검은돈 뒷거래 규제의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현실성이 없으면 결국 ‘부실규제’가 되고만다.접대비와 관련된 일부 부작용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 접대비의 손비인정 한도를 축소하자는 등의 주장은 부실규제를 연상시킨다.접대수요는 막지못하면서 공급만 제한하면 접대비 지출이 음성화되는 등 더 심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문화적 특성 때문에,한번을 접대하더라도 화끈하게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외국에는 ‘공직자 행동강령’과 같은 것이 있어 공직자들이 1회에 접대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제한되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정치자금의 투명성도 낮아서 정치권이 요구하면 기업은 접대비를 변칙 처리해서라도 정치자금을 내야 하는 형편이다.서양과 달리 고급음식점이나 골프장을 제외하면 변변한 접대·사교 공간이 없는 것이나,소득 향상으로 예전에 ‘사치성’으로 분류됐던 업소가 대중업소로 바뀐 것도 접대비를 늘리는 요인이다. 반면 기업이 공급할 수 있는 접대 규모는 세법으로 제한돼 있다.1999년에 접대비 한도가 축소됐고,5만원 이상은 신용카드만 인정된다.또 기업별로 접대비 한도까지 설정돼 있다.이런 상황에서 접대업소를 제한하거나 총 한도를 추가로 축소하는 것은 우리 현실과 유리된다.더욱이 비싸다는 이유로 특정업소에서의 접대를 금지하면 현금이 오가는 등 더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마치 골프접대를 규제하면 접대가 술집을 전전하면서 이뤄져 접대비가 오히려 늘어나고 국민건강에도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이미 일부 기업은 임직원들의 건강과 건전한 접대문화를 위해 과음으로 연결되는 접대를 금지시키고 있다.접대비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급여로 지급해 접대비 지출을 자발적으로 줄이는 기업도 늘고 있다.따라서 접대 수요가 늘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우리의 접대문화는 곧 건전한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또 접대비의 유용은 신용카드 위장가맹점 단속 같은 세무행정으로 해결해야지 획일적으로 규제해서는 안된다. 신종익/ 전경련 규제조사본부장 ■규제강화 찬성-경쟁력 악영향 가정파괴 원인 우리나라 기업 접대비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첫째로 지출이 과다하다는 점이다.지난해 매출액 20억원 이상 제조업체 2175개사의 접대비는 9789억원이었다.이는 기업의 자원이 매우 비생산적으로 운용된다는 사실을 뜻한다.연구개발과 설비투자 등 생산적인 활동에 투자를 늘려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둘째는 잘못되고 과도한 접대관행이 당사자뿐 아니라 가정,나아가서는 국가의 장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기업에서 생산적인 활동에 종사해야 할 직원이 접대에 매달리다 보니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다음날 업무에 열중할 수 없게 돼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가장이 밤늦게 귀가하게 돼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자녀들과는 얼굴을 맞댈 기회조차 거의 없어 많은 가정이 ‘편모(偏母)가정’이나 다름없다.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건강한 사회인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하다. 셋째,접대비 과다 지출은 필연적으로 유흥·향락산업의 번창을 가져온다.우리나라처럼 유흥업소가 많은 나라는 전세계에서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정규직장을 얻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야간 유흥업소에서 손쉽게 돈을 벌려는 젊은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이들에게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찾아줄 것인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이밖에 접대비가 원래 취지와 달리 업무와 관련 없는 곳에 사용되는 등 문제는 곳곳에 널려있다. 과도한 접대관행으로 인한 온갖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접대비 사용의 건전성 및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법상 접대비의 손금인정 한도를 대폭 축소해 기업이 접대비 지출을 줄여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또 향락·유흥업소 등에서 지출한 기업의 접대비는 손금으로 인정하지 말아 접대문화의 건전화를 도모해야 한다.접대비지출명세서에 접대받는 사람의 성명,소속,직책,연락처,접대목적 등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접대비 지출을 투명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 [씨줄날줄]음파 총탄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첨단기술업체인 ‘아메리칸 테크놀로지(AT)’는 고막에 엄청난 충격을 가해 일시적으로 적군이나 테러리스트 등을 무력화하는 ‘음파 총탄’을 오는 10월부터 시판할 계획이라고 한다.AT가 7년에 걸친 연구 끝에 개발한 음파 총탄은 어린애 울음 등 50여 가지의 소리를 140dB로 증폭시켜 청각장애와 함께 방향감각 상실을 가져와 잠깐 동안 목표물을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중국무협영화에서 화산파나 무당파의 고수가 내공을 모아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적들이 귀를 틀어막은 채 비틀거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140dB은 여객기가 이륙할 때 나오는 소음과 비슷한 수준으로,이같은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귓속의 청신경이 파괴되면서 청력을 상실하게 된다.사람은 일반적으로 공사장에서 굴착기로 콘크리트 바닥을 뚫을 때 나는 소음 정도인 120dB을 넘으면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번 월드컵에서 폴란드·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의 강호들이 차례로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무릎 꿇은 이면에는 경기장에 운집한 붉은악마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한다.이들은 한국팀과의 대전에 앞서 100dB 정도의 소음을 틀어놓은 채 훈련하며 대비했다지만 ‘시뮬레이션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붉은악마들이 내지르는 함성은 평균 90dB 전후.축구 전용구장인 대전과 서울 상암동의 경우100dB 이상 치솟는 것으로 측정됐다.이 정도면 상대팀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월드컵경기장을 취재한 기자들에 따르면 5만여명의 관중이 일제히 ‘대∼한민국’을 외칠 때면 절로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한국팀의 집중포화에 침몰한 유럽 강호들의 감독들이 한결같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지독한 응원”이라며 혀를 내두른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다.한국에 맞섰던 선수들은 한동안 ‘붉은색의 소음’에 짓눌려 악몽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AT의 음파 총탄 항목에 붉은악마들의 함성이 추가된다면 빅 히트 상품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붉은악마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연호가 상대팀에는 ‘음파 총탄’이됐다고 하겠다. 우득정/ 논설위원
  • 엘피다메모리·난야도 소환장

    독과점법 위반 여부를 둘러싼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미 법무당국의 조사가 처음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미 법무당국은 19일(현지시간) 이같은 조사 착수를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미국),하이닉스,인피니온(독일) 등 세계 4대 업체들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고밝혔다. 그러나 하루 뒤인 20일 일본의 NEC와 히타치가 합작한 미 현지법인 엘피다 메모리(세계 5위),타이완(臺灣)의 난야 테크놀로지 및 윈본드 일렉트로닉스 등이 모두 이번 조사와 관련해 소환장을 받았다고 확인했다.이번 조사가 반도체업계 전반에 걸쳐 폭넓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에 따른 파장 역시 당초 예상보다훨씬 커질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치열한 경쟁과 가격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도체업계에서는 반독점법 위반 여부와 관련,꺼릴 게 없으므로 미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이처럼 힘든 시점에 미국이 왜 이같은 칼날을 들고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의아해하고 있다. 반도체업계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여부 조사 사실이 처음 알려진 19일까지만 해도 ▲군소업체들을 퇴출시키기 위해 주요 업체들이 담합을 했으며 ▲지난해 반도체칩 가격이 요동친 것이 이같은 담합의 결과라는 혐의 때문에 조사가 시작됐다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격 조작 및 담합 혐의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의 브라이언 매터스 부사장은 “PC업체들로부터 이같은 혐의에 대한 뚜렷한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며 “만약 가격 조작이 있었다면 현재 D램 가격이 급락한 것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업체들의 주가는 뉴욕시장에서 19일과 20일이틀 연속 큰 폭으로 하락했다.아직 본궤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모처럼 회복 기미를 나타내고 있는 세계 반도체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부르는 대목이다. 유세진기자 yujin@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 이총리 내일 취임 2돌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가 23일로 취임 2돌을 맞는다. 그동안 총리 교체가 워낙 잦다보니 이 총리가 재임 기간으로 보면 장수(長壽) 대열에 속한다.지방선거 전까지 개각 등 특별한 요인이 없다면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이후 지금까지 최장수였던 강영훈(姜英勳) 전 총리의 재임기간인 2년 10일의 기록을 가볍게 넘어서게 된다.이 경우 역대 총리 가운데 정일권(丁一權)·김종필(金鍾泌)·최규하(崔圭夏) 전 총리에 이어 4번째로 총리직 수행기간이 길다. 이 총리는 오랫동안 내각의 사령탑으로 있으면서 국정을 챙기다보니 과거 일부 장관들이 총리를 ‘패스’하고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과 같은 ‘불상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신참 장관들도 모르는 부처의 현안 업무를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다.업무보고를 받으면서 메모를 하는 꼼꼼한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총리’‘민생총리’라는 별명도 얻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주요 정책과정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 총리의 향후 거취문제와 관련,최근 정·관가에서는‘국회의장설’이 나돌고 있다.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여차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 국회의장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얘기다.민주당,한나라당이 2기 국회 원구성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무당파인 이 총리가 의외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총리 측근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게 이 총리의 생각”이라면서 “다음 총선에서 이길 경우 지역구 7선으로 차기 국회의장 영순위인데 이번에 무리하게 국회의장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신간 맛보기/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등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안종주 지음,한울 펴냄) 2000년의사파업 현장에 의료담당 기자로 있었던 저자가 ‘아파도 병원 문턱을 넘지 않을 각오’를 하고 의사집단을 향해쓴소리를 토했다.의약분업과 의사파업 후 한국 의료는 위기 상황에 있다.저자는 이 위기는 의사집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의사집단의 정체 규명에 나선다.의사들이 어떻게 법망을 피해가며 돈을 버는지,자신들의 이익을위해 어떤 거짓들을 말하는지 의사들의 5대 거짓말을 낱낱이 분석한다.의사파업도 도마에 올린다.의사파업은 겉으로는 의료개혁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의사들이 편하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결과는대성공이었다.어떻게 할 것인가.저자는 먼저 ‘싸우는 의사’가 아니라 ‘치유하는 의사’로,‘의사 먼저’가 아니라 ‘환자 먼저’의 자세로 의사들이 변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위한 개혁방안도 밝힌다.의사파업 때 고통을 겪어본 이라면 속이 시원해지면서도 또한번 들끓어오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1만 2000원. 신연숙기자 ◆에로스의 눈물(조르주 바타이유 지음,유기환 옮김,문학과 의식)인간의 사유세계는 생산성과 유용성을 지향하는노동에 주된 초점을 맞추어 왔다.한낱 욕설과 음담패설의영역에 던져졌던 에로티시즘을 사유의 차원으로 끌어 올린 것은 프랑스 사상가이자 철학자 바타이유의 공로다.바타이유는 당대의 주류 철학자들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생을 성,죽음,폭력 등 저주의 영역 탐구에 바쳤다.‘에로스의 눈물’은 그가 죽기 1년 전인 1961년 마지막으로쓴 ‘결정판’격 저술.선사시대로부터 현대를 관통하며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더듬는다.결론적으로 저자는 에로티즘에는 성과 죽음과 종교가 내밀하게 얽혀 있다고 말한다.에로티시즘의 절정은 ‘궁극적 죽음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으며이 순간 인간은 공포와 관능,고통과 환희의 유사성을 깨닫는다는 것이다.저자가 직접 고른 250여 컷의 도판은 난해한 글의 가독성을 높이는 데 한몫을 한다.1만 5000원. ◆지구를 살리는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존 라이언 지음,이상훈 옮김,그물코 펴냄) 폐수처리장치,대기오염 방지장치처럼 거창한 기술을 개발해야만 죽어가는 환경을 살릴수 있을까? 노스웨스트 환경기구 수석연구원인 저자는 티끌 모아 태산 되듯 모두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녹색소비’로도 지구 생태계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자전거는대기를 맑게 하고 콘돔은 인구를 억제한다.천장선풍기는최소한의 대안적 소비양식이며 빨랫줄은 태양과 바람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무공해’ 물건이다.채소가 듬뿍 든 타이국수,한권의 책도 돌려가며 읽게 하는 공공도서관,유기농 밭에 날아다니는 무당벌레도 지구를 구하는 ‘물건’들이다.일곱가지 선택된 물건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누구나 환경운동을 할 수 있는 ‘나의 일’로 느끼도록 하는 책.8000원.
  • 홍업씨 소환 빨라지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의 사법처리가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차남 홍업(弘業)씨의 소환과 사법처리 일정도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공식적으로는 소환 일정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아직 홍업씨와 관련된 계좌 추적을 마무리하는데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15일 대검 수사팀을 방문한 홍업씨의 변호인 유제인(柳濟仁) 변호사도 “검찰측에서 소환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물론 검찰이 홍업씨의 혐의를 상당 부분 포착했다.홍업씨가 적어도 16억원의 자금을 세탁했음을 확인했다.홍업씨를조사해 돈을 준 사람과 액수 등을 확인하면 조세포탈죄를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조세포탈죄는 탈루세액이 5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중범죄다. 그럼에도 검찰이 홍업씨의 소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있는 것은 국민 정서상 조세포탈보다 확실한 범죄라고 여겨지는 ‘대가성있는 자금 수수’를 찾기 위해서다. 홍업씨측의 해명대로 일부 정치인들에게서 용돈 명목으로받은 돈이라면 사실상 세무당국에 신고하기는 어렵고,따라서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짜내기’라는 인상을줄 수 있다는 것이다.수사팀 관계자는 “대검 중수부가 두달 동안 수사를 해서 조세포탈 혐의만 적용한다면 국민이이를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홍업씨의 소환이 다음 주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월드컵도 중요하지만 홍걸씨와 홍업씨의사법처리 사이에 너무 시차가 벌어진다면 검찰로서도 ‘험한 파도를 두번 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검찰 고위 관계자는 “검찰 입장에서도 세간의 이목이 지나치게 검찰 수사에 계속 쏠려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토로했다.검찰이 최근 홍업씨가 김성환(金盛煥)씨와 거래한 자금의 규모와 홍업씨의 자금 세탁 사실 등 범죄 혐의와 연결될 수 있는 부분들을 잇따라 공개한 것도 소환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1895년 10월8일 민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된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를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고종왕은 일본군의감시아래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 있었다. 베베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이자 궁궐경비원이었던 사바틴의 증언서와 자신의목격담을 난수표 암호전문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잽싸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니콜라이2세 황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친필로 “천인공노할 사건이니 좀 더 자세히보고하라.”고 지시했다.이어 극동지역에 주둔하던 아무르군관구 사령관에게 비상경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일본군의 감시하에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있던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아침 7시30분 여인복장으로 변장하고 왕세자와 함께 부인용 가마 두 대에 앉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오는 데 성공했다.뜻밖의 정변이 발생한 것이다.고종의 탈출소식을 들은 수천명의 군중이 공사관 담벽 아래로 몰려와 국왕의 탈출을 만세로 환호했다.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온 이후 모든 국사는 러시아제국의 국기가 게양된 러시아공사관에서 경비해군 160명의 호위 아래 행해졌으며,각부 대신들은 공사관건물 안에 병풍을 친 임시 사무실을 사용했고 본인과 협의하라는 왕명을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대신과 단둘이서 논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 옆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1년동안 자신이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이때부터 러시아는 이전에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했다.베베르가 분석했듯이 러시아는 1884년 수교 이후 10여년간 대한제국 문제에 무관심했다.당시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청국이었으며 시베리아의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었다.따라서 러시아공사관의 임무는 청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1년은 베베르와 러시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지만 고종에게는 암울한 시기였다.당시 러시아공사관 서기였던 쉬테인은[“그는 두개의 방에 왕세자와 각각 따로 앉아공사관 뜰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가끔씩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궁궐(경운궁)에 계신 노대비(명헌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려고 몰래 세자와 함께 가곤 하셨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방안에 은둔하고 앉아 계셨다.”]고 외무부에 보고했다.고종의 공사관 생활은 수인(囚人)과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다. 청·일전쟁 후 지방세가 서울로 납입되지 않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일본인 재정관리자와 고문관이 떠나버리자국고에 잔액이 얼마 남았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관리들의 월급,특히 군인과 경찰관에게 제때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탁지부(재무부)의 재정실정을 밝혀야 했다. 베베르는 영국인 해관총무사 브라운을 재정고문으로 천거해 이 일을 맡겼다고 밝혔다.브라운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입을 올바르게 수령,장부에 기입하고 지출을 줄여 관리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수 있었으며,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기록했다.1896년말 국고는 1,660만엔의여유가 생겼으며,일본에서 차관으로 들여온 300만엔 중 100만엔을 상환하고 이듬해 가을 또 100만엔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이 환궁한 후 신변안전책으로 단행된 조선군의 개편작업에도 베베르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에서 2차에 걸쳐 군사교관단을 초청,대궐시위대 2개 대대를 교육시켰으며 러시아식 군운영체계를 도입했다.여타의 대한제국군들은 러시아교관단이 관리하는 대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베베르는 러시아국가회의 체제로 의정부의 개편,13개 도와 342개 군으로의 행정구역 분할,범법자에 대한 처벌 법규 시행,재정고문 알렉세예프 파견 요청,러시아어학교 개교,러청은행 지점 개설 등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이 기간동안 서북 석탄광개발과 압록강,두만강변의 벌목이권을러시아가 따낸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알려졌지만 고종과 황실인사는 물론,한국과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을 떠난 지 5년만에 다시 와보니 거리의 남루한복장은 이전보다 두배나 많았다.…고종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嚴妃)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정치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일본인들이 다시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한국인은 러시아,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제대로 몰랐다.…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고종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품이지만 많이 쇠약해졌으며,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 결정됐다. 1903년 다시 서울에 와보니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면서도 정치,경제적 예속화를 촉진시키는 데모든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한국인들은 일본의 속셈을알지 못했고,러시아는 법적으로 그런 정책을 중지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일본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대한제국의 조정과 국민자산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를열거하면서 대한제국이 조만간 일본의 정치적 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2만명을 넘으며,일본인 1인당 한인 5명이 식모,사무실 서기,잡부,납품상인 등으로고용되다시피 했다.…대한제국 연간 무역액의 72%를 일본이 차지할 정도였다.…1898년 9월 경부선철도 부설권 협정서 중 ‘철도에 필요한 역사,창고 등 대한제국측이 제공하는 부지는 철도회사에 귀속되며 역사는 필요한 곳에 건설하되 역 앞에는 일본인 이외 타민족의 거주를 금한다.’는 불평등 조항 때문에 철도부설과 동시에 대한제국의 철도및 역사주변 땅은 일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일본은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들이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서울∼부산∼일본해저 전신선을 통제했다.…개항지마다 일본은행이 개설돼 일본엔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베베르는 누구 우리나라에 부임했던 역대 외교관 중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외교관은 없었다. 베베르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최측근 인사로 통했다.그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친러시아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대한제국의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고종은 베베르가 멕시코 공사로 발령나자 ‘이임이 유감스럽다.장기간 유임시켜달라.’는 친서를 니콜라이2세에게 보냈다.니콜라이2세는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식(1902년)에 당시 야인이던 베베르를 사절단장으로 특파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 중에도 ‘베베르는 고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베베르를 경축사절단장으로 결정한 것은 고종황제에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종은 서울에 온 베베르를 자문역으로 붙잡기 위해 니콜라이2세에게 서울체류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베르에 대한 학계의 연구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하다.그의 출생연도와 학력,수기 등도 이번의 문서 공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베베르는 1841년 6월5일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부친은 루터교 선교사였다.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 동양어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5년동안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이후 톈진영사와 일본 총영사를 거쳐 조선주재초대 대리공사로 부임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와 중국,일본 등 주변국 외교가에서 ‘친한파’로 낙인찍힌 데다 수뢰사실(2만엔)이 외무부에 알려지는 바람에 서울을 떠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주석기자 ■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러 문서국 20곳서 10년간 자료 뒤져” “러시아에 산재한 20여개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한국과관련된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러시아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서수집 및 번역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지난 90년 한·러 재수교 직후 러시아문서보관소가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자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문서보관소는전세계에서 몰려온 학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지만 한국관계문서를 찾는 학자는 박 전 교수뿐이었다.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문서를 조사,열람한 뒤 복사하려면 기록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한국 학자들의 이름은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어와 러시아사,한국사,한·러관계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드문 탓도 있었지만 소장된 문서가외교,군사,경제 등 전문 분야의 필사본이어서 웬만한 학자들은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보관소의 서고를 뒤져 한국관련 문서를 찾아내기란 숨은 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최근에야 러시아어와 역사를 전공하는소장학자 몇명이 한국관련 자료 수집작업에 합류했다. 박 전 교수는 99년부터 2년 동안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연구비를 지원받아 문서찾기와 번역,해제작업을 해왔으며,조만간 ‘러시아국립문서국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해제집’이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비밀문서의 목록을 총망라,문서목록해제집을 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일입니다.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군사문서보관소,연방문서보관소의 서고에 숨겨져 있던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러시아가 견지해온 한반도정책의 과거는 물론,현재와미래까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교수는 러시아측의 공개 제한조치로 ‘극비문서’들이 소장된 크렘린문서보관소와 KGB문서보관소에 접근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그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소련 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원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독토르)을 땄고 모스크바대학 객원교수로대학원생들에게 한·러관계사를 강의했다. 노주석기자
  • 홍업씨측이 밝힌 의혹전말/ “”김성환에 받은 10억 투자금 돌려받은 것””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와 3남 홍걸(弘傑)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다음주 안에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검찰은 홍업·홍걸씨의 범죄 연루 혐의를 찾는데 주력해 왔다.하지만 홍업씨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검찰이 홍업씨의 혐의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했던 서울음악방송 회장 김성환씨는 홍업씨 관련 부분에 대해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이 계좌추적 등을 통해 홍업씨의 혐의를 찾아내지 못할 경우 소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그러나 홍업씨는 소환통보가 없더라도 자진 출두 형식으로 검찰에 나오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검찰로서도 월드컵을 앞두고 수사를마냥 끌 수도 없기 때문에 홍업씨가 자진 출두한다면 반길것으로 보인다. 홍걸씨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귀국할 것으로 관측된다.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6일 미국을 방문한 것도 홍걸씨귀국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두 형제가 한꺼번에 검찰의 조사를 받는 것이 사법처리 수위를 낮출 수 있다는 점도 홍걸씨가 다음 주 중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검찰은 이미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씨,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 부사장 송재빈씨,홍걸씨의 동서 황인돈씨 등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홍걸씨의 혐의에 대한 단서를 확보하고 있어 귀국 즉시 곧바로 소환할 가능성이 높다. 홍업씨는 “억울하다.”고주변 인사들에게 거듭 하소연하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것으로 전해졌다.홍업씨가 김성환씨에게 10억원을 빌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돈은 정치자금이나 비자금이 아니라 외국계 금융기관 지점장인 부인 신모(48)씨가 벌어들인 수입과홍업씨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던 시기에 주변 인사들이 용돈 명목으로 건네준 돈이라는 것이다.한 측근은 “평창종건유준걸 회장의 동생인 진걸씨의 요청으로 김성환씨가 평창종건에 투자를 하게 되면서 사업 전망이 밝다고 보고 주변에 투자를 권유했으며,홍업씨도 이때 10억원을 김성환씨에게 맡긴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홍업씨가 아태재단 부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원들 퇴직금 정산과 건물 신축비 등에 돈이 필요해 김성환씨에게 빌려준 돈을 다시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김성환씨 등 주변 인물을 통한 정치자금 관리 의혹에 대해서도 “홍업씨가 정치자금을 만질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이 측근은 일축했다.김성환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청탁과 함께 최소 5억원의 돈을 챙긴 뒤 홍업씨에게 모종의 조치를 부탁했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김성환씨가 이권사업과 관련된 청탁을 홍업씨에게 하지도 않았겠지만,설령부탁을 했다 하더라도 야당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온 홍업씨가 이를 들어줬을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홍업씨측은 굳이 범죄 혐의를 적용한다면 용돈 명목으로 받은 돈을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사용한 부분에 대한 조세포탈 정도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검찰 관계자는이와 관련,“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조세포탈혐의로) 구속할 때처럼 억지로 사법처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보다 뚜렷한 혐의를 추적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하지만 김성환씨가 거액의 자금을 거래한 배경에는 홍업씨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아 검찰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장택동기자 tae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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