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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포구, 소기업 무급 휴직 근로자에게 최대 150만원 지원

    마포구, 소기업 무급 휴직 근로자에게 최대 150만원 지원

    서울 마포구는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소기업 근로자에게 무급 휴직 지원금 최대 150만원을 지급한다고 10일 밝혔다. 지원 대상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마포구에 소재한 50인 미만의 기업체를 다니면서 한 달에 7일 이상 무급 휴직을 한 근로자다. 올해 7월 31일까지 고용보험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구는 특히 조선업, 여행업, 관광숙박업, 공연업 등 ‘소상공인 특별고용지원업종’ 종사자는 우선 지원한다. 한 달에 50만원씩 최대 3개월까지 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신청 기간은 10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이다. 마포구청 홈페이지에서 신청서 등 필요한 서류를 내려받아 작성한 후 마포구청 6층 무급휴직 근로자 지원금 접수처에 직접 방문하거나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우편이나 팩스도 가능하다. 지원금은 오는 7월 중 근로자의 통장에 직접 입금된다.
  • KDI “50대 이상 자영업자 위한 직업훈련 강화해야”

    한요셉 연구위원 ‘자영업자까지 포괄하는 고용안전망 구축방향’ 보고서“최근엔 자발적 자영업 진입 많아… 중장년층 임금근로 전환 지원 필요” 취직이 안돼 자영업을 선택하게 된다던 통념과 다르게 2013년 이후 새로 시작한 자영업자들은 자신만의 사업체 경영, 독립적 업무처리 등에 매력을 느껴 자발적으로 자영업을 선택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나 중장년층이 되면 자영업자에서 임금근로자로의 전환이 요원치 않기 때문에 자영업자를 위한 국민취업지원제도 강화가 필요하단 제언이 이어졌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6일 ‘자영업자까지 포괄하는 고용안전망 구축방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한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위기 발생 이후 정규직 임금근로자 위주로 설계됐던 기존 구직급여나 고용유지 지원이 비정규직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프리랜서·영세자영업자를 포괄하지 못해 소득 충격이 발생할 때 사회적 보호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면서 “기존 고용안전망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한 연구위원은 통계청의 종사상지위 분류상 비임금근로자를 근거로 지난해 연간 비임금근로자 수가 약 652만명인데 이 중 자영업자가 551만 3000명, 무급가족종사자가 100만 7000명이라고 집계했다. 그는 “2002년 비임금근로자가 800만명, 자영업자가 621만명에 달해 자영업자 과잉이 큰 문제로 인식됐으나 이후 인구구조가 변하고 최저임금과 종합소득세율이 상승하며 자영업자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발병 이전인 2019년 데이터를 보면 신규 자영업자 중 임금근로자로 취직이 안돼 자영업을 선택했다는 응답 비중이 12%에 불과했다”면서 “2013~2019년 동안 비자발적 자영업 진입이 늘어나는 현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자영업 과밀화가 여전한 이유를 한 연구위원은 50대 이상 자영업자의 퇴출 속도가 더딘 데에서 찾았다. 그는 “특히 단독 자영업자의 경우 50대 이후 자영업 지속성이 높게 나타나는데, 임금근로 재취업 가능성이 낮은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한 연구위원은 “자영업자를 포괄하는 고용안전망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자영업자 고용보험 의무화 필요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대안으로 국민취업제도의 취업지원 서비스 내실화를 주문했다. 생계유지를 위한 단순 소득지원을 넘어 시장성 있는 직업훈련과 일 경험 기회를 제공하고,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기 이후 임근근로 재취업에 실질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日 떠난 마코, 초라한 귀국하나…불합격 남편 비자도 만료

    日 떠난 마코, 초라한 귀국하나…불합격 남편 비자도 만료

    결혼과 함께 공주 신분을 버리고 미국 뉴욕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 마코(眞子·30)가 초라하게 귀국할 처지에 놓였다. 결혼 전부터 불안정한 경제력과 집안의 빚문제로 논란이 됐던 마코의 남편 고무로 게이(小室圭·30)가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또다시 낙방했기 때문이다. 고무로는 2018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의 로스쿨에서 공부했고 지난해 7월 변호사 자격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졌다. 그리고 올해 2월 재시험을 치렀지만 또 떨어졌다. 뉴욕주 변호사시험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시험에는 3068명이 지원해 약 1378명이 합격, 약 45%의 합격률을 보였다. 지난해 시험의 합격률은 60%이었다. 20일 주간 신시오는 고무로가 현재 1년짜리 취업비자로 머물고 있으며 늦어도 7월에는 그 기한이 만료된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마코가 로열패밀리였던 점을 어필해 오타니 쇼헤이처럼 O-1비자를 취득하는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무로가 배우자 비자로 머물게 되면 취업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16억 생활정착금 포기한 마코 결혼과 함께 왕족 자격을 잃고 일반인이 된 마코는 품위 유지 명목으로 지급되는 최대 1억5250만엔(약 16억원)의 생활정착금을 받지 않았다. 현재 법률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는 고무로의 연 수입이 6000만원 안팎이고, 마코 역시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급여가 없는 상태다. 마코 부부의 신혼집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침실 한 개짜리 아파트로, 원룸이지만 아파트 내에 골프연습장, 바비큐 시설, 스파, 요가 스튜디오 등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월세는 4809달러(한화 약 570만원)다. 일본 내에서 공주 신분을 잃은 마코가 여전히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마코 측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신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 “코로나 의심돼도 일해” 비정규직, 정규직의 2배… ‘퇴직 강요’는 6.7배

    “코로나 의심돼도 일해” 비정규직, 정규직의 2배… ‘퇴직 강요’는 6.7배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의 2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은 20일 유튜브를 통해 ‘코로나 확진 1500만, 스러진 일터의 약자’ 발표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4일부터 31일까지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업무를 계속했다고 대답한 비율은 비정규직의 경우 43.7%에 달했다. 23.4%가 그 같은 대답을 한 정규직의 2배에 가까운 비율이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거나 가족이 감염됐을 때 PCR 검사를 받은 비율은 정규직이 80.3%, 비정규직이 73.6%로 비정규직에서 6.7%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반면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는데도 검사를 받지 않는 비율은 비정규직(26.4%)이 정규직(19.7%)보다 높았다. 발표에 나선 황선웅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코로나19 감염률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며 “이런 검사 비율의 차이는 확진 및 격리 시 비정규직이 겪는 경제적 불이익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사 결과는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이 비정규직에게 더 컸음을 뒷받침했다. 코로나에 확진된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유급병가를 받는 비율은 36.9%, 무급병가를 받는 비율은 16.2%였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무급병가를 쓴 비율 42.1%, 유급병가를 쓴 비율 13.8%로 나타나 정규직과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확진 후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는 51.6%로 정규직(23.6%)의 약 2.2배에 달했다. 코로나 확진 후 퇴직을 강요받은 비율 역시 비정규직이 10.1%로 정규직(1.5%)보다 약 6.7배나 높았다.
  • 코로나는 남녀 구분 없다는데… 女실직 경험·소득 감소 男 넘어

    코로나는 남녀 구분 없다는데… 女실직 경험·소득 감소 男 넘어

    코로나19 발생 이후 여성이 남성보다 실직 경험이나 소득 감소가 더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7일 나왔다. 직장갑질119가 공공상생연대기금과 함께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4∼31일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수준 95%·표본오차는 ±2.2% 포인트)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21.3%가 ‘코로나19 이후 실직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실직 경험은 14.0%였다.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도 여성(37.7%)이 남성(29.2%)보다 많았다. 응답자들의 코로나19 양성 경험은 남성과 여성이 21.5%로 같았다. 그러나 그에 따른 처우는 성별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최근 3개월간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자유롭게 유급 병가를 사용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여성(62.8%)이 남성(44.8%)보다 18% 포인트 높았다. 반면 백신·검사·격리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남성(68.0%)이 여성(53.4%)보다 14.6% 포인트 높았다. 코로나19 확진일 때 ‘무급 휴가·휴직’으로 근무가 처리된 경우는 여성이 32.4%로 남성(20.8%)보다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고용보험 가입률 역시 남성 84.9%, 여성 72.6%로 12% 포인트 이상 차이 났다. 직장갑질119 강은희 변호사는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은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며 실직 경험 비율도 더 높지만 사회보험 가입률은 더 낮아 남성보다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직장 내 남녀평등? 코로나 빼곤 다 달랐다”

    “직장 내 남녀평등? 코로나 빼곤 다 달랐다”

    코로나19 이후 2000명 직장인 설문조사 코로나19 발생 이후 여성이 남성보다 실직 경험이나 소득 감소가 더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7일 나왔다.직장갑질119가 공공상생연대기금과 함께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4∼31일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수준 95%·표본오차는 ±2.2% 포인트)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21.3%가 ‘코로나19 이후 실직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실직 경험은 14.0%였다.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도 여성(37.7%)이 남성(29.2%)보다 많았다. 응답자들의 코로나19 양성 경험은 남성과 여성이 21.5%로 같았다. 그러나 그에 따른 처우는 성별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최근 3개월간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자유롭게 유급 병가를 사용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여성(62.8%)이 남성(44.8%)보다 18% 포인트 높았다. 반면 백신·검사·격리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남성(68.0%)이 여성(53.4%)보다 14.6% 포인트 높았다. 코로나19 확진일 때 ‘무급 휴가·휴직’으로 근무가 처리된 경우는 여성이 32.4%로 남성(20.8%)보다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고용보험 가입률 역시 남성 84.9%, 여성 72.6%로 12% 포인트 이상 차이 났다. 직장갑질119 강은희 변호사는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은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며 실직 경험 비율도 더 높지만 사회보험 가입률은 더 낮아 남성보다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이도훈 전 본부장 “한미 대북 핵협상 지렛대 스스로 와해시켰다”

    이도훈 전 본부장 “한미 대북 핵협상 지렛대 스스로 와해시켰다”

    13일 세종연구소에서 개최하고 있는 제38차 세종국가전략포럼 ‘국제환경의 대변동과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대북정책’(유튜브 생중계 중) 발제자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이는 2020년 말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총괄한 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캠프의 자문단으로 합류한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었다. 그는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을 실무적으로 준비했다. 본인이 직접 몸담았던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핵화 협상을 어떻게 돌아보는지,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대북 정책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전 본부장은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대북 지렛대를 스스로 와해시켜온 느낌”이라며 “레버리지(지렛대)는 협상 과정에 써야 하고 분위기 조성을 위해 써서는 안 되는데 밀당(밀고 당기기)도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예로 실무협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미정상회담 일정부터 정한 것,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선제적으로 발표한 것 등을 꼽았다. 그는 확고히 핵 개발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던 북한에 철저히 속았다며 북한이 2018년 이후 협상장에 나온 이유에 대해 “장기적으로 핵 개발 비용을 확보해야 했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말도 했다. “새로운 북한 비핵화 전략은 과거의 실책과 성과를 반추해서 냉철하게 수립해야 한다. 협상의 재개를 위해, 화해와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선제적으로, 일방적으로 보상부터 해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이제 우리는 잘 안다. 북측의 선의에 기대는 ‘짝사랑 정책’은 버리고 희망적 사고와 현실의 정책을 구분해야 한다. 협상은 실무급에서 철저히 이뤄지고 결과물이 있을 때 정상회담으로 옮겨가 확인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 이 전 본부장은 “(비핵화) 협상 유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제재를 함부로 풀면 안 된다”며 “북한에 일단 현금이 들어가면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재는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평화적 압박 수단”이라며 “비핵화가 이뤄지기 직전까지 제재는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본부장은 또 “핵무기는 핵으로밖에 억제할 수가 없다”며 “기존의 핵우산이라는 확장억제에 대한 실행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핵우산을 제대로 가동해서 신뢰성이나 실행력이 있지 않으면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무언가 강요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없다”며 “한미동맹과 한미 연합훈련이 중점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북중 국경 지역에서의 제재 위반과 사이버 절도처럼 북한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숨통’을 막아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나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제재가 무력화된 상황을 지적하며 “미국의 독자 제재가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쪽을 강화해 볼 방법이 없는지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재를 계속해 “핵무기 보유의 비용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비핵화의 기회비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핵보유가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각이 있지 않으면 (협상 재개가) 어렵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 전 본부장은 북한의 전략 목표가 ‘핵 보유국 지위’라며 “협상을 하되 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핵 보유를 전제로 한 협상이라서 (핵보유국) 인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을 끊임없이 느끼도록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과의) 협상은 철저하게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선(先) 평화-후(後) 비핵화’나 ‘선 비핵화-후 보상’ 방식 모두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북한 비핵화의 로드맵은 철저하게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그에 대한 보상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북한은 전통적으로 핵 관련 협상에서 미국만 대상으로 인정하고 우릴 배제하려 했다. 우리의 문제인 만큼 우리가 비핵화 협상 과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오세훈 “국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반드시 선택받겠다”

    오세훈 “국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반드시 선택받겠다”

    “최대한 빈틈없이 시정 챙긴 후 선거 준비”삭감됐던 吳공약 예산 모두 복원 증액 통과오세훈 서울시장이 11일 “6·1 지방선거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면서 “반드시 시민 여러분의 선택을 받아 서울비전 2030의 목표를 향한 힘찬 등정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최대한 빈틈없이 시정을 챙긴 후에 정치 일정에 맞춰 선거 준비에 들어가도록 하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시민의 불안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서민 생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중앙정부뿐 아니라 서울시도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면서 “이런 현안을 안고 다시 지방선거를 위한 길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고 적었다.‘오세훈 공약사업’ 1조 예산 복원시의회 갈등 끝 통과… 동력 확보 이날 오 시장의 공약사업 예산이 반영된 추가경정예산안도 시의회 본회의에서 갈등 끝에 통과됐다. 이로써 오 시장은 청년 대중교통 요금 지원 등 역점 사업을 추진할 재정적 동력을 얻게 됐다. 시의회는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정원 102명 중 51명이 참석해 찬성 43표, 반대 6표, 기권 2표로 1조 1876억원 규모의 제1회 서울시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서울시가 제출한 추경안 1조 1239억원보다 637억원 증가한 규모다. 시의회가 예비심사 과정에서 삭감하면서 서울시와 신경전을 벌였던 오 시장의 주요 핵심사업은 모두 원안대로 살아났다. 주로 청년 계층을 겨냥한 ‘오세훈표 사업’으로 ▲청년 대중교통비 지급 77억 5000억원 ▲영테크(재무상담) 운영 6억 7500만원 ▲서울형 교육플랫폼(서울런) 구축 예산 32억 4000만원 ▲임산부 교통비 지원 100억원 등 902억원 규모다. 오 시장은 이들 사업에 대해 올해 1월 SNS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준말) 시리즈로 언급하며 복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민생 회복을 위한 ▲소상공인지원 일상회복지원금 770억원 ▲소상공인 고용장려금 지원 151억원 ▲무급휴직자 고용유지지원금 151억원 ▲시민안심일자리 100억원 ▲뉴딜일자리 87억원 등 사업도 원안대로 통과됐다.
  • 비정규직에 더 가혹한 코로나 충격...2명 중 1명 “소득 감소”

    비정규직에 더 가혹한 코로나 충격...2명 중 1명 “소득 감소”

    정규직 20.5% 2020년 1월 대비 “소득 증가”실직 경험 질문에 비정규직 31.4% “그렇다”“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 노동법에 도입해야”코로나19 유행 이후 2년간 비정규직 노동자 10명 중 5명은 소득이 줄었다고 답했다. 정규직 노동자 10명 중 2명은 같은 기간 소득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4~31일 직장인 2000명(정규직 1200명, 비정규직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설문조사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2020년 1월 대비 소득 변화를 묻는 질문에 비정규직 57.0%는 소득이 줄었다고 했다. 소득이 늘었다고 답변한 비율은 7.4%에 그쳤다. 반면 정규직은 소득이 늘었다는 답변이 20.5%로 소득이 줄었다는 답변 16.8%보다 많았다. 같은 기간 직장을 잃은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비정규직 31.4%가 “그렇다”고 답했다. 정규직은 실직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7.7%에 불과했다. 고용 형태별로 코로나19가 가져온 충격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지난 3개월간 코로나19 감염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불이익 걱정 없이 백신·검사·격리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정규직 70.8%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비정규직은 48.0%로 절반이 안 됐다. 비정규직은 지난 3개월간 가족돌봄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는 답변이 73.9%에 달했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에 확진된 응답자 430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도 함께 공개했다. 확진자가 출근하지 않는 동안 근무처리 방식은 ‘추가적 유급휴가·휴업’(28.4%)이 가장 많았고 이어 ‘무급휴가·휴직’(25.8%), ‘재택근무’(23.3%) 순이었다. 격리 기간에 ‘무급휴가·휴직’을 했다는 응답은 비정규직(42.1%)과 정규직(16.2%)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출근하지 않은 동안 ‘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은 34.0%로 집계됐다. 정규직은 23.6%인 반면 비정규직은 51.6%로 나타났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는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인 유급병가 제도를 노동법에 도입하고 프리랜서 특수고용, 5인 미만 사업장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청년 10명 중 3명, 비정규직으로 시작”…평균 월급 213만원

    “청년 10명 중 3명, 비정규직으로 시작”…평균 월급 213만원

    청소년정책연구원, 만 18∼34세 청년 대상 실태 조사 국내 만 18∼34세 청년 10명 중 3명 이상은 첫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며, 10명 가운데 6명은 3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첫 일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직장 평균 월수입은 213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년 사회 첫출발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 I: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의 졸업 후 첫 일자리 평균 근속기간은 33.3개월로 나타났다. 근속기간은 3년 미만이 63.9%로 가장 많았다. ‘졸업 후 첫 일자리’는 ‘최종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을 했거나 가족사업체에서 무급으로 18시간 이상 일을 했던 경우’나 졸업 전에 시작했더라도 졸업 후 일자리가 계속 이어진 경우로 정의했다. 졸업 후 첫 일자리에서의 지위를 보면 응답자의 94.5%가 임금근로자, 5.5%가 비임금근로자로 나타났다. 첫 일자리가 임금근로자인 경우 정규직은 66.6%, 비정규직은 33.4%였다. 청년 10명 중 6명 “30인 미만 사업체에서 첫 일 시작” 취업한 회사의 종사자 규모를 보면 63.9%의 청년들이 3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첫 일자리를 시작했다. 1∼4인 규모의 직장에서 첫 일자리를 시작한 비율도 26.3%로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 일자리의 종사자 규모가 500인 이상인 경우는 7.7%에 그쳤다. 졸업 후 첫 일자리의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1시간, 월 소득은 평균 213만원으로 집계됐는데 성별과 학력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대졸 이상 남성의 평균 근로시간은 42시간으로 여성(40시간)보다 2시간가량 많게 나타났고, 월 소득도 남성(231만원)이 여성(194만원)보다 37만원 많았다. 학력별로는 고졸 이하의 청년은 평균 44시간 근무에 203만원의 급여를 받았지만, 대졸 이상의 청년은 42시간 근무에 236만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졸 이하 청년이 대졸보다 더 긴 시간 일하고 더 적은 급여를 받는 셈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7∼10월 전국 만 18∼34세 청년 20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학교 졸업 후 첫 취업까지 평균적으로 11개월이 걸리는데, 이는 개인적으로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이자 국가적으로도 인적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이 결정되는 예방적 접근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코로나19 ‘돌봄 부담’ 女에 집중… 일자리 중단, 男보다 13.4%P↑

    코로나19 ‘돌봄 부담’ 女에 집중… 일자리 중단, 男보다 13.4%P↑

    코로나19 시기 돌봄을 이유로 일을 중단한 것은 주로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돌봄을 이유로 중단한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과 소득 수준이 낮고, 근로 유연성이 낮은 일자리로 파악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이슈페이퍼 ‘코로나19 시기 누가 자녀돌봄에 취약하였나?: 성별, 일자리 특성별 분석’를 발간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9월 14일~10월 8일 초등학생 연령 이하 자녀를 둔 남녀 33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자녀 돌봄 문제로 인한 일자리 중단 및 폐업 경험은 여성이 남성보다 13.4% 포인트 높았다.(여 20.5%, 남 7.1%) 일자리 중단과 자녀 돌봄 어려움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는 여성의 59.7%가 ‘관련있음’에 응답했다. 남성의 41.0%가 ‘관련있음’에 응답한 데 비해 18.7% 포인트 높았다. 돌봄을 이유로 휴직하거나 무급휴가를 사용하는 등의 경험도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다. 무급휴가를 사용했다는 응답은 여성 31.8%, 남성 21.3%였고, 휴직·휴업을 한 경우는 여성 22.9%, 남성 14.7%였다. 일하는 전체 시간을 단축한 경우는 여성 37.6%, 남성 30.5%였다. 일자리 지속 여부에서 동일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은 남성 86.2%, 여성 70.9%로 남성이 높았다. ‘지속 일자리’는 남성과 여성 모두 상용근로자 비중이 높았다. 중단된 일자리는 상용근로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임시·일용근로자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중단 일자리’의 임시근로자 비중이 19.1%, 특수고용형태근로자가 10.0%였다. 계속 같은 일을 하는 남성의 소득은 평균 433.3만원으로 일을 그만 둔 남성의 ‘중단 일자리’ 소득(평균 373.8만원)에 비해 60만원 가량 높았다. 여성의 경우도 계속 같은 일자리에서 일하는 이의 소득 평균은 287.1만원으로, 일을 그만 둔 여성의 ‘중단 일자리’ 소득 평균(203.8만원)에 비해 80만원 가량 높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중단 일자리’는 ‘지속 일자리’보다 소득이 낮아, 일자리 소득과 일의 중단 결정이 관련성이 있음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코로나19로 인한 공적, 외부돌봄의 제약이 돌봄자로서 부모의 돌봄 부담과 자녀의 나홀로 시간 증가로 이어졌다”며 “그간 돌봄 지원 정책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시기 자녀 돌봄의 부담은 또다시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핵심 정책 과제로 ▲돌봄에서의 성불평등 해소, ▲돌봄 시간 지원 제도 사각지대 해소 ▲감염병/위기 재난상황 대응 공적 돌봄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실질적인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남녀 모두를 자녀 돌봄자로 지원하는 기업의 책무 강화, 성평등한 돌봄 정착을 위한 관리지표 구축 및 점검 등이 세부 방안으로 언급됐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확진되면 연차 써”… 무급휴가에 속상한 김 대리

    “확진되면 연차 써”… 무급휴가에 속상한 김 대리

    코로나19 오미크론 대유행이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지만 확진자들은 정부가 권고한 유급휴가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이 밀접접촉에 따른 코로나19 검사 휴가(공가)를 제공하지 않거나 재택근무를 시키지 않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일이 많아 노동자들이 건강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지형(33·가명)씨는 지난 22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휴가를 신청해야 했다. 감염병예방법에서 권고하는 ‘유급휴가’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개인 연차를 소진하거나 무급휴가를 사용해야 한다는 두 조건만을 제시했다. 이어 “격리가 끝난 후 나라에서 개별적으로 주는 지원금을 받으라”고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 감염병에 관련한 유급휴가나 재택근무 활성화 등이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하나도 없다”며 “직장인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무원인 김성현(가명)씨는 옆자리 직원이 코로나에 확진돼 밀접접촉자가 됐지만 재택근무는 절대 안 된다는 방침을 고지받았다고 지난 23일 말했다. 김씨는 코로나 확진 후 완치해 복귀한 직원들에 대해서 “일주일 동안 혼자 밥 먹게 하는 벌을 주라”는 얘기도 돌았다고 귀띔했다. 두 사례와 같은 코로나 확진에 따른 개인 연차 소진 및 무급휴가 강요 등 코로나 관련 직장 내 괴롭힘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두 달 반 사이 메일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들어온 코로나 갑질 고충 제보는 50건이 훌쩍 넘는다”고 24일 밝혔다. 오미크론 변이 환자가 급증한 여파로 2월 중순부터 지난 14일까지 연차나 코로나 확진에 따른 따돌림과 해고 피해를 본 상담자들이 급격히 늘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최근 한 달 사이 코로나 관련 제보가 2~3배 늘었다”고 했다. 박 위원은 “정부의 방역 방침에 따라 코로나 자가격리를 하고 백신 접종을 하는데 이에 대한 행정사항은 권고 사안일 뿐이고 회사 자율에 맡기다 보니 그에 따른 손해는 모두 노동자 개인이 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또 “공동체 질서를 위한다며 개인이 보는 손해를 법적으로 의무화시키거나 정부 행정명령으로 강제하지 못하니 사업체 규모, 근로 여건에 따라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에 격차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 “코로나 확진자 개인연차·무급휴가 써라”… 휴가 소진에 억울

    “코로나 확진자 개인연차·무급휴가 써라”… 휴가 소진에 억울

    코로나 확진자 유급휴가 보장 ‘권고’ 그쳐울며 겨자먹기로 개인연차·무급 휴가 써코로나 대유행 추세에 권리 피해도 늘어“방역지침 따른 노동자 건강권 보장해야”코로나19 오미크론 대유행이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지만 확진자들은 정부가 권고한 유급휴가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이 밀접접촉에 따른 코로나19 검사 공가를 제공하지 않거나 재택근무를 시키지 않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일이 많아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지형(33·가명)씨는 지난 22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휴가를 신청해야 했다. 감염병예방법에서 권고하는 ‘유급휴가’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개인 연차를 소진하거나 무급휴가를 사용해야 한다는 두 조건만을 제시했다. 이어 “격리가 끝난 후 나라에서 개별적으로 주는 지원금을 받으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재작년 사내에서 확진자가 나와 밀접접촉자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를 해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에도 회사가 개인 연차를 쓰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감염병에 관련한 유급 휴가나 재택근무 활성화 등이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하나도 없다”며 “직장인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무원인 김성현(가명)씨는 옆자리 직원이 코로나에 확진돼 밀접접촉자가 됐지만 재택근무는 절대 안 된다는 방침을 고지 받았다고 지난 23일 말했다. 김씨는 코로나 확진 후 완치해 복귀한 직원들에 대해서 “일주일 동안 혼자 밥 먹게 하는 벌을 주라”는 얘기도 돌았다고 귀띔했다.두 사례와 같은 코로나 확진에 따른 개인 연차 소진 및 무급휴가 강요 등 코로나 관련 직장 내 괴롭힘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은 지난 두달 반 사이 메일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들어온 코로나 갑질 고충 제보는 50건이 훌쩍 넘는다고 24일 밝혔다. 오미크론 변이 환자가 급증한 여파로 2월 중순부터 지난 14일까지 연차나 코로나 확진에 따른 따돌림과 해고 피해를 본 상담자들이 급격히 늘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최근 한 달 사이 코로나 관련 제보가 2~3배는 늘었다”고 했다. 박 위원은 “코로나 확진자에게 연차 사용을 강요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자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며 “정부의 방역 방침에 따라 코로나 자가격리를 하고 백신 접종을 하는데 이에 대한 행정사항은 권고 사안일 뿐이고 회사 자율에 맡기다 보니 그에 따른 손해는 모두 노동자 개인이 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공동체 질서를 위한다며 개인이 보는 손해를 법적으로 의무화 시키거나 정부 행정명령으로 강제하지 못하니 사업체 규모·근로 여건에 따라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에 격차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 서울, 추경 1조 1239억 긴급 편성

    서울시가 1조 1239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긴급 편성했다고 17일 밝혔다. 서울시의 3월 추경 편성은 2020년 이후 2년 만이다. 서울시는 조기 추경 편성이 코로나19 대응과 민생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서울시의회는 6·1 지방선거 전 선심성 예산을 철저하게 걸러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추경안의 기조는 ▲민생·일상회복(4248억원) ▲방역(2061억원) ▲안심·안전(1130억원) 등이다. 서울시는 먼저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에 1444억원을 편성하고, 정부의 손실보상 지원을 받지 못한 8만여개 사업장에 ‘일상회복지원금’ 100만원을 지급한다. 또 창업·재창업을 희망하는 소상공인에게 ‘4무’(무이자·무보증료·무담보·무종이서류) 융자를 업체당 1억원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 예산도 추경에 반영됐다. 무급휴직 근로자 지원금으로 151억원을 책정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월 7일 이상 무급 휴직한 근로자 1만명에게도 150만원씩 지원한다.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2061억원을 편성하고, 코로나19 입원·격리자에게 지급하는 생활지원비를 신속히 집행하도록 시비 1679억원을 책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사업인 ‘임산부 1인당 교통비 70만원’ 지원 사업에도 100억원이 투입되고, 상생주택·모아주택 등 서민 주거 안정 사업에도 118억원이 편성됐다. 이날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사전 보고된 추경안은 지극히 서울시의 필요만이 우선 고려된 하향식 추경예산안”이라면서 “시민 입장에서 꼭 편성돼야 하는 사업인지 꼼꼼히 확인할 것”이라고 밝혀 진통이 예상된다.
  • 대기업도 중고차 판매 허용… ‘현대차 인증 중고차’ 나온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7일 열린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서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3년간 결론을 내지 못했던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사라지게 됐다. 심의위는 이날 미지정 사유에 대해 중고차 판매업이 서비스업 전체와 비교해 소상공인 비중이 낮은 반면 연 평균 매출액이 크고,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낮아 지정요건 중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시장 진출로 소상공인의 피해가 충분히 예상되나 중고차 시장이 지속 성장하는 추세인 데다 중고차 성능·상태 등 제품의 신뢰성 확보 및 소비자 선택의 폭 확대 등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 등이 고려됐다. 특히 동반성장위원회가 실태조사, 전문가·소비자 의견수렴 등을 거쳐 2019년 11월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업종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는 점도 반영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심의위는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가 충분히 예상된다”며 “향후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에서 적정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앞서 현대차는 수입 완성차 브랜드만 가능했던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자체 정비 조직을 운영해 현대차가 인증한 중고차를 매입·판매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중고차 시장의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해 통합 정보포털도 구축하기로 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비정상적 상황이 정상적으로 전환돼 향후 중고차 산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소비자 권익 증대 등 중고차 시장 선진화에 노력하겠다”면서 “5년 내, 10만㎞ 이하 차량을 대상으로 한 인증 중고차 사업 추진과 함께 단계적 시장 진출, 대상 이외 물량의 경매 등을 활용한 중고차 매매업계 공급 등 상생안 이행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 [속보]“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허용”

    [속보]“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허용”

    현대차·기아 중고차 시장 진출 가능 3년째 결론을 내지 못했던 ‘대기업(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결론이 났다. 결과는 ‘허용’. 이에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업체도 중고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고자동차판매업 관련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는다고 17일 의결했다. 심의위는 이번 결정에 대해 중고차 판매업 분야에 소상공인 비중이 낮고,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른 서비스업 분야와 비교할 때 중고차 판매업은 ‘도‧소매업’이나 자동차 및 부품 판매업‘에 비해 소상공인 비중이 낮고, 이들 소상공인 연평균 매출액이 크며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낮은 점을 감안한 것이다. 심의위 측은 “완성차업계의 중고차시장 진출로 소상공인의 피해가 충분히 예상되나 완성차업계의 진출로 중고차 성능・상태 등 제품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 선택의 폭을 확대해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완성차 업체, 6개월 이내 사업 개시할 것 전망 완성차 업체는 6개월 이내에 사업을 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후 2019년 2월 보호기간이 만료됐다. 같은해 11월 중고차 업계에서 생계업 적합업종 지정 신청을 요청했고, 중기부는 2020년 5월까지 결정해야 했지만 현재까지 미뤄왔다. 완성차 업체는 ▲중고차 시장 선진화 ▲소비자 후생 개선 ▲수입차와의 형평성 등을 주장했다. 하지만 중고차업계는 ‘골목상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현대차는 지난 7일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한 자체 로드맵을 내놨다. 현대차는 인증 중고차 가운데서도 5년·10만㎞ 미만의 차량을 제한적으로 거래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상생안을 제시했다. 또 시장점유율을 올해 2.5% 상한선을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까지 자체적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 [사설] 文·尹 회동, 정권 이양 차질없게 조기 개최해야

    [사설] 文·尹 회동, 정권 이양 차질없게 조기 개최해야

    어제로 예정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오찬 회동이 무산됐다. 회동을 4시간 앞둔 어제 오전 8시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회동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했고,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무산 이유는) 양측 합의에 따라 밝히지 못함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당선인 회동은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당선인 때부터 시작돼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고 정권 인수에 협조를 약속하는 정치적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신구 권력 간 정면충돌처럼 보이는 이번 회동의 당일 무산은 전례가 없다. 국정의 연속성을 위해 신구 정부 간 원활하고 순조로운 정권 인수인계를 기대하던 시민들의 우려가 깊다. 여야 정권교체가 5년 주기로 빨라진 상황에서 신구 정부 간 갈등은 국민통합에도 반하는 일이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투표 결과가 반쪽으로 쪼개진 상황을 고려하면 진영 간의 대립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회동에서 주로 논의될 의제는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 인사권 이양, 추가경정예산안 등이겠다. 이 가운데 인사권 행사를 놓고 실무급 사전 협의에서 다퉜을 가능성이 크다. 당선인 측에서는 최근 임기 만료가 임박한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공공기관·공기업 기관장 등의 인사가 진행되는 것을 두고 ‘임기말 알박기’라고 비판했다. 당선인 측에서는 ‘꼭 필요한 인사의 경우는 저희와 함께 협의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선인 측의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양측이 불쾌하게 여길 대목이 적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그제 김오수 검찰총장의 퇴진을 압박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 등에서 거론된 ‘정치보복’의 문제가 새롭게 부각될 수 있는 상황도 있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은 미묘한 갈등과 형식적인 대화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순조로운 정권 이양을 보여 주는 중요한 퍼포먼스다. 가장 늦은 회동이 당선 9일째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대통령·당선인 회동은 하루라도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늦어질수록 정치적 부담은 국민까지 확산된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뿐 아니라 미국처럼 정권을 넘겨주는 대통령직인계위원회도 법제화해 신구 권력 갈등이 있더라도 순조롭게 정권 이양이 가능한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
  • 성동 ‘돌봄노동 경력인정서’ 받으세요

    성동 ‘돌봄노동 경력인정서’ 받으세요

    전국 최초로 돌봄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조례를 만든 서울 성동구가 후속 조치로 경력인정서 발급 기준을 만들었다. 구는 경력보유여성 권익위원회 회의를 통해 ‘돌봄노동 경력인정서’의 발급 기준과 절차를 심의·의결했다고 8일 밝혔다. 구는 지난해 11월 육아와 가사, 간병 같은 무급 돌봄노동에 대해 경력인정서를 발급하는 내용을 담은 ‘경력보유여성 등의 존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인정서는 미취업 상황에서 무급 돌봄노동 기간이 1개월 이상인 경력보유여성이 별도의 경력인정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발급된다. 프로그램 운영 기관은 성동구와 구가 인증하는 기업 또는 기관으로 한정했다. 또 프로그램을 80% 이상 수료해야 한다. 자격 검증은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가족관계증명서, 입퇴원사실확인서 등을 통해 이뤄진다. 인정서를 받으면 성동구도시관리공단, 성동문화재단, ㈜성동미래일자리 등에 지원할 때 돌봄 기간의 50%를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구는 올해 상반기 인력 채용 시 경력인정서를 채택하는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계획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일과 생활이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 중기, 코로나 극복에 ‘금융 지원’보다 ‘근로시간 유연화’ 시급…중기중앙회 설문조사 결과

    중기, 코로나 극복에 ‘금융 지원’보다 ‘근로시간 유연화’ 시급…중기중앙회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들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 지원 확대’보다 ‘근로시간 유연화’가 더 시급하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에 관련해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28.3%가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한 근로시간 유연화’를 첫손으로 꼽았다.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27.0%로 그 뒤를 이었다. 두 항목의 응답자가 과반을 넘긴 55.3%에 달했다. 그 다음은 금융지원 확대(19.7%), 내수 소비촉진 확대(15.7%), 물류 및 배달 비용 경감방안 마련(8.3%) 등의 순으로 답했다. 올 들어 사업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23.3%였으며 해당 기업의 조치 사항은 정상 근무 실시가 46.4%로 가장 많았다. 재택근무(41.1%), 분산 근무(9.8%), 영업 중단 또는 휴업(2.7%) 순으로 나타났다. 확진 근로자에게 유급휴가 또는 병가를 부여했다는 기업은 62.9%였고, 무급휴가 부여는 18.6%, 연차사용 권고는 15.7% 등이었다. 근로자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실시 중이거나 실시 예정인 사항(복수 응답)으로는 마스크·소독제 등 지급(28.4%), 정기적 소독(24.3%), 분산 식사 및 다중 이용시설 폐쇄(13.5%), 진단키트(10.2%) 순으로 꼽혔다. 확진자 급증에 따른 우려 사항(복수 응답)은 영업·가동중단에 따른 매출 하락이 43.9%로 가장 많았고, 근로자 이탈에 따른 인력난 심화(21.5%), 판로 축소 및 고객 이탈(17.1%) 등이 뒤를 이었다. 조사는 지난달 18~22일 진화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5.66%포인트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오미크론 확산에 따라 중소기업의 현장 인력난이 심화되는 만큼 주52시간제 보완 등 근로시간 유연화와 함께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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